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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아래의 책들이 50% off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라는 노엄 촘스키의 책을 알라딘에서 50% off 하여 내놓은 것을 보고 떠오르는 바가 있어 바로 페이퍼를 작성하는 것입니다. 이 점 오해가 없으셨으면 합니다 ㅠ.ㅠ

 

 

누구는 '노암'이라고도 하고, 또 누구는 '노엄'이라고도 하고, 또 다른 누구는 '놈'이라고도 한다...'노암'이든 '노엄'이든 '놈'이든 뭐 다 같은 사람을 말한다. 바로 '촘스키'~다.  그는 본디 언어학자이다. '변형생성문법'이라나.. 하는 언뜻 이해하기 힘든 분야의 창시자라고 한다. 유한한 개수의 규칙에 따라 무한한 문장을 만들 수 있다나...뭐 알 수 없는 그런 주장을 한 사람이다.

 

한마디로 촘스키는 언어학이라는 분야를 전공하는 다수의 학자들이 생각하던 그런 방향과는 전혀 딴 판으로 생각한 최초의 사람이었던 것이다. 평소 언어 행위는 창조의 행위라고 생각했던 내 생각과 만분의 일 이라도 닮은 구석이 있어서인지 그 '놈'이라는 그분이 괜히 가깝게 느껴졌던 기억이 난다. 그 '놈'은 나의 존재를 전혀 모르고 있는데도 말이다.

 

여하튼 그 '놈' 은 언어라는 매체를 통해, 즉 언어라는 인간 정신의 창조적 측면을 통해 인간적 자유와 창조적 사유 및 행동을 인간의 본질로 간주해버린 독특한 '놈'이다. 좀 더 나아가자면 외부의 간섭행위 즉 인간(자신)을 압박해오는 환경으로부터의 자유를 외친 격이라고나 할까...그런 사유를 한 뒤부터 그 '놈'은 점점 미쿡이라는 나라에 태클을 걸기 시작했다.

 

그 뿐이 아니다. 그 '놈'은 유턔계이면서도 유태인들의 부당한 행위에 대해서 가차없는 맹공을 퍼부었다. 유태인들이 그 얼마나 똘똘뭉치는 집단이던가...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놈'이 그런 짖을 하다니...결국 그 '놈'은 유태계라는 테두리에서 당연 쫒겨나고 말았다. 그러나 그 '놈'은 이를 개의치 않는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강한 신념을 버릴 생각을 절대로 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수많은 저서들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한 때, 그러니까...대한민국의 서점가를 그 '놈'이 강타하던 그 때의 일이다. 지금의 상황은 잘 알지 못하겠지만 당시의 그 '놈'은 대단한 '놈'이었다. 그 '놈'의 저서를 읽지 않은 놈은 말 그대로 놈이 되는 것이었다. 대화에 낄 엄두를 낼 수가 없었다는 이야기다. 어떤 친구가 말끝마다 '촘스키, 촘스키'하는 바람에  또 다른 한 친구가 '촘스키'란 시키가 도대체 '어떤시키'여?? 하고 불평을 토로했다. 그 옆에 있던 내가 대답해주었다. 그 '놈'시키 '아주 대단한 시키'여~!!! 라고...

 

이 책은 '촘스키, 세상의 물음에 답하다'라는 타이틀로 대단한 시키인 그 '놈'이 그동안 기고했거나 말언한 내용들을 싹 쓸어다가 묶어 놓은 것이다. 물론 이 후에도 그의 저술은 여전히 출간되고 있는 중이다. 벌써 그 '놈'의 나이가 낼 모레 90인데도 말이다. 이 세권의 책이라면 촘스키에 대해서 상당한 정보를 얻고 공감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가장 먼저 권해드리고 싶은 책이다.   

 

 

한마디로 그 '놈'시키의 저서를 읽지 않으면 뭐 대화에 끼지도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게 촘스키의 저서들은 이른 바 유식한 체를 하기를 좋아하는 식자들에게 퍼지기 시작했다. 마치 그 '놈'시키의 책을 읽는 행위는 자신의 지적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한다고 생각들 했던 모양이다. 심지에 일단의 동호회에서는 '촘스키'란 단어가 수천 번도 더 올라 왔을 것이다. 촘스키의 사상으로 무장을? 하고 덤벼들면 아직 촘스키를 모르는 넘들은 쪽도 못쓰고 결국 퇴장하고 말았으니 말이다. 노엄 촘스키...정말 대단한 스키~

 

그러다 보니 서점가에서도 촘스키의 저서들을 활발하게 출간하기 시작했다. 촘스키의 사상이 대한민국의 강역을 강타한 것이다. 마치 지난 몇 년간 '정의란 무엇인가'를 국내에서 출간한 후로 마이클 샌덜이 급 부상한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마이클 샌덜은 저술이라는 강력한 힘을 배경으로 한국에서 수많은 수강생들 앞에서 멋드러지게 뽐을 내면서 강연을 하고 돌아갔고, TV에서도 그의 강연을 시리즈로 방영하는 열풍을 일으켰다. 지금도 그의 저서를 잘 팔리고 있는 중이다. 하도 샌덜 샌덜하길래 나도 하나 사서 신었다. 그리고 리뷰도 적었다 ㅠ.ㅠ 

 

푸코와 만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닌 듯 하다. 그들이 과연 안건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매우 흥미로운 책임에 틀림이 없다.

 

여하튼 노엄 촘스키는 붐명히 일대를 풍미한 정신 세계를 가진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 물론 당대에 그토록 대한민국의 식자층들에게 강력함 임팩트를 날렸다는 것이 사실이어서가 아니라 그의 높은 기상과 정신은 대단히 높이 평가 받아야 할 것이다. 그의 저서들을 읽어본다면 그 이유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왼 쪽의 책은 촘스키가 겂도 없이 미쿡의 진면목을 한마디로 완전히 까발긴 책이다. 물론 이 책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알고 있는 독자들이 많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촘스키의 저서라면 매우 조직직이며 섬세한 미국의 구조적 실태를 간파하는데 전혀 무리가 없을 것이다. 특히 언론 플레이의 진면목을 잘 알 수 있다.

