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차트랑空 (차트랑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6104135</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창문을 열어라. 하늘의 해가 저렇게도 맑고 환하구나... </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Fri, 15 May 2026 11:35:30 +0900</lastBuildDate><image><title>차트랑</titl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face/pt_746104135755899.png</url><link>https://blog.aladin.co.kr/746104135</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차트랑</description></image><item><author>차트랑</author><category>횡설 수설...</category><title>女心을 흔들리게 한 男에게 준 책 (1)</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6104135/17273667</link><pubDate>Wed, 13 May 2026 10:3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6104135/17273667</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1011628&TPaperId=1727366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0329/93/coveroff/8931011628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32636279&TPaperId=1727366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0945/79/coveroff/s652933016_2.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 주문 날짜를 확인하니 2025. 08. 14 일로 되어있다 ]]]<br><br><br>지난 해 7월 중순 무더운 어느 여름 날,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주신 분은 30대 초반의 아들을 둔 어머니였다. 사연인 즉, 아들 커플의 결혼 얘기가 오간 후, 어떤 이유로 女가 마음의 결정을 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하고 있다는 것이다.&nbsp;해서 사주 상담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는 사실대로 말했다. '아쉽게도 저는 명리를 업으로 하지 않으며 만족할 만한 답을 드릴 수도 없으니, 다른 전문가를 찾아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고 정중하게 전화를 마무리했다.<br><br>나는 좋은 팔자를 타고나지 못했다. 어린 시절부터 늘 목숨이 위태로웠다. 슈베르트나 멘델스존, 모자르트의 명을 애도하며 하염없이 슬퍼하고 있지만 현대 의학이 아니었다면 나는 슈베르트 형님과 같은 나이에 이미 세상을 등졌을 것이다. 당시 나의 상태는 4시간의 수술과 20cm 이상의 복부 절개를 피할 수 없었다. 낭만주의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나는 딱 30년 살고 죽은 목숨이었다.&nbsp;<br>명(命)이란 대체 무엇인가. 명리 술사들이 내게 하는 말들이 어김없이 들어 맞았다. 좋은건 모르겠지만 불길한 것들은 죄다 비켜가지 못했다. 어느 명리의 대가는 말했다, "그냥 넘어가는 법은 없습니다!!". 불길한 일은 반드시 짚고 넘어간다는 말이었다. 나는 명리에 무언가가 있나보다 싶었다. 병든 몸을 치료하면서 명리를 공부하게 된 동기였다.&nbsp;병든지가 오래인만큼 적지 않은 세월 공부를 했다. 그러나 공부를 하면 할수록 내게 명리는 더 어렵게 느껴졌다.&nbsp;<br><br> 까짓거 고전을 죄다 독파하면 무슨 수가 안나겠나 싶었고, 차례로 도장을 깨듯 호기있게 하나 둘씩 고전을 독파해갔다. 그러나 실상은 나의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고전들의 독파는 결코 명리의 끝이 아니었다. 본게임 전 워밍업, 겨우 예열에 불과했던 것이다. 비록 열공은 했으나 이렇게 어려운 명리를 친구따라 강남가듯 공부했으니 오히려 천만 다행이구나 싶은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작정하고 덤볐더라면 좌절한 끝에 실망이 대단히 컷을 테니까. 고전들을 죄다 독파하면 태권도 2단쯤 되는 무지렁이나 다름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데는 꽤나 많은 세월을 필요로 했다. 솜씨 있는 스트리트 파이터를 만나면 쌍코피 터지는 어리버리한 태권도 2단이 바로 나의 모습일 것이다.<br><br>그런데 정확히 한 달 후 8월 중순 어느 날, 같은 분께서 다시 전화를 주셨다. 자녀의 상황에 개선의 여지가 없어 답답하다며 (나의) 사정은 알겠지만 꼭 좀 뵙고싶다는 것이었다. 일이 난처하게 되었다. 사정을 알렸는데도 한달을 고민하시다가 다시 전화를 주셨으니, 이 번에는 거절하기가 쉽지 않겠구나...싶었다.<br>그래서 고민 끝에 '자녀분의 사주가 아닌, 선배로서 인생 상담은 해드릴 수 있는데 괜찮으시겠냐'고 물었다. 다행스럽게도&nbsp;전화를 주신 분은 그래도 좋다고 답했다.<br><br>혼인을 하려는 당사자들의 일지(日支)를 형(刑)할 경우, 일이 뜻대로 이루지지 않는다. 조건 전제가 충족될 경우, 일지를 충(沖)해줘야 되려 혼인이 성사되기도 한다. 이런 면에서 차라리 상충은 깔끔하다. 반면 형(刑)은 물고 뜯고 비트는 형국이라 그 모양새가 깔끔하지가 못하다. 그리하여 충(沖)보다 형(刑)에서 더 골치 아픈 상황이 벌어진다. (민 형사의 소송도 형(刑)에서 발생한다). 심지어 청첩장을 돌리고 난 후에도 일이 틀어지는 경우를 직접 보았다. 혼인을 앞둔 당사자들의 일지 형은 그러므로 고약한 것이다.&nbsp;또한 천간(天干)에서 男은 재(財)를, 女는 관(官)을 때려내거나 합거할 경우 일이 뜻대로 되다가도 중간에 어김없이 일이 틀어지고 만다.<br>여하튼 시간과 장소를 정하고, 위기의 男에게 줄 2권의 책을 알라딘에 주문했다. 준비한 책은 에릭 프롬이 쓴 ' 사랑의 기술' 그리고 그 유명한&nbsp; '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이었다.<br><br> 시대가 눈부시게 나아갈수록 독서 지수는 오히려 퇴보한다. 누군가 역사는 진보한다고 말했지만 '진보한다'는 술어가 왠지 어색하다. 진보하는 시대는 개인에게 더 많은 량의 정보를 처리하도록&nbsp;요구한다. 처리해야할 정보 량이 더 많아졌음에도 시대는 시간을 더 재촉한다. 정보 처리 부담이 커졌지만 시간은 되려 더 촉박하다는 딜레마에 빠진다. 진보하지만 이러한 불합리한 시대에 살아가는 젊은이들은 책보다 빠르고 손쉽게 정보를 습득할 수 있는 매체를 선호할 수 밖에 없다. 더불어 이 시대는 빠르고 정확한 정보를 원하는 사람에게 그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긍정적 환경을 제공해 주고 있다. 때로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가끔 나는 그 진위를 몰라 허우적이기도 하지만.<br><br>시대가 초래해온 또다른 문제는 '정보의 쪼개기'이다. 처리해야할 정보가 많아져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다다르면 이를 쪼갤 수 밖에 없다. 그 결과 정보와 지식은 수직성을 띈다. 수직성의 문제는 상호 소통의 어려움을 야기시키는데 있다. 수직성이 가지는 특성은 벽이다. 스스로를 그 안에 가두려한다. 전문성을 댓가로 희생된 확장성의 상실은 소통의 장애물로서 기능을 하는 것이다. 소통 장애는 곧 공감력의 상실과 등가물이 된다. 인류가 겪는 진보의 딜레마이다. 이런 환경 속에 처한 현생 인류가 어찌 전쟁을 피해갈 수 있겠는가.<br><br>인문학과의 거리는 더욱 멀어지고, '아름다운 추억' 혹은 '멋진 낭만'도 이제는 사라졌다. '추억'과 '낭만'을 좀더 세련되게 표현한 용어는 '사회성' 이다. 추억과 낭만은 반드시 타자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타자가 함께한다'는 것의 의미는 '사회적'이라는 의미와 대등하다. 그러므로 추억과 낭만은 사회성의 등가물이다.&nbsp;<br><br>이럴 경우 누군가 대신 사회성, 즉 인문학을 전달해줘야한다. 상실의 시대에 인문학 강의가 인기있게 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시대는 인간에게 물질의 풍요를 가져다 주지만 인간의 가슴 속에서 그만큼의 무엇인가를 앗아간다. 스스로도 자신의 가슴 속에서 무엇인가가 점점 사라져가고 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가슴속 허해져 텅 빈 공간을 다시 채우고 싶어한다. 이는 풍요로움이 가져오는 일종의 갈증이다. 바닷물을 마실수록 목이 더 타들어가듯 말이다.<br><br>이러한 일련의 상황들은 깊은 사유 공간을 제공하지 못하는 치명적인 시대 환경을 제공한다. 이는 특히 인간관계에서 부정적으로 작용하기에 매우 적합한 조건이다. 상호 교류와 심리적 혹은 내적 관계를 올올이 저해하는 환경이기 때문이다. 관계에서의 공감능력은 점차 퇴화해 왔다. 시대가 발달할 수록 더더욱 필요한 것은 이성이 아니라 감성이다. 특히 상호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감성지수 말이다.&nbsp;<br><br>어째든 난관을 만난 男과 그 어머니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원인 제공자는 바로 이 男이었다. 어떤 사건을 계기로 男은 女에게 진정성을 의심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男에게, "그렇다면 천만 다행입니다" 했더니, 그 男 왈, " 아, 왜요?" 했다. "왜기는요, 내가 잘못했으니 내 잘못을 내가 바로잡으면 되므로 다행이라는 것이지요. 잘못이 상대방의 것이라면 그것을 내 뜻대로 바로잡을 수 있겠습니까?" 했다. 그 男은 기연미연하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 男의 이런 반응으로 보아 이 男은 아직 女와의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듯 보였다. 아니, 어쩌면 방법을 모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어머니께 말씀 드렸다. "자녀분의 문제는 어렵지 않게 풀어낼 수가 있겠습니다", 라고.&nbsp;순간, 그 男과 어머니의 두 눈이 똥그래졌다. "정말요?" 그래서 "네, 물론입니다" 했다. "이제부터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한가지만 갖춘다면 조만간 해결 할 수 있겠습니다." 했다. "그게 뭔가요?" 갑자기 두 사람의 얼굴에 화색이 돌면서 바로 질문이 들어왔다. "제 말씀을 잘 들으셔야 합니다. 아주 어렵기도 하지만 또 아주 쉽기도 합니다" 이렇게 말해 놓고 말을 이어갔다.<br style="font-family: "><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0945/79/cover150/s652933016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09457983</link></image></item><item><author>차트랑</author><category>횡설 수설...</category><title>멘델스존, 하늘이 내린 전정한 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6104135/17260225</link><pubDate>Wed, 06 May 2026 11:1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6104135/17260225</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C532738915&TPaperId=1726022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8/24/coveroff/8946364122_2.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C352737541&TPaperId=1726022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77/55/coveroff/2612436043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1058598&TPaperId=1726022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41/13/coveroff/8981058598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32137357&TPaperId=1726022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120/91/coveroff/k832137357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19세기를 빛낸 펠릭스 멘델스존은 정말 멋지고 훌륭한 음악가였다. 사실, 작곡 외에 독일 음악사에 남긴 업적만으로도 그는 후배 인사들에게 돈수백배 존경받아 마땅한 인물이었다. 실제로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칭송 받았다. 또, 음악에만 재능이 있었냐 하면 그렇지가 않았다. 문학과 미술에도 재능이 있었다. 그가 남긴 역사가 이를 반증한다. 신(神)은 예술가들에게 다양한 재능을 한꺼번에 몰아주시곤 한다. 아... 신에게 그 어떤 재능도 부여 받지 못한 나의 슬픔이여...!! 이거 너무 불공평한거 아닌가요?<br>&nbsp;<br> 음악의 아버지 바흐 선생의 곡을 들어보지 못한 분들은 꽤 있겠지만,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다들 멘델스존 형님의 곡을 알게 모르게 들어봤다고 장담할 수 있다. 실황이나 드라마에서 신부가 입장할 때 나오는 결혼 행진곡은 바로오~~~!! 멘델스존 형님께서 쓰신 곡이지 말입니다.<br><br> 멘델스존 형님은 다수의 유명한 음악가들과는 달리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큰 부자였고 은행장이었다고 한다. 멘델스존의 친형님 되시는 분도 사설 은행을 운영했다고 하니, 한마디로 제대로 금수저였다. (친형님 되시는 분도 박애정신을 가진 분이었다고 책에 써있다) 멘델스존 형님은&nbsp;1809년 생으로 초기 낭만파의 인물이다. 낭만주의는&nbsp;1789년 프랑스 혁명과 산업혁명이 불러온 시대의 변화와 관련이 깊다.<br><br><br>즉, 왕실, 귀족, 상류층들의 소비물로 인식되던 클래식칼 음악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 중산층의 소비물로 이동했던 것이다. 베토벤이 위대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어마어마한 곡을 썼다는 자체로도 위대한 음악가이지만, 베토벤은 음악 소비의 방향성을 귀족과 상류층에서 대중에게로 향하도록 물꼬의 방향을 틀어 잡았다. 대중에게 낭만 음악의 문을 열어준 장본인이 바로 악성  베토벤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고전 음악의 대중성 확보는 베토벤을 기점으로 한다. 베토벤이 위대한 것은, 들리지 않는 귀로 그토록 훌륭한 음악을 작곡해서가 아니다. 음악사를 바꾼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바흐 선생은 분명 음악의 아버지이다. 그리고 친애하고 경애하는 베토벤 선생은 이런 점에서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정녕 악성(樂聖)이다.<br><br><br> 부유한 집안 덕분일까, 멘델스존 형님은 진보적 성향을 가진 낭만주의 음악가들과는 약간 다르게 보수적인 성향이 있었다. 그의 작곡은 고전주의 형식을 지켰으며 낭만주의의 향기를 입혀버렸다. 즉, 낭만주의의 향기를 풍기면서 고전주의의 맛을 가진 묘한 음악을 시전하신 것이다. 그 결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멘델스존 형님은 안정감을 가진 낭만주의 음악을 낳게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의 음악은 주로 밝은 편이었다. 역사가들은 그가 "전통과 개혁 사이에 균형잡힌 해결책을 찾아냈다." (중앙일보사 音樂의 遺産 5권 p.107) 라고 쓰고 있다.&nbsp;<br><br><br><br>[[[ 괴테는 어린 멘델스존을 천재라 칭했다. 그의 재능을 일찌기 알아봐준 사람 중 하나가 요한 볼프강 폰 괴테였던 것이다. 과연 멘델스존 형님이 '한여름 밤의 꿈' 의 'Overture 서곡'을 완성한 시점은&nbsp;1826년 이라고하니 형님의 나이 불과 17세였다. (나머지는 그 후 오랜 시간에 걸쳐 완성했다)17세의 멘델스존 형님께서 셰익스 피어가 쓴 희곡 '한여름 밤의 꿈'을 읽고 영감을 얻어 곡을 썼다고 전한다. 그는 문학 소년이었고 독서는 이토록 그 파급 효과가 지대하다. 지극히 위험한 것이 독서이기도 하지만, 알고보면 대한민국 커플들의 결혼 행진곡에 독서가 긍정적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이다. ]]]<br><br><br>[[[ 위 왼 쪽 ㅡ 12세의 멘델스존 (칼 베가스 유채 스케치 1821년)12세의 멘델스존은 가르침을 받던&nbsp; 첼터의 안내로 괴테를 방문했다. 1749년생 괴테는 멘델스존 보다 60세가 더 많았다. 당시 멘델스존은 72세의 괴테 어르신을 접견한 것이었다. 괴테는 멘델스존을 무척 마음에 들어했다. 괴테가 어린 소년에게 말했다. "나는 사울이고 너는 다윗이다." (음악의 유산 5권 p. 108)&nbsp;<br>괴테 어르신은 향년 82세, 1832년에 돌아가셨다. 모자르트, 슈베르트, 슈만, 쇼팽 등이 괴테 어르신 만큼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이렇게 나의 마음이 아프지는 않았을 것이다.<br>8년 후 멘델스존이 영국을 방문했을 때&nbsp; 그의 초상화를 그려준 '대커리'라는 화가는 "내가 지금껏 보아온 중에서 가장 잘생긴 얼굴"(음악의 유산 p.107) 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말씀, 믿어도 되나요 대커리 선생?&nbsp;<br>위 오른 쪽 ㅡ 부인인 세실 멘델스존 (에두아르투 마그누스의 유화, 1873년)결혼 전에 그린 그림이라고 한다. 세실 멘델스존은 "재능있는 예술가로서 지적이며 아름답고 매력적이고 생각이 깊었다" (음악의 유산 5권 p.115) 라고 써있으며 "아주 행복한 결혼 생활"을 했다고 전한다. ]]]<br style="font-family: ">&nbsp;<br> 멘델스존이 낭만주의 음악 환경에서 보수적인 모습을 보인 것이 전부는 결코 아니다. 여유가 있는 집안인 만큼 경제적인 난관에 처한 음악가들을 위해 애써준 분이 또한 멘델스존 형님이시다. 자신이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나눌 줄 아는 정말 멋진 분이었다. 그의 혜택을 받은 음악가들은 셀수도 없지만 로베르트 슈만과 쇼팽을 포함한다 (멘델스존보다 한 살 아래였던 슈만형과 쇼팽형은 1810년생으로 동갑이다). 두분께 얼마나 큰 힘이 되었을까. 찐 보수는 이런 보수이다. 기득권을 지키기위해 배타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 아닌, 널리 타자를, 그리고 사회를 이롭게 하는 보수가 진정한 보수인 것이다.&nbsp;<br><br>독일 음악을 한층 더 고양시키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은 인물이 또한 멘델스존 형님이다. 그는 바흐 선생과 헨델 선생을 현대에 인식되는 인물로 역사에 남도록 애써준 장본인이었다. 바흐와 헨델 선생을 연구하여 세상에 알린 사람이 바로 멘델스존 형님이었던 것이다. 멘델스존 형님이 아니었더라도 그 누군가는 해냈을 일이겠지만 직접 해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하겠다. 멘델스존의 노력으로 바흐 선생은 서양 음악사에서 새롭게 태어났다. 어느 전설적인 고전음악 큐레이터는 말했다, '머나먼 여정을 떠났다가 다시 바흐로 회귀하는 것이 고전음악'이라고. 서양음악은 바흐로 시작해 바흐로 끝을 맺는다는 뜻이다. 위대한 바흐의 존재와 멘델스존 형님의 관계가 그러했다.<br><br>&nbsp; 그는 독일의 가장 오래된 음악원의 설립자이자 원장이었으며 교수였다. 게반트 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지휘를 맡았던 그는 라이프지히 컨서버토리(Leifzig Consrvatory)를 몸소 설립했다. 슈만과 그의 아내 클라라도 이 학교의 교수직을 역임하며 힘을 보탰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던가. 브람스는 이런 교육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은 인물 중 한 사람 이었다. 그 후 더 확장된 라이프치히 음악학교의 이름을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 '로 바꾸어 부르고 있다.&nbsp;(멘델스존의 풀네임은 Jacob Ludwig Felix Mendelssohn Bartholdy 이다) 이 예술대학의 이름에서 멘델스존 형님께서 어떤 일을 해내셨는지 잘 알수 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보수인가! 멘델스존 선생께서는 보수의 정의를 몸소 실현하며 살다간 분이다. 대한민국의 보수라고 칭하는 자들과는 너무나도 달랐다.<br><br>이 학교는 독일의 내로라하는 연주가들은 물론 수많은 지휘자등을 배출했다. 셀수도 없는 예술가들은 멘델스존 선생의 노고와 베품의 은덕을 입지 않은 경우가 거의 없었다. 말하면 뭐하노 푸르트뱅글러, 지극히 경애하는 쿠르트 마주어, 체코의 심리학 야나첵, 도덕주의자 브르노 발터, 색체의 마법사 리카르도 샤이 등등은 너무나도 잘 알려진 인물들이며, 멘델스존의 커다란 노고와 지대한 헌신으로부터 나온 인물들이다.&nbsp;<br><br><br>[[[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2악장 안단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협 2악장으로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nbsp;&nbsp;그의 성격에 대한 험담들이 있지만 2악장을 들어보면 생각이 완전 달라진다. 감정의 절제미를 완성시킨 곡이 바로 바협 2악장이니 말이다. 포스팅한 분의 해설이 있어 업로드 해본다. ]]]<br><br>성격은 한성깔 했다고 전해지지만 누나와의 서신교환 내용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듯 하다. 어째거나 팬이 있으면 안티도 있는 법, 멘덜스존 형님은 아주 쿨한 성격을 가졌던듯 싶다. 그는 자신의 재물을 어떻게 써야할지를 알았던 인물이었고, 써야할 곳에 화끈하게 쓰신 분이다. '천재'란 '하늘이 내린 사람'이란 뜻이다. 멘델스존 형님이야말로 진정한 천재였던 것이다. 하늘이 천재를 내릴 때에는 자신만의 영달을 위한 삶을 살아가라고 내리는 것이 아니다. 하늘이 준 그 재능을 세상에 펼쳐, 널리 널리 이익이 되게 하라는 뜻으로 내리는 인물이 천재인 것이다. 과연 멘델스존 선생이야말로 하늘이 내린 진정한 천재였다. 천재라고 다 같은 천재가 아니다. 진정한 천재는 이렇듯 따로 있는 것이다.<br><br><br>그는 작곡, 연구, 음악원 운영, 인재 발굴, 순회 공연등으로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음악사에 길이 빛낼 일을 하느라 너무나도 바쁘게 살았다. 그는 어느 한 순간도 헛되게 보내지 않았다. 그렇게 그는 자신을 혹사시켰으며, 자신의 건강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 결국 형님께서는 과로가 쌓이고 쌓여 병을 얻게 되었다. 이럴 땐 좀 쉬셔야하는데, 순회 공연 일정을 소화했다. 결국 선생께서는 영국 고연을 마치고 돌아온 후 뇌졸중으로 그만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그의 나이 향년 38세,&nbsp;1847년의 일 이었다. 아... 이 또한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던가. 하늘은 진정한 천재를 낳고도 어찌 이리도 박정하시단 말인가.<br><br>그는 생전에 죽음을 이렇게 표현했다고 한다, "음악이 계속 존재하면서도 더이상 슬픔이나 이별이 없는 곳"이라고. 