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모,

그러니까  Jean philippe Rameau 라는 냥반은 프랑스 태생으로 베토벤의 선배님 되시는 냥반이다.

독학으로 화성의 기초를 연구, 확립했다고 한다. 하여튼 이 하나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일은 해낸 것인데,

정말 흥미로운 음악도 작곡을 했다.

 

수입] Philippe Herreweghe (Rameau : Les Indes Galantes)(Digipack)
Philippe Herreweghe / Harmonia Mundi / 2000년 6월

 

(다양한 버전으로 감상하는 것이 고전음악의 매력이지만

사적으로는 딱 이음반을 소장하고 있고 이것으로 끝이다)

 

대표적인 곡이 바로  Les Sauvages 라는 곡이다. 글자 그래도 옮기면 야만인 혹은 미개인이다.

곡의 이름을 이렇게 붙인 의도가 무엇인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다만 서구인의 시각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저토록 아름다운 춤을 추는 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을 미개하다 생각한 모양이다.

 

나중에 라모는 이 미개인 혹은 야만인이라는 제목의 음악을 재활용하여

프랑스인들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Les Indes galantes 라는 예술을 만들에 낸다.

당대 고전 음악에서야 솔직히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에 밀리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지 싶은데....

 

어째거나 라모는

음악의 제목인 '야만인' 혹은 '미개인'을 갑자기 '우아한'으로 탈바꿈하는 대 이변을 연출해낸다.

더더욱 놀리운 일은 '우아한'이라는 말 뒤에 붙은 '인도'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음악의 제목이 야만인에서 위대한 인도의 제국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개다가 아메리카의 원주민을 의미하던 음악이 인.도.로 말이다.. ㅠ.ㅠ.

많이 헷갈린다 정말

 

이쯤하면 라모가 처음 붙인 제목인  Les Sauvages을 자연인 으로 번역하는 것은 어떨까..

인간이지만 정녕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는 원주민들의 모습에 감동한 작곡가 라모 말이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인간의 모습에 영감을 얻어 곡을 쓴 라모를 상상하게 된다. 

 

또 어째거나 프랑스 내 라모의 인지도는 하늘을 찌르고도 남음이 있지만

한국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작곡가이지 싶다

불구하고 꾸준히 음반이 들어오고 있는 것을 보면 결코 음악사에서 홀대할 인물이 아님에 틀림이 없다.

  

다음의 영상에서 보듯이 원주민들이 춤을 추는 장면을 재연했다.

 

 

1) 약간 느린 버전

 

 

 

 

2) 음반과 거의 비슷한 속도의 영상물

 

 

또 어째거나 무더운 여름을 잠시 잊게 해줄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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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18 09: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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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23 23: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지붕의 등뼈 푸른사상 시선 7
박승민 지음 / 푸른사상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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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시(詩)를 읽는 것은 고전을 제대로 읽는 것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일인이다. 시에 대한 느낌을 적는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동안 감히 시집에 대한 리뷰를 남겨본 적이 없는 이유다. 그러나 「지붕의 등뼈」는 왠지 특이한 느낌을 주는 시집이다. 시집에서 느끼는 시인의 스타일과 (산문형식의 시를 종종 쓰는 작가이다, 낮선 장면은 아니나 시어들의 아름다움 덕분에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읽었다) 시는 사적인 기록으로 남기고 싶도록 충동질 한다. 정말 묘한 시집이고 묘한 일이다. 해서 두서도 없고 일관성도 없는, 나아가 가소로운 느낌을 가소로운 리뷰로 남기고 싶을 뿐이다.

 

하여 몇 편의 인상적인 시를 중심으로 적고자 하는 이 리뷰는 시인에게 무척이나 무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다만 시인의 독.자.라는 안.전.지.대.를 확보하고 있다는 것 외에는 외람된 일이 아닐 수 없다. 시인의 너그러운 관용을 바랄 뿐이다. 

 

시집은 120쪽, 결코 두터운 것은 아니나 제목은 마치 무언가 체중계에 올려놓기도 전에 묵직하게 전해오듯, 내 마음 한구석을 차지한다. 누구의 무게감일까, 그 삶이 고단하고 앙상하며 성기고 마른 어느 삶을 연상시킨다. 등뼈의 주인이 누구든 간에, 결코 편안한 마음으로 읽지는 못하겠구나 싶다. 더불어 그 고단한 등뼈를 독자의 가슴으로 바라보고 어루만지며 느끼고 공명하고자하는 마음이다.

 

첫 번 째의 시, 「십칠 나한상(羅漢像)」은 그러나 도리어 이런 나의 등을 위로하듯 가볍게 두드려준다. 마치 나의 마음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 격려하고 있다. 경쾌하고 맑으며 사뿐하다. 그런데 이 냥반, 끝내 내 가슴을 한 대 퍽, 하고 날려버린다.

 

.

.

.

나도 그 옆에 종이 방석 하나 깔고

한 백년 쯤 앉아있고 싶은데요

.

.

 

 

                 「십칠 나한상(羅漢像)」 중

 

 

종이 방석에, 한 백년 쯤 앉아 있고 싶댄다... 시인 옆에 나도 그렇게 한 백년 앉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잠시했다. 가슴이 먹먹하다. 이렇게 몇 방 얻어맞으면 결국 나도 피멍이 들겠구나.., 그러다가 어느 시점에서는 시인의 가슴과 비슷해 지겠지.

