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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묻힌 거인 - 가즈오 이시구로 장편소설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하윤숙 옮김 / 시공사 / 2015년 9월
평점 :
절판


만약 약속(?)이 없었다면 나는 이 책의 리뷰를 쓰지 않았을 것이다. 잘 모르겠다, 어떤 내용인지 손에 잡히지 않는다 싶을 땐 그 책이 재미있든 없든 다시 보고 판단해야지 생각만 하고 끝끝내 다시 보지 않는 게 나의 나쁜 습성이다. 어떻게 보면 스토리라인이 지극히 단순한 이야기인데, <파묻힌 거인>에서의 상징성을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고대 잉글랜드의 노부부 액슬과 비어트리스는 아들을 찾는 여정을 시작한다. 그들이 지나오는 길은 모두 안개로 뒤덮여 있고, 그 안개는 안개 속에 사는 사람들의 기억마저 모두 흐릿하게 만든다. 색슨족과 브리튼족은 각자의 마을을 이루며 살아가는데, 브리튼족인 그들은 여정 길에 색슨족 기사와 소년을 만나 여러 가지 사건에 휩쓸린다. 자기가 누구인지, 자신들의 아들이 어디에 살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액슬과 비어트리스는 서로에 대한 믿음을 굳히며 여정을 포기하지 않는다.

 

나는 상징을 떠나 비어트리스가 앞에 서고 액슬이 뒤에 가며 주고받는 말, '지금도 거기 있나요?', '지금도 여기 있어요.' 가 좋았다. 그들은 도깨비가 나타날지 모르는 대평원에서, 어떤 괴물이 살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깜깜한 동굴에서 서로를 확인한다. 아직도 그 자리에 있느냐고. 둘 사이에 일어났던 일들을 더듬는 어떤 말보다, 서로에 대한 믿음을 확인하는 말들보다 지금도 그 자리에, 곁에 있느냐고 묻는 그 말이 마음을 울렸다. 

 

사랑했던 기억을 모두 잃어버렸다면 그 사랑은 어떻게 되는 걸까? 물론 사랑에는 기쁨만 있지는 않다. 사랑하기 때문에 서로를 증오해야만 했던 시간도 있었을 것이다. 이 이야기를 미래판 설정으로 본다면 영화 <이터널선샤인>과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터널선샤인>에서는 서로에 대한 기억이 없어도 사랑했던 흔적과 습관이 남아 사랑했던 이들이 서로를 알아보게 만든다고 말한다. 그러니 어쩌면 삶은 '몇 번이라도 다시!' 살아볼 만 할지 모른다. 그런데 <파묻힌 거인>에서는 그 사랑을 어떤 시각으로 보고 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긍정도 부정도 아니고, 어쨌든 '헤어짐'이어야 했기에. 서로를 어떻게 사랑했든 삶의 유한성의 숙명을 타고난 인간인 이상 영원한 헤어짐을 피할 수 없다. 

 

"섬에 가서 더 많은 이야기를 해요, 공주." 그가 말한다.

"그렇게 해요, 액슬. 이제 안개도 사라졌으니 할 이야기가 많을 거예요. 뱃사공은 아직 물속에 서 있어요."

"그래요, 공주. 이제 내가 가서 그와 화해할게요."

"그럼 잘 가요, 액슬."

"잘 가요, 내 하나의 진정한 사랑."

그가 물속을 걸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내게 말을 걸어올까? 그는 우리의 우정을 회복하겠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내가 돌아섰을 때 그는 내 쪽을 보지 않고 다만 육지 쪽을, 작은 만에 지고 있는 석양만을 바라본다. 그리고 나 역시 그의 눈을 유심히 살피지 않는다. 그는 내 곁을 지나 계속 물속을 헤치고 가며 뒤돌아보지 않는다. 바닷가에서 날 기다려요, 선생. 내가 조용히 말한다. 그러나 그에게는 내 말이 들리지 않고 그는 계속 물속을 헤치며 간다. -475p

 

