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차트랑空 (차트랑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6104135</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창문을 열어라. 하늘의 해가 저렇게도 맑고 환하구나... </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Wed, 05 Aug 2026 21:31:33 +0900</lastBuildDate><image><title>차트랑</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t_746104135755899.png</url><link>https://blog.aladin.co.kr/746104135</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차트랑</description></image><item><author>차트랑</author><category>횡설 수설...</category><title>명리 기초 1을 완벽 정리한 책  - [지산스님의 명리정해와 문답]</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6104135/17429488</link><pubDate>Mon, 03 Aug 2026 07:4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6104135/1742948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2707767&TPaperId=1742948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56/38/coveroff/897270776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2707767&TPaperId=1742948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지산스님의 명리정해와 문답</a><br/>지산 지음 / 명문당 / 2005년 04월<br/></td></tr></table><br/><br>이 책은 400쪽을 넘기지 않는, 명리서로는 많은 쪽 수를 가진 책은 아니다. 그럼에도 입문자들에게 부담스러운 것은 초장부터 암기 사항 나열하기를 100 여 쪽에 이른다는 점이다. 이는 입문자들을 매우 불편하게 하는 것이 사실이다. 분명 알아야 할 사항이 틀림이 없으되, 시간의 여유를 가지고 익히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너무 부담스럽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입문자 에게는 상당한 압박감을 느끼기에 충분한 내용들이다.<br><br>그리하여 책의 구성 내용으로 보아 명리에 대한 단순한 관심으로 읽어보고자 의도한다면 애초에 손을 대지 않기를 권해드린다. 앞 부분 수십 쪽을 읽다가 암기 사항에 압도된 후 먼지만 쌓일 확률이 매우 높은 책이니 말이다.<br><br><br>반면, 명리를 작심하고 대해볼 생각이라면 적극 권해드리는 바이다. 이 책은 쉽게 말해 명리의 기초 1을 퍼.펙.트.하게 정리하고 있으니 말이다. 더불어 명리에서 흔하게 사용하는 용어들에 관해 정리를 잘 해주고 있다. 한마디로 개념정리를 깔끔하게 해준 책이다. 기초 1에 해당하는 내용들과 공부의 방향을 확립하는데 분명 도움이 되는 책이다. (사적으로 사주의 기초를 1, 2로 구분한다. 사주의 기초 2는 천간과 지지가 주변과 만나 일으키거나 운과 만나 일으키는 변화로서 간명의 중요한 변수를 말함인데 통변에서 필수 사항이라 하겠다. 즉, 1이 불변의 개념이라면 2는 변화의 개념이다. 기초 1과 2를 제대로 익히지 않으면 혼란스럽고 불투명한 상태를 벗어나기 어렵다고 본다. )&nbsp;<br><br>고로 이 책을 읽으면 명리를 잘 알게된다는 뜻이 아니다. 이 책은 명리를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앞으로 무엇을 공부해야 할지를 명확하게 제시해준 책이라는 말씀이다. 이는 명리를 시작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사항일 것이다.&nbsp;앞으로 공부를 해야할 내용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는 매우 크다. 알면 제대로 공부할 수 있고, 모르면 엉뚱한 길로 들어서서 허송 세월하는 수가 있기에 하는 말이다.<br><br>어느 명리 학도가 명리의 대가로 알려진 선생에게 비싼 수업료를 내고 공부를 한다고 치자. 학생들은 대부분 선생의 수업이 정도로 가고 있는지 아니면 삼천포로 가고 있는지 제대로 알기가 어렵다.&nbsp;실제로 알고 지내는 어느 명리 학도는 유명하다는 선생을 찾아가 비싼 수업료를 내고 3년간 공부를 했다. 그런데 자신의 실력이 다른 곳에서 1년 공부한 사람보다 못하더라는 것이었다. 그때 가서야 자신이 3년간 허송 세월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이런 사람들이 하나 둘 이 아니기에 이곳에 써 두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경우에 해당하는 분들을 여럿 만나 보았다. 수강료만 날리면 다행이다. 교재 값으로 나간 헛돈도 심각했더라......!!<br><br>명리를 알기위해 반드시 거쳐야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있다. 그 과정들을 제대로 가르치는 선생인지 아닌지를 모르면 일이 대략 이 지경에 이를 수 있기에 하는 말이다.<br><br><br><br>[[[ 포대법을 쉽게 익힐 수 있도록 그림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 그림을 따라 연습하면 포태와 12운성을 금방 마스터 할 것이다. 명리의 12운성 연습은 시간이 괘 걸리는 편인데 이 그림은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는 바이다 ]]]&nbsp;&nbsp;<br><br>또 하나의 예를 든다면,용신(用神)을 다루지 않거나 혹은 소홀히 다루거나 또는 경시하는 선생은 패스하기 바란다. 이 책에도 용신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명료하게 밝히고 있다.<br>"문제는 과연 四柱 가운데 어떠한 오행이나 육친이 그 四柱를 유리하게 도와주는 자 인가를 알아내는 일이다. 즉, 무엇이 용신인가를 가리는 것이 가장 어렵다. 고로 용신을 바르게 정할 줄 알면 四柱學은 거의 터득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p. 132<br><br>용신은 명리의 핵심이다. 원국의 상중하를 판단하고 앞으로의 운을 판단하는데 용신은 결정적인 사항이다. 남녀의 궁합은 말할 것도 없다. 문제는 용신을 정확하게 잡아내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점이다. 10 년을 공부해도 용신을 장담할 수 없다. 이것이 사실이고, 명리가들이 당면하고 있는 현실이다. 결국 어떤 이는 용신 잡기를 포기하기에 이르른다. 그리고 궤변을 늘어놓는다, "용신에 얽매이지 마라!" 라고. 어떤 이가 쓴 "용신 고집하다 해 넘어간다"는 글을 오늘도 마주했다. 이런 자가 있다면 절대로 신뢰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 말을 믿으면 안된다. 용신을 모르면 길(吉)과 흉(凶)을 판단할 수 없는 것이 명리이다.&nbsp;<br><br>또한 용신을 모르면 명주의 행복 여부를 알 수가 없다. 성공 여부와 행복 여부는 또 다른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사회적으로 성공은 했으나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 개인이 있는 것은 이러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용신을 제대로 알면 이 차이를 알 수 있다. 그러니 "용신에 얽매이지 말라, 용신 고집하다 해 넘어간다"는 말을 믿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는 용신을 공부하다 지쳐 중도이폐한 술사들의 궤변이기 때문이다.<br>때로는 용신이 아니어도 답을 얻는 경우가 없지는 않다. 그러나 이는 일반화의 오류에 빠질 위험성이 있다. 지극히 경계해야 할 일이다.<br><br>명리는 쉽게 말해 타이밍(Timing)의 학문이다. 어느 시기에 태어났는가를 기준하여 길흉을 알아보는 것이니 말이다. 그 사람이 태어난 年 月 日 時가 기준인 것이다. 이 네 가지는 시간이 아닌 것이 없다. 그리하여 특정 시간의 사주에 특정 시간은 길(吉)이 되고 또 다른 특정 시간은 흉(凶)이 된다. 그리하여 특정 년 월 일 시는 조화가 잘 이루어지는 반면, 또 다른 특정 년 월 일 시를 만나면 길흉이 엇갈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용신을 모르면 길흉을 알 수가 없다!!)<br>그리하여 향해야 할 방향도 서북 혹은 남동으로 엇갈리는 것이다. 누군가는 미국 혹은 유럽으로, 또 다른 누군가는 동남아 혹은 중동 혹은 하와이로 각기 길을 나서는 이유이다.<br><br>그러나 또한 염두에 두어야 할 것도 있다. 대부분 자신의 운명을 피해가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분명 피해가는 사람도 있다는 점 말이다.<br>관련 일화가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어디선가 들어봤을 법한 그 스토리는 대략 다음과 같다.토정 선생이 그의 스승인 화담 선생과 조선을 두루 살피던 때의 일 이라고 한다. 두 분께서 충청도 어느 고을을 지나는데 마을 입구에서 두 사람의 앞을 막아서는 한 포졸이 있었다.<br><br>그 포졸이 말하기를, "고을에 전염병이 돌아 마을로 들어가면 죄다 죽소~! 다들 도망간 마당이니 다른 마을로 피해 가시오!" 했다.화담 선생은 "우리는 괜찮으니 염려마시오. 그나저나 그대는 도망가지 않고 어찌하여 여기서 이러고 계시오?" 했다.그 포졸이 말하기를, "나마저 도망치면 이 마을의 전염병이 다른 마을로 번져 다들 무사하지 못할 것이오. 누군가는 이 일을 해야하지 않겠소?" 했다.<br>그 자의 안위가 걱정된 토정 선생이 스승께, "저 자의 운(사주)을 살펴볼까요?" 했다.화담 선생이 답하기를, "아니다. 그럴 필요 없다. 저토록 굳은 의지와 책임감이 강한 사람은 흉운도 피해 가느니라!" 했다.<br><br>강한 의지와 책임감은 나쁜 운명도 피해간다는 말이다. 그러니 선업을 행하고, 좋은 뜻의 강한 의지와 더불어 책임감있는 삶을 살아간다면 흉도 피해 갈 것이며, 흉이 되려 길로 변할 수 있으리라 여기는 바이다.<br><br>추신ㅡ 최근 어떤 이가 AI로 사주를 봤다고 말하면서 그 결과물을 믿어도 좋으냐는 질문을 내게 했다. AI로 사주를 봐본적이 없는 나로서는 정확한 답을 줄 수는 없었다. 한 가지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입력 값의 정확도이다. 용신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제대로 된 값을 입력시켜 AI에게 학습케 했다면 적중율을 믿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학습의 량도 충분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다면 심심풀이가 될 확률이 높다고 본다. AI는 학습시킨 내용 만을 습득한 후의 결과물을 내놓는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어느 정도의 실력자가 AI 기반에 참여했느냐가 핵심일 것으로 판단된다. 속 사정을 알 수 없는 한, 답을 낼 수도 없을듯 하다.<br><br><br style="font-family: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56/38/cover150/897270776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563816</link></image></item><item><author>차트랑</author><category>횡설 수설...</category><title>슈베르트의1급 빙수 송어를 낚는 알프스 최고의 강태공 3인</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6104135/17407034</link><pubDate>Thu, 23 Jul 2026 08:5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6104135/17407034</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C992634313&TPaperId=1740703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8053/92/coveroff/c992634313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C662736508&TPaperId=1740703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76/18/coveroff/2552436138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32632020&TPaperId=1740703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5045/3/coveroff/k232632020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br>사적으로 낚시 행위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특히 재미를 위해 행하는 낚시를 지극히 경계하는 편이다. 낚시꾼의 기쁨과 즐거움, 행복은 물고기에게는 절명을 뜻하기 때문이다. 낚시꾼들이 흔히 말하는 그 손맛은 물고기의 절명을 댓가로 얻는 즐거움이다. 끊어질듯 팽팽하게 당겨진 낚시줄의 텐션이 강할수록 낚시꾼들의 즐거움은 더 커진다. 동시에 아가미를 꿰인 물고기의 갑작스런 공포와 절망도 그만큼 더 커진다. 아... 이 넋을 빼앗는 순간의 공포와 두려움을 어찌 경계하지 않을 수 있으랴...<br>그리하여 누군가의 즐거움, 행복이 또 다른 누군가의 죽음, 두려움, 극도의 공포와 공존할 수 밖에 없는 그 상황을 나는 원하지 않는다. 설사 그 상대가 물속에서 사는 존재 일지라도...<br><br><br>아래 사진, 슈베르트의 밤<br><br>[[[ 사진 출처 ㅡ&nbsp;슈베르트 평전 p.449.&nbsp;요제프 슈파운의 집에서는 '슈베르트의 밤', 즉 슈사모(슈베르트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가 열렸다. 슈베르트는 동시대의 다양한 인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피아노 치는 사람이 슈베르트, 팔을 뻗어 악보를 넘길 준비를하고 있는 기럭지가 긴 사람이 바리톤 요한 포글이다. ]]]<br><br>그러나 알프스 최고의 송어 낚시꾼 3인은 예외이다. 때로는 그 낚시꾼들의 재능을 모방해보려는 헛된 시도를 범하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그 3인은 알프스 최고의 낚시꾼들이지만 물고기를 향해 미끼를 매단 낚시를 던지지도, 물고기를 낚아올리지도 않는다.&nbsp;<br> 1817년 스무살의 슈베르트는&nbsp; 이름이 조금 긴 크리스티안 프리드리히 다니엘 슈바르트(Christian Friedrich Daniel Schubart)가 쓴 시(詩)에 곡을 붙인다. 곡의 이름은 '송어( Die Forelle)'. 한 때, '송어'냐 '숭어'냐 전 국민을 헷갈리게 하기도 했다. 그러나 '슈바르트'가 시를 쓰고 '슈베르트'가 곡을 붙인 대상 주인공은 '송어'가 맞다.<br><br><br>오스트리아, 독일,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등은 알프스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특히 알프스의 맑고 시원한 물은 말할것도 없다. 