 

그리고 한 칸을 건너 뛴 시, 「메모」에서 시인은 자신의 입장을 이야기 한다.

 

.

.

.

 

생(生)이 비루하고

때로 지하에 떨어지는 철렁함이

매 끼니마다 찾아온다 해도

꽃은 어느새 날아와 그 자리에 피었다

 

마누라가 버린 자식새끼를 바라보는 눈으로

나는 이 세상을 바라보겠다

.

.

.

나 없어도

나 앉았던 자리에 꽃이 피고 눈이 내리는 쓸쓸함에 대해서

아니, 그 아무렇지도 않음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은 거다.

 

                         「메모」의 일부

 

 

“꽃은 어느새 날아와 그 자리에 피었다”. 아, 이런 표현은 시인이 아니면 할 수가 없는, 아니 내가 열 번 죽었다 깨어나도 해낼 수 없는 시인의 언어겠지... 감동이 밀려온다. 내가 결코 시인일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이런 시적 표현에 있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이 시어들을 나는 몇 번이고 되풀이 읽었다.

 

“마누라가 버린 자식새끼를 바라보는 눈으로

나는 이 세상을 바라보겠다”

 

이 단호한 시인의 어조 속에서 나는 그레고리오의 현실과 시인의 시퍼런 슬픔을 보았다. 시인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기저에는 시인이 처한 상황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시인의 언어가 나의 심장을 같은 색으로 서서히 물들이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행, ‘그 아무렇지도 않음’에 다다르자 나는 시인의 마음속에 들어 앉은 두 개의 공간을 마주하는 것일까, 생각했다. 시집의 초장부터 나는 딜레마에 빠져버렸다. 잠시 후, 시인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는 것인가, 독자인 나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는 것인가...하는 의문으로 바뀌었다. 일단 시가 독자의 손으로 넘어 온 이상, 이 시는 나의 것이다. 나는 나름의 결론에 도달했다. ‘그 아무렇지도 않음’은 초월적인 그 무엇 이라기보다는, 시인이 가장 절실하게 보듬고 싶어하는 세상을 반어법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말이다.. 결코 시인에게 ‘그 아무렇지도 않음’은 ‘절대로 아무렇지도 않음이 아니다’라고 말이다.

 

박시인의 관조는 맑은 관조이다. 시인이 남다른 이유이겠지만 말이다. 시인은 우리 삶의 사소한 부분을 간과하지 않는다. 「명자 씨」,「빨래」, 「미선이」등이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이쯤에서 나는 시인이 무척 궁금해졌다. 시인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관조하지 않는 시인이 어디에 있을까. 이 시인은 작고 사소한 것을 놓치지 않는 관조를 보여준다. 결코 호방하지 않다는 말이다. 시인의 침잠은 알고 보면 스스로의 낮춤이다. 대상을 자신의 높이로 끌어올려 마주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몸을 숙여 대상과 함께한다. 때로는 아슬아슬한 외줄을 타기도하며 말이다. 

 

가장 좋은 느낌은 독자를 휘두르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독자를 휘두르려는 시는 처음에는 달달하지만 지나친 단 맛에 그만 독자가 물려버리고 만다. 박시인은 음식의 당분을 적정량 첨가한 느낌이다. 아니, 다른 시에 비해 약간의 당분을 되려 뺀 느낌? 아, 이것도 아니다. 달지 않은 당분을 안에 깊숙하게 숨겨 놓은 그런 느낌이 맞다. 이 느낌이 맞다. 씹을수록 고유의 단 맛을 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여기서 나는 새로운 시인의 탄생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서서히 그의 시가 가슴으로 들어온다. 왠지 또 만나고 싶어지는 그런 사람처럼 돌아서면 왠지 또 읽고 싶어진다. 애써 리뷰를 적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알고 보면 어느새 이미 깊이 깊이 내 가슴은 시인이 풀어준 물감에 배어 있음을...     

 

 

드디어, 「지붕의 등뼈」와 마주했다. 이 시집의 제목이 된 바로 그 시이다.

 

 

  지붕의 등뼈

 

노인성 척추 측만증을 앓는

지붕의 등뼈는 난감하다

 

너무 오래 비를 맞아

가벼운 새의 발놀림에도

얇은 비스킷처럼 부서진다

어떤 기와는 살갗이 벗겨져

갈비뼈가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다

 

수많은 모래와 모래가 만나

물이끼 같은 한 세월 이루었으나

밤새도록 내리는 장대비를 맞고 있는

한사코 제 등으로 비를 막는

어머니의 등뼈,

 

낡은 빨랫줄처럼 위태롭다

 

                      지붕의 등뼈, 전문

 

 

시인이 바라본 어머니가 어떤 상태에 계신지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시인의 어머니께서는 아직 생존에 계신 모양이다. 그러나 그간 한 세월 고생하신 덕분에 척추가 휘고, 몸도 휘었다. 위태로운 시인의 어머니... 곧 무너져 내릴 것 만 같은 집, 낡은 집을 떠 받들고 있는 아슬아슬, 위태로운 지붕의 등뼈, 앙상하고 고단하며 성기다. 시인의 안타까운 마음이 깊이 전해온다.

