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어느 겨울, 비보가 날아들었다. 그러니까 문맹이 탈 문맹을 하고서는 다락방에서 공부를 한 탓인지 서울로 공부를 하러 온 것이다. 말로만 듣던 서.울.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학생이 된 어느 날, 요즘 학생들의 표현을 빌자면 베프, 우리말로는 절친, 그 절친의 시집간 누나가 내게 자기 동생의 비보를 알려온 것이다. 절친의 누나는 자기 동생, 즉 나의 절친이 지금 병원에 입원해서 죽어가고 있다고 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 라고, 화들짝 놀라 병원으로 달음질 했다.

 

동대문 근처에 있는 이화여자 대학교 병원이었다. 도착해보니, 아불싸... 진짜로, 진짜로 나의 절친이 병상에 눈을 감은 채 누워있었다. 처음엔 죽은 줄만 알았다. 숨은 쉬고 있는 것인지 마는 것인지... 게다가 양쪽 콧구멍에는 무슨 관을 끼고 있었고, 옆에는 듣도 보도 못한 기계가 그 콧구멍으로 공기를 주입시키고 있었다. 저거 없으면 친구는 죽는 것인가.... 온갖 상상이 죄다 일었다. 그러나 망령되이 행동을 할 수 없어 눈만 껌벅거리고 있었다.

 

나는 산꼭대기로 한참을 올라가야 서쪽 바다가 멀리 내다보이는 충청도의 산골에 살다가는 서울로, 절친은 경상도의 깊고 깊은 두메산골의 산골에서 서울로. 이 완전 대척점 출신의 시골뜨기들이 서울의 어느 강의실에서 만난 것이다. 딱 보기에도 촌티가 쥘쥘 흐르는, 암만 이쁘게 봐줄래도 도저히 그럴 수 없는 촌딱들, 딱 그 모냥이었다. 촌딱이 촌딱을 알아본다고, 서로 눈인사를 꿈뻑하고는 서로에게 그저 만만한 상대방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아래는 당시 그에게 준 책에 있는 한하운의 시이다.

 

      전라도 길

-소록도 가는 길-

 

가도 가도 붉은 황톳 길

숨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낮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 삼거리를 지나도

쑤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며 더위 속으로 쩔름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 먼 전라도 길.

 

 

당시 친구에게 준 '한하운 전집'은 현재 알라딘에서 검색을 할 수가 없다. 하여 검색이 되는 책으로 이미지를 대신한다.

  

「전라도 길」은 자신이 겪고 있는 천형이라 칭하는 나병의 뼛속 깊은 애환을 드러내지 않고 안으로 보듬어 넣었다. 시인이 자신의 안으로, 안으로 그 고통을 감싸 않은 이 시는 그것을 드러낸 것보다 훨씬 더 가슴 깊이 파고든다. 옆구리를 날카롭게 파고드는 비수처럼 다가와서는 결국 그 비수는 나의 심장에 박혀버린다. 나는 당시 그 비수를 다시는 빼낼 수가 없다고 느꼈다. 더불어 시인의 발가락과 함께 나의 발가락도 하나가 덩달아 없어지는 느낌이었다. 한하운의 '전라도 길'을 읽던 시인 '고은'은 얼마나 가슴이 아팠던지, 자신도 시인이 되기로 했다,는 말을 아주 오래 전에 들은적이 있는데 사실인지는 알 수 가 없다.

 

절친은 당시 ‘정○용’보다 ‘한.하.운.’을 더 좋아했다. 시절은 '정지용'을 '정지용'이라 부르지 못했다. 하여 우리는 시인 '정지용'을 ‘정 똥글라미 용’이라 부를 수 밖에 없었다. 정지용을 입에 담을 수가 없었다. 불법이었다. 요즘에야 교과서에서도 만날 수 있는 시인이 정지용이지만 말이다...  

 

 

이 친구는 가끔 강의실에 수류탄을 투척하곤 했는데, 그 수류탄은 다름 아닌 그 넘의 발.음.이었다. 이 친구가 입을 뻥끗만 하면 바로 강의실에서 와하하- 폭소가 터져버리곤 했다. 도대체 이 넘은 중고등학교를 다니기는 한 것인지, 그 흔적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최소 6년이라는 기나긴 시간 동안 영어를 배운 것은 맞나? 싶을 정도로 발음이 완전 꽝! 꽝! 꽝! 아니 상상을 뛰어 넘은 창조력을 발휘했다. 영어에 경상도 사투리 억양을 넣는 것도 모자라, 문장의 인토네이션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창조력이란 정녕 이런 것이란 말인가.... 입을 뻥끗 할 때 마다 강의실은 어김없이 와-하-하-! 의 바다 그 자체였다.

 

그런데 재밌은 것은 교수님이 이친구의 그 창조적 발음을 좋아하신다는 거였다. 그도 그럴 것이 집중력이 떨어졌다 싶으면 환기의 수단으로 딱 이었다. 좋아서 좋은 것이 아니었다. 교수님은 이 수류탄을 꺼내 드시고는 안전핀을 바로 제게, 강의실 안에 주저 없이 투척해버리시는 거다. 불발나는 경우는 없었다. 수류탄이 미처 터지기도 전에 한쪽에서는 이미 삐질 삐질 웃음을 참지 못하고, 드디어 이 친구가 입을 뻥끗하면 겨우 참았던 폭소가 와르르 무너지는 것이었다.

 

당시는 학기 초 인지라 교정은 동아리 홍보물로 소 엉덩이의 똥 딱지마냥 덕지덕지했다. 여유가 나는 시간에는 주로 도서관과 동아리에 들렀다. 주로 도서관에서 이 친구를 마주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수류탄이 뜬금없이 동아리 실에 나타난 것이었다. 그 날은 정기 회의가 있어 모든 회원이 모이는 날 이었던 것이다. 이미 서로를 알기는 하지만 정식으로 인사를 나눈 적이 없었던 고로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고는 눈만 껌벅거리게 되었다. 어라라, 이 수류탄! 하고 있는데 어색한 순간도 잠시, 그 친구가 나를 언제 봤다고 말을 바로 까면서 먼저 입을 열었다.

 

어라? 니도 여깃나? 경상북도 특유의 억양이다.

오냐, 그러는 너도 여깃나? 나는 맞장구를 쳤다.

 

그렇게 첫 인사를 나누고 회의를 마친 후, 우리는 커피 자판기 앞으로 갔다. 역시 그 친구가 먼저 입을 열였다.

 

‘말’까서 기분 나쁘나? 나 재수해따 아이가~, 니는 재수 아이제?

