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미래에 2023년 7월 18일과 9월 4일은 훗날 한국 교육 대변환의 기점으로 기록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7월 18일은 서이초 교사가 사망한 날이며, 9월 4일은 그 교사의 49재로 전국 교사들이 추모를 위해 공교육 멈춤의 날로 지정한 날이며 다음 주 월요일이다. 전국의 교사들은 서이초 교사가 사망한 날로부터 매주 토요일 전국교사집회를 서울에서 열고 있다. 교사들은 노동자의 기본권인 파업권 및 집회권 등이 없기에 수뇌부가 존재하는 조직적인 집회를 열지 못한다. 때문에 이 집회는 자발적인 성격으로 모이고 있는 한국 최초의 기이한 형태의 집회라 할 수 있다. 9월 2일에도 어김없이 집회가 열렸는데 7회차로 10만명 정도가 운집할 것으로 예상했던 것을 훨씬 상회하여 무려 25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모였다.

 다른 여타 투쟁들은 집회가 계속 될수록 구성원들이 지쳐 동력이 조금씩 떨어지고 참여가 줄어들기 마련인데 이와 달리 전국교사집회는 그 회차가 거듭될수록 참여 인원과 강도가 오히려 높아지고 있다. 이는 교육 당국과 정치권의 행동이 교사들의 기대치에 크게 못 미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며 그만큼 교육현장이 교사의 생존권과 인권을 다른 학생들의 학습권을 심각하게 유린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또한 9월 4일 추모집회에 대한 교육당국의 강압적 태도가 크게 작용했다. 아니나 다를까 아직 이유는 좀 더 확인해봐야겠지만 두 명의 초등 교사가 또 다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한국의 유초중등교원수는 거의 50만명으로 3일 집회 참여자가 25만명이라는 이야기는 무려 50% 이상의 교원이 집회에 참여했다는 뜻이 된다. 이는 49재가 바로 이틀 후이고, 9월 4일 공교육 멈춤의 날을 교육부가 협박성 공문과 자의적 법해석으로 억압했기 때문이다.

 사실 49재 모임 공교육 멈춤의 날은 서이초 교사가 사망하고 나서 바로 일각에서 제기된 의견이다. 하지만 그 때만 해도 그 실행 여부는 상당히 불분명 했다. 전국의 교사들은 태생적으로 선생이라 학생을 버리고 학교 현장을 떠나는 것을 쉽사리 실행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국교사모임이 거듭 될 수록 공교육 멈춤의 필요성과 열기가 대두되었고 개학과 더불어 전국 거의 모든 학교에서 이 문제가 논의되었다. 원래는 멈춤이었으나 학생을 가르치는 것이 사명인 직업이기에 대부분의 학교들이 학사를 조정하여 9월 4일을 재량 휴업일로 지정하고, 공교육을 멈추는 것으로 일이 진행되었다. 초중고교는 수업 일수가 연간 190일 이상으로 9월 4일을 재량휴업일로 지정하는 경우 일선 학교들은 기존의 겨울방학을 하루 줄여 못한 그날 못한 수업을 하루 더 하게 된다. 때문에 이는 사실상 공교육 멈춤이나 학습권 침해라고는 볼 수 없는 결정이었다. 현장의 열기에 미적지근했던 교장들도 대개 재량 휴업일 지정에 동참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교육부가 이런 움직임에 제동을 걸고 재량 휴업일과 당일 교사의 연가, 병가를 불법으로 규정했다. 심지어 9월 4일 재량휴업일 지정이나 개별 교사의 연가, 병가에 대해 파면,해임까지 언급되었다. 이에 겁을 먹은 대다수의 교장들은 재량 휴업일을 철회했고 현재 학교 현장은 이 문제로 교사와 관리자들 간의 갈등이 불거지게 되었다. 사실 재량 휴업일은 학교장 고유의 권한으로 대개 학사가 시작되기 전 거의 모든 학교에서 지정한다. 지정일은 대개 개교 기념일이나 징검다리 휴일을 연휴로 만들기 위해 많이 지정하는데 역대 정권들이 갑작스레 휴업일을 만드는 경우에도 학기중 학교운영 위원회를 열어 재량 휴업일로 지정하곤 했다. 

 이번 정권도 10월 2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했는데 일선 학교가 만약 이 날을 재량휴업일로 지정하고 교육부가 일관성있는 태도를 보인다면 이것도 긴급사태가 아니니 불법이 되고 말 것이다. 교육부는 과연 그 때도 그런 협박성 공문을 보낼지 두고 볼일이다. 이런 사례를 잘 알고 있을 교육부가 공교육 멈춤의 날에 학교가 재량 휴업일을 지정하는 것을 불법으로 규정한 것은 그래서 자의적이 될 수 밖에 없다. 여기에 처음엔 개인의 고유 권한인 병가까지 불법으로 규정했는데 본인들도 이게 무리란걸 알았는지 이후 공문엔 병가만 슬며시 빼기 시작했다.

 그래서 다음 주 월요일인 9월 4일은 심각한 교육 파행이 우려된다. 전국의 유초중고 교원의 상당수가 공교육 멈춤을 위해 병가를 쓸 예정이지만 재량 휴업일이 아니기에 학생들은 모두 등교하게 된다. 때문에 정상적인 교육 과정 운영은 기대하기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출근하는 교사가 많은 학교는 교장이나 교감 및 보건, 영양, 사서교사 등 학급을 맡지 않는 잉여인력으로 공백을 메꿔보겠지만 그것이 안되는 상당수 학교들은 합반을 시키거나 그것도 도무지 감당이 안되어 당일 아침에서야 긴급 휴교령 같은 것이나 귀가 조치 안내가 이뤄질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더군다나 급식 역시 전교생의 출석을 전제로 준비하였는데 학생들이 귀가하게 된다면 이 식재료 역시 못쓰게 된다. 이 모든 사태가 아침 1교시 이전에 대처해야 하는 상황이기에 당일의 사태는 더욱 급박하고 어려울 것이며 여러가지 안전사고 문제가 날 가능성도 높다. 

 전국의 교사들이 9월 4일 역사상 최초로 공교육 멈춤을 하는 이유는 그간 교육 현장에서 바로 자신의 시민으로서의 인권과 생명체로서의 생명권, 그리고 교사로서의 가르칠 권리인 교권과 다른 대다수 건전한 학생들의 학습권이 작금의 교실 현장에서 거의 완전히 무너져 버렸기 때문이다. 과거 존경 받는 직업으로 스승의 그림자는 밟지도 않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권위있던 교사의 위치가 이렇게 까지 전락한데는 여러 가지 요인이 상당히 복잡히 작용했다.

 우선 90년대 김영삼 정부가 내세운 교육 소비자 개념이다. 독재 정권 시절 항상 국민의 단결을 요구 당할 때마다 군관민이 합심 하여란 표현이 자주 쓰였다. 이처럼 군과 관은 항상 시민 위에 있었던 존재였다. 그러던 것이 문민정부인 김영삼 정부부터 민관군이란 용어를 쓰기 시작하였는데 높은 군과 관의 위상을 낮추고 시민의 권리를 신장시키기 쓰인 표현이다. 그리고 이 때부터 시민에의해 관에 제기되는 민원은 무조건 수용해야 한다는 문화와 제도가 각급 관청과 기관에 확산하게 되었다. 교육계도 이러한 요구를 받게 되었는데 이 때부터 학생과 학부모는 자신들을 교육 소비자로 그리고 학교와 교사를 자신들의 요구에 응하는 교육 공급자 정도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교사라면 누구나 학부모 심지어 학생에게서도 몇 번 쯤 들어봤을 "당신 월급 내 세금에서 나오는 것이다"라는 천박한 인식은 이런 흐름과 수준을 같이 한다. 이런 인식은 자신을 사장이나 손님으로 교사는 피고용이나 서비스 직원 정도로 인식하게 만든다.

