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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은 유난히도 뜨거웠다. 오죽했으면 나무에 매달린 사과가 벌겋게 익어갔을까. 사과가 그럼 벌겋게 익지 파랗게 익어가야겠냐고 반문할지는 모르겠지만 그 시절이 여름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도 있다는 말씀. 그렇게 작열하던 지난 여름, 나는 모처럼의 친구와 그 뜨거운 땡볕아래에서 얼굴을 마주하기로 했다. 그리고 모처럼의 재회를 기념하며 각자가 준비한 책을 교환하고 날짜와 더불어 그 표시를 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장소는 한 낮의 탄금대!

 

 

탄금대에서 장렬히 최후를 맞이한 8,000의 조선군을 추모하는 탑이 그들의 높은 충성심 만큼이나 우뚝하다. 

 

 

한참을 달리다보니 어느 새 탄금대가 눈에 들어온다. 먼저 도착한 나는 탄금대 주차장 변에 있는 찻집으로 들어가 이열치열, 따끈한 차를 마시며 기다린다. 곧 친구가 도착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탄금대로 향한다. 기왕 온 곳이니 탄금대를 돌아보자는 것이다. 나무 그늘이 있어 그나마 가능한 그런 날이다.

 

 

만감이 교차한다. 우륵과 임경업의 혼을 담고 있는 탄금대의 전설. 그러나 내게는 우륵도 임경업도 아닌 또 다른 이의 전설에 그만 안타까움이 더할 뿐이다. 다들 아시다시피 신립과 8,000〜16.000 조선군의 전설이 그것이다. 「연려실 기술」과 「선조수정실록」은 신립과 그의 종사관 김여물이 왜군과 끝까지 싸우다가 함께 몸을 던진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당시 예천의 민간인들 사이에서는 신립이 왜군에 붙잡혀 죽임을 당했다는 소문이 있었다고도 한다. 일본의 역사는 신립을 자신들이 붙잡아 참수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일본인들의 역사서는 워낙 뻥이 심하고, 일본의 사학자들은 역사 왜곡 득도의 경지에 다다른 냥반들이라 기연미연한 것이 사실이다. 신립과 그 부하 장졸들의 충혼을 기리는 탑은 우뚝 솟아 있지만 이를 바라보는 나의 마음은 한없이 애달프고 안타깝기가 그지없다.

 

 

신립에 대한 평가는 바라보는 이 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는 듯하다. 혹자는 충신이라고 하고 또 다른 혹자는 장군으로서 마땅치 못하다는 것이다. 탄금대의 기록에 관한한 「선조수정실록」 보다는「연려실 기술」을 더 신뢰하는 입정이고 오로지 구국의 일념으로 자신의 몸을 장렬히 던진 신립을 가히 충신으로 보고 싶다. 우주와도 바꿀 수 없다는 자신의 목숨을 던진다는 것이 나와 같은 범인으로서 가당키나 한 일이던가. 한마디로 신립은, “터럭 하나라도 적에게 넘길 수 없다”며 장렬히 강물에 몸을 맡기었으니 또 다른 주장이 있기는 하나 그 곳이 바로 열두대이다.

 

 

이 장면에서는 삼국지의 관운장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신립은 함경도에서 거칠고도 거칠었던 이탕개의 무리를 파죽지세로 격파하여 그 이름이 드높았다. 당대 조선 최고의 장수였던 것이다. 물론 관장군과 신립은 인품이나 성정에서 큰 차이가 있는 인물들이다. 관장군은 기품이 있었고 고매했으며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 하나로 자신의 삶을 살았다. 그러나 신립은 성정이 많이 거칠었다고 한다. 신립에 관한 논문을 살펴보니, 인간의 생명을 경시했고 독선적이며 과격한 성격을 지닌 인물, 이라고 평하고 있다. 불구하고 관운장을 떠 올리는 것은 관운장이 죽음을 목전에 두고 남긴 말이 있기 때문이다.

 

 

솔까말 자기 손에 피를 묻히기를 원치 않았던 손권은 제갈자유를 보내 관장군을 설득하려 한다. 제갈자유는 관장군에게 형주와 양주를 다시 돌려주고 가솔도 만나게 해주겠으니 손권에게 귀순하라고 종용한다. 그러나 관장군이 누구던가. 당시의 입장이 제 아무리 코너에 몰려 매우 불리한 상황이라고는 하나 순순히 회유에 넘어갈 인물이 아니잖은가. 그랬더라면 애초에 홀홀단신으로 오관참육장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의(義)를 위해서라면 결코 목숨을 아낄 위인이 아닌 것이다. (공명의 형님만 아니었어도 제갈자유는 분명 목숨을 부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제갈자유의 회유를 묵묵히 듣던 관장군이 한마디로 답을 한다,

“玉可碎 而不可改其白(옥가쇄 이불가개기백), 竹可焚 而不可毁其節(죽가분 이불가훼기절)옥은 비록 부서져도 그 흰 빛을 잃지 않으며, 대나무는 불에 탈지언정 그 마디를 잃지 않소이다". 몸은 비록 죽을지라도 나의 이름은 죽백에 남아있을 것이오. 나를 욕되게 하지 마시오!!”  라며 단호히 거절한 것이다. 어째거나 신립도 자신의 최후를 선택하여 자신의 이름을 죽백에 남겼으니 이 순간만큼은 나로 하여금 미염공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물론 다른 한편으로는 마땅치 않은 부분도 있는 것이다. 사안은 솔직히 마땅치 않은 정도로 끝맺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신립은 자신의 명(命)으로 마무리를 했고, 결국 조선은 나라를 구했으니 완곡하게 표현하고 싶은 것 뿐이다. 기왕에 삼국지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나를 덧붙이고 싶어진다. 한비나 제갈공명 그리고 손자등은 장수를 여러 유형으로 분류했다. 

