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이폐한 책

 

능력이 되지도 않으면서 멋모르고 읽다가 더 이상은 읽을 수 없었던 책이 있다. 어느 시점부터는 이해를 동반한 진도를 나갈 수 없던 책, 바로 「리만가설」이다. 저자는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좋도록 겁나 쉽게 쓰려고 노력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 말을 믿었나...나는 진짜로 그렇게 믿었다. 그런데 막상 책을 펴보니 내게는 완전 어려웠다. 처음에는 읽어가기가 쉽도록 달콤하게 잘도 썼다.. 소수를 최초로 떠올린 가우스의 가족관계는 물론, 소심했던 그의 성격까지 소개한다. 남의 사생활을 들추어주니 더 흥미로웠던 지 원... 평소의 버릇 중요한 부분에 밑줄을 좍좍 그어 가며 말이다.

 

 

그러나 쪽수를 넘길수록 조금씩 조금씩 더 어려워지더니 급기야 중간을 넘어서니, 아... 도저히 더 이상 읽어나갈 수가 없다. 이거는 수학을 잘해도 한참 잘해야 읽을 수 있는 내용이었다. 어쩌면 대학 전공 수준의 수학 실력이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5분의 3을 지나는 시점에서 말 그대로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반도이폐!

 

많은 20세기의 수학자들이 씨름하면서 시간을 다 보낸 이 빌어먹을 「리만가설」을 읽어보겠다고 덤볐다니.. 아, 증말.... 주제를 몰라도 한참을 몰랐다. 이 책을 최고의 걸작이라고 평하는 폴란드의 로만(Roman) 이라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냥반이란 말인가...

당대 최고의 수학자 데이비드 힐버트(DAvid Hilbert)는 국제 수학자회의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불행히도 우리는 그 가설의 참․거짖 여부를 아직도 증명하지 못하고 있다”, 라고...

 

나는 책을 읽은 당시 100자평일 이렇게 썼다, “뫼뷔우스의 뮤 함수와 임계선을 타고 오르지 못했다...ㅠㅠ but, 수학은 아름답다...”(진의는 의심됨). 그리고 리뷰에 고백했다. “내 자신이 난제를 이해하지 못해서일까.. 애써 이해하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하며 위안 삼았다. 그러나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나는 이 책이 주는 수학의 아름다움을 느꼈다면, 믿어줄 사람이 없을 것 같으다. 별을 다섯 개 주고 싶지만 중간부터 이해를 하지 못한 책이라 4개만 주련다.. 다른 분들이 분명 별을 5개 줄 것이다...나보다 더 잘 이해한 독자 분들께서 말이다..”

 

 

불구하고 끝까지 읽을 책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으나 끝까지 읽은 책이 있다. 「100년의 난제 푸앵카레 추측은 어떻게 풀렸을까?」이다. 이 책 또한 나의 능력을 넘어서는 책이다. 과거에는 100자평을 곧잘 쓰곤 했는데, 당시 나는 100자평을 이렇게 썼다, “페럴만을 존경한다....결코 그가 난제를 해결해서가 아니다...” 라고.

 

학자들은 지식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이고 존경의 대상이며 때로는 선망의 대상이지만 학자의 또 다른 모습을 잘 보여주는 영화가 있다. 「굿 윌 헌팅」이 바로 그러하다. 주인공 윌 헌팅은 자신이 풀이한 문제를 MIT 공대의 수학 교수가 보는 앞에서 불태워버린다. 바로 그때, 명예를 우상처럼 아끼는 제랄드 램보 교수는 불에 타고 있는 종이를 허겁지겁 줍는다. 탐욕으로 가득 찬 보물 탐험가가 실수로 보물을 바다 속에 빠트리고는, 가라앉고 있는 보물들을 바라보면서 기겁하여 전신을 부들부들 떨듯 말이다. 자신은 풀 수 없는 식의 답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풀이가 불에 타버리고 있으니 교수는 그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그 장면을 보는 나는 되려 그 교수가 너무나도 안타까워서 언제 보았는지 기억나지 않는 그 영화의 한 장면이 각인되었다. 그러나 페럴만은 그런 류의 학자가 아니다. 그에게 경의를 표하는 마음으로 이해할 수 없는 공식들이 열거되고 있지만 끝까지 읽었다. 나는 여전히 이 책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모르면서도 끝가지 읽어 간 책이 또 하나 있다.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학생 때의 일이다. 당시 책이 겁나 두꺼웠다.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읽은 것은 오기가 발동한 탓일 것이다. 이해는 잘 못하지만 끝까지 읽어는 보겠다는 그런 류의. 마지막 장을 넘기기까지 꼬박 한 달이 걸렸다. 몇 권을 쌓아놓고 있었지만 다른 책들은 엄두를 내지 못했다. 어느 부분은 지루함을 느끼기도 했고, 어느 부분은 정말 흥미롭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 들었다. 결국 제대로 이해를 하지 못한 책이지만 끝까지 읽었다는데 의미를 둔 그런 책이었다. ㅠ...

