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담은 글씨 -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캘리그라피 책, 박병철의 멋글씨 가이드북
박병철 지음 / 샘터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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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듯한 글씨체만으로도 그 사람의 됨됨이를 가늠할 때가 있다.

예전만 해도 반듯한 글쓰기 수업은 반드시 있었는데. 요즘 아이들의 글씨체를 보면 참... 민망할 때가 간혹 있다.

컴퓨터 자판과 스마트폰의 영향으로 직접 글씨를 쓴다는 것은 드문 경우가 많다. 간혹 축하 카드나 청첩장의 인사말 정도라도 자필로 쓰인 것을 받을 때면 왠지 모를 뿌듯함이 더해지는 경험도 있다.

이만큼 글씨체라는 것은 어찌 보면 가볍게 그 사람의 그냥 쓰는 습관으로만 볼 수도 있겠지만. 자음과 모음의 순서를 바르게 배우고, 바르게 써나가면서 익힌 습관을 결코 쉽게 얻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글씨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편이다.

 

개인적으로 손글씨를 선호하는 편이기 때문에 '캘리그라피'라는 단어에 무척 많은 호기심이 생긴다.

관련된 학원도 생기고, 인강도 생기고, 해당되는 재료를 사고파는 곳도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거보니 또 하나의 유행인가 보다 싶다.

'캘리그라피'라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서예(書藝)가 영어로 캘리그라피 또는 캘리그래피라 번역되기도 하는데, 원래 calligraphy는 아름다운 서체란 뜻을 지닌 그리스어에서 유래된 전문적인 핸드 레터링 기술을 뜻합니다.

calligraphy에서 calli는 미(美)를 뜻하며 graphy는 화풍, 서풍, 서법, 기록법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전적 의미만으로는 캘리그라피를 제대로 설명하기에 뭔가 부족해 보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캘리그라피를 좀 더 이해하기 쉽게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뜻, 내용, 모양, 소리, 동작 등을 멋스럽고

아름다운 글꼴로 표현하는 것'

교보생명 '광화문 글판'으로 유명한 박병철 작가가 <마음 담은 글씨> 서론에 언급한 설명이다.

그리고 이 '캘리그라피'를 '멋글씨'라고 표현한다.

이 말은 2012년 국립국어원에서 캘리그라피의 순화어로 선정하여 발표한 것이다.

이젠 우리의 멋글씨를 찾아, 우리의 이름을 붙이는 것도 딱 맞는 이미지인듯하다.

 

이젠 '캘리그라피'라는 단어가 전혀 어색하지 않지만,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가는 잘 모른다. 이에 대해 저자는 친절한 설명을 곁들인다.

그렇다. 독자들은 <마음 담은 글씨>라는 제목의 의미를 조금을 이해하고 이 책을 읽게 될 것이다.

글씨라는 것이 정갈하고 반듯한 것만이 좋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물론 바른 글씨, 정갈한 글씨가 그 사람의 인성을 품고 있다는 말도 틀리지는 않지만, 이젠 글씨 속에 담긴 글쓴이의 마음을 헤아려보는 평범하면서 순수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는 그런 안목을 지니면 어떨까?

 

서예는 붓을 주로 이용한다. POP 역시 전용 붓과 펜을 사용한다. 하지만 이 멋글씨는 사용하는 도구에 있어서 제한이 없다. 나뭇가지, 나무젓가락, 망가진 붓, 때론 면봉이나 구겨진 종이로도 얼마든지 표현이 가능하다.

도구에 따라 표현되는 글씨의 맛이 다르다.

때론 거칠게 표현되기도 하고, 때론 퍼지는 느낌의 부드러움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리고 이것을 이용해서 우리가 하고 싶은 감정을 표현하면 되는 것이다.

내 손끝에서 나오는 글씨 역시 나의 감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작가는 글씨에 많은 것을 담아서 독자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글씨를 마음으로 표현한 작가의 생각은 무엇일까?