 

이 모습이 시인의 어머니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기에 더 깊다. 우리들의 어머니는 대부분 이런 모습을 하시고 계시다. 이토록 고생을 하시다가 돌아가시기라도 하는 날에는.... 우리들이 우리의 어머니를 잃는 그 순간, 우리의 집도 와르르 무너지는 참담함을 경험할 것이다. 마음이 정녕 헛헛하다.

 

「지붕의 등뼈」에서 한 가지 아쉬운 부분은, 물론 나의 지독한 편견에서 비롯하는 것이지만 말이다. 위의 작품에 등장하는 직유법은 모두 세 번이다. ‘비스킷처럼’ ‘물이끼 같은’  ‘빨랫줄처럼’ 이 그것이다. 시에서는 직유를 가급적 사용하지 않는 것이 더 좋다고 느끼는 일인이다. 소설이라면 얼마든지 허용하지만 시에서는 직유를, 같은 의미의 다른 표현으로 환원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다는 지극히 사적인 생각이다. 크게 길지 않은 한편의 작품에서 세 번의 직유는 과하다는 생각이 들어 느낌을 적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나는 박시인의 첫 번째 시집을 끝까지 읽었다. 그리고 나는 시인의 딜레마라고 생각했던 부분에 대한 해답을 얻었다. 다시 시집의 처음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마누라가 버린 자식새끼를 바라보는 눈으로

나는 이 세상을 바라보겠다

.

.

.

나 없어도

나 앉았던 자리에 꽃이 피고 눈이 내리는 쓸쓸함에 대해서

아니, 그 아무렇지도 않음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은 거다.

 

 

위는 초반에 언급한 「메모」의 일부이다. 처음에는 뭔가가 상통하지 않는 대를 이루고 있다고 생각했던 그 부분이다. 그러나 시인이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했던 딜레마는 딜레마가 아니었다. 이것은 시 전체를 관통하는 박시인의 시적 태도였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비로소 의아했던 대목이 풀리는 순간이다. 대표적인 예로 시인은 「화기―능소화」에서 “저 환한/ 주홍빛 일주문 열고 들어가면/ 미련도 미련 없이 해탈할까?/” 라고 자문한다. 어쩌면 현실의 도피일 수고 있는 시인의 태도로 보인다. 그러나 결코 그것이 다는 아니다. 「당신과 나 사이」, “그럴수록 당신의 몸에 내 몸 섞으려는” 에서 볼 수 있듯이, 시인은 늘 상대성을 인정한다. 세상과의 간극을 관조하고 인정하며 나아간다. 시인의 태도는 결코 침잠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늘 관계하고 있다.   

 

한편, 시인의 그레고리오에 대한 절절한 언어들이 자주 등장한다. 내 가슴도 덩달아 멍들어가는 느낌이다.

 

「역류성 식도염」, “아무리 흘러가도/시간은 거꾸로 온다/ 내 목구멍을 화롯불 같은 입맞춤으로 지져놓고/” 「사라지는 시어들」, “갑자기 방안에 입 다물고 있던 안개들/ 일제히 일어나 키득거린다/” 「가홍동 마애불」, “밤새워 벼린 조선낫 같은 손으로/ 바위를 쪼개고 또 쪼갰을 것이다/”

 

어쩌면 그레고리오는 시인이 세상을 바라보는 창 일 수 있다. 그리하여 시인은 자신의 그레고리오를 세상으로 환원시킨다. 시집 전체에서 보여주는 시적 태도는 그리하여 흐름의 일관성을 가진다. 이쯤에서 어느 알라디너가 자신의 서재에 썼던 말이 떠오른다. “시는 시집으로 읽어야 제 맛이다”, 라는 표현 말이다.  

 

 

시인의 시는 결코 넘치지 않는다. 박시인의 태도는 독자를 후리려 하지 않는다. 독자의 가슴을 후리는 시인은 욕망이라는 덫에 걸린 시인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이런 시인은 흔히 머리로 시를 쓴다. 박시인은 결단코 그러한 짖은 하지 않는다. 박시인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시를 잉태하고 출산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부족하고 모자란 모든 것에 대하여, 세상의 약한 모든 것에 대하여 마음으로 다가가 조용히 자신의 가슴을 내밀고 손을 내민다. 소란스럽지 않다. 호방하지 않다고 생각한 이유이다. 시인은 슬픔을 꼭 이기려하지 않는다. 작은 슬픔일지라도 말이다. 시인에게 주어진 상황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 품어 않고 가는 것이 시인의 세상을 향한 태도이다. 교과서에서 배웠던 시적 태도와 전혀 닮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그럴 필요도 그럴 이유도 없는 것이 아니던가...

 

안타까이 여기는 심정을, 에미가 버린 자식을 바라보는 심정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인의 심정을 나는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 시가 반드시 승화작용을 해야 한다거나, 초월을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새로운 나의 깨달음을 박시인을 통해 얻었다. 때로는 초월이나 승화는 우리의 실제 가슴과는 거리가 너무나도 멀기에 말이다.

 

시의 전반적인 느낌은 지극히 사적으로 독자와 마주하여 만나는 느낌이다. 청빈한 초대의 장 말이다. 결코 화려하지 않다. 노골적이지도 않다. 그러나 세련된 절제미를 느끼게 해준다. 가식 없는 시어가 나를 사로잡는다. 독자인 나를 후리려 하지 않는다고 느낀 이유이다. 따라서 시인은 자신의 시어들을 속.박.하거나 강.요.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하여 시인의 시어들은 그야말로 자.유.를 얻는다.

