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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여선, 권지예, 김경욱, 김선우, 김애란, 김연수, 김영하, 김별아, 김종광, 김중혁, 문태준, 박민규, 박성원, 박현욱, 박형서, 심윤경, 윤성희, 이기호, 전성태, 정이현, 조경란, 천운영, 하성란, 한강

 

yes 24 에서 공지영, 신경숙, 은희경 3인방을 제외한 한국의 젊은 작가 투표 후보로 뽑았던 이들의 이름이다.

 

이들중,

김선우와 문태준은 내겐 '닥수본' (닥치고 수집하게 하는 본좌)이었고,

김영하와 박민규는 '생약부' (생각보다 약간 부진한)였고,

정이현과 김애란, 권지예는 '포3방' (포스트 삼인방)이었다.

 

헌데. 이들 중 단 한권의 책도 아직 내게 없고,

단 한권의 책도 빌려보지 못했지만, 늘 읽고싶었던 작가가 있다.

 

바로 조경란이다.

내게 그녀는 몇번이나 서점에서 들었다 놨다,

몇번이나 도서관에서 대출했다 그대로 반납했다 하는 묘한 작가였었다.

어제까지는...

 

폭염 주의보가 내린 어제, 나는 그녀의 강연회에 다녀왔다.

첫인상의 그녀는... 한미모 한다...

 

 

 

"제가 강연날을 잘못알았어요. 다음주쯤인줄 알았는데...

 이 자리에 참 힘들게 왔어요. 찾아오기도 힘들었지만 그것보단 저 지금 마감중이거든요.

 이바닥 용어로 잠수탄다고 하죠. 핸드폰 끄고 집에서 가족들하고 말도 안한채 내내 글만 쓰거든요.

 집필중에 이렇게 밖에 나오기는, 게다가 강연을 하러 나오기는 제 인생에서 최초예요.

 지금 실은 어떻게 하면 에너지를 덜 뺏기고 얼렁 가서 글 쓸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어요..."

 

그렇지. 무릇 작가는 그녀처럼 일단 이야기에 빠져서 쓰게 시작하면 세상과 단절한채 절대고독의 시간이 필요한거야.  난 지금 세상속에 살고 있는건가, 이야기 속에 살고 있는건가?

 

"퀴즈 하나 내죠. 아래의 링을 맨 왼쪽에서 맨 오른쪽으로 옮기는 방법엔 뭐가 있을까요?"

 



 

머뭇머뭇한다. 이런 아이큐 테스트나 퀴즈 같은거 머리 아프다. 근데 왜 이런걸 하는거지?

몇몇이 대답을 하고. 결국 답을 알려준다.

 

"하노이의 탑이라는 겁니다. 심리학 책에서 자주 볼수 있는 놀이죠.

 소설도 이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어떤 문제가 생기면 그걸 해결해 나가는 것. 그게 소설이죠"

 

그렇지! 저건 나도 아는거야.

최근에 본 작법책에서 봤어. '인간행동의 단계' 였었나.

 

1. 설정. - 인물의 일상, 평범한 세계, 인물의 응축 소개.

2. 문제발생. - 평범한 세계를 뒤흔드는 선동적 사건발생.

3. 해결책 -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특별한 세계로 가기 위한 목적의식 생성.

4. 행동 - 특별한 세계에서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행동,

5. 위기 - 족쇄와 적의 방해때문에 생각지도 않았던 새로운 목적의식 생성.  

6. 새로운 결정 - 대반전. 1 설정의 인물이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어떤 변화된 결정으로서의 절정. 

7. 여파 - 새로운 인물의 세계.

 

뭐 이런거 말이지. 그래 소설도, 결국엔 이야기니까 스토리텔링은 결국 같은거잖아.

근데, 요즘 저 일곱단계때문에 글을 쓸때 자꾸 가슴으로 안쓰고 머리로 쓰고 있어서 참 슬퍼.

그냥 용감하게 쓸때가 좋았는데, 왜 저런건 알게되서 이렇게 날 괴롭히는 거야.

 



 

"제가 오늘 말씀드리려 하는 것은, 작가는 왜 쓰는가? why i write? 입니다. "

 

아... 정말 듣기 싫은 질문. 하지만 아직도 딱히 정확하게 대답할수 없는 질문.

넌 왜 쓰니? 난 왜 쓸까?

쓰지 않으면 삶의 의미가 없나? 쓰는게 행복한가? 써서 유명해질려 하나? 써서 돈벌려고 하나?

