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인력(중력)으로 인해 물체는 가속되며 지구로 떨어진다. 지구 표면에서 중력으로 인한 가속도는 잘 알려져 있듯이 9.8 m/s^2이다(이 중력가속도를 g라는 문자로 종종 나타낸다). 가속도는 속도(m/s)의 1초당 변화율이므로 단위가 m/s/s 즉, m/s^2이다. 이 가속도는 32 피트/s^2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1 피트가 약 0.3 m이므로 32피트는 거의 9.8 m와 같다.) 책 214페이지에서는 갈릴레이가 경사면 실험을 통해 "'1초의 제곱당 32피트'의 법칙"을 발견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정지해 있던 물체가 일정한 가속도로 가속될 때, 물체가 운동하는 거리는 시간의 제곱에 비례하여 증가한다. 물체가 정지해 있다가 자유 낙하할 때 이동한 거리 s는 다음의 식을 만족한다: s = (1/2)gt^2. g는 중력가속도이고 t는 초(s)로 잰 시간이다. 식 앞의 1/2은 속도가 일정하게 증가하며 운동(등가속 운동) 하기 때문에 들어간 것이다.


그럼 물체가 정지해 있다가 자유낙하할 때 처음 1초에 떨어진 거리는 얼마인가? (1/2)(9.8 m/s^2)(1 s)^2 = 4.9 m이다. 또는 16 피트이다. 이걸 염두에 두고 다음을 읽어보자.


  뉴턴은 상호 인력이 행성들 사이의 거리에 따라 작용한다는 케플러의 생각에 동의했다. 그는 그 힘이 거리에 반비례한다는 이론을 만들어 냈다. 지구 반경의 60배 거리에 있는 달의 경우, 지구 인력의 크기는 그 인력의 1/60^2가 되어야 했다. 그리고 그것은 갈릴레이가 초당 32피트라고 보여주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지구는 32/60^2, 즉 초당 0.0088피트(0.00268미터)의 비율로 달을 관성 경로로부터 공간상으로 잡아당긴다. 달의 경로를 초 단위로 재면 뉴턴이 옳았음이 입증된다. (239 페이지)


위의 글은 달이 1초에 얼마나 지구로 떨어지는지를 추론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달의 위치에서는 지구 표면에서보다 인력이 1/60^2 = 1/3600이므로, 1초에 떨어지는 거리는 16피트/3600, 즉 0.0044 피트(0.14 센티미터)가 된다. 위의 문장은 등가속운동으로 인한 1/2을 누락해서 값을 2배로 잘못 나타냈다. 사실 원문을 찾아보면 0.0044 피트로 제대로 나오는데, 역자는 저자가 오류를 저질렀다고 생각해서 고치려다가 원문에는 없는 오류를 냈다[*].


제임스 버크의 글은 문화사적, 과학사적 의의를 잘 짚어주는데, 가끔씩 과학적 설명이 부족하거나 너무 어렵게 쓰여져 있는 경우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

[*] 원문에서는 제곱을 나타내는 위 첨자가 제대로 표시되지 않아 60^2이 아니라 그냥 602로 인쇄되는 오류가 나온다. 원문: Newton agreed with Kepler that the mutual attraction operated in relation to the distance between the planetary bodies. He theorised that the force would work at a ratio inversely proportional to their separation. In the case of the moon, at a distance of sixty times the earth’s radius, the strength of the attraction of the earth should be 1/602 of the attraction, which Galileo had shown to be 16 feet per second. The earth should therefore be attracting the moon away from her inertial path out into space at a rate of 16/602, or 0.0044 feet per second. Examination of the moon’s path second by second showed Newton to be right. (원서 p. 160) 다음처럼 번역한다면? 뉴턴은 상호 인력이 천체 사이의 거리에 따라 달라진다는 케플러의 의견에 동의했다. 뉴턴은 이 인력이 둘 사이의 거리 제곱에 반비례한다고 추론했다. 달은 지구 반지름의 60배 거리에 있으므로 달이 느끼는 지구 인력은 지구 표면에서 인력의 1/60^2이 되어야 했다. 갈릴레이는 지구 표면에서 물체가 1초에 16피트(4.9미터) 떨어진다는 것을 보였으므로, 이는 관성에 의해 궤도의 접선방향으로 달아나려는 달을 지구가 1초에 16/60^2 피트, 즉 0.0044피트(0.14센티미터)씩 잡아당김을 의미했다. 달의 궤도 관측은 뉴턴이 옳았음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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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이론에 대해 연구하는 스웨덴의 이론물리학자 울프 다니엘손Ulf Danielsson의 260페이지 짜리 얇은 책이 번역됐다. 띠지에 "하나의 유령이 온 과학을 떠돌고 있다. 플라톤주의라는 유령이."라는 문구는 공산당선언에 나온 문구를 패러디했다. 그래서 이 책이 뭔가 선언문 같은 느낌을 준다. 자연에 대한 기존 물리학의 관점에 반기를 든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가 이런 관점을 가지기에는 특이한 끈이론을 연구한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카를로 로벨리를 잇는 또 하나의 스타가 될까? 


