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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날」 이라고 하니 과거 누군가가 제게 해준 말이 떠오르는군요. 그는 인생을 발전 시켜가는 3가지 중요한 요인이 있다고 했습니다. 첫째가 좋은 터요, 둘째가 스승님이고, 마지막이 좋은 책이다, 라는 것입니다. 터라는 의미는 자신의 환경을 말하는 것이지 싶고 스승님이야 말로 해 무엇 할까 싶습니다. 책은 셋 중 가장 접하기 쉬운 것이 아닌가 생각 합니다. 좋은 터와 스승님을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책은 마음만 먹는다면 되는 것이다, 라는데 동감합니다.

 

알라디너들께서야 늘 책과 함께 사시는 분들이지만 우리나라의 독서 현실은 꼭 그렇지는 않아 보입니다. 이런 우리의 독서 현실에 늘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책의 날이 우리의 독서에 더욱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기 바랍니다.  

 

설문을 보니 답하기가 쉽지 않은 내용도 있군요. 처음에는 왠지 겸연쩍어 주저했으나 어쩌면 제 자신을 돌아보는 좋은 계기가 되어줄 것이다, 생각하고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평소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질문에는 답하기가 쉽지 않을 듯 하군요.

 

 

Q1. 언제, 어디서 책 읽는 걸 좋아하십니까?

첫 번째인데 답하기가 좀 부끄러운 질문입니다. 솔직히 고백해야하고, 그래야만 의미가 있으니 말입니다. 사실은 장소에 구애받는 편입니다. 편안해야 하고 방해하는 요인이 거의 없을 때 집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제가 좋아하는 고전 음악 조차도 방해가 되더군요. 특히 집중력을 요하는 책들은 더욱 그러한데,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바로 침대입니다. 이리 뒹굴, 저리 뒹굴... 이는 매우 어렸던 초등학교 시절의 환경 덕분에 생긴 버릇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전기가 없었고 책상도 없었지요. 특히 밤에는 호롱불 아래에서, 혹은 등잔을 머리맡에 내려놓고, 가끔은 머리를 등잔 불꽃에 지져가면서 말입니다. 그렇게 자리를 깔고 뒹굴거리는 버릇이 들어버렸네요.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말을 실감하겠습니다.   

 

다음으로 선호하는 장소는 욕실입니다. 반신욕을 하면서 책을 읽을 때 상당히 집중도가 좋고요. 물이 식는 줄도 모르지만 시간이 가는 줄 모르다가 몸이 차가워지고 나서야 깨닫습니다.

 

아, 저는 자동차를 타고 가면서도 독서를 합니다. 위험하지 않냐구요? 이해가 잘 안되시겠지만 답을 마칠 때면 이해가 가실 것입니다. 때와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독서가 진정한 애독자라 할 수 있겠으나 이에 미치지는 못해 아쉬움이 남기는 합니다.  

 

Q2. 독서 습관이 궁금합니다. 종이책을 읽으시나요? 전자책을 읽으시나요? 읽으면서 메모를 하거나 책을 접거나 하시나요?

앞으로는 어떨지 장담은 할 수 없지만 현재까지는 99% 종이책으로 읽는 실정입니다. 한때 메모를 하기도 했으나 다시 읽는 일이 거의 없어 독서기록을 남기기 시작했고요. 언젠가부터 책의 여백에 직접 떠오르는 생각을 쓰고 밑줄을 그어가며 책을 읽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알고 보니 본격적으로 독서를 시작하던 대학 1학년 때부터였습니다. 해서 타인에게 양도하기가 쉽지 않은 아쉬운 면이 있습니다. 책에 좀 미안하기도 하구요.  

 

좋은 점은 하나 있기는 합니다. 재독, 삼독할 때 밑줄 친 부분을 중심으로 빠르면서도 고도의 집중력으로 읽을 수 있거든요. 이 효율성은 제가 밑줄 긋는 버릇을 고칠 수 없게 하는 핵심 요인입니다.

 

 

Q3. 지금 침대 머리 맡에는 어떤 책이 놓여 있나요?

많은 독서가들이 그러하시겠지만 머리 맡의 책들은 현재 읽고 있는 책과 가장 탐을 내던 책들이며 가장 애지중지하는 책들입니다. 또한 언제고 다시 꺼내 보아야 하는 책들이 틀림없을 것입니다.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사정권에 두고 있는 책. 이런 책들이 제게도 몇 권 있습니다. 사진을 찍어 볼까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깔끔하게 상품 넣기로 대신할까 합니다.

 

최근에 구입하여 머리 맡에 있는 책

 

 

 

 

 

 

 

 

 

 

 

 

 

 

 

 

 

 

오래도록 머리 맡에 있는 책

 

 

 

 

 

 

 

 

 

 

 

 

 

 

 

 

Q4. 개인 서재의 책들은 어떤 방식으로 배열해두시나요? 모든 책을 다 갖고 계시는 편인가요, 간소하게 줄이려고 애쓰는 편인가요?

장르별로 배열하는 것은 신속한 되찾기를 가능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애용하고 있습니다.

 

책의 소장 관련 질문은 알라디너들이라면 한 번 쯤 고민해봤을 법하군요. 저도 한때 고민을 많이 한 적이 있습니다. 아마도 20 여 년 전의 일일 것입니다. 이 고민도 결코 결정하기 쉬운 것은 아니었지요. 결국 간소함을 선택했습니다. 정예 맴버 500권으로 하자는 것이 저의 결론이었고 지금도 그러합니다. 책의 상태에 따라 양도하거나 기증, 양도나 기증이 어려운 상태의 책은 분리수거 합니다. 종종 양서들을 제가 알고 있는 서당으로 보내기도 합니다. 서당이라도 한자로 된 책만 읽으라는 법이 있을까, 하는 생각에 훈장님과 상의 했습니다. 훈장님은 흔쾌히 승낙하셨지요.

 

지난 해인가 헤세의 글에서 책 정리에 관한 글을 읽었습니다. 정예 맴버를 구축하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헤세도 그랬구나 싶은 것이 위로가 되었습니다.  

 

Q5. 어렸을 때 가장 좋아했던 책은 무엇입니까?