 

 

흔히 용장(맹장), 지장, 덕장, 현장등이 그것이다. (아, 조선의 서유대 장군은 특이하게도 복장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던 대단히 존경스러운 인물이다.) 가끔 듣는 말로는 “용장불여지장, 지장불여덕장”이라는 말이 있다. 장수가 전투에 임해서는 반드시 지용(智勇)을 겸해야 한다. 전장에 나가는 장수가 지혜롭지 못할 때, 장수는 일을 크게 그르치고 만다. 그러므로 용장의 기상은 가상하나 일을 맡기기가 어렵다. 백전 불태가 아닌 백전 필패의 수를 둔다. 전장의 장수가 지용을 겸비해야 하는 이유이다.

 

 

 용장은 부하 장졸들을 사지로 몰아넣기 십상이다. 이는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 처사이다. 신립은 조선 최고의 용장이었던 것이다. 고니시의 부대가 한양을 향해 진군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선조는 신립으로 하여금 이를 격파하라는 구국의 명을 내린다. 날랜 기병을 포함하여 8,000혹은 16,000천의 조선 병사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일은 직전에 이미 왜군과 붙어 패전한 경험이 있었다. 이일은 신립에게, 조령(문경새재)은 이미 늦었으니 한강으로 후퇴하여 방어진을 구축하자, 고 했다.

 

 

종사관 김여물은 말하기를, 왜군은 대군이며 조총에 능합니다. 조령은 산이 험하여 지형지물을 이용한다면 승기를 잡을 수 있습니다, 라고 조언했다. 기록에 의하면 이일과 이종장 역시 김여물의 전략에 동의한 것으로 보인다. 김여물 등은 전면전이 아닌 산악지역에서 일종의 게릴라 전을 구상했던 것이다. 사실 왜군이 한양 땅을 밟으려면 소백산 줄기의 령을 세 개나 넘어야 했다. 바로 당시에 조령이라 불렀던 문경 새재, 죽령, 그리고 추풍령이 바로 그곳이다. 이 세 곳은 방어를 구축하는 편에서는 자연이 준 요새나 다름이 없었다. 통과하는 적군의 목줄을 죌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제공하는 지형지물로 매우 험준하니 말이다. 게릴라 전술로 왜군의 진로를 막고 교란시키며 타격을 주기에 최 적합한 지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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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양측의 의견 대립이 극에 다다르다 못해 송사에 이르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바로 국내의 사학자들인 원고 김현구선생과 피고 이덕일 선생의 이야기다.

 

 

피고 이덕일 선생은 김현구 선생이 저술한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를 읽고 일본 극우파의 역사관과 다르지 않다고 판단,「우리 안의 식민사관」이라는 자신의 저술을 통해 김현구 선생을 일제식민사학자라며 날카롭게 비판했다고 한다.

 

김현구 선생은 법에 의지했다. 1심 담당 판사는 이덕일 선생이 김현구 선생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했고 그 죄질이 나쁘다하여 이덕일 선생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고 한다. 이는 지난 2월에 있었던 일이다. 피고 측은, 이는 학문을 죽이는 처사라 하여 항소했고 바로 오늘 2심의 결과가 나왔다. 무죄였다.

 

 

 

 

1심 재판부의 견해: "피고인은 피해자가 주장하지도 않은 허위사실을 전제로 피해자를 식민사학자로 규정했다. 피고인의 학력과 경력 등을 보면 피해자가 임나일본부설을 아무 비판 없이 수용하지 않았음을 충분히 알았을 것", 고로 유죄,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

 

2심 재판부의 견해: "책 머리말을 보면 피고인은 한국 사회가 식민사관을 극복하지 못해 큰 해악을 초래하고 있으며 이를 극복하려면 식민사관 카르텔을 비판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인식이 타당한지는 차치하고 주요 동기가 공공의 이익을 위한 목적에서 비롯된 것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고로 무죄

 

 

 

이를 개인적으로 초유의 사태라 칭하는 것은 소송의 본질이 우리 역사에 관한 것이며 학자들 간의 견해 차이가 소송에 이르렀기에 하는 말이다. 이 사실을 알았을 때 일개 독자에 불과하지만 나로서는 심각한 상황 전개로 인식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양 당사자의 책을 읽어보지 않았으면 말을 말어~! 라고 할 수도 있겠다.

 

 

피고 학자가 원고 학자에게 어떤 식으로 무지막지한 욕을 어떻게 했는지는 쟁점이 된 책을 아직 읽어보지 않았으니 알 길은 없다 (이덕일 선생의 저술은 품절이라고 한다. 아마 소송중이라 일시 판매가 중지되지 않았을까 생각할 뿐). 딴에는 오죽했으면 학자가 학자를 상대로 법에 의존하기로 결정했을까 싶기도 하다. (두 책은 읽어볼 예정이다)

 