 

 

 

 

친구따라 강남 간 책

 

남들이 읽는다고 주제를 모르고 친구 따라 강남 간 책이 있다. 물론 다 읽었고 당연하게도 나는 좌절했다. 다름 아닌「그림으로 보는 시간의 역사」이다. 다행히 난이도를 낮춘 책이 이후 출간되었다. 독자들의 원성이 자자했다고 한다. 난이도가 높다는 것이었고 이에 부응한 책이 새로 출간된 것이다. 나는 이 책을 구입, 다시 읽고 있는 중이다. 「그림으로 보는 시간의 역사」, 이 책의 전설은 결코 괴담이 아니다. 전설적인 그 괴담은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호킹 지수’ 이다. 호킹 지수 5를 기록한 이 책은 그 난이도를 잘 말해주는 조사 결과였다.

 

호킹은 자신과 물리학자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대중들에게 알리고 싶어 했다. 대중 강연도 마다하지 않았던 호킹은 책을 통해 더 많은 독자들과 만나고 싶었던 것이다. 하여 「그림으로 보는 시간의 역사」를 내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대중을 위한 물리학을 알리는 일은 결코 수월한 일이 아님을 호킹은 잘 알고 있었다. 하여 호킹은 신중했고 이 책을 기획하는데 아주 많은 시간을 소비했다. 무지 쉽게 쓰려고 노력했지만 첨단 물리학이 어디 녹록한 내용이던가. 호킹은 책을 써 놓고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책의 출판사를 결정하는 일이었다. 가급적 널리 알려진 출판사를 택하려고 애썼다. 급기야 공항 내 서점에 책을 다수 집어넣는 출판사를 택하기로 했다.

 

그러나 또 다른 문제에 부딪혔다. 바로 편집자였다. 편집자가 책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할 경우 자신이 원하는 책을 출간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호킹은 편집장을 만나기로 했다. 자신의 책을 내줄 편집장에게 자신이 책에 쓴 내용을 가르치기로, 물리학을 공부시키기로 한 것이다. 이 두 사람은 1년여 이상의 시간에 걸쳐 가르치고 공부했다. 편집장은 호킹의 가르침으로 물리학의 내용을 이해했다. 「그림으로 보는 시간의 역사」는 호킹의 이러한 철저한 준비과정과 노력을 통해 세상에 나온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킹 지수 5를 기록하는 참담한 결과를 맞이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호킹과 그의 책을 사랑했지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독자들은 거의 없었다. 국내의 어느 천체물리학 전공 교수는 고백했다. 자신이 이 책의 내용을 온전히 이해한 시점은 대학원에서 논문을 준비하면서 였다고... 한마디로 「그림으로 보는 시간의 역사」는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하는 대학생들 에게도 버거운 책이라는 것이다. 그런 책을 친구 따라 강남 가듯 덤볐으니... 참담할 수 밖에....

 

그러나 호킹의 그 아름다운 마음은 온전하게 전해온다. 마치 그의 마음을 읽는 듯 한 느낌이 드는 책이다. 다감하고 친절한 그의 마음 말이다. 결국 ‘레오나르도 몰로디노프’ 라는 인물이 호킹의 이 책을 좀 더 쉽게, 나와 같은 독자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풀이하여 새로이 썼다고 한다. 제목은 '짧고 쉽게 쓴 시간의 역사'이다. 그렇다고 내가 이 책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자라는 말은 아니다. 호킹의 원저보다 조금 더 알아들을 수 있다는 말일 뿐.

 

돌아보니 스스로 좌절한 책이 한 둘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도이폐하는 일이 생기거나 이해를 하지 못하면서도 끝까지 읽은 책들에 대한 애정은 식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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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 7첩 반상 - 인류 최고 스승 7명이 말하는 삶의 맛
성소은 지음 / 판미동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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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가 많지 않음에도 내게 읽어나가기가 수월한 책은 아니었고, 또한 책이 도착하도 전에 가장 마음에 걸리는 부분은 도마복음과 동경대전이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도마복음과 동경대전, 두 경전은 내게 낮선 것들이었다. 성경은 접해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니나 진지하게 읽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것이 문제였고, 동경대전은 부끄럽게도 관련 도서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하여 이번 기회에 관련 도서를 구입해 함께 읽었다.

 

이 책을 읽는 방법으로 내게 두 가지의 선택이 가능했다. 하나는 본 책을 먼저 읽은 후 초면의 도마복음과 동경대전을 따로이 읽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책을 접하기 전에 이 두 내용을 먼저 읽어보는 것이었다. 고민 끝에 후자를 선택하기로 하고, 먼저 「도마복음」을 읽었다. 이어서 「동학사상과 갑오농민혁명-신복룡, 선인」을 구입해 「경전 7첩 반상」과 함께 읽었고 아직 끝내지 못했다. 

 

책을 받아 펼치니 추천사가 매우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저자는 기독교에서 시작하여 불교에 다가갔고, 나아가 또다른 경전들을 접했다. 이 모두가 자신의 서재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몸소 체험을 통한 것이라 한다. 따듯한 안방의 아랫목에서 글을 썼다 한들 독자인 내가 알게 무엇이고, 설사 안다 한들 어떠하리.., 그러나 저자는 머리공부만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과 마음으로 접했다고 한다.

