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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리 얼려진 외래어 중에는 뉘앙스(nuance)라는 말이 있다. 프랑스에서 온 말이라고 하는 이 뉘앙스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음색, 명도, 채도, 색상, 어감 따위의 미묘한 차이, 또는 그런 차이에서 오는 느낌이나 인상, 느낌, 말맛, 어감' 이라고 되어 있다. 이 말의 풀이로 보아 비단 언어에만 적용되는 말은 아닌 것 같다. 예술, 건축등 매우 폭 넓은 범주에 통용될 수 있는 말이며 인간의 모든 행위는 물론 자연의 모든 느낌을 표현 할 수 있는 참으로 유용한 말이지 싶다.

 

우리 말에는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이 있다. 같은 말이라도 어떻게 말하느냐 하는 표현상의 기법을 지적하는 말인 듯 하다. 사실 누군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언어는 언어 그 차제만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은 드물것이다. 상대방의 몸짖, 눈빛, 억양등 모든 이해 가능한 방법들이 동시에 총동원되는 그야말로 종합적인 수렴 과정을 거쳐 드디어 이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러나 이 모든 일련의 혹은 멀티 태스킹은 동시에 발생한다. 참으로 판단이라는 것은 복잡하고도 복잡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또 우리 속담 중에는 '말 한마디에 천냥 빚 갚는다'라는 말도 있다. 말 한마디로 어떻게 천낭 빚을 갚을 수 있을까 싶지만 이는 표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지 싶다. 어쩌면 천냥 빚이 아니라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순간에 직면 할 수도 있다. 이럴 땐 말을 잘 해야 살아 남을지도 모른다. 귀중한 목숨을 말 한마디로 살려 낼 수 있다면 말이란 참으로 잘하고 볼일이다. 물론 이는 극단적인 경우에 해당하지만 말의 중요성을 강조하다보니 여기까지 오게되었다 ㅠ.ㅠ

 

그러고 보면 언어는 마술사와 같다. 말은 단순한 언어적 행위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사전적인 의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음색, 명도, 채도, 색상, 어감등 종합세트를 갖추고 있는 것이 말인가 싶다. 아...말이란 창조의 신이 관여하는 것임에 틀림이 없다...

 

 이러한 아주 많은 것들을 동시에 전달하는 것이 말이건만, 흔히 말하는 text(문자)는 이러한 뉘앙스를 올올이 담아내는데 한계가 있는 방법은 아닌가 싶다. 물론 문자보다 더 말을 잘 전달 할 수 있는 다른 매체는 없어보인다. 직접 상대방을 대면하지 않는 한 말이다.

 

현대는 '발전' 혹은 '발달'의 시대이다. 그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지는 속도의 시대라는 뜻이다. 책은 그저 문자로 의사를 전달하기는 하지만 일방적인 수단이다. 그러나 인터넷과 기타 서로 주고받는 문자(texting)은 상대방과 비록 거리감은 있으나 상호 목적을 달성하는 싱호 수단이다. 누군가가 글을 포스팅하거나 문자를 주면 그에 상응하는 반응이 오게 마련이다. 이 반응을 기대하고 뜻을 표현하는 것이 주된 것은 아니겠지만 일부 목적이 될 수 있다.

 

하여 현대의 필수적인 소통의 방식으로 자리매김해왔다. 그 편리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으며 필요에 따라 상호간의 은밀함이나 보안성을 보장 받을 수 있는 참 좋은 매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소통의 방식에 문제가  하나 있는 것이 단점이라면 큰 단점이 될 수 있다.

 

 

Nuance를 전달할 수 없는 그 치명적 약점, texting...

 

Texting은 문자만을 전달하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진 매체이다. 그 한계를 극복해보고자 다양한 이모티콘들이 등장했지만 역시나 그 약점을 보완하기에는 턱없는 부족함이 있다. 상대방의 몸짖과 표정, 그 눈빛, 그 상황에서 발생하는 총체적인 판단의 근거들이 제약을 받기 때문에 상대방의 감정을 온전하게 읽어 낼 수가 없다. 이것이 현대의 필수적이면서 중요한 소통 방식이 가지는 치명적 약점이다.

 

나는 학생들에게 종종 해주는 말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말을 주고 받을 때의 자세인데, 남여의 학생들에게 따로이 전해준다.

 

1) 여학생들에게: 누군가가 다가와 '당신을 사랑합니다' 라고 말하면, 절대로 그의 입술을 믿지 마시라...그의 눈빛을 바라보고 그의 마음을 읽으려고 하시라...그의 눈빛은 그의 입술이 전하고자 하는 내용과 일치하는지를 읽어내려고 노력하시라...

 

2) 남학생들에게: 여자 친구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때는 절대로 '고개를 숙인다거나 땅바닦을 바라보며 혹은 하늘을 쳐다보며 고백하지 마시라...'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입술이 아니라 그대들의 가슴과 눈빛으로 사랑하고 있느라고 전달하시라...그대의 진정성을 그녀에게 고스란히 보여주시라...상대방은 땅바닦도 아니고 하늘 도 아니지 않은가...

 

3) 모두에게 : 누군가에게 미안하다고 말할 때는 상대방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말하시라... 정말로 그대가 그나 혹은 그녀에게 미안해하고 있다는 것을 언어가 아니라 온 마음을 담이 전달하시라...정녕 미안해 하고 있다는 그대들의 마음을 고스란히 담아 전해주시라...

 

물론 마주하기가 쑥스러운 상황에 당면하기도 한다. 이땐 되려 문자가 좋은 감정의 전달 수단이 되기도 한다. 경상도 싸나이들은 아마도 문자로 전달만해도 충분히 이해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대부분 부부싸움 후의 일이 이에 해당하겠지만...

 

문자는 종합적인 감정을 담아낼 수 없는 매체라는 한계를 가진다. 우리들이 서로를 종종 오해하고 상처입고, 또 서로 멀어지기 쉬운 이유이다. 게다가 인터넷이라는 매체는 주로 상대방에 대해서 많은 것을 말해주지 않는다. 상대방의 성격, 상대방의 환경, 상대방의 표현 방식, 상대방의 나이, 상대방의 사회적 조건 등등 이 모든 것들이 소통에 중요한 참고사항들이건만 이를 반영할 수가 없다. 이것이 쉽게 친해질 수 있지만 오히려 쉽게 헤어지는 이유가 되어주기도 한다.  

