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함께 글을 작성할 수 있는 카테고리입니다. 이 카테고리에 글쓰기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전출처 : 무당광대 > [찬란]한 순간을 과산화수소에 담아...

 

 

 

 

 

 

 

 

                       불편하지 않은 것은 

                살고 있는 것이 아니리니  

                                        마음에 

 휘몰아치는 눈발을 만나지 않는다면 

                살고 있는 것이 아니리니 

                       ([찬란] 시인의 말) 

 

 

[끌림]의 에세이 작가로, [바람의 사생활]의 낭만적인 시인으로 제 책장 가운데 늘 놓여있는 '이병률'시인의 신작은 단 1초의 지체도 없이 제 책상으로 배달되어 왔다. 첫 페이지를 펼치곤 '아...' 하는 탄식과 함께 책장을 덮어 버렸다. 

시를 읽는 다는 것은 무척이나 불편한 행위임을, 하지만 그 휘몰아치는 눈발을 불편하게 헤쳐나가지 않으면, 살아 있는 것이 아님을, 찬란한 생을 위해선 그 불편을 감당해야만 함을 알기에 쉽게 페이지를 펼치기 힘들었다.  

 하지만, 예술가의 임무는 우리의 삶을 끊임없이 불편하게 해주는 것임을, 독자는 그 고통을 즐기는 것임을 이미 알기에, 다음장을 아파하며 넘길수 밖에 없었다.  

 단연코, 제가 읽어본 시집 중에 가장 술술 읽히는 시집이었습니다. 누구는 시집은 아끼고 아끼어 문장하나 구둣점 하나 아껴서 찬찬히 먹어야 한다고 몇달, 혹은 몇년에 걸쳐 읽기도 합니다만, 따끈따끈한 햇밥의 보슬보슬함을 사랑하는 저로서는 일필휘독해야만 하는지라 무섭게 읽어 갔다.  

 히브리어처럼 알수 없고, 암호처럼 풀수 없는 그 수많았던 시 읽기의 좌절 전에 이 책이 진작 나왔어야 했다.  

 깊고 어려운 것을 쉬운 말로 풀어내는 것은 대가만이 할수 있는 것인데, 이미 이병률님은 어느 경지에 오른듯 했다.  

 정말 간만에 시읽기의 쾌감을 전해준 그의 낭독은 어떠할까 설레는 맘으로 길을 나섰다. 

 그와 함께 한 그 불편함의 쾌의 순간을 즐기며 적어본다.

 

* (이병률) 첫 시집은 발표하고 나서 막막했어요. 지금은 하는 일(출판사)이 있어 이상하게 아무런 느낌이 없어요. 미래에 대해 차분하게 생각하게 된달까 그래요.  

* (이병률) 세상을 보는 데는 타고난 천성이 있어 변화는 잘 안되는 것 같아요. 보시는 분의 생각에 달린거죠. 변화되었다면 그것은 저의 일부인 것이구요. 이번엔 눈치 안보고 시도한 시도 있었어요. 생활, 사람대하는 것 이런것은 이전보다 달라진것 같아요. 덜 불안하달까. 이전엔 힘들었던 문제를 넓게 생각해서 품을수 있어진것 같아요.  

 

[기억의 집] 

기억을 끌어다 놓았으니 산이 되겠지 

바위산이 되겠지 

여름과 가을 사이 

그 산을 파내어 동굴을 만들고 기둥을 받쳐 깊숙한 움을 만들어 

기억에게 중얼중얼 말을 걸다 보면 걸다 보면 

 

시월과 십일월 사이 

누구나 여기 들어와 살면 누구나 귀신인 것처럼 아늑하겠지 

철새들은 동굴 입구를 지키고  

집이 하나로는 영 좁고 모자란 나는 

해가 밝으면 동굴을 파고 파고 

그러면 기억은 자꾸자꾸 몰려와 따뜻해지겠지 

 

그 집은 실뭉치 같기도 하고 모자 같기도 하며 

어쩌면 심장 속 같기도 하여서 

겁먹은 채로 손을 푹 하고 찔러 넣으면 

보드랍고 따스한 온기가 잡혀와 아찔해진 마음은 

곧 남이 되겠다고 남이 되겠다고 돌처럼 굳기도 하겠지 

 

그 집은 오래된 약속 같아 

들여다보고 살고도 싶은 여전히 저 건너일 것이므로 

비와 태양 사이 

저녁과 초저녁 사이 

빛이 들어 마을이 되겠지 

 

그렇게 감옥에 갇혔으면 하고 생각한다 

감옥에 갇혀 사전을 끌어안고 살거나 

감옥에 갇혀 쓸데없는 이야기나 줄줄이 적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 기억하는 일 말고도 

무슨 죄를 더 지을 것인가를 생각한다 

성냥을 긋거나 

부정을 저지르거나 

거짓말이라도 해야 하는 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세상을 끊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또 태어나야 할 거라고 생각한다 

 

 

 * (이병률) 여행을 가서 시를 생각하곤 해요. 튀니지 사막에서 기다릴 시간이 있었는데, 동굴에 가보았죠. 햇빛이 따가웠거든요. 그곳에서 딱히 할일이 없기에 먼저 다녀간 사람들의 흔적을 보고, 깡통을 집어오고 그랬죠. 시적이잖아요. 이런 막연한 느낌을 가지고 살다가 어느날 문득 써야 겠다라는 순간이 오면 쓰곤해요. 예민하신분은 눈치 채셨겠지만, 중간에 조가 좀 바뀌죠. 밤새 쓰고 회사 직원인 시인 이영주에게 읽어보라 건넸어요. 괜찮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마무리 할수 있었죠.  

* (김민정) 산문 보고 광화문서 일산까지 달려가 무턱대고 만났어요. 병률오빠가 방바닥에 앉고 제가 컴 앞 의자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했죠. 어디를 여행다녀왔다며, 어느 나라를 찝어도 다 다녀온거에요. 참 대단하더군요. 지구본을 돌리면서 막 찍어대는 기분이었어요. 참 식물성의 인간이에요. 함께 울기도 했고, 많이 아픈적도 있었어요. 좀 둔해서 그런척을 전혀 안해요. 무슨말을 건네도 다 알거 같고 그런 느낌이죠. '찬란' '봉지밥' 이런 거는 이제 제가 못 쓸듯해요.  

* (김근) 등단작을 보고 이사람은 도대체 누군가 했어요. 파리거주중이라는 약력도 그랬죠. [인기척]이라는 시가 좋아서 한동안 외고 다니고 했어요. 열렬히 사랑하다 헤어진 누군가의 기억이 피부의 어딘가에서 되살아난 아련한 쓸쓸함이 묻어났어요. 제가 가지지 못한것에 대한 부러움 같은 것이 있어요.  

