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길에 올랐다.

자주 그리고 또 자주 찾아보아야하는 곳이지만, 마음 먹은대로 되지 않은 일이 바로, 고향길이다.

내가 태어나 자란 곳이고, 부모님께서 살아계신 곳이며, 나의 추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 고향이다. 나이가 어려서는 그 뜻을 잘 모르다가도,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서부터 아련한 단어로 변해가는 것이 고향이라는 단어인 것이다.

 

아버지를 뵈니 이제는 젊은 시절의 패기와 사내다움의 듬직함은 어디론가 사라져있고, 어깨는 연약하며, 시들어가는 꽃처럼 안타깝기만하다. 인생은 그런 것, 태어난 모든 것은 그 시기를 다하면 이처럼 쇠약해지고 나약해지는 법, 나도 때가 되면 아버지의 모습을 닮아가리라... 그러나 그 입가의 미소는 그 어느 꽃보다 더 포근하고 더 아름답지 않은가...그 여유있고 자애로운 아버지의 미소가 유일한 위안이 되어준다.

 

 

초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 생각났다. 당시 깊은 산골짜기의 시골 풍경이 크게 다르지 않았겠지만 학교에서 늘 문제를 일으키는 놈은 다름 아닌 공책이었다. 아니, 어쩌면 지우개가 주범이었는지도, 아니면 빈곤이 주범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공책에 글씨를 실수라도 하게되면 지우개가 없는 아이들은 손가락에 침을 발라 지우곤했다. 지우개가 있는 친구들이라고 크게 다른 결과를 가져오는 것도 아니었는데, 공책의 구멍이 바로 그 결과였다. 누가 더랄 것도 없이 공책도 지우개도 모두 저질이었다.  

 

침을 발라 연필자국을 지워보겠다는 지극히 단순한 생각의 결과물, 질 떨어지는 공책의 종이가 수분의 힘을 견디지 못했다. 그만 촌놈들의 몸에서 때가 밀려나듯 시골 촌놈들의 손가락에 공책의 살점들이 벗겨져버리는 것이다. 그러니 다음 쪽의 노트가 휑하니 들여다 보인다.

 

지우개의 사정은 때밀이와는 달랐지만 이도 큰 차이는 없었다. 힘조절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고사리 손을 가진 초등 1학년 생들의 생각과 결과는 전혀 원치 않는 것이었다. 이는 침바른 손가락보다 훨씬더 비극적인 결과를 간간히 초래했다. 어느 순간, 북~하고 공책의 한 면이 찢어져버렸으니 말이다. 연필 글씨 하나를 수정해보겠다고 애쓰다가는 공책을 찢어먹은 시골 어린 촌놈의 정말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그 표정...어이가 없는 멍한 그 표정 말이다...

 

이는 비단 공책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었다. 내게는 미술시간에도 유사한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문제는 손가락의 침도 아니요 지우개도 아닌, 바로 크레용이었다. 수업시간에 공책에 침발라 발생하는 일만으로도 스트레스인데, 즐거워야할 미술시간마저도 그러했다. 내가 가지고 있던 크레용은 6색갈, 도대체 어떤 색으로 그림을 그려야할까. 빨강, 파랑, 검정, 하양, 노랑 그리고는 하나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일곱색갈 무지개도 그려낼 수 없는 이 색갈부족의 크레용은 색갈만 부족한 것이 아니었다. 재질이 나빴던지 단단하기가 무슨 나뭇가지같았던 것이다. 도화지 위에 그림을 그리려면 손에 여간 힘이들어가는 것이 아니었다. 단단히 마음먹고 색칠을 할라치면 그만 크레파스가 먹질 않는 것이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색갈이 부족한 것도 불만 가득한 일인데 아 이넘의 크레파스가 도화지 위에 먹질 않네.

 

질 떨어지기는 마찬가지였던 도화지의 살점들이 때 밀리듯 크레파스에 뭍어나온다. 때로는 도화지가 되려 크레파스를 먹고 있었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 처한 놈이 나 하나면 이 얼마나 억울하고 창피한 일이겠는가.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반에 나와 같은 처지의 아이들은 한 둘이 아니었다. 죄다 그런 놈들 투성이다. 크레파스를 이리 돌리고 저리돌려가며 겨우겨우 그림을 도화지 위에 채워가다가는 미처 다 채우지도 못하고 종이 울리는 것이었다. 미술시간을 겨우 마친 아이들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글송글하다. 즐거운 그림 그리기시간이 아니라 크레파스와 한바탕 시름을 한 것이다.

 

그렇게 스트레스가 하루하루 쌓여가자 나는 더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날도 미술이 들어있는 날이었을 것이다.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를 폭발을 해버린 것이다. 무슨 큰 건수라도 잡은 냥, 씩씩거리며 집으로 돌아와서는 아버지 앞에 당당하게 선 것이다. 평소 아버지 앞에서 힘도 못쓰던 촌넘이 그날은 그렇게 단단히 용기를 낸 것이다.

 

이유를 모르고 눈을 똥그랗게 뜨고 바라보시는 아버지께,

 

"아버지~! 저 크레용 바까주세요~!"

"아내 왜?"

제 크레용으로는 그림을 그릴 수가 없어요! 하도 단단해서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단 말이에요!

"그러냐? 얼마짜리루?"

"오십원 짜리요!"

오십원씩이나??

 

아버지의 반응은 당시 우리집 가정의 형편을 정확하게 대변해주고 있었다.

 

같은 반에는 선장의 아들이 하나 있었다. 대부분 농사를 짖는 집안의 아이 들어었지만 그 친구의 아버지께서는 엔진이 달려있는 큰 배를 운용했던 모양이다. 어느 날 그 친구가 세상에 듣도보도 못한 크레파스를 가지고 학교에 왔다. 색갈들은 셀수도 없이 많았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그런 크레용이 아니었다.

 

부드럽기는 이루 말할 수 없어서 도화지 위를 날아가듯 스쳐가듯 거침없이 내달리고 있었다, 손이 가는대로 색갈을 내주는 이 신비한 크레파스, 그 색감이 주는 형용할 수 없는 미묘한 느낌을 가진, 바로 파스텔이었던 것이다. 무지렁이 촌놈들이 파스텔을 처음 보고는 눈들이 똥그래가지고, 빙 둘어서서 그 친구가 조심스럽게 다루는 그 파스털의 색감에 감탄을 금치 못하곤 했다. 입이 딱 벌어지는 순간인 것이다. 세상에서 제일 부러운 넘...이 친구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에 담겨있는 그 부러움 가득한 감정...그 오묘함은 파스텔보다 더 또렷하다.

 

그렇게 나는 아버지께 떼를 써서는 열두가지 색을 가진 크레파스를 가지게 되었다. 그 값은 무려 오십원이었다!! 무지개를 그릴 수 있고, 도화지위에 색감이 먹히는 크레파스 말이다.

당시 짜장면  한 그릇의 값이 오십원이었다. 시내버스의 요금은 15원 혹은 20원. 지금 생각해봐도 대단한 가격의 크레파스는 아니었다. 그러나 짜장면 한 그릇 값의 크레파스를 부담없이 살 수 있는 형편이 되지 못했다.

 

초등학교(당시 국민핵교) 5-6학년이 되니 담임 선생님께서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셨다.

"자기 집이 상위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봐~"

당연 손 드는 놈  하나없다.

"그럼 자기 집이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봐~"

기다렸다는 듯이 우르르 죄다 손을 든다.

눈치를 보는 넘도 가끔 있기는 하지만 약속이나 한 듯, 죄다 손을 번쩍 치켜들어 올리는 것이다.

"그럼 자기집이 가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을 드는 친구가 있을리 없다.

