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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엄마의 그림책 수다 - 그림책 강사 어영수의 청소년과 함께 보는 그림책 이야기
어영수 지음 / 웃는돌고래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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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생기고, 아이가 책을 읽어달라 들고오기 시작하며 생전 처음으로 그림책을 접하게 되었다, 모든 어른들이 그러하듯이. 아니다, 제대로 이야기하자. 어른이 되어 처음으로 그림책을 접하게 되었다. 분명 어른들도 어려서는 그림책을 보고 자랐다. 하지만 그 기억은 모두 사라졌다. 어른들은 그림책을 보지 않는다. 그리고 그림책은 아이들이 읽는, 유치하고 단순한 책으로 치부한다.

 

세살 아들은 책을 좋아한다. 항상 책을 들고 다니고 읽어달라 조른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누가 억지로 읽힌 것도 아니다. 그런데 그 또래 모든 아이들이 그렇다. 아이들은 태생적으로 그림책을 좋아한다. 부모가 읽어달라는 요구를 많이 들어준 아이는 계속해서 책을 읽어달라하고, 그렇지 않은 아이는 포기하고 책을 읽어달라 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되지 않는 일은 무섭게도 단호히 포기한다. 그 단호함이 곁에서 보기 두려울 정도다.

 

아이의 요구로 읽은 그림책은 아이보다 내 마음을 더 만져주었다. 그림책을 읽어주다 울어버린 적도 있다면 대부분의 어른들은 미쳤다고 할지도 모른다. 아이가 들고 온 그림책을 먼저 읽어볼 준비없이 읽다 실제 울컥해 눈물이 난적도 있고 간신히 눈물을 삼킨적도 있다. 아이가 잠든 후 다시 꺼내 읽고 한참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한 적도 있다. 두 아이를 키우지만 아직도 어른이 되지 못해 어른아이인 나는, 비로소 그림책을 만나고나서야 엄마가 되어가고 있음을, 안다. 그렇게 난 그림책을 사랑하게 되었다.

 

아이를 키우며 닥치는 고민은 예상치도 못하게 어마어마하다. 내 아이에 맞게, 소신대로 키우기 위해서는 그만큼 미리 고민하고 중심을 잡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준비를 위해 많은 책을 읽으려 노력하는데, 이 책은 그 중에서 가장 큰 울림을 주었다. 어찌보면 소소할 일상의 일들을 에세이식으로 나열한 아줌마의 육아담같지만, 그 에피소드 하나하나에서 저자의 곧은 심지와 강단이 느껴졌다. 그건 하루 아침에 이룰 수 있는게 아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포기하고 쉽게 조류에 휩쓸리게 된다, 학부모란 이름으로.

 

우리 주변에서 학부모란 가면 아래 행해지는 악마같은 일들을 보며 나는 과연, 이라는 의문을 계속해서 던져본다. 그 끔찍한 난리통에 나와 아이들, 우리 가족이 빠질 것을 생각하면 한발 물러난 지금으로서는 지옥같지만, 많은 선배들이 말한다, 안그럴 자신있냐고. 나는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간 선배를 찾았다. 그리고 이 책에서 그 선배를 만났다. 나에게 필요한건 명문대에 보낸 사교육 광풍에서 살아남은 엄마의 실전 교육담이 아닌,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본을 가르쳐 사람을 만들어낸 엄마의 경험담이었기 때문이다. 못해도 괜찮다. 잘나지 않아도 괜찮다. 내가 바라는 나의 아이는 다른 사람의 아픔을 함께 아파할 줄 알고, 옳은 일을 옳다 말할 수 있으며, 인간으로서의 상식과 기본이 선 사람이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유치원에서 다 배운다는 말이 있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그림책에 다 있다. 나는 아마 오랫동안, 그림책을 볼 것이고 나의 아이들에게도 그림책을 들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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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연애할 때 - 칼럼니스트 임경선의 엄마-딸-나의 이야기
임경선 지음 / 마음산책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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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도 모른다. 제목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적적해 보이는 표지도 끌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책을 집어든 이유는 뒷표지에 써있는 빨간 글씨 한 줄 때문이었다. '반교훈적, 반가족주의적 에세이'라는. 나는 에세이를 거의 읽지 않는다. 그럼에도 에세이라는 이 책을 집어든 이유는 위로받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육아라는 일상에 빠진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나와 같은 현실에 있는 누군가의 위로다. 허세부리지 않고, 잘난체하지 않고,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는 담백한 위로.그 위로는 가족도, 친구도, 심지어 남편도 주지 못한다. 그래서 난 이 책이 좋았다. 누군지 모르는 이 작가가 난 참 좋아졌다.

