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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일 전 부터 전국민의 컴퓨터 보안 프로그램인 알약과 V3 Lite가 영 작동을 하지 않는다. 시스템 과부하 상태인가...

이렇게 별 생각 못하고 았다가...언뜻 이거바라...뭔가가 있군~ 이렇게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이 몇일 전 업무를 시작하면서이다. 시스템의 속도가 현저하게 떨어져있을 뿐 아닐라 심지어 인터넷의 화면들이 일부 깨진 상태로 모니터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바이러스인지, 악성코드인지 그런거에 걸린거 같으다. 그런데 이번 현상은 좀 특이했다. 알약도, V3도 도대체가 실행이 되지 않는 것이다. 작동하지 않는 보안 프로그램과 바이러스 혹은 악성코드와의 관계를 아직 의심하지 못하고 있던 상태인지라 알약을 다시 다운 받아 설치하고...V3로 역시 같은 과정을 거쳤다.

 

그러나 상태는 전과 동일하다. 마이크로 소프트의 방화벽은 바이러스 감염에 노출된 상태라고 겁을 준다. 참 내원...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다..싶다. 그리하여 상태에 대한 진단과 처방을 보고한 내용을 검색하다가는  헛 수고만하고 시간만 빼앗겨 버렸다. 다시 알약으로 돌아가 커서를 작동시킬 수 있는 모든 곳을 죄다 눌러봤다. 드디어 찾고있던 증상과 처방에 대한 결과물을 얻었다. ‘시스템 후킹을 통해 알약 실행을 방해하는 악성코드’가 바로 이것이었다. 시스템 후킹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알약 실행을 방해하는 악성코드가 있다는 결론이다. 하여 전용 백신을 다운로드 실행한 결과 알약이 잘 작동하고 있는 상태이다.


참 내원... 백신 프로그램을 무력화 시키는 그런 악성코드도 다 있나보군...살다보니 별 경험을 다한다 싶다.


엄한 시간을 빼앗기고 스트레스 받으며 고생한 생각을 하니 과거 처음 컴퓨터를 구입하여 사용하다가 바이러스 먹고는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내다버린 컴퓨터가 생각났다. 당시엔 컴퓨터의 매커니즘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바이러스라는 것이 있는지도 몰랐다고 하는 편이 옳다. 여하튼 당시에는 첨단 컴퓨터였고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다시 구입을 하게 된 것은 바이러스에 대처를 하지 못한 탓이다. 하긴 운전 할 줄 안다고 자동차를 수리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그걸 치료하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 자체를 몰랐다는 것이 문제였다. 구입한 컴퓨터는 486DX2라는 기종이었다. 가격도 만만하지 않았다.


컴퓨터를 처음 만난 건 대학을 다니던 때이다. 강의의 한 과목은 그 성격이 좀 독특했다. 소논문을 학생들 각자 작성하여 제출하고 모든 학생들에게 자료를 제출 한뒤 이걸 다시 한 시간 동안의 강의를 진행하는 방식이었다. 두 시간이 묶여있는 강의 였기에 가능한 방식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래, 이것이 대학교의 방식이어야해..라는 생각이 든다. 소논문 강의를 마친 학생은 교수님과 동료 학생들의 날카로운 질문에 답해야 한다. 물론 미리 소논문의 주제를 밝히고 사전에 자료를 제출한 상태이기 때문에 마음만 먹는다면 강단에 서있는 학생 하나를 죽쑤게 만드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학점은 학생들을 서로 협력하는 관계로 나아가게 했다.


문제는 교수님께서 소논문을 컴퓨터의 워드작업으로 제출하라는 요구였다. 당시 대학생들이라도 공과대학생들도 제대로 개인 컴퓨터를 가지지 못한 상태였다. 그렇다고 성능이 대단히 탁월한 것이었냐...아니다. 지금과 비교하면 처참한 성능을 가진 것들이다. 3.8.6. 이었으니 말이다. 요즘 말하는 386세대를 지칭하는 그런 말이 아니다. 순전 컴퓨터의 성능을 말하는 표현이다. 그럴 당시 386이라는 컴퓨터가 어떤 것이었냐 하면... 1989년 미국에서 출시한 386은 본체만 800만원을 훨씬 호가했다. 모니터와 마우스등 주변기기들을 포함하면 그 가격은 더 올라간다.


386의 성능을 보면 가관이 아니다.

CPU 20Mhz, Memory 2MB, 256 컬러의 비디오카드

지금 생각하면 놀랍지 않은가...이걸 컴퓨터라고 했으니 말이다 ㅠ.ㅠ.


그 후 1992년 성능이 훨씬 월등한 486이 시장에 나왔다. 그 성능은 386에 비하면 빛나는 능력을 가진 컴이었다. 사양을 보면

CPU 66Mhz, Memory 150MB


과연 386과는 비교할 수 없는 첨단 컴이다. 물론 가격도 386이 출시되던 당시보다 현저하게 저렴한 가격이다. 거의 200만원에서 300만원 사이에 입수가 가능한 가격이었으니까... 그러나 이 사양의 486도 정말 지금 생각하면 한숨 나오는 실력을 가진 컴이 아닐 수 없다.


