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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영국은 커다란 아킬레스 건을 하나 가지고 있는 나라이다. 식민지를 수탈해 영화를 누리던 시절도 갔고, 서서히 열강의 대열에서 뒤로 쳐지면서 그간 고통도 많이 겪었다. 쇠락한 영국을 새롭게 탈바꿈하고자 했고 그 핵심에는 대처 수상이 있었다는 것 외에는 아직은 과거의 영화를 되찾지 못하고 있다. 한 가지 있기는 하다. 알파고의 나라이다.

 

아, 그 아킬레스건이 무엇이냐 하면, 영국은 건국신화가 딱히 없다는 것이 그것이다. 하이랜더나 로빈 후드와 같은 전설은 많지만 이는 우리의 단군신화와 같은 수준은 절대로 아니다.

 

이 책은 알라딘에서 구입해 읽은 책입니다. 영국인의 입장이 아닌 프랑스인의 입장인지라 아무래도 약간이나마 다른 관점을 보여주지 않을까 하여 선택을 했습니다.  

 

행여 영국이 한국인의 스토리인 단군신화를 부러워하랴 싶겠지만 그것이 꼭 그렇지가 않다. 영국의 역사를 뒤져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어린 학생들이 보는 만화 수준의 영국 역사를 뒤지더라도 말이다.

 

미국인들은 자칭 자신들의 나라를, 섞여있으나 각각의 개성이 살아있는 샐러드 보울 (Salad bowl) 이라고 하는데 영국은 한마디로 죄다 녹아있는 도가니 탕(Melting Pot)의 나라이다. 로마의 침입과 지배, 작센 지방의 앵글로 족, 색슨 족, 스칸디나비아의 바이킹 족, 덴마크의 데인족, 노르망디의 노르만족 등의 수없이 많은 침입을 받았다. 그 결과 켈트, 로마, 앵글로색슨, 데인, 바이킹, 노르만 등 수없이 많은 민족이 혼잡한 인구 구성을 가졌다.

 

2,000 여 년 전 이면 한반도의 북쪽에서는 고주몽께서 나라를 세워 고구려의 동명성왕으로 등극을 하여 대륙으로 그 세력 확장을 꿈꾸고, 중국에서는 한고조가 나라를 평정한 후 제후국을 거느라고 나라를 통치하던 그 시절이었다. 당시 영국은 로마의 지배자 시저의 침략을 받아 정복당한 후 로마 문화에 깊이 경도되었다. 그 뿌리는 영국의 본토에 매우 깊이 파고들었다. 라틴 문화가 영국의 런던을 중심으로 전국에 퍼져나간 것이다. 36년이라는 일제의 강점기는 우리나라에 일제의 문화 흔적을 아직도 확연히 남기기에 충분한 기간이었다는 점을 감안해보자. 로마는 30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영국을 지배했다. 라틴 문화의 뿌리가 뼛속 깊이 스며들기에 충분한 기간이 아닐까...

 

그러다가는 본국에 다급한 일이 생기자 로마군대는 바로 본국으로 철수했다. 로마의 침략을 피해 도망갔던 스코트 족은 자리가 비었다 생각하고는 영국 본토를 습격한다. 다급해진 켈트족은 색슨 족에게 SOS를 친다. 거칠고 잔인하며 포악한 민족으로 알려진 게르만 족, 즉 색슨 족은 이게 웬 떡이냐 하고 달려왔다.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고 흔쾌히 물을 건너온 것은 거리가 가까워서이기도 하거나와 다 꿍꿍이가 있어서인 게다. 도와주기는 커녕 되려 켈트족을 아작 내버린다. 색슨 족의 배신에 치를 떨며 켈트족은 아이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 등으로 뿔뿔이 흩어져 도망친다. 이 소식을 접한 앵글로 족이 얌전히 있을 리 만무하다. 이참에 나도 좀 하면서 바로 섬나라도 들어와 한자리를 차지한다.

 

결과적으로 영국은 켈트, 로마, 데인, 바이킹, 노르만인 들이 어우러 살다가는 앵글로와 색슨족이 마지막 본토 정리를 끝낸 후에야 국가다운 면모를 갖추게 된 것이다. 결국 국호도 ‘앵글로 족이 사는 나라’ 라는 뜻의 ‘앵글랜드’가 결국 잉글랜드가 된 것이다. 주를 이루는 영국 문화는 라틴 문화에 앵글로 색슨 문화의 혼합 형태이다. 영국을 도가니탕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바로 그들의 역사인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영국은 역사적으로 유구하고 고유한 건국 신화가 부재한 입장이 되어버렸다. 영국인들은 대부분의 나라들이 가지고 있는 건국 신화의 부재라는 말 못할, 그러나 내심 남을 부러워하는 약점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인도를 셰익스피어와 바꾸지 않겠다 라는 오만 방자하고도 허풍이 쩌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는 것이다. 건국 신화의 부재에서 오는 열등의식의 발로이며 보상 심리가 작용한 발언이라고 생각하는 이유이다.

 

이러한 심리적 약점은 영국인들로 하여금 행동 과잉과 같은 현상을 보여주기도 했는데 바로 「해리포터」의 전설이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 생각한다. 사실 해리포터가 뜨기 전에는 판타지가 전 세계를 강타한 적은 없는 듯하다. 판타지가 문학의 장르로서 어느 정도의 위상을 가지는 지 나로서는 알 수 없다. 한동안 국내의 전문가들이 장르로서의 판타지를 논하며 갑을 박론하던 장면을 텔레비전에서 잠시 본 적이 있다. 어째거나 그 열기가 한 때 반짝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당장에는 고전의 반열에 오르기에는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싶다. 진정한 고전은 생명력이 길다. 트렌드와는 분명하게 구별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물론 시간이 흘러 고전의 반열에 오르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말이다. 