(아, 이 때의 모습은 사실은 동영상으로 보여줘야  하는 것이 맞다)

 

나는 속으로, 재수가 무슨 벼슬이라고... 하면서,

 

아 그랬나? 니네 산촌은 ‘말’도 까서 먹나? 밤이냐 까먹게? 그리고, 학번이 같으면 똑같은 거다 이넘아, 하면서 씨익 웃었더니, 이 친구, 와-하하하--!!! 하고 허리까지 뒤로 제끼면서 겁나게 크게 웃는다. 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주변이 떠나갈 듯 웃음을 터트리는 거다. 으이그~, 이 화상!

 

그 후로 우리는 단짝이 되었다. 이렇게 친구가 된 이 넘의 체력은 한눈에 보기에도 무척이나 약골이었다. 멀대같이 키는 큰 것이 등은 구부정하게 휘어있고, 자주 헛기침을 하곤 했다. 이런 모습은 마치 의사가 아니라도 약골도 상 약골이로구나 싶을 만했다. 멀쩡하게 길을 가다가도, 순간 혼자서 중심을 읽고 벌러덩 자빠지기 일쑤였다. 이거는 뭐, 「황순원」의 송아지 도입부 인, “아주 볼품없는 송아지였다. 왕방울처럼 큰 눈에는 눈곱이 끼고 엉덩이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볼기짝에는 똥딱지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어디 이따위 송아지가 있어.” 이거랑 다를 바가 하나 없었다.

 

 

    보리피리

 

 

 

            보리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피 -ㄹ 닐리리

 

보리피리 불며

꽃 청산

어린 때 그리워

피 -ㄹ 닐리리

 

            보리피리 불며

인환의 거리

인간사 그리워

피 -ㄹ 닐리리

 

            보리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

눈물의 언덕을 지나

피 -ㄹ 닐리리

 

 

 

보리피리는 시집「보리 피리」(1955년)에 실린 것으로 서울 신문에 발표한 시라고 한다. 조념선생께서 곡을 붙여 가곡으로 부를 수 있도록 했다. 절친은 시인 한하운을 매우 좋아했다. 나는 병석의 친구에게 그의 시를 읽어주곤 했다.

보리피리는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여느 시와 다를 바가 없이 시작한다. 시인의 상황은 차치하고라고 그 어느 시보다 더욱 평범한 시어로 시작을 한다. 동심과 함께 지극히 평범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시어들이다.  특징 중 하나는 운율이 잘 살아있어 시를 읽는 사람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배어드는 리듬감이다. 그런데, 시인이 자신이 처한 아픈 상황을 모두 도려냈구나 싶을 즈음, '인간사 그.리.워.' 라는 시어를 던진다. 짧은 이 시어 안에 그가 도려냈던 모든 것을 압축시킨 느낌이다. '보리피리'라는 시어가 드디어 거부할 수 없는 힘을 드러내는 순간이다. 맑은 영혼의 동심이 시어 '보리피리'를 통과하면서 시인이 그동안 자신의 가슴 깊이 여미어 두었던 새파란 아픔이 어느새 독자의 가슴에 배어든다. 동심이 어느새 시인의 아픔, 지신의 일생을 통한 파란 아픔으로 변해있다. 

  

 친구가 한하운을 좋아한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이 시어에 다다르는 순간, 한하운의 임팩트가 가슴 깊숙히 파고든다. '이 시어에서 눈을 떨 수가 없으며, 자꾸만 되돌아 읽는 바람에 더이상 나아갈 수 없게 하는 그런 시어' 라고 친구는 말하곤 했다.

 

인간이 사회적 활동을 하는 것이 그 얼마나 그리운 일인지, 그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아니, 깨닫지 못한다. 시인이 깨달았듯 말이다. 시인이 처했던 상황이 되어서야 비로소 알 수 있을 그 귀하디 귀한 관계의 소중함을 말이다...

 

 

 

 

 

병실에서 만난 이 친구 누나의 말로는 동생이 본디 체력이 약한데, 특히 폐가 약했다. 중고생 때 툭하면 병원을 제집 드나들 듯 했고 늘 골골골 했다는 것이다. 그러던 중 급기야 추운 겨울을 맞이하여 겨울 정기 행사를 하는 중이라는 것인데 요번에는 평소와는 달리 사태가 매우 심각하다고 했다. 이거는 백화점 정기 세일도 아니고, 진짜 ㅠ.ㅠ. 문제는 집이 경상도 깊은 산골 오지인 상 촌동네라 부모님 오시라 할 처지도 못되고 누나는 직장인이라 병자를 옆에서 일정시간 돌봐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하여 도움을 줄 사람이 필요하고 절친인 나에게 연락했다는 것이다. 도움을 줄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마침 겨울 방학 중이니, 나는, 아이고 있다 마다요~! 하면서 친구 퇴원 할 때까지 걱정일랑 붙들어 매시라고 흔쾌히 승낙했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붉은돼지 2015-07-15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하여 어떻게 되었죠? 그 친구는?
뒤가 궁금하군요....

차트랑 2015-07-15 12:14   좋아요 0 | URL
(닉네임을 막상 말씀드리려니...ㅠ.ㅠ.)

안녕하세요
붉은돼지님, 저의 서재를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제가 북플을 하지 않는 관계로 어느 분께서 방문해주셨는지 알수가 없어
인사를 드리지 못하고 답방도 제대로 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찾아뵙겠습니다.

아, 그리고 친구에게 준 책이 또 있어서 다음 페이퍼를 보시면
상황을 아실 수가 있습니다.
저도 상황이 되는대로 시리즈의 페이퍼를 게시하도록 하겠습니다.

무더운 날씨에 건강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붉은돼지님 ~!





그레이진영 2015-08-25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나가다 처음 들어와 인사드립니다~~ 한하운시인의 시집이 눈에 띄어서요 시인의 시도 무척 좋아하지만 야자시간에 시를 외우면 집에 갈수 있다는 담임샘 말에 거의 한학기를 시를 외우고 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때 얻은 별명이 <서육사> 였습니다. 이육사가 아니고요. 그러다 한하운님의 개구리를 외웠더니 갑자기 교실에 3초간의 적막이...... 그리고 와~~ 하는 웃음소리가 선생님의 얼굴엔 역시!! 하는 미소가 그때 생각이 나서요 종종 들어오고 싶습니다.
 