 

추천사를 지나면 프롤로그를 만나게 된다. 나는 이런 프롤로그는 처음 읽어보았다. 내 독서의 바닥을 훤히 드러나 보이게 하는, 나를 되돌아보게 하는 글이 담겨있었다. 예리한 날이 가슴을 파고들듯 아프게, 그리고 다시 아름답게 다가온 대목은 다음과 같다.

 

‘인문은 고통과 위기에서 피어난 꽃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두려움과 혼란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창조의 원동력이 아닌가. 지금 나의 삶이 위태롭고 아프다면 여태껏 잊고 살았던 ‘나’ 라고 하는 꽃망울이 터져 나오려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11쪽

 

나는 이토록 가슴을 울리는 프롤로그를 기억하지 못한다. 더불어 나의 독서가 그 얼마나 빈약한 것이었단 말인가... 경전에 들어가기도 전에 그만 저자의 정신에 경도되고 말았다.

 

7가지의 경전은 하나로 통한다, 바로 깨달음이다. 마치 자신을 낮춘 물이 흘러 큰 바다, 한 곳에 이르듯 말이다. 다만 그 표현이 다를 뿐이다. 깨달음이야말로 경전이 존재하는 이유이다.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는 것, 하여 스스로를 자유롭게 하는 것. 이 자유는 방종과는 절대적으로 구별되는 자유이다. 기독교에서의 깨들음은 ‘하늘나라’로 가는 것이요, 불교에서는 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요가와 도덕경 역시 그러하다. 나를 아는 것이다. 탐욕과 욕망을 버리는 것, 나의 집착과 고통에서 자유로워지는 자유로움이다. 하여 우주에 닿는 것이다. 다만 각각의 경전들은 깨달음으로 가는 안내를 위해 각기 다른 방편을 사용했을 뿐이다.

 

인간이 깨달아야 한다는 것은 인간은 깨달음이 필요한 존재라는 의미이다. 지구상에 유일하게 깨달음이 있어야하는 존재가 바로 우리 인간인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인간만이 필요이상으로 욕망하고 탐욕 한다. 필요이상의 욕망과 탐욕은 나 자신은 물론 다른 모든 존재에게 유해하다. 그 다른 존재가, 다른 사람 다른 사회 그리고 다른 동물이든 식물이든 나아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모든 환경이든 말이다. 우리 사회가 늘 불균형으로 인해 아프고 병들어가는 이유이다.

 

'스스로 그러함’은 아무런 조건 없이, 그리고 아낌없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인간에게 내어준다. ‘스스로 그러함’은 본디 스스로 그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스스로 그러함’을 깨닫지 못하고 불교에서 말하는 탐진치(貪瞋癡)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탐진치’는 그칠 줄 모르는 탐욕, 끝없이 욕망하는 그 어리석음, 그 탐욕을 이루지 못할 때 오는 노여움이다. 한마디로 탐(貪)은 ‘스스로 그러함’의 대척점에 있는 인간의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말이다.

 

깨달음은 나 자신에게는 물론 나 이외의, 우리 환경을 포함한 모든 존재에게 도움이 된다. 중용(中庸)의 표현을 빌자면, 만물을 생육하는(萬物育焉-만물육언) 존재가 되는 상태가 아닐까.

 

경전 중에서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도마복음이었다. 기독교의 경전으로 평소 알고 있던 기독교의 내용과는 거리가 너무 멀다는 느낌이 강했다. 이러한 편견은 기독교의 정신을 몰라도 너무나 몰랐던 나로 인한 것이었다. 하긴, 성경이 집에 있기는 하지만 제대로 읽어본 적은 없으니 말이다. 도마복음은 우리에게 말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31쪽, 도마복음

진정한 자아를 아는 것이 곧 하느님을 아는 것이며, 자아와 신성은 동일하다.

24쪽, 도마복음

 

내게 도마복음의 가난이란, 탐을 버린 가난으로 이해된다. 저자의 표현을 빌자면 ‘세상을 굶는 것’이다. 저자의 이 말은 인간의 탐욕에서 벗어나는 깨달음의 의미로 파악된다. 저자의 말대로 하늘나라는 공(空), 비어있는 곳이니 말이다. 탐을 버린 가난은 정신의 풍요를 뜻하며 깨달음으로 가는 방편임을 예수께서는 알려주시지 않았던가... 번뇌를 끊어내는 금강경의 말씀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대목이다. 또한 우파니샤드는, “매일 덜어내며 가는 매 순간의 완성”이라고 가르치고, 도덕경은 “하루하루 없애간다”고 말한다. 도마복음의 가난이란 물질적 빈곤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불교와 힌두교, 그리고 유교의 가르침과 정신의 풍요로움, 깨달음으로 가는 상통하는 방편이었던 것이다.