* (김민정) 등단때 사진이 기억나요. 어머 시인이 잘생겼네 했었죠. 유독 한편이 아른거리지 않고, 시집 전체가 아른거려요. 어디를 펼쳐도 될듯한 말이죠. 눈물의 넓이를 줄인듯 해요. 전 아프리카에 벌거벗고 돌아다니는 아이 같은데, 무슨 북유럽 같잖아요. 고급스럽고, 차이가 있죠. 

 

[얼굴을 그려달라 해야겠다]  

세상 끝에 편의점이 있다니  

무엇을 팔까  

 

장화를 팔까 

얼음 가는 기계를 팔까 

이 여름 냄새를 팔까 

 

여즉 문을 닫지 않았다면 

그림을 그려달라고 해야겠으니 

생각나는 한 사람 얼굴을 그려달라고 해야겠으니 

도화지가 있느냐 물어야겠다 

 

사람은 가장 사랑했던 사람의 얼굴로  

다시 태어난다 하니 

 

주인게게 그림을 그려달라 해야겠다 

얼굴 그림을 그려달라 해야겠다 

 

그 그림이 나의 얼굴이거나 

혹은 한 사람의 옆얼굴이어도 

 

얼은 영혼이란 뜻이라니 

굴이라는 말이 길이라는 뜻이라니 

 

세상 모든 나머지를 파는 편의점에 가서 

 

조금만 틈을 맞추고 와야겠다 

세상 끝을 마주하다가 낯을 씻고 

아주 조금만 인사를 하고 와야겠다 

  

[내가 본 것] 

 눈에 뭔가 들어가 있다. 괜히 필요하지도 않은 눈물을 흘렸고 그것도 모자라 인공눈물까지 샀다. 병원은 커다란 안경을 통해 내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유리 조각이 박혀 있다고 했다. 

 기다란 바늘이 눈으로 들어왔다. 손가락으로 두려움을 움켜쥐는 사이, 눈은 수면처럼 출렁한다. 빛난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는 

 유리 조각이 바늘 끝에 끌려나오고 있었다.  

 눈 내리는 하얀 밤을 잊을 뻔하였고 그 거리의 무성한 힘들의 기억을 잃을 뻔하여서 나는 말했다. 그 유리 조각을 저에게 주세요.병원은 작은 병 속에 

 유리 조각을 담아주었다. 

 조각은 날카롭기보다 푸르렀다. 박히기는 좋으나 찌르기엔 부족한 조각은 턱으로 밝기를 받치고 있었다. 여태까지 본 모든 것을 기억하겠다는 것은 살아 온 것보다 본 것이 더 단단하리란 것을 믿기 때문일 것이나 

 유리 조각은 내가 본 모든 것을 가지고 갔다. 

 나는 불필요한 부위를 영원히 떼어내기라도 한 듯 모호하게나마 마음이 간절해졌다. 

 

 * (김민정) 예전에 같이 오빠랑 샤브샤브 먹다, 눈이 아프다고 병원에 갔던 기억이 떠올랐어요. 저도 사랑니를 뽑아 달라고 한 적이 있어요. 엄마는 지질한 자기애 때문에 안된다며 혀를 찼죠. 과산화수소에 넣어두니 너무 이뻤어요. 색깔이 빠지면 정말 그래요. 사귀는 남자에게 줘서 이젠 2개밖에 안남았죠.

 

[불편]   

어젯밤 구걸하던 이를 찾습니다. 

내가 완강히 지나쳤으며 왼쪽 곁을 지나친 자입니다 

 

어둔 밤 나에게 손을 내민 것인데 

큰 칼을 내 심장 깊숙이 집어넣을  것 같아 

피하려는 기색 감추느라 

그가 다 지나간 다음에야 미친 듯 심장이 뛰었던 이 

 

그를 피하고서야 그가 멀리서 왔다는 걸 알아차립니다 

 

어젯밤 내 왼쪽 곁으로 스쳐 지나간 이를 찾습니다 

 

심장을 가라앉히고 어둠 때문에 어슷해 보이는 길 한쪽에 

차에 치여 죽은 고양이 주변으로 몰려든 어린 고양이들 

시체를 혀로 핥으며 감정을 나구고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주지 못했습니다 

하여 여태 서늘한 내 왼쪽을 데워줄 

어제 늦은 밤길 구걸하던 이 

맵게 손목을 잡아 골목으로 끌고 가 

이 어쩔 줄 모르는 삶이 방도를 조용히 물을 

그 새처럼 마른 이 

못 보셨습니까 

 

 * (이병률) 시인은 슬프게 태어나는 것 같아요. 슬픔의 함량이나 농도가 높아요. 리듬을 그쪽으로 몰아가거나 시가 찾아왔을때 확 몰아서 쓰기도 해요. 누군가 와서 써준것 같이 말이죠. 저를 운전하는 누군가가 쓰는게 아닐까 생각하곤 해요. 그때를 기다리고 기다리다 한번에 휙 쓰여지기도 해요. 어려운 한줄이 오고 가끔 꺼내어 보다가 뼈를 갖추고 살을 입혀 보며 기다렸다 쓰면 풍성해질때도 있어요.   

* 시는 어렵지 않다고 하면 매 맞을거에요. 혼자 중얼거리는 예술의 형태죠. 좋아하기도 어렵고, 이해하기도 어렵고, 나누기도 어려워요. 또 시인이 이해한다고 해서 자기 것이라고 노래하는 것도 아니죠. 자기가 알고 싶은 시인이 누군지 잘 찾아보고, 집중해서 읽다보면 다른 시인의 글도 읽게되고 그러면 좀 시 읽는 것이 쉬워지지 않을까 해요.  

* 영화를 보면서 사진쪽으로 옮겨가고 했어요. 이런 수줍게 혼자 한 작업들이 시에 도움이 된듯 해요. 영화적인 한 장면같은 요소가 많아요. 머릿속에는 너무나 선명한 편집, 순서가 있어요. 영상적인 무엇, 느낌들을 물고 늘어지곤 해요.  

 

[대림동]  

 

구멍가게는 사라지고 없었다 

골목길을 들어서는데 좁은 골목 한가운데 억지스런 낮달이 서성이고 

집집마다 빨래 마르는 냄새가 하늘하늘 

담벼락에 위태로이 올려둔 양동이에 고구마 순이 자라고 있었다 

사오년 전 내가 살던 곳  

눈 속 낭만을 뜷고 달리는 전철을 올려다봤는데 

그때 옆에 있던 누구에게 낮게 무어라 속삭였던 것도 같아 그때를 볼려고 불을 켰는데 

햇빛은 찬란하고 나를 둘데가 없다 

시를 생각하느라 여기까지 왔다 

 

 * (이병률) 대림시장. 옥탑방에서 한동안 얹혀 살았어요. 옷방에서 시를 쓴적도 있어요. 그래서 공간에 대해 절실하고 예민해요. 2호선 전철타고 가다보면 높이 지나가는 주택들이 보여요. 죽기전에 꼭 한번 살아봐야지 했어요. 헌데 도둑이 들어 이사를 하게 되었는데 바로 그 대림동 옥탑방 집에서 4년정도 살게 되었네요. 시적인 시간들이었죠. 습작도 많이 했고, 분실을 하기도 했고, 여러가지 일이 있었어요.   
  