 

난 그냥. 쓰고 싶으니까 쓰는거다. 쓰고 싶지 않으면 아마 쓰지 않게 될 거야.

그냥. 지금은 쓰고 싶은거야. 써야만 하니까가 아닌. 가슴속에서 막 쓰라고 시키니깐.

 

 

 

"제 개인사 아시죠? (침묵) 제가 별로 인기가 없나 보네요. 살짝 말씀드리죠.

 제 <국자이야기>라는 단편집이 나왔을때 질문이 '정말로 봉천동에 사세요?' 였어요.

 다음 소설이 나오자, '아직도 봉천동에 사세요?' 였구요,

 최근작에는 '계속 봉천동에 사실건가요? 였죠."

 

그녀의 책을 읽지 않았으니 알수가 없군. 그래 이 단편집에 <나는 봉천동에 산다>라는 게 있었지.

봉천동이 뭐 어때서. 내 예전 그녀도 봉천동에 살아서 그동네 정말 뻔질나게 갔었지.

봉천동의 밤늦은 놀이터의 파스라한 가로등불, 구불구불한 길을 올라가던 여름밤 불어오던 슬픈 내음.

아마 그녀는 지금 봉천동에 살지 않을꺼야. 잘 나가는 변호사랑 아기를 낳았으니 말이야.

아, 서울대 입구 버스 정류장 노천에 있던 삼겹살집의 지글거리는 불판이 떠오른다.

 



 

"전 신촌이나 홍대에 잘 가지 않아요. 저 올해가 마흔인데, 딱 마흔되니까 파릇한 청춘들이 보기가 싫더군요.

 제게 청춘은 조금 특별했기에 그랬을거에요. 제게 청춘은... 청춘은...

 저는 청춘이 없었어요. 그래서 지금 청춘들을 보면 그들이 누리는 그 모든것들이 생각나네요. "

 

마흔이라... 왜 작가들은, 아니... 성공한 작가들은... 다들 나이에 비해 참으로 아름다울까.

에쿠니 가오리가 그랬고, 은희경이 그랬고, 김선우가 그랬고, 이지민도 그랬고, 정이현도 그렇고...

아마 평생을 슬픔과 행복을 줄타듯 살아왔기에 생에 대한 관조같은게 생겨서 그런건 아닐까?

그들은 내가 꿈꾸는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고 즐거운 삶, 노인처럼 여유있고 지혜로운 생을 버텨내왔을까?

 



 

"전 스무살부터 스물다섯까지 집에만 있었어요.

 요즘엔 히키코모리라고 하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입시에 실패한 뒤 집에서 나가질 않았아요.

 어디가 아픈것도 아닌데, 그냥 집에만 있으니 제 동생들도 맏언니인 저를 소개하기를 꺼렸죠.

 부모님은 뭐 말할것도 없구요."

 

내 동생들은 나를 어떻게 소개할까?

어디가 모자른 것도 아닌데, 몇년째 글쓴다고 돌아다니는거 같긴 한데 딱히 뭐 성과도 없으니 말이다.

우리 오빤... 음... 백수야.

혹은 우리 오빤... 흠...  대학 조교야.

혹은 우리 오빤... 흠... 딴 얘기하자. 가 아닐까?

 

 

"그 6년간의 청춘. 사람이 가장 아름답고 행복하다는 그 청춘이 제겐 없었어요.

 근데 후회는 하지 않아요. 그 시절이 없었으면 지금의 저는 아마 없지 않았을테니까요.

 6년간 딱 세가지만 했어요.

 밥먹고, 자고, 책읽고..."

 

대학입학부터 대학졸업까지 이십대 초중반의 청춘의 순간.

문득 내 인생의 가장 행복했던 시간을 떠올리면 대부분 이때야.

술과 담배. 첫 키스와 첫 섹스. 첫 연애와 첫 이별.

어두컴컴한 동아리방과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울었던 연극무대위.

하얀 도서관의 창을 비추는 한줄기 햇살과 푸른 뒷동산의 조용한 벤취.

 



"그렇게 책을 읽다보면 내 인생에 대한 해답이 어딘가 있지는 않을까 한거죠.

 가족들과 말도 안하고, 먹고 자고 일어나 앉은뱅이 책상 슬쩍 들고 제 방으로 들어가 철퍼덕 앉는거죠.

 그래서 제가 지금 봉천동에 사는 거에요.

 그런 저를 묵묵히 아무말 않고 지켜봐줬던 부모님과 동생들. 참 고맙죠?

 앞으로 제 평생 가족들을 모시며 살아야죠. 뭐 실은 여전히 그들이 저를 받들고 사는 모양이지만요.

