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영국은 커다란 아킬레스 건을 하나 가지고 있는 나라이다. 식민지를 수탈해 영화를 누리던 시절도 갔고, 서서히 열강의 대열에서 뒤로 쳐지면서 그간 고통도 많이 겪었다. 쇠락한 영국을 새롭게 탈바꿈하고자 했고 그 핵심에는 대처 수상이 있었다는 것 외에는 아직은 과거의 영화를 되찾지 못하고 있다. 한 가지 있기는 하다. 알파고의 나라이다.

 

아, 그 아킬레스건이 무엇이냐 하면, 영국은 건국신화가 딱히 없다는 것이 그것이다. 하이랜더나 로빈 후드와 같은 전설은 많지만 이는 우리의 단군신화와 같은 수준은 절대로 아니다.

 

이 책은 알라딘에서 구입해 읽은 책입니다. 영국인의 입장이 아닌 프랑스인의 입장인지라 아무래도 약간이나마 다른 관점을 보여주지 않을까 하여 선택을 했습니다.  

 

행여 영국이 한국인의 스토리인 단군신화를 부러워하랴 싶겠지만 그것이 꼭 그렇지가 않다. 영국의 역사를 뒤져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어린 학생들이 보는 만화 수준의 영국 역사를 뒤지더라도 말이다.

 

미국인들은 자칭 자신들의 나라를, 섞여있으나 각각의 개성이 살아있는 샐러드 보울 (Salad bowl) 이라고 하는데 영국은 한마디로 죄다 녹아있는 도가니 탕(Melting Pot)의 나라이다. 로마의 침입과 지배, 작센 지방의 앵글로 족, 색슨 족, 스칸디나비아의 바이킹 족, 덴마크의 데인족, 노르망디의 노르만족 등의 수없이 많은 침입을 받았다. 그 결과 켈트, 로마, 앵글로색슨, 데인, 바이킹, 노르만 등 수없이 많은 민족이 혼잡한 인구 구성을 가졌다.

 

2,000 여 년 전 이면 한반도의 북쪽에서는 고주몽께서 나라를 세워 고구려의 동명성왕으로 등극을 하여 대륙으로 그 세력 확장을 꿈꾸고, 중국에서는 한고조가 나라를 평정한 후 제후국을 거느라고 나라를 통치하던 그 시절이었다. 당시 영국은 로마의 지배자 시저의 침략을 받아 정복당한 후 로마 문화에 깊이 경도되었다. 그 뿌리는 영국의 본토에 매우 깊이 파고들었다. 라틴 문화가 영국의 런던을 중심으로 전국에 퍼져나간 것이다. 36년이라는 일제의 강점기는 우리나라에 일제의 문화 흔적을 아직도 확연히 남기기에 충분한 기간이었다는 점을 감안해보자. 로마는 30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영국을 지배했다. 라틴 문화의 뿌리가 뼛속 깊이 스며들기에 충분한 기간이 아닐까...

 

그러다가는 본국에 다급한 일이 생기자 로마군대는 바로 본국으로 철수했다. 로마의 침략을 피해 도망갔던 스코트 족은 자리가 비었다 생각하고는 영국 본토를 습격한다. 다급해진 켈트족은 색슨 족에게 SOS를 친다. 거칠고 잔인하며 포악한 민족으로 알려진 게르만 족, 즉 색슨 족은 이게 웬 떡이냐 하고 달려왔다.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고 흔쾌히 물을 건너온 것은 거리가 가까워서이기도 하거나와 다 꿍꿍이가 있어서인 게다. 도와주기는 커녕 되려 켈트족을 아작 내버린다. 색슨 족의 배신에 치를 떨며 켈트족은 아이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 등으로 뿔뿔이 흩어져 도망친다. 이 소식을 접한 앵글로 족이 얌전히 있을 리 만무하다. 이참에 나도 좀 하면서 바로 섬나라도 들어와 한자리를 차지한다.