깊은 산골의 문맹 소년이 어릴 적, 당시 신문지는 귀한 것이었다. 행여나 장에 나가실 때면, 어른들은 신문지를 얻어 오곤 했다. 지금이야 신문지의 용도가 많지 않지만 그 시절 산골 깊은 곳에서는 신문지란 매우 요긴한 것이었다. 때로는 아궁이의 불쏘시개가 되어주기도 하고, 때로는 깜깜한 밤에 신문지를 양초에 둘둘 말아 함께 불을 붙이면 그 밝기가 대낮 같았다. 문맹의 아버지는 친인척의 제사를 마치고 돌아오실 때면 늘 양초에 신문지를 함께 말아 길을 밝히셨다. 자정을 지나야 하는 고로 달이 없는 밤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신문지를 양초에 두른 다음 불을 붙이면 바람이 불어도 끄떡없었다.

 

신문지는 선물할 물건을 포장하는 포장지로도 요긴했다. 그냥 내미는 것 보다 신문지에라도 싸서 선물을 하면 그나마 모양새가 나았다. 깊은 산골, 보리 농사꾼들의 특별한 날에 주고받던 특별한 선물인 고기를 신문지에 역시 둘둘 말았다. 어디 그뿐인가. 밥상을 덮어 놓기에도 제격인 것이 신문지였다.

 

그러나 신문지의 최고 용도는 따로 있었다. 바로 학교에 가져가 점심 대용으로 먹을 누룽지를 포장하는 일이다. 문제는 점심으로 누룽지를 먹으려고 신문지를 벗겨내면 끈끈한 누룽지에 신문지가 착 달라붙어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조심스럽게 눌러 붙은 신문지를 떼어내려 해도 어린 고사리 손의 한계가 있다. 신문지의 잉크 글자가 누룽지에 찰싹 달라붙어 떨어지질 않는다. 누룽지에 배인 글자를 읽으며 먹는 누룽지의 맛에 옅은 잉크향이 배어나온다. 바깥세상, 문명의 냄새다. 이 모든 신문지의 용도를 극적으로 뛰어넘는 용도가 하다 더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벽지였다.

 

시골 산속의 보리농사꾼들에게 전용 벽지는 사치였다. 명절이 다가오면 새로이 벽지를 하곤 했는데, 다름 아닌 신문지가 벽에 달라붙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당시 벽에 바른 신문지를 읽을 만큼 어휘력을 갖추지 못했다. 대신 다락방에서 찾아 낸 것이 형님들의 교과서였던 것이다. 공부를 지지리도 하지 않았던지 형님들의 교과서는 제법 깨끗한 상태로 다락방에 놓여있었다. 하긴 형님들도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책 보따리를 팽개치고는 밖에서 하루 종일 놀다가 날이 저물거나 배가 고프면 집으로 돌아오곤 하던 역시나 촌딱들이다. 집에서는 상대적으로 빠들 빠들하며 퀄리티가 있는 종이 책을 그냥 내다 버릴 리가 만무했다. 신문지마저 귀했던 보리농사꾼들은 애들의 교과서를 다락방에 보관하고 있었다. 그렇게 교과서 읽기를 다 마친 후 남아있는 읽을거리는 유일하게 벽지로 발라둔 신문지였다.

 

당시 신문은 한자를 많이 사용했다. (어느 즈음에는 한자와 한글을 병기하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한글의 아름다움을 따라갈 언어는 없을 듯하다. 언어학자도 아니고 언어학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없는 처지라 증거를 댈 능력은 없다. 그러나 늘 느끼는 것은 표현이 무궁하고 자유로우며 아름다운 언어가 바로 우리의 모국어라는 것이다. 그런데 당시의 신문은 다수의 한자를 가지고 있었다. 상황이 주어지면 아버지께 한자의 뜻을 여쭈었고 아버지는 친절하게 알려주셨다. 서당에서 사서삼경을 읽고 붓을 배우신 아버지께서는 한자에 밝으셨던 것이다.

 

어째 거나 탈 문맹을 하고 교과서를 읽은 후에는 유일하게 읽을거리라고는 신문지 뿐 이었다. 한자가 많아 읽다가는 멈추고 또 멈추는데, 한마디로 신경질이 나는 것이었다. 그러 던 중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이 신문의 연재 만화였다. 만화의 제목은 바로「장군의 딸」이었다. 만화와의 최초의 조우였다. 그런데 문제는 벽의 군데군데 보이는 만화가 연재스럽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가만 살펴보니 일련번호가 쓰여 있다. 그럼 뭐하나. 신문지를 무작위로 벽에 발라 놓았는데 순서가 따로 있을 리가 있나. 어떤 번호는 반쯤 만 보이고 나머지는 다른 신문지 밑에 겹쳐 있어 읽을 수가 없다.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좀 읽을라하면 다음 시리즈가 없고 한참을 건너뛴다. 또 어디에선가 다시 나타난다. 이리 찾고 저리 찾고 방마다 시리즈를 찾아다니는 일이 여간 힘들게 아니다 ㅠ.ㅠ. 재미 좀 있을 만하면 없고, 그러니 내용이 남아있을 리가 없다. 아직도 「장군의 딸」의 스토리는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이 없다. 다만 한국적이지 않은 만화였다는 것. 만화의 지리적 배경이 우리의 것이 아닐 것이라는 짐작만 했을 뿐이다. 또한 그 신문이 어떤 신문이었는지도 기억할 수가 없다. 신문지는 딱 하나만 있는 줄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나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준 「장군의 딸」, 그 무더운 여름 이 곳 저 곳으로 시리즈를 찾아 헤매던 어린 시절 문맹과의 씨름은 그렇게 지나갔다.

 

시절은 빈곤을 빈곤이라 생각하지 못하던 때였다.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가 거시기 찢어지게 빈곤했던 탓에 부가 무엇이고 빈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비교의 대상이 있어야 아! 내가 째지게 가난한 집안 출신이구나, 하겠지만 황순원의 「송아지」에 나오는 돌이네의 사정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신문지로 벽지를 발라도 으레 그러려니 했다. 신문지가 누룽지에 소 엉덩이의 똥 딱지마냥 덕지덕지 붙어있듯 해도 누룽지를 잘만 먹었다. 한마디로 남 부러울 것이 하나 없었다. 온 세상이 내 것이고 친구들의 것이었다. 아쉬울 것이 없었던 나의 세상, 우리들의 세상.

 

학교 선생님은 가정환경을 조사한다고, 집에 테레비 있는 사람 손들어봐, 냉장고 있는 사람 손들어봐, 했지만 손을 번쩍 들어 올리는 넘 하나 없다. 눈만 멀뚱멀뚱, 주변을 둘러봐도 말이다. 테레비가 뭣에 쓰는 물건인지 냉장고는 또 뭣에 쓰는 물건인지 도대체 짐작도 하지 못했던 시절의 문맹들은 지들이 문맹인지 깨닫지 못했다. 그런 촌딱들은 그저 늘 신이 났고 자신들이 불행하다 생각하지 않았다.

