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 디자인 45
이노우에 히로유키 지음, 정지영 옮김 / 느낌이있는책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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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나 성공을 꿈꾼다. 자신을 개발하고 더 나은 목표를 위해서 달려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다.

때론 이러한 당연함때문에 스스로 지쳐 가면서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감에 느슨함 조차 용납하지 않는 상황을 유지한다.

나의 미래를 위해 자기개발을 하고자 하지만, 자기개발에 의해서 내가 더 쫓기는 그런 절박감을 느낄 때도 있다.

또한 미래에 대한 확신이 불안할 때, 타인과의 경쟁이 지속될 때, 자기개발은 필수가 되어버렸고, 맹목적으로 매달리는 경향도 있다.

그런데 우리는 나를 위한 자기개발을 제대로 하고 있을까? 처음의 목표와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게 맞을까?

자기개발은 나를 돌아보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시선으로 볼때 <습관 디자인 45>는 내가 듣고 싶었던 이야기이며, 내가 누군가에게 해주고 싶었던 이야기를 독자에게 전하고 있다.


저자 이노우에 히로유키는 치과의사이자 심리치료사이면서 경영학 박사, 경영 컨설턴트까지 몇 개의 역할 속에서도 자신의 미래를 위한 개발을 꾸준히 하고 있으며, 여전히 자기개발을 위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습관 디자인 45>의 부제를 보면 "상위 1% 사람만이 실행하는 45가지 성공 습관"이라고 씌여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와의 경쟁에서 나의 습관을 어떻게 바꾸고 그것이 성공으로 이끄는 것을 경험한 사람이 그만큼 적다는 이야기이지만 그만큼 나와의 타협이 가장 어렵다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습관처럼 하는 일, 생각, 타인과의 관계, 처세술, 행동 등 무의식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습관이라고 하지만, 결국 그 습관은 내가 어떻게 생각을 하고 이끌어가느냐가 적용할 수 있는, 말하자면 내가 충분히 습득하고 이행하고 바꿀 수 있는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는 비밀의 병기일 수도 있고, 조언일 수도 있다.

변화는 결국 내가 원하는 것이고, 그것은 나에 의해서만 내게 적용되는 나만의 자아이며, 동시에 나의 이미지를 만들기 때문이다.


"내 인생이 잘 풀렸어"라고 말하는 이들은 겨우 1%뿐이라고 한다.

계획은 거창하였으나 사회 속에서, 경쟁 속에서 나에게 만족하고 프로답게 일하는 사람은 상위 1%라는 것이다.

바꿔 생각해보자. 그렇다면 99%의 사람들은 왜 1%에 속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들도 여전히 경쟁 속에서 살아남고 있고, 하루를 보내고 있고, 학업을 하던지, 직장을 다니고, 꾸준히 자기개발을 하고 있는데도 왜 결과에 대한 것은 1%와 99%로 표현하게 될까?

결국 자신을 어떻게 보는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습관 디자인 45>는 성공을 디자인하는 습관의 필요성을 말한다.

습관은 곧 나이고, 내가 그 습관을 내 것으로 만드는 순간 우리는 1%에 속하게 되면서 내 인생이 잘 풀리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게 된다.

절대로 어려운  습관을 말하지 않는다.

우리가 무심히 지나쳤던 습관을 되짚어 보게 된다.

책을 읽다 보면 "어? 나도 이런 생각을 했었는데?"라던가, "이것은 지금 내가 고민하는 부분인데.."라는 것을 공감하게 된다.

그만큼 <습관 디자인 45>에서 말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또한 이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몰랐던 나를 보듬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갖고 있는 콤플렉스는 결국 사실이 아니라 자기 멋대로 믿는 비뚤어진 셀프 이미지이므로 근거 없는 믿음에 휘둘릴 필요가 없다고 독자의 자신감에 힘을 보태준다.

나라는 존재를 세상에서 딱 하나뿐인 나이며, 존재 의미가 없는 사람은 없다고 말한다.

나의 존재는 내가 채워야 하는 것이므로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나의 존재를, 나의 가치를 깨닫는 것이 우선이다.

나의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혼자서 모든 것을 해나가기보다는 전문적인 일을 맡을 수 있는 사람과의 공적 업무 상태도 필요한 것이고, 내가 서툴다고 생각하는 일,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 마음이 거절하는 일이 억지로 일을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결과를 준다거나. 책에서 배운 지식을 내 인생에 꼭 적용한다거나, 한정된 시간 안에 내 모든 것을 쏟아부을 정도의 노력을 하는 등..