(이런 질문을 왜 했을까? 한마디로 가정 환경조사의 한 방법이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자기집이 중산층이라고 번쩍 손을 들던 넘들, 나를 포함하여 한마디로 거시기가 찢어지게 가난한 넘들이었다. 당연한 것은 서로 비교를 할 처지가 아예 되지를 못했다. 잘 사는 집안이라고 해봐야 겨우 작은 엔진 달린 통통 배를 가진 그 친구네 달랑 하나였고, 나머지는 서로 비교할것도 없이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들 뿐이었으니 이런 촌놈들은 지네가 진짜로 중산층이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집이 뭐가 가난한데?? 다른집이랑 차이가 없는 것이었다. 옆집과 차이가 없는 가정, 바로 중산층이었던 것이다.

 

6학년이 되니 테레비가 있는 집 손들어봐, 냉장고가 있는 집 손들어봐,  하는 질문으로 바뀌었는데, 테레비가 뭔지, 냉장고가 뭔지 그 의미를 모르는 놈들에게 물어봐야 소득이 없다. 찢어지게 가난했으면서도 그것이 가난인 줄 모르고 지냈던 나의 과거는 차라리 아름다운 추억이지 싶다.

 

그렇게 나의 추억을 뒤로하고 돌아오는 동리는 많이도 변해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변해있고, 과거 깊은 산골의 적막함도 변해있고, 세상은 더더욱 변해있다. 오로지 변하지 않은 것는 하늘을 흘러가는 푸르른 저 구름뿐....

 

아니다. 하나가 더 있는데 그만 깜박했다. 언제나 변함이 없는 것이 하나가 더 있다. 바로 어머니 아버지의 마음이다. 자식을 향한 부모의 마음이 그것이다. 언제나 너그럽고 자애로운 그 마음 말이다... 결코 깜박할 일이 아닌데 자식은 늘 이렇게 깜박한다. 아름다운 그 마음에 어찌 깊은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 말이다 내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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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4-08-04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트랑님의 글을 만날수 있어 좋네요

차트랑 2014-08-04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문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하늘바람님,
아주 오랫만에 뵙는군요 건강하시리라 생각합니다
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오래 전 언젠가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 친구는 서구의 사고가 동양을 지배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했다. 어디 동양 뿐 이던가. 전 세계를 지배했고 현재도 진행 중이다. 그의 요지는 서구 사상의 강력한 위대성을 말하려는 것이었다. 그는 한창 서구의 철학에 깊이 침잠해 있었고, 한마디로 노닐고 있는 중이었다. 물론 그 친구의 말에는 일리가 있다. 타자를 지배할 수 있는 철학적 사고와 그 논리, 한마디로 서구의 ‘이성’이야 말로 얼마나 위대한 것이던가. 과학을 일으키고 각종 분야의 학문을 일으켜 전 세계의 사고와 관념을, 즉 우리의 세상을 완전히 딴 세상으로 바꾸어 놓은 사상이 아니던가.

 

하여 나는 과거 칭기즈칸과 그의 후예들이 80여 개국을 점령했고, 해가 지지 않던 나라였던 영국이 과거 지배한 땅의 2배, 그토록 위대하다는 알렉산더가 지배했던 땅의 7배가 넘는 땅을 강점하면서 무자비하게 휩쓸어버렸던 그 위대함을 말해 준 적이 있다.

 

 

때마침 몽골의 칸이 죽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았더라면 현재의 프랑스, 독일 등도 北方之强(북방지강)의 그 강력하고도 거친 위대함 앞에 결코 무사치 못했을 것이며 현재의 유럽은 존재치 않았을 것이다. 유럽을 한창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었던 몽골군은 차기 칸을 선출하는 투표에 참여하기 위해 철군했던 것이다.

 

알고보면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인도를 통해 몽골로 가고자 함이었다. 콜럼버스가 인도를 찾아 나선 것이지만 최종 목표는 몽골과의 무역 이권이었던 것이다. 몽골의 위대함을 실감할만한 대목이다.

 

 

 

 

목차를 비롯, 책을 펼쳐 읽기 시작하자 기대감으로 가슴을 부풀게 하는 책을 만나곤 하는데 신영복의 『강의』가 그 중 하나이다. 구입해놓은 지는 시간이 꽤 흘렀지만 그저 머리를 식히는 용도로 간간히 읽어볼 요량으로 미루고 미루던 책이 바로 이 책이었다. 크게 마음에 두지 않았다고나 할까. 그러나 나의 편견은 이번에도 여지없이 깨지고 말았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저자의 글 전개방식이 눈에 띈다. 강의라는 제목이 말해주는가. 글은 논리정연하고 질서가 있다. 진도를 나가며 새롭게 되짚어 올라갈 필요가 없다. 명료하다. 교과서를 연상시키는 내용의 전개가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이 책의 장점이다.

 

한마디로 글의 전개 방식이 명료하고 글은 유려하며 질서 정연한 문체가 돋보이는 책이다. 더구나 내재하고 있는 온고지신의 창의적 사고는 나의 편견이 그 얼마나 심각한 것인가를 자각하게 한다.

 

고전 관련하여 출판되는 많은 도서들은 강의라는 형식을 빌어 짜깁기의 냄새를 지독하게 풍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목차만으로도 이를 짐작할 수 있는 책들이 많은 것도 현실이다. 밀도 있고 심원한 그 무엇인가를 결여하고 있을 것이라는 의구심 말이다. 알고 보면 나의 편견은 이유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편견을 보기 좋게 깨트려주는 책을 만난 것이다.

 

이 책의 의도를 한마디로 약한다면 ‘동양 고전 독법’이다. 시대를 거슬러도 한참 거슬러 올라가는 동양 고전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즉, 어떻게 읽을 것인가 이다. 고전이라는 매우 친숙한 이름들이 등장하는 것는 당연하다. 역(易)을 비롯 유․도․묵․법가와 그들의 생각을 텍스트를 통해 조명하며 큰 줄기를 소개하고 있다. 이 경우라면 일반적인 것 이겠지만 이 책의 특징은 한 발 더 나아가는데 있다. 독자로 하여금 사유하도록 유도하는데 있다.

 

누군가로 하여금 사유토록 하기위해서는 단순한 지식의 전달을 뛰어 넘는 그 무엇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글쓴이의 창의적인 생각과 그 생각이 주는 여백, 그것이다. 나머지 여백은 독자 스스로 채워가야 한다. 물론 사유를 통해서다.

 

또 다른 장점은 서구의 역사를 지배해온 '생각'을 함께 사유토록 하는 점으로 그 의미가 크다. 저자가 대표적으로 던져주는 테제는 서구의 존재론, 동양의 관계론이다. 서구의 진리가 형이상학적 차원의 신학적 문제라면, 동양의 ‘道’는 ‘길’이다. 서구의 '도'는 사유 속에 있고, 동양의 '도'는 삶 속에 있는 것이 큰 차이점이다.

 

 

동서양 철학의 테제가 마무리되면 동양 고전의 주인공들을 목차에 따라 등장시킨다. 동양의 사유가 매우 다양하다는 점은 차치하고라도 그들이 가지는 사상의 특성을 명료하게 전달하고 있다. 그동안 미처 바라보지 못했던 사유를 유도하면서 말이다. 역(易)도 하나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易을 이해한다는 것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나 易에 대한 독자와의 간극을 상당히 좁혀주는 역할은 한다. 역을 상대적으로 친근하게 해준다. 더불어 남송대의 유자들이 유학을 연구 발전시킨 동기와 결과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뒤이어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말할 것도 없이, 공맹순노장, 그리고 묵․법가이다. 이들의 철학이 서로 다른 것이라고는 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相(상)이다. 반면 서양의 그 것은 絶(절)이다. 부연하자면 동양의 相對(상대)와 서양의 絶對(절대)인 것이다. 하여 동양의 고전은 관계론으로 바라볼 수 있는 반면, 서구의 그것은 존재론으로 환원한다.