본문 일부를 다음에 옮긴다.


  수학은 우주를 다스리지 않는다. 수학은 우리가 우주에서 발견한 것을 기술하는 수단일 뿐이다. 자연법칙도 마찬가지다... 자연법칙은 우주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을 우리 나름대로 요약하는 방법에 불과하다. 생물학적 유기체로서 우리는 자신이 경험하는 것을 최대한 이해하고자 애쓰지만 자연은 자연일 뿐이다.

  모형을 실재와 동일시하는 이러한 오해의 바탕에는 인간의 의식이 세계 자체보다 우월하다는 이원론적 존재론이 깔려 있는데, 여기에는 역사적 뿌리가 있다. 우리는 필멸하는 물질을 다스리는 영원하고도 초월적인 영역이 있을 것이라고 상상하고는 한다. 과학이 우주에 대해 많은 것을 밝혀냈음에도, 우리는 사실상 종교적 세계관에서 스스로를 해방시키지 못한 것이다. 우리의 개념과 비유는 계속해서 우리의 사고를 오염시키고, 물리학은 물질을 지배하는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존재를 상정한 채 아름다운 수학적 법칙을 발견하는 과학을 표방한다. 단순함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방법론은 많은 경우에 성공을 거두었지만 여기에는 위험도 따른다. 우주가 근본적 의미에서 아름답거나 단순하다는 보장은 전혀 없다. (22 페이지)


위의 글은 리 스몰린의 관점과도 일맥상통한다. 이러한 관점에 동의하는 물리학자들도 나름 많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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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문화사, 과학사를 논하는 제임스 버크의 매우 흥미롭고 재미있는 책이다. 근대의 과학혁명에 대한 부분에서 갈릴레이의 업적을 논하는 부분을 읽고 있는데(5장), 부정확한 기술이 있다.


  갈릴레이가 자신의 몰락을 가져올 24쪽짜리 논문을 쓴 곳이 바로 피렌체였다. 그보다 한 해 전에 그는 리페르헤이라는 네덜란드인이 '보는 도구looker'라는 것을 새로 발명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1611년 가운데 무렵까지 그 보는 도구, 즉 망원경의 배율을 천 배로 높여 사물을 30배나 가깝게 볼 수 있도록 개선했다. (218 페이지, 밑줄 추가)[1]


밑줄 친, 배율이 1,000배가 되면 사물이 30배 가깝게 보인다는 것은 잘못된 설명이다. 본문은 배율의 제곱근에 따라 사물이 가깝게 보이는 것처럼 잘못 기술하고 있다(1,000의 제곱근이 약 30). 하지만 배율은 크기(길이)를 통해 정의되며, 배율이 30배라면 길이가 30배 크게 보이는 것이고 30배 가까운 거리로 사물을 가져오는 것이다[2]. 본문은 배율이 마치 면적으로 정의되는 것처럼 기술했는데(물체를 30배 가까이 가져오면 면적은 1,000배 커진다), 이는 오해이다. 갈릴레이가 사용했고 요즘에도 아마추어들 천문가들이 종종 사용하는 굴절식 천체망원경의 배율은 대개 30~100배 정도이다[3].