그 뒤를 이은 컴퓨터가 아마도 팬티엄일 것이다. 역시 486보다 훨씬 성능면에서 강력했다. 그러던 퍼스널 컴퓨터의 성능은 기하급수적인 능력을 자랑하고 있다. 486DX2로 한글 2.0 버전이나 2.1버전을 사용해보신 분들이 계실 것이다. 하늘소, 천리안이라는 말은 이제 잊혀진 듯 하지만 당시엔 첨단 통신수단이었다. 컴퓨터는 마이크로칩의 밀도가 18개월마다 2배로 늘어난다는 무어의 법칙을 만들어 내기도 했고, 반도체 메모리의 용량이 1년마다 2배씩 증가한다는 메모리 신성장론을 주장한 한국의 ‘황의 법칙’은 그 무어의 법칙을 산산조각 내버렸다.

바이러스 이야기를 하다가 엉뚱한 이야기까지 하게되었다...

바이러스 이거...없는 세상은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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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향한 것은 아니다. 동료와 함께 동해에 한 번 가보자는 이야기를 나눈지 여러해...밥 한 번 먹자는 말을 이행하기가 그리 쉽지 않은 것 처럼, 어디 한 번 가보자는 말치고 뜻대로 이행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그저 막연하게 '그래, 한 번 가보자...' 이건 사실 약속의 성격을 지닌 말 같지는 않다. 그저 말이 그렇다는 것이고, 마음이 그렇다는 것일 뿐....하여 밥 한 번 함께하자는 말을 곧이 곧대로 듣고 저 사람이 밥 한 번 사려나...그런 기대감을 가지는 이는 드물지 싶다.

 

이번의 동해 여행도 그러하다. 모처럼 시간이 날 때면 어디론가 떠나곤 하는 방랑자의 그 모습처럼 한 번 쯤 나도 그렇게 훌쩍 어디론가 떠나보고 싶다는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 중 하나인가보다. 서머싯 모엄은 그리하여 '달과 6펜스'라는 책을 내놓게 된 것은 아닐까... 모엄은 인간의 저 깊은 곳, 인간의 육체 안에서 전해져 전해져 내려오는 그 혈액속에는 그 조상들이 떠나왔던 그 이름 모를 곳, 알 수 없는 곳에 대한 향수(nostalgia)를 가진 존재가 인간이라고 했다. 그 어디론가 향하고 싶은 갈망을 그는 격세유전(Atavism)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스트릭랜드였다.

 

인간은 누구나 스트릭랜드가 되고 싶어하는 갈망을 가진 존재인가...한없는 자유에 대한 갈망, 그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욕구를 인간은 짖 누르며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나로서는 알수 없는 질문이지만 우연히 들르게 되는 그 어느 곳을 되려 편안하게 느끼며 안주하고 픈 소망이 울렁인다. 서머싯 모엄은 인간의 이런 욕구를 달과 6펜스를 통하여 보여주고자 한 듯 하다.

 

 

경부선을 따라 가다가 어느 방향으론가 빠져나갔다. 한 참을 달리다보니 안동을 지나는데 군자마을이라는 곳을 지나치게 되었다.

'오천 한마을에는 군자아닌 사람이 없다.'라고 한강 '정구'선생께서 하신 말씀에서 군자마을이라는 이름이 셩겼다고 한다. 참 좋은 곳에 자리를 잘 잡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곳의 양반들은 모두 퇴계의 문인들이라고 한다.

 

조금을 더 지나니 경상북도 봉화군이란다. 청량산을 지나고 있다는 팻말이 보인다. 이름이 참 좋다. 청량산...청량산은 퇴계 이황선생께서 수도를하고 공부를 하신 곳이라 한다. 군자마을과 무관한 산은 아닌 듯 하다. 그 기절이 출중하고 기품이 있으며 영기가 가득 어린 영산임에 틀림이 없다. 과연 이러한 곳에서 살면서도 그 어느 곳 에론가 무작정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까...그런 의문이 생긴다. 나라면 그 청량산에서 살고프다....

 

사실 여행기를 쓰는 이유는 군자마을도 아니요, 청량산도 아니다. 청량산을 지나 무작정 또 길을 따라가니 불영계곡을 지나고, 결국 울진이라는 곳에 당도하게 되었다. 울진은 작은 마을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읍내를 관통하게되는데 갑자기 커다란 인물의 사진이 눈앞에 나타났다. 다름아닌 기호 7번 박혜령 후보였다.

 

 

 

 

 

 

차를 세우고 바로 한방 찍었다. 그녀가 내세운 공약 3가지가 큰 글씨로 써있다. 그 중 2가지는 다음과 같다.

1) 노후 핵발전소 페쇄법안 추진  

2) 탈핵및 에너지정책 기본법제정

 

내게는 참으로 씸플하면서도 강인하게 다가오는 공약이다. 이런 공약이라면 나는 나의 소중한 한 표를 그녀에게 드릴 것이다. 이보다 지역 구 민을 위한, 아니 국민을 위한, 전 세계인을 위한 공약을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많은 표를 얻지 못한 듯 하다. 그녀는 이번 선거에서 탈락했으니 말이다. 울진 원자력 발전소는 1990년 준공했다고 한다. 물론 덕분에 상당량의 전기를 필요한 곳에 공급해온 것은 사실이다.

 

녹색당으로 출마한 박혜령 후보는 참 미련한 후보인가보다. 노후 핵발전소 페쇄법안 추진,  탈핵및 에너지정책 기본법제정을 공약하면 표를 줄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니 떨어질 수 밖에...

그러나.......