 

우리의 국민 정서는 종교의 다양성을 실질적으로 인정하는 반면, 서구의 명문법은 그 다양성을 인정을 하되 실질적으로는 이단을 용서치 않는 정서를 가지는 것은 이러한 사유의 차이다. 이러한 사유는 독선이 될 수가 있다. 존재론은 그래서 무서운 것이다. 절대자가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 되버린다. 철학이 정치의 시녀, 혹은 부속품이 되기도 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물론 동양의 그것이 정치적으로 이용당한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조선은 좋은 예이니 말이다.

 

하여 동양의 관계론은 실천이 뒤따른다. 반면 서구의 그것은 사유 속에서 맴돈다. 사유의 틀을 벗어날 수가 없다. 틀을 깨는 순간 모든 것은 죄다 흩어져 버리기 때문이다. 서양은 그것을 한 곳으로 모아서 가두어두려 한다. 서구의 과학이 ‘중력자’를 그토록 애타게 찾는 이유도 그것이다.

 

 

 

독선이 불러오는 비극

 

동양이라고 해서 사유의 독선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유학을 국시로 삼았던 조선이 그러했다. 주희의 그것과 한 글자라도 다른 사유는 사문난적이며 처단의 대상이 되었다. 당시 서인들은 주희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독선에 빠져 전체주의에 물들어 있었다. 당시 대 학자이자 실천을 중시했던 윤휴는 주자의 중용장구 주석을 다르게 고쳐 읽었다. 숙종실록은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자사의 뜻을 주자 혼자만 알고 어찌 나는 모른단 말인가’라고 했으니 이는 진실로 사문(斯文)의 반적(叛賊)이다. 「숙종실록」 3년 10월 17일

 

결과는 뻔했다. 윤휴는 전체주의 집단의 집요한 모략과 음모를 견디지 못하고 난적도 아닌 반적으로 몰려 결국 사사되었다. 같은 유학자끼리도 이러한 독선을 적용시킨 것이 조선이었으니 사상이 다를 경우에는 어떠했겠는가. 조선 후기에 유일하게 노자주(老子註)를 집필한 사람이 하나 있었으니 박세당이 바로 그 냥반이다. 유자(儒者)로서 박세당은 도가(道家)인 노자주를 집필한 그 죄가 크다하여 또한 사사되는 비운을 겪어야 했다. 박세당은 유자였지만 주희를 중심으로 교조화된 유학의 획일화를 염려했다. 실천, 즉 후대들이 실학이라고 칭하는 백성을 위한 실사구시를 외치던 윤휴와 박세당은 그렇게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목숨을 강제당할 수 밖에 없었다. 

 

 

중국의 왕필은 새파란 20대에 노자주를 완성했고 현재 그의 역작은 명저라 불리고 있지 않던가. 조선이 동양 사상에 물들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그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전체주의적 독선에 빠지면서 사유의 다양성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우리가 도․묵․병가에 실로 어두울 뿐만 아니라 사유를 강제당함으로서 폭 넓고 자유로운 사고를 발전시키지 못했던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유가에 목을 매던 조선은 결국 제 자신을 스스로 지켜내지 못하는 종말을 맞이하고 말았다. 타자의 생각을 수용하지 못하는 존재의 종말은 대개 이러하다.

 

서구 역시 다르지 않았다. 언뜻 사유의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서양인 듯 보이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제 아무리 다양하다 한들 그 방향성에 문제가 있었다. 서구 사상의 특징은 지고한 사유의 최고점을 한 곳으로 집중시키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과학에서도 명징하게 드러난다. 아인시타인을 비롯 서구의 과학자들은 『궁극의 이론』을 찾아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왔다. 세상에 존재하는 그 모든 것을 죄다 포함하여 설명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이론, 그것이 바로 궁극의 이론인 것이다.

 

애초에는 불변이라고 믿었던 아인시타인이 특수상대론과 하이젠베르그의 불확정성의 원리는 시간이 흐르면서 의심을 받았고 새로운 이론을 필요로 한다. 이론들은 깨어지기를 반복하면서 한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것이 발전인지는 판단할 수 없으나 한 방향으로 꾸준히 나아가는 것만은 분명하다. 결국 서구의 과학은 『초끈 이론』에 다다른다.

 

만약 이 궁극의 이론을 입증했다고 치자, 그 이론이 모든 이론의 종말이라는 것, 즉 진정한 궁극의 이론이라고 과연 누가 절대 확신 할 수 있단 말인가.

 

더욱이 그들의 사상은 어떻게 정치에 영향을 끼쳐왔던가. 물리적인 강제력으로 상대를 제압하고 자신들이 필요한 것들을 빼앗아 왔다. 선의의 경쟁이란 그들만의 것이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조물주는 몇 개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했고, 그 권리 중에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가 있다.’(미국 독립선언문) 라고 말하고 있지만 이는 자신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고 타자들은 완벽하게 제외된 평등과 권리이며 자유와 행복의 추구였던 것이다.

 

이정도면 애교에 가깝다. 전 세계를 혼란에 빠트리면서 타자를 학살했던 독일을 보면 더더욱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의 핵심이 고전 독.법.인 이유

 

제 아무리 양서를 많이 읽고 사유한다 한들, 그 방향성이 바르지 않다면 오히려 독선이 되고 비극을 불러올 수 있음은 분명하다. 저자가 이 책을 易(역)의 이해로 시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동양 사상의 출발점인 易은 애초부터 변화로 시작하여 변화로 끝을 맺는다. 세상은 무한한 변화의 연속이고 상호 관계한다. 절대(絶對)란 존재하지 않는다. 태초에 절대자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태초부터 스스로 변화를 해왔고 앞으로도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것이 동양의 생각이다. 변화는 바로 창조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존재가 우주를 가득 채울 만큼 확장한다하더라도 그 존재는 의미를 찾을 길이 없다. 다른 그 어떤 존재가 있어주어야만 자신의 존재가 '존재'하는 것이 바로 동양의 생각인 것이다. 상대가 없는 ‘나’는 의미가 없다. 혼자서 하는 운동이 재미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지속하기가 힘들다. 몇 일 혼자 하다가도 영 흥이 나지 않는다. 혼자서 할 수 밖에 없는 수영도 그 어느 상대와 어울릴 때 만이 흥미를 더하는 것이 아니던가. 여럿이 하는 축구도 마찬가지다. 한 팀만 있어가지고는 흥이 나지 않는다. 여러 팀이 우승을 놓고 대(對)를 할 때만이 신이 나는 것이다.

 

 

여기서 對(대)라는 말은 敵(적)이라기보다는 짝(對)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옳다. 우리는 그렇게 누군가가 우리의 짝이 되어줄 필요가 있다. ‘그대’가 있음으로 ‘나’가 비로소 의미가 있는 것은 이런 이유이다. 세상의 모든 생물은 그리하여 짝짖기를 한다. 짝짖기는 어찌보면 창조의 본능이다. 짝을 이루지 못하면 창조를 이루어 낼수가 없다. 상호 짝을 이룰 때 만이 창조는 가능한 것이다.

 

하여 相交(상교)라는 것은 동양 사상의 기본 개념이 되고 바탕이 된다. 함께 어울려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 오죽하면 서로 비긴 바둑을 화국(和局)이라고 할까. 서로는 同(동)이 될 수는 없을지라도 화(和)는 이루어 낼 수가 있는 것이다. 이 책이 독법인 이유이다.

 

하여 『강의』는 우리에게 고전을 관계라는 소통을 염두에 두고 읽도록 권유하고 있다.