 

발달 혹은 발전이라는 용어는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는 이유이다. 기술이 발달하고 매체가 발달하지만 소통은 왠지 발달하는 것 같지가 않아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다. 단지 전달의 방식이 발달하는 것만으로 문명이 발달하고 매체가 발달한다고 말하는 것이라면 나는 이 것을 발달이라 말하고 싶지 않다. 매우 미묘하고 섬세하며 감정적이고 총체적인 전달 수단인 언어가 문자라는 매체를 통과할 때 오는 그 왜곡현상을 무시해도 너무 무시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

 

알고보면 우리들은 text의 세계속에 살고 있다. 상대방을 직접 대면하기보다는 신속하며 편리한 text를 사용한다. 각종 공문이 그러하고 책이 그러하며 인터넷 정보가 그러하고 알라딘의 리뷰가 그러하다. text는 그 효율적인 면에서 매우 훌륭하지만 더불어 건조한 전달 방식이다. 단점을 가지지 않은 완벽한 것이 존재가 있을까...그것은 자연의 섭리는 아닌 것 같다..자연의 모든 존재들도 언젠가는 스스로 멸하는 순간이 오기때문이다. text가 가지는 건조함이라는 특징이 바로 왜곡의 주된 원인은 아닐까 싶다.   

 

 

자손심에 손상을 입지 않는 한 화해는 가능하다..

 

그러나 text가 가지는 건조함을 우리는 극복할 수 없는 것일까...아마도 우리는 여기에서 개인적인 딜레마에 봉착하지 않나 싶다. 그것은 개인이 가지는 감정, 바로 이것이다. 혹자는 이성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이성이야말로 인간이 지닌 최고의 '선 혹은 이데아'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은 말그대로 형이상학적인 방법론에 불과한 것이다. 현실의 세계에서 막상 부딪는 내용들은 대부분 감정에서 비롯한다. 그렇지 아니한가...

 

자존심이라는 것이 그 중 가장 강력한 방어기제이다. 자존심은 이성을 곧잘 뛰어 넘는다. 오늘은 새벽 6시에 기상하여 일과를 시작하기로 되어있는 내가 알리딘에서 이러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이성적으로 본다면 나는 잠들어 있어야 한다. 분명 나는 이성적인 시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것들에서 나의 이성은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이성은 때로 이토록 무기력한 것이기도 한 것이다.  

 

텍스트의 결정적 결함을 말하려다가 딴 곳으로 흘러 버렸다. 생각해보니 극복이랄 것도 없다. 서로 얼굴을 맞대지 않는 한 극복은 애초에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한가지 대안은 있을 것도 같다. 바로 자존심이다. 아무리 힘든 상황에 처한다 하더라고 자존심에 상처를 입지 않는 한, 그는 스스로 일어설 수가 있다. 마지막까지 스스로의 자존심을 지키려 죽음도 불사하는 동서양의 여러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다. 지는 줄 알면서도 싸운다는 것은 바로 스스로의 자존심이 걸려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자존심을 허락하는 texting...이러한 texting이 가능한 일인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이것으로 일말의 해답을 찾으려 한다. 소통은 상호적이고 교환이라는 특성을 가진다. 그러므로 얼마든지 상대방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지 않는 방법을 각자는 생각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지극히 개인 저마다에 달려있으므로 주관적일 수 밖에는 없다. 그러므로 역시 한계가 있다. 매뉴얼이 따로 없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희망을 잃지 않고 싶은 것이다.

  

나는 자존심도 없나봐...라고 말하며 자괴감에 빠진 사람에게 그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아무리 화가 난 사람이라도 자손심에 손상을 입지 않은 한, 그 사람은 화를 쉽게 가라앉힐 수 있고 서로 화해를 하기도 쉽다. 서로 스스로가 미안하다고 말하기도 쉽다. 어쩌면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어주기도 한다. 그동안 그대를 잘 몰랐노라고...순간 화가 많이 났었노라고...그러나 이제 보니 당신도 멋진 사람이었노라고...말이다. 이것이 우리들이 기억해야 할 현대의 미덕은 아닐까...그런 것이 자존심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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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2-04-26 0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자주 사용하는 단어 뉴앙스nuance가 있는데, 이와 관련 책도 풍부하네요. 오비디우스의 '사랑의 기술'도 보관함에서 10년 넘게 기다리고 있는데, 차트랑공님 페이퍼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차트랑 2012-04-26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구구...마립간님,
저는 사랑의 기술이 참 부족해요 ㅠ.ㅠ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마립간님~





마녀고양이 2012-04-26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입니다.
글이란 실제 구체적 대상이 없으므로, 자신의 마움대로 투영하는 경향이 있다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그러니까 다들 좋아하는 책의 종류도 다른거 아닐까 하구요.. 이게 일방적인 매체인 책이라면 별 문제가 없는데, 오늘날의 인터넷 세상은 충분히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렇기에 누군가에게 쓰는 글이라면 상대가 오해하지 않도록, 또는 심적 불편감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해야 하는게 아닐까 합니다. 과연 상대에게 상당한 심적 문제를 일으킨다면, 그 글의 원래 효용성이 제대로 발휘될 수 있을까 하는 측면에서 말이죠.

저는 어떤 일을 할 때,
의도도 중요하지만 과연 효과적인가 라는 문제 역시 무시할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제 하는 일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행위를 한 본인도 마찬가지로 상처를 입거든요. ㅠㅠ

차트랑 2012-04-26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마녀고양님,
햇살이 무척 좋은 하루입니다. (바람이 좀 불기는 하지만..)

옳으신 말씀입니다.
어느 책을 읽다가 화가날때 안 읽으면 그것으로 모든 상황은 종료가 되지만
문자나 온라인에 포스팅하는 글들은
상호 오해의 여지를 많이 남기는 특성이 있는 듯 합니다.

최근에 제가 어느 페이퍼에 댓글로 쓴 말도 아래의 취지에 해당합니다.
"칼자루를 쥐었다고 맘대로 휘들러서는 안된다^^
만약 무용을 뽑내기라도 하듯이 마음대로 휘두른다면
그 칼의 날을 잡은 상대방이 그 얼마나 심한 상처를 입겠는가..."

