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블로거 문학 대상] 문학에 관한 10문 10답 트랙백 이벤트


1. 당신은 어떤 종류의 책을 가장 좋아하세요? 선호하는 장르가 있다면 적어주세요.
- 성장 소설류 전체, 하드보일드 소설류, 유럽 블랙 코미디 소설류.

2. 올여름 피서지에서 읽고 싶은 책은 무엇인가요?
-  레이먼드 챈들러의 필립 말로우 씨리즈. <빅슬립>부터 <롱 굿바이>까지.

3.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누구인가요? 혹은 최근에 가장 눈에 띄는 작가는?
- 좋아하는 작가는 커트 보네커트, 가네즈로 가즈키, 레이먼드 카버. 최근에 눈에 가장 띄는 작가는 코맥 맥카시, 리자 러츠.

4. 소설 속 등장인물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인물은 누구인가요? 이유와 함께 적어주세요.        

-  <완득이>의 완득이. 최근에 본 가장 유쾌하고 상쾌했던 캐릭터.


5. 소설 속 등장인물 중에서 자신과 가장 비슷하다고 느낀 인물 / 소설 속 등장인물 중 이상형이라고 생각되는 인물이 있었다면 적어주세요.

- 비슷하다고 느낀 캐릭터는 없고, 이상형은 <GO>의 주인공.

6. 당신에게 소중한 사람들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은?

- 코맥 맥카시의 '로드'

7. 특정 유명인사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 누구에게 어떤 책을 읽히고 싶은가요?

- 이명박씨. <내가 배워야 할건 유치원에서 다 배웠다>

8. 작품성과 무관하게 재미면에서 만점을 주고 싶었던 책은?
-  최근작에서는 리자러츠 <네 가족을 믿지 마라>와 김려령의 <완득이>

9. 최근 읽은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이 있다면 적어주세요.

- <로드> 중. '' 나중은 없다. 지금이 나중이다. 우아하고 아름다운 모든것들,너무 우아하고 아름다워 마음에 꼭 간직하고 있는 것들은 고통에서 나온것들이기도 하다"'
- 이유 : 매일 살면서 지금이 최악의 인생이라고 생각하지만, 언제나 후에 생각해보면 그때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더라.

10 당신에게 '인생의 책'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유와 함께 적어주세요.

- 커트 보네거트의 <제 5도살장> 어린 빌리가 참전했다가 외계로 갔다가 사형을 당했다가

시공간을 오가는 이 소설을 읽고, 삶에 대한 가치관이 달라졌었다.

인간의 삶은 멸하지만 그는 과거속에, 현재속에, 미래속에 항상 존재하는 거다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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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매점

빠글빠글한 빡빡머리의 사내들이 먹이를 기다리는 어린새들처럼 매점누나에게 손을 내민다.
매점누나가 향긋한 샴푸냄새를 날리며 머리채를 휙하고 돌리자 빡빡머리들 심하게 짹짹거린다.
컵라면을 건네 받으며 누나의 터치를 느낀 빡빡머리 하나가 코피를 쏟으며 쓰러진다.
갑자기 일순간 짹짹 거리는 소리 일순 사라진다.

(os) 남자 : 거기 니케, 레비스 빨리 내려와 !

매점 계산대에 대롱대롱 매달려 매점누나를 멍하니 바라보던 두 빡빡머리가 머리채가 잡혀 끌려 나온다.
하키스틱을 들고 비열한 웃음을 짓는 저놈은 그 악명높은 가가멜 교련선생이다.
가가멜은 매점누나에게 씨익 느끼한 웃음을 지으며 궁둥이를 탁하고 치곤 나이키와 리바이스 자켓을 걸친 두 빡빡머리를 질질 끌고 나간다.

#. 2. 교실

바글바글한 빡빡머리들이 도시락을 까먹으며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며 난장을 핀다.
아까 끌려갔던 니케와 레비스는 머리에 고속도로가 시원하게 뚫린채 밥을 먹으며 재잘 거린다.
순간 앞문이 버럭 열린다.

가가멜 : 조용해 이 쉐끼들! 자습시간에 왜 이렇게 시끄러워! 이 쒜끼들. 이네 이따 선도부실로 와!

가가멜이 나가자 교실은 진공상태가 된 듯 멍해 진다. 다시 뒷문이 버럭 열린다.

가가멜 : (젠체하며) 흠. 이쪽반은 조용하군. 옆반은 지랄하던데.

입안에 밥을 잔뜩 채워넣고 참던 뚱빠빡이 뒤돌아 본다
뚱빠박 얼굴이 씨뻘개지며 참아보지만 이내 폭탄을 터드린다. '푸하!'

#. 3. 화장실

모락모락 연기가 나는 화장실 내부.
아무것도 모른채 거울을 보며 얼굴에 묻은 파편을 닦아 내는 가가멜.

가가멜 : 하! 이 좀만한 쒜끼들. 하여간 시시때때로 밟아줘야 한다니깐.

갑자기 고개를 휙 돌려 대변기 문을 바라본다.
뚜벅뚜벅 걸어가는 교련선생.
대변기 위에 쪼그려 앉아 입에 하나가득 연기를 참고 있는 안경빠박과 홀쭉빠박.
첫번째 문을 연다.
아무도 없다.
두번째 문을 연다.
아무도 없다.
세번째 문을 열다 바닥으로 기어서 옆칸으로 가고 있는 두 놈의 머리통을 발견한다.
모른척 하고 들어서서 두 놈의 발에 시원한 물줄기를 갈기는 가가멜.

빠박들 : 흐흑. 차라리 밟아 주세요. 흐흑.

가가멜 : 일어나 ! 이 쉐끼들.

빠박들 얼굴에 물이 뚝뚝 떨어지며 죽을상을 하고 있다.

가가멜 : 훅 하고 불어봐 이 쉐끼들.

안경빠박이 훅 하고 분다. 
가가멜 머리통을 내려치며 '국산펴라!' 이번엔 홀쭉빠박이 흡 하며 빨아들인다.
가가멜 고개를 저으며 생각한다. 
홀쭉빠박 이젠 죽었구나 하며 머리통을 움켜잡고 방어자세를 취한다.

가가멜 : 흠. 넌 괜찮군. 들어가봐!

홀로남은 안경빠박의 억울한 표정.

#. 4. 교실

칠판 한가운데 분필하나가 와서 탁 하고 꽂힌다.
학생들이 교실 중앙에서 줄줄이 줄을 서서 칠판에 둥그렇게 그려진 표적에 하나씩 분필을 던지고 있다.
엎드려 쏴! 하면서 누워 던지고, 쪼르려 쏴! 하면서 앉아 던지며 무슨 사격하듯 던지는 빠빡들.
가분수빠박이 울상을 지으며 교실 앞으로 다가간다.

가가멜 : (흠) 넌 만원 이군. 자고로 사내새끼들은 밤이고 낮이고 조준을 잘해야 한다니까.
             난 새꺄들아. 낮엔 베트콩들 한 발로 수십명씩 조지고, 밤엔 언니들 다 까무라쳤어.

똘똘빠박이 심호흡을 하며 조준을 하자 교련선생이 눈짓을 보내더니 탁자를 탁하고 내리친다.

가가멜 : 오늘 사격수업 이걸로 끝!

#. 5. 선도부실

레비스와 니케, 뚱 빠박, 안경빠박이 원산폭격을 하며 연신 땀을 비흘리듯 흘리고 있다.
뚱빠박이 에이 씨발! 하며 벌떡 일어난다.

뚱빠박 : (헉헉대며) 못해먹겠다.

눈치보던 레비스와 니케도 살며시 일어난다.

레비스 :  내년에 교련도 없어진다던데.
니케 : 1학년들은 아예 교련수업이 없데.
뚱빠박 : (헉헉대며) 씨발. 빽으로 들어와서 좆도 갈구기만 하고... (이상한 느낌에 뒤돌아 본다)

가가멜이 창밖으로 고개를 쏙하고 내밀고 실실 웃으며 바라본다.

#. 6. 운동장

안경남의 억울한 표정. 낮은 포복을 하며 기어가고 있다.
교련복을 입은 뚱빠박이 뒤이어 고무총을 어깨에 수십정 둘러메고 쪼그려 뛰기를 하고 있다.
뒤에 레비스와 니케가 쓰러졌다 일어났다를 거듭하며 따라온다.

