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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월 9일엔 대선이 있었고 알다시피 윤석렬이 승리했다. 표차는 겨우 0.7%정도로 역대 가장 적은 박빙의 승부였다. 방송3사의 디시전 K는 통상 5%면 당선 유력. 20%면 당선 확실을 예측하는데, 이번 경우 개표가 거의 80%에 이르러서야 간신히 당선 유력을 예측할 수 있었다. 그만큼 이긴 측엔 정말 짜릿하면서도 위기감이 강하게 느껴지는 승리였고 패자 쪽에게는 무척이나 아쉬움이 남는 뼈저린 패배였다. 보수계열은 징역 20년짜리 실패한 대통령을 연속 두 번이나 내세우는 실정을 저질렀음에도 5년만에 정권을 되찾아왔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1. 민주당이 진 이유

 가. 정체성이 애매하다.

 사실 나는 보수쪽에 비해 민주당이 늘 정체성이 애매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이는 한국의 정치적 상황 때문인 것 같은데 야당으로써 보수와 대결할때는 진보적인 시각과 사회적 약자를 많이 고려하며 정치개혁도 늘 염두에 두지만 정작 여권이 될 경우 좀처럼 이를 실행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곤 한다. 실제 민주당은 좌파로 여겨지지만 그 안에는 언제든 보수로 넘어갈수 있는 인사와 중도, 그리고 일부 좌파로 구성되어있다. 그리고 한국은 정치 스펙트럼이 세계적으로 볼 때 우편향 되어 있어 실제 한국의 민주당은 진보라기보다는 중도우파나 잘해봐야 중도좌파정도로 분류된다. 사실 스펙트럼상 좌파는 정의당 계열이다. 

 이는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세 정권에 모두 해당이 되며 특히나 이번엔 지난 보수 정권 10년으로 쌓인 게 많았던 터라 이런 부분에서의 강한 해소가 필요했다. 하지만 비정규직의 상황, 사회적 약자의 권리 해결, 정치개혁등이 여전히 해결되지 못했으며 이는 실제 민주당이 이런 것을 원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라는 강한 의구심이 들게 만들었다. 정의당이 유독 이번 정권에서 민주당에 반감을 갖고 나왔던 것은 이런 것에 대한 실천의지에 강한 의심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 결과 대선토론과정 내내 정의당 대선 후보는 대척점에 있는 보수후보보다 오히려 민주당쪽 후보를 더 많이 공격했다. 이렇게 된데는 비례대표사건이 무엇보다 더 컸었다고 본다


 나. 청년을 빼았겼다.

 2000년대 초반 보수진영은 처음으로 정권을 빼앗기고 강한 위기감을 느꼈다. 20-30대 젊은 층에서 큰 폭의 패배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당시 그들은 젊은층의 지지를 되찾지 못하면 결국 당이 사라질 것으로 파악했다. 나이든 사람은 결국 늙어서 사라지고 젊은 층이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기에 매우 당연한 예측이었다.(물론 실제론 그렇지 않다. 사람은 나이들면 보수화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보수계열은 정말 오랜만에 젊은 층에서 사실상 승리를 거두었다. 이전처럼 젊은 층에서 지지를 얻었다면 승리는 진보쪽이었을 것이다. 여기엔 이준석 대표가 시작한 젠더갈라치기가 큰 성과를 거두었다. 이렇다할 국회의원자리 하나 없이 방송계를 떠돌며 이리저리 전전하던 이준석은 사실 여러차례 남여논쟁에 패널로 등장한 적도 있었다. 그때마다 남성의 입장을 강하게 대변하곤 했는데 이 때문큼은 진보성향의 남성조차도 이준석을 지지하는 모습을 볼 수 있곤 했다.

 아마 여기서 힌트를 얻지 않았는가 싶다. 그는 남여차별이 구조적으로 존재하는 나라에서 성차별해소를 위한 시도를 역차별로 몰아갔고 이 틈새공략이 매우 성공적이었다. 그 덕에 그는 최연소 당대표가 될 수 있었고, 아마 국회의원 자리도 쉽게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실제 젊은 남성들은 성차별을 쉽사리 경험하지 못한다. 어려서부터 그렇고 남여평등적 교육 및 집안환경에서 자라왔을 가능성이 크며 대학진학이나 취업에서 여성보다 이득을 경험했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 하지만 그들은 군대라는 큰 차별을 경험해야하며 사회에 존재하는 유리천장이라는 것은 사회상층정도로 진입해야만 느낄수 있는 것들이다. 아직 그들은 그럴만한 나이도 경험도 갖고 있지 못하기에 차별을 시정하기 위한 현정권의 노력이 강하게 역차별로 다가왔을 것이다. 이들을 어루만졌어야만 했다.

 

 다. 반면 여성의 집결은 너무 늦었다.

 매우 불리한 구도속에서 그래도 박빙의 패배를 거둘수 있었던 것은 막판 젊은 여성의 표심집결이라는게 전문가들의 공통의견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일주일 정도만 선거가 늦춰졌어도 결과는 알수 없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너무 늦은 아쉬움은 여성들에게 이재명에 대한 강한 향수와 애착현상으로 발전하고 있는데 이미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격이다. 

 하지만 여성의 늦은 결집은 역시 결국 민주당의 탓이다. 남성 입장에선 민주당은 여성친화적 정권으로 느껴지지만 실제 여성들에겐 그렇지 않았다고 본다. 박원순, 오거돈, 안희정으로 이어지는 핵심 여권 인사들의 성추행 사건들 그리고 그 후속 조치들은 여성들에게 강한 반감을 가져왔을 것이며 민주당에 대한 의심을 하게 했을 것이다. 

 때문에 여성들은 보수진영이 초반부터 강하게 반여성적으로 움직였음에도 집권이 가능한 현실적 대안세력에게로 빠르게 결집하지 못했다. 일부 민주당, 일부 정의당, 일부 국민의 당 쪽으로 흩어져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안철수의 단일화, 그리고 패배를 막기 위해 막판에서야 어쩔수 없이 민주당 쪽으로 움직인게 아닌가 싶다. 좀 더 정략적으로 빠르게 판단하고 민주장 쪽에 힘을 싫어 초반부터 지지율을 대등하게 끌어올려주었다면 다른 결과를 도출할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라. 대통령의 답답한 인사

 문재인 대통령은 상당히 온화한 성품으로 원칙주의자로 보인다. 민주당 계열 대통령이 그렇듯 강한 리더쉽보다는 수평적이고 절차적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노력했다. 이는 옳은 방향이지만 이번 정권 내내 민심을 이반시킨 여러 인사를 고집하는 패착을 나았다고 본다. 우선 조국이다. 개인적으로 조국을 옹호하고 그가 저지른 여러 흠에 비해 개혁반대세력에 의해 테러에 가까운 피해를 보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보수진영과 보수언론은 한국인이 가장 민감한 입시사건으로 조국에 치명상을 입혔다. 그 박근혜 마져 무너뜨린 것은 최순실의 다른 엄청난 비리가 아닌 그 딸 정유라의 이화여대 부정입학 사건이었다는 것을 감안했어야 한다. 그리고 이에 대해 정략적으로 대통령의 빠른 판단이 필요했다고 본다.

 인사를 고집한 패착은 국토부장관 김현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보수언론과 야당의 공세가 옳건 그르건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실패로 국민들에게 여겨져왔고 폭등하는 집값에 악화하는 여론에 대해 뭔가 조치가 필요했다. 김현미 장관의 경우 필요 이상으로 오랜 임기를 보장했고 사실 그 대가로 얻어낸 것도 없었다. 

 윤석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추미애 윤석렬 갈등이 불거진 시점부터 빠르게 대통령이 둘을 동시 해임하는 결과로 문제를 마무리 했어야 한다. 필요이상으로 임기를 오래 보장하며 윤석렬을 키웠고 그 결과는 정권을 빼앗기는 것이었다. 

 물론 대통령의 입장은 이해가 가는 측면이 많다. 원칙을 지키고 싶었고 절차적 민주주의를 보장하고 반대하는 사람이라도 그것을 보장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 하고 싶었던 탈원전, 검찰개혁은 이루지 못했고 결과는 참담하다. 무척이나 아쉬운 측면이 아니랄수 없다.


마. 부동산 폭등

 한국의 부동산은 정권과 역방향으로 흘러왔다. 역사적으로 우파는 시장주의자들이기에 부동산에 대한 규제를 가급적 풀고 상승을 유도하는 정책을 많이 사용한다. 반면 좌파는 평등주의자들이기 불로소독이자 계급적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부동산에 대해 강한 규제와 세금을 부여하곤 한다. 하지만 부동산가격은 이런 정부정책에 큰 영향을 받지 않고 세계적 흐름을 탄다. 미국이 양적 완화를 한 2000년대 초중반 부동산은 크게 올랐고, 경기가 쇠퇴한 2010년대 중반은 하락했으며 다시 양적완화를 크게 시도한 2010년대 후반에서 2020년대 초반 크게 올랐다. 

 역설적이게도 한국의 경우 상승기엔 김대중 노무현이 하락기엔 이명박 박근혜가 다시 상승기엔 문재인이 다시 오고 있는 하락기엔 윤석렬이 대권을 잡았다. 때문에 부동산은 결국 정부의 정책탓을 하기엔 어려운 면이 있다. 그져 애써 물살에 따라 크게 움직이는 방향키를 애써 반대방향으로 잡는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의지와 방향성에서 모두 아쉬움이 남는다. 

 적어도 시장에 강한 규제 신호를 주고, 부동산에 대해 공적인 역할을 많이 강조하며 더불어 과감하게 공급을 하고자하는 시도를 주는 것도 나쁘지 않았을 것으로 본다. 이는 가장 큰 패착으로 사실상 정권이 넘어가는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바. 한국의 고령화

 언급한 것처럼 20년전 한국의 보수진영은 젊은 층의 이탈을 가장 큰 문제로 여기고 강한 위기감을 느꼈다. 노인을 결국 나이들어 사라지고 그 자리를 꾸준히 공급되는 청년층이 차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보수진영은 당시 진보성향을 가진 젊은이들이 많아지면 이들이 나이 들어서도 자신들을 지지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보수화되기 때문이다. 이는 노인도 청년처럼 공급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실제 2000년대 초반 김대중 노무현에게 표를 던진 40대들은 지금 60대가 되었고 이들은 강력하게 보수를 지지한다. 이는 과거 보수정권이 예측하고 우려했던 것과는 다르게 초고령화하는 한국사회의 유권자층이 앞으로 보수에 유리하게 흐를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 젊은 연령층은 그 수가 적고 이념적으로 진보적인 성향이 약화하고 있으며 반면 보수성향을 가진 노인층은 다수의 인구가 향후 수십년간 꾸준히 공급될 예정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이것이 아주 큰 영향력을 미치진 않았지만 앞으로 두고 봐야할 것으로 생각한다.