* (이병률) 제 시를 잘 안읽어요. 밤에 쓴 일기 다음날 보면 머쓱한 것 처럼 말이죠. 지금도 대림동 자주갑니다. 걷다가 또 살고 싶기도 하고 해요.  

 

[바람의 날개] 

 

산에 올라 두리번거렸다 

나무 그림자가 사라질 때까지 걷고 걸어 나무 하나를 찾았다 

나무를 찾고 산의 마음에 표시를 하였다 

반을 얻었다 

 

다시 나무 하나를 찾았다 

하지만 아직은 서쪽으로 더 자랄 일이 있는 나무여서  

나무에 돌을 매달고 다시 산의 마음에 표시를 하였다 

 

일 년쯤을 기다려 두 나무에서 큰 가지 하나씩을 베었다 

사개를 맞대고 질빵을 걸으니 

반은 절반을 마주 보며 어깨가 되었다 

어깨 위에 또 하나의 어깨를 메고 

그 위에 세상을 얹고 걸어나갔다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세계를 지났다 

 

한번 얻은 지게는 버릴 것이 못 되었다 

어깨를 자른대로 지게는 나를 따라왔다 

내 살을 지고 내 터를 지고 풍경마저 한몸처럼 옮겼다 

 

누구나 죄진 사람같이 지게로 태어나 

죄처럼 업혔던 시절이 있었다 

 

업힌 것이 날개인 줄 알고  

퍼드득퍼드득 살려고도 하였다 


* (김민정) 오빠를 모를때는 왜 이게 좋은 지 몰랐어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어두워 지면서 좋아지네요. 그건 뒤끝이 아름다움, 아련함 같은건데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밥을 참 잘하는데, 요리가 먹고 싶네요. 

* (김근) 이 시집 때문에 찬란해 지셨으면 좋겠어요. 따뜻한 감정 가지고 돌아 가셔서 오늘밤은 조금 쓸쓸해져도 좋을듯도 해요.  

 

  

시는 문자로 읽을 때와, 독자로 소리내어 읽을때, 또 낭독을 들을때 사뭇 느낌이 다르곤 한다. 그중 최고는 단연 낭독이다. 노래가 시이고, 시가 노래이지 않은가. 시 낭독의 밤은 멋들어진 콘서트이자, 오페라이자, 뮤지컬이다. 시인이 노래하고, 독자들이 코러스를 하는 살아 숨쉬는 또 하나의 예술인 것이다.  

이병률의 목소리는 그의 시와 참 닮았다. 차분하면서도 또렷하고, 느릿하면서도 템포가 있다. 물론 그 깊은 곳엔 시인의 따스함이 있다. 서글서글한 미소와 단아한 품세가 참으로 섬세하고 식물성인 그의 시를 떠올리게 한다.  

2010년 이른 봄. 

홍대에서의 아련한 싯구들을 과산화수소에 담아 이쁘게 방 한켠에 놓아 두어야 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무당광대 > [찬란]한 순간을 과산화수소에 담아...

 

 

 

 

 

 

 

 

                       불편하지 않은 것은 

                살고 있는 것이 아니리니  

                                        마음에 

 휘몰아치는 눈발을 만나지 않는다면 

                살고 있는 것이 아니리니 

                       ([찬란] 시인의 말) 

 

 

[끌림]의 에세이 작가로, [바람의 사생활]의 낭만적인 시인으로 제 책장 가운데 늘 놓여있는 '이병률'시인의 신작은 단 1초의 지체도 없이 제 책상으로 배달되어 왔습니다. 첫 페이지를 펼치곤 '아...' 하는 탄식과 함께 책장을 덮어 버렸습니다. 

시를 읽는 다는 것은 무척이나 불편한 행위임을, 하지만 그 휘몰아치는 눈발을 불편하게 헤쳐나가지 않으면, 살아 있는 것이 아님을, 찬란한 생을 위해선 그 불편을 감당해야만 함을 알기에 쉽게 페이지를 펼치기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예술가의 임무는 우리의 삶을 끊임없이 불편하게 해주는 것임을, 독자는 그 고통을 즐기는 것임을 이미 알기에, 다음장을 아파하며 넘길수 밖에 없었습니다.  

 단연코, 제가 읽어본 시집 중에 가장 술술 읽히는 시집이었습니다. 누구는 시집은 아끼고 아끼어 문장하나 구둣점 하나 아껴서 찬찬히 먹어야 한다고 몇달, 혹은 몇년에 걸쳐 읽기도 합니다만, 따끈따끈한 햇밥의 보슬보슬함을 사랑하는 저로서는 일필휘독해야만 하는지라 무섭게 읽어 갔습니다.  

 히브리어처럼 알수 없고, 암호처럼 풀수 없는 그 수많았던 시 읽기의 좌절 전에 이 책이 진작 나왔어야 했습니다.  

 깊고 어려운 것을 쉬운 말로 풀어내는 것은 대가만이 할수 있는 것인데, 이미 이병률님은 어느 경지에 오른듯 했습니다.  

 정말 간만에 시읽기의 쾌감을 전해준 그의 낭독은 어떠할까 설레는 맘으로 길을 나섰습니다. 

 그와 함께 한 그 불편함의 쾌의 순간을 즐기며 적어봅니다.

 

* (이병률) 첫 시집은 발표하고 나서 막막했어요. 지금은 하는 일(출판사)이 있어 이상하게 아무런 느낌이 없어요. 미래에 대해 차분하게 생각하게 된달까 그래요.  

* (이병률) 세상을 보는 데는 타고난 천성이 있어 변화는 잘 안되는 것 같아요. 보시는 분의 생각에 달린거죠. 변화되었다면 그것은 저의 일부인 것이구요. 이번엔 눈치 안보고 시도한 시도 있었어요. 생활, 사람대하는 것 이런것은 이전보다 달라진것 같아요. 덜 불안하달까. 이전엔 힘들었던 문제를 넓게 생각해서 품을수 있어진것 같아요.  