 

오늘 쪽의 책은 제목 그대로이다. 흔히 촘스키는 지식인이라고 한다. 그는 지식인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고 있으며, 그리고 자신의 소신대로 일생을 살아가는 중이라고 한다. 흔히 말하는 지식인들에게 그 '놈'시키는 할 말이 많은 모양이다. 그의 생각을 빌어 과연 지식인은 어떤 책무를 자져야 하는지 분명하고 인상적으로 상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노엄 촘스키의 저서들은 수없이 많다. 어느 책을 골라야 할지 머리가 지근거릴 지경이다. 다양한 그의 저서들의 리뷰등을 찬찬히 살핀다면 자신이 원하는 알맞은 책을 선택하는데 어려움은 없어보인다. 촘스키는 사실 홀대 받아도 좋은 그런 '놈'스키는 아닌 듯하다.

 

그런데....

그 '놈'스키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하나 둘 씩 나오기 시작했다. 다음 번의 페이페에는 그 '놈'스키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들을 살펴볼 생각이다...양 쪽의 이야기를 모두 들어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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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반 값으로 건지는 책들

 

아직 읽지 않았거나 읽을 계획을 가진 분들이라면 알라딘에서 행사하는 이달의 반 값의 책 중에는 정말 건질 만한 책들이 있다는 점을 상기시켜 드리고 싶다. 물론 이미 읽은 책 중에서 아주 유익했다고 여기는 몇 권을 간단하게 소개해보면 다음과 같다...물론 연식은 좀 되었다 손 치더라도...사실은 50% off의 대우를 받기에는 정말 아까운 책들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아까운 책들이 꾸준히 읽히지 않는다는 의미이므로....

 

 

 

  352쪽의 책으로 50% off 하여 7500백냥

 

세계의 절반은 왜 굶주리는가를 출간했던 장지글러가 훨씬 더 많은 정보와 내용을 추가하여 공들여 보완한 책이다. 한 때 세계는 왜 굶주리는가 라는 책이 탐욕의 시대보다 더 잘나가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으나, 책의 정보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탓은 아닌가...하고 생각한 적이 있다. 세계의 경제가 움직이고 빈곤한 나라들이 왜 빈곤을 벗어날 수 없는지에 대한 작동원리를 명료하게 인식할 수 있다.

 

 

 

  

  328쪽 분량으로 51% off 하여 5880냥

 

워낙 잘 알려진 책이므로 잘 아시겠지만 장하준의 저서이다. 탐욕의 시대와 잘 짝을 이루는 책이며 세계 경제의 작동원리 역시 잘 설명해주고 있다. 만약 경제에 관심이 없으셨던 분이라 하더라도 탐욕의 시대와 더불어 사다리 걷어차기를 읽은 후에는 현대 경제의 진정한 작동원리인 신자유주의를 이해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꼭 신자유주의에 관한 책을 제값주고 사지 않아도 말이다...  

 

 

 

 

280쪽 분량으로 50% off 하여 6000냥

 

콘서트 시리즈가 한창 인기를 끌던 때가 있었다. 아마도 과학 콘서트가 공전의 대박을 쳤던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정말 과학 콘서트는 대단히 좋은 책이라는 강렬한 느낌을 아직도 지울 수 없다. 다음으로 강열한 인상을 준 책이 바로 철학콘서트이다. 철학이 재미없다고 생각해왔다면...그리고 앞으로도 철학은 상대도 하지 않을 것이라도 생각해왔다면...이 책을 한 번 만 읽어보시라고 권하고 싶다...철학이 좋아지기 시작할 학률은...반반 ㅠ,ㅠ

철학서를 좋아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그러나...황광우의 책을 한 번 읽어보시라고 말씀 드릴 밖에는....

 

 

 

 

364쪽 분량으로 50% off 하여 6000냥

 

솔직히 개인적으로 카네기에게 호감을 가진 사람은 절대로 아니다. 그럴만한 개인적 이유가 있는 것이지만 그러나 이 책은 호감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책이다. 최근 몇 년간 자기 개발서들이 헤아릴 수 없이 쏟아져 나온 것이 사실이다. 서점에서 여러권의 개벌서들을 잡고 읽어보았지만 과연 그 자기 개발서 들 중에 쓸만한 책이 몇권이던가...대부분 책장사들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오늘도 자기 개발서가 베스트셀러의 목록에 들어있는 것을 보았다. 개발서는 딱 한 권이면 족하다...바로 이 책이다.

 

 

 

 

 238쪽 분량 50% off 하여 4900냥

 

촘스키가 한 물 간 것인지...아니면 촘스키를 아는 세대들이 나이가 든 탓인지...어쩌면 책을 많이 내놔서 그런지도 모르겠다..,여하튼 촘스키도 홀대를 받기에는 아까운 인물이다.

젊은이들에게 강력 추천해주고 싶은 작가가 촘스키이다. 뜨거운 피를 가진 젊은이들에게 그 어느 작가 보다 강력한 임팩트를 선사할 것이다. 한 때 촘스키를 모르면 바보취급을 당하던 시절이 있었다. 촘스키의 책은 수많은 젊은이들의 화두가 되었고 그의 주장은 그렇게 인용되었었다...그러나 여전히 그는 살아있다...

 

 

 

326쪽 분량의 50% off 하여 7500냥

 

우리는 아프리카를 잘 알고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듯 하다. 빈곤하고...뭐 그런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는 순간 우리가 얼마나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는지 알게된다. 또한 왜 아프리카가 그토록 빈곤을 지속해야 하는지도 잘 알 수 있다.

 1961년 한국의 GNP 80불, 가나의 GNP는 160불. 가나는 우리보다 60년대 당시 2배 더 잘 살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당시 가나인들이 우리를 만났더라면 우리에게 빈곤한 나라라고 말했을 것이 틀림 없다. 그런 가나가 과연 왜 지금의 가나가 되었단 말인가...그 해답이 여기에 있다. 그러나 결코 그들이 잘못한 탓이 아니다...결코....