---

[1] 원문: It was there in Florence that Galileo wrote the twenty-four pages which were to begin his downfall. In the previous year, he had heard of a new 'looker' invented by a Dutchman called Lippershey. By mid-year he had developed it to the point where his looker-telescope would magnify a thousand times and make things appear thirty times closer. (원서 p. 147) 원서에서도 마찬가지의 오류가 보인다(밑줄 친 부분). 한편, 번역문의 오류도 보이는데 "By mid-year"를 1611년 가운데 무렵까지"로 번역한 것이다. 여기서 "By mid-year"는 "그보다 한 해 전"의 중반까지를 말하며 문맥을 보면 "그보다 한 해 전"은 갈릴레이가 피렌체로 간 1610년의 한 해 전인 1609년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번역하는 것이 올바르다: "갈릴레이가 자신의 몰락을 가져올 24쪽짜리 논문을 쓴 곳이 바로 피렌체였다. 1609년에 그는 리페르헤이라는 네덜란드인이 '보는 도구looker'라는 것을 새로 발명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해 중반까지 그 보는 도구, 즉 망원경의 배율을 높여 사물을 30배 가깝게 볼 수 있도록 개선했다."

[2] 좀 더 엄밀히 말하면 배율은 각도를 통해 정의된다. 

[3] 렌즈를 추가해서 배율을 100배 이상으로 만들기도 한다. 이렇게 하면 사물의 크기는 그만큼 더 커지지만 망원경의 흔들림에 매우 민감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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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yonder 2023-09-04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굴절식 천체망원경의 원리: https://brunelleschi.imss.fi.it/esplora/cannocchiale/dswmedia/esplora/eesplora2.html

cyrus 2023-09-04 20: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최근에 과학 도서를 읽으면서 발견한 건데, 갈릴레이가 피사의 사탑에서의 낙하 실험을 했었다는 내용이 있었어요. 갈릴레이가 실제로 피사 사탑에서 실험하지 않았다는 진실이 밝혀진 지 꽤 됐는데도 가끔 그런 내용을 언급한 책이 있어요. ^^;;

blueyonder 2023-09-05 08:59   좋아요 0 | URL
말씀처럼 아직도 잘못된 여러 일화들이 사실처럼 종종 언급되는 것 같습니다. ^^;
좋은 하루 보내세요~!
 














2001년 간 <콘택트 1>에서 주인공이 외계신호를 처음 받는 부분을 옮겨 놓는다.


  허겁지겁 엘리는 통제구역으로 들어서 계기판에 다가갔다.

  안녕들 하세요? 데이터를 좀 봅시다. 으흠, 진폭 범위는 어떤가요? 간섭 위치는? 자, 그럼 이제 그쪽에 가까운 별이 혹시 있나 봅시다. 아! 직녀성이군요. 아주 가까운 별인데요

  말을 하면서도 엘리의 손가락은 바쁘게 자판 위를 움직였다.

  음, 겨우 26광년 떨어져 있군요. 이미 관찰을 했었지만 신통한 결과가 없었지요. 아레시보에서 근무할 때 개인적으로 관측한 적이 있고요. 절대강도가 얼마죠? 이런, 수백 잰스키jansky나 되는군요. 이건 FM 라디오로도 잡을 수 있는 수준이잖아요.

  정리해 봅시다. 직녀성에서 아주 가까운 하늘에서 신호가 오고 있군요. 주파수는 9.2기가헤르츠, 대역 너비는 몇백 헤르츠 정도. 선편광이고 서로 다른 진폭 안에서 움직이는 파동들을 보내오고 있어요

  엘리가 입력하는 명령에 따라 화면에는 이제 모든 전파망원경 상황이 나타났다.

  116개 망원경이 수신하고 있군요. 망원경 이상 작동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면, 이제 시간에 따른 움직임을 살펴볼까요? 별들과 함께 움직이고 있나요, 아니면 전자 첩보 인공위성이나 비행기일 가능성이 있나요?