 

결과적으로 영국은 켈트, 로마, 데인, 바이킹, 노르만인 들이 어우러 살다가는 앵글로와 색슨족이 마지막 본토 정리를 끝낸 후에야 국가다운 면모를 갖추게 된 것이다. 결국 국호도 ‘앵글로 족이 사는 나라’ 라는 뜻의 ‘앵글랜드’가 결국 잉글랜드가 된 것이다. 주를 이루는 영국 문화는 라틴 문화에 앵글로 색슨 문화의 혼합 형태이다. 영국을 도가니탕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바로 그들의 역사인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영국은 역사적으로 유구하고 고유한 건국 신화가 부재한 입장이 되어버렸다. 영국인들은 대부분의 나라들이 가지고 있는 건국 신화의 부재라는 말 못할, 그러나 내심 남을 부러워하는 약점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인도를 셰익스피어와 바꾸지 않겠다 라는 오만 방자하고도 허풍이 쩌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는 것이다. 건국 신화의 부재에서 오는 열등의식의 발로이며 보상 심리가 작용한 발언이라고 생각하는 이유이다.

 

이러한 심리적 약점은 영국인들로 하여금 행동 과잉과 같은 현상을 보여주기도 했는데 바로 「해리포터」의 전설이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 생각한다. 사실 해리포터가 뜨기 전에는 판타지가 전 세계를 강타한 적은 없는 듯하다. 판타지가 문학의 장르로서 어느 정도의 위상을 가지는 지 나로서는 알 수 없다. 한동안 국내의 전문가들이 장르로서의 판타지를 논하며 갑을 박론하던 장면을 텔레비전에서 잠시 본 적이 있다. 어째거나 그 열기가 한 때 반짝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당장에는 고전의 반열에 오르기에는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싶다. 진정한 고전은 생명력이 길다. 트렌드와는 분명하게 구별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물론 시간이 흘러 고전의 반열에 오르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말이다. 

 

이렇듯 영국은 셰익스피어나 조앤 K. 롤링과 같은 사람들의 작품을 전폭적인 마게팅 전략으로 띄울 정신적 준비가 잘 되어있을 수밖에 없다. 건국 신화의 부재는 대리만족을 끊임없이 원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셰익스피어는 그 작품성을 인정받아 생명력을 지속해왔다는 점이 해리포터와는 차이 점이라 할 수 있다.

 

역사와 국민의 심리는 서로 분리해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개인이 경험한 과거가 현재의 심리에 적확하게 드러날 수밖에 없는 것처럼 말이다. 앞으로는 국내 기사에서 셰익스피어를 나라는 내어주어도... 혹은 인도와 연관 짖는 허무맹랑한 소개가 아닌 좀 더 아름다운 소개를 받고 싶다. 인도가 나의 조국은 아니지만 듣는 이 독자 별로 유쾌하지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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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아침 뉴스검색을 하던 중 「400년 전 오늘, 영국의 보물 셰익스피어 잠들다」라는 기사를 읽었다.

 

세르반데스와 같은 해, 같은 날 사망했다고 전하며 ‘세계 책의 날’로 지정했다는 기사이다. (누가 이 날을 이리 정했냐하면 바로 유네스코라고 한다. 정식 명칭은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 이지 말입니다. 책을 빙자해 저.작.권.에 방점을 둔 말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죄측의 책은 읽어서 상품 넣기를 한 것이 아니라, 허전해서 넣은 것 입니다. 게다가 셰익스피어를 나라와 어쩌구 한 발언들에 빈정도 상했고요.

 

기사를 읽다보니 왠지 빈정 팍- 상해버린다. 그렇다고 셰익스피어라는 인물과 그의 작품을 폄하하자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하긴 18세에 학업을 중단하고 일을 시작한 그가 정말 그 많은 작품을 그것도 그 정도의 수준으로 과연 쓸 수가 있었을까, 하는 의심을 전문가들로부터 받고는 있지만 이는 다만 심증일 뿐 물적 증거가 제대로 없는 형편이기는 하다.