 

문맹 소년과 그 친구들이 행복할 수 있던 시절은 갔다. 문맹을 떨치고 공부를 하여 서울로 올라오니, 오호라... 빈이 무엇이고 부는 무엇인지 비로소 알겠더라. 빈은 사람을 고통스럽게 한다. 송아지, 아니 소를 팔아도 대학 등록금이 되지 않는다. 자본은 국부론과 진화론의 순수함 본질을 변질 혹은 훼손시겼고, 자본이 세상을 지배하도록 했다. 돌이처럼 주어진 상황과 용감히 맞서는 것 자체를 하용하지 않는 사회, 자본주의이다.

 

다수의 저자들은 부를 일구는 방법을 소개한다. 인문학은 인간의 정신을 외치지만 이 인문학 역시 자본의 굴레를 벗어날 수가 없다. 자본 없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자본은 현대 인간의 정신을 대변한다. 인간이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것 또한 자본이다. 창조력은 늘 자본과 함께 언급 된다. 자본을 벌어들이는 일이 곧 창조인 것이다. 오죽했으면 자본주의(Capital-ism) 이겠는가. ism은 ‘철학적 개념에 첨가되는 접미사’라고 되어있다. 자본은 누가 뭐래도 한 인간의 가치를 매기는 척도가 되었다.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말하지만 막상 상황을 만나면, 어쩔 수 없게 된다. 이것이 바로 인간 정신을 지배하는 자본의 힘이다. 영어의 속담에는 'Money talks'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의 진의를 ‘돈은 귀신도 부린다’는 말로 의역할 수 있다. 귀신이 무슨 돈이 필요하겠는가. 말이 그렇다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느 문맹소년은 한마디로 깡촌도 그런 깡촌이 없는 산골 출신의, 촌딱의 상 촌딱이다. 더군다나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제 이름하나도 읽고 쓸 줄을 몰랐다. 그러니 문맹이지.. 아 그런데 1학년에 들어가니 선생님께서 이 문맹에게 읽기를 시키는거라... 한사람씩 돌아가면서 그렇게 몇 사람에게 읽어보라고 하는데... 며칠 후에는 그 차례가 올 것 같은 불길하고도 불길한 예감이 든다. 수업시간에 불안에 떨며 문맹 소년은 좌불안석이다. 점점 좁혀 오는 포위망처럼 가슴이 답답하다. 같은 처지의 문맹들이 더러 있었지만, 도대체 다른 애들은 그 어려운 국어책 읽기를 언제 배웠단 말인가... 듣도 보도 못한 일을 애들은 잘만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드디어 문맹 소년의 차례가 된 것이다.

선생님: 너, 얼어나서 읽어봐~!

 

명을 받은 문맹 소년은 책을 들고는 슬로우 비디오로 의자에서 일어섰다. 손은 덜덜 떨리고 이마에서는 구슬 땀이 솟는 느낌이다. 얼굴도 덩달아 벌겋게 달아오른다. 아..그러니까....하고 문맹 소년은 주저주저, 떠듬떠듬, 입이 벌어지질 않았다. 아니 입을 뗄 수가 없는 것이다. 속으로, 뭘 알아야 읽지요 성생님....ㅠ.ㅠ. 했다. 이 순간, 그 짧은 시간이 어찌나 느리게 가던지... 시간이 멈춘 느낌이었다. 애들은 빤히 문맹을 쳐다보고 있다. 속으로 그럴 것이다. 쟤, 못 읽나봐?

 

그러는 사이 성생님은 눈치를 채셨나보다. 그만 앉아! 하는 소리에 문맹 소년은 털썩 자리에 주저 앉았다. 얼굴은 화끈 달아오르고, 온 몸에서는 힘이 빠져나가며 정신마저 아득해왔다. 그러는 사이 다른 녀석이 일어나 그 문맹이 읽지 못한 부분을 읽고 있었다. 코.끼.리. 였다. 고.기.리.도 모르는 문맹이 그 어려운 코.끼.리.를 어찌 알겠나...ㅠ.ㅠ. 수업이 어떻게 끝이 났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 문맹 소문이 조만간 전교에 파다하게 퍼질 것이다. 굴욕도 이런 굴욕이 없다. 창피의 수준을 넘어 이거는 진짜...ㅠ.ㅠ. 당장 내일부터 놀림감이 아닌가... 애들이 힐끗 힐끗 쳐다보는 듯 했다. 그 문맹은 애들의 얼굴을 마주할 자신이 없다. 완전 풀죽은 강아지 신세가 따로 없다.

 

하루를 완전히 망친 문맹소년은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께 책 읽는 법을 배워야겠다고 말씀드렸다. 했더니 아버지 말씀, 학교에서 안 가르쳐주던? 하셨다. 어머니께서 문맹소년을 거드셨다. 그래도 집에서 배우면 좋지요, 하셨다. 그렇게 그날 저녁부터 등잔불 아래에서 글자를 익히기 시작했다. 물론 학교에서 여러 애들 앞에서 창피당한 일은 차마 말씀을 드릴 수가 없었다. 무슨 큰 죄라도 지은 기분에다가 그 창피함을 또 느끼는 것은 그 문맹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나도 자존심이 있지.... 에혀~ 그날처럼 복잡한 심경은 처음이었다.

 

그리하여 문맹 소년은 등잔불 아래에서 이마에 땀이 나도록 글자를 익히고 익혔다. 날이 갈수록 읽고 쓰기에 점점 자신감을 찾아갔다. 웬만한 한글은 죄다 읽고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처음 글자를 익힌 애들이 그러하듯 신이 나서는 글자란 글자는 죄다 읽어대는 습관이 든 것이다. 한글 참 쉽데이~!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지 모른다고 읽을 거리를 이리 뒤지고 저리 뒤졌다. 그런데 도회지와는 달리 부근에 읽을 글자가 없는 것이었다. 간판도 없고 마구 뿌려주는 광고지도 없다.

