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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주 잘 아는 사람은 주말부부이다. 그 친구가 어느 날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를 글로 재구성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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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부인은 지금 집나가서 쏘맥을 하고 있습지요.

그도 그럴 것이 남편이라고 하나 있는게 항상 집을 배우고 밖에 있으니 그럴 밖에요.

나의 여자는 자기 남자인 남편을 무지무지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남편은 멀리 있어서 자기 여자를 제 때 챙겨주지를 못합니다.

그의 아내가 되어 남편을 그리도 사랑하건만...

남편은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도대체 매일 독수공방을 시킵니다.

나쁜 남편이지요...


하지만 그녀의 남편이 자신의 여자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자신의 여자의 마음을 모르는 것도 아닙니다.

마음은 한시도 자기 여자의 곁을 떠나 본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 어떤 남편보다도 자신의 여자를 더 더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처럼 자기 여자를 사랑하고 사랑하는 남자가

세상에 또 어디에 있을까요...

그 남자는 세상에서 자신의 여자를 가장 사랑하고 있습니다.

 

 

부부를 위한 참으로 많은 책들이 검색된다. 그 중에서 바로 그 친구 집에서 읽어본 이 책이 가장 마음에 든다.

부부는 상대방에 대한 禮로 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 모든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출발점은 상대방에 대한 예로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고 조선시대의 예법을 그대로 따르자는 말이 아니다. 예법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모든 예는 그 나름의 의미를 가진다. 그 의미를 알고 행하는 것도 일종의 예에 해당된다.    


 

또한

그 마음 만큼은 세상의 그 누구도 부러워하지 않는 남자입니다.

그만큼 자신의 여자를 훌륭한 여자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자신의 여자보다 더 훌륭한 여자를 만나 본 적도 없다고 합니다.

앞으로 그럴 마음도 없습니다.


오직

세상에서 자신의 여자가 제일 사랑스럽고

제일 이쁩니다.

어찌나 자신의 여자를 귀하게 여기던지요...

그 마음은 세상의 어떤 남자와의 마음과도 바꿀 수는 없다고 합니다.


세상에 태어나 자신의 여자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정말 허망한 인생이라는 것도 모른 채 세상을 떴을 것이라고 합니다.

만약 그러하다면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겠습니까.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지금의 여자를 만났습니다.

그 녀는 자신의 마음에 쏙 드는 여자입니다.

이런 여자는 태어나 처음이라고 합니다.


왜냐면 자신의 여자는

여자의 덕목을 잘 갖추고 있고

인품이 고매하며

그 사람됨이 고명하고 박후하다고 합니다.

너그러움과 인자함을 가진 여자입니다.

그렇다고 매사가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정당하지 못하다거나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경우에는 그 어떤 사람 보다 더

분명하게 판단하고 이를 바로 잡습니다.

 

그래서 혹자들은 자신의 여자를 무서워하기도 한다 합니다..

하지만 사람됨이 있다면

자신의 여자를 두려워 할 이유는 없다고 하네요.

왜냐면 내 친구의 여자는 사람됨이 바르다면

한없는 인간미를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때로는 자신을 희생할 줄 압니다.

하지만 그것을 희생이라 생각하지 않는 여자입니다.

그리고 그것에서 행복을 느낄 줄 아는 여자입니다.

이 얼마나 멋진 여자입니까.

그러니 어찌 내 친구가 자신의 여자를 그토록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남자도 그러합니다.

자신의 여자와 닮은 점이 많다고 합니다.

사람됨을 먼저 알아보고

사람이 되었다 싶으면 믿음과 신뢰를 줍니다.

남자와 여자는 그런 점에서 많이 닮았다고 합니다.

생각하는 근본이 닮아 서로를 잘 이해할 줄 압니다.

이 얼마나 잘 어울리는 부부이던가요.


남자는 그런 자신의 여자를 매일 같이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아마도 깊이 깊이 사랑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자신의 여자를 그토록 깊이 사모하며

가슴을 에일리가 없지 않겠어요.

자신의 여자가 보고싶어 질 때면

가슴부터 에어 온다고 합니다.

가슴 한 가운데로 바람이 휭 지나가는 것처럼 느낍니다.

그것이 시리다가는 아프기도 하다지요.

남자가 자신의 여자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 알만 합니다.


더욱 좋은 것은 남자가 자신의 여자를 깊이 존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여자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여자 또한 매우 훌륭한 여자이기 때문입니다.

남자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바로 그 인품을 지닌 여자라고 합니다.

그러니 남가 자기 여자라면 사족을 못쓰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남자는 자신의 여자라면 사족을 쓰지 못합니다.

그만큼 자신의 여자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남자는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남자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여자는 남자를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넓은 마음으로 마음고생은 혼자 하려고하지요.

남자가 알까봐 별로 말은 하지 않습니다만

그렇다고 남자가 아예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그럴 것이다 짐작하고 있지요.


그래서 남자는 자기 여자를 그토록 더 사랑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자기 여자의 성품을 잘 알고 있으니까요..

그렇습니다.


남자는 지금의 자기 여자가 없으면

아마도 세상에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라 합니다.

왜나면 그런 자신의 여자를 잃는다면

세상을 살아가는 의미를 잃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남자는 그의 여자가 전부입니다.

아무것도 다른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그녀 하나만 있으면 된다고 합니다.

그녀가 곧 자신의 목숨이라도 합니다.

그녀가 없으면 자신도 없는 것이라구요...


그러니 그녀를 혹 잃는다면 이 세상을 혼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어요...

남자에게

오직 단 한사람....

그의 여자 뿐이라고 합니다.


존중하는 마음 또한 그에 못지 않습니다.

이런 남자 또 없습니다.

자신의 여자를 이토록 사모하고 아껴주는 남자는 또 없을 것입니다.

남자는 자신의 여자가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사랑스러운 여자입니다..

그래서 남자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라고 합니다.

비록 지난 반 쏘맥을 마신 자신의 여자에게 술국을 끓여주지 못했다고

안타까워 하는 그런 남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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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련한 친구,

오직 자신의 여자밖에 모르는 나의 가장 절친한 친구,

이들의 주말부부 생활이 하루 빨리 끝나기를 기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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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12-07-09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련하다 라는 말이 이럴때 어울리는지 모르겠지만 글을 읽다 그런 느낌이 드네요.