‘어렸을 때’ 라는 의미에 대한 약간의 정의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잠시 했습니다. 책과 관련한 ‘어렸을 때’ 라는 말은 일반 적인 어렸을 때와는 제 스스로 구별하고 있었거든요. 개개인에 대한 질문이니 제 생각을 간단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독서와 관련한 ‘어렸을 때’의 정의는 제 스스로를 돌아보면 ‘20대 중반’ 까지가 아닌가 싶습니다. 대학생 때 읽었던 그 많은 책들을 사실 저는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했다는 생각을 금할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일리아드」,「니체 전집」,「장미의 이름」그리고 「달과 6펜스」등 입니다. 교양 철학의 한 교수님께서는 대학생이라면 일리아드는 필독서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일리아드를 읽었지요. 지금 돌이켜 보면 당시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했다는 결론입니다. 「니체 전집」은 말할 것도 없고「장미의 이름」과 「달과 6펜스」 역시 다를 바가 없습니다. 알고 보면 이런 책이 한 둘이 아니었던 것이지요. 저는 그저 스토리만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상징은 시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어느 순간 깨달았습니다. 쉽게 접했던 고전들은 알고보면 은밀하고도 심오한 상징들 투성이 라는 것이지요. 저는 그 상징들의 의미를 나이가 훨씬 더 들어서야 하나씩 알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한마디로 이제야 말입니다. 현재의 저는 새롭게 고전을 읽어가며 고전이 왜 고전인지 새롭게 깨닫고 있는 중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여 제게 ‘어린 시절’은 20대 중반 까지입니다. 그 어린 시절 제가 가장 좋아했던 소품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김유정의 소품「동백 꽃」입니다. ‘오늘도 또 우리 수탉이 막 쫓기었다.’ 로 시작하는 「동백꽃」이 너무 좋아 저는 달달 외우다시피 했습니다. 들고 다니며 책이 닳도록 소리 내어 읽고 또 읽었지요. 수탉을 매개로 주인공과 점순이의 가슴에서 피어오르는, 4월 연두 나뭇잎의 파릇한 감정이 점점 붉게 물들어 간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여전히 김유정의 「동백꽃」을 사랑합니다.

 

더더욱 좋은 것은 이 버릇의 발전에 있습니다. 대학 때부터 마음에 드는 문구나 책을 달달 외우던 버릇은 나이가 더 들어 고전을 외우는 것으로 발전해 갔습니다. 첫 번째 질문에서 못 다한 이야기인데요. 제게는 운전을 할 때도 매우 중요한 독서 시간입니다. 고전의 내용을 바로 제 목소리로 녹음한 음성 파일을 운전 중 들으며 따라 읽는 것 입니다. 제게는 최고의 고전 독법입니다. 행여 고전을 암기하고자 하는 분이 계시고, 운전 시간이 좀 있는 분에게라면 적극 권해드리고 싶을 만큼 효과는 단연 최고라고 말씀드리고 싶군요.   

 

 

Q6. 당신 책장에 있는 책들 가운데 우리가 보면 놀랄 만한 책은 무엇일까요?

가장 곤혹스런 질문이지 싶습니다. 제 스스로에게는 여전히 놀랄만한 책이지만 제가 아닌 남들에게는 전혀 놀랄만한 책이 아니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지리에 관련한 책으로 스승님께서 수십 년 전 쌀 6가마니를 주고 사신 책입니다. 안동의 어느 집에서 이 책을 내놨다는 소식을 들으신 스승님께서는 한걸음으로 달려가 구입하셨다고 합니다. 사실은 이 책보다는 스승님의 판단과 결정이 놀라울 뿐입니다. 아래의 사진은 제가 가지고 있는 사본 직지원진입니다.

 

 

 

Q7. 고인이 되거나 살아 있는 작가들 중 누구라도 만날 수 있다면 누구를 만나고 싶습니까? 만나면 무엇을 알고 싶습니까?

이는 평소 생각하고 있던 반가운 질문입니다. 사적으로 만나고 싶은 두 분이 계십니다.

 첫째는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입니다. 그는 「중용」의 저자로 알려져 있고 곽점 출토의 백서(帛書)로 보건데 거의 확실한 듯 보입니다. 중용 장구 중 한 글자를 왕숙이 첨가하고 송대의 주희는 그 부분을 고스란히 이어받았습니다. 「대학」에서도 주희의 스승은 글자 하나를 손질 했는데 주희는 이를 무비판하여 받아들였습니다. 특히 대학에서 그들이 바꾼 한 글자는 조선의 유학 사상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습니다.「대학」 역시 자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고, 자사가 지었을 것이라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사’ 라면 저의 궁금증을 명료하게 해결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자사는 공자보다 철학적으로 더 깊이 있는 인물이라고 여깁니다. 가능하다면 가르침을 직접 받고 싶군요.

 

둘째로는 헤르만 헤세입니다. 그는 동양의 고전을 상당히 섭렵한 인물로 사서는 물론 노자, 심지어 여불위의 저술까지 꿰뚫고 있었습니다. 그 사실을 알았을 때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공맹과 주역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 이상을 넘나드는 헤세에게 동서양의 사상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과연 어떤 생각을 진솔하게 펼쳐 줄지 정말 궁금합니다.   

 

Q8. 늘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읽지 못한 책이 있습니까?

「책의 날」을 두 작가의 사망일로 정했다는데, 세르반테스와 셰익스피어라고 합니다. 「돈키호테」를 꼭 다시 읽고 싶습니다. 어린 시절 그 버전이 아닌 제대로 된 버전으로 말입니다. 어린 시절 잠시 거친 책들을 다시 찾지 않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사실은 제 자신이 그랬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돈키호테는 그런 식으로 읽어버리고 말 고전이 아니라는 것을 나이가 더 들어 알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상술의 희생자 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이런 이유에서 입니다. 고전의 진정한 맛을 저는 어린이 버전으로 지나쳐 왔으니 말입니다. 아, 개인 적으로는 안타까운 일입니다..    

 

Q9. 최근에 끝내지 못하고 내려놓은 책이 있다면요?