 이런 모든 악재로 인한 강한 정권 교체여론에도 불구하고 민주진영은 약간의 차이로 패배했다. 물론 여기엔 전문가들이 언급한 것처럼 정치초보이고 그에 걸맞게 무수한 실수를 저지른 윤석렬에 비해 도덕적으로 흠결이 많았지만 실력있어 보이는 이재명쪽이 인물에서 크게 앞섰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번에도 보수와 진보는 총집결하여 사실상의 양자대결을 펼쳤는데 박근혜 문재인 때는 진보가 총집결했음에도 과반을 넘지 못하고 패배했었다. 하지만 이번엔 정의당의 표를 진보로 받아들인다면 진보가 얻은 총 지지는 과반을 살짝 넘게된다. 어찌보면 진보진영이 패배했음에도 역사상 처음으로 과반의 득표를 얻은 첫번째 선거가 아니었나 싶다. 그만큼 한국사회가 보수가 매우 유리한 구도에서 서서히 진보가 유리한 구도로 변화하는 과정에 있는 것이란 생각이다. 때문에 패배했음에도 이번 선거는 진보쪽에 의미있는 선거였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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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인구는 거의 80억에 도달했고 가까운 시일내에 100억 돌파도 기정사실화 되고 있다. 문제는 지구가 이 모든 걸 부양할 만큼 그리 크지 않고 인간은 개체수가 본래 가장 적어야할 최상위 포식자라는 점이다. 이런 무리한 부양을 위해 인간은 현재 태양이 매일 제공하는 에너지를 사용할 능력이 부족하자 과거 지구가 축적한 에너지인 화석에너지를 이용했고 자연순환 이상의 질소고정을 하여 식량을 증대했다. 그리고 나머지 동물군과 식물군의 서식지를 파괴하고 여기에 식량작물과 가축들을 배치하여 지구상의 생물에너지 대부분을 자신의 식량에너지로 삼고 있다. 현재 지구상의 동물군의 무게는 인간자체와 인간에게 에너지를 직접 제공하는 가축이 99%를 차지한다. 나머지는 수만 많고 적은 개체수를 간신히 유지하며 에너지와 자원을 인간에게 모두 빼앗기고 있는 셈이다. 

 이런 형태의 식량증대 방법은 지구 환경과 식량이 되는 동물에 엄청난 고통을 가하는 윤리적 문제를 가져왔다. 책 '잡식동물의 딜레마'는 자연순환에서 농경순환 그리고 산업화와 화석에너지를 식량으로 변환하는 산업화된 순환의 문제점에 대해서 지적한다. 그리고 책 '값싼 음식의 실제가격'은 우리가 실제 먹는 수많은 식물, 동물음식이 사실 화석연료와 보조금에서 비롯된 것이고 그것이 환경에 가하는 부담과 보조금으로 인한 가격이므로 실제로는 엄청나게 비싼 가격을 초래하는 것임을 밝힌다. 규격화되지 않았거나 약간의 손상이 있기에 상품화되지 않고 버려지는 음식도 엄청나다. 그리고 반대쪽에서는 그것이 없어 굶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에서는 69년을 기점으로 인간이 개체수가 늘어나고 풍요로워지면서 반대로 얼마나 지구가 끔찍해졌는지를 수치로 담담하게 제시한다. '고기로 태어나서'를 한국의 책으로 작가 자신이 닭, 돼지, 소, 양계, 식용개를 다루는 축산업계에 직접 취업하며 겪은 동물들의 끔찍한 삶을 가감없이 드러낸책이며, 피터싱어의 '동물 해방'은 공리주의에 입각하여 쾌락과 동물을 충분히 겪는 동물의 이익도 도덕적으로 고려해야함을 주장하는 책이다. 

 이 책들은 매우 설득력이 있으며 독자로 하여금 강한 문제의식을 갖고 하고 환경과 윤리적 문제에 대한 영감을 준다. 하지만 해결은 매우 어렵다. 상당수의 인간이 자신의 잡식동물로서의 본능을 포기하고 채식으로 돌아서거나 아니면 감당이 가능할 정도로 인구의 수를 줄여야 한다. 그러나 이중 어느 것도 인간의 본능에 부합하지 않는다. 인간은 열량이 높은 육류를 선호하고 갈망하며, 환경이 좋아져 경제성장이 되면 충분히 번식하고자 하는 욕망을 갖는다. 때문에 육식의 포기는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실제로도 그래왔다. 

 하지만 과학기술의 발달로 등장한 세포배양육은 이런 모든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가능성을 갖고 있다. 세포배양육은 글자 그대고 동물의 세포를 배양하여 식용이 가능한 고기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 기술은 10년정도 전에 실체를 조금씩 드러냈지만 당시만 해도 무척 비쌌다. 세포배양육이 모습을 드러냈을때 치킨 너겟단가가 500g당 무려 120만 달러였다. 그야말로 요리사가 살 떨며 조리할만한 가격이었는데 2019년엔 그 가격이 500g당 1000달러 선으로 크게 내려갔다. 치킨 너겟 개당 가격 50달러 수준인 셈이다. 아직은 치킨 너겟 한 개당 한화 5-6만원 수준으로 비싼 수준이지만 가격이 감당할 만한 수준으로 내려가는 것은 시간 문제이며 재생에너지의 가격이 화석에너지의 가격보다 싸진 것처럼 배양육의 가격이 재래식 축산육의 가격보다 내려가는 날도 가까운 시일내에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언급한 것처럼 세포배양육은 재래식 축산업이 야기하는 환경파괴의 문제와 동물에 대한 윤리적 문제 두 가지를 모두 해결할 수 있다. 현재 축산업은 전 세계가 배출하는 온실가스량의 무려 14%를 배출한다. 그리고 이는 축산업계의 반발로 제법 보수적으로 추정한 수치다. 이 온실가스의 총량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차량과 선박, 기차, 비행기에서 내뿜는 온실가스의 배출량을 상회한다. 재래식 축산업은 인간이 배출하는 온실 가스중 이산화 탄소의 9%, 메탄의 37%, 아산화 질소의 65%를 차지한다. 재래식 축산업중 온실가스 배출에 가장 크게 기여하는 것은 소다. 이는 소개 네 개의 위를 통해 음식을 발효하기 때문이고 그 과정에서 메탄가스가 대량으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소는 메탄가스 배출기계나 다름이 없는데 500kg의 소가 무려 100kg의 메탄가스를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재래식 축산업은 가성비가 매우 떨어진다는 약점도 지닌다. 소고기 450g을 얻기 위해서는 사료가 2.7kg이 필요하며 돼지고기 500g을 위해서는 사료 1.6kg, 닭고기 500g을 위해서는 사료 900g 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사료는 굶주리는 가난한 나라의 사람이 식량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즉, 현재의 축산업은 부유한 국가 시민의 입맛을 충족시키기 위해 가난한 국가사람들을 부양하지 않는 것에 식량체계에 기반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재래식 축산업은 식량 뿐만 아니라 상당한 양의 토지와 물을 소모한다. 매우 밀도 높은 공장식 축산업이긴 하지만 그래도 지구상의 가축수가 엄청난 만큼 상당한 양의 토지와 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재래식 축산업은 그 대상인 가축에게 엄청난 고통을 가져온다. 생물은 자신의 생존과 번식을 위해 태어나며 그를 위한 본능과 그것이 충족될 때 갖는 기쁨이 있다. 하지만 공장식 축산업은 그 모든 것을 박탈한다. 소는 더이상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풀을 뜯을 수 없으며 돼지는 흙목욕을 하지 못하며 심지어 뒤를 돌아보지도 못할만큼 좁은 공간에 갇혀 그 스트레스로 다른 돼지의 꼬리를 물어뜯는다. 닭은 발톱으로 땅을 긁을 수 없으며 날개짓조차 하지 못한다. 이들 모두는 인간을 위해 새끼와 자신의 고기, 우유나, 달걀 등을 착취당하며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죽음을 맞게된다. 이는 상당한 윤리적 문제를 일으켰다. 물론 식물이 아닌 동물의 하나로서 인간은 지구상의 다른 생명을 자신의 에너지원으로 바꾸어 생명을 유지할수 밖에 없으며 이는 다른 동물도 마찬가지다. 때문에 이는 윤리의 영역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인간의 축산행위가 윤리의 영역이 되는 것은 인간은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충분히 생존을 유지할수 있는 다른 방안과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인간은 채식을 통해서도 충분한 단백질과 다른 영양분을 얻을 수 있으며 육식을 포기하지 않더라도 지금처럼 광범위한 극도의 고통을 주는 형태를 유지하지 않아도 된다. 

 세포배양육은 이런 문제를 모두 해결한다. 세포배양육이 재래식 축산업을 대체할 경우 같은 고기를 생산하는데 에너지의 45%, 온실가스 배출의 96% 토지사용이 99% 물 사용량이 96% 감소할 것으로 예측된다. 무척이나 인상적인 수치다. 또한 고기를 만들어내는데 동물의 본능의 박탈과 고통의 증가, 죽음이 없기에 윤리적 문제도 제기되지 않는다. 

 여기에 몇 가지 장점이 더 있다. 제공되는 고기가 매우 안전하고 친환경적이라는 것이다. 자연상태이건 축산업이건 동물은 외부환경에 노출되며 이로 인해 기생이 발생하거나 세균에 고기가 오염된다. 우리는 도축 및 유통과정에서의 위생강화와 조리과정에서 충분한 열을 통해 고기를 요리함으로써 이 문제를 상당부분 해결하지만 완전하지는 않으며 이로 인해 가끔 식중독등의 사건이 발생한다. 하지만 세포배양육은 무균환경에서 배양되기에 유통과정에서의 관리만 잘 이뤄지면 매우 안전한 고기가 공급된다. 공장식 축산업에서 알게모르게 들어가게 되는 환경호르몬이나 항생제등의 문제에서도 자유롭다. 

 세포배양육이 제공할만한 또 다른 장점은 식량 위기의 극복이다. 기존 축산업은 상당한 식량자원과 수자원을 소모한다. 때문에 지금처럼 계속 인구가 늘어나고 기후위기가 닥칠 경우 충분한 인구 부양력을 가질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공장식 밀집 사육으로 인한 잦은 질병의 발생도 문제다. 또한 근본적으로 기존의 축산업은 수많은 기술발전에도 불구하고 해당 지역의 기후에 크게 의존한다. 실제로 세계적 축산 국가는 미국이나, 호주, 유럽, 아시아 지역 등 동물사육에 적합한 온대기후지역이다. 건조지역이나 한대, 열대지역에서 채산성있는 축산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공장이나 다름 없는 실내 건물에서의 세포 배양은 이런 나라도 기술만 충분하다면 세계적 축산국으로 변모시킬수 있다. 

