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산골의 문맹 소년이 어릴 적, 당시 신문지는 귀한 것이었다. 행여나 장에 나가실 때면, 어른들은 신문지를 얻어 오곤 했다. 지금이야 신문지의 용도가 많지 않지만 그 시절 산골 깊은 곳에서는 신문지란 매우 요긴한 것이었다. 때로는 아궁이의 불쏘시개가 되어주기도 하고, 때로는 깜깜한 밤에 신문지를 양초에 둘둘 말아 함께 불을 붙이면 그 밝기가 대낮 같았다. 문맹의 아버지는 친인척의 제사를 마치고 돌아오실 때면 늘 양초에 신문지를 함께 말아 길을 밝히셨다. 자정을 지나야 하는 고로 달이 없는 밤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신문지를 양초에 두른 다음 불을 붙이면 바람이 불어도 끄떡없었다.

 

신문지는 선물할 물건을 포장하는 포장지로도 요긴했다. 그냥 내미는 것 보다 신문지에라도 싸서 선물을 하면 그나마 모양새가 나았다. 깊은 산골, 보리 농사꾼들의 특별한 날에 주고받던 특별한 선물인 고기를 신문지에 역시 둘둘 말았다. 어디 그뿐인가. 밥상을 덮어 놓기에도 제격인 것이 신문지였다.

 

그러나 신문지의 최고 용도는 따로 있었다. 바로 학교에 가져가 점심 대용으로 먹을 누룽지를 포장하는 일이다. 문제는 점심으로 누룽지를 먹으려고 신문지를 벗겨내면 끈끈한 누룽지에 신문지가 착 달라붙어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조심스럽게 눌러 붙은 신문지를 떼어내려 해도 어린 고사리 손의 한계가 있다. 신문지의 잉크 글자가 누룽지에 찰싹 달라붙어 떨어지질 않는다. 누룽지에 배인 글자를 읽으며 먹는 누룽지의 맛에 옅은 잉크향이 배어나온다. 바깥세상, 문명의 냄새다. 이 모든 신문지의 용도를 극적으로 뛰어넘는 용도가 하다 더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벽지였다.

 

시골 산속의 보리농사꾼들에게 전용 벽지는 사치였다. 명절이 다가오면 새로이 벽지를 하곤 했는데, 다름 아닌 신문지가 벽에 달라붙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당시 벽에 바른 신문지를 읽을 만큼 어휘력을 갖추지 못했다. 대신 다락방에서 찾아 낸 것이 형님들의 교과서였던 것이다. 공부를 지지리도 하지 않았던지 형님들의 교과서는 제법 깨끗한 상태로 다락방에 놓여있었다. 하긴 형님들도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책 보따리를 팽개치고는 밖에서 하루 종일 놀다가 날이 저물거나 배가 고프면 집으로 돌아오곤 하던 역시나 촌딱들이다. 집에서는 상대적으로 빠들 빠들하며 퀄리티가 있는 종이 책을 그냥 내다 버릴 리가 만무했다. 신문지마저 귀했던 보리농사꾼들은 애들의 교과서를 다락방에 보관하고 있었다. 그렇게 교과서 읽기를 다 마친 후 남아있는 읽을거리는 유일하게 벽지로 발라둔 신문지였다.

 

당시 신문은 한자를 많이 사용했다. (어느 즈음에는 한자와 한글을 병기하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한글의 아름다움을 따라갈 언어는 없을 듯하다. 언어학자도 아니고 언어학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없는 처지라 증거를 댈 능력은 없다. 그러나 늘 느끼는 것은 표현이 무궁하고 자유로우며 아름다운 언어가 바로 우리의 모국어라는 것이다. 그런데 당시의 신문은 다수의 한자를 가지고 있었다. 상황이 주어지면 아버지께 한자의 뜻을 여쭈었고 아버지는 친절하게 알려주셨다. 서당에서 사서삼경을 읽고 붓을 배우신 아버지께서는 한자에 밝으셨던 것이다.

 

어째 거나 탈 문맹을 하고 교과서를 읽은 후에는 유일하게 읽을거리라고는 신문지 뿐 이었다. 한자가 많아 읽다가는 멈추고 또 멈추는데, 한마디로 신경질이 나는 것이었다. 그러 던 중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이 신문의 연재 만화였다. 만화의 제목은 바로「장군의 딸」이었다. 만화와의 최초의 조우였다. 그런데 문제는 벽의 군데군데 보이는 만화가 연재스럽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가만 살펴보니 일련번호가 쓰여 있다. 그럼 뭐하나. 신문지를 무작위로 벽에 발라 놓았는데 순서가 따로 있을 리가 있나. 어떤 번호는 반쯤 만 보이고 나머지는 다른 신문지 밑에 겹쳐 있어 읽을 수가 없다.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좀 읽을라하면 다음 시리즈가 없고 한참을 건너뛴다. 또 어디에선가 다시 나타난다. 이리 찾고 저리 찾고 방마다 시리즈를 찾아다니는 일이 여간 힘들게 아니다 ㅠ.ㅠ. 재미 좀 있을 만하면 없고, 그러니 내용이 남아있을 리가 없다. 아직도 「장군의 딸」의 스토리는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이 없다. 다만 한국적이지 않은 만화였다는 것. 만화의 지리적 배경이 우리의 것이 아닐 것이라는 짐작만 했을 뿐이다. 또한 그 신문이 어떤 신문이었는지도 기억할 수가 없다. 신문지는 딱 하나만 있는 줄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나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준 「장군의 딸」, 그 무더운 여름 이 곳 저 곳으로 시리즈를 찾아 헤매던 어린 시절 문맹과의 씨름은 그렇게 지나갔다.