 

매우 인상적인 또다른 부분은 ‘자아와 신성은 동일하다’고 말하는 도마복음이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말이다 싶은데, 그 말은 ‘네가 곧 부처니라’ 였다. 기독교의 경전이나 불교의 경전은 서로 같은 말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불성이 우리 안에 있으니 깨달으면 곧 우리는 부처가 된다. 도마복음은 말한다. ‘인간은 누구나 하느님의 씨앗을 품고 있다’ 라고. 도마복음은 그 씨앗의 싹이 트도록 해주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고, 싹이 트는 순간 우리의 자아는 신성과 동일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신성을 가지게 되다니... 내게는 충격적인 도마복음이 아닐 수 없다. 그동안 기독교와 불교는 거리가 너무나 먼, 결코 가까이 할 수 없는 영원한 상극의 그 어떤 것으로 인식해왔던 것은 크나큰 나의 편견이었음을 또 한 번 깨닫는 순간이었다.

 

 바가바드 기타는 말한다,

요가’라는 말은 신에게 닿는 것 178쪽

인간의 본성인 아트만과 우주의 브라만은 하나 179쪽

 

동경대전은 말한다,

 

인내천(人乃天), 사람이 곧 하늘이다

사인여천(思人如天), 사람을 하늘님처럼 섬기라 209쪽

 

경전들은 인간이 도달 불가능한 그 무엇을 전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우리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인간이 두툼한 껍질을 벗어내고 맨 발로 걸어야 할 그 길을 안내하고 있다. 바로 깨달음이다. 당신은 나보다 더 행복하겠지만 나도 작지만 행복하노라고 말할 수 있는 사회로 가는 길이 이곳에 있다. 행복은 권리하고 말한다던지 추구의 대상이라고 말하기에는 왠지 석연찮은 구석이 있다. 마치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 행복이라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알고보면 행복은 본디 나의 것, 스스로 가지고 태어난 인간의 것인데 말이다. 인간은 본래 자신이었던 것을 잃어버린 후 오래도록 그것을 되찾지 못했다. 스스로의 깨달음은 행복으로 가는 길이라고 바가바드 기타는 말한다.

 

경전들은 한입처럼 말한다. 인간 안에 신성이 있고, 네가 곧 부처이고, 아트만과 브라만은 하나이고, 사람이 곧 하늘이다 라고. 이 모두는 우리에게 한결같은 목소리로 깨달음을 전언하고 있다.

 

누군가는 말했다. 인간은 무지개를 보면 닿아보고 싶어 하고. 지평선을 보면 가보고 싶어진다고. 또 다른 누군가는 말했다. 인간은 맨 손을 쥐고 있어도 펴보고 싶어 한다고. 이는 인간의 본능이며 창조력의 원천이라고. 일면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는 인간 탐욕의 원천이기도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이 책은 경전의 의미를 전하며 그동안 가지고 있던 나의 편견을 산산이 깨트려준다. 그동안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문자와 사유(철학)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이런 나의 생각은 틀렸다. 문자가 있고 사유가 있다 한들 동물보다 못한 짖을 해온 것이 인류의 역사였다. 이 책을 읽은 지금은 생각한다. 인간에게는 경전이 있고 깨달음이 있기 때문에 동물과 구별되는 존재라고. 인간은 경전을 존중해왔지만 동시에 늘 경전을 배반해왔다. 기독교의 사랑, 불교의 자비, 유교의 인은 모두 같은 말이다. 원수마저 사랑하라 했지만 우리는 그 원수를 지독하게도 미워했다. 인지상정이라지만 이것은 깨달음이 없을 때의 이야기다.

 

믿음을 종교라 말한다면 모든 믿음은 종교랄 수 있다. 유일신과 그 교리만을 종교라 한다면 유불도는 종교라 할 수가 없다. 그런 점에서 유대와 기독교는 종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이 말하고자 본질은 종교에 관해서가 아니다. 종교를 초월하는, 스스로 그러한 인간의 자아로의 회귀이다. 흔히 말하는 종교라는 이름으로 이 경전들을 옭아매기에는 그 말씀이 너무나도 크고 위대하다. 그동안 갇혀있던 경전의 울타리를 걷어낼 때가 아닌가 한다. 우리가 자주 듣던 말, ‘진리’라는 말이 있다. 이 책은 독자로 하여금 그 진리로 가는 방편을 안내하는, 일종의 작은 깨달음을 주는 더없이 귀한 진리의 책이 되어줄 것이다. 이제 이곳에서 한 발 만 더 앞으로 나아가면, 경전의 세계로 뛰어들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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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판에서 새로이 살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40쪽, 아래 5줄, “더 큰 나라를 일구는 일깨움의...”에서 ‘나라를’은 ‘나를’의 오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문맥상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지 꼭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2. 저자는 본 책에서 다석 류영모를 6회 이상 언급하고 있다. 29쪽과 115쪽에서는 유영모, 104, 114, 115, 125 쪽에서는 류영모라고 쓰고 있다 (115쪽 상단에 류영모, 하단에 유영모 두 번 등장함). 누군가가 다석께서는 자신의 성을 ‘유’가 아닌 ‘류’로 불리기를 원했다고 말해준 적이 있다. 어째 거나 독자로서는 ‘유’이든 ‘류’이든 하나로 통일해줄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 책은 출판사가 서평 희망자에게  제공해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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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운명 사용설명서 - 사주명리학과 안티 오이디푸스 크로버 시리즈
고미숙 지음 / 북드라망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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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 그늘에 가려 그 어느 누구도 인문학적 접근을 시도하지 않았던 명리학에 대중들이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시도한 저자에 우선은 찬사를 보내고 싶다.