 세포배양육은 기술적으로 3가지 요소를 갖는다. 세포, 배양액, 바이오 리액터다. 세포는 동물의 세포로 보통 동물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생체검사를 통해 얻는다. 배양육 업계는 최근 여러 종의 동물세포를 보관하고 있는 기관이나 업체로부터 안정적으로 세포를 공급받고 있기도 하다. 세포배양은 기본적으로 세포분열을 통해 고기를 얻는데 문제는 세포가 자연상태에서 보통 50회만 분열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충분한 단백질과 항산화제 보충 배양액을 이용하면 이 횟수를 10회정도 더 늘릴 수 있으며 좀 더 증식하는 특정 종류의 동물 세포군의 세포 사용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가고 있다. 

 배양액은 현재 각 회사마다 비밀로 붙이고 있는 부분이다. 동물의 세포는 당연히 다르기에 소, 돼재, 오리, 닭의 세포에 적합한 배양액은 각각 다르다. 특히, 조류의 세포보다는 포유류의 세포가 더 민감하기에 고도의 기술을 적용한 배양액이 필요하다. 초기 배양액은 소의 태아 혈청을 사용했지만 가격이 4컵 정도에 1150달러정도로 매우 비싸다. 지금은 기술개발로 배양액의 가격이 업체마다 다르긴 하지만 리터당 1-5달러 정도로 저렴해졌다. 600리터 정도의 배양액이면 닭 1500마리 정도의 고기 생산이 가능하다.

 바이오리액터는 배양액 안에서 세포가 헤엄치며 자라는데 필요한 환경을 구현한 기계장치다. 바이오 리액터는 산소와 영양분이 고르게 분포하도록 휘젓는 제트기류를 꾸준히 발생시키며 그 강도가 세포의 성장을 방해하지는 않을 정도로 적당히 조정된다. 바이오리액터는 일정 온도와 PH를 유지하며 산소의 농도와 영양도의 농도를 꾸준히 감지하며 관리한다. 

 세포배양육은 이런 가능성을 갖고 있지만 넘어야 할 한계도 존재한다. 우선 기술적 개선이다. 현재 세포 배양육은 근육조직을 배양한 것이다. 하지만 재래식 축산업은 이 근육과 지방이 적절히 혼합된 것이다. 그리고 사실상 고기의 맛과 풍미는 지방이 좌우한다. 사실 지방이 없다면 소나, 돼지, 닭, 오리의 맛은 구분이 어려울 정도다. 때문에 고기로서의 경쟁력은 지방이 좌우한다고 볼 수 있는데 아직 배양육은 근육조직과는 다르게 지방세포부분에서는 연구가 미흡하다.

 다른 장벽은 사회적 편견과 재래식 축산업계의 반발이다. 재래식 축산업계는 세포 배양육이 가격경쟁력과 품질경쟁력을 갖출 경우 그 어떤 카드도 갖고 있지 못하게 된다. 윤리적 문제와 환경파괴라는 치명적 문제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들은 각국의 정부에 강한 압박과 로비를 가하고 있으며 세포배양육을 고기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저자는 축산업이 발달한 미국에서 이런 강한 압박을 겪었는데 상대적로 환경파괴 문제에 민감한 유럽이나 식량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아시아에서는 큰 환대를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사람들의 고기에 대한 전통적 생각도 넘어야할 문제다. 세포배양육이라는 명칭 자체는 그 고기가 갖는 친환경성과 안전성에도 불구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뭔가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고기처럼 여겨져 강한 거부감을 갖게 한다. 특히, 세포배양육을 장기섭취했을 경우 인체에 어떤 문제가 발생하지에 대한 연구도 전무한 것이 사실이다. 

 재밌는 가능성은 세포배양육이 특정 종교의 계율로 인한 음식문화를 바꿀 가능성도 있다는 점이다. 유대교와 이슬람교는 돼지 고기를 금기시하며 힌두교에서는 소를 금기시한다. 전통 유대 율법에 기반한 코셔시장 규모는 연간 240억달러수준이며, 무슬림 율법 식단인 할랄은 시장 규모가 무려 1조6천억 달러에 달한다. 이 종교들의 계율에선 돼지고기를 금기시한다. 하지만 세포배양육을 통해 만들어진 돼지 고기 역시 기존의 돼지로 볼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들의 종교지도자들이 이것을 허용한다면 그야말로 수천년만에 이들의 식생활에 지각변동이 생겨날 것이다. 살생을 금지하는 불교에서도 고기의 허용을 금지한다. 생명을 죽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명을 죽이지 않는 세포배양육을 불교의 승려가 거부할 이유는 마땅지 않다. 이 부분에서도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언젠가 가까운 미래에 인간은 세포 배양육으로 만든 다양한 고기를 즐기며 과거 동물을 잔인하게 도축하고 무리하게 개체수를 불려 지구 환경을 파괴했던 야만스러운 시절을 과거의 일로만 회상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축산업의 농장이 차지했던 자리는 숲으로 돌아가 자신의 에너지를 빼앗겼던 다른 생물들이 다시 차지하게 될 것이며 생겨난 숲은 탄소를 흡수해 지구온난화를 조금이나마 막아줄 것이다. 비건이라는 선의로 시작된 좋은 용어도 사라지게 될 것이고 오직 건강상의 이유로만 채식을 즐기는 소수의 사람만 남게 될 것이다. 그런날이 머지 않아 올것으로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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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버 2022-02-22 14: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포배양육에 대해서 어렴풋하게만 알고 있었는데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알아 갑니다. 특히 지방세포부분에서 연구가 미흡해서 재래식 축산업의 고기와 맛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은 처음 알았습니다. 어서 빨리 기술이 발달할 날이 오면 좋겠네요!

닷슈 2022-02-22 21:20   좋아요 1 | URL
저도 그날이 빨리 오길 기다립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며 그렇기에 주변의 인간과 협력 및 경쟁을 한다. 주변 협력자들 중에는 자신과 유전자를 100%공유하는 일란성 쌍둥이에서 절반을 공유하는 부모와 형제자매, 그리고 일부를 공유하는 인척들이 있다. 그리고 유전자를 거의 공유하진 않지만 나의 생존과 번식에 도움을 주는 친구들이나 믿을만한 협력자들, 그리고 같은 문화권의 부족 구성원들도 있으며 이들은 나의 생존과 번식에 도움을 준다. 반면 나의 생존과 번식에 방해를 주는 경쟁자들은 성적 경쟁자들이나 생존을 위한 자원을 갖고 다투거나 사기 및 공격적 행동을 보이는 인간들, 우리 부족과 적대적 성향을 띠는 경쟁부족 구성원들이다. 

 이렇게 주변의 사람이 나의 생존과 번식에 협력적이냐 경쟁적이냐에 따라 인간은 자연스럽게 주변 사람들에게 가중치를 부여하게 된다. 민주사회에서 태어난 우리는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고 배우고 그리해야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인간은 태생적으로 모든 주변인을 평등하게 대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인간은 사람에 대한 자신의 가중치의 정도를 공감이라는 감정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여기에는 개인의 유전전 근인도, 그리고 같은 사회문화권 구성원, 개인적 친밀도나 그 사람의 협력도, 혹은 사회의 쓸모 있는 구성원으로서 그 사람의 위치나 외모, 성별, 나이등이 종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사람은 매일 일어나는 사건 사고 속에서 피해자의 조건이 어떠하느냐에 따라 그가 보이는 공감정도는 현저히 달라진다. 때문에 공감이란 수단이 도덕성의 조건으로 그리 좋지 못함을 책 공감의 배신은 보여준다.


 






 공감에 대한 차이는 재난 영화를 봐도 쉽게 볼수 있는데 재난 영화에는 많은 공식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빌런인데 모두가 생명상실의 위기 상황에서 자기만 살겠다고 모두를 위기에 몰아넣거나 구조순서를 가로채려고 시도하는 그런 자들이다. 그런데 이런 빌런들은 이상하게도 대부분 성별은 남성이며 나이는 대개 젊거나 중년층이고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은 경우가 많다. 영화 해운대에서 난리치다 구조대원을 죽음으로 이끈 젊은 재벌, 부산행에서 주인공들을 막아버린 아마 적당한 기업 중역으로 보이는 안경 쓴 아저씨, 2012에서의 러시아 재벌, 샌안드레아스의 역시 재벌, 영화 엑시트에서의 지배인, 타이타닉에서의 로즈의 약혼자등이 그렇다. 아마 좀더 찾아보면 이보다 훨씬 많은 것이지만 아마 빌런의 유형은 상당히 비슷할 것이다. 

 위기상황에서 유독 남성, 그것도 젊거나 중년이면서 사회경제적 지위가 비교적 높은 이들이 이런 진상을 부리는데는 그럴듯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선 이들이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각자도생의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완력을 쓰기 좋은 위치라는 점을 들 수 있다. 아무래도 여성이나 노년, 어린 아이들에 비해 힘이 강하니 스스로 살고자 난리치기 적합하다. 더구나 사회경제적 위치가 높은 사람은 그 상황에서 그것을 자신의 생존을 위해 사용할수 있다면 적극적으로 사용하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들이 아무래도 가장 공감 받지 못하는 존재로 위기 상황에서 가장 낮은 가중치를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트롤리 딜레마란 윤리학 사고 실험이 있다. 양편 중 한 쪽을 반드시 죽일 수 밖에 없을 때 선택을 하게 하는 실험인데 크게 사람의 수나, 그 사람이 나 자신 혹은 얼마나 나와 관련이 있는지, 나이는 어떤지, 성별은 어떤지가 조건으로 주어진다. 사람마다 다르긴 하지만 이 상황에서 보통의 사람들은 적은 수의 사람보다는 더 많은 사람을, 남자 보다는 여자를, 그리고 어린 아이를, 노인보다는 젋은이를, 뚱뚱하거나 장애가 있는 사람보다는 보통으로 보이는 사람을 더 살리려는 경향이 있다. 재난영화의 각자도생의 상황은 어찌보면 트롤리의 딜레마 상황과 가장 유사하다. 그렇기에 중년 혹은 젊은 남성은 자신이 가장 가중치가 낮음을 스스로 깨닫고 난리치는 것이 아닐까. 그저 가만히 있다가는 자신의 구조순서나 탈출순서가 마지막이 될것이 자명하고 그것은 자신의 생존율을 급격히 낮추기 때문이다. 실제로 타이타닉호 침몰사고에서 남성승객은 20%, 여성승객은 74%, 어린이는 50%가 생존했다. 남성이 의도적으로 구조에서 배제되었거나 혹은 스스로 양보했음을 추측하게 하는 대목이다. 