물론 다 읽지 못한 책이 여러 권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언젠가 서재에 고백을 했지요. 바로 「리만 가설」입니다. 어지간하면 완독하려고 애씁니다. 저자에 대한 예의도 예의지만 자존심이라는 것도 있잖아요 왜 ^^. 그러나 이 책은 제 능력으로는 절대로 끝가지 읽어 갈 수가 없었습니다.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지만 결국 스스로 중도이폐하고 말았지요. 이럴 때 정말 씁쓸합니다 ㅠ.ㅠ. 

 

 

 

Q10. 무인도에 세 권의 책만 가져갈 수 있다면 무엇을 가져가시겠습니까?

답하기 가장 곤란한 질문입니다. 꼭 골라야 한다면 「반야심경」, 「중용」 그리고 완역 소설 「삼국지」입니다. 무인도에서 탈출할 때를 기다리거나 준비를 하면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한 반야심경. 반야심경은 물론 주석이 상세히 달려 있는 책이라야 합니다. 주석이 없는 책은 능력 밖이니까요. 행여 깨닫는 순간 무인도를 떠나고 싶어 하지 않을 수도 있기에 선택합니다. 필수 템인 이유입니다.

 

불경과 더불어 「중용」은 가장 소중히 생각하는 경전입니다. 음성 파일을 만들에 제일 먼저 시작한 고전이 중용이고 가장 다양한 버전들을 읽은 대상도 중용입니다. 도서를 가장 압축시키고 나머지 버전들은 가장 많이 양도하거나 기증한 책이기도 합니다. 자사를 만나고 싶어 하는 이유도 중용의 장구에 있지요. 그 가르침이 지극히 성스럽다고 늘 여기고 있습니다. 남아 있는 나날 끊임없이 읽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책이 바로 중용입니다. 

 

재미하면 삼국지. 무인도라 진짜 심심할 것 같습니다. 심심할 땐 혼자 놀아야 하잖아요. 이럴 땐 삼국지가 제격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삼국지의 주인공들이 싸움터에서 상대방에게 외치는 장면들은 정말 웃기고도 재밌습니다. 특히 장비의 입이 걸쭉하고요. 언쟁이 전투 못지않게 재밌는 소설이 삼국지인 듯 합니다. 혼자 소리 내어 읽다보면 지루함은 어느새 사라질 것만 같은 소설이기도 합니다.

 

질문에 하나씩 답하며 제 자신을 되돌아 보게 되었습니다. 평소 생각해 본적이 있는 질문도 있고 전혀 생각지 못했던 질문도 있었습니다. 왜 어떻게 책을 읽는지 별로 생각해 본적이 없었지요. 그냥 읽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번 설문의 기회는 뜻밖의 생각을 하게 해주었고, 개인적으로 매우 유익했습니다. 이런 기회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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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영국은 커다란 아킬레스 건을 하나 가지고 있는 나라이다. 식민지를 수탈해 영화를 누리던 시절도 갔고, 서서히 열강의 대열에서 뒤로 쳐지면서 그간 고통도 많이 겪었다. 쇠락한 영국을 새롭게 탈바꿈하고자 했고 그 핵심에는 대처 수상이 있었다는 것 외에는 아직은 과거의 영화를 되찾지 못하고 있다. 한 가지 있기는 하다. 알파고의 나라이다.

 

아, 그 아킬레스건이 무엇이냐 하면, 영국은 건국신화가 딱히 없다는 것이 그것이다. 하이랜더나 로빈 후드와 같은 전설은 많지만 이는 우리의 단군신화와 같은 수준은 절대로 아니다.

 

이 책은 알라딘에서 구입해 읽은 책입니다. 영국인의 입장이 아닌 프랑스인의 입장인지라 아무래도 약간이나마 다른 관점을 보여주지 않을까 하여 선택을 했습니다.  

 

행여 영국이 한국인의 스토리인 단군신화를 부러워하랴 싶겠지만 그것이 꼭 그렇지가 않다. 영국의 역사를 뒤져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어린 학생들이 보는 만화 수준의 영국 역사를 뒤지더라도 말이다.

 

미국인들은 자칭 자신들의 나라를, 섞여있으나 각각의 개성이 살아있는 샐러드 보울 (Salad bowl) 이라고 하는데 영국은 한마디로 죄다 녹아있는 도가니 탕(Melting Pot)의 나라이다. 로마의 침입과 지배, 작센 지방의 앵글로 족, 색슨 족, 스칸디나비아의 바이킹 족, 덴마크의 데인족, 노르망디의 노르만족 등의 수없이 많은 침입을 받았다. 그 결과 켈트, 로마, 앵글로색슨, 데인, 바이킹, 노르만 등 수없이 많은 민족이 혼잡한 인구 구성을 가졌다.

 

2,000 여 년 전 이면 한반도의 북쪽에서는 고주몽께서 나라를 세워 고구려의 동명성왕으로 등극을 하여 대륙으로 그 세력 확장을 꿈꾸고, 중국에서는 한고조가 나라를 평정한 후 제후국을 거느라고 나라를 통치하던 그 시절이었다. 당시 영국은 로마의 지배자 시저의 침략을 받아 정복당한 후 로마 문화에 깊이 경도되었다. 그 뿌리는 영국의 본토에 매우 깊이 파고들었다. 라틴 문화가 영국의 런던을 중심으로 전국에 퍼져나간 것이다. 36년이라는 일제의 강점기는 우리나라에 일제의 문화 흔적을 아직도 확연히 남기기에 충분한 기간이었다는 점을 감안해보자. 로마는 30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영국을 지배했다. 라틴 문화의 뿌리가 뼛속 깊이 스며들기에 충분한 기간이 아닐까...

 

그러다가는 본국에 다급한 일이 생기자 로마군대는 바로 본국으로 철수했다. 로마의 침략을 피해 도망갔던 스코트 족은 자리가 비었다 생각하고는 영국 본토를 습격한다. 다급해진 켈트족은 색슨 족에게 SOS를 친다. 거칠고 잔인하며 포악한 민족으로 알려진 게르만 족, 즉 색슨 족은 이게 웬 떡이냐 하고 달려왔다.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고 흔쾌히 물을 건너온 것은 거리가 가까워서이기도 하거나와 다 꿍꿍이가 있어서인 게다. 도와주기는 커녕 되려 켈트족을 아작 내버린다. 색슨 족의 배신에 치를 떨며 켈트족은 아이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 등으로 뿔뿔이 흩어져 도망친다. 이 소식을 접한 앵글로 족이 얌전히 있을 리 만무하다. 이참에 나도 좀 하면서 바로 섬나라도 들어와 한자리를 차지한다.