 

무심하게, 건조하게, 쿨한 척 이야기하는 작가는 딸을 사랑해도 보통 사랑하는게 아니다. 당장 눈앞에서 동생을 포크레인으로 내리치고 10분도 넘게 밥을 입에 문채 엄마의 표정 따위는 아랑곳없이 장난질에 빠진 아들과 당면한 순간만 넘기느라 생각조차 못한 것들을 말하는 작가의 마음에 문득 가슴이 쿵, 쳐졌다. 난 한번도 아이의 자라나는 모습을 상상해보지 못했다. 아이가 소년이 되고, 소년이 수줍게 사랑을 하고, 소년이 꿈을 꾸고, 소년이 남자가 되는 모습을 정말 단 한 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다. 왜 그랬을까. 난 어째서 한번도, 이 아이의 그 긴 시간을 한 번도 그려보지 못했을까. 그저 지금의 부서지게 껴안아 주고 싶은 아기같은 모습을 무의식적으로 놓고싶지 않았던걸까. 아이는 분명히 자랄텐데, 그것도 순식간에.

 

그 작은 생각에 찰나가 못견디게 아쉬워졌다. 미운 세살의 저지레도 어쩐지 여유있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언젠가는 내 품에 안기지 않을만큼 커져버릴, 남자가 될 아이의 모습을 떠올리니 뭉클해 한 번 더, 또 한 번 더 안아보고 싶어졌다. 바로 앞만 바라보고 길고 긴 아이의 시간은 생각하지 못한 내가 미안하고 불쌍했다. 안고 싶은만큼 안고, 뽀뽀해주고 싶을 만큼 입맞춰 주고, 대답해 줄 수 있을 만큼 말해주고, 볼 수 있을만큼 실컷 보아두어야 겠다. 아기 때부터 어린이, 소년의 모습이 모두 더해져 아빠만큼 큰 남자가 될 그 아이를 보고 어색하지 않도록.

 

 

 

마음에 들었던 구절 몇 가지

 

_엄마는 편하고 즐거우면 죄의식을 느껴야만 '비양심' '무개념'에서 벗어나는 것일까. 왜 엄마는 즐겁고 가벼운 마음으로 일하면 안되는가. 왜 엄마는 자기 시간을 가지면 안 되나. 왜 완벽하지 않으면 안 되나. 가사일을 제대로 꼼꼼히 못한다고, 남편보다 집에 늦게 들어간다고, 애를 남의 손에 맡긴다고, 애랑 충분히 못 놀아준다고 왜 죄의식을 가져야 하는 걸까....... '남들은 다 제대로 잘하고 있는데......' '다들 그래' '무조건 이래야만 해' 같은 생각에 휘둘리면 아이를 키우는 일은 너무나 고통스러워지고, 그러다 아이가 행복해지기 전에 엄마가 불행해진다. 엄마가 불행한 것보단 불완전한 게 백배 낫다. 단, 그렇게 불완전한 엄마임에도 이 세상에서 나만큼 내 아이를 챙기고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누가 뭐래도 아이에겐 '내 엄마'가 가장 완전한 엄마인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 기적 같은 아이의 확신을 있는 그대로 행복하게 받아들이면 된다.

 

 

_아무리 봐도 부모가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정말로 가급적 아이가 가진 운명을 방해하지 않는 것, 그뿐인 것 같다.

 

_어쩌면 육아에서 유일하게 맞다고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아이의 소리를 귀 기울여 듣는 일일지도 모른다.