 

시절은 빈곤을 빈곤이라 생각하지 못하던 때였다.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가 거시기 찢어지게 빈곤했던 탓에 부가 무엇이고 빈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비교의 대상이 있어야 아! 내가 째지게 가난한 집안 출신이구나, 하겠지만 황순원의 「송아지」에 나오는 돌이네의 사정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신문지로 벽지를 발라도 으레 그러려니 했다. 신문지가 누룽지에 소 엉덩이의 똥 딱지마냥 덕지덕지 붙어있듯 해도 누룽지를 잘만 먹었다. 한마디로 남 부러울 것이 하나 없었다. 온 세상이 내 것이고 친구들의 것이었다. 아쉬울 것이 없었던 나의 세상, 우리들의 세상.

 

학교 선생님은 가정환경을 조사한다고, 집에 테레비 있는 사람 손들어봐, 냉장고 있는 사람 손들어봐, 했지만 손을 번쩍 들어 올리는 넘 하나 없다. 눈만 멀뚱멀뚱, 주변을 둘러봐도 말이다. 테레비가 뭣에 쓰는 물건인지 냉장고는 또 뭣에 쓰는 물건인지 도대체 짐작도 하지 못했던 시절의 문맹들은 지들이 문맹인지 깨닫지 못했다. 그런 촌딱들은 그저 늘 신이 났고 자신들이 불행하다 생각하지 않았다.

 

문맹 소년과 그 친구들이 행복할 수 있던 시절은 갔다. 문맹을 떨치고 공부를 하여 서울로 올라오니, 오호라... 빈이 무엇이고 부는 무엇인지 비로소 알겠더라. 빈은 사람을 고통스럽게 한다. 송아지, 아니 소를 팔아도 대학 등록금이 되지 않는다. 자본은 국부론과 진화론의 순수함 본질을 변질 혹은 훼손시겼고, 자본이 세상을 지배하도록 했다. 돌이처럼 주어진 상황과 용감히 맞서는 것 자체를 하용하지 않는 사회, 자본주의이다.

 

다수의 저자들은 부를 일구는 방법을 소개한다. 인문학은 인간의 정신을 외치지만 이 인문학 역시 자본의 굴레를 벗어날 수가 없다. 자본 없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자본은 현대 인간의 정신을 대변한다. 인간이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것 또한 자본이다. 창조력은 늘 자본과 함께 언급 된다. 자본을 벌어들이는 일이 곧 창조인 것이다. 오죽했으면 자본주의(Capital-ism) 이겠는가. ism은 ‘철학적 개념에 첨가되는 접미사’라고 되어있다. 자본은 누가 뭐래도 한 인간의 가치를 매기는 척도가 되었다.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말하지만 막상 상황을 만나면, 어쩔 수 없게 된다. 이것이 바로 인간 정신을 지배하는 자본의 힘이다. 영어의 속담에는 'Money talks'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의 진의를 ‘돈은 귀신도 부린다’는 말로 의역할 수 있다. 귀신이 무슨 돈이 필요하겠는가. 말이 그렇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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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문맹소년은 한마디로 깡촌도 그런 깡촌이 없는 산골 출신의, 촌딱의 상 촌딱이다. 더군다나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제 이름하나도 읽고 쓸 줄을 몰랐다. 그러니 문맹이지.. 아 그런데 1학년에 들어가니 선생님께서 이 문맹에게 읽기를 시키는거라... 한사람씩 돌아가면서 그렇게 몇 사람에게 읽어보라고 하는데... 며칠 후에는 그 차례가 올 것 같은 불길하고도 불길한 예감이 든다. 수업시간에 불안에 떨며 문맹 소년은 좌불안석이다. 점점 좁혀 오는 포위망처럼 가슴이 답답하다. 같은 처지의 문맹들이 더러 있었지만, 도대체 다른 애들은 그 어려운 국어책 읽기를 언제 배웠단 말인가... 듣도 보도 못한 일을 애들은 잘만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드디어 문맹 소년의 차례가 된 것이다.

선생님: 너, 얼어나서 읽어봐~!