  알라디너의 어느 분이 스스로를 정치 혐오자라고 말 하듯이 나 역시 정치 혐오자이다. 그런데 이 미련한 녹색당의 공약은 나로하여금 정치에 뛰어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도록 한다. 이처럼 당장의 이익과 표를 무시한 채 당당하게 내건 공약은 정말 그 순간 나의 심금을 울리는 힘을 가진 것은 이유를 알 수 없는 일이다. 정녕 국민을 위한 사람은 저렇게 국민도 알아주지 않는 공약을 내 걸어야만 하는 것인가... 나는 박혜령 후보가 저 미련한 공약들을 다음 선거에 다시 들고 나와주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표가 모자란다면 이사를 해서라도 한표를 드리고 싶은 것은 그녀의  저 미련함 때문이다. 나는 그 미련한 박혜령 후보에게 나의 뜨거운 사랑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지역구 민들은 원전의 문제점을 기타의 문제점보다 심각하다고 여기지 않는 모양이다. 물론 늘 목전에 두고 있는 생계의 문제가 그 무엇보다 더 절실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나는 박혜령 후보가 탈락한 것이 서글픈 것이 아니다. 그녀가 탈락 할 수 밖에 없는 국민들의 의식이 더 서글플 뿐이다. 그렇다. 우리는 뭔가를 너무 모르고 있다....참 슬픈 일이다...

 

분명 원전의 문제점은 충분한 인식의 대상이 되어야 했다. 이웃 나라 일본의 경우는 우리가 상상하고 있는 그 이상의 문제로 고심하고 있다. 물론 그 피해는 일본인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 우리들은 일본의 지진에 의한 원전의 피해를 고스란히 겪고 있는데도 말이다.

 

사실상 지진에 의한 원전의 피해 실태는 대한민국인 우리도 그 정도를 잘 알 수 없고, 일본인들 당사자들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원전이 가지는 심각성을 대다수 국민들이 제대로 인식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을 포함하여 대다수의 국민들은 전문적인 지식이 없다. 문제의 본질은 바로 여기에 있다. 원전에 관한 지식이 거의 전무하다보니 그 심각성을 깨달을 수 없다는 것....

 

가장 기본적인 원자력발전에 대한 기사를 대수능 교재에서 만났다.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원자력 에너지는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청정에너지, 혹은 재생가능한 에너지로 잘못 포장되어 있다. 대다수가 잘 모르고 있는 사실이지만 대략 18개월마다 연료봉을 교체해야  한다. 연료봉은 NP-237이라 불리는 매우 유독한 방사성 물질을 가지고 있다. 매년 연료봉 하나 당  2층버스 100대분의 폐기물을 발생시킨다. 이 폐기물을 어디엔가는 꽁꽁 저장해야 한다. 반감기(방사성 원소의 원자수가 최초의 절반으로 줄어드는데 걸리는 시간)은 무려 2백만년 이상이다.

 

그 어느 폐기물보다 무서운 폐기물이지만 늘 안전하다고 말한다. 그토록 안전하다고 말하는 핵발전의 대형 사고가 바로 옆에서 터지는 것을 목격하고도 우리에게는 저런 일이 발생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도 문제이다. 한 번 발생한 핵발전의 문제는 수습이 불가능하다. 그 피해는 전국적일 뿐 아니라 대를이어 그 영향력에서 벗어 날 수 없다.

 

'과학자 처럼 사고하기'라는 책이 있다. 과학자들은 독자들에게 말한다. 과학적 소양이 그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우리가 원자력의 문제점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이 원자력의 문제점을 들고 나온 후보를 탈락시키는 결과를 낳는 것이다. 문제의 본질은 원자력의 무서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무서움을 인지하고 있지 못한 국민들에게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박혜령 후보를 기억할 것이다. 이렇게 말한다면 선거법에 저촉이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또한 그녀는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후보도 아니다. 그러나 나는 그녀를 저극 지지한다.  

 

(녹색당 당원이냐고 물어볼지도 몰라 추신한다. 나는 녹색당 당원이 아니다. 벌써부터 4년 후의 선거를 준비하는 것이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그 말은 맞는 말이다. 4년 후에는 반드시 녹색당의 후보들이 당선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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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2-04-20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거 끝나고 소위 말하는 멘붕 상태에 빠져있느라,
이 글을 뒤늦게 읽었습니다.
박혜령 후보의 사진을 보니 새삼 눈물이 나려고 하네요.
그의 선거운동에 참여해본 동료들이 그가 울보라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자기만 우는 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을 죄다 울려버리는 재주가 있다구요.

녹색당은 비록 득표율 2%를 채우지 못해 등록취소되었지만,
녹색당 운동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입니다.
다가올 지방선거를 위해 다시 일어나서 걸어야겠지요.
멘붕은 이제 그만 극복해야겠습니다.

아참, 차트랑공님의 지지발언 정말 고맙습니다!

차트랑 2012-04-23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댓글의 댓글은 감은빛님의 서재에 남겼습니다~
찾아주셔서 고납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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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2-04-09 0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좋아요.
이언길런 보니까, April생각나네요.
타미 볼린의 Savannah Woman도 떠오르구요~.



차트랑 2012-04-09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월요일 아침부터 강렬하게 흐드러지는 음악을 포스팅해서
쩜 걱정을 했는데 양철나무꾼님께서 저의 염려를 불식시켜주셨습니다^
그저 '전설'이라고 밖에는...