단순하게 질문을 던지고 <마음 담은 글씨>를 읽어가는 동안, 우리가 글씨에 마음을 담는다는 의미가 참 따습고, 달달한 느낌이라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나는 손글씨 쓰기를 좋아한다. 내 글씨체가 그리 나쁜 것은 아니지만, 요즘의 유행에 '캘리그라피' '멋글씨'라는 것을 따로 습득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글이라는 것이 나의 머리에서, 나의 가슴에서 나온 나의 표현의 하나인 것처럼, 멋글씨 또한 나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생각을 해본다.

 

책 제목처럼 마음을 담은 글씨를 또박또박 써가는 것이 나만의 멋진 멋글씨를 만들어 낼 수 있음을 생각해본다.

가끔 다가오는 가족과 지인들의 생일에는 나의 멋진 멋글씨를 선물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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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동주
안소영 지음 / 창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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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에 대한 가장 큰 표현은 저항 시인, 순수 시인이라고 말합니다.

'윤동주'의 삶은 일제강점기가 시작된 후에 태어났고, '윤동주'가 사춘기가 되어 세상의 어두움을 온몸과 온 정신으로 받아온 삶을 살죠.

하지만 독자의 입장에서, 그리고 그 시절을 모르는 후손의 입장에서 '윤동주' 시인이 저항을 했다는 것에 대해 궁금함이 있곤 합니다.

 

저항이라 하면 좀 거친 느낌의 표현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윤동주' 시인을 저항 시인이라고 부리기보다는 순수 시인이라고 일컫는 것이 더 가까운 표현이 아닐까 생각도 해봅니다.

하지만 분명 '윤동주' 시인은 저항 시인입니다.

암울했던 시기에 그가 보냈던 평범하면서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를 통해서 그의 저항 방법을 알아가게 됩니다.

 

<시인 동주>는 '윤동주' 시인의 삶과 시, 그리고 역사적 고증과 작가의 상상력을 동원해서 마치 그 시절을 함께 했던 벗을 그리는 듯한 소설입니다.

또 다른 느낌이라면 우리가 필히 겪어가는 청춘의 방황과 시대의 아픔으로 인한 애국에 대한 심정을 독자들도 깊이 공감하게 하는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윤동주' 시인은 북간도에서 태어나서 우리가 기억하는 시어처럼 부드러운 말씨는 아니었을 겁니다.

때론 북간도의 사투리도 말했겠지요.

어쩌면 '윤동주' 시인은 어떠어떠한 성향이더라... 모습이더라...라는 이미지는 후손이 마음대로 만들어놓은 것이겠지요.

 

<시인 동주>는 이러한 기존의 '윤동주' 시인에 대한 인위적인 이미지를 벗어버리고 인간 '윤동주', 청춘의 '윤동주', 그리고 격정의 시대에서 자신의 주관을 묵묵히 해나갔던 깊이 있는 '윤동주'를 만나게 됩니다.

 

후손의 입장에서는 선대의 문학가들이 남겨놓은 작품을 보면서 내가 이해하기 쉽게만 해석을 하곤 합니다.

'윤동주' 시인의 <이런 날>이라는 시입니다.

 

사이좋은 정문의 두 돌기둥 끝에서

오색기와 태양기가 춤을 추던 날.

금을 그은 지역의 아이들이 즐거워하다.

 

아이들에게 하루의 건조한 학과로,

해말간 권태가 깃들고,

'모순' 두 자를 이해치 못하도록

머리가 단순하였구나.

 

이런 날에는

잃어버린 완고한 형을

부르고 싶다.