 

과거 조선에서 글줄을 읽던 다수가 스스로 점을 치거나 생년월일로 좋고 그름을 알아보곤 했고, 조선 정부에서는 관상감에서 주최하는 음양과(陰陽科)를 통해 천문, 지리, 역수및 점산의 기술직을 뽑아섰다하고, 명리학은 명과학(命課學)이라하여 네사람을 뽑았고 교수는 종 6품이었다 한다.

 

성웅 이순신은 난중일기에서 적과 싸움을 치루기 전에 점을 쳤다고 쓰고 있다. 물론 잘 나올때까지 반복했을 것이다. 그 이름도 유명한 주희는 어느 날 목숨을 건 상소를 닦아 놓았는데 스승의 안위를 걱정한 나머지 제자들이 강력히 만류했다고 한다. 하여 역점을 해보고 결정하기로 한 모양이었다. 결과는 천산돈(天山遯-물러나 숨으라)이 나왔다고 한다. 하여 주희도 괘를 보고는 역린을 건드리는 일을 포기했다는 전설이 있다. 과거에는 명리든 역점이든 음양오행으로 알아보는 일종의 미래 예측법 이었던 것이다.

 

우리말에 ‘아이고 내 팔자야~’하는 말도 있는 것을 보면 과거 조상들은 그 팔자를 어느 정도는 수긍을 했던 모양이다. 여기서 팔자(八字)란 자신의 생년월일을 나타내는 천간과 지지를 말하는 것으로 모두 8글자인 탓이다. 그러나 요즘 같은 첨단 디지털 과학의 시대에 음과 양으로 자신의 운명을 알아보는 일이야말로 아주 낙후되고 고리타분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음양(陰陽)과 오행(五行) 알아두면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은 확실히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음양 오행은 비단 명리(命理)뿐 아니라 역점, 의학, 심지어 조선의 국시였던 성리학을 모두 관통하는 우주의 이치라고 한다. 특히 사상의학은 음양과 장부의 허실과의 관계를 매우 중시하는 분야이고 이에 관심이 많은 한의학자들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다만 명리가 대우를 잘 받지 못하는 것은 일종의 학문으로서 라기 보다는 미래를 단순히 점치는 점의 성격으로 이해하고 있고, 특히 명리 상담사가 나쁜 미래를 예측해줄 때, 기분이 상당이 좋지 않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상담사의 말이 자꾸 떠올라 잘되던 일도 안되더라는 것이다. 

 

명리는 우리 말에 있는 것처럼 8글자인 것은 사실이나, 그 8글자가 다는 아니다. 저자가 밝히고 있듯이 대운에서 또 다른 2 글자를 만난다. 그리고 매년 새로이 맞이하는 2 글자를 더하고 매달 맞이하는 2 글자를 또 더하면 모두 14글자가 운행하는 것이다. 여기에 일과 시간까지 합하면 총 18글자인 셈이다. 명리에서는 18글자의 음양 오행이 서로 운행하면서 형충파해합(刑沖破害合)을 연속하고 있는 것이다.

 

천간과 지지는 알다시피 빙글빙글 돌며 움직인다. 저자가 말하는 조커(용신)은 자신에게 꼭 필요한 글자이다. 그러나 그 글자가 한 바퀴를 회전하는 데는 천간에서 10년, 지지에서 12년을 기다려야 한다. 이 말은 유리한 때가 있으면 반드시 불리한 때도 있다는 뜻이다. 춘하추동은 한 사람의 8글자에도, 조커인 대운에도, 그리고 해와 달 그리고 시간에 모두 작용하기 때문이다. 하여 불리한 때가 돌아오는 시기를 미리 알고 그에 맞는 대처법을 찾아내는 것을 명리의 핵심이라고 보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다. 사적인 경험상 유리한 때를 맞이한다는 말은 잘 들어맞지 않아도, 불리한 때를 맞이한다 하는 경우에는 상당히 맞아떨어지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즉, 좋은 일은 안 맞아도 불리한 일은 잘 맞아떨어지더라는 얘기다.

 

달도 차면 기울게 마련이고 오르막이 있으면 또 내리막도 있는 법이다. 불리한 시기가 찾아온다하여 기분이 상하기보다는 적절하게 대처한다고 여기고 슬기롭게 헤쳐나간다 마음먹으며, 그 시기가 지나면 또다시 유리한 때가 기다리고 있다 생각하면 좋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이 아쉬운 점은, 저자가 명리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한 것으로 보이는 것은 사실이나, 8글자가 가지는 단순한 오행의 수준 만을 다루어 독자들에게 명리에 대한 오해의 여지를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저자가 용신의 중요성을 밝히고 있는 것처럼 명리에서 용신은 절대적인 중요성을 갖는다. 그러나 그 용신을 잡는 일은 결코 수월한 것이 아니다. 전문가들 조차도 혼란스러워하는 경우가 있을 정도이다. 한마디로 용신을 잘못 잡으면 거꾸로 가는 것이다.