다른 한 편으로 매우 우려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이번 소송에서 피고를 실형에 처하며 사건을 종료시킬 경우, 필연적으로 국내 모든 학자들의 학문 활동을 심각하게 구속하는 새로운 법이 될 수 있는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하나의 판례는 모든 학계를 줄 소송의 대열에 올려놓을 수도 있다. 원피고가 떠날 날이 없는 학계를 상상해보시라. 한 판사가 결정하는 판례의 위엄이 그 얼마나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하던가. '분묘기지권'이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사정이 이러할 경우, 연구 결과물에 기인한 학문적 대립이라기 보다는 감정 대립으로 변질되어 어느 학자의 발언이든 여차하면 소송감이 될 여지가 다분하다. 각 분야에서 연구에 매진하여야 할 학자들이 피고가 되어 소송을 준비하거나 심리를 받으러 법원으로 출퇴근하는 사태는, 말 그대로 초유의 사태인 것이다.이러한 분위기는 학자들에게 학자 본연의 성질을 거세하는 형벌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소송 무서워서 어디 입이나 뻥끗할 수 있으랴... 인문 학계의 소송은 기타의 소송과 판이하게 다른 성질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논쟁이 핵심 원료인 인문 학계에 찬물을 끼얹을 뻔 한 송사를 그간 심히 우려하는 마음으로 지켜본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학계에서 의견 대립이라는 알맹이를 빠트린다면 과연 학문의 성장이 가능키나 한 일일까. 감옥에 가기로 작정하지 않은 다음 에야 그 어느 학자가 다른 학자의 논리에 반박을 해줄 것인가. 학문은 상호 반론을 자양분으로 더 크게 자라나는 고유한 특성을 가지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독보적인 해석 혹은 독보적인 저술이란 자신이 아닌 타자들이 인정할 때 학자가 얻을 수 있는 지고한 업적이 된다. 사마천이 그러한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어찌 보면 역사적 사건에 대한 상반된 해석과 주장은 사학의 본질 일 수가 있고 견해가 각기 다른 데에는 그만한 근거가 있을 것이다. 해석의 차이가 꼭 사학에만 존재하는 것도 아닐 것이지만 말이다. 다양한 사료와 고고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한 해석 차이가 어찌 꼭 같아야 한단 말인가. 

 

사학자 각자의 해석에 따라 다른 프리즘으로 역사를 바라볼 수 있는 것이기에 말 그대로 <사관>이라 하는 것이다. 학자의 펜 끝은 전장에 나아가는 전사의 검 만큼이나 날을 잘 세워야한다. 무딘 검으로는 전장에 나아갈 수는 없으니 말이다. 죽기로 작정하고 전장에 나아갔던  백제의 결사대도 자신들의 칼 날은 시퍼렇게 갈았을 것이다. 하여 학자는 자신의 검을 벼리고 또 벼려 날카롭게 하지 않을 수 없고, 상대의 그 것 또한 못지 않게 날이 잘 서 있을 것이라는 점도 각오를 해야한다. 날이 서지 않은 검은 검이 아니다. 그리하여 예리하게 날 선 두 검이 서로 마주할 때 불꽃이 튀어 오르는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무사가 상대방의 검이 너무 날서있다고 비난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사학자에게 주어진 유일한 검은 바로 연구의 결과이며 그에 따른 사관이다.

 

또한 누군가가 자신의 학문에 이의를 제기할 때 그 이의를 압도할 수 있는 더 깊고도 탄탄한 학문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것이 진정 빛나는 학자의 길이라 믿는 바이다. 상대가 있기에 나의 학문이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이 아니던가.. 이는 학계가 건강하다는 방증이라 믿는 바이다.

 

건강을 잃으면 사람이나 학문이나 매한가지로 병이 드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이치가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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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주사위는 던져졌다며 루비콘 강을 건넌 후,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고 말했다고들 한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는 당시 그가 분명 건강했다는 이야기다. 체력이 빌빌해가지고서야 가능한 이야기가 아니니 말이다. 결단력 있게도 루비콘 강을 건너던 그 나이는 대략 50세 정도였다.

 

 

그러나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그 강을 건너던 나이도 되지 않아 나는 엉뚱한 ‘아케론’을 건너고 있었다. 사공 카론에게는 금화 한 닢을 주어야 노를 저어준다고 한다. 나는 ‘레테’에 다다를 즈음에 엽전을 주겠노라 구라를 치고는 배에 올랐던 것이다(내게 금화가 있을 리가 있나..). 그런 줄 알고 노를 젓던 카론은 내게 금화가 없는 줄을 눈치 챘던지 뱃머리를 돌려 나를 원래의 자리로 돌려보내고 말았다. 금화 없이는 어림도 없다면서 말이다 (죽더라도 최소 엽전 한 푼은 있어야 한다니...). 이 이야기는 수년 전, ‘레테’를 목전에 두고 있던 나 스스로의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요즘 온 나라에 퍼져있는 ‘저탄수화물 고지방’ 식단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텔레비전이 소개하고 있는, 직접 큰 효험을 본 냥반들이 주장하는 고지방 식단에 대한 찬사는 실로 대단했다. 마음껏 동물성 지방을 많이 함유하고 있는 고기를 맘껏 먹고도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니 오죽이나 좋겠는가. 그럴 수밖에, 그 정도로 효과가 좋다면 나라도 그러겠다 진짜.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매체는 고지방 식단에 대한 우려를 전문가 집단을 통해 내보내고 있었다. 그러자 대번에 체험자들로부터 즉각적인 반응이 되돌아온다. 요즘 쌀값이 현저히 떨어지니 쌀 소비가 줄어드는 현실을 우려하여 탄수화물의 섭취를 권장하느라 고지방식단을 헐뜯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나는 어느 쪽 이야기가 진실인지 판단할 수 있는 능력자도 전문가도 아니다. 고지방 식단으로 효험을 본 낭반들은 자신들이 경험한 팩트를 전하는 것이고, 전문가들은 또한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견해를 피력하는 것일 테니 말이다. 다만, “안 해봤으면 말을 말어~!”, 혹은 “니들이 게 맛을 알어?” 라고 외치던 어느 아제들이 잠시 떠올랐다 사라진다.