 

 

는 능력은 가졌으나 사용을 하지 못하고 학년이 바뀌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맹 소년은 (아니 이제는 문맹이 아니지) 우연히 다락방에 오르게 되었다. 할머니께서 귀한 신문지와 형님들의 학년이 지난 교과서를 그곳에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것이다. 이리저리 뒤지다가 바로 이거다! 하고 결정한 것이 도덕, 사회, 국어교과서 였다. 산수 교과서도 있었지만 윗 학년 산수를 어찌 혼자 익히랴... 포기하고 형님들의 국어교과서를 다락방에서 읽기 시작했다.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역시나 이야기, 즉 소설이었다. 그때 읽었던 감동적이며 지금껏 그 뒤가 궁금해서 견딜 수 없게 만다는 소설이 바로 「송아지」였다.

 

한국전쟁이라는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소설은 돌이가 초등학교 3학년인 봄 방학에 송아지 한 마리를 사오는 것으로 시작한다.

 

 

아주 볼품없는 송아지였다. 왕방울처럼 큰 눈에는 눈곱이 끼고 엉덩이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볼기짝에는 똥딱지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어디 이따위 송아지가 있어. 돌이는 아버지가 몇 해를 두고 푼돈을 아껴 모아 사온 송아지가 기껏 이런 것이었나 싶어 적잖이 실망과 짜증이 났다. 그래도 한 달 남짓 콩깍지와 사초를 잘게 썰은 여물에 콩도 한 줌씩 넣어 먹였더니 좀 송아지 꼴이 돼갔다. 그 동안 돌이는 아침마다 송아지를 마당비로 쓸어주었다. 

 

                                                          황순원, 송아지 중에서

 

 

이 때만 해도 아직은 한국 전쟁이 터지기 전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바로 얼마 뒤 6월 25일에 전쟁이 터져 상황이 급변하게 된다.

 

군대가 한 차례 밀려 내려왔다가 밀려 올라갔다. 그 동안에 동네에서는 한 집이 비행기 폭격을 맞아 홀랑 날아가는 바람에 일가가 몰살을 당하고, 동네사람 하나는 포탄 파편에 맞아 다리 하나를 못 쓰게 됐다. 그리고 군대들이 동네에 들를 적마다 곡식을 모아가고, 닭과 개와 돼지를 잡아가고, 소를 끌어갔다.

돌이네 집에 와서 송아지를 끌어가려 했다. 돌이가 송아지 목을 끌어안고 놔주지 않았다. 송아지와 함께 얼마를 질질 끌려갔다. 군인이 총부리를 들이댔다. 그래도 돌이는 송아지의 목을 꼭 안은 채 떨어져 나가지를 않았다. 지독한 놈이라고 하면서 군인이 그냥 가버렸다.

 

                                                           황순원, 송아지 중에서

 

 

상황이 그러하자 돌이네도 피난길에 올라야 한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떠나는 날 새벽 돌이는 아버지에게, “송아지두 데리구 가지?” 했다. 아버지는 그냥 짐만 꾸릴 뿐 대답이 없었다. 돌이가 재우쳐 물었다. 그제야 아버지는 손만을 잠깐 멈추고 돌이는 돌아보지도 않고, “안 된다, 강 얼음이 아직 엷어서……. 사람이나 겨우 밟구 건널까 말까 한데 소야 되나” 하고 한숨을 짓는 것이다.

 

                                                                                 황순원, 송아지 중에서

 

소설「송아지」는 잘 나가다가는 가장 중요한 부분에서 그만 탈문맹을 궁금해 죽게 만든다. 한 겨울 피난을 가야하는 소년이 차마 송아지를 떼어 놓고 가지 못해 안절 부절인데, 마침 송아지가 고삐를 끊고는 소년 쪽으로 달려온다. 다음은 가장 극적인 바로 그 장면, 아직도 탈문맹으로 하여금 그 소설을 궁금하게 하는 장면, 소설의 마지막 장면이다.

 

 

뒤에서 어머니와 아버지의, 돌이야, 돌이야, 하는 째진 목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그러나 그 소리가 귀에 들어오지 않는 듯 그냥 마주 걸어나가는 돌이의 얼굴을 환히 웃고 있었다. 이제 조금만 더, 이제 조금만 더. 송아지와 돌이가 서로 만났는가 하는 순간이었다. 우저적 얼음장이 꺼져 들어갔다. 한동안 송아지는 허우적거리며 헤엄을 치려고 안간힘을 썼으나 얼음물 속에서 사지가 말을 안 듣는 듯 그대로 얼음장 밑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러한 송아지의 목을 돌이가 그러안고 있었다.

 

                                                          황순원, 송아지 중에서

 

 

이렇게 소설은 끝나고 마는 것이다! 책의 한 쪽에는 소년이 송아지의 목을 끌어 앉고 송아지와 함께 물속으로 가라앉는 그 순간을 그린 삽화가 있었다. 아... 그 뒤를 얼마나 궁금하게 하는지... 몇날 며칠을 온갖 상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린 마음이지만 밥맛도 없는 것이었다. 3학년에 올라가서 자신의 교과서로 이 소설을 다시 만났다. 그리고는 또 고민하게 된다. 그렇게 중학생이 될 때까지 탈문맹은 그 뒤를 궁금해 하며 소설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설마 소년과 송아지가 모두 강물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것은 아니겠지...

 

 

여러 가지 설정이 가능했다. 둘 다 살아나오지 못한다면... 아...이런 비극이 또 있을까... 소년이 살고 송아지가 죽는다면... 소년의 비통한 마음을 어찌 글로다 말할 수 있을까.. 송아지는 살고 소년이 ... 이 또한 비극이 아니고 무엇이랴... 비극적으로 끝날 가능성이 훨씬 더 높은 소설이 아니던가... 물론 둘 다 사람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구출될 수도 있다. 그러나 강물이 엷어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설마 그렇게 죽기야 하겠어....읽기를 마친 후 어린 마음에 별의 별 생각을 다하게 만드는, 뒤가 궁금해 영 잊을 수 없게 만드는 소설이「송아지」였다.

 

사실은 아직도 그 추억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이 글을 쓰게 만든 소설이 바로 초등학교 2학년 때 다락방에서 형들의 책을 뒤져 읽은 「송아지」였던 것이다. 그렇게 궁금하게 만들어야 소설가의 직성이 풀리려나. 이게 바로 소설의 특징 중 하나라는 것을 나는 중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전쟁의 참담함을 전쟁을 모르는 어린 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에게 전쟁의 아픔을 보여주기에는 이만한 소설이 또 있을까. 황순원의 소설에는 송아지가 자주 등장한다. 그 유명한「소나기」에도 송아지가 등장한다.