 

이렇듯 영국은 셰익스피어나 조앤 K. 롤링과 같은 사람들의 작품을 전폭적인 마게팅 전략으로 띄울 정신적 준비가 잘 되어있을 수밖에 없다. 건국 신화의 부재는 대리만족을 끊임없이 원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셰익스피어는 그 작품성을 인정받아 생명력을 지속해왔다는 점이 해리포터와는 차이 점이라 할 수 있다.

 

역사와 국민의 심리는 서로 분리해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개인이 경험한 과거가 현재의 심리에 적확하게 드러날 수밖에 없는 것처럼 말이다. 앞으로는 국내 기사에서 셰익스피어를 나라는 내어주어도... 혹은 인도와 연관 짖는 허무맹랑한 소개가 아닌 좀 더 아름다운 소개를 받고 싶다. 인도가 나의 조국은 아니지만 듣는 이 독자 별로 유쾌하지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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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아침 뉴스검색을 하던 중 「400년 전 오늘, 영국의 보물 셰익스피어 잠들다」라는 기사를 읽었다.

 

세르반데스와 같은 해, 같은 날 사망했다고 전하며 ‘세계 책의 날’로 지정했다는 기사이다. (누가 이 날을 이리 정했냐하면 바로 유네스코라고 한다. 정식 명칭은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 이지 말입니다. 책을 빙자해 저.작.권.에 방점을 둔 말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죄측의 책은 읽어서 상품 넣기를 한 것이 아니라, 허전해서 넣은 것 입니다. 게다가 셰익스피어를 나라와 어쩌구 한 발언들에 빈정도 상했고요.

 

기사를 읽다보니 왠지 빈정 팍- 상해버린다. 그렇다고 셰익스피어라는 인물과 그의 작품을 폄하하자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하긴 18세에 학업을 중단하고 일을 시작한 그가 정말 그 많은 작품을 그것도 그 정도의 수준으로 과연 쓸 수가 있었을까, 하는 의심을 전문가들로부터 받고는 있지만 이는 다만 심증일 뿐 물적 증거가 제대로 없는 형편이기는 하다.

 

400년 전, 그러니까 1616년 4월 23일, 그가 사망했다고 한다. 기사는 더불어 영국의 여왕 엘리자베스와 당대 비평가 칼라일의 발언을 함께 실었는데 바로 이것이 나의 빈정을 제대로 상하게 해버린 것이다. (셰익스피어에게는 아무런 감정이 없는 일인이다)

 

기사에 의하면, 여왕 엘리자베스는 “나라는 내어주어도 셰익스피어는 내줄 수 없다.” 라고 했으며 칼라일은 “셰익스피어와 인도를 바꾸지 않겠다.” 라고 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한때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본 말이기는 하다. 츠암내~ 내 입장이라면 영국에다가 셰익스피어를 얹어주어도 인도와 바꾸지 않겠다. 이것이 이 글의 방점이다. (권한이 없기는 엘리자베스나 나나 매 한가지이니 이런 말을 하는 것이지 말입니다)

 

하기야 셰익스피어가 세계적으로 정말 유명하기는 유명한 인물인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나와 같은 시골 상 무지렁이도 중학교 때 이미 완역본 셰익스피어 전집을 읽지 않았던가. 이는 당시 우리집이 책을 살 형편이 있었다거나 책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친척이 당시 책장사를 하는 바람에 인지상정 우리 집에서 구입해준 덕분이다. 당숙께서는 그 시골 깡촌의 상 깡촌인 우리 집에 자주 들르셨다. 중학교 때 국어선생님께 들어본 적이 있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물론「데카메론」, 「죄와 벌」 기타 등등 상 깡촌 치고는 적잖은 책들을 우르르 몰고 오셨다. 한마디로 영업을 하러 오신 것이었다. 나는 물론 내 수준에 맞는 책인지 아닌지도 모르고 무작정 읽었다.

 

그러니까 내 말은, 나 중학교 때 셰익스피어를 읽었소! 가 아니라 그 작가가 물을 건너도 한참 건너고 산을 넘어도 한참을 넘어야하는 대한민국의 까마득한 시골 강촌에 나타날 만큼 유명 인사였다는 데 방점이 있는 것이다. 사실 중학생이 읽었다고는 하나 결과는 읽으나 마나인 수준이었을 테니 하는 말이다. 스토리나 알지 그 내면을 어찌 중학생인 내가 통찰하여 알아 먹을 수 있었으랴...

 

나이가 더 들어 상경을 하니 교수님들께서 하시는 말씀은, 그야말로 허걱~ 이었다. 셰익스피어를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은 자들이 100명도 더 넘는다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듣자마자 내 입은 쩌억~ 벌어지면서, 와우~~! 했던 것이다. 없던 한글을 새로 맹근 세종대왕 보다 더 유명한 인물이란 말이던가?? 했다. 지금은 세월이 더 흘렀으니 셰익스피어 관련 박사 학위 소지지가 200명쯤 될까?

 

 

돈키호테는 정말 마음 다잡고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읽어야 할 책들이 많아 순위에서 계속 밀리고는 있지만 그 진가를 제대로 확인하고 싶다. 철모르던 그 어린 시절의 시각이 아닌, 그보다는 좀더 성숙한 시각으로 말이다. 출판업자들의 상술 덕분에 그 가치를 제대로 인지 할 기회를 우리는 너무나도 많이 잃어버렸다. 그런 책이 하나 둘이 아니기에 하는 말이다. 고전을 고전 답에 읽어야 하거늘, 상술은 귀한 고전들을 어린 시절 잠시 거쳐가는 책으로 전락 시켜버렸다. 이 출판을, 고전을 고전답게 음미해보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이유이다. 감사할 따름이다.

 

각설하고, 아무리 자기가 나라를 통치하던 시절이라고는 하나, 나라가 뭐 자기껀가 내어주고 말고하게? (물론 당시는 나라가 자기 소유라고 생각하던 시절이다) 자신의 입과 혀가 되어준 인물이 셰익스피어라고는 하나, 나라를 내어줄지언정 셰익스피어를 내줄 수 없다니... 기사를 읽는 이 독자 아침부터 빈정 상한다.