차트랑 2012-07-09 14:37   좋아요 0 | URL
제가 옆에서 지켜보기가 무척이나 아련한 친구입니다
좋은 날 오겠지요^^
고맙습니다 잉크냄새님~

마녀고양이 2012-07-09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함께 기원합니다.... 주말 부부 생활이 빨리 끝나시기를! ^^
그리고 무지하게 부럽네요, 문득 얼마 전에 방영한 인간 극장의 <길 위의 부부> 편이 떠오릅니다. 정말 부창부수다, 저런 부인이니 저런 남편 곁에서 있을 수 있는거겠지, 나는 할 수도 없으면서 무조건 부럽다고 샘내면 안 되겠다 라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차트랑 2012-07-10 13:18   좋아요 0 | URL
기원해주시니 고맙습니다
참 보기에 좋은 부부입니다^^
때로는 힘들기도 하겠지만
좋은 날이 오겠지요^^
고맙습니다 마녀고양이님~

책읽는나무 2012-07-14 0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말부부였기에 바로 곁에 없는 부인을 더 사랑하는 마음이 애틋할지도 모를일이에요.
물론 평소에도 애틋하셨겠지만요.^^
지금 곁에서 바라볼 수 없기에 더 그립고 그립다보니 그사람의 됨됨이까지 되짚어보게 되는 시간들이 아닐까,싶어요.남자들에겐 말입니다.
사실 여자들은 애 키우고 하다보면 주말부부 시간들도 처음엔 더디 흐르다 나중엔 금방 주말이 되거든요.그래서 남편을 생각하는 시간들이 남편만큼 크게 애틋하지 않은 것같아요.
물론 사랑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겠지만요.^^
아마도 나이 들수록 남자는 여성화가 되어가고,여자는 남성화가 되어간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는 생각도 들구요.ㅎㅎ
주말부부 5,6년정도 해본 제경험으론 그렇더라구요.ㅋ
시간이 흐를수록 남편은 감성적으로 바뀌어 아내의 빈자리에 애틋해하는 듯한데,정작 부인인 저는 무덤덤~~~ 그래서 주말부부를 이끌어 왔었는지도 모를일이죠.
시간이 지날수록 남자들이 주말부부를 못견뎌 하는 것같아요.
암튼..친구분 얼른 주말부부 청산하시고 사랑하는 부인님과 함께 하는 날이 빨리 오길 바랍니다.^^ 주말부부 오래하면 남편들 건강이 너무 나빠지더라구요.ㅠ


차트랑 2012-07-14 14:32   좋아요 0 | URL
딱 맞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올 초부터 주말부부에 들어갔는데 최근 친구는 2주에 한 번 부인을 만나러
내려가더라구요.
이번 주에는 부인께 내려간 모양입니다.

그런데 가만히보니 건강이 많이 나빠보입니다.
제가 병원에 챙겨 데려가고 있답니다^^

이 친구도 5년 정도의 기간을 예상하더군요.
그러다보니 제가 매번 괴롭습니다^^
괴롭힐 사람이 없으니
그 불똥이 제게로 튀더군요^^

그래서 저도 하루 빨리 벗어나고파~^^
부부의 예를 알고 극진하게 사랑하는 부부인데
안타깝습니다..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책읽는나무님~
 

어느 산골 깊은 곳에는 어린 삼형제가 있었다.

겨울이면 감기가 떨어질 날이 없어 허연 코를 쥘쥘 흘리며 훌쩍이고,

생전 양치질은 하는 건지 안하는 건지

조금 재밋는 일이라도 있을라치면

누런 옥수수 같은 이를 씩 드러내면서 실실 웃는 그런 깡 촌넘들있다.

하루 종일 동네 아이들과 바깥에서 어울려 노느라 정신이 팔려

피부는 햇빛에 검게 그을리다 못해, 아예 새까맣게 타버린 그런 형제들이었다.

 

그 중 승원이라는 아이는 막내로 아직 학교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유치원에 다니는 것도 아니다.

한글도 모르고 그저 동네 친구들과 종일 놀다가

해가 뉘엇뉘엇하면 집을 돌아오곤 하는...

 

그 애는 일년에 딱 두번

큰형에게 이루 말로 할 수 없는 땡깡을 있는대로 부린다.

큰형의 봄 소풍과 가을 소풍 때가 바로 그때이다.

 

그 땡깡은 다름이 아닌 학교에 다니는 큰형의소풍을

제 큰형과 같이가겠노라고 선언하는 것이다.

 

승원이의 큰 형은

늘 함께 놀아주고

여름이면 함께 헤엄을 치러 데려가고

겨울이면 썰매와 스케이트를,

그리고 연을 직접 만들어 띄워주는 형이고

팽이도 깍아주며

쥐불놀이에도 데려간다.

 

그런 형이기에 승원이는

학교 소풍에도 자신을 데려갈 거라고 믿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큰 형은 아직 학교에도 들어가지 않은 철없는 막내와

소풍에 동행하는 것은 다른 애들에게 창피한 일이라고 생각했거나

아니면 다른 친구들도 동생들을 하나 데려오지 않는 데

자기 혼자만 동생을 데려가는 것도 뻘쭘하다 생각한 모양이다.

 

그래서 큰형은 동생을 떼어 놓고 가기로 결정한 모양이다.

하여 이리 달래도 보고 저리 달래도 본다.

그러나 이 철딱서니라고는 반 푼어치도 없는 막내에게

먹힐 리가 없다.

막내의 엄마가 나서서 별소리를 다 해도 설득이 되지 않는다.

막무가내인 것이다.

땅 바닦을 떼굴데굴 구르면서 울고불고

고래고래 소리도 지르면서 

따라가겠노라고 기를 써댄다.

막내는 그렇게 해서라고 형의 허락을 받아내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 학교에 갈 시간을 다 빼앗긴 형은

늦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결국 두 손발을 다 들수 밖에는 없다.

그의 큰형은

마지막 비장의 카드를 내민다.

'형이 돌아오면서 과자를 사오마. 그때까지 형을 기다려주련....'

 

막내는 형이 내민 그 비장한 카드가 마음에 드는지

꼬질 꼬질한 눈물을 훔치면서도 고개를 끄덕인다.

그 협상에 흔쾌히 허락을 한 것이다.

'꼭 사와야돼~!' 그렇게 한 번 더 다짐을 받고는

형을 놓아주는 것이다.

 

승원이는 형의 그 약속을 철썩같이 믿고는

하루 종일 해가 지기를 기다리며

지루한 하루를 보낸다.

친구들하고 놀다가도 하늘을 쳐다보고 또 쳐다보고...

 

그렇게 길기만 하던 해가 서서히 서산으로 기울고

이제는 집으로 가서 형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가만 하면 되는 것이다.

곧 형이 돌아오겠지...

 

승원이는 온 종일 밖에서 있었으니

몹시 시장도 할터인데

밥도 먹지 않고 한쪽에 쪼그리고 앉아 형이 오기를 기다린다.

어둠이 내리고서야 드디어 승원이의 형이 대문을 들어선다.

 

승원이는 비호처럼 형에게 달려가

협상의 내용물을 요구한다.

형아~ 과자~

 

그러나 형은 아무런 말이 없다.

형아의 보자가 안에는 달그락 거리는 빈 도시락 뿐

따로이 내어줄 만한 과자가 들어있지 않은 것이다.

형은 멋적고 어색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어쩔줄을 모른다.

동생에게 한 약속을 스스로 저버린 형도

면목이 없는 모양이다.

 

승원이는 이 사실을 확인하고는 다시 안뜰을 떼굴떼굴 구르면서

대성 통곡을 한다.