 아마 계속 봉천동에서 가족들하고 같이 살지 않을까 싶네요..."

 

그래.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도 먼 그들. 바로 가족이야.

글을 쓴다는 것, 아니 어떤 예술이던, 뭔가 보이지 않는 걸 하는 이의 가족은 괴로울꺼야.

남들처럼 살지 않는 이들은 항상 주변사람들을 힘들게 하는거니까.

믿음. 그거 하나지. 징글징글한 핏줄이니까. 남들이 뭐라해도 가족만은 나를 믿어주는 거야.

힘들고 어려워본 이는 알꺼야.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지. 아니 세상엔 가족밖엔 없는거라는 걸 말이야.

 



 

"작가들은 거울을 잘 들여다 보지 않아요. 저도 그렇고요.

 결국 글쓰기라는건 자신을 들여다보는 거라 실제 얼굴도 그닥 보기 싫게 되더라구요.

  하지만, 언제까지 계속 이 두려움이라는 것을 피해만 다닐수는 없어요.

 어느순간엔, 얼굴앞에 활활 타오르는 횃불을 휙하니 들고 빤히 들여다 봐야 하는거죠."

 

매일아침 거울을 보긴 하지만, 그리 오래 보진 않아. 그냥 휙 스쳐갈뿐이지.

얼마전에 어떤 선배한테 장시간 인생상담을 받았는데, 그 결론도 결국엔.

'너 자신을 자세히 들여다 봐라' 였어.

재미보다는 의미를 먼저 생각하는 지금의 나는

영화인보다는 문학가, 현장인보다는 기자나 교수에 어울리는 짓이라는 거였어.

그래 묵묵히 모든걸 인정했어. 난 공부하고 분석하고 연구하는 걸 즐기지.

헌데 말안한게 있는데, 실은 글쓰고 만드는것도 못지 않게 즐긴다는 거야.

'뭐가 재미있을까?' 가 아닌 '이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를 주로 고민한다는 건 분명 바꿔야 하는 걸꺼야.

그래, 요즘엔 뭔가 터질듯한 뜨거운 감정이 부족해. 역시 연애가 부족한건가?

 

"작가는 스스로에게 대답하기 참 어려운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에요.

 그리고 그 답을 찾기 위해 계속 생각해야 하는 사람이기도 하구요"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기.

그게 글쓰기고, 바로 인생일꺼야.

물론 질문을 던지지 않는 이들도 있겠지. 

질문을 할 여력이 없는 이들, 혹은 하나의 질문을 바라보며 사는 이들말야.

허나 답을 찾지 않는 이는 없을꺼야.

단지 정답이 하나라는 사람과 정답은 여러개라는 사람이 있겠지만 말야.

절대불변의 답이 있을까?

류노스케가 '라쇼몽'에서 말했듯 사람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그게 진실이라고 믿고 살아가는 거니 말이야.

 



 

"독서는 어떻게 하시죠? 길을 오가며 버스나 지하철에서 보시나요?

 독서는 조용한 도서관이나 방에서 앉아서 혹은 누워서 차분히 보는게 좋은거 같아요.

 할수 있는 한 최고의 집중력을 가지고 뭔가 이 안에서 찾아내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말이죠.

 그냥 슥슥 즐기며 보는게 아니라 집중하며 사고하면서 오감을 이용해 상상력을 발휘해보는 거죠.

 그냥 일반적인 독서는 무언가를 배우는 행위에요. 지식이나 정보 그런거 말이죠.

 하지만 적극적인 독서는 무언가를 발견하는 행위에요. 소설쓰기의 첫 시작인거죠. "

 

싸부가 던지신 말씀이 있어.

글을 많이 쓰지는 않더라도, 독서량은 엄청 늘려야 해! 최소한 하루에 두세권 정도씩 말이지.

솔직히 아무리 열심히 읽어도 하루에 두세권은 불가능해. 하루에 한권이면 모를까.

헌데 것도 하루에 한권을 떼려면 집중을 해서 4-5시간을 봐야 하지.

굳이 슬로우 리딩 독서법을 하는 건 아닌데, 그냥 느려.

이렇게 한 10년 정도 읽어가면 하루에 두세권 읽어낼수 있겠지만, 아직은 안되더라구.

 



 

소비하는 독서와 창조하는 독서가 아닐까 해.

문화는 소비하는 게 있고 창조하는 게 있다고 하지. 바로 작가는 창조적인 문화소비를 해야 하구 말야.