마녀고양이님께서 말씀해주신대로
결국 서로 각각의 상처를 입고 말죠
이럴 땐, 참 글이 지적해주신 효용성을 발휘하기는 하는 것인지...ㅠ.ㅠ

저의 서재를 찾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마녀고양이님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기기 바랍니다~







진주 2012-04-26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표현도 중요한 요소지만 궁극적으로 가장 중요한 건 역시나 진실된 마음이란 걸 살면서 자꾸 느끼게 되네요. 세월이 지나니까 언젠가 진실이 먹히는 시기가 오더라구요.
랑공님, 좋은 봄날 맘껏 누리세요^^ 여기도 날씨 한번 참 좋습니다~

차트랑 2012-04-26 2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구, 진주님,
오랫만에 뵙습니다.
그간 잘 지내셨는지요.
진실된 마음...참 좋은 말씀입니다..
저도 오래도록 기억하겠습니다.

오늘 외출을 했는데 봄날이 아주 좋더군요.
저의 서재를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진주님~
 

 요즘 악성코드니 바이러스니 하는 것 때문에 정말 불필요한 시간들을 허비하는 일이 잦아졌다. 몇 일 전 불청객으로 고생을 했건만 또 같은 현상으로 애를 먹고 있다. 컴퓨터의 진화 과정을 나름대로 지켜본 사람으로 간과할 없는 것이 또한 바이러스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발전이라는 메커니즘에는 그 반대급부인 부정적 파생품이 꼭 따라다닌다. 트로이 목마라는 바이러스가 전국을 동시에 강타한 적이 있었다. 트로이 목마로 피해를 본 것은 트로이만이 아니었다. 국내의 컴퓨터 유저들의 피해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나도 그 피해자 중 한 사람으로 데이터를 모두 날려버리는 초유의 사태를 경험했다. 복구비용으로 수 십 만원을 들였지만 파일들은 제대로 복구되지 않았다. 사라진 업무자료들을 수작업하여 입력하는 엄청난 일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하는 그 상황이란....


컴퓨터가 만들어지면서 그에 걸맞는 바이러스도 만들어졌다. 컴퓨터가 진화하면 덩달아 바이러스도 진화했다. 더욱 강력한 방화벽및 항바이러스 프로그램이 개발되면 또 그 방화벽이나 안티바이러스를 여지없이 관통하는 보다 강력한 바이러스가 나타난다. 마치 서로 더 강력한 무기를 보유해야 한다는 강박관념과도 같은 이론이 이곳에서도 작동하는 모양이다.

서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누가 이기나 내기하는 것도 아니고...아... 유용한 그 무엇인가가 나타나면 여지없이 그 꼴을 못 보겠다는 듯이 반대급부의 그 무엇이 나타난다.

  

이는 비단 컴의 바이러스만이 아니다. 질병도 이와 마찬가지여서 치료법을 개발하고 나면 또 다른 알 수없는 강력한 질병이 인간을 괴롭힌다. 수퍼바이러스라는 녀석이 요즘 조용한데, 얼마 전까지 유럽을 공포의 도기니로 몰아 넣은 녀석이다. 흔히 약이 없는 바이러스가 수퍼바이러스인 것이다.



바이러스 못지 않은 중독 증후군


가만히 생각해보면 컴 바이러스나 인간의 질병인자인 수퍼바이러스만 그런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세계적인 IT강국을 목표로 한다고 공표한 적이 있다. 전국에 광 케이블을 깔아 초고속 인터넷 네트워크를 각 가정으로 연결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기업들은 그 목표에 따라 분주히 움직였고 초고속망을 이루어 냈다. 초고속이라는 엄청난 속도 덕분에 PC방이 생기고 온라인 게임의 장이 마련되었다. 매체에서는 프로 게이머들의 대결 이벤트를 마련하는가하면 방송으로 직접 내보내기도 했다. 한 때 프로게이머가 되겠다고 공언하던 학생들이 참 많았다. 그렇게 하여 대한민국은 온라인 게임의 천국이 된 것이다.

 

초고속 인터넷 망으로의 진화는 주변에 PC방을 생성시키는 결정적 요인되었다. 하여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은 이 음침한 피시방에서 엄청난 시간을 보내게 된다. 법제도가 만들어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어린이와 성인들이 옆자리에서 함께 게임에 몰두했다. 법제도는 늘 이런식이다. 문제가 발생한 후에야 불야불야 대책을 강구한다는....그 결과 어른들이 피워대는 담배연기는 어린 고사리 같은 초등학생들의 폐부 속으로 여과없이 들어갔다.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한 때는 이미 상당수의 피해 아동들이 양산된 후였다. 그리고 우리들의 청소년들은 서서히 인터넷 증후군으로 점점 깊이 빠져들어간다.

 

 여하튼 이렇게 대한민국은 IT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 그러나 한국의 IT 산업이 발전할수록 우리는 우리들의 청소년들을 희생시켜야 했다. 드디어 인터넷 중독현상을 보이는 젊은이들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점점 그 규모가 커져 사회적인 문제가 되었다. 마치 컴퓨터가 진화할수록 유저들에게 침투하는 바이러스처럼 사회에 쟁점을 일으키기 시작한 것이다. 매체에서는 인터넷 중독현상을 파악하는 여러 가지 지표들을 방송하기도 했다. 그렇게 병원의 첨단기기로도 검색되지 않는, 눈에 보이지 않는 진짜 수퍼 바이러스가 우리들의 청소년들은 감염시켜가고 있었다.

이는 어쩌면 무엇인가가 새로이 진화를 한 후에 필연적으로 뒤따르는 반대급부, 바로 그것은 아닐까... 



