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을 때마다 조금씩 내가 된다 - 휘청거리는 삶을 견디며 한 걸음씩 나아가는 법
캐서린 메이 지음, 이유진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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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진 지식하우스에서 2022.11.28일에 출판된 ‘걸을 때 마다 조금씩 내가 된다’의 저자 캐서린 메이는 2021.11.21일 출간된 인생이라는 여정에서 꼭 거치고 마는 ‘Wintering’ 즉, 겨울을 나는 법을 추울 법도 하지만 아름다운 문장들로 이루어진 ‘우리의 인생이 겨울을 지날 떄’의 저자이자 에세이스트다 (참고로 약간 사족을 붙이자면 이 책은 나의 인생책 중 한 권이다). 영국 위츠터블에서 가족과 함께 여느 나날들을 보내고 있는 그녀의 일상에 삐걱 거리기 시작했고, 30대 후반이라는 나이에 자폐 스펙트럼 장애 (아스퍼거 증후군)이라는 진단을 받으며 또 다른 여정을 시작하게 된다. ‘걸을 때 마다 조금씩 내가 된다’는 그녀가 진단을 받기 전,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고 덧없는 시간들에 조바심을 느끼며 이 전의 그녀를 찾을 수 있을 지도 모르는 간절함으로 다소 험악하고 가파른 영국의 해안길을 걸으며 지난 상처와 인생에 대한 수용과 이해, 그리고 회고의 순간들을 기록한 책이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외하면 [걸을 때마다 조금씩 내가 된다]는 크게 총 3부작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 1부에서 다루는 얘기는 독자들이 가장 궁금해할 법한 해안가를 걸으며 회고의 시작과 자폐 스펙트럼 장애 진단의 시발점이 되는 얘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렇게만 말하면 조금은 진부할 수 있겠지만 사실 처음은 여느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 오히려 다정하고 좋다. 1부가 막을 올리는 동시에 회고의 시간도 함께 시작되는데, 그녀의 다소 까칠하고 예민한 일상들에 있어서 스스로의 상처들을 얼마나 보듬어 주지 못했는가, 타인과 비교하는 삶이 얼마나 숨이 막히는가, 정작 본인 인생 가운데 자기 자신이 아닌 남을 생각하며 보낸 시간들이 얼마나 무의미한가, 그럼 그러한 순간들에 이해받지 못한 ‘나’는 결국 누가 위로하고 위해주는가에 대한 이야기들이 다소 솔직하고 대담하게, 그렇지만 캐서린 메이의 특유 다정함으로 부드럽게 풀어지고 있다. 스스로 자폐에 대한 고찰을 시작하며 의심에서 확정이 되는 순간의 당혹스러움, 그리고 그녀가 사랑하는 가족의 반응은 1부작이 피워낸 수 많은 꽃들 중 하나이다.

제 2부로 들어서면서부터 체념한 작가를 마주할 수 있다. 부정의 의미에서 체념이 아닌, 스스로를 받아들이고, 너그러워지며 타인에서 나를 그려보는 것을 멈추듯, 나로부터 타인을 그리는 것도 점차 멈추며 공허함을 채워나가기를 시작하는 때. 그러니까 즉, 인정과 비워냄의 의미를 가진 체념이다. 다름을 인정하는 것은 쉬워보일 수 있어도 타인과 나의 차이를 인정하는 건 가장 중요하면서 잊기 쉽기 때문에 항상 인지하고 있기 어렵다. 그렇기에 인생이란 여정에서 그 수 많은 출발선들 중 온전한 나의 선을 찾지 못해 방황함과 동시에 사회가 정한 선에 서지 않고 나만의 출발점이 나타나길 기다리는 것은 조급하고 꽤 애타는 일일 수 밖에 없다. 그러한 절망과 불안함을 느끼고 사회성을 ‘습득’하며 살아온 저자가 험궂은 해안길을 걸으며 혼자만의 시간 속에서 자신의 삶과 상처에 대한 회고, 아스퍼거 증후군으로부터 이해의 과정을 거치는 그녀의 이야기가 한 사람의 인생을 노래로 써내려가듯 펼져지는 순간들을 가장 리드미컬한 템포로 즐길 수 있다. 단연코 시련을 마주하고 돌아보는 시간을 위로하고 시행착오 속에서 상처받지 않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부분이다.

마지막 제 3부에서 가장 집중해야 할 것은 걷는 동안 달라진 이 전 삶과의 차이를 어떻게 극복해 나아가는가이다. 타인과 사회로부터 느껴지는 해방감인 지, 혹은 소외감인 지를 분간하며 서툴지만 조심스러운 한 발자국을 내딛는다. 자폐뿐만이 아닐 것이다. 누구에게나 처음이라는 것은 존재하고 그 안에서 다시 적응하고 조정하며 살아간다. 타인과 다르다는 두려움, 멀어졌다는 두려움, 나를 불쌍하게 여길 것이라는 두려움, 여전히 그대로인 것 같은 두려움. 이 수많은 두려움들 속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또 어떠한 감정으로 매 순간을 마주하는 지 꽤나 덤덤하면서 소중하게 이야기 하고 있다.

삶이란 언제 무슨 일이 들이닥치고 어떠한 변화를 겪게 될 지 단 1초라도 내다볼 수 없는 한정적인 시간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러한 순간들을 담대하게 회고하며 그 여정을 풀어낸 이야기가 가득 담겨있는 책이다. 각기 다른 인생을 살아가며 조금은 아프겠지만 이상하리만큼 시원하게 상처를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고, 과연 ‘나’를 지운 채 평범함을 유지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고된 일인지 그 수고스러움에 대한 위로를 얻을 수 있다. 무언가가 특별하고 유별나서 부끄럽거나 소외되는 찰나의 감정들 마저도 꽤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가도 괜찮다고 알려주며 사실 그것들에 대한 태도와 수용은 다른 누군가가 결정지을 것이 아니라 본인의 그러한 부분을 얼마나 익숙하고 능숙하게 여기는가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렇기에 그것이 설령 자폐라할 지 언정 그 안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 지 보여준다. 그리고 이건 우리의 인생이 거창함을 요구하는 것이 아닌 그저 나의 것으로 만들며 살아가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지 느낄 수 있다. 심지어 저자는 그녀의 남편 H, 그리고 아들 버트와의 관계가 가족이란 틀 안에서 단순하지만 보통의 삶의 흐름조차 버거웠던 순간들이 치유되고 이해받지 못할 관계란 없다는 것을, 그러니 완벽한 타인으로부터 아프고 힘들어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그저 우리는 우리의 삶이라는 여정 속에서 최선을 다하면 된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이야기 해주고 있다.

“각각의 경로에 세상을 바라보는 당신만의 고유한 시선이 담겨 있다. 다른 여러 길이 그 경로를 지날 수는 있어도 그 경로를 온정히 걸을 수 있는 건 당신밖에 없다.” <길을 영원히 기억하는 법 中>

당신의 온전한 길 위에서 그 누구도 감히 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다는 외로운 생각이 들 때, 어떠한 페이지든 펼친 후 작가와 함께 걸어보았으면 좋겠다. 그것은 회고가 될 수도 있고, 위로가 될 수 있고, 뼈아픈 사실들이 될 수도 있겠지만 당신의 길 위에 새겨진 모든 것들이 환상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어도 무의미한 것들만 남아있는 삶은 결코 아니라는 것을 알아갈 수 있었으면 한다. 비로소 ‘나’를 찾았다는 안도감과 만족감이 무엇인 지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다정하지만 강한 회고의 책, ‘걸을 때마다 조금씩 내가 된다’를 꼭 소유하고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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