 

결과적으로 영국은 켈트, 로마, 데인, 바이킹, 노르만인 들이 어우러 살다가는 앵글로와 색슨족이 마지막 본토 정리를 끝낸 후에야 국가다운 면모를 갖추게 된 것이다. 결국 국호도 ‘앵글로 족이 사는 나라’ 라는 뜻의 ‘앵글랜드’가 결국 잉글랜드가 된 것이다. 주를 이루는 영국 문화는 라틴 문화에 앵글로 색슨 문화의 혼합 형태이다. 영국을 도가니탕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바로 그들의 역사인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영국은 역사적으로 유구하고 고유한 건국 신화가 부재한 입장이 되어버렸다. 영국인들은 대부분의 나라들이 가지고 있는 건국 신화의 부재라는 말 못할, 그러나 내심 남을 부러워하는 약점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인도를 셰익스피어와 바꾸지 않겠다 라는 오만 방자하고도 허풍이 쩌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는 것이다. 건국 신화의 부재에서 오는 열등의식의 발로이며 보상 심리가 작용한 발언이라고 생각하는 이유이다.

 

이러한 심리적 약점은 영국인들로 하여금 행동 과잉과 같은 현상을 보여주기도 했는데 바로 「해리포터」의 전설이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 생각한다. 사실 해리포터가 뜨기 전에는 판타지가 전 세계를 강타한 적은 없는 듯하다. 판타지가 문학의 장르로서 어느 정도의 위상을 가지는 지 나로서는 알 수 없다. 한동안 국내의 전문가들이 장르로서의 판타지를 논하며 갑을 박론하던 장면을 텔레비전에서 잠시 본 적이 있다. 어째거나 그 열기가 한 때 반짝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당장에는 고전의 반열에 오르기에는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싶다. 진정한 고전은 생명력이 길다. 트렌드와는 분명하게 구별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물론 시간이 흘러 고전의 반열에 오르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말이다. 

 

이렇듯 영국은 셰익스피어나 조앤 K. 롤링과 같은 사람들의 작품을 전폭적인 마게팅 전략으로 띄울 정신적 준비가 잘 되어있을 수밖에 없다. 건국 신화의 부재는 대리만족을 끊임없이 원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셰익스피어는 그 작품성을 인정받아 생명력을 지속해왔다는 점이 해리포터와는 차이 점이라 할 수 있다.

 

역사와 국민의 심리는 서로 분리해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개인이 경험한 과거가 현재의 심리에 적확하게 드러날 수밖에 없는 것처럼 말이다. 앞으로는 국내 기사에서 셰익스피어를 나라는 내어주어도... 혹은 인도와 연관 짖는 허무맹랑한 소개가 아닌 좀 더 아름다운 소개를 받고 싶다. 인도가 나의 조국은 아니지만 듣는 이 독자 별로 유쾌하지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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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아침 뉴스검색을 하던 중 「400년 전 오늘, 영국의 보물 셰익스피어 잠들다」라는 기사를 읽었다.

 

세르반데스와 같은 해, 같은 날 사망했다고 전하며 ‘세계 책의 날’로 지정했다는 기사이다. (누가 이 날을 이리 정했냐하면 바로 유네스코라고 한다. 정식 명칭은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 이지 말입니다. 책을 빙자해 저.작.권.에 방점을 둔 말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죄측의 책은 읽어서 상품 넣기를 한 것이 아니라, 허전해서 넣은 것 입니다. 게다가 셰익스피어를 나라와 어쩌구 한 발언들에 빈정도 상했고요.

 

기사를 읽다보니 왠지 빈정 팍- 상해버린다. 그렇다고 셰익스피어라는 인물과 그의 작품을 폄하하자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하긴 18세에 학업을 중단하고 일을 시작한 그가 정말 그 많은 작품을 그것도 그 정도의 수준으로 과연 쓸 수가 있었을까, 하는 의심을 전문가들로부터 받고는 있지만 이는 다만 심증일 뿐 물적 증거가 제대로 없는 형편이기는 하다.

 

400년 전, 그러니까 1616년 4월 23일, 그가 사망했다고 한다. 기사는 더불어 영국의 여왕 엘리자베스와 당대 비평가 칼라일의 발언을 함께 실었는데 바로 이것이 나의 빈정을 제대로 상하게 해버린 것이다. (셰익스피어에게는 아무런 감정이 없는 일인이다)

 

기사에 의하면, 여왕 엘리자베스는 “나라는 내어주어도 셰익스피어는 내줄 수 없다.” 라고 했으며 칼라일은 “셰익스피어와 인도를 바꾸지 않겠다.” 라고 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한때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본 말이기는 하다. 츠암내~ 내 입장이라면 영국에다가 셰익스피어를 얹어주어도 인도와 바꾸지 않겠다. 이것이 이 글의 방점이다. (권한이 없기는 엘리자베스나 나나 매 한가지이니 이런 말을 하는 것이지 말입니다)

 

하기야 셰익스피어가 세계적으로 정말 유명하기는 유명한 인물인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나와 같은 시골 상 무지렁이도 중학교 때 이미 완역본 셰익스피어 전집을 읽지 않았던가. 이는 당시 우리집이 책을 살 형편이 있었다거나 책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친척이 당시 책장사를 하는 바람에 인지상정 우리 집에서 구입해준 덕분이다. 당숙께서는 그 시골 깡촌의 상 깡촌인 우리 집에 자주 들르셨다. 중학교 때 국어선생님께 들어본 적이 있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물론「데카메론」, 「죄와 벌」 기타 등등 상 깡촌 치고는 적잖은 책들을 우르르 몰고 오셨다. 한마디로 영업을 하러 오신 것이었다. 나는 물론 내 수준에 맞는 책인지 아닌지도 모르고 무작정 읽었다.

 

그러니까 내 말은, 나 중학교 때 셰익스피어를 읽었소! 가 아니라 그 작가가 물을 건너도 한참 건너고 산을 넘어도 한참을 넘어야하는 대한민국의 까마득한 시골 강촌에 나타날 만큼 유명 인사였다는 데 방점이 있는 것이다. 사실 중학생이 읽었다고는 하나 결과는 읽으나 마나인 수준이었을 테니 하는 말이다. 스토리나 알지 그 내면을 어찌 중학생인 내가 통찰하여 알아 먹을 수 있었으랴...