 

문제는 이 책을 읽고 난 다음이다. 저자가 주인공들을 너무나도 매력적으로(?) 소개하다보니 읽고 싶어지는 책이 한둘이 아이다. 흔히 말하는 四書는 물론이요 도가, 묵가, 법가등이 그러하다. 책에서 책으로의 전이를 불러일으키는 책이 바로 『강의』인 것이다. 책이란 자고로 이래야 하는 법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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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무의 관독일기를 읽어보지 못한 탓에 둘의 차이가 어떠한지는 알 수는 없으나 저자의 관독일기는 그야말로 이덕무에 대한 오마주이며 고요한 자신의 독백지 싶다.

 

책을 읽어가는 내내 지은이가 정말로 독서량이 많은 사람이이라는 것을 감지케 한다. 주로 고전이 독서의 대상일 것이다. 잠과 명으로 그 범주를 제한했지만 그의 독서력과 량은 가히 짐작키 어려운 수준임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부제가 말하듯 주된 독서는 잠과 명이지만, 책에서는 그 외에도 저자의 고독이 눈에 띈다. 특히 107쪽에서 그 절정에 다다르는데, ‘시퍼렇게 날을 세운 칼날 위를 홀로 걷는 고독’은 그보다 훨씬 뒤에 나오는 ‘절대 고독’이라는 말보다 그 가슴을 더 깊이 파고든다. 마치 시퍼런 칼날처럼 말이다.

 

‘시퍼렇게 날을 세운 칼날 위를 홀로 걷는다’는 말이 무엇이던가. 바로 중용의 백인가도(白刃可蹈)를 이름이 아니던가. 시퍼렇다 못해 하얀 칼날 위를 걷는 용기를 일컬음이다. 그 용기 저편에 서있는 사람은 끈임없는 절대 고독을 견뎌야 한다. 고독을 견뎌야만 용기를 낼 수 있고 비로소 한 인간은 백인 위를 걸을 수 있는 것이다.

그 순간, 과연 누가 그 고독을 짐작이나 할 수 있겠는가...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순수하며 인간미를 느끼게 하는 시인, 茶兄 김현승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茶兄의 詩 '절대고독'이 바로 그것이다.

 

 

    절대고독

 

 

 

                                                               김현승

 

 

 

나는 이제야 내가 생각했던

영원의 먼 끝을 만지게 되었다

그 끝에서 나는 비비고

비로소 나의 오랜 잠을 깬다

 

내가 만지는 손끝에서

영원의 별들은 흩어져 빛을 잃지만,

내가 만지는 손끝에서

나는 내게로 오히려 더 가까이 다가오는

따뜻한 체온을 새로이 느낀다

 

그 체온으로 내게서 끝나는 영원의 먼 끝을

나는 혼자서 내 가슴에 품어 둔다

나는 내 눈으로 이제는 그것들을 바라본다

 

그 끝에서 나의 언어들을 바람에 날려보내며,

꿈으로 고이 안을 받친 내 언어의 날개들을

이제는 티끌처럼 날려 보낸다

 

나는 내게서 끝나는

무한의 눈물겨운 끝을

내 주름잡힌 손으로 어루만지며 어루만지며

더 나아갈 수 없는 그 끝에서

드디어 입을 다문다 - 나의 시와 함께.

 

 

 

 

 

시인 茶兄께서 '절대고독'이라 말씀은 하시지만 그에게 고독은 절망적인 것이 아니다. 어쩌면 '고독'은 인간 만이 가질 수 있는 유일 한 것일 수도 있다. 하여 茶兄에게 고독은 즐거움이며 자신을 바로 세우고자 함이 아니었던가. 관독일기의 저자의 고독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내내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하루 하루의 독서 일기를 적는 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책이 나올 당시에 이미 그는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일기를 그렇게 적어왔다고 한다. 지금도 저자가 그렇게 한 해의 중양절을 시작으로 일기를 적어오고 있는지 궁금해 지는 것은 그 동안의 독서가 그 얼마나 방대할까를 짐작해서이다. 나로서는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할 일인지라 그저 존경스럽고 부러울 뿐이다.

 

일기의 형식이기는 하지만 잠과 명을 읽으며 적어간 이 글은 또한 수필의 느낌을 주기도 하며, 내용은 상당히 자조적이다. 어쩌면 당연한 것이 저자의 주요 저술은 이 책이 아니라 저자가 일기를 쓰던 당시 주 타겟으로 하고 있던 '절터, 그 아름다운 만행' 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저자는 주요 작업을 하면서 동시에 관독일기를 하루하루 써간 것이다. 독자로서 이점을 배워두어야 겠다 싶다. 바쁜 와중에도 독서를 게을리 하지 않고 목표를 세워 그것을 이루어 내는 저자의 모습은 과연 유배지에 있던 여유당께서 자녀들에게 보낸 서한을 읽은 사람답다는 생각을 하게했다.

 

사람들은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고 말하지만, 막상 시간이 나도 책을 읽지 않는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독서에 게으르고 시간이 나면 딴짓을 하곤한다. 관독 일기는 그런 나에게 좋은 채근을 준다.

 

더불어, 카메라를 새것으로 장만해가며 공들여 찍은 사진들은 아마도 '절터, 그 아름다운 만행'에서 찾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다음 독서의 순서는 그 책으로 자연 정해져 버렸다.

 

여러 날의 일기들이 대부분 매우 인상적이지만 특히 저자가 남원에 들렀던 날의 기록이 인상적이었다. 저자는 기고봉의 전설을 잠시 소개 하고 있다. 기고봉은 이퇴계와 수년간에 걸친 필담으로 사단칠정을 서로 교환한 장본인이다. 말이 교환이지 기고봉께서 먼저 도전장을 내밀어 시작된 논쟁이었던 것이다. 결국 기고봉은 이퇴계를 궁지로 몰아 넣었고 궁해진 이퇴계는 자신의 학문을 더욱 개진, 발전시켜 반론을 폈던 것이다. 그러한 이황의 저술이 상당부문 임진왜란때 약탈당하여 일본의 유학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지만 중국의 사상가로 하여금 李夫子라는 호칭을 들은 인물로 부상했던 것은 어쩌면 기고봉의 덕분일지도 모른다.

 

 

또 다른 매우 인상적인 대목은 안순암의 경어를 언급한 부분이다

안정복은 성호 이익의 직계 후학으로 “대장부 심중에 일촌 쇠는 녹지 않는다. 大丈夫心中一村鐵未銷”라는 말을 소개한다.

 이 말은 마치 논어 중 ‘자한’이 출전인 “삼군가탈사야 필부불가탈지야(三軍可奪師也 匹夫不可奪志也)” 라는 말을 연상시킨다. 三軍은 제후들이 가질 수 있는 가장 많은 군대의 규모로 총 37,500명의 전차가 있는 부대를 말한다. 막강한 군대의 장수의 목을 취할 수는 있어도 필부의 의지는 절대로 꺽을 수 없다는 말이다. 대장부와 필부는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나는 자한 편에 나오는 이 말에서 匹夫라는 말을 더없이 애정하게 되었다. 과연 맹자가 말한 大丈夫와 공자가 말한 匹夫는 큰 차이가 없다는 말인가 싶다. 무릇 필부란 그래야 하는 법이다.

 

순암의 기록은 사적인 것이겠지만 지극히 인상적인데, 177쪽의 순암 6잠과 4경을 소개할 때는 그 절정에 달한다. 순암은 자신의 오른 쪽과 맞은 편에 각각4 글자 새겨 놓았다고 한다. 이는 주역의 곤괘 “경이직내 의이방외”하는 문구라고 한다.