 

사실 이 겁도 없는 두 냥반의 발언은 잘 새겨들어야 하는 말들이다. 다들 알다시피 당시 영국은 전 세계 곳곳을 자기네 나라로 삼고 싶어하던 시절이었다. 한마디로 무서울 게 없고 잘 나가던 시절이었으니, 나라 하나쯤은 잃어도 상없다는 뜻이 담겨있다고 볼 수 있는 발언 말이다.

 

알고 보면 나라를 선뜻 내어주곤 하던 나라는 영국이 아니라 중국이었다. 중국은 땅이 하도 넓다보니 패왕은 제후국을 다스릴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비행기나 KTX가 있던 시절도 아니고, 직접적인 통제가 거의 불가능했다. 예를 들어 주왕(周王)은 상(商)나라를 꿀꺽한 후, 일등공신이었던 강상(姜尙)을 내칠 요량으로 멀 찌기에 있는 제(齊)나라를 떼어주고 제후국으로 삼았다. 이는 400년 전이 아니라 4,000년도 더 넘은 이야기이다. 이렇게 누군가에게 나라를 떼어주던 중국의 전통은 계속 이어졌다. 2,000여 년이 조금 넘은 시점에도 한고조는 일등 공신이었던 한신에게 초나라를 떼어주고 초왕으로 봉했다. 물론 한신은 한고조의 심기를 건드려 끝내 토사구팽이라는 사자성어를 남기면서 죽음을 당하지만 말이다. 이렇게 나라를 떼어주던 일이 하나 둘이 아닌 것이 중국이었다.   

 

영국의 엘리자베스의 시대는 전 세계가 마치 자신의 통치하에 있다고 여기며 기고만장 하던 그 시절이었다. 그러니까 그녀의 발언은 식민지 하나쯤은 내주어도 셰익스피어는 못 내놓겠다는 뜻으로 한 말인 것이다. 이 얼마나 발칙하고도 무례한 발언이던가.

 

칼라일의 발언 역시 지극히 도발적이고 싸가지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싹수라고는 도대체가 없는 발언이기는 마찬가지다. 인도인이 이 말을 듣는다면? 칼라일의 발언은 어쩌면 인.도.가 조.선.으로 바뀌었을지도 모르는 시절이었다.이 두 냥반들이 무기탄하게 뱉어낸 발언은 인도를 완전 무시한 발언이기도 하거니와 알고 보면 인도가 조선이 되었을 수도 있던 시절의 이야기이고, 본디 싹수가 노란 사람들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그 발언을 그대로 옮겨 쓴 기자 냥반은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단 말인가? 셰익스피어의 유명세를 빌려 책의 날을 강조하다보니 아차 실수를 저지른 기사로 보이기는 하지만, 글을 쓰기 전에 남들보다 생각을 한 번 더 해 본 후에 글을 써야 하는 사람이 기자 냥반이 아니던가?

 

그럼 그 많던 식민지 중에 왜 하필 인도였을까. 인도는 땅도 겁나 넓고 인구도 겁나 많아 영국의 입장에서 생산성으로 치면 그 중요성은 말할 나위가 없는 나라였다. 17세기 당시는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가 인도를 서로 차지하겠다고 다투던 시기였다. 영국이 막상 인도를 차지하고 보니 인도인들이 선뜻 자신들의 뜻에 따라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동인도 회사를 설립, 전 세계를 수탈하는 전초기지로 인도를 사용하고 있었으나 인도를 결코 무력으로 구속할 수가 없었다. 하여 나는 칼라일이 인도와 셰익스피어를 어쩌구 하는 말도 안 되는 소릴 지껄인 것은, 인도는 결코 자신들의 뜻대로 움직여주는 만만한 나라가 아니었음을 개탄하는 소리로 들리는 이유이다.

 

인도는 공자가 자로의 질문에 답하며 가르친 남방지강(南方之强)의 대표적인 나라이다. 무력으로는 절대로, 절대로 날로 먹을 수 없는 그 남방지강 말이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사정이 이와 같으니 칼라일의 발언은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고, 신 포도를 바라보는 아쉬운 심정으로 내뱉은 말이 바로, 셰익스피어와 인도 어쩌구 라는 말이다, 이 기자 냥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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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이었는지 품절이었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둘 중 하나의 이유로 책을 구매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알라딘 중고를 검색해보았으나 가격을 겁나겁나 높게 정해놓았다.

 

그런데 도서를 검색 하던 중, 우연히 재판매 중인 거다.

오호홋~! 바로 장을 보았다.

 

 이 책을 많이도 기다렸다. 알라디너라면 거의 모를리가 없는 에코는 한마디로 대표적인 표절 작가이다. 나 표절했소~! 라고 대놓고 천명한 작가이기도 하지 말입니다. 자신의 표절 선언을 바로 이 책, 장미의 이름 작가 노트에서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 만으로도 나는 이 책에 흥미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자신을 표절 작가라고 천명한 에코를 정작 평론가들이나 독자들은 그 어느 누구도 에코를 표절작가라고 부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되려 창의적이고 훌륭한 작품이라고 호평한다는 사실이다.

갑자기 우리 나라의 어느 작가가 잠시 떠올랐다가는 사라졌다. 

 

한때 대학가에서는 장미의 이름을 읽었네, 읽지 않았네로 갈리면서 너 그거 읽아 봤나, 것도 안 읽었단 말이냐, 로 끝이 나던 책, 장미의 이름이다. 그런데 더 재밋는 것은 읽은 사람이나 읽지 않는 사람이나 별반 차이가 없었다는 사실, 변함없는 사실은 읽었다 읽지 않았다는 것일 뿐.

 

사실은 셜록 흠즈와 장미의 이름, 회남자와 중용, 이들 간에는 약간의 공통점이 있어 서재글을 써보려했으나 게을러 그러지 못했다. 물론 책이 도착하는 날까지 여유도 있고...  

 

 

사실이고 오실이고 간에

사실은 이런 이야기를 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사실은 슈베르트의 작품, 물위에서 노래함 이라는 곡을  포스팅하려던 참이었다.