 

_1936. 6. 10

 

이 시를 보면 곁에 없는 형을 그리워하는 아우의 마음을 느끼는 것으로 시를 느꼈다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 이 시를 남기게 된 이유를 독자는 읽어보게 됩니다. 얼마나 그리웠으면 완고함보다는 부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는지 소설 속에서 '윤동주' 시인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윤동주' 시인은 자신의 미래를 위해 조용하지만 과감하게 결단을 내리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북간도에서 경성으로 공부를 하러 오는 것도, 후에 일본의 대학을 선택하는 것도, 그리고 틈틈이 습작으로 시를 남기는 것도 자신의 능동적으로 이끌어가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시대의 아픔을 상상할 수조차 없을 만큼 무겁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윤동주' 시인의 작품을 꾸준히 이어졌지만, 그것을 세상에 내놓기에는 너무나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1943년 7월 그는 항일운동을 했다는 명목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됩니다.

물론 그가 직접적인 행동을 하면서 항일운동을 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조선의 정신과 조선의 감성, 그리고 조선의 글로 항일 운동을 한 것입니다.

 

그가 생전에 남기려고 했던 작품집에 서문으로 대신하려던 것이 바로 이 시... 서시입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_1941. 11. 20

 

오랜 시간이 지나 지금의 후손들도 이 서시를 늘 떠올립니다.

좌절하는 시간이 있거나. 자존감이 흔들릴 때 이 시를 읊어봅니다.

나 스스로에게 부끄럼이 없기 위해 괴로움을 토해낼 줄 아는 그런 본성을 지니라는 여고시절 선생님의 말도 떠오릅니다.

 

<소설 동주>는 인간 '윤동주'에 대한 삶을 들여다보게 합니다. 그리고 그 암흑의 시간을 '윤동주'라는 색깔로 바꿔가는 삶을 후대에게 남겼습니다.

비록 그 시절의 '윤동주'에게 지금의 존경함이 전해지겠습니까만, 그런 사람이 그 시절에 이렇게 조국의 한 켠에서 버티고 있었다더라...는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오랜만에 밤하늘의 별을 찾아봅니다. 휘황찬란한 불빛 속에서 별빛을 찾기가 정말 힘이 듭니다만, 그래도 어렴풋이 자신의 빛을 발하고 있는 별을 찾아냈습니다.

'윤동주'의 존재가 그러한 것 아닐까요?

 

<소설 동주>를 통해서 별을 떠올리고, '윤동주'를 떠올리고, 그리고 그가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간직했을 뜨거움과 순수함을 떠올려 보는 시간을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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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사랑한 꽃들 - 33편의 한국문학 속 야생화이야기
김민철 지음 / 샘터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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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문학 작품을 읽으면서 글 속에서 만나게 되는 꽃이 있다.

주인공을 빗대어 말하는 꽃도 있고, 결정적인 감정의 표현으로 독자들에게 소개되는 꽃도 있지만 대부분의 독자들은 '아 이런 꽃이 있구나...'라고 여기는 정도일 것이다.

등장인물의 감정과 행동에 대해 주목하기 때문에 배경이나 이미지로 드러나는 꽃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는 것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장미니, 백합이니. 프리지어 등등 우리가 흔히 기억하고 있는 꽃들을 제외하고는 소설 속에서 만나는 나무며, 꽃의 이름이 생소한 경우도 종종 있다.

 

<문학이 사랑한 꽃들>은 이런 독자의 호기심을 충분히 충족시켜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저자 김민철 작가는 야생화와 문학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김민철 작가는 2013년에 <문학 속에 핀 꽃들>이란 책을 냈다. 이 책에서도 국내 고전 또는 명작과 그 속에 드러난 꽃에 대한 이야기를 썼고, 그에 대한 반응은 상당한 호평을 받았다고 한다.

꽃을 통해 소설에 접근했다는 호평도 듣고, 과하지도 않게 꽃과 소설을 결합시켰다는 칭찬을 들었다고 하니, 그의 글이 참 궁금하고 어떤 꽃과 소설을 소개했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그런 김민철 작가가 이번에도 비슷한 형식의 <문학이 사랑한 꽃들>을 다시 썼다.

