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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주류 입자물리학의 입장에 반기를 드는 입장의 책 2권이 번역 출간됐다. 짐 배것의 <퀀텀 스페이스>와 자비네 호젠펠더의 <수학의 함정>이다. 현재 입자물리학의 주류는 초끈이론인데, 아직 제대로 된 실험적 검증 방법을 내놓지 못하는 상태일 뿐만 아니라, 입자물리학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중력의 양자이론으로서도 부족한 점을 지적 당하고 있다. <퀀텀 스페이스>는 초끈이론의 대안으로 제시되는 고리양자중력이론에 대한 책으로서, 창시자 중 둘로 많이 언급되는 로벨리와 스몰린의 얘기와 함께 고리양자중력이론을 소개하고 있다. <수학의 함정>은 수학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이론물리학의 실정을 비판하며 현재 주류 입자물리학이 이러한 함정에 빠져 답보 상태임을 지적하는 책이다. 


근래, 실험의 영역과는 동떨어져 존재하는 입자물리학의 상황을 비판하는 책들이 나오고 있는데, 국내에서도 차츰 번역 소개되고 있어 반가운 마음이다. 대안으로 제시되는 이론이 과연 주류를 대체할지 우리는 모른다. 하지만 현재와 같이 입자물리학이 답보 상태라면, 여러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나와서 새로운 길을 개척해 주기를 바라게 된다. 초끈이론이 아름답고 환상적이지만, 자연이 항상 아름다운 이론의 손을 들어준 것만은 아니다. 어떻게 될지 지켜보자.


다음은 주류 입자물리학을 비판하는 책들이다. 아직 일부만 번역됐다.











































이런 책들로 양자역학과 일반상대성이론에 대한 얘기를 읽는 것이 맞을까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입자물리학의 근원에 대한 책들은 대개 양자역학과 일반상대성이론에 대한 소개부터 시작하므로, 그리고 글을 쓴 저자들이 대개 최고 물리학자들 중 하나, 또는 상당한 전문가이기 때문에,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에 더해 상당한 비판의식까지 공유하게 된다.^^


비주류는 여러모로 존경할 만한 측면이 있다. 편한 길을 마다하고 어려운 길을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과연 성공할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진정한 돌파구는 이런 곳에서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반면, 평생 비주류로, 영원히 비주류로 남을 가능성도 상당히 높다. 뭐, 하고 싶은 것을 한다는데 누가 뭐랄까. 어쨌든 한 번 뿐인 인생 자기가 사는 것이다.


이 세상 모든 비주류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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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End of Physics>는 <물리학의 끝은 어디인가>라는 제목으로 1996년에 번역 출간됐는데 현재 품절되었다. 혹시 도서관에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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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0-12-24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루 욘더님 저는 초끈 이론만 읽었는데 물리학 항상 고딩때는 최악에 성적을 받았지만 대학에서 리포트는 에이로 받아서 글로 읽는 물리학은 좋아해요 ㅋㅋ욘더님 메리 크리스마스ᒄ₍⁽ˆ⁰ˆ⁾₎ᒃ♪♬

blueyonder 2020-12-24 11:12   좋아요 1 | URL
물리학이 참 매력 있는 학문입니다.^^ 찾아주셔서 감사해요.
scott 님도 메리 크리스마스~

몰리 2020-12-24 07: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세상 모든 비주류에게 박수를 보낸다! Me too too too too!

앤드류 호지스의 앨런 튜링 전기에
더글러스 호프스태터가 쓴 서문에서
˝우리 사회는 아직도, 튜링이 보여준 바의 비-순응주의를 감당하는 법을 모르고 있다˝ 이런 문장 있더라고요. Turing‘s brand of non-conformism, 이 구절에 형광펜 칠하고 음 튜링을 알아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과학자로서 튜링은 모르더라도, 비순응주의의 삶엔 어떻게든 경의를 표할 길을 찾아드리기로. ;

blueyonder 2020-12-24 11:22   좋아요 2 | URL
튜링은 사회가 박해한 대표적 천재로 종종 언급되는 것 같습니다. 불과 수백 년 전만 해도 지동설을 주장했다는 이유로 화형까지 당한 사람이 있고, 수십 년 전의 튜링은 성적지향 때문에 박해를 받았지만, 사회가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희망을 갖습니다. 수백 년, 수천 년조차 지질학적 시간에 비하면 눈 깜빡할 사이라고 저 자신을 위로합니다. 물론 아직도 권력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본능대로, 적이 될만한 사람에겐 무자비합니다. 그래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으려고 합니다.
 