공유하지 못할 사랑했던 기억을 끌어안고 다시 땅으로 되돌아가 발붙이고 혼자 남은 여정을 계속하는 것. 온힘을 다해 안아주고 잘가라고 인사해 주는 것. 그 자체가 기억을 뛰어 넘는 아름다움이 아닐까. 그러니까 인간의 삶이라는 게, 관계라는 게 거머리처럼 들러 붙는 꼬마 악당들을 끝없이 물리쳐야 하는 진창일 수밖에 없고 그 속에서 반짝이는 무언가를 찾아내는 것도 결국 우리의 몫일 수 밖에 없다는 걸 작가는 현실적으로 담담하게 말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덧, 색슨 족 전사인 위스턴이 자신을 쫓아다니며 목숨을 노리는 브레누스 경에 대해선 이런 말을 한다.

 

그 후 나는 그를 떠났고, 에드윈, 너도 알다시피 우리 사이엔 아무 일도 없었지만 그러면서도 모든 일이 일어났지. -328p

 

 아무 일도 없었지만 모든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 색슨 족과 브리튼 족의 관계이면서 서로를 전혀 모르는 사람끼리 총을 겨누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색슨 족과 브리튼 족의 이야기는 역사의 한 부분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지금 벌어지고 있는 IS와 서구 문명 사이 전쟁의 핵심을 담고 있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어 역시 가즈오 이시구로는 만만한 작가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IS는 이라크전에서 미군에 맞서며 조직화됐다. 끔찍했던 학살의 기억-아무리 덮고 또 덮고 묻어보려 해도-은 사라지지 않고 더 큰 폭력을 낳는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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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스트레인저]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리틀 스트레인저
세라 워터스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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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읽힐 수 있다. 흥미진진한 스릴러이기도 하고, 치졸한(?) 남자의 실패한 연애담이기도 하며,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탐욕을 이야기하기도 하며, 또 어떤 측면에서는 캐럴라인에 대한 성장 소설이기도 하다. 어쨌든 읽기 시작하면 쉽게 놓을 수 없는 그런 종류의 이야기이며, 마지막까지 읽고 나면 처음으로 되돌아와 다시 읽게 되는 그런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는 이 이야기가 정말로 마음에 들었는데, 물론 앞에서 나열한 이유들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단 처음과 끝에 등장하는 이방인들-오, 스트레인저-에 대한 의미심장함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참을 수 없는 종류의 공포란 어떻게 시작되고 또 어떻게 집단으로 전염되는 걸까? 고교 시절, 친구와 어둑한 길을 가던 중 왠지 장난을 치고 싶은 짖궂은 마음이 일었던 때가 있었다. 물론, 그 길이 실제로 조금 무서웠기 때문이기도 했다. 지금과 같은 스산한 계절이었고 나뭇가지가 여기저기 떨어져 있었는데, 내가 '뱀이다, 뱀!'하고 소리를 질렀다. (뱀이 나올리 없는 대단지 아파트 사잇길이었다) 친구는 정말로 놀랐고, 나뭇가지를 진짜 뱀인줄 알고 한 번 더 놀랐다. 나는 나뭇가지인 줄 알고 있었으면서도 친구가 정말로 놀랐기 때문에 저도 모르게 덩달아 진짜 뱀 아니야? 생각할 만큼 같이 놀랐다. 친구는 나뭇가지를 발로 건드려 보고, 찔러 보고, 여러 차례 확인한 다음에야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내가 장난을 쳐놓고 순간 나뭇가지가 뱀으로 보이는 마법은 무엇때문인지 몰라 한참을 어리둥절해 했었다. 아마도 이런 종류의 기억은 누구가 갖고 있으리라.