주목받지 못하는 인터넷 증후군


한동안 TV에서는 인터넷 중독현상을 판단하는 여러 가지 팁에 관한 이야기들로 구성된 프로그램을 방송하기도 했다. 신문 혹은 TV의 뉴스가 PC방에서 게임에 몰두하다가 쓰러져 사망하는 기사들을 내보낼 정도로 그 심각한 폐해가 드러났던 것이다. ‘스스로 자신을 중독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가 큰 화제 거리였다. 각 가정에서는 자녀들을 중독현상에 빠지지 않도록 신경을 바짝 써야했다. 그러나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았다. 인터넷 채팅에 빠져 가정이 파탄 났다는 기사도 심심치 않은 가십거리였다. 대한민국이 인터넷을 타고 전파되는 바이러스에 단단히 결려들어 아파하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이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로 앓고있는데도 불구하고 요즘은 인터넷 중독 현상은 사회적 이슈가 되지 못하고 있다. 알라딘의 검색창에서 검색되는 관련도서의 수는 당면한 사회적 현상에 비한다면 턱없이 조명받고 있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이는 인터넷 중독이 사라져서가 절대 아니다. 그 정도는 점점 더 심화되고 있지만 이제는 만성이 되어버린 탓이다. 사회는 인터넷 중독현상에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다. 시간이 흐르다보니 무뎌진 것일까... 우리 사회는 어쩌면 인터넷 중독을 우리 삶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마치 암으로 사망하는 일이 흔하다보니 이제는 그리 놀랄 일도 아닌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이는 더더욱 심각한 현상이 아니던가... 


인터넷 증후군이 주목받지 못하는 또 다른 요인이 최근 부상했는데, 그것은 바로 스마트폰이다. 쉽게 말해 안드로이드 폰 덕분에 인터넷 증후군은 뒤로 밀려난 이슈가 된 것이다. 이제는 인터넷 중독은 기사나 보도거리가 되지 않는다. 시대에 뒤떨어지는 이슈이기 때문이다. 사회는 분명 인터넷 중독으로 점점 더 병들어가고 있지만 매체는 한물간 인터넷 중독을 기사화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매체 자체가 뒤떨어져 보이기 때문이다. 언제 쩍 이야긴데...하고 말이다. 인터넷 중독현상은 어쩌면 회복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는지도 모른다...




새로운 강자, 스마트폰 증후군, 그리고 소외 


인터넷 증후군을 밀쳐내고 등극한 강력한 증후군은 바로 스마트폰 증후군이다. 어쩌면 안드로이드 증후군이라고 하는 것이 더 근접한 표혀일지도 모르겠다. 버스나 전철을 타보면 이 현상이 그 얼마나 생각해볼 만한 것인지 감지할 수 있다. 과거에는 신문을 읽거나 가방에서 책을 꺼내 읽었다. 미처 신문을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은 옆 사람의 신문을 슬쩍 넘겨보는 장면이나 옆 사람과 조용히 이야기하는 장면들을 목격할 수 있었다. 물론 피로에 지쳐 잠든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 요즘의 지하철 모습은 예전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저마다 스마트폰으로 그 무엇인가를 열심히 한다. 같은 친구끼리 함께 지하철을 타고 있어도 서로 말을 주고받는 기회가 거의 없다. 스마트폰으로 그 무엇인가를 하느라 대화를 나눌 기회가 단절된 것이다. 이는 지하철에서 만이 아니다. 자신들의 가정의 모습을 상상해보시라...


 

한 때 TV가 가족 간의 대화를 단절시키는 주범이라고 말하던 시절이 있었다. 실제로도 그러하다. TV를 보느라 대화를 나눌 시간이 없는 것이 사실이 아니던가... 그러나 그 TV는 상대가 되지 않는 가족 단절 요인이 나타났으니 바로 안드로이드의 출현이다. 저마다 한 대씩 스마트폰으로 또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는 가족들...

 

물론 여전히 TV를 경계하는 도서가 있다. 어린 자녀를 두신 부모님들 께서는 한 번 쯤 필독하시라고 권해드리고 싶다. 전문가는 TV를 과연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그리고 부모로서의 생각과 함께 정리를 해본다면 아마도 더 없이 좋은 결론을 이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카카오톡이 되려 가족 간의 대화를 여는 기회가 되어주었노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언뜻 생각해보면 그럴 듯 한 말이다. 그러나 이는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경우는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동안 그 얼마나 가족간의 유대감을 상실하고 있었으면 카카오톡으로 그 연대감을 회복했노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또 그것이 사실이라 해도 과연 그러한 경우가 몇이나 될까... 자못 의심스러울 뿐이다.


스마트 폰은 이제 자신의 안드로이드가 되어버린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자신을 나타내는 그 안드로이드 말이다. 눈앞에 없는 그 누군가와 연락을 주고 받기위해서 정작 자신의 눈앞에 있는 존재는 투명인간이 되어버린다. 안드로이드 증후군을 가진 사람은 말할 것이다. 그것은 안드로이드 증후군이 아니라 인간과의 끈임 없는 연대감을 주는 새로운 방식에 불과할 뿐이고 그 방식이 새로워졌으니 그에 적응하는 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진화의 능력이라고... 물론 틀린 말은 아니나, 이는 안드로이드를 통해 그 누군가와 끊임없이 접촉하고 있다는 느낌이 자신을 단절된 존재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소외와 단절을 의식하지 못하는 이러한 현상은 어쩌면 더 무서운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만약 어느 순간, 나에게 안드로이드 폰이 사라지는 그 순간...나는 그 누구와 연대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인가... 과연 나는 안드로이드 없이도 그 공허감이나 고립감, 그 철저한 단절로 인한 인간 소외를 느끼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어쩌면 끝없는 절망감을 느끼거나 두려움을 느낄 지도 모른다. 인간은 본디 사회적 존재이기에 혼자라는 느낌에는 익숙하지가 않다. 세상에 자기 혼자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을 것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개개인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개개인의 단절은 결국 사회로 확산되게 마련이다. 점점 사회는 건조해지고 일시적인 관계를 형성해갈 가능성이 그만큼 더 커진다. 이는 지속적인 인간관계의 핵심이 신뢰라는 덕목을 망각하게 할 수가 있다. 순간적으로 불쾌해진 상대방과 문제점을 개선하려는 의지는 훨씬 미약해질 수 밖에 없다. 연락을 안 하면 그만이니까... 서로 부딪히고 몸으로 충돌하면서 살아가는 사회는 불편할 수는 있지만 그런 사이에 보이지 않는 유대감을 형성하게된다.