안뜰을 떼굴떼굴 뒹굴면서 아주 쓸고 다닌다.

승원이의 대성 통곡으로 온 집안은 난리가 난다.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모두 안뜰로 나와

승원이를 달래려고 애를 써보지만

이게 어디 통할 일이던가.

그렇게 제풀이 지쳐 나가 떨어져야만 끝이 날 모양이다.

 

울고 불고 난리를 치면서 땅바닦을 굴러대는 바람에

얼굴이며 온 몸은 흙 투성이에다가

눈물과 뒤범벅이 되버린 얼굴은

아예 위장한 특공대의 얼굴과 다름이 없다.

 

제 풀어 지쳐 시체처럼 축 늘어진 후에야

엄마의 손에 이끌려가서는

세수 시키고 손을 닦아준 다음에서야

방으로 들어가 곤한 잠에 떨어진다.

 

승원이는

형의 가을 소풍이 되어서는 봄 소풍때의 일을 똑같이 반복하는 것이다

그리고 역시 그 비장의 카드를 받고 나서야 형을 겨우 놔주는 것이다.

 

가을 소풍때는 형의 귀가 시간이 훨씬 더 늦었다.

깜깜한 밤이 되어서야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역시 형의 보자기 속에는 빈 도시락이 달그락 거리는 소리 뿐....

 

가을 소풍도 그렇게 승원이의 떼쓰는 소리와

실망한 나머지 온 안뜰을 떼굴거리며 뒹구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그리고 다음 소풍이 왔다.

이제 승원이는 에전 처럼 떼를 쓸 필요가 없다.

학교에 들어가 제 소풍을 가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소풍을 다녀오고 또 다녀오고.....

 

드디어 승원이도 4학년이 되어 가을 소풍을 가게 되었다.

일년에 두번 가는 소풍이고

여러번 다녀 왔지만 소풍을 하루 앞 둔 날은 밤은 왠지

잠이 잘 오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 소풍은 평소 와는 약간 달랐다.

승원이의 엄마가 승원이의 손에 처음으로 동전을 쥐어준 것이다.

맛있는 거 사먹으렴...

승원이는 두 눈이 똥그러져서 엄마 얼굴을 한 번 쳐다보고는

자신의 손을 펴본다...

십원짜리 동전이 4개나 된다.

 

그렇게 40원을 주머니에 넣고는 달음박질로 뛰어간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승원이는 그 의미를 알지 못했다.

그렇게 하루 소풍을 다녀오고 나서

하루 종일 친구들과 또 딴짖을 하다가는

어둑어둑 해가 떨어지고 나서 집으로 돌아와

대문에 발을 들여 놓는 순간....

승원이는 그 의미를 불현듯 깨닫기 시작했다.

 

큰 형이 그토록 땡깡을 쓰는 막내에서

하는 수 없이 막판에 비장의 카드를 내밀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말이다.

그 카드는 사실상 실효가 없는 카드 일 수밖에는 없었다.

애초에 유효한 카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승원이도 4학년이 되어서야

소풍 날 쓸 용돈으로 10원짜리 동전 4개를 받은 것이다.

 

승원이의 큰 형은 사실 소풍 날 쓸 용돈을 받아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과자는 사올 엄두도 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를 알리 없는 승원이는 떼굴거리며

온 집안에 난리 칠 것이 뻔하다.

행여 막내가 잠에 들었을까 밖에서 기다리고 기다리다가는

주린 배를 견디지 못하고

늦은 밤에 대문을 들어선 것이다.

자신의 지킬 수 없는 약속에 대한 미안함이

밤까지 그 긴 시간동안 밖에서 서성거리게 만든 것이었다.

 

승원이는 40원의 용돈을 받은 후에야

형의 그 비장한 카드는 정말로 비장한 카드였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형아야~ 미안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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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2-07-06 0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0원의 용돈이란 금액의 크기로 보건대 허연 코 아니고 누런 코 일 것 같다는, ㅋ~.
형아야~
부르고 졸졸 따라다닐 그 누구가 있다는 것도,
그런 추억이 있다는 것도 왕 부러움이라는~^^


차트랑 2012-07-06 12:20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
누런코는 좀 더 창피하자너요^^
40원이 가지는 정보력이 대단~

손수건을 핀으로 고정시켜 앞에차고
그때는 그렇게 입학식을 하지 않았겠어요?^^
이유인 즉슨 입학식의 시기는
겨울의 끝인지라 어린이들이 죄다
감기 떨러질 날이 없어가지고 코 쥘쥘모드^^

덕분에 헝가리~를 신버전으로 들으니 좋은걸요~
고맙습니다 양철나무꾼님~

하늘바람 2012-07-06 14:22   좋아요 0 | URL
차트랑공님 덕분에 저도 좋은 음악 감상해요

책읽는나무 2012-07-14 07:20   좋아요 0 | URL
저도 덕분에 좋은 음악 놓치지 않고 잘 듣고 갑니다.^^
덕분에 아침이 상쾌하네요.
오늘 비온다고 했는데..^^

하늘바람 2012-07-06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어린시절 이야기인가요?
재미나고 짠한데요
그림책으로 만들면 재미날 것같은
멋진 형을 두셨네요

차트랑 2012-07-06 12:22   좋아요 0 | URL
숨겨보려고 했눈뎅, 들켰다는 ㅠ.ㅠ
제 형들이 다들 막내에게 잘해주셔가지고요
사연들이 많은 편입니다.

어린 시절의 일들이 떠올라
추억을 되살리며 적었을 뿐인데
재미나게 읽어주시니 고맙습니다 하늘바람님~

마음을데려가는人 2012-07-13 0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위의 하늘바람님처럼 그림책 혹은 동화를 연상했어요.
좋은 추억이네요. :)

차트랑 2012-07-14 17:27   좋아요 0 | URL
좋은 추억이라 생각해주시어
고맙습니다
마음을데려가는인님^^
더불어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책읽는나무 2012-07-14 0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는 산골아이들 이야기인가? 싶어 읽었는데
아무래도 데굴데굴 구르는 승원이에게 너무나도 강한 감정이입에 눈치챘습니다.
40원에서두요.ㅎㅎ
초등생들이 읽을 수 있는 그림책으로 멋지게 그려낸다면 정말 감동적인 책이 되겠다 싶어요.