 두 번째는 교육 현장에 대한 오랜 불신이다. 현재의 대부분의 학부모는 빠르게는 80년대 늦게는 2000년대 학교를 다닌 사람들이다. 당시만 해도 교권은 강했고, 교육 현장은 모든 면에서 열악했으며 교사에 의한 체벌과 학생의 정서를 고려하지 않은 폭력적 언행, 촌지, 불공정한 대우 등이 많았던 시기다. 더군다나 능력주의에 의해 학교가 돌아갔기에 극히 일부만 성공하게 되는 당시 학교현장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패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학교에 대해 개인과 공동체의 성장과 행복이라는 좋은 인식이 남아있지 않다. 지금의 학교 현장은 이와 상당히 거리가 있게 바뀌었으며 근무하고 있던 교사들 대다수도 같은 과거 교육 폐해의 피해자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람은 자기가 받은 인식으로 해당 영역을 기억하기 마련이다. 

 세 번째는 능력주의다. 외환위기 이후 경제성장이 크게 둔화하고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능력주의는 사실상 긍정적 기능을 거의 모두 상실했지만 오히려 사람들이 겪는 경제적 어려움과 자본주의와 결합하면서 더욱 강화되었다. 때문에 진학과 졸업 후 인력 시장에서 승리하기 위해 학교에서 내 아이가 받는 정서적, 학업적 손해에 대해 극도로 민감하게 되었다. 이명박 정부 시기에 전국 각급 학교에는 영어말하기 대회가 많이 시행되었는데 학부모의 능력주의 열망에 가장 심하게 투영된 영역을 대회로 진행하다보니 결과와 과정에 대한 민원이 학교 현장을 상당히 황폐하시켜 몇년간의 실행후 폐지되게 되었다. 이른 능력주의에 대한 열망으로 학부모는 자신의 교육현장의 공동체성보다는 자신의 아이의 이익만을 생각하게 되었으며 이는 교원에 대한 과도한 민원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네 번째는 미완의 시민성이다. 유시민이 후불제 민주주의에서 지적한 것처럼 한국의 시민은 아직 시민성이 결여되어 있다. 시민성은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과 준수 외에도 시민으로서 자신의 권리와 의무를 잘 인식, 준수하고, 타인에 대해서도 공감과 그 권리를 잘 인식하고 지켜주는 태도다. 하지만 학부모는 교사를 자신과 같은 권한을 갖는 시민으로 인식하는데 실패했다. 오히려 자신의 요구와 감정을 모두 받아줘야 하는 감정 배설구나 민원창구 혹은 가게 점원 정도로 인식하는 것에 가까웠다. 여기서 서로 간의 예의 및 경계는 완전히 사라졌으며 이는 상당수 학부모의 시민성의 결여를 의미한다. 작금의 문제를 일부 학부모의 문제로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설문조사에 의하면 50만 교원의 99.2% 사실상 전원이 학부모의 갑질을 경험했다고 한다. 정말 단순하게 생각해서 50만의 학부모가 갑질을 했단 이야기인데 그 수를 절대 소수라 볼 수 없다. 전국 초중고 학생 수는 대충 570만 정도로 비율로만 50만은 10%에 가깝다. 한 반에 20-30명의 학생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담임 교사 한 명 당 갑질을 하는 학부모를 매년 2-3명 만나게 된다는 이야기가 된다. 

 다섯 번째는 공동체성의 붕괴다. 과거 한국 사회가 비교적 살만했던 것은 경제가 꾸준히 성장하여 이렇다할 학벌이나 자격 조건 없이도 누구나 적당한 기술을 배워 쉽게 취업하여 경제적 안정을 누릴 수 있었기 때문이고, 전통적인 농경 사회에서부터 이어진 공동체성이 강하게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공동체 정신은 서울 및 수도권 신도시에 거주하게 된 농경 2세대, 그리고 아파트에서 자라는 그들의 3세대가 부모가 되고, 그들의 자식이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완전히 희석되어 그 흔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과거처럼 모르는 이웃의 아이를 맡아주거나 같이 교류하거나 평상 같은 것을 공유하지 않는다. 

 따라서 해결책은 이런 원인을 해결하는 것이 된다. 하지만 시민성이나 공동체성의 담보는 상당히 오래 걸리는 일이며 사태가 급박한 만큼 당장의 법적인 해결책 및 제도적 해결책이 중요하다. 

 우선 법의 개정이 필요하다. 지금의 아동학대법은 정서적 신체적 학대를 이렇다할 물적 증거 없이 의심만으로도 신고를 할 수 있게 되어 있으며 신고를 당한 교사는 거의 직위 해제가 되고 짧게는 1-2년 길게는 2-3년을 경찰과 검찰 조사를 받게 되며 스스로 무고함을 입증해야 한다. 악성 학부모와 학생은 이를 상당히 악용하고 있는데 명백한 거짓 신고를 해도 그런 의혹이 있었다고 생각하면 그만이기에 터무니 없는 거짓 신고를 하여도 아무런 법적 문제가 없다. 상당히 기울어져 있는 셈인데 이런 형국으로 인해 교사는 문제 학생이 어떤 짓을 하여도 교육적 제재를 하기 어려우며 자신이 그 학생이나 학부모에게 물리적으로 공격 받아도 방어 수단이 전혀 없다. 때문에 다수 학생의 학습권, 교사의 생명권 및 인권, 교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법 개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둘째는 교사의 명확한 역할 수행을 위한 지원이다. 초중등교육법에 의하면 교사는 법령에 의해 학생을 교육하는 것이 학교에서의 역할이다. 이는 교육을 위한 교육과정 수립 및 운영, 수업의 실행, 평가 등의 본연적 업무와 이를 위한 직접적인 교육계획 수립 정도가 교사의 법적 역할이란 이야기다. 하지만 그럼에도 일선 학교에서 교사는 CCTV관리, 위생점검, 안전훈련, 돌봄교실, 방과후, 학교운영위원회등 간접적이라고도 이야기 하기 어려운 수많은 비법적인 업무를 떠맡고 있다. 초중등교육법에 의하면 이러한 업무는 행정직원 및 교육공무직의 일이지만 이들은 인적충원이 되었음에도 이러한 역할수행을 거부하고 있다. 교육부는 이런 부분에 선을 확실히 그어야 한다. 그래야 한국 공교육이 발전할 수 있다. 역사상 교육부는 많은 정책을 수행해왔고 교사 및 공교육을 개선하려 했으나 사실상 모두 실패했다. 이는 하향식이란 권위적 접근외에도 실제 교사가 본연의 업무에 집중하게 해 스스로를 개선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지 않았다는 점도 중요 요인이다.

 세 번째는 책무성의 감경이다. 현재 일선 학교의 교사는 가진 권한은 거의 없는 반면 교실에서 아니 담당학생이 학교 밖에서 벌이는 거의 모든 일에 대해 무한 책임을 지고 있다. 현행 학교 폭력은 학교 안팎에서 학생에게 벌어지는 모든 폭력을 대상으로 한다. 즉, 학교현장에서의 폭력 행위 외에도 학생이 방학 중 해외여행가서 만난 다른 한국 학생에게 당한 폭력, 교회에서 일어난 폭력, 아파트 단지에서 일어난 폭력, 학원에서 일어난 폭력, 이웃 아이끼리 싸운 폭력 까지 모두 학교폭력의 범주안에 들어간다. 일이 이렇다 보니 교사가 밤낮, 휴일 경계없이 학부모로부터 전화를 받게 되는 것이다. 또한 학생이 교외에서 당한 사건, 수업 중 자신의 부주의 및 장난으로 일어난 사건, 다른 학생의 악의 및 장난이나 실수에 일어난 사건 등이 모두 교사의 책임이 된다. 경북 영주에서 수학 여행중 한 학생이 숙소에서 취침시간에 화살을 만들어 날려 다른 학생을 실명시키는 일이 일어났는데 교사와 학교장에 거액의 배상금이 확정되었다. 교사가 어딜 가든 모든 학생의 손발을 묶기라도 해야할까? 임장지도와 사전 안전 교육 및 주의가 사전에 이뤄졌다면 면책해야하는 것이 마땅하다. 과도한 책무는 교육활동을 위축시키기 때문이다. 