 

그러나 사회적 불신 현상이 확산 될 때, 안드로이드 내에서의 신뢰감은 그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 이는 일종의 악순환을 연상케 한다. 물론 이것이 사회의 진정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면 모르겠지만, 아직은 절대로 그럴 수는 없는 것이 우리들의 사회이다.

 

이 책의 제목은 스마트폰 없는 사람들을 겁박하고 있다. 꿈도 꾸지 말랜다 ㅠ.ㅠ


 

TV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고 딱히 TV를 열심히 보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TV는 늘 켜져 있는 것이다. TV가 꺼져있으면 왠지 불안해진다. 그래서 그냥 켜놓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분... 해당 용어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TV증후군을 가진 분이다. 자신의 고립감, 단절의식을 망각하게 해주는 도구가 바로 TV인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안드로이드 폰이 없으면 매우 불안해지다. 이 강도는 TV수준을 훨씬 넘어선다. 안드로이드 폰은 늘 가지고 다닐 수 있는 것이고 TV보다 훨씬 더 가까이에 둘 수 있으며 훨씬 그 용도가 다양하고 무엇보다도 타자와 연결시켜주는 필수 도구이기 때문이다.

 

TV에서 고립감을 위로받는 경우보다 안드로이드에 더 의존적일 수 밖에 없다. 그 의존도가 클 수록 단절의식은 더 커지게 마련이다. 그 초조함과 불안감, 철저한 단절의식을 느껴보신 분이라면 스마트폰 증후군을 가진 분이다. 물론 이는 개인마다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지 않을 때 화가 더 난다거나, 초초 및 불안, 손에 땀이 나는 분이라면 심각하게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아직은 스마트폰 증후군에 대한 매체의 반응은 크지 않은 듯 하다. 그러나 증상이 커갈 수록 사회적인 이슈가 될 것이고 그 탈출 방법을 소개하는 프로그램들이 제작될 것이다. 문제는 그러한 상황에서는 모든 것이 시기적으로 늦어버린 다는 것이다. 환자의 병증이 이미 깊어진 후에나 제대로 된 인식이 형성되고 치료제도 만들어내는 것이다. 영혼을 잠식당하면 치료할 방법이 없다.


 문명이 진화할수록 그 편익이 증가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내 놓아야 하는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최근 내가 발견한 사람들의 모습은 걸어가면서도 스마트폰에 눈이 가있고, 건널목을 건너면서도 스마트폰에 눈이 가있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자동차가 오는 것도 모른다. 양재천을 걷다가 자전거를 혼자 타고 가던 여성이 사고가 나는 장면을 목격했다. 저렇게도 혼자서도 사고가 나네 싶었다. 거리가 가까워 알게된 것인데 그녀는 양재천의 자전거도로를 달리며 스마트폰을 한 것이 사고의 원인이었다. 넘어진 상태에서 아픈 다리를 손으로 만지면서도 눈은 스마트폰에 가있었다. 이런...

 


 거리에서 지나치는 많은 사람들은 마치 무슨 바이러스에 걸려있는 듯 보인다. 컴바이러스는 알약으로 잡으면 그만이고, 컴을 영 못쓰게 되었으면 다시 사면 그만이다. 컴은 단순한 도구이자 기계가 아니던가... 그러나 영혼을 잠식당한 인간 사회는 치료할 방법이 없다. 통신사에 문제가 발생하는 순간, 세상에 오직 나 혼자라는 두려움을 경험하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지만 완전한 단절과 고립을 느끼는 순간이 오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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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04-24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절, 그게 가장 심각한 문제인거 같아요.
카카오 톡으로 내내 대화를 하고, 인터넷으로 소통을 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실제 세상과 거리가 있는거잖아요....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 3부인가에 그런 세상이 나와요.
너무나 발전되어 사람끼리 더이상 실제로 만나지 않죠. 손잡거나 안는 것은 서로의 세균이 묻을까봐 질색을 해요. 더이상 성관계도 없죠. 그렇게 살아가는거예요. 너무 극단적인 비유라고 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글쎄요, 주위 한번 안 둘러보고 내내 이어폰 끼고 작은 박스만 보는 사람들이 가득한 지하철 안..... 사람 관계가 피상적으로 변하는 것, 또는 이론적으로 변하는 것은 진행 중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

차트랑 2012-04-24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녀고양이님의 말씀을 들으니 걱정이군요.
우환의식이 솟아난다는 ㅠ.ㅠ

물질문명의 발달이 정말 인간의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인지는
의심스럽습니다. 발달이 정도와 행복과의 경계는 있는 것인지...

사실 신호등에 대기하고 있다고
스마트폰에 신경을 쓰느라 운전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 자동차 운전자에게
콰당~!! 하고 한 방 먹었거든요^^
꽁무니를 들이 받힌 것이 7번 째입니다 ㅠ.ㅠ

운전자분은 전화기를 들여다보다가 실수를 했다고 그러시더군요 ㅠ.ㅠ
에고~ ㅠ.ㅠ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마녀고양이님

잉크냄새 2012-04-24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성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변종 바이러스가 생기듯 증후군도 이렇게 쌓이다 보면 감당할 수 없는 변종 증후군이 생기겠네요.

저도 가끔 한국에 들어가 지하철을 타보면 자신만의 세계에 몰두한 사람들을 보고 왠지 모를 이질감을 느끼곤 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차트랑 2012-04-24 1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구, 잉크냄새님께서 저의 서재를 찾아주셨군요.
고맙습니다.
말씀해주신 대로 변종바이러스^^
바이러스도 진화한다는 뭐.. 그런 거인 듯 합니다^^

닉네임이 낯설지는 않은 분 중 한 분이 잉크냄새님이시죠.
어디에선가 가끔^^
잉크냄새님의 서재로 찾아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저를 찾아주셔서...

2012-04-25 18: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4-26 00: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4-26 10: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4-26 10: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배불리 2012-05-23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의 숙제가 생각나는 글이네요.
 

소설 읽는 재미를 즐기시는 분들이 계실 것이다. 비록 애호하는 대상 혹은 장르, 혹은 저자등 다양한 범주의 소설들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읽을 것이다. 그 즐거움을 또 어찌 다 표현할까...