 

 

레테를 건너기 직전에 뱃머리를 돌렸던 나로서는 건강을 진지하게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카론을 기쁘게 해줄 금화도 한 닢도 마련해야하고 말이다. 하여 이런 저런 서적들을 뒤지고 뒤지느라 그렇게 몇 년이 흘러 버렸다. 건강 관련 지식을 몇 년 뒤져 읽는다고 깨달을 바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어렴풋이 건강한 신체를 위해 해야 할 기본적인 사항들을 약간 알 수 있었다.

 

 

요즘 트렌드인 고지방 식단이 그 중 하나이다. 참고 서적들을 활용한 나름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건강에 관심이 있는 대다수 사람들도 알고 있듯이, 동물성 지방을 소화시키는 핵심은 담즙이라고 한다. 「간담」이 기타 장기보다 더 크고 튼튼한 분들은 이 동물성 단백질 식단이 상당히 유리하다. 쉽게 말해 고기를 잡숫자마자, 충분한 량의 담즙 산을 바로바로, 팍팍 쏴드리기 때문이다. 배불리 잡숴도 고지방을 분해하고 소화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 더우기 간담이 좋으신 분들에게는 동물성 단백질이 기운도 훨씬 더 나게 해준다. 이게 죄다 가장 많은 량의 담즙을 아낌없이 쏘아줄 수 있는 능력 덕분이다. 간담이 탁월한 분들의 홍복이 아닐 수 없다. 간담이 크니 흔한 말로 간이 배 밖으로 나오는 것은 일도 아니고, 담대하기로는 말로 다할 수가 없는 분들이다. 이런 분들은 얼마든지 고기를 즐기셔도 좋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렇게 간담이 좋으신 분들은 고기를 잡술 때, 채소를 많이 곁들이는 것은 되려 도움이 되지 않다. 「내경內徑」과「동의보감」에 ‘산수신산酸收辛散’ 이라는 말이 있다. ‘신 맛은 거두어들이고 매운 맛은 발산시킨다’(흩어지게 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무엇을 거두어들이고 무엇을 발산시키느냐 하면, 바로 살이다. 채소가 신 맛을 가진 것은 아니나 채소는 간기능을 향상시킨다. 간은 산(酸) 기운을 장(藏)하고 있는 장기(臟器)이다. 그러므로 채소를 많이 잡술수록 간 기능이 더욱 강해지게 된다. 간 기능이 가뜩이나 좋은 냥반들 몸 안에서 채소는 간 자체에 산기운을 더욱 증강시킨다. 몸 내부를 순환하도록 되어있는 기(氣) 흐름, 즉 오행 불균형을 가져오기 마련이다. 체중이 당연히 늘어날 수밖에 없다. 강해진 간이 그야말로 원치 않는 살을 하염없이 거두어들이기 때문이다.

 

 

흔히 물만 먹어도 살이 찐다는 분들이 계시다. 요즘은 공기만 마셔도 살이 찐다고들 할 정도로 체중 증가가 염려되시는 분들도 계시다. 이런 분들은 결코 채식주의자가 되어서는 안되는 분들로서, 간기능이 가장 강한 상태로 태어나신 분들이거나 평소 간을 강하게 하는 음식을 많이 잡숫는 분들일 가능성이 높다하겠다.

 

 

간담이 가장 강한 분들이 가진 또 다른 특징은 폐기능이 가장 약하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운동회 때 달리기 꼴찌를 도맡는 분들로 폐기능을 강화시키는 음식을 드시면서 반드시 운동을 겸해야 하는 분들이다. 특히 간이 좋은 분들은 땀을 많이 흘려주어야 몸이 가볍고 상쾌한 기분으로 일을 할 수가 있다. 비위가 가장 약한 분들은 땀을 많이 흘리는 것이 되려 좋은 기운을 상하게 하는 이치와 반대인 경우이다. 운동은 만인 건강 필수조건이지만 말이다.

 

반대로 비위가 약한 분들은 동물성 고지방을 소화시킬 수 있는 담즙이 적다. 다른 장기에 비해 비위가 가장 약한 분들은 간담의 기능도 상대적으로 약한 편에 속한다. 지방이 풍부한 삼겹살을 다량 섭취할 경우 소화가 잘 안되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이런 분들은 건강 상태가 약할 때에 고기를 굽는 냄새만 맡아도 속이 미식거리거나 식욕이 저하되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그러므로 비위가 가장 약한 분들이 많은 량의 고지방 식단을 지속할 경우 병을 불러 오는 수가 있다는 점도 아울러 밝혀두고 싶다.  

 

사실, 우리는 계절에 나는 음식을 골고루 먹어주면서 운동을 적당량 해주는 것이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이랄 수 있다. 음식 불균형은 분명 신체 기운 불균형을 초래하게 마련이다. 소신을 가지고 골고루 잡숫고 운동하는 것은 전문가가 아니더라고 강력 주장할 수 있는 내용이지 싶다. 아, 음식은 가능하면 따듯하게 잡숫기를 또 강력 권해드리고 싶다. 몸이 차가워지면 병기가 침범하기 좋은 조건이니 말이다.

 

 

전문가도 아니면서 주절대려니 얼굴이 화끈거린다. 레테를 목전에 두고 되돌아왔던 이의 관심사라 여겨주시고 양해해주시기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마친다.