 

_나는 아이에게 '너는 이런 아이였단다'라며 기억하지 못하는 유아기나 유년기의 일들을 알려주기보다는 '나는 이런 엄마였고 여자였고 사람이었어'라며 나를 보여주고 싶었다. 여러모로 불완전했지만 그것이 너를 낳은 사람이고, 너를 낳고 키우는 일은 처음이라 힘들었지만 그래도 열심히 즐겁게 하려고 했다고. 덕분에 꽤 행복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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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육아 - 웃겨 죽거나 죽도록 웃기거나, 엄마들의 폭풍성장 코믹육아느와르
서현정 지음 / 한빛라이프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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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그마한 공간, 말 못하는 그이와 나는, 하루종일 같은 일을 몇번이고도 모르게 반복한다. 나의 말을 한마디 알아듣지도 못하는 그이는, 나에게 토하고 오줌싸고 그것도 모자라 할퀴고 머리를 잡아채 뜯는다. 하루종일 단내나게 아무 말도 못하고 그이와 함께 있다보면 우울증이란게 이런거구나, 울컥 눈물이 나기도 한다. 2014년 한국의 엄마는, 어떤 굉장한 준비나 강단이 있었다한들 맞닥뜨린 육아의 현실에 좌절하고 절망한다. 과거의 육아가 동네라는 울타리의 공동체가 함께하는 품앗이였던데 반해, 현대의 육아는 아파트로 분류되는 집이라는 좁은 공간에 갖힌 엄마라는 개인에게 오롯이 주어진 개인의 과업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한 마디 불만을 털어놓기라도 한다면 사람들은 질타한다, 엄마가 어쩌면 그럴수가 있냐고. 아이에게 벌어지는 모든 일은 엄마의 책임과 잘못이 되고 온갖 미디어와 주변인들은 모든 것이 엄마의 잘못이라고 공공연히 이야기한다.

 

잠시 기억을 거슬러 우리가 자랄 때를 생각해보자.

당시는 한집에 아이 하나, 많으면 둘이었던 저출산 시대도 아니었고 경제활동은 아빠가, 가정생활은 엄마가 책임지던게 당연하던 때였다. 여성의 사회활동이 많던 시기도 아니었고 따라서 결혼과 함께 전업주부가 되는 것이 당연하던 때였다. 엄마는 집안일로 항상 바빴고 둘, 셋 이상의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동네로 나가 신나게 뛰어놀고 싸우고 뒹굴고 먹고 잤다. 저녁 먹으라는 엄마의 외침이 있을 때까지 아이들은 바쁘게 놀았다. 옆집 아줌마, 뒷집 아줌마,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 그냥 모두 알고 지냈다. 친구네 집에 우르르 몰려가 밥을 먹고 놀기도 부지기수였다.

 

88 올림픽과 함께 고속성장한 우리 나라는 유사 이래 가장 살만한 시절에 자랐고 아이들은 80%에 육박하는 대학 진학률로 가방끈을 늘어뜨리며 전세계로 어학연수를 떠났다. 우리는 가장 부유하게 자란 '첫 세대'였다. 많은 것을 배우고 듣고 글로벌한 감각까지 갖추게 되었다. IMF가 터지고 전세는 급격히 바뀐다. 사회의 주도권을 쥔 기성 세대는 사회로 쏟아져나오는 젊은 세대에게 자리를 내어주지 않았다. 우리는 갈곳이 없어지고 그야말로 '밥 벌어 먹고 사는 것이 힘든' 첫 세대가 된다. 이 밥그릇 싸움에서 여자는 언제나 약자다. 똑같이 배우고 경쟁했음에도 '결혼'과 '출산'과 '육아'는 가장 큰 핸디캡으로 작용한다. 게다가 사회는 아직 여성이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을 0.1%도 갖추고 있지 않다. 결혼을 하면서도 근근이 버텨보지만 출산과 함께 여성은 대체로 기업으로부터 버린 카드가 된다. 외벌이로는 살 수 없는 임금구조 탓에 더럽고 치사하지만 어떻게든 회사에 비벼보려 하지만 나의 남편일수도 오빠일수도 있는 회사 동료들은 갑자기 여성을 자신의 라이벌로 여기며 발붙이기 힘들게 한다. 이보다 더 참을 수 없는건 육아를 여성의 일로 당연시하는 남편의 태도다.

 

정부와 기업과 구조에 더해 가족의 시대착오적인 인식으로 그 반짝이던 많은 여성들은 '독박 육아'의 길에 들어선다.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가정에서도 육아에 대해 우리는 배운 적이 없다. 무엇보다 우리는 아이를 낳고 집에 갖혀 지낼 순간들에 대한 준비가 전무하다. 우리는 유사 이래 개인이 육아를 책임지는 '첫 세대'다.