 

400년 전, 그러니까 1616년 4월 23일, 그가 사망했다고 한다. 기사는 더불어 영국의 여왕 엘리자베스와 당대 비평가 칼라일의 발언을 함께 실었는데 바로 이것이 나의 빈정을 제대로 상하게 해버린 것이다. (셰익스피어에게는 아무런 감정이 없는 일인이다)

 

기사에 의하면, 여왕 엘리자베스는 “나라는 내어주어도 셰익스피어는 내줄 수 없다.” 라고 했으며 칼라일은 “셰익스피어와 인도를 바꾸지 않겠다.” 라고 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한때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본 말이기는 하다. 츠암내~ 내 입장이라면 영국에다가 셰익스피어를 얹어주어도 인도와 바꾸지 않겠다. 이것이 이 글의 방점이다. (권한이 없기는 엘리자베스나 나나 매 한가지이니 이런 말을 하는 것이지 말입니다)

 

하기야 셰익스피어가 세계적으로 정말 유명하기는 유명한 인물인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나와 같은 시골 상 무지렁이도 중학교 때 이미 완역본 셰익스피어 전집을 읽지 않았던가. 이는 당시 우리집이 책을 살 형편이 있었다거나 책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친척이 당시 책장사를 하는 바람에 인지상정 우리 집에서 구입해준 덕분이다. 당숙께서는 그 시골 깡촌의 상 깡촌인 우리 집에 자주 들르셨다. 중학교 때 국어선생님께 들어본 적이 있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물론「데카메론」, 「죄와 벌」 기타 등등 상 깡촌 치고는 적잖은 책들을 우르르 몰고 오셨다. 한마디로 영업을 하러 오신 것이었다. 나는 물론 내 수준에 맞는 책인지 아닌지도 모르고 무작정 읽었다.

 

그러니까 내 말은, 나 중학교 때 셰익스피어를 읽었소! 가 아니라 그 작가가 물을 건너도 한참 건너고 산을 넘어도 한참을 넘어야하는 대한민국의 까마득한 시골 강촌에 나타날 만큼 유명 인사였다는 데 방점이 있는 것이다. 사실 중학생이 읽었다고는 하나 결과는 읽으나 마나인 수준이었을 테니 하는 말이다. 스토리나 알지 그 내면을 어찌 중학생인 내가 통찰하여 알아 먹을 수 있었으랴...

 

나이가 더 들어 상경을 하니 교수님들께서 하시는 말씀은, 그야말로 허걱~ 이었다. 셰익스피어를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은 자들이 100명도 더 넘는다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듣자마자 내 입은 쩌억~ 벌어지면서, 와우~~! 했던 것이다. 없던 한글을 새로 맹근 세종대왕 보다 더 유명한 인물이란 말이던가?? 했다. 지금은 세월이 더 흘렀으니 셰익스피어 관련 박사 학위 소지지가 200명쯤 될까?

 

 

돈키호테는 정말 마음 다잡고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읽어야 할 책들이 많아 순위에서 계속 밀리고는 있지만 그 진가를 제대로 확인하고 싶다. 철모르던 그 어린 시절의 시각이 아닌, 그보다는 좀더 성숙한 시각으로 말이다. 출판업자들의 상술 덕분에 그 가치를 제대로 인지 할 기회를 우리는 너무나도 많이 잃어버렸다. 그런 책이 하나 둘이 아니기에 하는 말이다. 고전을 고전 답에 읽어야 하거늘, 상술은 귀한 고전들을 어린 시절 잠시 거쳐가는 책으로 전락 시켜버렸다. 이 출판을, 고전을 고전답게 음미해보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이유이다. 감사할 따름이다.

 

각설하고, 아무리 자기가 나라를 통치하던 시절이라고는 하나, 나라가 뭐 자기껀가 내어주고 말고하게? (물론 당시는 나라가 자기 소유라고 생각하던 시절이다) 자신의 입과 혀가 되어준 인물이 셰익스피어라고는 하나, 나라를 내어줄지언정 셰익스피어를 내줄 수 없다니... 기사를 읽는 이 독자 아침부터 빈정 상한다.

 

사실 이 겁도 없는 두 냥반의 발언은 잘 새겨들어야 하는 말들이다. 다들 알다시피 당시 영국은 전 세계 곳곳을 자기네 나라로 삼고 싶어하던 시절이었다. 한마디로 무서울 게 없고 잘 나가던 시절이었으니, 나라 하나쯤은 잃어도 상없다는 뜻이 담겨있다고 볼 수 있는 발언 말이다.