당신 지식의 한계 세계관 - 과학적 생각의 탄생, 경쟁, 충돌의 역사
리처드 드위트 지음, 김희주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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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사 및 과학철학에 대한 소개서이다. 대학 교양과정의 교재 느낌이 충만하다. 총 3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는 과학철학의 기본 개념 소개, 2부는 인류 과학사의 중요한 전환점인, 아리스토텔레스 세계관에서 뉴턴 세계관으로의 전환 설명, 그리고 마지막 3부는 현대 물리학의 혁명으로 일컬어지는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 그리고 생물학에서 비슷한 위치를 차지하는 진화론에 대한 논의로 이루어져 있다. 매우 적절한 구성과 내용이고, 내가 대학 다닐 때 이런 내용으로 수업을 들었다면 얼마나 개념이 잘 정리되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이 책의 단점은 너무 교과서적인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문장이 굉장히 건조한데, 원서도 아마 그렇겠지만, 딱딱 끊어 번역하는 역자도 이런 느낌에 한몫 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개념 정리 뿐만 아니라 특히 유용했던 것은, 코페르니쿠스, 케플러, 갈릴레이, 뉴턴의 천재들이 출현하는 1600년 무렵까지 서구의 세계관을 지배했던 아리스토텔레스-프톨레이마이오스의 세계관에 대한 설명이다[1]. 특히 프톨레마이오스의 지구중심 체계에 대한 설명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을 만큼 자세했다. 이후 코페르니쿠스와 케플러를 거쳐 뉴턴에 이르러 정점에 다다르는 세계관의 혁명에 대한 설명은 알고 있는 부분이 있었음에도 매우 흥미로웠다.


양자역학이 우리의 실재 관념에 제기하는 문제에 관심이 있는데, 이 책의 3부는 조금 아쉬움이 있다. 벨의 부등식에 대한 논의도 생각만큼 엄밀하지 않다. 입문서가 갖는 한계일 수도 있겠다. 저자는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이, 특히 양자역학이 우리에게 제기하는 인식의 전환을 강조하며, 현재 우리는 1600년대와 같은, 새로운 세계관을 찾는 전환기에 살고 있다고 얘기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관은 우주가 목적을 갖고 움직이는 유기체, 뉴턴의 세계관은 우주가 정밀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기계라는 이미지를 우리에게 그려주었다. 비국소성을 보여주는 양자역학의 세계관은 어떤 모습을 우리에게 그려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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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코페르니쿠스(1473~1543), 케플러(1571~1630), 갈릴레이(1564~1642), 뉴턴(1643~1727)


  도구주의적 태도를 지킨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그런 방정식이 물체가 운동하는 방식을 탁월하게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보지만, 그 물체가 그런 방식으로 운동하는 이유에 관해서는 불가지론을 고수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방정식 특히 중력 방정식을 사용해 뛰어난 예측을 제시할 수 있지만, 중력이 '실재하는' 힘이냐 아니냐는 문제에 대해서는 입을 다무는 것이다. (198 페이지)

  낙하하는 공과 연관된 방정식 같은 경우 틀림없는 사실은 우리가 대체로 동의하는 해석이 심지어 우리가 해석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감춘다는 것이다. 우리가 실제로 수학을 해석하지만, 모두 똑같은 방식으로 수학을 해석하며, 수백 년 동안 그렇게 해온 결과 수학을 이용해 세상을 예측하려면 그 수학을 세상과 연관해 해석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기본적으로 우리가 수학을 세상과 연결하는 방식은 수학에 내재한 것이 아니라 수학을 해석하는 것이다.

...