 사실 각자도생의 상황에서 어느 정도 젊은 남성의 가중치가 가장 낮음은 다소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있다. 원시사회에서 젊은 남성은 소규모 집단에서 완력이 강해 집단의 전투력이나 생존력을 높이는데 가장 기여할만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꾸로 각자 살아야 하는 상황에서는 여성이나 아이, 노인, 혹은 같은 다른 남성에게 자신들의 생존을 가장 위협하는 존재이며 동정이 가장 가지 않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래서 가중치가 낮은 것일까? 

 

 하여튼 개인은 그럴지언정 헌법이나 여러 법들에서 선언적으로 우리 사회, 혹은 세계 모든 구성원은 평등하다고 외치는 국가나 사회, 세계마저도 사실 사람마다 현저한 가중치를 두고 있다면 어떨까. 우리는 이를 매우 쉽게 접할수 있는데 가령 같은 죄를 저지르고도 사람의 사회경제적 위치에 따라 형량이 매우 다르며 심지어 기소조차 되지 않는 경우, 혹은 같은 20년형을 받고 복역을 하더라도 누구는 만기를 채워야 나올수 있지만 누군가는 특별한 형태로 4-5년만에 나오기도 하는 그런 경우를 봐도 그렇다. 

 그리고 이런 사회가 개개인에게 부여하는 가중치는 생명가격표라는 이름으로 가장 적나라하게 등장한다. 바로 이 책의 제목이다. 생명 가격표는 글자그대로 생명에 가격을 붙이는 것인데 재난이나 테러, 사건사고로 사람이 생명을 잃는 경우 유족에게 부여되는 보상금이나 배상금이 바로 그것이다. 같은 사고로 사망한 경우라도 누구는 1억 누구는 10억의 배상금을 받는다. 이것을 우리 사회가 어떻게 산정하는가에 대한 내용이다. 

 한 개인의 생명가격을 산정하는 방식으로 널리 사용되는 방법은 비용편익 분석이 있다. 비용편익분석은 순현재가치의 최대치를 지닌 대안을 가려내는것으로 흔히 선택된 규제안이 가져올 비용과 편익에 대한 고려를 할때 사용된다. 가령 에너지 전환을 위해 한국에서 시대착오적으로 신규로 건설하고 있는 화력발전소를 모두 폐기한다면 상당한 고정비용과 해당 기업에 대한 배상금이 투입될 것이다. 하지만 이것에 미세먼지와 탄소 발생량을 줄여 국민 건강과 환경에 기여하고, 한국의 대외이미지를 개선시킨다면 이것이 편익이 된다.

 이 비용편인 분석엔 많은 문제가 있는데 다음과 같다. 우선 통계적 생명가치를 중요한 투입변수로 사용한다는 점이다. 통계적 생명가치는 생명 하나당 공정하게 주어지는 생명가치인데 이게 높으냐 낮느냐에 따라 생명가격표가 현저히 달라지게 된다. 미국의 경우 통계적 생명가치는 10만 달러정도로 높게 책정되어 있는데 이는 미국의 기대소득치는 넘는 수준이다. 때문에 미국의 경우 인명 상실에 대한 보상금액이 상대적으로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은 편이다. 한국은 생명상실에 대한 보상금이 매우 낮은데 이는 아마도 정부 당국에서 통상적으로 통용되는 통계적 생명가치가 낮기 때문이 아닌가로 추정된다. 

 비용편익분석의 또 다른 문제는 통계적 생명가치가 실제 위험이 증가하는 현재가 아닌 사망이 발생하는 미래를 의미하는데 사용된다는 점이다. 화력발전소를 그대로 존치시켜 발생하는 현재의 손해보다는 그로 인해 사람이 사망하는 이후를 계산하기에 현재적 쓸모가 적다는 것이다. 다른 문제는 할인이다. 미래의 사망에 대한 손해를 계산하고 미래의 것이기에 경제적 개념으로 물가상승률에 대한 할인이 적응된다. 물가가 매년 10%오르면 현재의 10만원은 7년후면 5만원의 가치에 불과하다. 때문에 할인을 적용하면 미래 세대의 생명이 현세대의 그것보다 현저히 가치가 작아지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정량화하기 어려운 요소를 간과하는 면이 있다. 화력발전소의 경우 혜택을 보는 것은 인간만이 아니라 지구상의 동식물도 이득을 본다. 하지만 이런 것은 편익내역에 대개 포함되지 않으며 포함하려고 해도 산정하기가 매우 어렵다. 하지만 발전소의 폐쇠는 바로 견적이 정확히 나온다. 또한 공정성이 고려되지 않는다. 대개 피해를 입는 계층은 사회적 약자나 서민일텐데 발전소 관련자는 보다 재벌이다. 공정을 기대하기 어려우며 이런 비용편익을 분석하는 집단들 역시 이들과 엮여있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비용편익 분석이 생명의 가격을 특정 사업에 대한 사회적 규제안에 다한 편익과 비용차원에서 접근한다면 사람의 사망에 대한 보상금은 보다 직접적인 생명가격표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을 죽게 만든 사람은 민사 형사상 책임을 지게된다. 형사는 징벌적으로 죄에대한 형벌이고 민사는 사람을 죽게 한 것에 대한 보상이다. 민사에서 보상금액은 실제비용과 기회비용으로 나뉘는데 실제비용은 장례비용등을 포함해서 희생자의 죽음을 처리하는데 드는 비용이며 기회비용은 희생자가 살아있었을 경우 기대할수 있었던 소득이나. 봉사등이다. 이 기회비용이 사람의 나이나 성별, 직업에 따라 매우 달라질수 있기에 개개인의 생명가격표는 매우 달라지게 된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이 보상금액의 산정에 생명자체에 대한 가치가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놀랍게도 미국의 많은 법이 생명자체에 상실에 대한 보상은 규정하고 있지 않으며 희생자등 남아있는 사람에 대한 문제만을 고려한다. 어찌보면 법은 철저히 산자만을 위한 것이란게 여기서도 드러난다. 아무리 극악무도한 범죄자의 경우도 그가 자살하거나 사망하면 사건은 그냥 종결되어버리고 피해를 구제받지 못한 희생자만 남게되는 경우와 매우 비슷하다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점 때문에 자주 희생자가 사망한 경우보다 사망하지 않고 큰 부상을 입은 경우 보상금이 더 커지는 일이 생기곤 한다. 미국에서는 피해를 입은 사람이 원래대로 생활할수 있게끔 지원하고 보상하는 것이 개념이기에 큰 부상을 입어 평생재활을 해야하는 경우 보상금이 사망보다 더 커진다. 매우 역설적인 경우다. 

 이런 식의 보상금 규정은 또 다른 문제를 낳는다. 바로 직업이 없는 아동이나 특정 직업이 없는 가정주부의 경우 보상금이 터무니 없이 낮아진다는 것이다. 이 경우 가정주부는 그가 기대소득은 없지만 가정에 기여하는 서비스나 봉사의 정도를 크게 잡거나 아이의 경우 유가족의 정신적 충격과 상실에 대한 고통을 고려하는 비경제적 손해배상을 크게 잡아 실질적 보상금을 높이는 형태로 진행되기도 한다. 

 이처럼 저자는 책 생명가격표를 통해 법적인 평등으로 포장된 우리의 삶이 실제로는 사회적 가중치를 부여받아 적나라하게 돈으로 책정되는 현실과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과정은 매우 일상적이며 의외로 체계적으로 잘 정리되어 있지만 상당히 기업과 권력있는 사람들 편향적일 수 있으며 투명성과 공정성이 보장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특히, 생명가격표, 즉 사회적 가중치가 낮게 책정된 사람들은 그 생명의 가치가 낮게 책정되었기에 마구잡이로 취급당하고 존중받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한국의 경우 위험한 건설현장이나 공사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생명가격표는 매우 낮게 책정되어 있다. 때문에 기업주들은 그들이 죽어도 경제적으로 형사적으로 그리 큰 손해를 보지 않기에 이들을 마구 잡이로 소모한다. 그 결과가 매일 6-7명이 죽어나가는 한국의 산업현장이다. 기업은 이윤극대화가 목적이기에 사업비용과 사람의 생명사이에서 절충점을 찾아 늘 수익을 극대화하려고 한다. 실제 역사상 수많은 담배회사들이 이것이 건강에 치명적 문제를 일으킴을 알고 있음에도 이를 오래도록 숨겨왔으며 많은 위험한 화학물질을 배출하는 제품을 만드는 회사도 이 제품이 노동자와 소비자에게 얼마나 많은 해악을 안기는지 알고 있었음에도 이를 은폐했다. 

 때문에 사회적으로  개인의 통계적 생명가치를 높게 책정하는게 필요해보인다. 한국은 이것이 낮기 때문에 보상금이 터무니 없이 적으며 형사적으로도 형벌이 매우 낮다. 그래서 기업이 지금처럼 할수 있는 것인데 형사처벌 수위를 높이고 보상금을 상당히 크게 한다면 지금같은 행태를 부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개인의 생명가격표에서 모두가 다르기에 개인의 직업이나 기대소득에 따른 가중치는 어느 정도 반영하더라도 모든 사람에 상대적으로 높은 소득을 받을 수 있는 통계적 생명가치를 높게한다는 평등정도는 갖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야 어느정도 선언적 평등을 실현할수 있을테니 말이다. 그리고 법상에서도 생명자체에 대한 가치를 부여하는 것도 필요해보인다. 사망보다 부상의 배상금이 더 큰 것은 여러모로 역설적이다. 현실이 이렇기에 어설프게 사고를 내느니 확실히 사고내서 교통사고 사망자를 죽이는게 더 낫다라는 우스게 소리가 심각하게 돌아다니는게 아닌가.

 그리고 개인의 생명가격표를 책정하는 과정을 투명하게 하고 독립된 기관에서 이를 수행하는 것도 필요해보인다. 한국의 많은 규제기관은 노동부건 환경부건 그 이름에 걸맞지 않게 마치 기업부처럼 행동하는 경향성을 많이 보인다. 때문에 이런 생명가격을 책정하는 독립기관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야 사람하나하나의 생명가격표는 다르더라도 그것이 충분히 높아 모두가 어느 정도는 평등하고 귀하다는 생각을 가질수 있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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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부터 EBS에서 위대한 수업을 진행중이다. 세계 유명한 석학을 분야별로 모아 인터뷰한 프로그램인데 우연히 제프리 삭스 편을 보고 이번 책을 보게되었다. 작년엔 피터싱어를 보는 바람에 그의책실천윤리학과 동물해방을 보았는데 쉽지 않았었다. 제프리 삭스는 환경을 무척 강조하는데 그런 경향은 이번 책에서도 잘 드러났다.

