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번역에 대한 글을 많이 올린 듯싶다. 사실 이런 글들은 번역된 책을 읽다가 이해가 안 되는 일들로부터 보통 시작된다. 이런 경우 대개 원문을 찾아보고 싶어진다. 책을 도서관에서 찾을 때도 있고, 인터넷 검색을 할 때도 있으며, 내가 가지고 있으면 좋을 것 같은 책은 사기도 한다. 원문(영어)으로 된 문장을 보면 속이 시원하다. 이해 안 되는 것이 번역문의 문제인지, 내 지식의 한계 때문인지 답이 나오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토대로 얘기해 보면 십중팔구는 번역문의 문제였다. 사실 우리나라는 누구에게 잘못됐다는 지적을 하기가 어려운 사회 중 하나이다. 얼굴을 맞대고 얘기하면서 딱 떨어지게 ‘틀렸다’라는 얘기를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한편, 우리나라는 너무 술에 물탄 듯 하는 분위기도 있다. 하지만 잘못된 것을 지적해서 당장 고치거나, 또는 다음번에 반영해서 더 낫게 하면 사회 전체를 위해 좋을 터이다. 문제는 어떻게 지적하느냐와 어떻게 받아들이냐 하는 것이다. 정답은 없겠지만, 그냥 프로페셔널하게 하면 되지 않을까. 일하다가 이건 저렇게 하는 것이 더 좋지 않겠냐는 말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듣는 사람은 그 의견이 합리적이면 그냥 받아들이면 된다. 반대로, 생각해 보고 합리적이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으면 된다. 번역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지금껏 경험한 번역본의 유형을 써 본다. 

- 번역본인지 모르겠는 경우. 

1) 최고의 번역일 수 있다. 예전에는 직역이 좋다고 생각했는데 생각이 바뀌었다. 우리말로 자연스러운 번역이 최고이다.

2) 윤문을 기가 막히게 해서 잘 읽히지만 오역투성이인 경우도 있다. 


- 직역 때문에 자꾸 되읽어야 되는 경우. 번역을 정확히 했음에도 이런 경우가 있다. 번역가가 자연스러운 우리말에 신경 쓰지 않으면 이렇게 되기 쉽다. 


-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종종) 나오는 경우.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의 원문을 찾아보면 오역인 경우가 많다. 오역의 정도와 개수도 천차만별이다. 비교적 간단한 문장임에도 잘못 번역된 것도 있고, 역자가 배경지식을 이해하지 못해 문맥을 살리지 못한 경우도 있다. 책에서 다루는 주제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으면 올바로 번역하기 힘들 때가 많다. 


- 문맥에 맞지 않아 찾아보면 역자가 저자의 뜻을 왜곡한 경우. 왜곡이 의도적인지 몰이해로 인한 것인지는 역자만 알 것이다. 


- 번역문은 괜찮은데 용어의 선택이 이상한 경우. 각 분야마다 외국어 단어들이 어떻게 우리말로 번역되는지 통용되는 것들이 있다. 이러한 용어를 제대로 사용하지 않으면 굉장히 이상하고, 그 분야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는 잘못된 지식을 주게 된다. 인명이나 지명의 우리말 표기는 어렵지만 나름 기준이 있는 듯싶다. 용어나 인명, 지명들 모두 출판계에서 통일하여 사용하면 좋겠다. 출판계 공용 용어 사전이나 인명, 지명 사전이 있으면 좋겠다.


많은 경우, 한 권의 책에 위의 유형들이 섞여있다.


