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우체부 - 나는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
권종상 지음 / 예담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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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처럼 비가 올 듯 말 듯한 날씨에 책장 앞을 어슬렁거린다.

책만 챙겨놓고 읽지 않은 책 몇 권이 나의 선택을 기다린다.

왠지...손길이 가지 않는 책들이 있다. 그건 언제라도 내가 선택해서 읽을 수 있기 때문에 책장 한 켠에 차곡차곡 쌓아두는 곳에 둔다.

내 숙제이기 때문에..

오늘은 그 자리에서 한 권을 뺐다.

<시애틀 우체부>

 

정말 오늘처럼 비가 올 듯 말 듯한 날씨에 가장 잘 어울리는 책이다. 물론 진한 향의 커피가 완전히 나를 이 책을 짚어 들도록 꼬셨다.

 

시애틀..

비와 커피의 도시..

그리고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이라는 영화..

 

이런 이미지를 가진 독자는 <시애틀 우체부>에 후한 점수를 줄 것이다. 읽는 내내 긍정적인~그리로 한편으로는 따뜻한 시선으로 책 여정을 따라갈 것이다. 뭐 그렇다고 괜한 점수를 준다고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날씨와 기분과 커피가 어울려서 읽게 되었다는 잠시의 변명을 해보고 싶었을 뿐이다.

 

<시애틀 우체부>

이 책의 저자 권종상씨는 TV 프로에도 소개되었다고 한다. 물론 나는 못 봤지만, <지구촌 네트워크 한국인>이라는 방송에 소개되었다고 하니 지구촌에서 우뚝 자리 잡은 한국인의 열정은 기본적인 베이스로 깔린다.

부제 '나는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렇다. 저자는 저 먼 나라의 도시 시애틀에서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을 느끼고 자신의 자리를 확고하게 자리 잡은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다. 결론은 이것이다. 그런데 왜 <시애틀 우체부>라는 책까지 내면서 소개를 하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성공'이라는 잣대를 물질적이냐, 인간적이냐에 따라 해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사람에게 남는 것은 열나게 달리기를 해서 얻어내는 물질의 풍요가 더 나은 것일까? 비록 가진 것은 조금이지만 타인에게 얻어낸 깊은 신뢰감이 더 좋은 것일까?

인생의 질, 삶의 질, 그리고 인간이 어울려 가는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가치를 생각하는 독자라면 <시애틀 우체부>의 여정을 함께 따라가 볼 필요가 있다.

 

우선 저자의 이력을 보자.

그는 갑작스럽게 이민 결정을 하고 시애틀에 새로운 둥지를 틀었다. 하지만 이방인으로서 그 사회 일원이 되기란 쉽지 않다. 모든 이민자가 똑같이 겪는 우여곡절이 이어진다. 그는 10년간 한인사회 주간지와 방송국의 기자로 활동한다. 뭐. 이런 이력이라면 어느 정도 자리 잡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는 우체부의 길을 선택한다.

 


저는, 감히 제가 미국 생활에서 성공했다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미국엘 왔고, 이들은 '성공'이라는 가치를 좇아왔습니다. 미국에 온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십중팔구 자신의 꿈이 '성공'이라고 말하더군요. 그리고 그 성공은 대부분 물질적인 것으로 풀이됩니다. 그들에게 성공은 '많은 것을 가지는 것'이지요 (중략) 그러나 제가 생각하는 미국 생활에서의 성공은 '그 사회에 녹아드는 것'입니다. 내가 그 커뮤니티의 일부가 되는 것이죠.(p27)


'성공'이란 잣대를 권종상씨는 다르게 가지고 있었다. 그가 원하는 성공이란, 그가 바라는 성공이란 바로 사람, 인간을 말하는 것이다.

<시애틀 우체부>는 그가 우체부를 하면서 만나게 되는 미국 사회의 평범한 일상을 그려내고 있다. 너무나 개인주의적인 미국 사회에서 마음을 통한다는 것은 아마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그들은 선을 정해놓고 그 선을 넘지도 않고, 넘어오는 것도 싫어한다. 그것이 우리 한국인의 '정情''는 매치가 안되는 부분이다.

그런 미국인들에게 한국인의 정을 끌어내는 일을 권종상씨가 했다.

 

<시애틀 우체부>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사람 속에서 사람의 소식을 전하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그래도 우리는 역시 '사람'을 믿고, '사람'에 의지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 같습니다(p88)


그 먼 나라 미국땅에서도 저자가 보여준 것은 사람에 대한 믿음, 그리고 그 믿음때문에 가슴이 꽉 차는 느낌, 그리고 그 느낌은 바로 삶의 원동력이 된다는 것을 잔잔한 여운으로 들려준다. 움직임이 불편한 할머니에게 보여준 잠깐의 배려는 할머니의 수호천사가 될 만큼 큰 감동을 주는 행동이었고, 진실한 마음으로 나누는 와인 이야기는 그에 담긴 또 다른 철학을 배우게 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동생의 전사 통지를 전해주면서 함께 슬픔을 느끼고 이웃을 달래주는 것도 삶의 진정한 모습이다.

 

<시애틀 우체부>는 사람의 이야기도 전해주지만, 각각의 삶의 향기를 더욱 진하게 하는 커피 이야기도 전해준다. 간편한 믹스 커피의 맛도 좋지만, 커피를 갈고 한 방울씩 떨어지면서 퍼지는 커피 향은 정말 포기할 수 없는 향긋함의 하나이다. 커피의 도시 시애틀을 커피와 와인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에게 멋지게 들려준다.

 

뿌연 안개인 듯, 저무는 저녁노을 속인 듯, 시애틀의 한 거리에서 사람의 정을 전하는 우체부가 표지에 있다.

잔잔한 여운을 남기는, 사람의 향을 느끼게 하는 그런 에세이를 오늘 같이 비 오는 오후에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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