 그런데 나는 십수년 전 이문열의 삼국지 세트를 기점으로 소설을 손에서 내려놓기 시작하여 이제는 1년에 1편의 소설을 읽을까 말까이다... 삼국지를 읽게된 시기는 나이에 비해서 이른 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초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아버지께서 읽으시던 박종화의 삼국지를 읽은 것이 그것으로 모두 6권짜리 였다.

 

 

아버지께서는 겨울에 삼국지를 모두 3번 읽으시고는 아이들을 앉혀 놓고 연속극을 들려주듯이 삼국지를 시리즈로 들려주셨다. 그리하여 삼국지의 내용을 거의 알고 있는 상태에서 박종화 삼국지를 접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는 더 나이가들어 정비석의 삼국지 세트를 읽게 되었고 이문열 작가가 평역 삼국지를 내 놓으면서 또 읽게된 것이다. 당시에는 삼국지라는 소설에 매료된 상황인지라 만화 삼국지는 물론 제갈량에 대한 책도 찾아 읽었다. 한마디로 반은 삼국지 매니아가 된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생겼다. 이문열의 삼국지를 2번 읽었는데 처음 떠오르는 생각과 두 번째 읽은 후 떠오르는 생각에 큰 변화가 없었다. 바로 이문열이라는 작가에 대한 실망감 그런 것이랄까...삼국지를 읽기 전 작가 이문열의 소설을 대부분 읽었고 작가에 대한 신뢰 뭐 그런 것을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대단한 작가...그런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평역 삼국지를 읽은 후로는 알게모르게 가지고 있던 환상이 한꺼번에 무너져 버리고 만다. 이는 알라딘에 리뷰를 쓰시 시작한 동기이기도 하다. 작가의 평역 삼국지에 대한 실망을 퍼부은 리뷰는 대략 다음과 같다. 물론 여전히 그 리뷰는 삼국지 하단부에 존재한다.

 

 

 

기대감을 가지고 읽었으나 실망감이 매우 크다. 

우선 평역이라는 말이 전해주는 기대감을 충족시키는데는 턱없이 부족하다. 평역이랄 것도 없는 수준이며 미량이나마 작가의 해석이 들어가 있는 부분이  너무 억지스럽다. 이 평역을 잃다가 책을 던져 버리고 싶은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다. 책값 아까워 그냥 읽는 심정이라니...(이 미량의 견해를 평역이랍시고 넣었다는 점에서 평역이라는 말을 덧붙였다면 이는 독자에 대한 기만이다)  읽어보신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차라리 조용히 번역을 하는 수준에서 머물렀더라면 삼국지를 읽는 쏠쏠한 재미를 전하는 정도에서 만족스러웠을지는 모르겠다.   

여러장면에서 저자는 말도 되지 않는 잡설을 늘어 놓는데 그 중 가장 못 보아줄 대목은 아래와 같다.

 

........중략...

 

 

 이 삼국지는 

미성숙한 윤리관을 가지고 있고, 

그리하여 서툴고 억지스러운 평역으로 일관하고 있어  잘못된 저자의 윤리관을 배우게되는 분이 없기를(특히 한창 배우고 있는 학생들), 또, 이 삼국지를 삼국지의 전형으로 알고 지내는 분이 한 분이라도 덜 하기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참 심한 표현을 사용했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나의 생각에는 변함이 업다. 이문열 작가의 팬들에게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여전히 그의 삼국지는 내게 최악의 삼국지일 뿐이다. 그  후로 점점 소설은 내게서 점점 멀어져갔다...그렇다고 이문열의 삼국지 때문이라는 말은 절대로 아니다. 그저 시기적으로 그렇다는 것일 뿐....지난 해에 전국을 아니, 미국까지 건너가 그 큰 사장을 강타한 '엄마를 부탁해'도 읽지 못했다. 이 외에도 박완서의 작품들을 정리하여 새로이 출간된 소설들이 그 얼마나 좋을까만 한 권도 구입하지 않았다. 언제 손을 댈지 알수가 없는 거리감이 나를 가로막고 있으니....그러다가 최근 알라딘의 반값 할인 행사를 이용하여 구매하게 된 소설이 하나 있다. 참 오랫만에 구입해보는 소설이다.

 

 

몽유도원이 그 것이다. 반값 할인이라는 매력 때문이기도 하고, 몽유도원이라는 제목의 매력이기도 할 것이다. 모처럼 소설을 읽게 된 것이다. 몽유도원은 좀 쉽게 읽히는 편이라 토요일과 일요일을 이용해 모두 읽었다. 되씹을 만한 문장들은 거의 만나지 못했다. 작가가 난해한 구도나 난해한 표현들은 거의 사용하지 않은 덕분이다. 흔히 술술 읽힌다는 표현들을 자주 접하는데 몽유도원이 바로 그러한 소설이다.

 

독자들에게 역사 인식을 불러일으키기에 아주 좋은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이 책을 읽어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심어주는 좋은 소설이다. 소설의 형식을 빌었기에 등장인물들과 전개 방식은 작위적이지만 소설이 가지는 프레임과 내용들은 우리가 다면하고 있는 우리 역사의 팩트들이며 현실이다. 작가 나름대로 연구를 상당히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개진한 소설임에 틀림이 없다. 물론 이 소설이 호태왕비와 칠지도를 소재로 한 최초의 소설은 아니다. 이보다 일찌기, 그러니까 소설에 흥미를 잃기 훨씬 전에 작가 최인호가 '잃어버린 왕국'이라는 소설로 이미 다루었던 소재이다. 하여 낮설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역사책을 직접 읽는 것이 쉽지 않은 분들이라면 소설의 형식이라도 빌어서 역사를 어느정도 공부할 수 있다고 여기는 소설 중의 하나이다. 흔히 사극이나 소설등은 역사의 팩트들과는 사실상 거리가 아주 먼 경우가 흔하다. 그리하여 사극이나 드라마 혹은 소설이 주는 내용들을 역사적 사실들과 혼든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하여 사극을 제작할 때 매우 조심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을 하곤한다. 고증의 절차없이 방송에 내보내는 것은 이러한 부작용을 일으킬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오해된 역사는 차라리 모르느니만 못한 것이다. 그렇다고 역사 관련 서적을 읽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관심을 가진 독자가 아니라면 특히 그러하다. 그러므로 역사에 관심은 있으나 소설을 선호하는 분들이 읽어도 좋은 몇 가지 소설들이 있는데 위의 두 소설은 그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다루고 있는 역사적 사건들은 대부분 작가들이 사료를 토대로 했기에 충분한 근거를 가진 내용들이기 때문이다.