전문지식이 필요한 경우에는 감수자가 있기도 한다. 하지만 감수자가 있음에도 용어 사용의 잘못이나 오역이 있는 경우가 있다. 이런 건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번역은 분명히 어려운 일이다. 그 자체로 번역가의 글 솜씨를 드러내는 (문학) 작품이기도 하다. 여기에 더해 편집자의 역할도 있다. 출판계의 사정을 정확히 모르지만, 편집자란 출판하는 글을 읽어보고 ‘편집’하는, 그래서 글을 더 좋게 만드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당연히, 오타와 비문 교정에 더해 오역도 걸러내야 할 것이다. 내가 종종 이해하지 못하겠는 것은, 명백한 오역처럼 보이는 문장을 편집자들이 왜 그냥 두느냐이다. 과학서적의 경우는 과학적 지식이 있으면 잘못된 문장처럼 보이는 것들을 비교적 명확히 찾아낼 수 있다. 편집자도 물론 각자 전공 분야가 있을 것이고 모든 분야의 서적을 다 명확히 이해해 낼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본인의 전공과 관심 분야에 맞춰 분야별 전문 편집자가 책임을 가지고 책을 편집하여 출간하길 기대한다. 


번역가 이희재의 번역에 대한 두 번째 책이 출간됐다는 것을 최근 알게 됐다. 모든 주장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좋은 번역을 위한 그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며 읽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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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오 2023-02-08 05: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해가 안 될때 원문을 보고 속시원해하시는 블루님의 뇌를 갖고싶다....

blueyonder 2023-02-08 10:01   좋아요 2 | URL
기꺼이 드릴게요. 대신 미지의 가능성으로 가득 채울 수 있는 은오 님 뇌를 제게 주세요 ㅎㅎㅎ

북깨비 2023-02-08 16: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같은 경우에는 영어를 배우기 전에 읽었던 동화책이나 어린이 세계명작, 주니어문고 같은 것들은 (예를 들면 나니아 연대기) 나중에 원서로 읽었을 때 어린 시절 처음 접했을 당시 그 때 그 느낌이 안 나서 오역 내지 의역의 여부와 상관없이 번역본을 선호하게 되더라고요. 한국어 표현이 (특히 형용사적인 면에서) 영어에 비해 좀 더 아기자기한 맛이 있는 것 같아요.

blueyonder 2023-02-08 16:34   좋아요 2 | URL
올바로 번역된 번역서는 원서와 내용상 차이가 없어야겠지요. 저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잘 전달해야 하고요. 좋은 번역서라면 굳이 원서와 번역서를 구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북깨비 2023-02-08 16: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그리고 번역본 중에 독해 난이도가 가장 높은 것은 성경이 아닐까 싶습니다.. 너무 어려워서 그냥 영어로 읽어요. 😭 (히브리어는 못 읽으니까요.)

blueyonder 2023-02-08 16:40   좋아요 2 | URL
번역이 중요하다는 또 다른 예인 것 같네요. ‘현대인의 성경‘ 같은 것은 그래도 읽을 만합니다.

북깨비 2023-02-11 00:57   좋아요 1 | URL
한글성경이 너무 어려워서 English Standard Version (ESV)를 읽고 있었는데 앞으로는 현대인의 성경 (KLB)와 병행해서 읽어봐야 겠습니다. 갑자기 생각나서 찾아보니 다행히 지금 쓰는 Bible 앱에 KLB가 제공이 되는군요. 읽어보다가 괜찮으면 책으로도 한 권 사야겠어요. 추천 감사합니다. 🙂

blueyonder 2023-02-11 08:30   좋아요 1 | URL
도움이 되셨다니 다행입니다. 알려주셔서 감사드려요.
 















<전날의 섬>에는 공간과 시간에 대한 대화도 들어 있다. 파리의 철학자 동아리에서 파스칼(1623~1662)로 생각되는 청년도 함께 참여해서 했던 논의를 회상하는 부분이다.