알프스의 차갑고 맑은 물 송어는 또 그 주인공 중 하나가 아니겠는가. 이 녀석들은 알프스의 싸하게 차가운 빙수에서 자라서일까, 자신들의 고고함을 자랑한다. 1급 빙수의 이 물건들을 탐내는 낚시꾼들이 많을 수 밖에 없다.시인 '슈바르트'는 이 낚시꾼들과 송어를 빗대어 사내들을 경계하라는 메시지를 시(詩)로 남긴다.<br><br><br><br><br>  <br> <br><br><br><br><br><br><br><br><br><br><br>슈베르트가 알프스의 차가운 1급 빙수에서 뛰노는 송어를 모를리가 없다. 그는 이 녀석들이 물에서 퍼덕이는 그 활기와 기운찬 모습에 그만 감동을 했던 모양이다. 사실 살아있음의 생명력은 그 자체로 감동이다.<br><br>시경(詩經)에 어약우연(魚躍于淵)이라는 말이 있다. 자유롭고 건강한 물고기들이 제 힘에 겨워 연못 위로 퍼드득 뛰어오른다. '어약우연'은 물 위로 뛰어오른 물고기의 생동감, 그리고 물고기의 은빛 비늘들의 반짝임과 자유로운 순간을 포착한 정녕 아름다운 수사이자 스틸컷이다. 아름다움과 감동은 생명력이 살아 있는 바로 이 순간과 자유로움에 있다. 살아 있음과 자유로움의 감동이 슈베르트에게 곡을 쓰게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리하여 '슈베르트'는 이름도 비슷한 '슈바르트'의 시를 가져와 곡을 붙인다.<br><br><br>[[[ 애정하는 분덜리히 형님의 노래를 빼놓을 수 없다. 분덜리히는 슈베르트의 송어에 아주 잘 어울리는 딕션을 들려준다. ]]]<br>'송어 Die Forelle'의 작품 번호는 Op. 32 (D. 550)이다. 슈베르트가 생존해 있던 시기에 출판했다는 뜻이다. (송어 피아노 5중주는 Op. 114 이다.<br>슈베르트는 피아노 5중주를 출판하지 못하고 세상을 등졌다. 도이치 번호(D.)와 관계없이 오푸스 번호 (Op.) 가 100번을 넘어가면 슈베르트 살아 생전에 출판하지 못했다는 뜻이다)<br><br><br>[[[ 포글과 슈베르트 ㅡ 프란츠 폰 쇼버가 1817년에 그린 캐리커쳐 ㅡ 사진 출처, 슈베르트 평전 p. 159. 포글은 존재감이 압도적인 장신의 사내였고, 특히 고대 그리스어와 문학을 비롯한 고전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예술가였다 ㅡ 슈베르트 평전 p. 158~159. ]]]<br><br>슈베르트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절친이자 당대 최고의 명 바리톤이 한 사람이 늘 곁에 있었다. 그 둘은 재밋게도 동갑이였다. 그의 이름은 요한 포글(Hohann Vogl)이었다. 포글은 슈베르트보다 먼저 명성을 얻고 있었다. 슈베르트의 가곡들을 우연히 부르게된 포글은 슈베르트릴 단번에 알아봤다. 그 순간부터 그는 슈베르트의 홍보 대사가 되었다. 포글은 슈베르트가 자신의 재능을 알리는데 크게 일조했던 것이다. 요한 포글은 슈베르트에게 절친이자 큰 조력자였다.<br><br><br>[[[ 이안 보스트리지의 송어는 딕션의 마술을 보여준다. 그는 슈베르트에 관한한 늘 마술사이다 ]]]<br><br>송어(Die Forelle)의 운율은 싱그럽고 기운찬 송어를 닮아 밝고 상쾌 경쾌하다. 듣는 이의 기분을 덩달아 좋게한다. 슈베르트는 이 곡을 어찌나 애정했던지 곡을 쓴 이후 4년간 네차려에 걸쳐 곡을 가다듬는다. 추후, 피아노 5중주의 주제로도 사용한다. 이 사실은 '송어 Die Forelle'가 슈베르트의 정성이 많이 깃든 대표곡 중 하나라는 것을 방증한다.&nbsp;<br><br><br>[[[ 피셔 디수카우는 독일 가곡의 대가이다.&nbsp; 안타깝게도 디스카우와 양대 산맥 중 하나였던 제라르 수제의 송어는 왠지 즐겨듣지는 않는 편이다 ]]]&nbsp;<br><br>슈베르트 송어의 핵심은 딕션에 있다. 송어가 퍼덕이는 그 모습을 닮은 딕션을 들려주어야 한다. 피아노 연주 역시 1급 빙수처럼 투명하고 맑아야한다. 피아노는 통통 밝게 튀듯, 또랑 또랑 연주하게 될 것이다. 딕션 역시 밝으면서 경쾌하고 퍼덕여야 한다. 끊어냄과 동시에 들어가야 할 때의 호흡이 쉽지 않다. 딕션이 늘어지면 그 맛을 내지 못한다. 그리하여 나의 사적인 감상 기준은 딕션에 있다. 사실 독일 가곡은 딕션이다!&nbsp;<br>송어를 들으며 감탄한다. 아... 아름답고 아름다웠던 슈베르트의 청춘이여!!!<br>지극히 사적이지만 나의 감상 기준에 따라 3인의 낚시꾼들이 부르는 노래를 이렇게 게시해본다.<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5045/3/cover150/k23263202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50450381</link></image></item><item><author>차트랑</author><category>횡설 수설...</category><title>절친의 생일, 그리고 주차장 화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6104135/17400810</link><pubDate>Sun, 19 Jul 2026 22:1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6104135/17400810</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47774286&TPaperId=1740081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17/38/coveroff/8947774286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br>지난 토요일은 절친의 생일이었다. 내게는 절친 셋이 있었는데 불행하게도 그 중 둘을 잃었다. 한 사람은 교통사고로, 다른 한 사람은 이른 나이의 암으로 그렇게 세상을 등졌다. 이제 나의 절친은 한 사람 뿐이다. 두 사람을 잃고 나서야 생존해 있는 절친의 생일을 축하하며 선물을 챙겨주기 시작했다. 절친들이 살아 있을 때는 그러지를 못했다. 서로 멀리 떨어져 있고, 서로 바쁜 탓이다. 후회가 막급했지만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다. 물론 사회 생활을 하면서 다수의 인사들과 교류를 하지만 절친에 속하지는 않는다.&nbsp;<br><br>사실은 차 한잔 하자는 분들이 많다. 연락은 받으면 나는 "각자 차 한잔 씩 하십시다!" 이러고 만다. 누가 '밥이나 같이 합시다!' 하면 나는 "각자 밥 드십시다!" 이러는 편이다. 아주 친한 누군가가 그런 내게 말했다, "사람 노릇 좀 하고 살자!!" 어쩌면 나는 사람노릇을 잘 못하고 살아가는 중인지도 모른다. 대신, 친구 노릇은 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nbsp; &nbsp;&nbsp;<br><br>다행스럽게도 나의 출근 시간은 오후 1시, 다수의 직장인들과는 업무 패턴이 다르다. 사정이 있는 경우 좀더 늦어도 나쁘지는 않다. 사정이 더 있다면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 가만 생각해 보니, 나는 있으나 마나 한, 존재감이 없는 직장인? ㅠ. 어쨌든 일찍 서두르면 어려움 없이 출근할 수 있는 상황이다.&nbsp;<br><br>친구에게 선물을 가져가는 날이라 즐거운 마음으로 이런 저런 생각이 떠올랐다. 함께 학교 마루 바닦을 광내던 순간과 유리창을 거울처럼 빛내던 그 순간. 주로 노동력을 함께 나누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장대비를 맞으며 친구를 찾아가던 날도 떠올랐다. 그날은 소나기가 어찌나 굵던지 이마가 아플 지경이었다. 물론 참 좋은 날이었다. 그렇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곧 잠에 들었다. 누우면 곧 잠에 빠지는 것은 저질 체력 덕분인듯 싶다.&nbsp;<br><br>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꿈인지 생시인지!!! 생활지원 센터에서 타격감이 겁나게 큰 비상벨을 울려주었다. 화재 경보음이 청각을 강타했다. 경보음은 귀가 어떻게 되는가 보다 싶을 정도로 강력하다. 시계를 보니 새벽 3시 30분, 밤이라서 그런지 유난히 더 크게 들린다. 출발 예정 시간은 5시 였고, 나의 알람은 4시 30분에 맞추어져 있었다. 1시간 먼저 경보가 울린 것이다.<br><br>아 이런,&nbsp; 화재라니!!!&nbsp;<br><br>화재가 있어서는 안되겠지만, 안내 방송에 따르면 불행중 다행으로 발화 지점은 지하 1층 주차장이라고 했다. 녹음된 매뉴얼 멘트는 '대피하라'는 내용도 있었는데 대피를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다. 해로운 연기를 피하려면 오히려 문 잘 닫고 집 안에 있어야 했다.<br><br><br><br>[[[ 날이 밝아서야 소방활동이 끝이났다 ]]]<br><br>대한민국의 소방차 출동은 무척 신속하다. 경보를 들은지 수 분 만에 십여 대의 소방차들이 도착하여 진화 작업에 나섰다. 곧 지하 주차장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아 램프를 타고 피어 오르기 시작했다. 화학 물질이 타는 냄새는 매우 자극적이었다.<br><br>그런데 갑자기, 내가 주차를 어디에 했더라.... &nbsp;급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비상 상황을 맞이하니 기억 회로가 작동을 멈추었나? 도대체가 그 위치가 어디였지? 지하 1층인 것 같기도하고 지하 2층인 것 같기도 했다. 아, 모르겠다.&nbsp;갑자기 인천과 천안의 어느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 뉴스가 떠올랐다. 주변에 주차했던 차량으로 불이 옮겨붙어 차량 다수의 화재로 확산되었다고 했다. 이러다 죄다 다 타버리는거 아냐? 불길한 생각이 스쳐지나갔다.<br><br>언뜻 보기에 장비 없이 지하 주차장으로 접근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주차장 입구 램프를 통해 검은 연기가 마치 굴뚝에서 솟아나오듯 했다. 또한 도저히 호흡을 할 수 없는 수준의 강력한 화학물질 냄새는 상상 이상으로 지독했다. 단순한 매연이 아닌 것이다.&nbsp;아, 이럴때 소방관님들의 사투가 없다면 대체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까. 이러한 극한 상화에서 화재를 진압하는 소방관님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거의 상상이 가지 않는다.<br>&nbsp;소방 활동이 한참 지난 후,&nbsp; 인명피해는 없다는 천만 다행스런 소식이 들려왔다. 화재 차량은 전소됐다고 했다. 여전히 매연이 심하니 매연을 흡입하지 않도록 주의를 당부했다. 나는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소방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 외에는 알 수 있는 내용이 없었다.<br><br>[[[ 다음 날, 차량의 상태를 확인 차 지하 주차장에 내려가 보았다. 같은 구역의 차량들이 함께 피해를 본듯하다. 천만 다행스럽게도 인명 피해가 없었고, 소방관 님들의 신속한 조처 덕분에 큰 화재로 확대되지는 않았다. ]]]<br><br> 주민 다수가 밖에 나와있었다. 그러나 곧 매연을 견디지 못하고 집으로 들어갔다.나도 마찬가지였다.&nbsp;소방 활동을 하는 사이 날이 밝았다. 매연이 심해 주차장 진입은 여전히 불가능했다. 오늘 친구에게 갈 수 없게 되었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생일을 축하하고 찾아갈 수 없는 상황을 알려주었다. 나도 기다려온 날 인지라 아쉬움이 크다. 그리고 친구가 좋아하는 노래를 친구에게 전해본다. 사랑하는 나의 친구여, 생일을 축하하네!!!<br><br><br><br><br><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17/38/cover150/894777428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173861</link></image></item><item><author>차트랑</author><category>횡설 수설...</category><title>슈베르트 즉흥곡 899 3번 Andante</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6104135/17383923</link><pubDate>Fri, 10 Jul 2026 09:5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6104135/17383923</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C102737188&TPaperId=1738392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42/17/coveroff/8678160098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C822738970&TPaperId=1738392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9/1/coveroff/8946097523_2.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32632020&TPaperId=1738392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5045/3/coveroff/k232632020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슈베르트 즉흥곡 (Impromptu) D. 899 Op. 90 III. Andante&nbsp;<br><br> &nbsp;'즉흥곡 Impromptu(s)'이라는 명칭은 슈베르트 자신이 부여한 이름이 아니라 출판 업자가 붙인 것이라고 한다. 곡의 이름은 비록 '즉흥곡 Impromptu(s)'이지만 즉흥적으로 썼다는 뜻은 아니다. 즉흥곡은 당시의 음악 양식 중 하나 였던 것이다. '소나타'(Sonata)라는 전통의 형식에 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곡을 전개해 나가는 일종의 장르라고 보면 된다. 그럼에도 쇼팽과 동갑내기인 1810년생 로버트 슈만은 슈베르트의 D.935 즉흥곡을 두고, "즉흥곡으로 위장한 네 악장의 피아노 소나타" 라고 평가했다. 슈베르트의 즉흥곡들이 완결성과 통일성을 가진 작품이었기 때문인데, 슈만의 이러한 평가는 그냥 해본 소리가 아니다. 슈만은 큰 형님뻘인 슈베르트가 치밀하고도 잘 계산된 작곡을 했다고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nbsp;<br><br>사실 슈베르트 형님의 피아노 곡들은 낭만파의 피아노를 주도한 쇼팽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슈베르트는 후배 낭만파들에게 뚜렷한 결을 남긴 대가였기 때문이다. 그의 즉흥곡들이 모두 좋지만 그 중 D.899 3번과 D. 935 3번은 왠지 슈베르트의 성정을 가장 닮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되는 곡들이다. 사실은 그의 즉흥곡이 모두 그런 느낌을 준다. 이는 물론 개인적인 생각일 뿐, 객관성을 담보할 수는 없다.&nbsp;<br><br>즉흥곡 D. 899 3번 Andante는 4분의 8을 쓰고 있다. 어떤 악보는 2분의 4라고 적어놓기도 한다. 어째거나 이는 흔하게 만날 수 있는 경우는 아니다. 한 마디 안에 4분음표를 8개 주었기에 마디가 길어진다. 하여 강세는 곡의 특성이나 작곡가의 의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결과적으로 독특한 효과를 내며 경계가 모호하다는 특수효과(?)를 줄 수 있다. 슈베르트 즉흥곡 D.899 3번을 들으면, 4분의 8박이 이런 느낌이로구나 하는 감을 얻을 수 있겠다 싶다.<br><br><br><br>슈베르트는 즉흥곡 D. 899 3번 Andante의 조표에 내림표(Flat)를 6개 주어 '내림사장조 (Gb Major)'임을 표시하였는데, 이는 아주 부드럽고 따듯하며 온화한 느낌을 전달하라는 명시이다. 이 곡을 들을 때 위로를 받는 느낌은 이런 이유에서 온다.<br><br><br>[[[ 이 곡은 난이도가 아주 높은 것은 아니지만, 악보 보기도 쉽지 않고 연주하기도 쉽지 않다. 