 

알고 보면 나라를 선뜻 내어주곤 하던 나라는 영국이 아니라 중국이었다. 중국은 땅이 하도 넓다보니 패왕은 제후국을 다스릴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비행기나 KTX가 있던 시절도 아니고, 직접적인 통제가 거의 불가능했다. 예를 들어 주왕(周王)은 상(商)나라를 꿀꺽한 후, 일등공신이었던 강상(姜尙)을 내칠 요량으로 멀 찌기에 있는 제(齊)나라를 떼어주고 제후국으로 삼았다. 이는 400년 전이 아니라 4,000년도 더 넘은 이야기이다. 이렇게 누군가에게 나라를 떼어주던 중국의 전통은 계속 이어졌다. 2,000여 년이 조금 넘은 시점에도 한고조는 일등 공신이었던 한신에게 초나라를 떼어주고 초왕으로 봉했다. 물론 한신은 한고조의 심기를 건드려 끝내 토사구팽이라는 사자성어를 남기면서 죽음을 당하지만 말이다. 이렇게 나라를 떼어주던 일이 하나 둘이 아닌 것이 중국이었다.   

 

영국의 엘리자베스의 시대는 전 세계가 마치 자신의 통치하에 있다고 여기며 기고만장 하던 그 시절이었다. 그러니까 그녀의 발언은 식민지 하나쯤은 내주어도 셰익스피어는 못 내놓겠다는 뜻으로 한 말인 것이다. 이 얼마나 발칙하고도 무례한 발언이던가.

 

칼라일의 발언 역시 지극히 도발적이고 싸가지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싹수라고는 도대체가 없는 발언이기는 마찬가지다. 인도인이 이 말을 듣는다면? 칼라일의 발언은 어쩌면 인.도.가 조.선.으로 바뀌었을지도 모르는 시절이었다.이 두 냥반들이 무기탄하게 뱉어낸 발언은 인도를 완전 무시한 발언이기도 하거니와 알고 보면 인도가 조선이 되었을 수도 있던 시절의 이야기이고, 본디 싹수가 노란 사람들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그 발언을 그대로 옮겨 쓴 기자 냥반은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단 말인가? 셰익스피어의 유명세를 빌려 책의 날을 강조하다보니 아차 실수를 저지른 기사로 보이기는 하지만, 글을 쓰기 전에 남들보다 생각을 한 번 더 해 본 후에 글을 써야 하는 사람이 기자 냥반이 아니던가?

 

그럼 그 많던 식민지 중에 왜 하필 인도였을까. 인도는 땅도 겁나 넓고 인구도 겁나 많아 영국의 입장에서 생산성으로 치면 그 중요성은 말할 나위가 없는 나라였다. 17세기 당시는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가 인도를 서로 차지하겠다고 다투던 시기였다. 영국이 막상 인도를 차지하고 보니 인도인들이 선뜻 자신들의 뜻에 따라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동인도 회사를 설립, 전 세계를 수탈하는 전초기지로 인도를 사용하고 있었으나 인도를 결코 무력으로 구속할 수가 없었다. 하여 나는 칼라일이 인도와 셰익스피어를 어쩌구 하는 말도 안 되는 소릴 지껄인 것은, 인도는 결코 자신들의 뜻대로 움직여주는 만만한 나라가 아니었음을 개탄하는 소리로 들리는 이유이다.

 

인도는 공자가 자로의 질문에 답하며 가르친 남방지강(南方之强)의 대표적인 나라이다. 무력으로는 절대로, 절대로 날로 먹을 수 없는 그 남방지강 말이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사정이 이와 같으니 칼라일의 발언은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고, 신 포도를 바라보는 아쉬운 심정으로 내뱉은 말이 바로, 셰익스피어와 인도 어쩌구 라는 말이다, 이 기자 냥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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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이었는지 품절이었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둘 중 하나의 이유로 책을 구매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알라딘 중고를 검색해보았으나 가격을 겁나겁나 높게 정해놓았다.

 

그런데 도서를 검색 하던 중, 우연히 재판매 중인 거다.

오호홋~! 바로 장을 보았다.