  별의 운행과 동일하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애로웨이 박사님

  그렇군요. 지구 위에서 오는 신호는 아니군요. 또 몰니아 궤도를 도는 인공위성도 아닌 것 같고. 물론 이건 확인해 봐야겠지만. 북미 대공 방위사령부와 연락해서 인공위성일 가능성이 있는지 의견을 들어봐 줘요. 인공위성이 아니라면 두 가지 가능성이 남는군요. 짓궂은 장난, 혹은 마침내 날아온 외계의 메시지. 수동 장치를 좀 가동해 봅시다. 전파망원경 몇 개를 골라 신호의 세기가 충분히 큰지 확인해 주세요. 우리를 놀려먹기 위한 장난인지도 모르니까 (95~96 페이지)


번역 교육을 받은 사람이 한 번역. 일단, 한국 독자에게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정보를 없앴다. 과학자 둘의 이름(윌리, 스티브)이 그렇다. 이건 이희재의 번역론에도 나오는데, 난 사실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 문화적으로 낯선 것을 그대로 두지 말자는 것이 이희재의 주장이다. 편한 것으로 대체하거나 중요치 않으면 아예 삭제해도 무방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이 쓴 책도 아닌데 잘 모르는 문화 정보가 나온다면 그냥 두고 각주로 처리해도 되지 않나. 아니면 그냥 각주도 없이. 내가 영어책을 보면서 느끼는 낯섦을 번역책을 보면서 느끼면 안 되는지. 두 번째는 '그녀' 대신 그냥 이름 '엘리'를 써서 주인공을 지칭했다. 이건 배워둘 만한 습관인 것 같다. '그녀'가 자꾸 나오는 것보다는 이름이 더 자연스럽다.  번째는 대화체가 상당히 간결하다. 그냥 명사로 끝날 때도 있다. 뭐, 크게 나쁘지 않아 보인다. 주인공 캐릭터의 말투니까 역자가 그렇게 컨셉을 잡을 수도 있다. 네 번째, 원문에는 없는 말("정리해 봅시다")을 넣어 자연스럽게 연결했다. 어느 정도는 역자의 맘이지만(난 원문주의를 버렸다), 너무 많이 바꾸는 것은 안 좋다고 생각한다. 다섯 번째, 과학적 내용이 비교적 정확하다. 하지만 time baseline 부분을 너무 의역했다. 영어로 읽었을 때 딱딱하고 일반인이 잘 모를 것 같은 기술적 내용이 튀어나오는 경우 이를 말랑말랑하게 번역하는 것이 좋을까. 이 부분도 난 동의하지 않는다. 어쨌든 전반적으로 잘 읽히는 괜찮은 번역이라고 생각한다. 정리하자면, 난 가능하면 원문 읽는 느낌을 살리도록 번역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데, 이 역자는 독자의 가독성을 조금 더 중시하는 이희재의 주장 쪽으로 가 있다. 


하지만 오역이 하나 있는데, 수동 조작으로 "신호의 세기가 충분히 큰지 확인해" 달라는 부분이다. 40년 전 번역과 마찬가지의 오역이다. 신호의 세기가 충분히 크지 않다면 "놀려먹기 위한 장난"일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중간에 들어간 '신호의 세기가 충분히 크다'는 말은 개별 전파 망원경에서도 수신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말일 뿐이다. 신호가 만약 너무 약하다면 개별 전파 망원경에서 수신이 가능하지 않을 수도 있다. 신호의 세기와 장난 여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PS. 특이한 점 하나: "⌟" 앞에 마침표가 없다. 원래 이런 규칙이 있나 다른 책(예컨대, 열린책들 간 <장미의 이름>)을 살펴봤는데 여기에는 마침표가 있다. 이 출판사만의 규칙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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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세이건의 <Contact> 소설을 읽고 있다. 조디 포스터 주연의 영화도 본 적이 있는데, 영화와는 세부 줄거리와 호흡이 확실히 다르다. 몇 가지 기억나는 것을 적자면, 주인공인 엘리와 아빠가 함께 천체 망원경으로 별을 보거나 엘리가 아마추어 무선 통신을 하며 아빠를 그리워하는 내용이 책에는 없다. 영화는 책보다 좀 더 감성적인 부분이 강조되어 있고 내용도 압축되어 있다. 영화라는 장르 특성상 당연한 것 같기도 하다. 또 영화에서 엘리는 외계신호 탐색을 위한 연구비를 얻지 못해 전전긍긍하다 어느 억만장자의 도움을 받는 것으로 나오지만 소설에서는 미국과학재단의 연구비를 받아 연구하는 것으로 나온다. 물론 엘리의 연구가 연구자원의 낭비라고 질시하는 동료 천문학자들이 소설에는 나온다.


