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흐마니노프 : 피아노 협주곡 2번 & 차이코프스키 : 피아노 협주곡 1번 - 이 한 장의 명반
차이코프스키(Pyotr Ilyich Tchaikovsky) 외 작곡, 카라얀 (Herber / 유니버설(Universal)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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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헤리치 여사가 줄수있는 유연한 느낌 부족,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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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흐마니노프 : 피아노 협주곡 2번 & 차이코프스키 : 피아노 협주곡 1번 - 이 한 장의 명반
차이코프스키(Pyotr Ilyich Tchaikovsky) 외 작곡, 카라얀 (Herber / 유니버설(Universal)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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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거장이다. 리히테르는 피아노의, 가라얀은 지휘의....이 두 거장이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에서 만나 녹음을 남겼다.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은 널리 애청되는 음반 중의 음반이다. 1악장 첫 악구부터 피아노의 강렬하면서도 분명한 타건과 오케스트라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포스가 연주를 빼어나면서도 아름답게 하기 때문이다. 언제나 호감을 주는 아르헤리치 여사께서 아바도와 함께한 녹음반과 위 녹음반은 언제나 애착이 간다.  리히테르의 피아니즘은 그 명성이 워낙 높고, 카라얀은 클래식을 애청하지 않는 분들도 그 명성을 들어봤을 정도로 인지도가 높은 분이지 싶다..

아르헤리치와 아바도의 녹음이 1악장의 도입부에서 상쾌하고도 중량감이 있는 특성을 갖고 있다면 라히테르와 카라얀의 연주는 느낌은 '중량감'과 '공격적'이라 표현하면 어떨지 모르겠다. 더우기 3장의 클라이막스에서 두사람이 들려주는 용호상박의 치열함은 마치 호랑이 두마리의 다툼을 상기시킬 정도이다. 몰아치는 격렬함을 선호하는 애호가들에게는 아마도 아주 만족스러운 음반일 것이다.  

 카라얀의 연주가 주는 격렬함은 연주를 앞도하려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한다. 마치 자신이 이 연주의 보스다 라고 선언하듯이 말이다. 그러나 리히테르의 건반은 이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한 태도이다. 결과적으로 서로 물러서려 하지 않는 듯한 인상을 전해주기에 충분하다. 그리하여 처음 이 음반을 들을 때는 이러다가 연주의 완성도를 저하시키지 않을까 불안감을 주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러나 그러한 염려는 기우였다.  

 연주를 끝까지 듣고나면 그런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 있는 결과물임을 확인 할 수 있다. 그 다음 부터는 그런 불안감에서 자유롭게 그들의 연주를 즐길 수 있다. 두 사람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혼신의 힘을 다하여 연주했다는 새로운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더불어 나는 이 음반을 들을 때마다 그 치열함의 한가운데에 서있는 느낌이다. 불꽃이 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 두사람의 연주는 영원히 명연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그러나 두사람이 처음 나에게 주었던 불안감으로 인해 별점은 4개를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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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 심포니 9번 "합창"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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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을 떨치고 실력을 인정 할 줄 알았던 쿠르트 마주어....존경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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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 심포니 9번 "합창"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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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토벤의 교향곡을 연주한 음반만도 충분히 100여종을 훨씬 능가할 것이다. 영상물도 그 여느 작곡가보다 훨씬 많고 전 세계적으로 이루어지는 실황연주도 역시 마찬가지 이다. 지휘자나 연주 단체가 음악계에서 그 입지를 구축하는 첫 관문은 베토벤 교향곡 전곡을 사이클링하는 경력으로부터 시작한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이다. 그만큼 베토벤의 교향곡은 널리 연주되고 음반과 DVD로 출시되고 있다.

 음악을 듣다보면 개인미다 존경러운 지휘자를 만나는 것인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널리 알려진 카라얀이나, 전설적인 명성을 지닌 토스카니니, 배려와 부드러움으로 사로잡는 줄리니, 보헤미안적 기질을 비롯 자유로움과 유연한 지휘로 특별한  카를로스 클라이버, 동양 철학의 심오함을 지휘에 투영시키는 첼리비다케, 성스러운 모습으로 나를 경도시킨 예르비, 베토벤으로 나를 사로잡은 진만과 앙세르메이, 세계대전 당시 베토벤 녹음을 남긴 푸르트 뱅글러를 빼놓으면 매우 곤란한 입장에 처할 것이다. 그리고 이태리의 음악 가문 아바도, 신사 번스타인, 정말 마음에 쏙드는 조지 셀, 곰의 파워와 열정을 가진 스베틀라노프, 독재자  므라빈스키, 베토벤 교향곡의 완성도를 신뢰하게 해주는 길렌, 아르농 쿠르등 이외에도 일일이 거론 할 수 조차 없는 훌륭한 지휘자들이 많다.