레비스 : 씨발. 내가 졸업하면 이쪽으로 오줌도 안싼다.

뚱빠박이 한마디도 투덜거리지 않고 묵묵히 앞에서 쪼그려 뛰고 있다.

뚱빠박 : (혼잣말로) 두고봐 씨발.

#. 7. 복도

복도에 일류대 합격자 명단이 삐까번쩍하게 걸려있다.
가가멜이 저 구석에서 어깨를 축 늘어뜨린 똘똘빠박의 어깨를 두드리며 방긋 웃고 있다.

#. 8. 교실

입시결과가 발표되 싱숭생숭한 빠박들이 무늬만 자습중이다.
가가멜은 교단 앞에서 만화책을 보며 희희덕 대며 빠박들에게 신경쓰지 않는다.

레비스 : 씨발. 무슨 학원 경쟁률이 대학보다 쎄냐.
니케 : 난 그냥 지방대라도 갈란다.
안경남 : (성적표를 보며 부들부들 떨며 억울한 표정을 짓는다) 씨발 밀렸다.

창가쪽 구석 자리가 비어있다.

똘똘빠박 : (옆 자리를 보며) 하. 이 새끼 사고 치는거 아냐.

순간 앞문이 버럭 열린다.

뚱빠박이 얼큰하게 취했는지 얼굴이 벌개서 횡설수설한다.

뚱빠박 : 왜 이렇게 조용해 ! 새끼들. 좀 즐겨라 즐겨.

가가멜이 힐끗 쳐다보더니 그냥 다시 고개를 돌린다.
문을 쾅하고 닫고 나가는 뚱빠박.
쾅쾅쾅쾅 소리가 난다.
뒷문이 버럭 열린다.

뚱빠박 : 흠. 이쪽반은 좀 즐기는군. 옆반은 졸라 쫄아있던데.

아이들 뭐가 생각났는지 킥킥대며 웃는다.
그때까지 가만있던 가가멜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웃는 아이에게 다가간다.

가가멜 : (쫄아있는 웃는빠박에게) 다음권 !

웃는빠박 가방에서 만화책을 꺼내 가가멜에게 건넨다.

가가멜 : 아니다. 그냥 가방채로 줘. 내가 낼 줄께.

웃는빠박 순간 가방을 보물 다루듯 움켜쥐며 멈칫하며 긴장한다.

가가멜 : (가방을 뺏으며) 내가 뭐 가져가냐. 잠깐 빌려달라구.

뒤돌아 실실거리며 돌아가는 가가멜의 뒷머리를 무언가 팍 친다.
가방이 바닥에 툭하고 떨어진다.

가가멜 : (표정이 굳으며 돌아선다) 수능끝났다고 완전 돌았구나.

웃는빠박은 그자리에 긴장해 앉아있다.
뚱빠박이 씩씩대며 가방을 주워 웃는빠박에게 건네준다.

가가멜 : (기도 안차하며) 이 쉐끼가. 선생을 때려?
뚱빠박 : (빠릿빠릿하게 똑바로 쳐다보며) 선생이 선생같아야지. 씨발.

가가멜이 하키스틱을 휘두르지만 뚱빠박이 스틱을 손으로 탁하고 잡아챈다.
 
가가멜 : 이 새끼가. (뚱빠박을 노려보다 기에 살짝 눌린다) ...

가가멜이 뚱빠박의 힘에 밀려 손이 꺽여 내려가며 아아~ 하며 아파하며 바닥에 무릎을 꿇는다.

가가멜 : 이 ... 쉐끼... 너 퇴학이야.... 쉐끼.... 아니,. 깜빵이야....어서 경찰불러! 씨발.

아무도 뚱빠박의 기세의 밀려 멍하니 움직이지 못한다.
뚱빠박이 가가멜의 손에 힘을 탁하고 주자 가가멜이 피식 쓰러지며 이젠 아예 비명을 지른다.

가가멜 : 씨발. 어서 경찰불러! 이 빨갱이 쉐끼...

다양한 빠박들 통쾌함 반, 불안함 반의 눈으로 바라만 보는데 순간 점심시간 종이 울린다. '딩동뎅동'

교내방송 : 안녕하세요. GBS 입니다. 오늘의 신청곡 보내드립니다. 'TO SIR WITH LOVE'

노래 : A Those school girl days ~~~ of Telling tales and biting nails Are gone ~~~

 #. 9. TV 화면

앞의 노래 잔잔하게 깔리며 TV화면이 커다랗게 보인다.

앵커 : 아홉시 뉴습니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스승과 제자사이에 벌어진 희대의 사건입니다.

자료촬영 화면 펼쳐진다.

고개를 푹숙인 똘뚤빠박 : (음성변조) 제가요. 원래 그럴려고 그런게 아니구요. 집안이 워낙어려워서요...
고개를 발딱 든 가가멜 : (얼굴만 빼고 나머지 모자이크) 아니. 내가 제자를 아껴서 좀 도와준거라니까. 그게 뭐가 문제야...

기자 : (하교하는 학생들을 배경으로) 국내 희대의 명문고 G고에서 벌어진 이 입시부정 사건은 전국을 큰 혼란에 빠트렸습니다.
          우수한 제자들을 장학금의 명목으로 대리시험을 권유해 응시케한 이번 사건은 입시위주의 우리 사회의 맹점을 보여주는 사건으로서....

화면 뒤에서 안경빠박이 연신 V자를 그리며 뛰어보지만 포커스 아웃되어 전혀 보이지 않는다.

#. 10. 매점

매점누나가 컴컴한 어둠속에서 TV화면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손에 낀 반지를 꺼내 서랍에 집어 넣는 매점누나.
불이 탁하고 켜진다.

레비스와 니케가 뚱빠박을 데리고 들어선다.

레비스, 니케 : 누나! 우리 라면쫌!!!

매점누나는 촉촉한 눈에서 이내 씨익 그 특유의 환상미소를 날리며 찰랑이는 샴푸냄새를 풍기며 머리를 다시한번 휘날린다.

레비스 : 와. 그거 니가 꼬발른거 아냐? 이 새끼 간 졸라 큰데?

뚱빠박 : (웃으며) 아냐. 하여간. 씨발 그거 아니었으면 나 좆될뻔 했다.

니케 : (갑자기 일어서며) 나 추가합격했다. 흐흐.

레비스 : (니케의 어깨를 주무르며) 씨발 나중에 짭새되면 나 딱지 쫌 없애주라.

뚱빠박 : (레비스에게 기도하며) 넌 신부되면 나중에 나 주례나 봐주라.

니케 : (뚱빠박에게 손가락으로 프레임 만들어 바라보며) 넌 난중에 영화찍으면 나 엑스트라 꼭 시켜줘. 흐흐.

매점누나가 라면을 들고 가져다 놓자 빠박들이 휘몰아쳐 들어온다.
계산대에 대롱대롱 매달린 빠박들의 짹짹소리.
조용히 흘렀던 TO SIR WHTH LOVE 짹짹소리와 섞이며 점점 노랫소리가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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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광대 2008-07-22 1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들은
정정당당함 보다는 비굴함을,
사랑과 애정보다는 정글의 법칙을
가르쳤다.
하지만
남들과 다르게 사는 법도 있다는 것을
배웠던 시간들이었다.
아프고 상처가 나 딱지가 졌지만,
이내 새 살이 돋았다.
언제 그랬었냐는 듯.


 
 전출처 : 무당광대 > [찬란]한 순간을 과산화수소에 담아...

 

 

 

 

 

 

 

 

                       불편하지 않은 것은 

                 살고 있는 것이 아니리니  

                                     마음에 

    휘몰아치는 눈발을 만나지 않는다면 

                살고 있는 것이 아니리니 

                       ([찬란] 시인의 말) 

 

 

[끌림]의 에세이 작가로, [바람의 사생활]의 낭만적인 시인으로 나의 책장 가운데 늘 놓여있었던 '이병률'시인의 신작은 단 1초의 지체도 없이 내 책상으로 배달되어 왔다. 난, 첫 페이지를 펼치곤 '아...' 하는 탄식과 함께 책장을 덮어 버리고 말았다. 