 

나이가 더 들어 상경을 하니 교수님들께서 하시는 말씀은, 그야말로 허걱~ 이었다. 셰익스피어를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은 자들이 100명도 더 넘는다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듣자마자 내 입은 쩌억~ 벌어지면서, 와우~~! 했던 것이다. 없던 한글을 새로 맹근 세종대왕 보다 더 유명한 인물이란 말이던가?? 했다. 지금은 세월이 더 흘렀으니 셰익스피어 관련 박사 학위 소지지가 200명쯤 될까?

 

 

돈키호테는 정말 마음 다잡고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읽어야 할 책들이 많아 순위에서 계속 밀리고는 있지만 그 진가를 제대로 확인하고 싶다. 철모르던 그 어린 시절의 시각이 아닌, 그보다는 좀더 성숙한 시각으로 말이다. 출판업자들의 상술 덕분에 그 가치를 제대로 인지 할 기회를 우리는 너무나도 많이 잃어버렸다. 그런 책이 하나 둘이 아니기에 하는 말이다. 고전을 고전 답에 읽어야 하거늘, 상술은 귀한 고전들을 어린 시절 잠시 거쳐가는 책으로 전락 시켜버렸다. 이 출판을, 고전을 고전답게 음미해보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이유이다. 감사할 따름이다.

 

각설하고, 아무리 자기가 나라를 통치하던 시절이라고는 하나, 나라가 뭐 자기껀가 내어주고 말고하게? (물론 당시는 나라가 자기 소유라고 생각하던 시절이다) 자신의 입과 혀가 되어준 인물이 셰익스피어라고는 하나, 나라를 내어줄지언정 셰익스피어를 내줄 수 없다니... 기사를 읽는 이 독자 아침부터 빈정 상한다.

 

사실 이 겁도 없는 두 냥반의 발언은 잘 새겨들어야 하는 말들이다. 다들 알다시피 당시 영국은 전 세계 곳곳을 자기네 나라로 삼고 싶어하던 시절이었다. 한마디로 무서울 게 없고 잘 나가던 시절이었으니, 나라 하나쯤은 잃어도 상없다는 뜻이 담겨있다고 볼 수 있는 발언 말이다.

 

알고 보면 나라를 선뜻 내어주곤 하던 나라는 영국이 아니라 중국이었다. 중국은 땅이 하도 넓다보니 패왕은 제후국을 다스릴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비행기나 KTX가 있던 시절도 아니고, 직접적인 통제가 거의 불가능했다. 예를 들어 주왕(周王)은 상(商)나라를 꿀꺽한 후, 일등공신이었던 강상(姜尙)을 내칠 요량으로 멀 찌기에 있는 제(齊)나라를 떼어주고 제후국으로 삼았다. 이는 400년 전이 아니라 4,000년도 더 넘은 이야기이다. 이렇게 누군가에게 나라를 떼어주던 중국의 전통은 계속 이어졌다. 2,000여 년이 조금 넘은 시점에도 한고조는 일등 공신이었던 한신에게 초나라를 떼어주고 초왕으로 봉했다. 물론 한신은 한고조의 심기를 건드려 끝내 토사구팽이라는 사자성어를 남기면서 죽음을 당하지만 말이다. 이렇게 나라를 떼어주던 일이 하나 둘이 아닌 것이 중국이었다.   

 

영국의 엘리자베스의 시대는 전 세계가 마치 자신의 통치하에 있다고 여기며 기고만장 하던 그 시절이었다. 그러니까 그녀의 발언은 식민지 하나쯤은 내주어도 셰익스피어는 못 내놓겠다는 뜻으로 한 말인 것이다. 이 얼마나 발칙하고도 무례한 발언이던가.

 

칼라일의 발언 역시 지극히 도발적이고 싸가지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싹수라고는 도대체가 없는 발언이기는 마찬가지다. 인도인이 이 말을 듣는다면? 칼라일의 발언은 어쩌면 인.도.가 조.선.으로 바뀌었을지도 모르는 시절이었다.이 두 냥반들이 무기탄하게 뱉어낸 발언은 인도를 완전 무시한 발언이기도 하거니와 알고 보면 인도가 조선이 되었을 수도 있던 시절의 이야기이고, 본디 싹수가 노란 사람들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그 발언을 그대로 옮겨 쓴 기자 냥반은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단 말인가? 셰익스피어의 유명세를 빌려 책의 날을 강조하다보니 아차 실수를 저지른 기사로 보이기는 하지만, 글을 쓰기 전에 남들보다 생각을 한 번 더 해 본 후에 글을 써야 하는 사람이 기자 냥반이 아니던가?

 

그럼 그 많던 식민지 중에 왜 하필 인도였을까. 인도는 땅도 겁나 넓고 인구도 겁나 많아 영국의 입장에서 생산성으로 치면 그 중요성은 말할 나위가 없는 나라였다. 17세기 당시는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가 인도를 서로 차지하겠다고 다투던 시기였다. 영국이 막상 인도를 차지하고 보니 인도인들이 선뜻 자신들의 뜻에 따라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동인도 회사를 설립, 전 세계를 수탈하는 전초기지로 인도를 사용하고 있었으나 인도를 결코 무력으로 구속할 수가 없었다. 하여 나는 칼라일이 인도와 셰익스피어를 어쩌구 하는 말도 안 되는 소릴 지껄인 것은, 인도는 결코 자신들의 뜻대로 움직여주는 만만한 나라가 아니었음을 개탄하는 소리로 들리는 이유이다.

 

인도는 공자가 자로의 질문에 답하며 가르친 남방지강(南方之强)의 대표적인 나라이다. 무력으로는 절대로, 절대로 날로 먹을 수 없는 그 남방지강 말이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사정이 이와 같으니 칼라일의 발언은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고, 신 포도를 바라보는 아쉬운 심정으로 내뱉은 말이 바로, 셰익스피어와 인도 어쩌구 라는 말이다, 이 기자 냥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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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이었는지 품절이었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둘 중 하나의 이유로 책을 구매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알라딘 중고를 검색해보았으나 가격을 겁나겁나 높게 정해놓았다.