 

 

 

첨언 1:

조사 「-의」자를 사용하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썼다. 어느 분께서 부단히 주장하시는 덕분에 일리가 있다 여겨 시도해 본 것이다. 그러나 쓰다보면 「-의」자가 나도 모르게 자동으로 들어가곤 했다. 다시 글을 고치곤 했다. 더불어 어쩔 수 없이「-의」자를 쓰지 않을 수 없는 경우도 있음을 알겠다. 또한 그분은 한자어를 순수한 우리말로 사용하는 것의 아름다움도 꾸준히 주장하신다. 이 점은 「-의」자를 사용하지 않는 것 보다 훨씬 더 어려웠다. 언어는 수용성이 있으며 늘 가변적이다. 친숙함이란 정말로 판단을 매우 흐리게 함도 알겠다.

 

 

첨언 2 :

이 글을 읽는 지인의 지적이 있었고,

동물성 단백질과 동물성 고지방을 일괄처리하는 오류를 범했음을 인정하여 필요 부분을 수정하면서 더불어 약소한 첨가를 병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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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의 서재 글에 대한 독자의 반응 란에는 “좋아요”라는 항목이 있다. 흔히 찬(贊)이 있으면 반(反)이 있기 마련으로 ‘싫어요’가 있을 법도 한데, 알라딘의 항목에는 ‘찬’은 있으되 ‘반’은 없는 경우이다. ‘찬’이 있다고 꼭 ‘반’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찬’을 하지 않은 나머지는 저절로 ‘반’으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꼭 그런 것은 아니어서 침묵은 경우에 따라 ‘찬’으로도 ‘반’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고 중립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찬’과 ‘반’을 함께 묻는 경우와 ‘찬’만 있고 ‘반’이 없는 경우는 결코 같은 것이라 할 수는 없다. 전자는 양 극단 중 어느 하나를 반드시 도출해내야 하는 경우에 사용하는 방법일 것이다. 반면 후자는 ‘반’할 줄을 몰라서가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필요로 하는 상황에서 요긴하다.

 

이는 알라딘이 잘했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알라딘의 알라디너에 대한 배려가 있음을 말하려는 것이다.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일상에서는 항상 상대에 대한 배려를 앞세우는 것이 바람직하다. 직격(直擊)은 불가피한 전쟁에서나 사용하는 극단적인 방법이라고 여기는 이유이다. 직격하는 글은 흔히 상대방에게 직접적이고 깊은 심적 내상을 주거나 정도가 심하면 사람을 해치기 때문이다. 이는 언론을 통해 종종 접하는 비극적인 경우이다. 명분을 가진 내용의 글이 방법상의 문제로 그 누군가에게 불면의 밤을 선사한다면 이것은 정녕 글쓴이가 원하는 바는 아닐 것이라 여기는 바이다. 그러하기에 불가피한 전쟁에서나 사용하는 것이 직격인 것이다.

 

 

묵공은 어떻게 보면 전쟁의 달인이었다. 그의 전쟁 솜씨만 놓고 보면 얼마든지 병가(兵家)라 할만하다. 그러나 묵가(墨家)를 병가(兵家)라 하지 않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묵공은 직격(直擊)을 우선으로 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불기피한 상황에서 만이 직격을 이용했다. 그의 사유는 겸애(兼愛)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유가는 묵공의 겸애를 인의를 모르는 처사라고 비난했지만 나는 묵공의 가르침을 공경한다.

 

목적이 정당하다하여 모든 방법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녕 뜻을 이루려 하는 사람이라면 바르고 정당하며 가급적 다수의 동의를 이끌어내는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작 핵심은 직격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목적을 이루려는데 있는 것이니 말이다. 명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방법이 무기탄하다면 누군가의 말처럼 방법론에서 자신만의 쾌감을 느끼는 것에 그치고 마는 수가 있다. 어떤 이는 이런 경우를 두고 분노의 배설이라고도 했다. 좋은 명분을 가지고 시작했으나 마치 욕구를 배설하는 느낌을 주어서는 원하는 바를 얻기가 어렵기에 하는 말이다.제 아무리 명분이 있다고 하나 매사에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전원합의체’란 공산당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니 말이다. 공산당이 아닌 이상 안건에 다수의 동의를 얻고자 힘쓰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중국의 한 대(漢代)에 내가 좋아하라는 음양가의 학설로 경학을 이해하려는 경학자들에 불만을 품고, 다른 종류의 경학에 시동을 걸었던 학파가 있었다. 이를 ‘고학’ 즉 ‘고문학파의 경학’이라 한다. 이들은 음양가를 괴이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라 칭했고 유흠이라는 학자가 제창했다고 한다. 이 중 대표적인 인물이 양웅(楊雄)과 왕충(王充)이라는 냥반들이다.

 

(주역에 접근하는 방법은 다양하겠지만 양웅과 왕충의 접근법을 공부한다면 주역을 훨씬 더 풍성하게 접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이 양웅이라는 냥반은 중국철학사에서 한 획을 그은 혁명가로 간주되는 인물이다.  또 내가 좋아하는 노자(老子)를 ‘인의를 배격하고 예절과 학문을 멸절한다’하여 노자를 멀리했다. 또한 장자와 양주를 평하기를 ‘제멋대로이고 법도가 없다’ 고 하였고, 또 내가 겁나 겁나 사모하고 있는 묵자와 안영(晏子)을 ‘예를 폐기했다’고 했다. 신불해와 한비는 ‘험악하고 교화를 무시했다’ 고 평했다. 신불해와 한비는 개인적으로 친근한 인물들이 아니어서 잘은 모르겠으나, 위에서 언급한 노장과 양주 그리고 묵자와 안자등은 양웅의 견해에 사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다.

 

 

그러나 양웅이 남긴 말씀 중 옳거니 하는 금쪽같은 말이 하나 있으니 그것은 다음과 같다.