 네 번째는 악성 민원인의 처벌과 거부권이다. 학부모가 마음만 먹으면 사실상 학교의 거의 모든 교사를 언제든지 아동학대로 신고할 수 있고 뉴스에 나온 것처럼 온갖 절차에 시비를 걸고 정보공개를 청구하여 학교 전체를 마비 시킬수 있다. 이런 일이 발생하면 해당 교사와 행정직원이 소모되어 다른 모든 학생의 학습권이 침해되고 교직원들은 자괴감에 인권이 말살된다. 이런 것들을 법적으로 막고 처벌해야 한다. 

 다섯 번째는 교육현장 정책 수립과 교육과정 개정의 현직 교원 중심으로 자리 잡게 하는 것이다. 한국의 교육정책과 교육과정이 늘 겉돌고 실패하는 것은 실질적 데이터와 경험을 가진 현장 교사를 참고용으로만 썼기 때문이다. 때문에 교육정책 수립과 교육과정 수립에 법적으로 현장 교사가 중심이 되게 해야 한다. 이는 법적으로 상설 팀을 구성하여 교육부내에 배치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또한 더 나아가 현장 교사가 교육부 정책을 수립하는 최고 직위에 올라가는 길을 열어야 한다. 경찰이나 검찰, 군인, 소방관등 모든 별정직 공무원들은 현장 출신들이 당연히 최고 직위에 올라가 그 경험을 바탕으로 현장이 공감할 정책 수행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유독 교육부만큼은 정책을 수립하는 고위직을 그냥 교육현장 경험이 전혀 없는 교육행정직이 독점하고 있다. 때문에 교육부의 정책은 늘 현장의 공감을 받지 못하며 실효성이 없다. 현장에는 뛰어난 교육능력과 더불어 행적능력에 자질과 의욕을 보이는 교사가 많이 있다. 

 여섯 번째는 학생 정신 건강 관리 책임의 체계적 구축이다. 현재 일선 학교의 학급에는 소위 금쪽이로 불리는 통제 불능의 학생이 다수 있다. 이들은 교사의 정당한 생활지도를 거부하거나 욕설 및 폭행을 하는 경우도 있고, 다른 학생에게도 그런 행동을 하며 교실 현장을 마음대로 이탈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 현장은 대응책이 딱히 없다. 그리고 대부분의 학부모는 이런 학생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공교육이나 무조건 받으라는 무책임한 대응을 하기 일수다. 때문에 입학과 동시에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정서행동검사를 체계적으로 강화하고 여기에 교사도 참여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나면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다시 한번 판별을 하거 확실해지면 학부모의 의사와 상관없이 교육치료를 강제할 필요가 있다. 이는 학생이 다시 공교육을 받을 만한 수준까지 진행되어야 하며 이 모든 기록은 졸업이후엔 지자체로 이어져 어른이 되어서도 정서행동 관리를 받을 수 있게 해야한다. 그래야 제2의 최원종, 조선이 나타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내일인 다음 주 월요일 이후가 어찌 될지는 현재로선 아무도 모른다. 상당히 많은 수의 교원이 학교 현장을 비우게 되어 학교 현장이 파행되면 여론이 교사를 탓할지 재량휴업일 및 연가 병가에 대한 위협으로 교원에게 선택권을 주지 않은 교육부를 비난할지는 알 수가 없다. 실제 교육부의 위협처럼 징계가 이뤄지면 교육 현장에 상당한 분노를 일으키게 될 것이며 더 큰 공교육 멈춤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상당하다. 사태가 어떻게 흐르든 최근의 일련의 흐름이 긍정적으로 작용하여 교육현장의 오랜 병폐를 해결해 한국공교육이 죽음에서 다시 태어나는 원년의 해로 자리잡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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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09-03 18: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해봅니다.

닷슈 2023-09-04 10:13   좋아요 0 | URL
저도 꼭 잘되길 바랍니다
 






 


 지구 상의 여러 생물들이 적응도를 높이기 위해 협력을 하는 것처럼 인간도 협력을 한다. 인간이 협력을 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는 생물학적 장치와 사회문화적 밈에 해당하는 증거는 많다. 의사소통을 위해 생겨난 언어, 기본적으로 처음 보는 타인에게도 협력을 우선적으로 제공하려는 착한 마음, 눈동자의 방향을 상대방에게 공개하는 투명한 공막, 협력을 위해 생겨난 규칙으로서의 윤리 규칙, 종교 및 사회 제도 등이 그렇다. 

 그리고 사람은 협력을 하기 위해 서로를 마주 본다. 서로 마주할 때 가장 중심이 되는 부분은 아무래도 서로의 얼굴이다. 협력을 하려면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파악하기 위해 그의 생각과 감정을 알아내야 하는데 인간은 언어 외에도 몸짓 그리고 주로 얼굴의 표정과 눈빛을 통해 그것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대화를 하건, 회의를 하건, 사랑을 하건, 싸움을 하건, 협력을 하건, 대결을 하건 늘 상대방의 얼굴을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그렇기에 특정인과 관계를 완전히 끊어내는 것을 우린 얼굴을 바라보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외면이라 표현한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해하거나 죽일 때 심지어 동물을 죽일 때 조차도 그들의 눈을 가리거나 얼굴을 가리고 보지 않으려 하는 것도 외면이란 단어와 깊은 관련을 지닌다. 아무리 모르는 사람이더라도 감정이 가득 담긴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면 그와 같은 일을 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복잡한 현대사회에서도 사람은 무엇을 하든 서로를 만나고 얼굴을 바라보게 된다. 그렇기에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는 대면은 사실 매우 당연한 것이기에 그다지 주목 받는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2020년 전 세계를 코로나19 팬데믹이 강타하면서 서로 직접 마주하며 얼굴을 마주보는 상황이 매우 어렵게 되었다. 그렇다보니 대면이란 용어는 새롭게 부각되었고 그에 반대되는 말로 비대면이란 말도 거의 새롭게 주목받았다. 코로나 이전에 과연 비대면이란 용어를 우린 얼마나 사용했었을까. 하지만 대면의 정확한 반대말은 비대면이 아니라 언급한 것처럼 외면이다. 책 대면, 비대면, 외면은 이걸 잘 지적한다. 

 그도 그럴것이 비대면은 원격수업 등을 포함하여 다양한 매체로 어찌되었든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고 부족할지언정 관계를 연결해주는 작용을 해주기 때문이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물리적으로 대면하기 어려운 사람들도 연결하게 해주기에 사람의 연결이라는 본질적인 기능을 대면보다 잘 시행하는 측면조차 있다. 하지만 외면은 어떤 수단이 있든 특정인과의 관계를 완전히 끝어내는 것이기에 대면의 완전한 반대말이 되게 된다.

