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풍수: 아무래도 쉽게 접해보기 어려운 말이 아닌가 생각한다. 예술과 풍수의 조합은 왠지 영 어울리지 않는 커플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풍수라는 말은 낮선 용어는 아니다. 학교 때 배운 지리에서도 기후가 인간의 삶에 끼치는 영향을 가장 중요시하고 있고 한국의 촌락은 대부분 배산임수라는 공식에서 벗어나지 않는 형태를 띄게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이는 우리 역사와 공존해온 풍수의 이론에 의한 것이라는 점을 모르는 이도 거의 없다.
이 외에도 풍수는 조상을 길지에 매장하는 것이 일종의 효라고 여겼던 우리 조상들의 생각과 부합하여 매장 문화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흔히 어느 대통령 후보는 왕이 나올 자리에 조상을 모신 후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는 식의 풍문이 떠도는 데는 그런 연유가 있는 것이다.
위와 같은 경우와 풍수라는 용어는 지극히 부합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술 풍수' 라는 이름을 가진 이 책은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매우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위의 책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예술과 풍수의 상관관계를 조명한 책으로 그 조합자체가 흥미로울 뿐 아니라 정말로 궁금증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흔히 풍수는 바람을 다스리고 물을 얻는다는 뜻으로 '장풍득수'가 핵심이라고 한다. 또 감여학이라고도 하는데 감여는 '만물을 포용하여 싣고 있는 물건' 이라는 뜻으로 하늘과 땅을 뜻한다고 한다. 곧 바람, 물, 땅의 이치에 관한 학문이된다.
풍수는 자연 현상과 형상을 이해하고 그 근간은 주역과 음양 오행에 있다. 즉, 계절의 변화와 음과 양의 조화를 도모하는 것이 바로 풍수인 것이다. 우주의 모든 것에는 그 나름대로의 기운이 있다고 한다. 어떤 것은 양이요, 또 어떤 것은 음의 기운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 음과 양의 조화는 계절과 어울려 늘 변화하게되는데 이러한 이치는 풍수 뿐 아니라 명리학의 핵심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치의 풍수와 예술이 과연 어떤 관계가 있단 말인가?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만물이 그러하듯이 예술도 그 자체에 기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작품은 양의 기운을, 어떤 작품은 음의 기운을 가진다. 그렇다면 예술이 어떻게 기운을 갖게되는 것일까?
각각의 작품 안에 내재되어 있는 그림의 형상과 방위와 시간등의 조합에 따라 얘술품은 각기 다른 기운을 갖게되는 것이다. 물론 예술을 구성하는 질료의 성질도 예외는 아니다. 즉, 다양하고 복합적인 요소들의 결합은 예술로하여금 미적 아름다움 뿐만 아니라 풍수의 요소를 가진 기운을 가지게 한다.
그렇다면 좋은 기운을 가진 그림의 의미는 무엇인가. 좋은 양택과 음택이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이나 그 후손들에게 좋은 기운을 주는 것처럼 풍수에 잘 맞는 그림은 그 그림을 소유한 사람에게 풍수의 작용을 한다는 것이 이 책의 요체이다. 예술 작품이 지니는 기국과 구조, 유동성, 정서, 형식, 공간, 질서, 배열등은 마치 우주의 섭리대로 작용하게된다. 그리하여 작품은 길흉을 지니게 되는게 이것이 사람에게도 그에 해당하는 영향을 끼치게된다.
예술 풍수는 예술과 풍수의 조합이 아니다.
저자의 말대로라면 결국 예술은 본디 기운를 가질 수 밖에 없으며 그렇다면 예술과 풍수는 작품이 왼성되는 순간 예술과 풍수가 만난다 라기 보다는 하나가되어 예술풍수가 되는 것이다. 예술과 풍수는 둘이 아닌 것이다. 하여 그림을 소장하는 목적이나 위치들은 매우 중요한 덕목이 아닐 수 없다. 풍수는 우주의 기운을 유리하게 작용하도록 하기위해서 시간과 공간을 적절하게 얻는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제 아무리 좋은 공간이라 해도 시기를 잘못 선택한다면 올바른 작용을 얻을 수가 없는 것이 풍수이고보면 그림을 시작하고 완성하는 시기와 그림을 그리는 장소, 그리고 예술품을 장치하는 시간과 장소도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하겠다.
그리하여 하나의 예술이 탄생하는 순간 그 예술은 동양의 사상적 배경이 되는 목화토금수의 상생과 금목토수화의 상극이 음과 양을 준거하여 활성화되게 된다. 즉, 음양과 오행의 원리에 의하여 살아있는 기운으로 작옹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게 기운을 작용하는 예술품은 인간의 기체에 영향을 끼치게된다. 인간의 기체란 무엇인가. 바로 우리 몸이요 정신이자 기운이다. 이것이 예술풍수의 이치인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그림을 어떤 사람이 소장하느냐는 매우 중요한 덕목일 수 밖에 없다. 자신에게 맞지 않는(자신에게 필요한 음양 오행의 원리와 상극하는 기운을 가진) 그림을 소장한다면 그 그림이 아무리 좋은 그림이라 해도 자신에게 이로울 것이 없다는 이야기다. 결국 예술이 탄생하는 순간 그 주인은 따로 정해진다고 보아야 한다. 그림이 돌고 돌아 주인을 찾아가는 경우의 에피소드는 흔한 이야기 중이 하나이니 말이다.
음악을 예로 생각해본다면 이해가 좀더 쉬워질 수 있다. 최근 모 대학에는 음악을 이용한 치료학과가 개설된지 꽤되어간다고 한다. 음악의 기운을 이용해 환자에게 치료의 효과를 기대하며 연구하는 학문이다. 흔히 뮤직 테라피라고 한다. 꼭 학문까지 더듬어 가지 않는대해도 들으면 기분좋은 음악이 있지 않던가. 땐스 음악을 틀으면 몸이 저절로 리듬에 맞추려고 움직이는 현상이 바로 같은 이치려니. 반대로 우울한 음악은 듣는 청자를 더더욱 우을하게 하기도 한다.
이치는 이와 같아서 그림도 그러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주체라고 이해한다면, 그 안에 숨겨진 윈리가 음과 양에 의한 오행의 변화라고 이해한다면 예술풍수의 의미를 감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서구의 미술적 배경 사상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먼 동양적인 사상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막상 동양인인 우리들에게도 익숙하지 않은 예술풍수라는 말은 여전히 낮설기만하다. 지금껏 보아온 책 중에서 특히 눈에 띄는 책인지라 매우 관심이 가는 연유로 이렇게 글을 적어보지만 믿거나 말거나 하는 심정을 가진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깊은 매력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참으로 독특하면서도 매력적인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