어린시절을 회상한다면 형제,자매가 빠질 수 없는데,
서열에 따라 회상하는 의미가 많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갑니다.
전 밑으로 남동생 둘이 있었거든요.그래서 동생들을 데리고 놀았던 기억이 있네요.
특히 막내동생은 친구들과 놀러가려면 꽤나 누나를 따라다녔어요.
그래서 친구들과 고무뛰기할때 막내가 곁에 있었던 기억이 생생해요.
좀 크더니 녀석은 제형아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녔지만요.
다음생에 태어난다면 나도 막내로 태어나고 싶단 생각이 불쑥 드네요.
형아들의 사랑을 받고 자라신 님이 부러워서 말입니다.^^

차트랑 2012-07-14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깊픈 산속, 산골아이들의 이야기로 쓰고 싶었는데
어쩐지 주관적인 요소를 제거할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제가 아는 분이 초등학교 선생님인데
그분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생각이 떠올라 적어보았답니다

그 분은 정말 훌륭하시다 생각들고요
저도 그분의 수업을 한 번 받아보았으면...
하는 바램이 일정도로 감동적인 분이랍니다

당시 40원이 어느정도의 액수였을까...생각해보았더니
대략 그 가치를 알수가 있더라구요.
다음에는 그 가치를 알 수 있는 글을 하나 써볼까 합니다^^

워낙 깊은 산골에 살던 아이들은
돈의 가치를 전혀 모르고 지냈다는^^
물론 돈을 만져 볼 기회가 없었던 탓이기도 합니다.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책읽는 나무님~
큰형, 혹은 큰 누나는 나머지 분들과
확연하게 다른 면모를 가지고 있는 것이 틀림이 없습니다
 

 동양 고전에 대한 사적인 입장...


학문 혹은 사상은 결코 시대의 상황을 배제하고 이해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모든 사고는 시대가 요구하는 필요성에 부응하여 혹은 시대와의 갈등을 원인으로하여 발생하고 또 변화해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와 경제도 이와 마찬가지여서, 경제를 배제시킨 역사인식은 분명히 절름발이 역사인식이라고 생각한다. 사상, 경제, 역사는 사건을 이해하기 위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라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 개인적인 입장이다. 이것이 좀 무리한 견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여하튼 독자의 한 사람으로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는 그러하다...


최근에는 부쩍 동양의 사상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는 비단 나만의 경우는 아닐 것이다. 단순하게 동양의 고전을 공부를 하던 입장에서 일탈하여 삐딱선을 타기 시작한 것이 몇 해 전부터 시작되었다는 뜻이다. 과거 조선의 동양 고전 학습 방법은 텍스트를 줄줄이 암기하는 식이고 주희의 집주까지도 달달 외워 그것을 타자에게 증명해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한마디로 내용을 암기하다가 침 한 번 꿀꺽 삼키면 훈장님의 회초리가 종아리로 날아오는 방식인 것이다. 한 번 침을 꿀꺽 삼킨다는 것은 학문을 게을리했다는 명징한 증거가 되고도 남음이 있었던 것이다.


물론 논술시험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논술마저도 고전에서 인용한 것들이 대부분이고 누가 고전에 등장하는 고례를 더 많이 아느냐의 문제에 불과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례를 하나라도 더 많이 아는 것이 상대방의 견해를 제압하는 도구라는 것은 지극히 권위의식을 근거로 한다는 뜻이다. 고례는 그것을 알고 있는 자에게 그만한 권위를 부여했던 것이고 현대의 학계에서도 이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베이컨이 언급한 '극장의 우상'의 우를 범하는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남송의 탄생과 성리학

 

사대부는 중국 고대 주나라 때 천자나 제후에게 벼슬하던 사(士)와 대부(大夫)에서 비롯된 것으로, 후대에서는 문관의 관직의 위치로 정착되었다. 사대부들이 정치권력의 핵심으로 부상한 것은 중국의 송나라 이후, 특히 남송 이후였다.


이 사대부들은 성리학을 세계관으로 삼았다. 성리학은 당시 남송이 처한 시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한다. 우주의 질서와 인간의 질서를 이기론을 통해 하나의 동일적인 원리로 파악하는 철학적 유학이면서 동시에 정치적으로는 중화사상의 중세적 이데올로기이기도 하다. 고대 유학과 비교하여 성리학을 중세 유학이라고 하는데, 성리학의 확립에는 두 가지 요소가 작용한다. 하나는 송나라에서 발전했던 불교 선종이고 또 다른 하나는 남송이 처한 정치적 현실이다. 고대유학이 춘추전국시대의 혼란을 극복하기 위한 정치이론이었다면, 성리학은 중세 유학으로서 이민족의 침입에 시달리던 중국의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정치이론인 것이다.


당시 송나라는 거란족인 요나라의 침입을 받았고, 단연의 맹약을 맺고 국체를 보존해야만 했다. 즉, 송과 요가 형제관계를 맺고 그 대가로 송나라는 요나라에게 명주 20만 필과 은 10만 냥을 조공한다는 조약을 체결한 것이다. 이민족에게 조공을 바치는 것은 송나라의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내는 일일 뿐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지대한 손실을 가져왔다. 하여 송나라는 여진족의 금나라를 끌어 들여 이이제이 전략을 구사하게 된다. 송나라가 금나라의 군사력을 이용하여 요나라를 멸망시킨다는 전략인 것이다. 결과는 대 성공이었다. 금나라가 요나라를 멸망시킨 것이다.


 그러나 금나라는 송나라가 매우 약한 나라라는 것을 간파하고 송나라를 공격하게 된다. 송나라의 상황이 전보다 더욱 나쁜 처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금나라의 군사력을 감당할 수 없었던 송나라는 중국의 중원 대륙을 금나라에게 내어주고 양자강 이남으로 도망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북송의 멸망을 의미하며 남송의 탄생을 뜻하는 사건이었다. 더더욱 나쁜 상황은 송의 황제 휘종과 흠종을 비롯 여러 왕족들이 금나라로 잡혀간 것이다. 금나라가 양자강 이남으로 도강하여 송을 멸망시킬 것을 두려워한 송은 금나라에 막대한 조공물을 바쳐야 했으며 임금의 나라로 모시는 사대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성리학은 바로 송나라의 이러한 비참한 현실을 반영하는 정치적 시대적 상황에서 출현하게 되는 중국의 이데올로기 인 것이다.


성리학이 정통론과 명분론에 그토록 집착했던 이유가 바로 그러했다. 송나라가 중원 대륙을 빼앗기고 금나라에 사대하여 목숨을 부지하고는 있지만 정통은 자신에게 있다고 주장하는 사상 체계가 바로 성리학인 것이며 주희가 정통과 명분에 그토록 집착한 이유이기도 하다.

 

 

고려 말의 정치적 도구, 성리학

 

사상과 철학이 국가의 제도적 시스템을 구축하는 매우 긴요한 도구임을 부인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대 항해 시대라 일컫는 유럽의 식민지 정책은 물론 세계 대전을 일으키며 대륙을 피로 얼룩지게 했던 독일이 그러했고, 동아시아를 자신들의 텃밭으로 만들었던 일본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이는 사상과 철학이 자신들의 행위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함과 동시에 대중들을 선동하여 이용하려는 목적을 가진 도구임이 여실히 드러내는 역사적 증거물들의 대표적인 예라 하겠다. 하여 때로 ‘권력의 시종, 철학’이라는 말을 심심찮게 듣게 되는 이유이다. 정작 사상가들 스스로야 이 표현을 불쾌하게 여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역시 그 누구라도 부인 할 수 없는 역사를 우리는 가지고 있지 않던가...  