시를 읽는 다는 것은 무척이나 불편한 행위임을, 하지만 그 휘몰아치는 눈발을 불편하게 헤쳐나가지 않으면, 살아 있는 것이 아님을, 찬란한 생을 위해선 그 불편을 감당해야만 함을 알기에 쉽게 페이지를 펼치기가 힘들었다.  

예술가의 임무는 우리의 삶을 끊임없이 불편하게 해주는 것임을, 독자는 그 고통을 즐기는 것임을 알기에, 아파할것을 알면서도 다음장을 넘길수 밖엔 없었다.  

 단연코, 지금껏 읽어본 시집 중에 손꼽을 정도로 술술 읽힌다. 누구는 시집은 아끼고 아끼어 문장하나 구둣점 하나 아껴서 찬찬히 먹어야 한다고 몇달, 혹은 몇년에 걸쳐 읽기도 하지만, 따끈따끈한 햇밥의 보슬보슬함을 사랑하는 나로서는 일필휘독해야만 하는지라 무섭게 읽어 나갔다.  

 히브리어처럼 알수 없고, 암호처럼 풀수 없던 그 수 많았던 시 읽기의 좌절 전에 이 책은 진작 나왔어야 했다.  

 깊고 어려운 것을 쉬운 말로 풀어내는 것은 대가만이 할수 있는 것인데, 이미 이병률은 어느 경지에 오른듯 했다.  

 정말 간만에 시읽기의 쾌감을 전해준 그의 낭독은 어떠할까, 설레는 맘으로 길을 나섰다. 

 그와 함께 한 그 불편함의 쾌의 순간을 즐기면서 몇자 적어본다.

 

* (이병률) 첫 시집은 발표하고 나서 막막했어요. 지금은 하는 일(출판사)이 있어 이상하게 아무런 느낌이 없어요. 미래에 대해 차분하게 생각하게 된달까 그래요.  

* (이병률) 세상을 보는 데는 타고난 천성이 있어 변화는 잘 안되는 것 같아요. 보시는 분의 생각에 달린거죠. 변화되었다면 그것은 저의 일부인 것이구요. 이번엔 눈치 안보고 시도한 시도 있었어요. 생활, 사람대하는 것 이런것은 이전보다 달라진것 같아요. 덜 불안하달까. 이전엔 힘들었던 문제를 넓게 생각해서 품을수 있어진것 같아요.  

 

[기억의 집]  

기억을 끌어다 놓았으니 산이 되겠지 

바위산이 되겠지 

여름과 가을 사이 

그 산을 파내어 동굴을 만들고 기둥을 받쳐 깊숙한 움을 만들어 

기억에게 중얼중얼 말을 걸다 보면 걸다 보면 

 

시월과 십일월 사이 

누구나 여기 들어와 살면 누구나 귀신인 것처럼 아늑하겠지 

철새들은 동굴 입구를 지키고  

집이 하나로는 영 좁고 모자란 나는 

해가 밝으면 동굴을 파고 파고 

그러면 기억은 자꾸자꾸 몰려와 따뜻해지겠지 

 

그 집은 실뭉치 같기도 하고 모자 같기도 하며 

어쩌면 심장 속 같기도 하여서 

겁먹은 채로 손을 푹 하고 찔러 넣으면 

보드랍고 따스한 온기가 잡혀와 아찔해진 마음은 

곧 남이 되겠다고 남이 되겠다고 돌처럼 굳기도 하겠지 

 

그 집은 오래된 약속 같아 

들여다보고 살고도 싶은 여전히 저 건너일 것이므로 

비와 태양 사이 

저녁과 초저녁 사이 

빛이 들어 마을이 되겠지 

 

그렇게 감옥에 갇혔으면 하고 생각한다 

감옥에 갇혀 사전을 끌어안고 살거나 

감옥에 갇혀 쓸데없는 이야기나 줄줄이 적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 기억하는 일 말고도 

무슨 죄를 더 지을 것인가를 생각한다 

성냥을 긋거나 

부정을 저지르거나 

거짓말이라도 해야 하는 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세상을 끊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또 태어나야 할 거라고 생각한다 

 

 

 * (이병률) 여행을 가서 시를 생각하곤 해요. 튀니지 사막에서 기다릴 시간이 있었는데, 동굴에 가보았죠. 햇빛이 따가웠거든요. 그곳에서 딱히 할일이 없기에 먼저 다녀간 사람들의 흔적을 보고, 깡통을 집어오고 그랬죠. 시적이잖아요. 이런 막연한 느낌을 가지고 살다가 어느날 문득 써야 겠다라는 순간이 오면 쓰곤해요. 예민하신분은 눈치 채셨겠지만, 중간에 조가 좀 바뀌죠. 밤새 쓰고 회사 직원인 시인 이영주에게 읽어보라 건넸어요. 괜찮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마무리 할수 있었죠.  

* (김민정) 산문 보고 광화문서 일산까지 달려가 무턱대고 만났어요. 병률오빠가 방바닥에 앉고 제가 컴 앞 의자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했죠. 어디를 여행다녀왔다며, 어느 나라를 찝어도 다 다녀온거에요. 참 대단하더군요. 지구본을 돌리면서 막 찍어대는 기분이었어요. 참 식물성의 인간이에요. 함께 울기도 했고, 많이 아픈적도 있었어요. 좀 둔해서 그런척을 전혀 안해요. 무슨말을 건네도 다 알거 같고 그런 느낌이죠. '찬란' '봉지밥' 이런 거는 이제 제가 못 쓸듯해요.  

* (김근) 등단작을 보고 이사람은 도대체 누군가 했어요. 파리거주중이라는 약력도 그랬죠. [인기척]이라는 시가 좋아서 한동안 외고 다니고 했어요. 열렬히 사랑하다 헤어진 누군가의 기억이 피부의 어딘가에서 되살아난 아련한 쓸쓸함이 묻어났어요. 제가 가지지 못한것에 대한 부러움 같은 것이 있어요.  

* (김민정) 등단때 사진이 기억나요. 어머 시인이 잘생겼네 했었죠. 유독 한편이 아른거리지 않고, 시집 전체가 아른거려요. 어디를 펼쳐도 될듯한 말이죠. 눈물의 넓이를 줄인듯 해요. 전 아프리카에 벌거벗고 돌아다니는 아이 같은데, 무슨 북유럽 같잖아요. 고급스럽고, 차이가 있죠. 

 

[얼굴을 그려달라 해야겠다]   

세상 끝에 편의점이 있다니  

무엇을 팔까  

 

장화를 팔까 

얼음 가는 기계를 팔까 

이 여름 냄새를 팔까 

 

여즉 문을 닫지 않았다면 

그림을 그려달라고 해야겠으니 

생각나는 한 사람 얼굴을 그려달라고 해야겠으니 

도화지가 있느냐 물어야겠다 

 

사람은 가장 사랑했던 사람의 얼굴로  

다시 태어난다 하니 

 

주인게게 그림을 그려달라 해야겠다 

얼굴 그림을 그려달라 해야겠다 

 

그 그림이 나의 얼굴이거나 

혹은 한 사람의 옆얼굴이어도 

 

얼은 영혼이란 뜻이라니 

굴이라는 말이 길이라는 뜻이라니 

 

세상 모든 나머지를 파는 편의점에 가서 

 

조금만 틈을 맞추고 와야겠다 

세상 끝을 마주하다가 낯을 씻고 

아주 조금만 인사를 하고 와야겠다 

  

[내가 본 것]  

 눈에 뭔가 들어가 있다. 괜히 필요하지도 않은 눈물을 흘렸고 그것도 모자라 인공눈물까지 샀다. 병원은 커다란 안경을 통해 내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유리 조각이 박혀 있다고 했다. 

 기다란 바늘이 눈으로 들어왔다. 손가락으로 두려움을 움켜쥐는 사이, 눈은 수면처럼 출렁한다. 빛난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는 

 유리 조각이 바늘 끝에 끌려나오고 있었다.  

 눈 내리는 하얀 밤을 잊을 뻔하였고 그 거리의 무성한 힘들의 기억을 잃을 뻔하여서 나는 말했다. 그 유리 조각을 저에게 주세요.병원은 작은 병 속에 

 유리 조각을 담아주었다. 