  다시 강조하지만, 양자론 수학은 절대 묘한 것이 아니다. 그 수학의 해석이 묘한 것이다. 이 책 앞부분에서 (8장에서 도구주의와 실재론을 논의하며) 언급한 요지를 여기서 다시 떠올리면 좋을 듯싶다. 그처럼 묘하게 해석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즉 어떤 이론, 이 경우 양자론에 대해 도구주의적 태도를 지키는 것은 일반적이고 부끄럽지 않은 일이다. 양자론에 대해 도구주의적 태도를 지키는 것은 이런 자세를 취하는 것을 의미한다. 양자론 수학이 있다. 그 수학을 대단히 유용하게 사용하는 전문가들이 있다. 그 수학을 이용하면 대단히 정확하고 신뢰성 있는 예측을 할 수 있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은가? (423~424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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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흥미롭고 좋은 책이다. 기록으로, 번역서와 원서의 방정식에 나온 오타를 지적해 놓는다. 번역서에서 오타를 먼저 찾았고, 번역서만의 오타인지 알았으나 원서에도 동일한 오타가 있음을 알게 됐다. 번역하며 원서의 오타를 교정했으면, 원서보다 더 좋은 번역서가 될 뻔했으나 기회를 놓쳤다. 이 책은 번역에 아쉬움이 많이 남는 책이다. 역자가 이공계 전공자가 아니라면, 반드시 감수자가 있어야 함을 이 번역서는 보여준다. 


번역서 374페이지에 문제의 방정식이 나온다. 아인슈타인의 장 방정식field equation으로, 올바른 식은 다음과 같다.

원서와 번역서는 스트레스-에너지 텐서로 알려져 있는 T_mu-nu를 c^4과 함께 분모에 넣어버렸다. 비교적 명확한 오타이고 인터넷 검색만 해도 알 수 있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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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0-12-20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자가 원서의 오류를 발견하고, 그 사실을 역주로 설명했으면 그 역자는 정말 칭찬받아야 합니다. ^^

blueyonder 2020-12-20 18:13   좋아요 0 | URL
네 가끔 그런 부지런한 역자를 만나곤 합니다. 더 자주 만나면 좋겠습니다.^^

파이버 2020-12-20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서에도 놓친 오타를 찾아내시다니... 전문분야 교양서는 역시 감수자가 필요한 것 같아요

blueyonder 2020-12-20 18:14   좋아요 1 | URL
제가 일반상대성이론을 잘 아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han22598 2020-12-22 0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타......ㅠ equation 오타는 저에게도 상처이기 때문에ㅠㅠ 이런 독자들이 많으면 안되는데 하는 노심초사의 마음뿐입니다.

blueyonder 2020-12-22 13:59   좋아요 0 | URL
혹시 학위논문이신가요? ^^ 학위논문이야 누가 자세히 교정봐 주는 경우도 드물고 오타가 있어도 다들 그러려니 할 겁니다. 돈 주고 사서 보는 것도 아니잖아요. 마음 편히 먹으시지요. 마음 한 구석이 편치 않은 것은 저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han22598 2020-12-23 06:47   좋아요 0 | URL
학위논문오타는..그냥 잊지 쉬운데. 항상 실수를 많이 하는 편이라...사실 예전에는 맘 편한 스타일이였는데, 저때문에 다른 사람이 불편해 하는것 같아서 ㅠㅠ

blueyonder 2020-12-23 10:06   좋아요 1 | URL
실수는 누구나 합니다. 인간은 완벽할 수 없으니까요. 다른 사람이 실수를 지적하고 그 지적이 맞으며 고칠 수 있으면 그냥 고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스트레스 받지 말고요... 노력하는 속에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저는 스스로를 위로합니다.^^