예나 지금이나 이러한 용도의 성격을 벗어나지 못하고 마는 것이 어쩌면 철학의 운명인지도 모르겠다. ‘진리를 자유케하라’는 모토가 허망한 메아리로 들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기대감을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는 우리 사회는 정녕 아이러니의 극치를 보여주는 사회는 아닐런지... 생각해보면 정말로 비철학적이며 비이성적인 자세가 아닐 수 없다... 현실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이성을 가진 지극히 비이성적 우리들의 자화상.... 도구로서의 성격을 지닌 철학적 진실을 알면서도 그 와는 정반대의, 무균실 안의 순수한 철학을 기대하고 있는 우리들은 어쩌면 쉽게 이해하기 힘든 스톡홀름 증후군을 철학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려 말 신흥 사대부들이 성리학을 자신들의 정치이념으로 받아들인 것은 부패한 불교에 대한 반발작용으로 간주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상 이는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권문세족들이 주도하는 정치적 현실에 대적할 상대적 이데올로기로서 성리학의 명분론을 가장 적합한 도구로 판단했다고 보는 것이 훨씬 더 설득력 있는 견해일 것이다. 성리학은 결국 현실을 지배하는 금나라가 정통이 아니라 송나라이듯이, 고려는 권문세족이 아니라 신흥 사대부가 정통이라는 이론인 것이다.     


성리학은 원나라를 통해 고려로 들어온다. 충선왕이 연경에 세웠던 만권당이 그 역할을 했다. 그 이름도 유명한 이제현은 만권당 출신이다.  고려 말 신흥 사대부들이 성리학을 채택한 또 다른 이유는 사회, 정치적 배경에서 찾을 수 있다. 남송이 위치한 양자강 유역은 풍부한 수량과 강우량을 자랑하는 지역으로 수전(水田)농업이 가능했다. 수전 농업은 지주와 전호를 두 축으로 하는 중세의 생산관계 체제를 가능케 했다. 남송의 지주는 당나라나 오대(五代)의 형세호(대지주) 와는 다른 중소지주였다. 남송의 지배적 생산관계는 중소지주와 전호였던 것이다. 고려 말의 신흥 사대부들 역시 중소지주들로 경제적 기반은 남송의 지주들과 매우 흡사한 형태를 띄었다.


성리학은 바로 중소지주의 자리에서 세상을 해석한 사상 체계였던 것이다. 지주의 자리에서 우주와 사회 그리고 인간을 해석한 철학이 성리학인 것이다. 성리학은 또한 관료들의 학문이며 사상이었다. 성리학의 다양한 요소들은 고려 말 신흥 사대부들의 처지와 방향점에서 함께 만나고 있었다. 이것이 고려 말의 신흥 사대부들이 성리학을 정치적인 배경으로 삼은 이유이다.


 

철저히 소외되었던 고려의 백성에게 극적인 지지를 받으며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를 걸었던 신돈은 공민왕의 배신으로 죽임을 당했다. 신돈의 개혁정치가 실패하자 고려의 백성들은 다시 사대부들에게 큰 기대를 걸 수 밖에 없었다. 백성들의 지지가 아니더라도 신흥 사대부들은 사실 권문세족과 힘겨루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였다. 권문세족들의 대농장이 신흥 사대부들의 토지를 침탈하고 있었던 것이다. 권문세족의 힘이 지속되는 한 신흥 사대부들은 중소규모인 자신들의 토지조차 지킬 수 없는 처지였던 것이다. 결국 신흥 사대부들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서 권문세족과 투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흥 사대부들이 불교를 비판한 이유는 사상적인 차이 때문이 아니라 불교가 바로 고려 권문세족들의 사상적 기반이었기 때문이다. 개경에만 70여 개가 있었다는 거대한 사찰들은 순수한 신앙의 산물이 아니었다. 2,800 여 칸에 달했던 거대 사찰의 이름이 흥왕사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사찰 자체가 지배력이었던 것이다. 온건 개혁파 중 하나인 이색이 불교를 비판하는 상소를 공민왕에게 올렸던 이유가 그것이다. 급진 개혁파는 불교 자체를 부정하기에 이른다. 정도전의 불씨잡변이 이를 방증하는 예인 것이다. 개국 이후 한글을 반포하면서 세종이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등의 불교서적을 출간했던 것은 불교라기 보다는 고려의 권문세족이야말로 극복의 진정한 타겟이었음을 또한 반증해준다. 


신흥 사대부들은 불교를 부정해야만 성리학을 내세울 수가 있었다. 성리학을 지배 이념으로 확보해야만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고 정치를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토지였다. 역성 혁명파는 토지를 완벽하게 개혁하자고 주장했고, 온건 개혁파는 점진적으로 토지를 개혁하자고 주장했던 것이다.

 

 위화도 회군 후 역성 혁명파가 공양왕 2년 모든 토지 문서를 개경의 한복판에서 불질러 없앴는데 ‘여러 날 탔다(고려사)’라고 한 것은 권문세족들의 토지 장악실태를 잘 설명해주는 일화이다.

 

 

성리학이 조선과 남송의 주희에게 가지는 의미

 

이기이원론은 이(理)를 기(氣)보다 우선하는, 즉 理가 氣를 지배해야한다는 논리이다. 퇴계 이황이 처한 정치적 상황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이기론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황은 氣가 理를 압도하는 정치적 상황을 올바른 현상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이황은 훈구파를 자신들의 권력과 이익만을 추구하는 기(氣)집단으로 파악했다. 그도 그럴 것이 부패한 고려의 권문세족들을 몰아내고 쿠데타로 역성혁명을 이끌었던 훈구세력들이 정권을 장악 한 후 권문세족들과 전혀 다를 것이 없는 정치세력으로 돌변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국은 그 누가 보아도 올바른 정치 세력이라기보다는 권력을 앞세운 이익집단에의 의한 一國의 내정 혼란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부정과 부패의 정도가 심각한 것이 조선이었다.


'기철학 연구'는 기철학만을 논한 저술이 결코 아니다. 이기론의 근원을 철저하게 밝혀주었고 동시에 기철학의 존재감을 드러내주는 매우 유익한 저술이라 생각한다. 단순히 기철학을 언급한 책이라는 오해를 살만한 제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이론이 없다면 기론도 없고 기론이 없다면 이론도 존재할 수 없음을 알게해주고 어떻게 이론이 기론을 제압하고 현대에 이르렀는지 궁금해하는 분께는 참 좋은 책이다. 행여 이기론의 갑을 박론에 대한 매우 상세한 이해를 원하는 분이라면 적극 추천해드리고 싶다

 

결과적으로 이황에게 훈구세력은 七情이며 氣의 세력이었고, 士林은 四端이며 理로 인식할 수 밖에 없었다. 이에 理와 氣는 서로 본질적으로 다르며 理는 성리학이 나아가야 할 이상적인 세계가 되고 氣는 극복의 대상인 현실 세계로 변모시킬 필요성이 있었던 것이다. 이황에게 세상은 理가 氣를 지배하는 형태로 바르게 교정되어야 했던 것이다. 즉, 사단이 칠정을 지배하고 사림이 훈구세력을 타파하는 주리론을 체계화 시킨 것이다. 조선을 장차 지배할 理氣二元論의 배경은 위와 같은 시대적 상황과 밀접한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한 의미에서 주희가 자신의 입장과 국가에 대한 자존심을 피력하는 도구로서 성리학에 매진 한 것은 어쩌면 시대적 상황이 주는 필연적 동기가 있었음을 독자가 주지하는 것은 중요한 고려의 대상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주희는 성리학을 순수한 학문의 수단으로 파악한 것이 아니라 땅에 떨어져 구겨질대로 구겨진 자존심을 회복시키려는, 어쩌면 학문을 통해 스스로 위로하려는 목적으로서의 방법론으로 파악하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한 관찰 일 수가 있다는 말이다.  

