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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낙원
헤닝 만켈 지음, 김재성 옮김 / 뮤진트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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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북쪽(이라 기억한다), 작은 마을에 봉사(?) 활동을 다녀온 적이 있다. 당시 봉사 일정 중에 '홈스테이'가 있었는데, 이것에 대한 봉사자들의 의견이 분분했다. 홈스테이가 그들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것이고 다소 위험할 수 있다는 입장과 인도인들의 실상을 진짜로 이해하려면 함께 지내봐야 한다는 입장으로 나눠었다. 나는 후자에 손을 들었지만 지금에서야 돌이켜보면 전자의 입장이 훨씬 설득력이 있었다고 느껴진다. 내가 묵었던 집은 방이 단 한 칸이었다. 벽으로 나뉘어진 다른 한 칸은 부엌이었고, 우리에게 잘곳을 제공하기 위해 아이 셋과 서른쯤 됐을 부부는 작디작은 부엌에서 불편하게 잘 수 밖에 없었다. 우리는 그 집 안주인의 권유에 따라 사리를 입었는데, 잘 때 사리를 벗으려고 하자 안주인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불편한 바지 따위 입지 말고 편안한 사리를 입고 자라고 손짓 발짓으로 말했다. 사리를 입고 자리에 누웠지만 피부에 느껴지는 따끔따끔한 통증에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다음날 나는 빈대에 엄청나게 물려 빨갛게 부어 오른 피부 덕에 열이 났고 몸져누웠다. 사리를 입고 자라고 강요하는 안주인의 얼굴을 마주하고 난 뒤 나는 그들의 삶 중 무엇도 쉽게 이해할 수 없으리라는 걸 알았다.

  이 소설의 주인공 한나는 스웨덴의 아주 추운 지방에 살다가 한순간 아프리카의 포르투갈 령 땅에 떨어진다. 한나는 흑인을 함부로 대하는 백인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고 또 흑인을 노골적으로 차별하는 아프리카 땅의 법도 이해할 수 없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자신이 아무리 친해지려고 노력해도 흑인 스스로가 백인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지 못하고 끝까지 마음을 열어주지 않는 것이다. 한나는 처음부터 이 소설이 끝날때까지 여행자다. 무엇을 욕망하는지, 어디로 가야하는지 알지 못한다. 이 책을 펼치면, 플라톤의 경구가 가장 먼저 보이는 데 그 경구 덕에 언제나 항해하는 한나를 상상하게 된다.

"세상에는 세 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죽은 사람들, 살아 있는 사람들,

그리고 바다를 항해하는 사람들이다."

-플라톤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나라는 인물이 좋았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인물. 아프리카에 있지는 않지만 그게 실제 우리의 모습이기에. 한나는 어려움에 부딪힐 때마다 아버지가 자신에게 말했던 '꼬질꼬질한 천사'라는 말을 기억한다. 한나는 늘 조언을 구하려고 한다. 한나가 조언을 구하는 대상들은 한나에게 자신의 입장을 얘기할 뿐이다. 그러니까 인간은, 결국 스스로에게 갇혀 있고 그것을 상대에게 발화한다. 한나는 그것을 알고 있고, 아프리카 땅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한다. 이를테면, 백인 남편을 칼로 찍어 죽인 흑인 여자를 구하려고 노력하고, 또 그 여자의 오빠와 사랑에 빠지는 일 같은 것 말이다. 어떻게 보면 이 소설에선 등장인물들이 너무 쉽게 죽고, 아프리카 땅에 자리 잡은 백인들은 이기적이며 또 악하며, 살기 위해선 부자가 되어야만 한다는 입장을 냉정하게 펼치고 있다. 한나는 자신의 일기에 이렇게 쓴다.

"이 불가해한 가난의 한가운데서 나는 풍요의 섬들을 볼 수 있다. 존재할 수 없었을 행복, 살아남을 수 없었을 온기. 이것을 통해 온갖 부와 안락에 파묻혀 사는 백인들의 또 다른 종류의 가난을 나는 볼 수가 있다."

  그녀는 자신이 쓴 글을 읽어보았다. 경험한 것을 정확히 옮겨 적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쨌든 처음으로 흑인들과 그들의 삶의 현실을 제대로 발견한 느낌이었다. 지금까지의 시각은 왜곡된 것이었다.