 

또한 저자가 밝혀둔 대로 음양오행의 상생상극이 존재한다. 그러나 형, 충, 파, 해, 합과 반합의 관계는 단순한 오행의 이해 그 이상의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는 내용들이다. 때로는 매우 불리하던 글자, 즉 용신의 반대인 글자가 되려 나를 이롭게하거나, 반대로 용신이 나를 해치는 변화를 맞이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점에 대해서는 언급이 너무 부족하여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오해의 여지를 주지 않았나 하는 큰 아쉬움이 남는다. 

 

또한 격국론은 명리의 정점이나 다름없는 부분이다. 대표적인 예가 종격(從格)이다. 종격은 말 그대로 네 기둥인 원국을 따라가는 형국이라는 의미이다. 8글자의 오행들이 어느 한쪽으로 쏠려있기 때문이다. 종격의 경우 그 쏠림현상이 지나쳐 대운이나 해운에서 도저히 균형점을  잡아 줄수가 없다. 하여  같은 오행의 글자가 대운과 해운에서 자신의 네 기둥을 따라가는 것이 되려 이롭다.  그러나 명리의 꽃이라 항 수 있는 격국론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하여 전체적으로 명리를 너무 가벼이 접근했다는 아쉬움을 주는 책이라 할 수 있다. 더더욱 아쉬운 것은 글을 전개해가는 저자의 전체적인 분위기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물론 인문학적인 접근은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이고 너무 무겁게 접근하는 것도 바람직한 일은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결코 가벼이 접근할 수 있는 분야는 아니라는 점은 확실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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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5-03-21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밑에서 다섯번째 문단 `우리`가 아니라 `유리`아닌가요?^^

주역도 그렇고 명리도 그렇고,
결국은 `하늘`=`신`을 읽어내려한 것이었고, 거기서 뻗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명리를 가볍게 보고, 가벼이 접근했다는 것은,
바꾸어 말하면 인간의 삶을 그렇게 만만히 봤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인간의 삶을 거기서 분리시켜 하늘=신을 읽어내려 하느냐,
아님, 하늘을 자연과 동격으로 놓고,
그 자연에 인간을 집어넣어 자연의 흐름으로 읽어내느냐, 하는 것이 ...
주역과 명리를 공부하는 사람들의 `관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차트랑 2015-03-21 10:19   좋아요 0 | URL
어인 행차이시옵니까 양철나무꾼님?
반갑습니다~

말씀해주신 부분 그대로 오자입니다.
하여 교정했습니다
저자가 완전생략하고 넘어간 격국론에대해
너무 짧게 언급한 것 같아 이참에 약간 추가했습니다.

전반적으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기는 하지만
저자가 들떠있는 분위기라 아쉬웠습니다 ㅠ.ㅠ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양철나무꾼님!
늘 건강하십시요~
 
생태주의 시학 - 개정증보판
장정렬 지음 / 한국문화사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시는 그저 느끼면 되는 것이라는 말을 흔히 들어왔다. 물론 이 말에 적극 동감해왔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는 역시 어려운 것이 시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고등부의 수능에 출제되는 현대시들의 문제를 보면 이러한 개인적인 생각을 확인하게 된다. 몇 편의 시를 한 그룹으로 묶은 다음 통합 질문 해오는 문제들은 그 개념을 비롯하여 한동안 풀이 연습을 하지 않는다면 답을 내기가 결코 수월한 것이 아니다.

 

이 책은 시를 바라보는 관점을 분석하기위해 내놓은 책이라고 보기는 어려움이 있다. 저자의 저술 목적은 오로지 생태주의 시학에 집중하고 있으며 국내의 시인들이 그동안 우리의 생태변화에 그 얼마나 깊은 우려와 염려를 해왔는지 보여주기 위한 책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를 바라보는 즉, 시를 읽는 관점의 중요성도 처절하게 느끼게 한다.

 

소설은 저자가 마음껏, 그야말로 자신이 구상하고 있는 전부를 무제한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장이 보장된 장르인 반면, 시는 공간이 지극히 제한된 범주 안에서 고도의 압축된 언어들을 어울려 버무려내야 하는 특성을 가진 장르이다. 하여 둘 중 어느 쪽이 더 어렵고 쉬우냐를 묻는다면 이건 완전 우문이겠지만 장르별 특성 혹은 차이점이 존재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일이다.

 

그렇다고 시가 꼭 어려워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차라리 이해하고 공감하기 쉬운 시가 더 좋은 시임에도 틀림이 없다. 시 역시도 여타의 장르처럼 메시지를 담아 전달하는 것이 공통된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로 시란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시를 찾아볼 수 있는 시인, 다형 김현승은 적합하지 않은 시어들을 제거하는 일을 마치 자신의 ‘살점을 떼어내는’ 느낌이라고 그 아픔을 비견했고, 언어의 연금술사 김춘수는 마땅한 시어 하나를 지어내느라 몇날며칠을 우두커니 앉아 마치 실어증에 걸린 사람마냥, 바보가 식음을 전폐하듯 그렇게 앉아 있곤 했다 한다.