  ... 자유 사상가 동아리 중의 하나가 그 말을 받았다. ⌜... 허공은 시간과 같아. 시간은 질량의 운동이 아니라네. 왜냐? 운동은 시간에 종속되어 있지만 시간은 운동에 종속되어 있지 않거든. 시간이라고 하는 것은 무한한 것, 창조의 대상이 아닌 원천적인 존재인 것, 영속적인 것이거든. 시간은 공간의 결과가 아니야. 시간은...... 말자자면 그 자체로서의 그것인 것, 허공도 마찬가지라네. 역시 그 자체로서의 그것인 것이라는 말이네.⌟ (594~595 페이지)


   “... The Void is like time,” one of the Roberto’s libertine friends commented. “Time is not the quantity of movement, because movement depends on time and not vice versa; it is infinite, increate, continuous, it is not an accident of space... Time is, and that is that. And the Void is. And that is also that.” (p. 432)


절대공간, 절대시간에 대한 생각이 위의 진술에 들어있다. 번역이 좀 어렵긴 하지만 원문의 뜻을 전달하고 있다. 디뉴 신부가 부연한다.


   누군가가, 어떤 사물을 설명하면서 정의에 접근하지 않고 <그 자체로서의 그것인 것>은 정밀하지 못한 태도라고 항변했다. 거기에 대해 디뉴 신부가 이런 말을 했다. ⌜여보게들. 옳은 말이네. 공간은 시간도 물체도 아니고 기(氣)도 아니야. 굳이 설명을 요구한다면 무형물이라고 해도 좋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실재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네. 시간과 공간은 어떤 원인의 우유적(偶有的)인 결과도 아니요, 그렇다고 해서 실체인 것도 아니야. 그런데도 불구하고 천지창조 이전부터 있어 오던 것, 어떤 우유적인 결과나 실체에도 선행하는 것, 모든 실체가 그 모습을 감추고 난 뒤에도 계속해서 존재하게 될 어떤 것이라네. 그 안에 무엇을 어떻게 넣건, 시간과 공간이라는 것은 바꿀 수 없는 것, 변경시킬 수 없는 것이라네.⌟ (595 페이지)


   Some protested, saying a thing that is and that is that, without having a definite essence, might just as well not be. “Gentlemen,” the Canon of Digne then said, “it is true, space and time are neither body nor spirit, they are immaterial, if you like, but this does not mean they are not real. They are not accident and they are not substance, and yet they came before Creation, before any substance and any accident, and they will exist also after the destruction of every substance. They are immutable and invariable, whatever you may put inside them.” (p. 432)


20세기 초, 상대성 이론은 절대공간, 절대시간이란 개념을 부숴버리고 새로운 개념—시공간—을 도입했다. 이제 공간과 시간은 더 이상 절대적이고 변하지 않는 존재가 아니다. 어쨌든 과학혁명이 시작되어 곧 뉴튼의 만유인력 법칙으로 절정을 맞게 될 시점에서, 이들의 논의를 지켜보는 것은 흥미롭다. 


에코는 이후, 로베르토를 통해 의식과 영혼에 대한 상념을 이어가며 돌의 생각에 대한 언설도 늘어놓는다.


   하느님 맙소사...... 나에게 영혼이 있다는 것이 대견하다. 돌도 영혼이 있다는 것을 대견하게 여길 것이다. 그런데 나는 돌에게도 영혼이 있다는 바로 그 사실에서, 내 영혼이 내 육신을 살려 내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런데 나는 왜 돌 노릇을 즐기면서 돌에 대한 생각을 계속하는가? 죽으면 나에 대한 것은 아무것도 모르게 될 터인데...... (660 페이지, 밑줄 추가)


위의 번역에서는 잘못된 부분(밑줄)이 있다. 


   My God, I could enjoy the soul, and even the stones could enjoy it, and precisely from the soul of stones I learn that my soul will not survive my body. Why am I thinking and playing at being a stone, when afterwards I will know nothing further of myself? (p. 480, 밑줄 추가)