 농경사회 이후 산업사회로 접어든 현대사회는 외면의 사회로의 전환이라 볼 수 있다. 과거 사람들은 서구이든 동양이든 자기가 태어난 지역에 거의 묶여 살았다. 직업도 신분도 거의 평민에 농민이었기에 모두 가난했고, 먹고 살기 위해 좁은 공동체에서 서로에게 강하게 의지하며 살았다. 특히 공동 노동이 더욱 요구되는 동양의 벼농사 중심 농경 사회에서 이런 경향성이 훨씬 강했다. 때문에 외면이란게 있을 수 없었다. 생존을 위해 서로의 협력이 강하게 요구되었고 이로 인해 관계는 강화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업 사회가 모든 것을 바꿔 놓는다. 도시에 제조업 및 많은 서비스 업이 생겨났고, 교통수단이 발달하고 신분에서도 해방되면서 사람들은 더 이상 농촌의 좁은 공동체에 갇혀지낼 필요가 없게 되었다. 사회의 모든 상품과 서비스는 예전보다 더욱 서로에게 의지하는 구조를 만들어 냈지만 그 의존하는 구조는 오히려 전혀 보이지 않는다. 과거 내가 신을 신발은 내가 만들거나 인근의 사람이 만들어주어 의존을 바로 알 수 있었지만 지금 가게에서 내가 산 신발은 판매자가 만든 것도 아니고 그조차 모르는 머나먼 곳의 여러 사람이 불특정하게 조금씩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직업에 종사하건 전통 농경사회에 만큼의 절대적 협력이 요구되는 직업은 매우 줄어들었으며 공간적으로도 이사가 잦아 공동체 형성이 어려워졌다. 그래서 사람은 도시에 오히려 과거보다 높은 밀도로 뭉쳐 살면서도 서로를 외면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람은 태생적으로 협력하는 존재로 진화했기에 자신이 소외되어 외면 받는 것을 정신적 육체적으로 견디지 못한다. 즉, 외면 받는 사람은 정신적 물질적으로 불행해진다. 그리고 외면 받는 사람이 많아져 그들이 불행해지면 그들을 외면한 사람도 결국 불행해지게 된다. 한국은 어떻게 보면 전 세계에서 가장 외면 사회로의 전환이 가장 빠른 나라라고 볼 수 있다. 그걸 증명하는 지표가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압도적인 저출산율과 빈부격차, 사회 전체에 만연한 갑질, 그리고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범죄의 증가다. 

 과거 한국은 전통 농경사회에서 현대자본주의 산업사회로 빠르게 전환했다. 그렇기에 외면 사회를 위한 물질적 조건이 갖춰졌음에도 사람들은 농경사회에서 공동체를 유지하던 버릇이 남아 바로 외면사회로 전환하지 않았다. 서울의 아파트에 살면서도 이사 왔다고 주변에 떡을 돌리고, 평상을 같이 만들어 공동 이용하고, 옆집에 아이를 맡길 수 있고, 셋방 살이 하는 집의 잔치 날이라도 되면 주인 집이 거실을 내어주고, 모르는 사람이 집을 방문해도 일단 주스 한 잔 정도는 내어주고, 부자의 조건이 오직 돈많은 아니라고 대답했던 80-90년대 정도까지의 생각은 그래서 가능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물질적으로도 크게 소외되지 않았다. 고도 경제성장기라 학력이 매우 낮아도 간단한 기술을 배워 어렵지 않게 취직되었고, 월급도 꾸준히 올라 집 하나 장만하여 가정을 이뤄 가난을 탈출해 평범한 삶을 이루는 것이 지금처럼 매우 어렵진 않았기 때문이다. 역사상 중산층이 가장 두텁게 형성되었던 것이 이 시기다.

 그래서 복지의 '복'자도 흔적도 거의 없던 90년도 중반 정도까지의 한국 사회에서 외면과 그로 인한 소외는 과거보다는 확실히 심해졌으나 그리 심각한 사회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모든 것이 전환된다. 농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농경사회의 부모를 지닌 이들이 조부모나 그 이전 세대가 되고 이후 세대는 도시가 고향이 되어버리며 농경 사회의 공동체 문화는 확실히 깨져나갔다. 여기에 돈이 우선 시 되는 상황이 생겨났으며 세계화와 자동화로 지방의 제조업이 무너져나가며 대도시권 대기업과 지방 기업간 소득 격차가 상당해졌다. 그로 인해 수도권 집중현상이 더욱 심해져 지방과의 격차가 더욱 심해졌고, 수도권의 부동산 가격은 과도하게 올라버려 지방에서 올라오는 젊은이들은 지옥고에 갇혀 살게 되었다. 복지는 조금씩 생겨났지만 충분하지 않아 사회안전망이란게 부실했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이 심해졌다. 사람들은 과거 초기 산업화때 교육기회를 통해 계층 이동에 성공했던 경험을 통해 능력주의를 종교처럼 신봉하며 많은 돈을 사교육에 쏟아붇고 있다. 그리고 능력주의는 사회의 부조리의 원인을 무능력한 자신에게로 돌리게 해 사회구조의 개선을 어렵게 하고 소외 받은 이들의 처지를 정당화해 그들을 더욱 외면하게 만든다. 

 그렇기에 외면 받은 사람들은 아이를 낳지 않게 되었고, 서로 간의 가진 것의 차이는 그 어느 때보다 심해졌으며, 자기와 가족만을 생각하는 이기주의가 만연하고, 자기보다 약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한 갑질이 사회전체적으로 펴졌으며, 물질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외면 받은 이들이 무분별하고 잔혹한 범죄를 대낮에도 여기저기서 일으켜, 여성이 밤늦게 도시를 돌아다녀도 별일이 없을 정도로 전 세계에서 치안이 가장 좋다는 장점도 거의 사라지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결국 해결방안은 서로 외면하지 않는 사람들 간의 관계의 회복이다. 즉, 다시 대면하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말이 쉽지 서로 외면이 가능한 자본주의 사회로 들어선 만큼 공동체의 회복은 사회적 제도적 경제적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 학교 교육의 회복이 필요하다. 최근 서이초 초등교사의 자살사건이 일어날 만큼 한국의 공교육은 사망 상태에 가깝다. 하지만 학교는 여러 어린 학생들을 모아 서로 협력하고 같이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게 하는 사회의 일차 기관이다. 때문에 서로를 대면하게 하고 외면하지 않게 할 수 있는 시작이 되는 곳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동학대법이 과다 적용되어 약간의 생활 지도만으로도 교사가 소송에 시달리고, 학부모가 무차별하게 민원을 제기하는 상황에선 이런 교육의 실현은 불가능하다. 한국은 관계의 붕괴와 능력주의의 부작용으로 인해 갑질이 만연한 사회인데, 초기 손님이 가게주인에게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사회의 약자인 여러 서비스 응대자와, 하급 민원 대응 공무원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어느덧 과거 함부로 하기 어려웠던 교사에게까지 미치게 되었다. 최근 이런 갑질을 일부 학부모의 일로 국한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그렇지 않다.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 이후 전국의 교사들은 매주 서울에서 수만명이 운집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교사 집단은 매우 낮은 교직단체 가입률에서 볼 수 있듯 좀처럼 뭉치지 않는 집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집회가 한 달 이상 지속된다는 것은 이런 갑질이 대부분의 교사가 생존의 위기를 느낄 정도로 만연해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전국의 유초중고 교사의 수는 40만 정도인데 이들이 한 번씩만 갑질을 당했다고 단순하게 생각한다면 무려 40만에 가까운 학부모가 갑질을 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하여튼 아동학대법의 개정과 적절한 생활지도권의 부여로 교권이 자리 잡고 교실 내의 질서가 자리잡혀야 학교교육의 회복도 가능해질 것이다. 그래서 교사가 의욕과 여유를 갖고 과거의 전통적인 지식 전달식 교육에서 벗어나 학생들이 다양한 문제를 서로 협력하여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관계 맺는 방법을 배우는 참교육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은 사회 복지 제도의 확충이다. 과거 농경사회는 가난한 이를 마을에서 도왔고 친족이 도왔다. 하지만 지금은 친족의 수도 줄었고 농경사회처럼 어려운 이를 돕는 전통도 사라졌다. 그렇다면 사회 복지를 통해 이들을 도와야 한다. 이는 물질적 지원 뿐만 아니라 정서적 지원도 포함한다. 최근 범죄를 저지른 이들은 물질적으로도 불우하지만 정신적으로도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았다. 학창시절부터 촘촘한 정신건강상태의 관리와 지원이 이뤄져야 하며 성인이 된 후엔 이것이 지역 행정기관으로도 이어져 관리가 되어야 한다. 현 정부와 일부 사람들은 이런 강력 범죄가 일어나자 처벌의 수위를 높이거나 경찰력을 배치하는 방향으로 이를 해결하려는 시도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는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에 가까우며 많은 경우에서 볼 수 있듯 외면을 받아 정신적 물질적으로 붕괴하고 자기 중심적 사고에 빠져 남을 탓하며 범죄를 일으키는 이들은 대개 잡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때문에 애초에 그런 사람이 생겨나지 않도록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은 능력주의 사회로 대학입시까지 단 한 번의 기회를 주고 실패자를 영원히 낙인찍고 경쟁의 승리자에겐 과도한 보상을 평생 제공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인생의 여러 차례에서 다시 기회를 부여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를 위한 꾸준한 학습기회에 지원을 제공한다. 