 

 

물론 이외에도 좋은 책들이 있을 것이지만 미처 읽어보지 않은 책들이기에 언급할 수가 없다. 그러나 위의 책들은 인상 깊게 읽은 책들이고 아직 읽어보지 않으신 분들께 추천드리고 싶다.  참고로 개인적인 사견으로 평가한 책들이라는 점을 참고하시길...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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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중용의 장구가 주는 의미를 이해하는 방식은 조선에서 대단히 중요한 문제였다. 흔히 선비라 일컫는 조선의 엘리트들은 유학을 백성을 지배하는 수단으로 활용했고 고전을 해석하는 방식은 宋代 주희의 그것을 표본으로 하고 이에 한 치의 어긋남이 있는 해석을 용납하지 않았던 것이다. 윤휴는 중용의 장구를 새롭게 다듬었고 그 해석을 주희의 그것과는 다르게 시도했었다. 윤휴는 중용장구보록서(中庸章句補錄序)와 중용대학후설(中庸大學後說) 등의 저술을 남겼고 이는 윤휴 빛나는 최고의 업적 중 일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주희의 해석을 교조적으로 받아들였던 송시열은 그런 윤휴를 사문난적으로 몰아갔고 이는 결국 조선 최고의 유학자 중 한사람인 윤휴가 사사되는 빌미를 제공하게 된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이 극단적인 예로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조선 당대의 풍토가 그러했던 것은 어김없는 사실이었고 주희의 해석을 따르지 않는 자는 철저하게 매장당하는 수모를 겪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 조선이었다. 같은 시가 중국에서조차 한물간 주희의 학문을 그토록 열열히 신봉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유학이 조선의 지배 이념이었기 때문이었다. 주희의 학문이 흔들린다는 것은 곧 자신들의 권력이 흔들린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는 기득권을 가진 집권세력에게는 참을 수 없는 권력과 재산의 손실을 의미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백성을 지배하고 왕을 견제하는 주요 무기로 사용했던 조선의 집권세력들의 유학은 실상 절름발이 학문이었으며 현대인들에게는 크게 마음에 들지는 않겠으나 유학의 순수성은 그 폐해만으로 평가 할 수는 절대로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동양 고전의 가르침을 과거의 잘못을 거울삼아 새롭게 재탄생시키는 것이 후학들이 해야 할 책무임을 저자 김용옥선생이 강조하는 것이다. 더불어 중용의 해설을 시도한 김용옥선생이 중용이야말로 지상 최고의 경전이라고 평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분명히 있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대로 중용을 좀 읽었다고 리뷰를 작성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교(敎)의 참된 뜻의 깨달음을 줌과 동시에 배움의 참된 의미를 가르치는 대목에서는 비단 배우는 사람에게 뿐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향하는 중용의 가르침이 또한 지극히 간곡하고 아름답지 않을 수 없다. 그리하여 배우는 자세 또는 인생을 살아가는 자세를 가르치는 장구 중 한 구절을 리뷰로 대신하고 싶다.



배우는 사람의 자세: 대학과 중용의 가르침 비교


大學에서 발전의 과정을 전하고 있는 8조목은 매우 유명한 문구로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이다. 

이 말을 어른이 아닌 현대의 학생들에게 전하는 말로 재해석한다면 ‘격물치지-공부를 열심히하여 이치를 깨닫고, 성의정심-매사에 정성을 하다며 마음을 똑바로 쓰고, 수신제가-몸과 마음을 잘 가다듬으며 부모님 말씀을 잘 들으면, 치국평천하-나라에 쓰일 훌륭한 재목이 될 수 있다.’ 정도가 될 수 있다. 물론 이 해석은 학생들에게 맞는 버전으로 해석한 것이지 원래의 뜻이 그러하다는 것은 절대로 아니니 오해가 없으시길 바란다.


이러한 발전의 단계라고 여기는 대학의 8조목과 견줄 수 있는 중용의 장구는 23장이다. 대학의 8조목과는 그 느낌이 사뭇 다른데 그 뜻을 살펴보면 어떤 느낌의 차이가 있는지 알 수 있다.

 

주희의 대학해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던 선비들이 있었다. 대표적인 문구가 친민(親民)이냐 신(新民)이냐이다. 원래는 친민이었던 것을 정자(程子)가 신민으로 바꾸었고 주희가 이를 알면서도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주장이다. 친민과 신민의 차이는 뜻하는 바가 매우커서 신민으로 이해할 때 백성들은 지배의 대상으로 전락시킨다는 것이다. 이 사건이 정치이념에 가장 강력하게 작용한 곳은 다름아닌 조선이었다. 신민이라는 말은 무지한 백성을 가르친다는 뜻으로 이해되었는데 곧 글을 모르는 조선의 대다수를 형성하고 있던 백성들은 수신의 자격을 갖지 못하며 결국 치(治)의 대상으로 전락하게 된다. 글을 아는 자와 모르는 자 사이의 건널 수 없는 강을 만드는데 일조한 글자가 바로 신민이다.   

 

 

 

중용의 23장은 다음과 같다.

其次致曲

기차치곡 

曲能有誠, 誠則形, 形則箸, 箸則明, 明則動, 動則變, 變則化.

곡능유성,  성즉형,  형즉저,  저즉명,  명즉동,  동즉변,  변즉화

 唯天下至誠 爲能化.

 유천하지성 위능화


다음으로 힘써야 할 것은 치곡(致曲)이다. 치곡(致曲)은 아주 작은 모든 사물에 이르기까지 곡진(曲盡)하다는 뜻이다. 우리는 ‘간곡(懇曲)하다’는 표현에 낮설지 않다. 여기서 간(懇)이라는 말은 ‘정성을 다하여 마음 쓰고 노력을 다한다’는 뜻으로 성(誠)이라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치곡(致曲)은 바로 ‘정성을 다하여 노력하는 마음이 모든 곳에 이르도록 힘쓴다’는 뜻이 되겠다. 아마도 대학의 성의(誠意)라는 말은 중용의 曲과 같은 말이라고 보아도 될 것이다. 이점은 대학의 가르침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대학은 성의 정심에 이어 수신제가(修身齊家)라는 강력한 의무를 지운다. 조선에서 수신(修身)이라는 말은 매우 엄격하면서도 강력한 무기였다.

 

병자호란은 당시 조선의 강역를 한마디로 쑥대밭을 만든 사건이었다. 조선의 세자였던 소현과 왕자였던 봉림 그리고 척화를 주장했던 대표 인물들을 비롯 약 60만 명에 달하는 조선 사람들이 청나라로 끌려갔다. 이는 조선의 자존심에 엄청난 수치와 깊은 상처를 안겨주었다. 청에서 돌아와 왕위를 물려받은 효종은 이를 부드득 갈면서 북벌을 천명했고 이를 강력하게 추친 코자 했다. 그러나 송시열을 중심으로 한 노론은 효종에게 북벌의 덕목으로 수신(修身)을 강조하면서 효종의 손발을 묶어놓았던 것이다. 선비들은 조선의 왕에게 조차 수신이라는 말로 그 뜻을 뭉개버릴 정도였다. 그러니 글자를 모르던 일반인들에게 수신제가란 과연 가당키나 한 말이던가... 수신제가(修身齊家)라는 말은 이렇게 조선의 백성들에게 넘을 수 없는 신분의 건널 수 없는 선 그어준 말이기도 했다.