 

[기억의 집] 

기억을 끌어다 놓았으니 산이 되겠지 

바위산이 되겠지 

여름과 가을 사이 

그 산을 파내어 동굴을 만들고 기둥을 받쳐 깊숙한 움을 만들어 

기억에게 중얼중얼 말을 걸다 보면 걸다 보면 

 

시월과 십일월 사이 

누구나 여기 들어와 살면 누구나 귀신인 것처럼 아늑하겠지 

철새들은 동굴 입구를 지키고  

집이 하나로는 영 좁고 모자란 나는 

해가 밝으면 동굴을 파고 파고 

그러면 기억은 자꾸자꾸 몰려와 따뜻해지겠지 

 

그 집은 실뭉치 같기도 하고 모자 같기도 하며 

어쩌면 심장 속 같기도 하여서 

겁먹은 채로 손을 푹 하고 찔러 넣으면 

보드랍고 따스한 온기가 잡혀와 아찔해진 마음은 

곧 남이 되겠다고 남이 되겠다고 돌처럼 굳기도 하겠지 

 

그 집은 오래된 약속 같아 

들여다보고 살고도 싶은 여전히 저 건너일 것이므로 

비와 태양 사이 

저녁과 초저녁 사이 

빛이 들어 마을이 되겠지 

 

그렇게 감옥에 갇혔으면 하고 생각한다 

감옥에 갇혀 사전을 끌어안고 살거나 

감옥에 갇혀 쓸데없는 이야기나 줄줄이 적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 기억하는 일 말고도 

무슨 죄를 더 지을 것인가를 생각한다 

성냥을 긋거나 

부정을 저지르거나 

거짓말이라도 해야 하는 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세상을 끊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또 태어나야 할 거라고 생각한다 

 

 

 * (이병률) 여행을 가서 시를 생각하곤 해요. 튀니지 사막에서 기다릴 시간이 있었는데, 동굴에 가보았죠. 햇빛이 따가웠거든요. 그곳에서 딱히 할일이 없기에 먼저 다녀간 사람들의 흔적을 보고, 깡통을 집어오고 그랬죠. 시적이잖아요. 이런 막연한 느낌을 가지고 살다가 어느날 문득 써야 겠다라는 순간이 오면 쓰곤해요. 예민하신분은 눈치 채셨겠지만, 중간에 조가 좀 바뀌죠. 밤새 쓰고 회사 직원인 시인 이영주에게 읽어보라 건넸어요. 괜찮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마무리 할수 있었죠.  

* (김민정) 산문 보고 광화문서 일산까지 달려가 무턱대고 만났어요. 병률오빠가 방바닥에 앉고 제가 컴 앞 의자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했죠. 어디를 여행다녀왔다며, 어느 나라를 찝어도 다 다녀온거에요. 참 대단하더군요. 지구본을 돌리면서 막 찍어대는 기분이었어요. 참 식물성의 인간이에요. 함께 울기도 했고, 많이 아픈적도 있었어요. 좀 둔해서 그런척을 전혀 안해요. 무슨말을 건네도 다 알거 같고 그런 느낌이죠. '찬란' '봉지밥' 이런 거는 이제 제가 못 쓸듯해요.  

* (김근) 등단작을 보고 이사람은 도대체 누군가 했어요. 파리거주중이라는 약력도 그랬죠. [인기척]이라는 시가 좋아서 한동안 외고 다니고 했어요. 열렬히 사랑하다 헤어진 누군가의 기억이 피부의 어딘가에서 되살아난 아련한 쓸쓸함이 묻어났어요. 제가 가지지 못한것에 대한 부러움 같은 것이 있어요.  

* (김민정) 등단때 사진이 기억나요. 어머 시인이 잘생겼네 했었죠. 유독 한편이 아른거리지 않고, 시집 전체가 아른거려요. 어디를 펼쳐도 될듯한 말이죠. 눈물의 넓이를 줄인듯 해요. 전 아프리카에 벌거벗고 돌아다니는 아이 같은데, 무슨 북유럽 같잖아요. 고급스럽고, 차이가 있죠. 

 

[얼굴을 그려달라 해야겠다] 

세상 끝에 편의점이 있다니  

무엇을 팔까  

 

장화를 팔까 

얼음 가는 기계를 팔까 

이 여름 냄새를 팔까 

 

여즉 문을 닫지 않았다면 

그림을 그려달라고 해야겠으니 

생각나는 한 사람 얼굴을 그려달라고 해야겠으니 

도화지가 있느냐 물어야겠다 

 

사람은 가장 사랑했던 사람의 얼굴로  

다시 태어난다 하니 

 

주인게게 그림을 그려달라 해야겠다 

얼굴 그림을 그려달라 해야겠다 

 

그 그림이 나의 얼굴이거나 

혹은 한 사람의 옆얼굴이어도 

 

얼은 영혼이란 뜻이라니 

굴이라는 말이 길이라는 뜻이라니 

 

세상 모든 나머지를 파는 편의점에 가서 

 

조금만 틈을 맞추고 와야겠다 

세상 끝을 마주하다가 낯을 씻고 

아주 조금만 인사를 하고 와야겠다 

  

[내가 본 것] 

 눈에 뭔가 들어가 있다. 괜히 필요하지도 않은 눈물을 흘렸고 그것도 모자라 인공눈물까지 샀다. 병원은 커다란 안경을 통해 내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유리 조각이 박혀 있다고 했다. 

 기다란 바늘이 눈으로 들어왔다. 손가락으로 두려움을 움켜쥐는 사이, 눈은 수면처럼 출렁한다. 빛난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는 

 유리 조각이 바늘 끝에 끌려나오고 있었다.  

 눈 내리는 하얀 밤을 잊을 뻔하였고 그 거리의 무성한 힘들의 기억을 잃을 뻔하여서 나는 말했다. 그 유리 조각을 저에게 주세요.병원은 작은 병 속에 

 유리 조각을 담아주었다. 

 조각은 날카롭기보다 푸르렀다. 박히기는 좋으나 찌르기엔 부족한 조각은 턱으로 밝기를 받치고 있었다. 여태까지 본 모든 것을 기억하겠다는 것은 살아 온 것보다 본 것이 더 단단하리란 것을 믿기 때문일 것이나 

 유리 조각은 내가 본 모든 것을 가지고 갔다. 

 나는 불필요한 부위를 영원히 떼어내기라도 한 듯 모호하게나마 마음이 간절해졌다. 

 * (김민정) 예전에 같이 오빠랑 샤브샤브 먹다, 눈이 아프다고 병원에 갔던 기억이 떠올랐어요. 저도 사랑니를 뽑아 달라고 한 적이 있어요. 엄마는 지질한 자기애 때문에 안된다며 혀를 찼죠. 과산화수소에 넣어두니 너무 이뻤어요. 색깔이 빠지면 정말 그래요. 사귀는 남자에게 줘서 이젠 2개밖에 안남았죠.

 

[불편]  

어젯밤 구걸하던 이를 찾습니다. 

