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ombing War : Europe, 1939-1945 (Paperback)
Overy, Richard / Penguin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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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에는 기존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형태의 전쟁이 전개됐는데, 그 중 가장 특기할 만한 것이 바로 '전략폭격(strategic bombing)'이다. 최근 개봉한 영화 <오펜하이머>에도 그 한 예가 나오는데 일본의 두 도시에 가해진 원자폭탄 투하이다. 일본에서는 단 두 발의 원폭 투하로 인해 약 20만명이 사망했다고 하며, 이 책의 주요 주제인 유럽에서의 전략폭격은 50만 명 이상의 사망자를 낳았다. 사망자의 대부분은 민간인이었다. 이 책은 어떻게 이러한 비인간적인 전략을 영미 양국이 실행했는지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으로 살펴본다. 


2차대전 초기(1940~41년)에는 독일 공군이 영국 도시들을 폭격했지만, 1943년에 들어서면서 영미 양국 공군은 독일의 영국 폭격을 압도하는 규모로 독일 점령지역과 독일 본토를 무자비하게 폭격했다. 전략폭격은 전선에서의 육군(또는 해군)을 지원하는 전술폭격과 대비되는데, 장거리 폭격기를 이용하여 적국 깊숙이 가서 적의 전쟁수행과 연관된 모든 것을 파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모든 것'에는 방위산업체에서 일하는 민간인들도 포함된다. 영국은 야간폭격을 통해 그냥 도시의 중심부에 무차별적으로 폭탄을 퍼부었으며, 미국은 항공기 공장이나 정유 시설 등에 주간폭격을 통해 좀 더 정확히 폭격을 가하려고 했다. 하지만 높은 고도에서 실행되는 전략폭격은 그 정확도가 형편없어서 목표물보다는 그 주변의 민간인에게 더 큰 피해를 입혔다. 


전간기에 영미 양국은 전략폭격의 이론을 가다듬었는데, 전략폭격을 통해 적국의 전쟁수행 의지를 꺾어 전쟁을 빨리 끝낼 수 있다는 효과까지 기대했다. 하지만 전략폭격은 결국 그 기대에 미치지 못했음을 저자는 보여준다. 폭격으로 인해 발생한 이재민은 중앙정부 및 지방정부의 지원에 더욱 기댈 수밖에 없었으며, 전쟁은 결국 독일 본토의 직접 침공 및 점령으로 끝이 났다. 영미 양국이 전략폭격에 들인 엄청난 인력과 재원으로 차라리 전술폭격과 기존 전쟁 무기에 투자하여 전쟁을 수행했다면, 실제 발생했던 폭격으로 인한 민간인 인명피해 없이 전쟁을 더 빨리 끝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전쟁은 결국 전쟁당사자들을 모두 악마화한다. 영국과 미국은 독일과 일본을 악마화했으며 폭격을 당해도 싼 존재로 치부했다. 일본과 독일도 적국에 대해 마찬가지의 태도를 보였다. 결국 전쟁을 일으켰던 독일과 일본은 패배했다. 이 패배의 이면에는 엄청난 인명경시와 민간인 사망이 배경으로 깔려있다. 지금도 전쟁은 지속되고 있다. 보통 전쟁을 시작할 때는 금세 끝낼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만 전쟁은 결코 계획한 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언제 세계에서 전쟁이 사라질 수 있을까. 한반도에는 언제 대결이 종식되고 진정한 평화가 찾아올까. 전쟁의 비참함을 알아야만 전쟁을 함부로 입에 담지 않게 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정의로운 전쟁이란 없으며 오직 비인간적인 인명의 살상만이 있음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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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3-08-18 2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미국이 도쿄가 아니라 히로시마에 원폭한 이유가 도쿄에는 재래식 융단 폭격으로 히로시미와 나카사키 죽음보다 더 많은 25만명을 이미 죽여서 더 이상 죽일 사람이 없어서 히로시미로 결정했단 얘길 듣고 경악했습니다. ㅠ

blueyonder 2023-08-19 10:05   좋아요 1 | URL
네 소이탄 공격으로 도쿄의 상당 부분이 이미 잿더미가 됐고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한 상황이었지요. 저도 이런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ㅠ
 