우리가 알고 있지만 행동으로 하지 못했던 부분을 다시 되짚어볼 수 있다.


당연한 것을 알고 있는 것으로만 있기보다는 내 몸과 마음에 디자인하여 새로운 나를 찾아가는 습관이 결국 나의 성공과 미래를 만들어가는 내 모습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거창한 자기개발서가 아닌 이웃과 이야기하면서 깨닫게 되는 그런 평범하지만 진심이 담긴 성공과 습관에 대한 이야기를 참 재미있게 읽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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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속마음, 심리학자들의 명언 700 - 한권으로 인간 심리세계를 통찰하는 심리학 여행서
김태현 지음 / 리텍콘텐츠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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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때론 내 마음속의 이야기를 모를 척할 때가 있다.

빠른 시간과 다양한 커뮤니티 관계 속에서 타임의 마음읽기는 들여다보려 하지만, 정작 내 마음의 이야기는 무엇인지 들여다보기를 두려워한다.

내가 나를 알아간다는 것. 그리고 남을 알아간다는 것은 살면서 필히 짚어봐야 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제일 어렵고 조심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첨단의 과학 기술 안에서 살고 있다고 해도 그 속에서 같이 움직이는 사람과의 커뮤니티는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정해진 것이고, 이왕 살아가려면 행복하게 살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저자는 행복한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행복한 시간을 만들면 되고, 지적인 인생을 살고 싶다면 지적인 시간을 만들면 된단다.

이러한 삶을 갖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은 물론 타임의 심리까지 통찰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심리학자들의 명언 700>을 통해서 인간을 탐구하는 명언 속에서 자신과 타인의 속마음을 이해하는 통찰의 혜안을 가져봄은 어떨까?

사춘기 시절 글 속의 의미도 모르면서 한 줄로 써진 명언들을 일기장 한구석에 베껴 적었던 기억이 있다. 짧은 글 속에 느끼는 것이 사춘기 그 어릴 적에도 마음을 움직이는 그 무엇이었나 보다.

<심리학자들의 명언 700>에서는 좀 더 깊이 있는 30여 명의 심리학자의 명언을 읽어보게 된다. 심리학자의 명언을 통해 내 속에 숨겨져있던 무의식과 잠재력, 인간 행동 심리학에 대한 것, 사람이 살아가는 사회 속에서 개인과 집단에 대한 사회심리학 이야기, 심리 치유를 통한 내 마음을 챙기는 방법, 함께 살아가기 위한 관계와 대화법에 대한 심리학 이야기를 읽어 볼 수 있다.

나란 존재를 중심으로 타인과의 관계, 사회 속에서의 존재감에 대해 우리는 고민을 하곤 한다.

행복하고 성공한 인생을 사는 사람들은 타인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잘 듣고 실천하는 경우가 많다. 성공한 사람의 잠재력에 대한 말콤 글래드웰이나, 창의력에 관한 레오나르도 믈로디노프에 관한 명언이 있다.

우리가 무의식중에 습득한 습관에 대해 파블로프의 개로 유명한 행동심리학자 이반 파블로프의 명언과, 미움받을 용기로 유명한 알프레드 아들러의 명언은 인간의 기본적 존재감을 생각해보게 한다.

돌고 돌아서 제자리로 온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내 마음이다.

한 권의 책으로 사람의 마음을 다 간추려볼 수 있을까라는 질문도 하게 되겠지만, 이 책의 명언을 통해서 인간탐구의 혜안을 가져볼 시간도 되고, 타인의 속마음도 파악할 수 있는 시간도 갖게 된다.

마음을 알아주는 것, 마음을 읽어보는 것, 이것만이라도 갖게 된다면 삶이 그리고 사람과의 관계가 좀 더 여유롭지 않을까? 바쁘게 돌아가는 시간 속에서 좀 더 큰 심호흡을 할 시간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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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리스타트 - 생각이 열리고 입이 트이는
박영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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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은 어렵다. 그렇지만 버릴 수 없는 학문이고, 필수가 되어버린 학문이다.

수많은 인문학 서적을 접하게 되지만 그것을 읽기에는 나름의 다짐의 다짐을 해야 겨우 읽어야 하는 어렵다는 선입견이 있는 학문이다.


인문학이 왜 필요한가? 인문학이 왜 현대인의 필수라고 하는 것일까?