로베르트 슈만은 커다란 슬픔속에서 친 형님과도 같았던 멘델스존을 운구했다. 두 사람은 서로 든든하고 믿음직했으며 참으로 멋진 관계였던 것이다.<br>모자르트 향년 35세, 슈베르트 향년 31세, 슈만 향년 46세, 쇼팽 향년 39세 그리고 멘델스존 향년 38세.<br>대체 이게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할일이 너무나도 많았던 분들을 그렇게 빨리 데려가시다니! 신이시여, 이토록 귀한 분들을, 정녕 그러셔도 되는건가요? (오늘 따라 신에게 불만이 많다&nbsp; ㅠ)&nbsp;<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41/13/cover150/898105859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411310</link></image></item><item><author>차트랑</author><category>횡설 수설...</category><title>Vincent</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6104135/17253914</link><pubDate>Sat, 02 May 2026 17:4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6104135/17253914</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C272737810&TPaperId=1725391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70/36/coveroff/2662436492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혹여 제목이 거창하여 클릭 후 실망하신 분이 계시다면 죄송합니다.오늘의 날씨는 마치 Vincent 를 닮아 뒷 동산에 오르내리며&nbsp;들은 노래 중 하나 입니다.<br><br><br><br><br> &nbsp;2001년 데뷔 앨범인데 완성도가 가장 높다고 느낀 음반입니다.&nbsp;&nbsp;<br><br><br><br><br><br><br><br>&nbsp;<br><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70/36/cover150/266243649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703633</link></image></item><item><author>차트랑</author><category>횡설 수설...</category><title>슈만, 헌정(Widmung)</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6104135/17241278</link><pubDate>Mon, 27 Apr 2026 12:0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6104135/17241278</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1805188&TPaperId=1724127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8681/75/coveroff/8971805188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22735118&TPaperId=1724127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5604/42/coveroff/k922735118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4040498&TPaperId=1724127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798/65/coveroff/8994040498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br><br>[[[&nbsp;노래는 독일 노래이지만 국내산 성악으로 들어본다. 사적으로 슈만의 Widmung은 황현한으로 끝!&nbsp;저 팔뚝 보소!! 가사는 맨 애래에... ]]]&nbsp;<br><br>슈만은 라이프치히 대학의 법학과에 들어갔지만 음악을 향한 그의 뜨거운 가슴은 그를 피아노로 이끌었다. 타고난 재능을 가졌다는 것은 본디 그런 것이다. 숨길 수도 없고 숨겨서도 안된다. 자신이 가진 것을 드러내지 못하면 말라 비틀어지다가는 결국 죽고 만다. 조선에서 가장 불행했던 여성 중 하나였던 세기의 천재 난설헌이 그랬다.&nbsp;<br><br>슈만이 스승을 찾아 들어간 곳이 클라라네 집이었다. 클라라의 아버지를 음악의 스승으로 삼고 내제자가 되었다. 한마디로 클라라네 집에서 먹고 자면서 음악을 배웠던 것이다.<br><br> 하숙생이 하숙집 주인의 딸과 정분이 났다는 스토리는 대한민국에서 흔히 있었던는 일인데, 독일도 예외는 아니었던듯 싶다. 밥해주던 하숙집 안주인이 장모님 되시는 대한민국 사위님들이 적지 않았다. 독일도 대한민국과 크게 다르지 않을 줄이야...<br><br><br>슈만이 하숙 생활을 시작하던 시점의 클라라는 어린 나이였다. 처음에는 어린 클라라가 슈만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슈만은 밖으로 나가 연애를 화려하게 했던듯 싶다. 젊은 슈만이 그 나이에 사랑의 단맛과 쓴맛을 모두 알아버렸으니 말이다.<br><br>그러던 어느 날 부터인가 슈만은 아직은 한참 어린 클라라와 사랑에 빠지기 시작했다. 아마도 클라라가 14세가 된 시점일 것이다.&nbsp;클라라도 슈만을 아주 좋아했던듯 싶다. 참고로 슈만은 클라라보다 9살이 더 많았다. 그러니까 당시 슈만의 나이 25세, 클라라의 나이 14세인데 슈만은 결혼을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클라라의 부친께서 올커니 했을리 만무했다.&nbsp;<br><br><br><br>[[[&nbsp;클라라는 남편 슈만이 리스트와 교류하는 것을 싫어했다고 한다. 클라라는 자신이 나름 정통 피아니즘을 이어가고 있다는 자긍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클라라에게 리스트의 예술 행위는 전위 예술처럼 느껴졌다. 누군가 처럼 클라라도 전위 예술은 불온하다고 생각했던듯 싶다. 그런 리스트가 슈만의 곡 '헌정'을 편곡하여 피아노가 독주를 할 수있도록 했다. 클라라가 싫어했던 리스트 덕분에 수도 없는 피아니스트들이 슈만의 곡 '헌정'을 피아노로 연주하고 있다.<br style="font-family: &quot;Malgun Gothic&quot;, &quot;맑은 고딕&quot;, -apple-system, BlinkMacSystemFont, system-ui, &quot;Apple SD Gothic Neo&quot;, &quot;Helvetica Neue&quot;, Helvetica, Arial, Dotum, 돋움, sans-serif; font-size: 14px; letter-spacing: -0.5px;">역시 국내산 피아니스트 손열음이다. 아...손열음의 모자르트 피아노 협주곡은 손열음을 대가의 반열에 올려놓는 명연주라고 본다. 모자르트를 정타로 쳐내는 손열음의 연주는 정녕 감동적이다. ]]]<br><br>동양이나 서양이나 젊은 시기의 사랑은 결코 쉽게 다스릴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동서양의 사랑법에는 뚜렷한 스타일 차이가 있기는 하다. 동양은 서서히 군불을 때듯 하다가는 앓는 가슴 못이기고는 끝내 덜커덕 비극적인 상황을 맞이하곤 한다.<br><br>양산백과 축영대의 사랑은 참으로 은근했지만 아름답고 뜨겁기로는 로미오와 줄리엣 저리가라 였다. '장교애련(長橋哀戀)'은 겉으로는 은근한듯 보이지만 사실 알고보면 그 안쪽은 섭씨 구백만로 뜨겁던 그들의 사랑이 만들어낸 애틋한 고사성어이다. 동양의 젊은 사랑은 이렇게 서양에는 없는 고사성어도 만들어낸다.&nbsp;&nbsp;반면 서양은 빠르고 화끈하며 화려하게 꽃피우다 비극을 맞이하는 스타일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그랬다. 물론 '로미오와 줄리엣' 자체가 서양의 고사성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동양이든 서양이든 그 나이의 사랑 그 뜨거움을 온도계로 측정해보면 그 안 쪽은 족히 섭씨 구백만도의 정렬이 불타오른다.&nbsp;<br><br> 일이 이지경인데 슈만의 눈에 뵈는게 있겠는가. 그럴수록 부모 혹은 주변 환경의 반대는 그만큼 더 거센 것이 이치이다. 이를 알게된 클라라의 아버지는 노발대발했다. 내 사위가 될 생각일랑 꿈도 꾸지 말라며 반대했던 것이다.<br><br>반대 이유를 들어보면1. 우선 슈만은 모아놓은 돈이 거의 없었다. 절대로 딸 책임 못질 것 같았다.&nbsp;<br><br><br>2. 엄마 없이 애지중지 키운 외동 딸 클라라는 나이는 어렸지만 천재적인 피아니스트로 성장할 것이 뻔했다. 한마디로 장래 촉망되는 인재였던 것이다. 9살에 신동 소리를 들었으니 말 다했지 말입니다. 슈만에게 시집보내기엔 너무 아깝다고 판단한듯 하다. 실제로 그들이 결혼을 하고 난 후에 슈만은 클라라의 남편으로 인식되었을 정도였다. 물론 결과론적인 말이지만 당시의 슈만은 아직 긁지 않은 복권이었던 셈이지만...&nbsp;<br><br><br>3. 반면 슈만은 피아노를 배우던 중 오른 쪽 손가락을 다쳤는데, 피아노에 관한한 영구 장애 상태여서 연주가로서의 미래가 어두웠지 말입니다.<br><br><br>4. 내심 중요한 반대의 주요 이유일 지도 모르겠다. 슈만형님은 나이는 비록 젊었지만 남녀 관계에서 모범적인 행동을 보여주지 못했던듯 싶다. 심지어 홍등가 출입을 자기 집드나들듯 했던 모양이지 말입니다.<br><br> 결국 클라라의 아버지는 미성년자 유괴죄로 슈만을 고소하는 사태에 이르게 된다. 한 쪽이 쎄게 나오면 그만한 강도로 반작용을 일으키는 것이 모든 것의 이치이다. 슈만도 질세라 결혼 반대죄로 클라라의 아버지를 맞고소했다. 슈만이 이렇게 쎄게 받아치자 클라라의 아버지는 잘못된 선택을 해버린다. 슈만이 알콜 중독자라는 주장을 해버린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가짜 뉴스가 문제이다. 가짜 뉴스는 시간이 지나면서 진위가 드러나게 되어있다. 이러면 상황이 불리해진다. 결국 법원은 슈만의 손을 들어줬다. 클라라가 법정 연령인 성인이 되면 부모의 허락없이 혼인이 가능하다는 판결을 내놓는다.그리하여 그들은 결혼을 했다. 그 해는 지금으로부터 거의 200년 쯤 거슬러 올라가는&nbsp;1840년 이었다.<br><br><br>슈만은 클라라와 결혼 하기 전 날, 그녀에게 연가곡 하나를 헌정한다. 프리드리히 뤼케르트의 시에 곡을 입힌 것이다. 제목은 Widmung(헌정)이다.<br><br>가사는 아래와 같다Du meine Seele, du mein Herz,<br>Du meine Wonn’, o du mein Schmerz,<br>Du meine Welt, in der ich lebe,<br>Mein Himmel du, darein ich schwebe,<br>O du mein Grab, in das hinab<br>Ich ewig meinen Kummer gab!<br>당신은 나의 영혼, 나의 심장입니다<br>당신은 나의 기쁨, 오 당신은 나의 고통입니다<br>당신은 내가 사는 세상입니다<br>당신은 내가 날아다니는 하늘입니다<br>오 당신은 내가 내려갈 무덤입니다<br>그 안에 나는 영원히 나의 슬픔을 묻어버릴 것입니다 (내맘대로 의역)<br><br>Du bist die Ruh, du bist der Frieden,<br>Du bist vom Himmel mir beschieden.<br>Dass du mich liebst, macht mich mir wert,<br>Dein Blick hat mich vor mir verklärt,<br>Du hebst mich liebend über mich,<br>Mein guter Geist, mein bess’res Ich!<br><br>당신은 나의 안식, 나의 평화입니다<br>당신은 하늘이 내게 보내준 사람이지요<br>당신이 나를 사랑해준다는 사실이 나를 가치있게 합니다<br>당신의 눈길은 나를 더 아름답게 만들어요<br>당신은 나스스로 더욱 사랑하게 합니다<br>나의 영혼을 드높이고 더 나은 내가 되게합니다.<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798/65/cover150/899404049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7986540</link></image></item><item><author>차트랑</author><category>횡설 수설...</category><title>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 그리고 사월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6104135/17232155</link><pubDate>Wed, 22 Apr 2026 15:3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6104135/17232155</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1402144970&TPaperId=1723215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57/29/coveroff/1402144970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0306799&TPaperId=1723215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2/67/coveroff/8930306799_2.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031841X&TPaperId=1723215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2877/86/coveroff/893031841x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 애초에는 리뷰를 쓰려고 했으나 사월이의 딱한 처지가 눈에 아른거려 페이퍼로 대신하게 되었음 ]]<br><br>제조업은 대수롭지 않다. 최고의 생산품은 꾸지 나무로 만든 몇 가지의&nbsp;종이인데 이 중에서도 외관상 고급 피지 같은 기름종이는 매우 질기기 때문에 네 사람이 각 모퉁이를 잡고 들어올릴 수 있다. 이 밖에도 돗자리와 대나무 발이 있다. 예술품은 전무하다. [[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 p. 29 ]]<br><br><br><br><br>[[[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 부록 p. 439,&nbsp;죄다 농수산물이다 뿐이다 ]]]<br><br><br> 조선을 바라보는 관점은 다양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은 장장 500년을 이어간 나라이다. 이 점을 높이 평가하는 사학자들이 많다. 사실 단일 국가 체제가 500년을 이어간 역사는 실제로 흔하지 않다. 시황제가 통일 후 세운 진나라는 겨우 15년 만에, 수나라는 40년 만에 막을 내렸다. 중국 역사의 전설의 전설들을 만들어가며 나름 수명이 길었던 유방이 세운 한나라도 400년이었다. 이러한 사실들로 비추어볼때 500년 역사의 조선은 과연 대단한 나라였다고 볼 수 있다.<br><br>그럼에도 나는 조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지 않다.&nbsp;대단한 나라 조선 최고의 생산품이 꾸지나무로 만든 종이라하지 않는가. 이 한 줄의 글은 조선의 제도와 정치, 관료들의 실상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상징성이 매우 큰, 부인할 수 없는 기록이라 할 수 있다.&nbsp;사실 조선의 백성들은 그 어느 나라의 백성들보다 더 훌륭했다. 또한 조선의 백성들은 그 재능이 매우 뛰어났다. 애국심은 말할 것도 없다. 조선 백성들의 애국심 지수는 그 어느 나라 국민들의 애국심 지수보다 더 높을 것이다. 백성 지수만 놓고 본다면 단연 세계 으뜸이 조선일 것이다. 그러나 조선은 백성들을 제대로 대우해주지 않았다. 국가에 대한 다양한 공로가 지대함에도 말이다. 불구하고 전란이 일어나면 조선의 백성들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농기구를 들고 나와 목숨을 초개와 같이 던졌다.&nbsp;&nbsp;<br><br>이토록 조선의 백성지수는 드높았으나 조선이라는 나라의 국가 지수는 백성들의 수준을 따라가지 못했다. 조선의 관리들과 제도, 정치등은 너무나도 표리가 부동하여 그 백성들을 품지 못했다. 조선의 정치는 백성들의 수준에 전혀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실제로 조선은 백성들의 재능을 활용하여 국익을 증진시키기를 거부했다. 그 못된 고정관념이 현대에 이르러서는 문학도, 예체능 학도가 되겠다는 젊은이들의 앞 길을 막아서게 했다. 그 길로 갔다가는 천대를 받다가 굶어 죽는다는 것이 이유였다. 과거부터 기득권이 천대했고 누락자들이 천대받던 분야였기 때문이다.&nbsp;<br><br>조선 백성들과 강산은 지극히 아름다웠으나 냥반들은 결코 그렇지가 못했다. 결국 사월이도 이런 나라에서는 더이상 못살겠다고 떠났는데 하필이면 왜국(倭國)으로 떠났다고들 한다.<br><br>조선의 지배층은 노동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상업이나 공업에 종사한 것도 아니다. 오로지 글만 읽었다. 글을 읽는데 관심이 없는 냥반들은 그냥 놀았다. 그렇다고 상공업을 장려했냐하면 그것도 아니다. 조선은 오로지 농사였고, 기술직을 천대했다. 예능 또한 천대했다. 그렇다고 또 농사꾼을 우대했냐하면 역시나 천대했다. 조선의 기득권은 한자를 읽는 자신들을 뺀 한자를 읽지 못하는 나머지 모두를 천대했다. 쉬운 말로 양천제였다. 조선에서 양인을 뺀 나머지는 불가촉천민이었다. 양인들 중 냥반들은 군역에서도 면제 대상이었다. 조선은 백성들의 재능을 억누르고 천시하였으며 그 재능으로 스스로를 빛낼 수 있는 기회를 원천 박탈했다.<br><br>조일전쟁을 혹자들은 도자기 전쟁이라고도&nbsp;한다. 왜국은 조선이 천대해 온 조선의 도자기를 너무나도 사랑했고 우대했다. 억울하게 왜국으로 끌려갔던 조선 백성들이 고국으로 돌아오고 싶었을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았다. 왜인들은 조선의 장인들을 스승님으로 모시고 존경하며 극진히 대우했기 때문이다. 조선 출신 장인들은 조선에서는 평생 그런 우대를 받아본 적이 없었다. 왜인들의 존대를 받아본 조선의 장인들은 조선은 사람 살 곳이 못되는 지옥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전후 '기유약조'를 통해 포로 송환을 시도했으나 대부분의 조선 백성들은 조선으로 돌아가기를 거부했다. 왜국으로 끌려간 조선 백성들을 데리러 갔던 조선 관리들은 이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다시 그 지옥으로 누가 되돌아가고 싶었겠는가. 조선의 냥반들은 조선의 백성들이 조선과 냥반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몰랐던 것이다. 저자는 냥반들을 대놓고 흡혈귀라고 칭했다. 이것이 조선의 역사적 사실이다.&nbsp;<br><br>전쟁이 끝나자 조선의 경제는 파탄 지경에 이르렀다. 전국의 농지가 황폐된 것도 그렇지만 농사를 지을 사람도 모자랐다. 임진란 이전 150 만결의 농지가 전후 30 만결로 줄어들었다. 그 결과 조선은 후에 경신 대기근을 겪어야 했다. 조선의 백성 100여만 명의 목숨을 희생시켰다. 이런 이유 또한 자명했다. 임진왜란을 치루고도 기득권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전후 조선에 긍정적 변화가 찾아왔다고 주장하는 역사 학자들은 모두 노론출신 역사 학자들이다.&nbsp;<br><br>조선의 냥반들은 냥반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힘있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득권에 위협이 될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는 방법이 바로 백성들의 재능을 천대하는 것이다. 재능을 가지고 있어봐야 소용없게 만드는 것, 그리하여 재능이 출중했던 천민들은 자신들이 가진 재능을 저주하며 살았다. 그리하여 기득권은 더욱 탄탄해진다.<br><br><br> '나는 땅을 경작하는 이들이 최종적인 수탈의 대상이라는 것을 거의 지겹게 반복했다. 농사꾼들은 다른 어떤 계층보다 열심히 일하고, 토지의 생산성과 다소 원시적이지만 토양과 기후에 매우 잘 적응된 그들만의 기술들을 쉽게 배가시킬 수 있다. 그러나 자신들의 수확에 대한 소유권이 확실치 않기 때문에 그들은 단지 가족을 부양할 수 있을 정도로 생산하는 데 만족하고, 더 좋은 집을 짓거나 훌륭한 옷을 입는 것을 두려워한다. 지방관과 양반들의 대출 강요와 수탈로 인해 경작지가 해마다 감소하는 농부들이 부지 기수로 있는데, 그들은 현재 겨우 하루 세 끼의 식사가 가능한 정도이다. 수탈당하는 것이 확실한 운명을 가진 계층이 최악의 무관심과 타성과 무기력의 늪으로 가라앉아야만 했다는 점은 슬픈 일이다.' [[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 p.425 ]]<br><br><br>일하지 않고 먹고 사는 방법은 남의 것을 빼았거나 남에게 일을 대신하게 하는 것이다. 냥반이라는 타이틀이 붙기만 하면 대다수 관직이 없는 냥반들은 무위도식을 하는 것이 생활 방식일 수 밖에 없는 구조였다. 그리하여 노비가 필요했던 것이다. 냥반들이 노동을 하지 않는 조선의 사회구조는 반드시 노비를 양산할 수 밖에 없는 구조였다.<br><br><br>세종의 아들 광평대군은 1만명에 달하는 노비를 소유했다고 한다. 대군이 아닌 냥반 중에 홍길민은 소유 노비의 수가 1,000 명에 달했다고 한다. 상상도 못할 숫자가 아니던가. 퇴계 이황이 소유했던 노비의 수는 최소 367명이다. 이퇴계 소유의 토지는 일부 문헌에 의하면 36만 평이었다고 한다. 노비의 수와 재산의 규모로 세종의 아들들과 이퇴계를 비난하고자 함이 아니다. 조선의 실상이 그랬다는 역사의 실례를 들고자 할 뿐이다.<br><br>조선 냥반들이 노비를 얼마나 사랑했냐하면 왕사남에 나오는 한명회는 사육신 유성원의 아내와 딸을 취했다. 그뿐이&nbsp;아니다. 정인지는 사육신 박팽년의 아내를, 박종우는 사육신 성삼문의 아내와 딸을, 권언은 사육신 하위지의 아내와 딸을, 권반은 사육신 유응부의 아내를, 강맹겸은 사육신 이개의 아내를 취했다. 그 여인들을 노비나 첩으로 삼은 것이다. 양녕이 난을 일으킨 후 냥반들이 노비나 첩으로 데려간 여인들은 무려 173명, 그 중에는 성삼문의 동생인 성삼고의 1살된 딸도 포함되어 있다고 세조실록은 기록하고 있다. 심지어 신숙주는 단종의 부인인 정순왕후를 첩으로 달라고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고 하는데 진실 여부는 알 수가 없다. 조선 냥반들의 노비와 첩 사랑은 염치를 생각할것도 눈치를 볼것도 없이 강렬했다. 노비를 가지고 가져도 더 가지고 싶어했다. 실상은 그랬으면서 입으로는 혹은 글로는 안빈낙도를 찬미했던 것이다. 이러한 이율 배반이 조선의 현실이었다.<br><br>조선 냥반들은 녹봉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백성들로부터 약탈을 일삼았다. 관직에서 권력을 잡고 있을 때 최대한 빼앗아놓으려 했다. 고리대와 방납제도는 대표적인 약탈과 착취의 수단이었다. 인징과 족징은 하룻밤 사이에 마을 하나를 사라지게 하는 원인을 제공했다. 삼정의 문란은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는 사회적 문제였다.<br><br>조선 사회는 왜 이지경이 되었을까?조선의 기득권들은 자신들의 이익과 부를 축적하는 정치를 했고, 왕들은 이를 방치했다. 아니, 동조했다. 종모법과 일천즉천제를 보면 국가가 동조했음을 잘 알수 있다. 조선의 냥반들이 자신들을 위해 정치를 한 결과였다. 모든 제도는 자신들의 이익에 촛점을 맞추었다. 자신들에게 불리하다 싶은 제도는 목숨을 걸고 끝까지 반대했다. 대동법을 시행하는데 그토록 긴 시간, 100년이 걸린 이유였다.<br><br><br>  다시 책으로 돌아가면,&nbsp;'그러나 이보다 더 훌륭한 것이 많았다. 남자들의 태도는 미묘하지만 사실상의 변화를 보이고 있으며 여자들은 비록 명목상으로는 은둔의 습관을 지켜 나가고 있었지만 조선의 가정에서 그들의 특징이었던 비굴한 태도를 갖고 있지 않았다. 국내에서만 자란 조선 사람들은 아내에 대한 의심과 독단, 노예 근성 등의 특징을 가지고 있으나 이곳에서는 그런 모습들이 아시아적이라기보다는 영국적인 남자다움과 독립심으로 바뀌었다. 양반의 거만한 몸짓과 농부가 기운 없이 어슬렁대는 태도도 민첨한 행동으로 바뀐 것이 특징이다.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많으며 그들이 번 돈을 짜낼 양반&nbsp;도, 관리도 그곳에는 없었으며, 안정과 재산은 더 이상 관리의 관심을 끌지 못했고, 재산에 대한 불안감보다도 신뢰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었다.