싸부가 영화를 볼때 한번도 끊지 않고 씬리스트를 적는 일명 척추뽑기 라는 걸 끊없이 하라고 했어.

곰곰히 해보니 말야. 척추 데이타가 쌓이는 것도 좋지만, 영화를 엄청난 집중력으로 보게 하더라구.

절대 끊으면 안되니까. 단 한씬, 단 하나의 인물도 놓칠수 없기에 발휘할수 있는 최고의 집중력이 필요했어.

그러고 나면 그렇게 본 영화는 온 몸으로 흡수한 포카리 스웨트같다고 해야 하나 짝짝 머리속에 박히지.

 

그런데 이제봤더니, 영화뿐 아니라 소설도 그렇고 음악도 그렇고 모든 예술을 볼때

아니, 인생을 살아가면서 모든 것을 집중해서 살아내고, 집중해서 머리속에 넣으며 느끼라는 거 같아.

 

몰입과 집중. 누구든 그렇겠지만 글쓰기도 얼마나 몰입을 잘하고 얼마나 집중을 깊게 하느냐의 승부같아.

지금까지 나의 독서는 뭔가 발견해야 하는건데, 뭔가 배우려고만 하진 않았나?

몰입해서 인생을 살아내며 발견하려 하고 있는가?

 

 

 

"제 인생의 원심력은 고민과 불안과 두려움이에요. 

 아마 작가가 글을 쓰는 건 이 두려움 때문 아닐까요?

 제가 글을 쓰는 이유는 영혼의 활쏘기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해두죠.

 방황하며 살아가던 제가 간신히 귀하게 찾은 길이 바로 글쓰기 였으니까요.

 저는 글쓰기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에요. "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고 하지만 불안은 작가의 영혼만은 살찌울꺼야.

인생이 편안하고, 걱정없고, 자신감 넘치고, 만사형통이면 얼마나 인생은 불행할까.

작가는 슬픔이라는 별에서 온 사람들이라고 하잖아.

세상을 느끼는게 예민한 사람들이라 모든 감정과 사고의 파고가 커서 불안과 강박 또한 큰걸꺼야.

 

첫 문장이 나올때까지의 그 엄청난 두려움.

나를 들여다 보는 것에 대한 두려움.

남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에 대한 두려움.

 

어쩌면 이렇게 시나리오를 쓰지 않고 잡문만 쓰는 나도 두려움과 싸우는 중인거 같아.

이제 나를 좀 더 깊이 들여다보고 변화해야 할거 같아.

 

두려움을 떨치고 용기내서 글을 쓰는것 말야.

삶의 일부분이었던 글쓰기를 이제 삶의 대부분으로 바꿔야 할듯 해.

하루에 영화를 두세편 보면서 난 그래도 영화룰 보고 있어 라고 도망가지 말고.

책을 뒤적거리며 난 그래도 책을 읽고 있잖아 하며 도망가지도 말고,

스터디에서 동료들에게 위안을 얻으며 그리 나쁘지 않잖아 하면서 도망가지도 말고,

술잔을 기울이며 좀만 기달려봐 하며 뻐기면서 도망하지도 말고 말이야.

 



 

"폴 오스터 아시죠? 만약 처음 읽으신다면 뉴욕 3부작을 추천해요. 엑기스가 있는 책이죠.

 폴 오스터가 여덟살때 엄청난 야구광이었다고 해요.

 뉴욕 자이언츠에 윌리라는 강타자의 팬이어서 어느날 싸인을 받으려 락커룸에 갔었어요.

 윌리를 보고 폴은 싸인해주시죠? 라고 했고, 폴은 그래 해줄께, 펜을 다오 라고 했어요.

 윌리는 가방을 뒤적여도 펜이 없자 뒤에 서 있던 부모에게 펜좀 빌려줘요 라고 했다고 해요.

  허나 부모도 마칭 펜을 가진게 없자, 윌리가 그랬데요. 얘야 난 싸인을 해주고 싶지만 펜이 없구나.

  폴은 그 순간 뜨거운 눈물을 펑펑 흘렸고, 아마 인생에서 가장 뜨거운 눈물이었다고 해요.

  그 뒤부터 폴은 언제어디라도 주머니에 펜을 넣고 다녔다고 해요. 그러다가 작가가 되었구요,.

  주머니에 펜이 들어있으면, 쓰고 싶은 유혹에 사로잡힐 가능성이 큰 거죠"

 

스모크에서 담배연기의 무게에 대해 이야기 하던 폴 오스터.