 마지막은 결국 공동체의 재생이다. 한국은 박정희정권이 없애버린 지방지차제도를 부활시킨지 거의 30여년이 되어가지만 풀뿌리 민주주의가 실현된 사례가 거의 없다. 노동시간의 단축, 그리고 다양한 복지제도를 통해 사람들이 자신이 살아가는 지역에 관심을 가질 여유를 주고, 제도적으로 예산 사용 및 제도 제안 권한을 많이 부여하여 스스로 살아가는 지역을 개선시키는 경험을 꾸준히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것이 잘 정착되면 지역에 애착을 갖고 살아가게 되어 지역에 정착하는 경우도 많이 생겨나 도시로의 집중 현상도 다소 완화할 수 있고, 무엇보다도 소규모 지역 단위로 관계가 회복되는 효과를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한국 사회는 매우 심각한 저성장 국면에 확실히 접어들었으며 저출산고령화로 나라의 노동력 및 소비력이 줄어 경제가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 또 미중갈등이란 대외적 위기에 직면해 있으며 세계적으로는 지구 온난화를 넘어선 열대화가 사회 하층민부터 그 생존을 위협해 나갈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인공지능을 포함한 과학기술의 발전은 관계의 회복보다는 외면을 더욱 크게 불러올 가능성이 있다. 때문에 지금부터 이런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 그래야 더 나은 사회, 살만한 사회라 사람들이 생각하게 될 것이고 다시 사람들이 서로 관계를 맺고 믿으며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사회로 전환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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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라딘이 24주년 기념으로 당신의 독서기록 행사를 했다. 매년 하는 행사지만 올해는 예년보다 좀 더 보기 좋고 감각적인 느낌이 든다. 잊을만 하면 나타나서 기분을 좋게 해주지만 그렇게 내가 한 살을 더 먹어 좀 더 죽음에 가까워졌고, 얼마 안되는 인생에서 생각보다 많은 지분을 책에 쓰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돈도 물론이다. 

 작가 유시민의 책을 비교적 꼬박꼬박 보는 편인데 의외로 알라딘 기록에 의하면 내가 구입한 유시민 책은 고작 4권 뿐이었다. 그의 책을 직접 사기도 샀지만 내 계정이 아닌 다른 경로로 샀거나 아주 일부는 도서관, 그리고 역시 극히 일부는 알라딘을 이용하기 이전에 직접 서점에서 샀던 것 같다. 이런 불일치는 대충 그렇게 설명이 된다. 

 이번에 나온 그의 '문과남자의 과학공부'를 보면서 유작가가 나보다 훨씬 대단한 분이지만 나와 비슷한 면이 있다고 생각되어 무척 좋았다. 나 역시 전형적인 문과생이지만 과학책을 꾸준히 보고 이젠 인문학 책보다 과학교양서가 인간 이해에 대해 더 대단하고 얻을 것이 많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비유적으로 나는 인간이라는 학문이 있다면 그것의 뼈대와 주요 근간을 이루는 총론은 과학이 설명하고 있으며 다양하게 나타나는 문명을 비롯한 인간이 만들어낸 학문과 각종 현상의 구체적 설명은 다른 학문영역들이 각론으로 채워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양자는 물론 동등하지만 총론을 벗어난 각론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며, 때론 각론도 총론에 유의미한 방향성이나 시사점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유시민과 내가 과학책을 보게 된 계기도 비슷하다. 어디까지나 우연과 약간의 필요성 때문이었는데 막상 읽고 나니 사회과학과 철학에서 채워주지 못한 인간 근본에 대한 이해욕망을 채워주어 향후 독서 비중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도 그렇다. 이렇게 생각보다 많이 본 유시민의 책을 이번에 정리해보았다.


1. 부자의 경제학과 빈민의 경제학

 유시민은 지금은 작가이자, 주요 시사 프로그램의 논객이지만 원래는 정치인이었으며 그보다 전에는 학생운동가였고 원래는 대학의 경제학도였다. 그런 유시민이니 당연히 경제학 책이 한 권쯤 있을 만하다. 젊어서 빈부격차와 독재정권의 폐해에 대해 고민했던 그였기에 부자를 위한 경제학과 빈자를 위한 경제학을 구분하고 관심을 갖는 것이 당연했다. 이 책은 그런 성향을 가지 경제학자들의 삶과 그들의 경제학을 정리한 것이다. 대학 초년때 읽은 책으로 무척 오래되었다. 개정판으론 더 이상 나오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2. 거꾸로 읽는 세계사

 유시민의 책 중 초창기에 가장 성공한 책이란 생각이다. 지금이야 잘 드러나있지만 20-30년전 만해도 숨겨진 역사는 대중에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았다. 숨겨진 역사란 국가권력이나 서구열강국가들에 희생된 그 국가의 사람들이나 피해국가의 상황들이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통해 드레퓌스 사건을 알게 되었고 젊은 날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베트남전 역시 충격이었다. 베트남은 공산국가로 그들의 승리는 한국 주류 정치와 역사에 부정적 사건이었기 때문이며 한국은 그들의 통일전쟁에 대항해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명목으로 상당히 오랜기간 많은 병력을 파병했기 때문이다. 


3. 청춘의 독서

 나온지 오래된 책이지만 난 최근에 읽었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눈에 띄었던 듯 하다. 유시민이 인상 깊게 본 책과 저자들의 소개가 쭉 나오는 책이다. 뛰어난 독서가 분들은 굳이 볼 필요는 없고 대학초년생들이나 독서에 관심이 많은 고교생 정도가 보면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막 대학에 들어가서 교양을 쌓고 싶은 새내기에게 선물로 딱이란 생각이다. 난 나이가 들어 봤지만 역시 유작가의 책이라 빠르면서도 즐겁게 보았다. 당연히 그가 추천해준 작품과 작가 중 처음 접하는 사람도 많았다.