 인류 역사를 쭉 나름의 관점으로 다룬 책들은 많다. 총균쇠, 사피엔스, 오리진, 악의 번영,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 문명과 식량, 엔드오브타임, 마빈해리스인류3부작, 채사장의 지대넓얕 제로편, 남경태의 역사등 같은 책들이 그런 것들이다. 총균쇠는 지리적 우연으로 동서양의 지형차로 서양에 적절한 분열이 일어나 경쟁관계 및 수평적 정치체제가 등장했고, 유라시아의 연결성과 동서방향으로의 이동성 용이가 가축과, 식량의 전파를 낳아 돌이킬수 없는 차이를 아메리카와 벌여놓았음을 보여준다. 마빈해리스의 인류문명3부작도 총균쇠와 매우 비슷한다. 더 나은 논의를 미리 제시했다는 점에서 총균쇠의 아버지격인 책이다. 사피엔스는 인간이 만들어낸 여러 사상과 종교등의 허구의 힘 그리고 지금은 이것이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음을, 오리진은 우주에서부터 지구의 지질학적 변형, 그리고 인간진화와 사회전개를 보여준다. 악의 번영은 경제사적 관점에서 인류를 서술하고, 왜 서양이 지배한는가는 동서양의 최대도시의 인구차를 차례로 보여주며 이유보다는 다소 결과에 집중한다. 문명과 식량은 인류 문명이 기술발전으로 식량확보성을 늘리고 그 한계를 매번 돌파하여 계속 인구를 늘려 지금에 도달했음을, 채사장의 지대넓얕은 특이하게도 일원론과 이원론의 등장을 번갈아가며 전개하며 다시 일원론의 시대를 보여준다. 남경태의 종횡무진 역사는 서구에서 일어난 세계화가 지구를 한바퀴 돌아 전세계를 수백년간 휫쓸며 마지막 지역으로 서구와 가장 가까운 중동을 남겨두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다양한 관점의 이런 책들은 하나같이 재밌고 지성을 갖춘 인간으로 한번은 꼭 읽어봐야 하는 책들이다.

 제프리 삭스가 그의 책에서 주목한 것은 지리와 기술, 제도이며 이것을 축으로 7번의 전세계적 큰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지리는 자연지리로 가축이나 동식물, 질병, 지형, 토양, 에너지자원, 광물자원, 생명의 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지구의 과정을 말한다. 기술은 우리의 생산체계와 관련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이며 제도는 정치 법률 사회에 적용되는 문화적 사상과 실천이다. 이 지리 기술 제도가 서로 어우러지며 신축성과 가변성을 갖고 서로 강력하게 상호작용하여 시간과 공간을 통해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낸다는게 삭스의 주장이다. 

 그가 이런 관점으로 정리한 일곱번의 세계화는 다음과 같다.

1.구석기 시대

 시기는 기원전 7만에서 1만년전으로 에너지로 인력과 해력을 쓰고 언어와 돌에 새기는 형태의 미디어를 쓴다. 수렵과 채집 사회고 석기를 쓰며 걷거나 카누, 뗏목으로 이동했다. 무기는 석기무기, 활, 화살이 있으며 씨족 정도의 행정체계를가졌다.


2. 신석기 시대

 기우너전 10만에서 3만년 전으로 소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상형문자가 생겨났고 곡식과 목축을 개발했다. 청동을 사용했으며 해상에선 돛이 생겨났다. 무기는 청동무기이고 마을정도의 행정단위가 생겨났다.


3. 기마시대

기원전 3천년에서 1천년 정도의 시기다. 말을 가축화하여 사용했고 이로 인해 범위가 넓어져 이를 통솔할 초기문자와 체계, 석비등이 생겨났다. 쟁기를 사용했고 쇠, 바퀴, 수레등을 썼다. 말과 당나귀, 돛을 사용했고, 기병이 생겨났으며 국가의 시대를 열었다.


4. 고전시대

기원전 1천년에서 서기 1500년의 시기다. 풍차와 수차를 썼고, 알파벳과 책이 생겨났다. 대규모의 곡식 교역이 생겨 부족한 식량을 채웠고, 엔지니어링 기반시설이 있었다. 말과 도로망, 돛을 사용해 이동했고, 보병, 기병, 화약으로 전쟁을 수행했다. 나라가 매우 커져 제국이 생겨났다. 로마나 중국의 한나라, 알렉산더, 원제국등이다.


5. 해양시대

1500년에서 1800년의 시기다. 지금의 세계의 밑그림을 그린 시기다. 바다바람으로 이동했고 원양항해를 위한 범선이 생겨났다. 인쇄기가 생겨 사상이 폭발했고, 대양항해를 했고 곡물의 글로벌 교역이 촉진되었다. 대포와 머스킷을 무장해 세계를 정복해나갔고 그 결과 글로벌 제국이 탄생한다. 초기 포르투갈, 스페인제국이나 훗날의 대영제국이다. 


6. 산업시대

1800-2000년의 시기다. 화석연료, 석탄, 석유, 천연가스, 수력, 원자력을 사용한다. 전선과 전차, 방송등이 생겨났고 화학비료로 인구부양력이 크게 늘었다. 증기기관과, 직물, 쇠를 수용해고, 원양증기선과 철도가 생겼다. 기관총과 항공기, 탱크, 전투기등 무기의 개선되었고 글로벌 제국이 여전히 유지되었다. 그리고 입헌정부와 난만한 자본주이가 생겼다. 


7. 디지털 시대

21세기다. 태양력과 풍력에 의존할 것으로 여겨지며 인터넷과 인공지능의 시대다. 정밀 농업으로 이전처럼 물과 비료를 낭비하지 않는 친환경 농업이 좁을 땅에서 이뤄질 것이다. 디지털 네트워크로 서로 통신하고 가상공간이 생겨나며 전쟁은 사이버 전쟁의 형태를 띌 것이다. 글로벌 협치를 기대해보지만 가능할지는 두고 보아야 할 일이다. 

 

 책에서 제프리 삭스는 이런 7차례의 세계화를 불러온 요인으로 지리 기술 제도의 근본적 영향을 미치는 규모에 대해 설명한다. 규모는 인구가 많아져 생산력이 증가하고 경제규모와 교역의 증가하는 것을 말한다. 규모가 확대되면 행정과 지정학의 성격마저 바꾸게 되는데 이 규모에는 자연지리가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인구가 늘어나기 어려운 기후라면 규모는 생겨나기 어려우며, 기후가 적당하더라도 상대편과의 교역이 용이한 강이나 해안, 혹은 평지에 위치하고 있지 않다면 역시 규모의 상승은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리적 요소는 고정되지 않고 시대 변화에 따른 기술발전에 따라 달라진다. 경제는 물질자원과 그 자원을 활용하는 기술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실제 구석기, 신석기엔 아무런 의미가 없었을 석탄 석유는 현대시대에는 엄청난 의미릴 가지며, 말의 목축에 적합한 스텝지역은 기마시대에 엄청난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이런 지리상의 요건을 고려할 때 다른 사람들도 지적하는 것처럼 가장 유리한 지역은 유라시아다. 유라시아는 육지의 43%정도지만 인구는 무려 70%다. 식량의 생산과 목축에 유리한 온대기후지역이 유라시아에 광범위하게 존재하며 동서방향으로 길게 발달하여 기술의 이동에 매우 유리했다. 또한 해안가가 많아 상호간의 이동 및 교역도 유리했으며 식량과 에너지원으로 사용할만한 곡물과 가축이 많았던 점도 상당한 이점이었다. 반면 아메리카를 베링해가 생겨나며 오랜 기간 격리되었고 결정적으로 말이 멸종하여 이렇다할 견인력을 얻지 못했다. 사하라 이남은 광대한 사하라로 인해 유라시아와 분리되었고 풍토병이 많아 동물이 잘 견뎌내지 못했다. 오세아니아 역시 상당기간 격리되었다. 하지만 지금의 미국인 북미지역은 조금 다르다. 북미는 온대기후대이며 광대하고 비옥한 토지를 갖고 있고, 항행 가능한 하천이 많으며, 엄청난 광물과 교역과 방어에 유리한 긴 해안선, 막대한 에너지 매장량을 자랑한다. 물론 이것도 기술력이 바탕이 되어야 의미가 있기에 이지역에서 최강대국이 탄생한 것은 산업화 기술력을 가진 유럽 세력이 이지역을 차지하고 나서야 가능했다. 실제 유럽인의 이주 전 북미지역은 이렇다할 행정체계가 발달하지 못한 낙후된 기술지역이었다. 

 자연지리의 요소로 기후는 매우 결정적이다. 쾨펜 가이허 기후구분에 의하면 지구상 기후는 열대, 건조, 냉대, 한대, 고산기후로 나뉜다. 열대기후는 연간 높은 기온으로 사람과 가축의 신체에 엄청난 부담을 주어 장기적 경제발전이 어렵다. 그래서 한국 사장들이 동남아 인을 쓰면서 게으르다는 편견을 갖게 되는 것이다. 풍토병이 많아 인간과 가축에 질병이 전파되고 음식과 물에의해 병원균이 빠르게 전파된다. 거기에 열대토양 유기물은 아주 빠르게 부패하여 토양영양분이 신속히 고갈되어 농경에 부적합하다. 실제로 해양시대에 이르러서도 서구 세력은 열대에 좀처럼 침투하지 못하였고 거주에 어려움을 겪었다. 사하라 이남이 식민화된 것도 말라리아를 극본할 키니네가 칠레에서 발견된 이후였다. 열대는 이렇다할 문명이 건설되지 못했고 현대과학 기술이 도입되고 나서야 인구가 크게 증가했다.

 건조기후는 너무 건조해 곡식 생산이 적어 인구밀도가 매우 낮다. 규모가 생기기 어렵단 뜻이다. 대부분 농업은 나일강 같은 하천 계곡지대를 제외하면 스텝이나 초지 같은 다소 습한 지역에서 제한적으로 이뤄진다. 이 지역에서 가축이 이뤄지고 야생말의 고향이며 평평한 지역에선 실크로드 같은 고속도로 역할을 한다. 나무가 잘 없어 지형만 평탄하다면 말에 의한 빠른 이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냉대기후는 여름이 짧고 겨울이 매우 춥다. 캐나다 러시아 지역이 냉대기후이며 일부 지역에서만 좋은 농업생산성을 보인다. 우크라이나 지역이다. 하지만 다른 지역은 농경에 적합치 않아 역시 인구밀도가 낮고 주로 벌목과 모피, 어업, 순록, 목축을 한다. 