 

그런데 도서를 검색 하던 중, 우연히 재판매 중인 거다.

오호홋~! 바로 장을 보았다.

 

 이 책을 많이도 기다렸다. 알라디너라면 거의 모를리가 없는 에코는 한마디로 대표적인 표절 작가이다. 나 표절했소~! 라고 대놓고 천명한 작가이기도 하지 말입니다. 자신의 표절 선언을 바로 이 책, 장미의 이름 작가 노트에서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 만으로도 나는 이 책에 흥미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자신을 표절 작가라고 천명한 에코를 정작 평론가들이나 독자들은 그 어느 누구도 에코를 표절작가라고 부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되려 창의적이고 훌륭한 작품이라고 호평한다는 사실이다.

갑자기 우리 나라의 어느 작가가 잠시 떠올랐다가는 사라졌다. 

 

한때 대학가에서는 장미의 이름을 읽었네, 읽지 않았네로 갈리면서 너 그거 읽아 봤나, 것도 안 읽었단 말이냐, 로 끝이 나던 책, 장미의 이름이다. 그런데 더 재밋는 것은 읽은 사람이나 읽지 않는 사람이나 별반 차이가 없었다는 사실, 변함없는 사실은 읽었다 읽지 않았다는 것일 뿐.

 

사실은 셜록 흠즈와 장미의 이름, 회남자와 중용, 이들 간에는 약간의 공통점이 있어 서재글을 써보려했으나 게을러 그러지 못했다. 물론 책이 도착하는 날까지 여유도 있고...  

 

 

사실이고 오실이고 간에

사실은 이런 이야기를 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사실은 슈베르트의 작품, 물위에서 노래함 이라는 곡을  포스팅하려던 참이었다.

사실은 가을 분위기가 왠지 나는 노래인데 봄비에 그냥 생각이 났다.

이안 보스트리지가 부르면 사계절 맛이 다 나기도 한다.

물 위에서 노래함 인데 엉뚱하게 겨울이 생각나기도 하는...

(강물이 얼어붙은 겨울에 무슨 물 위에서 노래함??) 

 

오늘은 한마디로 아침부터 비가 이쁘게 내리고 있었다. 지난 밤 부터 내린 비 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참 이쁘게도 내린다.

곡우에 미처 내리지 못한 아쉬움 때문일까...

한 해의 농사를 시작하는 농부들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비일 것이다.

그 마음을 조금은 알듯도 하지만 말이다..

 

노래를 정말 겁나겁나 잘 부르는 냥반,

불구하고 팬에 대한 서비스 정신은 세상에서 평판이 겁나겁나 나쁜 냥반에 속하는 냥반,

이안 보스트리지이다.

 

 

 

가사는 어디에선가 긁어와 붙였습니다.

한마디로 표절한거지요 ㅠ.ㅠ 

가사의 한글 내용은 봄 비를 기다리는 농부의 마음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라 생략합니다 ㅠ.ㅠ

 

좌측 이미지는 아래의 노래가 실린 음반인데...

품절이라고 하네요 ㅠ.ㅠ

왜 마음에 드는 상품들이 죄다 품절인지 원...

 

 

 

 

 

물 위에서 노래함

 

 

Auf dem Wasser zu singen

 

Mitten im Schimmer der spiegelnden Wellen
Gleitet, wie Schwäne, der wankende Kahn;
Ach, auf der Freude sanftschimmernden Wellen
Gleitet die Seele dahin wie der Kahn,
Ach, auf der Freude sanftschimmernden Wellen
Gleitet die Seele dahin wie der Kahn;
Denn von dem Himmel herab auf die Wellen
Tanzet das Abendrot rund um den Kahn,
Tanzet das Abendrot rund um den Kahn.

Über den Wipfeln des westlichen Haines
Winket uns freundlich der rötliche Schein;
Unter den Zweigen des östlichen Haines
Säuselt der Kalmus im rötlichen Schein,
Unter den Zweigen des östlichen Haines
Säuselt der Kalmus im rötlichen Schein;
Freude des Himmels und Ruhe des Haines
Atmet die Seel im errötenden Schein,
Atmet die Seel im errötenden Schein.

Ach, es entschwindet mit tauigem Flügel
Mir auf den wiegenden Wellen die Zeit.
Morgen entschwinde mit schimmerndem Flügel
Wieder wie gestern und heute die Zeit,
Morgen entschwinde mit schimmerndem Flügel
Wieder wie gestern und heute die Zeit,
Bis ich auf höherem strahlenden Flügel
Selber entschwinde der wechselnden Zeit,
Selber entschwinde der wechselnden Ze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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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의 말로는 날이 추워지니 절친의 몸이 더욱 쇠약해지고 급기야 덜컥 병이 들어 혼절을 하다시피 했다고 한다. 약을 처방 받았으나 효과를 보지 못했다. 그렇게 그간의 과정을 이야기 하는 사이 한참 만에 이 수류탄이 눈을 떴다. 절친의 말로는 몸이 점점 아파와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느끼는 순간, 기절을 한 것 같다고 했다.  

 

다음 날, 아침이 되니 의사가 와서는 내게 주의사항을 알려줬다. 이 친구는 현재 폐가 찌그러진 상태인데, 이를 ‘기흉’이라 한다고 했다. 이 기흉이라는 것이 한마디로 허파에서 바람이 빠져나가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워낙 체력이 약하고 폐 또한 약한 사람이라 이런 일이 생긴다는 거였다. 게다가 또 뭐라더라...했는데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여하튼 담배도 안 피우는 넘이 그 말로만 듣던 허파에서 바람이 샌다니...허헛, 참 내원, 젊은 넘이 가지가지 한다... 어쨌거나 결론은 이 친구를 웃기면 절대로 안된다는 거였다. 환자가 웃으면 폐의 손상이 더 커진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러나 이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나는 대수롭잖게, 네~! 했다.

 

의사가 나가자 나는 이 친구를 돌아보며,

너는 복도 많다~, 남들은 아파서 죽는다던데, 너는 웃으면서 죽게 생겼네?

 

별 뜻없이 한 말인데 이 말을 들은 이 친구가 갑자기 웃음보를 터트렸다.