4.어떻게 살 것인가

 유시민이 정치인에서 벗어나 자유인이 되고 본격적으로 작가로 전업하면서 쓴 책이다. 유시민은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고 그것들과 부딪히며 치열하게 살았지만 그것에서 벗어나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 가는게 행복이지 고민도 많았다. 그런 생각을 집대성 한게 이 책이라 볼 수 있다. 유시민 책 중 수필 느낌이 나는 책으로 좀 편하게 읽을 수 있으며 미워하는 사람도 많고, 옳다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도 많았던 그 시기에 뭔가를 놓은 것 같은 관조의 느낌이 나는 책이다. 이건 정말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이즈음에 노무현 전 대통령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는 여기서 진보와 보수의 특징을 구분하는데 이 성향을 상당히 선천적으로 보고 있어 이미 이즈음에도 과학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5.국가란 무엇인가

 유시민의 책 중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책을 꼽으로면 난 이 책을 꼽는다. 우린 태어나면서부터 불과 2-300년전에 형성된 국민국가에 소속되어 살기에 이를 당연시 하지만 실제 그 역사는 오래지 않았다. 한국의 근현대사는 독재정권에 의한 국가의 폭압이 가득한데 한편으로 사회계약론 같은 것을 살펴보면 국가는 국민을 위한 일종의 합의적 계약체이고 헙법도 그런 면을 많이 보인다. 이런 이중적인 국가의 면을 바라보며 유시민은 국가를 책에서 4종류로 구분한다. 국가주의적 국가, 자유주의적 국가, 마르크스적 국가, 목적론적 국가다. 국가가 존속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유시민의 공동체의 선으로서의 목적을 중시하는 목적론적 국가를 가장 중시하며 이를 지향점으로 제시한다. 너무나 당연한 것에 대한 깊은 고민을 준 책이었다.


6. 나의 한국 현대사

 이 책은 유작가의 책 중 두 번째로 인상 깊은 책이다. 그는 독재탄압과 노무현의 상실이라는 개인사에도 불구하고 다소 놀랍게도 한국의 보수주의를 인정한다. 그들이 옳지 않다고는 생각하지만 하나의 입장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이런 그의 입장을 처음으로 느낄 수 있었던 게 이 책이다. 한국의 근현대사는 산업화로 상징되는데 그래서 그는 한국의 양 세력을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으로 나눈다. 그리고 한국사에서 그들이 한 일을 잔잔히 짚어내고 보여준다. 그게 이 책의 장점이다.


7.후불제 민주주의

 한국은 서구열강을 제외한다면 거의 유일하게 산업화와 민주화에 성공한 나라다. 이런 한국의 길은 다른 나라들도 쉽게 밣을 수 있을 것처럼 생각되었지만 다른 후속 주자는 전무하며 4차산업혁명이 도래하는 미래엔 아예 어려울지도 모른다. 한국의 불타는 기질과 남에게 쉽게 굴종하지 않으면서도 권력에 잘 순응하는 복잡한 면을 갖고 있다. 그렇기에 강력한 독재정권을 타도하고 형식적 민주화를 이뤄냈음에도 아직 그것을 내실있게 뒷받침할만한 서구 사회 수준의 지역적, 풀뿌리적 시민성을 갖추질 못했다. 그렇게에 우리의 민주주의는 부침을 거듭한다. 그래서 우리는 때론 잘못된 선택으로 그 대가를 치루곤 하는데 그게 바로 후불제 민주주의다. 웬지 지금도 그런 것 같다.\\


8.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유작가의 책 중 가장 의외다 라면 읽은 책이다. 그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이기에 글을 쓰는 법에 대한 책을 냈는데 그것이 이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여기저기서 오염된 일본식 표현, 미국식 표현등에 대해 경각심을 갖게 됐다. 그는 우리 말을 잘 쓰게 의식을 심어준 분으로 이오덕 선생을 꼽는다. 글쓰기 뿐만 아니라 교육계에서 유명한 분으로 따지고 보면 지금의 혁신교육의 뿌리라고도 볼 수 있는 사람이다. 하여튼 이 책을 보고 더 짧고 단순하게 한국식으로 쓰려는 노력을 조금이라도 하게 된게 큰 소득이다. 짧게나마 유시민이 쓴 소설도 볼 수 있다. 단락 수준이지만.


9.역사란 무엇인가

유시민의 책을 사면 거의 바로 보는 편이지만 이 책만큼은 일 이년을 서재에 묶혀두었다 읽었다. 그만큼 좀 어려운 느낌의 책이었다. 역사 서술의 초창기부터 지금까지의 방식과 사람들을 망라했다. 헤로도토스의 투키디데스, 사마천, 이븐할둔, 맑스, 토인비, 에드워드카 등이 언급된다. 가장 최근에 등장한 역사서술방식으로 인류사가 거론되는데 그 유명한 사피엔스나 총균쇠등이 그것이다. 인간이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고 서술하며 변천했는지를 알고 싶다면 보기 좋은 책으로 정리가 잘 되어있다. 물론 읽기 쉽진 않았다.


10.문과 남자의 과학공부

 가장 최근 나온 책으로 인문학도인 그가 과학의 영향을 받고 생각을 바꾸고 지평을 넓히게 된 계기를 밝힌 책이다. 그가 읽은 과학책이 상당히 많이 나오는데 이를 인문학적 생각들과 연결시키고 그만의 생각을 제시하는 부분이 좋다. 교양서라고 하지만 상당히 수준 높은 어려운 과학책을 많이 보았고 과학 내용도 독자가 알기 쉽게 정리했다. 책 말미에 유시민이 읽은 과학책 목록을 정리했다면 참 좋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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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까지, 즉 상반기엔 총 51권의 책을 읽었다. 작년 1년 100권 읽기에 실패했는데 아무래도 직장 환경이 크게 바뀐 탓이 영향을 많이 미쳤다. 직장에서 육체적 정신적 에너지가 보다 많이 소모되다 보니 책에 잘 손이 가지 않았다. 올핸 그래도 같은 곳에서 2년째라 적응해서인지 책 읽기가 조금 더 수월했던 것 같다. 이번에도 가장 많이 본 책은 교육 부분이고 과학과 사회 분야의 책도 많이 본 편이었다. 


예술 건축[2권]-컬러의 말, 우리의 첫 미술사 수업


사회[9권]-포르노 판타지, 반도체 삼국지, 미스터 프레지던트, 동자동 사람들, 가짜 행복 권하는 사회, 표류하는 세계, GEN Z, 우크라이나 전쟁과 신 세계질서, 검찰국가의 탄생


경영 투자[2권]-기후 위기 부의 대전환, k배터리 레볼루션


과학[9권]-빛의 물리학, 협력의 유전자, 리 스몰린의 시간의 물리학, 기후미식, 기후위기 인간, 생물은 왜 죽는가,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 별 너머에 존재하는 것들, 좋아요는 어떻게 지구를 파괴하는가


문학[6권]-원청, 쿼런틴, 당신 인생의 이야기, 백조와 박쥐, 매니페스토,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교육[14권]-왜 지금 국제바깔로레아인가, 미래학교 수업 생각의 힘 기르기, 다시 그리는 학교 공간, 2022년 이후 한국 교육을 말하다, 교사에게 강요된 침묵, 교사 수업하며 책을 쓰다, 블렌디드 수업디자인, 우리가 교문을 바꿨어요, 챗GPT 교육혁명, 비폭력대화, 그림책으로 펼치는 회복적 생활교육, 학습하는 학교, 미래교육, 학생중심수업을 위한 협력적 수업 설계