 

書不經非書 서불경비서

言不經 非言 언불경 비언

言書不經 多多贅矣 언서불경 다다췌의

 

일반적인 해석으로는,

 

글이 경에 부합하지 않으면 글이 아니요

말이 경에 부합하지 않으면 말이 아니다

말과 글이 부합하지 않으면 아무리 많아도 군더더기이다

 

 

이 말을 다시 의역해본다면,

 

글을 다스리지 않으면 글이 아니요

말을 다스리지 않으면 말이 아니다

말과 글을 다스리지 않으면 제 아무리 많다 하더라고 해로운 것이다.

 

췌(贅)라는 말은 ‘쓸모없다’ 거나 ‘불필요하다’ 또는 ‘군더더기’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나 풍우란은 한 발 더 나아가 췌(贅)라는 말을 ‘해롭다’라는 의미로 해석했다. 풍우란의 해석에 적극 동감하는 바이다. 이런 점에 비추어 간혹 마주하는 직격하는 모습의 글을 보면서 뜻을 이루기에 더 가깝고, 거칠기 보다는 세련미와 더불어 배려를 갖춘 글을 기대하고 싶은 마음이다.

 

이제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퇴근을 했을 것이다. 중추가 내일 모레이니 말이다. 즐거워야할 중추에 증후군이라는 접미어가 뒤따르는 요즘이다. 때로는 한 가정을 위태롭게까지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서로에 대한 배려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필요한 중추인 듯하다. 알라디너분들께서는 부디 즐거운 중추를 맞이하여 서로 반갑고 고마운 중추가 되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마친다.

 

부디, 몸은 힘이 드시더라도 마음은 즐거운 추석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토록 노래를 잘 부르는 오연준님,

아직 치아도 다 갈지 않은 나이 같은데, 어찌 이리도 노래를 잘 무른단 말이오??

그대의 참으로 아름다운 노래가 찌든 내 마음의 때를 올올이 벗겨주는 듯 하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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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날」 이라고 하니 과거 누군가가 제게 해준 말이 떠오르는군요. 그는 인생을 발전 시켜가는 3가지 중요한 요인이 있다고 했습니다. 첫째가 좋은 터요, 둘째가 스승님이고, 마지막이 좋은 책이다, 라는 것입니다. 터라는 의미는 자신의 환경을 말하는 것이지 싶고 스승님이야 말로 해 무엇 할까 싶습니다. 책은 셋 중 가장 접하기 쉬운 것이 아닌가 생각 합니다. 좋은 터와 스승님을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책은 마음만 먹는다면 되는 것이다, 라는데 동감합니다.

 

알라디너들께서야 늘 책과 함께 사시는 분들이지만 우리나라의 독서 현실은 꼭 그렇지는 않아 보입니다. 이런 우리의 독서 현실에 늘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책의 날이 우리의 독서에 더욱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기 바랍니다.  

 

설문을 보니 답하기가 쉽지 않은 내용도 있군요. 처음에는 왠지 겸연쩍어 주저했으나 어쩌면 제 자신을 돌아보는 좋은 계기가 되어줄 것이다, 생각하고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평소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질문에는 답하기가 쉽지 않을 듯 하군요.

 

 

Q1. 언제, 어디서 책 읽는 걸 좋아하십니까?

첫 번째인데 답하기가 좀 부끄러운 질문입니다. 솔직히 고백해야하고, 그래야만 의미가 있으니 말입니다. 사실은 장소에 구애받는 편입니다. 편안해야 하고 방해하는 요인이 거의 없을 때 집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제가 좋아하는 고전 음악 조차도 방해가 되더군요. 특히 집중력을 요하는 책들은 더욱 그러한데,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바로 침대입니다. 이리 뒹굴, 저리 뒹굴... 이는 매우 어렸던 초등학교 시절의 환경 덕분에 생긴 버릇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전기가 없었고 책상도 없었지요. 특히 밤에는 호롱불 아래에서, 혹은 등잔을 머리맡에 내려놓고, 가끔은 머리를 등잔 불꽃에 지져가면서 말입니다. 그렇게 자리를 깔고 뒹굴거리는 버릇이 들어버렸네요.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말을 실감하겠습니다.   

 

다음으로 선호하는 장소는 욕실입니다. 반신욕을 하면서 책을 읽을 때 상당히 집중도가 좋고요. 물이 식는 줄도 모르지만 시간이 가는 줄 모르다가 몸이 차가워지고 나서야 깨닫습니다.

 

아, 저는 자동차를 타고 가면서도 독서를 합니다. 위험하지 않냐구요? 이해가 잘 안되시겠지만 답을 마칠 때면 이해가 가실 것입니다. 때와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독서가 진정한 애독자라 할 수 있겠으나 이에 미치지는 못해 아쉬움이 남기는 합니다.  

 

Q2. 독서 습관이 궁금합니다. 종이책을 읽으시나요? 전자책을 읽으시나요? 읽으면서 메모를 하거나 책을 접거나 하시나요?

앞으로는 어떨지 장담은 할 수 없지만 현재까지는 99% 종이책으로 읽는 실정입니다. 한때 메모를 하기도 했으나 다시 읽는 일이 거의 없어 독서기록을 남기기 시작했고요. 언젠가부터 책의 여백에 직접 떠오르는 생각을 쓰고 밑줄을 그어가며 책을 읽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알고 보니 본격적으로 독서를 시작하던 대학 1학년 때부터였습니다. 해서 타인에게 양도하기가 쉽지 않은 아쉬운 면이 있습니다. 책에 좀 미안하기도 하구요.  

 

좋은 점은 하나 있기는 합니다. 재독, 삼독할 때 밑줄 친 부분을 중심으로 빠르면서도 고도의 집중력으로 읽을 수 있거든요. 이 효율성은 제가 밑줄 긋는 버릇을 고칠 수 없게 하는 핵심 요인입니다.