 

우연히 발견한 시집이 신선하고 매력있다. 돌아서면 왠지 또 다시 돌아보고 싶어지는 사람이 있다. 내가 박 시인의 시를 되돌아보고 또 돌아본 것 처럼 말이다.  앞으로 더더욱 대한민국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시인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기대감이 매우 크다. 그리고 그러리라 믿는다. 박형(朴兄). 인테넷 검색으로 바라본 그레고리오 아비의 미소가 맑더니, 시에서도 그 맑은 영혼을 느끼게 한다. 오염되지 않은 미소 속에 어찌 이런 시어들을 감추어 두었소? 박형(朴兄)! 이 독자, 박형을 사랑하오.

 

PS: 맨 마지막에 고봉준이라는 분의 해설이 있었다. 그분의 말씀을 알아듣기가 너무 어려웠다. 마치 정현종의 「시의 이해」를 읽는 바로 그 느낌이었다. 국문과 강의실에서나 있을 법한 해설. 출간된 시집의 해설은 독자와 소통을 위한 장(場)이어야 하지 않을까... 이것은 소통을 위한 장이 아니라 마치 시를 통해 이어졌던 그 맥을 단절시키는 듯한 인상을 준다. 여러 번 읽고 나서야 어느 정도 그 의미를 찾아갈 수가 있었다. 한마디로 겁나 어려운 해설이라는 거다.  

 

행여나 하고 시인의 두 번 째 시집 「슬픔을 말리다」를 살펴봤다. 다행이다. 정우영씨의 해설은 소통을 위한 장이 틀림이 없었다. 독자가 알아듣기 쉽게 썼으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그레고리오의 아비에게 이 어줍잖은 리뷰를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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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시집을 구입했다.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한때 시집을 많이 읽던 적이 있다.

너무도 오래도록 시를 읽지 않았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올해 가장 먼저 출간된 시집은 어느 시인의 것일까... 알라딘을 검색했다. 1월에 출간한 시집이 하나 보인다. 시인은 자신의 시집에「슬픔을 말리다」라는 특이한 제목을 붙였다. 같은 시인의 다른 작품이 있는지 찾아봤다. 「지붕의 등뼈」라는 시집이 눈에 들어온다. 이 시집 역시 제목이 범상치 않다. 박승민, 시인의 이름이다. 검색창에 ‘박승민 시인’을 넣고 엔터, 얼굴 사진이 바로 뜬다. 어이구, 젊은 냥반이고만~! (요즘은 마음만 먹는다면 이렇게 손쉽게 상대방을 알아낼 수가 있다).

 

인터넷이 알려준 정보는 “남성, 2007년 문예지 ‘내일을 여는 작가’ 등단” 이라고 알려준다. 아, 나이도 나온다. 1964년생이라고 한다. 나이에 비하면 사진으로는 더 어려보이는 인물이다. 물론 시인이 나보다는 나이가 많다^^. 미소가 선량하다. 그 선량한 기운이 마음에 드는 시인이다. 시인은 불혹을 지나 지천명(知天命)에 와있었다. 두 권을 모두 장바구니에 넣고 여타의 책들과 함께 클릭했다.

 

 

 

시집의 서문인 ‘시인의 말’부터 읽기 시작했다.

 

 

폐경기 앞둔 여자가 첫 애를 낳는 심정이다.

내가 사산(死産)한 세월이 주마등같다.

흑심(黑心)을 품은 연필 한 자루로 이 세상에 헤딩한다는 것이

무모함을 넘어

덧없음을 아는 나이

....

 

로 시작한다.

역시 시인은 다른가보다. 인트로부터 시적이다. 비유가 마음에 든다. 그러나 ‘주마등 같다’에서 ‘같다’라는 말은 시적이지 않다고 잠시 생각했다. 시인은 ‘〜같다’라는 표현을 ‘〜같다’라는 말을 쓰지 않고 해내야 한다고 평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나의 쩌는 편견에서 비롯한 생각이지 말입니다. 

 

 

마지막에는

 

내 아들 그레고리오에게

이 구석기적 문자를 바친다.

 

 라는 말로 마무리를 한다.

 

어느새 나는 그의 아들 그레고리오의 명복을 빌고 있었다.

순간, 나의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그레고리오...

그대가 아비의 가슴에 다시는 뽑아 낼 수 없는 비수를 깊이 깊이 꼽아두고 갔구려...

 

 

그러나 시인이여, 이제 그대의 나이도 지천명이 아니오...라고 나는 되뇌고 있었다.

 

그리고 한 장씩 시인의 시를 읽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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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날」 이라고 하니 과거 누군가가 제게 해준 말이 떠오르는군요. 그는 인생을 발전 시켜가는 3가지 중요한 요인이 있다고 했습니다. 첫째가 좋은 터요, 둘째가 스승님이고, 마지막이 좋은 책이다, 라는 것입니다. 터라는 의미는 자신의 환경을 말하는 것이지 싶고 스승님이야 말로 해 무엇 할까 싶습니다. 책은 셋 중 가장 접하기 쉬운 것이 아닌가 생각 합니다. 좋은 터와 스승님을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책은 마음만 먹는다면 되는 것이다, 라는데 동감합니다.