 

 

 

누렁송아지였다. 아직 코뚜레도 꿰지 않았다. 소년이 고삐를 바투 잡아 쥐고 등을 긁어 주는 체 훌쩍 올라탔다. 송아지가 껑충거리며 돌아간다. 소녀의 흰 얼굴이, 분홍 스웨터가, 남색 스커트가, 안고 있는 꽃과 함께 범벅이 된다. 모두가 하 나의 큰 꽃묶음 같다. 어지럽다. 그러나, 내리지 않으리라. 자랑스러웠다.

 

 

 

황순원,「소나기」중에서

 

 

조선산 송아지의 다 자란 버전인 소는 유순하기로 이름이 나있는 터라 용감하다는 말이 우리의 소에게는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유순하여 평소 어린이의 손에 이끌려 다니기도 하지만 어린 새끼가 딸린 어미 소는 전혀 다른 모습니다. 과거 호랑이가 담배피던 시절 산 호랑이가 종종 민가에 나타나곤 했다. 그러나 새끼가 딸린 어미 소는 호랑이도 함부로 하지 못했다고 한다. 새끼를 지키기 위해 호랑이 용감히 맞서 새끼를 지켰다고 한다. 

 

 

조선의 소는 누렁소 이다. 정지용의 시 「향수」의 소재 중 하나는 ‘얼룩배기 황소’이다. 그 얼룩배기는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운다. 역시 누렁소인 것이다. 그런 누렁소는 농업 중심이었던 조선에서는 아주 귀한 존재였다. 역시 게으른 금빛 논과 밭을 갈거나 화물용 달구지를 끌어주는 그야말로 요즘의 트럭이나 다름없었다. 그 뿐이 아니다. 선조들은 소가 꿈에 나타나면 조상님이라 여겼다. 조선 후기 조선의 소는 약 100 가구당 하나 꼴이었다. 농사꾼들에게는 가장 유용한 수단을 제공했던 소는 귀하디 귀해 그 이름을 생구(生口)라 했다. 우리는 가족을 식구(食口)라 한다. 한마디로 밥을 함께 먹는 입(口)이 바로 식구인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신의 아내를 종종 안식구라고도 한다. 구(口)란 그렇게 호락호락한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 뜻 깊은 용어를 우리 선조들은 생구(生口)라 하여 소를 거의 가족의 반열에 올려 놓았다. 외출을 해서도 아무리 늦어도 꼭 집으로 돌아왔던 것은 바로 가족이나 다름없는 생구 때문이었다. 소에 대한 대우가 이렇듯 지극한 나라가 또 어디에 있을까.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시골의 많은 가정에서는 키우던 소를 팔이 자식을 대학에 보냈다. 아마도 소를 판 FM 장학금(파더 마더께서 주시는 장학금)으로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이 상당히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여 송아지는 소년에게 더없이 소중한 가족이요 친구요 미래의 성장 가능성을 뜻한다.

 

그렇게 귀한 송아지가 등장하는 소설로 문맹 소년은 그야말로 문맹을 떨쳐버렸던 것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양철나무꾼 2015-07-13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거 아세요~?
요즘은 더 이상 소가 파더 마더 장학금의 원천이 아니라죠.
송아지 한마리가 소로 자라는데 들어가는 밑천도 그렇지만,
소값보다 등록금이 몇배는 비싸서 말이지요~^^

차트랑 2015-07-13 14:34   좋아요 0 | URL
그거 아세요~?
활순원님이 송아지를 쓰던 시절에는 송아지 판 돈으로 등록금 했다는거요?

소 판 돈으로 등록금 하던 시절이,
아니 송아지 판 돈으로 등록금 하던 시절의 행복지수가 더 높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ㅠ.ㅠ.

현대에는 대출 받아 학자금했다가 갚지 못해서
금융제도권의 규제를 받는 젊은이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현실이던가요...

 

그러니까 그 잘생긴 영화배우 원빈이 주연한 영화 「아저씨」를 개봉할 당시였다. 그런데 미성년자인 우리 집 아이가 그 영화를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하여 그 영화가 「청소년 관람 불가」인 점을 들어 관람을 불허한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아이들이 그러하듯 아닌 줄 알면서도 떼를 쓰는 것이다. 청소년 관람 불가라고는 하지만 유해한 장면은 사실상 몇 장면 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짧은 순간이 지나가는데 왜 그러시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불만을 토로한다. 나는 관람의 제한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고, 공식적으로는 ‘인간의 보편적 존엄, 사회적 가치, 선량한 풍속 또는 국민정서를 현저하게 해할 우려가 있어...’ 제한을 한다는 명문을 찾아 설명해주었다.

 

더불어 미성년자는 입장이 불가하다는 소리를 영화관 측으로부터 듣고서야 돌아서야겠냐며 나는 이야기를 하나 해주었다. 어느 글에서 읽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분명 어느 글에서 읽었거나 아니면 누군가로부터 들었을 것이다. 까마득히 먼 옛날의 이야기라 출처를 제대로 밝힐 수가 없어 유감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어느 명성이 자자한, 이름만 대면 누구나 두 엄치를 치켜드는 요리사가 하나있었다. 그의 명성이 전국적으로 퍼져나가자 라디오와 텔레비전 방송국에서도 초대하여 그의 요리 솜씨를 대중에게 방영해주곤 했다. 그의 요리는 전국적으로 아주 잘 알려져 있을 뿐 아니라 그 명성은 심지어 외국인에게도 상당히 알려져 있었다. 어찌나 요리를 맛있게 잘 하던지 그의 요리라면 사람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요리를 먹게 해주는 것 만으로도 영광으로 알고 맛있게 먹곤했다. 흔히, ‘나 그 요리사의 음식을 먹었다~ !’라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자랑거리가 되는 그런 요리사였던 것이다. 그렇게 그의 요리는 국내외에 회자되곤 했다.

 

 

그날도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그 요리사에게 와서는 음식을 주문했다. 요리사는 자신의 모든 실력을 발휘하며 음식 준비에 들어갔다. 식사를 기다리는 동안 그윽한 요리의 향기와 요리사의 정성스런 솜씨에 감탄하고 있었다. 조만간 요리가 나오면 맛있게 먹어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그 요리사는 식사를 주문한 손님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식사를 하기 전에 한 가지 해줄 말이 있다는 것이었다. 요리사는 모인 손님들에게 말했다.