내가 완강히 지나쳤으며 왼쪽 곁을 지나친 자입니다 

 

어둔 밤 나에게 손을 내민 것인데 

큰 칼을 내 심장 깊숙이 집어넣을  것 같아 

피하려는 기색 감추느라 

그가 다 지나간 다음에야 미친 듯 심장이 뛰었던 이 

 

그를 피하고서야 그가 멀리서 왔다는 걸 알아차립니다 

 

어젯밤 내 왼쪽 곁으로 스쳐 지나간 이를 찾습니다 

 

심장을 가라앉히고 어둠 때문에 어슷해 보이는 길 한쪽에 

차에 치여 죽은 고양이 주변으로 몰려든 어린 고양이들 

시체를 혀로 핥으며 감정을 나구고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주지 못했습니다 

하여 여태 서늘한 내 왼쪽을 데워줄 

어제 늦은 밤길 구걸하던 이 

맵게 손목을 잡아 골목으로 끌고 가 

이 어쩔 줄 모르는 삶이 방도를 조용히 물을 

그 새처럼 마른 이 

못 보셨습니까 

 

 * (이병률) 시인은 슬프게 태어나는 것 같아요. 슬픔의 함량이나 농도가 높아요. 리듬을 그쪽으로 몰아가거나 시가 찾아왔을때 확 몰아서 쓰기도 해요. 누군가 와서 써준것 같이 말이죠. 저를 운전하는 누군가가 쓰는게 아닐까 생각하곤 해요. 그때를 기다리고 기다리다 한번에 휙 쓰여지기도 해요. 어려운 한줄이 오고 가끔 꺼내어 보다가 뼈를 갖추고 살을 입혀 보며 기다렸다 쓰면 풍성해질때도 있어요.   

* 시는 어렵지 않다고 하면 매 맞을거에요. 혼자 중얼거리는 예술의 형태죠. 좋아하기도 어렵고, 이해하기도 어렵고, 나누기도 어려워요. 또 시인이 이해한다고 해서 자기 것이라고 노래하는 것도 아니죠. 자기가 알고 싶은 시인이 누군지 잘 찾아보고, 집중해서 읽다보면 다른 시인의 글도 읽게되고 그러면 좀 시 읽는 것이 쉬워지지 않을까 해요.  

* 영화를 보면서 사진쪽으로 옮겨가고 했어요. 이런 수줍게 혼자 한 작업들이 시에 도움이 된듯 해요. 영화적인 한 장면같은 요소가 많아요. 머릿속에는 너무나 선명한 편집, 순서가 있어요. 영상적인 무엇, 느낌들을 물고 늘어지곤 해요.  

 

[대림동] 

구멍가게는 사라지고 없었다 

골목길을 들어서는데 좁은 골목 한가운데 억지스런 낮달이 서성이고 

집집마다 빨래 마르는 냄새가 하늘하늘 

담벼락에 위태로이 올려둔 양동이에 고구마 순이 자라고 있었다 

사오년 전 내가 살던 곳  

눈 속 낭만을 뜷고 달리는 전철을 올려다봤는데 

그때 옆에 있던 누구에게 낮게 무어라 속삭였던 것도 같아 그때를 볼려고 불을 켰는데 

햇빛은 찬란하고 나를 둘데가 없다 

시를 생각하느라 여기까지 왔다 

 

 * (이병률) 대림시장. 옥탑방에서 한동안 얹혀 살았어요. 옷방에서 시를 쓴적도 있어요. 그래서 공간에 대해 절실하고 예민해요. 2호선 전철타고 가다보면 높이 지나가는 주택들이 보여요. 죽기전에 꼭 한번 살아봐야지 했어요. 헌데 도둑이 들어 이사를 하게 되었는데 바로 그 대림동 옥탑방 집에서 4년정도 살게 되었네요. 시적인 시간들이었죠. 습작도 많이 했고, 분실을 하기도 했고, 여러가지 일이 있었어요.   
  

* (이병률) 제 시를 잘 안읽어요. 밤에 쓴 일기 다음날 보면 머쓱한 것 처럼 말이죠. 지금도 대림동 자주갑니다. 걷다가 또 살고 싶기도 하고 해요.  

 

[바람의 날개] 

 

산에 올라 두리번거렸다 

나무 그림자가 사라질 때까지 걷고 걸어 나무 하나를 찾았다 

나무를 찾고 산의 마음에 표시를 하였다 

반을 얻었다 

 

다시 나무 하나를 찾았다 

하지만 아직은 서쪽으로 더 자랄 일이 있는 나무여서  

나무에 돌을 매달고 다시 산의 마음에 표시를 하였다 

 

일 년쯤을 기다려 두 나무에서 큰 가지 하나씩을 베었다 

사개를 맞대고 질빵을 걸으니 

반은 절반을 마주 보며 어깨가 되었다 

어깨 위에 또 하나의 어깨를 메고 

그 위에 세상을 얹고 걸어나갔다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세계를 지났다 

 

한번 얻은 지게는 버릴 것이 못 되었다 

어깨를 자른대로 지게는 나를 따라왔다 

내 살을 지고 내 터를 지고 풍경마저 한몸처럼 옮겼다 

 

누구나 죄진 사람같이 지게로 태어나 

죄처럼 업혔던 시절이 있었다 

 

업힌 것이 날개인 줄 알고  

퍼드득퍼드득 살려고도 하였다 


* (김민정) 오빠를 모를때는 왜 이게 좋은 지 몰랐어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어두워 지면서 좋아지네요. 그건 뒤끝이 아름다움, 아련함 같은건데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밥을 참 잘하는데, 요리가 먹고 싶네요. 

* (김근) 이 시집 때문에 찬란해 지셨으면 좋겠어요. 따뜻한 감정 가지고 돌아 가셔서 오늘밤은 조금 쓸쓸해져도 좋을듯도 해요.  

 

  

시는 문자로 읽을 때와, 독자로 소리내어 읽을때, 또 낭독을 들을때 사뭇 느낌이 다르곤 한다. 그중 최고는 단연 낭독이다. 노래가 시이고, 시가 노래이지 않은가. 시 낭독의 밤은 멋들어진 콘서트이자, 오페라이자, 뮤지컬이다. 시인이 노래하고, 독자들이 코러스를 하는 살아 숨쉬는 또 하나의 예술인 것이다.  

이병률의 목소리는 그의 시와 참 닮았다. 차분하면서도 또렷하고, 느릿하면서도 템포가 있다. 물론 그 깊은 곳엔 시인의 따스함이 있다. 서글서글한 미소와 단아한 품세가 참으로 섬세하고 식물성인 그의 시를 떠올리게 한다.  

2010년 이른 봄. 

홍대에서의 아련한 싯구들을 과산화수소에 담아 이쁘게 방 한켠에 놓아 두어야 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무당광대 > 김탁환, 그의 뜨거웠던 천일야화!

 

김탁환, 그를 만나고 오다.   