 조각은 날카롭기보다 푸르렀다. 박히기는 좋으나 찌르기엔 부족한 조각은 턱으로 밝기를 받치고 있었다. 여태까지 본 모든 것을 기억하겠다는 것은 살아 온 것보다 본 것이 더 단단하리란 것을 믿기 때문일 것이나 

 유리 조각은 내가 본 모든 것을 가지고 갔다. 

 나는 불필요한 부위를 영원히 떼어내기라도 한 듯 모호하게나마 마음이 간절해졌다. 

 

 * (김민정) 예전에 같이 오빠랑 샤브샤브 먹다, 눈이 아프다고 병원에 갔던 기억이 떠올랐어요. 저도 사랑니를 뽑아 달라고 한 적이 있어요. 엄마는 지질한 자기애 때문에 안된다며 혀를 찼죠. 과산화수소에 넣어두니 너무 이뻤어요. 색깔이 빠지면 정말 그래요. 사귀는 남자에게 줘서 이젠 2개밖에 안남았죠.

 

[불편]    

어젯밤 구걸하던 이를 찾습니다. 

내가 완강히 지나쳤으며 왼쪽 곁을 지나친 자입니다 

 

어둔 밤 나에게 손을 내민 것인데 

큰 칼을 내 심장 깊숙이 집어넣을  것 같아 

피하려는 기색 감추느라 

그가 다 지나간 다음에야 미친 듯 심장이 뛰었던 이 

 

그를 피하고서야 그가 멀리서 왔다는 걸 알아차립니다 

 

어젯밤 내 왼쪽 곁으로 스쳐 지나간 이를 찾습니다 

 

심장을 가라앉히고 어둠 때문에 어슷해 보이는 길 한쪽에 

차에 치여 죽은 고양이 주변으로 몰려든 어린 고양이들 

시체를 혀로 핥으며 감정을 나구고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주지 못했습니다 

하여 여태 서늘한 내 왼쪽을 데워줄 

어제 늦은 밤길 구걸하던 이 

맵게 손목을 잡아 골목으로 끌고 가 

이 어쩔 줄 모르는 삶이 방도를 조용히 물을 

그 새처럼 마른 이 

못 보셨습니까 

 

 * (이병률) 시인은 슬프게 태어나는 것 같아요. 슬픔의 함량이나 농도가 높아요. 리듬을 그쪽으로 몰아가거나 시가 찾아왔을때 확 몰아서 쓰기도 해요. 누군가 와서 써준것 같이 말이죠. 저를 운전하는 누군가가 쓰는게 아닐까 생각하곤 해요. 그때를 기다리고 기다리다 한번에 휙 쓰여지기도 해요. 어려운 한줄이 오고 가끔 꺼내어 보다가 뼈를 갖추고 살을 입혀 보며 기다렸다 쓰면 풍성해질때도 있어요.   

* 시는 어렵지 않다고 하면 매 맞을거에요. 혼자 중얼거리는 예술의 형태죠. 좋아하기도 어렵고, 이해하기도 어렵고, 나누기도 어려워요. 또 시인이 이해한다고 해서 자기 것이라고 노래하는 것도 아니죠. 자기가 알고 싶은 시인이 누군지 잘 찾아보고, 집중해서 읽다보면 다른 시인의 글도 읽게되고 그러면 좀 시 읽는 것이 쉬워지지 않을까 해요.  

* 영화를 보면서 사진쪽으로 옮겨가고 했어요. 이런 수줍게 혼자 한 작업들이 시에 도움이 된듯 해요. 영화적인 한 장면같은 요소가 많아요. 머릿속에는 너무나 선명한 편집, 순서가 있어요. 영상적인 무엇, 느낌들을 물고 늘어지곤 해요.  

 

[대림동]  

 

구멍가게는 사라지고 없었다 

골목길을 들어서는데 좁은 골목 한가운데 억지스런 낮달이 서성이고 

집집마다 빨래 마르는 냄새가 하늘하늘 

담벼락에 위태로이 올려둔 양동이에 고구마 순이 자라고 있었다 

사오년 전 내가 살던 곳  

눈 속 낭만을 뜷고 달리는 전철을 올려다봤는데 

그때 옆에 있던 누구에게 낮게 무어라 속삭였던 것도 같아 그때를 볼려고 불을 켰는데 

햇빛은 찬란하고 나를 둘데가 없다 

시를 생각하느라 여기까지 왔다 

 

 * (이병률) 대림시장. 옥탑방에서 한동안 얹혀 살았어요. 옷방에서 시를 쓴적도 있어요. 그래서 공간에 대해 절실하고 예민해요. 2호선 전철타고 가다보면 높이 지나가는 주택들이 보여요. 죽기전에 꼭 한번 살아봐야지 했어요. 헌데 도둑이 들어 이사를 하게 되었는데 바로 그 대림동 옥탑방 집에서 4년정도 살게 되었네요. 시적인 시간들이었죠. 습작도 많이 했고, 분실을 하기도 했고, 여러가지 일이 있었어요.   
  

* (이병률) 제 시를 잘 안읽어요. 밤에 쓴 일기 다음날 보면 머쓱한 것 처럼 말이죠. 지금도 대림동 자주갑니다. 걷다가 또 살고 싶기도 하고 해요.  

 

[바람의 날개] 

 

산에 올라 두리번거렸다 

나무 그림자가 사라질 때까지 걷고 걸어 나무 하나를 찾았다 

나무를 찾고 산의 마음에 표시를 하였다 

반을 얻었다 

 

다시 나무 하나를 찾았다 

하지만 아직은 서쪽으로 더 자랄 일이 있는 나무여서  

나무에 돌을 매달고 다시 산의 마음에 표시를 하였다 

 

일 년쯤을 기다려 두 나무에서 큰 가지 하나씩을 베었다 

사개를 맞대고 질빵을 걸으니 

반은 절반을 마주 보며 어깨가 되었다 

어깨 위에 또 하나의 어깨를 메고 

그 위에 세상을 얹고 걸어나갔다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세계를 지났다 

 

한번 얻은 지게는 버릴 것이 못 되었다 

어깨를 자른대로 지게는 나를 따라왔다 

내 살을 지고 내 터를 지고 풍경마저 한몸처럼 옮겼다 

 

누구나 죄진 사람같이 지게로 태어나 

죄처럼 업혔던 시절이 있었다 

 

업힌 것이 날개인 줄 알고  

퍼드득퍼드득 살려고도 하였다 


* (김민정) 오빠를 모를때는 왜 이게 좋은 지 몰랐어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어두워 지면서 좋아지네요. 그건 뒤끝이 아름다움, 아련함 같은건데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밥을 참 잘하는데, 요리가 먹고 싶네요. 

* (김근) 이 시집 때문에 찬란해 지셨으면 좋겠어요. 따뜻한 감정 가지고 돌아 가셔서 오늘밤은 조금 쓸쓸해져도 좋을듯도 해요.  

 

  

시는 문자로 읽을 때와, 독자로 소리내어 읽을때, 또 낭독을 들을때 사뭇 느낌이 다르곤 하다. 그중 최고는 단연 낭독이다. 노래가 시이고, 시가 노래이지 않은가. 시 낭독의 밤은 멋들어진 콘서트이자, 오페라이자, 뮤지컬이다. 낭독은 시인이 노래하고, 독자들이 코러스를 하는 살아 숨쉬는 또 하나의 예술인 것이다.  

이병률의 목소리는 그의 시와 참 닮았있다. 차분하면서도 또렷하고, 느릿하면서도 템포가 있다. 물론 그 깊은 곳엔 시인의 따스함이 있다. 서글서글한 미소와 단아한 품세가 참으로 섬세하고 식물성인 그의 시를 자꾸 떠올리게 한다.  

2010년 이른 봄. 

홍대에서의 아련한 싯구들을 과산화수소에 담아 이쁘게 방 한켠에 놓아 두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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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무당광대 > [찬란]한 순간을 과산화수소에 담아...

 

 

 

 

 

 

 

 

                       불편하지 않은 것은 

                살고 있는 것이 아니리니  

                                        마음에 

 휘몰아치는 눈발을 만나지 않는다면 

                살고 있는 것이 아니리니 

                       ([찬란] 시인의 말) 

 

 

[끌림]의 에세이 작가로, [바람의 사생활]의 낭만적인 시인으로 나의 책장 가운데 늘 놓여있었던 '이병률'시인의 신작은 단 1초의 지체도 없이 내 책상으로 배달되어 왔다. 난, 첫 페이지를 펼치곤 '아...' 하는 탄식과 함께 책장을 덮어 버리고 말았다. 