 고산기후는 높은 지역의 기후로 일년내내 봄이라 하여 상춘기후라 하기도 한다. 커피나 차같은 특수작물이 잘 자라는 경우도 있지만 곡식생산 가능 지역 자체가 매우 좁다. 산지라 광물이 종종 풍부하며 역시 산지라 저지대로부터의 방어가 용이하다. 이로 인해 저지대에 통합되지 않아 강한 독립정신을 갖고 있으며 소규모 인구집단이고 언어가 다양하게 분화되어 있다. 

 제프리 삭스는 이런 관점으로 일곱 번의 세계화 시대에 대해 자세히 서술한다. 마지막 디지털 시대 부분에 대해서 언급하면 지금 시대 세계의 내생적 성장의 중심지는 미국과 유럽 연합, 한중일의 동북아 지역이다. 이 지역은 인구와 생산력, 특허등 기술적 조건에서 타 지역을 압도한다. 디지털 시대인 지금에는 세 가지 위험성이 상존하는데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와 글로벌 환경 위기의 심화, 전세계적 무장으로 인한 전쟁 발발 가능성이다. 새로운 기술이 마구 등장하여 기술에 적응하고 살아남는 계층과 쉽게 대체될 계층 간의 간격이 벌어지고 있다. 더욱이 과거 산업화 시절에는 저렴한 양질의 노동력으로 경제규모와 기술을  늘려 선진사회를 따라잡는 공식이 어느정도 존재했지만 모든것이 인공지능과 로봇에 의해 대체될 미래에는 이런 단순한 작업은 기계가 할 가능성이 높다. 즉, 개발도상국의 따라잡기가 매우 어려워진다는 이야기이며 이는 세계적 격차를 더욱 벌릴 가능성이 높다. 

 지난 200년간의 경제적 성장으로 인구는 10배, 1인당 GDP는 10배가 늘어났다. 즉 세계경제가 100배가 되었다는 의미이며 지구가 받는 부담도 100배가 되었다는 셈이다. 이는 이번 세기에도 지속될 것인데 다만 인간의 기술요소로 지구의 부담을 낮출 수 있다.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나 육식위주의 식단을 채식으로 바꾸는 것, 그리고 개선된 건물디자인으로 건물이 소모하는 에너지를 크게 낮추기, 정밀농업으로 물과 비료의 소모를 줄이는 것등이다. 

 UN은 이런 의미에서 지속가능한 발전 목표17가지를 제시하였는데 경제적 목표와 사회적 목표, 환경적 목표이다. 경제적 목표는 극빈의 종식, 배고픔의 종식, 보편적 치료혜택, 학교교육, 안전한 물에 대한 접근, 전기의 공급, 좋은 직장, 현대적 하부기간시설이다. 사회적 목표는 젠더 평등, 소득 불평등의 저감, 평화롭게 준법적이고 포용적인 사회다. 환경적 목표는 지속 가능한 도시, 시속가능한 생산과 소비, 기후 변화의 통제, 해양 생태계의 보호, 지상 생태계의 보호이다. 하지만 이를 수행할 UN은 사실 매우 무력한 상태다. 미국은 이를 주도하여 설립했지만 이후 자신의 이익과 반할때마다 UN의 결정에 반대표를 행사해 무력해왔다. 

 때문에 제프리 삭스는 지금의 UN이 개편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안전보장 이사회는 15개 이사국으로 구성된다. 5개 상임이사국과 10개의 비상임이사국인데 10개의 비상임이사국은 2년임기고 아시아2, 라틴아메리카2, 아프리카3, 서유럽 및 기타지역2, 동유럽 1이다. 이는 인구와 국가가 많은 아시아의 비중에 전혀 반영되어 있지 못하다. 따라서 이사회국은 21개로 늘리고 아시아는 6석을 갖는 쪽으로 개편해야 한다. 상임이사국이 6개국 더필요한데 브라질, 인도, 인도네시아, 일본, 독일, 나이지리아를 거론한다. 

 이런 제프리 삭스의 주장은 결국 디지털 시대의 문제를 해결할 세계공동의 노력의 필요성, 그리고 이를 주도할 만한 기구로 현실적으로 UN을 찾을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기인하는 듯 하다. 그리고 이같은 노력의 성과가 얼마나 가시적인지가 이번 세기 인류의 성패의 핵심사안이 될듯 하다. 현재 세계는 서로 매우 의존하고 영햐력을 미치면서도 매우 각자도생이다. 서로를 확증파괴하기 위해 들이는 세계적 군사비는 엄청나지만 지구 전체를 지키기 위한 환경비나 혹은 소혹성 같은 것을 방어하기 위한 예산은 제로이거나 턱없이 적다. 정말 하나가 되기 위해 외계로부터의 위협이라도 일어나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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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2-10 18: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닷슈님 당선 정말 정말 축하드립니다 *^^*

닷슈 2022-02-11 00:59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thkang1001 2022-02-10 18: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닷슈님!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닷슈 2022-02-11 00:59   좋아요 1 | URL
늘 감사드립니다.

서니데이 2022-02-10 22: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닷슈 2022-02-11 00:59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지구 온난화가 매우 심각하다. 대륙 서안에 자리잡아 연간 강수량과 기온이 안정적이던 유럽도 극심한 고온과 추위, 홍수를 경험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유럽연합은 작년 그리고 올해부터 기후대책에 상당한 힘을 쓰고 있다. 친환경 에너지는 물론이고 유럽연합에 물건을 팔거나 투자를 받기 위해서 다른 나라의 기업들은 자신들의 제품이 탄소를 적게 사용하여 만든 것임을 입증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아직도 곳곳에 화력발전소(이명박정권이 추진한 짓이다.)를 새로 짓고 있는 한국으로선 상당히 신경써야하는 일이다. 그리고 한국의 포스코는 이런 이유로 인해 세계 여러 연기금이나 투자회사 및 금융권으로부터 투자철회를 당하고 있다. 

 그리고 가까운 시일내에 인간윤리의 확립과 환경 문제 해결의 하나로 대규모 가축사육에 대한 문제가 거론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사실 잘 인식하지 못해서 그렇지 가축이 일으키는 탄소배출과, 식량낭비, 오염은 그 자체로 매우 심각하다. 가축은 그 생산 과정에서 냉방과 난방, 대규모 도축과 운송, 가공 과정에서 막대한 탄소를 배출한다. 또한 가축을 먹이는데 사용되는 많은 식량작물을 키우는데는 역시 화석연료를 이용한 막대한 비료가 사용되며 전 세계 엄청난 수의 가축은 그 자체로 메탄과 이산화탄소의 온실가스를 대규모로 방출한다. 참고로 세계의 가축수는 230억 마리에 달한다. 포식자인 인간의 수가 80억이나 되니 당연히 그 수보다 많은 것이 당연한 일이겠지만 자연상태에서 이렇게 많아 질 수는 없는 것이기에 환경에 막대한 부담을 주는 수라 하겠다. 

 그리고 인간은 이런 대규모의 가축을 먹지 않고도 살 수 있다. 사자처럼 얼룩말이나 사슴을 먹어야만 생존할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잡식성 동물로써 인간은 채식만으로도 충분히 연명이 가능하며, 과학기술의 발달로 과거처럼 탄수화물 위주의 곡식만 주로 먹게 되어 단백질 부족에 시달리는 상황도 아니다. 우리에겐 이미 충분한 식물성 단백질이 존재하고 이를 충분히 싼 가격으로 대규모 공급도 할 수 있다.  

 거기에 인간의 대규모 공장식 가축 사육은 필요이상으로 가축에게 상당한 고통을 준다. 수평아리는 태어나자마자 큰 박스에 갇혀 서로에게 압사당하거나 질식사당하거나 혹은 산채로 가루가 되어 동료의 먹이가 되거나 비료로 쓰인다. 암탉은 평생을 좁은 케이지에 갇혀 살아야 하며, 육계는 성장호르몬으로 인해 비균형적으로 자라 인간으로 해당하면 관절염환자 같은 고통속에 걷지도 못하다 도축된다. 돼지 역시 서로가 비좁은 곳에 갇혀 꼬리를 씹으므로 이를 방지하기 위해 꼬리를 잘리며 어미 돼지는 평생 뒤를 돌아보지 못하며 새끼만 낳다가 생산력이 떨어지면 도축된다. 소 역시 뿔이 잘리고, 거세되며, 태어나자마자 어미와 헤어진다. 젖소는 계속 우유를 생산해야하므로 새끼를 키우지 못하고 생이별, 임신이 반복되다 쓸모없어지면 결국 도축된다. 

 사실 과거 고기는 왕족이나 부유층이나 먹을 수 있는 사치품이었다. 서민들은 고깃국에 들어간 한점조차도 얼마나 갈망했던가. 이런 고기가 싸진 것은 현대문명에 들어서인데 책 '값싼 음식의 실제 가격'은 고기가격이 실제로는 전혀 싸지 않음을 잘 설명했다. 여기엔 대규모의 사료가 들어가고 이 사료는 화석연료에 의해 재배되며 막대한 정부보조금도 포함된다. 환경에 대한 부담까지 생각한다면 사실 고기는 여전히 비싼 것이며 우리는 이를 알아채지 못할 뿐이라는 것이다.

 

'고기로 태어나서'는 한국의 공장식 농장의 실태를 매우 잘 드러낸다. 소, 돼지, 닭 농장에 저자가 취직해서 직접 경험한 것이므로 르포식이며 매우 적나라하게 실태를 드러낸다. 읽으면서 적잖이 놀랐다. 평생 케이지에 갇혀 있는 산란계는 저자가 보기에 털하나 없고 흉측해 닭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스트레스 환경과 거듭된 산란으로 너무나 약해져 꺼내기 위해 날개만 만져도 쉽사리 뼈가 부러졌다. 한국이다보니 식용 개에 대한 취급도 다루어졌는데 그 도살과정이 적잖이 끔찍했다. 

인간의 힘이 강해지며 그 도덕 적용대상이 확대되고, 논리적 일관성으로 인해 동물에게도 인간의 윤리를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졌다. 인간도 진화상 동물의 하나이고 같은 과정에서 진화했기에 상당히 다르지만 인간은 동물과 많은 특성을 공유한다. 무리를 이루어살고자하는 것, 움직임 욕구, 본능에 충실하고자 하는 갈망, 가족을 이루는 것, 어미가 새끼를 돌보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런 것들로 인해 고통과 쾌락을 느낀다는 점이다. 이런 부분에서 인간과 동물을 엄밀히 구분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불가능하기에 피터 싱어 같은 공리주의자들은 도덕적 대상으로 쾌고 감수능력이 있는 동물을 넣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책' 동물 해방'은 그러한 내용이 잘 집대성 된 책이다. 우리가 쾌고 감수능력이 있는 동물을 같은 윤리적 대상으로 삼고 그들의 이익을 고려해야하므로 채식을 해야하는 이유 그리고 인간이 식용, 그리고 연구용으로 동물을 대하며 그들에게 얼마나 많은 고통을 주는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나있다. 