  스웨덴의 가장 가난한 지역에서 자란 그녀로서는 어쩌면 흑인들과의 공통점이 생각했던 것보다 많을지도 몰랐다. -454p

  한나의 일기는 오랫동안 아프리카 호텔의 마룻바닥에 감춰져 있다가 2002년 한 청년에 의해 발견된다. 호텔은 이미 쇠락한지 오래고,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 되었다. 청년은 한나의 일기를 전혀 읽기 못한다. 독해되지 못하는 한나의 일기가 2002년의 아프리카 청년에게 가 닿은 까닭은 무엇일까? 지금까지도 아프리카 대부분 지역은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자력적인 기업도 없고 백인들에게 자원을 빼앗긴다. 어쩌면 낭만적으로 느껴지는 한나의 생각이 이러한 현실에 위로가 될 수 있을까? 가난해도 그들만의 삶이 있고 행복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인도에서 홈스테이를 했을 때 불편하고 피곤했던 기억이 대부분이었지만, 아침의 인상은 지워지지 않는다. 대여섯 살 쯤 된 그 집 아이가 아침부터 병뚜껑 같은 것을 갖고 놀았다. 집 앞에 더러운 도랑이 흘렀는데, 그곳에 병뚜껑을 흘려보내기도 하고 잡기도 하고 무엇이 재밌는지 까르르 웃으며 자신만의 놀이에 푹 빠져 있었다. 가난하다고 해서 삶이 늘 지옥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난하면 불행할 것이라는 게 우리가 갖고 있는 가장 큰 편견일지도 모른다. 가난과 편견에 시달리더라도 우리 모두에겐 일상적인 삶이 있다. 매일 흘러가는 삶 속엔 슬픔도 있지만 기쁨도 있고 세상 더러운 일도 있지만 또 선물처럼 나타난 반짝이는 순간도 있고 그렇기에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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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시작되자마자 좀 아팠다. 마음도 아프고 몸도 아프고. 아마도 2015년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품고 있어서 아팠던 것 같다. 덕분에 야심차게 적어놓은 2016년 계획 중, 알라딘 신간평가단 데드 라인 잘 지키기는 가장 먼저 어겨버린 새해 계획이 됐다. 계획을 좀 지키지 못했으면 어떠랴. 좀 늦어도 이렇게 읽고 싶은 책을 쓰고 있으면 되는 것을. 계획이란 어기고 수정하라고 세우는 것일지도 모른다.

 

1. <카인>, 주제 사라마구, 해냄

 

아벨과 카인 얘기는 성경을 지금까지 읽히게 만드는 성경의 가장 핫한 스토리라인 중 하나다. 사실 성경 얘기를 다루는 소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다루고 있는 주제 의식이 뻔하다는 생각이 좀 박혀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도 주제 사라마구니까, 교회 문턱도 밟아 보지 않은 이들도 한번쯤 들어봤음직한 카인과 아벨 얘기를 어떻게 풀어냈는지 궁금하다.

 

2. <소각의 여왕>, 이유, 문학동네

 

한국에서 소설을 쓰는 신인 작가로 살아가기란? 영어권에 비교하면 안 그래도 한국어를 공유하는 인구가 없는데, 그중에 소설이란 장르를 읽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조차도 외국 작가가 쓰는 소설만을 줄기차게 읽는데. 신인이 어떤 세월을 견뎌야 하는지 알기에 신인이라면 박수 쳐주고, 응원해 주고 싶은 마음이다. 고물상을 운영하는 지창씨와 유품정리사인 그의 딸 해미가 어떤 이야기를 빚어냈을까?

 

3. <그들>, 조이스 캐롤 오츠, 은행나무

 

오츠는 '작가의 말'에서 이 작품을 두고 '소설처럼 구성한 역사 기록'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들>은 1937년부터 1967년 디트로이트 흑인 폭동까지를 시대적 배경으로 디트로이트 빈민가에서 삶을 살아낸 한 가족의 연대기를 서술한다. 자신이 살았던 시대를 역사적으로 서술한다면 그 시각은 어떻게 될까, '나'를 배제하고 쓸 수 있을까, 어느 정도의 거리 두기가 가능할까 등등 책을 읽기도 전에 여러 질문들이 떠오른다. 오츠의 대표작이라니 출간이 반가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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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2015년 12월이지만 내가 꼽은 리스트 중 한 권이라도 읽게 될 때는 2016년 1월일 것이다. 새해가 되면 늘 새해 계획을 세우곤 하는데 언제부턴가 신기하게도(?) 비슷비슷한 종류의 계획이 매년 반복된다. 이를테면 한 달에 책 5권 읽기는 책 3권 읽기와 같이 현실적으로 바뀌며 어렸을 때에는 간간히 들어갔던 조금은 허무맹랑한 계획은 리스트에서 종적을 감추고 그 자리를 건강이나 생활 습관과 같은 계획이 대신한다. 익숙한 것만을 반복하는 신년 계획으로 나이듦을 느끼는 건 꽤나 씁쓸한 일이다. 그래서 12월에 읽고 싶은 책으로는 전에 접해 본 적 없었던 작가들의 작품을 주로 뽑아 보았다. 