타미불린 또한 전설^^
지글거리는 엘피로 듣던 사바나 우먼의 정취는
영원한 추억으로 남아있다는 ㅠ.ㅠ

저의 서재를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양철나무꾼님~

stella.K 2012-04-09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가 들면 팝송이 싫어지던데 대신 클래식이 좋아지더군요.
차트님의 팝송 사랑은 여전하신가 봅니다.
가끔 예전에 듣던 음악 들으면 옛 생각도 나면서 지금들어도 손색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제가 요즘 인기있는 팝이 뭔지 모르니까 이런 말도 하는 거겠죠?ㅋㅋ

차트랑 2012-04-10 00:23   좋아요 0 | URL
장르를 가리지는 않는 편이구요
몰라서 듣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마녀고양이 2012-04-09 1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제대로 한방 듣네요! ^^

차트랑 2012-04-10 00:24   좋아요 0 | URL
아침에 저도 한방씩 듣고 업무를 시작한답니다^^
 

 여하튼 그렇게 하여 송시열은 역사의 소인배로 낙인찍힌 최명길 덕분에 장원의 영예를 안고 조정에 출사하게 된다. 그러나 송시열은 정묘∙병자호란의 치욕을 고스란히 지켜본 인물이다. 치욕의 현장을 낱낱이 목격한 그는 실의에 차 낙향을 결심하고 10수년간 학문에 몰두한다. 송시열은 율곡 이이의 학문을 이어받은 사계 김장생의 문인으로 율곡 학문의 적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효종은 복수설치(復讐雪恥)로 가슴에 불을 지피고...

 

 

효종은 왕에 오르자 그 치욕을 씻고자하는 불타는 가슴을 대의명분으로 내세운다. 이름 하여 복수설치(復讐雪恥)이다. 이는 청나라에 당한 치욕을 회복하고 설욕한다는 뜻이다. 이 때 효종은 자신의 스승이었던 송시열을 정계로 불러낸다.  이에 부응이라도 하듯 송시열은 출사하면서 효종에게 기축봉사를 올리는데 이 장문의 기축봉사에서 그는 자신의 정치적 소신과 존대주의에 의거하여 청나라를 명나라와 구분, 복수설치를 역설한다. 효종은 북벌이라는 자신의 대의명분을 함께 이룩해 갈 인물로 이러한 생각을 가진 송시열을 지목하고 그 기대에 부응해주기를 소망한다. 송시열 역시 그동안 치욕을 가슴 깊이 묻고 삶을 살아 왔던 것이다. 송시열은 이를 증명해주는 글씨를 하나 남긴다. 바로 치(恥)이다. 필체에는 글을 쓴 사람의 마음과 정신자세가 드러난다고 한다.

 

 아래의 사진으로는 송시열이 쓴 치(恥)자가 어떻게 보일런지는 모르겠지만 액자 속의 치자를 바로 앞에서 바라보면 당시 송시열이 어떤 심정으로 이 글을 썼는지 공감이 갈만도 하다. 그야말로 국가적으로 치욕스러웠던 당시의 심정이 그의 붓끝에서 올올이 느껴진다. 그만큼 치욕스러웠다는 뜻이되겠다. 글씨의 크기도 매우 큰데다가 좌에서 두툼한 머리로 시작하여 우로 보다 가늘게 뻗어 올린 솜씨는 묵직하지면 강렬하다. 또한 날카롭게 삐쳐 올린 두 획은, 마치 목표를 정확하게 겨누고 매서운 장검을 휘두르는 듯 천천히 내리 치다가는 마지막 순간에 빠르게 치켜 올린다. 확실하게 끝맺음을 하려는 듯한 무인의 기질을 느낄 수 있는 삐침이다. 이 순간의 송시열은 강하지만 매우 날카로운 장검을 사용하는 용맹한 장수와도 같은 모습이다.  


 

 

 

 

효종은 뜻을 함께 이루어줄 신하인 친명배금의 송시열은 효종에게 백만 대군과 같은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인물이나 다름이 없었으니 효종의 설레는 가슴은 그렇게 부풀어만 갔다. 힘을 얻는 효종은 이완을 훈련대장으로 임명하고 은밀한 군사훈련을 지시했다. 양송(송시열과 송준길)에게는 군비를 확충하라고 명하였다. 효종은 자신의 꿈을 이룰 날 만을 고대하며 살아갔다. 효종은 여색을 탐하지 않은 보기 드문 왕이었다. 북벌이라는 대의를 이루기 위해 자신의 힘을 여색에 낭비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효종은 인선왕후 장씨 이외에 단 한명의 부인인 안빈 이씨를 두었을 뿐이다. 효종의 북벌의지는 절대로 정치적인 쇼가 아니었다. 그가 청나라에 끌려가면서 감내해야 했던 고초와 그 치욕을 씻고자 하는 마음은 조선의 그 누구보다 더 크고 간절한 것이었다.

 

 

 

 

 

 

 

 

 

 

 

 

 

 

 

 

동상이몽(同床異夢)


효종의 부분 꿈을 아는지 모르는지 송시열은 효종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물론 당대의 정치적으로도 경제적 상황으로도 조선의 국내 정세는 북벌을 감행 할 수 있는 여력이 충분치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전 국토를 유린당한 임진왜란의 상처를 치유하기도 전에 정묘 병자호란이라는 강한 펀치를 맞은 조선은 거의 쓰러질 지경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 후유증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어서 전형적인 농업국가의 형태였던 조선의 농(農) 체제가 거의 붕괴되다 시피 했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도 효종은 북벌의 의지를 불태우고 있었던 것이다.