순간, 의사의 주의가 생각나,

어라라? 너 웃으면 안되는데?

했더니, 이번에는 통증이 오는지 가슴을 부여잡으며 웃음을 이기지 못하고 있었다. 어라라... 이게 아닌데...

웃음은 터지고 가슴은 아파오고, 이 친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웃다가는 그만 가슴을 부여잡으며, 악! 하고 쓰러져 버렸다.

아불싸~! 하고, 나는 간호실로 뛰어갔다.

 

간호사는 이 친구를 긴급 이송했다.

누나가 잘 봐달라며 당부하고 돌아갔는데 그러기는 커녕, 내가 말 한마디로 이 친구를 죽이는구나... 싶은 것이 정신이 아득하기만 했다.

 

그렇게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데, 한 참 만에 친구가 돌아왔다. 몇 시간이 흘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친구는 마치 죽은 사람처럼 눈을 감고 있었다. 죽었나 살았나 다가가 손을 가만히 만져봤다. 다행이 손이 따듯했다. 한 참 만에 이친구가 눈을 떴다. 이친구가 눈을 뜨는 것을 보자 나는 그만 긴장이 풀렸던지 스르르 잠이 들고 말았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지루한 날들이 계속되었다. 누나는 심심하면 테레비라도 보라 100원짜리 동전을 한줌 쥐어주고 갔다. 그 병원에는 병실에 테레비가 있었는데 100원짜리 동전 하나를 넣으면 얼마간의 시청이 가능했다. 드리마라도 한 편 보려면 수백원을 투입해야 했다. 지금이야 병실마다 테레비를 매달아 놓아 돈을 내는 일이 없지만 당시에는 환자와 가족에게 테레비로 또 다른 영업을 하던 시절이다. 그러나 친구는 대부분의 시간을 잠으로 보냈다. 친구가 잠시 깨어있는 사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거나 그에게 한하운의 시를 읽어주곤 했는데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다른 책을 찾는다.

 

친구는 나에게 자주 말하곤 했다. 병이 나으면 나의 고향을 가보고 싶다고, 나는 데려가마 했다. 나의 고향에 가 보고 싶어하는 친구, 나도 너의 고향에 가보고 싶구나. 그러던 어느 날, 동아리 동료들이 문병을 온다는 것이었다. 어라라 하고, 나는 문병은 절대 사절이라고 말했다. 환자의 절대 안정과 일맥상통하는 나의 적절한 조치였다.

 

그러나 이 죄다 무지렁한 넘들은 내 말을 당췌 알아먹지를 못했다. 아니, 너네들 다녀가는 순간, 이 친구 죽을지도 모른다, 는 내 말을 통 믿지를 않은 거였다. 그런게 잇딧냐며 내일 보자고 하고는 전화를 뚝 끊어버리는 거다. 이런 무지렁하기는, 어딧기는? 여깃지! 혼자 중얼거렸다. 그나 저나, 낭패다 ㅠ.ㅠ. 요즘처럼 스맛폰이 있다면 암 때고 전화를 하거나 가독, 문자 또는 이메일로 상황을 알려줄 수 있겠다. 아니 일명 가스에 인증 샷을 올려 환자의 상태를 보여줄 수도 있겠다. 허나, 당시는 현재와는 많이 달라서 금지곡과 금서가 있던 시절이 아니던가. 또한 편리하게 전화기를 사용하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물론 헌.책.방. 하면 청.계.천! 하던 그 시절 말이다.

 

다음 날 오후가 되자, 애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당황하여 나는, 여기는 절대 안정, 엉? 특히, 절대로 환자를 웃기지 말것!! 하자, 그 중 상 무지렁한 넘 하나가 상황 파악을 못하고는, 환자는 많이 웃어야 빨리 낫는데이~!! 했다. 별것도 아닌데 사람의 수가 많다보나 여기 저기서 웃음이 삐질거린다. 웃음은 전염성이 확실히 높다. 메르스는 저리가라다. 여기저기서 삐질거리던 웃음이 어느 순간 터져버렸다. 결국 이 수류탄의 웃음보까지 터트려버린 것이다. 큰일이다! 싶은 순간, 아니나 달라, 이친구가 다시 가슴을 부여잡고는 또 악! 하고 쓰러지는 거다. 아~! (안)되는 넘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탄식이 절로 나왔다. 그렇게 이 친구는 다시 어디론가 실려 갔다.

 

 

보통 약골들은 체육대회때 물 주전자를 나르거나 뒤에서 응원하기마련인데, 이 친구는 그렇지가 않았다. 꼭 앞에 나선다. 그러니 몸이 파김치가 되가지고는 피곤해서 죽을라 그런다. 다음 날 일어나지도 못할거면서 기를 쓰고 덤벼든다. 성질도 어찌나 화끈한지 못마땅한 꼴을 못 본다. 뻑-하면 쌈박질이다. 안동의 깊은 산골, 냥반댁 출신인 이 친구는 불의를 참지 못했다. 뿔끈해가지고는 죄다 참견이다. 한마디로 오지랖이 하해와도 같았다. 그러나 호방하고 그 기개가 높은 것은 부인할 길이 없다. 나는 그의 호방함과 기개를 높이 샀다. 사내란 저래야 하는 법!

 

또 오랜 시간 만에 만에 친구가 병실로 돌아왔다. 진짜, 더 이상 웃.으.면. 안.된.다. 더 웃으면 이 친구는 죽음이다. 문병객들은 사고를 쳐 놓고는 벌써 돌아가고, 친구와 마주했다. 마음이 착잡하다. 이러다 친구를 잃는 것은 아닌가...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의학적 지식이 없다는 것이 이리도 답답할 줄이야...

 

그리고 나는 하숙집으로 돌아와, 책을 하나 골랐다. 왜냐면 친구가 내 책꼿이에 있는 책을 원했기 때문이었다. 그 책은 정현종외 공저의 「시의 이해」였다. 당시 신입생이었던 나에게 난이도가 상당히 높았고, 지금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해도 하지 못하면서 마냥 읽던 그 시절이었다. 생각해보니 국문과도 아니면서 시를 왜 좋아했는지 잘 모르겠다. 친구와 나는 시를 제법 읽었다. 「김춘수 전집」은 기본 장착하고 있었고, 멋도 모르고「시의 이해」를 읽으려 덤버들었다. 우리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우리처럼 시를 읽는다면 배고픈 시인이 세상에 어딧겠나?”