 

1. <첫숨>, 배명훈, 문학과지성사

 

배명훈 작가의 작품은 재기발랄한 상상력이 돋보이기로 유명하다. 이 상상력은 말로 설명하기 좀 어려운 종류인데, 이 작가의 <안녕, 인공존재!>를 읽고 이렇게도 단편을 쓸 수 있구나 싶어 꽤나 유쾌한 기분을 느꼈었다. <첫숨>은 그가 쓴 장편소설이고, 나는 단편소설을 읽을 때에도 이 작가가 장편을 쓰면 더 좋겠다 생각했었다. 인구 6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우주 정착지 '첫숨'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라니 그 배경부터가 흥미진진하다.

 

2. <도착의 수수께끼>, v.s.나이폴, 문학과지성사

 

나이폴은 영국령 트리니다드 토바고에서 인도 이민자 3세로 태어나 영국에서 소설가가 됐다. 나는 나이폴의 약력을 보고 나서 트리니다드를 찾아봤는데, 지도를 봐도 어디인지 전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내겐 낯선 곳이었다. 아마 영국 사람들에게도 이 낯섦은 마찬가지였을 것이고 나이폴은 웨어 아 유 프롬이라는 질문에서 쉽게 벗어나기 힘들었을 것이다. 늘 정체성에 대해 질문을 품고 있던 나이폴이 자신의 삶에서 '도착'이라 여기는 중년의 삶을 회고하는 자전적 소설이 <도착의 수수께끼>이며, 그가 '도착'에 대해 어떤 답을 얻었는지 궁금하다.

 

3. <오르부아르>, 피에르 르메트르, 열린책들

 

피에르 르메트르는 이름조차 들어본 적 없는 작가였다. 그럼에도 <오르부아르>가 눈에 띈 건, 이 소설이 2013년 공쿠르 상 수상작이며 문학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갖고 있는 작품이라는 설명 때문이었다. 흡입력이 대단하면서도 문학성이 뛰어나다니. 게다가 작가는 55살의 나이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단다. (아아, 소설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작가여!) 1차 세계대전 이후 전사자 유해를 발굴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사기극을 모티브로 삼았다는데, '사기'와 '추리'가 들어가면 일단 믿고 볼만 하다.

 

4. <사랑과 어둠의 이야기>, 아모스 오즈, 문학동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 이야기를 간간히 뉴스에서 듣긴 했지만, 그 복잡한 관계를 늘 이해해내지 못했다. 이 소설은 무엇보다 그들의 관계를 이해해보고픈 내 욕구에서 뽑게 됐는데, 작가는 현대 이스라엘 건국에 대한 이야기를 자신의 개인사를 통해 풀어냈다고 한다. 소설의 가장 좋은 점 중 하나는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은 이야기로, 또 감정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것이며 더불어 히브리 문학의 아름다움도 느낄 수 있다니 더할 나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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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묻힌 거인]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파묻힌 거인 - 가즈오 이시구로 장편소설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하윤숙 옮김 / 시공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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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만약 약속(?)이 없었다면 나는 이 책의 리뷰를 쓰지 않았을 것이다. 잘 모르겠다, 어떤 내용인지 손에 잡히지 않는다 싶을 땐 그 책이 재미있든 없든 다시 보고 판단해야지 생각만 하고 끝끝내 다시 보지 않는 게 나의 나쁜 습성이다. 어떻게 보면 스토리라인이 지극히 단순한 이야기인데, <파묻힌 거인>에서의 상징성을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고대 잉글랜드의 노부부 액슬과 비어트리스는 아들을 찾는 여정을 시작한다. 그들이 지나오는 길은 모두 안개로 뒤덮여 있고, 그 안개는 안개 속에 사는 사람들의 기억마저 모두 흐릿하게 만든다. 색슨족과 브리튼족은 각자의 마을을 이루며 살아가는데, 브리튼족인 그들은 여정 길에 색슨족 기사와 소년을 만나 여러 가지 사건에 휩쓸린다. 자기가 누구인지, 자신들의 아들이 어디에 살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액슬과 비어트리스는 서로에 대한 믿음을 굳히며 여정을 포기하지 않는다.