“my soul will not survive my body”에서 “survive”는 ‘~보다 오래 살다’의 의미이므로 결국 ‘내 육신이 죽으면 내 영혼도 사라진다’는 말이다. 이렇게 번역해야 뒤의 “죽으면 나에 대한 것은 아무것도 모르게 될 터”라는 문장이 잘 이어진다. 의식에 대한 현대의 ‘물리주의’적 관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책을 읽다보면 로베르토와 그의 “자유 사상가” 친구들의 우주와 인간에 대한 생각이 매우 현대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마 당시의 시대상을 보여주기 위해 에코가 의도한 바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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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2-12-12 1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건 이탈리아어, 불어, 영어, 한국어로 삼중역 됐을 때의 오류를 지적하시는 거.... ㅎㅎㅎ 맞습니까? 오, 아닌 거 같군요. 제가 아는 이윤기의 삼중역은 그리스인 조르바 밖에 없습니까요.
음. 다른 게 아니고요, 이 작품은 정말 다시 번역해야 한다는 걸 강조하려다 말이 좀 심해졌습니다. 죄송합니다. -_-;;

blueyonder 2022-12-13 08:48   좋아요 0 | URL
네, 삼중역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은 아닙니다. ^^;; 저는 영역본과 국역본만 가지고 있는데, 영역본은 이탈리아어 원본을 바로 번역한 것으로 보입니다. 영역본의 역자 후기를 보면 에코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는 말이 있습니다. 말씀하시는 뜻은 잘 알겠습니다~

2022-12-15 17: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2-15 22: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2-16 13: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2-16 14: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전날의 섬>이 펼쳐지는 시대적 배경인 1643년은, 코페르니쿠스(1473~1543)와 갈릴레이(1564~1642), 그리고 케플러(1571~1630) 등에 의해, 2천여 년 동안 지속되어 오던 아리스토텔레스적 세계관에 결정적 균열이 생긴 이후이다. 1643년은 아이작 뉴튼이 태어난 해이기도 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관에서 우주는 세속적이며 변화하는 지상계와 영원하며 변하지 않는 천상계로 나뉘어져 있다. 움직이지 않는 지구가 지상계의 중심이며, 천상계는 이러한 지상계를 돈다. 지상계와 천상계의 경계는 달이며, 달의 위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신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다. 천상계에는 태양, 행성들, 그리고 별들이 박혀 있는 천구가 있다. 우리 주변에서 무거운 것은 아래로 떨어진다는 관찰을 전체 우주에 적용하여 위와 같은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이것이 지구중심설(천동설)이며, 이를 대체하여 새롭게 나온 세계관이 태양중심설(지동설)이다. 


<전날의 섬>에는 이와 같은 변혁의 시기에 여전히 지구중심설의 세계관을 고집하는 카스파르 신부의 다음과 같은 말이 나와 있다. 


   ⌜그래서? 그대가 신봉하는 갈릴레이주의자들[이]나 코페르니쿠르스주의자들은, 지구가 중심에 버티고 있고, 천체가 거대한 원을 그리면서 돌고 있다는 생각 대신, 태양을 우주의 중심에다 고정시키고, 모든 행성들이 거대한 원을 그리면서 돌고 있다는 생각을 고집한다. 어떻게 Dominus Deus(주 하느님)께서 태양을, 휘황찬란하고 영원한 별들에 둘러싸인, 타락한 지구의 가장 낮은 자리에 두시겠는가? 그대 생각의 어디가 잘못 되었는지 이제 알겠는가?⌟ (421 페이지, 밑줄 추가) 


위의 글에서 밑줄을 그은 “태양을 ... 타락한 지구의 가장 낮은 자리에 두시겠는가?” 부분이 이상하다. ‘태양을 지구의 가장 낮은 자리에 둔다’는 말은 태양이 지구의 속(중심)에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영역본을 보자. 


   “So! And your Galileans or Copernicans want to have the sun in the center of the universe fixed and making move all the great circle of the planets around, instead of thinking the movement from the great circle of the heavens comes, while the earth remains still in the center. How could Dominus Deus put the sun in the lowest place and the earth, corruptible and dark, among the luminous and aeternal stars? Understand your error?” (pp. 304-305, 밑줄 추가) 


영역본은 어떻게 태양을 가장 낮은 곳(우주의 중심)에, 타락한 지구를 영원한 별들 사이에 두겠느냐, 이상하지 않냐고 카스파르 신부가 물어봄을 보여준다. 지구중심설의 세계관에 따르면 태양중심설은 정말 이상한 얘기이다. 하지만 세계관을 바꾸면 전혀 이상하지 않다. 우리는 지금 그러한 세계관 속에서 살고 있다. “타락한 지구”와 같은 형이상학적 생각은 이제 사라졌다. 