 

 

 


 송시열은 북벌에 대한 의지 자체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쉽게 말로는 북벌을 외치고는 있지만 마음속으로는 북벌 불가지론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효종이 이러한 송시열을 불러 북벌을 재촉하자 송시열은 수신을 강조하면서 북벌을 반대하고 나섰다. 이에 답답해진 효종은 송시열에게 북벌을 하자는 뜻으로 초구를 하사한다. 기온이 몹시 차가우므로 하사한 초구를 입고 나서자는 강렬한 뜻이 담긴 하사품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북벌의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지만 효종은 그 뜻을 따라주지 않는 신하들을 바라보며 혼자 고민고민하며 허송세월을 보내다가는 그만 뜻밖의 죽음을 맞는다. 자신의 숙원인 북벌을 가슴에 뭍고 세상을 하직한 것이다.

효종이 죽고 현종이 등극하지만 무려 1년도 채 되지 않아 현종마저 사망하고 숙종에게 그 임무가 넘어간다. 숙종은 그 술수가 빼어난 인물이었다. 당론을 자신의 입지를 다지는데 적절히 활용한 인물이었고 그만한 능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숙종도 표면적으로 북벌을 내세우고는 있었다. 그러나 효종은 현실을 직시하는 인물이었고 북벌의 의지는 할아버지만 한 것이 못되었다. 그렇게 시대적 흐름은 불벌 불가지론이 대세를 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청나라의 국가 정세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흔히 삼번의 난이라 불리는 사건으로 오삼계의 난이 발생했던 것이다. 오삼계는 한인으로 명망한 명나라의 재건을 명목으로 청나라에 반기를 든 사건이었다. 나름대로 자치세력으로 독립된 형태를 띄고 있던 번을 강희제가 그 자치체제를 무너뜨리려 했던 것이다. 아무래도 강희제는 번의 독립성을 불안해 했던 모양이다.


하여 청은 정치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면서 한바탕 전쟁에 돌입할 위기의 상황을 맞는다. 이러한 청나라의 상황을 조선의 윤휴는 정확하게 간파하고 있었다. 매우 불안한 청나라에 연합전선을 구축하고 그동안 연구해온 신무기등을 도입해 북벌을 단행하자고 나선 것이다. 윤휴의 북벌의지는 효종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었다. 북벌을 위해 군사, 무기등을 연구하는 등 병법에 밝은 사람이 또한 윤휴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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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2-04-04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페이퍼는 무식한 저를 꺠우시네요.^^
여행과 책의 결합
참 멋지면서도 전 쉽게 안되기도 해요.

차트랑 2012-04-05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바람님, 그 무슨 말씀을요 ㅠ.ㅠ

하루도 기운 내시고
즐거운 마음으로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하늘 바람님~
저의 서재를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고전음악과 대중가요는 각각 그 나름의 장르로 분류되는 것은 틀림이 없다. 그러나 대중음악과 고전음악을 바라보는 시선은 두 장르를 거의 넘나들기 어려운 처지로 만들고 말았다. 때로 고전음악에 심취한 애호가들은 대중음악을 경시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고전음악에 대한 일종의 우월의식반영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과거 세종문화에서 공연을 할 수 있게  해달라는 대중가수와 그렇게는 못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여준 세종문화 회관의 관계자가 힘을 겨루던 모습은 이를 반증하는 분명한 예라 하겠다. 마치 세종문화회관이나 예술의 전당 혹은 카네기 홀에서 공연을 하는 대중가수는 그렇지 못한 대중가수들과의 차별 의식 혹은 우월의식을 가질 수 있는 의식이 깔려있는 것도 무관한 일은 아니다. 또 그 자체를 자신의 자존심과 연결지으려는 심리를 잘 반영한 것이라 하겠다.

 

고점음악과 대중음악의 경계를 짖는 또 다른 측면은 고전음악가들의 태도이다. 그들 역시 대중음악을 경시하는 분위기속에서 성장해왔고 또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때로 고전음악가와 대중가수의 협연에 감동하는 경우를 흔히 목도한다. 그러나 이러한 협연을 꺼려하는 고전음악가가 훨씬 압도적임도 사실이다. 이것이 한국 음악의 분위기인 것이다. 연주가는 연주가대로, 대중들은 대중대로 두 장르의 간극을 서로 멀어지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아래의 영상물은 매우 철학적인 장면들을 연출하고 있다. 회전목마는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고,  바다 속의 썰물안에서 태어나는 장면과 인어가 바다위 잠든 장면은 생명의 탄생을 상징한다. 벌거벗은 어린아이는 바다로를 향해 달려가며 손짖한다. 마치 연어가 회귀하는 모습과 유비가 통하는 상징성을 부여한 장면이라 하겠다. 

 

 이젠 시간을 거꾸로 돌린다. 아이들은 그동안 걸어온 길을 거꾸로 돌아간다. 교각 아래의 처자는 멀어지지만 트럭은 반대로 달려간다. 과거로 회귀하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과정에서 회전목마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방향이 아니라 시간이 흐르는 방향으로 설정했다는 점이 유일하게 아쉬움을 주는 장면이다. 탄생과 과거로의 회귀는 단순한 보수적 태도를 지향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태고의 순수함으로 되돌아가고 싶어하는 제작자의 의도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감독의 의도와 노랫말의 동질성 그리고 삶을 투영하는 노랫말과 영상의 이질감은 서로 상충하며 갈등하는 대목이 특이하다. 그러나 이러한 양면성의 충돌은 결코 낮선 모습이 아니다. 우리 인생의 바로 그러한 모습이다. 대단히 흥미로우면서도 의도는 파격적이지만 신선하다. 그런 연유로 매우 뛰어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대중성을 지닌 노래와 철학적 사고의 만남이라니...정말 멋지지 아니한가...    