그런데 중용에서는 수신이라는 말로 이어 놓은 것이 아니라 곡능유성(曲能有誠)이라는 말로 잊고 있다. 지극히 곡진하면 성(誠)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이다. 다시말하면 誠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다는 말이다. 곡진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한다면 성(誠)을 이룰 수 있다는 뜻인 것이다.

다음은 성즉형(誠則形) 이다. 모양을 갖추게 된다는 말이다. 정성을 다하면 사람이든 사물이든 그 형체로 구체화된다. 현대적으로는 매사에 정성을 다하는 사람은 멋진 모습을 갖게된다고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다음은 형즉저(形則箸)이다.

간곡하며 온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면 그 모양이 겉으로 드러난다는 말, 즉 저(箸)이다. 우리가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은 아니다. 상대방이 성심을 가지고 언행을 하는 것인지는 금방 드러나게 마련이다. 왜냐면 그 사람의 언행은 바른 마음에서 우러나오기 때문이다. 사과나 감사의 마음도 마찬가지다. 진정한 마음으로 곡진한 마음으로 감사 또는 사과를 하고 있는 것인지는 그 눈빛과 태도를 보면 드러나게 마련 아니던가... 그러니 형즉저(形則箸)인 것이다.

  

이어지는 단계는 저(箸)하면 명(明)한다 즉 箸則明이다. 곡진한 마음을 다한 구체적인 개인과 사물의 형태가 드러나면 밝아지기(明) 시작한다. 좋은 일, 보람 있는 일을 한 사람의 얼굴에 밝아 보이는 이치와 같다고 이해하면 되겠다. 반대로 나쁜 짖을 하는 사람의 얼굴이 밝을 리가 없다. 마음이 어두우면 얼굴도 어두워지기 마련이다. 그러니 밝은 얼굴이 그 얼마나 좋은 기운을 가진 얼굴이던지....


 명(明)하면 동(動)한다 즉 明則動이다. 말하자면 밝은 모습으로 매사에 임하고 친교를 나누는 사람들의 주변에는 친구들이 모이게 마련이라는 말이다. 좋은 사람 좋은 것 주변에는 좋은 사람과 좋은 것들이 모이는 이치이다. 끼리끼리 어울린다는 말도 이와 같은 의미일 것이다. 그들이 모이면 무엇인가 좋은 쪽으로 움직이게 마련이다. 이것이 바로 동(動)이다.

 

이렇게 動하면 변(變)하게 된다.  동즉변(動則變)인 것이다. 움직이는 힘은 변하게 마련이다. 간곡한 마음과 성실한 마음으로 무엇인가를 꾀한다면 아니 될 일이 없다. 사람의 일이란 그런 것이다. 그것이 바로 變이다.


마지막으로  變則化이다. 變과 化는 그 뜻하는 바가 다르고 한다. 變은 외형적인 변모를 뜻하고 化란 형질의 바뀜이다. 變을 이루어 내면 비로소 化에 이르게 된다. 化를 이루고나면 현재의 나는 이전까지의 내가 아닌 것이다. 나는 온전하게 새롭게 태어난 사람이 된다. 보다 더 훌륭하고 보다 더 인간적이며 보다 더 멋진 사람, 化를 이루어 낸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이루어 낼 수 있는 것, 즉 化를 이루어 낼 수 있는 것은 오로지 天下至誠, 오직 천하에 성(誠)만이 있을 뿐이다. 唯天下至誠 爲能化


인간이 이루어내는 化는 자신을 새롭고 훌륭한 한 인간으로서 키워낼 수 있다는 뜻이 되고 나아가 세상을 새롭게 바꾸어 보다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이루어 낸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가 있다. 분명한 것은 무엇인가 이루어 내야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반드시 化를 통해서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化를 이루어 내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曲, 誠이 아니면 불가능 하다는 뜻을 가르치는 고전이 바로 중용인 것이다. 그것이 공부이든 인격이든 무엇이든 간에 지극한 정성에서 출발한다고 말하는 중용의 가르침은 배우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가르침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는 大學에서 가르치는 修身齊家와는 전혀 다른 말씀이다. 오직 천하의 至誠만이 化를 이루어 낼 수 있다고.... 매사에 마음을 다하여 지극하고 곡진한 정성을 들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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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인생 2012-04-14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전에 조예가 깊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글이네요. 많이 배우고 갑니다. 저의 조잡한 리뷰가 부끄러워 집니다.
 

 

 그리모의 연주를 보고 있노라면 ‘성스러운 연주’라는 생각을 갖곤 한다. 그녀의 연주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그런 그녀가 ‘특별수업’이라는 책을 냈건만 나는 읽어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녀의 팬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말이다. 진정한 팬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알라디너의 서재에서 발견한 ‘특별수업’, 읽어보리라 마음먹었다.  한 음악가의 팬을 자처하는 사람이 그 음악가가 쓴 책을 읽어보지 않는다면 그것은 스스로에게도 부끄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나 할까...


 인간문화재인 만신 김금화씨는 ‘하늘과 땅을 인간에게 이어주는 것을 바로 무(巫)’라고 말하면서 그러한 무(巫)의 존재는 비단 만신만이 아니라고 했다. 만신의 성격을 가지는 존재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데 그 중에 음악가도 포함된다고 했다. 음악가가 일종의 만신이라니...상당히 충격적인 말이었다. 그러나 그리모의 특별 수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말은 바로 ‘음악가는 만신’이라는 김금화씨의 말이었다.


 그리모는 생의 어느 시점에 이르게되자 극도의 불안과 슬픔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한다. 그리모는 모든 심리적 짐을 떨쳐버리고 그 어느 곳으로 떠나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녀는 어느 곳으로 떠나야 할지 자신도 잘 모르고 있다. 그러나 어디로든 떠나야 한다. 

 

 

 

        그리모에게는 연주로 성스러움을 느끼게하는 특별함이 있다


 

홍신자와 그리모


 이는 마치 춤꾼인 홍신자씨의 상황과 오버랩 된다. 춤의 예술을 행위하던 홍신자씨도 그리모와 같은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홍신자나 그리모가 예술가로서 처해있는 상황은 ‘정신적 고갈’을 의미하는 같은 상황이다. 즉, 영적 에너지를 충전시킬 수 있는 계기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예술인에게 영적 에너지는 절대적인 것이다. 김금자씨가 말하는 만신이라는 의미는 아마도 이러한 맥락 일 것이다. 만신이 신과 인간을 영매하는 존재이듯이 예술인도 청중과 음악을 영매하는 매체인 것이다.