외계신호를 처음 받는 순간의 영화장면이 지금도 기억나는데, 소설에서도 조금 다르지만 나름 긴박하게 그려지고 있다. 사실 소설 <콘택트>는 내가 30여 년 전에 읽으려다 포기했던 책이다. 책을 버리지 않았나 싶었는데 찾아보니 아직 있더라. 1985년 11월 20일 초판 발행된 길한문화사 간이다. 거의 40년 전에 번역된 책이다. 세이건의 원서도 85년에 발행됐으니 미국 발행과 거의 동시에 번역된 것 같은데, <코스모스>의 성공에 기대어 나름 괜찮게 팔리리라 출판사는 기대했던 것 같다. 하지만 세이건의 팬인 내가 읽다가 괴로워 포기했으니 아마 출판사가 별 재미는 못 봤으리라 생각한다. 


원서로 읽으며 예전 번역서는 어떻게 번역했나 가끔 들춰보는데, 역시나 번역이 별로이고 종종 맥락이 없다. 내가 읽다가 포기한 이유를 알 것 같다. SF는 과학적, 기술적 내용을 정확히 번역해야 함을 다시금 절감한다. 30여 년의 시간 동안 우리나라는 많이 발전했으니, 다시 번역, 출판된 책은 이 초판 번역보다 더 나으리라 기대한다. 당시는 인터넷도 없었을 때이니 자료를 찾기 위해서는 도서관에 가거나 아니면 전문가에게 자문을 받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으리라 이해하고자 한다. 


소설을 보면 자전하는 지구 위에서 외계신호를 끊김 없이 수신하기 위해 국제협력을 할 수밖에 없는데, 아시아에서 중국, 일본, 인도는 언급되지만 한국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그것이 당시 우리나라의 위상이다. 전혀 존재감이 없다. 지금의 상황을 보면 참 격세지감이다. 


외계신호를 받아서 처음 검증하는 소설 속 장면을 다음에 옮겨 둔다.


Briskly she entered the control area and approached the main console.

  “Evening, Willie, Steve. Let’s see the data. Good. Now where did you tuck away the amplitude plot? Good. Do you have the interferometric position? Okay. Now let’s see if there’s any nearby star in that field of view. Oh my, we’re looking at Vega. That’s a pretty near neighbor.”

  Her fingers were punching away at a keyboard as she talked. 

  “Look, it’s only twenty-six light-years away. It’s been observed before, always with negative results. I looked at it myself in my first Arecibo survey. What’s the absolute intensity? Holy smoke. That’s hundreds of janskys. You could practically pick that up on your FM radio.

  “Okay. So we have a bogey very near to Vega in the plane of the sky. It’s at a frequency around 9.2 gigahertz, not very monochromatic: The bandwidth is a few hundred hertz. It’s linearly polarized and it’s transmitting a set of moving pulses restricted to two different amplitudes.”

  In response to her typed commands the screen now displayed the disposition of all the radio telescopes.

  “It’s being received by 116 individual telescopes. Clearly it’s not a malfunction in one or two of them. Okay, now we should have plenty of time baseline. Is it moving with the stars? Or could it be some ELINT satellite or aircraft?”

  “I can confirm sidereal motion, Dr. Arroway.”