 

 

한문을 그대로 옮기면 “敬으로써 안을 곧게하고 義로써 밖을 바르게 한다”이고, 줄인 말대로 옮기면 “경으로 곧게, 의로서 바르게”라고 해야 할 것이니 이는 곧 공경한 자세로 자신의 마음을 바르게하고 의에 입각하여 자신의 외부 행동을 단속한다는 의미이다. 177쪽

 

저자의 말이 매우 지당한 말이기도 하지만, 사실상 이 敬과 義는 실천을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특히 ‘밖으로 바르게한다’는 말이 바로 실천력이다. 일생을 통해 경과 의, 두 글자로 삶을 충실하게 살다간 이가 있으니, 바로 조선의 조남명이 아니던가. 하여 그 제자들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일으켜 왜적을 물리쳐 나라를 구하는데 압장섰는데 정인홍, 곽재우는 그 대표적인 예라하겠다.

 

 

전반적으로 관독일기는 靜中動을 느낄 수 있어 사람의 마음을 차분하고 고요하게 해주면서 깊은 사유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게하는 능력을 가진 책이다. 조용히 관조하고 싶다거나 숙고의 기회를 가지고 싶은 분이라면 매우 좋은 책이 되어주라는 생각이 든다.

 

 

 

더불어 두가지를 지적하고 넘어가고 싶은 부분이 있다.

우선, 저자가 잠명으로 고른 대상 인물들 대부분 대단히 훌륭하고 내적 사유를 참구하는데 큰 도움이 되는 인물들이다. 문장은 고고하고 아름다우나 일생이 그렇지 못했던 인물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저자는 백운거사 이규보에 대한 글을 자주 언급하고 있다. 예를 들어 ‘스스로 경계해야 할 일에 대한 명’과 같은 글이다. 나는 이규보의 글이 등장 할 때마다 잠시 읽기를 멈추곤 했다. 이규보는 고려의 인물로 권력에 무던히도 집착한 나머지 온갖 비굴한 수단을 가리지 않고 최씨 일가에 빌붙어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애를 썼던 인물이다. 백운거사라는 닉네임도 사실은 과거에 수차례 낙방하면서 세상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하여 비관, 은둔했던 당시에 얻은 이름이 아니겠는가.

 

 

오죽했으면 이 책의 저자가 사모하는 이덕무마저도 그의 인물평을 혹독하게 했겠는가. 이덕무는 이규보가 남긴 글의 가치를 전혀 알아주지 않았는데 ‘추졸하고 산만하여 명실이 꼭 맞지 않았다’라고 평가했다.

 

이 덕무의 이규보의 글에 대한 평가에서 ‘추졸’이라는 말보다는 ‘명실’이라는 말에 의중을 두는 것이 맞다고 본다. 글로만 본다면 어찌 이규보의 글을 추졸하다고 까지 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명실'이라는 말로는 능히 이규보의 글공부를 한 사람으로서는 전혀 바르지 못했던 행적을 능히 감당할 수 있는 말이 아니던가. 이덕무는 이 ‘명실이 꼭 맞지 않는다’라는 평으로 이규보의 글과 그 행동이 전혀 들어맞지 않았음을 설파한 것이다.

 

제 아무리 좋은 말을 남겼다 한들, 그 말을 남긴 인물이 자신이 남긴 말 과는 거리가 너무나도 먼 삶을 살았다면 그 언어의 가치와 비중은 거품처럼 사라지는 법이 아니겠는가..

하여 사적으로 매우 아쉬움을 주는 대목이라 하겠다.

 

또 다른 집고 넘어갈 부분은 다음과 같다.

『중용』 장구章句에 나오는 계신공구는 “계신호기소부도 공구호기소불문 戒愼乎其所不睹 恐懼乎其所不聞”에서 온 말로, 보이지 않을 때에도 경계하고 근신하며, 들리지 않을 때에도 걱정하고 두려워하며 ... 183쪽

 

이 곳의 부도는 불도로 읽는 것이 더 바람직한데, 다음의 불분과 서로 대구를 이루기 때문이다. 비록 한글로 읽는다 하더라도 대구를 염두에 두고 일치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겠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한글의 음운법칙을 우선 적용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는데 그럴 경우 '부도'로 읽는 것이 맞다는 견해를 수용하여 잘못된 지적임을 인정함)   

 

 

또한

호은은 “숨은 곳 보다 더 드러남이 없으며, 은미한 일 보다 더 나타남이 없다. 그러므로 군자는 홀로 있을 때 삼가는 것이다 莫見乎隱 莫顯乎微 故 君子 愼其獨也”라는 말에서 온 것이다. 183쪽

 

저자는 위 글을 ‘막견’이라고 읽었다. 그러나 莫見乎隱은 ‘막현호은’으로 읽는 것이 맞다. ‘見’을 ‘견’으로 읽으면 ‘본다’는 뜻이 되지만 ‘현’으로 읽으면 ‘나타난다, 드러난다, 명백하다’는 뜻이 된다. 즉 본 장구의 ‘見’은 뒤에 이어 나오는 顯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한 편, 莫見乎隱 莫顯乎微에 대해서 박완식 선생은 중용에서 다음과 같은 해석을 했다. 

 

"보이지 않는 마음보다 더 잘 보이는 것(드러나는 것)이 없고, 미세하게 일어나는 생각보다 더 또렷이 나타나는 것이 없다" -중용(박완식)75쪽 

 

물론 저자의 '숨은 곳'을 '보이지 않는 마음'으로,  '은미한 일'을 '미세하게 일어나는 생각'으로 각각 이해를 한다면 큰 문제가 될 것은 없겠으나, 이는 중용을 읽어본 독자들에게 해당되는 말이고, 혹 아직 중용을 읽을 기회가 없었던 독자들에게는 오해의 여지가 있을 수 있어 적어둔다. 

  

참고로 박완식 선생의 이 중용은 참으로 귀한 책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주자의 집주를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 것이 문제이기는 하다. 문제점은 공부하여 스스로 바로 잡으면 될 일이고, 이 책의 진정한 장점은 글자 하나 하나의 의미를 명료하게 설명해주고 있다는 데 있다. 정다산의 중용강의보를 직집 읽을 수 없는 입장이라면 그 대안으로 매우 유용한 책임에 틀림이 없다. 집주의 의미를 전달하는데 그친 것이 아니라 중용 장구의 완전한 이해를 추구하고자 하는 저자의 역작이라 감히 평하고 싶다. 작은 글씨로 빽빽하게 750여 쪽을 꽉 채우고 있는 박완식선생의 이 중용을 손에 드는 순간 몰아의 경지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중용을 읽고자 하는 분들께 강력 추천드리고 싶다.

 

물론 막견이라고 읽는다고 해서 저자의 책을 읽는데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혹 이 글을 노트를 해 둔다거나 암기하여 사용하는 독자가 있다면 저자가 독자에게 정보를 잘 못 전달하게 되는 문제가 발생 할 수가 있어 지적하는 것이지 다른 뜻은 없다.

 

 

어쨌든 모처럼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저자의 고독을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고 저자가 소개한 잠과 명을 통해 깊은 감명을 받았다. 저자의 노고에 깊은 감사를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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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분의 선생님 중, 한 선생님께서는 만나 뵐 때마다 두 손을 꼭 잡으시면서 ‘벗’이라는 말씀을 하시곤 한다. 선생님께서 매번 이러시니 참으로 황망하기 이를 데가 없다. 군사부 일체라는 말도 있지 않던가.