 

 

사실 읽으면 재미있는 것이 소설인데, 왜 이다지도 소설에 손을 대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고전 소설의 감동을 몰라서 그러는 것일까...가만히 생각해보니 죄와 벌은 중학교 3학년 때 읽은 소설이고, 세익스피어의 걸작 시리즈인 전집도 어른 판으로 중학교 3학년 때 읽은 기억이 난다. 추억해보니  중 3때는 데카메론도 읽었나 보다. 사실 소설사의 상징적 의미를 가지는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은 실제로 읽어본 독자들은 많지 않을 것 만 같다. 요즘 홍보되고 있는 '산해경'보다 훨씬 질이 떨어지는 내용들인데다가 그렇게 강열한 인상을 주지도 못하는 소설이니까 말이다. 여하튼 누구에게 절대로 추천할만한 그런 소설은 아니다. 그런데 중학생이 보는 데카메론이 최근에 나왔나보다. 이점은 개인적으로 이해하기가 힘들다...

 

 

 

  중학교 3학년이 죄와 벌을 읽으면 이해가 가더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나는 상당히 이해를 했다고 생각했다^^. 순전히 나만의 생각이지만 말이다. 사실 이해를  하고 안하고를 말하자는 것이 아니라 소설과 그렇게 먼 사람이 아니었다는 말을 하기 위함이다.

 

읽을 당시 이해를 하지 못했다고 느낀 소설도 있었다. 대학교에 들어가자마자 만난 소설이 바로 '달과 6펜스'였다. 이 역시 작가를 세계적인 반열에 오르게 한 소설이라고 했다. 전혀 사전 정보를 알지 못하고 도서관에서 마주하고 읽은 책이다. 도대체 달과 6펜스라니..너무나도 어울리지 않는 조합의 제목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고 볼수밖에는 없는 그런 소설이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도대체 스트릭랜드라는 캐릭터가 이해 불가!!! 순간 나는 절망감에 빠져버렸다. 그리고는 다음해에 다시 집어들었다...그러나 역시 나는 도저히....결국 3번째 읽고나서야 서머싯몸의 이 소설이 왜 그다지도 작가를 세계에 알린 소설인지 깨닫게 되었다. 그런데 그 3번째는 내나이 서른이 넘은 뒤였다 ㅠ.ㅠ

 

 

한때 한국에 소설의 붐을 일으켰던 소설가도 있었다. 시드니 셀던을 기억하는 분들이 계실 것이다. 게임의 여왕, 화려한 혈통등 말이다. 이때 시류에 편승하여 이 작가의 소설들을 꽤나 읽었다. 지금도 여전히 이분의 소설들이 출간되고 있는 것이 확인 되었다. 참 대단히 생명력을 가진 작가이다.

 

 

추리소설을 빠트릴 수가 없다. 나의 내자는 추리 소설을 상당히 좋아하는 편이다. 하여 셜록 홈즈 와 루팡 시리즈는 대부분 가지고 있었다. 요즘도 이 책은 빼 놓을 수 없는 커리큘럼이 아닐까??

 

 

어떻게 보면 유명하다는, 필독서라는, 고전이라는 소설들은 대부분 읽어본 같다. 노벨상 작품들도 빠트린 것은 별로 없어보인다. 물론 소설과 멀어지기 전의 이야기 이지만... 그런데 지금의 나는 왜 이다지도 소설과 인연이 멀어진 것일까... 수많은 알라디너들은 나보다 더 많은 책을 읽었으면 읽었지 덜 읽은 분들은 거의 없는 듯 하다. 많은 소설들을 읽고 리뷰를 쓰시는 분들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내가 하고 있지 못하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나는 어쩌다가 이렇게 소설과 거리가 멀어져 버린 것일까...돌아보니 소설을 소홀히 다룬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말이다...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지금까지 나는 어쩌다가 소설과의 사이가 이지경이 되었는지 되돌아보는 페이퍼를 통해 그 관계를 되짚어보고 싶다. 그렇다고 해답을 얻은 것은 아니다. 되돌아보니 결코 소설과 사이가 멀었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현재 소설과의 관계는 왜 이다지도 서먹하단 말인가...소설을 읽고 멋진 리뷰를 올리는 알라디너들이 부럽고 또 나도 그렇게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된지 꽤되어간다..그래서 김진명의 몽유도원을 구입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헤어진 애인과 다시 잘해보고싶은 뭐 그런...속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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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04-24 1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소설은 추리 소설 정도만 열심히 즐기는 편이라... ^^
예전에는 소설을 참 많이 읽었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실제 정보가 소설보다 더 소설같구나 이런 생각도 들고, 지나치게 감정이나 사회 의식을 찌르는 책들이 힘들어지기도 하고..... 배가 고파서, 더이상 생각하기 어렵네요...

즐거운 오후되셔요.

차트랑 2012-04-24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리 소설은 머리가 좋은 분들이나 좋아하는
그런 장르라고 저의 내자가 그러더군요.
고로 자신도 머리가 좋은 사람에 속한다는...그런 논리를^^
마녀고양이님도 머리가 좋은 분일거라고 믿습니다^^

시장하시면 식사를 잘 하셔야해요.
섭생은 인간 생명의 에너지 원이니,
잘 살피셔요~
거르시지 마시구요^^

고맙습니다 마녀고양이님~
 

 

 

 

 

 

 

 

 

 

 

 

 

가장 파워플하고 가슴을 뜨겁고도 시원하게 해주는 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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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2-04-17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장 파워플하고 가슴 뜨겁고도 시원하게라면 얘기가 달라지지만~
그냥 '뜨겁게'만 이라면 이들의 눈빛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지 않을까요?^^


차트랑 2012-04-17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상물을 보니 빼놓을 수 없겠는걸요^^
피아졸라의 탕고는 이 봄에 참 여럿 감동시키는 곡입니다.
잘 보고 잘 들었습니다.
눈빛의 언어로 말을 주고 받는 저 두사람에게서
일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어요
박수~~
 

 몇일 전 부터 전국민의 컴퓨터 보안 프로그램인 알약과 V3 Lite가 영 작동을 하지 않는다. 시스템 과부하 상태인가...