간단히 답하자면 인문학은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서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수많은 고민을 하면서 살아간다. 삶을 이어가기 위해 인간은 여러 지혜를 습득하고 응용하고 또 다른 지혜를 만들어 낸다.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지혜를 얻을 수 있을까? 위기와 맞딱들였을때 인간은 어떤 지혜를 적용시켜야 할 것인가?

이에 대한 답이 인문학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인문학이 어렵다. 쓰는 단어도 어렵고 맥락도 어렵다. 읽다 보면 알 것 같은데 뒤돌아서면 무슨 말이었나 기억에 남지 않는다. 읽고 있는 내용이 다 중요한 것 같은데 막상 적용하려면 이게 맞는가 싶기도 하다.


<한 권으로 읽는>시리즈의 박영규 저자는 "어렵고 골치 아픈 인문학의 시대가 저물었다"라고 한다.

인문학에 대한 편견과 고리타분함을 벗어나서 재미있고 새롭게 읽히는 것이 <인문학 리스타트>이다.


삶에서의 restart는 정말 어렵다. 처음을 시작할 때는 무엇을 알게 되는 뿌듯함과 설렘이 있지만, 굳어져 있는 것에 다시 새로운 것을 덮게 되는 restart는 변화를 느낄 수 없고, 알고 있는 것을 반복한다는 안일함이 생긴다.

하지만 이러한 습관에 젖어있는 독자라고 해도 <인문학 리스타트>는 매 챕터마다 새롭게 읽히는 흥미를 느끼게 된다.

필자는 늦은 공부를 하고 더구나 전공과목을 공부하면서 인문학의 필요성이 누구보다 절실하였는데, <인문학 리스타트>는 책을 펴자마자 흥미진진함으로 책에 빠져들게 되었다.


인문학이란 무엇일까? 바로 인간의 삶을 말하는 것이다.

자연과학에 반하여 인간의 가치 탐구와 표현활동을 대상으로 하는 광범위한 영역을 말하는데 여기에는 경제, 정치, 역사, 종교, 철학의 모든 부분을 일컫게 된다.


인문학이라는 학문이 왜 필수가 되어야 하는가? 인문학을 꼭 습득해야 삶의 질이 달라지는 게 맞는 말일까?

이는 인문학에 대해 잘 몰라서 하는 말이다. 저자는 인문학이 우리의 생존에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된다고 한다. 인간의 과거 역사를 보면 역사, 철학, 종교 등의 인문학은 소수의 권력층의 특권처럼 여기던 지식이었다.

이들은 왜 인문학을 유지하고 익히려고 했을까? 인간의 경쟁상대는 인간이다. 인간의 경쟁속에서 지식의 우위는 경쟁의 우위로 나타나게 되고, 이를 좌지우지하는 지식의 기반이 되는 것이 인문학이기 때문에 인문학 공부가 필수하는 것은 현대인이 안고 가야 하는, 그리고 반드시 적응해야 하는 영역이라고 볼 수 있다.


4차산업혁명의 시대의 최첨단 현실에 살면서도 인문학을 습득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관계를 주도하면서 기회를 선점하기 위한 도구를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류에게 인문학이라는 것은 '생존도구'로 존재하였듯이 지금의 혼란하고 빠르고 변화 있는 시대에도 필수이어야 한다. 하지만 인문학에도 변화는 있다. 언급했듯이 고리타분하고 어려운 인문학은 지양된다. 2020년은 뉴노멀 시대이다. 시대 변화에 따라 새롭게 떠오르는 기준이나 표준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식도 뉴노멀 시대에 맞게 변화를 갖게 되는데 이는 '앎'의 지식에서 발전하여 '삶'에 적용하는 지식으로의 변화를 뜻한다.


<인문학 리스타트>는 경제, 사회, 종교, 철학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고. 이 모든 것이 서로 얽힌 관계를 아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인류 생존의 세 가지 도구는 경제, 정치, 역사라는 주제로 저자는 설명을 하는데 경제와 정치를 모르고서 인문학의 본질을 이해할 수 없다. 경제는 인류 생존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는 학문의 뿌리이고. 정치는 이 경제를 조정하는 모든 행위를 말한다. 그리고 경제와 정치가 얽혀서 나타나는 것이 역사이다. 1장에서는 경제, 정치, 국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정부의 형태, 보수와 진보에 대한 설명을 한다.