[노서아가비] 라는 구한말 바리스타의 이야기를 새롭게 낸 그.  

출간즉시 영화화 판권이 팔렸다는 홍보문구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훅킹한 소설이었다. 

꽤 더웠던 여름날 밤에 만난 뜨거웠던 그와의 천일야화.  

  

[한 길 사람 속] 이라는 제목을 두고 고민을 했었다 한다.  

역시, 글쟁이들은 제목이 절반이라 여길터, 꽤 적절한 제목이었다. 

마징가의 '아수라 백작'.  

선과 악. 혹은 남성성과 여성성. 혹은 다중 인격자로서의 작가라는 존재.  

내 안의 수많은 사람들을 찾아내고, 만나고, 표현해 내는 것이 바로 작가의 존재론적 본질일터. 

 

 보르헤스의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을 화두로 강의는 시작되었다.  

작가는 두 갈래 길에서 '선택'이라는 걸 해야만 하는 운명이다. 

보르헤스는 그 선택에서 '가지 않은 길'까지 한번 전부 이야기에 담고 싶어했다. 

바로 이 단편소설에서. 

내가 선택한 길과 선택하지 않은 길. 그 길에서 끝없이 갈라지는 수많은 길들... 

인생이 바로 선택이고, 선택이 바로 이야기이고, 고로 삶이 이야기가 되는 운명의 수레바퀴. 



사람은 '나랑 닮은 이'와 사랑에 빠지거나 '나랑 다른 이'와 사랑에 빠진다.  

우리는 양귀자의 이 소설처럼 어떤 선택을 하던 선택하지 않은 이를 늘 그리워 하게 될터. 

헌데, 생각을 달리하면 내가 선택하지 않은 이야기를 버린것이 아니고, 

선택할 이야기들의 가능성들이 모여드는 것이라 한다.   

'반쯤 찬 물컵'을 보고 반이 비었다가 아닌 반이나 차있다 라고 생각할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김탁환은, '우짜다가' 글쟁이가 되었을까? 

 

여행자로서의 김탁환.  

리심과 혜초, 그리고 따냐는 세상을 부유하며 떠다니는 여행자들이다.  

왜 이렇게 인물들은 헤메일까? 

방콕을 사랑하는 작가들을 길로 나서게 하는건 바로 이야기.  

소설이, 나를 여행하게 만들었다! 





최근에 출간된 여행 에세이집에서 혜초의 여행길에 대한 글을 올렸던 그였다.  

앞으로 가고픈 곳은 사하라 사막 아래 있는 진짜 아프리카라 한다.  

만약 시간 이동을 할수 있다면 40년전 과거나 40년전 미래에 가보고 싶다는 소박한 욕망. 

 

그는 칼 세이건의 SF 소설을 소싯적에 읽으며 미래소설을 오랬동안 꿈꿔왔다 한다.  

고전문학 전공자이자 역사소설의 1인자로서 확고한 자리에 오른 그의 또다른 도전이 될듯하다. 

 

알고 봤더니, 그는 이미 동아일보에 정재승과 함께 '눈먼 시계공'이라는 미래소설을 연재하고 있었다. 소설의 첫 문구를 살짝 엿보면,

“사건번호 35! 30세, 93퍼센트 인간, 여, 유전형질연구원, 직접사인 뱀독에 의한 급성중독, 간접사인 오른 팔꿈치 절단에 의한 과다출혈. 지금부터 서울특별시 종로 8가 홀로그램 거리 <앙상블>에서 살해된 박진숙의 브레인 스캔을 시작하겠습니다. 브레인에서 인출할 피해자의 단기기억은 120초입니다

그는 테크노 스릴러라고 불리는 추리형사물 SF 소설에 벌써 도전하고 있었다.  

역사소설과 과학소설을 오가는 그의 진화는 어디까지 갈 것인가... 

철학자 김용석님이 우주 철학자라며 그에게 '우주 소설가'가 되라 했다는 농은 이루어질까? 

이 땅에도 부디 '1984'와 '멋진 신세계'가 나오길 조심스레 기대해 본다.  

 

몽상의 자식들의 아비로서의 김탁환.  

다른 그 무엇에도 기대지 않고, 이야기 그 자체만이 갖는 재미를 추구하고 싶어했다.  

그의 역사소설 궤도에서 벗어난 작품 여럿이 있다.  

특히 '부여...'는 '나, 황진이'의 필드 리서치를 하며 서경덕과 연관된 '전우치전'에서 나왔다한다. 

 

'홍길동전'과 강호의 무협을 다투는 우리 고전소설 '전우치전'  

이미 국문학도 출신 이야기꾼 최동훈에 의해 선택되어 강동원, 임수정에 의해 올 연말을 휘저을 예정인 바로 그 소설 아닌가.  

'지괴소설'이라는 동양의 모든 귀신들을 하나하나 잡아 가두는 '고스트버스터' 부여현감. 

이렇게 그의 소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새로운 이야기로 만들어져 나온다.  

시대와 맞부딛혀 살다가 죽어가는 여성의 비극적인 이야기인 '리심'에서 출발한 '노서아가비' 

같은 시대에서 점핑하는 가벼운 이야기를 통해 무거운 소설로 휘청한 균형을 잡고 싶었다 한다.   




재미 있으면 살려주고, 재미 없으면 죽인다! 

바로 이야기꾼의 운명은 바로 이 천일야화속에 있다.  

고전소설 전공자로서, 그가 추천하는 필독서 셋.  

'아라비안 나이트'와 '서유기' 그리고 '태평광기'  

수많은 이야기가 있는 고전속 원형을 '발견하는 것 !' 그게 바로 이야기꾼의 운명. 



'센' 여자들을 사랑하는 김탁환. 

시대의 비극속에서 운명의 굴레와 한판 맞짱을 뜬 그의 여인들은 '센' 여인들이다.  

남성작가가 여인이 주인공인 작품을 쓸때는 분명 좋아하는 여성형이 나올수 밖에 없을터. 

섬세한 작가들이, 강한 여자를 좋아하는 건 아마 당연한게 아닐까?  

아마 앞으로 나올 여성 캐릭터들도 아주 일관성 있게 이렇지 않을까 한다.  






이야기꾼으로서의 김탁환. 

'쓴다'의 주어로 살아남기 위한 작가의 길.  

픽션 뿐 아니라, 산문, 번역, 평론 등 이른바 잡문에도 능한 그.  

이미 소설 못지 않게 수 많은 비소설 서적을 출간해왔다.  

정신분석학, 심리학, 뇌과학, 그림, 춤, 노래.... 그리고 글쓰기. 

한길 사람속을 알기 위한 인간의 여러 활동중에 글쟁이는 글쓰기로 그 일을 파헤친다.  

