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사람들
박솔뫼 지음 / 창비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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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나는 친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다고 생각한다. 저를 위해 무언가를 한순간 포기해주십시오. 저의 고민을 떠안아주십시오. 나 역시 아주 가끔 누군가의 불덩어리를 삼키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당신은 내가 헝클어뜨리고 부서뜨린 당신의 부분을 받아들이세요. 우리 서로 폐를 끼치는 사이가 됩시다. 「농구하는 사람 p.76」

옛날에는 동물뿐 아니라 인간들도 동면을 했다는 것인데 현재 주변에서 겨울을 유난히 힘들어하는 사람들은 먼 조상의 기억이 남아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였다…나는 겨울이 힘들지 때문인지 그 이야기가 정말 좋았다. 그런 가정은 낭만적이기도 했고 내가 겨울에 힘든 것은 내 탓이 아니라고 남 탓을 할 수도 있었다. 「건널목의 말 p.46」

3년 전부터, 겨울은 나에게 힘든 계절이 되었다. 왜냐하면 ‘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에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지만’ ‘말을 하려고 들면 마음이 무겁고 괴롭고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기 때문이다(p.39). 말을 하려고 하면 할수록 점점 더 엉망이 되어갔고, 그래서 나는 차라리 입을 꾹 다물고 싶었으나 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그때부터는 겨울만 되면 온 몸이 아팠다. 흐린 날이면 욱신거리는 상처 같았다. 설명할 수 없는 이 상태를 설명하기 위해 계절성 우울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야 나는 보가 좋게 남 탓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은 원래 동면을 하는 동물이었다는 귀여운 핑계와 함께.

동면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겨울을 어떻게든 나야 하며 나는 후회할 말들을 많이 해버린다. 아니 후회할 말들이라기보다 말이라는 것이 어떤 말이라는 것이 마음만 먹으면 나를 불안하게 할 수 있었다. 내뱉은 말들에 대한 불안들, 나는 그것이 실제로 내 방문을 두드릴까봐 불안해하는 것인 것 어떤 사람들은 알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지나친 것이 아님을 타당한 생각임을. (p.50)

봄을 맞기 위해 겨울을 어떻게든 보내기 위해 나는 되는대로 말을 내뱉었지만 결국 그 말들이 나를 그렇게도 불안하게 했다. 그리고, 그렇게 내뱉은 말들로 괴로워하고 있는 나를 그들은 꿰뚫어보고 있는 것 같아서, 그게 나를 다시 불안하게 했다. 그런 날이 계속되다 나는 결국 방 안으로 웅크리고 들어가 한 마디도 내뱉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사개월이 지났고 그렇게 봄이 왔다. ‘말을 땅에 묻고 그 말은 시간이 조금 지나면 낙엽이 썩어 사라지듯 그렇게 사라집니다.’(p.52) 말은 정말 썩어 사라지지만 아직도 나쁜 악몽처럼 문득 생각날 때면 나는 종종 다시 동면을 위한 자세를 취한다. 수면은 뇌가 쉬는 쉬간이라면 동면은 아무것도 없는 무의 상태라고 한다. 긴 겨울잠에 빠지고 싶다. 내가 내뱉은 모든 말이 썩어 사라질 때까지.

처음 읽어보는 박솔뫼의 소설을 한 문장 한 문장 끊어 읽다 마음에 들어오지 않아 모든 문장을 이해하고 싶다는 욕심을 버리고 힘을 빼고 죽 읽어 나갔다. 호흡이 매우 길고 시간과 공간이 뒤죽박죽 섞인 불친절한 문장들이었으나 그렇게 계속 읽어나가다 보면 책을 읽는 나는 여기에 없고, 몸이 흩어져버린 것 같았다. 그게 위로가 되었다. 가끔은 크게 소리지르고 싶고, 유리병을 손에서 놓쳐 깨버리고 싶고, 끝없는 깊은 겨울잠에 빠지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호텔의 흰 침대보 위에서 겨울잠을 자기 위해 여름에 열심히 일하는 사람’(p.34)이다. 그리고 그 옆에는 박솔뫼의 소설이 놓여져 있을 것이다.

*「건널목의 말」은 모든 문장에 밑줄을 긋고 싶을 정도로 좋았습니다. 누군가에게 책을 강제로 권하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습니다만, 기회가 되신다면 읽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글은 창비에서 책을 제공받은 읽은 뒤, 솔직한 감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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