 

명을 받은 문맹 소년은 책을 들고는 슬로우 비디오로 의자에서 일어섰다. 손은 덜덜 떨리고 이마에서는 구슬 땀이 솟는 느낌이다. 얼굴도 덩달아 벌겋게 달아오른다. 아..그러니까....하고 문맹 소년은 주저주저, 떠듬떠듬, 입이 벌어지질 않았다. 아니 입을 뗄 수가 없는 것이다. 속으로, 뭘 알아야 읽지요 성생님....ㅠ.ㅠ. 했다. 이 순간, 그 짧은 시간이 어찌나 느리게 가던지... 시간이 멈춘 느낌이었다. 애들은 빤히 문맹을 쳐다보고 있다. 속으로 그럴 것이다. 쟤, 못 읽나봐?

 

그러는 사이 성생님은 눈치를 채셨나보다. 그만 앉아! 하는 소리에 문맹 소년은 털썩 자리에 주저 앉았다. 얼굴은 화끈 달아오르고, 온 몸에서는 힘이 빠져나가며 정신마저 아득해왔다. 그러는 사이 다른 녀석이 일어나 그 문맹이 읽지 못한 부분을 읽고 있었다. 코.끼.리. 였다. 고.기.리.도 모르는 문맹이 그 어려운 코.끼.리.를 어찌 알겠나...ㅠ.ㅠ. 수업이 어떻게 끝이 났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 문맹 소문이 조만간 전교에 파다하게 퍼질 것이다. 굴욕도 이런 굴욕이 없다. 창피의 수준을 넘어 이거는 진짜...ㅠ.ㅠ. 당장 내일부터 놀림감이 아닌가... 애들이 힐끗 힐끗 쳐다보는 듯 했다. 그 문맹은 애들의 얼굴을 마주할 자신이 없다. 완전 풀죽은 강아지 신세가 따로 없다.

 

하루를 완전히 망친 문맹소년은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께 책 읽는 법을 배워야겠다고 말씀드렸다. 했더니 아버지 말씀, 학교에서 안 가르쳐주던? 하셨다. 어머니께서 문맹소년을 거드셨다. 그래도 집에서 배우면 좋지요, 하셨다. 그렇게 그날 저녁부터 등잔불 아래에서 글자를 익히기 시작했다. 물론 학교에서 여러 애들 앞에서 창피당한 일은 차마 말씀을 드릴 수가 없었다. 무슨 큰 죄라도 지은 기분에다가 그 창피함을 또 느끼는 것은 그 문맹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나도 자존심이 있지.... 에혀~ 그날처럼 복잡한 심경은 처음이었다.

 

그리하여 문맹 소년은 등잔불 아래에서 이마에 땀이 나도록 글자를 익히고 익혔다. 날이 갈수록 읽고 쓰기에 점점 자신감을 찾아갔다. 웬만한 한글은 죄다 읽고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처음 글자를 익힌 애들이 그러하듯 신이 나서는 글자란 글자는 죄다 읽어대는 습관이 든 것이다. 한글 참 쉽데이~!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지 모른다고 읽을 거리를 이리 뒤지고 저리 뒤졌다. 그런데 도회지와는 달리 부근에 읽을 글자가 없는 것이었다. 간판도 없고 마구 뿌려주는 광고지도 없다.

 

 

는 능력은 가졌으나 사용을 하지 못하고 학년이 바뀌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맹 소년은 (아니 이제는 문맹이 아니지) 우연히 다락방에 오르게 되었다. 할머니께서 귀한 신문지와 형님들의 학년이 지난 교과서를 그곳에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것이다. 이리저리 뒤지다가 바로 이거다! 하고 결정한 것이 도덕, 사회, 국어교과서 였다. 산수 교과서도 있었지만 윗 학년 산수를 어찌 혼자 익히랴... 포기하고 형님들의 국어교과서를 다락방에서 읽기 시작했다.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역시나 이야기, 즉 소설이었다. 그때 읽었던 감동적이며 지금껏 그 뒤가 궁금해서 견딜 수 없게 만다는 소설이 바로 「송아지」였다.

 

한국전쟁이라는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소설은 돌이가 초등학교 3학년인 봄 방학에 송아지 한 마리를 사오는 것으로 시작한다.

 

 

아주 볼품없는 송아지였다. 왕방울처럼 큰 눈에는 눈곱이 끼고 엉덩이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볼기짝에는 똥딱지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어디 이따위 송아지가 있어. 돌이는 아버지가 몇 해를 두고 푼돈을 아껴 모아 사온 송아지가 기껏 이런 것이었나 싶어 적잖이 실망과 짜증이 났다. 그래도 한 달 남짓 콩깍지와 사초를 잘게 썰은 여물에 콩도 한 줌씩 넣어 먹였더니 좀 송아지 꼴이 돼갔다. 그 동안 돌이는 아침마다 송아지를 마당비로 쓸어주었다. 

 

                                                          황순원, 송아지 중에서

 

 

이 때만 해도 아직은 한국 전쟁이 터지기 전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바로 얼마 뒤 6월 25일에 전쟁이 터져 상황이 급변하게 된다.