 

나는 상징을 떠나 비어트리스가 앞에 서고 액슬이 뒤에 가며 주고받는 말, '지금도 거기 있나요?', '지금도 여기 있어요.' 가 좋았다. 그들은 도깨비가 나타날지 모르는 대평원에서, 어떤 괴물이 살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깜깜한 동굴에서 서로를 확인한다. 아직도 그 자리에 있느냐고. 둘 사이에 일어났던 일들을 더듬는 어떤 말보다, 서로에 대한 믿음을 확인하는 말들보다 지금도 그 자리에, 곁에 있느냐고 묻는 그 말이 마음을 울렸다. 

 

사랑했던 기억을 모두 잃어버렸다면 그 사랑은 어떻게 되는 걸까? 물론 사랑에는 기쁨만 있지는 않다. 사랑하기 때문에 서로를 증오해야만 했던 시간도 있었을 것이다. 이 이야기를 미래판 설정으로 본다면 영화 <이터널선샤인>과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터널선샤인>에서는 서로에 대한 기억이 없어도 사랑했던 흔적과 습관이 남아 사랑했던 이들이 서로를 알아보게 만든다고 말한다. 그러니 어쩌면 삶은 '몇 번이라도 다시!' 살아볼 만 할지 모른다. 그런데 <파묻힌 거인>에서는 그 사랑을 어떤 시각으로 보고 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긍정도 부정도 아니고, 어쨌든 '헤어짐'이어야 했기에. 서로를 어떻게 사랑했든 삶의 유한성의 숙명을 타고난 인간인 이상 영원한 헤어짐을 피할 수 없다. 

 

"섬에 가서 더 많은 이야기를 해요, 공주." 그가 말한다.

"그렇게 해요, 액슬. 이제 안개도 사라졌으니 할 이야기가 많을 거예요. 뱃사공은 아직 물속에 서 있어요."

"그래요, 공주. 이제 내가 가서 그와 화해할게요."

"그럼 잘 가요, 액슬."

"잘 가요, 내 하나의 진정한 사랑."

그가 물속을 걸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내게 말을 걸어올까? 그는 우리의 우정을 회복하겠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내가 돌아섰을 때 그는 내 쪽을 보지 않고 다만 육지 쪽을, 작은 만에 지고 있는 석양만을 바라본다. 그리고 나 역시 그의 눈을 유심히 살피지 않는다. 그는 내 곁을 지나 계속 물속을 헤치고 가며 뒤돌아보지 않는다. 바닷가에서 날 기다려요, 선생. 내가 조용히 말한다. 그러나 그에게는 내 말이 들리지 않고 그는 계속 물속을 헤치며 간다. -475p

 

공유하지 못할 사랑했던 기억을 끌어안고 다시 땅으로 되돌아가 발붙이고 혼자 남은 여정을 계속하는 것. 온힘을 다해 안아주고 잘가라고 인사해 주는 것. 그 자체가 기억을 뛰어 넘는 아름다움이 아닐까. 그러니까 인간의 삶이라는 게, 관계라는 게 거머리처럼 들러 붙는 꼬마 악당들을 끝없이 물리쳐야 하는 진창일 수밖에 없고 그 속에서 반짝이는 무언가를 찾아내는 것도 결국 우리의 몫일 수 밖에 없다는 걸 작가는 현실적으로 담담하게 말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덧, 색슨 족 전사인 위스턴이 자신을 쫓아다니며 목숨을 노리는 브레누스 경에 대해선 이런 말을 한다.

 

그 후 나는 그를 떠났고, 에드윈, 너도 알다시피 우리 사이엔 아무 일도 없었지만 그러면서도 모든 일이 일어났지. -328p

 