 

 

Q3. 지금 침대 머리 맡에는 어떤 책이 놓여 있나요?

많은 독서가들이 그러하시겠지만 머리 맡의 책들은 현재 읽고 있는 책과 가장 탐을 내던 책들이며 가장 애지중지하는 책들입니다. 또한 언제고 다시 꺼내 보아야 하는 책들이 틀림없을 것입니다.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사정권에 두고 있는 책. 이런 책들이 제게도 몇 권 있습니다. 사진을 찍어 볼까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깔끔하게 상품 넣기로 대신할까 합니다.

 

최근에 구입하여 머리 맡에 있는 책

 

 

 

 

 

 

 

 

 

 

 

 

 

 

 

 

 

 

오래도록 머리 맡에 있는 책

 

 

 

 

 

 

 

 

 

 

 

 

 

 

 

 

Q4. 개인 서재의 책들은 어떤 방식으로 배열해두시나요? 모든 책을 다 갖고 계시는 편인가요, 간소하게 줄이려고 애쓰는 편인가요?

장르별로 배열하는 것은 신속한 되찾기를 가능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애용하고 있습니다.

 

책의 소장 관련 질문은 알라디너들이라면 한 번 쯤 고민해봤을 법하군요. 저도 한때 고민을 많이 한 적이 있습니다. 아마도 20 여 년 전의 일일 것입니다. 이 고민도 결코 결정하기 쉬운 것은 아니었지요. 결국 간소함을 선택했습니다. 정예 맴버 500권으로 하자는 것이 저의 결론이었고 지금도 그러합니다. 책의 상태에 따라 양도하거나 기증, 양도나 기증이 어려운 상태의 책은 분리수거 합니다. 종종 양서들을 제가 알고 있는 서당으로 보내기도 합니다. 서당이라도 한자로 된 책만 읽으라는 법이 있을까, 하는 생각에 훈장님과 상의 했습니다. 훈장님은 흔쾌히 승낙하셨지요.

 

지난 해인가 헤세의 글에서 책 정리에 관한 글을 읽었습니다. 정예 맴버를 구축하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헤세도 그랬구나 싶은 것이 위로가 되었습니다.  

 

Q5. 어렸을 때 가장 좋아했던 책은 무엇입니까?

‘어렸을 때’ 라는 의미에 대한 약간의 정의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잠시 했습니다. 책과 관련한 ‘어렸을 때’ 라는 말은 일반 적인 어렸을 때와는 제 스스로 구별하고 있었거든요. 개개인에 대한 질문이니 제 생각을 간단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독서와 관련한 ‘어렸을 때’의 정의는 제 스스로를 돌아보면 ‘20대 중반’ 까지가 아닌가 싶습니다. 대학생 때 읽었던 그 많은 책들을 사실 저는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했다는 생각을 금할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일리아드」,「니체 전집」,「장미의 이름」그리고 「달과 6펜스」등 입니다. 교양 철학의 한 교수님께서는 대학생이라면 일리아드는 필독서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일리아드를 읽었지요. 지금 돌이켜 보면 당시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했다는 결론입니다. 「니체 전집」은 말할 것도 없고「장미의 이름」과 「달과 6펜스」 역시 다를 바가 없습니다. 알고 보면 이런 책이 한 둘이 아니었던 것이지요. 저는 그저 스토리만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상징은 시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어느 순간 깨달았습니다. 쉽게 접했던 고전들은 알고보면 은밀하고도 심오한 상징들 투성이 라는 것이지요. 저는 그 상징들의 의미를 나이가 훨씬 더 들어서야 하나씩 알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한마디로 이제야 말입니다. 현재의 저는 새롭게 고전을 읽어가며 고전이 왜 고전인지 새롭게 깨닫고 있는 중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여 제게 ‘어린 시절’은 20대 중반 까지입니다. 그 어린 시절 제가 가장 좋아했던 소품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김유정의 소품「동백 꽃」입니다. ‘오늘도 또 우리 수탉이 막 쫓기었다.’ 로 시작하는 「동백꽃」이 너무 좋아 저는 달달 외우다시피 했습니다. 들고 다니며 책이 닳도록 소리 내어 읽고 또 읽었지요. 수탉을 매개로 주인공과 점순이의 가슴에서 피어오르는, 4월 연두 나뭇잎의 파릇한 감정이 점점 붉게 물들어 간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여전히 김유정의 「동백꽃」을 사랑합니다.

 

더더욱 좋은 것은 이 버릇의 발전에 있습니다. 대학 때부터 마음에 드는 문구나 책을 달달 외우던 버릇은 나이가 더 들어 고전을 외우는 것으로 발전해 갔습니다. 첫 번째 질문에서 못 다한 이야기인데요. 제게는 운전을 할 때도 매우 중요한 독서 시간입니다. 고전의 내용을 바로 제 목소리로 녹음한 음성 파일을 운전 중 들으며 따라 읽는 것 입니다. 제게는 최고의 고전 독법입니다. 행여 고전을 암기하고자 하는 분이 계시고, 운전 시간이 좀 있는 분에게라면 적극 권해드리고 싶을 만큼 효과는 단연 최고라고 말씀드리고 싶군요.   

 

 

Q6. 당신 책장에 있는 책들 가운데 우리가 보면 놀랄 만한 책은 무엇일까요?