 

 

 

위의 노래는 패닉의 노래이다. 사실 패닉이 이 노래를 부른지는 10여년도 훨씬 넘었다. 그러나 그 당시에 나는 패닉을 알지 못했다. 대중음악에 민감하지 않은 탓이다. 물론 여전히 대중음악에 민감한 편은 아니다. 이 노래를 최근 가수 박정현이 새로운 버전으로 모 프로그램에서 부른 적이 있어 관심있게 들었다. 새로 편곡한 버전이라는 것을 알게되었고 패닉이 원곡을 부른 사람들이라는 것도 이 때 알게된 것이다.

 

박정현의 이 노래를 듣고 참 곡이 좋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노래도 아주 잘 불러주었다. 하여 서로 비교해보기 위해 인터넷을 뒤져 영상물과 함께 패닉이 부르는 그 원곡을 찾아냈다. 위의 영상물이 바로 원곡자들의 노래이다. 

 원곡과 편곡버전 모두 대단히 멋진 음악이다. 원곡의 산뜻함은 청자에게 정갈하고도 음악의 투명성을 보여주는 듯 하다. 마치 깊은 바다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것 처럼 맑은 그 느낌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흑백의 영상물인지라... 여하튼 이 가수들 참 멋진데...라고 생각했다.  

 

 

박정현 선수가 뮬란의 주제곡 중 하나를 부를 때 부터 알아본 분들이 계실 것이다. 박정현은 흑속의 진주와도 같은 가수이다. 노래를 부르는 솜씨로 본다면 최고의 사랑을 받아도 되었건만...과거 박정현 선수는 그 실력에 걸맞는 영광을 채 누리지 못했던 것 같다.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자신의 진가를 잘 어필한 가수 중 한 사람이 아닌가 싶다.  프로그램 출연 후 바로 광고도 따내던 걸...

 

 

 

 

 

 

대중음악의 폐쇠성과 그 권태로움

 

대중음악과 고전음악의 극명한 차이점은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대중가수의 의식, 혹은 대중과 고전음악가의 편견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위에서 언급한 사항들은 사실상 표면적인 이유들에 불과하다. 이 둘의 가장 큰 차이점은 단 하나, 버전의 다양성이 있다. 즉 단조로운 버전의 특성을 가질 수 밖에 없는 대중 음악의 특성이 그것이다.

 

대중음악은 작곡가가 있고 이를 노래로 부르는 가수가 있다. 그리하여 특정 곡을 한 사람 만이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경우에 따라 리메이크 버전으로 다른 가수가 부르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의 비율은 지극히 미미하며 일반적인 현상은 절대로 아니다. 이러한 대중음악계의 특성은 대중음악을  지극히 폐쇠적인 장르로 만들어버리고 만다. 대중음악이 폐쇠적이라니...이건 말도 안된다 싶겠지만 여기서 말하는 폐쇠성이라는 말은 버전의 다양화를 구현할 수 없는 대중음악의 한계성을 지적하는 용어이다.

 

오직 한 사람의 가수만이 특정 곡을 부를수 있다는 점은 이를 부르는 가수의 색깔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이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폐쇠성이 주는 치명적인 약점을 또한 동시에 지닐 수 밖에 없는 딜레마에 빠지고 만다. 그 치명적인 약점은 바로 익숙함에서 오는 지루함, 바로 그것이다. 익숙함, 혹은 친숙함이라는 말은 때로는 친교를 위해서 필수적인 요소이지만 때로는 권태로움이라는 양면성의 성질을 가진 말이기도 하다. 어떤 이가 달에 지구의 우주선이 착륙했다는 소식을 접하자 한탄하며 했다는 말이 떠오른다...'이제 달을 쳐다보며 상상하던 달 나라의 토끼와 절구방아의 전설은 사라지고 말겠구나...'  익숙함의 반복은 상대방으로하여금 때로 무관심, 나아가 권태로움을 유발할 수 있는 조건이 되어주기도 한다.

 

어느 한곡이 히트를 친다. 거리를 지나다보면 똑같은 노래를 수없이 들 을 수 있다. TV 방송마다 같은 곡 투성이이다. 많지도 않은 TV의 채널은 돌리는 곳 마다 같은 노래를 들려 준다. 라디오의 채널들은 그 곡을 집중 조명한다. 이러한 일이 몇 달간 벌어지는 것이 대중음악의 현실이다. 그러니 아니 권태로움을 느끼랴....하여 청자는 딴 곡으로 갈아타게 된다. 또 다른 신선한 곡이 사회를 강타하게되면 바로 매체는 미련없이 갈아 탄다. 대중들도 역시 미련없이 다른 곳으로 떠나버린다. 이 것이 대중음악의 치명적 약점이랄 수 있다. 아마도 곡에 대한 저작권 때문은 아닌지... 뭐 그런 생각을 해봤다.

 

물론 세월이 수십년 흘러도 '명곡'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는 곡들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좋은 곡임에도 불구하고 쉽게 잊혀지고 그 생명력을 잃어버리는 아쉬움이 더 크다는 것이다. 위의 '내 낡은 서랍속의 바다'는 두 버전의 노래이고 분명히 생명력을 가질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는 경우라 할 수 있다.