 

알라디너들께서야 늘 책과 함께 사시는 분들이지만 우리나라의 독서 현실은 꼭 그렇지는 않아 보입니다. 이런 우리의 독서 현실에 늘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책의 날이 우리의 독서에 더욱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기 바랍니다.  

 

설문을 보니 답하기가 쉽지 않은 내용도 있군요. 처음에는 왠지 겸연쩍어 주저했으나 어쩌면 제 자신을 돌아보는 좋은 계기가 되어줄 것이다, 생각하고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평소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질문에는 답하기가 쉽지 않을 듯 하군요.

 

 

Q1. 언제, 어디서 책 읽는 걸 좋아하십니까?

첫 번째인데 답하기가 좀 부끄러운 질문입니다. 솔직히 고백해야하고, 그래야만 의미가 있으니 말입니다. 사실은 장소에 구애받는 편입니다. 편안해야 하고 방해하는 요인이 거의 없을 때 집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제가 좋아하는 고전 음악 조차도 방해가 되더군요. 특히 집중력을 요하는 책들은 더욱 그러한데,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바로 침대입니다. 이리 뒹굴, 저리 뒹굴... 이는 매우 어렸던 초등학교 시절의 환경 덕분에 생긴 버릇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전기가 없었고 책상도 없었지요. 특히 밤에는 호롱불 아래에서, 혹은 등잔을 머리맡에 내려놓고, 가끔은 머리를 등잔 불꽃에 지져가면서 말입니다. 그렇게 자리를 깔고 뒹굴거리는 버릇이 들어버렸네요.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말을 실감하겠습니다.   

 

다음으로 선호하는 장소는 욕실입니다. 반신욕을 하면서 책을 읽을 때 상당히 집중도가 좋고요. 물이 식는 줄도 모르지만 시간이 가는 줄 모르다가 몸이 차가워지고 나서야 깨닫습니다.

 

아, 저는 자동차를 타고 가면서도 독서를 합니다. 위험하지 않냐구요? 이해가 잘 안되시겠지만 답을 마칠 때면 이해가 가실 것입니다. 때와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독서가 진정한 애독자라 할 수 있겠으나 이에 미치지는 못해 아쉬움이 남기는 합니다.  

 

Q2. 독서 습관이 궁금합니다. 종이책을 읽으시나요? 전자책을 읽으시나요? 읽으면서 메모를 하거나 책을 접거나 하시나요?

앞으로는 어떨지 장담은 할 수 없지만 현재까지는 99% 종이책으로 읽는 실정입니다. 한때 메모를 하기도 했으나 다시 읽는 일이 거의 없어 독서기록을 남기기 시작했고요. 언젠가부터 책의 여백에 직접 떠오르는 생각을 쓰고 밑줄을 그어가며 책을 읽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알고 보니 본격적으로 독서를 시작하던 대학 1학년 때부터였습니다. 해서 타인에게 양도하기가 쉽지 않은 아쉬운 면이 있습니다. 책에 좀 미안하기도 하구요.  

 

좋은 점은 하나 있기는 합니다. 재독, 삼독할 때 밑줄 친 부분을 중심으로 빠르면서도 고도의 집중력으로 읽을 수 있거든요. 이 효율성은 제가 밑줄 긋는 버릇을 고칠 수 없게 하는 핵심 요인입니다.

 

 

Q3. 지금 침대 머리 맡에는 어떤 책이 놓여 있나요?

많은 독서가들이 그러하시겠지만 머리 맡의 책들은 현재 읽고 있는 책과 가장 탐을 내던 책들이며 가장 애지중지하는 책들입니다. 또한 언제고 다시 꺼내 보아야 하는 책들이 틀림없을 것입니다.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사정권에 두고 있는 책. 이런 책들이 제게도 몇 권 있습니다. 사진을 찍어 볼까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깔끔하게 상품 넣기로 대신할까 합니다.

 

최근에 구입하여 머리 맡에 있는 책

 

 

 

 

 

 

 

 

 

 

 

 

 

 

 

 

 

 

오래도록 머리 맡에 있는 책

 

 

 

 

 

 

 

 

 

 

 

 

 

 

 

 

Q4. 개인 서재의 책들은 어떤 방식으로 배열해두시나요? 모든 책을 다 갖고 계시는 편인가요, 간소하게 줄이려고 애쓰는 편인가요?

장르별로 배열하는 것은 신속한 되찾기를 가능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애용하고 있습니다.

 

책의 소장 관련 질문은 알라디너들이라면 한 번 쯤 고민해봤을 법하군요. 저도 한때 고민을 많이 한 적이 있습니다. 아마도 20 여 년 전의 일일 것입니다. 이 고민도 결코 결정하기 쉬운 것은 아니었지요. 결국 간소함을 선택했습니다. 정예 맴버 500권으로 하자는 것이 저의 결론이었고 지금도 그러합니다. 책의 상태에 따라 양도하거나 기증, 양도나 기증이 어려운 상태의 책은 분리수거 합니다. 종종 양서들을 제가 알고 있는 서당으로 보내기도 합니다. 서당이라도 한자로 된 책만 읽으라는 법이 있을까, 하는 생각에 훈장님과 상의 했습니다. 훈장님은 흔쾌히 승낙하셨지요.