주머니에 펜과 노트를 항상 넣고 다닌지는 꽤 되었는데 아직 작가가 되지 못했어.

바위같은 노트북까지 항상 메고 다녀보지만 늘 펴면 서핑만 하다 돌아가.

쓰고 싶은 유혹이야 항상 있지. 쓸수 있는 용기가 없으니 문제지.

가끔 제작자나 감독들이 써논 책 있나고 할때 어리버리 대답하곤 해.

그때 주머니에 책이 들어 있으면 계약서에 싸인을 할수 있는 건데 말야.

뜨거운 눈물을 아직 덜 흘려서 그런걸까.

주머니엔 왜 아직 책이 없을까?

 



 

" 프루스트는 그밖의 다른 일에서는 그만한 만족을 못해서 글을 쓴다고 하고,

  서머셋 몸은 원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안하면 안되니까 글을 쓴다고 하고,

  헨리밀러는 강제적이지만 즐거우니까 쓴다고 하고,

  사르트르는 내 자신의 자유를 위해 쓴다고 하고,

  이청준은 욕망 때문에, 세상에 대한 복수심 때문에 쓴다고 하고,

  신경숙은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쓴다고 해요.

   여러분은 왜 쓰시나요?"

 

그럼 나는 왜 쓰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해.

그러기 위해선 우선 써야 해.

써봐야 이게 행복해서 그런지, 자유로워서 그런지, 복수을 해서 그런지 만족해서 그런지 알수 있어.

철저한 자기검토가 필요해. 그밖에 뭐가 필요하겠어.

 




 

"어느날 마로니에 공원을 걷는데 갑자기 비둘기가 제 발 밑을 후다닥 하면서 스쳐 지나갔어요.

 후다닥 이요.

 만약 그 비둘기가 제 발밑을 스쳐가지 않고, 제가 밟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우리는 인생이 일상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인생엔 평범한 삶이 전도되는 아주 특별한 순간이 찾아와요.

 그 순간을 포착할수 있는 사람은 작가가 되는 거죠. 빵봉지가 날아가는 순간 말이에요."

 

번쩍하고 황홀한 순간이 있어.

그게 길거리에 나부끼는 흰 비닐봉지를 보고 느낄수도 있고,

바닥에 떨어지는 흰 깃털하나를 보고 알수도 있지.

사실 누구나 이런 특별한 순간을 느끼고 포착해.

다만 망각이라는 도구를 통해 잊을 뿐이야.

작가는 좀 더 예민하게 느끼고, 기록하고, 그걸 사람들이 알수 있는 형태로 그려낼 뿐일거야.

조심해.

항상 그 안테나를 삐쭉 세우지 않으면 언제라도 그건 훅하고 날아가 버리는 거니까.

 




 

 

 

 

"이야기는 특이한 설정, 특이한 사건, 특이한 관계 속에서 나오는게 아니에요.

 밀란 쿤데라가 그랬죠. 작가는 생으로 지은 집을 허물고 그 벽돌로 새 집을 짓는 사람들이라고요"

 

쿤데라는 세상앞에 드리운 커튼을 찢어 내는것이 바로 소설이라 했어.

우리가 사는 가짜 세상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는거 말이야.

소설가란 자신의 이름이 불멸할것이라는 끔직한 야심을 품는 사람들이야.

죽어서도 살아남고 싶은 사람들인거지.

 

어릴적 너는 꿈이 뭐니 라고들 묻잖아.

그때 내 대답은 대통령이요도 아니고, 판검사요 도 아니고, 연예인이요도 아니었어.

웃지마.

나는 '죽어서도 내 이름을 남기는 사람이요' 라고 했던거 같아.

범죄자로 남기던가, 예술가로 남기던가 둘중 하나겠지.

 

생으로 지은 집을 허물고 있나?

아니, 생으로 집을 짓고는 있나?

지금 집을 허물고 있는 거라 생각해 두자.

다 허물고 나면 벽돌을 만들수 있을테니까.

 

 

 

"작가는 두려움의 목록을 평생 만들어가는 사람이에요.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게 두려우시죠?

 제가 강의를 할때 처음으로 꼭 읽히는 단편소설이 있어요. '존 치버의 '다리위의 천사''라는 작품이에요.

 그 책을 보면 온 가족이 두려움을 갖고 있어요.

 높이에 대한 두려움때문에 40층까지만 견딜수 있었던 남자는

 41층으로 회사가 이전하자 그만 회사를 그만둬 버리죠.

 그런식으로 온 가족이 다 하나씩 두려움을 가지고 있어요. 그 두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이야기에요.