그 중에서, 쿠르트 마주어는 개인적으로 매우 존경하는 지휘자 중 한 사람이다. 게반트 하우스의 터줏대감인 마주어가 연주한 이 영상물은 소문으로만 전해오는 마주어의 연주력과 인품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베토벤 9번의 영상물에서 연주력을 보여주는 테너는 James Wagner 이다. 영상물의 홍수나 다름 없는 다양한 버전 중 Wagner의 모습은 이 타이틀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이 었다. 

Wagner는 누구인가... 사실 Wagner에 대해서 나로서도 아는 바가 없다. 왜냐면 James Wagner라는 테너는 대부분의 보컬이 요구되는 영상물에서 그 모습을 찾아 볼 수가 없기도 하거니와, 검색 엔진을 사용해도 찾아내기가 거의 불가능 하기때문이다. 그러한 James Wagner는 흑인이다. 내가 아는 한, 이 흑인 남성 테나가 등장하는 DVD는 이 영상물이 유일하다. 물론 CD는 몇 종 출시된 상태이고.

흑인 테너 James Wagner가 출연한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이 영상물과 마주어를 애호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테너 바그너의 뛰어난 연주 실력을 높이 평가하기 때문이며, 그런 바그너를 편견없이 불러준 마주어에 대한 경의이며, 베토벤 9번의 연주도 보기드물게 빼어난 수연이라는 점 때문이다. 테너 바그너는 이 연주에서 그 어떤 테너보다 또랑 또랑한 목소리로 연주하고 있다. 베이스나 소프라노, 메조가 함께 연주할 때와 어마 어마한 인원수를 가진 코러스가 연주 할 때, 테너의 목소리는 대부분 묻혀버려 뭉그러지기 일쑤이다. 아니 당연한 일이다. 내게 미하엘 길렌의 베토벤 9번 연주가 아주 아주 좋지만 유일한 아쉬움으로 남는 것은 성악 파트의 불안정 때문이다. 대부분 베토벤의 좋은 연주들 중 합창 부분에서 구별되는 테너의 목소리를 찾기 어렵다는 점이 나를 끊임없이 베토벤 9번을 찾아 헤매는 이유이다. 합창의 불안...바로 그 이유이다. 

 국내 송년 음악회에서도 코러스가 대략 260명 이상이 동원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전 세계의 음반 시장을 타겟으로 하는 유수의 레이블들은 그보다 훨씬 규모가 크다. 그런 상황에서 테너의 목소리가 들리기를 바라는 자체가 무리한 일 일지도 모른다. 테너가 무슨 고릴라도 아니고....  

 그러나 이 영상물을 보면 생각이 약간 달라질 수가 있다. 왜냐면 바그너의 목소리는 그 어느 테너의 목소리보다 명료하게 들릴 뿐 아니라 어느 정도 크기의 코러스 속에서도 분명히 구별되어 들려오기 때문이다. 상업용 영상 제작물이므로 특별히 메인 보컬들의 목소리를 별도의 마이크로 잡아주고 있다는 것 만으로는 바그너의 목소리를 모두 설명 할 수는 없다. 기타의 영상물들이 모두 같은 조건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메인 보컬과 코러스 전원이 다 함께 목청을 높이는 클라이막스에서는 그 누구의 것이든 목소리가 뭍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와그너는 그 한계선을 한층 높게 끌어 올려주고 있다는 점, 그에 상응하는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할 이유가 될 것이다. 나는 이 자체만으로도 제임스 바그너가 세계적인 테너로 높이 평가받고 있지 못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가 없다. 왜 그토록 풍성한 성량으로 아름다운 벨칸토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노래하는 바그너가 적절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을 것일까... 혹시 그가 흑인이기 때문은 아닐까...