 

전투 육아라는 다소 코믹해 보이는 책에 대한 서두치고는 너무 장황하고 구구절절하다. 어쩔 수 없다. 이 책을 읽는, 다수의 지지자인 엄마들에 대한 이해 없이 책에 대해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나는 감히 말한다, 이 책은 단순히 육아로 지쳐 힘든 엄마 만을 위한 책은 아니라고. 앞으로 엄마가 될, 아직은 연애가 좋고 뭔가 이루고 싶고 도전하고 있는, 언젠가는 우리였던 그녀들을 위한 책이기도 하며, 반짝이던 우리와 사랑하던, 지금은 피곤에 쩔어 육아와 집안일에는 나몰라라인 남편들을 위한 책이기도 하며, 육아 전선에서 떠나 이제는 손주 볼 나이인, 혹은 손주를 본, 책임감없이 아이가 그냥 예쁘기만 하고 애키우기 힘들었던 기억은 잃은 부모 세대를 위한 책이기도 하다. 모두 알아야 한다. 왜 아내가, 며느리가, 딸이, 언니가, 한때는 멋졌던 선배가, 그냥 지나가는 동네 아이 엄마가 저런 표정을 하고 저런 머리를 하고 저런 옷차림을 하고 있는지. 왜냐하면 그녀들은 당신의 부인이고, 며느리이고, 딸이고, 언니이고, 선배이기 때문이다. 남이 아니다.

 

아이를 키우는 건 한 개인의 일이 아니다. 그건 범사회적인 일이다. 모두의 일이다. 그것이 인류가 지금까지 생존해 온 이유이며 이를 등한시 할 경우 우리는 공룡이 없어졌듯 멸망할 것이다. 우습게 들리겠지만, 그렇게 생각한다. 출산율의 저하는 신문지 상에서 보는 사회면 기사의 한 꼭지가 아니다.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 혼자 고군분투하는 엄마들을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그녀들은 남이 아니다. 그리고 이렇게 소리치고 있지 않은가. 다소 시시껄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이건 그녀들의 외침이다. 심각하게 말할 수 없는, 큰소리 내어 말할 수 없는, 방방이 갖혀 있는 반짝이는 그녀들의 외침이다.

 

거창하게 이야기 했지만 간단히는 그렇다. 모든 건 이해와 소통이라고. 울고 싶은 저녁, 그녀의 블로그를 보며 헛웃음을 지으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현실에서는 속이 아프다못해 쓰릴 상황을 위트있게 뒤집어 내는 그녀의 글과 사진을 보며 우리는 세상 가장 큰 위로를 얻었다. 그녀의 입담으로 우리의 하루하루는 힘을 얻고 의미를 갖고 혼자가 아니라는 가장 큰 선물을 얻었다. 그래서 이 책은 우리에게는 의리다. 간혹 마초적인 남자들은 말한다, 회사에서 나는 더 힘들다고, 군대가 얼마나 힘든데 어디다 군대를 갖다 붙이냐고.  나는 말한다, 나는 회사 안다녀봤냐고, 군대가 아무리 힘들어봤자 2년 넘냐고(휴가도 있지 않냐고), 그나마 군대 정도로 비교해준걸 감사히 생각하라고. 내가 더 힘들다 배틀할 얕은 수를 부리기 전에 이해하려는 노력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더 쉽지 않을까.

 

육아에서 그림같은 이유식을 영화처럼 받아먹고 말도 안되게 멋진 집에서 귀부인처럼 사는 모습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의 가감없는 육아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과 꼭 닮아 우리는 그 모습에 (남편보다) 힘을 얻었고 (엄마보다) 위로를 얻었다. 리뷰라고는 쓰지 않는 내가 아이를 재워놓고 이 장문의 글을 쓰고 있는 것은 육아동지로서의 어마어마한 의리이다. 그녀로 인해 웃고 울었던 시간들에 대한 감사이다.

 

이러니저러니, 우리가 버티는 힘은 말간 아이의 얼굴이다. 그 순간 순간은 평생 돌아오지 않을 짧고 소중한 시간임을 알기에, 우리는 이 시간이 소중하다. 그 순간을 오롯이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를 선물해준 이 책(블로그)이 난 참, 고맙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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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 소리나는 엄마의 105가지 육아 지혜 - 시간과 돈을 아끼는 알뜰 육아법
마마톤키즈 엄마모임 지음, 권남희 옮김 / 창해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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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읽지 않는 종류의 책, 이라면 ~해라 식의 지침서이다.