 

 주희는 여진족의 금나라가 대륙을 지배하면서 남송은 신하가 되어 공물을 바쳐야 하는 시대적 상황과 직면해있었다. 남송이 금나라에 신사봉공해야 했던 당대의 상황에서 주희는 사단철정론을 정립하게 된다. 한(漢)민족이 천하를 지배하는 것이 이상적인 것이요 四端인 반면, 漢족이 여진족의 지배를 받는 것은 칠정의 상황이라는 시각이다. 주희의 입장에서 이(理)가 되는 도심(道心)은 한족의 것인 반면 기(氣)가 되는 인심(人心)은 여진족이었다. 그러므로 理인 한족이 氣인 여진족을 지배하는 것이 필연적인 것이었다. 즉, 理가 氣를 지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주희가 당면한 현실은 자신의 생각과는 정 반대였다. 그리하여 주희는 이상과 현실을 분리하는 작업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주희는 자신이 처한 참담한 시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理氣二元論과 人心道心論이라는 性理學을 탄생시키게 되는 것이다. 도심과 인심을 분리하는 작업, 즉 이와 기를 분리하고 사단과 칠정을 분리하는 연구학문이 바로 주희의 숙원 사업인 성리학 연구의 목적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사상이 가지는 일종의 본색을 목격하고 마는 것이다. 어쩌면 철학은 이미 그 순수성을 잃어버린 지 너무나 오래되어 우리는 그에 무감각해져버린 것은 아닐런지... 성리학 하면 언뜻 떠오르는 사유의 본질, 인과 예 그리고 수신, 위민이라는 용어들과는 애초에 거리가 너무나 먼 것이었다고 생각한다면 너무 비관적인 생각일까.... 어쩌면 철학의 본질이야 말로 권력의 시종이라는 말을 놀랍게도 당연하게 인정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편 조선의 이황은 남송의 주희와 시공을 초월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밖에 없는 시대적 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금나라가 한족을 지배하는 상황이나, 훈구파가 조선을 지배하는 상황이 바로 그랬다. 이황은 주희의 성리학을 완벽하게 이해한 조선의 대유였다. 그러니 주희의 성리학을 이황이 고스란히 받아들여 더욱 깊이 연구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기호발설은 이황이 성리학을 그 얼마나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는지를 잘 증명해주는 학문적 성과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또 다른 한 편, 율곡 이이는 이황의 성리학을 조선의 성리학으로 완성시켜 조선 철학사의 큰 획을 긋는다. 이이는 이황의 학문을 한층 더 발전시켜 理氣一元論이라는 독창적인 조성 철학을 창출해내는 것이다. 그렇다고 두 사람의 견해가 완전히 다른 것은 아니다. 理가 氣를 지배해야 한다는 점에 두 사람의 입장은 같은 것이다. 그러나 이이는 이황과는 전혀 다른 시대적 배경을 가지게 된다. 두 사람의 시간적 차이는 겨우 한 세대이지만 그들이 처한 정치적 시대적 입장은 완전히 달라져있었던 것이다.


 

이이의 상황은 이미 사림이 훈구의 세력을 타파하고 정권을 장악하고 있는 시기였다. 즉 이황은 야당이었고 이이는 집권당인 여당에 속해있다는 정치적인 입장의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황은 현실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이이는 현실의 문제점에 대한 개혁을 중요시하게 되는 전혀 다른 정치적 상황에 처해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입장의 차이에서 율곡 이이는 이황의 理氣二元論의 주리론을 극복해야 했고 거듭되는 성리학적 연구의 성과로 율곡은 비로소 理氣一元論의 주기론을 창시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동인들의 시조격인 이황의 후학들로 하여금 율곡에 대한 불만을 일으키게 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동인들은 스승인 이황의 주리론을 이이가 주기론으로 발전시켜 조선의 성리학을 제창했음에도 불구하고 스승의 학문적 라이벌로 인식하게된 것이다. 학문적으로 이원론을 온전하게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율곡은 뿌리는 이황과 같은 곳에서 출발했고 주희나 이황의 이원론의 궁극을 부정하는 인물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이는 엄청난 비난의 대상으로 전락시킨 것은 힘의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힘의 균형을 어느 정도 양보해야 한다는 심리적 현실적 압박감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기득권을 조금이라도 내 놓는 것은 절대로 동조할 수 없다는 생각 말이다...


사실상 율곡 이이는 당파에 치우친 인물이 아니었다. 동인들의 스승에 대한 라이벌 의식을 발동시켜 성토하다보니 이이는 자신도 모르게 그만 서인으로 둔갑해버린 것이었다. 동인의 적은 곧 서인이라는 공식이 이에 적용되었던 것이다.


 율곡은 동서인으로 붕당을 이루어 다투고 쌈박질 할 때가 아니라고 보았다. 율곡 이이는 그 무엇보다도 백성들을 위해 정부가 그 무엇인가를 해주어야 할 때라고 보았던 것이다. 그런 결과 율곡 이이는 백성들에 대한 복지 정책이 최우선 과제라고 여겼다. 신흥 사대부들이 조선을 건국한 후로 백성들의 고단함은 그리 변한 것이 없었기 때문에 위민정책이 절실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이는 대미수공법을 건의하기에 이른다. 흔히 말하는 대동법이 그것이다.


이런 율곡 이이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김장생과 송시열은 율곡 이이가 10만양병설을 주장했다는 판타지 소설을 율곡행장에 써 넣었다. 나아가 송시열은 주자의 해석과 다른 모든 주장들을 사문난적으로 치부하여 심지어는 주자와 다른 사유를 했다는 이유로 윤휴를 사사했다. 물론 자신들과는 달리 ‘진짜 북벌’을 주장했다는 혐의도 포함이 되어 있을 것이다. 효종대의 송시열은 가짜 북벌을 주장하며 효종을 기만하고 심지어 효종의 북벌 의지를 꺾으려 무던히 애를 썼던 인물이다. 노론에게 북벌은 정치적 전시물에 불과한 쇼였다.


양명학을 제거하다... 전형적 일당 독재 조선...