2장은 세계사를 다루고 있는데 역사는 인간의 삶 자체이고 그 삶의 기록을 말한다. 역사는 인류의 생존을 바탕으로 기록되는 것이고. 이 생존은 경제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역사가 경제에 바탕하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서는 채집 시대부터 시작하여 농업시대를 기반으로 하는 영토 확장과 대제국의 이야기, 공업시대를 바탕으로 나타난 제국주의와 식민시대, 상업시대를 거쳐 지식 시대, 제4차 산업시대까지 아우르는 세계사를 설명한다.


3장은 인류가 생존하기 위한 행동지침을 위해 필수로 접해야 하는 종교와 철학의 관점을 설명한다. 인간은 사회를 생성하고 유지해야 하는 필연 속에 산다. 그렇다면 사회를 유지하는데 우선이 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사회구성원이 믿고 따를 수 있는 행동지침이 있어야 하며 이 행동지침을 통해서 제각기의 구성원들을 하나의 목표로 이끌어 내는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이 행동지침은 변하지 않아야 하는, 어떤 상황에서도 보편적이어야 하는, 그리고 절대적이어야 하는 진리를 말하게 되며, 이러한 진리에 대한 열망이 종교와 철학의 근본이 되었다. 여기에서는 종교의 탄생부터 시작하여 유일신을 신봉하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이야기와 다신교인 힌두교와 불교의 이야기, 논리적 행동지침이 되는 철학,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노자, 공자의 사상 이야기가 있다.


4장 종교는 생존력의 강화를 위해 철학과의 결합, 결별을 반복하는데 이 근본에는 종교의 절대성과 철학의 이론 제공이라는 공식이 숨어있다. 이러한 종교와 철학의 결합과 결별의 이면에는 대제국의 정치적 목적이 깔려 있어서 결국 정치. 종교, 역사의 삼합의 이야기가 된다. 그리스철학과 기독교, 불교와 유학, 종교과 결별한 철학의 여러가지 사상, 헤겔, 칸트, 니체, 키르케고르, 하이데거, 사르트르, 마르크스, 비트겐슈타인, 듀이까지의 철학자와 그들이 사상을 살펴보면서 현재의 역사와 어떻게 이어지게 되는지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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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소녀의 거짓말 - 구드 학교 살인 사건
J.T. 엘리슨 지음, 민지현 옮김 / 위북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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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어진 구드 학교. 그곳은 명문가의 딸들이 다니는 기숙학교이다. 구드의 여학생들은 영리하고, 우아하고, 존엄하며 미래를 이끌어나갈  리더라는 자부심으로 꼿꼿함을 유지한다. 그러나 그들의 내면은 비밀이 가득하다. 구드의 굿걸들이 겉과 속의 이중성을 묘하게 감추고 있다면, 구드 학교 자체도 묘한 이중성을 감추고 있다.

구드 학교는 철저히 모계로 이어진 학교이다. 포드 학장 역시 구드 학교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고 촌구석에 자리 잡은 명문학교를 지키고 있다. 이러한 구두 학교에 애쉬라는 영국 소녀의 등장을 시작으로 사건이 일어난다.


피아노 신동으로 알려졌던 애쉬는 부모님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피아노를 거부한다. 애쉬와 면담을 했던 그래슬리 교수가 갑작스럽게 죽으면서 구드 학교의 스산함은 시작된다.

애쉬 칼라일은 여느 부유한 집안의 상속녀이지만, 그녀의 배경은 쉽지 않다. 학년 중간에 전학을 왔다는 사실도 상당히 놀라운 일이지만, 또래의 소녀들처럼 가족을 그리워한다던가 친구들과의 교류에 신경 쓰는 그런 태도가 없다. 있는 듯 없는 듯 강의실과 도서관 그리고 기숙사 자신의 방만 오갈 뿐이다.


구드 학교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오래 역사를 가진 학교답게 학교는 묵직하고 음산한 기운을 가진 그런 건물일 것이다. 좁은 창문은 밖에서 볼 때 감옥같이 꽁꽁 싸매고 있는 느낌이 들 것이다. 그 속에서 시절에 맞지 않는 교복과 가운을 입고 생활하는 여학생들은 오랜 전통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그들만의 암묵적인 룰을 유지하는 생활을 하고 있지 싶다. '현재'라는 시간위에 있지만 현대와 떨어진 듯 고립된 그런 배경이라고 할까??