이렇게 별 생각 못하고 았다가...언뜻 이거바라...뭔가가 있군~ 이렇게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이 몇일 전 업무를 시작하면서이다. 시스템의 속도가 현저하게 떨어져있을 뿐 아닐라 심지어 인터넷의 화면들이 일부 깨진 상태로 모니터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바이러스인지, 악성코드인지 그런거에 걸린거 같으다. 그런데 이번 현상은 좀 특이했다. 알약도, V3도 도대체가 실행이 되지 않는 것이다. 작동하지 않는 보안 프로그램과 바이러스 혹은 악성코드와의 관계를 아직 의심하지 못하고 있던 상태인지라 알약을 다시 다운 받아 설치하고...V3로 역시 같은 과정을 거쳤다.

 

그러나 상태는 전과 동일하다. 마이크로 소프트의 방화벽은 바이러스 감염에 노출된 상태라고 겁을 준다. 참 내원...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다..싶다. 그리하여 상태에 대한 진단과 처방을 보고한 내용을 검색하다가는  헛 수고만하고 시간만 빼앗겨 버렸다. 다시 알약으로 돌아가 커서를 작동시킬 수 있는 모든 곳을 죄다 눌러봤다. 드디어 찾고있던 증상과 처방에 대한 결과물을 얻었다. ‘시스템 후킹을 통해 알약 실행을 방해하는 악성코드’가 바로 이것이었다. 시스템 후킹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알약 실행을 방해하는 악성코드가 있다는 결론이다. 하여 전용 백신을 다운로드 실행한 결과 알약이 잘 작동하고 있는 상태이다.


참 내원... 백신 프로그램을 무력화 시키는 그런 악성코드도 다 있나보군...살다보니 별 경험을 다한다 싶다.


엄한 시간을 빼앗기고 스트레스 받으며 고생한 생각을 하니 과거 처음 컴퓨터를 구입하여 사용하다가 바이러스 먹고는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내다버린 컴퓨터가 생각났다. 당시엔 컴퓨터의 매커니즘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바이러스라는 것이 있는지도 몰랐다고 하는 편이 옳다. 여하튼 당시에는 첨단 컴퓨터였고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다시 구입을 하게 된 것은 바이러스에 대처를 하지 못한 탓이다. 하긴 운전 할 줄 안다고 자동차를 수리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그걸 치료하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 자체를 몰랐다는 것이 문제였다. 구입한 컴퓨터는 486DX2라는 기종이었다. 가격도 만만하지 않았다.


컴퓨터를 처음 만난 건 대학을 다니던 때이다. 강의의 한 과목은 그 성격이 좀 독특했다. 소논문을 학생들 각자 작성하여 제출하고 모든 학생들에게 자료를 제출 한뒤 이걸 다시 한 시간 동안의 강의를 진행하는 방식이었다. 두 시간이 묶여있는 강의 였기에 가능한 방식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래, 이것이 대학교의 방식이어야해..라는 생각이 든다. 소논문 강의를 마친 학생은 교수님과 동료 학생들의 날카로운 질문에 답해야 한다. 물론 미리 소논문의 주제를 밝히고 사전에 자료를 제출한 상태이기 때문에 마음만 먹는다면 강단에 서있는 학생 하나를 죽쑤게 만드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학점은 학생들을 서로 협력하는 관계로 나아가게 했다.


문제는 교수님께서 소논문을 컴퓨터의 워드작업으로 제출하라는 요구였다. 당시 대학생들이라도 공과대학생들도 제대로 개인 컴퓨터를 가지지 못한 상태였다. 그렇다고 성능이 대단히 탁월한 것이었냐...아니다. 지금과 비교하면 처참한 성능을 가진 것들이다. 3.8.6. 이었으니 말이다. 요즘 말하는 386세대를 지칭하는 그런 말이 아니다. 순전 컴퓨터의 성능을 말하는 표현이다. 그럴 당시 386이라는 컴퓨터가 어떤 것이었냐 하면... 1989년 미국에서 출시한 386은 본체만 800만원을 훨씬 호가했다. 모니터와 마우스등 주변기기들을 포함하면 그 가격은 더 올라간다.


386의 성능을 보면 가관이 아니다.

CPU 20Mhz, Memory 2MB, 256 컬러의 비디오카드

지금 생각하면 놀랍지 않은가...이걸 컴퓨터라고 했으니 말이다 ㅠ.ㅠ.


그 후 1992년 성능이 훨씬 월등한 486이 시장에 나왔다. 그 성능은 386에 비하면 빛나는 능력을 가진 컴이었다. 사양을 보면

CPU 66Mhz, Memory 150MB


과연 386과는 비교할 수 없는 첨단 컴이다. 물론 가격도 386이 출시되던 당시보다 현저하게 저렴한 가격이다. 거의 200만원에서 300만원 사이에 입수가 가능한 가격이었으니까... 그러나 이 사양의 486도 정말 지금 생각하면 한숨 나오는 실력을 가진 컴이 아닐 수 없다.


그 뒤를 이은 컴퓨터가 아마도 팬티엄일 것이다. 역시 486보다 훨씬 성능면에서 강력했다. 그러던 퍼스널 컴퓨터의 성능은 기하급수적인 능력을 자랑하고 있다. 486DX2로 한글 2.0 버전이나 2.1버전을 사용해보신 분들이 계실 것이다. 하늘소, 천리안이라는 말은 이제 잊혀진 듯 하지만 당시엔 첨단 통신수단이었다. 컴퓨터는 마이크로칩의 밀도가 18개월마다 2배로 늘어난다는 무어의 법칙을 만들어 내기도 했고, 반도체 메모리의 용량이 1년마다 2배씩 증가한다는 메모리 신성장론을 주장한 한국의 ‘황의 법칙’은 그 무어의 법칙을 산산조각 내버렸다.

바이러스 이야기를 하다가 엉뚱한 이야기까지 하게되었다...

바이러스 이거...없는 세상은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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