사실은 가을 분위기가 왠지 나는 노래인데 봄비에 그냥 생각이 났다.

이안 보스트리지가 부르면 사계절 맛이 다 나기도 한다.

물 위에서 노래함 인데 엉뚱하게 겨울이 생각나기도 하는...

(강물이 얼어붙은 겨울에 무슨 물 위에서 노래함??) 

 

오늘은 한마디로 아침부터 비가 이쁘게 내리고 있었다. 지난 밤 부터 내린 비 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참 이쁘게도 내린다.

곡우에 미처 내리지 못한 아쉬움 때문일까...

한 해의 농사를 시작하는 농부들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비일 것이다.

그 마음을 조금은 알듯도 하지만 말이다..

 

노래를 정말 겁나겁나 잘 부르는 냥반,

불구하고 팬에 대한 서비스 정신은 세상에서 평판이 겁나겁나 나쁜 냥반에 속하는 냥반,

이안 보스트리지이다.

 

 

 

가사는 어디에선가 긁어와 붙였습니다.

한마디로 표절한거지요 ㅠ.ㅠ 

가사의 한글 내용은 봄 비를 기다리는 농부의 마음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라 생략합니다 ㅠ.ㅠ

 

좌측 이미지는 아래의 노래가 실린 음반인데...

품절이라고 하네요 ㅠ.ㅠ

왜 마음에 드는 상품들이 죄다 품절인지 원...

 

 

 

 

 

물 위에서 노래함

 

 

Auf dem Wasser zu singen

 

Mitten im Schimmer der spiegelnden Wellen
Gleitet, wie Schwäne, der wankende Kahn;
Ach, auf der Freude sanftschimmernden Wellen
Gleitet die Seele dahin wie der Kahn,
Ach, auf der Freude sanftschimmernden Wellen
Gleitet die Seele dahin wie der Kahn;
Denn von dem Himmel herab auf die Wellen
Tanzet das Abendrot rund um den Kahn,
Tanzet das Abendrot rund um den Kahn.

Über den Wipfeln des westlichen Haines
Winket uns freundlich der rötliche Schein;
Unter den Zweigen des östlichen Haines
Säuselt der Kalmus im rötlichen Schein,
Unter den Zweigen des östlichen Haines
Säuselt der Kalmus im rötlichen Schein;
Freude des Himmels und Ruhe des Haines
Atmet die Seel im errötenden Schein,
Atmet die Seel im errötenden Schein.

Ach, es entschwindet mit tauigem Flügel
Mir auf den wiegenden Wellen die Zeit.
Morgen entschwinde mit schimmerndem Flügel
Wieder wie gestern und heute die Zeit,
Morgen entschwinde mit schimmerndem Flügel
Wieder wie gestern und heute die Zeit,
Bis ich auf höherem strahlenden Flügel
Selber entschwinde der wechselnden Zeit,
Selber entschwinde der wechselnden Ze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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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의 말로는 날이 추워지니 절친의 몸이 더욱 쇠약해지고 급기야 덜컥 병이 들어 혼절을 하다시피 했다고 한다. 약을 처방 받았으나 효과를 보지 못했다. 그렇게 그간의 과정을 이야기 하는 사이 한참 만에 이 수류탄이 눈을 떴다. 절친의 말로는 몸이 점점 아파와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느끼는 순간, 기절을 한 것 같다고 했다.  

 

다음 날, 아침이 되니 의사가 와서는 내게 주의사항을 알려줬다. 이 친구는 현재 폐가 찌그러진 상태인데, 이를 ‘기흉’이라 한다고 했다. 이 기흉이라는 것이 한마디로 허파에서 바람이 빠져나가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워낙 체력이 약하고 폐 또한 약한 사람이라 이런 일이 생긴다는 거였다. 게다가 또 뭐라더라...했는데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여하튼 담배도 안 피우는 넘이 그 말로만 듣던 허파에서 바람이 샌다니...허헛, 참 내원, 젊은 넘이 가지가지 한다... 어쨌거나 결론은 이 친구를 웃기면 절대로 안된다는 거였다. 환자가 웃으면 폐의 손상이 더 커진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러나 이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나는 대수롭잖게, 네~! 했다.

 

의사가 나가자 나는 이 친구를 돌아보며,

너는 복도 많다~, 남들은 아파서 죽는다던데, 너는 웃으면서 죽게 생겼네?

 

별 뜻없이 한 말인데 이 말을 들은 이 친구가 갑자기 웃음보를 터트렸다.

순간, 의사의 주의가 생각나,

어라라? 너 웃으면 안되는데?

했더니, 이번에는 통증이 오는지 가슴을 부여잡으며 웃음을 이기지 못하고 있었다. 어라라... 이게 아닌데...

웃음은 터지고 가슴은 아파오고, 이 친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웃다가는 그만 가슴을 부여잡으며, 악! 하고 쓰러져 버렸다.

아불싸~! 하고, 나는 간호실로 뛰어갔다.

 

간호사는 이 친구를 긴급 이송했다.

누나가 잘 봐달라며 당부하고 돌아갔는데 그러기는 커녕, 내가 말 한마디로 이 친구를 죽이는구나... 싶은 것이 정신이 아득하기만 했다.

 

그렇게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데, 한 참 만에 친구가 돌아왔다. 몇 시간이 흘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친구는 마치 죽은 사람처럼 눈을 감고 있었다. 죽었나 살았나 다가가 손을 가만히 만져봤다. 다행이 손이 따듯했다. 한 참 만에 이친구가 눈을 떴다. 이친구가 눈을 뜨는 것을 보자 나는 그만 긴장이 풀렸던지 스르르 잠이 들고 말았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지루한 날들이 계속되었다. 누나는 심심하면 테레비라도 보라 100원짜리 동전을 한줌 쥐어주고 갔다. 그 병원에는 병실에 테레비가 있었는데 100원짜리 동전 하나를 넣으면 얼마간의 시청이 가능했다. 드리마라도 한 편 보려면 수백원을 투입해야 했다. 지금이야 병실마다 테레비를 매달아 놓아 돈을 내는 일이 없지만 당시에는 환자와 가족에게 테레비로 또 다른 영업을 하던 시절이다. 그러나 친구는 대부분의 시간을 잠으로 보냈다. 친구가 잠시 깨어있는 사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거나 그에게 한하운의 시를 읽어주곤 했는데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다른 책을 찾는다.