<착한 소녀의 거짓말>은 음산하고 오래된, 커다란 돌로 꽁꽁 감추고 있는 여학생들의 사생활을 상상하게 만드는 소설이기도 하다. 변화하는 세상과 동떨어짐을 고유의 전통이라고 우기고 있는 학교 속에서 생활하는 여학생들의 비뚤어진 욕망, 욕심, 질투, 좌절, 그리고 세상을 향해 반항하는 감정의 갈등을 짜릿하게 읽어볼 수 있는 소설이다. 


정. 재계의 자녀들답게 겉으로 화려하고 미래가 보장되어있지만 정치와 권력, 재력을 우선으로 하는 부모들은 사춘기 소녀들의 사사로운 관심까지 돌아볼 여력이 없다.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에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거나, 응원을 받고 싶어 하는 소녀들은 부모의 관심에서 밀려나고 그들끼리 똘똘 뭉치게 되고, 또 그 속에서도 누군가 나를 염탐하고 자신의 치부를 알아챌까 두려워하면서 서로를 경계하는 모순 속에 살아간다.


<착한 소녀의 거짓말>은 애쉬를 위주로 구드 학교의 비밀들이 드러난다. 구드 학교의 인물들은 자신만의 비밀을 가지고 있다. 결코 누군가에게 드러나서는 안되는 그런 비밀이다. 그 비밀이 드러날 경우 누군가 죽거나 인생 최악의 파멸을 각오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인물들이 애쉬를 중심으로 얽혀있다. 어쩌면 애쉬가 나타남으로 흩어져있던 비밀이 모여드는 듯한 상상을 하게 된다.

고고한 모습을 하고 있는 포드 학장은 구드 학교 운영을 위해서 자신의 꿈을 저버리고 있다. 하지만 그녀의 가슴속에는 자신을 꿈을 키워가고 싶은 큰 그림을 간직하면서 뜨거운 욕망을 채워주는 애인을 숨기고 있다. 오래전 구드 학교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의 범인이 아버지인 루미는 사환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숨기고 있는 듯한 직업으로 학교를 맴돌고 있다. 구드 학교 비밀 클럽의 수장이자 전 학년의 우두머리인 베카는 자신의 정체성을 애쉬에게 보여주지만, 베카의 집안의 지위와 배경은 또 다른 모습을 요구하고 있다. 아무도 몰랐던 카밀의 비밀과 죽음.. 비밀 클럽의 악행, 그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소녀들의 질투와 잔인한 심리... 책을 읽는 내내 그다음 상황이 궁금해지는 소설이다.

보이는 것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 것인가.. 이 소설에서는 등장인물의 관점에서 사건을 주목하게 된다. 독자는 주목을 하는 이와 주목을 받는 이 모두를 보게 된다. 그러나 그 속에 숨겨진 진실을 찾기는 어렵다.

작가는 모든 상황, 모든 인물에 트릭을 걸어놨다. 등장인물 중에서 누군가 그것을 찾아가고 있는지 독자가 열심히 따라가게 만든다. 책 소개에서 볼 수 있듯이 반전에 반전을 경험한다.  


하지만 장황한 전개에 비해서 사건의 결말은 간단하다. 책의 결말에 따라 사건의 배경이나 범인의 동기를 독자들이 상상할 수 있다고 해도 좀 더 긴박한 장면으로 이어졌으면, 독자가 충분히 알아차릴 수 있는 사건과 범인의 동기라고 하더라도 긴박감을 주는 전개를 작가의 시선으로 펼쳐줬다면 좋지 않았겠나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11년 뒤에 상황을 더 짜릿하게, 등장인물의 관계를 처절하게, 또는 잔인한 심리묘사 등등이 끝까지 시원하게 공감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처음부터 누가 멍청하고, 순진했는지 독자는 책을 덮은 후에야 알게 되지만, 소설을 읽어가면서 사건을 같이 해결한다기보다는 답안을 보고 마지못해 끄덕이는 느낌이라고 할까??

사건은 애쉬와 베카의 갈등에서 본격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베카의 심리도 좀 더 짜릿했으면 좋았을 텐데... 시도도 못해보고 좌절되는 그런 소심함이 느껴진다. 어차피 애쉬가 구드 학교에 등장하기 위해서 필히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사건을 케이트나 앤서니 서장을 통해 날카롭게 분석했다면 좋았을 텐데 말이다.