 

시를 탄생시켜내는 시인의 아픔과 고뇌를 대변하는 위의 두 일화는 누군가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의 작품을 내놓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알려주는 사실에 근거한 이야기다. 이러한 어려움은 비단 시인만은 아닐 것이다. 한편의 시를 짓는다는 것이 그 얼마나 공을 들여야 하는 일이던가…….

 

시를 짓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듯, 이를 제대로 읽어내는 일도 마찬가지로 어려운 작품들이 있다. 시가 가지는 주제와 운율, 그리고 심상 게다가 압축 상징 그리고 시인의 정신을 읽어냄과 동시에, 한편으로는 화자가 처한 입장에서 그리고 독자가 처한 상황에 적용시킬 수 있는 공감력을 발휘해야 하는 고도의 능력을 요망한다.

 

어떤 시인은 말하길, 평론가가 자신이 전혀 의도하지 않는, 시인과는 전혀 무관한 이해를 하더라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바 있다. 한마디로 시인도 모르는 일을 독자가 해낼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그 독자의 평은 대단한 설득력을 가지더라는 이야기이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시에 국한된 것은 아닐 것이다.

 

저자 장정렬께서 시인들의 원래 의도와 그 얼마나 일치하는 분석을 하고 있는지 나는 알 수는 없다. 그럴 필요도 없다고 본다. 시를 내 놓았고 독자의 손에 넘어간 이상, 그 시는 시인의 것 이라기보다는 이제는 독자의 것이기 때문이다. 시인의 손을 떠난 시에 대한 법적 소유권 혹은 재산권을 소유했다는 것 이외에는 더 큰 의미는 없어 보인다.

 

 

「생태주의 시학」은 내게 매우 강한 인상을 주었다. ‘저자는 문학은 본질적으로 문학을 형성하는 시대의 환경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는다.’라고 말한다. 이 대목에서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환경과 뗄 수 없다’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라는 표현이었다. 저자는 문학의 본질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본질’이란 어떤 것에서 그 본질을 제외한다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는 의미심장한 말이다. 이 말이 내게 이토록 강렬하게 다가온 것은 ‘인간은 본질적으로 자연과 친화해야 한다’는 말로 내게 들려왔기 때문이다. 자연친화적이지 못한 문학은 그 본질을 상실한, 즉 문학이 더 이상 아닌 것이 된다. 본질이란 없어서는 안되는 것이니 말이다.

 

시의 형식은 변화하고 이미지들은 자본화되고 기계화되어가고 있다. 9쪽

 

시인은 생태계의 파괴를 인간사고의 방식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이는 지극히 바른 말이다.

 

헐벗은 뒷모습 드러낸 채

종로구와 서대문구 변두리에 주저앉아

늘그막에 셋방살이 하는

불쌍한 인왕산

 

김광규, 「인왕산」에서

 

위 시에서 인간에게 신성한과 삶의 힘을 주던 산이 불쌍한 산이 되어 버렸다. 중략...인간에게 있어서는 신성함과 상상력의 상실을 의미한다고 할 것이다. 59쪽

 

 

 

내 눈엔

뿔뿔이 저마다 외롭고

무뚝뚝하게 몰려가는 甲皮魚들의 나라일 뿐,

건강한 야만인의 마을이 그리운

빛의 제국,

가짜비늘로 뒤덮인 화려한 빛의 제국.

 

최승호, 甲皮漁에서

 

‘비늘’은 물고기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어휘로서, 이것이 가짜 비늘로 표현됨으로서 정체성이 사라진 물고기를 상징한다고 하겠다.  67쪽

 

 

 

 

한 숟가락 흙 속에

미생물들이 1억 5천만 마리래!

왜 아니겠는가, 흙 한 술  

 

정현종, 한 숟가락 흙속에

 

흙은 모든 생명의 원천이며 본원적 처소이다. 흙은 모든 존재의 의지처이자 귀의처이기도하다.   187 쪽

 

 

 

저자는 우리의 시인들을 통해 자연과 점점 괴리되어가는 현대의 자화상을 좀 더 명료하게 보여주고자 한다. 저자의 이러한 노력에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물론 저자는 문학의 본질에 대해서 이미 밝혔다. 어디 시인과 소설가뿐이겠는가. 문학과 관여하는 사람들 모두 이에 관계해야하며 독자 역시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생각하는 바이다.

 

생태주의 시학이라는 분야는 널리 인식되지 않은 분야인 듯하다. 그런 점에서 저자의 고독한 열정이 더없이 소중하게 다가온다. 개척자가 되기로 자처하는 일이란 본디 남이 알아주기를 바라고서는 할 수가 없는 일이다. 그래서 더욱 어려운 일이다. 저자께 다시 한 번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저자 덕분에 나는 새삼 우리가 호모사피엔스 사피엔스인가를 되돌아보게되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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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몸과 마음 건강을 위한 책을 만드는 판미동입니다.

간디가 사랑한 『바가바드 기타』에서 정조이산의 경전들까지!