시를 읽는 다는 것은 무척이나 불편한 행위임을, 하지만 그 휘몰아치는 눈발을 불편하게 헤쳐나가지 않으면, 살아 있는 것이 아님을, 찬란한 생을 위해선 그 불편을 감당해야만 함을 알기에 쉽게 페이지를 펼치기가 힘들었다.  

예술가의 임무는 우리의 삶을 끊임없이 불편하게 해주는 것임을, 독자는 그 고통을 즐기는 것임을 알기에, 아파할것을 알면서도 다음장을 넘길수 밖엔 없었다.  

 단연코, 지금껏 읽어본 시집 중에 손꼽을 정도로 술술 읽힌다. 누구는 시집은 아끼고 아끼어 문장하나 구둣점 하나 아껴서 찬찬히 먹어야 한다고 몇달, 혹은 몇년에 걸쳐 읽기도 하지만, 따끈따끈한 햇밥의 보슬보슬함을 사랑하는 나로서는 일필휘독해야만 하는지라 무섭게 읽어 나갔다.  

 히브리어처럼 알수 없고, 암호처럼 풀수 없던 그 수 많았던 시 읽기의 좌절 전에 이 책은 진작 나왔어야 했다.  

 깊고 어려운 것을 쉬운 말로 풀어내는 것은 대가만이 할수 있는 것인데, 이미 이병률은 어느 경지에 오른듯 했다.  

 정말 간만에 시읽기의 쾌감을 전해준 그의 낭독은 어떠할까, 설레는 맘으로 길을 나섰다. 

 그와 함께 한 그 불편함의 쾌의 순간을 즐기면서 몇자 적어본다.

 

* (이병률) 첫 시집은 발표하고 나서 막막했어요. 지금은 하는 일(출판사)이 있어 이상하게 아무런 느낌이 없어요. 미래에 대해 차분하게 생각하게 된달까 그래요.  

* (이병률) 세상을 보는 데는 타고난 천성이 있어 변화는 잘 안되는 것 같아요. 보시는 분의 생각에 달린거죠. 변화되었다면 그것은 저의 일부인 것이구요. 이번엔 눈치 안보고 시도한 시도 있었어요. 생활, 사람대하는 것 이런것은 이전보다 달라진것 같아요. 덜 불안하달까. 이전엔 힘들었던 문제를 넓게 생각해서 품을수 있어진것 같아요.  

 

[기억의 집] 

기억을 끌어다 놓았으니 산이 되겠지 

바위산이 되겠지 

여름과 가을 사이 

그 산을 파내어 동굴을 만들고 기둥을 받쳐 깊숙한 움을 만들어 

기억에게 중얼중얼 말을 걸다 보면 걸다 보면 

 

시월과 십일월 사이 

누구나 여기 들어와 살면 누구나 귀신인 것처럼 아늑하겠지 

철새들은 동굴 입구를 지키고  

집이 하나로는 영 좁고 모자란 나는 

해가 밝으면 동굴을 파고 파고 

그러면 기억은 자꾸자꾸 몰려와 따뜻해지겠지 

 

그 집은 실뭉치 같기도 하고 모자 같기도 하며 

어쩌면 심장 속 같기도 하여서 

겁먹은 채로 손을 푹 하고 찔러 넣으면 

보드랍고 따스한 온기가 잡혀와 아찔해진 마음은 

곧 남이 되겠다고 남이 되겠다고 돌처럼 굳기도 하겠지 

 

그 집은 오래된 약속 같아 

들여다보고 살고도 싶은 여전히 저 건너일 것이므로 

비와 태양 사이 

저녁과 초저녁 사이 

빛이 들어 마을이 되겠지 

 

그렇게 감옥에 갇혔으면 하고 생각한다 

감옥에 갇혀 사전을 끌어안고 살거나 

감옥에 갇혀 쓸데없는 이야기나 줄줄이 적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 기억하는 일 말고도 

무슨 죄를 더 지을 것인가를 생각한다 

성냥을 긋거나 

부정을 저지르거나 

거짓말이라도 해야 하는 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세상을 끊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또 태어나야 할 거라고 생각한다 

 

 

 * (이병률) 여행을 가서 시를 생각하곤 해요. 튀니지 사막에서 기다릴 시간이 있었는데, 동굴에 가보았죠. 햇빛이 따가웠거든요. 그곳에서 딱히 할일이 없기에 먼저 다녀간 사람들의 흔적을 보고, 깡통을 집어오고 그랬죠. 시적이잖아요. 이런 막연한 느낌을 가지고 살다가 어느날 문득 써야 겠다라는 순간이 오면 쓰곤해요. 예민하신분은 눈치 채셨겠지만, 중간에 조가 좀 바뀌죠. 밤새 쓰고 회사 직원인 시인 이영주에게 읽어보라 건넸어요. 괜찮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마무리 할수 있었죠.  

* (김민정) 산문 보고 광화문서 일산까지 달려가 무턱대고 만났어요. 병률오빠가 방바닥에 앉고 제가 컴 앞 의자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했죠. 어디를 여행다녀왔다며, 어느 나라를 찝어도 다 다녀온거에요. 참 대단하더군요. 지구본을 돌리면서 막 찍어대는 기분이었어요. 참 식물성의 인간이에요. 함께 울기도 했고, 많이 아픈적도 있었어요. 좀 둔해서 그런척을 전혀 안해요. 무슨말을 건네도 다 알거 같고 그런 느낌이죠. '찬란' '봉지밥' 이런 거는 이제 제가 못 쓸듯해요.  

* (김근) 등단작을 보고 이사람은 도대체 누군가 했어요. 파리거주중이라는 약력도 그랬죠. [인기척]이라는 시가 좋아서 한동안 외고 다니고 했어요. 열렬히 사랑하다 헤어진 누군가의 기억이 피부의 어딘가에서 되살아난 아련한 쓸쓸함이 묻어났어요. 제가 가지지 못한것에 대한 부러움 같은 것이 있어요.  

* (김민정) 등단때 사진이 기억나요. 어머 시인이 잘생겼네 했었죠. 유독 한편이 아른거리지 않고, 시집 전체가 아른거려요. 어디를 펼쳐도 될듯한 말이죠. 눈물의 넓이를 줄인듯 해요. 전 아프리카에 벌거벗고 돌아다니는 아이 같은데, 무슨 북유럽 같잖아요. 고급스럽고, 차이가 있죠. 

 

[얼굴을 그려달라 해야겠다]  

세상 끝에 편의점이 있다니  

무엇을 팔까  

 

장화를 팔까 

얼음 가는 기계를 팔까 

이 여름 냄새를 팔까 

 

여즉 문을 닫지 않았다면 

그림을 그려달라고 해야겠으니 

생각나는 한 사람 얼굴을 그려달라고 해야겠으니 

도화지가 있느냐 물어야겠다 

 

사람은 가장 사랑했던 사람의 얼굴로  

다시 태어난다 하니 

 

주인게게 그림을 그려달라 해야겠다 

얼굴 그림을 그려달라 해야겠다 

 

그 그림이 나의 얼굴이거나 

혹은 한 사람의 옆얼굴이어도 

 

얼은 영혼이란 뜻이라니 

굴이라는 말이 길이라는 뜻이라니 

 

세상 모든 나머지를 파는 편의점에 가서 

 

조금만 틈을 맞추고 와야겠다 

세상 끝을 마주하다가 낯을 씻고 

아주 조금만 인사를 하고 와야겠다 

  

[내가 본 것] 

 눈에 뭔가 들어가 있다. 괜히 필요하지도 않은 눈물을 흘렸고 그것도 모자라 인공눈물까지 샀다. 병원은 커다란 안경을 통해 내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유리 조각이 박혀 있다고 했다. 

 기다란 바늘이 눈으로 들어왔다. 손가락으로 두려움을 움켜쥐는 사이, 눈은 수면처럼 출렁한다. 빛난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는 

 유리 조각이 바늘 끝에 끌려나오고 있었다.  