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있으며 많은 농부들이 부유하다. 그들은 무역에 종사하면서 광범한 계약을 맺고 있었다. 땅에 정착하지 못하고 주로 중국 국경 방향에 정착한 조선 사람들은 벌목과 운반으로 살아가고 있어서 부 유하지도 못했다. 그들의 부락은 다소 불결했다.<br>조선에서 나는 그들이 열등 민족이었고 삶의 희망이 없는 존재라고 생각했으나 프리모르스크에서 나는 나의 의견을 수정해야 할 이유들을 발견했다.' [[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nbsp; p.229 ]]<br><br><br>이 얼마나 아름다운 조선 백성들의 모습인가!!! 냥반들의 착취가 이루어지지 않는 곳에서 보여준 조선 백성들의 빼어난 능력을 보며 저자가 감동하며 적은 글이다.<br><br>임금의 질문에 대한 사월이의 답을 들어보자.<br><br><br>[[ 조선은 그런 나라였다. 저자는 수도 없이 같은 말을 반복한다 조선의 냥반들은 '흡혈귀'라고, 극중 광해의 대사대로 백성들에게 조선은 정말 족같은 나라였다 ]]]<br><br>잠시 삼천포이지만, 어린 궁녀 사월이는 영화 '광해'의 극 중 인물이다. 사월이라는 이름으로 보아 아마도 巳月에 태어났을 것이다. 巳月생들은 본디 재주가 빼어나기 쉽상인데 극중 사월이는 그 마음이 아름다웠고 동시에 결기는 빼어났다.&nbsp;<br><br>사실 여성의 이름에 '월'을 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여성의 이름에 희, 화, 초, 매, 월 등은 쓰지 않는 것이 좋다. 남성들의 이름에 화, 희등은 오히려 무방하다. 왕사남 전미도의 이름은 매화(梅花 혹은 梅華)이다. 매(梅)와 란(蘭)이 절의와 기개 그리고 충을 뜻한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매'와 '란'이 그런 의미를 가질 때는 동양화나 글 에서이다. 이름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모르고 지은 이름이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게 왕사님 옥의 티는 '매화'라는 이름이었다.<br>그리고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는 사람의 이름이 '초희'였다. 개명을 했으면 하고 속으로 바라기만 했을 뿐, 끝내 말하지는 못했다. 에구, 소심하기는 &nbsp;ㅠ<br><br>이름에 대한 얘기를 하려던 것이 아닌데 일이 이렇게 되었다. 각설하고.<br>조선의 냥반들은 타자가 냥반으로 진입하는 것을 가장 꺼려했다.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냥반이 아닌 자들이 냥반으로 진입하는 길을 원천 차단했다.<br><br>종모법(從母法)을 법제화 했다. 이것도 모자랐던지 일천즉천제(一賤卽賤制)를 시행 했다. 냥반들에게는 부를 축적할 수 있는 최고의 제도였다. 조선의 냥반들은 양인과 천민의 혼사를 강력 몰아붙였다. 노비의 수를 늘려 재산을 증식시킬 수 있는 합법적 최고의 방법이었던 것이다. 노비의 수는 점점 늘어났는데 어떤 학자들은 전체 인구의 절반이 노비였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불리한 수치는 무조건 줄여 놓고 보는 관행에 따르면 50% 설은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br><br>이 책,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은 조선의 백성들의 삶이 지옥과 다름없는 삶이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게 한다. 저자가 그런 의도로 쓴 책이 아님을 잘 알지만 오지의 오지, 더 오지로 도망가 관리들의 관심 밖에서 살아야 했던 수많은 조선 백성들의 삶이 안타깝고 또 안타깝게만 느껴진다.<br><br>현대의 대한민국도 과거의 조선처럼 국민들에게 입은 은덕이 너무나도 크다. 일제에 진 빚을 온 국민이 힘모아 함께 갚았고, 3.1운동으로 나라를 지켰으며, 전시에는 학생들마저 전선으로 나가 고지전을 치뤄냈고, 금을 모아 금융 위기에 대처했다. 그러나 정작 기득권들은 금 한 돈을 내놓지 않았다고 한다. 코로나 때는 일사 분란하게 움직여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파시즘이 국가를 위기로 몰아넣자 온 국민이 함께 이를 저지하여 민주주의를 지켜낸 것은 불과 얼마 전이다. 이 얼마나 자랑스런 국민이던가.&nbsp;<br><br> 현재의 젊은이들의 고통은 기득권들의 과욕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1인이다. 부동산의 가격을 너무나도 크게 올린 결과 그들은 부유하게 살아가고 있지만 아직 피우지 못한 삶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는 너무나도 큰 고통을 준다. 미래가 구만리인 젊은이들에게 희망이 없다. 내집 마련은 부모의 찬스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제는 대한민국이 바뀌어야야 한다.&nbsp;<br><br><br>저자는 37장 '조선에 대한 마지막 이야기'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br><br>'여러 가지의 개혁에도 불구하고 조선에는 착취하는 사람들과 착취 당하는 사람들, 이렇게 두 계층만이 존재한다. 전자는 허가받은 흡혈귀라 할 수 있는 양반 계층으로 구성된 관리들이고, 후자는 전체 인구의 4/5를 차지하고 있는 하층민들로서 하층민들의 존재 이유는 흡혈귀들에게 피를 공급하는 것이다. 가망 없는 그러한 요소들을 제거하고 교육에 의해, 생산계층 보호에 의해, 부패한 관리들의 처벌에 의해, 그리고 실질적으로 마무리된 일에 대해서만 댓가를 지불하는 식으로 정부의 모든 공직의 업무 기준을 확립함으로써 새로운 국가가 건립되어야 한다.' p.425<br><br><br><br style="font-family: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2877/86/cover150/893031841x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28778699</link></image></item><item><author>차트랑</author><category>횡설 수설...</category><title>대한민국 학생님들 의식수준 (우체국 다녀온 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6104135/17231610</link><pubDate>Wed, 22 Apr 2026 10:4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6104135/17231610</guid><description><![CDATA[<br>오늘 아침에 우체국에 갈 일이 있었다.가장 가까운 우체국에 가려면 버스를 타고 두 정거장을 가야한다. 그곳은 우체국이 아니라 우편취급국이다. 업무 공간은 작아서 프론트 데스크에는 2명의 실무자가 앉아있고 뒷 편에는 1인의 직급이 있어보이는 직원이 앉아있다.<br><br>여하튼 택배 상자를 들고 버스에 올랐는데, 앗차, 만원이다!<br>아이쿠, 이런~ 나의 실수!<br>우리 학생님들 출근하시는 시간에 아무런 생각없이 버스를 타버렸음 ㅠ<br><br>버스 기사님이 문을 닫는데 시간이 걸릴 정도 였으니<br>아... 나의 실수여...!!!속으로 자책하고 있는 사이 한 정거장이 지나버렸다.<br><br>이제 내려야하는데....큰일일세....하면서 어찌어찌 버스 뒷문으로 떠밀려가는데,아니, 버스 중간에 자리 하나가 비어있네?<br>이렇게 비좁은 중에 비어있는 자리라니!<br><br>다름 아닌 임산부석(pink seat) 이었다!!<br><br>아.... 대한민국 학생님들의 드높은 의식 수준이여!!!&nbsp;&nbsp;떠밀리고 비좁은 공간에 탑승하여 pink seat를 비워 놓는 저 기상이여!<br>대한민국은 이정도 수준의 학생님들 보유국이다. 감동의 물결이 나의 가슴속에서 차올랐다. 이런 학생들이 세계 어느 나라에 또 있을까.<br>늘 그러하듯 대한민국은 어른들만 잘하면 된다.<br><br>힘들게 출근하시는 대한민국 학생님들께내가 학생 때 들었던 음악을 들려드리고 싶다.부디 지금처럼 훌륭하게 자라주시오!!<br><br><br><br><br>]]></description></item><item><author>차트랑</author><category>횡설 수설...</category><title>뒷동산에 오르며 듣는 피아노</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6104135/17226390</link><pubDate>Sun, 19 Apr 2026 19:2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6104135/17226390</guid><description><![CDATA[해가 서산에 걸린 즈음뒷동산에 살짝 오르며 듣는다.&nbsp;&nbsp;마르텐 르그랑(Marten Legrand)은&nbsp;63년생 네덜란드의 피아니스트라고 한다.<br>그는 모자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1번 2악장을 아래와 같이 연주했다.2악장의 속도는 안단테로 '걷는 속도로 천천히' 정도인데'아다지오'보다는 빠르고, '모데라토'보다는 느리다.산책할 때는 최고의 속도가 안단테 일듯 싶다.&nbsp;&nbsp;오케스트라 없는 연주도 이토록 좋다.저녁 시간은 모자르트로 인해 정녕 풍요롭다...<br><br><br><br><br>]]></description></item><item><author>차트랑</author><category>횡설 수설...</category><title>같은 8분음표 기준 3박, 느낌 전혀 다른 두 노래</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6104135/17217877</link><pubDate>Wed, 15 Apr 2026 10:5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6104135/17217877</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C982738360&TPaperId=1721787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748/29/coveroff/1222329271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8분음표 기준 3박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분들은 잠시 고민에 빠지곤 한다. 고민 끝에, 4분음표 기준 3박과 같다, 라고 가르치는 경우가 있다. 8분음표는 4분음표와 기준이 다르기는 하지만 3박 이라는 공통 분모가 있을 때, 분명하게 가르마를 타기가 애매하다.&nbsp;마디 안에 3박을 넣은 데다가, 셈 여림도 강ㅡ약ㅡ약으로 같으니 맞는 말이기도 하다.<br><br>그러나 4분음을 1박으로 한다면 8분음은 0.5박으로 보는 것이 이해하기가 더 쉽다. 달리 말해 4분음표를 기준한 3박은 왈츠에서 자주 사용하고 있듯이 8분의 3박 보다 약간 무겁고 두텁게 간다. 3박자를 모두 분명하게 짚고 가는 것이다. 반면 8분음표를 기준한 3박의 호흡은 가볍고 경쾌하게 간다. 속도가 약간 더 빠른 만큼, 음이 주는 느낌도 가뿐하고 경쾌한 것이다. 메트로놈을 시전하면 느낌 바로 오는데...<br><br>아래는 베르디 선생이 쓴 오페라 '리골레토 Rigoletto'의 한 장면으로 그 유명한 노래 '여자의 마음&nbsp;La Donna è Mobile' 이다. 이는&nbsp; 강ㅡ약ㅡ약, 8분음표 기준 3박의 전형적인 노래이다. 악보를 보면 8분음표의 3박임이 한눈에 바로 들어온다. 고로 리듬을 타기도 쉬운 노래이다 (성악가가 아닌 것이 문제이지만 ㅠ).&nbsp; 경쾌하고 가벼우며 호흡도 짧다. 워낙 널리 알려진 곡인지라 바로 이해가 갈 것이다.<br><br><br><br><br><br><br>라ㅡ돈ㅡ나에 모ㅡ비ㅡ레 / 꽐ㅡ피우ㅡ마알, 벤ㅡㅡ 또<br>시ㅡ간ㅡ좀&nbsp; &nbsp;내 ㅡ주ㅡ오 / 갈ㅡ데ㅡ가,&nbsp; 있ㅡㅡ소&nbsp;<br><br>강ㅡ약ㅡ약&nbsp; &nbsp;강ㅡ약ㅡ약 /&nbsp; 강ㅡ약ㅡ약, 강ㅡ약ㅡ약<br>템포가 경쾌 상쾌 가뿐 가뿐하다.<br><br>그런데.......!!!<br>오늘의 주인공은 이 곡이 아니다.오늘의 주인공 슈베르트의 곡, '그대는 나의 안식 Du Bist Die Ruh' 를 들어보면 얘기가 확 달라진다.&nbsp;슈베르트는 독일 시인 프리드리히 뤼케르트( Friedrich Rückert)의 시에 곡을 입혔는데, 이 곡을 솔로와 피아노 만을 위한 곡으로 썼다. 여기까지는 색다를 것이 없다. 8분음표를 기준한 3박의 곡이 분명하니 말이다.<br><br>&nbsp;색다른 점은 슈베르트가 명시한 지시어이다. 슈베르트는 8분의 3박을 사용한 곡에 더하여, 랑잠 (Langsam 느리게), 피아니씨모(Pianissimo = pp =앗주 부드럽게) 라고 지시어를 명시한 것이다. (8분의 3박을 잡아놓고서 이러시니... 하...어렵내...) 이리하여 노래는 전 ㅡ혀 다른 느낌을 준다.<br>슈베르트는 의도적으로 피아노의 선율을 앗주 평범하고 단조롭게 썼다. 피아노가 노래보다 더 튀는 상황을 조금도 허용하지 않은 것이다. 피아노는 레가티시모( Legatissimo 가장 부드럽게 음을 이어서) 로 가야한다. 반주는 살얼음판 위를 걷듯 조심조심 연주하되 음을 끊어지지 않게 연주하라는 얘기다. 반주자는 오른 쪽 페달을 잘 써야할것이다. 달튼 볼드윈(Dalton Baldwin)은 슈베르트의 이 지시어를 너무나도 잘 해냈다. 둘의 조합이라면 따질 것도 없다. 까딱 한끗만 튀어도 슈베르트 선생님께 야단 맞을 것 같지만, 사실 슈베르트 선생님은 성격상 아무 말씀 안하실 분이다.<br><br>이 두 가지(지시어와 단순 피아노 선율)의 효과가 가져오는 결과는 어떠한 것인가.솔로에게 모든 책임을 죄다 넘겨버린 꼴이 되었다. 삑사리나면 솔로가 독박을 쓰는 구조인 것이다. 살금 살금 걷는 피아노가 삑사리 낼게 뭐가 있겠는가. 설사 피아노가 삑사리를 낸다 한들 청자들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살금거리는데 뭐...<br><br> 슈베르트는 주변을 단순화시키고, 렌즈의 포커스를 노래에 맞추어 돗보이도록 한 것인데, 이것이 솔로에게는 되려 부담이다.그리하여 노래를 부르기가 훨씬 더 어려워졌고, 솔로는 우아하면서도 부드러우며, 그대의 안식을 고스란히 느끼도록 완급 조절이 잘된 완벽한 호흡으로 곡을 리드해야 한다. 슈베르트는 솔로에게, '레가토(legato)를 처음부터 퍼펙트하게 해내라'고 지시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리하여 이 노래는 호흡과 발음이 생명이다. 이 순간 작곡가&nbsp;슈베르트 형님이 甲이 된다. 솔로 乙은 묵묵히 선생님의 지시어를 이행할 뿐.&nbsp;<br><br>이토록 대면하기 어려운 이 노래를 가장 만족스럽게 부른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나로서는 단연 제라르 수제(Gerard Souzay)이다. 이 곡에 관한한 그 잘난 이안 보스트리지도 안된다. (테너에게는 잘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곡이지만 사실 이안보스트리지는 정말 잘 해냈다. 제라르 수제형님을 돗보이게 하려고 한 말이니 패쓰~! 물론 사적인 기준이므로 다양한 견해를 수렴합니다)&nbsp;<br><br><br><br><br>피셔 디스카우(Fischer Dieskau)도 정말 빼어난 레코딩을 남겼기에 이 곡의 전설이나 다름이 없다. 그리고 또 다른 바리톤 브린 터펠(Bryn Terfel)과 마티아스 괴르네(Matthias Goerne)가 아주 좋은 녹음을 남겼다. (이 노래에 관한한 여성 보컬들의 레코딩은 패스한다. 왜냐면, 정말 희안하게도 이 곡을 여성 보컬이 부르면 슈베르트에게서 느낄 수 있는 그 특유의 맛이 안나요 아놔~ ㅠ)&nbsp;<br><br>제라르 수제(1918~2004)는 프랑스 태생의 바리톤이다. 프랑스 가곡의 스페셜리스트인 그는 프랑스 가곡에 관한한 제 1인자로 불린다. 누군가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도 말한다. 그러나 뭐 프랑스인이 프랑스 가곡을 잘 부르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프랑스인이 미성의 유려함으로 슈베르트의 독일 리트를 정녕 아름답게 빛내고 있을 때가 놀라운 것이지 말입니다. 프랑스어 가곡의 목숨줄이 리듬과 뉘앙스에 있다면, 독일 리트의 목숨줄은 딕션에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라르 수제는 이 두 가지를 모두 퍼펙트하게 해낸 인물이다.&nbsp;<br><br>화려하지 않으며 부드럽고 절제된 발성, 지극히 세련된 독일어 강세 조절의 마술사가 표현해내는 딕션, 그의 리트 딕션은 독일어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다. 그리하여 제라르 수제의 보컬은 심금을 파르르 울리는 마성과도 같다. 독일 리트를 이토록 격조있게 부른 외국인이 또 있을까. 동시대의 또 다른 독일 산맥 바리톤 피셔 디스카우가 몇 살 위의 제라르 수제 형님이 부르는 리트를 최고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이다.<br>슈베르트 형님이 제라르 수제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해 했을까... 아니, 내곡이 이런 곡이란 말인가? 하며 전율했을지도 모른다.<br>생각만해도 가슴 저미어 시려 온다.아...나의 경애하는 슈베르트여...!!!<br><br>Bryn Terfel도 이 멋진 노래의 레코딩을 남겼는데, 아주 마음에 든다.&nbsp;<br><br><br><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748/29/cover150/122232927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7482978</link></image></item><item><author>차트랑</author><category>횡설 수설...</category><title>루치아 퐆, Porgi Amor </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6104135/17199877</link><pubDate>Mon, 06 Apr 2026 12:5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6104135/17199877</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C962738768&TPaperId=1719987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07/15/coveroff/9950967929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C272737211&TPaperId=1719987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3/9/coveroff/2472436279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피가로의 결혼 2막<br><br>  <br><br><br><br><br><br><br><br><br><br>The Very Best of Lucia Popp(위의 왼쪽 음반)은 루치아 퐆의 정수가 담긴 음반이다.<br>Song To The MoonSolveig's SongSolveig's Cradle Somg 등은 한 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노래들이다.사적인 생각이지만 해당 곡의 역사를 쓴 노래라고 생각하고 있다.&nbsp;&nbsp;물론 그 외에도 어느 곡 하나 실망스러운 것이 없다.루치아 퐆은 정녕 벨칸토의 교과서이자 대가이다.&nbsp;<br><br>(Rosina)<br>Porgi, amor, qualche ristoro,<br>사랑의 신이시여,제게 위로를 주소서<br>Al mio duolo, a'miei sospir!<br>저의 고통, 저의 탄식을 생각하시어<br>O mi rendi il mio tesoro,<br>저에게 저의 보물(남편의 마음)을 되돌려주소서,<br>O mi lascia almen morir.<br>신이시여,&nbsp;그러지 않으시려거든 차라리,저를 죽게하소서.<br>(번역은 내맘대로)<br><br><br><br><br>중년의 백작부인 로시나가 괴로워하며 사랑의 신에게 노래한다.&nbsp;노래는 간절하며 여인의 짖은 슬픔이 배어있다.남편인 알마비바가 젊은 여인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있기때문이다.이 노래는 그러므로 로시나의 복잡한 감정을 표현해야 한다.&nbsp;실망, 슬픔, 간절함, 배신감, 갈망, 이 모든 것을 느낄 수 있도록...<br><br>루치아 퐆 (Lucia Popp)의 노래는 이음새가 없다. 노래의 마디가 느껴질 듯도 한데도 말이다. 벨칸토(Bel Canto)는 횡경막을 이용한 복식 호흡을 쓴다고 한다. 레가토(Legato)는 필수인데 루치아 폽은 벨칸토의 정통 교과서를 시전하고 있다. 듣고 들어도 또 듣고 싶어지는 이유가 될듯하다. &nbsp;이런 면에서 대한민국의 박혜상은 루치아 퐆의 향기를 담은 소프라노이다. 조만간 루치아 퐆과 어깨를 나란히 하시길....<br>(Legato ㅡ고저음을 오가며 소리가 끊어지지 않게 부르되 부드러우면서도 탄력있는 음을 내야 함. 마디의 이음새를 느낄 수 없도록...)<br><br>위 형식의 노래를 카바티나(Cavatina) 라고 한다. 카바티나는 독창으로 2절 없이, 즉 가사와 음을 반복하지 않고, 짧게 처리하는 특징을 가진다.<br>노래의 속도는 느리고, 매우 서정적인 감정을 표현한다. 카바티나는 변주가 없어 짧은 덕분에 듣고 나면 아쉬움을 뒤에 남겨두고 가는 묘한 매력을 가진 노래이다.<br>카바티나는 아리아라고는 하지만 아리아의 형님뻘이라고 보면 된다.<br style="font-family: "><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3/9/cover150/247243627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30991</link></image></item><item><author>차트랑</author><category>횡설 수설...</category><title>산노을, 박판길 선생, 실력을 뽑내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6104135/17176658</link><pubDate>Fri, 27 Mar 2026 09:5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6104135/17176658</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C572736494&TPaperId=1717665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76/97/coveroff/9036441528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C262937738&TPaperId=1717665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2178/15/coveroff/d252937738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22533858&TPaperId=1717665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6477/63/coveroff/k022533858_2.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우리의 가곡 '산노을'은 유경환(1936~2007) 선생의 詩에 박판길(1929~1998) 선생이 曲을 입혔다고 한다.<br>&nbsp;'산노을'은 가곡으로서는 보기 드문 4분의 5박을 특징으로 한다. 5박은 흔히 '강ㅡ약ㅡ약, 중강ㅡ약' 혹은 '강ㅡ약, 중강ㅡ약ㅡ약'의 셈여림을 쓴다. 셈여림을 3ㅡ2, 2ㅡ3 중 어느 것을 쓰든 첫 음은 강하게 들어간다. 그리하여 첫 소절 '먼~ 산을' 의 '먼'의 음을 강하게 시작했다.&nbsp;<br><br> 4/4, 3/4 박은 대부분 익숙한 박자인데다가 부르기에도 까다롭지 않기 때문에 노래방에서도 인기가 있는 박 일 것이다. 반면, 5박은 4박보다 리듬을 타기가 훨씬 까다로운 편이다. 불규칙한 강세, 2박과 3박의 결합으로 음에 경쾌한 효과를 내기도 하지만, 불규칙함이 혼재하기에 긴장감이 필요한 음악을 작곡할 때 곧잘 4분의 5박을 사용한다. 그리하여 4분의 5박은 좀더 자유로운 현대음악에 더 적합하며 재즈, 영화음악, 뮤지컬에서 흔히 사용한다.<br><br>다시 말해 4분의 5박은 그 특성상 가곡에서&nbsp;&nbsp;발견하기가 쉽지 않은 구조인 것이 맞다. 