 

지난 해인가 헤세의 글에서 책 정리에 관한 글을 읽었습니다. 정예 맴버를 구축하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헤세도 그랬구나 싶은 것이 위로가 되었습니다.  

 

Q5. 어렸을 때 가장 좋아했던 책은 무엇입니까?

‘어렸을 때’ 라는 의미에 대한 약간의 정의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잠시 했습니다. 책과 관련한 ‘어렸을 때’ 라는 말은 일반 적인 어렸을 때와는 제 스스로 구별하고 있었거든요. 개개인에 대한 질문이니 제 생각을 간단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독서와 관련한 ‘어렸을 때’의 정의는 제 스스로를 돌아보면 ‘20대 중반’ 까지가 아닌가 싶습니다. 대학생 때 읽었던 그 많은 책들을 사실 저는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했다는 생각을 금할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일리아드」,「니체 전집」,「장미의 이름」그리고 「달과 6펜스」등 입니다. 교양 철학의 한 교수님께서는 대학생이라면 일리아드는 필독서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일리아드를 읽었지요. 지금 돌이켜 보면 당시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했다는 결론입니다. 「니체 전집」은 말할 것도 없고「장미의 이름」과 「달과 6펜스」 역시 다를 바가 없습니다. 알고 보면 이런 책이 한 둘이 아니었던 것이지요. 저는 그저 스토리만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상징은 시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어느 순간 깨달았습니다. 쉽게 접했던 고전들은 알고보면 은밀하고도 심오한 상징들 투성이 라는 것이지요. 저는 그 상징들의 의미를 나이가 훨씬 더 들어서야 하나씩 알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한마디로 이제야 말입니다. 현재의 저는 새롭게 고전을 읽어가며 고전이 왜 고전인지 새롭게 깨닫고 있는 중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여 제게 ‘어린 시절’은 20대 중반 까지입니다. 그 어린 시절 제가 가장 좋아했던 소품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김유정의 소품「동백 꽃」입니다. ‘오늘도 또 우리 수탉이 막 쫓기었다.’ 로 시작하는 「동백꽃」이 너무 좋아 저는 달달 외우다시피 했습니다. 들고 다니며 책이 닳도록 소리 내어 읽고 또 읽었지요. 수탉을 매개로 주인공과 점순이의 가슴에서 피어오르는, 4월 연두 나뭇잎의 파릇한 감정이 점점 붉게 물들어 간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여전히 김유정의 「동백꽃」을 사랑합니다.

 

더더욱 좋은 것은 이 버릇의 발전에 있습니다. 대학 때부터 마음에 드는 문구나 책을 달달 외우던 버릇은 나이가 더 들어 고전을 외우는 것으로 발전해 갔습니다. 첫 번째 질문에서 못 다한 이야기인데요. 제게는 운전을 할 때도 매우 중요한 독서 시간입니다. 고전의 내용을 바로 제 목소리로 녹음한 음성 파일을 운전 중 들으며 따라 읽는 것 입니다. 제게는 최고의 고전 독법입니다. 행여 고전을 암기하고자 하는 분이 계시고, 운전 시간이 좀 있는 분에게라면 적극 권해드리고 싶을 만큼 효과는 단연 최고라고 말씀드리고 싶군요.   

 

 

Q6. 당신 책장에 있는 책들 가운데 우리가 보면 놀랄 만한 책은 무엇일까요?

가장 곤혹스런 질문이지 싶습니다. 제 스스로에게는 여전히 놀랄만한 책이지만 제가 아닌 남들에게는 전혀 놀랄만한 책이 아니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지리에 관련한 책으로 스승님께서 수십 년 전 쌀 6가마니를 주고 사신 책입니다. 안동의 어느 집에서 이 책을 내놨다는 소식을 들으신 스승님께서는 한걸음으로 달려가 구입하셨다고 합니다. 사실은 이 책보다는 스승님의 판단과 결정이 놀라울 뿐입니다. 아래의 사진은 제가 가지고 있는 사본 직지원진입니다.

 

 

 

Q7. 고인이 되거나 살아 있는 작가들 중 누구라도 만날 수 있다면 누구를 만나고 싶습니까? 만나면 무엇을 알고 싶습니까?

이는 평소 생각하고 있던 반가운 질문입니다. 사적으로 만나고 싶은 두 분이 계십니다.

 첫째는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입니다. 그는 「중용」의 저자로 알려져 있고 곽점 출토의 백서(帛書)로 보건데 거의 확실한 듯 보입니다. 중용 장구 중 한 글자를 왕숙이 첨가하고 송대의 주희는 그 부분을 고스란히 이어받았습니다. 「대학」에서도 주희의 스승은 글자 하나를 손질 했는데 주희는 이를 무비판하여 받아들였습니다. 특히 대학에서 그들이 바꾼 한 글자는 조선의 유학 사상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습니다.「대학」 역시 자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고, 자사가 지었을 것이라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사’ 라면 저의 궁금증을 명료하게 해결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자사는 공자보다 철학적으로 더 깊이 있는 인물이라고 여깁니다. 가능하다면 가르침을 직접 받고 싶군요.