 바로 우리들 작가의 이야기와 같은 거죠. 마침 곧 존치버의 전집이 새로 번역해 나온다고 하네요 "

 

레이먼드 카버와 함께 현대 영미소설의 최고라 불리는 존 치버란 사람 근래에 자주 나오네.

얼마전 읽은 근사한 에세이 '그들은 한권의 책에서 시작했다(정혜윤)'에서 소설가 정이현을 만든

한권의 책이 바로 이 존치버의 '다리위의 천사'였어.

그래서 내 독서 리스트 꼭대기에 적어왔었는데, 바로 다음날 또 이 책 이야기를 듣게되네.

뭔가 인연이 있을것 같아. '주홍빛 이삿짐 트럭'이라는 구판 소설이 있다고 하니 찾아야 겠어.

 

"작가는 배우라고 생각해요. 왜 배우들은 자신들의 언어로 연기를 하잖아요.

 우리도 우리들에게 가장 절실한 이야기를 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내게 다가오는 것 말이죠"

 

내게 절실한 건 뭘까. 지금 내가 가진 두려움은 뭘까. 그 리스트를 만들어 가는거야.

처절하게 절실한 이야기 말이지.

아마, 두려움을 이기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어.

아직은 내 안의 것을 다 털어내는 과정이니까 말이야.

 

"르노와르는 만년에 류마티스 관절염에 걸려 손에 붓을 붕대로 감고 그렸다고 해요.

 르노와르는 흰빛은 존재하지 않다 라고 했어요.

 흰눈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니 푸른색이 조금이나마 묻어 있어야 한다라는 거죠.

 우리는 수없이 많은 옷을 껴 입고 살아요. 그 옷을 하나씩 벗겨가는 게 작가의 일이죠.

 여러분의 이야기를 하고 싶진 않다라는 두려움과 친밀해 지도록 고민해 보세요.

 작가의 이야기엔 작가의 색깔이 뭍어있을 수밖엔 없는 거니까요"

 

글쓰기란 광화문 한복판에 벌거벗고 서 있는 걸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왔어.

문득 촛불을 든 시민과 명박산성을 쌓은 특공대 사이에 벌거벗고 서서 그 둘을 바라보는 장면이 떠올라.

반대로, 너무 내 이야기를 해서 문제야. 일기인지 이야긴지 모를정도로 말이야.

 

"에세이와 픽션은 구분하셔야 해요. 이정도면 되지 않을까 하는 순간이 올꺼에요.

 그때가 위험한 때에요. 조심하시도록 하세요.

 끊임없이 질문하고 회의하고 반성해 보세요.

 뭔가 이대로 머물지 않겠다. 앞으로 나아가고야 말겠다 이런 욕망을 가져보세요. 

 작가는 주위의 사물들이 속삭이는 걸 듣고 그걸 사람들이 알아들을수 있도록 보여주는 사람이에요.

 그 안엔 내 목소리도 있는 거구요. 오감을 열어놓는다고 하죠. 육감을 이용해서 소통해 보세요.

 동물이나 식물, 사물도 우리들이 이해할수 없는 그들만의 언어가 있다구요."

 

끊임없이 질문하기. 스스로 대답할수 없는 그런 질문을 던지고 해답을 찾아보기가 필요해.

나의 그림자를 만나는 건 참 곤혹스러운 일이야. 그래서 방어기제로 딴 짓거리를 하고있는거지.

산산히 부서트려야 해. 벽돌을 만들기 위해선 말이지.

 

"마루야마 겐지가 그랬어요. 고독을 이길 힘이 없다면 문학을 할 이유가 없는거다 라고요.

 버틸대로 버티다 나오는 스파크를 글로 불꽃을 튀겨보세요.

 절벽에 서서 까마득한 암흑에 아슬아슬하게 있는, 그런 불안정한 자신의 발밑을 끊임없이 바라보세요.

 글쓰는게 어려우시죠? 그건, 실제 글쓰기란 무척이나 어려운 것이기 때문에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간다는 행복을 생각하세요.

 자신의 이름으로 된 책 한권을 갖는다는 건 정말 큰 행복이랍니다."

 

마루야마 겐지는 다섯편의 쓰잘데 없는 소설을 쓸 시간에 제대로 된 한편의 소설을 쓰라고 했어.

시간을 충분히 들여, 완성도를 높이라는 거야.

창작이란 정신의 깊은 곳을 비집고 들어가는 거라, 불안이 뒤따르고,

그래서  누군가에게 매달리고 싶고, 어울려 놀고만 싶은거라고도 했어.