음표들을 끊어지지 않게, 그리고 부드럽게 힘조절을 아주 잘 해야 한다. 물 위를 스치듯 연주하지 않으면 안된다. 특히 학생들에게 아주 까다로운 곡임은 분명하다. 그래서인지 특히 D. 899&nbsp; 3 번 4번은 대한민국 예고의 입시곡에 포함되기도 한다. (예고의 피아노 입시 지정곡들은 보통 5~6월에 공시하는데, 기본기, 고전 소나타, 연습곡 또는 즉흥곡등을 포함한다) ]]]<br><br>&nbsp;또한 오선지 아래에 pp(피아니시모, Pianissimo)를 표기했다. 이 모두를 종합하면 '안단테'에 6개의 플랫을 적용시켜 '매우 여리게' &nbsp;혹은 '아주 작게'&nbsp; 그리고 끊어지지 않게 길게 늘려서 (동그라미와 화살표 친 부분의 지시 의미), 부드럽고 따듯하며 포근하게 연주하라고 주문한 것이다.&nbsp;<br><br>슈베르트의 이러한 요구 사항들은 청자들이 듣기에는 아주 편안하고 좋은 느낌을 주지만 연주자에게는 무척 까다로운 주문이다. 내림표 6개가 악보 보기와 연주를 어렵게한다. 슈베르트의 주문에 따르면 오른 손은 힘조절에 아주 신경을 써야한다. 또한 아르페지오와 레가토를 쉴 타이밍이 거의 없이 건반 위른 미끄러져야 한다. 그리하여 즉흥곡 D. 899 3번은 부드럽고 영롱한 달빛이 세상에 드리운 밤, 커다란 호수의 물 위를 유영하듯 부드럽게 수면을 스치며 내닫는다. 이순간 &nbsp;'녹턴'은 '녹툰"이라고 발음해야 할것만 같다.&nbsp;<br><br>왼손은 화성을 서포트한다. (그런데 왼손 연주만으로도 정말 멋진 곡이다.)&nbsp;&nbsp;튀지 않으면서 또렷한 서포트 컬러를 만들어내며 안단테를 잘 수행해야 한다. 서로 호응하는 오른 손과 왼 손은 그 어느 쪽도 결코 튀어서는 안된다. 마치 수줍고 튀지 않는 삶을 살았던 슈베르트를 닮았다. 그리하여 곡을 은근히 판타스틱하게 하며 극적 대비 효과를 준다. 연주는 어렵지만 듣기에는 정말 아름다운 곡이자 편안한 곡이다.&nbsp;<br><br><br>[[[ 백건우 선생의 아주 좋은 연주이다. 비가 내리는 오늘, 슈베르트가 더더욱 마음에 와 닿을지도 모른다 ]]]&nbsp;<br><br>또한 흥미로운 것은 그의 즉흥곡들은 마치 가곡을 듣는 듯 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이다. 전문가가 아닌 단순한 애호가에 불과한지라 그 이유를 콕 집어낼 수는 없지만, 슈베르트 즉흥곡의 호흡에서는 가곡을 부를 때 가지는 호흡을 분명히 느낄 수 있다. 이 특징은 오로지 슈베르트만의 것이 아닌가 싶다. 마치 마주 앉아 수줍게 자신의 이야기를 조용히 들려주는 슈베르트! 이 느낌은 바로 그의 즉흥곡이 가진 호흡에서 오는 것 이리라.<br><br>슈베르트의 삶은 특히나 가혹했다. 처절하게 가난했고 성격은 소심했다. 가난 덕분에 피아노를 일찍 들이지 못했다. 피아노가 왜 중요하냐 하면 작곡을 하는데 필수이기 때문이다. 베토벤은 귀가 들리지 않았지만 피아노의 건반을 두드려 전해오는 진동을 참고하여 곡을 썼을 정도로 중요한 작곡의 매개물이다.<br><br><br><br>그런 작곡 필수템을 그는 가질 수 없었다. 누군가는 슈베르트 평생 피아노를 가질 수 없었다고 하고, 또다른 누군가는 그의 나이 서른이 되어서야 어찌어찌해서 간신히 피아노를 들였다고 한다. 가난은 음악의 천재에게 피아노 한 대를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작곡의 대부분은 피아노를 가진 친구 혹은 지인들의 집에서 이루어졌다. 슈베르트가 피아노를 들였다고 주장하는 사람에 따르면 그가 피아노를 들인 다음 해, 서른 하나에 그는 세상을 등졌다. 정녕 가슴이 미어지는 스토리가 아닐 수 없다. 신이시여, 슈베르트를 세상에 내 놓고 그를 어찌 그리도 박정하게 대하셨습니까!<br><br>처참한 가난과 가혹한 삶 속에서도 그의 음악은 낭만과 서정성을 잃지 않고 있다.&nbsp;&nbsp;아니, 진흙 속에서 화사하고 고귀한 수련을 피워 올리듯 그의 즉흥곡 3번은 세상 모든 것을 어루만진다. 자신은 위로 받지 못했으나 그는 타자를 위로하고 있었던 것이다.<br><br> &nbsp;즉흥곡 D.899 3은 특히나 슈베르트 가곡의 향기를 아주 잘 느끼게 해준다. 이 역시 지극히 사적인 견해이므로 객관성을 담보하지는 못한다. 노랫 말은 없지만 건반 소리가 그의 금빛 언어를 대신 전하는듯 하다. 특정인에 대한 헌정이나 특정인의 유료 주문에의한 동기로 쓴 곡이 아닌지라 그야말로 자신의 순간을 온전하고 진솔하게 표현한 곡이라 할 수 있다. 말 그대로 순도가 아주 높은 슈베르트의 즉흥곡이다. 어찌 진솔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거울을 마주하듯 슈베르트 자신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곡이라 하겠다.<br><br> 즉흥곡 D. 899 Op. 90 3번, 자신은 거친 삶을 겪고 있지만 인생은 원래 그런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듯 말한다. 어쩌면 자신에게 말하는 독백 일것이라고 생각하는 이유이다. 청자는 물론 슈베르트와 마주 앉아 그의 달관의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을 수 있다. 때로는 수줍게, 때로는 뜨겁게, 때로는 슬픔을 자신의 품 안으로 깊이 접어 넣고는, 자신의 언어를 전하는 곡이 바로 슈베르트의 즉흥곡이다. 깊은 상처로 얼룩진 슈베르트는 즉흥곡 3번으로 상대방에게 정녕 커다란 위로를 준다.<br>슈베르트의 목소리가 이야기를 한다. 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즉흥곡 D. 899 Op. 90 3번 Andante 이다.<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5045/3/cover150/k23263202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50450381</link></image></item><item><author>차트랑</author><category>횡설 수설...</category><title>즉흥곡으로 알아보는 슈베르트 작품번호</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6104135/17376462</link><pubDate>Mon, 06 Jul 2026 11:0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6104135/17376462</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C862737040&TPaperId=1737646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75/77/coveroff/8942361226_2.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C812737851&TPaperId=1737646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705/18/coveroff/8947823406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C822738970&TPaperId=1737646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9/1/coveroff/8946097523_2.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대부분의 고전 음악에는 작품 번호가 뒤따른다. 예를 들어 모자르트의 작품은 쾨헬 ( K.) 혹은 쾨헬 목록( KV. ) 으로 표기한다. 이는 모자르트가 세상을 등진 후 오스트리아 학자인 쾨헬(Köchel) 선생께서 1862년 모자르트의 작품들을 작곡 순서대로 정리한데서 기인한다. 그리하여 쾨헬 번호 K. 혹은 쾨헬 목록 KV. (= Köchel-Verzeichnis)를 사용하고 있다. 모자르트의 마지막 작품은 K.626 Requiem in D Minor 이다. 그의 작품은 모두 626개 임을 알 수 있다.&nbsp;<br><br>슈베르트의 작품들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약간의 차이가 있다면 슈베르트의 작품 번호는 오푸스 번호(Opus = Op.) 와 도이치 번호 (D.)을 함께 쓴다. 게다가 때로는 Posth. 를 병기하기도 한다.<br><br><br><br>[[[ Impromptus D. 935 Op. Posth. 142 는 정말 아름다운 피아노 곡이다. 사적인 견해이지만 슈베르트를 정말, 아주 잘 느낄 수 있는 곡이다. 그리고 또한 소나타를 연상시키는 곡이다. 실제로 D. 899 번에서도 약간은 다르면서도 같은 선율을 들을 수 있다. 작품이 서로 연결되어있다는 뜻이다. D.935가 11분이 넘어가기는 하지만 끝까지 들어보기를 권하고 싶은 곡이다. 애호가들에게 11분은 대수로운 것이 아니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께는 아주 긴 시간이기 때문에 드리는 말씀이고, 어쩌면 이 곡을 통해 슈베르트를 아주 사랑하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물론 라두 루푸의 피아니즘은 더없이 좋은 덤일 것이다.<br><br> 슈베르트가 세상을 등지기 한 해 전에 완성한 곡이니 그의 건강은 매우 나빳을 것으로 생각된다. 건강 뿐 아니라 모든 면에서 좋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럼에도 이토록 편안하고 영롱하며 밝은 곡을 썼다. 그의 당시 환경을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나도 아프다. 라두 루푸의 연주는 내가 편애하는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의 연주보다 더 좋다. 슈베르트 즉흥곡에 관한한 내게는 라두 루푸이다. 슈베르트가 이 연주를 듣는다면 얼마나 기뻐할까!!! 물론 백건우 형님의 연주도 아주 좋아한다. 물론 이는 개취이므로 다른 연주를 애호하는 분들께서는 너른 양해를 주시리라 믿는다. ]]]<br><br><br> 오푸스 Opus(Op.) 번호는 슈베르트가 살아있을 당시에 출판한 곡들에 해당한다. 슈베르트는 1,000 여곡을 썼지만&nbsp; 생전에 약 100곡 정도를 출판했다. 하여 Op.번호로 그의 작품을 모두 표기할 수가 없다. 오스트리아 태생의 음악 학자인 오토 에리히 도이치(Otto Erich Deutsch)는 슈베르트의 998곡을 연대 순으로 정리한 카달로그를 발표ㆍ출판했다. 그의 작품에 도이치 번호(D.)가 탄생한 것이다. 1883년 빈에서 태어난 그는 슈베르트 연구 최고 권위자로 알려져 있다.&nbsp;<br><br><br><br><br><br>[[[ 경애하는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의 연주이다. 아, 전에 누군가가 이 연주에서는 어찌하여 라두 루푸의 손을 들어주냐고 내게 물었다. 나는 답했다, "라두 루푸는 자신을 통해 슈베르트를 연주하고, 지메르만은 슈베르트를 통해 자신을 연주하는 느낌이다," 라고. 사실은 지메르만을 매우 좋아하지만 라두 루푸도 지메르만 못지 않게 좋아하고 있다. ]]]<br>&nbsp; 슈베르트가 살아 있을 당시 출판하지 못한 작품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슈베르트 생전 자신의 작품을 대부분 출판하지 못했다. 작품들은 하염없이 쏟아져 나왔지만 그는 겨우 서른 한 살의 나이에 세상을 등졌는데, 출판보다는 곡을 쓰기에 바빳던 것이다. 그리하여 미처 출판하지 못한 작품들이 절대적으로 많을 수 밖에 없었다. 이 작품들을 포함하여 도이치는 1951년 슈베르트의 모든 작품들을 연대기 순으로 정리한 카달로그를 출판했던 것이다.<br><br>즉흥곡을 예로 작품 번호를 살펴보면, 슈베르트는 생전에 모두 8개의 즉흥곡을 썼다. D.899 번 네 곡은 슈베르트가 살아있던 1827년에 출판이 되었고, 나머지 네 곡 D.935는 1838년, 슈베르트가 불록(不祿)한지 10년 후에 출판이 되었다. (슈베르트는 1828년에 세상을 등졌다)<br><br>1827년에 출판한 즉흥곡 D. 899번은 'Impromptus D.899 Op. 90' 이라고 표기한다. 그의 생전에 90번째 출판했고 카달로그 정리는 도이치 선생이 했다는 뜻을 담고 있다.<br>반면 즉흥곡 D.935는 'Impromptus D.935' 라고 표기하기도 하지만&nbsp;'Impromptus D. 935&nbsp; Op. Posth. 142' 와 같은 방법으로 표기하기도 한다. Posth 는 Posthumous 의 약어로 슈베르트 사후에 출판했고 순서는 142번 째 곡 이라는 표기이므로 이를 덧붙인 것이다.<br style="font-family: "><br>슈베르트의 작품들에 번호를 붙이는 방식을 알면 그가 생전에 출판했던 작품인지 여부를 알 수 있고 몇 번 째 출판물인지 알 수 있다. 많은 분들이 잘 알고 있고, 대단한 정보도 아니지만 슈베르트와 좀 더 가까워짐을 느낄 수는 있을 듯하다. 누군가의 고향을 아는 것 만으로도 좀더 친근해지는 느낌을 갖게 되듯이 말이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에 불과하지만....<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9/1/cover150/8946097523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90186</link></image></item><item><author>차트랑</author><category>횡설 수설...</category><title>예술에 대한 철학적 사유, 그 본질을 되묻다. - [진짜 예술, 가짜 예술 - 우리를 조종하는 것들,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6104135/17374704</link><pubDate>Sun, 05 Jul 2026 12:1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6104135/1737470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42130171&TPaperId=1737470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38/29/coveroff/k04213017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42130171&TPaperId=1737470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진짜 예술, 가짜 예술 - 우리를 조종하는 것들,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들</a><br/>장 프랑수아 마르텔 지음, 김기상 옮김 / 서스테인 / 2026년 07월<br/></td></tr></table><br/><br>[[[ 이 리뷰는 출판사 서스테인의 도서 제공 여부를 문의 받은 후, 평소 관심이 있는 예술 관련 도서이기에 기쁜 마음으로 읽고 쓰게 된 글 임을 밝혀드립니다. 어느 문장 하나도 버릴 것 없다 여기며 감탄하며 읽었습니다. 예술에 관심이 있는 분께라면 예술의 본질과 비예술의 특성을 사고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이 도서는 독서의 감동과 함께 예술에 대한 통찰을 선물해주리라 믿으며 리뷰를 이어가겠습니다 ]]]<br><br><br>이 책은 예술의 진위 여부에 대한 단층적 담론을 넘어 철학적 사유가 층층이 겹을 이루며 예술의 본질에 닿아 있다. ㅡ차트랑<br><br>(이 책의 표제를 '진짜 예술 가짜 예술'이라고 칭했지만 이 책을 읽은 독자로서는 '가짜 예술'을 '반예술'이라 칭하고 싶다. 그리고 '반예술'은 부정적 효과를 낳는, 그리고 매우 위험한, 의도가 불순한, 예술로 위장한 모든 것을 포함한다.)<br><br>개인적인 관점에서 비예술, 즉 반예술이라 칭하고 싶은 것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첫째는 흔히 말하는 레플리카(짝퉁)이다.<br>최근 [ 피카소 인 대구 : 시대를 넘는 마스터피스 ] 라는 전시회가 화제이다. 주최측은 진품 감정서까지 보여주며 전시 작품들을 모두 진품이라고 홍보했지만 사실 확인 결과 진품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짝퉁을 진품이라고 속이고 전시회를 개최한 것이다. 