 

 이 책을 많이도 기다렸다. 알라디너라면 거의 모를리가 없는 에코는 한마디로 대표적인 표절 작가이다. 나 표절했소~! 라고 대놓고 천명한 작가이기도 하지 말입니다. 자신의 표절 선언을 바로 이 책, 장미의 이름 작가 노트에서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 만으로도 나는 이 책에 흥미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자신을 표절 작가라고 천명한 에코를 정작 평론가들이나 독자들은 그 어느 누구도 에코를 표절작가라고 부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되려 창의적이고 훌륭한 작품이라고 호평한다는 사실이다.

갑자기 우리 나라의 어느 작가가 잠시 떠올랐다가는 사라졌다. 

 

한때 대학가에서는 장미의 이름을 읽었네, 읽지 않았네로 갈리면서 너 그거 읽아 봤나, 것도 안 읽었단 말이냐, 로 끝이 나던 책, 장미의 이름이다. 그런데 더 재밋는 것은 읽은 사람이나 읽지 않는 사람이나 별반 차이가 없었다는 사실, 변함없는 사실은 읽었다 읽지 않았다는 것일 뿐.

 

사실은 셜록 흠즈와 장미의 이름, 회남자와 중용, 이들 간에는 약간의 공통점이 있어 서재글을 써보려했으나 게을러 그러지 못했다. 물론 책이 도착하는 날까지 여유도 있고...  

 

 

사실이고 오실이고 간에

사실은 이런 이야기를 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사실은 슈베르트의 작품, 물위에서 노래함 이라는 곡을  포스팅하려던 참이었다.

사실은 가을 분위기가 왠지 나는 노래인데 봄비에 그냥 생각이 났다.

이안 보스트리지가 부르면 사계절 맛이 다 나기도 한다.

물 위에서 노래함 인데 엉뚱하게 겨울이 생각나기도 하는...

(강물이 얼어붙은 겨울에 무슨 물 위에서 노래함??) 

 

오늘은 한마디로 아침부터 비가 이쁘게 내리고 있었다. 지난 밤 부터 내린 비 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참 이쁘게도 내린다.

곡우에 미처 내리지 못한 아쉬움 때문일까...

한 해의 농사를 시작하는 농부들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비일 것이다.

그 마음을 조금은 알듯도 하지만 말이다..

 

노래를 정말 겁나겁나 잘 부르는 냥반,

불구하고 팬에 대한 서비스 정신은 세상에서 평판이 겁나겁나 나쁜 냥반에 속하는 냥반,

이안 보스트리지이다.

 

 

 

가사는 어디에선가 긁어와 붙였습니다.

한마디로 표절한거지요 ㅠ.ㅠ 

가사의 한글 내용은 봄 비를 기다리는 농부의 마음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라 생략합니다 ㅠ.ㅠ

 

좌측 이미지는 아래의 노래가 실린 음반인데...

품절이라고 하네요 ㅠ.ㅠ

왜 마음에 드는 상품들이 죄다 품절인지 원...

 

 

 

 

 

물 위에서 노래함

 

 

Auf dem Wasser zu singen

 

Mitten im Schimmer der spiegelnden Wellen
Gleitet, wie Schwäne, der wankende Kahn;
Ach, auf der Freude sanftschimmernden Wellen
Gleitet die Seele dahin wie der Kahn,
Ach, auf der Freude sanftschimmernden Wellen
Gleitet die Seele dahin wie der Kahn;
Denn von dem Himmel herab auf die Wellen
Tanzet das Abendrot rund um den Kahn,
Tanzet das Abendrot rund um den Kahn.

Über den Wipfeln des westlichen Haines
Winket uns freundlich der rötliche Schein;
Unter den Zweigen des östlichen Haines
Säuselt der Kalmus im rötlichen Schein,
Unter den Zweigen des östlichen Haines
Säuselt der Kalmus im rötlichen Schein;
Freude des Himmels und Ruhe des Haines
Atmet die Seel im errötenden Schein,
Atmet die Seel im errötenden Schein.