 

당시에 시집을 꽤나 가지고 있었다. 영미 시와 국내 시집를 모두 더하면 100여권이 넘어갔다. 영미의 시인들은 강의 시간에 귀에 딱지가 않도록 듣는 이름이고, 솔.까.말. 친구와 나는 영미 시에서는 매력을 거의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내용은 어떨지 몰라도 문화의 차이 때문이겠지만 시의 맛깔을 제대로 느낄 수가 없다. 감동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한글이 주는 표현의 자유로움과 한글이라는 언어가 주는 뉘앙스의 풍부함, 그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데 매우 제약이 따르는 것이 영미시라고 느꼈다. 물론 이는 영미시를 몰라서 하는 소리겠지만 말이다. 외우려고 시도했던 시는 겨우 몇 편에 불과했고, 그 중 하나는 미국의 롱아일랜드 출신인 ‘휘트먼’의「Song of the Open Road」였다 (나는 이 시를 「대로의 노래」라고 불렀다). 그나마 절반만 외우고는 포기했다. 영미 문학보다는 되려 서양 철학에 훨씬 더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영미시는 소네트의 형식을 제외하면 감동을 별로 느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다음은 휘트먼의 1852년 작인「Song of the Open Road」의 일부이다. 물론 번역도 내맘대로다.  

 

 

 

Comerado! I give you my hand

친구여! 나는 그대에게 나의 손을 내민다

 

I give you my love more precious than money

나는 그대에게 돈보다 더 소중한 나의 사랑을 준다

 

I give you myself before preaching and law

예배나 법 이전에 나는 그대에게 나를 보낸다

 

Will you give me yourself?

그대는 내게 그대를 주련가

 

Will you come travel with me?

함께 여행하지 않으련가

 

Will you give me yourself? Hey!

친구여! 나에게 그대를 주련가

 

Will you come travel with me?

함께 여행하지 않으련가

 

Will we stick be each other?

우리 서로 함께하지 않으련가

 

as long as we live?

우리 살아있는 한

 

As long as we LIVE?

우리 살아있는 한

 

 

 

 

그리고 시절에 맞게 회자되는 국내 시인들이 주로 관심의 대상이었다. 당시 생존에 있었던 언어의 연금술사 「김춘수 전집」은 기본이었고, 이미 작고한 「김수영 전집」은 소장 필수 항목이었다. (김수영을 모르면 간첩이겠지... 아니, 당시 간첩도 김수영이라는 인물은 배우고 넘어왔을 것이다)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타계한 시인 정지용은 은밀한 대화의 대상이었다. 생존해 있었지만 백석의 시는 같은 이유로 햇빛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작고하신 절대 고독의 김현승, 생존에 있는 김지하, 이제는 돌아가셨지만 당시에 생존하시던 조아무개 시인, 그리고 양성우, 신경림, 조해일, 정호승 등 시인들의 작품을 읽었다. 천상의 시인 천상병의 시도 잊지 않고 읽었다. 더 많은 시인들이 있었지만 당장에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물론 프랑스의 보들레르는 영원한 화제 거리였다. 당시,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 강이 흐르고, 우리네 사랑도 흘렀다, 로 시작하는 「미라보 다리」를 쓴 시인 ‘아폴리네르’를 모른다면 학생도 아니었다. 친구는 이「미라보 다리」를 특히 좋아해 달달 외우고 다녔다. 

 

 

(알라딘 검색을 하니 결과물은 나오는데 상품의 이미지는 보이지 않는다.  절판일 것 같은데 품절이라고 나온다.  대신 중고는 검색 가능하다. 이이미를 다운로드하여  첨부함.)

 나보다 훨씬 더 시를 좋아했던 이 친구는 정현종의 책을 원했다. 친구는 정현종의 이 책을 서점에서 잠시 들쳐 본 후로 마치 연인을 사모하듯 했다. 정현종은 시인이었지만 그의 시보다는 그가 쓴「시의 이해」를 더 선호했다. 나는 흔쾌히 가지고 와 친구에게 읽어주었다. 이 책 역시 알라딘에서 검색할 수가 없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이미지가 남아있다. 정말 귀한 이 책을 그만 친구에게 줘버렸다. 손이 벌벌 떨렸지만 눈 딱 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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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2015-07-17 12: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웃으면 안되는데.... 자꾸 웃음이 납니다. ^^;;
너무 글을 잘 쓰셔서 이 글이 실화인지 차트랑님께서 쓰시는 글인지 마구 헷갈리면서 다음글을 기다립니다.

차트랑 2015-07-17 12:53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보슬비님,
저의 서재를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보슬비님께서 읽어주신 위의 내용은 모두 사실입니다.
그리고 친구를 위해 건방지게도 시를 한편 썻답니다.
시리즈의 마지막에 그 시를 이곳에 적어놓을 생각입니다.
다시 찾아주시고 그를 위한 시도 읽어주시면 정말 고맙겠습니다.

여름 날, 건강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차트랑 드림

아, 상황이 될때, 보슬비님의 서재에 답방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보슬비님

보물선 2015-07-17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웃으면 죽는 병. 패러독스네요!

차트랑 2015-07-17 13:07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보물선님,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웃으면 복이 와요~! 이랬는데 어쩌다가는 ㅠ.ㅠ.

건강에 유의하시고 편안한 하루되세요 보물선님!
조만간 답방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붉은돼지 2015-07-17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귀한 것을 선뜻,, (물론 손은 벌벌 떨렸지만) 친구분에게 드린 님의 용기와 우정에 찬사를 보냅니다. ㅎㅎㅎㅎ

차트랑 2015-07-17 16:51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붉은돼지님~ 그 귀한 것을 ^^

돌아보면 그 당시 얼마나 무지렁했냐면요
어느 대학에서는 국문과 전공학생들의 `시의 이해` 라는 학과정의
강의자료로 정현종님의 저 책을 교수님들께서 쓰고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답니다
한마디로 겁나 무지렁 했지요 ^^

다음 시리즈도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붉은돼지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