선생님께 벗은 사전적인 의미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데, 사전에는 ‘벗-마음이 서로 통하여 가깝게 사귀는 사람’이라고 되어있다. 어찌 보면 오래도록 친하게 사귀어 온 사람을 뜻하는 ‘친구’라는 말과 대동소이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친구'라는 말 속에는 ‘나이가 비슷한 또래이거나 아랫사람을 낮추어 부르는 의미’도 들어있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벗'과 '친구'라는 말은 유의어 일 수는 있겠으나 결코 동의어는 될 수가 없는 것은 벗이라는 말이 가지는 무제한적 交와 친구라는 말이 가지는 제한적 交 즉, 범주의 차이이지 싶다.

 

어쨋거나 ‘벗’이 되었든 ‘친구’가 되었든 두 단어의 핵심은 ‘交’이다. 인간 관계 자체가 ‘교’인 만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관련 성어가 많은 편이다.

 

 

흔히들 일컫는 문경지교(刎頸之交)는 인상여와 염파의 전설에서 온 것으로 사마천이 사기에서 아주 잘 기록해두고 있고, 문(刎)이라는 말이 ‘목을 베다’라는 뜻이라고 하니 목숨을 함께하는 교를 말함이다. 그 얼마나 의미심장한 交이던가.

 

 

관포지교(管鮑之交)의 장본인인 관중과 포숙은 공자보다 윗대의 인물들로 2500여년이 지난 후에도 우리들에게 아름다운 교의 전설을 남겼다.

 

 

또한 포의지교, 거립지교, 망년지교등 신분과 나이를 초월한 아름다운 교의 전설들이 전해오는데, 대표적인 예가 ‘지음’이라는 고사에 담겨있지 않나 싶다. '지음'은 매우 널리 알려진 고사이며 신분의 귀천을 뛰어 넘은 좋은 예이다. 지음의 주인공인 '백아'가 거문고의 달인이었다는 점은 그가 비싼 악기를 가질 수 있는 능력자였으며 직접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귀족었음을 암시한다. 시대가 춘추시대이니 만큼 士 혹은 大夫에 해당하는 신분으로 추측이 된다. 반면 '종자기'는 초나라의 인물로 음률을 잘 구별했다고 하는데 직업은 실상 농사꾼이었다.

 

 

백아는 종자기가 죽자 이렇게 한탄 했다고 한다. 夜深窓月絃聲苦 只恨平生無子期(야심창월현성고 지한평생무자기-깊은 밤 창에 달이 걸렸는데 괴로이 타는 거문고 소리, 다만 평생에 종자기가 없어 한탄하고 있구나-

 

 

종자기가 죽자 절현을 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백아의 한탄을 들어보면 백아는 종자기가 죽은 후에도 거문고를 연주했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종자기를 잃음으로서 영 흥이 나지 않자 절현을 했을 수도 얼마든지 있는 일이다. 어쨋거나 신분을 초월한 교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겠다.

 

 

 

각설하고, 사실 이번에는 이러한 교를 말하기 위함이 아니다. 거의 2년 전 풍우란의 저술 중국철학사 상하권을 모두 읽었었다. 그러나 시기가 적절하지 않아 노트를 정리하지 못했다. 아니 노트를 정리할 여건이 되었다 하더라도 리뷰는 감히 엄두를 내지도 못했을 것이다. 나는 풍우란의 이 역작을 리뷰로 쓸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중국 철학사는 분명 내가 감당하기에는 나의 힘이 턱없이 부족함을 느끼게 하는 저술이다. 그러나 페이퍼라면 부담은 훨씬 덜하지 싶다. 그렇다고 소감을 적고자 하는 것은 아니고, 이 책에서도 교와 관련한 대목이 나오기 때문이다.

 

 

 

풍우란은 장자와 당시의 인물 혜시의 ‘범애만물 천지일체(汎愛萬物 天地一体)-만물을 다 같이 사랑하라. 천지는 한 몸이다’라는 공통된 설을 피력한다. (어느 글에서는 이 글의 주인공을 맹자와 혜시라고 소개를 하고 있는데, 장자를 읽어보신 분들이라면 금방 구별이 갈 것이다)

 

 

물론 확증은 없지만 장자와 혜시의 관계로 보아 충분히 근거가 있음을 시사하면서 그 증거로 그 두 사람에 관련한 장자의 글을 소개하고 있다. 풍우란이 소개하고 있는 글은 다음과 같다.

 

 

 

어떤 영인(郢人: 초의 서울인 郢의 미장이)이 백회를 자기 코에 파리의 날개 모양으로 발라 놓고 장석(匠石)으로 하여금 깍아내게 했다. 장석은 바람처럼 가뿐히 도끼를 휘날리어 태연하게 깍아, 백회만 떨어뜨리고 코는 조금도 다치게 하지 않았다. 영인 역시 얼굴을 꼿꼿이 세우고 낯빛을 변하지 않고 내맡겼던 것이다. 송나라 임금이 이 이야기를 전해듣고 장석을 불러 말하기를 “한 번 과인을 상대로 그같이 해보라”하자, 장석은 대답하기를 “저로서는 아직 그렇게 깍을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의 상대가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은 이미 오래 전에 죽었습니다”고 했다고 한다.

이제 혜시 선생이 죽었으니, 정녕 내게는 상대가 되어 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

 

풍우란, 중국철학사 (상) 315-316쪽

 

저자는 『장자』자체가 우언이 많기 때문에 그 사실 여부를 장담할 수는 없다고 한다. 그러나 제물론이 보여주는 장자와 혜시의 사상적 부합 여부는 확실하다는 점을 방증으로 하고 있다.

 

 

여하튼, 이 대목에서 이참에 말하고자 하는 장석운근성풍(匠石運斤成風)이 나온다. 장석이 도끼를 바람소리가 날 정도로 휘둘러 영인의 코 잔등위에 발라진 파리 날개만한 석회를 깍아내는 것이다. 바람을 일으키며 깍아 내는 장석도 장석이지만, 영인입불실용(郢人立不失容) 역시 감동적인 대목이다. 다시 말해 영인은 그토록 무서운 기세로 자신의 얼굴위로 도끼가 날아오는데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만하면 그러니라 하겠지만, 더더욱 감동적인 交의 장면이 더 등장하는 것이다. 송나라의 임금이 이 소문을 듣고 급기야 장석을 소환한다. 하여 자신을 상대로 도끼를 휘둘러보라고 하자 영인의 대답은 교의 진정한 의미를 전해준다. 나는 이때부터 그 어느 표현보다 운근성풍을 가장 애정하게 되었다.

 

 

송원군문지(宋元君聞之), 소장석왈(召匠石曰): 신즉상능착지(臣則嘗能斲之) 수연(雖然) 신지질사구의(臣之質死久矣)

 

송나라의 임금이 이 이야기를 듣고, 장석을 불러내자 장석이 말하기를: 저로서는 아직 그렇게 깍을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의 상대가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은 이미 오래 전에 죽었습니다”

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도끼를 휘두르는 상대를 절대적으로 신뢰하지 못한다면 일을 그르치고 만다. 그르치는 정도가 아니라 자신이 상하고 마는 것이다. 그런 신뢰를 갖지 못하는 왕은 분명 상할게 뻔하다. 장석의 도끼가 부정확해서가 아니라 장석과 그 도끼를 신뢰하지 못하는데서 오늘 참담한 결과인 것이다. 절대신뢰의 여부가 가지는 차이점이다.

 

 

그 후일담으로 중국철학사에서는 나오지 않지만 백아가 절현(絶絃)을 했듯이 장석도 은부(隱斧)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절현이나 은부도 교의 의미심장함을 전달하는 중요한 대목이겠지만, 장석이 날카로운 도끼를 휘날리며 얼굴을 향할 때 영인의 얼굴 빛 조차 변하지 않았다는 대목에서는 상대방에 대한 신뢰가 그 얼마나 커다란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이는 나에게는 참으로 멋지고 감동적인 장면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문경지교도 좋고 관포지교도 좋지만 나는 영인과 장석의 이야기에서 交의 핵심인 무한신뢰를 절감하게 되었다.