그럼에도 박판길 선생은 우리 가곡 '산노을'에 5/4 박을 사용했다. 그리하여 5/4박의 특성을 살려내고 싶었는가 싶지만, 박판길 선생은 악보에 이렇게 썼다, "Lento melancoliamente, 느리고 우울하게" 라고. 하... 왠지, 무언가 앞뒤가 서로 잘 조합된 것 같지가 않다. 5/4 본연의 경쾌함을 지워낸 지시어이니 말이다.<br><br>글은 작가 맘대로 쓰는 것이 맞고, 작곡은 작곡가 맘대로 쓰는 것이 맞지만, 산노을의 경우는 마냥 쉽지가 않다. 본디 경쾌 스타일이자 재즈 풍의 박 에다가 서정성을 담아내서는 멜랑꼴리 삘을 표현하여 노래하라는 매우 복잡한 주문을 했으니 말이다. 가곡은 레가토(Legato 고ㆍ저음을 끊어지지 않고 유려하게 연결하는 보컬 사용법) 처리를 필수로 해야 하기 때문에 곡의 호흡 처리가 난해하다. 이리하여 '산노을'이 충분히 어려워졌다.<br><br><br><br>그런데 작곡가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한 발 더 앞으로 나갔다. 음표들의 낙차 폭을 크게 썼다. 저음과 고음의 간극이 크다. 5/4 박 살림, 서정성과 멜랑꼴리, 레가토로 큰 낙차의 고저 넘나들기, '산노을'은 이렇게 3중고의 노래가 되어버렸다.&nbsp;&nbsp;나아가 작곡가 박판길 선생은 가곡의 첫 마디를 놉게 잡았고 서서히 음표의 위치를 2 옥타브까지 끌어올렸다. 테너로 하여금 2옥타브&nbsp; '파ㆍ 솔'의 마성을 시전하도록 곡을 쓴 것이다. 바로 아래 악보에 색칠한 부분이다.<br><br><br>[[[ 산노을의 가장 가장 높은 음이 있는 부분 ]]]&nbsp;왔 던 봉 우 리 물 러 서 (고)<br>파 파 파 솔 파 미 파 미&nbsp; &nbsp; &nbsp;&nbsp;&nbsp; &nbsp; &nbsp;<br><br><br><br>이 곡을 부르는 테너는 'High C' 에 도달하는 능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2옥타브 '파'와 '솔'을 무리 없이 넘길 수 있을 것이다. High C는 남성 테너의 꼭대기가 다름 없는 높이다. '3옥타브 도 C5' 또는 '4옥타브 도 C6'의 음역대이니 말이다. 결국 '산노을'은 4중의 파고를 넘어야 한다. 이는 '산노을'의 감상 포인트가 4가지 이상은 된다는 말도 된다. 사실 3옥타브를 넘나드는 것은 성악을 전공하신 분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일 것 이지만, 일반인인 나로서는 너무나도 대단하게 보일 뿐 이다.&nbsp;&nbsp;&nbsp;<br><br>아주 많은 성악가 분들께서 이 멋진 곡 '산노을'을 아주 잘 불렀다. 유투브에서 무료로 이 곡을 듣는다는 것이 미안할 정도로 많은 분들의 다양한 버전을 찾아 노래를 들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많이 듣는 버전은 신영조 선생과 박세원 선생이 부른 버전이다. 이 노래의 어려운 요구 사항들을 아주 잘 수렴한 많은 곡들 중 2가지 버전이다.&nbsp;&nbsp;<br><br>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토록 멋진 우리 가곡의 시대가 저물었다. 전언에 의하면 대한민국의 음악 대학교에서 대접을 받지 못하여 사장되가고 있다고 한다. 어쩐지 음반을 찾기가 어렵다. 원하는 음반을 얻으려면 중고를 구입해야 하는 실정이다. 우리 가곡을 정녕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 마음이 몹시 아프다....<br><br>아~, 박판길 선생이여, 난해하지만 어찌 이리도 멋진 가곡을 만드셨습니까. 그리고 이 난해한 곡을 또 어찌 이리도 잘 부르신단 말입니까.<br>1943년생 신영조 선생은 지난 23년에<br>1949년생 박세원 선생은 지난 24년에<br>이토록 아름다운 레코딩을 남기고 세상을 등지셨다고 합니다.<br>두 분의 명복을 빕니다.<br><br>PS ㅡ High D(3 옥타브 레 D5)는 여성의 영역으로 보는 것이 맞고, High E는 인간의 영역이라기 보다는 현악기의 영역이며 돌고래의 영역이라고 보는 것이 맞지 싶다. (가공의 능력을 보여주는 소프라노가 있기는 하겠지만요)<br>&nbsp;<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6477/63/cover150/k022533858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64776381</link></image></item><item><author>차트랑</author><category>횡설 수설...</category><title>불씨잡변과 그람시의 공백, 그리고 현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6104135/17167398</link><pubDate>Mon, 23 Mar 2026 09:4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6104135/17167398</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22030611&TPaperId=1716739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950/35/coveroff/k022030611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62931650&TPaperId=1716739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4250/9/coveroff/k462931650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22839093&TPaperId=1716739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0191/35/coveroff/k022839093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782636970&TPaperId=1716739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792/36/coveroff/e782636970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5853519&TPaperId=1716739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64/9/coveroff/8975853519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개인적으로는 조선 유학에 호감을 가진 사람은 아니다. 중국의 사서(四書)와 조선 유학을 등가물로 바라보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여기서 유학은 주자학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원전 사서를 뜻한다. 공맹이 가르친 유학과 주자학 그리고 조선 유학은 질적으로 서로 아주 많이 다르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유학의 학문적 순수함이 조선으로 들어와 심하게 오염되었다고 생각하는 일인이다. 특히 조선 후기에 이르러 집권 세력의 유학론은 유학이기를 스스로 거부했다고 본다.&nbsp;<br>유학(주자학)은 고려 말에 들어왔지만 이 땅에 조선이 들어서며 그 꽃을 피우기 시작했는데 기점은 '불씨잡변'이라 할 수 있다. 불교가 국교였던 불교의 나라 고려는 당시 모든 것이 썩어 있었다. 고려 말 관료들의 부패가 극에 달했다. 문벌 귀족과 권문 세족들의 사고가 썩어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보살펴야 할 백성들의 삶은 너무 나도 고단했다.&nbsp;<br><br>백성들을 수탈하여 이익을 추구하는 이익집단이 바로 관료들이었고 기득권이었다. 당시의 '토지 제도'와 '수취 제도'는 백성들을 굶주림과 죽음으로 내몰았다. 교과서는 고려 후기의 이 상황을 '권문 세족의 토지 겸병과 수취 체제의 문란은 백성들의 삶을 곤궁하게 했다' 라고 적고 있다. 교과서가 이렇게 표현할 정도면 고려의 기득권들이 백성들을 수탈한 결과 백성들이 실제로 굶어 죽게 했다는 뜻이다.&nbsp;<br><br>불교 또한 기득권을 등에 업고 백성들의 고된 삶을 외면했다. 사찰도 썩을 대로 썩어 있었던 것이다. 즉, 성스러워야 할 불교가 썩어있었고, 붓다의 아름다운 말씀과 실천은 지워져 있었다. 그리하여 철저하게 뿌리까지 부패한 나라 고려, 이러한 고려를 죽는 그 순간까지 지키려 했던 만고의 충신 '포은'을 나는 용서할 수가 없다. 충신이란 주군이 아니라 백성을 위해 죽어야만 진정한 충신인 것이다. 성웅 이순신 장군이 진정한 충신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하여 내게 '목은'과 '포은'은 기득권을 지키려 한 인물이며, 죽어 마땅한 만고의 충신 일 뿐이다. ('목은'과 '포은'을 존경하는 분들께는 미안합니다만, 사관이 다르면 어쩔 수 없습니다 ㅠ)<br><br> 그렇게 썩은 불국(佛國) 고려의 시대가 가고,&nbsp;1392년 새로운 나라 조선이 개국했다. 조선이 개국을 했지만 백성들은 조선의 백성들이 아니라 고려의 백성들 그대로 였다. 엄밀한 의미에서 국호만 바뀐 것이다. 백성들이 살아가는 터전이 바뀐 것도 아니요 생활 방식이 바뀐 것도 아니다. 사실, 백성들의 입장에서는 삶의 질적 변화가 없다면 모든 역사적인 사건들은 중요한 의미를 갖지 못한다. 누가 왕이 되었던, 국호가 무엇이던 백성들은 권력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을 뿐더러 생활 역시 아무런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되려 정권 교체기에 백성들이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더 클 뿐이다.<br><br>조선의 백성들은 정권의 교체와는 무관하게 수백 년 동안 그렇게 해왔듯 붓다의 말씀을 따르고 절에 나갔으며 불교 행사에 참여했다. 즉 조선 백성들의 문화와 사유는 고려 시대의 그것과 동일한 것이었다.&nbsp;<br><br><br>기존의 패러다임에 변화를 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 인지를 신랄하게 꼬집은 사람은 '토마스 쿤'이다. 그는 '과학 혁명의 구조'에서 모든 꼰대들이 죄다 죽은 다음에나 패러다임에 변화를 줄 수 있다고 썼다. 패러다임을 변화시킨다는 것이 그토록 어려운 것이다. 토마스 쿤의 지적은 기득권의 꼰대들이 얼마나 징그럽도록 집요한 기득권 인지를 묘사하는 하나의 예일 뿐이다.&nbsp;또한 조광조의 죽음은 '훈구'를 상대로한 '위훈 삭제'가 원인이기도 하겠지만 '소격서'의 폐지라는 결정타가 뒤를 이었기 때문이다. 소격서는 도교식 기복을 담당했던 주요 관청이었다. 나아가, 오죽했으면 억불 숭유를 천명하고도 세종은 한글을 널리 알리고 정권의 정통성을 드러내기 위해 저술을 명한 책이 '월인청강지곡' 과 '석보상절'이었겠는가. 불교는 그만큼 백성들의 뼛속 깊이 자리잡은 일종의 헤게모니였던 것이다. 결국 그런 백성들에게 세종이 다가가는 유일한 방법은 유교가 아닌 조선이 금지했던 불교일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헤게모니의 변화는 이토록 어려운 것이다.<br><br>사실 새로운 집단이나 국가가 과거의 헤게모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정치를 하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조선의 신하들이 불교를 탄압하도록 왕에게 끊임없는 압박을 가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과거와의 이념적 단절과 새로운 헤게모니의 도입이 빠르면 빠를 수록 사회가 안정감을 찾고 격변에서 멀어질 수 있다. 나아가 사회의 안정은 지배 세력의 안정을 뜻하기도 한다.<br>다시 말해 새로운 나라 조선에서 고려 시대의 생활 방식과 이념을&nbsp; 변화 대체하지 않는다면 권력의 공백을 고스란히 겪어야 한다. 이는 지도자의 권위를 상실시킬 뿐 아니라 권력을 불안하게 하고 사회를 불안하게 하는 주 원인이 된다. 사회 혹은 국가가 방향성을 잃는다면 국가 질서가 표류하게 된다. 일이 이렇게 되면 최악의 국가가 되는 것은 시간 문제이다. 결국 치안도 국방도 모두 무너지는 불행한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nbsp;<br><br><br><br>[[[ 이념적 헤게모니의 공백 ]]]&nbsp;<br><br> 낡은 것은 죽어가는데도 새로운 것은 아직 탄생하지 않았다는 사실 속에 위기가 존재한다. 바로 이 공백 기간이야말로 다양한 병적 징후들이 출현하는 때다.ㅡ안토니오 그람시<br><br><br>'옥중 수고'라 불리는 저술에서 안토니오 그람시는 권력의 교체기를 이념적 방향을 새롭게 잡아 나아가야 할 시기라고 봤다. 이를 두고&nbsp; '이념적 헤게모니의 공백'이라고도 하고, '그람시의 공백'이라고도 한다.&nbsp;어느 사회든 기존의 권력이 무너지면 이를 대체하는 새로운 이념이 그 사회를 이끌어야 한다. 적절한 시점에서 적절한 이데올로기가 방향을 제시해주어야만 사회가 안정을 찾을 수 있다.&nbsp;그 공백이 길어지면 정치 사회적인 불안 요인들이 발생한다. 예를 들면 파시즘의 탄생, 군부 쿠데타, 독재자의 등장, 군소 권력들 간의 충돌, 내전 등이다. 그러므로 권력의 공백 기간이 길어지면 사회는 급격하게 불안해진다.<br><br><br>삼봉 선생은&nbsp;1398년, 태조 7년에 '불씨 잡변'을 썼다. 조선이 개국하고 7년 째가 되던 해인 것이다. 수백년 간 고려를 지배해온 불교 이념들을 조목조목 따져가며 태클을 걸었다. 이론적으로 처절하게 비판했던 것이다. 삼봉은 불교의 윤회설을 시작으로 인과 응보설, 심성론, 자비론, 지옥론, 선학론(禪學論)등을 철저하게 공격했다. 정삼봉이 살았던 시대를 고려해보면 이론에 능통한 삼봉은 사냥개 블러드 하운드나 다름이 없었다. 사실 삼봉의 이러한 시선은 현대인들에게도 여전히 해당하는 문제 제기 라는 점이 흥미롭다. 그런데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 책의 저술 시기이다. 저술 시기로 보아 조선 개국의 주역인 삼봉은 '그람시의 공백'을 미처 생각지 못했던 듯 하다. 저술이 개국 후 7년이 지난 시점이니 말이다.<br><br><br>[[[ 불씨 잡변의 목차이다. 심봉은 불교의 이념을 조목 조목 따져가며 심판대 위에 올렸다. ]]]&nbsp;&nbsp;<br>만약 헤게모니의 공백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미리 알고 있었더라면 삼봉 선생은 이 중요한 불씨 잡변을 개국 이전에 준비했어야 했다. 아니면 적어도 7년 씩 이나 걸리지는 말았어야 했다. 그는 일찌기 고려를 끝내고 조선을 열기로 작정한 개혁가였고 조선의 모든 설계자 였으니 말이다. 저술 시기로 보아 새로운 헤게모니의 필요성을 개국 이후에 느꼈던 것으로 보는 것은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지만 그람시는 사유를 했고, 이를 실천한 사람은 정삼봉이었던 것이다. 어째거나 내게 진정한 개혁가는 조정암이라기 보다는 정삼봉 선생이다.<br><br><br>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지만 후학들의 노력으로 유학을 대변하는 '관혼상제'가 빠르게 조선에 자리잡았다. 유학의 헤게모니가 조선에 안착한 것이다. 이는 삼봉 선생이 불씨잡변으로 불교의 이념을 무너트리고 유학이 자리 잡도록 방향을 잡아준 덕분일 것이다. 또한 조선 백성들의 유연한 사고가 기여한 바가 크다고 보는 입장이다. 불교, 기독교, 도교, 전통 신앙이 함께 잘 어우러지는 사회가 조선이었다. 현재도 마찬가지다. 이런 사회, 아니 이런 국가가 또 없다. 다양한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되 종교간의 갈등이 없는 나라, 신의 이름으로 전쟁을 해본 역사가 없는 나라, 바로 조선이 그랬다. 오히려 나라를 구할 때는 모든 종교가 힘을 합쳐 하나가 된 나라. 3.1 기미 독립 선언은 그렇게 모든 종교 단체가 힘을 모아 완성된 것이었다. 이는 오로지 백성들의 너그러운 마음과 여유에서 오는 관대함의 발로 일 것이다. 타자를 존중하는 그 아름다움 말이다. 거룩한 대한민국 국민들이여, 정녕코 만세!!<br><br>사실 삼봉은 불교를 공격하려고 의도한 것 이라기보다는 국가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불씨 잡변을 저술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 방편으로 고려의 이념이었던 불교에 태클을 걸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경기 중 손흥민에게 태클을 거는 것은 손흥민이 미워서가 아니라 경기이기 때문이다. 사적으로는 얼마든지 친구가 아니겠는가. 나는 붓다를 경애하고 존경하며 마음의 스승으로 삼고 있지만, 고려의 썩어버린 현실을 개탄하며 백성들과 국가를 위한 충정어린 마음으로 불씨 잡변을 쓴 정삼봉에게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삼봉의 드높은 정신이여, 경탄합니다!&nbsp;<br><br>관혼상제는 다들 아시다시피 관례, 혼례, 상례, 제례를 뜻한다. 유학은 관혼상제로 시작하여 그것으로 끝을 맺는다. 이중에서 가장 먼저 사라진 것은 '관례'이다. 현대는 '제례' 마저도 거의 사라져가는 시대이다. 현재 제대로 살아있는 유학의 상징물은 '혼례'와 '상례'이다. 상례도 이제는 그 절차를 점점 간소화하는 추세이고 혼례도 그 규모를 작게 가지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과거에 행했던 약혼도 사라졌고, 예물, 예단, 혼수 등의 내용들도 거의 사라졌다. 스몰웨딩의 풍토가 곧 자리를 대체할 듯 하다. 이는 시대의 요구에 응하는 자연스러운 헤게모니 현상이다.<br><br> 나아가 과거의 국제 경제 이념의 흐름을 간단하게 살펴보면, 중세의 '중상주의' 이념이 애덤 스미스의 탄생과 더불어 '자유 시장 경제'로, 이는 대공항으로 끝을 맺고 새로운 '보호무역' 혹은 케인즈의 탄생으로 생겨난 '정부 개입 또는 뉴딜' 이라는 이념에 자리를 내주었다가, 다시 '신자유주의', 그리고 1995년 WTO의 출현으로 '세계화' 라는 헤게모니의 변천사를 써냈다. '세계화'는 미국에게 막대한 부채를 일으키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았고 현재는 그 종말에 이르렀다. 문제는&nbsp; '세계화'를 대체할 헤게모니의 공백 상태라는 점이다. 그람시가 말했던 그 '공백' 말이다.&nbsp;<br>또한 현재는 금융 자본주의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한 시대이다. 새로운 헤게모니의 출현을 요구한 것은 아마도 2008 미국발 금융위기가 그 시작점 일 것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탈중앙화의 거대 물결이 밀려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는 이를 외면하는 듯 보인다. 지폐는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 화폐가 등장한지 오래다. 현금을 언제 써봤는지, 은행에는 언제 가봤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조만간 은행의 각 지점들이 거리에서 사라질 것이다. 또한 AI 시대가 이미 도래했고 그 추세는 가파르게 상승할 것이다. 어쩌면 곧 코인과 토큰의 시대를 맞이할 지도 모른다.&nbsp;<br><br>이미 대한민국 무역 결재 금액의 10%가 스테이블 코인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실제 수치는 추정치보다 늘 높기 마련이다. 추정치가 맞다 하더라도 최소 국내 무역량의 10%는 이미 탈중앙화 되었다는 뜻이다. 자국 통화가 불안한 국가들일수록 스테이블 코인 의존도는 훨씬 더 높아진다. 탈중앙화의 비율이 높다는 뜻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대한민국은 아직 자국 통화가 힘을 발휘하고 있기에 오히려 새로운 헤게모니에 둔감한 듯 보인다. 과연 대한민국의 통화가 언제까지 그 생명을 이어갈지 모르겠다. 이미 카운트 다운에 들어간 것은 아닐까...&nbsp;<br><br> &nbsp;알렉스 카프의 '기술 공화국 선언'은 이 모든 것을 명확하게 장담하고 있다. 기존의 모든 질서와 이데올로기는 변화해야 할 시점을 맞이한 것이다. (알렉스 카프의 주장이 옳다거나 그르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개인 적으로는 알렉스 카프의 주장은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그의 견해와 주장에 결단코 찬성 할 수 없다.) 세계는 아직 새로운 방향이 온전하게 그리고 명확하게 설정되지 않은 상태이다. 아직은 권력 헤게모니의 공백기인 것이다.&nbsp;<br><br>현재, 전 세계가 매우 불안해 하고 있다. 안정성이 현저하게 떨어진 상태인 것이다. 그리하여 트럼프가 새로운 파시즘을 휘두르고 있다. 힘 있는 깡패가 설쳐대는 이유는 치안이 불안하다는 증거이자 헤게모니의 공백기라는 증거이기도 하다. 트럼프라는 깡패로 인해 전 세계가 모두 피해를 입고 있다. 전 세계의 질서가 불안하며 새로운 질서 유지를 위한 공백을 메꾸어줄 그 무엇인가를 요망하는 세계, 지금이 딱 그 시점은 아닐까 한다. 과연 새로운 권력 헤게모니는 어떤 형태의 것이 될 것인가.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야 할 시기가 아주 가까이 닥쳐온듯 한데 말이다....<br><br><br style="font-family: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64/9/cover150/897585351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640949</link></image></item><item><author>차트랑</author><category>횡설 수설...</category><title>세레나데, 슈베르트</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6104135/17155219</link><pubDate>Tue, 17 Mar 2026 08:4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6104135/17155219</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12635054&TPaperId=1715521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0343/23/coveroff/k712635054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서양 음악 용어인 '세레나데 Serenade' 혹은 '녹턴 Nocturne'이라는 말을 모르는 분들은 없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익숙한 용어이지 싶다.&nbsp;<br> '세레나데'는 우리 시간 기준으로 술시, 즉 저녁 7~9시 사이에 가정에서 연주하던 음악으로 우리 나라는 이를 소야곡(小夜曲)이라고 번역했다. 세레나데의 근원지인 이탈리아에서는 밤이 깃든 시간에 마음에 드는 이성의 집 창문 아래에서 노래를 불러 자신의 마음을 전달했는데, 이를 'Serenata' 라고 했다고 한다. 이탈리아에서는 창문 아래의 연가 였겠지만 이것이 독일, 프랑스 등으로 전이되면서 저녁 시간에 식구들이나 지인들이 함께 모여 음악을 연주하며 즐기는 형태로 확대되었다. 요즘 같으면 퇴근하면서 동료들과 포차에서 한 잔 하고 귀가하던지, 가족과 외식을 할 수도 있는 일이겠지만, 당시에는 그런 환경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잠들기 전 저녁에 시간을 보내는 방법 중 하나가 음악을 함께 즐기는 것이었다.&nbsp;<br><br><br><br><br>[[[ 테너 황현한이 노래를 아주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주 마음에 든다 ]]]&nbsp; &nbsp; &nbsp;&nbsp;<br><br>식구들끼리 혹은 지인들끼리의 연주이고, 초저녁의 소야곡인 만큼 약간은 조용하고 아주 심각하거나 무겁지 않은 음악이 주를 이루었다. 낭만적 이면서도 부드러운 음악의 형태였던 것이다. 저녁이 오고 조용한 어둠이 깔리면 이 곳 저 곳에서 아름답고 부드러우며 사랑스런 노래와 음악이 흘러나왔다. 세레나데의 시간이 온 것이다.독일의 세레나데로는 슈베르트의&nbsp; 슈텐헨(Ständchen)이&nbsp;아주 널리 알려져 있다.&nbsp;<br><br><br><br>[[[ 대중 가수 나나무스꾸리도 이 노래를 불렀다. ]]]&nbsp; &nbsp;<br><br>이 곡은 슈베르트가 1828년 작곡한 '백조의 노래' 라는 가곡집의 4번째 곡이다. 그런데 1828년은 슈베르트가 바로 세상을 등진 해였다. 