 

<리틀 스트레인저>의 배경은 2차 세계대전 후 영국으로, 자신들 소유의 대저택을 감당하지 못하고 몰락해가는 귀족 가문에 얽힌 사건들로 진행된다. 이야기는 화자인 닥터 패러데이가 대저택 헌드레즈홀의 유일한 하녀 베티를 진찰하기 위해 그곳에 들르게 되었던 때에서 시작한다. 이야기의 시작에서 베티는 닥터 패러데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세상에, 선생님, 이 집은 제대로 된 집 같지가 않아요! 너무 크다고요! 어딜 가려고 해도 1마일은 족히 걸어야 해요. 게다가 너무 조용해서 소름이 쫙 끼쳐요. 낮에는 그래도 괜찮아요, 일도 하고 베이즐리 아주머니도 계시니까. 하지만 밤에는, 저 혼자 있단 말이에요. 쥐죽은듯 조용하니 아무 소리도 안 나고! 무서운 꿈도 꾸고...... 그리고 그것만이라면 어떻게든 참겠는데, 마님이랑 아가씨랑 도련님이 자꾸 불러서 저 뒤쭉의 낡은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해야 한다고요. 모퉁이도 잔뜩 있는데, 거길 돌 때마다 어떤 기분이 드는지 선생님은 모르세요. 어떤 때는 이렇게 벌벌 떨다 꼴까닥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니까요!" -27p

 

베티는 아무것도 모르는 시골 소녀로 자신의 두려움을 의사에게, 또 베이즐리 아주머니에게, 전쟁을 겪고 돌아온 귀족 가문의 도련님 로더릭에게, 또 장녀 캐럴라인에게 털어놓았을 것이다. 꼭 이 집에 무엇이 있는 것 같다고. 그때까지 헌드레즈홀에 살던 식구들은 헌드레즈홀을 그런식으로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지만, 베티가 만들어낸 공포의 작은 불씨는 전후의 상처와 이미 손 쓸 수 없을 만큼 재정 상태가 엉망인 대저택을 지켜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던 로더릭에게 가 닿는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헌드레즈 홀에선 우연히 비극적인 일이 벌어지는데, 이를 로더릭은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게 되고 우연과 우연이 겹쳐지며 공포의 불씨는 점점 커져만 간다. (물론, 이 우연들 속에는 베티의 말을 이용한 누군가의 '의도'도 들어 있을 것이다!)

 

"그 후로는 절대 그런 식으로 경계를 풀어버리지 않았어요. 이제 놈이 올 때면 저는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쭉 경계해요. 대부분의 날은 괜찮아요. 놈이 오지 않는 날이 많거든요. 하지만 그것은 나를 놀래고 괴롭히는 걸 좋아해요. 그냥 앙심을 품은 교활한 어린애 같아요. 나를 노리고 함정을 파는 거죠. 지난번엔 내 방문을 열어놓는 바람에 거기 부딪쳐 코피가 났어요. 서류를 이리저리 옮기는가 하면, 내가 다니는 길에 뭔가를 슬쩍 밀어놓죠. 결국 나는 그런 것에 걸려 넘어져 목이 부러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건 상관없어요. 나한테 뭘 바라는 거라면 괜찮아요. 내가 그걸 내 방에 붙잡아두는 한 그게 퍼지는 것을 막을 수 있어요. 현재로선 그게 가장 중대한 사안입니다.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죠? 감염의 근원이 우리 어머니와 누이에게 닿지 않도록 하는 것." -243p

 

로더릭은 자신에게 일어나는 이상한 일이 '전염'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 이상하고 이성적으로 믿을 수 없는 일은 실제로 로더릭이 저택을 떠나고 나자 대저택 곳곳에서, 또 정원에서까지 벌어지게 된다. 이 이상한 일, 그러니까 그놈을 '공포'로 바꿔 읽어 보면 흥미로운 문장이 된다. 그놈은 대저택에 사는 로더릭과 그의 누나 캐럴라인, 그리고 그들의 어머니 에어즈 부인이 가장 두려워하는 부분을 콕콕 짚어 건드리며 어둠 속에 숨어 있던 것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오랫동안 묻어두었던 공포를, 말로 형용하지 않았던 공포를 입밖으로 꺼내놓는 순간 이상한 마법이 시작된다.

 

그녀의 표정이 다시 처연해졌다. "하는 소리야 늘 똑같지. 어디 있어요? 왜 안 오세요? 기다리고 있어요."