 

친구는 나에게 자주 말하곤 했다. 병이 나으면 나의 고향을 가보고 싶다고, 나는 데려가마 했다. 나의 고향에 가 보고 싶어하는 친구, 나도 너의 고향에 가보고 싶구나. 그러던 어느 날, 동아리 동료들이 문병을 온다는 것이었다. 어라라 하고, 나는 문병은 절대 사절이라고 말했다. 환자의 절대 안정과 일맥상통하는 나의 적절한 조치였다.

 

그러나 이 죄다 무지렁한 넘들은 내 말을 당췌 알아먹지를 못했다. 아니, 너네들 다녀가는 순간, 이 친구 죽을지도 모른다, 는 내 말을 통 믿지를 않은 거였다. 그런게 잇딧냐며 내일 보자고 하고는 전화를 뚝 끊어버리는 거다. 이런 무지렁하기는, 어딧기는? 여깃지! 혼자 중얼거렸다. 그나 저나, 낭패다 ㅠ.ㅠ. 요즘처럼 스맛폰이 있다면 암 때고 전화를 하거나 가독, 문자 또는 이메일로 상황을 알려줄 수 있겠다. 아니 일명 가스에 인증 샷을 올려 환자의 상태를 보여줄 수도 있겠다. 허나, 당시는 현재와는 많이 달라서 금지곡과 금서가 있던 시절이 아니던가. 또한 편리하게 전화기를 사용하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물론 헌.책.방. 하면 청.계.천! 하던 그 시절 말이다.

 

다음 날 오후가 되자, 애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당황하여 나는, 여기는 절대 안정, 엉? 특히, 절대로 환자를 웃기지 말것!! 하자, 그 중 상 무지렁한 넘 하나가 상황 파악을 못하고는, 환자는 많이 웃어야 빨리 낫는데이~!! 했다. 별것도 아닌데 사람의 수가 많다보나 여기 저기서 웃음이 삐질거린다. 웃음은 전염성이 확실히 높다. 메르스는 저리가라다. 여기저기서 삐질거리던 웃음이 어느 순간 터져버렸다. 결국 이 수류탄의 웃음보까지 터트려버린 것이다. 큰일이다! 싶은 순간, 아니나 달라, 이친구가 다시 가슴을 부여잡고는 또 악! 하고 쓰러지는 거다. 아~! (안)되는 넘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탄식이 절로 나왔다. 그렇게 이 친구는 다시 어디론가 실려 갔다.

 

 

보통 약골들은 체육대회때 물 주전자를 나르거나 뒤에서 응원하기마련인데, 이 친구는 그렇지가 않았다. 꼭 앞에 나선다. 그러니 몸이 파김치가 되가지고는 피곤해서 죽을라 그런다. 다음 날 일어나지도 못할거면서 기를 쓰고 덤벼든다. 성질도 어찌나 화끈한지 못마땅한 꼴을 못 본다. 뻑-하면 쌈박질이다. 안동의 깊은 산골, 냥반댁 출신인 이 친구는 불의를 참지 못했다. 뿔끈해가지고는 죄다 참견이다. 한마디로 오지랖이 하해와도 같았다. 그러나 호방하고 그 기개가 높은 것은 부인할 길이 없다. 나는 그의 호방함과 기개를 높이 샀다. 사내란 저래야 하는 법!

 

또 오랜 시간 만에 만에 친구가 병실로 돌아왔다. 진짜, 더 이상 웃.으.면. 안.된.다. 더 웃으면 이 친구는 죽음이다. 문병객들은 사고를 쳐 놓고는 벌써 돌아가고, 친구와 마주했다. 마음이 착잡하다. 이러다 친구를 잃는 것은 아닌가...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의학적 지식이 없다는 것이 이리도 답답할 줄이야...

 

그리고 나는 하숙집으로 돌아와, 책을 하나 골랐다. 왜냐면 친구가 내 책꼿이에 있는 책을 원했기 때문이었다. 그 책은 정현종외 공저의 「시의 이해」였다. 당시 신입생이었던 나에게 난이도가 상당히 높았고, 지금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해도 하지 못하면서 마냥 읽던 그 시절이었다. 생각해보니 국문과도 아니면서 시를 왜 좋아했는지 잘 모르겠다. 친구와 나는 시를 제법 읽었다. 「김춘수 전집」은 기본 장착하고 있었고, 멋도 모르고「시의 이해」를 읽으려 덤버들었다. 우리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우리처럼 시를 읽는다면 배고픈 시인이 세상에 어딧겠나?”

 

당시에 시집을 꽤나 가지고 있었다. 영미 시와 국내 시집를 모두 더하면 100여권이 넘어갔다. 영미의 시인들은 강의 시간에 귀에 딱지가 않도록 듣는 이름이고, 솔.까.말. 친구와 나는 영미 시에서는 매력을 거의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내용은 어떨지 몰라도 문화의 차이 때문이겠지만 시의 맛깔을 제대로 느낄 수가 없다. 감동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한글이 주는 표현의 자유로움과 한글이라는 언어가 주는 뉘앙스의 풍부함, 그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데 매우 제약이 따르는 것이 영미시라고 느꼈다. 물론 이는 영미시를 몰라서 하는 소리겠지만 말이다. 외우려고 시도했던 시는 겨우 몇 편에 불과했고, 그 중 하나는 미국의 롱아일랜드 출신인 ‘휘트먼’의「Song of the Open Road」였다 (나는 이 시를 「대로의 노래」라고 불렀다). 그나마 절반만 외우고는 포기했다. 영미 문학보다는 되려 서양 철학에 훨씬 더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영미시는 소네트의 형식을 제외하면 감동을 별로 느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다음은 휘트먼의 1852년 작인「Song of the Open Road」의 일부이다. 물론 번역도 내맘대로다.  