 

 

손님 여러분~!, 저의 요리를 주문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저의 요리를 늘 찾아주신 점 평소 대단히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저는 여러분을 위해 최선을 다한 요리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평소와  달라진 점이 하나 있어 미리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저는 이 요리를 하는 과정에서 평소와는 달리 약간의 개똥을 첨가했습니다. 그렇다고 레시피가 크게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약간의 개똥을 첨가했다고는 하지만 음식의 전체적인 맛을 내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요리의 맛이 어쩌면 전보다 더 좋을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안심하시고 이제부터 저의 요리를 맛있게 드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요리사의 선언과 함께 나의 이야기도 끝이 났다. 그리고는 아이에게 물었다. 손님들이 과연 약간의 개똥을 첨가한 그 요리를 평소처럼 맛있게 먹었을까? 라고. 아이는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거리는 것이었다.

 

창작과 비평사님들, 당신들이라면 그 요리를 맛있게 잡숴주실건가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동안 나는 내 자신을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 그 결과 건강이 무척이나 나빠졌고, 한동안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집을 비우기도 했다. 집을 떠나 있다가 돌아 온 어느 날, 전에는 본 적이 없는 새로운 친구를 우연히 알게되었다. 지난 해의 일이다. 이름도 몰라 성도 몰라. 한 가지 알 수 있는 것은 그 친구는 사람이 아닌 고양이라는 것. 나는 식구 중 누군가가 집안에 개나 고양이를 키우자고 한다면 반대하는 입장이다. 짐승은 밖에서 자유롭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이고, 둘째로는 짐승을 집안에 들이는 것 자체를 별로로 생각하는 일인이다. 애완동물을 집안에서 키우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겁나 재수없다, 생각할 만한 그런 일인 말이다.

 

 

우선, 이 노래를 스트릭 랜드와 록시, 그리고 이 글을 행여 읽으시는 분들께 바칩니다.

 

 

 

사실 이 친구와 처음 조우했을 때 만해도 나는 시큰둥했다. 너의 자유를 만끽하라고 말이다. 강아지도 별로지만 고양이도 역시나 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몇 일 동안 반복해서 이친구와 조우하는 순간, 아 이 넘은 다른 길고양이와는 뭔가가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했다. 나의 출현을 어떻게 포착했는지 내가 나타나기만 하면 이 넘도 어김없이 나타나곤 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는 나의 착각일 것이다. 여하튼 어디에 있다가 또 어떻게 알고 나타나는 것일까. 그리고는 또 어디론가 소리 없이 사라진다. 언제 봤다고 서로 눈이 마주치면 쪼르르 옆으로 다가와서는 좌로 딩굴 우로 딩굴. 마치 내게, 어이-, 거기! 나 좀 봐주면 안되겠니? 하는 식 인거다.

 

하여, 그래? 내가 너 좀 봐주까? 하고는 시험삼이 손을 내밀어 머리부터 등허리를 쓰다듬어 봤다. 아, 근데 이 넘이 나의 손길을 즐기는거라! 해서 나는, 엇쭈~! 하고 뒹굴거리기 시작하는 이 넘의 배를 간지럽혔다. 허걱~ 자신의 배를 허락하다니! 쉬운 놈 아녀 이거?? 했더니 슬금 슬금 일어나 여유를 부리며 유유히 사라진다. 분명 어딘가에 이 넘의 아지트가 있을 것이다.

 

 

 

 

 

멀리서 서로 눈이 마주치면 이렇게 여유만만 내게로 다가온다 겁도 없이..

 

 

 

 

그리고는 내 앞에서 길게 쫘악~ 스트레칭을 한 번 해주신다

 

 

 

마지막으로 내 앞에 딱 버티고 앉아서 제대로 쉴드해 주신다. 살짝 보이는 슬리퍼는 너무 드러버서...

 

 

 

그러던 어느 날, 일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가려는 찰나, 그 특유의 야옹~! 소리와 함께 늦은 밤에 나를 반겨주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가만? 너 혹시 배가 고픈 거니?? 잠시만 기다려봐라 하고는 집에 들어가 고양이가 먹을 만한 것을 뒤져 가지고 나왔다. 아, 이 넘이 진찌 배가 고팠네? 참치 캔 하나를 다 먹어치운다. 나는 집에 들어와 인터넷으로 고양이 전용 식사를 주문했다.

 

그리고는 아침 저녁으로 식사를 제공해주었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길고양이들의 어려움 중 하나가 바로 깨끗한 식수란다. 물이 필요한 고양이가 갈증을 이기지 못하고 오염된 물을 먹고는 병나기 일쑤라는 것이다. 해서 이름도 성도 모르는 친구의 전용 물그릇과 밥그릇을 준비했다. 그리고는 이름을 하나 지어주었다. 그 이름은 뇨자 고양이, 록시!

 

그렇게 우리가 서로 잘 지내는 사이 동네에 소문이 나고 계절도 바뀌어 겨울이 온 것이다. 록시는 현관문 앞에 누군가로부터 박스 하나를 선물받기도 했다. 그 안에는 따듯한 담요도 한 장 놓여있었다. 내 친구에게 이토록 잘해주는 사람이 누구인지 나는 모른다. 게다가 이 친구의 먹을 거리가 점점 늘어가고 있었다. 우유를 제공해주는 사람도 생겨났다. 이 친구를 소리 없이 돌봐주는 이들이 하나 둘 씩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 친구의 이름, 록시는 더욱 널리 알려졌다. 하긴, 이 친구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내 배 째시오~, 스타일인 것이다. 뻑하면 다가와 옆에 누워 뒹굴거리며 자신의 존재감을 유감없이 표현했다. 사랑 받는 법을 아는 넘이다 확실히! 이곳에는 록시의 프라이버시를 생각해 뒹구는 모습은 생략한다.

 

그렇게 해가 바뀌고 살도 부쩍 올랐다. 추운 겨울도 자신을 돌봐주는 사람들 덕분인지 잘 견뎌냈다. 포동포동 오른 살이 그 증거였다. 여유를 부릴 줄도 알았다. 성급하지 않은 성격이 참으로 마음에 들었다. 차분한 넘이다. 이런 넘은 생전 첨이다 싶은, 친화력 좋은 놈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부터인가 이친구가 보이지 않았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영 소식이 없다. 쪼르르 달려오던 모습이 사라진 것이다. 그렇게 일주일 다 지나고 있었다. 이 넘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인가...

 

 

갑자가 「달과 6펜스」의 주인공인 스트릭 랜드가 떠올랐다. 그 어느 누구도 납득할 수 없는 스트릭 랜드의 사라짐. 뭣 하나 부족할 것이 없었던 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가족도 그 이유를 전혀 알지 못해 당황해 했다. 소문은 무성했다. 심지어 은행의 여직원과 눈이 맞아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버렸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그렇게 사라져버린 스트릭 랜트를 찾아 나서는 ‘나’라는 인물 조차도 이유를 모르기는 마친가지다.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는 처음에 내 자존심에 상처를 준 소설이었다. 스트릭 랜드의 행동을 전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나’ 라는 인물이 파리에 가있는 그를 만난다. 소설 속의 '나'라는 인물은 관찰과 대화를 통해 점점 그를 이해해기 시작하지만 정작 중요한 독자인 나는 여전히 그를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소설이 다 끝이 나서도 나는 여전히 그의 심리를 이해할 수 없었다. 좌절했다.