이 곡을 쓸 때는 이미 그의 병이 깊어진 후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 노래의 슬픔은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데서 오는 것 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내게도 이 곡이 주는 애절함과 깊은 슬픔을 생각하면, 단지 사랑하는 이성에게 주는 곡이라고만 생각할 수는 없는 이유이다.&nbsp;<br><br><br><br>[[[ 로스트로포비치의 제자이자 장한나의 스승, 첼로의 거장 미샤마이스키도 연주를 했다 ]]]<br><br>너무나도 아깝고 아까운 이여!그리고, 사랑하는 슈베르트여, 안녕!<br><br>Shubert Ständchen<br>(가사와 해석은 인터넷에서 가져왔습니다)<br>Leise flehen meine Lieder<br>Durch die Nacht zu Dir;<br>In den stillen Hain hernieder,<br>Liebchen, komm’ zu mir!<br>나의 노래가 밤을 가로질러 당신에게 조용히 간청합니다.<br>고요한 숲 아래로 내려와 주세요,&nbsp;사랑하는 이여, 내게 와 주세요!<br><br><br>Flüsternd schlanke Wipfel rauschen<br>In des Mondes Licht;<br>Des Verräters feindlich Lauschen<br>Fürchte, Holde, nicht.<br>속삭이며 가느다란 나뭇가지가 달빛 속에서 살랑거립니다.<br>배신자의 적대적인 엿듣기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사랑하는 이여.<br><br><br>Hörst du die Nachtigallen schlagen?<br>Ah! sie flehen Dich,<br>Mit der Töne süssen Klagen<br>Flehen sie für mich.밤꾀꼬리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리나요?<br>아! 그들은 달콤한 탄식의 소리로 당신께 간청합니다.<br>그들은 나를 위해 간청합니다.<br>Sie verstehn des Busens Sehnen,<br>Kennen Liebesschmerz,<br>Rühren mit den Silbertönen<br>Jedes weiche Herz.<br>그들은 갈망하는 마음을 이해하고&nbsp;사랑의 고통을 아는 모든 부드러운 마음을&nbsp;은빛 같은 소리로 흔들어 깨웁니다.<br>Lass auch Dir die Brust bewegen,<br>Liebchen, höre mich!<br>Bebend harr’ ich Dir entgegen!<br>Komm’, beglücke mich!<br>당신의 가슴도 움직이게 하세요,&nbsp;사랑하는 이여, 제 말을 들어 주세요!<br>떨림 속에 그대를 기다리고 있어요.<br>어서 와요, 나를 기쁘게 해 주세요!<br><br style="font-family: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0343/23/cover150/k71263505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03432389</link></image></item><item><author>차트랑</author><category>횡설 수설...</category><title>칼 포퍼, 난공불락의 성(城), 플라톤을 공성(攻城)하다 - [열린사회와 그 적들 I - 개정판]</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6104135/17153262</link><pubDate>Mon, 16 Mar 2026 09:1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6104135/1715326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16174&TPaperId=1715326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64/83/coveroff/8937416174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16174&TPaperId=1715326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열린사회와 그 적들 I - 개정판</a><br/>칼 포퍼 지음, 이한구 옮김 / 민음사 / 2006년 04월<br/></td></tr></table><br/><br>리뷰의 변<br>이 책 '열린사회와 그 적들 (The Open Society and Its Enemies) '을 읽고 감히 리뷰를 쓴다는 것은 나의 능력으로 보아 벅찬 일이 아닐 수 없다. 칼 포퍼의 저술이 난이도가 있을 뿐 아니라 서양 철학의 神급인 플라톤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첫 쪽부터 끝까지 어느 한 쪽도 무심코 읽을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다. 적지 않은 분량의 책이지만 한 문장 한 문장이 귀하고 소중하며 너무나도 알차다. 하여 철학에 약한 내게는 강한 집중력을 요구했다. 자주, 다시 읽기를 반복한 이유이다. 내게 다행인 것은 책의 절반은 각주라는 사실이다. 나아가 나의 능력이 모자라 리뷰의 첫 문장을 시작하기가 아주 고민스러운 책이었다. 불구하고 리뷰를 쓰기로 하는 것은 이 책을 한 사람이라도 더 읽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다. 그리고 부제인 'The Spell of Plato'를 역자는 '플라톤의 주.문.'으로 번역했지만 나는 '플라톤의 주.술.'정도로 해석하고 싶다. 만약 내가 역자였다면 분명 'spell'을 '주술'로 번역했을 것이다.<br><br><br>리뷰 ( I )<br>유태계 오스트리아 사람인 칼 포퍼의 소개 글은 "1937년 부터는 나치의 탄압을 피해 뉴질랜드로 망명했으며..." 라고 쓰고 있다. 칼 포퍼는 서문에 쓰기를 " 이 책을 쓰겠다는 최종 결단을 내린 것은&nbsp;1938년 3월 히틀러의 오스트리아 침공 소식을 듣던 날이었다." (p. xii) 라고 했다.칼 포퍼가 이 책을 쓰게된 동기가 확실해졌다.<br>나치의 탄압을 받던 그가 조국을 침탈 당하자&nbsp; 부아가 치민 칼 포퍼는 '과연 전체주의의 근간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진 것이다. 저술의 이 곳 저 곳에서 칼 포퍼의 날카로워진 신경과 거칠어진 숨결을 느낄 수 있다. 냉정함과 침착함을 잃지 않으려고 애쓴 흔적이 보이지만 확실히 칼 포퍼는 히틀러로 인해 열 받으셨다.<br><br><br>역사주의의 급진적 발전은 헤라클레이토스로부터 시작한다. "같은 강물에 몸을 두 번 담글 수 없다"는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은&nbsp; '모든 것은 생성ㆍ변화한다' 라는 긍정적 철학 사유의 결과물이 아니었다. 알고 보니 기득귄의 질서 유지를 위한 싸움에서 패배하자 그가 환멸을 느끼며 뱉어낸 말 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약 100년이 지난 후 플라톤의 탄생은 서양 철학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플라톤이 역사 주의를 절정에 다다르게 했기 때문이다. 읽는 내내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가 사유했던 민주주의의 흔적이 거의 보이지 않는 다는 점은 다소 놀라운 부분이었다. 오히려 그는 민주주의를 혐오했던듯 보인다.<br><br>플라톤을 서양 철학의 근간이라고 봐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는 서양 철학자들에게는 정신적 지주이자 배후가 되어주는 인물이다. 마치 인간 심리를 다루는 분들이 프로이트를 신성시 하듯, 서양 철학의 세계에서 거의 신급으로 추앙받고 있는 인물이 플라톤이다. 이런 점에서 플라톤은 카르텔의 구심점이며 서양 철학을 대표하는 난공불락의 성(城) 과도 같다. 플라톤을 난공불락의 성이라고 함은 자체 약점이 없어서라기 보다는 쉴드치며 감싸고 도는 후학들이 너무나도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br><br><br>그러나 칼 포퍼는 말한다, "정의(正義)에 대한 플라톤적인 이론과 현대의 전체주의적 이론이나 실천이 얼마나 유사한지 혼란을 겪어본 후라야 이런 문제들을 해석하는 것이 얼마나 절박한 일인지를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p.7)&nbsp; 라고. 이는 저술 내용의 표적이 플라톤임을 분명하게 밝힌 문장이다. 한마디로 자신이 가진 총구를 플라톤을 향해 겨누겠다는 선언이다.<br><br><br>사실 난공불락의 요새(要塞)를 무너뜨리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결코 강력한 투석기가 아니다. 투석기는 좋은 방법이기는 하지만 결과를 장담할 수가 없다. 아무도 시도한 적이 없는 진짜 난공불락의 요새, 플라톤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지능적으로 다가가야 한다. 휴민트(humint)를 쓰는 방법이다. 잡입 요원이나 내부 첩자를 활용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비용 절감은 물론 성공 확률도 매우 높다. 다행스럽게도 내부 첩자를 활용하기에는 아주 적합한 구조이다. 그의 수많은 저술들은 일반인들에게까지 널리 알려져 있으니 휴민트에 관해서라면 무방비나 다름이 없다. 다음의 내용은 플라톤이 스스로 키운 하나의 내부자 되어줄 것이다. 첩자다. 언제고 그 주인인 플라톤을 배신할 준비가 되어있으니 말이다.<br><br>"무엇보다 가장 으뜸가는 원칙은 여자든 남자든 아무도 지도자 없이는 안 된다는 것이다. 어느 누구의 마음도 전적으로 자기 스스로 무언가를 하게끔 습관화되어서는 안된다. .....중략....&nbsp; 사소한 일까지도 지휘를 받아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을 때에만 잠자리에 들거나 일어나거나 움직이거나 씻거나 먹거나 해야 할 것이다."&nbsp; ㅡ플라톤의 법률ㅡ<br><br>이쯤되면 이 자체가 휴민트이다. 이 문장은 칼 포퍼가 라이온 킹의 목덜미를 물어 뜯을 수 있게하는 조력자로 손색이 없다. 아니, 어쩌면 맹수 칼 포퍼에게, 물어 뜯을 목덜미가 없는 덩치 큰 코뿔소가 불알을 내어주는 빌미를 제공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닫힌 사회, 전체주의의 씨앗이 되어주었던 플라톤의 저술들은 칼 포퍼에게 닿는 순간, 부메랑이 되어 플라톤 자신에게 되돌아 오기에 충분한 휴민트 요소들을 담고 있다. 위의 내용 만으로도 플라톤의 대중을 상대로 하는 압박과 통제는 히틀러의 그것보다 심하면 심했지 결코 덜하지 않으니 말이다. 플라톤의 이런 주장은 상상할 수도 없는 폭력을 반드시 동반할 것이다!!&nbsp;<br><br><br>칼 포퍼는 '전체주의'를 '닫힌사회'로 규정했다. 그 '닫힌사회'의 정체를 폭로하기위해 그 뿌리를 파헤치니 플라톤과 조우하게 된 것이다. 다음에 해당하는 분들에게 일독을 권해본다.<br>1. 그동안 플라톤을 향해 의심의 눈초리를 던져왔던 분<br>2. 플라톤과 닫힌 사회의 긴밀한 관계를 알고 싶은 분<br>3. 역사 주의 및 정치 철학에 관심이 있는 분<br>4. 특권층의 진정한 속성을 알고 싶은 분<br>5. 위대한 철학자 칼 포퍼를 알고 싶은 분<br><br>플라톤을 사랑하는 분들이라면 마치 나의 연인에게 다른 연인이 생겼다는 말을 들을 때 만큼 커다란 충격에 휩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위의 내용에 해당하는 분이 계시다면 감히 추천드린다. 소설만큼 흥미 진진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왜냐면 플라톤은 칼 포퍼 앞에서 구운 오징어가 되어주니까 말이다. 칼 포퍼가 맛나게 잘 구워준 오징어를 독자들은 자신의 어금니 턱에 약간의 힘을 주어 질겅 질겅 씹어주기만 하면 된다. 칼 포퍼가 구워준 오징어의 맛은? 습도 좋고 두툼하여 식감이 대박인 갑오징어 맛이다. 이 맛은 장담할 수 있다. 솔직히 나는 속이 다 시원했다. 체증이 가라앉는 그 신박함을 느꼈으니까. 평소 나는 플라톤에게 불만이 많았던 것 같다.<br><br><br>리뷰 ( II.)<br>이 책을 읽는데 있어 '역사주의 historicism)'의 개념을 잘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역사주의'는 '전체주의'로 가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칼 포퍼는 p.13~22 에서 친절하게도 '역사주의'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칼 포퍼는 '역사주의'를 유신론적, 자연주의적, 정신적, 경제적, 근대적 역사주의 등으로 분류했다. '역사주의'에 무지했던 나는 이 부분을 여러 번 읽고나서야 제대로 숙지하게 되었고, 이 덕분에 끊임없이 반복 언급되는 '역사주의'로 인해 독서에 어려움을 겪지 않을 수 있었음을 고백하면서 리뷰 2를 시작한다. 흥미롭게도 역사주의를 설명하는 칼 포퍼의 손가락은 모두 플라톤을 가리키고 있다. (역사주의를 잘 아시는 분들께는 너른 양해를 구합니다.)<br><br>"배타적 원리주의, 닫힌 민족주의, 집단 열광주의, 독단적 교조주의 등이 모두 열린 사회의 잠재적 적들이다. 인류의 역사는 닫힌 사회와 열린 사회의 오랜 투쟁 과정이라 할 수 있다."&nbsp; (열린 사회와 그의 적들 1, p.vii)<br><br>"개인보다 국가를 우선할 때 실현될 수 없는 이상은 전체주의로 나타난다." (열린 사회와 그의 적들 2)<br><br>플라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헤라크레이토스의 생각을 살짝 살펴보면, "우리는 서로서로 의사를 소통할 수 있고, 통제할 수 있으며, 견제할 수 있다. ...중략.... 깨어있는 자들은 하나의 공통된 세계를 갖는다. 잠든 자들은 그들의 사적 세계로 빠져든다. .....중략.... 비록 그들이 듣는다 할지라도 귀머거리와 같은 것이다." (p.29)&nbsp;&nbsp;여기서 누가 깨어있는 자이자 선택된 자이며, 또 누가 잠든 자 인지는 보나 마나다. 이런 선민사상은 고스란히 플라톤에게 전이된다.<br><br>또한, 서양인들에게 강렬하면서도 반가운 사유의 근거를 마련해주었다 싶은 헤라클레이토스의 발언을 하나 더 언급해보면, "전쟁은 만물의 아버지요 왕이다. 전쟁은 어떤 자는 주인으로 어떤 자는 노예로 만듦으로서 어떤 자는 신이고 어떤 자는 단순한 인간임을 증명한다. 우리는 전쟁이란 보편적인 것이며, 정의, 즉 소송은 투쟁이며, 모든 것은 투쟁을 통해, 그리고 필연에 의해 발전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p.30) 이다.이 얼마나 끔찍한 발언인가!! 서양의 '대 항해시대'는 서양의 '대 학살과 대 약탈의 시대'라고 생각하고 있는 내게는 짐승들의 본능과 일치하는 명언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적어도 인류에게 있어 '적자생존'이라는 학설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나에게 적자생존의 법칙을 왜 인간에게 적용시켰는지 그 배후를 깨닫게 해준 헤라클레이토스의 명언이 아닐 수 없다. 살인과 약탈은 그들에게 정.의.이다. 타자의 고통을 공감할 수 있겠는가? 트럼프는 분명 서양 사상의 핵심에 있을 것이다. 또한, 플라톤은 이러한 자양분을 먹고 성장한 철인이라는 말로 가름하고 싶다.&nbsp;<br><br>플라톤은 전쟁과 참주정이라는 공포정치를 경험했다. 참주정의 주체들인 삼촌들은 민주주의에 대항하다가 모두 목숨을 잃었다. 더구나 지극히 민주적인 절차에 의하여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는 죽임을 당했다. 플라톤은 스승을 죽음으로 몰아간 민주주의를 혐오했을 것이다.&nbsp;그는 생각했다. 역사에서 작용하는 힘은 우주적인 힘이라고. 그는 완전한 국가를 만들어 부패와 악이 없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생각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국가인가. 서양의 유토피아는 동양의 무릉도원과는 본질적으로 차원이 다르다. 플라톤의 국가관을 뒷 바침하는 사유는 '이데아'였다. 그에게 '이데아'는 변화하여 타락하거나 부패 또는 퇴화하지 않는다. 영원 불변하니까 말이다.<br><br><br>그렇게 플라톤에 의해 '이상 국가'가 탄생한다. 변화와 부패와 악이 없는 국가, 그에게 이런 국가가 최선의 국가이고 완전한 국가였다.<br>완전 불변하는 것에 대한 그의 신념은 플라톤 철학의 엑기스가 되었고, 역사주의 정치는 사회적 기술공학을 활용하여 이데아가 지배하는 유토피아 국가를 완성하는 것이다. 칼 포퍼는 이러한 플라톤의 사유에서 정치철학의 전제주의 방향성을 발견했고, 이를 부서트리고 싶어했던 것이다. (갑자기 알렉스 카프의 '기술공화국 선언'이 떠오른다)&nbsp;<br>독자가 보더라도 플라톤의 이상국가를 실현하기 위해서 반드시 수반할 수 밖에 없는 요인들이 있다. 바로 억제, 통제이다. 칼 포퍼가 직접적인 언급을 하지는 않았지만 이는 지극히 폭력적인 국가이다. 그의 신념은 확고했다. 그러나 잘못된 신념이 가져오는 참담한 결과의 실례들을 특히 대한민국 국민들은 잘 아실 것이다. 대한민국 현대사는 벌써 계엄을 세 번 씩이나 경험하지 않았는가.&nbsp;<br><br>플라톤이 제시한 최선국가의 3계급 구성을 보면, 수호자들, 무장한 보조원이나 군인, 노동계급이다. 이를 압축하면 교육받은 무장 지배계급과 교육이 필요 없는 노예나 짐승 같은 인간, 두 계급으로 나뉜다. 플라톤은 지배 계급이고 나를 비롯한 대다수 대중들은 노동으로 플라톤을 먹여살리다가 병들어 죽거나, 다쳐서 죽거나, 저항하다 사라지는 소모품이며 소유물이다. 체제에 반항하는 무리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득권이 똘똘 뭉치면 걱정할 것이 없다. 노동자들은 기껏해봐야 고깽이겠지만 그들에게는 총과 대포와 땡크가 있지 않은가? 특권층(특수계급)과 비특권층의 차이는 이렇게 뚜렸하다. 나아가 특수계급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순수혈통을 지켜갈 것이다.<br><br>문제는 서양 철학이 이러한 플라톤의 사회이론과 국가론등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왜그랬을까... 자신들의 기득권을 강화시키기에 매우 유용한 이론이다. 타자 혹은 타국을 약탈하고 빼앗아도 자신들에게 합리적인데 못할건 또 뭔가? 표면으로는 매우 신사적이며 매너 좋은 서구인들의 의식구조를 우리가 늘 의식해야 하는 이유이다. 일본과 조선에 총구부터 들이 댔고, 약한 나라들을 점령하여 약탈했던 이유는 매우 단순하다. 국가와 자신들의 이익은 그들에게 최선(最善)이자 그들의 정의(正義)였으니까 (이것이 플라톤의 생각이었다).<br><br>서양의 기득권들이 기뻐했을 플라톤의 정치강령을 보자. "계급을 엄격히 구분한다. 국가의 운명과 지배계급의 운명을 동일시한다. 지배계급은 무기휴대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권리에 있어서 독점권을 갖는다." (p.147). 놀랍지 않은가?&nbsp; 통치 방법에 있어 히틀러도 플라톤에게는 항복해야 할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그보다 훨씬 더 지독한 정치체제이니 말이다. 이것이 플라톤이 말하는 정의(正義)이다.&nbsp;칼 포퍼는 이것을 좌시하지 않았다. 플라톤의 이러한 사유를 전체주의식 정의(正義)라며 힘주어 공격한다. 칼 포퍼는 플라톤이 진정한 정의의 신념을 알지 못했다고 표현했던 것이다.&nbsp;<br><br>플라톤의 '법률'을 잠시 인용해보자. "무정부주의의 모든 흔적들은 모든 사람들의 전생애에서 뿌리째 근절되어야 한다." ( p.173). 이는 우리 민주주의의 이념 속에서 살아가는 모든 개인주의를 박탈하고자 하는 날벼락과도 같은 법률이다. 이정도 수준이면 플라톤은 민주주의와 개성을 혐오했다고 볼 수 있다. 이 대목에서 미쳐버린 독재자 히틀러를 연상하게되는 것은 부당한 일이 아닐 것이다.&nbsp;<br><br>플라톤에게 이 모든 것은 오로지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 (p.233)이다. 철인은 통치하고 나머지는 무조건 따라야 한다. " 국가의 이익을 위해 거짓말을 하고, 그들의 적과 자신들의 국민을 다 속이는 것이 국가 통치자의 일이며, 다른 어느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특권이다" (p.234)<br>플라톤이 말하는 '국가의 이익'은 누구의 이익을 뜻하는 것인가. 통치자 자신, 즉 플라톤의 이익을 뜻하는 것이다.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하던 사람이 혹시 플라톤을 읽었을까....설마 싶지만 왠지 하는 짓이 플라톤의 주장과 일치했다.<br>&nbsp;히틀러는 지극히 민주적인 절차인 투표로 선출되었다. 그런데 이 통치자의 특권을 아무도 건드릴 수 없었다. 되려 동조자와 부역자가 모여들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도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당선이 된다. 그러던 어느 날 그통치자는 대한민국 시민들을 향해 땡크를 들이대며 총을 쏘라고 명령했다. 또 다른 누군가는 근거없는 계엄을 선포하고 살생부를 만들었으며 군대를 보내 국회의원들을 끌어내라고 명령했다. 플라톤은 나라를 망가트리는 이런 결과를 과연 짐작은 했을까? 이 얼마나 순수한 플라톤의 사유던가...<br><br>이쯤에서 칼 포퍼는 열린사회와 닫힌 사회를 등장시킨다. "개개인이 개인적인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사회는 열린사회(the open society)라 부르고자 한다" (p.293). 칼 포퍼의 이 의미는 전체주의의 대척점에 존재하는 개인주의가 존중받는 사회임을 알 수 있다. 반면 닫힌 사회(the closed society)는 원시적 사회이며 국가가 시민활동을 통제하는 사회, 개성을 짖밟는 사회이다. 이는 전체주의의 형태로 나타났다가 사라졌지만 말이다. 일제 강점기가 그랬고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그랬다. 지독한 혐오를 먹고사는 극우 또한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br>저자는 닫힌 사회의 붕괴 요인도 잘 설명하고 있다. 이정도면 스포에 가깝기 때문에 남겨두기로 한다.<br><br>리뷰 (III.)<br>플라톤의 유토피아는 대중들에게는 감옥과 다름이 없다. 플라톤은 자유를 박탈당한 개인의 감정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사람이니까. 읽는 내내 플라톤의 몸에 흐르는 피에서 온기를 느낄 수가 없었다.<br>작게는 진영논리도 전체주의요 크게는 히틀러가 이끌던 나치와 일본 군국주의는 대표적인 전체주의이다. 전체주의의 문제는 모든 자신의 것들은 옳고 모든 타의 것들은 옳지 않다는 태도에 있다. 파시즘은 특히나 도덕, 철학, 윤리, 정의 등은 없다. 플라톤에게도 '현대적 의미의 정의'는 존재하지 않았다. 오로지 관심은 자신들의 이익 뿐이다. 나치의 독일이나 일제의 군국주의도 플라톤의 사유를 꼭 닮아 있다. 흥미롭게도 트럼프의 미국이나 이스라엘 역시도 역사주의에 도취된 전제주의라는 것을 쉽게 깨닫게 된다. 이 모든 전제 정치에 플라톤이 깊이 관여해있다.&nbsp;&nbsp;<br>평소 서양철학의 神과도 같은 플라톤. 그가 저술 현장에 남겨둔, 그러나 철학자들조차 애써 외면해왔던 그의 DNA를 증거물로 칼 포퍼는 플라톤을 열린 사회의 적을 싹 틔운 장본인이라는 것을 천명했다. 이 저술은 그러므로 칼 포퍼를 철학사에 위대한 공적을 남긴 위인이라 평가해도 좋도록 해주었다고 본다. 플라톤 공성전에서 증거와 논리로 승리하여 플라톤이라는 난공불락의 성을 무너트렸으니 말이다. 칼 포퍼, 만세!!<br><br>나아가 칼 포퍼는 루쏘, 콩트, 헤겔, 마르크스 등을 플라톤의 역사주의를 계승한 후학으로 간주한다. 그들에게서 전체주의의 닫힌 세계를 포착한 것이다.&nbsp;그리하여 제 2권은 헤겔과 마르크스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칼을 갈았다고 전해진다. 재판을 기다리는 독자들이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nbsp;재판 부탁드립니다 플리즈~~!!<br><br><br style="font-family: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64/83/cover150/8937416174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648350</link></image></item><item><author>차트랑</author><category>횡설 수설...