han22598 2020-12-28 10:56   좋아요 1 | URL
˝노력하는 속에 가치가 있다˝ 위로가 되는 말이네요. 격려 감사해요 ^^
 
물질의 물리학 - 고대 그리스의 4원소설에서 양자과학 시대 위상물질까지
한정훈 지음 / 김영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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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입자 물리학이나 우주론을 전공한 사람이 아닌 '고체 물리학자'의 물리학 책이 반갑다. 새로운 시각, 새로운 내용은 언제나 필요하니까. 하지만 현재 진행되는 고체 물리학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흥미유발 요소가 조금 떨어지리라는 점은 어쩔 수 없다. '양자 홀 물질'이니 '그래핀'이니 하는 것들은 아무래도 '우주'나 자연의 '기본' 입자 등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일반인들에게 덜 알려진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흥미로운 비유를 들어 물질의 성질과 그의 연구 분야를 설명하려고 한 저자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책의 내용은 고등과학원에서 운영하는 과학 웹진 <호라이즌>에 저자가 연재했던 것을 상당수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일반인을 위한 글이어서 저자의 인생과 경험담도 상당히 녹아있다. 일정 부분 <김상욱의 과학공부>가 떠오른다. 글의 성격이 그렇다는 것이지 내용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의 이야깃거리는 물질이다. 물리학을 소재로 한 절대 다수의 대중 과학 서적은 우주와 입자를 다룬다. 그 중간 세계에는 인간이 있고, 일상이 있고, 일상을 점철하는 물질이란 것이 있는데, 그 물질을 대중에게 친근한 언어로 설명하는 책은 한글로도, 영어로도 찾아보기 힘들다. 물질 이론을 수십 년간 공부해온 사람으로서 참 아쉬웠다. 우리 분야의 대변서, 아니 항변서라도 한 권쯤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해왔다. 더 이상 대학교에서 승진의 부담을 느끼지 않아도 될 나이, 30여 년의 연구 경험, 그리고 지난 수년간의 대중 강연과 글쓰기 경험, 이런저런 요소를 모아봤을 때 내가 책 한 권쯤 써도 좋을 시점이란 생각이 들었다.

  책은, 그것이 소설이든 수필이든 과학 서적이든 인문 서적이든, 모두 자기 이야기를 담아내는 그릇이라고 생각한다. 대학교에서 물리학 공부를 시작한 이후로 전공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수없이 받았는데, 딱히 한두 마디로 대답할 방도가 없었다. 이제 누가 그런 질문을 한다면 두 손 모아 이 책을 한 권씩 드릴 작정이다. 이게 제 인생이었습니다. 다른 모든 책처럼 이 책은 필자의 자서전이기도 하다.

  이 책을 쓰면서, 출판된 지 몇 년 안 된 내 전공 서적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았다. 알지 못할 수식이 가득 차 있어 읽기 버거웠다. 내가 쓴 책인데, 몇 해가 지나니 이젠 나에게조차 생소했다. 그래, 이래서 책을 써야 하는구나 싶었다. 기억은 생물학적 쇠퇴와 함께 스러져가지만, 기억이 정점에 달했을 때 정리를 해두니, 기억은 사라져도 기록은 남는구나 싶었다. 이 책도 마찬가지 아닐까? 책은 기억의 기록이다. 동시에, 저자를 기억의 부담으로부터 해방시키는 통로이다. 이 책을 마무리했으니 이제 나의 생물학적 기억 공간에 새로운 걸 좀 채워볼 수 있을 것도 같다. (12~13 페이지)

이 책의 의의와 저자의 마음가짐을 볼 수 있을 것 같아 옮겨왔다. 고체 물리학은 사실 우리 주변에 있는 물질의 성질을 이해하고자 하는 학문이며, 그만큼 응용성이 크다. 물론 이 책은 우리 주변의 흔한 물질보다는 저자가 연구하는 '양자 물질'들의 세계를 다룬다. 우리 주변의 물질은 이미 이해를 잘 하고 있어서 연구할 거리가 별로 없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뒤 부분으로 가며 양자 물질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만, 앞 부분에서는 물질 및 원자의 일반적 성질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오니 너무 겁먹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원자를 소용돌이vortex로 이해하려고 했던 켈빈 경의 모델이나 핵자를 위상수학적 매듭으로 이해하고자 했던 스컴Skyrme의 모델 등 과학사에서 잊힌 이론이 결국 고체 물리학에서 부활하는 이야기는 처음 듣는 것이고 매우 흥미로웠다. 고체 물리학의 세계를 슬쩍 엿보기 원하는 사람에게 추천한다. 


  블로흐는 지도교수가 제시한 두 번째 문제에 대해 고민해보기로 했다. 금속 속에서 전자가 움직이는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면 숨이 턱 막힌다. 원자가 빽빽이 쌓여서 만들어진 게 물질이다 보니, 그 속에 사는 전자는 그저 텅 빈 공간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이 전혀 아니다. 물질 속의 실제 모습은 나무가 발 디딜 틈 없이 빽빽이 자라는 울창한 밀림에 가깝다. 전자가 과연 이런 밀림을 요리조리 잘 헤쳐가면서 물질 전체에 그 존재를 확산할 수 있을까? 만약 전자가 구슬처럼 단단한 공에 가까운 입자라면 이런 문제는 정말 해결하기 어려울 것 같다.