 

 

 

Comerado! I give you my hand

친구여! 나는 그대에게 나의 손을 내민다

 

I give you my love more precious than money

나는 그대에게 돈보다 더 소중한 나의 사랑을 준다

 

I give you myself before preaching and law

예배나 법 이전에 나는 그대에게 나를 보낸다

 

Will you give me yourself?

그대는 내게 그대를 주련가

 

Will you come travel with me?

함께 여행하지 않으련가

 

Will you give me yourself? Hey!

친구여! 나에게 그대를 주련가

 

Will you come travel with me?

함께 여행하지 않으련가

 

Will we stick be each other?

우리 서로 함께하지 않으련가

 

as long as we live?

우리 살아있는 한

 

As long as we LIVE?

우리 살아있는 한

 

 

 

 

그리고 시절에 맞게 회자되는 국내 시인들이 주로 관심의 대상이었다. 당시 생존에 있었던 언어의 연금술사 「김춘수 전집」은 기본이었고, 이미 작고한 「김수영 전집」은 소장 필수 항목이었다. (김수영을 모르면 간첩이겠지... 아니, 당시 간첩도 김수영이라는 인물은 배우고 넘어왔을 것이다)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타계한 시인 정지용은 은밀한 대화의 대상이었다. 생존해 있었지만 백석의 시는 같은 이유로 햇빛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작고하신 절대 고독의 김현승, 생존에 있는 김지하, 이제는 돌아가셨지만 당시에 생존하시던 조아무개 시인, 그리고 양성우, 신경림, 조해일, 정호승 등 시인들의 작품을 읽었다. 천상의 시인 천상병의 시도 잊지 않고 읽었다. 더 많은 시인들이 있었지만 당장에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물론 프랑스의 보들레르는 영원한 화제 거리였다. 당시,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 강이 흐르고, 우리네 사랑도 흘렀다, 로 시작하는 「미라보 다리」를 쓴 시인 ‘아폴리네르’를 모른다면 학생도 아니었다. 친구는 이「미라보 다리」를 특히 좋아해 달달 외우고 다녔다. 

 

 

(알라딘 검색을 하니 결과물은 나오는데 상품의 이미지는 보이지 않는다.  절판일 것 같은데 품절이라고 나온다.  대신 중고는 검색 가능하다. 이이미를 다운로드하여  첨부함.)

 나보다 훨씬 더 시를 좋아했던 이 친구는 정현종의 책을 원했다. 친구는 정현종의 이 책을 서점에서 잠시 들쳐 본 후로 마치 연인을 사모하듯 했다. 정현종은 시인이었지만 그의 시보다는 그가 쓴「시의 이해」를 더 선호했다. 나는 흔쾌히 가지고 와 친구에게 읽어주었다. 이 책 역시 알라딘에서 검색할 수가 없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이미지가 남아있다. 정말 귀한 이 책을 그만 친구에게 줘버렸다. 손이 벌벌 떨렸지만 눈 딱 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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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2015-07-17 12: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웃으면 안되는데.... 자꾸 웃음이 납니다. ^^;;
너무 글을 잘 쓰셔서 이 글이 실화인지 차트랑님께서 쓰시는 글인지 마구 헷갈리면서 다음글을 기다립니다.

차트랑 2015-07-17 12:53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보슬비님,
저의 서재를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보슬비님께서 읽어주신 위의 내용은 모두 사실입니다.
그리고 친구를 위해 건방지게도 시를 한편 썻답니다.
시리즈의 마지막에 그 시를 이곳에 적어놓을 생각입니다.
다시 찾아주시고 그를 위한 시도 읽어주시면 정말 고맙겠습니다.

여름 날, 건강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차트랑 드림

아, 상황이 될때, 보슬비님의 서재에 답방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보슬비님

보물선 2015-07-17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웃으면 죽는 병. 패러독스네요!

차트랑 2015-07-17 13:07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보물선님,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웃으면 복이 와요~! 이랬는데 어쩌다가는 ㅠ.ㅠ.

건강에 유의하시고 편안한 하루되세요 보물선님!
조만간 답방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붉은돼지 2015-07-17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귀한 것을 선뜻,, (물론 손은 벌벌 떨렸지만) 친구분에게 드린 님의 용기와 우정에 찬사를 보냅니다. ㅎㅎㅎㅎ

차트랑 2015-07-17 16:51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붉은돼지님~ 그 귀한 것을 ^^

돌아보면 그 당시 얼마나 무지렁했냐면요
어느 대학에서는 국문과 전공학생들의 `시의 이해` 라는 학과정의
강의자료로 정현종님의 저 책을 교수님들께서 쓰고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답니다
한마디로 겁나 무지렁 했지요 ^^

다음 시리즈도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붉은돼지님~
고맙습니다~!
 

학창시절 어느 겨울, 비보가 날아들었다. 그러니까 문맹이 탈 문맹을 하고서는 다락방에서 공부를 한 탓인지 서울로 공부를 하러 온 것이다. 말로만 듣던 서.울.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학생이 된 어느 날, 요즘 학생들의 표현을 빌자면 베프, 우리말로는 절친, 그 절친의 시집간 누나가 내게 자기 동생의 비보를 알려온 것이다. 절친의 누나는 자기 동생, 즉 나의 절친이 지금 병원에 입원해서 죽어가고 있다고 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 라고, 화들짝 놀라 병원으로 달음질 했다.