전작이 국내 고전 위주의 작품을 주로 다루었다면 이번 책에서는 요즘 활발하게 활동하는 중격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소설은 현실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 우리의 일상이 소설 속에서 여러 모습으로 보이고, 여러 사건을 소설에서 만들어가곤 한다. 이런 생활을 반영하는 것 중에 가장 흔한 것이 주변의 꽃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예를 들어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에서 이마를 흠뻑 적신 땀방울을 날려 보냈다든지, 오랜 가문 뒤에 내리는 빗줄기를 방안에 갇혀있던 아이비에게도 선물하고 싶다 등등의 일상의 이야기를 글로 표현하게 된다.

 

<문학이 사랑한 꽃들> 역시 현실의 이야기를 반영하고 있지만 작가가 주목한 것은 '특별하지 않는 꽃들'에 대한 호기심과 관찰을 독자에게 소개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글을 읽다 보면 등장하는 꽃에 대해 궁금한 것이 참 많다. 도시의 아스팔트만 밝고 살아온 나로서는 진달래, 개나리. 장미 등등의 흔한 꽃 이에는 거의 알지 못하고, 이것마저 바쁜 일상에서 제대로 들여다보지도 않을 때가 많다.

소설 속의 꽃을 통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본다. 글을 읽기만 하는 독자의 이해보다는 소설 속의 등장인물에 대한, 또는 소설의 전개에 대해 좀 더 깊이를 느낄 수 있게 된다.

 

정은궐의 <해를 품은 달>에서 왕 이훤은 온양행궁 근처에서 미행을 하다가 비를 피해 민가 한 곳으로 들어간다. 왕과 무녀가 처음 만났을 때도 무녀에게서 난향이 흘러나왔고, 액받이 무녀로 다시 만난 월에게서 이훤은 난향을 맡았다. 개인적으로 이 장면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드라마에서 본 장면에서 난향을 표현할 수 있었더라면 이훤과 월의 설레는 사랑에 대해 더 많은 공감이 될 텐데 하는 상상의 나래를 떠올려본다.

청소년 소설의 대표주자 이금이 작가의 <유진과 유진>에서 주인공과 함께 자주 등장하는 곳이 등나무 벤치이다. 등나무 벤치의 이미지는 그 아래서 느낄 수 있는 한 여름 가운데에서 느끼는 시원한 바람이지만 이 작품에서 이금이 작가는 등나무를 이렇게 표현했다.

"등나무 줄기에도 등나무 꽃의 울음이 돋아나고 있었다..." 어릴 적 상처를 덮어두려만 하지 말고 상처에 바람도 쐬어주고, 햇볕도 쐬게 해주었으면 나무의 옹이처럼 단단하게 아물었을텐데라는 독백으로 이어진다.

 

이렇듯 소설 속의 꽃은 수많은 감정과 사건의 시작이 되기도 하고, 해결점이 되기도 한다.

물론 <문학이 사랑한 꽃들>은 작품 속의 의미를 찾기 위한 해설이 이니다. 작품 속에 어떤 모습으로 꽃들이 등장했는지 작품과 작가의 이야기를 맛 보여주고 이에 관련된 야생화에 대한 이야기를 깊이 있게 들려준다.

 

작가의 이력에 대한 설명을 읽어감도 쏠쏠하지만 무엇보다 식물도감같이 전문적인 지식을 사진과 함꼐 독자들에게 들려주는 것은 꼭 알고 싶어 하는 독자의 마음을 잘 다독여서 한 줄 한 줄 써 내려간 배려가 돋보이는 글이다.

 

<문학이 사랑한 꽃들>은 아직 읽어보지 못한 작품에 대한 호기심도 불러일으킨다. 또한 작품을 써나간 작가의 의도와 작가의 소개를 통해서 또 다른 글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대충 이름만 알고 있던 꽃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도 배우게 되지만 약용이나 식용으로 쓰이다 등의 식물의 쓰임새까지 읽어갈 수 있으니 한 권으로 여러 분야의 책을 읽는 듯하다.