관람객이 진품으로 인식하도록 하여 이익을 추구한 행위는 반예술 행위이고 사기 행각이며 범죄이다. 짝퉁은 시간이 지나면 그 정체를 드러내는 특성을 가졌다. 제 아무리 날고 기어도 결국 진실을 피해가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그나마 그 위험성이 덜한 이유이다.<br><br>둘째는 이 책이 주로 다루고 있는 반예술, 정교하게 예술로 위장했지만 결코 예술이 될 수 없는 인공물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지극히 위험하다. 개인과 집단의 사유를 훔쳐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반예술을 다룰 때는 진정한 예술의 본질도 함께 언급해주어야 효과가 더 클 것이다. 예상대로 이 책은 예술에 대한 철학적 접근으로 시작한다.<br><br>진정한 예술은 근본적으로 정적이다. 반면 인공물은 바로 그 욕망과 혐오를 부추겨서 우리를 특정 방향으로 움직이게 한다. 인공물은 근본적으로 동적이라는 뜻이다 ㅡ p. 20~21<br><br>이는 인공물을 경계할 것과 더불어 예술이 특정 목적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어서는 안된다는 강력한 메시지이다. 예술이라는 가면을 쓰고 나타나는 현상들을 정확하게 인지하는 것이야말로 위태로워진 인간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br><br>이 책을 읽으며 과거 누군가의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 이 질문은 학부 교양 철학 수업 시간에 교수가 던진 질문이었다. 인간을 인간으로 규정하고, 인간을 인간이게하는 하는 특징은 무엇일까 하는 질문이다. 학생들은 다양한 자신들의 견해를 피력했다.<br><br>다양한 대답들 중 매우 설득력 있는 대답이 있었는데, '인간은 철학적 사유를 한다' 였다. 철학 수업 교수가 원하는 답과 일치했을 것이다. 이런 답이 나와줘야 철학 수업을 진행할 맛이 나지 않겠는가. 이 책을 읽으며 또 다른 구별 이유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동물들과는 달리, 인간은 예술 행위를 한다'<br><br>저자에 따르면 "예술은 내면의 상처를 공동체와 함께 나누고 어루만지는,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이다" p.38 (Daniel Pichbeck, Notes from the Edge Times 인용문)<br><br>이 인용문에 적극 공감하는 바이다. 대한민국의 작가 한강은 그녀의 예술 세계를 통해 죽은 자들과 산 자들의 상처를 치유하고자 했고, 그녀의 예술 세계는 온 세상 사람들에게 널리 인정 받았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예술은 분명 인간 고유의 강력한 소통 창구라는 것이다.<br><br>그러나 인간의 성스러운 영혼이 깃든 긍정적 예술 세계는 부정적 인공불의 도전과 마주한다. 예술의 근본을 오염시키는 인공물의 출현은 현실이 되었다. 현대에 들어, 특히 디지털 방식이 세상을 지배하기 시작한 이래로 예술과 반예술의 경계는 뚜렷하지 않다. 예술이 쉽게 오염될 수 있는 이유이다. 그리하여 경제적 구조와 정치적 의도를 가진 인공물들이 때로 예술이라는 가면을 쓰고 나타단다. 이들은 대중들의 방향성을 강요하려는 숨은 뜻을 가졌다.&nbsp;예술의 본질을 소환해야 하는 이유이다.<br><br>미셸 푸코가 언급한 서구 사회를 지배해 온 힘, '규율' 그리고 들뢰즈가 예언한 '통제 사회'는 예술의 형식을 빌어 인간의 사고와 행동, 즉 인간 자율성을 침해하고 있다. 자율성의 상실은 개인이 특정 집단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다는 뜻과 일치한다.물론 주의해야 할 사항들도 있다. &nbsp;지나친 '현재주의 (p.46)'는 '현재'의 현상 만을 강조하므로 과거를 반추할 기회를 박탈할 수 있다. 과거를 외면하는 사회는 스스로 나아갈 방향을 상실할 수도 있다. 예술을 바라볼 때 주의해야 할 사항들이다.<br><br>그러나 과거에 매몰되어서도 안된다. AI는 오로지 과거의 틀에 갖혀있는 것들 만을 결과물로 내놓는다. 인간과는 달리 AI는 결코 미래로 나아가는 결과물을 생산해낼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또한 인지해야 할 것이다.<br><br>AI는 인간을 앞서서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해 내진 못한다 (p. 49)<br>예술은 삶과 꿈, 그리고 경험이 세상 속에 존재한 후 인간의 상상력을 통해 발현된다. 이는 단지 정교함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의 영혼과 관련한 공감이며 소통이고 감동이 바로 정녕 예술인 것이다. 그러므로 예술은 인간을 자유롭게 하고,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요인 중 하나인 것이다. 예술과의 대척점에서 반예술을 발견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br><br>"인공물의 유일한 목적은 우리를 자신의 의도대로 움직이게 하는 것" (p.92) 이다. 나아가 "예술과 무관한 목적을 위해 예술의 탈을 쓰고" (p.92) 있다.&nbsp;이것이 저자가 밝힌 가짜 예술, 즉 반예술이 가지는 특징이자 정체이다. 반예술은 개인에 따른 다각도의 시각을 허용하지 않는다. 우리를 조종하려는 목적과 의도를 숨겼기 때문이다. 이러한 동적 움직임을 살피면 반예술을 통찰 할 수 있는 눈을 가질 수 있다는 저자의 사유는 나에게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지향점과 추구하는 바가 예술의 그것 과는 전혀 다른 반예술은 일종의 함정을 가진 존재들이다. 우리를 그들이 만든 덧에 걸리게 할 수 있으니 말이다.&nbsp;현대의 대중문화 속에 깊이 침투한 키치(Kitsch)는 단지 '나쁜 예술'로 치부해서는 안된다. 인간이 가져야 할 진실을 감추어 숨기기 때문이다. 이는 반예술이 가지는 또 다른 부정적 모습이다.&nbsp;<br><br>예술의 탈을 쓴 특정 이념이 정치적인 의도에서 비롯된다면 예술은 심각하게 오염되기 시작한다. 예술이 대중을 기만하는 일종의 전술로 이용될 수도 있음을 뜻한다. 반예술이 위험한 이유이다.<br><br>"예술과 정치는 근본적으로 대척점에 서 있다. 예술은 기호를 상징으로 변성하지만 정치는 반대로 상징을 기호로 전락시킨다" (p.212)<br><br>저자의 이 말은 예술이 정치 권력자의 도구로 악용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도구로 이용되는 예술은 반예술이다. 이 순간 인간의 독창성은 죽음을 맞이한다. 더이상 예술일 수 없는 것이다.<br>예술은 인간의 자유로움과 관계한다. 무한한 상상력, 끝없는 창의력, 그리고 인간 고유의 다각적 감정들은 모두 인간의 자유로움을 대변하는 표현들이다.<br><br>"예술은 당신이 필요하다" (p.273)<br>인간은 본디 예술성을 가진 존재이다. 여타의 동물과 다른 가장 큰 이유중 하나일 것이다.<br>현대는 예술의 본질을 상실하도록 권하는 반예술의 시대이다. 가짜와 진짜의 경계가 무너진 혼탁한 예술의 시대이다.<br><br>이 책은 그 무너진 경계를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사유를 준다. 예술의 본질을 더욱 명확하게 하는 것은 반예술을 인지할 수 있게한다. 예술과 반예술은 각각 이 책을 통해 명료해진다. 인간 정신은 예술과 관계하고 그 예술이 오염될때 인간 정신이 함께 병들 수 있다. 예술의 회복은 그러므로 인간성 회복과 대등하다. 우리가 예술을 회복해내야 하는 이유이다.<br><br style="font-family: ">&nbsp; &nbsp;&nbsp;<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38/29/cover150/k04213017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6382923</link></image></item><item><author>차트랑</author><category>횡설 수설...</category><title>유월의 노래 (2)</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6104135/17354221</link><pubDate>Thu, 25 Jun 2026 10:2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6104135/17354221</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5642019&TPaperId=1735422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2301/66/coveroff/8965642019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12139342&TPaperId=1735422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83/36/coveroff/k412139342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대한민국은 유일한 분단 국가이다. 남과 북이 서로 왕래를 자유롭게 할 수 없다. 6.25 전쟁 당시 헤어졌던 가족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을 것이지만 서로 그리워만 할 뿐이었다.<br><br> 전쟁이 발발한지 76년이 되었다. 전쟁 당시 서로 헤어졌던 사람들은 서로를 그리워하며 살다가 세상과 결별했다. 내가 알고 있던 분도 마찬가지다. 현재는 부모님의 고향이 북쪽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종종 발견할 뿐이다. 참으로 아픈 상처였지만 정치는 그들의 아픔을 결국 치유하지 못했다. 이런 걸 비극이라고 한다.&nbsp;<br><br><br>아마도 전 세계에서 이산가족 상봉 방송은 대한 민국이 처음이었을 것이고, 앞으로 이런 방송은 또다시 없을 가능성이 높다. 1983년, KBS는 휴전 30주년을 기념하여 '이산 가족을 찾습니다' 라는 라이브 방송을 기획했다. 처음 기획은 약 1시간 30분 정도 방송을 진행할 예정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뜻밖에도 시청자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급하게 긴급 연장 편성에 들어갔다.<br><br><br><br>[[[ 곽순옥의 창법은 대중가요의 창법과는 약간 차이가 있다. 가곡을 부르듯 레가토(Legato)를 쓴다. 곽순옥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그녀가 성악을 전공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사적인 생각을 해본다. 시대를 너무 앞질러 태어나 성악을 접할 기회를 얻지 못한 것은 아닐까...아니면 성악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되지 못했던 것일까... 늘 아쉬움을 주는 사람이다. 그녀는 32년 생이다. 23년 92세의 나이로 불록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녀의 노래를 하루 내내 들었던 기억이 있다. 부디 영면하소서.... ]]]&nbsp; &nbsp;&nbsp;<br><br>방송 하루 만에 여의도 KBS 본관 앞에 1만여 명의 이산 가족들이 모여들었다. 문의 전화로 방송국의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다. KBS는 갑자기 후끈 달아올랐다. 예상 밖의 상황에 긴급 대응하여 프로그램을 연장시켰고 마이크 좀 잡는다는 아나운서들을 총동원했다. 본격적인 릴레이 방송을 시작한 것이다.<br><br><br>시청률은 80%에 달했고, 수많은 이산 가족들의 상봉 장면을 보면서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들은 함께 울었다. 밤새워 상봉 장면을 보며 울다가 다음 날 지각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고 한다.뜨겁고도 감동적인 장면을 송출한 KBS는 기타의 모든 방송들을 일시 중단하고 상봉 방송에 집중했다. 헤어져 생사를 모르던 가족들은 서로를 만나 통곡하며 울부짖는 장면들을 전국에 내보냈다.<br><br> 소식이 전해지자 미국에서 살고있던 이산 가족들의 연락이 왔다. 뜨거운 화상 상봉이 이루어졌다. 미국 방송사에서도 대한 민국의 당시 상황을 상세히 송출했다. 여러 나라의 기자들도 여의도에 모여들어 현장 소식을 자국으로 전송했다.<br><br>그렇게 방송은 138일, 453시간 동안 계속되었다.<br>고향을 잃은 사람들은 고향을 그리워한다. 사람을 잃은 경우라면 말해 무엇하겠는가. 인간의 비극은 늘 인간으로부터 시작한다. 그 비극을 종식시킬 수 있는 것도 인간 뿐이다. 그리하여 도스도옙스키는 인간을 끝없이 연민했다. 문제의 발단도 인간이지만 그 문제의 해결도 인간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br>천국과 지옥은 시공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 같은 시간과 같은 공간 속에 그저 함께 머물고 있을 따름이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83/36/cover150/k41213934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5833658</link></image></item><item><author>차트랑</author><category>횡설 수설...</category><title>유윌의 노래 (1) </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6104135/17312635</link><pubDate>Tue, 02 Jun 2026 10:1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6104135/17312635</guid><description><![CDATA[<br>내 고향의 유월은 붉디 붉은 꽃양귀비가 피어오르고 오디와 자두 살구 등이 익어가는 싱그러운 계절이지만, 또한 유월은 잊혀지지 않는 아픔을 간직한 달이기도 하다.<br><br>옆 집 아저씨는 아내와 어린 아들을 두고 6.25 에 참전하셨다. 얼마 후 옆 집은 어르신께서 북한군의 총에 맞아 전사했다는 통지서를 받았다. 행여나 했던 일이 현실로 다가왔다.<br><br>산자락에 가려 보일락 말락하는 집 아저씨는 사단에서 유일한 생존자라고들 했다. 전투에 참가했던 일만명의 병사 중 유일한 생존자라는 뜻이다. 그 진실 여부는 알 길이 없으나 다들 그렇게 알고 있었다. 상상도 할 수 없는 포화속에서 셀 수도 없는 군인들이 목숨을 잃었다.<br><br>멀리 보이는 또다른 집에는 북한에서 홀홀 단신으로 남하하여 살고 있던 아저씨가 계셨다. 그렇게 홀로 사시다가 돌아가셨다. 나이 차이가 많아 서로 대화를 주고 받을 일이 거의 없었기에 전후 사정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br><br>알고보니 다른 분들도 그 사정을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분은 자신의 상처에 대해서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돌아가실 때까지 북쪽의 어디가 그분의 고향인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홀로 모든 것을 끌어않고 살다가 그렇게 돌아가신 것이다.<br><br>나는 약골이라 군 면제를 받아도 시원치 않은듯 했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나는 누구처럼 부동시도 아니고 간이 나쁜 사람도 아니었다. 또 허리 디스크가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냥 저질 건강에 운이 나뿐 사람일 뿐이었던 것이다. 