 눈 내리는 하얀 밤을 잊을 뻔하였고 그 거리의 무성한 힘들의 기억을 잃을 뻔하여서 나는 말했다. 그 유리 조각을 저에게 주세요.병원은 작은 병 속에 

 유리 조각을 담아주었다. 

 조각은 날카롭기보다 푸르렀다. 박히기는 좋으나 찌르기엔 부족한 조각은 턱으로 밝기를 받치고 있었다. 여태까지 본 모든 것을 기억하겠다는 것은 살아 온 것보다 본 것이 더 단단하리란 것을 믿기 때문일 것이나 

 유리 조각은 내가 본 모든 것을 가지고 갔다. 

 나는 불필요한 부위를 영원히 떼어내기라도 한 듯 모호하게나마 마음이 간절해졌다. 

 

 * (김민정) 예전에 같이 오빠랑 샤브샤브 먹다, 눈이 아프다고 병원에 갔던 기억이 떠올랐어요. 저도 사랑니를 뽑아 달라고 한 적이 있어요. 엄마는 지질한 자기애 때문에 안된다며 혀를 찼죠. 과산화수소에 넣어두니 너무 이뻤어요. 색깔이 빠지면 정말 그래요. 사귀는 남자에게 줘서 이젠 2개밖에 안남았죠.

 

[불편]   

어젯밤 구걸하던 이를 찾습니다. 

내가 완강히 지나쳤으며 왼쪽 곁을 지나친 자입니다 

 

어둔 밤 나에게 손을 내민 것인데 

큰 칼을 내 심장 깊숙이 집어넣을  것 같아 

피하려는 기색 감추느라 

그가 다 지나간 다음에야 미친 듯 심장이 뛰었던 이 

 

그를 피하고서야 그가 멀리서 왔다는 걸 알아차립니다 

 

어젯밤 내 왼쪽 곁으로 스쳐 지나간 이를 찾습니다 

 

심장을 가라앉히고 어둠 때문에 어슷해 보이는 길 한쪽에 

차에 치여 죽은 고양이 주변으로 몰려든 어린 고양이들 

시체를 혀로 핥으며 감정을 나구고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주지 못했습니다 

하여 여태 서늘한 내 왼쪽을 데워줄 

어제 늦은 밤길 구걸하던 이 

맵게 손목을 잡아 골목으로 끌고 가 

이 어쩔 줄 모르는 삶이 방도를 조용히 물을 

그 새처럼 마른 이 

못 보셨습니까 

 

 * (이병률) 시인은 슬프게 태어나는 것 같아요. 슬픔의 함량이나 농도가 높아요. 리듬을 그쪽으로 몰아가거나 시가 찾아왔을때 확 몰아서 쓰기도 해요. 누군가 와서 써준것 같이 말이죠. 저를 운전하는 누군가가 쓰는게 아닐까 생각하곤 해요. 그때를 기다리고 기다리다 한번에 휙 쓰여지기도 해요. 어려운 한줄이 오고 가끔 꺼내어 보다가 뼈를 갖추고 살을 입혀 보며 기다렸다 쓰면 풍성해질때도 있어요.   

* 시는 어렵지 않다고 하면 매 맞을거에요. 혼자 중얼거리는 예술의 형태죠. 좋아하기도 어렵고, 이해하기도 어렵고, 나누기도 어려워요. 또 시인이 이해한다고 해서 자기 것이라고 노래하는 것도 아니죠. 자기가 알고 싶은 시인이 누군지 잘 찾아보고, 집중해서 읽다보면 다른 시인의 글도 읽게되고 그러면 좀 시 읽는 것이 쉬워지지 않을까 해요.  

* 영화를 보면서 사진쪽으로 옮겨가고 했어요. 이런 수줍게 혼자 한 작업들이 시에 도움이 된듯 해요. 영화적인 한 장면같은 요소가 많아요. 머릿속에는 너무나 선명한 편집, 순서가 있어요. 영상적인 무엇, 느낌들을 물고 늘어지곤 해요.  

 

[대림동]  

 

구멍가게는 사라지고 없었다 

골목길을 들어서는데 좁은 골목 한가운데 억지스런 낮달이 서성이고 

집집마다 빨래 마르는 냄새가 하늘하늘 

담벼락에 위태로이 올려둔 양동이에 고구마 순이 자라고 있었다 

사오년 전 내가 살던 곳  

눈 속 낭만을 뜷고 달리는 전철을 올려다봤는데 

그때 옆에 있던 누구에게 낮게 무어라 속삭였던 것도 같아 그때를 볼려고 불을 켰는데 

햇빛은 찬란하고 나를 둘데가 없다 

시를 생각하느라 여기까지 왔다 

 

 * (이병률) 대림시장. 옥탑방에서 한동안 얹혀 살았어요. 옷방에서 시를 쓴적도 있어요. 그래서 공간에 대해 절실하고 예민해요. 2호선 전철타고 가다보면 높이 지나가는 주택들이 보여요. 죽기전에 꼭 한번 살아봐야지 했어요. 헌데 도둑이 들어 이사를 하게 되었는데 바로 그 대림동 옥탑방 집에서 4년정도 살게 되었네요. 시적인 시간들이었죠. 습작도 많이 했고, 분실을 하기도 했고, 여러가지 일이 있었어요.   
  

* (이병률) 제 시를 잘 안읽어요. 밤에 쓴 일기 다음날 보면 머쓱한 것 처럼 말이죠. 지금도 대림동 자주갑니다. 걷다가 또 살고 싶기도 하고 해요.  

 

[바람의 날개] 

 

산에 올라 두리번거렸다 

나무 그림자가 사라질 때까지 걷고 걸어 나무 하나를 찾았다 

나무를 찾고 산의 마음에 표시를 하였다 

반을 얻었다 

 

다시 나무 하나를 찾았다 

하지만 아직은 서쪽으로 더 자랄 일이 있는 나무여서  

나무에 돌을 매달고 다시 산의 마음에 표시를 하였다 

 

일 년쯤을 기다려 두 나무에서 큰 가지 하나씩을 베었다 

사개를 맞대고 질빵을 걸으니 

반은 절반을 마주 보며 어깨가 되었다 

어깨 위에 또 하나의 어깨를 메고 

그 위에 세상을 얹고 걸어나갔다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세계를 지났다 

 

한번 얻은 지게는 버릴 것이 못 되었다 

어깨를 자른대로 지게는 나를 따라왔다 

내 살을 지고 내 터를 지고 풍경마저 한몸처럼 옮겼다 

 

누구나 죄진 사람같이 지게로 태어나 

죄처럼 업혔던 시절이 있었다 

 

업힌 것이 날개인 줄 알고  

퍼드득퍼드득 살려고도 하였다 


* (김민정) 오빠를 모를때는 왜 이게 좋은 지 몰랐어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어두워 지면서 좋아지네요. 그건 뒤끝이 아름다움, 아련함 같은건데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밥을 참 잘하는데, 요리가 먹고 싶네요. 

* (김근) 이 시집 때문에 찬란해 지셨으면 좋겠어요. 따뜻한 감정 가지고 돌아 가셔서 오늘밤은 조금 쓸쓸해져도 좋을듯도 해요.  

 

  

시는 문자로 읽을 때와, 독자로 소리내어 읽을때, 또 낭독을 들을때 사뭇 느낌이 다르곤 하다. 그중 최고는 단연 낭독이다. 노래가 시이고, 시가 노래이지 않은가. 시 낭독의 밤은 멋들어진 콘서트이자, 오페라이자, 뮤지컬이다. 낭독은 시인이 노래하고, 독자들이 코러스를 하는 살아 숨쉬는 또 하나의 예술인 것이다.  

이병률의 목소리는 그의 시와 참 닮았있다. 차분하면서도 또렷하고, 느릿하면서도 템포가 있다. 물론 그 깊은 곳엔 시인의 따스함이 있다. 서글서글한 미소와 단아한 품세가 참으로 섬세하고 식물성인 그의 시를 자꾸 떠올리게 한다.  

2010년 이른 봄. 