 

군대가 한 차례 밀려 내려왔다가 밀려 올라갔다. 그 동안에 동네에서는 한 집이 비행기 폭격을 맞아 홀랑 날아가는 바람에 일가가 몰살을 당하고, 동네사람 하나는 포탄 파편에 맞아 다리 하나를 못 쓰게 됐다. 그리고 군대들이 동네에 들를 적마다 곡식을 모아가고, 닭과 개와 돼지를 잡아가고, 소를 끌어갔다.

돌이네 집에 와서 송아지를 끌어가려 했다. 돌이가 송아지 목을 끌어안고 놔주지 않았다. 송아지와 함께 얼마를 질질 끌려갔다. 군인이 총부리를 들이댔다. 그래도 돌이는 송아지의 목을 꼭 안은 채 떨어져 나가지를 않았다. 지독한 놈이라고 하면서 군인이 그냥 가버렸다.

 

                                                           황순원, 송아지 중에서

 

 

상황이 그러하자 돌이네도 피난길에 올라야 한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떠나는 날 새벽 돌이는 아버지에게, “송아지두 데리구 가지?” 했다. 아버지는 그냥 짐만 꾸릴 뿐 대답이 없었다. 돌이가 재우쳐 물었다. 그제야 아버지는 손만을 잠깐 멈추고 돌이는 돌아보지도 않고, “안 된다, 강 얼음이 아직 엷어서……. 사람이나 겨우 밟구 건널까 말까 한데 소야 되나” 하고 한숨을 짓는 것이다.

 

                                                                                 황순원, 송아지 중에서

 

소설「송아지」는 잘 나가다가는 가장 중요한 부분에서 그만 탈문맹을 궁금해 죽게 만든다. 한 겨울 피난을 가야하는 소년이 차마 송아지를 떼어 놓고 가지 못해 안절 부절인데, 마침 송아지가 고삐를 끊고는 소년 쪽으로 달려온다. 다음은 가장 극적인 바로 그 장면, 아직도 탈문맹으로 하여금 그 소설을 궁금하게 하는 장면, 소설의 마지막 장면이다.

 

 

뒤에서 어머니와 아버지의, 돌이야, 돌이야, 하는 째진 목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그러나 그 소리가 귀에 들어오지 않는 듯 그냥 마주 걸어나가는 돌이의 얼굴을 환히 웃고 있었다. 이제 조금만 더, 이제 조금만 더. 송아지와 돌이가 서로 만났는가 하는 순간이었다. 우저적 얼음장이 꺼져 들어갔다. 한동안 송아지는 허우적거리며 헤엄을 치려고 안간힘을 썼으나 얼음물 속에서 사지가 말을 안 듣는 듯 그대로 얼음장 밑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러한 송아지의 목을 돌이가 그러안고 있었다.

 

                                                          황순원, 송아지 중에서

 

 

이렇게 소설은 끝나고 마는 것이다! 책의 한 쪽에는 소년이 송아지의 목을 끌어 앉고 송아지와 함께 물속으로 가라앉는 그 순간을 그린 삽화가 있었다. 아... 그 뒤를 얼마나 궁금하게 하는지... 몇날 며칠을 온갖 상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린 마음이지만 밥맛도 없는 것이었다. 3학년에 올라가서 자신의 교과서로 이 소설을 다시 만났다. 그리고는 또 고민하게 된다. 그렇게 중학생이 될 때까지 탈문맹은 그 뒤를 궁금해 하며 소설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설마 소년과 송아지가 모두 강물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것은 아니겠지...

 

 

여러 가지 설정이 가능했다. 둘 다 살아나오지 못한다면... 아...이런 비극이 또 있을까... 소년이 살고 송아지가 죽는다면... 소년의 비통한 마음을 어찌 글로다 말할 수 있을까.. 송아지는 살고 소년이 ... 이 또한 비극이 아니고 무엇이랴... 비극적으로 끝날 가능성이 훨씬 더 높은 소설이 아니던가... 물론 둘 다 사람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구출될 수도 있다. 그러나 강물이 엷어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설마 그렇게 죽기야 하겠어....읽기를 마친 후 어린 마음에 별의 별 생각을 다하게 만드는, 뒤가 궁금해 영 잊을 수 없게 만드는 소설이「송아지」였다.

 

사실은 아직도 그 추억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이 글을 쓰게 만든 소설이 바로 초등학교 2학년 때 다락방에서 형들의 책을 뒤져 읽은 「송아지」였던 것이다. 그렇게 궁금하게 만들어야 소설가의 직성이 풀리려나. 이게 바로 소설의 특징 중 하나라는 것을 나는 중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전쟁의 참담함을 전쟁을 모르는 어린 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에게 전쟁의 아픔을 보여주기에는 이만한 소설이 또 있을까. 황순원의 소설에는 송아지가 자주 등장한다. 그 유명한「소나기」에도 송아지가 등장한다.

 

 

 

누렁송아지였다. 아직 코뚜레도 꿰지 않았다. 소년이 고삐를 바투 잡아 쥐고 등을 긁어 주는 체 훌쩍 올라탔다. 송아지가 껑충거리며 돌아간다. 소녀의 흰 얼굴이, 분홍 스웨터가, 남색 스커트가, 안고 있는 꽃과 함께 범벅이 된다. 모두가 하 나의 큰 꽃묶음 같다. 어지럽다. 그러나, 내리지 않으리라. 자랑스러웠다.