 아무 일도 없었지만 모든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 색슨 족과 브리튼 족의 관계이면서 서로를 전혀 모르는 사람끼리 총을 겨누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색슨 족과 브리튼 족의 이야기는 역사의 한 부분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지금 벌어지고 있는 IS와 서구 문명 사이 전쟁의 핵심을 담고 있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어 역시 가즈오 이시구로는 만만한 작가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IS는 이라크전에서 미군에 맞서며 조직화됐다. 끔찍했던 학살의 기억-아무리 덮고 또 덮고 묻어보려 해도-은 사라지지 않고 더 큰 폭력을 낳는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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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스트레인저]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리틀 스트레인저
세라 워터스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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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읽힐 수 있다. 흥미진진한 스릴러이기도 하고, 치졸한(?) 남자의 실패한 연애담이기도 하며,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탐욕을 이야기하기도 하며, 또 어떤 측면에서는 캐럴라인에 대한 성장 소설이기도 하다. 어쨌든 읽기 시작하면 쉽게 놓을 수 없는 그런 종류의 이야기이며, 마지막까지 읽고 나면 처음으로 되돌아와 다시 읽게 되는 그런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는 이 이야기가 정말로 마음에 들었는데, 물론 앞에서 나열한 이유들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단 처음과 끝에 등장하는 이방인들-오, 스트레인저-에 대한 의미심장함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참을 수 없는 종류의 공포란 어떻게 시작되고 또 어떻게 집단으로 전염되는 걸까? 고교 시절, 친구와 어둑한 길을 가던 중 왠지 장난을 치고 싶은 짖궂은 마음이 일었던 때가 있었다. 물론, 그 길이 실제로 조금 무서웠기 때문이기도 했다. 지금과 같은 스산한 계절이었고 나뭇가지가 여기저기 떨어져 있었는데, 내가 '뱀이다, 뱀!'하고 소리를 질렀다. (뱀이 나올리 없는 대단지 아파트 사잇길이었다) 친구는 정말로 놀랐고, 나뭇가지를 진짜 뱀인줄 알고 한 번 더 놀랐다. 나는 나뭇가지인 줄 알고 있었으면서도 친구가 정말로 놀랐기 때문에 저도 모르게 덩달아 진짜 뱀 아니야? 생각할 만큼 같이 놀랐다. 친구는 나뭇가지를 발로 건드려 보고, 찔러 보고, 여러 차례 확인한 다음에야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내가 장난을 쳐놓고 순간 나뭇가지가 뱀으로 보이는 마법은 무엇때문인지 몰라 한참을 어리둥절해 했었다. 아마도 이런 종류의 기억은 누구가 갖고 있으리라.

 

<리틀 스트레인저>의 배경은 2차 세계대전 후 영국으로, 자신들 소유의 대저택을 감당하지 못하고 몰락해가는 귀족 가문에 얽힌 사건들로 진행된다. 이야기는 화자인 닥터 패러데이가 대저택 헌드레즈홀의 유일한 하녀 베티를 진찰하기 위해 그곳에 들르게 되었던 때에서 시작한다. 이야기의 시작에서 베티는 닥터 패러데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세상에, 선생님, 이 집은 제대로 된 집 같지가 않아요! 너무 크다고요! 어딜 가려고 해도 1마일은 족히 걸어야 해요. 게다가 너무 조용해서 소름이 쫙 끼쳐요. 낮에는 그래도 괜찮아요, 일도 하고 베이즐리 아주머니도 계시니까. 하지만 밤에는, 저 혼자 있단 말이에요. 쥐죽은듯 조용하니 아무 소리도 안 나고! 무서운 꿈도 꾸고...... 그리고 그것만이라면 어떻게든 참겠는데, 마님이랑 아가씨랑 도련님이 자꾸 불러서 저 뒤쭉의 낡은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해야 한다고요. 모퉁이도 잔뜩 있는데, 거길 돌 때마다 어떤 기분이 드는지 선생님은 모르세요. 어떤 때는 이렇게 벌벌 떨다 꼴까닥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니까요!" -27p

 

베티는 아무것도 모르는 시골 소녀로 자신의 두려움을 의사에게, 또 베이즐리 아주머니에게, 전쟁을 겪고 돌아온 귀족 가문의 도련님 로더릭에게, 또 장녀 캐럴라인에게 털어놓았을 것이다. 꼭 이 집에 무엇이 있는 것 같다고. 그때까지 헌드레즈홀에 살던 식구들은 헌드레즈홀을 그런식으로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지만, 베티가 만들어낸 공포의 작은 불씨는 전후의 상처와 이미 손 쓸 수 없을 만큼 재정 상태가 엉망인 대저택을 지켜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던 로더릭에게 가 닿는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헌드레즈 홀에선 우연히 비극적인 일이 벌어지는데, 이를 로더릭은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게 되고 우연과 우연이 겹쳐지며 공포의 불씨는 점점 커져만 간다. (물론, 이 우연들 속에는 베티의 말을 이용한 누군가의 '의도'도 들어 있을 것이다!)