 극도의 영적 에너지의 고갈을 느끼자 춤꾼 홍은 인도로 향한다. 그녀는 라즈니쉬를 만나고 그의 제자가 되어 영적에너지를 재충전한다. 그러나 영적 에너지의 재충전은 단순히 방전된 밧데리를 충전하는 것과는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다. 밧데리는 같은 질의 내용물로 재충전 하여 똑같은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반면, 재충전 후의 영적 에너지는 그 이전의 것과는 완연하게 다른 성격을 지니고 충전자로 하여금 전혀 다른 성질의 효과를 내게 한다. 밧데리는 성장이라는 의미를 내포하지 않는 반면, 영적 에너지의 재충전은 충전자의 질적으로 다른, 그리고 거대한 성장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리모도 자신의 여정을 떠난다. 떠나기로 한 이상 어디로인가 떠나야 한다. 여정에서 그녀는 스승님과 매우 닮은 교사를 만나고 동경하던 삶을 찾아 성당의 뜰을 관리하며 사고하는 친구를 만나고 커피를 마시다가 우연히 또 다른 이상한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그리모의 타자와의 관계

 

 그녀가 말해주는 늑대 센터에 대한 이야기도 이채롭다. 그녀는 늑대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 늑대에게 물려 큰 상처를 입는다. 한동안 트라우마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그녀는 이를 극복하고 상대방을 진정 이해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는다. 타자를 이해한다는 것은 어쩌면 자신 내면의 상처를 인내해야 한다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사랑이라는 것은 나만의 것이어서는 안 된다. 나의 사랑으로 인해 스스로에게 상처를 낼 수도 있음을... 그 상처인해 트라우마에 시달릴 수 도 있음을.... 그러나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사랑이 바로 사랑이라는 것을...그리모를 통해 타자와의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사랑의 의미를 알게 해주는 대목이 있다. 우연하게도 바로 이전에 읽었던 ‘산화의 힘’에서 읽었던 내용과 매우 일치하는 깨달음을 그리모의 특별수업에서 다시 읽게 되다니...이는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바로 ‘예술가, 영웅, 죽음’이다. 캠벨이 말하는 영웅은 인류에 헌신한다. 예술가는 대중과 문화에 신화를 가져다 줄 수 사람이라고 쓰고 있다. 특별수업에서도 예술가와 영웅은 위대한 교훈을 주고 있다고 말한다. 이 얼마나 우연의 일치인가...

 

 

그리모의 죽음

(그리모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하려는 것이 아님)

 

 조셉 캠벨은 죽음으로서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는 신화를 소개하고 있다. 어쩌면 캠벨도 이러한 신화적 재탄생의 방식에 공감하는 듯 했다. 특별수업은 말하고 있다. “인간은 오직 사랑 때문에 죽어야하고 그 죽음은 비극이 아닙니다.”라고...


특별수업이 주는 특별한 교훈이 하나 더 있다. ‘자유를 수련하라’는 것이다. 자유를 수련한다는 의미는 영혼의 활동에 자신을 내어준다는 의미라고 했다. 영혼의 활동을 인식하는 존재는 만신이다. 물론 그리모가 만신이 되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영혼의 활동인식은 만신적인 요소를 가진 점이라는 뜻일 뿐이다. 자유의 수련은 영혼의 활동을 한다는 뜻이라는 것일 뿐....




그리모, 그리고 달과 6펜스

 

 

적은 분량의 책이면서 그리모가 딜레마를 극복하는 과정의 책이라겼기 때문에 그 과정이 궁금했고 그에 대한 기대감만을 가지고 읽었다. 그런데 뜻밖의 소득 아니, 뜻밖의 놀라운 내용을 담고 있는 장면을 만나게 된다. 다름 아닌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를 다시 만난 것이다. . 그리모가 머물렀던 수녀원의 베아트리스라는 등장 인물을 통해서이다.  

 베아트리스는 그리모에게 “인간에게는 원래 속한 어떤 지방, 어떤 기후가 있어 평생 그 곳을 찾아다니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고등학교 때 만난 서머싯 몸은 다음과 같이 쓰고있다.


 “그들은 늘 그들이 알지 못하는 고향에 대한 향수(nostalgia)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그들이 태어난 곳에서 이방인이며,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내온 잎이 우거진 오솔 길, 그들이 놀던 사람이 많은 거리는 그저 그들이 거쳐가는 곳일 뿐이다. 그들로하여금 애착을 가질 지도 모르는 영원한 그 무엇인가를 찾아 떠나게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낮선 느낌이다.”


서머싯 몸은 태초부터 그 조상들이 떠나왔던 그 어떤 땅으로 인간을 돌아가도록 재촉하는 격 유전이 피와 함께 우리의 몸을 돌고 있다고 말하고 싶어한다. 서머싯 몸은 달과 9펜스의 주인공인 스트릭랜드가 떠나게된 배경을 독자들에게 그렇게 설명하고 있다. 그러니 고등학생이었던 내가 서머싯 몸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결국 나는 달과 6펜스를 읽고 나서 그의 소설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패배감에 사로잡혀 절망하고 말았던 것이다.

 서머싯 몸의 이런 소설속의 언어를 특별수업의 베아트리스를 통해서 다시 만나게 될 줄이야...이는 나에게 무척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모, 그리고 매트릭스


 그리모가 만난 베아트리스는 정말 특이한 인물이 있다. 베아트리스를 통해서 달과 6펜스를 만나는가하면 영화 매트릭스를 만나기도 한다. 정말 특별한 일이다. 베이트리스는 그리모에게 이렇게 말한다. “요컨대 인간은 신의 암(癌)이 아닐까 하고 자문하게 되더군요. 통제를 벗어나 제멋 대로 번식하는 세포들이 아닐까 하고 말이에요.”


 매트릭스에서 스미스는 사로잡힌 모피어스에게 그와 같은 말을 한다. ‘인간은 암과 같은 존재이다.’ 라고... 스미스의 이 말은 당시 충격적이었다. 왜냐면 일면에서 자연의 파괴를 일삼는 유일한 존재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스미스의 이 말에 선뜻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용기가 나지 않는 것은 인간이 그동안 그래왔기 때문은 아닐까...