  그런데 전자가 애초부터 파동 형태로 존재한다고 가정하면, 상황이 전혀 달라진다. 중력 법칙의 지배를 받는 사과가 나무에서 땅으로 떨어지는 것이 당연한 것만큼이나, 전자가 물질 전체에 퍼져 있는 꼴로 존재하는 것이 오히려 당연한 일이 되어버린다. 굳이 물질이라는 밀림 속에서, 원자라는 나무 사이를 이리저리 헤치고 다니는 유리구슬 같은 전자일 필요가 없다. 그건 전자가 구슬 같은 알갱이라는 우리의 고정 관념에서 비롯된 착각일 뿐이다. 블로흐는 약간의 수학 지식만 있으면 금방 증명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전자는 고체 속에서 애초부터 파동 형태로 편재하고 있으며, 각각의 전자 상태는 조금 전 소개한 (A, B, C)라는 3개의 마디 수로 표시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해버렸다. 그가 하이젠베르크와 대면한 지 불과 1년 만인 1928년의 일이다. 이제는 (A, B, C)라는 명패가 붙은 각 방에 파울리 원리에 따라 남과 여, 두 가지 성의 전자를 차곡차곡 쌓기만 하면 고체 속의 전자 구조를 깔끔하게 이해할 수 있다. (101~102 페이지)

  입자의 대표 속성 중 하나를 꼽으라면 하나, 둘, 이렇게 셀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예견과 그 뒤에 일어난 실험적 검증에 따르면 빛도 하나, 둘 셀 수 있다. 빛도 입자다. 따라서 빛도 물질이다! (162 페이지)

  탁월한 물리학자는 어떻게 남들보다 한발 앞서는가? 내가 듣고 보고 대화해본 최고의 물리학자들은 그렇게까지 정보 취득에 민감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가장 뛰어난 물리학자들은 아마존에 투자하는 사람이 아니라 아마존을 창업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는 안목이 있다. 자신의 안목을 믿고, 아무도 가본 적 없는 길을 힘들게 덤불을 헤치면서 개척한다. 그리고 기다린다. 자신이 개척한 숲속의 오솔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차츰 많아지기를. (296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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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신문이 아주 난리다. 포털에 뜨는 소위 메이저 언론의 보도, 특히 의견을 제시하는 논설은 악담을 넘어 저주에 가깝다. 검찰총장에 대한 법무부의 징계 심의가 예정되어 있는 지금 나오는 기사는, 이 기회에 어떻게든 정부에 흠집을 내서 이 정부를 몰아세우겠다는—그래서 정권을 되찾겠다는—결기가 느껴진다. 


기록으로, 오늘 눈에 띄는 기사 제목 몇 가지를 적어 놓는다.

김대중 칼럼 – 다른 나라에서 온 대통령인가(조선일보)

배명복 칼럼 – 한국 민주주의 아직 멀었다(중앙일보)

여기는 논설실 – 문 대통령, 또 ‘장고 끝에 동문서답’(한국경제)

데스크 시각 – 광화문 광장..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나/김동현 사회 2부 차장(서울신문)

오늘과 내일(이승헌) – 강경화, 이인영으로 바이든 외교팀 상대할 건가(동아일보)

최병선의 Deep Read – 탈원전, 통치행위 아닌 이념형 정책.. 추진과정 ‘적법절차’ 어기면 수사대상(문화일보)


읽어보지 않아도 어떤 내용인지 대충 짐작이 간다. 여당이 총선에서 180석 가량 얻은 이후, 소위 ‘보수’라는 집단의 위기의식이 더 커진 모양이다. 야권에 제대로 보이는 대선 후보도 없고, 공무원인 검찰총장이 야권 후보 지지율 1위이니 그 초조함을 이해할 만도 하다. 정부와 여당의 입장을 반영하는 기사나 논조는 찾아보기 어렵고, 검찰개혁과 그에 반발하는 검찰의 조직 이기주의라는 측면에는 다들 애써 눈을 감고 있다. 법과 원칙대로 처리하려는 대통령에게는 왜 침묵하냐고 윽박지른다. 이들에게는 절대군주가 필요한 모양이다. 조선일보 김대중 씨가 ‘다른 나라에서 온 대통령인가’를 물었는데, 나는 김대중 씨에게 ‘다른 나라에서 온 국민인가’를 묻고 싶다.