나도 번듯한 집안에서 태어났더라면 면제 받았을지도 모른다. 면제 병명은 약골!! 한미한 농사꾼의 아들인 나는 흑석동 현충원에서 군 복무를 했다. 현충원에는 셀수도 없는 비석들이 서있다. 나라를 지키다 돌아가신 분들의 넋이 잠들어 있는 것이다. 그 분들의 희생을 댓가로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는 것이다. 서울시가 700억을 써야한다면 돌덩어리가 아니라 유공자분들을 위해 써야하지 않겠는가?&nbsp;<br><br>국립 묘지는 국가 행사 또는 외국의 정상들이 꼭 들르는 곳으로, 정문 한켠에는 이렇게 써있다.<br><br>'임들을 잊지 않겠습니다'<br><br>아름다워야할 대한민국의 5월은 잔인한 역사의 달이자 민주 항쟁의 달이다. 6월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은 비극의 달이자 호국의 달이다. 남과 북이 서로를 죽이고 서로의 것을 파괴했으니 말이다. 살아 남은 자들은 죽을 때까지 그 아픔을 끌어않고 살아가야 했다.<br><br><br><br>군 수색대 소대장으로 백암산 비무장지대 GP(감시초소)에서 군 복무를 하던 작사가 한명희는 어느 날 양지녁 산모퉁이에서 &nbsp;돌무덤을 하나를 발견한다. 이름모를 국군이 사망한 자리였고, 나무로된 비목(碑木)위에 철모가 올려져 있었다. 그 모습을 잊지 못하던 한명희는 어느 날 나라를 위해 이름 없이 산화한 무명 용사를 기리는 한편의 시를 남긴다. 그 시에 장일남 선생이 곡을 입혀 가곡 비목이 탄생했다.<br><br>초연(硝煙)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 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이름 모를 비목이여....<br><br>초연(硝煙)은 말 그대로 화약 연기를 뜻한다. 화약 연기가 앞을 가리던 백암산 전투는 뺏기고 빼앗기를 반복하며 치열한 고지전이 있었던 전투라고 한다. 중공군과의 끝없는 전투 끝에 국군은 결국 백암 고지를 탈환한다. 그러나 그 희생은 너무나도 컷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국군의 희생을 치러야했다. 지금도 이름 모를 영령들의 유해 발굴 작업은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br><br>아직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 이름 모를 용사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을 것이다. 이웃 집 어르신도 그중 한 분이시다. 이제라도 그 용사를 아버지라 불러줄, 다 자란 아들의 품으로 돌아 오시기를 기원해본다.<br style="font-family: "><br><br><br>[[[ 알라딘 중고 가게에서 구입한 음반이다. 알라딘 품질 판정 가이드 '최상'이라고 써있어서 상태가 좋은가보구나 하고 구매했다. 그런데 받아보니, 오 이런~!!!! SS(미개봉)였다!!! NM(Near Mint, 중고 최고등급)라해도 감사할 일인데, 친애하고 경애하는 박세원님의 음반을 미개봉으로 구입하다니!!!&nbsp;<br>정녕 아름다운 우리의 가곡을 담은 음반들이 더이상 나오지 않는다... 마음 아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nbsp; &nbsp;<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602/pimg_7461041355141609.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46104135/17312635</link></image></item><item><author>차트랑</author><category>횡설 수설...</category><title>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6104135/17295714</link><pubDate>Mon, 25 May 2026 09:3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6104135/17295714</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C872938439&TPaperId=1729571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012/51/coveroff/c872938439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42974821&TPaperId=1729571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76/32/coveroff/2602436238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22037947&TPaperId=1729571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049/37/coveroff/k122037947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보통, 출근을 하지 않고 쉬는 날이 더 바쁜 것은 설마 저만 그런 것이 아닐테지요... 차라리 출근하는 평일이 더 쉬운 분들이 또 계시리라 믿으며....여하튼, 어제 부처님께서 오신 덕분에 오늘 모처럼 하루는 쉬어볼까 합니다. 휴식은 온 종일 음악과 책을 번갈아 곁에 두는 것으로.&nbsp;<br><br><br>오랫 만에 악성 베토벤께서 남긴 피아노 협주곡 5번을 열었다. 그리고 다음의 두 연주를 번갈아 들으며 하루를 보낼 예정이다. 삼천포지만, 고전 음악이 대중성을 확보하지 못하는 치명적인 단점 중 하나는 시간에 있다. 너무 길다. 대중성에 시간은 거대한 벽과도 같다. 애호가들은 시간 가는 줄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적응이 쉽지 않은 것이 문제이다. 사실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은 결코 긴 편에 속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럼에도 최소 40분은 써야한다. 이것은 알라딘하며 고전 음악 포스팅을 제대로 할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nbsp; 늘 아쉬운 이유이기도 하면서...<br><br><br>[[[ 사진 출처 ㅡ 위 사진은 별점 비교를 위해 동호회 '고클래식' 의 '명곡감상 비교'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로그인을 하지 않아도 접근이 가능합니다. 고전 음악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매우 유익한 정보들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위 음반의 별점은 고전 음악의 어느 절정 고수께서 표시한 내용입니다. 그 고수께서는 당시 지메르만의 연주에 별점을 4개 주었지만, 마음속으로는 별을 하나 더 살짝 얹었을지도 모릅니다.]]]&nbsp;<br><br><br>1. 피아노 제르킨(Rudlof Serkin), 지휘 부르노 발터 (Bruno Walter), 뉴욕필(New York Philharmonic) &nbsp;1941<br><br> 뚜껑을 열어 걸면, 하루 종일 돌리게 되는 연주들이 있다. 내게는 위 연주가 그들에 속하는 연주인듯 하다.&nbsp;&nbsp;좋은 연주라는 말은 무척 진부한 표현이겠고, 제르킨의 연주는 때로 전혀 다른 두 사람이 각각 왼 손과 오른 손을 따로 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물론 그 둘은 둘이면서 하나이기도 하다. 다른 음반에서는 이런 느낌을 쉽게 발견하기 어렵다. 이 효과는 제르킨의 피아노가 주는 느낌일까 베토벤이 곡에 불어넣은 효과일까. 어느 쪽이든 제르킨은 정녕 위대한 피아니스트이다.<br><br>놀라운 것은 최소한 1940년 이전에 만들어진 피아노의 음이 이토록 좋단 말인가? 하는 감탄을 자아내게 된다. 당시의 녹음 기술이 모노인 점을 감안 할때, 피아노 제작 능력과 제르킨의 연주 능력 모두에게 큰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피아노는 단연 돗보이는데, 이는 협연의 질을 평가한 것이 아니라 음질만을 평가한 것이다. 이는 또한 오케스트라의 연주 소리가 당시 녹음의 조건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는 점을 참고하여 내린 결론이기도 하다.<br><br>어째거나 제르킨의 연주에 협연하는 부르노 발터는 자신이 왜 거장인지를 이 음반에서 또렷하게 각인시킨다. 녹음 조건을 뺀다면 관현악은 협연으로서, 연주 자체로서 흠결을 전혀 남기지 않았다. 협연은 탄탄하고 짱짱하며 일사 분란하다. 피아노와의 조합은 말할 것도 없다. 청자에게 피아노와 협연은 둘이지만 하나라는 일체감을 선사한다. 최고 난이도에 조절된 기품있는 연주이고 리허설 과정은 또 어땠을지,경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Concerto' 는 바로 이런 것, 이라는 사전적 정의를 구현해낸 연주가 바로 제르킨과 발터의 것 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하여 이 연주는 오성(五星)의 빛나는 견장을 받을 자격이 있다!!<br><br><br><br>2. 피아노 크리스티안 지메르만(Krystian Zimerman), 지휘 레너드 번스타인(Leonard Bernstein), 빈필(Wiener Philharmoniker) 1989<br><br>[[[ 사실 서로를 꼭 쳐다볼 필요는 없지만 연주 중 지메르만은 종종 번스타인을 바라본다. 노장에 대한 경의일 것으로 생각한다. 지메르만은 속으로 생각할 것이다. 형님의 협연이 너무나도 좋구나... 라고. 연주가 끝나고 번스타인은 지메르만을 한동안 포옹한다. 끌어안고 놔주질 않는다. 연주의 만족도를 보여주는 장면이면서 지메르만에 대한 애정과 경의를 보여주는 장면일 것이다. ]]]&nbsp;&nbsp;<br><br> 거의 대부분 존재하는 연주들이 매우 훌륭하지만 기호도에 따른 또 다른, 눈에 띄는 음반이 하나 더 있다. 지메르만과 번스타인의 연주이다. 물론 박하우스(Wilhelm Backhaus)와 슈미트 이세르슈테트(Hans Schumidt Isserstedt)의 1956년 연주는 왜 언급을 안하냐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박하우스 선생의 2악장은 내가 원하는 템포보다 빨라서 탈락^^ (팬들께는 죄소옹~)<br><br>1악장 ㅡ 초반, 피아노 도입에서 지메르만의 손가락이 아직은 살짝 덜풀린듯한 음을 낸다. 그러나 곧 그의 손가락에 신기(神氣)가 들어간다. 베토벤께서 주제를 뚜렷하게 제시했다. 생각보다 많은 것을 제시해준다. 피아노가 물러가면, 번스타인과 빈필은 자신들이 어떤 존재인지를 제대로 확인시켜 준다. 백발의 할아버지인데 번스타인 어르신 너무 귀여우심. 피아노가 호른과 독대하는 1악장의 끝 부분은 정녕 언어로 표현할 길이 없다.<br><br><br>[[[ Musikverein Wien 1989년 실황이다. 늘 아쉬웠던 점은 화질이었다. 마스터링(mastering)을 다시한 깔끔한 영상이 새롭게 올라와 있다. 정말 고맙고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nbsp;<br><br><br> 가장 특징적이고 눈에 띄는 순간, 아니, 귀가 번쩍 뜨이는 순간은 1, 3악장에서 현악기 파트와의 협조력이 빛나는 순간이다. 피아노와 현의 피치카토(Pizzicato 줄여서 Pizz.)가 여백을 채우며 서로 들고나는 순간이 진정 예술의 극치이다. 튕기듯 휘어져 서로 달라붙는다. 경(經)과 위(緯)가 함께 비단을 짠다. 탄력있고 눈부신 비단을 완성했다. 입으면 사람의 체형에 맞게 움직여주는 원단이 있다. 이들의 연주는 바로 그 느낌이다. 이런 느낌은 다른 연주에서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nbsp; 악기들이 서로 이를 물고 들며 나는 순간, 이처럼 긴밀하고 품위있으며 쫀득한 연주를 완성하는 음반은 이뿐인가 하노라. 어찌 오성의 빛나는 견장을 마다할 것인가.<br><br>2 악장ㅡ 흔히 피아노 협주곡 중 가장 아름다운 아다지오라고들 한다. 깊은 슬픔, 이루 말할 수 없는&nbsp; 회한, 한없는 포근함, 부드러운 따듯함. 상처와 치유, 이 모든 것들을 버무려낸 것일까. 슬픔과 기쁨을 구별할 수가 없다. 동시에 전해오기 때문이다. 정녕 아름답다... 2악장 역시 최고로 눈이 부신 연주이다.&nbsp;<br><br>3악장 ㅡ 곡의 마무리면서 연주의 끝이기도 하다. 그 감탄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3악장은 감상 평을 남긴 애호가들이 이미 모두 말을 다했다. 당당하며 완벽하다. 2악장의 유곡(幽谷)에 깃든 불사조가 죽음의 재에서 부활하듯 재탄생하며 일어선다. (지메르만) 이것이 나의 피아노다!!&nbsp;<br><br>지메르만과 번스타인의 협연을 듣기 전에는 제르킨과 발터의 연주가 주는 아쉬움을 발견할 수 없다. 그만큼 제르킨과 발터의 연주는 훌륭하고 빼어나다. 지메르만과 번스타인의 연주를 들은 후에 베토벤의 황제는 지메르만과 번스타인이 기준이된다. 물론 음악은 기호이므로 모든 선택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사실 나는 모든 연주를 사랑한다.&nbsp;<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049/37/cover150/k12203794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0493726</link></image></item><item><author>차트랑</author><category>소설</category><title>읽어볼 결심, 도스도옙스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6104135/17290878</link><pubDate>Fri, 22 May 2026 09:2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6104135/17290878</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12030695&TPaperId=1729087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788/49/coveroff/k512030695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52032042&TPaperId=1729087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626/47/coveroff/k452032042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12030958&TPaperId=1729087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075/86/coveroff/k012030958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82135999&TPaperId=1729087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443/8/coveroff/k982135999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46423307&TPaperId=1729087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70/71/coveroff/8946423307_2.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br>러시아 문단을 바라보면, 커다란 봉우리가 하나 서있다. 그 봉우리의 이름은 '톨스토이'이다. 그 봉우리 뒤로 안개속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지만 그보다 더 큰 산으로 이어져 있는, 끝이 보이지 않는 산맥이 있다. 바로 도스도옙스키 산맥이다. ㅡ앙드레 지드<br><br><br>사실 내게 도스도옙스키는 접근하기에 결코 쉬운 작가가 아니다. 