지구중심설의 세계관에 맞게 다음처럼 고치면 카스파르 신부의 질문이 더 잘 이해된다. 


   “그래서? 그대의 갈릴레이주의자나 코페르니쿠르스주의자들은 태양이 우주의 중심에 고정되어 있고 행성들이 커다란 원을 그리며 태양을 돈다고 주장하지. 움직이지 않는 지구를 중심으로 천체가 돈다고 생각하지 않고 말이야. 어떻게 주 하느님께서 태양을 가장 낮은 곳에 두시고, 타락하고 어두운 지구는 밝게 빛나고 영원한 별들 사이에 두시겠나? 뭐가 잘못 됐는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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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의 섬L'isola del giorno prima>은 움베르토 에코가 1994년에 이탈리아어로 출간한 책이다. 영역본은 1995년에 출간됐으며(위 오른쪽), 우리말 번역은 1996년에 상, 하 2권으로 출간됐다가 2001년에 한 권으로 합쳐져서 다시 출간됐다(위 왼쪽). 우리말 번역은 이윤기 선생이 했다. 전반적으로, 에코의 박식함에서 우러나는 끝없는 너스레와 여러 언어를 오고 가는 문장들을 잘 번역했다는 평을 받는다. 번역본에 가끔 어려운 한자어가 튀어 나오는데, 이조차 뭔가 원래의 에코를 읽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이제는 시대에 뒤쳐진 느낌이 들기도 한다. 사실 에코를 읽으면서 처음부터 그 역사적 배경을 다 이해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모르는 것은 일단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면 된다. 한자어도 마찬가지다. 다행히도 한자가 병기되어 있어 대충 뜻을 짐작할 수 있다. 다음은 내가 처음 접한 낯선 한자어의 예시이다:


현장(舷墻)으로 기어오르고, 색구(索具)를 따라 기어가다가...” (13 페이지)


이런 장애를 넘으며 마음을 느긋하게 먹으면 읽을 만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읽으며 당연히 눈살이 찌푸려지는 부분이 있는데, 주어-술어가 호응하지 않거나 조사가 맞지 않는 등의 경우이다. 뭐, 두꺼운 책이니 실수가 있을 수 있지만, 일반 독자는 찾는데 편집자는 못 찾는다는 것은 둘 중의 하나이다. 편집자가 제대로 읽어볼 시간이 없을 만큼 급히 출간했든지, 아니면 편집자가 성의가 없는 경우이다[*]. 여러 출판사에서 이미 출간된 많은 세계문학이 쌓여 있을 텐데, 새 책만 내려고 하지 말고 지난 책이라도 다시 낼 때에는 오류는 바로 잡으면 좋겠다. 다음은 고쳤으면 싶은 오류의 예시이다:


<다프네> 선상에서 회고하는 것으로 보아 나는 로베르토가 카살레에서 아버지를 잃었을 뿐만 아니라 이러저러한 한 무수한 사건에 시달리면서, 우주를 덧없고 불가해한 부조리로 파악한다.” (207 페이지)


하지만 나의 지리학적 관심과 그의 역사학적 관심을 별개다.” (360 페이지)


위의 문장들은 거슬리긴 하지만 그냥 고쳐 읽고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그 외, 이윤기 선생의 번역이 매끄럽지 않은 부분이 눈에 띄기도 한다.


백설같이 흰 옷으로 나무는 창백하게, 주변의 풍경은 은빛으로 물들이는 숲의 여왕이 상복에 가려진 섬의 산꼭대기에 나타나려면 더 있어야 했다.” (154 페이지)


위의 문장은 처음에는 무슨 말인가 했는데 여러 번 읽으니 어떻게 연결해서 읽어야 할지 알 것 같다. 영역본은 이렇다.