 

둘째로는 헤르만 헤세입니다. 그는 동양의 고전을 상당히 섭렵한 인물로 사서는 물론 노자, 심지어 여불위의 저술까지 꿰뚫고 있었습니다. 그 사실을 알았을 때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공맹과 주역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 이상을 넘나드는 헤세에게 동서양의 사상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과연 어떤 생각을 진솔하게 펼쳐 줄지 정말 궁금합니다.   

 

Q8. 늘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읽지 못한 책이 있습니까?

「책의 날」을 두 작가의 사망일로 정했다는데, 세르반테스와 셰익스피어라고 합니다. 「돈키호테」를 꼭 다시 읽고 싶습니다. 어린 시절 그 버전이 아닌 제대로 된 버전으로 말입니다. 어린 시절 잠시 거친 책들을 다시 찾지 않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사실은 제 자신이 그랬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돈키호테는 그런 식으로 읽어버리고 말 고전이 아니라는 것을 나이가 더 들어 알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상술의 희생자 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이런 이유에서 입니다. 고전의 진정한 맛을 저는 어린이 버전으로 지나쳐 왔으니 말입니다. 아, 개인 적으로는 안타까운 일입니다..    

 

Q9. 최근에 끝내지 못하고 내려놓은 책이 있다면요?

물론 다 읽지 못한 책이 여러 권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언젠가 서재에 고백을 했지요. 바로 「리만 가설」입니다. 어지간하면 완독하려고 애씁니다. 저자에 대한 예의도 예의지만 자존심이라는 것도 있잖아요 왜 ^^. 그러나 이 책은 제 능력으로는 절대로 끝가지 읽어 갈 수가 없었습니다.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지만 결국 스스로 중도이폐하고 말았지요. 이럴 때 정말 씁쓸합니다 ㅠ.ㅠ. 

 

 

 

Q10. 무인도에 세 권의 책만 가져갈 수 있다면 무엇을 가져가시겠습니까?

답하기 가장 곤란한 질문입니다. 꼭 골라야 한다면 「반야심경」, 「중용」 그리고 완역 소설 「삼국지」입니다. 무인도에서 탈출할 때를 기다리거나 준비를 하면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한 반야심경. 반야심경은 물론 주석이 상세히 달려 있는 책이라야 합니다. 주석이 없는 책은 능력 밖이니까요. 행여 깨닫는 순간 무인도를 떠나고 싶어 하지 않을 수도 있기에 선택합니다. 필수 템인 이유입니다.

 

불경과 더불어 「중용」은 가장 소중히 생각하는 경전입니다. 음성 파일을 만들에 제일 먼저 시작한 고전이 중용이고 가장 다양한 버전들을 읽은 대상도 중용입니다. 도서를 가장 압축시키고 나머지 버전들은 가장 많이 양도하거나 기증한 책이기도 합니다. 자사를 만나고 싶어 하는 이유도 중용의 장구에 있지요. 그 가르침이 지극히 성스럽다고 늘 여기고 있습니다. 남아 있는 나날 끊임없이 읽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책이 바로 중용입니다. 

 

재미하면 삼국지. 무인도라 진짜 심심할 것 같습니다. 심심할 땐 혼자 놀아야 하잖아요. 이럴 땐 삼국지가 제격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삼국지의 주인공들이 싸움터에서 상대방에게 외치는 장면들은 정말 웃기고도 재밌습니다. 특히 장비의 입이 걸쭉하고요. 언쟁이 전투 못지않게 재밌는 소설이 삼국지인 듯 합니다. 혼자 소리 내어 읽다보면 지루함은 어느새 사라질 것만 같은 소설이기도 합니다.

 

질문에 하나씩 답하며 제 자신을 되돌아 보게 되었습니다. 평소 생각해 본적이 있는 질문도 있고 전혀 생각지 못했던 질문도 있었습니다. 왜 어떻게 책을 읽는지 별로 생각해 본적이 없었지요. 그냥 읽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번 설문의 기회는 뜻밖의 생각을 하게 해주었고, 개인적으로 매우 유익했습니다. 이런 기회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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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영국은 커다란 아킬레스 건을 하나 가지고 있는 나라이다. 식민지를 수탈해 영화를 누리던 시절도 갔고, 서서히 열강의 대열에서 뒤로 쳐지면서 그간 고통도 많이 겪었다. 쇠락한 영국을 새롭게 탈바꿈하고자 했고 그 핵심에는 대처 수상이 있었다는 것 외에는 아직은 과거의 영화를 되찾지 못하고 있다. 한 가지 있기는 하다. 알파고의 나라이다.

 

아, 그 아킬레스건이 무엇이냐 하면, 영국은 건국신화가 딱히 없다는 것이 그것이다. 하이랜더나 로빈 후드와 같은 전설은 많지만 이는 우리의 단군신화와 같은 수준은 절대로 아니다.

 

이 책은 알라딘에서 구입해 읽은 책입니다. 영국인의 입장이 아닌 프랑스인의 입장인지라 아무래도 약간이나마 다른 관점을 보여주지 않을까 하여 선택을 했습니다.  

 

행여 영국이 한국인의 스토리인 단군신화를 부러워하랴 싶겠지만 그것이 꼭 그렇지가 않다. 영국의 역사를 뒤져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어린 학생들이 보는 만화 수준의 영국 역사를 뒤지더라도 말이다.