에어즈 부인은 그 말을 흉내내듯 속삭였다. 그 속삭임은 그녀가 내뱉은 흐릿한 입김과 함께 한동안 허공에 머무는 듯했다. 그러다 적막에 삼켜져 사라졌다.

나는 기가 막혀 잠시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서 있었다.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심지어 조그만 채마밭이 아늑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나 이제는 담으로 둘러싸인 작은 땅뙈기가 위험으로 가득찬 것만 같았다. 단 하나의 비좁은 출구 역시 또하나의 숨막히는 외딴 공간으로 이어질 뿐이었다. (중략) 그럼에도 뭔가 정원 안에 우리와 함께 있는 듯한, 뭔가가 뽀득뽀득 새하얀 눈을 밟고 서서히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그보다 더 고약한 것은 그것이, 그게 무엇이든 어쩐지 낯익은 듯한 기괴한 느낌을 받았다는 점이다. 우리를 향한 그 수줍은 발걸음에는 돌아온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았다. 꼭 어린애들이 술래잡기를 하듯 뭔가가 내 등을 때릴 것만 같아서 등에 오싹 소름이 돋았다. -560p

 

공포는 대저택이라는 공간과 함께 살아숨쉬며 대저택과 기억을 공유하는 이들만을 끊임없이 괴롭힌다. 이방인들, 베티와 닥터 패러데이는 모든 사건이 끝난 후에 아무렇지 않게도(!) 대저택에서 일어났던 비극적인 일들을 추억한다. 공포의 씨앗을 뿌린 걸 끝까지 모르는 자와 그걸 이용한 자는 살아남아 대저택 근처를 서성이거나 대저택 안을 돌아다닐 수 있다. 진짜 공포는, 바로 이런 결말에 있다. 살아남은 자는 누구인가, 그들은 무엇을 어떻게 기억하는가에 말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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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관장 2015-12-28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말 부분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이야기가 가능하다고 보이지만,
언급해주신 시작과 끝의 이방인들에 의미를 주신것도 납득이 되네요...

공포의 씨앗(베티) -> 공포의 이용(패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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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안에서 무너지는 에어즈 가문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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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고딕 호러?로 연상되는 이상한 현상과 캐럴라인의 죽음에 대한 의문은 계속되지만....

기린 2016-01-11 22:09   좋아요 0 | URL
맞아요 이상한 현상에 대한 의문 때문에 책 내용을 다시 곱씹어보게 되는 것 같아요 :)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앤드루 포터 지음, 김이선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삶을 비틀거리게 만드는 순간은 문득, 우연한 사건에 의해 발생한다. 그 순간을 마주할 당시에는 앞으로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알 수 없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상처는 명확해지고 깊어지며, 그래서 앞으로 향하려는 삶의 다리를 잡아 채고, 비틀거리게 만들며 뒤를 돌아보게 한다. 앤드루 포터의 단편집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에는 열 가지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절반이 넘는 이야기가 십년 쯤 전의 과거를 회고하고 있는 건 삶의 이런 속성에 관심을 두고 있는 작가에게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야기는 느리고 잔잔하며, 이야기를 서술하는 '나'는 한결같이 사건의 직접적 당사자가 아니라 사건 안에 한 발을 걸치고 있는 관찰자일 경우가 많다. 갈등은 에둘러 표현되고, 가장 중요한 장면은 끝내 보여지지 않는다. 하, 답답하네 거 참 이라는 말이 나올만큼 등장인물들에겐 비밀이 많고, 생각이나 말은 발화되지 못한다. 하지만 오히려 이것이 관계에 대한 정확한 기록법일지도 몰라, 한 줄 한 줄 읽으며 한숨을 쉬고 눈물이 핑 도는 것과 같은, 감정의 동요를 겪는다. 실제로 '슬펐다', '울었다' 라는 말로 표현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열 편의 이야기 중 가장 좋았던 건 단연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이었다. 부부에겐 상대에게 결코 말하지 못할, 아니 말해서는 안 될 비밀이 있는데, 그건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공공연하게 눈치채고 있지만 발화되지 못하는 사랑은 두 사람 모두를 위태롭게 만들고, 뒤를 돌아보게 한다.