그의 작품을 읽기에는 나의 능력이 모자란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기때문이다. 그 깊은 산중으로, 아니 그 커다란, 잘 보이지도 않는 산맥 안으로 들어갔다가는 길을 잃을 것이고, 나는 분명 중간에 지쳐 쓰러져 버릴것이다. 이렇듯 나로서는 감히 엄두가 나지 않는 소설들이 특히 도스도옙스키의 것들이다. 도스도옙스키의 소설들이 아니어도 나는 모든 소설들이 어렵다고 느끼고 있었다. 부끄럽게도 도스도옙스키의 소설들은 물론 대부분의 소설들과 서먹하고도 소원한 관계를 지금껏 잘 유지해왔다.&nbsp;<br><br><br>탐험은 본디 미지의 것이고, 그 무엇과 조우할지 모르는 아찔한 기대감, 혹은 심장을 조여오는 쫄깃한 긴장감을 즐기는 특성을 가진 것이기도 하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뜻밖의 발견은 어마어마한 덤이다. 때로는 그 뜻밖의 덤이 탐험가의 인생을 엉뚱한 곳으로 바꿔놓기도 한다. 발을 헛디뎌 낭떠러지로 떨어질 지도 모르는 가파른 산을 오르는 것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탐험은 단지 에베레스트를 오르내르는 것과는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다. 발견이 기다리고 있고, 미지성과의&nbsp; 조우가 기다리고 있다. 그 조우는 결코 단순한 노동의 댓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탐험은 스스로 해야 그 가치가 빛날 것이다.<br><br><br> 그러나 나는 내비게이션과 전조등을 준비해 그 깊고 어둑한 곳으로 들어가보기로 했다. 자신이 없는 험난한 길을 떠날 땐 내비게이션, 뭐 이런 심산이다. 도덕경은 이런 곳을 '玄현'이라고 했다. 有와 無가 혼재하여 구분할 수 없고 아득하여 보이지 않는 경지가 바로 현(玄)인 것이다. 이런 현(玄)이 산(山)에 중첩되어 있으면 이를 유(幽)라고 한다. 유(幽)는 현보다 한 길 쯤 더 들어간다. 그리하여 유(幽)에는 삶과 죽음이 깃들어있게 된다. 유택(幽宅)은 그리하여 망자(亡者)가 머무는 거처이다. 내게 도스도옙스키로 가는 길은 '유곡幽谷'에 드는 것과 마찬가지다. '유곡幽谷'은 생명을 거두어 들이는 곳이기도 하고,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인가를 품어 태동시키는 곳이기도 하다. 정녕 신비로운 곳이 아니겠는가...<br><br>[[[ 도스도옙스키를 읽어보고 싶었지만 아직 그러지 못하신 분들 중에는, 1) 책이 겁나 두꺼워서&nbsp; 2) 왠지 어려울 것 같아서&nbsp; 3) 도스도옙스키가 뭐 대순가? 등의 이유가 있을 듯 하다. 그러나 이 책, '도스도옙스키 번역 일기'를 읽어본다면 도스도옙스키의 그 어떤 소설 하나는 꼭 읽어보겠다는 강력한 의지와 힘이 생기리라 믿는다. 나는 죄와 벌, 백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이 세 종류는 반드시 읽고야 말겠다는 강한 의지를 뛰어넘는 전투력을 가지게 되었다. 다 읽기 전에는 결코 시들지 않을 전투력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도스도옙스키 번역 일기'는 도스도옙스키 낚시꾼이다. 이 책을 읽고도 낚이지 않는 자, 없을 것이라고 감히 추측해본다. ]]]<br><br>도스도옙스키의 '죄와 벌'을 처음 접한 것은 중학생 때였다. 경애하는 조부께서 돌아가시고, 쓰시던 사랑방이 비게되었다. 나는 고입을 준비하는 수험생이었으므로 공부방으로 할아버지께서 쓰시던 방의 사용권을 요구했다. 그렇다고 공부를 더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공부라는 사실 자체가 아니다. 매사가 그러하듯 명분이 서느냐 이다. 그럴싸한 명분 앞에 뜻을 수월하게 관철시킬 수 있었다. 어렵지 않게 방의 사용권을 확보했던 것이다.<br><br>자연스럽게 그 방 안에 있던 책들도 나의 것이 되었다. 사랑방에는 깡촌에서는 믿기 어려운 도서 목록들이 있었다. 셱스피어 전집, 죄와 벌, 신곡, 데카메론, 펄 벅의 대지 등등의 책들이 그것이다. 윤초시네 시골과 버금가는 곳 이었으므로 주변 수십리를 모두 찾아도 이런 목록을 가진 집은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비록 먼지만 쌓여가는 책들이기는 했지만. 그중 가장 흥미로운 책은 데카메론이었다. 약간은 선정적이며 성인들의 에로틱한 모습을 살짝 살짝 보여줬는데, 이는 중학생인 나에게 충분히 자극적이었다. 나는 고입 공부를 제껴두고 그 두꺼운 데카메론을 모두 읽었다. 완독의 힘은 다음 스토리에서 또 나올지도 모르는 기대감, 데카메론이 주는 야릇한 그 선정성에 있었다. 그리고 '말괄량이 길들이기'가 인상적이었다. 그렇다고 이해했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그냥 흥미롭게 읽었다는 것일 뿐.<br><br> 그 귀한 '셱스피어 전집'과 '죄와벌' '데카메론'등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시골 촌 구석에 있게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경애하는 조부님께는 지극히 사랑하고 아끼는 친동생이 있었다. 그리고 경애하는 작은 할아버지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다. 당숙께서는 도회지로 나가 사셨다. 그리고 이것 저것 닥치는대로 일자리를 찾아 다녔다. 그 일자리 중 하나가 고전을 방문 판매하는 일 이었다. 당연히 큰댁인 우리집에도 찾아 왔다. 말 하나마나 할아버지께서는 조카가 권하는 책을 모조리 들이셨다. 다양한 고전들은 물론 태권도 교본, 절권도 교본, 합기도 교본, 편지쓰는 법, 전예해행초서 쓰는 법 등등등등...&nbsp; 이루 말할 수 없이 다양한 책들을 들이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책으로 무술을&nbsp; 배우는 것은 무협지에서나 있는 일이었다. (한가지 남은 것이 있다면 완독의 힘이 되어준 것이 무엇이었든, 그 두꺼운 데카메론을 끝까지 읽어냈다는 자긍심이다.) 경애하는 나의 의가 좋았던 조부님 형제께서는 분명 부처님 곁에 가 계실 것이다.<br><br><br>중학생인 나에게 죄와 벌은 무척 충격적이었다. 초장부터 사람을 죽이는 장면과 마주했기 때문이었다. 그때만해도 죽음이라는 단어는 내게 존재 했지만, 살인이라는 단어는 내게 있지 않았다. 그런데 주인공이 사람을 죽였다!! 마음이 벌렁거렸다. 그리고는 또 사람을 죽였다!!! 결국 나는 죄와 벌을 손에서 놓고 말았다. 아... 나의 이 소심하고 심약함이여!!!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조금 더 대범했거나, 조금 더 머리가 좋아 '죄와 벌'이 얼마나 위대한 작품인지를 알아봤다거나, 작품의 매력에 흠뻑 빠졌더라면, 지금의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 었을지도 모른다.<br>혹은 누군가가 옆에 있어, '죄와 벌'을 알아보는 안목을 가지고는 조용히 말하길, "그 소설을 끝내는 읽어야 하리라" 라고 조언을 했더라면 상황은 꽤나 달라져 있을듯 하다. 그러나 내게는 그런 행운이 영 따라주지 않았다. 그 후로 나는 소설을 외면하고 살았다. 그러다가 다시 만난 소설이 하필 '파리대왕'이었다.&nbsp;<br><br>내가 생각하는 나의 오만은 죄이자 벌이다. 나는 파리대왕을 읽고 이렇게 독후감을 썼다. '인간의 야만성은 지극히 본능적인 것일 수 있다. 저 어린 학생들의 야만성을 보라. 나이가 들어야만 인간이기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이 어린 사람들이 인간성을 상실하고 그 어떤 상태로 타락을 하든, 어른들이 있어 이들을 구제할 수 있다. 그러나 기성세대의 야만성과 타락, 폭력, 인간성 상실, 욕망, 그 잔인한 전쟁으로부터 그들을 과연 누가 구제할 수 있을 것인가?'&nbsp; 나는 '파리대왕'의 어린 학생들을 통해 저자가 기성세대의 문제점을 지적했다고 판단했고, 나름의 해석에 아주 만족해하며 자뻑을 날리고 있었다. 물론 이 독후감은 나의 것이기에 저자가 의도했던 것 과는 전혀 다를 수 있다. 해석은 독자의 것이라는 오만이 또 작동한 것이다.&nbsp;<br>나의 우쭐함도, 오만도, 그리고 나의 선택도 알고보면 내가 지금껏 받아온 '죄'이며 '벌' 이였다. 나의 독후감이 나를 벌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소설을 홀대하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나의 이 건방은 나를 늘 곤란하게 했다. 그나마 때로는 이 건방이 보이지 않도록 뒤로 숨기려하지만 곧 들키고 만다. 건방과 오만은 도스도옙스키에 따르면 일종의 죄이자 벌이다. 건방과 오만은 신성함을 소홀히 하기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성함을 잃는 것은 죄이다. 신성함을 잃는 순간 살인 이라는 벌이 시작되듯 말이다.&nbsp;그렇게 양극단의 경험들은 나를 서서히 소설과 더 멀어지게 했다.<br><br><br>  그런데 요즘은 서서히 소설을 향해 시선을 주기시작했다. 책의 두께!! 한 손으로 들면 버거울것만 같은 두께의 소설들의 사진을 알라딘 서재에서 만나면서 였다. 나는 책의 두께에 매료되기도하고 기가 죽기도 하는&nbsp; 사람이었다. 그러나 고민스러운 일이다. 과연 어떤 소설부터 두께감을 갖기 시작해야할까....블로그의 힘은 확실히 영향력이 있다. 게시된 사진 중 도스토옙스키의 소설들이 두터웠다. 게시해준 똘스또이의 '전쟁과 평화'는 무려 4권,&nbsp;&nbsp;2988쪽, 무게 3.89kg. 너무 두껍고 기가 죽는다. 도스도옙스키의 '백치'는 상ㆍ하를 합하면 1,000 쪽이 넘었다. 역시 나의 기를 눌러 놓는다. 아련한 옛 추억이 떠올랐다. '죄와 벌'을 손에서 내려놓던 그 순간 말이다. 나는 지금껏 죄를 지었다. 행여 내게도 시베리아로부터 부활의 시간이 찾아 오려는가...<br><br> 국립공원 앞에 산 전체 조망도를 보여주는 안내판이 있다. 나도 그걸 보고 가야겠다. 도스토옙스키는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안개에 가려진 산맥이라하니, 내비게이션과 전조등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구입한 책이 바로 '도스도옙스키 번역 일기' 이다.<br>스포에 해당하는 이 책은 미지 탐험의 짜릿함과 긴장감을 주지는 못하겠지만 나의 무능력을 보완해줄 수 있겠지 싶다. 물론 도스도옙스키의 매니아들이나 소설 매니아들은 나의 이런 절차를 비웃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현재의 나는 중학생 때의 소심함을 벗어났으니 이제 도스토옙스키에게 천천히 다가가려한다. 가다보면 앞서간 이들이 못보고 간 무엇인가가 하나 쯤은 내게 나타나지 않겠는가. 학부때 셱스피어에 관한 논문을 쓰고 박사가 된 사람들이 100여명이 넘는다는 말을 교수에게 들은 적이 있다. 속으로 '미쳤다', 생각했다. 셱스피어가 광산이라도 되나, 파고 파도 또 파낼 것이 있다는 뜻 아니겠는가. 셱스피어도 그정도인데 하물면 산맥인 도스도옙스키 선생이야 말해 뮛하겠는가. 그 깊고 깊은 산맥, 첩첩 산중, 안개에 가려 보이지않아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거대한 유곡(幽谷), 그 산맥속으로.. (Go for it.!!!)<br><br><br><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70/71/cover150/8946423307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1707133</link></image></item><item><author>차트랑</author><category>횡설 수설...</category><title>女心을 흔들리게 한 男에게 준 책 (2)</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6104135/17285336</link><pubDate>Tue, 19 May 2026 10:2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6104135/17285336</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32636279&TPaperId=1728533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0945/79/coveroff/s652933016_2.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1011628&TPaperId=1728533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0329/93/coveroff/8931011628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br>[[[ 이미지 출처 - 네이버 블로그 Chan's Screen&nbsp; ]]]&nbsp;<br><br>그 남에게 들려준 얘기는 대단한 것이 아닌, 누구나 해줄 수 있는 말이다.&nbsp; 그 남이 자신의 여친에게 잘못한 일이 있어 일이 이렇게 되었다고 하여 다음의 이야기로 시작했다.&nbsp; &nbsp;<br>1) 사과는 눈을 보면서 하는 거란다<br><br>그 男에게 말해준 것 중 하나는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 &nbsp;바로 'Letters to Juliet'이 라는 영화이다. 기억을 잊어 검색을 해봤다. 2010년 수입 개봉한 영화이고, 관객수는 58만명이다. 그 해에 개봉한 영화 원빈과 김새론양의 "아저씨"가 관객수 617만명을 기록했다고 한다. '아저씨'에 비하면 죽을 쒀도 제대로 쑨 영화다. 이 영화의 대한민국 당해 년도 관객수는 10위 안에 들지 못했다. 로열티를 회수는 했는지 모르겠다.(아...!&nbsp; 갑자기 원빈의 진짜 감동적인 대사가 다시 떠오른다. 눈을 부르릅 무섭게 뜨고, 어금니를 있는 힘껏 긴장시키며, 이를 악물고 원빈이 분노에 사무친 표정으로 저음의 포효를 내뱉는다 " 나 전당포한돠!!!!! 금니빨 빼고 싹다 씹어먹어주께에ㅡ!!!!!!!!!!!!!!!!!"&nbsp; 사실은 "모조리 씹어 먹어줄게" 이다 )&nbsp;<br><br>대한민국에서의 흥행은 별로였고, 그리 임팩트가 있는 성격의 영화도 아니어서 이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이 몇이나 계실지는 모르겠다. 나는 할머니 역으로 출연한 '바네사 레드그레이브 Vanessa Redgrave'의 팬이라고는 말하지 못하겠지만 좋아하게 되었다.<br>이 영화와 레드그레이브를 &nbsp;좋아하게 되는 동기를 부여해주는 장면이 하나 있다. 나의 기억 속에 각인된 정말로, 정말로 멋진 장면 말이다.<br><br>젊은 남자 주인공 '찰리'는 어쩌다가는 젊은 여자 주인공인 '소피'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버린다. 스토리가 늘 그러하듯, 찰리는 소피에게 사과하고 싶어한다. 아래의 대본에서 보듯이 사과하는 입장에 있는 찰리의 태도가 영 어색하고 시원찮다. (어쩌면 이런 남자가 진짜일 수 있다. 선수는 절대로 이런 아마추어같은 모습을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매사 능숙하고 이벤트 하는 남자 조심...) 그러자 갑갑했던지 이를 보다못한 할머니 클레어의 즉석 사과법 한 수 지도 들어가신다.<br><br>"사과는 정중히, 그리고 눈을 보면서 하는거란다. 진심을 담아서, 그리고 뉘우치는 마음으로", 영화 letters to Juliet 에서 할머니 클레어는 자신의 손자 찰리에게 이렇게 지도하신다. 우리말 해석을 내 멋대로 이렇게 하기는 했지만 대본을 들여다보면 다음과 같이 써있다.<br><br>영화 속의 클레어는 " in the eyes, truly,&nbsp; with contrition and sincerity 눈을 보면서, 그리고 진심으로 뉘우치면서" 라고 아주 부드러운 톤으로, 동시에 마치 훌륭한 교육자 상을 백만 번은 받았을 법한 초등학교 선생님이 학생들을 지도할 때 보여주는 우아하고도 소신있는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한다. 