Ach, es entschwindet mit tauigem Flügel
Mir auf den wiegenden Wellen die Zeit.
Morgen entschwinde mit schimmerndem Flügel
Wieder wie gestern und heute die Zeit,
Morgen entschwinde mit schimmerndem Flügel
Wieder wie gestern und heute die Zeit,
Bis ich auf höherem strahlenden Flügel
Selber entschwinde der wechselnden Zeit,
Selber entschwinde der wechselnden Ze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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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리 명강 - 하나의 원리로 실전까지 통하는 사주역학의 정석
김학목 지음 / 판미동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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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러하지만 저서의 서문을 매우 중시하는 일인이다. 서문에서 저자는 “시간은 공간의 흐름이고 공간은 시간의 내용이다.” 라고 적고 있다. 이는 시간과 공간의 유기성을 설명한 아인시타인의 사유와 다르지 않다. 명리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공에 담긴 음양 오행론이라는 점을 인식하며 이 책을 읽어가야 하는 이유이다.

 

더불어 명리에 대한 통념을 넘어 ‘수양을 위한 공부’로 인식하는 저자의 입장에 적극 공감하는 바이다. 오행에 대한 바른 이해는 절대성을 가지는 타자에 의존하는 사유를 뛰어 넘는다는 저자의 사유가 특기할만하다 하겠다.

 

 

「명리명강」을 일독한 후의 사적인 견해는 다음과 같다.

우선, 명리에 입문하려는 독자에게 기초 지식을 이보다 더 잘 설명해주고 있는 책은 만나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특히 음양 오행의 요체를 매우 이해하기 쉽도록 첨언해주고 있다. 더불어 동양 철학의 이해를 돕는데 수고로움을 아끼지 않는다. 입문자들의 입에 맞는 오행의 작동 원리와 음양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대표적인 예가 10천간과 12지지에 대한 저자의 견해 피력이다. 더우기 오화(午火) 와 사화(巳火)에 대한 음양론은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당연한 설명이라고 여길지도 모르지만 巳午의 음양론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갑을 박론의 대상인 것이다.

 

 

사실, 대부분의 명리서 들은 동양철학의 이해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이해를 위한 핵심 부분을 도려낸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명리 명강은 동양철학의 사유로 시작하여 끝을 맺는다. 이 책을 인정하고 싶은 이유이다. 일반적인 해당 서적들은 작정하고 배우겠다는, 작심을 한 사람들을 위한 출판물. 즉 기초지식을 이미 겸비한 독자들을 대상으로 한다. 하여 기본적인 전문 용어에 대한 설명이 전무하다시피 한다. 대표적인 예가 사주정설 혹은 추명가이다. 사주정설은 그 내용이 탁월하여 전문가들도 초보들에게 흔히 권하는 책이다. 비록 핵심적인 내용을 가졌다고는 하나 설명을 도려낸 사주정설은 일반 독자들에게는 힘에 부칠 수밖에 없다. 이는 내용이 알차면서도 쉽게 권할만한 책이 딱히 없다시피 하다는 반증이기도 한 것이다. 명리란 이런 것이다, 라고 선언은 하고 있지만 설명이 철저하게 배제된 기존의 해당 서적들은 마치 고등학생들에게 수학의 정석과도 같은 책이다. 독학으로 보다는 학원에 가야만 비로소 쓸 수 있는 그런 참고서 말이다.

 

 

「명리명강」은 접근성 측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본다. 물론 이러한 시도가 전에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아쉬 쉽게 설명하려 시도한 책이 있었는데 접근성이라는 장점을 보여주기는 했으나 핵심 부분에서 치명적인 결함, 아니 오류를 가지고 있었다. 오류를 필터링을 할 정도의 독자라면 이미 초보는 아니므로 애초의 의도 와는 달리 읽으나 마나한 책이 되어버렸다. 하여 입문용으로 추천하는데 꺼릴 수 밖에 없었다.

 

 

명리명강은 입문하려는 독자들에게 기존의 전문서들이 가지는 장애물을 완벽하게 허물에 버렸을 뿐만 아니라 완성도가 매우 높은 책이다. 물론 책 한권으로 특정 분야를 섭렵할 수 있다는 생각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은 누구나 잘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위에서 언급한 장점도 장점이지만 독자로서 가장 큰 장점으로 꼽고 싶은 내용은 따로 있다. 저자는 명리를 바라보는 바른 입장을 매우 잘 설명하고 있다. 명리를 공부하는 사람이 가져야 할 태도, 바로 그것이다. 사적으로는 명리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한 덕목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 일인이다.