 

다른 사람이 당신을 채워줄 수 있다거나 당신을 구원해줄 수 있다고 - 이 두가지가 사실상 다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 추정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나는 콜린과의 관계에서 그런 식의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다. 나는 다만 그가 나의 일부, 나의 중요한 일부를 채워주고 있고, 로버트 역시 똑같이 중요한 나의 또 다른 일부를 채워주었다고 믿을 뿐이다. 로버트가 채워준 나의 일부는, 내가 생각하기론, 지금도 콜린은 그 존재를 모르는 부분이다. 그것은 무언가를 혹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만큼 쉽게 파괴도 할 수 있는 나의 일부다. 그것은 닫힌 문 뒤에 있을 때, 어두운 침실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고 제일 편한하게 느끼는, 유일한 진실은 우리가 서로 숨기는 비밀에 있다고 믿는 나의 일부다.

 

이렇게 비밀을 품고 있음에도 관계가 깨지지 않고 지속될 수 있는 건 상처와 고통을 상대에게 전가하지 않는 태도 덕분이다. 하지만 '비밀과 죄의식을 발설하지 않는 게 상대에 대한 배려'라는 해더의 확신이 무척이나 슬프게 느껴지는 건, 혼자 끌어안고 삭혀야하는 상처가 앞으로도 얼마나 해더의 발을 잡아챌지 알 수 없어서이기도 하다.  

 

죄의식은 우리가 우리의 연인들에게 이런 비밀을, 이런 진실들을 말하는 이유다. 이것은 결국 이기적인 행동이며, 그 이면에는 우리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진실을 밝히는 것이 어떻게든 일말의 죄의식을 덜어줄 수 있으리라는 추정이 숨어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렇지 않다. 죄의식은 자초하여 입는 모든 상처들이 그러하듯 언제까지나 영원하며, 행동 그 자체만큼 생생해진다. 그것을 밝히는 행위로 인해, 그것은 다만 모든 이들의 상처가 될뿐이다. 하여 나는 그에게 말하지 않았다. 한 번도 말하지 않았따. 그 역시 내게 그러했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상처를 다른 이에게 전가하지 않겠다는 태도는 또 다른 단편 <폭풍>에서도 이야기의 중요한 한 축을 형성한다. 이는 자기 상처를 결코 드러내지 않겠다는 자존심일 수도 있고, 자기 방어일 수도 있다. 누나는 결혼을 약속한 리처드와 여행 도중 헤어지고 집으로 오는데, 동생인 내게 자기가 리처드를 버려두고 왔다고 말한다. 어머니와 내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며 누나를 나무라도, 누나는 끝끝내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가족의 상처는 서로에게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상태로 깊어지기만 해 왔다. 그 상처는 사실 아버지의 죽음에서 시작됐다.

 

남은 오후 시간, 나는 내 방에서 우리 가족의 느리고 꾸준한 종말의 과정을 반추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는 구름이, 정확히 우리 집만 한 크기와 모양의 구름이 우리에게 드리워진 것 같았고, 우리 미래를 엮어낼 복잡한 요소들은 그 이전과는 전혀 달라질 것 같았다. (중략) 삶은 계속됐지만 달라졌다. 더 물러졌고 지루해졌다. 즐거움은 덜해졌고 고통은 그 구렁텅이의 깊이가 한이 없어진 듯하다. 그 구렁텅이로 빠지지 않을까 늘 경계를 해야 했다.

 

나는 <폭풍>이 아름다운 소설이라고 느껴졌는데, 폭풍의 상태와 가족들의 감정선을 일치시켜 감정의 상태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었다. 거센 폭풍으로 전기가 끊긴 밤, 촛불을 켜고 둘러 앉은 가족의 식탁에서는 서로 영원히 이해되지 못할 말들이 서로에게서 퉁겨져 나오며, 그저 폭풍처럼 거센 감정만이 떠돌아다닌다. 폭풍이 지나간 후에도 여전히 이 가족들의 자기만의 상처는 계속되지만, "더 나쁜 일이야 있겠어?"라는 누나의 말에, 언덕 아래로 아버지의 자동차 전조등 불빛이 보일 때처럼 누나가 미소 짓는 모습에서 희망을 본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소박한 기쁨처럼 보였다. 그 불빛, 자동차,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집으로 돌아오고 있음을 안다는 그것은.  