영화에서 클레어는 분명히 "truly" 라고 말하지만 위 대본에는 없다. 클레어의 애드립인지 아니면 다운로드 받은 대본이 빼먹은 것인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그 "truly"가 주는 레드그레이브의 딕션은 순간의 장면과 아주 잘 어울렸고, 지도의 순간을 훨씬 더 빛나게 했다고 생각한다. 할머니의 지도력 있는 이 장면은 클레어라는 어른의 존재 이유를 증명해준다. 나는 이 뭉클한 장면을 선명하고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일이 생기지 않는 것이 좋겠지만 행여 사과를 할 일이 발생한다면 늘 클레어의 말을 기억했다, "사과는 눈을 보면서 하는 거란다.".<br><br><br>2) 사랑은 감정이다!!<br><br>또 물론 스토커를 말하려는 것이 아닌 줄은 다 아시리라 믿는다. 또한 집착을 말하려는 것도 아닌 줄은 다 아시리라 믿는다. 사실 이 말은 하나마나한 말이지만, 영화에서 할머니는 손자에게 사랑은 감정이라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중이다.<br>용서를 구해야하는 입장에 처한 사람이 취해야할 태도가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느냐는 모든 관계의 핵심일 수 있다.화가 나있거나 마음의 상처를 입은 상대에게 아무리 이성적인 접근을 시도한다 한들 소용이 없다. 이성적인 접근은 애초에 코드 자체가 다른 것이다. 이해를 요하는 상황에서 오해가 발생한 경우 이성적인 설득이 주효할 것이지만, 마음을 얻어야하는 상황에 알맞는 코드는 감정이다. 감성과 이성은 애초에 파동 자체가 다른 성질의 것이다. 기분이 나쁘면 매사 일이 틀어지니 말이다. 사실 남녀의 관계는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이다.&nbsp;<br><br><br>3) 사랑은 시간이다!!<br><br>사랑은 시간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 또는 그녀가 나를 위해 얼마의 돈을 쓰느냐도 하나의 척도가 될 수는 있겠다. 그러나 시간은 돈과 바꿀 수 없고, 그 무엇과도 교환할 수 없는 가치를 가졌다. 그 귀하디 귀한 시간을 아낌없이 나와 함께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분명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돈으로 시간을 사려는 사람은 사랑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또한 그러므로 한 겨울 나를 위해 뜨개질한 한 켤레의 벙어리 장갑은 바로 사랑의 증표가 될 수 있다. 자식 또한 마찬가지다. 돈으로 키운 자식과 시간으로 키운 자식은 분명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시간으로 키운 자식은 나이가 들어 그 시간을 부모에게 되돌려주려고 노력한다. 반면 돈으로 키운 자식은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다. 결국 자녀의 불효를 한탄할 가능성이 높다.<br><br>소피는 곧 결혼하기로 약속한 약혼남과 여행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나 이 약혼남은 사업에 몰두하느라 소피와 시간을 함께하지 못한다. 함께 여행을 와서는 따로 논다고? 이 男은 함께있어도 상대방을 외롭게 만드는 스타일의 男이었다. 영화니까 그러는 거겠지만 말이다.&nbsp; 반면, 할머니 클레어는 과거에 자신의 마음을 내어준 남성을 50년간 잊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은 클레어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상대방 男도 그랬다. 그들은 정녕 서로를 사랑했던 것이다.<br><br>한 쪽은 함께있어도 시간을 공유하지 못하는 커플이고, 다른 한 쪽은 아주 아주 오래도록 떨어져 있지만 시간을 함께 하고 싶은 사람들이다. 이 영화는 이런한 시간의 대조법을 잘 활용했다. 男과 女의 사랑에 관한 영화라서 결말이 훤이 보이고, 뻔한 영화라서 뻔할 뻔짜, 누구라도 짐작이 가지는 영화이지만 그래도 재밋고 진지한 것은 이성이 아니라 감성에 닿아있는 영화이기 때문이다.<br><br>이성(理性)의 중요성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나는 삶의 8할은 감정이 차지한다고 보는 입장이다.<br> <br>에릭 프롬은 철학자이지만 '사랑의 기술'은 '태도'의 중요성과 '훈련'을 강조한다. 나아가 에릭 프롬은 사랑을 '사랑 받는 사람의 성장과 행복에 대한 능동적 관심'으로 규정한다. 사실 이 모든 것들은 감정에 관여하는 것들이다. 그에의하면 감정도 훈련을 해야할 필요가 있다. 에릭 프롬은 감정을 세련되게 표현하는 방법을 익히라고 권하고 있는 것이다.에릭 프롬은 사랑은 둘이 하나가 되는 것이지만 동시에 둘로 남아있다는 역설이 성립한다고 말한다. 그 연결 코드는 단연 감정이 아니겠는가.<br><br><br>카네기는 말한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라'. 쉽게 말해 일을 성사시키려면 상대방의 마음을 얻으라는 조언이다.<br> <br>카네기가 말하는 기본은 '논쟁하지 마라, 비난 하지 마라, 칭찬 하라'이다. 한마디로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해서 이로울게 하나도 없다는 뜻이다. 그는 논쟁에서 이기려면 논쟁하지 말라고 한다. 상대방의 이름을 기억하고 상대방에게 말을 많이 하게하라고 조언한다. 실제로 논쟁의 승자가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는 경우는 드물다. 카네기의 이 모든 조언들은 상대방의 감정을 고려한 조언들이다.<br>카네기의 결론은 이것이다. 진심으로 찬사를 보내고 아낌없이 칭찬하라!!<br><br>얼마 전 나는 한장의 청첩장을 받았다. 그 男과 그 女가 상암동에서 결혼을 한다는 소식이다. 서로 사랑하여 혼인을 하게되었으니 정말 축하할 일이다. 두 사람의&nbsp; 행복을 진심으로 빈다.&nbsp;&nbsp;<br><br><br><br>사실, 혼인을 할 정도의 인연은 따로 있다. 인연이 없는 상대와는 아무리 노력을 해도 뜻을 이룰 수 없고, 인연이 있다면 누가 뭐래도, 또 어떤 일이 닥쳐와도 결국 뜻을 이루게 되어있다.&nbsp; 이런 점에서 내가 그 男의 결혼에 기여한 바는 없다고 보는 것이 맞다. 아무리 내가 나선들, 인연이 아니면 결코 이루어지지 않았을테니 말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독서는 열심히 합시다요~!&nbsp;&nbsp;<br>마지막으로,&nbsp; 그 男과 헤어져 돌아서면서 아차 하고 후회한 책이 떠올랐다.&nbsp; 함께 주었으면 훨씬 더 좋았을걸 후회 했던 것이다. 그 책은 바로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였다. ㅠ 더이상 책을 주지 않아도 될듯 하지만 말이다.<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0329/93/cover150/893101162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03299303</link></image></item><item><author>차트랑</author><category>횡설 수설...</category><title>女心을 흔들리게 한 男에게 준 책 (1)</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6104135/17273667</link><pubDate>Wed, 13 May 2026 10:3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6104135/17273667</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1011628&TPaperId=1727366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0329/93/coveroff/8931011628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32636279&TPaperId=1727366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0945/79/coveroff/s652933016_2.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 주문 날짜를 확인하니 2025. 08. 14 일로 되어있다 ]]]<br><br><br>지난 해 7월 중순 무더운 어느 여름 날,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주신 분은 30대 초반의 아들을 둔 어머니였다. 사연인 즉, 아들 커플의 결혼 얘기가 오간 후, 어떤 이유로 女가 마음의 결정을 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하고 있다는 것이다.&nbsp;해서 사주 상담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는 사실대로 말했다. '아쉽게도 저는 명리를 업으로 하지 않으며 만족할 만한 답을 드릴 수도 없으니, 다른 전문가를 찾아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고 정중하게 전화를 마무리했다.<br><br>나는 좋은 팔자를 타고나지 못했다. 어린 시절부터 늘 목숨이 위태로웠다. 슈베르트나 멘델스존, 모자르트의 명을 애도하며 하염없이 슬퍼하고 있지만 현대 의학이 아니었다면 나는 슈베르트 형님과 같은 나이에 이미 세상을 등졌을 것이다. 당시 나의 상태는 4시간의 수술과 20cm 이상의 복부 절개를 피할 수 없었다. 낭만주의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나는 딱 30년 살고 죽은 목숨이었다.&nbsp;<br>명(命)이란 대체 무엇인가. 명리 술사들이 내게 하는 말들이 어김없이 들어 맞았다. 좋은건 모르겠지만 불길한 것들은 죄다 비켜가지 못했다. 어느 명리의 대가는 말했다, "그냥 넘어가는 법은 없습니다!!". 불길한 일은 반드시 짚고 넘어간다는 말이었다. 나는 명리에 무언가가 있나보다 싶었다. 병든 몸을 치료하면서 명리를 공부하게 된 동기였다.&nbsp;병든지가 오래인만큼 적지 않은 세월 공부를 했다. 그러나 공부를 하면 할수록 내게 명리는 더 어렵게 느껴졌다.&nbsp;<br><br> 까짓거 고전을 죄다 독파하면 무슨 수가 안나겠나 싶었고, 차례로 도장을 깨듯 호기있게 하나 둘씩 고전을 독파해갔다. 그러나 실상은 나의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고전들의 독파는 결코 명리의 끝이 아니었다. 본게임 전 워밍업, 겨우 예열에 불과했던 것이다. 비록 열공은 했으나 이렇게 어려운 명리를 친구따라 강남가듯 공부했으니 오히려 천만 다행이구나 싶은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작정하고 덤볐더라면 좌절한 끝에 실망이 대단히 컷을 테니까. 고전들을 죄다 독파하면 태권도 2단쯤 되는 무지렁이나 다름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데는 꽤나 많은 세월을 필요로 했다. 솜씨 있는 스트리트 파이터를 만나면 쌍코피 터지는 어리버리한 태권도 2단이 바로 나의 모습일 것이다.<br><br>그런데 정확히 한 달 후 8월 중순 어느 날, 같은 분께서 다시 전화를 주셨다. 자녀의 상황에 개선의 여지가 없어 답답하다며 (나의) 사정은 알겠지만 꼭 좀 뵙고싶다는 것이었다. 일이 난처하게 되었다. 사정을 알렸는데도 한달을 고민하시다가 다시 전화를 주셨으니, 이 번에는 거절하기가 쉽지 않겠구나...싶었다.<br>그래서 고민 끝에 '자녀분의 사주가 아닌, 선배로서 인생 상담은 해드릴 수 있는데 괜찮으시겠냐'고 물었다. 다행스럽게도&nbsp;전화를 주신 분은 그래도 좋다고 답했다.<br><br>혼인을 하려는 당사자들의 일지(日支)를 형(刑)할 경우, 일이 뜻대로 이루지지 않는다. 조건 전제가 충족될 경우, 일지를 충(沖)해줘야 되려 혼인이 성사되기도 한다. 이런 면에서 차라리 상충은 깔끔하다. 반면 형(刑)은 물고 뜯고 비트는 형국이라 그 모양새가 깔끔하지가 못하다. 그리하여 충(沖)보다 형(刑)에서 더 골치 아픈 상황이 벌어진다. (민 형사의 소송도 형(刑)에서 발생한다). 심지어 청첩장을 돌리고 난 후에도 일이 틀어지는 경우를 직접 보았다. 혼인을 앞둔 당사자들의 일지 형은 그러므로 고약한 것이다.&nbsp;또한 천간(天干)에서 男은 재(財)를, 女는 관(官)을 때려내거나 합거할 경우 일이 뜻대로 되다가도 중간에 어김없이 일이 틀어지고 만다.<br>여하튼 시간과 장소를 정하고, 위기의 男에게 줄 2권의 책을 알라딘에 주문했다. 준비한 책은 에릭 프롬이 쓴 ' 사랑의 기술' 그리고 그 유명한&nbsp; '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이었다.<br><br> 시대가 눈부시게 나아갈수록 독서 지수는 오히려 퇴보한다. 누군가 역사는 진보한다고 말했지만 '진보한다'는 술어가 왠지 어색하다. 진보하는 시대는 개인에게 더 많은 량의 정보를 처리하도록&nbsp;요구한다. 처리해야할 정보 량이 더 많아졌음에도 시대는 시간을 더 재촉한다. 정보 처리 부담이 커졌지만 시간은 되려 더 촉박하다는 딜레마에 빠진다. 진보하지만 이러한 불합리한 시대에 살아가는 젊은이들은 책보다 빠르고 손쉽게 정보를 습득할 수 있는 매체를 선호할 수 밖에 없다. 더불어 이 시대는 빠르고 정확한 정보를 원하는 사람에게 그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긍정적 환경을 제공해 주고 있다. 때로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가끔 나는 그 진위를 몰라 허우적이기도 하지만.<br><br>시대가 초래해온 또다른 문제는 '정보의 쪼개기'이다. 처리해야할 정보가 많아져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다다르면 이를 쪼갤 수 밖에 없다. 그 결과 정보와 지식은 수직성을 띈다. 수직성의 문제는 상호 소통의 어려움을 야기시키는데 있다. 수직성이 가지는 특성은 벽이다. 스스로를 그 안에 가두려한다. 전문성을 댓가로 희생된 확장성의 상실은 소통의 장애물로서 기능을 하는 것이다. 소통 장애는 곧 공감력의 상실과 등가물이 된다. 인류가 겪는 진보의 딜레마이다. 이런 환경 속에 처한 현생 인류가 어찌 전쟁을 피해갈 수 있겠는가.<br><br>인문학과의 거리는 더욱 멀어지고, '아름다운 추억' 혹은 '멋진 낭만'도 이제는 사라졌다. '추억'과 '낭만'을 좀더 세련되게 표현한 용어는 '사회성' 이다. 추억과 낭만은 반드시 타자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타자가 함께한다'는 것의 의미는 '사회적'이라는 의미와 대등하다. 그러므로 추억과 낭만은 사회성의 등가물이다.&nbsp;<br><br>이럴 경우 누군가 대신 사회성, 즉 인문학을 전달해줘야한다. 상실의 시대에 인문학 강의가 인기있게 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시대는 인간에게 물질의 풍요를 가져다 주지만 인간의 가슴 속에서 그만큼의 무엇인가를 앗아간다. 스스로도 자신의 가슴 속에서 무엇인가가 점점 사라져가고 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가슴속 허해져 텅 빈 공간을 다시 채우고 싶어한다. 이는 풍요로움이 가져오는 일종의 갈증이다. 바닷물을 마실수록 목이 더 타들어가듯 말이다.<br><br>이러한 일련의 상황들은 깊은 사유 공간을 제공하지 못하는 치명적인 시대 환경을 제공한다. 이는 특히 인간관계에서 부정적으로 작용하기에 매우 적합한 조건이다. 상호 교류와 심리적 혹은 내적 관계를 올올이 저해하는 환경이기 때문이다. 관계에서의 공감능력은 점차 퇴화해 왔다. 시대가 발달할 수록 더더욱 필요한 것은 이성이 아니라 감성이다. 특히 상호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감성지수 말이다.&nbsp;<br><br>어째든 난관을 만난 男과 그 어머니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원인 제공자는 바로 이 男이었다. 