 

 

 

황순원,「소나기」중에서

 

 

조선산 송아지의 다 자란 버전인 소는 유순하기로 이름이 나있는 터라 용감하다는 말이 우리의 소에게는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유순하여 평소 어린이의 손에 이끌려 다니기도 하지만 어린 새끼가 딸린 어미 소는 전혀 다른 모습니다. 과거 호랑이가 담배피던 시절 산 호랑이가 종종 민가에 나타나곤 했다. 그러나 새끼가 딸린 어미 소는 호랑이도 함부로 하지 못했다고 한다. 새끼를 지키기 위해 호랑이 용감히 맞서 새끼를 지켰다고 한다. 

 

 

조선의 소는 누렁소 이다. 정지용의 시 「향수」의 소재 중 하나는 ‘얼룩배기 황소’이다. 그 얼룩배기는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운다. 역시 누렁소인 것이다. 그런 누렁소는 농업 중심이었던 조선에서는 아주 귀한 존재였다. 역시 게으른 금빛 논과 밭을 갈거나 화물용 달구지를 끌어주는 그야말로 요즘의 트럭이나 다름없었다. 그 뿐이 아니다. 선조들은 소가 꿈에 나타나면 조상님이라 여겼다. 조선 후기 조선의 소는 약 100 가구당 하나 꼴이었다. 농사꾼들에게는 가장 유용한 수단을 제공했던 소는 귀하디 귀해 그 이름을 생구(生口)라 했다. 우리는 가족을 식구(食口)라 한다. 한마디로 밥을 함께 먹는 입(口)이 바로 식구인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신의 아내를 종종 안식구라고도 한다. 구(口)란 그렇게 호락호락한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 뜻 깊은 용어를 우리 선조들은 생구(生口)라 하여 소를 거의 가족의 반열에 올려 놓았다. 외출을 해서도 아무리 늦어도 꼭 집으로 돌아왔던 것은 바로 가족이나 다름없는 생구 때문이었다. 소에 대한 대우가 이렇듯 지극한 나라가 또 어디에 있을까.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시골의 많은 가정에서는 키우던 소를 팔이 자식을 대학에 보냈다. 아마도 소를 판 FM 장학금(파더 마더께서 주시는 장학금)으로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이 상당히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여 송아지는 소년에게 더없이 소중한 가족이요 친구요 미래의 성장 가능성을 뜻한다.

 

그렇게 귀한 송아지가 등장하는 소설로 문맹 소년은 그야말로 문맹을 떨쳐버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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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5-07-13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거 아세요~?
요즘은 더 이상 소가 파더 마더 장학금의 원천이 아니라죠.
송아지 한마리가 소로 자라는데 들어가는 밑천도 그렇지만,
소값보다 등록금이 몇배는 비싸서 말이지요~^^

차트랑 2015-07-13 14:34   좋아요 0 | URL
그거 아세요~?
활순원님이 송아지를 쓰던 시절에는 송아지 판 돈으로 등록금 했다는거요?

소 판 돈으로 등록금 하던 시절이,
아니 송아지 판 돈으로 등록금 하던 시절의 행복지수가 더 높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ㅠ.ㅠ.

현대에는 대출 받아 학자금했다가 갚지 못해서
금융제도권의 규제를 받는 젊은이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현실이던가요...

 

화제의 KBS 역사 토크쇼, 

출간과 동시에 역사 분야 1위에 올랐던


『역사저널 그날』 드디어 3권 출간! 

 

 



 

『역사저널 그날』은 매주 주말 저녁 인기리에 방영 중인 

KBS 교양 역사 토크쇼 「역사저널 그날」의 재미를 온전히 책으로 담았다.


  3권에서는 연산군 말년의 폭정을 시작으로 휘청거리기 시작한 조선이 중종반정과 임꺽정의 난, 정여립의 난 등을 거치면서 쇠락의 길로 접어들어 임진왜란이라는 국가적 위기를 맞이하기 직전까지의 과정을 다뤘다. 책의 후반부에서는 숱한 한계와 모순에도 불구하고 조선이라는 나라가 500년 이상 존속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세대와 신분을 초월한 뜨거운 교육열, 합리적인 인재 등용 절차였던 과거 제도, 『승정원일기』로 대표되는 철저한 기록 정신을 집중 조명했다.