  “Okay, that’s pretty convincing. It’s not down here on Earth, and it probably isn’t from an artificial satellite in a Molniya orbit, although we should check that. When you get a chance, Willie, call up NORAD and see what they say about the satellite possibility. If we can exclude satellites, that will leave two possibilities: It’s a hoax, or somebody has finally gotten around to sending us a message. Steve, do a manual override. Check a few individual radio telescopes—the signal strength is certainly large enough—and see if there’s any chance this is a hoax; you know, a practical joke by someone who wishes to teach us the error of our ways.” (pp. 56-57)


"sidereal motion"이란 말은 처음 봤다. 찾아보니 항성의 움직임(또는 항성과 함께 움직임)을 말한다. 항성의 움직임을 기준으로 하는 항성시는 sidereal time이라고 한다. 그 외에도 기술적 용어가 나온다. 전파신호의 세기를 나타내는 jansky도 그렇다. 10^(−26) W⋅m^(−2)⋅Hz^(−1)을 말한다.


약 40년 전으로 돌아가면, 당시의 번역문은 이렇다:


활기있게 그녀는 통제구역으로 들어가서 중앙본부로 다가갔다.

⌜안녕, 윌리 스티브. 데이터를 보여 주세요. 좋아요. 거리측정 도면은 어디에 있죠? 좋아요. 간섭계의 위치는 있죠? 자, 그 지역에서 어떤 근접한 별이 있는지 살펴봅시다. 이럴 수가, 직녀성이 보이는군요. 정말 이웃에 가까이 위치해 있군요.⌟

그녀의 손가락은, 이야기하면서도, 키보드를 펀치하고 있었다.

⌜단지 26 광년만 떨어져 있군요. 전에도 그것을 관측한 적이 있지만, 결과는 항상 부정적이었읍니다. 나의 첫 번째 알렉시오 조사에서 그것을 보게 되었어요. 절대강도는 얼마나 되죠? 홀리 톨리도, 당신들도 FM 라디오에서 자주 들었을 겁니다.⌟

⌜알았어요. 우리는 직녀성 근처에서 아주 가깝게 미확인 국적불명기를 발견했읍니다. 그것은 일정하지 않지만, 약 9.2 기가헤르츠의 주파수를 보이고 있읍니다. 주파수폭은 수백헤르츠 정도입니다. 그것은 직선형태로 편광하면서 두 가지 다른 진폭으로 한정된 일련의 파동을 전달하고 있읍니다.⌟

⌜116개의 망원경에 의해 그것이 수신되고 있읍니다. 확실히 그 중 한 두 개는 고장나지 않은 정상적인 것이겠지요. 우리는 수많은 시간축선이 있읍니다. 그것은 별과 함께 움직이고 있나요? 혹시 어떤 전자정보위성이나 항공기일 가능성은 없나요?⌟

⌜나는 항성의 움직임이라고 확신합니다, 애로웨이 박사.⌟

⌜좋아요, 다소 확신적이군요. 그것은 지구로 떨어지지는 않을 거에요. 우리가 점검하였지만, 혹시 모리나와 궤도의 인공위성으로부터 온 것일 가능성은 없나요. 윌리, 기회가 있으면 NORAD에 전화하여 인공위성일 가능성에 대해 문의해 보십시오. 만약에 인공위성이 아니라면, 두 가지 가능성만 남습니다. 그것이 누군가의 장난이든가 아니면 결국 우리에게로 보내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주위를 방황하는 것입니다. 스티브, 개개의 망원경들을 점검하세요—신호의 강도가 확실히 강해졌다—이것이 짓궂은 장난일 가능성을 살펴보세요. 누군가가, 우리에게 우리의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가르쳐주려고 하는 못된 장난을 칠 수도 있읍니다.⌟ (73~74 페이지)


난 여러 면에서 우리나라가 대단하고 자랑스럽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직도 더 나아질 부분이 많이 있다. 오늘날의 감성으로 시도해본 내 번역이 다음에 있다. 40년 후 언젠가, 내 번역도 누군가에겐 위의 번역을 읽으며 내가 느꼈던 감정을 불러일으키지 않을까.


활기차게 통제실로 들어온 그녀는 주 제어판으로 갔다.

  “윌리, 스티브, 좋은 저녁. 데이터를 봅시다. 좋아요. 진폭 그래프는 어디 있나요? 좋아요. 간섭측정 위치는요? 오케이. 자, 이 시야 안에 무슨 별이 있나 봅시다. 아, 베가군요. 꽤 가까운 이웃이에요.”

  그녀는 말하면서 손가락으로 계속 키보드를 두드렸다.