역사[1권]-한국 근대사를 꿰뚫는 질문 29, 


인문철학[3권]-현대 철학의 최전선, 문학이 필요한 시간, 줌인 러시아


지리[2권]-심장지대, 러시아 지정학 아틀라스


미래[2권]-로봇의 지배, GPT제너레이션


경제[1권]-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




10. 학습하는 학교

 이 책은 학습하는 조직으로 학교를 변모하고자 하는 책이다. 5가지 원칙이 나오는데 개인적 숙련, 공유비전, 정신모델, 팀학습, 시스템 사고다. 이를 통해 지역, 학교, 학부모의 모든 구성원들이 시스템 사고를 하고 이를 통해 학교가 지역, 가정과 더불어 학습하는 조직으로 변모하여 스스로를 개선해나가는 조직으로 나아가야 한다는게 책의 골자다. 무려 900쪽에 가까운 책으로 소속된 연구회에서 3개월 간 같이 읽었다. 이런 계기가 아니었다면 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9. K배터리 레볼루션

한국 2차전지가 전 세계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미래 가능성을 잘 짚어준 책이다. 배터리가 주력 산업인 나라에서 전기차를 끌고 다니면서도 배터리에 대해 잘 몰랐는데 많은 걸 알 수 있게 해 준책이다. 한국 배터리 기업의 초 경쟁력과 희소광물의 중요성, 향후 2차 전지 기업 주식의 큰 성장을 주장한다.




8. 반도체 삼국지

미중 갈등의 본격화로 반도체는 미국이 중국의 성장세를 제어하는 주요 수단이 되고 말았다. 반도체는 컴퓨터의 역사만큼 오래되어 다른 4차 산업혁명의 주력 기술만큼 중요하단 생각이 안들지만 사실 그것들의 가장 근간에 있는 것이다. 반도체 없는 인공지능이나 자율주행차, 첨단 기술 및 무기는 없다. 미중갈등 상황에서 한국 반도체 업계가 나아가야 할 길, 그리고 현 상황을 잘 짚어준다. 반도체에 대해 조금 더 알 수 있었다.


7. 심장지대

거의 100년 전 영국의 존 매킨더가 쓴 책이다. 지리 고전 3대작 중 하나다. 심장지대는 유라사아의 중심부다. 심장지대라 할 만한 곳은 유로아시아아프리카 대륙에서 러시아가 차지한 시베리아, 그리고 아프라카 사하라 남단이다. 이중 심장지대를 차지산 러시아에 주목하고 이 지역의 중요성을 서술한 책이다. 100년 전이라 지금만큼 해군과 공군의 위력에 주목하지 못해 육상의 중요성을 다소 과장하는 면이 있지만 아직까지 주요 설명은 유효한 편이다.


6.줌인러시아

2016년에 나온 책으로 조금 오래되었지만 상당히 재미있게 봤다. 사람들은 러시아에 대해 거의 매일 뉴스에 나오는 만큼 자주 접하지만 정작 아는 것은 드물다. 이런 러시아의 종교, 문학, 예술, 정치, 경제에 대해서 전문가가 집대성한 책이다. 러시아에 어떻게든 발을 담그고 싶다면 꼭 봐야할 책이 아닐지.





5. 비폭력대화

아직도 유효하기에 재판에 재판을 거듭하여 계속 독자를 모으는 책이다. 혁신교육 생활 부분에서 중요했던 회복적 생활 교육 같은 것들은 사실 모두 이 책에 기반한다고 볼 수 있다. 비폭력대화는 상대방을 대함에 있어 그의 욕구와 나의 욕구에 기반에 그것을 인정해주는 대화다. 상대방의 자극적 반응에 즉각 대응하지 않고 그가 왜 그러는지 욕구를 살피고 내가 왜 언짢은지 나의 욕구를 살펴 서로를 어려 만진다. 저자는 유태인으로 인종차별적 언행을 하는 택시기사를 만났음에도 화내지 않고 그의 심리에 자리한 신분과 경제적 불안, 불공평에 대한 욕구를 읽어내고 성공적으로 대화해 나간다. 모두가 비폭력 대화를 해나간다면 세상은 달라질 것이다. 가정과 학교의 구성원이 모두 꼭 봐야할 책이다.


4. 좋아요는 어떻게 지구를 파괴하는가

기후위기로 농축산업, 교통, 산업 등이 지적 되지만 디지털은 잘 주목 받지 않는다. 기기는 필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이렇다할 에너지가 필요해 보이지 않기 때문인데 실제 디지털은 그 인프라가 상당한 에너지와 물적 자원을 소모함으로써 엄청나게 탄소를 내뿜고 있다. IT기업들의 방대한 데이터 센터, 그것을 연결하는 거대한 통신망, 수신장치, 단말기 등은 그 자체로 상당한 물자를 소모하며, 유지를 위해 엄청난 전기를 사용한다. 무료이기에 우린 디지털을 마구 쓰지만 그 행위 자체는 많은 탄소를 양산한다. 시간이 되면 쌓여 있는 메일과 클라우드의 파일을 정리하자. 그것도 탄소를 줄이는데 도움이 된다


3.협력의 유전자

70년대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는 내용과는 무관하게 순수하게 제목 때문에 인간을 지나치게 이기적 존재로 인식되게 만들었다. 하지만 최근 과학계에선 인간의 협력성에 집중한다. 개체로서의 이기심과 집단에서의 협력성은 양자 모두가 적합도를 높이기에 채택되었고 그렇기에 인간은 본연적으로 협력적인 존재다. 이런 협력의 긍정성과 더불어 협력이 불러오는 부정적 측면도 서술한다. 이는 집단의 크기 때문인데 자신이 속한 집단에만 충성하는 나머지 외부 집단, 그리고 집단이 올바로 나아가기 위한 판단 등에서 문제점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매우 재미난 책으로 꼭 읽어볼만 하다.


2. 우크라이나 전쟁과 신세계질서

이 전쟁으로 안그래도 문제 국가인 러시아와 푸틴은 악에 가까운 존재가 되어 버렸다. 반면 전쟁 이전에 문제가 있던 지도자였던 젤렌스키는 평화를 지키는 약소국의 영웅이 되어 버렸는데 이런 잘못된 시각에 균형을 잡아주는 책이다. 러시아는 소련이 붕괴하며 미국과 서구로부터 나토의 동진방지에 대한 확약을 받았고, 배신당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는 다민족 국가로 러시아인과 러시아의 영향이 상당함에도 다문화국가로 나아가지 못하고 서구로 향하는 민족주의 국가로 나아가 갈등이 심했다. 전쟁은 이런 것들의 중첩의 결과인 셈인데 여기서도 한국 정부의 선택은 아쉽기만 하다. 


1. 리 스몰린 시간의 물리학

상대성 이론 이후 시간은 절대적이기보다는 상대적인 존재로 취급받았고 그 존재도 의심받았다. 하지만 오히려 시간에 절대성을 부여하고 공간에게 그 위치를 넘기려고 시도하는 책이 이 책이다. 관점이 상당히 신선했고 독특했다. 특히 우주전체를 눈에 보이지 않는 격자가 가득한 공간을 보고 그 격자에만 물질이 위치하고 에너지가 있다는 생각이 독특했다. 그렇게 설정하면 빛의 속도에 한계가 있다는 점, 원자에서 전자가 특정 궤도에만 머물고 불연속적으로 점프하는 점, 빛의 전달 속도를 넘어 양자가 얽히는 현상등이 설명된다. 이 격자는 여러 방향으로 연결되어 멀리 떨어진 것도 연결된 수 있기 때문이다. 우주를 마치 누군가 설계해 놓은 게임 처럼 보이게 하는 효과도 있는데 하여튼 무척이나 재미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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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비롯한 생물의 삶의 본질적 목적은 유전자 운반이라는 매우 기능적인 것이다. 유전자 운반을 위해서는 생존과 번식을 잘 해야 하며 이를 위해선 환경에 잘 적응을 해야 한다. 그래서 생물은 감정을 느낀다. 자신의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것에는 쾌감 좋은 감정을 그리고 불리한 것에는 무서워하거나 혐오하거나 싫어하는 감정을 갖는다. 감정은 본능적인 것으로 사전 프로그램 된 것이지만 어떤 것에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대해서는 후천적으로 학습하기도 한다. 