 

 

 

 

그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는 하지 못했지만 대신 가장 인상적인 대목을 나는 암기해버렸다. 이는 아마도 나의 반항심이었을 것이다.

 

 

 

They have always a nostalgia for a home they know not. They are strangers in their birth place, and the leafy lanes they have known from childhood or populous streets in which they have played, remain but a place of passage. Perhaps it is this sense of strangeness that sends men far and wide in the search for something permanent to which they may attach themselves. Perhaps the deep-rooted atavism urges the wanderer back to land which his ancestors left in the dim beginnings of history. Sometimes a man hit upon a place to which he mysteriously feels that he belongs. Here is the home he sought, and he will settle amid scenes that he has never seen before, among men he has never known, as though they were familiar to him from his birth. Here at last he finds rest.

                                                 

 

The Moon and Sixpence

 

 

 

 

그리고 내 입맛대로 우리말로 번역해보았다. 물론 엉터리지만 말이다.

 

그들은 그들도 잘 알지 못하는 고향에 대한 향수(nostalgia)를 늘 가지고 있다. 그들은 태어난 곳에서 이방인이다 그리고, 그들이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나뭇잎이 우거진 오솔길이나 그들이 뛰놀던 복작거리던 거리는 그저 스쳐가는 장소에 불과할 뿐이다. 어쩌면 그들이 애착을 가질 수 있는 영원한 그 무엇인가를 찾아 사람들을 아주 멀리 떠나도록 하는 것은 (태어난 곳에서 자신들이 느끼는) 바로 그 낯선 느낌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뿌리 깊은 격세 유전이 방랑자에게 아주아주 먼 옛날 조상이 남기고 간 땅으로 돌아가도록 재촉 하는 것 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때로 그 방랑자는 신비하게도 자신이 머물러야 할 곳이라고 느끼는 곳에 우연히 들르게 된다. 이 곳이 그가 그토록 찾던 바로 그 고향이고, 그는 전에 와 본 적도 없는 곳에서, 전에 만나본 적도 없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여장을 푼다. 그들이 마치 태어날 때부터 그에게 친숙한 것처럼 말이다. 여기서 그는 마침내 그의 안식을 찾는다.

 

                                                                  달과 6펜스

 

 

 

 

스트릭 랜드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은 당시 내 나이가 어린 학생으로 6펜스에 더 가까운 사람이었거나 달을 바라보는 시선을 이해하지 못할 만큼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차라리 그보다 먼저 읽었던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꼴리니코프가 살인을 저지르던 그 심리를 더 이해하기 쉬웠는지도 모르겠고 아니면 그보다 훨씬 이전에 ‘위프랄라’ 라는 주문을 써서는 마법을 부리던 어린 주인공과 친해서 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다가는 나이가 훨씬 더 들어 다시 읽었을 때는 스트릭 랜드라는 캐릭터를 어쩌면 조금은 이해할 것도 같았다. 어째거나 당시 나는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처를 입고 말았다. 덕분에 나는 저 위에 있는 문장을 영문과 한글로 모두 기억하게 되었다.  

 

 

스트릭 랜드와는 전혀 이유가 달랐지만 어째든 소식을 하나 남기지 않고 훌쩍 떠나버린 것은 서로 닮았다. 하여 수소문을 시작했다. 우선 식구들에게 록시의 소식을 탐문했다. 식구들도 록시의 존재를 잘 알고 있었고 관심을 가져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친구를 알만한 동네 분들에게도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얼마 전부터 이 친구에게 이성친구가 생겼다는 것이다. 한동안 이성 친구를 사귀느라 정신이 없었다는 것이다. 둘이 재미나게 지내더니 어느 날 그 둘이 함께 자취를 감추더라는 것이다. 식구들이 전해준 정보와 동네 분들의 정보가 일치하고 있었다.

 

아~, 이 소식을 들으니 좋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했다. 짝을 만났다 하니 좋은 일이고, 둘이서 딴 곳에 살림을 차렸다하니 서운하기도 했다. 그 곳이 어디인지 궁금할 정도로 말이다. 계절로 보아하니 소식을 남기지도 않고 이 친구가 떠난 것은 일 년 전 이맘때의 일이다. 어디서 잘 살고 있는 것이더냐? 록시, 나는 이제 스트릭 랜드의 심정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단다. 너도 잘 알다시피 이곳도 살기 좋은 곳인데 록시, 니네 부부 고향으로 다시 돌아오면 안되겠니?

 

 

 

 

 

 


댓글(4)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양철나무꾼 2015-05-28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고양이는 아마 하늘나라로 가지 않았을까요?
요즘 도처에 고양이를 잡아다가 돈 벌이로 활용하는 넘들이 있다던데~--;

옛날 이야기에나 나올법한, 완전 초 긍정적인 마인드 배워갑니다~^^
`...그리하여 둘은 행복하게 살았답니다~.`하는~...

차트랑 2015-05-28 15:43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양철나무꾼님,
말씀을 들으니 뭐라고 답 글을 드려야할지 모르는
안타까운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는 말씀이로군요.
덕수리 오형제는 어디서 뭣하고 있나 모르겠네요
못된 짖 하는 넘들 잡아가지 않구요 ㅠ.ㅠ

날이 무덥습니다 건강에 늘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양철나무꾼님~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린이 2015-05-28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동네 식당 뒷골목 쓰레기통위에 앉아있던 노란 고양이에게 퇴근시마다 눈인사를 건네곤 했는데, 겨울이 지나고 여름이 되어도 보이질 않아서 행방이 궁금하기도 하고 이런저런 상상을 해보곤 하는데요. 부디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기를~ 근데 저 고양이 색깔 예쁘네요~ ㅎㅎ

차트랑 2015-05-28 15:4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그린이님,
말씀해주신대로 저 역시도 어디에선가 부디 잘 살고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답례로 서재를 방문드렸는데
아직 게시하신 글이 없어 그냥 돌아왔습니다.
좋은 말씀으로 서재활동 해주시기를 바라며
찾아주신 고마움을 전해드립니다 그린이님

날이 덥습니다. 늘 건강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