요즘 세상을 삐딱하게 보기에 대해 생각한다. 근래 이희재 번역가의 <번역전쟁>에서 1차대전은 영국이, 2차대전은 미국이 ‘금벌의 이익을 위해’ 일으켰다는 얘기를 읽은 바 있다. 최근 ‘정준희의 해시티비’에서 미국의 우리나라 국가안보실 도청과 관련한 내용을 들었다(‘도쿄의 주인, 서울의 하인, 워싱턴의 연인’). 결국 미국은 자신들의 ‘제국주의적 이익’(앉아서 돈 벌기)을 위해 자국, 타국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인 도청 및 정보수집을 한다는 것이다. 세계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그러는 것이 아니다. 미국이 보통 생각하는 그 미국이 아니고 러시아, 중국이 보통 생각하는 그 나라들이 아닌 것 같다는, 예전에 유시민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읽었던 것과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된다. 과장이 있을지라도 이러한 시각에 대해 자꾸 읽고 살펴보게 될 듯싶다[1]. 


요즘 2차세계대전 당시의 공중폭격에 대한 책(Richard Overy의 <The Bombing War>)을 읽고 있는데, 이른바 민주주의 국가라는 영국과 미국에서만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전략폭격’을 실행할 계획을 세웠고 실제로 수행했음을 알게 된다. ‘총력전(total war)’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적국의 전의를 꺾고 산업기반과 정부조직을 와해시키기 위해 민간인을 학살했던 것이다. 히틀러조차도 우려를 표했던 일을 영국과 미국의 지도자(군 지도자 포함)들은 거리낌 없이 지시했다. 사망자에 대한 통계는 굉장히 편차가 심한데, 대략 유럽에서 60만 명, 일본에서 90만 명 정도로 일단 정리해 두자. 


영국과 미국은 전략폭격이 결국 독일과 일본이 먼저 벌인 공중폭격(게르니카, 바르샤바, 로테르담, 충칭 등)에 대한 인과응보라는 식으로 얘기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러한 추축국의 폭격은 사실상 전술폭격에 가까웠다는 평가를 Overy는 내린다. 하지만 영국과 미국은 2차대전 발발 전부터 전략폭격의 개념을 가다듬어 실행할 생각을 했다. 한국전쟁에서도 미국은 엄청난 양의 폭탄을 북한에 쏟아부었으며 대략 30만 명 정도의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보고가 있다(이 인원 모두가 민간인은 아닌 듯 보인다)[2]. 이 자료를 보면 미군은 총 635,000톤의 폭탄을 북한에 투하했는데, 이 숫자는 미군이 2차대전 전 기간 동안 유럽전선에 투하한 160만 톤, 태평양전선에 투하한 50만 톤(이중 일본 16만 톤)과 대비된다. 


전쟁은 무슨 일이 있어도 피하는 것이 맞다. 한국전쟁을 직접 겪으신 내 어머니는, 북한에 쌀을 좀 주면 어떠냐, 달래서라도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씀하신다. 어머니는 폭격도 직접 겪으셨고 집안 어른이 폭격으로 돌아가시는 것도 보셨다. 전쟁을 직접 겪지 않은 자들만이 전쟁을 불사하자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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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하준 교수도 최근 라디오 인터뷰에서 다른 맥락으로 비슷한 얘기를 했다. "미국은 '원래 그런 나라' 한국 혼자 열녀문 세우는 중"

[2] https://en.wikipedia.org/wiki/Bombing_of_North_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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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부분을 영문판과 비교하여, 오역 또는 오식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을 다음에 정리해 놓는다. 밑줄은 알아보기 쉽도록 추가한 것이다.