 

아무래도 나는, '영원히 비틀거려리며 살지라도 이 소박한 기쁨이 있으니 또다시 새로운 하루를 맞이한다.'는 식의 시각을 좋아하는 것 같다. 또 앤드루 포터의 단편들을 읽으며 소설에서 '내적 필연성'이 왜 중요한지 깨달았다. 한 인물의 과거와 기억은, 아무리 사소한 지나침이라도 앞으로의 인생에 큰 파동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며, 인물을 입체적이며 깊이 있게 만들어 인물의 감정에 쉽게 공감할 수 있게 해 주는 것 같다. 머리로는 알았지만 그의 소설들 덕분에 마음으로 깨달았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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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짐승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9
모니카 마론 지음, 김미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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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소설은 읽고 나면 마음이 온통 흔들려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된다. 모니카 마론의 <슬픈 짐승>이 그랬다. 그때 내가 죽었다면 내가 놓쳤던 것이 무엇이었을까라는 질문에 떠오른 단 하나의 답. 인생에서 놓쳐서 아쉬운 것은 사랑밖에 없다고. 그 말과 그 말이 내포하고 있는 광기 어린 열정이 놀라워서였을까, 아니면 '사랑'밖에 남기지 않고 돌진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아슬아슬하면서도 부러워서였을까. 가을에 찾아온 사랑 이야기는 짙은 여운을 남겼다. <슬픈 짐승>의 첫문장은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시작한다.

 

대부분의 젊은 사람들이 그렇듯 나도 젊었을 때는 젊은 나이에 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 안에 너무나 많은 젊음, 너무나 많은 시작이 있었으므로 끝이란 것은 좀처럼 가늠이 안 되는 것이었고 또 아름답게만 생각되었다. 서서히 몰락해가는 것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그것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지금 나는 백 살이다.

 

젊은 나이에 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하면서 툭 던지듯 하는 말, 지금 자기는 백 살이라고. '나'는 백 살, 아니 어쩌면 아흔 살이 될 때까지 단 하나의 사랑의 기억, 청춘의 사랑에 대한 기억을 복기하며 살아왔다. 그러니 백 살이어도 여전히 청춘을 살고 있고, 서서히 몰락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단 하나의 사랑을 붙잡고 있다가 놓아야 하는 순간이 찾아왔을 때, 다시 한 번 그 사랑을 시작부터 끝까지 복기하고 단호하게 놓는다. 독자는 더듬더듬 이어지는 나의 기억을 통해 청춘의 사랑을 똑같이 체험한다.

 

'내'가 청춘의 사랑을 시작했을 때 이미 '나'는 젊지 않았다. 중년에서 노년으로 접어드는 나이에 중단 없는 사랑 이야기로 살아가겠다고 결심했고, 사랑의 대상은 기다렸다는 듯 '나'의 앞에 나타난다. 그건 신을 만나는 것과도 같은 체험이다. 첫눈에 사랑에 빠질 때에는 인간의 영역으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운명적 힘이 작동하는 것 같다. 그 순간은 이렇게 묘사된다.

 

그 이후로 나는 이천 번, 아니 더 자주 이 순간을 체험했다. 그보다 훨씬 더 자주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스스로를 타일렀는데도 어쩔 수가 없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값진 이 순간이 그것을 계속 체험하려는 제어할 수 없는 나의 욕망으로 인해 그 마력을 잃게 될까봐 두려웠다. 그러나 우리 박물관의 유리로 된 둥근 천장 아래 프란츠 곁에 서서 그에게 "그렇죠, 아름다운 동물이죠"라고 대답하도록 나 자신에게 허용할 때면 언제나 그때처럼 아름다운 음악이 크게 울려 퍼졌다. 빛처럼 유리 천장을 뚫고 떨어지는 것 같은 음악이 홀 전체의 구석구석에서 메아리치며 브라키오사우루스의 뼈대를 떨게 만든다. "하느님께 찬송과 영광을!" 천사들의 목소리가 그렇게 노래하고, 그리고 프란츠가 미소를 짓는다.