또 한 가지, 테너 바그너를 사랑하는 이유가 있다. 노래를 부를 때의 그 표정이다. 마치 노래와 하나가 된 그의 표정은 내가 본 영상물의 테너 바그너를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한다. 정녕 테너 바그너는 베토벤의  합창을 위해서 태어난 사람과 같다고 매번 나는 느끼곤 한다. 고음에서 얼굴이 일그러지는 대부분의 테너들은 사실 힘겨워 보이는 경우가 많다. 벨칸토 창법이 물론 그냥 나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바그너의 벨칸토는 그 매력적인 얼굴의 표정에서도 드러난다. 환희와 감동을 노래 뿐 아니라 자신의 표정으로도 한껏 뿜어주고 있는 것이다. CD는 그런 모습을 볼수 없지만 영상물은 확연하다. 각 파트에서 메인을 클로즈업시켜 줄 때 그의 표정을 보시라... 정녕 아름답다. 마치 신의 부름을 받으며 노래하는 이처럼... 

 나는 마주어가 바그너의 이런 특징 때문에 이 음반 제작에 초청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바그너의 실력을 높이 평가했을 것이다. 마주어를 제외한 그토록 많은 지휘자들 중 흑인 테너를 메인으로 초청한 경우는 거의 없다. 바그너처럼 훌륭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데도 말이다. 마주어는 이런 편견을 깨버렸다. 더불어 바그너에게 메인 보컬을 맡김으로서 나에게 아름다운 감동을 주고 있다.  쇤완트 (Michael Schonwandt)는 2006년 베를리오즈 레퀴엄에서 제임스 바그너를 초청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 역시 CD이다.

마주어가 흑인을 자신의 연주에 초청한 것은 이번 뿐 만이 아니다. 쉬트라우스의 작품, '낙소스 섬의 아리아드네' 에서 마주어는 제시 노먼을 초청했다. 그녀 역시 흑인 소프라노이다. 제시 노먼은 테너 바그너보다 운이 더 좋았다. 그녀를 불러준 지휘자가 또 있었다. 도라티, 블레즈, 바렌보임등이 그들이고 제시 노먼의 대부분 음반들은 솔로로 연주하는 가곡집, 성가 그리고 영가곡집들로 남아있다. 

마주어는 슈트라우스의 '4개의 마지막 노래'에서도 제시 노먼을 다시 한 번 더 초청한다. 제시 노먼은 세계적인 테너 호세 반담이라는 대가와 협연을 할정도로 그 역량이 훌륭하다. 아니, 제시 노먼을 제외하고 과연 호세 반담과 함께 공연할 수 있는 소프라노가 과연 몇이나 될까.. 마주어는 다른 몇몇을 제외한 세계적인 지휘자들과는 달리, 흑인도 차별없이 연주에 초청장을 보내 그들은 기쁘게 해준 따듯한 지휘자라이다. 지휘봉 없이 무대에 서는 마주어, 그의 지휘는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는 양 손으로 모든 단원들에게 메시지를 전한다.  마주어의 맨손은 결코 인종을 가리지 않는 다.

마주어...비록 과거의 만행을 생각하면 이쁠게 하나도 없는 독일에서, 쿠르트 마주어는 내게 세상을 아름답게 밝히는 촛불과 같은 존재로 인식된다... 세계적인 테너 바그너나 소프라노 제시 노먼은 자신을  중요 연주에 불러준 마주어에 아마도 깊이 깊이 감사할 것이다. 특히 테너 바그너는 이 작품이 유일한 메인 보컬의 영상물이다.. 아마도 테너 바그너는 이 작품을 평생 죽을 때까지 가슴에 간직할 것이다.  그 연주 할 때의 감동과 그 환희를 말이다... 

유색 인종에 대한 편견을 떨치고 그 실력을 인정할 줄 알았던 마주어....나는 그를 존경한다... 

 내가 위에서 언급했던 그 많은 세계적인 지휘자들 중 카라얀이 카르멘의 연주에서 흑인 레온틴 프라이스를 메인 보컬로 초청한 경우를 제외한다면  흑인을 메인 보컬로 초청해준 이는 드물다...그 역량이 세계적인 흑인들이 있었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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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베토벤 :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레너드 번스타인 (Leonard Bernstein) 지휘, 크리스티안 짐머만 (Krysti / DG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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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조화의 탄력성은 협연의 정의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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