 

 

이는 마치 검술(劍術)을 익히려는 자가 가져야할 태도만큼이나 중요한 사항이다. 검술을 단지 검술만을 위해 익히게 될 때, 검을 잡은 그 손은 자비를 모르게 된다. 검의 날을 예리하게 세우고 휘두르기로는 기탄이 없게 된다. 주위의 사람들은 그 검기에 놀라고 위협을 느끼게 된다. 이는 술(術)만을 목적으로 검을 익혔기 때문이다. 검을 들기 이전에 먼저 손에 들어야 하는 것이 바로 道이다. 검에 도가 있음을 모르고 익히게 되면 자신은 물론 반드시 사람을 상하게 하기 마련이다.

 

 

도를 잊은 검술사는 검을 빼어 화려하게 휘두를 줄은 알되, 언제 왜 어떻게 그 검을 사용해야 하는가 하는 명분 없는 칼잡이가 될 뿐이다. 심지어는 돈을 주면 주저함을 모르고 사람도 해질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 된다. 이런 이를 검술사라고도 하고 검객이라고도 하며 칼잡이라고도 한다. 검을 다스리는데 도가 따라야 하는 이유이다.

 

 

명리도 이와 다를 바가 없다. 칼잡이는 허리에 찬 칼을 보고 그가 위험한 인물인 줄 알고 멀리 하겠지만, 명리술사는 티가 나지 않아 조우하면 다치는 수가 있다. 무방비 상태에서 마주칠 수 있는 존재가 명리술사이니 그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가... 하여 때로는 무슨 살(殺)을 없애주겠다는 명분으로 고가의 부적 장사를 하는 술사들이 허다한 실정이다.  어찌 가지고 태어난 살을 부적으로 막아 낼 수가 있으랴... 이는 술사들이 자신들의 이를 쫒아 혹세무민하는 대표적 사례라 하겠다. 명리의 도를 망각하면 흔히 일이 이렇게 된다.

 

 

저자는 바로 이러함 점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저자의 태도에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도가 명리에 앞설 때 명리는 바르게 쓰일 것이고, 명리의 길을 바르게 걷는 자 상대방에게 상처가 아닌 치유를 줄 것이라 믿는다.

 

 

 

그렇다고 아쉬움 점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격국용신론과 같은 이론을 기준으로 이 책을 비판하지 말고, 이렇게 사주를 볼 경우 이 이론 자체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실제로 체험해본 다음에 비판해주기를 부탁 드린다.”(297쪽) 라고 썼다.

 

 

허나, 용신 없는 간명이 과연 가능한 일인지 저자에게 되묻고 싶다. 용신은 글자를 읽어가는 열쇠라는 점을 저자께서 그 누구보다 더 잘 아시리라 믿는다. 용신은 글자를 풀어가는 방향키이다. 내로라는 전문가들도 갑을 박론하는 것이 용신이 아니던가.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은 바로 용신을 잘못 잡았을 때 정확히 들어맞는 말이다. 이는 마치 용입수를 모르고 득파와 좌향을 잡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이런 관점으로 볼때, 독학 입문자들에게 명리를 안내하는 제대로 된 책이면서도 간명의 필수적인 용신을 생략한 것은 입문자들에 대한 저자의 배려일 것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용신을 잡는 일은 간명의 핵심이기에 그만큼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하여 독자들께 용신을 언급하여 그 난해함을 인식시키지 않으려는 저자의 배려가 깃든 저술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용신을 언급하지 않은 점은 저자의 고육계라 여기는 바 이고, 그렇다면 영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마음이 아플 뿐이다.

 

 

하여 격국까지는 아니더라도 용신에 대해서는 따로이 책을 내에 자세히 설명하는 것이 저자께서 할 일이 아닌가 생각하는 바이다. 명리명강에서 흔히들 어렵다고 여기는 바를 이토록 쉽게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저자가 아니던가. 기왕 시작한 마당에 용신을 이해시키고 자신과 가족들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는 경지에는 올려 놓아주시기를 당부 드리고 싶을 뿐이다.