  “봐요, 겨우 26광년 떨어져 있어요. 전에도 관측한 적이 있지만 결과는 항상 부정적이었어요. 내 첫 번째 아레시보 관측에서도 직접 살펴봤지요. 절대 세기는 얼마에요? 맙소사, 수백 잰스키군요. FM 라디오에서도 신호를 잡을 수 있겠네요.

  오케이, 우린 하늘에서 베가 근처로부터 미확인 신호를 받고 있어요. 주파수는 약 9.2기가헤르츠이지만 아주 단일주파수는 아닙니다. 대역폭은 수백 헤르츠에요. 선형편광되어 있고, 두 개의 진폭으로 제한된, 진행하는 펄스가 송신되고 있습니다.

  그녀가 입력하는 명령에 따라 이제 스크린에는 모든 전파망원경의 배치가 나왔다.

  “116개의 개별 망원경이 수신하고 있네요. 분명 한 두 개 망원경의 오작동은 아닙니다. 오케이, 이제 꽤 많은 시간기선(time baseline)이 있겠네요. 신호가 별과 함께 움직입니까? 아니면 엘린트(ELINT) 위성이나 항공기에서 온 신호일 수도 있나요?”

  “항성과 함께 움직임을 확인했습니다, 애로웨이 박사님.”

  “오케이, 꽤 확실해 보이는군요. 지구로부터의 신호는 분명 아니고, 몰니야(Molniya) 궤도에 있는 인공위성 신호도 아닌 것처럼 보이네요. 물론 확인해봐야겠지요. 윌리, 시간되면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NORAD)에 전화해서 인공위성 가능성에 대해 뭐라고 하는지 보세요. 인공위성을 배제할 수 있다면 이제 두 가지 가능성만 남겠네요. 짓궂은 장난이거나, 아니면 누군가 드디어 우리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겁니다. 스티브, 수동조작으로 전환해서 몇 개의 전파망원경을 살펴보세요. 신호의 세기는 충분히 큽니다. 짓궂은 장난일 가능성이 있는지 확인해 보세요. 누군가 우리 방식이 잘못됐다는 교훈을 주려고 벌이는 실제적 농담의 가능성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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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remy 2023-06-04 16: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blueyonder 님이 번역해주시면 한국어책으로도 <Contact> 읽고 싶은데요.
Carl Sagan 책 , 오래간만에 다시 읽고싶게 만드는 페이퍼입니다.

Carl Sagan 의 책은 그렇다치고 솔직히 Ted Chiang 의 두 단편 소설집이나
Ken Liu 의 책도 알라딘에서 <책 속에서> 와 여러분들이 줄친 부분들 읽었을 때
무슨 말인지 더 어리둥절하게 하는 부분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한국책값이 결코 미국에 비해서도 싼 편이 아니던데
독자 존중, 번역할 때 조금 더 Research 하고 시간 들이면
보다 정확하고 좋은 표현이나 전문 용어를 사용하고 필요에 따라
각주를 달 수 있을텐데, 좀 안타까운 부분입니다.

blueyonder 2023-06-04 17:26   좋아요 1 | URL
댓글 감사합니다. 그냥 재미로 번역해 봤습니다. ^^ 아직 살펴보지는 못했지만 <Contact>는 이미 새 번역이 나왔습니다. 찾아보니 2001년 번역이네요. 벌써 20여 년 전 번역이지만 40년 전 번역보다는 좋으리라 기대합니다~

과학소설의 과학적 내용을 정확하게 번역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저도 생각합니다. 번역가와 출판사가 신경을 더욱 많이 쓰기를, 그래서 우리나라 독자들이 좋은 번역을 즐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억의집 2023-06-16 21: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몇달 전에 넷플릭스로 블랙홀을 찾아서라는 다큐 보는데.. 일본인은 있는데 우리나라 유학생은 없어서 서운 했네요!!

blueyonder 2023-06-17 08:50   좋아요 0 | URL
80년대보다는 그래도 훨씬 나아졌습니다. 이제 웬만한 분야에서는 우리나라도 명함을 내밀 정도는 됐다고 생각해요. 아직도 부족한 부분이 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