 

"그 후로는 절대 그런 식으로 경계를 풀어버리지 않았어요. 이제 놈이 올 때면 저는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쭉 경계해요. 대부분의 날은 괜찮아요. 놈이 오지 않는 날이 많거든요. 하지만 그것은 나를 놀래고 괴롭히는 걸 좋아해요. 그냥 앙심을 품은 교활한 어린애 같아요. 나를 노리고 함정을 파는 거죠. 지난번엔 내 방문을 열어놓는 바람에 거기 부딪쳐 코피가 났어요. 서류를 이리저리 옮기는가 하면, 내가 다니는 길에 뭔가를 슬쩍 밀어놓죠. 결국 나는 그런 것에 걸려 넘어져 목이 부러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건 상관없어요. 나한테 뭘 바라는 거라면 괜찮아요. 내가 그걸 내 방에 붙잡아두는 한 그게 퍼지는 것을 막을 수 있어요. 현재로선 그게 가장 중대한 사안입니다.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죠? 감염의 근원이 우리 어머니와 누이에게 닿지 않도록 하는 것." -243p

 

로더릭은 자신에게 일어나는 이상한 일이 '전염'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 이상하고 이성적으로 믿을 수 없는 일은 실제로 로더릭이 저택을 떠나고 나자 대저택 곳곳에서, 또 정원에서까지 벌어지게 된다. 이 이상한 일, 그러니까 그놈을 '공포'로 바꿔 읽어 보면 흥미로운 문장이 된다. 그놈은 대저택에 사는 로더릭과 그의 누나 캐럴라인, 그리고 그들의 어머니 에어즈 부인이 가장 두려워하는 부분을 콕콕 짚어 건드리며 어둠 속에 숨어 있던 것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오랫동안 묻어두었던 공포를, 말로 형용하지 않았던 공포를 입밖으로 꺼내놓는 순간 이상한 마법이 시작된다.

 

그녀의 표정이 다시 처연해졌다. "하는 소리야 늘 똑같지. 어디 있어요? 왜 안 오세요? 기다리고 있어요."

에어즈 부인은 그 말을 흉내내듯 속삭였다. 그 속삭임은 그녀가 내뱉은 흐릿한 입김과 함께 한동안 허공에 머무는 듯했다. 그러다 적막에 삼켜져 사라졌다.

나는 기가 막혀 잠시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서 있었다.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심지어 조그만 채마밭이 아늑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나 이제는 담으로 둘러싸인 작은 땅뙈기가 위험으로 가득찬 것만 같았다. 단 하나의 비좁은 출구 역시 또하나의 숨막히는 외딴 공간으로 이어질 뿐이었다. (중략) 그럼에도 뭔가 정원 안에 우리와 함께 있는 듯한, 뭔가가 뽀득뽀득 새하얀 눈을 밟고 서서히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그보다 더 고약한 것은 그것이, 그게 무엇이든 어쩐지 낯익은 듯한 기괴한 느낌을 받았다는 점이다. 우리를 향한 그 수줍은 발걸음에는 돌아온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았다. 꼭 어린애들이 술래잡기를 하듯 뭔가가 내 등을 때릴 것만 같아서 등에 오싹 소름이 돋았다. -560p

 

공포는 대저택이라는 공간과 함께 살아숨쉬며 대저택과 기억을 공유하는 이들만을 끊임없이 괴롭힌다. 이방인들, 베티와 닥터 패러데이는 모든 사건이 끝난 후에 아무렇지 않게도(!) 대저택에서 일어났던 비극적인 일들을 추억한다. 공포의 씨앗을 뿌린 걸 끝까지 모르는 자와 그걸 이용한 자는 살아남아 대저택 근처를 서성이거나 대저택 안을 돌아다닐 수 있다. 진짜 공포는, 바로 이런 결말에 있다. 살아남은 자는 누구인가, 그들은 무엇을 어떻게 기억하는가에 말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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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관장 2015-12-28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말 부분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이야기가 가능하다고 보이지만,
언급해주신 시작과 끝의 이방인들에 의미를 주신것도 납득이 되네요...

공포의 씨앗(베티) -> 공포의 이용(패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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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안에서 무너지는 에어즈 가문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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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고딕 호러?로 연상되는 이상한 현상과 캐럴라인의 죽음에 대한 의문은 계속되지만....

기린 2016-01-11 22:09   좋아요 0 | URL
맞아요 이상한 현상에 대한 의문 때문에 책 내용을 다시 곱씹어보게 되는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