 

 

혹시라도 명리를 알고 싶은 독자 분들이 계시되 선생님이 없는 경우라면 이 명리명강을 여유를 가지고 독파하시기 바라는 바입니다. 혹여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잠시 쉬었다가 재차 읽어보시면 이 책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이해하실 수 있으리라 여깁니다.

 

 

PS : 깜박 할 뻔 했지 말입니다.

 

천을귀인에 대한 저자의 부연은 정말로 유익했다. 흔히 대가의 반열에 올라있다는 분들도 신살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분위기이다. 되려 명리와는 별 관계가 없는 냥반들의 입에 더 자주 오르내리는 실정이니 말이다. 저자의 말씀대로 합형충을 파해보다 훨씬 더 무겁게 쓰는 것은 자명하나 신살은 흔히 그렇지가 못하다. 명리가 들이 주로 언급하는 신살로는 그 많은 것들 중에 겨우 괴강, 백호, 역마, 양인, 도화, 홍염, 귀문, 상문 정도이다. 그런데 오랜 임상 후 전문가로서 천을귀인을 이토록 실감나게 언급하신 저자는 처임이지 말입니다. 이건 신선한 충격이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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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봉기 2018-06-17 0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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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판미동 출판사 입니다.

 

신간 도서 『명리 명강』의 서평단을 모집합니다.

 

명리학은 나 자신을 돌아보고 영혼을 성숙시키는 최고의 공부다

현재의 삶이 뜻대로 풀리지 않고, 미래의 내가 정말로 궁금하다면? 

삶을 통찰하는 동양 철학의 정수

원리부터 실전 적용까지

한 권으로 통하는 명리 15

 

 

인간과 우주를 아우르는 체계적인 명리의 정석

원리부터 실전까지 명리학을 체계적으로 익히고 자신의 본성과 운명을 이해하여 삶을 전체적인 시각에서 조망할 수 있게 도와주는 명리 명강이 판미동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은 명리학과 노장철학 등 다양한 학문에서 깊은 사유를 이끌어 온 저자가 누구에게나 명확하게 이해되도록 명리학을 설명할 수 있기까지 지난 10년간 준비한 결과물이다. 저자는 명리학이 미신으로 취급받는 데에는 이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학문적 구조를 자세히 밝혀내지 못한 책임도 있다며, 음양오행의 상생·상극으로 명리학을 풀어낸다. 그리하여 우주와 자연에 관한 논리를 체계적으로 쌓아 나간 학문으로서의 명리를 알려 주고 더 나아가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납득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정확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명리 명강은 교수, 역술인, 학생, 주부, 종교인 등 각계각층의 사람들로부터 명리학의 핵심을 제대로 짚어낸 책”, “집중해서 읽기만 하면 그 원리가 저절로 이해되어 명리학이 어렵지 않게 느껴진다.”는 평을 받았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자신의 운명을 읽고 삶의 혜안을 갖게 되는 것은 물론, 명리학이 하나의 체계적인 학문이자 더 나아가 세계와 개인이 만나는 일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공지사항>

내용 : <명리 명강> 저자 '김학목' 강연회
모집 기간 : 3월 8일 ~ 3월 23일
강연회 : 3월 28일 오후 7시 30분

장소 : 스페이스 노아 (시청역 도보5분)

신청하기 : 아래 배너 클릭 -> 신청서 작성

 

 

 

<이벤트 참여방법>

 

1. 이벤트 기간  :  3월 7일 ~ 3월 15일

   당첨자 발표  :  3월 16일(수)

   발송  :  3월 16일 이후

 

2. 모집인원  :  5명 

 

3. 참여방법

- 이벤트 페이지를 스크랩하세요. (필수)

- 스크랩한 이벤트 페이지를 홍보해주세요. (SNS필수)

- 책을 읽고 싶은 이유와 함께 스크랩 주소를 댓글로 남겨주세요.

 

4. 당첨되신 분은 꼭 지켜주세요.

- 도서 수령 후, 7일 이내에 '개인블로그'와 '알라딘' 에 도서 리뷰를 꼭 올려주세요.

 

 * (미서평시 서평단 선정에서 제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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