당신과 내가 같지 않고 당신과 내가 처한 상황이 같지 않은데, 한 개인이 불특정 다수에게 던지는 조언 따위, 구태의연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개중에는 옥석같은 한권 정도 가슴 후벼파는 감동을 줄 수도 있겠으나 다수는 작가 본인의 만족, 자랑을 위한 허울뿐인 자기개발서다.

 

아기가 생기고 생전 관심없던 육아 도서를 집어들게 됐다. 어쩌면 이렇게도 나는 육아에 관심이 없었고 아는 것이 전무한지에 스스로 감탄하며 생존을 위해 찾았다는 것이 맞다. 책들은 대체로 비슷한 짜임새를 가지고 있었다. 무지몽매한 엄마들의 현상태를 발가벗기듯 책망하고 그를 위한 방안으로 책의 메인 주제를 제시한다. 그러다보니 읽으면 읽을수록 나는 뭐하나 제대로 하는게 없는 불량엄마가 된다. 죄책감은 커져가고 이를 만회하기 위한 일들은 수두룩히 쌓여간다. 유명하다는 육아도서 몇권을 읽고나자 그동안 엄마로서 가져온 자존감은 산산히 무너졌다. 실생활에 도움될 정보는 고작 몇개뿐, 남은건 자신없는 엄마의 초라한 모습 뿐이다.

 

그래서, 읽지 않기로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한권의 책을 사오셨다. 여성지 부록 정도의 표지디자인을 한 이 책, 게다가 제목은 또 왜이리 산만한지 도저히 읽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아는게 없으면 알려고 노력이라도 해야지, 라는 엄마의 말과 사오신 정성에 하는 수 없이 책장을 펼쳤다. 2000년에, 심지어 일본에서 쓰여진 책이라니, 대체 도움이나 되겠어? 맙소사, 원제는 '절약육아로!의 방법'이었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그 책, 머리말이 나를 사로잡았다.

 

어느날 아기라는 아주 작고 작은 존재가 나타난 것 뿐인데 생활은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달라져버리는 것이지요. 3시간 간격으로 수유를 해야하고, 밤에는 제대로 잠도 못잡니다. 또한 집안 일은 쌓이고 식사 시간조차 없을 뿐만 아니라, 46시간을 가슴에 달라붙어 우는 아이도 있으니까요. 전혀 협조해주지 않는 남편에게 서운함만 쌓여가고, 친구들과 자유롭게 놀러도 못가고, 일도 한번 그만두면 같은 조건으로 복직하기도 어렵습니다. 그야말로 아기와 둘이서만 지내는 밀실육아가 되어버리는 것이지요. 이야기 상대도 없고, 아이는 책대로 자라지도 않고, 할머니는 고리타분한 육아법으로 아이의 응석을 다 받아줍니다. 의사선생님은 아이의 체중이 늘지 않는다고 하고, 보건소에서는 발육이 늦다고 하고...

 

10여년 전, 일본의 한 엄마모임에서 만든 책이, 나의 마음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었다. 다른 책들처럼 이게 잘못됐네, 최악의 경우는 어쩔거네 저쩔거네, 이런 말 한마디 없다. 이러니 얼마나 힘드시겠어요, 맞아요, 그래요, 하는 책의 맞장구에 마음이 참, 편안해졌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공감과 이해였던 것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아기는 자란다. 좌충우돌 서투르지만 노력하면 된다. 과정 속에서 엄마도 배우고 그렇게 한단계씩 나아간다. 자책하고 스스로를 비난할 필요없다. 처음부터 잘하면 사람이 아니다. 엄마에게 필요한건 정말 단순히, 이해라고 생각한다. 힘들지, 다독여주는, 힘내, 응원해주는. 엄마도 사람이니까.

 

책은 정말 소소한 방법론적인 내용으로 가득하다. 절약육아를 실천할 수 있는 방법들이 깨알처럼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마치 주변의 아는 언니처럼 친절하기도 하다. 하지만 이 책을 기억하는 건, 내 마음을 어루어준 머리말 때문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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