 

동대문 근처에 있는 이화여자 대학교 병원이었다. 도착해보니, 아불싸... 진짜로, 진짜로 나의 절친이 병상에 눈을 감은 채 누워있었다. 처음엔 죽은 줄만 알았다. 숨은 쉬고 있는 것인지 마는 것인지... 게다가 양쪽 콧구멍에는 무슨 관을 끼고 있었고, 옆에는 듣도 보도 못한 기계가 그 콧구멍으로 공기를 주입시키고 있었다. 저거 없으면 친구는 죽는 것인가.... 온갖 상상이 죄다 일었다. 그러나 망령되이 행동을 할 수 없어 눈만 껌벅거리고 있었다.

 

나는 산꼭대기로 한참을 올라가야 서쪽 바다가 멀리 내다보이는 충청도의 산골에 살다가는 서울로, 절친은 경상도의 깊고 깊은 두메산골의 산골에서 서울로. 이 완전 대척점 출신의 시골뜨기들이 서울의 어느 강의실에서 만난 것이다. 딱 보기에도 촌티가 쥘쥘 흐르는, 암만 이쁘게 봐줄래도 도저히 그럴 수 없는 촌딱들, 딱 그 모냥이었다. 촌딱이 촌딱을 알아본다고, 서로 눈인사를 꿈뻑하고는 서로에게 그저 만만한 상대방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아래는 당시 그에게 준 책에 있는 한하운의 시이다.

 

      전라도 길

-소록도 가는 길-

 

가도 가도 붉은 황톳 길

숨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낮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 삼거리를 지나도

쑤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며 더위 속으로 쩔름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 먼 전라도 길.

 

 

당시 친구에게 준 '한하운 전집'은 현재 알라딘에서 검색을 할 수가 없다. 하여 검색이 되는 책으로 이미지를 대신한다.

  

「전라도 길」은 자신이 겪고 있는 천형이라 칭하는 나병의 뼛속 깊은 애환을 드러내지 않고 안으로 보듬어 넣었다. 시인이 자신의 안으로, 안으로 그 고통을 감싸 않은 이 시는 그것을 드러낸 것보다 훨씬 더 가슴 깊이 파고든다. 옆구리를 날카롭게 파고드는 비수처럼 다가와서는 결국 그 비수는 나의 심장에 박혀버린다. 나는 당시 그 비수를 다시는 빼낼 수가 없다고 느꼈다. 더불어 시인의 발가락과 함께 나의 발가락도 하나가 덩달아 없어지는 느낌이었다. 한하운의 '전라도 길'을 읽던 시인 '고은'은 얼마나 가슴이 아팠던지, 자신도 시인이 되기로 했다,는 말을 아주 오래 전에 들은적이 있는데 사실인지는 알 수 가 없다.

 

절친은 당시 ‘정○용’보다 ‘한.하.운.’을 더 좋아했다. 시절은 '정지용'을 '정지용'이라 부르지 못했다. 하여 우리는 시인 '정지용'을 ‘정 똥글라미 용’이라 부를 수 밖에 없었다. 정지용을 입에 담을 수가 없었다. 불법이었다. 요즘에야 교과서에서도 만날 수 있는 시인이 정지용이지만 말이다...  

 

 

이 친구는 가끔 강의실에 수류탄을 투척하곤 했는데, 그 수류탄은 다름 아닌 그 넘의 발.음.이었다. 이 친구가 입을 뻥끗만 하면 바로 강의실에서 와하하- 폭소가 터져버리곤 했다. 도대체 이 넘은 중고등학교를 다니기는 한 것인지, 그 흔적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최소 6년이라는 기나긴 시간 동안 영어를 배운 것은 맞나? 싶을 정도로 발음이 완전 꽝! 꽝! 꽝! 아니 상상을 뛰어 넘은 창조력을 발휘했다. 영어에 경상도 사투리 억양을 넣는 것도 모자라, 문장의 인토네이션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창조력이란 정녕 이런 것이란 말인가.... 입을 뻥끗 할 때 마다 강의실은 어김없이 와-하-하-! 의 바다 그 자체였다.

 

그런데 재밌은 것은 교수님이 이친구의 그 창조적 발음을 좋아하신다는 거였다. 그도 그럴 것이 집중력이 떨어졌다 싶으면 환기의 수단으로 딱 이었다. 좋아서 좋은 것이 아니었다. 교수님은 이 수류탄을 꺼내 드시고는 안전핀을 바로 제게, 강의실 안에 주저 없이 투척해버리시는 거다. 불발나는 경우는 없었다. 수류탄이 미처 터지기도 전에 한쪽에서는 이미 삐질 삐질 웃음을 참지 못하고, 드디어 이 친구가 입을 뻥끗하면 겨우 참았던 폭소가 와르르 무너지는 것이었다.

 

당시는 학기 초 인지라 교정은 동아리 홍보물로 소 엉덩이의 똥 딱지마냥 덕지덕지했다. 여유가 나는 시간에는 주로 도서관과 동아리에 들렀다. 주로 도서관에서 이 친구를 마주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수류탄이 뜬금없이 동아리 실에 나타난 것이었다. 그 날은 정기 회의가 있어 모든 회원이 모이는 날 이었던 것이다. 이미 서로를 알기는 하지만 정식으로 인사를 나눈 적이 없었던 고로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고는 눈만 껌벅거리게 되었다. 어라라, 이 수류탄! 하고 있는데 어색한 순간도 잠시, 그 친구가 나를 언제 봤다고 말을 바로 까면서 먼저 입을 열었다.

 

어라? 니도 여깃나? 경상북도 특유의 억양이다.

오냐, 그러는 너도 여깃나? 나는 맞장구를 쳤다.

 

그렇게 첫 인사를 나누고 회의를 마친 후, 우리는 커피 자판기 앞으로 갔다. 역시 그 친구가 먼저 입을 열였다.

 

‘말’까서 기분 나쁘나? 나 재수해따 아이가~, 니는 재수 아이제?

(아, 이 때의 모습은 사실은 동영상으로 보여줘야  하는 것이 맞다)

 

나는 속으로, 재수가 무슨 벼슬이라고... 하면서,

 

아 그랬나? 니네 산촌은 ‘말’도 까서 먹나? 밤이냐 까먹게? 그리고, 학번이 같으면 똑같은 거다 이넘아, 하면서 씨익 웃었더니, 이 친구, 와-하하하--!!! 하고 허리까지 뒤로 제끼면서 겁나게 크게 웃는다. 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주변이 떠나갈 듯 웃음을 터트리는 거다. 으이그~, 이 화상!