  음모와 배신으로 점철되는 비정한 권력 다툼과 살아남기 위한 민중들의 투쟁, 지금보다 훨씬 치열했던 조선의 입시 전쟁 등을 따라가다 보면 수백 년 전 선조들의 삶이 오늘날 우리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1장    연산군의 몰락, 내시 김처선 죽던 날

2장    중종, 강제 이혼당한 날

3장    조선, 임꺽정과의 전쟁을 선포하다

4장    정철, 기축옥사 특검 되던 날

5장    조선을 뒤흔든 교육열

6장    83세 조선의 선비, 과거 급제하다

7장    승정원일기, 조선의 역사를 깨우다

 

<이벤트 참여방법>
 
1. 이벤트 기간
- 2015년 7월 9일 ~ 7월 14일 
- 당첨자 발표 : 7월 15일 (리뷰 작성 기간 : ~7월 26일)

 
2. 모집인원 
- 10명

 

3. 참여방법
- 이벤트 페이지를 자신의 개인블로그/알라딘 블로그에 스크랩 해주세요.(필수)
- 서평단 응모 링크(https://goo.gl/wiEUIv)를 클릭하여 설문지 작성
- 책을 읽고 싶은 이유와 함께 스크랩 주소를 댓글로 남겨주세요.
 

4. 당첨자 미션
- 도서 수령 후, 10일 이내에 개인블로그에 도서 리뷰를 올려주세요.
-서평 링크를 댓글로 달아주시면 됩니다.
- 서평이 등록되지 않는 경우 추후 서평단 선정에서 제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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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역린(逆鱗)」의 개봉과 동시에 관람을 했지만 관련 글을 쓰는 데는 1년 이상의 시간이 흘러버렸다. 늦어도 한참 늦은 북을 치는 중이랄까... 우리 역사의 가장 큰 획을 그은 왕들에 관련하는 도서나 영화 혹은 드리마가 적지 않다. 역린의 주인공 ‘정조’ 역시 그 중 하나여서 수많은 이야기꺼리를 가진 장본인이다. 영화를 보면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 몇 있어 나름대로 기록해두고 싶었는데 이제야 하게 되었다.

 

현대의 대중들에게 워낙 잘 알려진 정조는 ‘정조(正祖)’ 라는 묘호(廟號)만이 아니라 ‘산(算 혹은祘)’이라는 휘(諱)까지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 게다가 홍재(弘齋)라는 호(號)도 알려진 독특한 인물인데 이는 자신의 문집인 「홍재전서」 덕분이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서재에는 홍재(弘齋)라고 쓴 편액을 달았다고 한다. 정조(正祖)라는 묘호만으로도 조선의 22대 임금이 어떤 인물이었는지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정조는 임금이었기 망정이지 학자로서도 당대 모든 신하들의 추종을 불허하는 학자였고 그의 활은 신궁(神弓)이라 했다. 우리 역사를 통 털어 신궁이 셋이 있는데, 역시 잘 알다시피 1대 신궁은 고구려의 시조인 동명성왕, 즉 주몽이고 2대 신궁은 조선을 연 태조 이성계, 그리고 마지막이 정조인 것이다. 이러한 역사의 왕에 대놓고 살수를 보내는 역모를 꾸민 사건의 하루를 다룬 영화이니 어찌 궁금증이 생기지 않았겠는가... 임금을 살해하기위해 궁 안으로 살수를 보낸다... 중국에서도 진시황을 죽이기 위해 살수를 보낸 적이 있다고는 하지만 조선의 역사상 유일한, 전무후무한 일이 아니던가..

 

 

이 사건은 조선이 정치적으로 군약신강(君弱臣强)의 전형적인 형태를 가진 나라였다는 점을 명징하게 드러낸 사건으로 한마디로 임금 알기를 우습게 알던 시절의 전설이 아니고서야 발생하기 쉽지 않은 정치적 대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다. 드라마와 같은 이 영화를 보며 정말로 인상적이며 비극적이고 가슴 아픈 장면은 바로 정조의 친부인 사도세자의 죽음을 보여준 장면이었다.

 

 

영화는 사도 세자가 사망하던 당시의 장면을 그야말로 리얼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는 영조 38년, 즉 1762년 음력 5월 13일자로 뒤주 안에 갇힌다. 그 해의 5월은 윤달이었다. 양력으로 치면 1762년 7월 4일이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28세를 일기로 그가 숨을 거둔 날은 양력 7월 12일로 뒤주 안에 갇힌 상태로 사망하기까지 여드레가 걸렸다. 그가 갇힌 뒤주의 크기는 가로세로 약 160cm 의 크기였다. (뒤주 안에 가두어두는 것은 장인은 홍봉한의 아이디어라고 한다.) 사도세자의 키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기골이 장대한 무인의 기질을 타고난 인물이라고 역사는 전한다.

 

 

서울대의 해부학 교수들이 조선인(15-19세기)의 키를 연구한 결과 당시 성인 남자의 평균키는 161cm 이고 여성은 150cm 였다. 이는 유골의 넓적다리 뼈를 기준한 것으로 사람의 신장을 추정해내는 해부학적 근거를 가지며 인간의 신장 측정법으로 학계에서 그 정확성을 인정하고 있다고 한다. 참고로 당시 일본인들의 키는 우리 선조들의 키 보다 5∼6cm가 작았고 그리하여 왜놈이라고 불렀다는 전설이 있다.