 

미국인들은 자칭 자신들의 나라를, 섞여있으나 각각의 개성이 살아있는 샐러드 보울 (Salad bowl) 이라고 하는데 영국은 한마디로 죄다 녹아있는 도가니 탕(Melting Pot)의 나라이다. 로마의 침입과 지배, 작센 지방의 앵글로 족, 색슨 족, 스칸디나비아의 바이킹 족, 덴마크의 데인족, 노르망디의 노르만족 등의 수없이 많은 침입을 받았다. 그 결과 켈트, 로마, 앵글로색슨, 데인, 바이킹, 노르만 등 수없이 많은 민족이 혼잡한 인구 구성을 가졌다.

 

2,000 여 년 전 이면 한반도의 북쪽에서는 고주몽께서 나라를 세워 고구려의 동명성왕으로 등극을 하여 대륙으로 그 세력 확장을 꿈꾸고, 중국에서는 한고조가 나라를 평정한 후 제후국을 거느라고 나라를 통치하던 그 시절이었다. 당시 영국은 로마의 지배자 시저의 침략을 받아 정복당한 후 로마 문화에 깊이 경도되었다. 그 뿌리는 영국의 본토에 매우 깊이 파고들었다. 라틴 문화가 영국의 런던을 중심으로 전국에 퍼져나간 것이다. 36년이라는 일제의 강점기는 우리나라에 일제의 문화 흔적을 아직도 확연히 남기기에 충분한 기간이었다는 점을 감안해보자. 로마는 30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영국을 지배했다. 라틴 문화의 뿌리가 뼛속 깊이 스며들기에 충분한 기간이 아닐까...

 

그러다가는 본국에 다급한 일이 생기자 로마군대는 바로 본국으로 철수했다. 로마의 침략을 피해 도망갔던 스코트 족은 자리가 비었다 생각하고는 영국 본토를 습격한다. 다급해진 켈트족은 색슨 족에게 SOS를 친다. 거칠고 잔인하며 포악한 민족으로 알려진 게르만 족, 즉 색슨 족은 이게 웬 떡이냐 하고 달려왔다.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고 흔쾌히 물을 건너온 것은 거리가 가까워서이기도 하거나와 다 꿍꿍이가 있어서인 게다. 도와주기는 커녕 되려 켈트족을 아작 내버린다. 색슨 족의 배신에 치를 떨며 켈트족은 아이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 등으로 뿔뿔이 흩어져 도망친다. 이 소식을 접한 앵글로 족이 얌전히 있을 리 만무하다. 이참에 나도 좀 하면서 바로 섬나라도 들어와 한자리를 차지한다.

 

결과적으로 영국은 켈트, 로마, 데인, 바이킹, 노르만인 들이 어우러 살다가는 앵글로와 색슨족이 마지막 본토 정리를 끝낸 후에야 국가다운 면모를 갖추게 된 것이다. 결국 국호도 ‘앵글로 족이 사는 나라’ 라는 뜻의 ‘앵글랜드’가 결국 잉글랜드가 된 것이다. 주를 이루는 영국 문화는 라틴 문화에 앵글로 색슨 문화의 혼합 형태이다. 영국을 도가니탕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바로 그들의 역사인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영국은 역사적으로 유구하고 고유한 건국 신화가 부재한 입장이 되어버렸다. 영국인들은 대부분의 나라들이 가지고 있는 건국 신화의 부재라는 말 못할, 그러나 내심 남을 부러워하는 약점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인도를 셰익스피어와 바꾸지 않겠다 라는 오만 방자하고도 허풍이 쩌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는 것이다. 건국 신화의 부재에서 오는 열등의식의 발로이며 보상 심리가 작용한 발언이라고 생각하는 이유이다.

 

이러한 심리적 약점은 영국인들로 하여금 행동 과잉과 같은 현상을 보여주기도 했는데 바로 「해리포터」의 전설이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 생각한다. 사실 해리포터가 뜨기 전에는 판타지가 전 세계를 강타한 적은 없는 듯하다. 판타지가 문학의 장르로서 어느 정도의 위상을 가지는 지 나로서는 알 수 없다. 한동안 국내의 전문가들이 장르로서의 판타지를 논하며 갑을 박론하던 장면을 텔레비전에서 잠시 본 적이 있다. 어째거나 그 열기가 한 때 반짝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당장에는 고전의 반열에 오르기에는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싶다. 진정한 고전은 생명력이 길다. 트렌드와는 분명하게 구별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물론 시간이 흘러 고전의 반열에 오르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말이다. 

 

이렇듯 영국은 셰익스피어나 조앤 K. 롤링과 같은 사람들의 작품을 전폭적인 마게팅 전략으로 띄울 정신적 준비가 잘 되어있을 수밖에 없다. 건국 신화의 부재는 대리만족을 끊임없이 원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셰익스피어는 그 작품성을 인정받아 생명력을 지속해왔다는 점이 해리포터와는 차이 점이라 할 수 있다.

 

역사와 국민의 심리는 서로 분리해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개인이 경험한 과거가 현재의 심리에 적확하게 드러날 수밖에 없는 것처럼 말이다. 앞으로는 국내 기사에서 셰익스피어를 나라는 내어주어도... 혹은 인도와 연관 짖는 허무맹랑한 소개가 아닌 좀 더 아름다운 소개를 받고 싶다. 인도가 나의 조국은 아니지만 듣는 이 독자 별로 유쾌하지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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