 사실 식용으로 동물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좀 알려져 있는 편이지만 연구용은 덜 알려져 있는 편이다. 또한 동물실험은 인간에게 많은 의학적 혜택을 준다는 포장으로 쉽게 정당화 되기도 한다. 하지만 동물실험은 의학만의 것이 아니다. 여러 화학제품의 위험성에 대한 임상실험과 놀랍게도 상당히 많은 심리학 동물실험이 이루어진다. 

 원숭이의 모성에 대한 심리학 실험을 위해 심리학자들은 새끼 원숭이가 천으로 만든 어미 원숭이에게 안길 때마다 전기충격을 주었다. 새끼가 안을 때마다 전기가 발생하는 식이다. 그럼에도 새끼는 천으로 만든 가짜 어미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심리학자들은 새끼가 안을 때마다 날카로운 철사가 나와 새끼를 찌르게 하였는데 역시 별효과가 없었다. 대체 동기와 목표를 알 수 없는 실험이다. 반대로 어미의 모성을 시험하는 실험도 있었다. 모성을 박탈하기 위해 어미가 될 암컷은 무리에게 격리되어 키워졌고 정상적인 사랑을 나누는 것도 방지하기 위해 강간대라는 곳에 묶인체 강제로 임신되었다. 이 어미 원숭이들 중 일부는 결국 모성이 자라나지 않았는데 그들은 충격적이게도 자기 새끼의 두개골을 부수는 행위를 하기도 했다. 뻔한 결과인데 굳이 이런 일을 하는 저의가 궁금할 지경이다. 

 토끼에 대한 트레이즈 실험은 오래되었고 유명하다. 토끼를 못 움직이기게 고정시키고 화학제품이 눈에 미치는 악영향을 보기 위해 꾸준히 화학 물질을 토끼의 눈에 투여하는 식이다. 이 경우 토끼는 대개 10일 정도면 극도의 고통과 함께 눈이 멀어버린다. 

 의학분야에서의 실험도 심각하다. 마약 중독의 효과를 알기 위해 동물들에게 코카인을 투입하여 일부로 중독시켜 뻔히 아는 그 결말을 본다. 암을 발생시키기도 하며 인간의 각종 성인병을 일부로 유발하기도 한다. 그나마 의학발전에 도움이 되면 모르겠는데 인간과 동물은 비슷하지만 다르기에 아무런 효용이 없는 경우도 많다. 일부 약품들은 동물에겐 해가 발생했지만 결국 인간에겐 무해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동물실험은 이미 기업화되었는데 미국의 여러 기업들이 심리학 연구소나 의학 연구소, 화학연구소가 원하는데로 동물을 가공하여 공급한다. 털이 없거나 색을 조절하거나, 여러 생태적 조건을 조절하는 형태다. 

 다음은 식용동물의 고통이다. 우선 닭이다. 미국에서는 매우 1억 200만 마리의 닭이 도축되며 연간 53억마리가 도축된다. 육계의 경우 태어난지 하루된 병아리가 창문없는 긴 닭장에서 자라나게 된다. 지붕에 달린 깔대기에서 모이와 물이 공급되며 초반 1-2주는 성장을 빨리 하기 위해 하루 24시간 밝은 조명을 유지한다. 하지만 자라나면 점차 조명을 줄여 거의 어둡게 하는데 이는 서로간의 공격을 줄이기 위함이다. 이들은 서로 공격하여 상처내어 상품성을 떨어뜨리는것을 방지하기 위해 뜨거운 칼로 부리를 잘라낸다. 육계는 좁은 사육장에서 자신들의 배설물로 인해 공기가 오염되어 질식사하거나 자기들 무리에 깔려 죽기도 한다. 이들은 앉기도 어려운데 바닥이 배설물로 가득하여 앉을 경우 다리엔 궤양이 가슴엔 물집이 무릎에는 화상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물론 다리는 가공과정에서 잘리게 되므로 큰 상관은 없다. 이렇게 세월을 보낸후 6-7주후 이들은 도축된다. 전기충격으로 기절된뒤 두 다리가 조임쇠에 묶여 거꾸로 들린채 칼날에 목이 잘려 죽게 된다. 피가 모두 빠지고 뜨거운 물에 빠져 털이 뽑힌후 배가 갈려 내장이 제거되고 우리가 아는 포장형태로 가공되는데 간혼 기절하지 않고 산채로 뜨거운 물에 닭이 들어가 쪄죽거나 질식사하는 경우도 많다. 

 산란계의 고통도 만만찮다. 이들은 태어난 후, 그리고 어느 정도 자란 후 두차례 같은 이유로 부리가 제거된다. 산란계는 매우 좁은 새장에 갇히는데 이는 경사진 철사바닥이다. 닭은 본능적으로 흙은 발로 긁거나 몸을 바닥에 문대 흙목욕을 하는데 새장에선 이게 모두 불가능하다. 마찰이 없어 발톱이 계속 자라나 바닥 철사와 얽혀 움직이지 못하는 경우도 있으며 흙목욕을 하려고 철사에 몸을 문대는 바람에 털이 몽땅 빠지기도 한다. 자리는 매우 좁아 날개를 펴거나 앞뒤고 움직이지 못하며 그 와중에서도 서열이 낮은 녀석은 평생 다른 녀석에게 깔려지내기도 한다. 닭은 마땅히 둥지를 짓고 그안에 비밀리 알을 낳고 싶어하는데 알다시피 새장에선 모두에게 공개된채 알을 낳아야 한다. 인간으로 따지자면 모두가 보는 앞에서 변을 보는 것과 비슷하다고 피터싱어는 말한다. 

 돼지는 자연상태에서 안정된 사회집단을 형성하고, 공동보금자리를 만들며, 보금자리에서 꽤 떨어진 곳에서 대소변을 처리한다. 활동적이며 거의 하루종일 땅에 코를 박고 먹이탐색을 한다. 특히, 암퇘지는 출산이 임박하면 잠시 공동체를 떠나 땅을 파고 그곳을 풀과 가지로 가득 채운 후 새끼를 낳는다. 출산후 10일 정도가 지나면 새끼를 데리고 공동체로 복귀한다. 하지만 공장식 축사의 돼지는 단단한 콘크리트나 작은 널빤지 바닥에 수용된다. 다리에 쉽게 상처가 난다. 암퇘지는 돈사에서 출산하면 새끼를 일찍 떼어놓는데 이로 인해 젖을 빨리 떼게 되어 더 빠르게 임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과거 돼지들은 연간 평균 16마리를 출산하는데 그쳤지만 지금은 무려 45마리까지 출산한다. 고기돼지는 몸무게를 불리는게 중요하므로 평소 마음껏 먹는 편이다. 하지만 출산돼지는 그렇지 못하다. 그들은 굳이 살을 찔 필요가 없으므로 적정 사료양의 60% 정도만 공급한다. 그래서 항상 배고픔에 시달리게 된다. 

 소는 송아지의 고통이 끔찍하다. 빌이란 어린 송아지의 고기는 과거부터 사치품이었다. 풀을 먹기 전의 송아지는 그 고기가 매우 연하고 부드럽기 때문이다. 현재 빌용 송아지를 공급하기 위해 수송아지를 낙농계에서 빠르게 도축한다. 하지만 무게가 얼마 나가지 않기에 인위적으로 빌상태를 유지하면서 무게를 충분히 불린 다음 도축하는 형태가 많다. 일단 송아지가 태어나자마자 어미와 떼어 감금장치에 움직일수 없게 가둔다. 이들에겐 젖이나 풀이 아닌 비타민, 미네랄, 성진촉진제가 포함된 액체사료가 젖병도 아닌 통의 형태로 공급된다. 이렇게 16주를 가두어 키우면 빌 상태로 181kg까지 무게가 늘어 상당히 수익성이 좋다. 빌용 송아지는 고에너지의 사료로 인해 빨리 크고 열을 많이 방출하는데 태어난지 10주면 털갈이가 시작되어 몸손질 충동경향이 많아지지만 움직일수 없어 방법이 없다. 또한 소처럼 발굽이 있는 동물은 틈이 없는 단단한 바닥이 좋지만 빌송아지는 움직이면 안되므로 배설물이 빠지게 틈이 있는 바닥을 만들어 송아지를 더욱 불안하게 한다. 건초사료를 먹지 못해 송아지는 위가 정상발달하지 못하고 만성 소화불량과 만성설사에 시달린다. 빌송아지의 고기가 색이 연하고 부드러운 것은 사실 철분이 부족해서다. 소는 풀을 통해 철분을 얻는데 빌송아지의 액체사료에는 당연히 철분이 없다. 그리고 혹여 철분을 얻을까 빌송아지의 우리는 철저히 철제가 아닌 나무로 제작된다. 빌송아지란 결국 어려서 어미와 떨어져 젖을 한번 빨지 못하고, 제대로 된 밥을 먹지 못해 소화관도 제대로 발달하지 못한데다가 평생 움직여 보지 못하고 살만쪄서 몸은 크나 빈혈에 시달리는 소인 셈이다. 

 소들은 대개 뿔이 잘리고, 거세당하고, 소인이 찍힌다. 하지만 닭의 부리처럼 소의 뿔은 인간의 손톱과는 달리 동맥이 흐르고 신경과 조직이 얽힌 곳이다. 이런 곳을 잘라내는 건 소에게 큰 고통과 출혈을 유발한다. 거세는 더욱 심하다. 소의 거세는 소를 움직이지 못하게 한 다음, 날카로운 칼로 음낭을 찢어발기고 고환을 손으로 뜯어내는 작업이다. 소인 역시 달궈진 인두로 수초간 소의 피부를 지지는 일이다. 

 이렇게 험난한 공장식 사육장에서 자라난 가축들에게 다음으로 기다리는 것은 도축장으로의 운송이다. 미국처럼 큰 국가에서는 도축장으로 이동하는데 2-3일이 소요되기도 한다. 과거 이것이 너무 가혹하다고 하여 철도로 운송하는데는 시간 제한이 주어졌지만 지금처럼 트럭으로 주로 운송하는 방법이 이 법에서 벗어난다. 대부분의 트럭기사들은 운송이 시간싸움이기에 운송하는 가축에게 관심을 쏟지 않는다. 돼지나 소들은 대부분 당연히 트럭을 처음 탄다. 흔들림과 굉음에 겁이 질리기 마련인데 운송하는 트럭은 외부로 노출되어 겨울엔 추위, 여름엔 더위에 시달리게 된다. 가축들은 운송후 체중감소와 수송열이 발생한다. 소들은 대개 체중이 무려 9% 가 줄어든다. 1986년의 기록에 의하면 7400마리의 소, 3100마리의 송아지, 5500마리의 돼지가 수송중 죽거나 심각한 상처로 폐기되었다고 한다. 운송중 서로 놀라 한 곳으로 물려 깔려 죽는 녀석들도 있다.   