 

 

당시의 평균 키을 기준으로 보아 기골이 장대했다는 증거는 그가 즐겨 사용했다는 월도(月刀)로도 짐작할 수 있다. 조선의 월도는 그 옛날 촉한의 운장(雲長)이 휘둘렀다는 월도(18kg)보다는 훨씬 더 가벼운 3근 14냥으로 약 2kg 정도이다. 무예도보통지는 정조의 명으로 백동수, 이덕무등이 완성한 조선의 군사 훈련용 병서로 이에 근거하여 월도의 무게를 알수 있다. 그러나 주인에 따라 월도의 무게나 길이에 약간의 차이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바는 영조 당시 이인좌의 난을 평정하는데 지대한 공을 세웠던 이삼장군의 월도가 그 증거이다. 이삼장군이 난을 평정하는 전투 과정에서 생긴 격검흔이 뚜렷한 월도로 길이는 191.5m, 무게는 2.9kg이다. 이를 근거로 추정해본다면 조선의 월도의 길이는 2∼3m 이고 무게는 2∼3kg 의 무게였을 것이다. 길이가 길고 적잖이 무거운 월도에 능했던 사도세자의 '기골이 장대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사도세자의 키는 평균치보다는 훨씬 웃돌았을 것이다. 비합리적일지는 모르겠으나 사도세자의 키를 170으로 설정해보자. 고려의 무인 척준경의 키가 당시 남달랐던 180cm 였다는 점을 감안할 때 170cm 라는 설정은 과장된 수치는 아니라고 본다. 그리고 뒤주의 크기는 160cm 이다. 키가 170cm인 사람이 가로세로 160cm인 뒤주 안에 갇힌다. 물론 대각선이 나오기는 한다. 수학은 이럴 때 필요한 것이다. ㅠㅠ.

 

 

이렇게 비좁은 뒤주 안에 사람이 갇혀 있고, 날씨는 요즘의 날씨를 염두에 두면 된다. 요즘처럼 태양은 뜨겁고 날은 무지무지 덥다. 밖에만 나가면 숨이 턱 막힌다. 뒤주에 몇 개의 구멍을 뚫어 숨구멍은 터주었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그리도 아니 이리도 무덥고 찌는 듯한 날에 비좁은 뒤주 안에 있는 그를 상상해 보시라. 물을 달라고 애원했지만 물 한 모금 가져다 준이는 없었다. 타는 갈증을 견디지 못하고 자신의 소변을 받아먹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직접 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살려달라는 목소리는 날이 갈수록 그 기운을 잃어갔다 (누군가는 그가 살려 달라 애원하지 않았을 것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자신이 정말로 죽어가고 있고,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에게 그 누구도 구원의 손길을 내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의 두려움...그 공포....

 

 

바로 이 한 장면이다. 기골이 컸던 그가 비좁은 뒤주 안에 쪼그린채 누워있다. 세자와 뒤주의 크기를 너무나도  잘 드러내어 그 고통을 리얼하고도 참으로 참담하게 표현했다. 튼튼한 밧줄들이 동서북으로  둘러싸고 있고 한 쪽이 비어있다. 그 비어있는 방향은 남쪽이다. 감독은 세자가 죽어서라도 남면(南面) 하기를 바랐던 것일까. 아니면 사후 그 아들이 아비를 장조(莊祖)로 추존 했다는 의미를 담고 싶었던 것일까.... 어째거나 이 한 장면은 세자가 처했던 당시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세자가 뒤주를 발로 차며 반발하자 누군가가 행여 뒤주가 부서질까 대못질을 했다한다. 또 누군가는 목이 타 들어가 애원하는 그 옆에 와서 술을 마시며 놀리기도 했다고 한다. 또 누군가는 세자가 타는 목마름을 이기지 못하고 자신의 소변을 받아 마셨다고도 한다. 세자의 모든 손톱은 뒤주를 긁고 긁어 죄다 망가져있다. 엉덩이 부분의 바지가 더렵혀진 모습도 보인다. 용변을 그대로 본 것이다. 영화를 보며 가슴이 메이는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어떤 이들은 사도세자의 죽음을 정치의 희생이라고 하고, 다른 이들은 세자가 미쳐서 살인을 함부로 저질렀던 광인이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또 어떤 이는 둘 다가 그 이유라 했다. 항간에는 사도세자의 모친인 영빈 이씨가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아가는데 지대한 영향력을 끼쳤다고도 한다. 아마도 그의 죽음이 정신질환으로 인한 결정이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당시 조선에서는 정신질환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이는 일은 없었으니 이 또한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도 아니다.

 

 

 

 

 

 

 

 

 

 

 

 

 

 

 

어째거나 아비가 자식을 죽이고, 아비가 뒤주 안에 갇혀 죽어가는 모습을 그 자식이 목격하는 비극적 사건임에는 틀림이 없다. 영조는 그렇게 자식을 죽이고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죽은 자식의 비문을 받아쓰도록 했고 그 이름을 서럽고 슬프다는 뜻을 가진 사도(思悼)라 했다. 영빈 이씨 또한 자식의 죽은 2년 뒤 사망하고 만다. 죽을 죄를 지었든 아니었든 자식을 잃은 어미의 마음이 어찌 편했으랴...