  

 

그리모가 만난 사람들

 

그리모는 여정을 통해 몇 사람을 만나고 헤어진다. 그 과정에서 그리모는 자신의 슬픔, 즉 자신의 딜레마에서 벗어나게 된다. 여정이라는 것은 결국 내가 아닌 타자와의 만남이다. 인간의 슬픔은 인간을 통해서만이 치유될 수 있는 것을 잘 보여준 그리모의 여정이었다. 마지막으로 만난 한스는 자신의 밖에서 그 무엇인가를 찾으려 하지 말고 자신 내부에서 찾으라는 조언을 해준다. 오르페우스가 뒤를 그만 돌아보아 유리디체를 잃은 것은 그녀가 부활하는지을 확신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믿고 자신의 내부로 회귀하라는 그런 조언 말이다. 그녀는 마침내 해답을 찾는다. 그녀는 자신의 모든 슬픔을 떨쳐보리고 자신의 피아노 앞에 새로운 사람으로 서있다. 그리고 그리모는 말한다. "길을 잘 아는 사람에게 길을 묻지 말고 그대처럼 길을 찾고 있는 사람에게 길을 물어라."라고...  

 

 

그리모의 특별수업


특별수업이라는 표제어가 특별 수업으로 결정된 단서를 이 책안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참으로 멋진 대목이다. 그리모는 스승 바르비제가 해준 말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내가 자네에게 요구하는 것은 최고가 되라는 것이 아닐세. 내가 요구하는 것은 특별해지라는 것일세.” 아...나는 이 행간을 읽을 때, 전율을 느낀다. ‘그래, 바로 이거야!’ 하는 깨달음이 일었다. 비로소 나는 그리모의 연주에서 왜 그토록 성스러움을 느낄 수 있었는지 이해하게 된 것이다. 그녀는 자유를 수련했고, 그 영적 활동을 통해 특별해져버린 것이다. 영적 에너지로 충만한 자신의 영혼을 피아노의 건반에 실어 청중들에게 전달하는 영매, 아니 만신의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의 이 글은 그녀를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하지 않는다. 우리와 똑같이 고갈을 경험하며 그 고갈을 새로운 에너지로 충족시키고자 한다. 그녀의 여정은 특별할 것이 없다. 다만 슈타인웨이에 들어가 어느때든지 연습을 할 수 있다는 것 빼고는 말이다. 우리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다...우리도 특별해지려고 한다면 언제든 특별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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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는 대선이 있는 해로 정치계는 물론 국민들께서 그 어느 해보다 정치에 참여하며 관심을 가져야 할 그런 해이다. 한 번의 선택이 국민들에게는 5년이라는 세월을 두고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생각하면 대선은 분명 보통일은 아니다. 첨예한 관심과 촉각을 특히 더 세워야 하는 국민들도 계시고 그렇지 않은 분들도 계시겠지만, 경우야 어떠하든 직접적인 영향력을 피해갈 수 있는 국민들은 없을 것이다. 그러한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최근 정치인의 금전적인 유포행위에 대한 폭로가 있었고, 대한 민국은 금전과 관계하고 있는 정치적 사건로 뜨겁게 달아올라있다. 더구나 국민들이 쉽게 납득하기 힘든 정치인이 구속된 작금의 상황에랴...

 

정치의 본질은 현재나 과거나 크게 다를바가 없어서 '위정'이라는 말을 떠올리면 많은 역사적 사건과 선조들이 떠오른다. 그 중 '다산'이라는 인물은 조선 후기라는 역동적인 변화기를 살다 갔기에 더더욱 주목을 끈다. (얼마 전 어느 알라디너의 페이퍼를 읽어보니 여유당 탄생 250주년이라고 한다.)

 

'다산'은 정치란 무엇인가, 백성을 위한 정치란 어떠한 것인가를 몸소 보여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인물이었다. 정조의 ‘민본’과 ‘개혁’이라는 정치이념을 잘 이해하고 그 필요성을 절감했던 사람 중의 하나가 바로 여유당이었던 것이다.  물론 정조 대왕이 급서하면서 그동안 정조가 일궈놓았던 개혁은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정순왕후가 정조의 모든 개혁들을 정조의 개혁 그 이전 상태로 되 돌려놨기 때문이다. 강한 조선이 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잃어버리는 안타까운 순간을 맞이했지만.... 그러나 분명 다산은 위정자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위정자들에게 여유당의 말씀을 읽어보기를 촉구하며 여유당의 글과 생각에서 그 해답을 찾아 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일 것이다...

 

('다산'이 정약용선생님의 호이지만, 다산선생님의 거룩한 정신을 생각하면 감히 호를 부를 용기가 나지않아 이제부터는 당호인 '여유당'으로 대신합니다)  

 

 

 

여유당의 애민정신

 

 

'다산의 풍경'은 여유당의 '시집'입니다. 

 

여유당은 정조의 명령으로 전국을 암행하는 과정에서 백성들의 삶을 그 어느 관료보다 더 잘 이해했다.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하고자 했던 정조의 정치철학과 여유당의 애민정신이 맞아떨어지는 순간이었다. 백성들을 공포속으로 몰아넣던 천연두의 치료법을 위한 '마과회통'과 공정한 재판을 위한 주의사항과 규범등을 기록한 '흠흠신서', 그리고 널리 알려진 '경세유표', '목민심서'등은 여유당의 애민정신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저술들이다.

 

 이러한 여유당은 강진에 유배생활을 하던 도중  ‘애절양(哀絶陽)’이라는 한편의 詩를 남긴다. 이 시는 여유당께서 살아가던 시대의 아픔을 고스란히 드러냄과 동시에 백성들을 그 얼마나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았는지를 잘 알 수 있게한다. 본디 여유당은 漢詩로 이 글을 남겼으나 편의상 한글로 옮겨본다.

 

 

애절양 (哀絶陽)


갈밭머리 젊은 여인 울음도 서러워

현문향해 울부짖다 하늘 보고 호소하네.

군인 남편 못 돌아오는 것은 있을 법도 한 일이나

예로부터 男絶陽은 들어보지 못했노라.

 

시아버지 죽어서 이미 상복을 입었고

갓난아인 배냇물도 안 말랐는데

三代의 이름이 군적에 실리다니...


달려가 억울함을 호소하려니

범같은 문지기 버티어 있고

이정(理正)이 호통하여 단 벌 소만 끌려갔네.


남편 문득 칼을 갈아 방안으로 뛰어들자

붉은 피 자리에 낭자하구나...

스스로 한탄하네

“아이 낳은 죄로구나”


중략...

자식 낳고 사는 것은 하늘이 내린 이치이건만

하늘 땅이 어울려 아들되고 딸 되는 것

말, 돼지 거세함도 가엾다 이르거늘

하물며 뒤를 잇는 사람에 있어서랴....