 

야생화와 소설...

독자의 소소한 호기심을 충분히 보충해주는 그런 글이 <문학이 사랑한 꽃들>이다.

김민철 작가의 전작 <문학 속에 핀 꽃들>에 대한 반응 중에 이런 것이 있단다.

"책을 읽고 나니 읽고 싶은 책도, 보고 싶은 꽃도 많아져 행복하다."라고 말이다.

<문학이 사랑한 꽃들>을 읽은 나 역시 같은 생각을 해보게 된다.

줄거리에만 연연했던 나의 이해력을 그 속에 등장하는 꽃과의 관련된 의미를 들여다보는 것도 또 다른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좋은 소설과 어우러지는 야생화의 향기에 듬뿍 취해볼 수 있는 그런 책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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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 2015.4
샘터 편집부 엮음 / 샘터사(잡지)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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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기운을 흠뻑 느낄 수 있는 표지가 눈에 띕니다.

샘터 4월 호의 표지는 벚꽃을 연상하게 하는데요....

낮 시간의 햇빛이 제법 따사롭게 느껴지는 주말에 샘터 4월호에 푹 빠져봅니다.

 

샘터가 벌써 마흔다섯 살이 되었습니다. 1970년이라고 하니까 저보다 두 살이 어린 거네요. 간혹 관공서나 병원, 은행 등에서 순서를 기다릴 때 무심결에 펼쳐봤던 것이 샘터입니다.

짧은 글 속에서 느끼게 되는 사람 사는 이야기가 무척 재미있었고, 다른 사람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또 다른 공감을 하게 되는 그런 책이었습니다.

 

4월호에는 제가 관심을 두었던 주제들이 많이 실렸습니다.

최근 나온 <자스민 어디로 가니?>라는 책의 주인공인 강아지 자스민을 주제로 샘터 에세이를 읽게 되었고요, 6.25의 격동 시대를 겪으면서 척박한 시대를 살아간 부모님들의 기록을 담은 영화 '국제시장'이 무척 눈길을 끌었었지요. 그런데 영화의 흥행도 주목을 받았지만, 영화의 배경이 된 국제 시장의 실질적인 이야기는 화려함 뒤에 남는 씁쓸함을 남긴 뉴스를 봤었는데요. 이 이야기가 실렸습니다. 부산을 소개하는 글도 글이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모았던 국제시장의 꽃분이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과연 우리가 무엇을 기억해야 하고, 어떤 마무리를 해야 하는지.. 좀 더 성숙한 의식을 가져야 함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여고시절, 단어의 섬세함과 아련함, 그리고 그리움에 대한 시어로 유명한 이해인 수녀님의 글을 무척 좋아했었지요. 수녀님은 사람과 종교에 대한 글을 시어로 남겼지만, 사춘기의 우리들은 그 글을 첫사랑의 비유에 참 많이 남발(?) 했었습니다. 그런데 수녀님의 글을 계속해서 볼 수 있다고 하니 정말 반가운 소식입니다. 수녀님이 오랫동안 건강하게 건재하셔서 좋은 글을 많이 들려주셨으면 하는 독자의 마음을 전해보고 싶네요.

 

4월 호의 행복일기에는 정말 마음이 따뜻해지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잘 들리지 않는 할아버지를 위해 미사 시간에 맨 앞자리에서 할아버지와 마주 앉아 신부님의 미사를 수화로 전해 주는 노부부의 이야기와 그 노부부를 특이하게 바라보는 이도 없는 성당의 사람들과 그렇게 마음 편하게 미사를 전달하도록 해준 성당 신부님의 이야기는 정말 가슴이 따뜻해지는 이야기입니다.