어떤 사건을 계기로 男은 女에게 진정성을 의심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男에게, "그렇다면 천만 다행입니다" 했더니, 그 男 왈, " 아, 왜요?" 했다. "왜기는요, 내가 잘못했으니 내 잘못을 내가 바로잡으면 되므로 다행이라는 것이지요. 잘못이 상대방의 것이라면 그것을 내 뜻대로 바로잡을 수 있겠습니까?" 했다. 그 男은 기연미연하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 男의 이런 반응으로 보아 이 男은 아직 女와의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듯 보였다. 아니, 어쩌면 방법을 모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어머니께 말씀 드렸다. "자녀분의 문제는 어렵지 않게 풀어낼 수가 있겠습니다", 라고.&nbsp;순간, 그 男과 어머니의 두 눈이 똥그래졌다. "정말요?" 그래서 "네, 물론입니다" 했다. "이제부터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한가지만 갖춘다면 조만간 해결 할 수 있겠습니다." 했다. "그게 뭔가요?" 갑자기 두 사람의 얼굴에 화색이 돌면서 바로 질문이 들어왔다. "제 말씀을 잘 들으셔야 합니다. 아주 어렵기도 하지만 또 아주 쉽기도 합니다" 이렇게 말해 놓고 말을 이어갔다.<br style="font-family: "><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0945/79/cover150/s652933016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09457983</link></image></item><item><author>차트랑</author><category>횡설 수설...</category><title>멘델스존, 하늘이 내린 전정한 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6104135/17260225</link><pubDate>Wed, 06 May 2026 11:1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6104135/17260225</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C532738915&TPaperId=1726022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8/24/coveroff/8946364122_2.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C352737541&TPaperId=1726022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77/55/coveroff/2612436043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1058598&TPaperId=1726022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41/13/coveroff/8981058598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32137357&TPaperId=1726022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20/91/coveroff/k832137357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19세기를 빛낸 펠릭스 멘델스존은 정말 멋지고 훌륭한 음악가였다. 사실, 작곡 외에 독일 음악사에 남긴 업적만으로도 그는 후배 인사들에게 돈수백배 존경받아 마땅한 인물이었다. 실제로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칭송 받았다. 또, 음악에만 재능이 있었냐 하면 그렇지가 않았다. 문학과 미술에도 재능이 있었다. 그가 남긴 역사가 이를 반증한다. 신(神)은 예술가들에게 다양한 재능을 한꺼번에 몰아주시곤 한다. 아... 신에게 그 어떤 재능도 부여 받지 못한 나의 슬픔이여...!! 이거 너무 불공평한거 아닌가요?<br>&nbsp;<br> 음악의 아버지 바흐 선생의 곡을 들어보지 못한 분들은 꽤 있겠지만,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다들 멘델스존 형님의 곡을 알게 모르게 들어봤다고 장담할 수 있다. 실황이나 드라마에서 신부가 입장할 때 나오는 결혼 행진곡은 바로오~~~!! 멘델스존 형님께서 쓰신 곡이지 말입니다.<br><br> 멘델스존 형님은 다수의 유명한 음악가들과는 달리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큰 부자였고 은행장이었다고 한다. 멘델스존의 친형님 되시는 분도 사설 은행을 운영했다고 하니, 한마디로 제대로 금수저였다. (친형님 되시는 분도 박애정신을 가진 분이었다고 책에 써있다) 멘델스존 형님은&nbsp;1809년 생으로 초기 낭만파의 인물이다. 낭만주의는&nbsp;1789년 프랑스 혁명과 산업혁명이 불러온 시대의 변화와 관련이 깊다.<br><br><br>즉, 왕실, 귀족, 상류층들의 소비물로 인식되던 클래식칼 음악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 중산층의 소비물로 이동했던 것이다. 베토벤이 위대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어마어마한 곡을 썼다는 자체로도 위대한 음악가이지만, 베토벤은 음악 소비의 방향성을 귀족과 상류층에서 대중에게로 향하도록 물꼬의 방향을 틀어 잡았다. 대중에게 낭만 음악의 문을 열어준 장본인이 바로 악성  베토벤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고전 음악의 대중성 확보는 베토벤을 기점으로 한다. 베토벤이 위대한 것은, 들리지 않는 귀로 그토록 훌륭한 음악을 작곡해서가 아니다. 음악사를 바꾼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바흐 선생은 분명 음악의 아버지이다. 그리고 친애하고 경애하는 베토벤 선생은 이런 점에서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정녕 악성(樂聖)이다.<br><br><br> 부유한 집안 덕분일까, 멘델스존 형님은 진보적 성향을 가진 낭만주의 음악가들과는 약간 다르게 보수적인 성향이 있었다. 그의 작곡은 고전주의 형식을 지켰으며 낭만주의의 향기를 입혀버렸다. 즉, 낭만주의의 향기를 풍기면서 고전주의의 맛을 가진 묘한 음악을 시전하신 것이다. 그 결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멘델스존 형님은 안정감을 가진 낭만주의 음악을 낳게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의 음악은 주로 밝은 편이었다. 역사가들은 그가 "전통과 개혁 사이에 균형잡힌 해결책을 찾아냈다." (중앙일보사 音樂의 遺産 5권 p.107) 라고 쓰고 있다.&nbsp;<br><br><br><br>[[[ 괴테는 어린 멘델스존을 천재라 칭했다. 그의 재능을 일찌기 알아봐준 사람 중 하나가 요한 볼프강 폰 괴테였던 것이다. 과연 멘델스존 형님이 '한여름 밤의 꿈' 의 'Overture 서곡'을 완성한 시점은&nbsp;1826년 이라고하니 형님의 나이 불과 17세였다. (나머지는 그 후 오랜 시간에 걸쳐 완성했다)17세의 멘델스존 형님께서 셰익스 피어가 쓴 희곡 '한여름 밤의 꿈'을 읽고 영감을 얻어 곡을 썼다고 전한다. 그는 문학 소년이었고 독서는 이토록 그 파급 효과가 지대하다. 지극히 위험한 것이 독서이기도 하지만, 알고보면 대한민국 커플들의 결혼 행진곡에 독서가 긍정적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이다. ]]]<br><br><br>[[[ 위 왼 쪽 ㅡ 12세의 멘델스존 (칼 베가스 유채 스케치 1821년)12세의 멘델스존은 가르침을 받던&nbsp; 첼터의 안내로 괴테를 방문했다. 1749년생 괴테는 멘델스존 보다 60세가 더 많았다. 당시 멘델스존은 72세의 괴테 어르신을 접견한 것이었다. 괴테는 멘델스존을 무척 마음에 들어했다. 괴테가 어린 소년에게 말했다. "나는 사울이고 너는 다윗이다." (음악의 유산 5권 p. 108)&nbsp;<br>괴테 어르신은 향년 82세, 1832년에 돌아가셨다. 모자르트, 슈베르트, 슈만, 쇼팽 등이 괴테 어르신 만큼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이렇게 나의 마음이 아프지는 않았을 것이다.<br>8년 후 멘델스존이 영국을 방문했을 때&nbsp; 그의 초상화를 그려준 '대커리'라는 화가는 "내가 지금껏 보아온 중에서 가장 잘생긴 얼굴"(음악의 유산 p.107) 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말씀, 믿어도 되나요 대커리 선생?&nbsp;<br>위 오른 쪽 ㅡ 부인인 세실 멘델스존 (에두아르투 마그누스의 유화, 1873년)결혼 전에 그린 그림이라고 한다. 세실 멘델스존은 "재능있는 예술가로서 지적이며 아름답고 매력적이고 생각이 깊었다" (음악의 유산 5권 p.115) 라고 써있으며 "아주 행복한 결혼 생활"을 했다고 전한다. ]]]<br style="font-family: ">&nbsp;<br> 멘델스존이 낭만주의 음악 환경에서 보수적인 모습을 보인 것이 전부는 결코 아니다. 여유가 있는 집안인 만큼 경제적인 난관에 처한 음악가들을 위해 애써준 분이 또한 멘델스존 형님이시다. 자신이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나눌 줄 아는 정말 멋진 분이었다. 그의 혜택을 받은 음악가들은 셀수도 없지만 로베르트 슈만과 쇼팽을 포함한다 (멘델스존보다 한 살 아래였던 슈만형과 쇼팽형은 1810년생으로 동갑이다). 두분께 얼마나 큰 힘이 되었을까. 찐 보수는 이런 보수이다. 기득권을 지키기위해 배타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 아닌, 널리 타자를, 그리고 사회를 이롭게 하는 보수가 진정한 보수인 것이다.&nbsp;<br><br>독일 음악을 한층 더 고양시키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은 인물이 또한 멘델스존 형님이다. 그는 바흐 선생과 헨델 선생을 현대에 인식되는 인물로 역사에 남도록 애써준 장본인이었다. 바흐와 헨델 선생을 연구하여 세상에 알린 사람이 바로 멘델스존 형님이었던 것이다. 멘델스존 형님이 아니었더라도 그 누군가는 해냈을 일이겠지만 직접 해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하겠다. 멘델스존의 노력으로 바흐 선생은 서양 음악사에서 새롭게 태어났다. 어느 전설적인 고전음악 큐레이터는 말했다, '머나먼 여정을 떠났다가 다시 바흐로 회귀하는 것이 고전음악'이라고. 서양음악은 바흐로 시작해 바흐로 끝을 맺는다는 뜻이다. 위대한 바흐의 존재와 멘델스존 형님의 관계가 그러했다.<br><br>&nbsp; 그는 독일의 가장 오래된 음악원의 설립자이자 원장이었으며 교수였다. 게반트 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지휘를 맡았던 그는 라이프지히 컨서버토리(Leifzig Consrvatory)를 몸소 설립했다. 슈만과 그의 아내 클라라도 이 학교의 교수직을 역임하며 힘을 보탰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던가. 브람스는 이런 교육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은 인물 중 한 사람 이었다. 그 후 더 확장된 라이프치히 음악학교의 이름을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 '로 바꾸어 부르고 있다.&nbsp;(멘델스존의 풀네임은 Jacob Ludwig Felix Mendelssohn Bartholdy 이다) 이 예술대학의 이름에서 멘델스존 형님께서 어떤 일을 해내셨는지 잘 알수 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보수인가! 멘델스존 선생께서는 보수의 정의를 몸소 실현하며 살다간 분이다. 대한민국의 보수라고 칭하는 자들과는 너무나도 달랐다.<br><br>이 학교는 독일의 내로라하는 연주가들은 물론 수많은 지휘자등을 배출했다. 셀수도 없는 예술가들은 멘델스존 선생의 노고와 베품의 은덕을 입지 않은 경우가 거의 없었다. 말하면 뭐하노 푸르트뱅글러, 지극히 경애하는 쿠르트 마주어, 체코의 심리학 야나첵, 도덕주의자 브르노 발터, 색체의 마법사 리카르도 샤이 등등은 너무나도 잘 알려진 인물들이며, 멘델스존의 커다란 노고와 지대한 헌신으로부터 나온 인물들이다.&nbsp;<br><br><br>[[[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2악장 안단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협 2악장으로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nbsp;&nbsp;그의 성격에 대한 험담들이 있지만 2악장을 들어보면 생각이 완전 달라진다. 감정의 절제미를 완성시킨 곡이 바로 바협 2악장이니 말이다. 포스팅한 분의 해설이 있어 업로드 해본다. ]]]<br><br>성격은 한성깔 했다고 전해지지만 누나와의 서신교환 내용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듯 하다. 어째거나 팬이 있으면 안티도 있는 법, 멘덜스존 형님은 아주 쿨한 성격을 가졌던듯 싶다. 그는 자신의 재물을 어떻게 써야할지를 알았던 인물이었고, 써야할 곳에 화끈하게 쓰신 분이다. '천재'란 '하늘이 내린 사람'이란 뜻이다. 멘델스존 형님이야말로 진정한 천재였던 것이다. 하늘이 천재를 내릴 때에는 자신만의 영달을 위한 삶을 살아가라고 내리는 것이 아니다. 하늘이 준 그 재능을 세상에 펼쳐, 널리 널리 이익이 되게 하라는 뜻으로 내리는 인물이 천재인 것이다. 과연 멘델스존 선생이야말로 하늘이 내린 진정한 천재였다. 천재라고 다 같은 천재가 아니다. 진정한 천재는 이렇듯 따로 있는 것이다.<br><br><br>그는 작곡, 연구, 음악원 운영, 인재 발굴, 순회 공연등으로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음악사에 길이 빛낼 일을 하느라 너무나도 바쁘게 살았다. 그는 어느 한 순간도 헛되게 보내지 않았다. 그렇게 그는 자신을 혹사시켰으며, 자신의 건강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 결국 형님께서는 과로가 쌓이고 쌓여 병을 얻게 되었다. 이럴 땐 좀 쉬셔야하는데, 순회 공연 일정을 소화했다. 결국 선생께서는 영국 고연을 마치고 돌아온 후 뇌졸중으로 그만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그의 나이 향년 38세,&nbsp;1847년의 일 이었다. 아... 이 또한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던가. 하늘은 진정한 천재를 낳고도 어찌 이리도 박정하시단 말인가.<br><br>그는 생전에 죽음을 이렇게 표현했다고 한다, "음악이 계속 존재하면서도 더이상 슬픔이나 이별이 없는 곳"이라고. 로베르트 슈만은 커다란 슬픔속에서 친 형님과도 같았던 멘델스존을 운구했다. 두 사람은 서로 든든하고 믿음직했으며 참으로 멋진 관계였던 것이다.<br>모자르트 향년 35세, 슈베르트 향년 31세, 슈만 향년 46세, 쇼팽 향년 39세 그리고 멘델스존 향년 38세.<br>대체 이게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할일이 너무나도 많았던 분들을 그렇게 빨리 데려가시다니! 신이시여, 이토록 귀한 분들을, 정녕 그러셔도 되는건가요? (오늘 따라 신에게 불만이 많다&nbsp; ㅠ)&nbsp;<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41/13/cover150/898105859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411310</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