 

사람은 공수거한다고 한다. 자신의 손에 쥐는 것은 전무하며 그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이 인생인 것이다. 하여 인간은 늘 고독하지 않을 수 없는 존재이다. 타자와 어울려 살아야하며 자신의 집 안에서조차 가족과의 交로 출발을 하는 것이 삶이다. 잠 자는 시간을 빼고 눈을 뜨면서부터 다시 감을 때까지 인간은 交 안에 있다.

 

다양한 형태의 교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일반적인 교의 목적은 내적 삶의 질을 윤택하게 하기보다는 흔히 이익에 우선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여 사마천이 자신의 저술, 열전에서 장이와 진여의 바르지 못한 문경지교를 설득력 있고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되돌아 갈 때 아무것도 가져 갈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삶이라면, 내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관계인 交를 자신의 가슴에 담아가는 것은 어떠할까. 사람은 자신의 종말 앞에서 겸허해질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을 버릴 수 밖에 없다. 사선에서 서성이는 자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유일하게 모든 것을 버리는 일 뿐인 것이다. 그러고 싶어서가 아니라 자신도 어쩔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죽음을 앞에서, 가슴 속 가장 깊은 곳에 남아있는 것은 물질이 아니라 분명 자신의 交일 것이다. 자신의 가슴, 죽음 앞에서도 그 가슴 속에서 미처 도려내지 못한 것이 있다면 바로 그 것이 交이다. 아픈 듯 시리며 지극히 아름다운 交가 그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함께하는 交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귀중한 것이 아니던가...

 

천상병시인은 자신의 죽음을 두고 이렇게 시를 썼다.

 

 

 

 

 

 

 

 

 

 

 

 

 

 

 

 

歸天(귀천)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지만 그의 삶은 결코 녹록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부유했던 시인도 아니요, 권력을 손에 쥔 시인도 아니었으며, 정상적인 신체를 가졌던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이 이토록 아름다우며 심금을 울리는 작품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의 교에서 찾을 수 밖에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장자가 혜시의 죽음 앞에서 그토록 안타까워했던 이유도 交에 있었던 것이다. 장자야 말로 무엇이 부족하여 저토록 안타까움을 토로했겠는가. 혜시가 죽음으로서 자신의 소중한 교를 잃었기 때문이 아니었겠는가. 이런 점에서 장자 보다는 혜시가 더 행복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름다운 교는 인생을 가장 아름답게 해줄 수 있는 어쩌면 유일한 것일지도 모른다. 세상에서 아름답게 소통할 수 있는 단 한 사람이라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자신의 인생을 풍요롭게하는 것이며 어쩌면 삶에 가장 중요한 의미를 더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일 수 있다. 그러한 교를 가진 자,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 자신의 생을 죽는 그 순간까지 가장 의미있도록 해주니 말이다..내가 그러한 교를 만나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싶은 이유이다. 그러한 교를 가지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다면 그보다 더 후회스러운 일이 나에게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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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4-06-19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읽게 되어, 제가 얼마나 행복한지 아실까요?

저는 사람을 참으로 믿지 못했답니다. 누구라도 제 뒤통수를 칠 수 있다고 생각해왔답니다. 하지만 이제는 사람은 한번쯤은 저를 서운하게 할 수는 있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도 끈을 놓지 않는 것, 그것이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교, 참 좋은 단어입니다.

차트랑 2014-06-20 20:19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님, 잘 지내고 계시지요?

별스럽지 않은 글에 행복을 느끼셨다니 부끄럽습니다
저의 대략적인 그간 상황을 짐작하시겠지만
지난 경험이 약간은 표현된 글이기도 하답니다

물론 저는 아름다운 교를 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저도 앞으로 아름다운 교를 가져보고 싶다는 바램이 담긴 글이고
제게도 그런 일이 있기를 바라고 있는 중이랍니다^^

마녀고양이님께서는 저보다 더 많은 아름다운 교를 가지실 수 있기를...
고맙습니다 마녀고양이님
 

초장에 즉, 머리말부터 임팩트가 강력한 책이 있으니, 바로 헤세의 문장론이다. 지성에 호소라도 하듯 거침없이, 자신감 있고, 도도하게 흐르는 문장, 이 책의 머리말이 그러하다.

 

초장에 대차게 나오는 넘치고 별볼 일 없는 넘들이 많은데, 헤세의 문장론은 예외이다. 알고보니 이유가 있었다. 초장부터 강력했던 것은 바로 헤세의 글에 있는 내용을 역자가 자신의 글과 버무려 버렸기 때문이다. 하여 독자의 가슴을 이토록 설레게 하는 머리말은 처음 만나보았다.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은 역서의 냄새를 지워내려 무던히도 노력했다는 점이다. 불가피한 몇몇 표현은 논외로 해야 할 것이다. 역서는 어쩔 수 없는 역서이니 말이다. 그 점을 감안한다면 외국어의 한글화가 단연 돋보이는 역서이다.

 

 

문장론이라고는 하지만 부제가 이를 말해주고 있듯이 작가에게 뿐 아니라, 독자로서 알아두면 매우 유익한 조언들을 가득 담고 있다. 도서의 선택 방법, 책을 대하는 태도, 독서법 혹은 태도등 독서를 하되 흔히 우리 대부분이 간과할 수 있는 부분들을 헤세는 자신의 인문학적 견해를 통해 명료하게 밝히고 있다.

 

그 과정에서 아쉬움이 있다면 헤세가 독일인 이라는 점이다. 독일을 중심으로 한 작품들을 언급하고 있다는 점도 그러하지만, 그가 한국인 이었다면..하는 아쉬움 말이다. (이것은 지극히 미련한 생각이다. 말이 그렇다는 것이다)

 

또 다른 아쉬움은 같은 내용의 다른 글을 중복시켰다는 점인데, 9장(1910)과 29장(1930년)에 쓴 두 글이 바로 그러하다. 어떤 부분은 거의 토씨 한자도 틀리지 않으며, 전체적인 내용 또한 차이는 없다. 다른 글로 대체를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필경 그만한 사정 또한 있지 않았겠는가. 다른 한 편으로는 20년이 흐른 뒤에도 헤세가 자산의 기본 개념을 변함없이 확고하게 구축하고 있는 인물임에 틀림이 없다는 것을 파악한 것이 일종의 수확이라면 수확이겠다. 기본 개념에 무쌍한 변화를 가지는 것도 일변으로는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니 말이다.

 

과거 그의 작품으로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데미안’을 읽는 순간, 헤세가 나의 머리와 가슴 속을 속속들이 읽어내면서 헤집어 드러내고 있다는 생각에 오싹하는 전율을 느낀 적이 있다. 하여 당시 나는 헤세를 두려워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나는 이 책을 통해 그 냥반, 헤세의 생각과 마음 속에 내가 들어가 그의 것들을 하나씩 들추어내고는 기분이었다. 이 책을 읽는 희열이고 기쁨이며 행복이다. 수십 년 전 나처럼 당했던 일을 멋들어지게 헤세에게 되돌려주는 기쁨을 누리고 싶은 분이 계시다면 읽으셔도 좋다.

 

 

그런데,

이 느낌은 책의 전반부를 읽어나가는 나의 생각이었을 뿐, 나는 페이지를 넘겨 갈수록 반전을 맞이한다. 읽어나가며 생각해보면 문득 깨닫게되는 한 가지가 있다. 그의 글을 통해, 다시 나는 나의 생각을 그에게 되려 스캔당하는 느낌이 불현듯 드는 것이다. 내가 그의 생각을 헤집고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는 나의 등을 타고 앉아있다. 이는 마치 독자와 글쓴이가 쫒고 쫒기는 묘한 관계를 성립시키는 독특함을 준다.