 

그 후로 우리는 단짝이 되었다. 이렇게 친구가 된 이 넘의 체력은 한눈에 보기에도 무척이나 약골이었다. 멀대같이 키는 큰 것이 등은 구부정하게 휘어있고, 자주 헛기침을 하곤 했다. 이런 모습은 마치 의사가 아니라도 약골도 상 약골이로구나 싶을 만했다. 멀쩡하게 길을 가다가도, 순간 혼자서 중심을 읽고 벌러덩 자빠지기 일쑤였다. 이거는 뭐, 「황순원」의 송아지 도입부 인, “아주 볼품없는 송아지였다. 왕방울처럼 큰 눈에는 눈곱이 끼고 엉덩이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볼기짝에는 똥딱지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어디 이따위 송아지가 있어.” 이거랑 다를 바가 하나 없었다.

 

 

    보리피리

 

 

 

            보리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피 -ㄹ 닐리리

 

보리피리 불며

꽃 청산

어린 때 그리워

피 -ㄹ 닐리리

 

            보리피리 불며

인환의 거리

인간사 그리워

피 -ㄹ 닐리리

 

            보리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

눈물의 언덕을 지나

피 -ㄹ 닐리리

 

 

 

보리피리는 시집「보리 피리」(1955년)에 실린 것으로 서울 신문에 발표한 시라고 한다. 조념선생께서 곡을 붙여 가곡으로 부를 수 있도록 했다. 절친은 시인 한하운을 매우 좋아했다. 나는 병석의 친구에게 그의 시를 읽어주곤 했다.

보리피리는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여느 시와 다를 바가 없이 시작한다. 시인의 상황은 차치하고라고 그 어느 시보다 더욱 평범한 시어로 시작을 한다. 동심과 함께 지극히 평범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시어들이다.  특징 중 하나는 운율이 잘 살아있어 시를 읽는 사람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배어드는 리듬감이다. 그런데, 시인이 자신이 처한 아픈 상황을 모두 도려냈구나 싶을 즈음, '인간사 그.리.워.' 라는 시어를 던진다. 짧은 이 시어 안에 그가 도려냈던 모든 것을 압축시킨 느낌이다. '보리피리'라는 시어가 드디어 거부할 수 없는 힘을 드러내는 순간이다. 맑은 영혼의 동심이 시어 '보리피리'를 통과하면서 시인이 그동안 자신의 가슴 깊이 여미어 두었던 새파란 아픔이 어느새 독자의 가슴에 배어든다. 동심이 어느새 시인의 아픔, 지신의 일생을 통한 파란 아픔으로 변해있다. 

  

 친구가 한하운을 좋아한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이 시어에 다다르는 순간, 한하운의 임팩트가 가슴 깊숙히 파고든다. '이 시어에서 눈을 떨 수가 없으며, 자꾸만 되돌아 읽는 바람에 더이상 나아갈 수 없게 하는 그런 시어' 라고 친구는 말하곤 했다.

 

인간이 사회적 활동을 하는 것이 그 얼마나 그리운 일인지, 그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아니, 깨닫지 못한다. 시인이 깨달았듯 말이다. 시인이 처했던 상황이 되어서야 비로소 알 수 있을 그 귀하디 귀한 관계의 소중함을 말이다...

 

 

 

 

 

병실에서 만난 이 친구 누나의 말로는 동생이 본디 체력이 약한데, 특히 폐가 약했다. 중고생 때 툭하면 병원을 제집 드나들 듯 했고 늘 골골골 했다는 것이다. 그러던 중 급기야 추운 겨울을 맞이하여 겨울 정기 행사를 하는 중이라는 것인데 요번에는 평소와는 달리 사태가 매우 심각하다고 했다. 이거는 백화점 정기 세일도 아니고, 진짜 ㅠ.ㅠ. 문제는 집이 경상도 깊은 산골 오지인 상 촌동네라 부모님 오시라 할 처지도 못되고 누나는 직장인이라 병자를 옆에서 일정시간 돌봐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하여 도움을 줄 사람이 필요하고 절친인 나에게 연락했다는 것이다. 도움을 줄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마침 겨울 방학 중이니, 나는, 아이고 있다 마다요~! 하면서 친구 퇴원 할 때까지 걱정일랑 붙들어 매시라고 흔쾌히 승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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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15-07-15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하여 어떻게 되었죠? 그 친구는?
뒤가 궁금하군요....

차트랑 2015-07-15 12:14   좋아요 0 | URL
(닉네임을 막상 말씀드리려니...ㅠ.ㅠ.)

안녕하세요
붉은돼지님, 저의 서재를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제가 북플을 하지 않는 관계로 어느 분께서 방문해주셨는지 알수가 없어
인사를 드리지 못하고 답방도 제대로 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찾아뵙겠습니다.

아, 그리고 친구에게 준 책이 또 있어서 다음 페이퍼를 보시면
상황을 아실 수가 있습니다.
저도 상황이 되는대로 시리즈의 페이퍼를 게시하도록 하겠습니다.

무더운 날씨에 건강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붉은돼지님 ~!





그레이진영 2015-08-25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나가다 처음 들어와 인사드립니다~~ 한하운시인의 시집이 눈에 띄어서요 시인의 시도 무척 좋아하지만 야자시간에 시를 외우면 집에 갈수 있다는 담임샘 말에 거의 한학기를 시를 외우고 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때 얻은 별명이 <서육사> 였습니다. 이육사가 아니고요. 그러다 한하운님의 개구리를 외웠더니 갑자기 교실에 3초간의 적막이...... 그리고 와~~ 하는 웃음소리가 선생님의 얼굴엔 역시!! 하는 미소가 그때 생각이 나서요 종종 들어오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