그래도 500여 페이지가 넘은 소설의 가독성은 좋다. 소설을 읽으면서 하나의 영화를 보는 듯한 글의 전개는 독자의 심리를 충분히 휘어잡을 만한 소설이다. 답이 보이는 듯 보이지 않는 결말을 통해서 독자는 나름의 상상을 할 수 있는 묘미도 있다. 그래서?? 그 주인공은 다음에 어떻게 되었을까?? 후편이 나온다면 이렇게 전개되는 거 아닐까?? 이런 장면이 왜 일어나야 했는지 알려주는 게 아닐까?? 등의 기대치도 생기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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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Strong Words - 말대꾸 에세이
딥박 지음, 25일 그림 / 구층책방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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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주절주절 떠드는 사람이 있다.

난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닌데도 받아치지 못했다.

하루 종일 찜찜하고 껄끄럽다.

생각이 내 생각과는 다른데, 분명 차이가 있는데 나는 왜 다르다는 말을 못하고 그 상황을 벗어났을까... 

너 님의 의견과 다르다는 생각보다 나를 더 화딱지 나게 하는 것은 너 님과의 좁혀지지 않는 견해에 대해 내가 받아치질 못했다는 점이다.

하루 종일 찜찜하고, 껄끄럽고, 미련이 남는 미련 속에 하루를 보낸다.


쌘 언니로 불린다. 근데 생긴 거는 쌘 언니로 생겨서는 받아치기를 못한다.

매번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살다 보면 정말 되받아쳐야 할 때가 많다. 착하게 산다고 더 잘 사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요즘은 싫은 것은 싫다고 말해야 하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할 줄 알아야 한다.

참는 게 미덕이라는 말은 개나 줘버립시다..ㅎㅎㅎ


<글쎄>를 읽고 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내뱉어본다.


저자 딥박은 한마디에 사이다를 날렸다. 그래 그 소리가 듣고 싶었던 거야..

나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때로는 위로를 받고 싶을 때가 있다. 또는 내 속에 있는 갑갑함을 시원하게 내뱉고 싶을 때가 있다.

나이가 있어서,, 연장자라서,, 어른이라서,, 내 직위 때문에,, 따위의 많은 영업적 내 모습 때문에 말 한마디에도 고민할 때가 많다.

말도 못하고 속으로 끙끙 앓으면서 모른 척 지나칠 때가 있다.

그런데 <글쎄>는 그랬던 내 속마음과 공감하는 사이다를 날린다.


우스갯소리 같기도 하고, 어.. 이건센데??라는 글도 있지만, <글쎄>를 읽고 나면

와우... 이런 통쾌함이..라고 말하게 된다.


딥박이 날리는 한방을 들어볼까???


소 잃고도 외양간 고치면

우습게 보고


소 잃고도 외양간 안 고치면

쿨하게 보더라

<소 쿨>

이야...이건 뭐... 설명할 필요도 없는 사이다 맞다.

하나 더??


내게 '충고'할 시간 있으면

그 말을 거꾸로 한번 읽어 봐.


그게 내가 바라는 거야


<고충>

더 읽어주고 싶지만 스포 때문에 알아서들 찾아보시고..


우리는 남들보다 손톱만큼의 잘남을 가질 것을 갖고 남들을 가르치려고 한다. 함부로 위로하려고 한다.

더 크게는 손톱만 한 경험으로 남의 인생에 콩이야 팥이야 한다.

정작 대꾸할 상황에서는 제대로 된 대꾸도 못하는 주제에 말이다.


<글쎄>는 어쭙잖은 위로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느낌을 전한다.

일일이 어떻다고 설명할 필요도 없이 <글쎄>를 읽으면 아하~~ 이거야??라고 독자는 공감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글쎄>를 사이다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가벼워 보이지만 그 속에는 묵직함이 있다.

삶을 보고, 사람을 보고, 세상을 보는 눈은 정직하다.

정직함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매력적인 <글쎄>이다.


원래의 나라면 꺼내지 못할 이야기들을

또 다른 나를 통해 거침없이 써 보고 싶었다.

하고 싶은데 누군가의 째려봄이 두려워서 입만 움찔거릴 때가 있었다.

분명 내가 맞는데 소심함이, 어쭙잖게 상황을 배려한다는 괜한 허세가, 질러놓고 맞나 틀리나 고민하는 결정 장애로

우리는 하고 싶은 말을 안 하고, 못할 때가 있다.

이렇게 마음이 묵직할 때 <글쎄>를 통해서 이 묵직함을 날려보내는 것도 좋다.

오랜만에 통쾌함을 느껴보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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