스물셋 청년이 시작한 이동시기 카페의 이야기 역시 빡빡한 세상에서 자신의 향기를 열심히 일궈나간 이야기에도 박수를 보내게 됩니다.

가진 재산이 없이 사랑과 믿음으로 결혼식을 한 신혼부부와 이 부부의 앞날을 믿고 맡겨 준 양가의 부모님의 이야기는 앞으로 이런 일을 겪어내야 할 저에게 많은 가르침을 남겨줍니다.

 

이번 샘터의 이야기는 무척 행복합니다.

어제도 전쟁이고, 내일도 전쟁인 하루를 살아가는 현대인이자 직장인이자, 그리고 장년의 저로서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무척 냉정하고 딱딱하고 빡빡하게 살아가곤 합니다.

세상에서 나를 지키려면 그렇게 변해야 한다는 것을 수긍하면서도 때론 이렇게 따뜻한 이야기를 읽게 될 때면 아직도 세상에는 따뜻함이 존재해야 함을 확인하게 됩니다.

물론 내일 또 이런 생각이 변할지도 모르지만, 그때까지는 다시 한번 따뜻함과 행복감을 충분히 생각하고 베풀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남고 싶습니다.

한번 더 생각하고, 한 번 더 웃는 그런 행복을 남겨보고 싶다는 욕심을 부리고 싶습니다.

 

작은 책자에서 따뜻함을 얻을 수 있음이 행복이겠지요? 기억하지 못 했던 삶의 이야기를 다시 떠올리게 하는 것도 행복이겠지요?

오늘은 유난히 행복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좋은 사람과 행복을 나누게 된다는 것... 내일부터 이것을 열심히 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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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은 겁이 많다 - 손씨의 지방시, 상처받지 않으려 애써 본심을 감추는
손씨 지음 / MY(흐름출판)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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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나도 할 줄 알고 다 아는데 부모님이 잔소리를 하는 게 그렇게 싫었다. 그래서 빨리 어른이 되어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나의 인생을 멋지게 그려내고 싶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더 큰 어른이 되어갈수록 어릴 적 가지고 있던 패기나 용기 때론 용감무쌍한 무모함이 점점 더 없어진다.

 

세상을 알아가면서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마음보다는 세상과 타협하는 나로 변해간다. 아마도 세상과 타협을 하는 것이 세상에 대한 겁을 먹기 때문일까?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모른척하면서 살아가야 하는지 알게 되면서부터 그것이 이 세상을 무던하게 살아가게 하는데 일조를 한다는 것을 몸으로 느껴서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아직도 내 꿈에 대해 그것의 크기가 어찌 되었던, 그리고 그것이 때론 사는데 큰 영향을 주지 않는 것이든 간에 아직도 나는 꿈을 쥐고 있고, 그것을 늘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이 문득문득 떠올려진다는 것이 좋다.

아마도 그것은 내가 사람들과 늘 어울리고, 사람들과 마주 보며 하루를 보내보고, 또 하루를 맞이하는 그런 노하우가 쌓여가기 때문 아닐까?

이런 철학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마도 <어른은 겁이 많다>를 통해서 조금 더 삶에 대해서, 사람에 대해서, 그리고 나와 꿈에 대해서 진하게 생각을 해보기 때문 아닐까?

 

1

2

 

 

프롤로그.

그래서 어른은 사랑을 하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장애물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함께 가야 하는 사람이 절실히 필요하니까요. 하지만 그 사랑에서도 미리 걱정하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속마음을 숨기죠.

결국 우리는 상처받지 않기 위해 애써 본심을 감추며 가면을 쓰고 살고 있습니다.

(중략)

비겁한 행동이지만 어쩌면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현명한 방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구나. 우리는 어른이 되어간다는 의무감 아래 나의 속마음을 못 본척하고 살아가고 있나 보다.

'사랑'이라는 말속에 많은 것을 두루뭉술하게 얼렁뚱땅 지나칠 때도 있긴 하다. 남에 대해서도 얼렁뚱땅, 나에 대해서도 얼럴뚱땅.