 도축은 대개 전기 충격으로 시작된다. 전기충격으로 기절시킨후 뒷다리를 매달아 공중에 띄운후 칼로 도축하는 식이다. 이는 소, 돼지, 닭이 같다. 전기충격은 기절을 유발하는데 기절했다고 해서 고통이 없을리 만무하다. 한번에 고통을 느끼지 못할 사이 죽인다면 모르지만 이런 일도 쉽지 않다. 최근의 도축을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데 1981년 한 시간에 225마리 도축에서 1986년 275마리 도축으로 빨라졌을 정도다. 1988년엔 5만 8천면의 도축장 피고용인이 부상을 당했는데 이른 빠른 도축 때문에 칼을 다루거나 기계를 다루나 다친 것이다. 사람이 이정도인데 동물은 어떨까, 거기에 정신적 스트레스와 살인적 강도의 노동, 부상으로 이 업계의 이직률은 무려 60%에서 100%에 달한다. 숙련되지 못한 사람이 빠른 속도로 부상의 우려속에 도축한다면 과연 동물이 고통없이 한번에 도축되는게 가능할지 의문이다. 

 거기에 미국에선 유대교와 이슬람교의 경우 동물이 정신을 잃고 도축하는게 교리상 금지다. 손상을 입은 동물은 도축하면 안된다는게 그들의 교리인데 여기에 기절도 포함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과거처럼 동물을 맨정신인체로 거대한 쇠도끼로 도축한다. 이 도끼는 사실상 망치에 가까운데 한방에 정수리를 부수어야 빠른 그리고 그나마 고통이 덜한 즉사가 가능하다. 

 이처럼 동물에 엄청난 고통을 주는 공장식 사육장이지만 그 생산성은 형편없다. 동물단백질 1파운드를 생산하기 위해 인간은 동물에게 21파운드에 달하는 단백질을 먹여야 한다. 모든 생물이 먹는 것이 다 그대로 살로 가지 않으니 당연한 일이다.(100%소화흡수는 모든 생물이 하지 못하며, 자신의 몸의 생명유지와 활동에 에너지가 소모되고, 남는게 성장에 이용된다.), 1에이커의 땅에 단백질 함량이 높은 콩이나 완두를 심으면 300-500파운드의 단백질이 생산되지만 가축의 경우는 40-50파운드의 단백질 생산에 그친다. 대충 식물성 식품이 10배 효율을 갖고 있는 셈이다. 가축 중엔 그래도 소보단 돼지가 단백질 생산이 높은 편인데 이런 돼지보다도 귀리는 6배의 칼로리, 브로콜리도 3배의 칼로리를 같은 면적에서 생산한다. 그리고 낭비가 심한 소보다는 귀리는 무려 25배의 칼로리 생산이 가능하다. 가축은 물과 에너지도 많이 소모한다. 미국 물 사용량의 절반을 가축이 사용한다. 소고기 1파운드를 생산하려면 같은 양의 밀보다 무려 50배의 물이 필요하다. 이로인해 미국과 호주등의 건조지역에서의 가축생산은 해당 지역의 지하수를 빠르게 고갈시키고 있다. 가축 생산은 에너지도 많이 소모한다. 1칼로리의 화석연료당 귀리는 2.5칼로리, 감자는 2칼로리가 나오고, 밀과 콩도 1.5칼로리가 나와 채산성이 있다. 하지만 고기는 3칼로리의 화석연료를 투입해도 1칼로리의 고기 생산에 불과하다. 특히 소는 1칼로리당 무려 33칼로리의 화석연료가 필요하다. 

 환경오염도 문제다. 가축은 그 수많은 엄청난 양의 분뇨를 만들어낸다. 가축의 수가 이미 자연이 허용하는 수를 넘어선 만큼 분뇨의 양도 그러하다. 네덜란드의 예를 들면 농장에서 매년 9400만톤의 분뇨가 발생하는데 땅이 자연적으로 수용할수 있는 양은 5000만톤 정도다. 나머지는 오염을 일으키는 것이다. 미국에선 매년 수자원 관련 문제를 대부분 축사가 일으킨다. 그리고 고기수요는 산림도 파괴한다. 지난 25년간 고기를 탐닉하는 북미로의 고기 공급을 위해 중미에서는 거의 절반 가량의 열대우림이 파괴되었다. 이 열대우림은 많은 동식물의 서식지이자, 이산화탄소를 흡수저장하고 산소를 공급하는 존재였다. 열대우림의 파괴로 지금 대규모의 멸종과, 땅의 침식과 강의 범람, 강우량과 나무의 감소가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동물에 대한 공장식 가축 사용방식은 에너지 측면, 그리고 식량생산면에서 모두 매우 비효율적이다. 거기에 생산과 유통 소비과정에서 많은 화석연료를 사용하고, 많은 수의 가축 자체가 온실가스를 생성해며, 분뇨등으로 많은 수질, 토양오염을 일으킨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과정에서 동물의 본능과 사회성, 개별성을 완전히 무시함으로써 그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야기한다. 때문에 동물해방에서 피터싱어는 이러한 동물을 먹지 않아야 함을 주장하다. 완전한 채식주의자가 되라는 것이다. 에너지를 스스로 얻을 수 없는 동물의 하나로써 인간은 결국 무언가를 먹어야만 한다. 그래서 피터싱어는 쾌고를 감수하는 능력을 가진 동물들만을 먹이감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쾌고를 느끼지 못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식물전체와 일부 동물은 식용이 가능하다. 하지만 감각을 느끼지 못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동물일부의 경우 결국 감각을 느끼는 것으로 여겨질 가능성도 있기에 동물전반에 대한 식용을 금지하는 쪽으로 가자는 것이다. 

 언젠가 연구가 되어 동물 전체 및 식물마저 감각을 느끼는 존재로 판명된다면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썬 현실적인 주장이란 생각이다. 이런 생각도 해본다. 인간은 과학기술의 발달로 이미 최상위 포식자라는 지위자체를 아득히 넘어섰다. 개체수면에서도 그렇고 자원활용능력이나 다른 생물들과의 힘의 차이에서도 그렇다. 때문에 다른 최상위 포식자들이 필요시만 식량자원으로 다른 동식물을 활용하는데 반해 인간은 다양한 이유로 동식물, 특히 동물을 활용한다. 사냥의 즐거움, 불필요한 연구의 이용, 사치와 탐닉으로써의 고기음식등이 그러하다. 이는 충분한 힘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있지 못한 상황이란 생각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피터싱어가 말한 것처럼 우리의 윤리체계를 일관되게 완성하지 못하는 하나의 중대한 요인이 되기도 한다. 윤리체계는 좋은 결과를 불러일이키고자 하는 행동양식과 그 행동의 대상이 일관되어야 하는데 동물에 대한 우리의 행동은 대상에 대한 문제를 반드시 일으킨다. 동물과 인간의 구분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이런 부적절한 인간중심의 윤리체계를 가진 인간이 먼훗날 과학기술이 더 발달하여,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우리가 낸 미약한 신호가 운이 없게도 발견되어 훨씬 강한 외계의 존재를 만났다고 생각해보자. 그들은 인간보다 훨씬 강하게 그 행성 및 항성계 자체의 지배자로 진화한 존재다. 과학기술은 인간과 비교가 안되며 더욱 강한 존재다. 그들이 인간보다 훨씬 발달하여 더 강한 이성과 과학기술로 곧이 다른 존재를 해할 필요가 없다. 에너지를 원시적으로 포식의 형태로 소화시키지 않고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미 기계 혹은 인공지능과 결합하여 생물학적 형태도 별로 남아있지 않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그들이 우연히 인간의 고기가 자신들의 미각을 즐거운 방향으로 엄청나게 자극한다는것을 알아냈다. 그리고 그들이 전혀 그럴 필요가 없음에도 인간 문명을 파괴하고 그들의 공장식 사육장에서 맛을 강화하는 형태로 멋대로 진화시키고, 인간 사회와 가족을 해체하고, 여성에겐 새끼만을 낳게 하고, 수컷은 그저 죽이거나 고기로 쓰기 위해 폭력성을 줄이기 위해 강제로 중성화하기로 결정한다면 사람은 뭐라고 말할수 있을까? 

 우리는 우리 행성의 다른 존재와 다르게 더욱 이성적이고, 말을 할 수 있으며, 사회를 이루고, 도구도 쓸수 있으며, 문화와 양식이 있고, 가족과 사랑이 있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특성을 일부 공유하는 외계인들에게 있어 그건 자신들의 그것들보다 매우 수준이 떨어지는 원시적인 형태의 양식이다. 이미 그들은에게 인간의 그것은 어느 정도 공유하지만 진화과정과 과학기술의 발달을 통해 오래전에 지나온 과정에 불과하다. 즉, 인간은 그들에게 동물정도에 불과해지는 것이다. 고통이나 쾌락을 느끼고 가족과 사회를 이루고, 본능과 생각이 있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미치지 못하고 힘이 훨씬 미약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존재말이다. 그런 그들에게 인간이 윤리체계를 제대로 완성해놓았다면 조금은 그들이 어느정도 들을 수 있을 만한 할말이 생길 것이다. 당신들이나 우리나 생존을 위한 에너지를 먹기 위해 다른 존재를 죽여야하지만 괘락과 고통을 느끼는 존재에겐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있을 땐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아마도 이말이 유일하게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인간의 문명이 좀더 발달하여 배양육 기술이 보편화하고 싼 값에 고기를 공급하는 날이 온다면 사실 굳이 우리가 채식주의자가 되지 않더라도 고기에 대한 윤리와 비생산성, 환경 파괴의 문제는 해결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동물에 대한 태도를 바꿀 필요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행동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다른 분야에서의 동물에 대한 행동에서 큰 차이를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식량문제가 해결되더라도 윤리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인간은 여러 형태로 동물을 괴롭히고 죽일 것이라는 말이다. 

 피터싱어는 책에서 자신은 동물을 먹는 사람은 존경할수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채식은 무엇보다도 건강에 좋고, 우리의 미각을 충분히 만족시킬만한 것이라고 한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고기의 섭취를 줄이려고 하는 노력은 동물을 고통에서 해방하고, 지구의 환경을 개선하는 활동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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