The queen of the forest, who in snowy dress whitens the woods and silvers the countryside, had not yet appeared above the peak of the Island, covered in mourning.” (p. 107)


“백설같이 흰 옷으로 나무는 창백하게, 주변의 풍경은 은빛으로 물들이는”의 전체가 “숲의 여왕”을 꾸며주는데, “창백하게” 다음의 쉼표가 제대로 된 이해를 방해하는 듯이 보인다. “백설같이 흰 옷”은 여왕이 입고 있는 것이다. 달이 뜨면 풍경이 하얗게 물드는 모습을, 하얀 드레스(“백설같이 흰 옷”)를 입은 “여왕”이 나타남으로 묘사하고 있다. 


다음과 같은 부분도 있다.


“... 이야기를 계속해서 읽으려면 그저 믿는 수밖에 없다. 이야기라고 하는 것은, 자유 사상의 신봉자에게도 도그마 노릇을 하는 법이다.

   따라서 이렇게 된다. <다프네>의 목적은 경도 180도, 즉 솔로몬의 섬이 지나가는 지점이라면, 나의 평결이 솔로몬 왕의 평결같이 명쾌하다면, 우리의 솔로몬은 솔로몬 제도 중에서도 가장 솔로몬적이어야 한다. 무슨 말인가 하면 솔로몬이 아기를 토막 내었듯이, 문제의 핵심을 일도양단(一刀兩斷)해야 한다는 것이다.” (360~361 페이지)


너스레인 것은 알겠는데, 사실 이해가 잘 안 된다. 영역본은 다음과 같다.


“... if you would listen to stories—this is dogma among the more liberal—you must suspend disbelief.

   So: the Daphne was facing the one-hundred-eightieth meridian, just at the Solomon Islands, and our Island was—among the Islands of Solomon—the most Solomonic, as my verdict is Solomonic, cutting through the problem once and for all. (p. 260)


우리말 번역이 오해를 불러일으키며 좀 더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먼저, “자유 사상의 신봉자”에게 도그마가 되는 것은 “이야기” 자체가 아니라 “이야기를 들으려면 불신은 잠시 내려놓아야한다”는 점이다. 그 다음 나오는 에코의 너스레는 이렇게 이해된다: <다프네>가 경도 180도를 마주하고 있고, 거기에 (소설 속의 인물들이 믿듯이) 솔로몬 제도가 있다면, 지금 이 섬은 솔로몬 제도의 섬들 중에서 가장 솔로몬적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를 일도양단하는 내 평결이 솔로몬적이듯이.


마지막으로, 핵심적이지만 우리말 번역이 부정확한 부분은 이 책의 핵심 소재와 관련이 있다. 17세기, 유럽인들의 대양 항해가 활발하게 전개되는 와중에, 아무런 지형이 없는 바다에서의 위치를 찾는 문제를 이 책은 다루고 있다. 지구라는 구체 위에서의 위치는 위도(latitude)와 경도(longitude)를 이용하여 나타낸다. 적도로부터 남북으로의 위치는 위도를 이용하여 나타내며, 위도는 별이나 태양의 높이를 측정하여 비교적 정확히 구할 수 있다. 문제는 경도인데, 경도는 기준 경선(본초 자오선prime meridian)으로부터 얼마나 동 또는 서로 떨어져 있는지를 나타낸다. 지구는 24시간을 주기로 한 바퀴(360도) 회전하므로, 1시간의 차이는 경도 15도에 해당한다(360도/24시간 = 15도/시간). 이 말은 기준 경선의 시간을 정확히 알 수 있다면, 현재 위치한 곳의 시간과 비교해서 경도를 잴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즉, 기준 경선이 정오이고 현재 내가 있는 곳이 오전 9시라면, 난 기준 경선에서 45도(3시간 차이) 만큼 서쪽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정확한 시계가 항해에 필요하며, 이를 둘러싼 경쟁과 암투가 <전날의 섬>의 배경이 된다.