48페이지, 2. 기갑사단: “히틀러는 소련과의 전투를 위해 기갑사단의 수를 두 배로 늘렸다. 이를 위해 점령지의 비축량을 끌어오고 기존 전차를 3분의 1 줄였는데 부족분은 품질을 상승시켜 상쇄하고자 했다.” --> “... 전차를 3분의 1 만큼 줄였는데 부족분은 품질을 상승시켜 상쇄하고자 했다.” 3분의 1로 줄인 것과 3분의 1 만큼 줄인 것은 큰 차이이다.


67페이지: “독일 해군은 ... 1930년대 들어 엄청난 전투력 강화와 현대화를 거쳤고, 덕분에 영국 해군과 정면 승부는 어려울지라도 끊임없는 위협(유보트, 위장레이더, 대형 군함의 간헐적 등장 등)을 가하거나 ...” --> “... 끊임없는 위협(유보트, 위장습격함, 대형 군함의 간헐적 등장 등)을 가하거나 ...” 위장레이더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이다. 레이더라고 하면 radar가 생각난다. 원어는 camouflaged raider이다.


68페이지: “결국 산호해에 배치된 두 척의 항공모함은 그대로 무력화됐고(194254~8), 그 결과 기동부대의 전투력3분의 1로 줄어들고 말았다. 일본은 결국 네 척의 항공모함으로 미드웨이에 도착(194264~7)했고, ...” --> “... 전투력은 3분의 1 만큼 줄어들고 말았다....” 앞과 마찬가지의 오류이다. 일본 기동부대의 항모 6척 중 2척이 무력화됐으니 남아 있는 항모는 4척이고 3분의 1 만큼 줄어든 것이다.


71페이지, 2. 무장친위대, 군대 안의 군대 ‘심각한 불균형’: “반나치주의 사단 혹은 ...” --> “대파르티잔 사단 ...” 대파르티잔의 원어는 anti-partisan이다. 무장친위대 안에 반나치주의 사단이 있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가?


84페이지, 그래픽: “2,300+ 1,450포위” --> “2,300+ 노획당한 1,450


90페이지: “일본의 지휘관들은 보조 대형에 집착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있었다.” --> “일본의 지휘관들은 부차적 기지에 집착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있었다.


91페이지: “비록 독일의 유보트 함대만큼 제2차 세계대전의 전설적인 역사로 여겨지지는 않지만, 미국의 잠수함 부대인 침묵의 함대일본의 거대 잠수함인 가토급 잠수함 역시 태평양 전쟁에서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 --> “... 미국의 잠수함 부대인 침묵의 함대’, 특히 대형 가토급 잠수함은 태평양 전쟁에서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 가토(Gato) 급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해군의 주력 잠수함이다. 게이토로 읽는 것이 좀 더 정확하다.


98페이지: “로스틴 에르빈 사령관” --> “에르빈 로스틴 대위”. 영문판에는 Commander로 나온다. 그의 독일해군 계급은 Kapitänleutnant이다. 찾아보면 대위 계급에 해당한다.


98페이지, “1942년 공격받은 호송선단...의 구성그래픽: “수송선 x 4” --> “초계함 x 4”. 초계함의 원어는 corvette이다.


102페이지: “1940이탈리아가 몰타 점령에 실패하면서 몰타섬에도 보급이 필요해졌다.” --> “1940이탈리아가 점령에 실패한 몰타섬에도 보급이 필요했다.” 번역문은 이탈리아의 몰타섬 점령 실패로 인해 몰타섬 보급이 필요해진 것 같은 오해를 낳는다.