가장 곤혹스런 질문이지 싶습니다. 제 스스로에게는 여전히 놀랄만한 책이지만 제가 아닌 남들에게는 전혀 놀랄만한 책이 아니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지리에 관련한 책으로 스승님께서 수십 년 전 쌀 6가마니를 주고 사신 책입니다. 안동의 어느 집에서 이 책을 내놨다는 소식을 들으신 스승님께서는 한걸음으로 달려가 구입하셨다고 합니다. 사실은 이 책보다는 스승님의 판단과 결정이 놀라울 뿐입니다. 아래의 사진은 제가 가지고 있는 사본 직지원진입니다.

 

 

 

Q7. 고인이 되거나 살아 있는 작가들 중 누구라도 만날 수 있다면 누구를 만나고 싶습니까? 만나면 무엇을 알고 싶습니까?

이는 평소 생각하고 있던 반가운 질문입니다. 사적으로 만나고 싶은 두 분이 계십니다.

 첫째는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입니다. 그는 「중용」의 저자로 알려져 있고 곽점 출토의 백서(帛書)로 보건데 거의 확실한 듯 보입니다. 중용 장구 중 한 글자를 왕숙이 첨가하고 송대의 주희는 그 부분을 고스란히 이어받았습니다. 「대학」에서도 주희의 스승은 글자 하나를 손질 했는데 주희는 이를 무비판하여 받아들였습니다. 특히 대학에서 그들이 바꾼 한 글자는 조선의 유학 사상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습니다.「대학」 역시 자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고, 자사가 지었을 것이라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사’ 라면 저의 궁금증을 명료하게 해결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자사는 공자보다 철학적으로 더 깊이 있는 인물이라고 여깁니다. 가능하다면 가르침을 직접 받고 싶군요.

 

둘째로는 헤르만 헤세입니다. 그는 동양의 고전을 상당히 섭렵한 인물로 사서는 물론 노자, 심지어 여불위의 저술까지 꿰뚫고 있었습니다. 그 사실을 알았을 때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공맹과 주역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 이상을 넘나드는 헤세에게 동서양의 사상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과연 어떤 생각을 진솔하게 펼쳐 줄지 정말 궁금합니다.   

 

Q8. 늘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읽지 못한 책이 있습니까?

「책의 날」을 두 작가의 사망일로 정했다는데, 세르반테스와 셰익스피어라고 합니다. 「돈키호테」를 꼭 다시 읽고 싶습니다. 어린 시절 그 버전이 아닌 제대로 된 버전으로 말입니다. 어린 시절 잠시 거친 책들을 다시 찾지 않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사실은 제 자신이 그랬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돈키호테는 그런 식으로 읽어버리고 말 고전이 아니라는 것을 나이가 더 들어 알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상술의 희생자 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이런 이유에서 입니다. 고전의 진정한 맛을 저는 어린이 버전으로 지나쳐 왔으니 말입니다. 아, 개인 적으로는 안타까운 일입니다..    

 

Q9. 최근에 끝내지 못하고 내려놓은 책이 있다면요?

물론 다 읽지 못한 책이 여러 권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언젠가 서재에 고백을 했지요. 바로 「리만 가설」입니다. 어지간하면 완독하려고 애씁니다. 저자에 대한 예의도 예의지만 자존심이라는 것도 있잖아요 왜 ^^. 그러나 이 책은 제 능력으로는 절대로 끝가지 읽어 갈 수가 없었습니다.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지만 결국 스스로 중도이폐하고 말았지요. 이럴 때 정말 씁쓸합니다 ㅠ.ㅠ. 

 

 

 

Q10. 무인도에 세 권의 책만 가져갈 수 있다면 무엇을 가져가시겠습니까?

답하기 가장 곤란한 질문입니다. 꼭 골라야 한다면 「반야심경」, 「중용」 그리고 완역 소설 「삼국지」입니다. 무인도에서 탈출할 때를 기다리거나 준비를 하면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한 반야심경. 반야심경은 물론 주석이 상세히 달려 있는 책이라야 합니다. 주석이 없는 책은 능력 밖이니까요. 행여 깨닫는 순간 무인도를 떠나고 싶어 하지 않을 수도 있기에 선택합니다. 필수 템인 이유입니다.

 

불경과 더불어 「중용」은 가장 소중히 생각하는 경전입니다. 음성 파일을 만들에 제일 먼저 시작한 고전이 중용이고 가장 다양한 버전들을 읽은 대상도 중용입니다. 도서를 가장 압축시키고 나머지 버전들은 가장 많이 양도하거나 기증한 책이기도 합니다. 자사를 만나고 싶어 하는 이유도 중용의 장구에 있지요. 그 가르침이 지극히 성스럽다고 늘 여기고 있습니다. 남아 있는 나날 끊임없이 읽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책이 바로 중용입니다. 

 

재미하면 삼국지. 무인도라 진짜 심심할 것 같습니다. 심심할 땐 혼자 놀아야 하잖아요. 이럴 땐 삼국지가 제격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삼국지의 주인공들이 싸움터에서 상대방에게 외치는 장면들은 정말 웃기고도 재밌습니다. 특히 장비의 입이 걸쭉하고요. 언쟁이 전투 못지않게 재밌는 소설이 삼국지인 듯 합니다. 혼자 소리 내어 읽다보면 지루함은 어느새 사라질 것만 같은 소설이기도 합니다.

 

질문에 하나씩 답하며 제 자신을 되돌아 보게 되었습니다. 평소 생각해 본적이 있는 질문도 있고 전혀 생각지 못했던 질문도 있었습니다. 왜 어떻게 책을 읽는지 별로 생각해 본적이 없었지요. 그냥 읽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번 설문의 기회는 뜻밖의 생각을 하게 해주었고, 개인적으로 매우 유익했습니다. 이런 기회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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