경전을 쉽고 맛깔나게 풀어낸  『경전 7첩 반상』이 판미동에서 출간되었습니다.





다산정약용, 정조이산, 간디, 괴테, 링컨 등 시대를 넘나드는
위대한 인물들이 경전을 평생 옆에 두고 읽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인문고전은 자신을 바로 세우는 데 필요하다. 경전은 그러한 인문고전 중 최고의 고전으로 손꼽히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지혜를 담아 놓은 책이다. 그곳에는 수천 년에 걸쳐 인간이 골몰해 온 생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과 답이 함축되어 있다. 그러나 그만큼 ‘경전’은 난해하고 복잡해 섣불리다가설 수 없는 책으로, 혹은 자신과는 동떨어져 있는 종교 서적으로 여겨져 오기도 했다.

이번에 판미동에서 나온 『경전 7첩 반상』은 인문고전 중의 고전으로서 독자들이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경전의 벽을 낮춰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핵심적인 지혜를 맛깔스럽고 쉽게 정리했다. 특히 우리가 이 험난한 시대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헤쳐갈 수 있도록 삶의 뿌리가 되어줄 깊고 단단한 명구들을 선별하여 방황하는 현대인들에게 생의 좌표를 재점검하고 안착하게 만드는 ‘지점’을 제공해 준다.

변곡점에 서 있는 시대이니만큼 많은 사람들이 삶의 답을 찾으려 한다. 『경전 7첩 반상』은 그 답을 찾기위한 방법으로, 삶의 핵심에 다가서기 위한 ‘경전 읽기’를 시작하라고 말한다. 현인들의 지혜와 경험을 되새기는 작업은 우리가 현재 어디에 서 있는지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경전 7첩 반상 속 경전>

1. 동양 문헌 가운데 가장 먼저 읽어야 할 책으로 간주되고 있는 『도덕경』
2. 양극단으로 치달은 우리 사회에 무엇보다 간절한 정신이기도 한 『중용』
3. 불교의 수많은 경전 가운데서 가장 초기에 모아졌기에 담박한 맛이 일품인 『숫타니파타』4. 인도를 넘어 세계의 고전이 된 『바가바드기타』
5. 그리스도교를 새로운 차원으로 이끄는 선두 마차 『도마복음』
6. 우리 모두의 대 자유를 추구하는 대승의 중추인 『금강경』
7. 마지막으로 우리 종교, 우리 정신, 우리 철학을 보여 주는 『동경대전』

리는 『경전 7첩 반상』을 통해 어느 하나 흘릴 게 없는 천금 같은 문구를 만나게 될 것이다.

▶ 지은이
글·캘리그래피 성소은

서울 출생. 일본 릿쿄 대학교 법학과에서 합리적인 사고를, 도쿄 대학교 대학원에서 화엄세계처럼 얽혀 있는 국제관계를 공부 했으며, 이후 한일 양국 정부와 국제기구 등에서 공공선을 추구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하리라.”는 예수의 말씀을 찾아 순복음교회를 나왔고, 성공회를 지나, “붓다를 만나면 붓다를 죽이라.”고 하는 선불교의 칼끝 같은 가르침에 이끌려 3년간 출가수행을 했다. 이후 ‘나는 누구인가’를 참구하면서 선물처럼 “아하!”를 체험하고 기쁨으로 환속했다. 

현재는 인문, 사회, 종교, 과학, 문학, 신화 등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서로 배우는 지식협동조합 <경계너머 아하!>를 운영하고 있으며, 성공회 대학교 사회학과 박사과정에서 인간사회와 종교 관계를 관찰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그리스도교와 불교의 의미 있는 만남을 담은 구도적 고백서 『선방에서 만난 하나님』과 경계 너머의 무한한 가능성을 담아 엮은 『종교 너머, 아하!』(공저)가 있다.
(지식협동조합 경계너머 아하! www.njn.kr)


▶ 『경전 7첩 반상』 서평단 모집 상세 내용


하나, 『경전 7첩 반상』 서평단 모집 포스팅을 개인 블로그에 스크랩 한 뒤,

서평단 응모 링크(http://goo.gl/forms/8GbsT5od5o)를 클릭하여 설문지를 꼼꼼하게 작성한다.


둘, 응모 기간은 2015년 3월 12일(목)부터 3월 18일(수)까지 입니다.


셋, 총 추첨인원은 5명입니다. (당첨자에게는 개별 연락 드립니다.)


넷, 서평기간은 도서 수령 후 10일이내 니다. 

(혹시 기간이 촉박 하거나 부득이한 사정이 있는 경우는

yoongy@minumsa.com 로 미리 메일 부탁드립니다.)


마지막, 당첨된 서평단 분들은 알라딘 개인 계정으로 서평을 작성한후, 담당자 메일(yoongy@minumsa.com)로 알라딘 블로그 및 개인 블로그 등에 남기신 서평 링크를 보내주셔야 최종 서평이 완료됩니다.


※ 해당 기간 안에 서평 및 서평완료 메일을 보내지 않을 시,

다음 서평단 모집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습니다. 많은 참여와 관심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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