경험론자로 살아가기 위해 글을 쓰고, 그분을 잘 영접해 뮤즈의 여신으로 사람속을 파헤치기. 

'나는 내가 누구인지를 글쓰기를 통해 할려는 아수라다. 너도 아수라다. 나는 네가 누구인지를 글쓰기를 통해 알려는 아수라다' 

'내 안의 추악함을 오래오래 보고보고 또 들여다보는 것의 고달픔이여!'

보통사람들은 자신의 추악함을 들여다보면 미치거나 범죄하게 된다.  

헌데, 작가들은 자신의 추악함을 들여다 보며 그걸 글로 풀어내 먹고 사는 천형을 지녔다. 

사람을 괴롭히는, 고문하는, 죽이는 100만가지 방법 이런걸 늘 공상하고 있으니 말이다.  

 

허균이 능지처참 당하는 클라이막스 장면에서 어떻게 하면 죽일까 몇날을 고민했었다. 

대로에서 두 팔과 다리를 네 방향으로 소가 끌어서 찢기워 죽이고 피가 동료의 얼굴에 튀는... 

'내가 어디까지 갈수 있는가? 나는 환자가 아닐까? 

공상속에서 작가는 참 잔혹하다. 고통과 아픔을 주는 오만가지 방법을 늘 꿈꾸지 않는가.  

이런 파괴적인 타나토스의 충동이 바로 예술가의 창작의 원천이 되는 것이다.  



'완월회맹연'  

180권짜리 가문소설이다. 네 가문이 결혼하는 이야기인데 해군학교 근무시절 군인정신으로 읽었다. 매일 아침에 칼출근해서 멍하니 바다만 봐야 하기에 읽었다는 바로 이 소설로 인해 소설가가 되었다는 그였다.  

그렇게 육개월간 180권을 읽었는데, 이게 다 작가가 계획하고 쓴건가, 그냥 쓰다보니 이렇게 된건가 궁금한 맘에 다시 또 육개월을 읽었는데, 복선이 좌악 깔렸던 것. 마지막 멘트가 압권인데, 이 책은 원래 1800권인데, 180권으로 압축한것이니 나머지 이야기를 알고 싶으면 다른 소설을 읽으라고 했다.  

'노서아가비'에서 이 이야기가 생각나 따냐의 또 다른 책 이야기가 들어간 것이라 한다.  

아... 180권짜리 고전소설에 도전해 보아야 하는가. 이 책은 20권으로 출간되어 있다.  

사료의 고증과 작가의 상상력에 관한 김탁환의 변.  

역사책을 뒤적이다보면, 역사의 검은 구멍이란게 있다. 자료가 더 이상 안나오는 지점.  

바로 이 역사학자들이 멈추는 자리에서 몽상이 시작된다. 구멍을 메우는 상상력의 과정이다.  

늘상 엉뚱한 곳으로 가는 상상을 한다.  




<난중일기>를 보면 자살인지, 타살인지 명확하게 보여지지 않는다.  

이것에서 난중일기를 쓰는 이순신의 마음을 그려낸 것이 '불멸의 이순신'이다.    

우들목 전쟁의 내용은 거의 소설이다. 이순신 장군의 목소리를 내며 상상해 봤다. 

있는 텍스트는 모조리 다 읽고, 그 구멍을 몽상하는 게 포인트다.

  

'어우동' 시대에 있었던 '감동'이라는 희대의 팜므파탈. 

이 둘 사이에 있는 검은 구멍을 채우는 이야기도 그려볼수 있다. 

 

한시를 600여편 모았다. 황진이가 읽었을 법한 시를 몽땅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은 하나의 문단이다. 접속사에 대한 거부감이 들었는데, 문장이 완벽하지 않아서 접속사를 쓰는 듯 해 강박적으로 하나의 문장으로 쓴 글이다.  

러시아 배경으로 소설을 두편정도 기획중이다.  

배경이 반복되는건, 재미있는 이야기들은 모여있는 지점들이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호러나 추리도 무척이나 흥미가 가는 장르다. 호러 주말 연속극이 꿈이다.  

 

  

글쓰기에 대한 김탁환의 조언

 아이디어에서 초고단계로 바로 넘어가면 안된다. 그 사이에 노력이란게 필요하다.  

매천야록을 보다가 김용옥 이야기가 눈에 띄면, 어 재밌네 하면서 또 다른 공부를 하게 된다.  

아이디어 노트에 100여가지 이야깃거리가 담겨져 있다.  

살아가면서 하는 고민이 아이디어와 에피소드로 만들어 진다.  

관심 가는 아이템은 킵 해놓는다. 항상 관심은 두고 살아간다.  

학회, 책, 논문 모아서 구석에 주욱 놓아둔다. 언젠가는 쓰리라 다짐하며 말이다.  

그렇게 모아놓은 자료를 후룩 보고서, 쓰자 하면 바로 쓰게 된다.  

자료는 10년정도 오랫동안 모아놓는다. 생각은 오래하되, 쓸때는 집중해서 말이다. 

'한문장으로 압축'할 필요가 있다.  

'불멸의 이순신은' '모든 장수들이 넓은 문으로 들어가서 패할때, 홀로 좁은 문으로 들어가 승리한 장수' 라는 한줄 로그라인이 있었다.  

왜 그길로 갔을까? 그럴수 밖에 없었던 삶을 어릴적부터 써보는 거다.  

아.. 그래서 다른 병법이 나올수 밖엔 없었구나 하면서 말이다.  

'허균'은 '배고픔과도 같은 희망'이었다. 

배고픔을 채우려는 지식인이 바로 허균이었다.  

잘먹고 잘살았는데 혁명을 한 이유가 뭘까? 고민하는 거다. 

지식인은 무엇으로 살아야 하나라는 허균의 고민이 그 안에서 나오게 된다. 

쓰는게 뭐냐. 핵심을 틀어쥐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헐리우드 엘리베이팅 피칭 처럼 '한줄로 이야기를 요약'하는 로그라인이 먼저 나와야 한다. 

다른 사람이 한게 있나 하며 전부 찾아본다. 그래서 뛰어난게 있으면 질단 질투한다.  

여기서 더 잘쓸 자신이 없으면 접는다.  

 

예전에 한참 나노기술에 빠져서 쓰려고 했었다.  

헌데 이 책을 읽고 나서 접었다.  

세계에서 제일 잘 쓴 놈이 누군가? 제일 쎈 작품이 뭔가? 그 장르의 마스터를 마스터 하라! 

독해져야 살아 남는다. 전 세계의 대표선수들과 필드에서 경기하는 게 작가들이다! 

 

 

그의 글처럼, 짧았던 시간속에 강렬함과 재미와 깊이가 있었던 만남이었다. 

이야기꾼은 말에서 그의 내공이 묻어나는 법이다.  