 

성리학으로 학문을 출발했으나 성리학의 문제점을 깨닫고 양명학에 전념하며 널리 전파하려 일생동안 애쓴 인물이 하나 있었으니 그가 바로 정제두이다. 정제두는 박세채와 윤증등의 성리학자들을 스승으로 사사한 인물이었다. 주지하다시피 양명학은 조선에서는 자리를 잡지 못했다. 워낙 드세고 고압적인 성리학이 양명학의 싹을 잘라버린 탓이다. 양명학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청과의 주화를 주장하며 인조대의 모든 허물과 치욕을 혼자서 짊어지고 갔던 역적 주화파 최명길을 만날 수 있다.


 대전의 송씨들은 자격 조건을 충족시키지 않고 논술 답안지를 제출했던 송시열을 장원으로 뽑아 준이가 바로 최명길이라는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주화파의 핵심인물이라는 이유로 최명길의 후손들을 아주 우습게 안다는 이야기가 있다. 당시 법에 의거했더라면 송시열의 답안지는 그 형식을 갖추지 않아 심사의 대상에서 제외되었어야 했다. 그 때의 일을 생각하면 조선을 구한 이가 바로 최명길이었건만 당시 최명길의 고육책은 제쳐두고 주화를 주장했다는 점만을 부각시켜 역적으로 몰아갔다...물론 공과 사는 구분하는 것이 바른 것이지만 과연 척화가 주화를 과연 비난 할 수 있었던 상황인지, 그리고 과연 착화는 시대적 상황에서 바른 것이었는지..행여 자신들의 명분을 백성들과 국가의 안위보다 더 앞세운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일임에 틀림이 없다...   

 

물론 이는 학문적 입장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나 좀 더 사료들을 검토해보면 임진란을 겪었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를 잘 대응했던 서애 유성룡이라는 인물과 마주침을 알 수가 있다. 서애집과 징비록은 이를 잘 증명해주는 사료라 할 수 있다.

 이미 조선에 벌써 양명학이 스며들었지만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이유로 조선의 양명학은 17세기 조선의 식자층에서는 성리학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인식할 수 밖에는 없는 입장이 되고 말았다. 조선에서의 양명학은 이처럼 그 뿌리마저 불분명한 학문인 것이다.

 

학자 정제두가 양명학에 관심을 보인 것은 성리학의 배타성과 폐쇄성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이다. 어디 학자 정제두뿐이었을 까면 감히 양명학의 이치를 주장하며 고개를 쳐들 수 있는 인물은 거의 없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양명학을 주장하는 순간 자신의 목숨은 파리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정제두는 성리학의 진정성을 의심했다. 주지하다시피 성리학에서 가르치는 사상과 조선이 당명하고 있는 현실과의 괴리감은 가히 이해 불가능한 수준에 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의식을 가진 학자라면 누구나 이를 쉽게 간파할 수 있는 문제였다. 문제는 그런 의식을 가질 수 있는 학문을 겸비한 인재들은 대부분 제도권 안에 있었으며 세력을 형성하여 기득권을 누리는 사람들 이라는 점이었다. 요즘 말로 사회를 비판하는 발언은 자기 자신을 비판하는 재귀준거의 딜레마에 걸려들고 마는 행위였던 것이다. 스스로 자신들의 밥그릇을 걷어 차내는 바보가 되어야 했다는 말이다.

 

 

 


 조선의 선비들은 바보가 아니었다. 그러나 정제두는 과감하게 그 문제점을 들춰낸 인물인 것이다. 진정한 사상가라고 추앙받아도 모자란 인물이 정제두였지만 그의 순수성은 여지없이 짓밟히고 말았다.


정제두는 자신의 스승인 윤증에게 ‘왕양명의 학설은 정주와 다르지만 진실로 정주와 일치한다'고 하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제자의 이 뜻을 물론 윤증은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조선은 양명학을 허할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지행합일(知行合一)이라는 글자는 그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가져오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조선의 성리학이 그 얼마나 겉과 속이 다른 학문이었는지는 성리학이 왕양명의 지행합일을 그 얼마나 두려워 했는지를 통해 잘 알 수 있다.


정제두는 그렇게 양명학을 연구하면서 탈진하고 에너지를 소진하여 죽음의 문턱을 넘나든다. 과연 조선 최고의 학자 중 한사람으로 추앙받아도 모자람이 없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에도 노론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그러니 어찌 정제두가 드러날 수 있을 것인가...


 

역사가 증명해주듯이 특정 사상은 특정 시대를 장악해 왔다. 현대에 이르러 우리들은 최근 쏟아지는 동양 사상의의 철학서들을 답하기가 수월한 편이다. 그러나 그 학문의 뿌리는 정주를 벗어나지 않고 있으며 특히 조선에 이르러서는 남송의 처지를 학문적으로 돌파하려 했던 주희의 상황을 고스란히 답습한 학문이었다. 어쩌면 주희보다 훨씬 더 지독한 정치적 도구로 성리학을 앞세운 것이 조선이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주희를 공자(孔子)를 압도하는 신의 경지로까지 높이게 된다. 무결점의 인간...주희의 생각과 한 치라도 어긋나면 용서 받을 수 없으며 필요에 따라서는 죽음으로 엄벌하여 다스리던 조선....학문의 자유로움이라고는 찾아 볼 수도 없었고, 사유의 자유를 완벽하게 차단했던 조선은 그야말로 언론 통폐합의 전형적인 사례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마치 전형적인 공산당의 전신을 보는 듯 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가 아니던가....


혹자들은 조선 붕당의 출현을 현재의 양당제의 한 형태로 이해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일당 독제보다 훨씬 진일보한 정부의 형태이며 어쩌면 영국의 민주주의 시스템을 훨씬 앞서는 정치적 사건이라고 떠들어 대기도 한다. 그러나 조선의 학문을 보라...과연 조선이 민주주의의 고전적 형태로 볼 수 있는 단서를 그 어느 하나라도 가지고 있었는지....

 

 

집기양단 용기중어독, 바른 독서의 목적

 

 이렇게 동양의 고전과 그에 바탕을 둔 사상인 성리학은 남송에서는 구겨진 자존심을 회복시키는 일련의 도구로서의 역할을, 조선에서는 시대를 장악하고 기득권을 유지하거나 더욱 강력하게 구축하는 도구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 조선에서는 특히나 그 목적을 이루는데 매우 성공을 거든 학문이다.

 

  그러므로 과거 성리학이 해당 사회에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 인식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하는 바이다. 그리고 나서 독서에 임한다면 보다 더 유익한 공부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독서는 자신의 정신 능력을 한층 더 고양시키고 인생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매유 유익한 방법이 될 수 있다.