 

내가 헤세의 등에 올라타 있구나 싶으면, 어느새 그가 내 등에 다시 올라타 있는 이 읽힘의 연속. 그의 정신을 관통하며 헤집고 있구나 싶으면 어느새 그의 칼날 같은 관조가 나의 정신을 뚫고 지난다.

서로는 그렇게 낭자히 흐르는, 서로의 상처에서 흐르는 그 무엇인가를, 끈끈한 것을 뚝뚝 떨어뜨리고 만다. 다만 붉은 색의 액체가 아니라는 점, 그것은 붉을 수도 있고 초록일 수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일깨움이며 정신의 소통이 남겨주는 아름다운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다시 한 번 그가 독일인인 것이 아쉬울 뿐이다.(미련하기는~)

 

때로는 나를 좌절시키는 대목을 만나기도 한다.

창작과 사고가 거의 같은 것이라는 견해, 세계관을 묘사하는 것이 문학의 임무라고 견해는 오류이다. 작가에게 추상적 사고는 위험 요소이며, 심지어 가장 커다란 위험 요소이다. ....중략.... 다만 추상적인 인식이 주된 핵심이 되는 순간 작가는 예술가이기를 멈추게 될 것이다. 시대를 막론하고 가장 아름답고 감동적인 문학은 사유가의 체념이 창작자를 정화된 냄정한 삶의 관조로 이끌어서, 작가가 가치판단이나 철학적 근본문제를 포기하고 순수 관조로 들어갔을 때 생겨난 것이다. 101쪽

 

물론 내가 작가가 되려는 생각으로 이런 좌절을 언급 하는 것은 아니다. 나로서는, 독자로서 문학을 바라보는 태도의 오류를 날카롭게 지적당하고 있다는 점에서 좌절스러운 내용이었던 것이다. 개인의 고뇌가 너무 클 때, 순수 관조에 이르지 못함을 헤세가 작가에게 고하는 말이지만 독자로서도 뜨끔하지 않은 수 없는 냉철함과 그의 관조를 느낄 수 있다. 이 대목에서 나는 헤세가 그토록 섬뜩하리만치 나를 관통하는 ‘데미안’을 쓸 수 있었던 이유가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감동적인 대목이 한 둘이 아니지만 그 중 인상적인 몇 가지를 적어본다면 다음과 같다.

 

책을 읽을 때 스스로 주의 깊게 함께 하고 함께 체험하겠다는 의지를 갖지 않는다면 나쁜 독자이다.

119쪽

 

형편없는 시를 짖는 것이 심지어 최고 아름다운 시를 읽는 것보다 훨씬 행복함을 알게 될 것이다.

158쪽

 

책의 주제와 멀어보이는 듯 보이지만, 사랑 앞에서는 아무 것도 신성한 것은 없다. 131쪽

 

칸트는? 나는 망설였다. 결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칸트는 그냥 놓아두기로 했다. 니체는? 서간과 함께 꼭 필요하다. 160쪽

 

괴테와 휠덜린, 도스토엡스키의 모든 책들은 남겨둔다. 162 쪽

 

 

눈에 띄는 대목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아래와 같다.

 

우리에게 필요한 지혜는 노자의 책에 적혀 있다. 그 지혜를 유럽어로 번역하는 일은 현재 우리의 유일한 정신적 과제이다. -170쪽

 

이 대목은 내게 매우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그저 서양의 어느 통찰력을 가진 이가 동양의 인문학적 정신에 매료되었구나 싶은 정도를 넘어, 그의 표현을 빌자면 ‘유럽의 언어’,‘우리의(유럽의) 유일한 정신적 과제’라는 두 표현이 주는 함의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헤세는 유럽이라는 공통체 의식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으며,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철학적 빈곤함을 함축적으로 반증하고 있다고 이해하도록 만드는 장면인 것이다. 이런 해석은 오해라고 말해도 소용없다. 아직까지 내게는 그렇게 들리며, 헤세의 아름다운 고백이라고 생각 때문이다 ㅠ.ㅠ

 

헤세는 1931년 글에서 자신이 많은 은혜를 입은 동양서적들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것들 중 가령 여불위, 공자, 장자의 책은 언제든지 손에 잡을 수 있게 가까이 두고 있으며, 특히 역경 같은 경우는 마치 신탁을 묻듯 종종 펼쳐보곤 한다.” 라고 고백하고 있다. 이 순간 나는 잠시 숨을 멈추어야 했다. 공자, 장자는 그렇다치더라도 여불위라니...그의 독서가 어디에 까지 닿아있는지 짐작할 수 없게 만드는 단어가 여불위인 것이다. 더구나 역경을 신탁이라고 표현한 헤세, 나는 경이로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신탁'이라는 말이 주는 언어의 함의와 무게감을 적절히 대신할 수 있는 대체물이 과연 있을 것인가...그것도 서양인의 글로 말이다.

 

 

역경을 언급한 부분이 나에게 그토록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서양의 관점에서 역경의 심오함과 그 과학적 위대함은 헤세보다 200여년을 더 거슬러 올라가는 라이프니쯔가(1646-1716) 이를 잘 증명해주고 있다. 그는 계산기를 발명하고 미분법을 창안하여 세상을 놀라게하기도 했지만, 0과 1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이진법을 창안, 현대의 전산시스템의 근간을 마련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역을 연구했고, 그 역 안에 담긴 수리적 원리가 자신이 찾고 있던 바로 그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현대를 전자의 시대로 변화시킨, 마법과도 같은 이진법을 창안해내는 결정적 계기는 바로 역경에 있었던 것이다. 역경을 바라보는 라이프니쯔의 시선은 그 얼마나 경이로움과 놀라움에 가득 차 있었을까.

(읽은 책이 아니고 읽고 싶은 책임) 

 

마찬가지로 헤세도 역경을 언급하며 마치 ‘신탁을 묻듯’이라는 표현을 감히 쓰고있다. 그 함의가 가지는 그 육중한 무게감에서 서구의 철학적 사고를 벗어 던진 헤세의 사유를 들여다 볼 수 있고, 나아가 그가 보여주는 동양의 철학적 가치에 대한 무한한 신뢰의 이유는 무엇일지 동양인인 우리들도 되새길 필요가 있는 의미심장한 대목이겠다. 동서양의 경계를 넘어 통찰을 보여주는 헤세, 그는 진정 아름답다.

 

이 두 인물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한결 같다. 동서양의 경계를 넘나드는 통찰력, 바로 그것이다. 주역의 계사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고 한다. ‘생생지위역(生生之謂易)’-역을 설명한 말일 것이다. 易이란 生하고 生하는 것이다. 生한다는 말은 창조력을 뜻하는 것이다.

 

크게는 스스로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창조해나가는 우주의 능력, 작게는 개인의 끊임없는 창조력 말이다. 단순한 지식의 축적에서 멈추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 지식을 자신의 권력으로 인식한 결과,  타자에게 휘둘러 승리하는데 사용하는 것이 아닌, 진정으로 자신과 인류를 위하는 올바른 창조력 말이다.

 

(역시 읽어볼 책)

 

아직 읽어보지도 않은 두권의 책을 페이퍼에 넣으려니 뻘줌하다. 헤세가 '헤세의 문장론'에서 언급한 책들은 수없이 많다. 그 중 인상적인 역경을 언젠가는 읽어보겠지 싶다. 라이프니쯔는 몰라도 말이다.

 

사적으로는 문장론에 관한 책을 읽어본 적이 없어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동안 독서를 하되, 관조의 의미를 살려내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이 책을 통해 관조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자각하고 책을 대하는 여러가지 태도들은 이전과 달라질 것이 분명하다. 적어도 내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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