홍대에서의 아련한 싯구들을 과산화수소에 담아 이쁘게 방 한켠에 놓아 두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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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편하지 않은 것은 

                살고 있는 것이 아니리니  

                                        마음에 

 휘몰아치는 눈발을 만나지 않는다면 

                살고 있는 것이 아니리니 

                       ([찬란] 시인의 말) 

 

 

[끌림]의 에세이 작가로, [바람의 사생활]의 낭만적인 시인으로 제 책장 가운데 늘 놓여있는 '이병률'시인의 신작은 단 1초의 지체도 없이 제 책상으로 배달되어 왔다. 첫 페이지를 펼치곤 '아...' 하는 탄식과 함께 책장을 덮어 버렸다. 

시를 읽는 다는 것은 무척이나 불편한 행위임을, 하지만 그 휘몰아치는 눈발을 불편하게 헤쳐나가지 않으면, 살아 있는 것이 아님을, 찬란한 생을 위해선 그 불편을 감당해야만 함을 알기에 쉽게 페이지를 펼치기 힘들었다.  

 하지만, 예술가의 임무는 우리의 삶을 끊임없이 불편하게 해주는 것임을, 독자는 그 고통을 즐기는 것임을 이미 알기에, 다음장을 아파하며 넘길수 밖에 없었다.  

 단연코, 제가 읽어본 시집 중에 가장 술술 읽히는 시집이었습니다. 누구는 시집은 아끼고 아끼어 문장하나 구둣점 하나 아껴서 찬찬히 먹어야 한다고 몇달, 혹은 몇년에 걸쳐 읽기도 합니다만, 따끈따끈한 햇밥의 보슬보슬함을 사랑하는 저로서는 일필휘독해야만 하는지라 무섭게 읽어 갔다.  

 히브리어처럼 알수 없고, 암호처럼 풀수 없는 그 수많았던 시 읽기의 좌절 전에 이 책이 진작 나왔어야 했다.  

 깊고 어려운 것을 쉬운 말로 풀어내는 것은 대가만이 할수 있는 것인데, 이미 이병률님은 어느 경지에 오른듯 했다.  

 정말 간만에 시읽기의 쾌감을 전해준 그의 낭독은 어떠할까 설레는 맘으로 길을 나섰다. 

 그와 함께 한 그 불편함의 쾌의 순간을 즐기며 적어본다.

 

* (이병률) 첫 시집은 발표하고 나서 막막했어요. 지금은 하는 일(출판사)이 있어 이상하게 아무런 느낌이 없어요. 미래에 대해 차분하게 생각하게 된달까 그래요.  

* (이병률) 세상을 보는 데는 타고난 천성이 있어 변화는 잘 안되는 것 같아요. 보시는 분의 생각에 달린거죠. 변화되었다면 그것은 저의 일부인 것이구요. 이번엔 눈치 안보고 시도한 시도 있었어요. 생활, 사람대하는 것 이런것은 이전보다 달라진것 같아요. 덜 불안하달까. 이전엔 힘들었던 문제를 넓게 생각해서 품을수 있어진것 같아요.  

 

[기억의 집] 

기억을 끌어다 놓았으니 산이 되겠지 

바위산이 되겠지 

여름과 가을 사이 

그 산을 파내어 동굴을 만들고 기둥을 받쳐 깊숙한 움을 만들어 

기억에게 중얼중얼 말을 걸다 보면 걸다 보면 

 

시월과 십일월 사이 

누구나 여기 들어와 살면 누구나 귀신인 것처럼 아늑하겠지 

철새들은 동굴 입구를 지키고  

집이 하나로는 영 좁고 모자란 나는 

해가 밝으면 동굴을 파고 파고 

그러면 기억은 자꾸자꾸 몰려와 따뜻해지겠지 

 

그 집은 실뭉치 같기도 하고 모자 같기도 하며 

어쩌면 심장 속 같기도 하여서 

겁먹은 채로 손을 푹 하고 찔러 넣으면 

보드랍고 따스한 온기가 잡혀와 아찔해진 마음은 

곧 남이 되겠다고 남이 되겠다고 돌처럼 굳기도 하겠지 

 

그 집은 오래된 약속 같아 

들여다보고 살고도 싶은 여전히 저 건너일 것이므로 

비와 태양 사이 

저녁과 초저녁 사이 

빛이 들어 마을이 되겠지 

 

그렇게 감옥에 갇혔으면 하고 생각한다 

감옥에 갇혀 사전을 끌어안고 살거나 

감옥에 갇혀 쓸데없는 이야기나 줄줄이 적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 기억하는 일 말고도 

무슨 죄를 더 지을 것인가를 생각한다 

성냥을 긋거나 

부정을 저지르거나 

거짓말이라도 해야 하는 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세상을 끊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또 태어나야 할 거라고 생각한다 

 

 

 * (이병률) 여행을 가서 시를 생각하곤 해요. 튀니지 사막에서 기다릴 시간이 있었는데, 동굴에 가보았죠. 햇빛이 따가웠거든요. 그곳에서 딱히 할일이 없기에 먼저 다녀간 사람들의 흔적을 보고, 깡통을 집어오고 그랬죠. 시적이잖아요. 이런 막연한 느낌을 가지고 살다가 어느날 문득 써야 겠다라는 순간이 오면 쓰곤해요. 예민하신분은 눈치 채셨겠지만, 중간에 조가 좀 바뀌죠. 밤새 쓰고 회사 직원인 시인 이영주에게 읽어보라 건넸어요. 괜찮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마무리 할수 있었죠.  

* (김민정) 산문 보고 광화문서 일산까지 달려가 무턱대고 만났어요. 병률오빠가 방바닥에 앉고 제가 컴 앞 의자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했죠. 어디를 여행다녀왔다며, 어느 나라를 찝어도 다 다녀온거에요. 참 대단하더군요. 지구본을 돌리면서 막 찍어대는 기분이었어요. 참 식물성의 인간이에요. 함께 울기도 했고, 많이 아픈적도 있었어요. 좀 둔해서 그런척을 전혀 안해요. 무슨말을 건네도 다 알거 같고 그런 느낌이죠. '찬란' '봉지밥' 이런 거는 이제 제가 못 쓸듯해요.  

* (김근) 등단작을 보고 이사람은 도대체 누군가 했어요. 파리거주중이라는 약력도 그랬죠. [인기척]이라는 시가 좋아서 한동안 외고 다니고 했어요. 열렬히 사랑하다 헤어진 누군가의 기억이 피부의 어딘가에서 되살아난 아련한 쓸쓸함이 묻어났어요. 제가 가지지 못한것에 대한 부러움 같은 것이 있어요.  

* (김민정) 등단때 사진이 기억나요. 어머 시인이 잘생겼네 했었죠. 유독 한편이 아른거리지 않고, 시집 전체가 아른거려요. 어디를 펼쳐도 될듯한 말이죠. 눈물의 넓이를 줄인듯 해요. 전 아프리카에 벌거벗고 돌아다니는 아이 같은데, 무슨 북유럽 같잖아요. 고급스럽고, 차이가 있죠. 

 

[얼굴을 그려달라 해야겠다]  

세상 끝에 편의점이 있다니  

무엇을 팔까  

 

장화를 팔까 

얼음 가는 기계를 팔까 

이 여름 냄새를 팔까 

 

여즉 문을 닫지 않았다면 

그림을 그려달라고 해야겠으니 

생각나는 한 사람 얼굴을 그려달라고 해야겠으니 

도화지가 있느냐 물어야겠다 

 

사람은 가장 사랑했던 사람의 얼굴로  

다시 태어난다 하니 

 

주인게게 그림을 그려달라 해야겠다 

얼굴 그림을 그려달라 해야겠다 

 

그 그림이 나의 얼굴이거나 

혹은 한 사람의 옆얼굴이어도 

 

얼은 영혼이란 뜻이라니 

굴이라는 말이 길이라는 뜻이라니 

 

세상 모든 나머지를 파는 편의점에 가서 

 

조금만 틈을 맞추고 와야겠다 

세상 끝을 마주하다가 낯을 씻고 

아주 조금만 인사를 하고 와야겠다 

  

[내가 본 것] 

 눈에 뭔가 들어가 있다. 괜히 필요하지도 않은 눈물을 흘렸고 그것도 모자라 인공눈물까지 샀다. 병원은 커다란 안경을 통해 내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유리 조각이 박혀 있다고 했다. 