소설은 오로지 혼자 써 내려가는 거니까 말이야.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

삶을 다시 리세팅해서, 최대한 단순하게 살아야 겠다고 말이야.

최대한 약속을 적게 잡고, 아주 극도로 심플한 삶을 살면서 절대고독과 섹스를 하고 말이지.

 

먹고, 자고, 쓰고

이렇게 3가지만 해보는게 어때?

 

도대체 넌, 왜 쓰는 거야?

 

 

* 문장웹진의 편집위원으로 있는 조경란 소설가의 글을 더 보고 싶으면, 클릭!

http://webzine.munjang.or.kr/article/list.asp?pCate=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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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광대 2008-10-10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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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가 있는 원문을 보시려면 이곳으로!
 
히라노 게이치로와의 만남 행사 후기

24세, 대학 재학시절 아쿠타카와 상을 수상하며 일약 천재작가 소리를 들으며 데뷔한 한 일본의 소설가가 있다.  바로, 히라노 게이치로다. 수상작 '일식'은 무라카미 류 이후로 최초의 대학생 수상작가의 탄생이었다.  그의 이름은 무척이나 많이 들어왔다. 꽃미남 작가, 천재작가, 진지한 예술가 등이 그의 키워드 였다.
 
 이상하게 요즘엔 책을 집어들면 가장 먼저 살펴보는게 작가의 생년월일이다.  아무래도 나이가 들어가는 지라, 이들은 도대체 몇살인데 이렇게 성공한거야 하고 훔쳐보게 되는 것이다.  누구는 자신보다 어린 작가의 작품은 읽지 않는다고도 한다. 일견 이해는 간다. 아마 질투 때문이리라.  어린게 얼마나 알겠어, 혹은 그래봤자 비린내 나는 치기어린 낙서정도겠지 하는 시기심 때문이기도 할테구.
 
헌데, 요즘 한국 젊은 작가들에게 참 많은 도전을 받았었더랬다. '달려아 아비'의 김애란이 그랬고, '즐거운 인생'의 전아리가 그랬었다. 20대 초반이지만 이들의 글엔 힘이 있었고, 삶의 진실이 또박하게 박혀 있었다. 그래서 소설가의 나이에 대한 편견은 애시당초 집어 던지기로 했었다.
 
그런데, 히라노 게이치로는 34이다. 동갑내기. 이상하게 동갑내기라 하니 질투나 시기보다는 그냥 동시대를 함께 살아온 정서때문인지 친근함이 더한다.
 
'일식'이라는 책은 참 오랫동안 서가에 먼지만 얹혀 있은 채 잠겨져 있었다.  슬쩍 들춰봤더니 의고체의 무거운 문장에 '장미의 이름'류의 중세시대 수도사의 철학적 고뇌를 다룬 거다.  그래도 역시 일본문학 번역의 대부 '양윤옥'씨가 손을 봐서 그런지 번역이 깔끔해서 속도감이 나긴 했다.  헌데, 끝까지 보진 못했다...
 
요즘엔 통 무거운 책은 읽히지 않는다. 히라노의 제안대로 '슬로리딩'을 통해서 봐야할 책들은 점점 멀리하게 되는데, 늘 고민이다. '도스토옙스키'전집과 '니체' '푸코' '융' 뭐 이런 책들을 쌓아놓고 언제나 보려 하지만, 늘 미뤄놓게 된다. 책을 읽는 시간보다는, 읽을 책을 고르고 모으는 시간이 배는 되니 말이다. ㅠㅠ.
 
이게 다 '세상의 모든 것을 이해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오는 것이리라. 어쩌면 글쓰기에 대한 회피로써의 그럴싸한 변명일수도 있고 말이다.
 
하여간, 히라노와의 만남은 작가와의 만남이 언제나 그렇듯 약간의 설레임과 조금의 질투심으로 시작되었다. 기분좋은 가을바람이 파고 드는 홍대의 지하 까페에서 그를 만났다. 
  

" 웹 2.0 시대엔 개인이 다양성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타자와 차이에 대한 존중이 사라진 시대가 온 것이죠.   하지만 아이러닉하게도 세상은 자본으로 단일화 되어 있습니다.   자본이야 말로 사람들을 하나로 뭉치게 할 유일한 이데아죠.   그런데, 포스트 911 이후로 반미를 위한 반대파는 모두 처단해야 마땅할 테러집단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적이 탄생했습니다.
  다양성과 단일화,   즉 저는 웹 2.0 시대의 다양성을 지닌 개인의 동일화에 대한 이러한 의문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동안 전근대-근대-현대를 관통하는 이야기를 차례로 그려보았습니다.  이데올로기 시대의 종말이후 에고이즘으로부터 탄생한 개인화와 분리에 대해서 말입니다."
 