과연 우리는 나만의 속마음을 얼마나, 자주 들여다보곤 할까?

 

오늘 하루도 삶의 전쟁터에서 용감하게 맞선 후에 <어른은 겁이 많다>를 펼쳐본다. 작가의 말처럼 내가 숨기고 있던, 때론 전쟁터 속에서 잊히고 있던 나의 속마음을 들여다보고 싶어진다.

 

 

 

나도 이젠 인생에 대해서 어지간히 결론을 운운해볼 수 있는 나이에 왔다.

남들보다 더 낫지는 않더라도 나의 인생에서 아직까지 후회되는 것은 없이 살아왔다. 그래서일까? 나의 삶은 그래도 잘났다고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잊힌 부분은 분명 있다.

때론 서럽기도 하고, 때론 우울하기도 하고, 때론 좌절 때문에 온몸의 기운이 빠지는 그런 적도 분명 있다.

그저 떠올리기 싫어서 억지로 잊고 살았나 보다.

시간은 잊었다고 하지만, 마음은 잊지 못하고 있나 보다.

<어른은 겁이 많다>가 나에게 주는 것은 '그래도 당신은 열심히 살았군요'라는 위로다.

 

작가의 글에 박장대소하기도 하고,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듯이 똑같이 고백을 하기도 한다.

내가 하고 싶은 투덜이를 작가도 역시 하고 있고, 내가 허무하고 나약했을 때에 말했던 절절함을 작가도 똑같이 하고 있다.

 

 

사랑도 그렇다. 어른이 되어간다고 사랑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나이가 들면 그 나이에 맞는 사랑을 하게 된다. 사랑도 하고 이별도 하고. 청춘의 사랑도 떠올려보고, 지금 옆에서 코 골고 있는 같이 늙어가는 사람과의 첫사랑도 다시 기억 해낸다.

 

 

살아가면서 사랑을 멀리하고는 살 수가 없다.

나를 위해서든, 그를 위해서는 우리는 사랑 때문에 울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고, 그리고 더 뜨겁게 다가가기도 한다.

작은 일에 삐치기도 하고, 투닥거리는 부부싸움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내 곁에는 늘 그 사람이 있다는 것과 늘 같은 곳을 바라보며 삶을 같이 만들어간다는 것이 아닐까?

 

기분이 좋다.

늘 부족하게 느껴지는 그 무엇을 따뜻한 손길로 보듬어 주고, 쓰다듬어 주는 느낌을 받는다. 글에서 이런 위로를 받게 될 때, 그래도 책을 놓지 않아서 좋구나라는 생각을 해본다.

청춘의 잊었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어서 좋고, 현재 진행형인 삶의 달리기에서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어서 좋다.

짧은 문장 하나하나가 가슴에 새겨짐을 느끼면서 하늘을 보고 심호흡을 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어서 좋다.

봄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환한 그림도 좋다.

 

솔직하지만 톡 쏘는 글에서 숨기고 싶었던 마음도 한 번쯤 드러내고 싶다.

남들보다 뒤처져 사는 게 아닐까라고 생각했던 우울감도 과감하게 떨쳐버릴 수 있다.

무엇보다 나를 위해서, 나만의 시간을 찬찬히 되돌려주는 것이라서 좋다.

 

어른이 되면 솔직해진다는 것이 걸리 적 거릴 때도 있지만, 그래도 어른이 되면 가끔은 아주 시원하게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책을 덮었다.

어제 흐릿했던 하루였다면 오늘은 그래도 조금 밝아 보이는 것은 글을 읽어가면서 나 스스로 조금은 정화되었다고 하면 과장일까?

그래도 좋다.

내가 좋으면 다 좋은 거다.

나의 마음이 편하면 내 앞으로의 삶도 편하지 않을까라고 억지를 부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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