책은 특히 기준 경선(본초 자오선)에서 180도 만큼 떨어진 곳에 있는 섬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사건을 기술한다. 기준 경선에서 180도 떨어진 경선은 대척 자오선(antipodal meridian)이라고 한다. 관련하여 잘못된 번역이 눈에 띈다. 


“... 타베우니 제도는 화산도(火山島)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에는 로베르토가 서쪽에서 본 것 같은, 꽤 큰 섬도 있다. 그러나 카스파르 신부가 로베르토에게, 결정적인 경선, 말하자면 본초 자오선이 바로 그 섬 바로 앞을 지난다고 주장한 것에는 문제가 있다. 우리가 그 경선의 서쪽에 있다면, 타베우니 섬은 동쪽에 있는 것이지 서쪽에 있는 것은 아니다. 만일에 우리가, 로베르토가 묘사하고 있는 섬을 서쪽에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면, 동쪽에는 작은 섬(내가 생각하기에는 아마도 콰메아 섬)이 더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 경우 본초 자오선은, 이 이야기의 섬을 보는 사람의 등 뒤로 지나가게 된다.” (359~360 페이지)


역자는 문제의 경선(“결정적인 경선”)을 “본초 자오선”이라고 반복해서 말하지만, 이는 본초 자오선이 아니라 “대척 자오선”이다. 영역본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 The outline of Taveuni shows a volcanic chain like the large island Roberto saw to his west. Except that Father Caspar had told Roberto that the fatal meridian passed just in front of the bay of his Island. Now, if we find ourselves with the meridian to the east, we see Taveuni to the east, not to the west; and if to the west we see an island apparently corresponding to Roberto’s description, then we surely have to the east some smaller island (my choice would be Qamea), but then the meridian would pass behind anyone looking at the Island of our story.” (pp. 259-260)


여기에 prime meridian이란 단어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또, “타베우니 제도”는 “타베우니 섬”이라고 하는 것이 맞다. 지도를 찾아보면 타베우니 섬은 피지Fiji에 있는 섬의 하나이다.


전반적으로 볼 때, 위와 같이 좀 부정확한 것들만 넘기면 읽을 만하다고 할 수 있다. 영역본이든 국역본이든 에코는 어렵지만, 참고 읽으면 역사적 배경에 더한 나름의 지적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

[*] 난 출판업계에서 일하지 않으므로 사정을 정확히 모른다. 단지, 소비자의 입장에서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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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29 18: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2-16 15: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Power, time, gravity, love. The forces that really kick ass are all invisible. (p. 396)

  "Another war is always coming, Robert. They are never properly extinguished. What sparks wars? The will to power, the backbone of human nature. The threat of violence, the fear of violence, or actual violence is the instrument of this dreadful will. You can see the will to power in bedroom, kitchens, factories, unions, and the borders of states. Listen to this and remember it. The nation-state is merely human nature inflated to monstrous proportions. QED, nations are entities whose laws are written by violence. Thus it ever was, so ever shall it be. ..."

...

  The League of Nations? Surely nations knew laws other than warfare? What of diplomacy?

  "Oh, diplomacy," said M.D. [Morty Dhondt], in his element, "it mops up war's spillages; legitimizes its outcomes; gives the strong state the means to impose its will on a weaker one, while saving its fleets and battalions for weightier opponents. Only professional diplomats, inveterate idiots, and women view diplomacy as a long-term substitute for war."

  The reductio ad absurdum of M.D.'s view, I argued, was that science devises ever bloodier means of war until humanity's powers of destruction overcome our powers of creation and our civilization drives itself to extinction. M.D. embraced my objection with mordant glee. "Precisely. Our will to power, our science, and those v. faculties that elevated us from apes, to savages, to modern man, are the same faculties that'll snuff out Homo sapience before this century is over! You'll probably live to see it happen, you fortunate son. What a symphonic crescendo that'll be, eh?" (pp. 444-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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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18 16: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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