</category><title>임미정, 종달새 (오류 정정)</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6104135/17149413</link><pubDate>Sat, 14 Mar 2026 08:4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6104135/17149413</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C182738614&TPaperId=1714941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944/93/coveroff/0000317489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 어느 음악의 대 선배님이자 진정한 고수(클래식 태권도 9단)께서 임미정은 동명 이인이라는 정보를 주셨습니다. 피아니스트 임미정씨가 두 분이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던 저는 같은 분이라 생각을 했죠. 그리하여 동영상 속의 연주자 임미정과 알라딘 상품 음반의 임미정을 같은 인물로 오인했던 것입니다. 이에 잘못된 정보를 드린 점 이 글을 이미 읽으신 모든 분들께 깊이 사과드립니다. 종달새를 연주하신 임미정님의 음반을 검색해보니 한 장의 CD가 있네요. 그 음반으로 대체함을 알려드립니다. 그리고 제가 잘못 쓴 글은 그대로 두겠습니다.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늘 반성하고 싶으니까요. 그나저나 대선배님께서 알려주시지 않았더라면 어쩔 뻔 했을지 끔찍하군요. 고수님, 정말 고맙습니다! ]]]&nbsp; &nbsp;<br><br>================================================================================================================<br>당구공이 당구대 위를 흐르는 모습을 보면 그의 구력을 알 수 있고, 그림을 보면 그의 필력을 알 수 있다. 음악은 청각을 통해 감지하는 순간, 그의 내력을 알 수가 있다. 아래는 참새가 어느 방앗간을 지나다가 알게된 피아노 연주이다. 먼저, 이 자리를 빌어, 그 방앗간 주인께 감사드립니다.<br><br><br><br>[[[ 러씨아 고전 음악의 대부 '글린카'의 곡, '종달새'이다. 원래는 가곡이었으나 '발라키레프' 라는 음악가가 피아노 곡으로 편곡했다고 한다. 비교 차원에서 다양한 연주가들의 종달새를 들어봤다. 러씨아의 거장 미하일 플레트네프, 대한민국 애호가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러씨아의 예브게니 키씬, 전설의 라두 루푸, 그냥 믿고 듣는 크리스티안 지메르만 외에도. 팔이 안으로 굽어서 그러나? 임미정의 연주를 가장 좋아하게 되었다. ]]]&nbsp; &nbsp; &nbsp;&nbsp;<br><br><br> &lt;&lt;&lt;&lt; 어느 분께서 피아니스트 임미정씨의 음악을 아주 마음에 들어했다. 나는 임미정에 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그러나 참새는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nbsp;임미정을 검색해 봤다. 내가 임미정을 왜 모르고 있었을까.... 하고 보니 재즈 피아니스트로 더 알려진 인물이었다. 변명이지만 재즈에는 약한지라 미처 알지 못하고 있었던 듯 싶다. 직접 곡을 쓰고 연주를 한다. 만능이시네...하면서 임미정의 연주곡을 들어봤다. &gt;&gt;&gt;&gt;&nbsp;&nbsp;<br>&lt;&lt;&lt;&lt;안의 내용은 고로 저의 오류가 되겠습니다. 역시 하수는 뭐가 달라도 다릅니다. 멀리서 찾을 것 없이 제 스스로를 보면 영락없습니다. 엉성하면서도 엉터리거든요. 고수께서 알려주시지 않으셨다면 저는 영영 모르고 있었을 것입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고수님!! &gt;&gt;&gt;&gt;<br>================================================================================================================<br><br> 사실 말로는 연주를 표현해 낼 길이 없다.세상은 언어로 표현해낼 수 없는 것들이 주를 이룬다. 감각 기관을 통해 들어오는 것들을 언어로&nbsp;표현하려는 순간, 세상의 모든 것들은 그 순수함을 잃고 만다. 그러나 인간은 누군가에게 그 감동을 전달하고 싶어하고, 누군가와 소통을 하고 싶어한다. 그리하여 탄생한 것이 혹여 예술은 아닐런지...언어의 한계를 극복하며 태어나는 것이 음악 혹은 미술은 아닐까...<br>인간은 '언어'라는 소통 수단을 가진 유일한 존재이다. 그것도 모자라 인간은 애초부터 예술 행위를 하기 시작했다. 누가 시켜서 시작한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그냥, 저절로, 자신의 내면에서 밖으로 표출되는 것을 표현해내다 보니 예술이 탄생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술이 무엇인지 모르고, 또 예술론이나 미학을 공부해본 적이 없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지극히 사적인 견해이지만 감동이라는 말로는 부족한&nbsp;임미정의 피아노를 들으며 떠오른 생각이다.<br><br>나아가, 음악을 말하는 능력이 부족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 얼마나 또렷한 종달새던가! 이 종달새는 참종달새다! 임미정의 손가락을 따라 열 마리의 종달새가 흑백 건반 위를 날며 노래한다. 바쁜 길을 가던 사람을 멈춰세우는 임미정의 종달새는 하염 없이 영롱하다.' 라이브라는데, 완벽한 터치를 구현해낸다.&nbsp;임미정의 종달새를 한번만 듣는 사람은 없을 듯 싶다... 이제는 다 커버린, 대한민국의 귀염둥이 였던, 키씬이 연주한 종달새보다 더 좋다.<br><br>하수의 변 -&nbsp;알라딘에서 음악을 게시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은듯 합니다. 고수는 본디 말이 없는 법이지요. 보통 달관의 경지에 오르면 조용히 지켜만 볼 뿐, 말이 없게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진정한 고수들은 이러하지만, 어정쩡한 하수들은 말이 있습니다. 태권도 2단 짜리가 어디가서 곧잘 얻어터지는 이유도 이와 같습니다. 지금의 저 처럼 말이지요. 저와는 달리 태권도 9단은 결코 싸우지 않습니다 ㅠ<br><br style="font-family: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944/93/cover150/000031748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9449344</link></image></item><item><author>차트랑</author><category>횡설 수설...</category><title>봄처녀, 팽재유</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6104135/17145569</link><pubDate>Thu, 12 Mar 2026 10:4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6104135/17145569</guid><description><![CDATA[<br>우리 나라의 가곡(歌曲)은 2가지로 나눌 수 있다.첫 번째는 전통 가곡이다. 검색해보니, 1872년 박효관과 안민영이 대원군의 후원을 받아 가곡원류(歌曲原流)를 편찬했다고 써있다. 박효관은 가객(歌客) 즉, 가수였다고 한다. 국립 국악원 소장본을 기준하면, 가곡원류(歌曲原流)에는 약 865수의 시조 작품이 실려있다고 한다. 이 시조들을 가사로하여 전통 국악의 연주와 함께 불렀던 것이다. 주로 냥반들이 즐겼는데 이를 정가(正歌) 라고도 한다. 노래를 부르는 이를 가객(歌客) 이라하고, 악기를 연주하는 이를 율객(律客) 혹은 금객(琴客)이라 했다고 한다.&nbsp; 이것이 우리의 전통 성악 가곡에 대한 간략한 요약이다.<br><br><br>두 번째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을 통해 들어온 가곡이다. 일제는 강요에 의한 것이었지만 서방과 시기적으로 빠른 교류를 한 탓에 서양 문화를 우리보다 빠르게 받아들였다. 가곡도 그 중 하나이다. 독일은 슈베르트라는 걸출한 인물 덕분에 가곡의 꽃을 피운 나라라고 할 수 있다. 독일 가곡을 리트(Lied)라고 하는데, 이를 일제가 흡수하여 가르쳤다. 당시 음악에 재능이 있었던 홍난파는 일제로 건너가 일본의 대학에서 음악을 수학 했다. 재능이 뛰어났던 홍난파는 도쿄 교항악단 제 1 바이올린 단원을 거치기도 했다. 그의 혈족들은 음악에 큰 재능을 보였다고 써있다.&nbsp;<br><br>[[[ 팽재유 선생이 부른 봄처녀, 팽재유 선생의 봄처녀를 가장 좋아하는 이유는 아래에 적습니다 ]]]<br>&nbsp;그는 귀국하여 교수 및 강사로 활동했고 대한민국의 슈베르트라는 이름을 얻었다. 홍난파는 가곡을 아주 많이 썼는데 그가 김형준의 詩에 곡을 붙인 것은&nbsp;1920년라고 한다. 그리하여 근현대의 우리 가곡이 태어났고, 그렇게 '봉선화'는 한국 가곡의 효시가 되었다.<br><br>학교 음악 시간에 배웠던 안익태, 김동진, 현제명등과 함께 '친일 인명사전'에 올라있는 홍난파, 그리하여 애증을 함께 가진 이름 홍난파, 그는 성불사의 밤, 고향생각, 고향의 봄등 가곡은 물론 수도 없는 동요를 써냈다.<br>또한 아주 많은 이은상의 시에 곡을 입혔는데 대표적인 곡이 바로 '봄처녀'이다. 봄처녀는 단순한 노랫말이 아니라 시조이다 (이은상의 가고파에는 김동진이 곡을 입혔다). 이은상의 시조가 마음에 들었던지 홍난파가 스스로 곡을 붙였다고 한다.<br><br>홍난파의 '봄처녀'를 부른 성악가들이 아주 많다. 심지어 외국인들도 봄처녀를 불렀다. 봄처녀는 확실히 아름답기가 빼어난 곡이다. 그러므로 아주 많은 선택의 여지가 있다. 개인적인 선택은 봄처녀의 빠르기에 있다. 악보로 본다면 봄처녀의 빠르기는 왈츠의 3/4 박 (tempo di valse)이다. 그러나 시대 배경을 담는다면 이보다는 호흡이 좀더 길어도 좋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리하여 나는 호흡을 길게 가진 봄처녀, 테너 팽재유 선생이 부른 봄처녀를 가장 선호한다.<br><br><br>팽재유 선생를 선택하는 또다른 이유가 있다. 팽재유는 봄처녀에서 벨칸토(Bel Canto)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봄처녀를 부르는 팽재유는 벨칸토의 정수라 할만하다. 단연 으뜸이다. 벨칸토는 반드시 레가토(Legato ㅡ저ㆍ고음을 넘나들며 음을 끊어짐 없이 부드럽게 연결하는 발성)가 뒤따라야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다양한 봄처녀 중, 팽재유 선생이 벨칸토를 가장 잘 표현해낸 성악가라고 생각하는 바이다.<br>플라시도 도밍고가 홍혜경과 그리운 금강산을 함께 부르며 보여주는 벨칸토의 정석. 플라시도 도밍고도 울고갈, 아름답고 정녕 우아한 미성으로 청자를 사로잡는 이가 팽재유이다.<br><br>사적으로 봄이 오는 이즘부터 한동안 가장 많이 듣는 우리의 가곡이 바로 봄처녀이다. 혹여 알라딘에 봄처녀를 좋아하는 분이 계시다면 팽재유 선생의 성악으로 들어보심은 어떠실런지....<br><br>추신:&nbsp;[[[ 뜻밖에도 최불암 선생의 부고를 접했다. 온 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행복한 연기자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인생을 스캔들을 없이 깔끔하게 살다가신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부디 영면하소서....근데, 가짜 뉴스 였습니다 ㅠㅠ 아놔~ 가짜 뉴스를 퍼트리는 심리가 너무나도 궁금하자 진짜!! ]]]&nbsp;<br><br><br><br>[[ 최근 알라딘 중고가게에서 구입한 음반이다. 상태가 NM이라고 써있었다. 믿고 구매했다. 상품을 받아보고 정직한 판매자라는 생각을 했다. 정말 마음에 든다. 그나저나 팽재유 선생의 사인이 있는 음반을 내놓은 이 덕분에 사인반을 얻었다. LP는 시디와의 음질 차이는 확연하다. LP로 듣다가 CD로 들으면 금속성 소리가 들려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적응할 때까지 힘들다 ㅠㅠ&nbsp; ]]<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312/pimg_7461041355056526.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46104135/17145569</link></image></item><item><author>차트랑</author><category>횡설 수설...</category><title>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아다지오, 베토벤 피아노 협주 5번 2악장</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6104135/17141685</link><pubDate>Tue, 10 Mar 2026 12:3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6104135/17141685</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42974821&TPaperId=1714168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76/32/coveroff/2602436238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82038248&TPaperId=1714168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294/39/coveroff/k082038248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C532737401&TPaperId=1714168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76/13/coveroff/2172436035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중ㆍ고등학교 과정에서 배우지만 대부분 잊어버리게 되는 것들 중 하나에 음악 용어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물론 잘 기억하고 계신 분들도 있지만 생활 속에서 멀어지면 기억 속에서도 대부분 멀어지기 마련이다.<br><br>다들 아시다시피 아다지오(adagio)는 이탈리아어 음악 용어이다. 검색해보니 아다지오는 '천천히 걷는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안단테(Andante) 보다는 느리고, 라르고(Largo) 보다는 약간 빠른 템포라고 써있다. 물론 들어보면 바로 이거구나 싶다.&nbsp;이 용어는 발레에서도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아주 우아하게 움직이는 동작이나 춤을 뜻하는 발레 용어가 아다지오인 것이다. 음악에서의 아다지오도 정말 정말 아름답고 우아하다. 한마디로 환.타.스.틱.하게 우아하고 판.타.스.틱.하게 아름답다. 아다지오는 각종 협주곡의 2악장에서 가장 흔하게 사용한다. 그래서 아다지오라고 하면 으레 협주곡 2악장이구나 생각한다.&nbsp;<br><br><br><br>[[[ 라두 루푸의 연주를 링크하고 싶었지만 실황 영상이 없다. 차선으로 영상이 있는 연주로는 단연 최고요 으뜸인 엘렌 그리모(Helene Grimaud) 와 파보 예르비(Paavo Jarvi)의 협연이 있다. 아다지오다!&nbsp; 아... 베토벤이여!!&nbsp; 당신을 사랑하고 있는 것은 이 곡 때문은 아닙니다만 어찌하면 곡을 이토록 아름답게 쓸 수가 있단 말입니까....!! 들리지 않는 귀를 하고서 이렇듯 말로는 다 형용할 수 없는 곡을 어찌 써 낼수가 있단 말입니까!!이 연주는 그저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다. 경건하며 성스럽고 성스럽다.&nbsp; 그리하여 사적인 생각으로는 '베토벤은 이런 연주를 원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실황을 이 두 사람이 보여주고 있다. 이 영상을 남겨준 그리모와 예르비에게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br><br> 얼마 전, 라두 루푸(Radu Lupu)가 연주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음반 사진을 보게되었다. 내게있어 이런 조우는 사실 깜짝 놀라운 수준이다. 반가움과 놀라움이 함께하는 순간이다.라두 루푸 선생은&nbsp;1945년에 루마니아에서 태어나&nbsp;2022년 불록(不祿)하셨다. 그는 70년대 콩쿠르 헌터였다. 라두 루푸의 특성은 음악의 내면화에 있다. 그의 내밀한 성격탓인지는 모르겠다. 글렌 굴드가 자신의 연주를 만들어가는 스타일의 연주자 였다면, 라두 루푸는 곡 안으로 파고드는 스타일이었다.<br><br>다시 말해, 글렌 굴드에게 작곡가는 자신을 표현하는 도구였다면 라두 루푸는 작곡가와 무언의 소통을 더 중시했다고 볼 수 있다. 굴드는 자신을 더 드러내고 싶어했고, 라두 루푸는 자신 보다 곡을 더 드러내고 싶어했던 것이다. 이런 라두 루푸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글렌 굴드를 사랑하지 않는 다는 뜻은 아니다. 그는 또 다른 이유로 사랑하고 있으니 말이다. 일단, 굴드 팬님들의 눈치를 아니 볼 수 없음을 고백하는 바이다. 굴드를 언급할 때는 살얼음 판 위를 걷듯 조심 해야한다. 굴드의 팬들은 거의 카르텔이고 엄중하니까)&nbsp;<br><br> 그리하여 라두 루푸의 연주는 음악가에게도 감명을 준다. 라두 루푸는 기교로 말하지 않는다. 화려하게 치장하지도 않는다. 대신 자신 스스로 음악 안으로 들어간다. 청중들을 끌고서 말이다. 청중들도 함께 그 음악 속으로 빠져든다. 그는 자신의 영혼을 통해 음악 본연의 영혼과 청중들의 영혼을 마주한다. 아.... 라두 루푸여....!<br><br>그러나 아쉽게도 라두 루푸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시디를 찾아낼 수가 없다. 15분씩 나누어 2회에 걸쳐서 찾아봤으나 허사였고, 눈이 아프고 두통이 와서 도중에 그만 뒀다. 대체 엇다 둔거지!!! 아놔~! 요즘은 시디로 음악을 듣는 시대가 아니다. 온라인과 이어폰의 시대인 것이다. 그러다보니 시디는 찬밥이고 막 굴러다닌다. 그 결과 각자 시디들의 주소를 잊은지 오래인 것이다. 이제 찬밥인가... 그러나&nbsp;꿩대신 닭이라고 내게는 같은 곡으로 가장 매력적인 짐머만과 번스타인을 찾아냈다.<br><br>피아노 협주곡 5번의 작곡 시기는 1809년이다. 베토벤의 나이 40세였다. 20대 후반부터 청력에 이상이 왔고 40대 중반의 청력은 완전 상실되었다. 40세의 청력은 피아노의 진동으로 작곡을 해야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이런 아다지오를 창조해낸 것이다. 베토벤은 악성이다!<br><br>[[ 시디는 스크래치에 너무나 민감하다. 시디에 때가 뭍어도 함부로 닦아 낼 수가 없다. ]]]<br><br> 아래는 동호회 'go 클래식'으로, 16만명이 모여있는 국내 최대 규모의 고전음악 동호회이다. 연주 정보는 물론 음반, 음악가에 관한 거의 모든 정보를 가지고 있다. 연주에 대한 평가를 알고 싶다면 단연 이곳이다. 고전음악의 입문자부터 최고수까지 죄다 모여있는 유일한 곳이 아닐까 싶다. 혹여 고전 음악에 관심이 있는 분이 계시다면 이곳에서 정보를 찾아 참고할 수가 있다.&nbsp;입문자들이 원하는 정보를 모두 가지고 있는 유일한 곳이다.물론 음반을 판매하는 곳은 아니다. 음반 구매는 알라딘에서!!<br><br><br><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76/13/cover150/217243603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761332</link></image></item><item><author>차트랑</author><category>횡설 수설...</category><title>사과문ㅡ 영면에 드신 국밥집 할머님과 잉크냄새님, 그리고 댓글을 보신 모든 분께</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6104135/17117247</link><pubDate>Fri, 27 Feb 2026 07:5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6104135/17117247</guid><description><![CDATA[<br>먼저 저의 사과문은 엄숙하고 진지한 마음 자세로 임하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br><br>저의 댓글은첫째, 영면에 드신 국밥집 할머니께 예우를 망각한 행위였습니다.<br><br>둘째, 고인께는 애도의 마음을 전해드리고 본인의 슬픈 마음을 글로 쓰신 잉크냄새님께 큰 마음의 상처를 드렸습니다.&nbsp;<br><br>&nbsp;셋째, 잉크냄새님의 글을 애정하시어 찾아주신 알라디너분들께 저의 황당무계한 댓글로 충격을 드렸습니다. 얼마나 당황하셨습니까.&nbsp;<br><br>모든 분들께 깊이 사과드립니다.<br><br>한 번의 상처가 생기면 치유하기까지는 딱지가 앉아야 하고 치유되어 상처가 아문다 한들 그 흉터는 남습니다. 그 흉터를 마주할때마다 옛 상처는 늘 다시 소환이 되겠지요. 저의 경우를 보더라도 제 몸에는 25cm의 수술 자국이 남아 있지만 늘 가려져있어 쉽게 잊습니다. 그보다 작은 것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에 새겨진 흉터는 쉽게 잊혀지지 않는 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있습니다.<br><br>생전에 비록 허물이 있는 삶을 살았다해도 세상을 등진 망자에게는 애도하며 명복을 비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하물며 국밥을 지으시며 배고픈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는 삶을 살다 가신 분께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할머님, 부디 저의 잘못을 용서하시고 영면에 드시옵소서...<br><br>잉크냄새님은 제가 처음 알라딘에 오게 된 때부터 저를 늘 한결같이 응원해주신 고마운 분입니다. 저의 문체가 조신하지 못하여 건방지고 방자한 때에도 아낌 없는 성원을 해주셨지요. 마음 속으로 늘 깊이 감사드리고 있었고 변함없는 일관성에 경의를 드렸으며 깊이 존경해왔습니다. &nbsp;<br><br>그런 분께 저는 지난 저녁, 큰 실망을 넘어 돌이킬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드리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마음이 무겁고 속이 상하셨습니까 잉크냄새님. 저의 &nbsp;큰 잘못에 마음 깊이 사과드립니다. 저의 잘못을 너른 마음으로 용서해주십시요.&nbsp;<br>그리고 잉크냄새님의 서재를 찾아주시어 글을 읽으시다가 저의 당황스러운 댓글에 충격을 드신 모든 분들께 깊이 사과드립니다.<br><br>잉크냄새님께서는 저의 체면을 생각하시어 저의 댓글을 지워주셨습니다. 그리고 저의 잘못이 저의 오독에서 비롯된 것이니 마음쓰지 말라는 글을 주셨습니다. 잉크냄새님께는 정말로 고맙습니다. 제가 가지지 못한 한없이 너른 마음을 가지셨습니다. 이에 깊이 존경과 경의를 드립니다.<br><br>그러나 사실 오독이 아닙니다. 저는 잉크냄새님이 쓰신 글의 처음 내용만 읽었던 것입니다. 조금 더 읽었더라면 결코 그런 잘못을 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이 점 정말로 죄송합니다 잉크냄새님.그리고 이 점에 대해서는 잉크냄새님께 변명을 따로 드리겠습니다.<br><br>잘못에 대한 비난은 비난하는 사람이 원할 때까지 지속되어도 좋습니다. 비난은 일종의 권리입니다. 그 비난을 다 받지 않은 자의 마음은 무겁기만 합니다. 열개의 돌맹이를 맞아야 마땅한 자가 너른 마음을 가진 분 덕분에 두개의 돌맹이를 맞는 것은 사실 부당한 일입니다. 글을 지워주심으로 비난의 무게는 덜었습니다. 불구하고 깊은 감사를 드리면서도 마음이 무거운 것은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br><br>감사의 뜻과 사과의 뜻은 신속해야 합니다. 그러나 저는 당시 빠른 사과문을 드릴 수 없는 처지였습니다. 저는 오후 1시 시작하여 밤 10시에 종료하고 10시 30분에 문을 닫습니다. 태어나기를 약골인데다가, 늘 사선에서 서성였고 저승사자와 동반하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리하여 귀가하면 시체처럼 잠에 들지요. 이러한 저의 처지를 감안하시어 늦어진 사과문에 대해서는 너른 마음으로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br><br>그리고 잉크냄새님께는 별도로 저의 변명을 드리겠습니다. 