 

 공자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한다. '아고기 집기양단',  이때 '고'라는 말은 두드린다는 뜻 이라고 한다. 즉, '나는 모두 두드려 보아서 양쪽을 잘 살핀다'는 뜻이다. 이 '집기 양단'이 바로 중용의 덕목인 것이다. '집기양단 용기중어민' 이라는 말로 이어지는 중용의 덕목은 '양쪽을 모두 잘 살피어 이를 백성들에게 적용시키셨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독서도 이와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한다. 동양 사상을 공부함에 있어 '집기양단'하고 '용기중어독서'한다면 독서를 통해 자신의 정신을 고양시키고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론으로 손색이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독서는 분명 자기 발전의 방법임에 틀림이 없지만 독서를 많이 했다고해서 자신의 아집을 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그토록 깊은 학문을 연구하고 그 도달 수준이 드높던 조선의 선비들이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이 그러하다. 분명 발전적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고의 고립 혹은 폐쇄성 현상을 보여주는 경우를 종종 목격하곤 한다. 이는 과연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조선의 성리학이 보여주는 결과물 처럼 자신을 무장하고 자신의 자존심에 상처를 내지 않으려는 목적이라면 제 아무리 많은 독서를 한다한 들 그 유용함은 찾아 볼 수가 없을 것이다. 날카로운 검의 날보다 강력한 학문을 익혀 상대방에게 휘두르는 것은 학문의 본질은 아닐 것이다. 그 목적이 바르게 설정되어 있지 않을 때 피해를 보는 사람은 상상 이상으로 다수가 될 수 있다. 분명 학문은 널리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데 써야 할 것이지만 그 목적이 불순하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타자들에게 떠넘겨 지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더더욱 자신의 목적과 입장을 올바르게 투영시키고 바른 지향점을 가진 독서야말로 우리가 취해야할 태도가 아닌가 생각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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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06-19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반-합,
어느 것이 올바르다 하기에는 모든 것이 그렇게 한편으로 다른 한편으로 그러다 합쳐지고
다시 편향으로 흘러 다른 편향으로, 저는 예전에 정답이 있기를 바랬으나 점점 흐르는 것이 정답일지 모르겠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반성과 성찰과 사유를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무엇 하나만이 정답이라고 생각할 때보다 상당히 성가시고 힘든 일이지만, 그렇기에 변화할 기회가 주어지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구요.

方, 제 페이퍼에 다신 의미를 알겠습니다.
올바른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면,
굳이 독서가 아닌 풀 한포기에서도 세상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요? 방향성을 모르기에
제가 내내 책에서 무엇인가 찾으려는 것은 아닌지, 말씀처럼 철학이 사회와 역사의 시종이 되어버리는게 아닌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페이퍼를 읽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그런데 오늘, 정말 덥네요. 봄은 어디간걸까요?

차트랑 2012-06-19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르는 것이 정답이라...이 말씀 불과
얼마 전에 있었던 이야기인데요^^
흐르는 것이 순리일 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은 항상 변화하고 있는 것 같거든요 정말...

봄은 이제 여름에게 그 자리를 내어주었나 봅니다^^
계절이 흐르듯 모든 것도 따라 흘러가나봐요

그런데 제가 답글을 달았다고 생각했는데...글쎄...
답글을 달지 않았다는 것을 이제서야 알게된 거있죠?
요즘 제가...정신이 없는 걸요^^

마녀고양이님의 생각처럼
작은 것에서도 진지한 자세로 임한다면
세상의 이치는 그 안에 담겨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참으로 많은 것을 배우는 요즘입니다.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마녀고양이님~

2012-06-21 07: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6-21 1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6-21 11: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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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사람님께서 스테라님에게 드리는 글을 읽고

제 스스로가 부끄러워 두려움을 무릅씁고 서재의 글을 씁니다.

 

저의 서재를 찾아주시는 분들은 많지 않지만

행여 저의 서재를 찾아주시는 분들께만이라도 드리고 싶은 심정으로

스텔라님의 서재에 드린 댓글을 반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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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사람님....
이렇게 나서시는 마음을 알겠습니다.

제가 드린 말씀이 있지만...
딱 한 번만 살펴주십시요.

스텔라님...
한사람님의 간곡한 글을 헤아려 주셨으면 하는 바램으로
글 드립니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한사람님의 마음...
스텔라님을 잃고 싶지 않은 한사람님의 마음...
다른 누군가보다 차라리 스스로이기를 자청하는 한사람님의
지극하고도 간곡한 마음을
저는 떨치지 못하고
또 이렇게 다짐을 망각한 채 글 드립니다.

지금 이 순간,
스텔라님께서 그 얼마나 피로에 지쳐있을까...
절대적인 고독을 느끼실 수도 있어요...
어쩌면 정 반대로 불굴의 투지를 태우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한사람님의 지극한 마음을 살피시어
이제 마음을 놓으시고
편안히 하셨으면 합니다.

물론 기왕에 나아가기로 큰 마음을 먹었는데
여기서 그만 둔다는 것이 그 얼마나 스스로에게 상처가 되는지
저는 알 수 있을 것도 같고,

더불어 한사람님 딱 한 분을 얻을 수 있다면
저는 여기에서 마음을 놓을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잃고 싶지 않은 많은 것들이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말씀해주시는 한사람님 한 분을
얻는 것만은 못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과연 그 무엇을 위해 한사람님을 내놓을 수 있을까요...

스텔라님과 한사람님을 위해
고려해주셨으면 하는 마음을 저 역시 간곡하게
전해 드립니다...스텔라님...

차트랑공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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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의 여러분들께....

한사람님께서 스텔라님께 지극한 마음을 전해드린 상황입니다.
많은 알라디너분들께서도 하실 말씀이 많으실 것이라는 점은
잘 알겠습니다.

또한
한사람님의 마음을 받은 스텔라님께서
생각을 하고 마음을 정리하여
새로이 마음을 결정하실때 까지
기다려주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건방지지만
글을 드립니다.

아무래도 시간이 걸리지 않겠습니까...
여러분들께서도 시간의 여유를 주시길 또한 간곡히 당부드립니다...

당신이 누구길래 이런 글을 쓰는 것이냐고 물으며
책망하신다면
저는 '아무나'이기 때문에
딱히 제가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라디너분들께 다시 한 번 널리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저의 불손함을 또한 너그러이 보아주시기를...

차트랑공 삼가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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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한사람님의 진정어린 마음이 스텔라님께 전달이 되고

또한 알라디너분들의 기다림을 바라며 이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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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30 08: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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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30 09: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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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30 12: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5-30 10: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5-30 12: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5-30 17: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2-05-31 0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내 바빠서 몰랐는데
한사람님께서 서재를 아예 폭파시키셨나요? ㅠㅠ
사이트를 찾을 수가 없네요. 아아...................

옳다 그르다를 떠나서 참 마음이 답답합니다.

차트랑 2012-05-31 02:04   좋아요 0 | URL
네...
말씀하신대로 인듯 합니다..
저 역시 답답하군요 마녀고양이님...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하늘바람 2012-05-31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ㅠㅠ
저는 가장 두려운게 상처받고 떠나시는 분 계실가봐 그게 가장 겁나네요
부디 좋은 계절에 서로 토닥이며 살았으면 싶어요

차트랑 2012-05-31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저도 그런 경우를 염려하고 있답니다..

2012-06-01 00: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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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01 07: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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