102페이지: “독일의 롬멜 장군은 이탈리아 해군의 도움으로 필요한 보급량의 80%를 수송 받을 수 있었다.” --> “독일의 롬멜 장군은 보급량의 80%를 이탈리아 해군을 통해 수송 받았다.” 롬멜은 필요한 보급을 충분히 받지 못했으며 이로 인해 제대로 전투를 할 수 없었다. 만약 필요한 보급량의 80%를 (이탈리아 해군의 도움으로) 받았다면 보급을 비교적 잘 받은 것이다.


105페이지: “국군은 이탈리아령인 리비아에서 1,000km를 진격하다가, 반대로 영국령인 이집트를 침공해 일주일간 전투를 치르고 결국 정복에 실패하고 돌아오던 독일-이탈리아 군과 마주하기도 했다.” --> “영국군은 리비아에서 1,000km를 진격하다가 독일-이탈리아 군에게 저지당했으며, 독일-이탈리아 군은 1주간의 전광석화 같은 습격 후 이집트에서 멈춰서고 말았다.” 번역문대로면 시간적 순서가 이상하다. 영국군의 리비아 진격 이후 독일-이탈리아 군이 반대로 영국군을 몰아내며 이집트로 진격했다.


105페이지: “그러므로 1942년 여름, 롬멜이 절망적인 진격을 계속 강행한 것은 적절한 선택이었다. 그것은 전략적 승리를 쟁취하기 위한 유일한 방책이었다. 그러나 완전 돌파까지는 아직도 100km가 남아 있었다.” --> “... 그러나 완전 돌파까지는 약 100km가 모자랐다.” 100만 km는 지구와 달 사이 거리(약 38만 km)의 2.5배가 넘는 거리이다.


111페이지(스탈린그라드 전투): “수송 중 발생하는 피해는 끔찍하리만큼 컸지만 적군의 공격은 매번 볼가강에서 수백 km 떨어진 곳에서 저지되곤 했다.” --> “... 매번 볼가강에서 수백 m 떨어진 곳에서 저지되곤 했다.”


112페이지, 4. 공중 수송 작전: “Ju-52 수송기로 포위되어 있는 병사들에게 필요한 물자를 보급하려고 했지만 수송기를 대거 잃고도 결국 단 한 번도 수송에 성공하지 못했다.” --> “Ju-52 수송기로 포위되어 있는 병사들에게 필요한 물자를 보급하려고 했지만 수송기를 대거 잃고도 충분한 수송에 성공하지 못했다.


115페이지, 2. 일본 함대의 예정된 최후: “남쪽에서는 미국 전함들이 수리가오 해협에 진입하고 있었다(2).” --> “남쪽에서는 미군 전함들이 수리가오 해협에서 일본 함대를 성공적으로 저지했다(2).”


124페이지: “1934 5, 처칠 총리는 미국 측에 튀니지를 발판 삼아 이탈리아로 진격하자는 제안을 했다.” --> “1943 5, 처칠 총리는 ...”


124페이지, 1. 파시즘의 몰락: “게다가 연이은 자연재해로 3년 만에 7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 “게다가 연이은 패배로 3년 동안 70만 명을 잃었다.” disaster라는 단어를 자연재해로 오해했다. 여기서는 큰 패배를 의미한다. 70만 명이 모두 목숨을 잃은 것이 아니라 사망, 부상, 포로로 손실된 것이다.


124페이지, 1. 파시즘의 몰락: “또한 생존율 너무 낮다는 사실(러시아 전투는 4%, 동아프리카 전투는 0%)에 이탈리아 병사들은 충격을 받았고,...” --> “또한 생환율 너무 낮다는 사실...” 4%, 0%는 살아남은 확률(생존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서 돌아온 확률(생환율)을 의미한다. 생존율이 0%라면 모두 사망했다는 말이다.


124페이지, 시칠리아 투입 병력 및 피해 그래픽: “미군 사단 6+ 소련군 사단 5” --> “미군 사단 6+ 영국군 사단 5


127페이지: “91, 몽고메리가 아이젠하워(Dwight Eisenhower)에게 명령을 전달했을 때, ...” --> “몽고메리가 아이젠하워에게 지휘권을 넘겼을 때, ...” 아이젠하워가 유럽 서부전선 연합군 총사령관이었다.