부자들은 한평생 풍악이나 즐기면서

한 알 쌀, 한 치 삼베도 바치는 일 없으니

다 같은 백성인데 이다지도 불공정하단 말인가

객창에서 거듭거듭 시구편만 읊조리게 된다..

 

 

 

 

여유당께서 이러한 한시를 남기게 된 것은 조선 정부의 정치제도와 깊은 관련이 있다. 다음은 애절양이라는 시를 짖게된 역사적 배경이다.  

 

 

조선의 군역제도

 

'조선의 숨은 왕'은 조선의 정치 현실을 적나나하게 보여주는 대표적인 책 중 하나입니다.

 

조선의 백성들을 가장 괴롭히고 있었던 것은 삼정이라는 것이었다. 흔히 국사 교과서에 ‘삼정이 문란했다’라고 써있는 바로 그것이다. ‘삼정’이란 ‘전세, 군정, 환곡’ 이 세 가지를 이름이다. 애절양은 삼정 중 군정과 관련이 있는 시인 것이다.

 당시 조선은 남자가 16세가 되면서부터 60세까지 군역의 의무를 지게되어 있었다. 군인들은 ‘오위’라고 하는 다섯 군대 중에서 한곳에 소속되어 복무해야 했다. 그러나 군대에 가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었을까. 임진왜란이 일어나 군사를 모집해보니 대부분 노약자들 뿐이었다.

 좋은 예로 선조는 임진 왜란이 일어나자 ‘이일’장군을 남쪽으로 급파한다. 이일 장군이 왜의 거센 예봉을 꺽어 주게되면 ‘신립’장군으로 하여금 그 후미를 지원하겠다는 전략이었던 것이다. 명을 받은 이일 장군이 3일 동안 모집한 군사들은 모두 100명이 채 되지 못했고 결국 이일 장군은 홀홀 단신으로 남쪽으로 내려갈 수 밖에 없었다. 왜는 당시 6만여명의 침략 선발대를 3조로 나누어 조선에 파병한 상태였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는 우리 역사에 기록되어 있는 어처구니 없는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이일장군은 상주에서 패배하고 만다.


 이러한 이유에는 다양한 것들이 있을 수 있겠으나 조선의 군사적 실상이 이러한 상황이 었으므로 조선은 훈련도감을 설치하여, 오군영을 만들고 직업군인으로 대처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직업군인들에게 지급할 봉록 예산이 필요해졌다. 하여 군대에 가지 않는 남성들에게 두당 2필의 군포를 대신 거두었다.


삼정의 문란

조선 후기의 역사 현장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 군정에 해당하는 군포가 조선의 백성들에게는 대재앙 중 하나가 되었다. 양반들은 군역의 의무가 없었으므로 군포를 내지 않았다. 조선은 국방비를 양민만을 대상으로 징수했다. 군적에 해당하는 모든 양민의 장정들이 군포를 징수해야 했으므로 경우에 따라서는 5-6필 혹은 7-8필을 내야하는 경우도 발생했다. 이것 만으로도 빈곤했던 조선의 백성들에게는 대단히 고통스런 세금이었다. 상황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정부는 죽은 사람에게도 군포를 징수하는가 하면(백골징포) 군적에 해당하는 어린 아이에게도 군포를 강제 징수(황구첨정)했던 것이다.


군포를 감당하지 못하는 가족은 야반도주하여 산속 깊숙한 곳이나 외딴 섬으로 도망을 해야했다. 이를 ‘유망’이라 한다. 한 가족이 유망하면 그 친척에게 그 책임을 물었다. 이를 ‘동징’이라 했다. 결국 친인척이 모두 유망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른다. 친척이 모두 유망을 하면 친척이 아닌 이웃에게 그 책임을 물었다. 이를 역사는 ‘인징’이라고 말한다. 급기야 온 동네의 모든 사람들이 한꺼번에 유망하는 사태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여행을 하다보면 매우 외딴 곳, 산속 깊은 곳이나 고독하기 이를 데 없는 외딴 섬에 외롭게 자리잡고 살아가는 분들을 만나게 된다. 왜 이런 곳에 이렇게 사시게 된 것일까...궁금해해본 적이 있을지도 모른다. 조선의 군정을 살펴보면 이해가 가실지도 모른다... 동징과 황구첨정과 인징을 피해 멀리 멀리 달아났던 것이다. 삼정이 그 얼마나 문란했었는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겠다.



애절양

다산의 마음을 직접 만날 수 있는 산문집입니다.

 

애절양은 <양물을 자른 일을 슬퍼한다>는 뜻의 시이다. 여유당은 어느 양민 하나가 자신의 양물을 잘랐다는 슬픈 소식을 접하고 시를 쓰게된다. 이 시는 당시에 삼정이 백성들에게 그 얼마나 가혹한 형벌이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으며 공개적으로 그 횡포를 적나나하게 고발한 작품이라 하겠다.


여유당은 이 시를 짓고나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이것은 계해년(1803년) 가을 내가 강진에 있으면서 지은 시이다. 노전에 사는 한 백성이 아이를 낳은 지 사흘 만에 군포에 등록되고 마을 이정(理正)이 소를 빼앗아가니 그 사람이 칼을 뽑아 자신의 생식기를 스스로 베면서 하는 말이, '내가 이것 때문에 곤액을 당한다.‘ 하였다. 그 아내가 생식기를 관가에 가지고가니 피가 아직 뚝뚝 떨어지는데, 슬피울며 하소연하였으나 문지기가 막아버렸다. 내가 듣고 이 시를 지었다.”


어느 양민에게 관아에서 죽은 아비와 갓난 아들의 군포를 내놓으라하자, 그는 관청으로 달려가 “제 아비는 죽은지 오래되었고 아들은 갓 태어나 군포를 질 의무가 없는데도 군포를 세필이나 내놓으라하니 억울하옵니다.”라고 하소연을 하려한다. 그러나 호랑이 보다 더 무서운 문지기들 때문에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울며불며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런데 이정(理正-조선 최 말단 지방행정조직의 책임자)이란 놈이 백성의 억울함을 알아주지는 못할 망정 있던 한 마리의 소를 군포대신하여 끌고 가버렸다.

 

그는 억울함과 분함을 이기지 못하고 “아이를 낳은 것이 나의 죄다.”라고 말하면서 죄의 근원이라며 자신의 양물을 잘라버린 것이다.