 기다란 바늘이 눈으로 들어왔다. 손가락으로 두려움을 움켜쥐는 사이, 눈은 수면처럼 출렁한다. 빛난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는 

 유리 조각이 바늘 끝에 끌려나오고 있었다.  

 눈 내리는 하얀 밤을 잊을 뻔하였고 그 거리의 무성한 힘들의 기억을 잃을 뻔하여서 나는 말했다. 그 유리 조각을 저에게 주세요.병원은 작은 병 속에 

 유리 조각을 담아주었다. 

 조각은 날카롭기보다 푸르렀다. 박히기는 좋으나 찌르기엔 부족한 조각은 턱으로 밝기를 받치고 있었다. 여태까지 본 모든 것을 기억하겠다는 것은 살아 온 것보다 본 것이 더 단단하리란 것을 믿기 때문일 것이나 

 유리 조각은 내가 본 모든 것을 가지고 갔다. 

 나는 불필요한 부위를 영원히 떼어내기라도 한 듯 모호하게나마 마음이 간절해졌다. 

 

 * (김민정) 예전에 같이 오빠랑 샤브샤브 먹다, 눈이 아프다고 병원에 갔던 기억이 떠올랐어요. 저도 사랑니를 뽑아 달라고 한 적이 있어요. 엄마는 지질한 자기애 때문에 안된다며 혀를 찼죠. 과산화수소에 넣어두니 너무 이뻤어요. 색깔이 빠지면 정말 그래요. 사귀는 남자에게 줘서 이젠 2개밖에 안남았죠.

 

[불편]   

어젯밤 구걸하던 이를 찾습니다. 

내가 완강히 지나쳤으며 왼쪽 곁을 지나친 자입니다 

 

어둔 밤 나에게 손을 내민 것인데 

큰 칼을 내 심장 깊숙이 집어넣을  것 같아 

피하려는 기색 감추느라 

그가 다 지나간 다음에야 미친 듯 심장이 뛰었던 이 

 

그를 피하고서야 그가 멀리서 왔다는 걸 알아차립니다 

 

어젯밤 내 왼쪽 곁으로 스쳐 지나간 이를 찾습니다 

 

심장을 가라앉히고 어둠 때문에 어슷해 보이는 길 한쪽에 

차에 치여 죽은 고양이 주변으로 몰려든 어린 고양이들 

시체를 혀로 핥으며 감정을 나구고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주지 못했습니다 

하여 여태 서늘한 내 왼쪽을 데워줄 

어제 늦은 밤길 구걸하던 이 

맵게 손목을 잡아 골목으로 끌고 가 

이 어쩔 줄 모르는 삶이 방도를 조용히 물을 

그 새처럼 마른 이 

못 보셨습니까 

 

 * (이병률) 시인은 슬프게 태어나는 것 같아요. 슬픔의 함량이나 농도가 높아요. 리듬을 그쪽으로 몰아가거나 시가 찾아왔을때 확 몰아서 쓰기도 해요. 누군가 와서 써준것 같이 말이죠. 저를 운전하는 누군가가 쓰는게 아닐까 생각하곤 해요. 그때를 기다리고 기다리다 한번에 휙 쓰여지기도 해요. 어려운 한줄이 오고 가끔 꺼내어 보다가 뼈를 갖추고 살을 입혀 보며 기다렸다 쓰면 풍성해질때도 있어요.   

* 시는 어렵지 않다고 하면 매 맞을거에요. 혼자 중얼거리는 예술의 형태죠. 좋아하기도 어렵고, 이해하기도 어렵고, 나누기도 어려워요. 또 시인이 이해한다고 해서 자기 것이라고 노래하는 것도 아니죠. 자기가 알고 싶은 시인이 누군지 잘 찾아보고, 집중해서 읽다보면 다른 시인의 글도 읽게되고 그러면 좀 시 읽는 것이 쉬워지지 않을까 해요.  

* 영화를 보면서 사진쪽으로 옮겨가고 했어요. 이런 수줍게 혼자 한 작업들이 시에 도움이 된듯 해요. 영화적인 한 장면같은 요소가 많아요. 머릿속에는 너무나 선명한 편집, 순서가 있어요. 영상적인 무엇, 느낌들을 물고 늘어지곤 해요.  

 

[대림동]  

 

구멍가게는 사라지고 없었다 

골목길을 들어서는데 좁은 골목 한가운데 억지스런 낮달이 서성이고 

집집마다 빨래 마르는 냄새가 하늘하늘 

담벼락에 위태로이 올려둔 양동이에 고구마 순이 자라고 있었다 

사오년 전 내가 살던 곳  

눈 속 낭만을 뜷고 달리는 전철을 올려다봤는데 

그때 옆에 있던 누구에게 낮게 무어라 속삭였던 것도 같아 그때를 볼려고 불을 켰는데 

햇빛은 찬란하고 나를 둘데가 없다 

시를 생각하느라 여기까지 왔다 

 

 * (이병률) 대림시장. 옥탑방에서 한동안 얹혀 살았어요. 옷방에서 시를 쓴적도 있어요. 그래서 공간에 대해 절실하고 예민해요. 2호선 전철타고 가다보면 높이 지나가는 주택들이 보여요. 죽기전에 꼭 한번 살아봐야지 했어요. 헌데 도둑이 들어 이사를 하게 되었는데 바로 그 대림동 옥탑방 집에서 4년정도 살게 되었네요. 시적인 시간들이었죠. 습작도 많이 했고, 분실을 하기도 했고, 여러가지 일이 있었어요.   
  

* (이병률) 제 시를 잘 안읽어요. 밤에 쓴 일기 다음날 보면 머쓱한 것 처럼 말이죠. 지금도 대림동 자주갑니다. 걷다가 또 살고 싶기도 하고 해요.  

 

[바람의 날개] 

 

산에 올라 두리번거렸다 

나무 그림자가 사라질 때까지 걷고 걸어 나무 하나를 찾았다 

나무를 찾고 산의 마음에 표시를 하였다 

반을 얻었다 

 

다시 나무 하나를 찾았다 

하지만 아직은 서쪽으로 더 자랄 일이 있는 나무여서  

나무에 돌을 매달고 다시 산의 마음에 표시를 하였다 

 

일 년쯤을 기다려 두 나무에서 큰 가지 하나씩을 베었다 

사개를 맞대고 질빵을 걸으니 

반은 절반을 마주 보며 어깨가 되었다 

어깨 위에 또 하나의 어깨를 메고 

그 위에 세상을 얹고 걸어나갔다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세계를 지났다 

 

한번 얻은 지게는 버릴 것이 못 되었다 

어깨를 자른대로 지게는 나를 따라왔다 

내 살을 지고 내 터를 지고 풍경마저 한몸처럼 옮겼다 

 

누구나 죄진 사람같이 지게로 태어나 

죄처럼 업혔던 시절이 있었다 

 

업힌 것이 날개인 줄 알고  

퍼드득퍼드득 살려고도 하였다 


* (김민정) 오빠를 모를때는 왜 이게 좋은 지 몰랐어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어두워 지면서 좋아지네요. 그건 뒤끝이 아름다움, 아련함 같은건데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밥을 참 잘하는데, 요리가 먹고 싶네요. 

* (김근) 이 시집 때문에 찬란해 지셨으면 좋겠어요. 따뜻한 감정 가지고 돌아 가셔서 오늘밤은 조금 쓸쓸해져도 좋을듯도 해요.  

 

  

시는 문자로 읽을 때와, 독자로 소리내어 읽을때, 또 낭독을 들을때 사뭇 느낌이 다르곤 한다. 그중 최고는 단연 낭독이다. 노래가 시이고, 시가 노래이지 않은가. 시 낭독의 밤은 멋들어진 콘서트이자, 오페라이자, 뮤지컬이다. 시인이 노래하고, 독자들이 코러스를 하는 살아 숨쉬는 또 하나의 예술인 것이다.  

이병률의 목소리는 그의 시와 참 닮았다. 차분하면서도 또렷하고, 느릿하면서도 템포가 있다. 물론 그 깊은 곳엔 시인의 따스함이 있다. 서글서글한 미소와 단아한 품세가 참으로 섬세하고 식물성인 그의 시를 떠올리게 한다.  

2010년 이른 봄. 

홍대에서의 아련한 싯구들을 과산화수소에 담아 이쁘게 방 한켠에 놓아 두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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