129페이지, 3. 대가가 큰 전투: “독일 서부군은 대부분의 핵심 장비와 정예 병력을 잃었고, 국방군 역시 아무런 성과 없이 피해만을 입고 말았다.” --> “... 독일 공군 역시 아무런 성과 없이 피해만 입고 말았다.”


132페이지, 3. 결과: “1944년 여름 동안 독일이 겪은 전투들은 최악의 피해를 낳았다. 독일의 병력은 벨라루스에서만 40만 명이 감소했고, 28개 사단 8개 군단의 지휘부만이 동부전선 독일군의 핵심축을 형성했다.” --> “... 벨라루스에서 손실된 40만 명, 28개 사단과 8개 군단의 지휘부는 동부전선 독일군의 핵심이었다.”


133페이지, 작전 순서 그래픽제1발틱” 밑의 3발틱” (빨간색) --> “3벨라루스


143페이지, 그래픽 한반도 위의 숫자: “6” --> “12”


146페이지: “일본의 민간 인명 피해는 약 100만 명으로 대부분이 미국이 투하한 원자폭탄으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나타난다.” --> “... 대부분이 미군의 공중 폭격으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나타난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으로 인한 사망자는 최대 2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156페이지: “힘러가 가둔 강제수용소에서만 죽은 것이 아니라, 연합군에 의해 수용소에서 해방된 뒤 이어진 죽음의 행진에서 죽은 유대인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1945년에는 약 600~1,150만 명의 유럽 유대인들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된다.” --> “... 연합군에 의해 수용소가 해방되기 전 이어죽음의 행진에서 죽은 유대인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유럽 유대인 1,150만 명 중 600만 명 이상이 1945년까지 사망한 것으로 추산된다.” 연합군이 진격해 옴에 따라 점령지 수용소의 유대인들을 독일 내로 옮기기 시작했는데 이 때 많은 유대인들이 사망했다고 한다. 이것이 죽음의 행진이다.


158페이지, 3. 우치 게토의 사례: “우치 게토는 1944년까지 남아 있었던 유일한 게토였는데, 나치는 이곳도 빠뜨리지 않고 거주 중인 유대인 7만 명을 가까운 헤움노 절멸수용소로 이송시켰고, 게토 주민들은 결국 가스트럭에 갇혀 학살됐다. 1943년 문을 닫은 헤움노 수용소는 1944년 우치에서 오는 7,000명의 유대인들을 학살하기 위해 잠시 문을 다시 열었다. 게토의 수익성에 실망한 나치친위대는 살아남은 54,000명의 유대인을 아우슈비츠로 곧바로 보내기도 했다.” --> “1942년에 거주 유대인 7만 명을 헤움노 근처의 절멸수용소로 이송시켜 가스트럭에서 살해했음에도 우치 게토는 1944년까지 살아남았다. 헤움노 수용소는 1943년 문을 닫았다가 1944년 다시 문을 열어 7,000명의 우치 유대인들을 추가로 학살했다. 우치 게토의 생산량에 실망한 나치 친위대는 남아 있던 54,000명의 유대인을 곧바로 아우슈비츠로 보냈다.”

 