 

 

영화의 한 장면이 끝내 잊혀지지 않는 것은 자식도 적(敵)일 수 있다는 왕권의 특수한 상황도 아니요, 세자의 죽음에 대한 의문도 아니며, 현실감 넘치도록 당시 상황을 재현해 내는데 성공한 미술감독의 배치도 아니다. 자식을 죽음으로 몰아간 비정했던 한 아비와 뒤주 안에서 죽음을 강제 당한 한 인간의 겪었던 8일 간의 슬픔, 두려움 그리고 좌절, 그렇게 죽어가는 아비를 목격할 수 밖에 없었던 무기력했던 그 아들의 심경이다. 때는 253년 전 7월의 무덥고 찌던 여름의 일이라 더더욱 가슴이 아프고 슬프다(悼).. 과연 인간은 왜 사는가... 태어났기 때문에 사는 것인가, 누구 말대로 행복을 추구하려고 사는 것인가....

 

 

 

 

 

 

죽음의 원인이 무엇인지 나는 정확히는 알수 없으나 한 인간의 죽음을 깊이 애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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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도미노 공부법 - 한 문제를 이해하면 백 문제가 ‘와르르’ 풀리는 가장 단순한 공부 원리
권종철 지음 / 다산에듀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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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라는 말은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살아가는 이상 늘 화두일 수밖에 없다. 공부는 예나 지금이나 가문의 명예는 물론 일신을 드높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알고 보면 순식간에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것이 시험이었다.

 

몽룡이는 한양에서 치루는 과거시험에 장원했다는 증서인 홍패와 어사의 증표인 마패를 가지고 돌아가서는 변 사또를 순식간에 박살냄과 동시에 춘향이를 차지하지 않던가. 한마디로 아무것도 아니었던 넘이 급제하는 순간 온갖 권력을 손에 쥐는 것이 과거라는 시험이었다. 그야말로 인생 역전을 가능케 하는 과거제도가 고려의 광종에서 시작하여 조선을 거쳐 현재에 이르렀다. 오죽했으면 불법으로 대신 시험을 쳐주는 사수(寫手), 거벽(巨擘)이라는 과거시험 대행업을 하는 사람까지 생겨났을까. 조선의 과거시험 부정행위가 이만 저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는 시험의 중요성을 대변하는 스토리이다.  

 

현대의 시험은 더더욱 치열하여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라고 말은 하면서도 행동으로는 ‘사실은 행복은 성적순이에요’라고 말하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인재의 기존 등용 방법이 획기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공부에 대한 인식은 결코 바뀌지 않을 것이며 영원한 화두가 될 것이다.

 

「도미노 공부법」은 기존의 다양한 책들이 소개하는 공부법과는 접근 방법에서 차이가 큰 책이다. 다음은 인상적인 몇 부분들이다.

 

 

1. 선행학습에 대한 저자의 견해

 

장거리 경주에서 중요한 것은 출발점에서 먼저 치고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 장거리 경주를 견딜 수 있는 기초 체력 69쪽

 

먼저 안다고 깊이 아는 것이 아니다. 시험에서 고득점을 보장해 주는 것은 먼저 아는 것이 아니라 깊이 아는 것이다. 71쪽

 

부연 설명이 필요치 않은 위의 견해는 선행학습에 강박적인 학부모들께 좋은 참고가 될 수 있다고 본다.

 

 

2. 영어의 포인트

 

저자는 영어 공부의 첫 번째 도미노를 문.장.구.조.라고 말한다.

 

한 문장, 한 문장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241쪽

 

영어 문장을 번역하듯이 한국말로 옮겨보는 훈련 245쪽

 

당연한 말로 들리겠지만 일선 학원에서 가르치는 방법은 그러하지 못하다. 영문법과 읽기능력을 별개의 것으로 인식하거나 가르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다수를 상대로 가르쳐야하는 교육의 현장에서 일일이 각 개인의 읽기 능력을 점검해준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이 문제에 대한 방법을 저자가 제시해주고 있지만 한권의 책에서 못 다한 말이 많아 보인다.

 

「도미노 공부법」은 분명 기존의 유사 저술들과 차이점이 있다. 중요한 것은 저자가 언급하듯이 관점이다. 공부를 어떻게 바라보느냐 이다. 학부모들께서 먼저 읽으시고 학생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기를 추천 드린다. 분명 얻는 바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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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5-07-07 0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인가요?얻는 것이 있나요?

오랜만입니다^^
잘지내시는지 늘 궁금하였는데 건재하시군요~~다행한 일입니다^^

차트랑 2015-07-07 0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읽는 나무님, 오랫만이고 또 반갑습니다

중고등학생의 자녀를 가진 학부모님들께 기존과는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줄 수 있는 책이라
여깁니다.
그러나 이것은 저의 생각일 뿐 다른 학부모님들께서는 또 어떠실지
모르겠습니다 ㅠ. ㅠ.

저의 서재를 찾아주시어 고맙습니다 책읽는 나무님,
평안하시고 즐거운 하루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