 

'나'는 동독에서, 프란츠는 서독에서 태어나고 자란 걸 생각하면 이 장면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자유 갱단'과 '스탈린 찬가'를 부르며 판자로 뒤덮어 버린 교회가 있는 마을에서 자란 '내'게 천사들의 목소리가 들렸다니 말이다. '나'는 공룡을 연구하고 싶었지만, 국제학회조차 참가할 수 없었고 공룡 뼈를 찾아다니는 일은 더더욱 허락되지 않았다. 독일이 통일이 되고 꿈에 그리던 시조새의 발자국을 보러 갈 수 있었지만, '나'는 하룻밤 사이에 꿈이 시시해져 버렸다는 걸 깨닫는다. 평생 간절하게 꿈꿔왔던 일이 실은 단체 관광객들이 아무 의미도 두지 않고 지나다니는 관광지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 허망함은 어떤 종류의 것일까? 내가 북한에서 자란 친구들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듯, 프란츠와 주인공 사이에는 심연의 거리가 존재한다. 프란츠나 서독 사람들이 너무나 손쉽게, 시간이 정체해 버린 장벽 뒤 야만인들의 삶으로 규정할 수 있을 만한 거리가. 기이한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성격에 따라 그냥 체념에 빠지거나, 아니면 좌절을 대가로 치르더라도 두 번째 인생의 기회, 무용지물이 된 꿈을 버리고 새로운 꿈을 찾아 나섰다. '나'에게 있어서 새로운 꿈은 사랑이었다. 나에겐 청춘의 사랑이 없었다. 

 

카린과 클라우스는 학창시절부터 알던 사이였다. 그들은 내가 결코 갖지 못했던 것, 즉 청춘의 사랑이었다. 청춘의 사랑이 무엇이냐고 누군가가 물었다면 나는 카린과 클라우스라고 말했을 것이다. 청춘의 사랑은 단순히 젊은 시절에 하는 사랑이 아니다. 그것은 비교가 불가능한 것이다. 청춘의 사랑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사랑을 견주어 잴 수 있을 어떤 것도 아직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사랑은 유일하게 그 사랑 자체를 위해서 존재한다.

 

'나'는 사랑을 위해서만 존재하고, 상대에 집착하고 사랑만을 위해 돌진한다. 두 사람의 미래는, 중간 중간 다양한 암시로 등장한다. 이를 테면,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이야기로, 공룡을 연구하는 사람과 개미를 연구하는 사람의 차이로, '여기에 서 있는 것이 좋지 않다'와 같은 직감으로. '나'는 점점 더 다른 속박은 인정하지 않고, 강력한 내적 욕구만을 따르는 '짐승'이 된다. 그건 누군가는 정신이 나갔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자연적으로는 정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상태이다.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눈 후에는 '아주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굉음, 녹아내리는 우리의 살과 목마른 우리의 숨소리'만 남는다. 프란츠는 실제 프란츠의 이름이 아니고, '나'는 끝까지 이름이 밝혀지지 않는다. 서로를 명명하지 않는 사랑은, 두 사람은 소멸되어도 사랑에 대한 각자의 규정이 개입되지 않으므로 '청춘의 사랑'만 온전히 남게 되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슬픈 짐승>을 읽고 마르그리뜨 뒤라스의 <그게 다예요>가 떠올랐다. 여든 살의 뒤라스가 죽음을 앞두고 연인 얀에게 남긴 시 중 한편을 덧붙여 본다.

 

얼마 뒤 같은 날 오후

 

나는 당신에게 말하고 싶었지요.

당신을 사랑한다고.

그렇게 외치고 싶었지요. 

그게 다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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