내가 읽어보고 싶은 저자 리스트에 있던 주경철 교수는 조선일보 연재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실었다.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 – 국민 43.9% 표를 얻어... ‘法의 이름’으로 의회와 사법부를 학살하다


열어보면 히틀러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소제목은 ‘민주주의 파괴 집단에 표를 준 독일 국민’, ‘사법부 견제 무력화한 법무부 장관’, ‘총통의 의지가 법의 원천’, ‘惡의 피해를 본 사람이 惡을 되풀이한다’가 나온다. 조선일보 측에선 환호할 만한 내용이다. 현 정국에 대한 내용은 하나도 안 나오지만(안 쓰느라 애썼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의도했다고 본다. 이 내용에, 이런 제목을 뽑으면서 의도성이 없다고 하기는 어렵다.


방송은 좀 나은 편이지만, 이러한 언론 지형에서 40%대의 지지도를 유지하는 문재인 대통령과 지지를 보내는 국민들이 대단하다. 포털에 온통 ‘보수’의 입장만을 대변하는 기사가 쏟아지는 와중에, 나라도 이런 기록을 남겨두고 싶어 글을 적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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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20-12-01 16: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주경철이 저런 글도 쓰는군요. 책만 가지고 있고 안 읽어봐서... 지금 뭐 언론이 미쳐 돌아가고 있네요. 기득권 세력 지켜주려고!!! 주경철같은 역사 학자들은 맨날 히틀러밖에 예를 들 게 없나 봐요. 뭐하면 히틀러 히틀러.... 가만 보면 우리 나라 지식인들이 책도 잘 안 읽고 생각도 새로 고침을 진짜 안 하고 옛날 지식 옛날 생각 그대로 평생 먹고 사는 것 같습니다. 수준 이하의 역사 학자 지식인들 너무 많아요 특히나 인문학자들.. 저러니 인문이 수준 떨어지는 거죠. 그냥 한심해요. 저런 지식인들

blueyonder 2020-12-01 17:40   좋아요 2 | URL
나이 먹으면 정말 보수화되는 경향이 있긴 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보고 싶은 것만 본다면 정말 지식인이라고 할 수 없겠지요. ‘보수‘를 자처하는 분들은 대통령 지지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라고 욕하지만, 그래도 저는 객관적인 (100%는 아니더라도 상당히 객관적인) 사실이 있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우리나라가 코로나19 관련해서 대처 잘 한다고 하던 분들도 8.15 ‘보수‘ 집회 이후에는 정부가 코로나19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고 생각하시더군요. 여기에는 언론의 역할도 정말 크다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 독감 백신 맞고 사망했다는 식으로 선정적으로 기사 올리는 것을 보고 언론에 대해 없던 기대도 더욱 접었습니다.

단발머리 2020-12-01 17: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보수는 다음 정권의 얼굴도 정하지 못 하고 있어 일면 이해는 되지만 언론이 저러는 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인데.. 그게 또 가능하네요. 이러한 언론 지형에서 40%대의 대통령 지지도를 이해할수 없을 겁니다. 아니면 모르는 척 하는 걸까요? 휴우.

blueyonder 2020-12-01 17:45   좋아요 1 | URL
속을 들여다 보면 다 제 잇속 챙기기인 것 같긴 합니다만, 그래도 ‘언론인‘이라는 사람들이 이렇다는 것이 정말 절망스럽습니다. 사회의 ‘공기‘니 ‘목탁‘이니 하는 말들이 얼마나 공허한가요...

나와같다면 2020-12-03 01:42   좋아요 2 | URL
노무현 대통령을 슬프게 떠나보낸 기억을 가지고 있는 이 40% 의 지지율은 쉽게 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2020-12-01 18: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2-01 22: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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