자신의 잘못에 대한 변명처럼 구차한 것은 없습니다.잘 알면서도 애써 변명을 드리고자 하는 것은 제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면서 저의 변명을 들으시면 잉크냄새님의 상처가 분명 더 작아질 것이라 여기기 때문입니다.<br><br>다시 한 번 영면에 드신 할머님과 잉크냄새님 그리고 저의 댓글을 보시고 충격을 받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깊이 사과드립니다.<br><br>저의 잘못을 뉘우치고 반성하는 뜻에서 짧은 기간이지만 10일간 글을 게시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nbsp; 글을 읽은 후의 좋아요는 계속 이어가겠습니다. 글을 끝까지 읽지 않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10일 후에는 어제의 제 잘못이 어떻게 발생하게 되었는지 간단한 글을 게시하도록 하겠습니다.&nbsp;<br>사과는 끝없이 드려야 하는 것이 맞지만 글로 드리는 사과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부디 저를 용서하십시요!<br><br>]]></description></item><item><author>차트랑</author><category>횡설 수설...</category><title>독일 가곡, 베토벤과 슈베르트</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6104135/17110859</link><pubDate>Tue, 24 Feb 2026 12:4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6104135/17110859</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C482737067&TPaperId=1711085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78/78/coveroff/2162436955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C052737875&TPaperId=1711085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103/3/coveroff/0276025113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32632020&TPaperId=1711085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5045/3/coveroff/k232632020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C552839756&TPaperId=1711085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6841/94/coveroff/c552839756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1006926&TPaperId=1711085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182/22/coveroff/8931006926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최근 판타스틱한 독일 가곡을 게시해보겠다는 전언을 어느 분께 드린 바가 있다. 물론 우리나라 가곡도 아주 좋아하여 자주 듣는 편이다. 그러나 내게나 판타스틱한 것이지 다른 분들께는 재미없고 밋밋한 가곡이 될 가능성이 있음을 부인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독일 가곡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가장 좋아하는 성악가 3인의 노래를 올려볼까 한다. 그 3인은 이안 보스트리지(Ian Bostridge), 제라르 수제(Gerard Souzay), 프리츠 분덜리히(Fritz Wunderlich)이다. (작곡가는 베토벤과 슈베르트로 한정합니다)<br><br> 인간의 삶에서 '정합'은 타로부터의 신뢰와 믿음 그리고 자신으로부터의 용기와 바른 행동의 원천이 된다. 평소 누군가가 하는 말의 내용보다는 일관성있는 그 행위를 중시하며 그에 경의를 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때로 내적 부정합을 일으키는 사람이 있다. 내적 부정합을 의식하지 않는 사람은 시시때때로 그 말이 바뀐다. 즉, 주어진 상황이 변하면 말의 내용도 따라 바뀌는 것이다. 도대체 어떤 말이 진심인지 전혀 알길이 없는 것이다. 결코 믿을 수 있는 사람의 태도가 아니다.<br><br>그리하여 정합성을 유지하는 자세를 가지려고 하지만 나의 머리와 가슴에 부정합을 일으키게하는 두 사람이 있다. 그 두 사람은 바로 베토벤과 슈베르트이다. 이 위대한 두 인물을 알게 된 후로, 나는 A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정작 시집은 B에게 가는 여인의 심정을 이해할만 하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되었다. 이는 분명 내적 부정합이지만 말이다. 나도 다를 바가 없는 사람이니 이해를 하는 것이겠지 싶다.<br><br>사적으로는 베토벤에게 가장 큰 경의를 표하며 음악사의 가장 위대한 인물이라는 영예를 드린다. 그러나 나의 애정은 슈베르트에게 가있다. 이성적으로는 베토벤에게 시집을 가야 합당하지만 가슴으로는 슈베르트를 향하고 있는 이 부정합의 이중성, 스스로 잘 알면서도 어쩔 수 없다 ㅠ. 물론 바흐나 모자르트 또는 쇼팽을, 아니면 다른 작곡가를 음악사 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의 반열에 놓는다해도 이상할 것은 없다. 개인적으로 그렇다는 말이니 말이다.<br><br><br> 베토벤은 악성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이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28세에 이미 그의 귀는 그 능력을 상실하기 시작했다. 귀 경화증을 앓고있었던 것이다. 그의 위대한 작품들 대부분은 그의 청력에 문제가 생긴 이후에 쓴 곡들이다. 그의 주요 작품들은 그가 서른이 된 이후에 썼다. 그의 출현과 업적은 서양 음악사의 획을 그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서양 음악사는 베토벤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도 이상할 것이 없다. 바로크의 뒷 문을 걸어 잠갔고 고전파의 새로운 문을 열어 살았으며, 낭만주의로 가는 창을 열어준 장본인이었다. 나아가 음악의 대중화는 베토벤으로부터 시작했고 후대 음악가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 베토벤은 '위대하다'는 수식어가 아주 잘 어울리는 인물이 아닐 수 없다.<br><br><br><br>[[[ 분덜리히가 부른&nbsp; 베토벤의 아델라이데 입니다. 아주 많은, 셀수도 없이 많은 성악가들이 같은 노래를 불렀지만 가장 사랑하는 버전은 분덜리히 버전입니다. 분덜리히를 편애하기는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아델라이데 만큼은 이안 보스트리지도 분덜리히에게는 안됩니다 . 아델라이데는 분덜리히에게서 정녕 판타스틱한 예술이 됩니다.]]]<br><br>1797년생 슈베르트에게&nbsp;1770년생인 베토벤은 아버지뻘이나 다름이 없었다. 슈베르트는 자신의 우상이나 다름없는 베토벤이 빈에 와있다는 것을 진즉에 알고 있었다. 그러나 베토벤이 슈베르트의 재능을 알아보는데는 시간이 걸렸다. 베토벤이 세상을 등지기 겨우 1개월 전에서야 슈베르트의 가곡에 담긴 비상한 재능을 알아본 것이다.<br><br> 슈베르트는 너무나도 수줍음을 타는 성격의 인물이었다. 베토벤을 한없이 존경했고 그를 만나고 싶어했다. 그러나 찾아가 인사를 드릴 용기를 감히 내지 못했다.&nbsp; 서로 지척에 거주하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베토벤이 슈베르트의 재능을 좀더 일찍 알아봤더라면 두 사람의 만남을 그만큼 일찍 이루어졌을 것이지만 현실은 그러질 못했다.베토벤이 많이 아파서 자리에 누워있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슈베르트는 베토벤의 문병을 가기로 결심했다. 그냥 가면 될 것을 이 용기 없고 수줍음을 심하게 타는 슈베르트는 신들러의 안내를 받아야 했다. (하... 답답해 슈베르트 형, 진짜~)<br><br>자신을 문병온 슈베르트의 얼굴을 보며 베토벤은 그에게, '자네가 슈베르트인가... 자네를 만나고 싶었네. 좀더 일찍 찾아오지 그랬나. 자네의 악보들을 봤다네. 자네는 틀림없이 최고의 작곡가가 될걸세' 라고 말했다.<br>(그러게 진즉에 좀 찾아가잖구~!! 우물 쭈물하다가 둘이서 알콩달콩하는 역사적인 장면을 그렇게 놓쳤다 ㅠ)<br><br><br> 두 사람의 너무나도 아쉬운 만남이 있던 1주일 후, 베토벤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베토벤의&nbsp; 장례식이 있던 날 광장에는 2만명의 인파가 몰려들었다. 8명의 악장들이 그의 관을 들었다. 훔멜도 그 중에 있었다. 그리고 슈베르트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며 베토벤의 장례식에서 횃불을 들고 행렬의 맨 앞에 섰다. 체르니도 함께했다. 그리고 너무나 안타깝게도 슈베르트는 1년 뒤 세상을 등졌다. 그의 나이 비로소 홀로 선다는 이립, 31살이었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나이이던가... 슈베르트의 죽음은 나를 정말 슬프게한다. 가곡의 왕, 슈베르트!!<br><br><br><br>[[[ 제라르 수제는 내가 생각하고 있는 슈베르트를 가장 잘 전달하는 듯 하다 ]]]<br><br> 그리고 생전에 그토록 존경했지만 제대로된 만남을 해본 적이 없는 베토벤 바로 옆에 나란히 누워있다. 서로를 이웃하여 있으니 이제 두 사람은 살아서 서로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끝없이 나누고 있을 것이다.&nbsp;<br><br>서양 음악사를 관통하여 다루고 있는 '음악의 유산'은 모두 11권으로 되어있다. 각 권의 전체 크기는 매우 큰 편으로 가로 23cm 세로 30cm 이다. 쪽 수는 약 200 쪽이다. 어찌보면 각 권은 방대한 자료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4권은 오로지 베토벤과 슈베르트 만을 다루고 있다. 이 두 사람이 가지는 음악의 역사를 그 얼마나 중요하게 다루었는지 알 수 있게하는 대목이라 본다.&nbsp;음악에 관한한 나는 내적 부정합을 극복하지 못한 자로서 결코 믿을만 한 사람이 아니다. 사랑하는 슈베르트여, 안녕!!<br>표는 베토벤에게 드리지만 마음은 슈베르트에가 가있는 이 나의 내적 부정합을 다시 발생하게 하는 두 인물이 있다. 바로 이안 보스트리지와 분덜리히이다. 표는 이안 보스트리지에게 드리지만 나의 사랑은 온전히 분덜리히 형께 드린다. 분덜리히 형님이 부른 슈만 '시인의 사랑'은 가곡의 새로운 표본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nbsp;<br><br>[[[ 이안 보스트리지의 성대를 통해 나오는 독일어는 예술이 된다 ]]]<br><br>분덜리히는 전 세계의 비극을 불러온 대공황의 시대&nbsp;1930년에 태어났다. 나치가 정권을 잡자 분딀리히의 아버지는 직장을 잃었다. 끝내 취업이 되지않자 분덜리히의 아버지는 자신의 삶을 비관하며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분덜리히의 당시 나이 다섯살, 1935년의 일 이었다. 분덜리히는 굶기를 밥먹듯이 했다.힘든 삶을 살아가던 그가 어느 날 노래로 인정받았다. 다른 프로 성악가들에게 발성법을 가르쳤다. 카라얀이 분장실로 찾아와 전속하자고 애원했을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전설의 그 카.라.얀.이 분.덜.리.히.에게 까였다. 물론 분덜리히께서 너무나 일정이 바빠 어쩔 수가 없었던 탓이다. 그렇게 그는 성악가로서 성공가도를 달렸다. 덕분에 그는 세상에서 자신을 가장 믿어주는 아내와 가정을 꾸릴 수 있었고 아들도 낳고 딸도 낳았다. 이제 그에게 충분히 행복해도 되는 순간이 온 것이다.<br><br>그는 미국에서 출연하기로 계약을 하고 떠나기 전에 친구들과의 만남을 가질 예정이었다. 아내와는 전화로 잘 자라는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계단을 내려오던 그가 그만 발을 헛디디고 말았다. 그는 계단에서 굴러 떨어졌다. 의식 불명이었다.&nbsp;1966년 그는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그의 나이 향년 35세였다.<br>그의 노래를 들을때마다 나는 눈물이 흐른다. 분덜리히여 안녕....!<br><br><br><br><br>[[[&nbsp;최근 어느 분의 서재에 방문했다가 읽으시는 책의 두께에 압도되어 껌뻑 죽고 말았다. 엄메 기죽어~!!&nbsp; 하는 심정 말이다. 그런데 그 두께 좋은 책에 껌뻑 죽으면서도 기분은 아주 좋아진다. 그런데 어느 날, 중고 서점에 들렀다가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서 얼른 들여온 이 책, 음악의 유산을 구입한 후 가장 먼저 책장을 열어본 것은 4권 베토벤과 슈베르트 였다. 그런데 뜻 밖에도 그 안에서 A4용지 2장이 반 접혀서 끼워져 있었다. 그걸 펼쳐보는 순간... 그만 놀라고 말았다. 그것은 베토벤의 탄생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가족사, 음악사를 모조리 정리한 페이퍼였다. 전 주인은 진정한 베토벤의 마니아였던 것이다. 나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그런 마니아 말이다. 나는 그만 책의 전 주인에게 껌뻑 죽고 말았다. 음메 기죽어~!! ]]]<br><br><br>[[[ 음악의 유산 전 주인이 책 속에 남겨둔 페이퍼, 아... 도대체 베토벤을 얼마나 좋아하는거지??? 어느 알라디너가 읽는 책의 두께에 껌벅 죽듯이 이 페이퍼에 그만 다시 껌뻑 죽었다 ]]]<br>&nbsp; &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182/22/cover150/893100692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1822238</link></image></item><item><author>차트랑</author><category>횡설 수설...</category><title>팀 재니스(Tim Janis), September </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6104135/17108335</link><pubDate>Mon, 23 Feb 2026 09:3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6104135/17108335</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C742738510&TPaperId=1710833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70/68/coveroff/2672436696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어느 서재에 갔다가 게임에서 사용하는 음악을 들어봤다. 뉴에이지 피아노 곡이었는데 아주 좋았다. 요즘 말로 나의 개취에 맞는 음악이었다. 피아니스트의 손가락 움직임이 그려질 정도로 또렷하고 선명했다. 더우기 예술성이 매우 높았다. 게임에서도 이런 곡을 사용하는구나 싶었고, 완전 예상 밖이었다.<br><br><br><br>뉴에이지 피아노 곡을 사실은 자주 듣는 편이 못된다. 뉴에이지에 할당할 시간의 여유가 없기때문이다. 한창 팝송을 들어야 할 시기에 팝송을 듣지 못했던 것도 같은 이유였다. 그래서 팝송에 상대적으로 약한 편이다.이 모두가 듣고자 하는 목록에 올라있는 고전 음악들이 여타에 시간을 낼 수 없게하는 것이 주된 원인이었다. &nbsp;<br><br> 그 게임 음악을 듣자마자 어느 뉴에이지 작곡가의 피아노 곡이 스치고 지나갔다. 알고 있는 뉴에이지 음반이 그 하나 뿐이어서 그런 듯 싶다. 그는 Tim Janis 이다. 사실 소장하고 있는 뉴에이지 음반은 Tim Janis 가 유일하다.<br>내지에는 Tim Janis를 소개하면서, "그의 작품을 두고 켈틱 뉴에이지라고도 하고 컨템포러리 인스투루멘탈, 혹은 네오 클래식 음악이라고도 한다" 라고 써있다. 무슨 말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그렇게 써있다.<br><br>어쨌든 Tim Janis 의 음악에서는 영화 음악이 주는 정서를 담고 있다. 더불어 라흐마니노프 혹은 드뷔시와 닮은 낭만적인 느낌을 주는데, 다른 뉴에이지와 차별되는 특징이라고 봐도 될듯하다. &nbsp;<br>음악은 봄과는 관계가 없는 타이틀을 하고는 있지만 계절과 무관하게 그의 음악은 확실히 좋다. 알라딘 서재 덕분에 모처럼 Tim Janis를 꺼내 다시 듣는다. 음악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클릭하셔도 좋을듯 한 음악이다.<br><br><br><br>[[[ 가을에 어울리는 색을 선택한 것이겠지만 CD알의 컬러는 음악과는 달리 영 취향에 맞지 않는다. 요즘은 LP 외에는 거의 온라인을 통해 음악을 듣다보니 음반이 어디에 있는지 찾기가 쉽지 않다. 한참을 찼았다 ㅠ&nbsp; ]]]<br><br><br><br>[[ 15곡 대부분 완성도가 높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나아가 한 음반 안의 모든 곡들이 거의 다 좋기는 쉽지 않은데 이 음반의 곡들은 대부분 만족도가 높다. ]]]<br>&nbsp; &nbsp;<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70/68/cover150/267243669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706819</link></image></item><item><author>차트랑</author><category>횡설 수설...</category><title>오베르뉴의 노래와 프랑스어 수업</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6104135/17102614</link><pubDate>Fri, 20 Feb 2026 09:5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6104135/17102614</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C712737647&TPaperId=1710261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77/80/coveroff/2922436247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한때 노래를 들으며 외국어 공부를 시도한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외국어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던 때 였고, 노래의 가사 내용이 궁금하기도 했다.&nbsp;노래가 마음에 들면 자주 듣게되고, 그럴수록 그 가사와 음반의 내지에 써있는 내용에 대한 궁금증은 점점 더 커져만 간다. 그러다보니 덩달아 웃지 못할 사건이 발생했다. 아무런 대책 없이 시작했기에 지금 생각해봐도 무모한 결정이었다.&nbsp;<br><br>어쩌다가는 학부때 타학과 전공을 3과목 수강한 적이 있었다. 철학 아리스토틀, 서양 음악사 그리고 프랑스어 였다. 철학과 수강은 아리스토텔레스에 빠져버린 친구의 꼬임에 넘어간 덕분이었다. 강의가 시작된 후에 알게되었는데 아리스토텔레스 원서라는 사실을 알았다. 망했다. 반면 서양 음악사와 프랑스어는 오로지 음악에 대한 관심도에서 비롯된 자발적 행위였다.<br><br>당시 나는 이탈리아어와 프랑스어 공부를 틈틈이 독학으로 시도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거창한건 절대 아니었다. 독학인데 알면 얼마나 알겠는가. 마치 K-pop을 들으며 한국어를 공부하는 외국인들과 다를 바가 없었던 것이다. 가사가 없는 고전 음악을 더 많이 듣기는 했지만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독일어로 된 오페라 아리아와 가곡들도 곧잘 들었던 때였으니 말이다.<br>&nbsp;<br> 독일어는 고등학교에서 2외국어였고, 아주 쬐끔 알고 있었으므로 혼자서 공부할 정도의 독일어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탈리아어와 프랑스어에 관해서는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작정하고 덤비는 공부가 아니니 가벼운 마음으로 이탈리아어와 프랑스어를 배워봐야지 했던 것이다.<br>문법 구조는 관련 책을 살펴보면 알 수 있는 것이지만 발음은 책으로 공부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뜻밖에도 이탈리아어의 발음을 익히는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가사를 보면서 노래를 몇 곡 들어보면 누구나 발음 규칙을 익힐 수 있는 정도였다. 철자가 곧 발음이나 다를바가 없는 언어가 이탈리아어 였다. 그 덕분에 이탈리아어는 뜻밖에도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br><br> 그러나 프랑스어는 경우가 달랐다. 발음에서 큰 난관에 부딪혔다. 프랑스어의 문법구조는 크게 어려울 것이 없었으나 발음은 그렇지가 않았다. 노래를 들으며 가사를 살펴도 발음 규칙을 발견해 내기가 쉽지 않았다. 음성 정보가 없었기에 발음 기호를 봐도 영 알 수가 없었다. 어떻게 소리를 내라는 것인지 그 의도를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또한 알파벳 철자를 멀쩡하게 써놓고도 발음을 하지 않는거다. 예를 들어 'Hodori' 라고 쓰고, 읽기는 '오도히' 라고 읽는 식이다. 철자 'H'를 쓰되 발음은 하지 않는다. 하... &nbsp;그렇다고 '히(ri)'가 '히(ri)'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히(ri)' 아닌 '히(ri)' 인것이다. 고등학교때 프랑스어를 배워본 사람들은 지금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잘 아실 것이다. &nbsp;그러나 경험이 없던 내가 이 '히(r) 아닌 히(ri)'를 절대로 알 수가 없었던 거다.<br><br>다른 경우는 말도 못할 지경이었다. 연음은 또 프랑스어의 예술이나 다름이 없다. 생각지도 못했던 뜻밖의 난관을 만난 것이다. 결국 나는 교양 과목으로 프랑스어 기초를 목표로 1학년 문법 강의를 신청하기로 했다.&nbsp;학점은 F라는 최악의 상황을 면하는 것으로 하고, 전공생들에게 발음 동냥으로 얻어 알고 문법도 좀 더 알아보자는 생각으로 결정한 일이었다. 그렇게 낯선 프랑스어와의 힘겨운 2학기가 시작되었다.<br><br><br><br>수강을 하면서 프랑스어의 연음을 '리에종Liaison' 이라 하고, 그 규칙을 따로 정해 놓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되었다. 리에종(Liaison)에 따르면, 연음을 반드시 해야하는 경우, 연음 하지 않는 경우, 선택적 연음을 하는 경우 등의 규칙이 있었다. 정보가 부족했던 당시에 이런 사실을 알리가 없었다.그리하여 학기가 끝이 날 즘에서야 발음을 자연스럽게 입에 붙일 수 있었다.&nbsp;그런데, 발음을 입에 붙이는 시간이 한 학기라니... 프랑스어는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려웠다. 이건 뭐 상당히 모자란 결과인데... 하면서 학기를 그렇게 마쳤다.<br><br>어째거나 기말고사를 끝내고, 어느 추운 날, 집으로 전화가 왔다. 직접 받지는 못했지만 프랑스어 학과 사무실로 좀 나와줘야겠다는 불길한 호출 전화였다. 불길한 예감은 대부분 적중률이 높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다음 날 오후 프랑스어 학과 사무실을 물어물어 찾아갔다. 아니나 달라, 담당 교수님이 중간ㆍ기말 고사 시험지 두 장을 앞에 내밀며 내게 말했다. "이게 학생의 시험지 입니다. 타 학과 학생이 이러는게 황당한 상황인데, 권총 차고 재수강 할래요 아니면 D로 끝내고 good goodbye 할래요?" 하고 물었다. 소르본느에서 유학했다더니 프랑스의 고급진 예절을 배우셨나, 교수님은 학생인 나에게 존대어를 썼다.<br><br><br>[[[ 내지가 프랑스어로 되어있는 줄 알았는데 막상 상품을 받고보니 영어로 되어있었다. 대 실망이었다 ㅠㅠ ]]]&nbsp;&nbsp;<br><br>시험지 채점을 보니 겨우 정답의 반타작을 면한 결과였다. 