 

 

고전음악, 그 버전의 다양성과 매력

 

대중음악의 폐쇠성과는 달리 같은 곡에 대한 버전은 무려 100개 이상 되는 곡이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베토벤의 곡들이다. 베토벤의 교향곡은 그 다양한 버전이 100개를 훨씬 넘어선다. 연주가로서 입문하여 명성을 얻는 가장 기초적 과정이 베토벤 교향곡의 사이클링이다. 그 사이클링 없이 세계적인 지휘자라는 명함을 기대 할 수 없다. 또한 애호가들은 그 각각의 버전을 구매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이는 고전음악의 가지는 특징이다. 애호가들은 엄청난 중복 투자를 마다하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왜 그들은 경제적 비효율성의 극치를 달리는 중복투자를 하고 있는 것일까...다름 아닌 다양성 때문이다. 각각의 연주자마다 그 특징이 다르고 그 차별화된 연주는 감상의 또 다른 맛을 준다. 이것이 애호가들이 중복투자를 하는 유일한 이유이다. 심지어 교향곡을 피아노 버전으로 편곡하여 연주하는 경우도 허다하지 않던가...

 

이러한 고전음악의 다양성은 어느 한 개인에게는 일생을 함께하는 음악이 되어주기도 한다. 그 연주의 수명에는 끝이 없다. 오직 애호가만이 늙어갈 뿐이다.

 

 아래의 두 영상물은 베토벤 교향곡 9번 4악장이다. 지휘자도 연주자도 노래하는 사람도 다르다. 같은 지휘자가 같은 곡을 두 번 연주해도 두번 다 같지 않다. 다가오는 감동은 서로 다르며 감상의 포인트도 서로 달라진다. 물론 호불호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러나 모두 그 나름의 특징을 가진 연주들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것이 다양성의 확보이다. 생물의 다양성 만큼이나 음악의 다양성도 중요한 것이라 하겠다.  

 애호가들이 지루해하지 않으며 권태로움을 느끼지 않고 평생 한 곡을 또 듣고 들을 수 있는 이유는 비로 다양성에 있는 것이다. 그럴리가 없다며 내게는 영원한 명반이 있다며 큰소리를 칠 수있는 애호가가 있다면 스스로 자문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비교 감상할 수 있는 기타의 음반들이 없다면 과연 명반이 존재할 수 있을까..라고...가사가 있는 대중음악이 주는 감동과 가사가 없는 고전음악이 주는 감동은 서로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지속적인 생명력을 가지느냐는 또 다른 문제이다.

 

대중음악과 고전음악은 음악이라는 점에서 같다. 그러나 서로 다른 특징이 같은 음악이면서도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도록 한다. 대중음악에도 이러한 다양성의 시대가 올 수 있기를 소망하는 것은 대중음악의 이권을 너무 모르고 하는 소리인가....시대는 변하여 요즘은 음반의 시대라기보다는 음악 파일의 시대이다. 좋아하는 곡을 하나 씩 다운로드하여 플레이어로 듣는 시대인 것이다. 다양한 대중 음악의 버전들은 원곡이 같지만 또다시 다운로드하는 중복성을 띌 수 있지 않을까.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소스는 비록 같지만 다른 버전을 서로 비교감상할 수 있는 대중음악의 시대가 올 수는 없는 것인가... 여하튼 대중음악의 다양한 버전에 대한 아쉬움에 쓸데없는 소리 한 것 같다 ㅠ.ㅠ  

 

 

카랴얀은 히틀러 못지 않은 지휘자이다. 토스카니니가 그러했던 것 처럼 독선 그 자체였다. 오죽했으면 베토벤 9번을 영상물로 제작한 디비디 중 하나는 연주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카라얀만 비추고 있을까....카라얀에게 연주는 오직 자신을 드러내는 수단일 뿐이다. 베토벤을 드러내려 했던 토스카니니와의 차이점이라면 차이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연주는 치열하고 뜨거우며 차갑다. 이러한 모순은 연주를 더욱 화려하게 빛낸다. 조화란 애초에 갈등이라는 배우자를 전제로 하는 것인가...콤팩트 디스트의 크기를 결정할 정도로 카리스마가 넘쳤던 카라얀, 그를 최고의 지휘자 중 한사람이라고 칭하는 이유는 자신의 독선을 유려하고 빛나는 음악으로 승화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연주는 아마도 영원할 것이다.

 

 

 

 

 

 

 