 이러한 슬픔과 억울함을 이기지 못한 그의 아내는 바들바들 떨며 남편의 양물을 들고 관청으로 달려가 호소해보았으나 문지기가 막아서는 바람에 이 또한 소용이 없었다. 곤장을 죽기 직전까지 맞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알아야 하는 것인가? 힘없는 백성의 아내로 살아가는 조선 여인네의 가슴에 이토록 피멍이들도록 해야했단 말인가. 억울함을 이기지 못하고 끝내 남편이 스스로 자른 양물을 바들바들 떨며 자신의 손에 들고 관가로 갈 수 밖에 없었던 가엾디 가없은 조선 여인의 마음을 그 누가 헤아릴 수 있단 말인가..이 어찌 슬프디 슬픈 한스러움이 아니겠는가...오직 하늘을 향해 토해낼 아픔이려니...

 

당시 조선의 백성들이 소를 가지고 있던 비율은 대략 100분의 1이었다. 100가구 중 한 가구 정도가 소를 기르고 있었고 농사를 짓는 데 활용했다고 한다. 그만큼 소는 귀했고 유용한 농사의 수단이었다. 세 필의 군포를 강제 징수하는 것도 억울한 판에 농사지을 소마저 빼앗아가니 그 백성의 심정이 오죽했으랴...

 

이러한 안타까운 소식을 접한 여유당은 그저 시구편만 읊조릴 뿐이라고 말한다. 시구편은  시경(詩經)에 수록된 詩 편의 이름이다. 시구편에는 통치자가 백성을 두루두루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시구새, 즉 뻐꾸기에 비유해서 읊은 시편이라고 한다. 이렇게 시구편을 반복해서 읋조릴 수 밖에 없는 자신의 무기력함에 여유당은 또 그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이는 하나의 사건을 고발한 詩이지만 가히 그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짐작하게 한다.


 

여유당, 현대의 위정자들에게 정치 방향의 표본을 제시하다.

 

다산이 그랬던 것 처럼 국가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입니다.

하여 여유당은 지배층 중심의 조선사회 시스템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그의 애민 정신은 경세유표와 목민심서등에 잘 드러나 있다. 그를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인물로 평가하는 것은 개혁과 개방을 통하여 백성들을 편안케 함과 동시에 부국하고 강병한 국가로 조선을 개혁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는 토지제도는 물론 세제, 군제, 관제 및 신분제까지도 개혁하고 특히 백성들이 가난을 벗어나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여유당의 사상은 오늘 날 대한 민국이라는 나라가 잎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위정의 원칙은 바로 ‘애민’에 있다. 애민을 하기위해서는 백성 중심의 정치가 선행되어야 하고, 국가 제반의 경제적 정치적 작동 원리가 국민을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오늘 날의 정치는 표를 중심으로 하는 정치인 듯 보인다. ‘표’는 곧 ‘집권’을 뜻한다. 요즘 한참 이슈로 부상하고 있는 돈 봉투 사건은 이를 잘 증명해주는 좋은 사례라 하겠다. 정당이 정당한 방법으로,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앞세워 표를 얻으려하지 않고, 술수와 잔재주를 사용하려 한다.


 정치는 신뢰를 바탕으로 행해져야 한다. 국민이 신뢰할 수 없는 정치는 죽은 정치이다. 국민에게 위정자들이 기꺼이 국민을 위해 힘쓰고 있다고 믿도록해야 한다. 그 믿음은 얄팍한 술수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일시적인 포풀리즘에서 오는 것도 아니다. 지속적이고도 듬직한 신뢰에서 온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올해는 또한 우리 국민들이 대선을 치루어야 하는 해이다. 국민은 진정한 애민정신과 진정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원한다. 조선의 지배층처럼 군역의 의무도 없고, 세금의 의무도 없으면서 백성들의 삶을 더욱 고단하게하는 그런 사회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 책임지며 모두가 함께 노력하는 단결된 정치력과 위정자들이 모범을 보이며 손짓하는 그런 시대를 갈망한다. 정약용 선생께서 절양했다는 소식을 듣고 반복해서 읊조릴 수 밖에 없었던 그 시구편, ‘통치자는 두루두루 국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는 시구편에 써있는 대로 진정으로 국민을 사랑하는 그런 정치인이 대선에서 승리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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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2-02-04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조건 추천하고 읽었습니다.
몇초 후에 다시 추천하시겠습니까? 하면 여지 없이 또 눌렀을텐데...ㅋ
얼마 전에 정민 교수의 책 '삶을 바꾼 만남' 강연회를 다녀 온적이 있었는데
과연 다산은 대단한 사람이란 생각을 했어요.
강연도 물론 탁월했구요.
소개해 주신 책만으로도 공부가 될 것 같아요.
언젠가 저도 다산을 연구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불끈!(물론 생각만.ㅋ)
다신의 또 다른 호가 여유당이었군요.
그런데 님의 글 제목이 참!^^

2012-02-06 02: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2-04 11: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2-04 12: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2-02-06 1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다가 소름이 쫘악 끼쳤네요...
애절양이 그런 의미가 있는줄 몰랐네요. 그져, 슬픈 소쩍새 생각만 했답니다.
(대체 소쩍새는 어디서 떠오른 이미지인지 모르겠어요.. ^^)

요즘 대단들하더군요, 하루가 멀다하고 공약을 펴내고 쇄신책을 펴내는데..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고 노력 중입니다. ^^

차트랑 2012-02-07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구구...어쩌죠?
조선의 민초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면서도...ㅠ.ㅠ

그저 애절양과 같이 억울한 일들이
현대에는 발생하지 않기 바라는 마음입니다..

라로 2012-02-07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다산의 마음]을 읽었는데 정말 너무 좋아서 막 끌어 안고 그랬어요,,
그런 책 또 아시면 소개해 주세요,,다산 책이 아니라도요,,^^

차트랑 2012-02-08 0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신의 마음을 읽으셨다니...
감동의 물결입니다요ㅠ.ㅠ

또한 '막 끌어 안으실 수 있는 책'이라고 말씀하시니
세한도가 떠오릅니다.
물론 다산의 마음과는 다른 느낌으로 끌어안으실 테지만요

박철상님께서 지으신 책으로
알라딘 가격 8800원입니다.
비싸지 않은 책이라 좋구요...
내용으로 본 가치는 매길수가 없었답니다.

제게 독서 노트를 쓰도록 결정타를 먹인 책이기도 합니다.
나비님께서는 워낙 독서를 많이 하시는 분인지라
이미 읽어보셨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그러나 행여 미독이시라면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혹시 마음에 안드시면
이 책은 제가 반품 받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