 생물은 자신이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환경에 둘러 싸이게 되면 당연히 좋은 감정이 넘쳐 흐르게 되며 이로 인해 행복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많은 철학자들이나 심리학자, 진화 생물학자들이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주장하는 것처럼 행복을 느끼는 것은 나의 생존과 번식에 성공적인 상태이므로 생물체의 목적이 되며 인간도 예외가 아니다. 누구나 왜 사냐고 물으면 다소 간의 차이는 있어도 대답은 본질적으로 행복으로 귀결된다.

 인간에게 행복은 개인적이기도 하지만 매우 사회적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인간은 지구 상의 그 어떤 생물보다도 협력하는 종이기 때문이다. 협력은 당연히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것보다 생존과 번식에 유리하기에 선택되었고 그래서 인간은 다른 사람과 잘 협력하고 관계가 좋을 때 행복을 느낀다. 그러한 환경이 유전자 운반에 매우 좋기 때문이다. 책 '행복의 기원'은 여러 가지 행복 요건을 고찰하고 인간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좋을 때 가장 강한 행복을 느낀다고 결론 짓는다. 

 그렇다면 지금의 한국 사회는 전체적으로 행복할까? 사회 학자 오찬호는 한국 사회의 불안정성을 여러 책을 통해서 드러냈는데 책 '결혼과 육아의 사회학'에서는 한국 만큼 결혼과 육아, 교육으로 이어지는 구조에 각자 도생의 원리가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즉, 한국은 개인에게 매우 비협력적인 사회인 것이다. 한국은 이처럼 사회적인 협력이 부족해 생존과 번식이 개인에게 달린 매우 불리한 환경이기에 한국인의 자살률은 세계 최고 수준의 상태이며 출산율 역시 0.8정도로 압도적 꼴찌다. 

 이처럼 행복과 관련한 주요 문제는 사회에 자리하고 있음에도 행복을 달성하기 위한 대부분의 설파는 개인에게 집중되어 있다. 소확행이나 가심비, 워라밸 등의 용어들은 이래서 모두 힘을 잃는다. 근본적인 원인인 사회 문제는 뒤로 하고 개인적 차원에서의 해결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언제든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전쟁터의 군인에게 전쟁이란 근원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술을 마시든, 잠시 휴가를 떠나든, 동료들과 진한 전우애를 나눠도 그 모든 것들이 일시적 해결책이 불과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책 '가짜 행복 권하는 사회'는 이런 문제에 대해 심리학과 자본주의의 영합을 지적한다. 행복에 대한 생각은 크게 쾌락주의와 금욕주의로 나뉜다. 금욕주의는 종교적이거나 철학적인 것으로 과거 서양의 중세시대에는 현세의 모든 욕망을 금지하고 내세에서의 구원을 통한 즐거움을 강조했다. 그러던 것이 계몽주의 시대에 행복을 인간의 손으로 내려다 놓았고, 자본주의가 되면서부터는 돈이 곧 행복이 되었다. 

 초기 자본주의에서 생산수단이 없는 노동자들은 장시간 저임금 노동에 시달렸다. 이는 생산성에 상당한 손실을 가져왔고 노동력의 재생산에도 문제를 초래했다. 특히 시장측면에서 수요창출에도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자본가들은 사회복지의 확충과 임금상승을 허용한다. 그리고 여기엔 사회주의의 대두라는 문제도 있었다. 하지만 구소련권의 붕괴로 신자유주의가 유일의 이데올로기가 되자 이런 측면이 약화되었다. 또한 신자유주의는 부익부 빈익빈의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켰다. 때문에 노동자들은 매우 불안감을 느끼게 되었으며 제조업 일자리의 이동과 서비스 직종으로 내몰리며 불안정성은 더욱 커지게 되었다. 서비스 직종은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기에 제조업보다 정신적 스트레스가 더 커졌다. 이처럼 불행이 매우 커져 생산성이 더욱 떨어지자 행복이나, 웰빙. 힐링 같은 말이 마구잡이로 등장하게 되었다. 사회구조는 그대로 두다 개인을 행복하게 하는 해결책을 자본주의가 제시하기 시작한 것이며 이렇게 자본주의와 심리학이 영합하게 된다.

 이처럼 주류 심리학은 행복을 사회적인 것이 아닌 개인주의 적인 것으로 은폐하는데 이는 세 가지 문제점을 야기하게 된다. 우선 행복 개념을 왜곡하여 사람들을 진정한 행복으로부터 더욱 멀어지게 한다. 다음은 불행한 이들의 일을 그들 개인의 문제로 귀결시켜 불행을 그들 개인의 탓으로 만들게 한다. 마지막은 행복 경쟁을 부추긴다는 점이다. 행복 개념이 개인으로 귀결되어 사람들은 사회적, 국가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개인의 물질적 혹은 정신적 노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게 되며, 불행한 사람은 이런 개인적 노력이 부족한 사람이 되고, 서로 간에 더욱 행복해지기 위해 물질적으로 과시하며 실제로는 불행한데도 경쟁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행복은 실제로는 매우 사회적인 것이다. 미국 갤럽은 150개국 1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는데 그 결과 행복은 다섯 가지 영역으로 분류되었다. 직업에서의 행복, 인간관계에 의한 사회적 행복, 경제적 행복, 육체적 행복, 공동체 행복이다. 그리고 이들 중 세 가지는 사회와 매우 직접적으로 관련되며 사실상 다섯 가지 모두 사회와 관련이 있다. 그래서 저자는 사회와 국가의 구조 변화가 행복에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국가나 사회가 개인의 생존을 책임지고 사회가 평등할수록 행복함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책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에는 이런 부분을 책임지는 북유럽 사회의 행복함이 잘 드러난다. 

 저자는 책을 정리하며 행복은 개개인이 삶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과 매우 관련이 깊으며 인간은 이를 실현해야 만족감을 느껴 진정한 행복을 달성할 수 있음을 주장한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삶의 목적인 개인이 공동체 속에 소속되며 이 공동체를 위해 기여하는 무언가를 하는 것을 통해 타인으로부터 존중받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각 개인에게 인간의 주요 본성 중 하나로 자유가 허용되어야 한다. 이 자유는 세계 혹은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는 것으로 자신의 인생에 대한 통제력을 의미한다. 때문에 최소한의 물질이 필요한데 이는 자신의 육체적 생명을 유지하고 사회생활의 자유를 위한 정도이다. 또한 사회적 자유도 필요하다. 인간은 다른 인간에 의해 착취되고 압박당하면 자유를 잃게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정권과 생산수단이 그런 상황을 만드는데 따라서 모든 사람이 정권과 생산수단을 공유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사상, 문화적 자유도 중요하다. 극단주의, 혐오주의, 차별주의, 인종주의, 개인이기주의에 빠지거나 천착하는 것은 결국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파괴하여 자기 자신의 행복과 자유를 저해한다.

 이런 자유가 국가와 사회로부터 주어질 때 사람은 다른 사람과 연대하고 창조활동을 할 수 있다. 창조활동은 개인이 자신과 다른 사람을 위해 무언가를 무형, 유형적으로 만들어 내는 것으로 이것의 달성을 통해 개인은 강력한 보람을 갖게 되며 이를 통해 만족감과 진정한 행복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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