카라얀과는 반대로 마주어선생님은 독선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흑인 가수에게도 거리낌없이 연주를 초빙하는 자휘자이다. 아마도 가장 많은 유색인종과의 협연을 이끌어낸 분이 마주어 일 것이다. 정열은 카라얀에 뒤질 분이 아니다. 다만 연주는 대중을 위해 존재한다는 생각을 자신의 지휘로 드러낼 뿐이다. 카라얀이 아니라 마주어선생님을 존경하는 이유일 것이다. 흑인 연주자 제시 노먼은 마주어의 단골 초빙 손님이다. 흑인 연주자 제임스 바그너와의 협연은 가장 감동적인 베토벤 9번의 연주였다. 그토록 노래를 잘 부르는 제임스 바그너를 다른 그 어떤 영상물에서도 다시는 만나본 적이 없다. 지휘자들은 제임스 바그너가 흑인 연주자라서 초청을 하지 않는 것인가... 참으로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마주어가 초청하여 연주한 제임스 바그너의 영상을 찾을 수 없는 것이 그저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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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12-04-04 1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봤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중음악을 옹호하는 쪽의 댓글을 쓸 생각입니다...^^ 먼저 대중음악과 고전음악을 일련의 패턴화된 경향으로, 그 창작과 수용 그리고 효과를 이해하는 방식에 의문을 제기해볼까 합니다. 전 이것이 음표와 화음 또는 음악적이라 불리는 일련의 장치들을 이용해서 작동하고 동일한 감각기관과 동일한 대상에게 측정되지만 다른 범주의 미학적 경험을 불러온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즉 음악이라는 이름의 동일성으로만 묶일 수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 사이의 연계를 위한 크로스오버니 퓨전,하이브리드같은 것 역시 하나의 시장으로 존재하겠지요. 대중음악의 폐쇄성이란 것은 대중음악의 반복단순성이라는 측면에서 오래전에 비판이 있었습니다.아도르노식의 문제제기였는데, 아도르노식의 반복성 문제를 지적하려면 그 변별성이 쇤베르크나 빈악파정도의 조성파괴까지 수용되는 틀 안에서 받아들여져야 그나마 유용성을 갖을 듯 합니다. 거기에 아도르노식의 대중음악관이 대중음악의 생성적 가능성에 대해, 그리고 대중음악의 지역적,역사적 다양성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될 수도 있습니다.이 글에서 논거의 문제는 대중음악과 고전음악이라는 프레임속에 정확히 지목되고 있는 것이 '한국가요'와 '(서양의) 고전음악'입니다. 대중음악은...생각보다 매우 지역적 역사적 스펙트럼이 넓습니다. 물론 서구 중심의 팝음악이 시장지배적이어서 문화적 동일성이 이루어져가고 있지만 그 와중에도 보면 각 민족음악적 공동체 내부의 영향력이 작동합니다. 예를 들어 터키나 남미 쪽의 대중가요를 듣는다면 비슷한 팝성격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다른 뉘앙스를 느낄 수 있게 됩니다. 클래식 음악의 다양성을 연행과정의 일회성,해석의 다양성에서 찾고 계시는데요...저 역시 클래식적 차이를 향유할 수있는 정도는 되기때문에 -그리고 그것에 매력이 있다는 것도 경험적으로 알고 있기때문에...이것은 다른 말로하자면, 연주 되는 곡들의 협소함의 반증일 수도 있습니다. 그 예를 보자면, 국내 연주되는 클래식 곡들을 보면 대개 베토벤-말러 중심의 고전낭만주의 곡들입니다. 레퍼토리의 수가 대단히 제한적입니다. 클래식을 음반으로 듣는 사람들 중에서도 이런 상황에 문제를 느껴서 숨은 작곡가들을 찾지요. 국내에서는 페르난도 리스나 라프같은 이들이 꽤나 반응을 얻었던 걸로 압니다. 클래식 음반사들도 최소한 협화음시대에 살던-그 시대라야만 소비될 수 있기때문에- 숨은 작곡가의 곡들을 음반화하는데 신경을 씁니다. 메이저레이블들이 세계적 연주가들을 데리고 2차대전 이후 녹음해 놓았던 방대한 아카이브에 경쟁하려는 마이너 레이블들이 누구보다 앞장 서겠지요. 연주에서의 차이를 말씀하시는데...대중음악에서는 그 점을 그다지 강조하지 않는 수용자인식의 차이때문입니다. 여기에는 대중음악/고전음악의 수용자 태도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대중음악을 수용하는 측에서는 참여적 측면이 강합니다. 즉 노래를 따라 부르게 되기때문에 멜로디 중심적이 됩니다. 그리고 작은 차이보다는 음악적 경험에 동참하는 것을 우선시 하게됩니다. 클래식의 현대적 수용방식은 이것과 좀 다르지요. 원초적으로 연주자와 수용자가 이질적 존재로 설정됩니다. 연주하는 행위와 감상하는 행위가 분리된 상태에서 음악적 경험에 참여하게 됩니다. 창작이나 참여과정이 원초적으로 배제된 수용적 차원에서 결국 인간의 감각은 귀에 집중될 도리 밖에 없습니다. 모든 감각이 청각을 중심으로 차이를 구별하기 시작합니다...대중음악은 그보다 넓은감각 사용을 전제합니다. 요즘은 비주얼이 너무 강하긴합니다만. 연주 과정에서의 차이를 말씀하시는데...모든 음악은 시간적 일회성을 특징으로 갖기때문에 공연이라는 연행과정에서는 모두 일회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그건 클래식이던 대중음악이던 상관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공연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에릭 클립튼의 서울공연과 에릭 클립튼의 뉴욕공연이 같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된다는 것이지요.대중음악을 전문적으로 듣는 분들은 그런 차이를 클래식 수용자층과 똑같은 방식으로 받아들입니다.같은 라이브 음원이어도 어디 어디 공연라이브가 최고다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일단 저는 클래식을 주로 듣는 사람이긴 합니다만...출생이 락과 오만장르라서...클래식에 대한 애정만큼이나 대중음악에 대한 애정도 많기때문에 대중음악을 옹호하는 차원에서 긴글을 올렸습니다. 참고로 대중 음악 전공하는 사람아닙니다.ㅎㅎ 그냥 오만가지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일뿐입니다.

차트랑 2012-04-05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드팀전님,
별 대단치 않은 글인데 댓글을 다시느라고 고생하셨습니다.

그리고 저의 글이 대중음악을 옹호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결국 대중음악을 향한 사랑의 메시지가 담겨있는 글이라는 점도
잊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중용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고 합니다.
其次致曲, 曲能有誠, 誠則形, 形則著, 著則明, 明則動, 動則變, 變則化.
唯天下至誠爲能化.

기차치곡 곡능유성 성즉형 형즉저
저즉명 명즉동 동즉변 변즉화.
유천하지성위능화.

학습은 물론 좋은 발전의 단계를 의미하는 글이라더군요.
음악에도 예외는 아닐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의 서재를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드팀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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