그 위태로운 상황에서 변명을 좀 해볼까 하다가는, '이건 칼날을 잡은 놈의 자충수지!' 생각하고는 마음을 바꿨다. 그러자, '질문이 사내답네' 로 &nbsp;생각이 바뀌었다. 다시 교수님의 입장으로 돌아가서, '너 시험 중간 기말 둘다 개판쳤어 지금, 알지? 하지만 빵꾸는 안낼게, 골치아프게 하지 말고 D먹고 전공 수업에서 떨어져줘!' 뭐 이런 시추에이션인거였다. 철학과 교수님도 다음 학기에는 좀 빠져주겠니 하시더니 그 소리를 또 듣는거다.<br>교수님이 내민 선택지에 고민하고 있는데, 해당학과 조교가 난로 옆에 앉아 불을 쬐면서 힐끔 힐끔 내 쪽을 쳐다봤다. 출근해서 난로만 껴안고 앉았는지 난로의 열기에 조교의 얼굴이 익어 홍시처럼 벌갰다. 반면 나는 쪽팔려서 얼굴이 벌개졌다.한참을 머뭇거리다가 결연한 목소리로 질문에 답했다.D로 끝내주십시요 교수님!!속으로는 선택권을 준게 어디야 했지만 내게 사실상 선택의 여지는 없었고, 일단의 목표를 이룬 셈이니 이걸로 끝내자 뭐 이런 결론이었다.<br><br>교수님이 말했다, '좋아요. 근데 타과 학생이 프랑스어 전공 수업은 왜 들었는데요? 처음이라 진짜 궁금해서 묻는거에요.' 교수님의 얼굴을 보니 진짜 궁금해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래서&nbsp;있는 사실대로, '문법은 책으로 어찌 해보겠는데, 발음은 독학할 수가 없겠더라고요 교수님', 했다. 교수님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또 물었다, '발음을 배우려고요?' 나는 '네', 하고 짧게 답했다.이런 내 모습에 난로 앞에서 불쬐며 듣고있던 조교 이자쉬기 갑자기 고개를 홱! 숙이더니 풉! 하고 뿜어버렸다. 순간 나의 무능력을 절감하며 알량하고도 엉뚱한 감정이 솟아 올라 속으로 나는, '조교 이자쉬기, 아놔~' 했다.<br><br><br><br><br>이 모습에 재미졌는지 교수님이 갑자기, '조교야, 너는 왜웃냐 근데? 지금 심각한거 안보여?' 하면서 자기도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뿜어버렸다. 순간, 속도 없는 나도 아하하 웃어버렸다.그러자 교수님이 계속 삐질거리는 웃음을 참지 못하면서 조교에게 빨간펜을 건넸다. 그러면서 놀랍게도 '이 시험지, 75점 줘라~!' 이랬다. 아... 순간, 교수님이 내가 잘 아는 친척 형처럼 느껴졌다.&nbsp;조교는 네? 했다. 다시 교수님이 '75점 주라구 조교야~' 했다. 그러자 네~ 하면서 여전히 웃음을 숨기지 못한 채, 그 빨간펜으로 커다랗게 75라고 쓰고, 두 개의 굵은 밑줄을 점수 밑에 힘껏 지직~! 하고 그어버렸다. 그리곤 나를 쳐다보며 환하게 웃는 것이었다. 순간, 하마터면 나는 조교에게, '야, 우리 친구하자' 이럴뻔 했다. 순식간에 빵꾸에서 D, D에서 C학점으로 돌변하니 밉상이던 조교의 미소가 어찌 그리도 싱그럽던지... 진짜 속 없는 놈이 바로 나였다. &nbsp;<br><br>소르본느의 예절을 갖춘 교수님이 내게 악수를 청하며, '이제 우리 그만 봅시다~' 하길래 나는 속으로 '그럽시다요~' &nbsp;하면서, 겉으로는 미소띤 얼굴을 하고 입으로는 '고맙습니다 교수님~' &nbsp;했다.코가 땅에 닿도록 인사를 하고 돌아 나오면서 나는, 그 멋진 조교를 향해 손을 들어 흔들며 '메르시 보꾸 merci beaucoup!' 했다. 이번엔 조교가 나를 향해, '아하하' 했다. 그리고 혼잦말로, 대학교에서도 빨간펜을 쓰는구만! 근데 밑줄 2개를 왜 긋는 거지? 생각 했다.<br><br>그나저나 남들은 A뿔 받고도 시큰둥인데 나는 C제로 받고도 이렇게 기분이 좋다 이거지!&nbsp;그렇게 친척 형님같은 교수님의 통큰 결단에 나름 기분좋게 프랑스어 학과 사무실을 나오는데,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그것은 바로 훈민정음의 서문 중 "새로 스물 여덟자를 맹가노니" 였다. 그나저나 나머지 네 글자는 어디 갔지?<br>권총 찰뻔한 위기에서 벗어나 안도의 한숨을 쉰 후 생각에 잠겼다. 수강 후 얻은 결과로는, '메르시 보꾸'는 사실 '메르시 보꾸'가 아니다. '메르시'는 '메르시'가 아니기 때문이다. '르 r'에서 가래가 살짝 끓어줘야하지만 듣기에 거북해서는 안된다. 거칠면 촌티 발음이 나니까. 되려 부드럽고 듣기 좋은, r음에 h음을 살짝 얹어서는 두 음이 합성된 가래끓는 소리? 를 동시에 내줘야 한다. 그 소리가 있어 프랑스어 발음은 우아해진다. 가래끓는 소리가 있어 우아해진다니, 말도 안되는 소리지만 프랑스어 발음의 예술은 ' r '에서 결정 난다고 보면 된다.<br><br>어째거나&nbsp;우리 언어로는 프랑스어 발음의 온전한 표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떠오른 것이 사라진 4글자였던 것이다. 그 전까지는 아쉬울게 없으니 사라진 네 글자를 생각지 못했다. 그러나 상황이 그러하다보니 아쉬워진 것이었다.&nbsp;물론 사라진 4글자를 복원시킨다 해서 프랑스어의 발음을 모두 표기하고 정확하게 재현해낼 수 있는지 여부를 나는 알지 못한다. 당시엔 다만 있던 글자를 사용하지 않는 것에 대한 아쉬움의 발로일 뿐이었다. 만약 사라진 4글자를 복원시킨다 해도 한글 자판과 스피드 시대의 현 상황에 잘 적응할지는 또 장담할 수가 없다. 고등학교 때 사라진 4글자를 배운것 같기는 한데 지금은 이미 잊어버려서 말이다.<br><br>설에 고향에 다녀오며 내가 좋아하는 프랑스어로 된 노래를 듣다가 갑자기 옛 생각이 나서 일이 이렇게 되었다. 여하튼 나는 C학점에 대만족하는 학생이었다. 그 미소가 싱그럽던 조교는 지금 학과장 하고 있으려나... 살짝 궁금하다.&nbsp;<br style="font-family: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77/80/cover150/292243624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778041</link></image></item><item><author>차트랑</author><category>횡설 수설...</category><title>파시즘을 해부하다 - [파시즘 - 열정과 광기의 정치 혁명]</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6104135/17101329</link><pubDate>Thu, 19 Feb 2026 18:4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6104135/1710132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92930438&TPaperId=1710132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3953/63/coveroff/k99293043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92930438&TPaperId=1710132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파시즘 - 열정과 광기의 정치 혁명</a><br/>로버트 O. 팩스턴 지음, 손명희 옮김 / 교양인 / 2024년 05월<br/></td></tr></table><br/><br>[[[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모든 것은 파시즘이다 ]]]<br><br>우선, 높은 순도에 취약함이 있어 버무려 잡탕 (파시즘도 알고보니 잡탕이었다)만드는 것을 선호하고, 리뷰에 관해서는 '거창하게 절필'하려는 내게 리뷰를 쓰도록 용기를 준 어느 알라디너께 두고 두고 감사드릴 것이다.<br>또한 고백하자면 '파시즘'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알라딘 서재의 리뷰를 통해서이다. 기연미연하던 차에 어느 리뷰를 읽고는 올커니 했던 것이다. 그 리뷰가 이 책 '파시즘'을 읽는 결정적 계기가 되어주었다. 아주 좋은 글 솜씨로 리뷰를 써주신 분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덕분에 불투명했던 파시즘을 제대로 파악하는 절호의 기회가 되었다. 알라딘의 여러분들께 알게모르게 신세를 지는 것은 반파시즘 사회 존재의 일원이기 가능한 일이라 여기며, 꽃 보다 더 아름다운 민주주의여, 화이팅!!<br><br>이 책의 좋은 점은 파시즘에 대한 철학적 접근이 아니라는 점이다. 파시즘을 철학적으로 접근했더라면 대중성이 떨어졌을 것이고 더불어 나의 이해도는 현저히 낮아졌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누구나 파시즘에 접근하기 좋은 대중적 조건을 갖춘 책이라고 확신하는 바이다. 또한 아주 익숙한 이름, 무솔리니와 히틀러가 거의 주인공인 책인지라 더욱 그러하다. 행여 기연미연하는 분들이라면 마음 놓으셔도 좋다는 말씀 먼저 드리고 시작한다.<br><br>이 책의 저자는 파시즘이 성장해가는 과.정.을 조명하는데 더 중점을 두었다. 파시즘 해부라고 해도 좋을만큼 세부적이면서 명료하다. 마치 파시즘에 현미경을 들이대어 독자에게 보여주는 느낌, 의문을 남기지 않고 읽을 수 있게한다. 파시즘의 정체를 보여주는 방식은 그 형성 과정을 귀납의 형식으로 서술했고, 파시즘의 정의를 미괄식 처리했다. 목차의 내용으로 판단하건대 저자는 파시즘을 유기적인 생명체로 다루었다. 저자는 책을 8장으로 구성했고 각 목차에서 파시즘의 에너지 작용(태동 혹은 운동), 탄생, 착근, 성장, 권력 장악, 소멸이라는 일련의 과정을 상술했음을 알 수 있도록 했다. 이는 마치 유기적인 생명체의 궤도, 즉 탄생 및 소멸 과정과 매우 유사하다.&nbsp;마지막 8장에 가서야 비로소 '파시즘이란 무엇인가?'를 다루고 있다.&nbsp;<br><br>귀납법의 한계로 알려진 '확증 편향', '일반화의 오류' 또는 '논리의 비약'등, 우려할 점을 염두에 두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겠지만 일단락된 파시즘의 조명이라면 큰 문제가 될것 같지는 않다. 더우기 자료는 너무나도 방대하여 그러한 우려를 불식시키기에 충분하다.&nbsp;그렇다면 파시즘에 대한 귀납적 접근이 가지는 장점은 무엇인가. 일련의 파시즘 성장 과정을 알면 현재 자생하는 크고 작은 파시즘의 정체을 파악하기가 쉽다. 파시즘의 어린 싹수부터 알아보는 혜안을 주니 말이다. 이 책을 통해 공산주의, 제국주의, 사회주의, 모든 군사 독재, 왕정, 세습군주제등 권위주의가 &nbsp;실제로 파시즘은 아니라는 것을 알수 있다. 주로 혼란을 주던 내용 아니겠는가. 이 책은 그러므로 미성년을 자녀로 둔 주민들에게 성 범죄자의 신상을 고지하여 조심하라고 이르는 공문서 같은 성격이라고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성범죄자가 주변에 거주하고는 있지만 얼굴을 모르면 경계를 할 수가 없다. 이 책은 바로 파시즘은 이런 얼굴을 하고 있는 놈이오 라고 신상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한다. 인간의 얼굴과 다른 점이 있다면 파시즘의 얼굴은 여러 개의 가면을 바꾸어 쓰면서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그래봤자 포착되지만 말이다.&nbsp;<br><br>그 결과 지난 3년 대한민국은 파시즘의 시대였음을 비추어 알 수 있게한다. 지난 3년이 파시즘의 시대가 아니었다고? 그렇다면 이 책을 읽어보시라!! 과연 이 책을 읽고도 부정할 수 있는지 말이다.<br>다행스러운 것은 파시즘이라는 생명체의 수명이 결코 길지 않다는 것이다. 그 백성이 최악의 조건 속에서 살았다고 생각하는 조선의 세습군주제도는 지극히 비민주적인 정치 형태였지만 5백년을 이어갔다. 이런 사실에 비추어보면 파시즘이라는 괴물은 단명하는 속성을 가졌다는 것을 알수 있다. 파시즘은 다행스럽게도 스스로 자멸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책을 통해 알수가 있으니 이런 말을 겁도없이 하는 것이다.<br><br><br>커버 내지의 소개 글을 통해 저자 팩스턴은 1997년부터 컬럼비아대학 사회학과에서 파시즘을 강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수 있게했다. 초판은 2005년이라고 써있다. 이 정보로 추정할 수 있는 것은 최근의 파시즘, 즉 최근의 미국, 일본, 대한민국등에서 발생하고 있는 극우 운동과 제 3세계에서 자행되고 있는 현재의 파시즘은 언급되어 있지 않다는 뜻이다. 시간의 차이로 인한 것이니 어쩔 수는 없다. 그러나 저술 이후의 현상들은 책의 내용으로 추정컨대 어렵지 않게 조명해 볼 수 있다. 이는 매우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nbsp;과거의 파시즘으로 현재의 파시즘 현상을 이해할 수 있다는 뜻이다.<br><br>어째거나 도서의 귀납 방식과는 달리 리뷰는 서두에서 파시즘의 정의를 내린 후 목차의 순서에 준하여 파시즘을 간략하게 살펴보겠다.<br>머릿말을 쓴 조효제 선생은 '파시즘을 간명하게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p.6) 라고 선언 했다. 애초에 '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파시즘의 엄격한 개념 정의를 구하기는 쉽지 않다' (p.6)면 주관과 자의가 대세라는 뜻일 것이다.&nbsp;사실 책이 일단 독자에게 건너가면 그 책을 불쏘시개로 쓰든 맛있게 읽든 사후의 일은 독자의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하여 나는 불가능에 가까운, 다음과 같은 자의적이자 매우 주관적인 정의를 내보려 한다.<br><br>[[[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모든 것은 파시즘이다! ]]]<br><br>이렇게 정의하는 것은 권력을 쥔 파시즘이 민주주의 바탕위에서 꽃피운 우리의 모든 자유를 포기하도록 강요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최고의 제도는 아니지만 가장 덜 나쁜 제도이다, 라고 말한 사람의 이름이 오락가락 한다. 처칠이랬던가? 아니면 어쩌나... ㅠ. 어째든 우리는 민주주의 안에 존재하고 있다. 우리의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모든 것을 파시즘으로 규정하는 이유이다.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주체가 물리적인 것 이든 경제적 것 이든 정신적인 것 이든 말이다. 이는 저자의 명제가 아니라 독자인 나의 명제이자 파시즘에 대한 정의이다. 이는 저자의 파시즘보다 그 개념의 폭이 훨씬 더 넓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책은 저자의 파시즘에 대한 입장과는 달리 외연의 확장을 수반하는 팽창력을 독자에게 주고 있다는 사실을 저자는 알고있을 것이라 믿는 바이다.<br><br>사적인 견해이지만 특정 시기에 파시즘이 막을 내렸다고 학자들의 주장한다면 나는 달리 해석하여 1945년 이후에는 그 어떤 파시스트도 성공하지 못했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할것이라고 믿는다.파시즘이 막을 내렸다기보다는 막을 내린 것처럼 보였다는 것이 나의 견해이니 말이다. 지난 해의 대한민국은 파시즘이 꽃을 피우기도 전에 소멸한 좋은 실례를 보여주지 않았던가. 파시즘을 변태하는 생명체로 바라보지 않은 다면 파시즘은 사라진 유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다 읽은 후의 파시즘은 저자가 말하는 파시즘 그 이상의 파시즘을 염두에 두도록 하고있다. 나아가 어디에선가 지금 이순간에도 태동하는 파시즘 에너지가 발아하고 있을 것이라는 추측은 얼마든지 가능케 한다. 또한 파시즘은 개인일 수도 있고 집단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br><br>왜냐면 그 어느 곳, 어디에서든 파시스트는 끊임없이 자라고 또 자라는 독초처럼 민주주의를 늘 위협해왔기 때문이다. 지난 3년간의 대한민국은 파시즘의 시대였다. 지난 3년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위태롭게 했다는 것을 누가 부정할 수 있겠는가. 한겨울 한남대로의 눈내린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저항했던 위대한 '키세스 시민들'과 자랑스러운 '남태령의 기적'은 파시즘의 산물이며, 파시즘에 대한 민주주의의 아름다운 저항 이었음을 과연 누가 부정할 수 있겠는가. 고로 본 도서인 파시즘에 대한 이해는 여전히 유효하며 앞으로도 유효할 것이다. 그러므로 외연의 확장은 독자에게 주는 덤이다.<br><br>흥미로운 것은 히틀러의 파시즘은 지극히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히틀러는 &nbsp;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민주적 절차인 투표로 선출된 인물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것이다. 민주주를 파괴하는 힘을 가진 파시즘은 민주주의 내부에서 자유라는 이름의 탈을 쓰고 발아한다는 점은 숙고해봐야 할 사항이다.<br><br>ㅡ파시즘의 탄생: 파시즘은 어떻게 탄생하는가ㅡ<br>저자에 따르면 파시즘은 기존 사회 현상의 모든 것에 대한 강한 부정으로 시작한다. 나 이외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거부한다. 강령이나 원칙, 이론은 없다. 사회 생활과 개인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내적 정합은 파시즘에서는 중요시하지 않다. 순간 순간 급조되었지만 혁명적이고 강렬한 임팩트를 전달하면 그만이다. 이는 혐오와 경멸로 &nbsp;확대되고 지지자들의 협조로 싹을 튀운다.&nbsp;증오와 폭력을 찬양한다. 파시즘과 손을 잡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한 특권층, 특정 정치가, 기업가, 언론인 그리고 지식인들의 지지를 받는다. 특히 파시즘이 자본주의의 앞잡이가 되어주는 것도 하나의 할 일이다. 기득권이 쉽게 파시즘과 타협하는 이유가 분명해졌다.<br><br>저자는 이를 두고 "파시즘은 보수주의자와 국가사회주의자, 극우파라는 각기 다르지만 못 어울릴것도 없는 세 성분이 자유로운 제도와 법치를 희생해서라도"( p.464 ) 연대 합성된 결정체라고 말하고 있다. 이말을 들으니 보수를 새롭게 바라보게 된다 진짜!!<br><br>1 차 세계 대전은 파시즘 탄생의 신호탄을 쐈다. 전후의 황폐해진 사회는 불안 그 자체였고 나아갈 방향을 잃고 있었던 시기였다. 자유, 보수, 공산주의가 서로 다투고 있었다. 사회 경제적으로 파시즘이 탄생하기에 가장 적합한 환경, 즉 파시즘이 비집고 들어설 빈틈을 제공한 것이다. 파시즘은 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부정했고 혐오했으며 동시에 경멸했다. 가짜 뉴스로 대중을 선동했다. 대중은 이에 반응했다. 기득권을 잃지 않으려는 지식인들과 보수 세력이 동참했다. 파시즘의 칼날이 자신들을 향해 날아오지 않게 하기위한 연대였다. 대중들은 지도자를 숭배했다. 자, 이제 남아 있는 것은 폭력 뿐이다. 바로 비극을 불러올 파시즘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br><br>저자가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중국에서도 마찬가지 였다. 체제를 부정하던 학생들이 위기를 맞이했다. 모택동은 이 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모택동이 대학생들을 부추겨 홍위병을 탄생시킨 것이다. 모택동은 기득권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혐오했다. 이로써 대학생들을 선동했다. 그리고 체제를 전복시켰다. 모택동 집권시 수천만명의 중국인들이 굶어죽었다. 홍위병은 버려졌다. 중국의 과거 혹은 역사는 지워졌다. 모택동의 행동대원들인 광란의 홍위병들이 철저히 파괴했기 때문이다. 모택동의 집권 과정은 파시즘의 과정과 똑 닮아있다. 이런 점에서 나는 모택동을 중국의 파시스트로 분류한다. 나아가 홍위병과 그 적들 모두 파시즘의 희생자들이었다. 중국의 역사, 문화를 대부분 사라지게 한 장본인 또한 모택동이다. 그들에게 남아 있는 과거의 유산들 중 현존하는 것이 무엇인가. 겨우 자금성과 만리장성 뿐이다. 현대의 중국인들이 문화 열등감에 매몰되어 헤어나지 못하는 것 역시 모택동의 산물이다. 그러므로 나는 중국 최악의 파시스트로 모택동을 지목한다.<br><br>ㅡ파시즘의 착근ㅡ<br>1921년 드디어 무솔리니의 운동은 정당으로 발전해간다. 국민을 하나로 통합시키겠다며 지지를 호소한다. 동맹세력을 끌어들이고 유권자들의 지지를 확대해간다. 나아가 사회주의 사무소를 공격하고 지주들의 기부활동을 통해 소작인들에게 분배한다. 파시스트 행동대원들은 국가의 기능을 대신했다. 적을 특정하면 동지는 자연 발생하는 것이 이치이다. 적의 적은 친구이니 말이다. 이에 열광하지 않으면 소작농이 아니다.&nbsp;이제 구심점이 준비되었다. 응집된 집단의 힘을 배경으로 폭력을 쓸 타이밍이 온것이다.&nbsp;<br><br>ㅡ권력의 장악과 행사ㅡ<br>대중과 지식인 그리고 기득권들의 지지를 얻은 파시스트들은 이제 폭력을 사용한다.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행동 대원들은 지역 사회주의 본부와 신문사, 노동 사무소, 사회주의 지도자들의 가택 등을 약탈하고 방화를 저지르는" (p.205) 것으로 공권력을 장악하기 시작한다. 파괴와 약탈 방화가 시작된 것이다. 모든 기간 시설도 점령한다. 어쩌면 볼세비키 혁명의 성공이 이들을 파시즘에 취하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째거나 무솔리니는 집권에 성공했다.<br><br>이탈리아에서 무솔리니가 성공을 거두자 흥분을 감추지 못한 사람은 독일의 히틀러였다. 1930년대 대공황은 히틀러에게 결정적인 기회를 제공했다. 파시즘은 불안과 공포를 주식으로 살아가는 괴물이니 말이다. 수백만의 일자리가 사라지자 파시즘이 생명을 갖기 시작했다. 쿠데타가 아닌 민주적 절차에 따라 승리를 쥘 수 있는 유일한 기회는 불안과 공포가 사회에 만연해있을 때이다. 히틀러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기존 질서를 모두 부정했다. 새로운 질서를 약속했다. 투표에서 승리한 것이다. 문제는 그 이후다. 히틀러는 민주적인 투표제도를 없애버렸다. 독재로 가겠다 이거다. 이때 반드시 필요한 절차가 하나 있다. 지식인들과 기득권의 지지를 먼저 얻는 것이다. 기득권과 언론의 지지를 얻는 것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그들이 원하는 이익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 후에 대중이 따르게 되고 맹목적이 되며 폭력적일 수 있는 것이다.<br><br>ㅡ파시즘의 소멸ㅡ<br>권력은 마약과 같다고 누군가가 말했다. 달콤하면서도 취하게하는 속성을 가진 것이 권력이다. 한 번 잡으면 놓을 수 없다. 그 권력이 소멸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nbsp;파시즘은 태동하여 성장하고 전성기를 누리게 되면 급발진의 형태로 발전한다. 급진적인 파시즘이 마지막 발악을 하는 것이다. 파시즘은 늘 어디론가 움직여야 한다. 정체하고 있으면 방향키을 잃은 배와 같다. 추종자들의 열광이 식고 미친듯한 열기가 사라진다. 맹목의 눈들이 서서히 자각을 하게된다. 그러므로 급진적이어야 한다. 더 가속시키는 길 외에는 없다. 내부의 갈등이 팽배해진다. 서로 배신하고 싸운다. 나아가 드디어 전쟁이다. 이제 파시즘이 산화할 시기에 다다른 것이다. 독일도 일본도 이와 같은 과정을 밟았다.&nbsp;전쟁은 독일과 군국주의적 팽창에 매몰된 일본을 스스로 파멸케했다. 마치 브레이크 없는 기관차가 이와 닮았다. 달릴 때는 신나지만 멈출 수 없는 치명적 결함을 가진 브레이크 없는 기관차 말이다. 종국은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 어설픈 파시즘이 대한 민국의 민주주의에 도전했지만 끝을 맞이한 것 처럼 말이다.<br><br>ㅡ파시즘이란?ㅡ<br>자 그러면 저자가 마지막 8장에서 제시하고 있는 파시즘의 정의는 무엇인가. 저자의 견해와는 달리 나는 불가능하다는 파시즘의 정의를 초장에 먼저 내렸다. 다시 한 번 나의 파시즘 정의를 아래에 밝힌다.<br><br>[[민주주의를 위태롭게 하는 모든 것은 피시즘이다.]]<br><br>사실 나의 파시즘에 대한 정의가 옳고 그른지는 중요하지 않다. 독자들 각자가 스스로 정의를 내리면 될것이니 말이다. 또 저자는 파시즘을 어떻게 정의 했는지 꼭 알아야겠다 싶은 분들이 계시다면 강력 추천드리고 싶다. 스포일러를 포함하지 않는 것은 물분율이 아니던가.<br style="font-family: "><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3953/63/cover150/k99293043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39536398</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