167페이지, 2. 유고슬라비아의 저항 세력: “1944년 가을, 소련군이 이곳에 도달했고 추축국은 더 이상 북부 도시들에 대한 통치권을 잃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19454월까지 멈추지 않았고 수많은 희생자들을 낳았다.” --> “1944년 가을, 소련군이 도착했을 때 추축국은 북쪽의 도시들만을 통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추축국은 19454월까지 항복하지 않았으며 수많은 희생자들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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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인포그래픽 건들건들 컬렉션
장 로페즈 외 지음, 김보희 옮김 / 레드리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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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을 인포그래픽을 이용하여 설명한 상당히 매니아적인 책이다. 관심 없는 이에겐 쓸데없는 정보가 너무 많겠지만 관심 있는 이에겐 그래픽과 자료의 보고라고 할 수 있겠다. "물적.인적 배경", "무기와 병력", "전투와 작전", "결과 및 피해규모"의 4개 부분으로 구성되어, 전쟁 전 정치/경제 상황, 군대의 조직/무기/전술, 전쟁의 진행 상황, 전쟁의 피해와 전후 세계에 미친 영향 등에 대해 짧은 텍스트와 함께 다양한 그래픽을 이용하여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인포그래픽에 다양한 정보를 담고자 하다 보니 때때로 글자가 너무 작아 알아보기 힘든 경우도 있으며, 범례에 맞춰 정보를 읽어내는 것이 마치 퍼즐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이 정보를 굳이 이런 그래픽으로 나타내야 하나 하는 것들도 있는데, 아직도 그래픽 몇 개는 왜 이렇게 그렸는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그래픽이 흥미로운 정보와 자료를 종합적, 시각적으로 제공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무기/무장에 대한 다양한 정보가 있는데, 아이콘들을 모두 실제로 사용했던 무기를 이용하여 나타냈다. 저자들이 얼마나 디테일에 신경 썼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모든 부분이 흥미로웠지만, 특히 3부 "전투와 작전" 부분을 보며 인포그래픽의 장점이 가장 잘 드러난다는 생각을 했다.


프랑스의 전쟁사 전문가와 그래픽 디자이너인 저자들은 다양한 참고문헌을 이용하여 독특한 전쟁사 책을 만들어냈다. 우리말 번역에 아쉬움이 없진 않지만 군사 용어는 비교적 잘 번역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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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War II at Sea: A Global History (Hardcover)
Craig L. Symonds / Oxford University Press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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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전을 중심으로 제2차 세계대전을 살펴본 책이다. 대서양에서 벌어진 유보트와의 싸움(대서양 전투)부터 태평양에서 벌어진 여러 해전까지 전반적으로 살펴본다.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해전의 측면에서 제2차 세계대전을 살펴보니 전쟁의 전모가 더 잘 보이는 듯하다. 해전을 따라가지만 같은 시기의 주요 지상전도 짚어주며, 태평양에서 이런 사건이 벌어지는 동안 유럽에서는 이런 일이 있었다는 식의 기술도 많다. 해전 및 지상전의 흐름과 의의를 알려주며, 특히 전쟁 수행에 있어서 해상 운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매우 유익한 책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기분 좋게 읽으며, 마지막 에필로그에 다다랐는데, 갑자기 정신이 확 드는 부분이 나왔다. 1945년 9월 2일, 미 해군 전함 미주리 함상에서 연합국 대표와 일본 대표 사이에 항복 조인식 장면을 기술하는 부분이었다. 일본 대표로는 시게미쓰 마모루 외무대신이 나왔는데, “한국에서 테러리스트 폭탄”에 의해 다리를 잃어 절뚝거리게 됐다는 내용이 나온다[*]. 실제로 시게미쓰가 다리를 잃은 사건은 상하이에서 일어났고, 폭탄을 던진 “테러리스트”는 윤봉길 의사이다.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저자의 책임이겠지만, 한편 서구가 우리에게 얼마나 무심한지, 우리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얼마나 주변부였는지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일본은 제1차 세계대전 이전부터 열강의 하나로 취급받았지만, 우리는 양차 세계대전에서 국가로서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 식민지였을 뿐이다. 그런 나라가 이제는 ‘선진국’이 되었다는 말을 들으니 정말 상전벽해라는 말이 실감난다. 


어제, 우리가 개발하고 있는 KF-21이 첫 초음속 비행을 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는 우리 엔지니어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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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s he had lost a leg years before in Korea to a terrorist’s bomb...” (p. 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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