최고의 자리에 올라서 있는 그 이지만, 재미난 놀이에 대해 열광하는 어린아이인듯 했다.  

글 쓰기를 진정으로 즐기고, 그 안에서 행복해 하는 그는 역시 타고난 작가였다.  

늘 고통속에서 글을 쓰는 나는 언제쯤 즐길수 있게 될까? 

솔직히 말하자면, 그의 글을 보고 이야기를 접은 적이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겨낼 재간이 없다고 생각되어 미련없이 서랍에 넣었더랬다.  

헌데, 이 날 강의를 들으며 순간 '끝없이 두갈래로 갈라진 길'의 하나가 번쩍 눈에 들어왔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그 다른 길을 다시 가면 되는 것이다.  

이내 웃으며 몽상에 빠지기 시작한다.  

선택할 가능성의 이야기들이 내게 모여들기 시작한다.  

나의 천일야화가 이렇게 다시 시작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무당광대 > (제대로) 살기 위하여 , 시인으로 넘치는 세상이 되기를...

 

 

 

 

 

 

 

 

#. 방안. 밤.
 
(off sound) "(앵커) 이번 대법원의 판결로 마지막 남은 새만금의 물길이 덮이게 되었습니다..."
 
딸(11)은 바닥에 엎드려 그림을 그리고 있고, 홍선장은 고개를 푹 숙이고 tv를 바라보고 있다.
 
홍선장 : 어민은 사람도 아니란디. 아가야, 어민의 딸은 사람도 아닌거여.
홍선장 :  니는 커서 공부 잘 해두 판사 같은거는 절대 되지 마라.
딸 : (관심도 없이) 판사가 뭐야?
홍선장 : 니가 판사 된다고 하면 내가 너랑 확 연을 끊어버릴텡게.
딸 : (바다 그림만 열심히 그린다)
홍선장 : 그려, 시인이나 철학자가 되그라. 그라서 세상에 대한 비판 좀 하고 살아라.  
딸 : 시인이 뭐야? ... 난 바다가 좋단게! 
   

 
다큐는 세상의 진실을 비추는 한줄기 빛 같은 거다.
그래서 투박한 질그릇에 담겨있더라도,  진실한 삶의 내음이 담긴 인간의 냄새를 맡고, 온기를 느끼는 우리는 감동하게 되는 거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10년이 넘게 싸워온 그들의 일은 그저 신문 한 귀퉁에서 슬쩍 보고 넘어가는 무관심 사건이었다.
 
새만금 간척사업이 진행중인데, 환경적으로 문제가 많고, 어민들의 터전이 막막하다 라는 그저 피상적인 정보 뿐이었다.
그건 그저 그들의 일일 뿐, 내가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으므로 그저 창문밖 불구경이었을 뿐이었다.
 
이 모든게 전복된건, 바로 작년 촛불때였다.
꾹 참다가, 도저히 그대로 있다가는 두고두고 후회할듯 해서 호기심 반 거리에 나갔다가 첫날 물대포와 방패세례에 호되게 당하고 줄기차게 나갔었다.
그저, 말도 안되는 꼴통들의 짓거리가 꼴보기 싫어 소수정당에 투표를 꼬박꼬박 하는 것으로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했던 내게 그 촛불은 충격이었다.
평생 책상머리에서 배운것을 거리에서 단 며칠만에 다 배워버렸다고 해야 할까...
 
헌데,
인간과 관계된 모든 것이면, 나와 상관없는 것은 없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전 세계 4대 갯벌인 서해안.
한반도에 인류가 정착한 이후 그 갯벌은 육지의 유기물을 분해하는 필터였고, 소금과 어패류, 생선을 주던 생존의 일터였고,
새와 게, 조개와 미생물까지 동거동락하던 생명의 보고 였었다.
 
헌데, 일제의 식량 수탈을 위한 간척사업으로 시작해서  박통의 건설경기 부양을 위한 대규모 간척, 그리고 현재의 시화호, 새만금 등 부동산 간척까지...
도대체 이 매번 반복되는 약자에 대한 수탈과 핍박의 싸이클은 어떻게 맞서야 하는 것일까...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이 터져버릴듯 답답했다.
전국 300만을 기록한 메가톤 흥행작 다큐  '워낭소리'는 시골에 대한, 늙어감에 대한, 노부부에 대한, 정서적인 울림으로 따듯했었는데,
이 영화 '살기 위하여'는 따듯하기보단 한 여름에 사막에서 팔팔 끓는 가마솥에 맨손을 넣는 느낌이랄까, 먹먹함 그 자체였다.
 
세상에 대한 안타까움과  무관심에 대한 죄책감과 리더들의 정치적 술수에 대한 분노, 생명에 대한 엄숙함 까지...
신경이 곤두서고, 심장이 울렁거리고, 호흡도 쉽지 않게 만드는 꽤 불편한 영화임에 틀림없다.
 
바로 그 불편함이 엔딩크레딧에 이르면 죽어버린 갯벌에서 생일 케이크를 먹으며 막걸리 한잔에 활짝 웃는 이모들의 얼굴로 인해 화악 따스함으로 변해간다.
바닷물이 없어 말라 비틀어 가는 조개들이 살아남기 위해서 제 몸의 수분을 빼내며 끝까지 버텨가고 있듯이,
달랑 보상금 몇백만원에 평생 해온 일자리가 없어지고, 새와 조개들과 노닐던 천국이 없어지고, 동료가 갑작스런 사고로 세상을 떠나더라도,
살기 위하여, 죽음 속에서 생명을 일으켜야 하고, 울음 속에서 웃음을 터트려야 하고, 말라버린 갯벌에서 조개와 여전히 함께 버텨야 하는,
바로 우리의 이모들, 형님들처럼 말이다... 
 
지금 이 땅이 바로 이 새만금이다.
촛불이 그랬고, 용산이 그랬고, 대운하도 그렇고, 경제불황도 그렇고...
 
말라 비틀어진 갯벌에서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백합조개처럼, 우리 모두는 지금 어디로 가야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타들어 가고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생명은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다.
 
삶에 위기가 닥치면 생명체는 저항을 하게 마련이고, 진화를 통해 변화하게 마련이고, 바뀐 환경에 적응하게 마련이니까...
아무리 세상이 이렇게 바닥을 치더라도, 우리는 살아남을 꺼다.
 
' (남들을 죽여서 잘 먹고 잘) 살기 위하여 ' 가 아닌,
'(남들과 함께 제대로) 살기 위하여'
 
잘 먹고 사는게 행복이 아닌, 제대로 사는게 행복이 되면 되는 것이다!
 
이 세상 사람들 모두가,
판사가 아니라 시인이 된다면,
 
그런 세상이 온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사랑으로 넘치게 될까...

[출처] [시인이 된다면...] 새만금 다큐 '살기 위하여' |작성자 movimag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