- 개인은 다양한데, 세상은 단일화 되어있다는 역설!
   블로그나 까페를 보면 참 다양한 생각을 가진 군상들이 자신만의 '외침'을 하며 살아간다.
   헌데, 그들은 세상속으로 들어가면 권력과 자본이라는 이데아 앞에 '침묵'하며 버텨간다.
   외침과 침묵사이, 진짜 우리의 모습은 무엇일까?
 

 
 
" 중세 페스트 이후 기독교 시대는 몰락했습니다. 유럽은 흩어지게 되었죠.
  그래서 이들에겐 공통의 적으로서 마녀사냥이란게 필요했습니다.  이렇듯, 공동생활에서 몬스터에 대항하는 것, 즉 적과 싸울때는 하나가 될수 있으니까요. 세상은 이렇게 공통 가치관이 상실되면 적을 찾게 됩니다"   
  
- 20세기는 이데올로기가 적이었다. 매커시즘과 빨갱이 사냥으로 점철된 독재와 억압의 시대말이다.
     헌데 이데올로기가 사라진 지금은 소비자본주의라는 유일한 가치관의 동일성 속에서,
     신자유주의와 무한경쟁의 정글속에서 자연도태자와 루저들의 양극화만 가열되어,
     부의 계급화 즉, 강남과 강북으로 대변되는 신계급사회가 도래하고 있다.
     공정택과 주경복의 대결에서 보듯, 보수와 진보의 이름을 달고 자본과 분배의 탈을 쓰고 말이다.
     뉴라이트와 아고라, 한기총과 기장, 조선일보와 한겨레, 조갑제와 진중권 ...
    이렇게 세상은 극명하게 나뉘어져만 간다.
     MB 에겐 촛불 좀비라는 적이 생겼고, 촛불들에겐 쥐박이라는 적이 생겼다.
    게다가, 우리에겐 아직 색깔론이라는 거대담론과 지역감정이라는 토착담론까지 있다.
     우리들이 뭉치는건, 올림픽과 월드컵 뿐이다...
 
 
 
 
"이렇듯 하나의 적과 마주본 개개인인 우리. 즉 테러와의 전쟁을 하며 하나되어 싸우는 미국이 탄생했죠.   인디언, 소련, 이라크, 에일리언, 화산...   단 하나의 강력하고 유일한 적에 맞써 싸우는것. 바로 헐리웃 영화의 대박 공식과도 일맥상통합니다."
 
- 요즘 헐리웃 영화의 적은 무얼까?
  300의 적은 이교도 집단. 트랜스포머의 적은 사악한 로봇군단. 다크 나이트의 적은 조커.
  냉전시대엔 헐리웃 영화도 만들어내기 쉬웠다.
  007의 적들, 람보와 록키, 프레데터의 적들 아주 쉽고 명쾌하지 않았나.
  한동안 아랍인과 테러집단에 대한 적을 쏟아 내더니 이제는 과거와 미래를 오가며 가상의 적을 만들어 낸다.
  딱히 적을 삼을 만한 이들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나 '데어윌비블러드'등을 보면 미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적으로 등장한다.
  미국 탄생신화의 폭력성, 허구성등을 씹어대는 자기 반영적영화가 아카데미 상을 휩쓰는 세상이 된 것이다.
  한국정부 건국의 폭력성, 친일 세력의 지배성, 레드 컴플렉스의 허구성 등을 내세운 한국영화도 곧
  각광 받는 세상이 올수 있을까?  
 
" 우리는 적이 없으면 적 같은 존재를 만들어 싸우려고 합니다.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이 오기 때문이죠. 악플러들이 '우린 하나다!'라며 뭉치는 이유일지도 모릅니다. "
 
 - 요즘 정부는 아주 살 맛났다. 진보세력이 무너진 판국에 딱히 적이 없었는데, 촛불이 나왔기 때문이다.
    바로, 신공안정국이 가능한 것이다. 영원한 적일것 같았던 북한과는 대통령이 오가는 사이가 되었고, 미국과는 화해협력으로 가고 있으니 딱히 꼬집어 적으로 삼기가 껄쩍 지근했던 판이다.
    반한 정서가 가득한 중국이나, 패권주의가 부활하는 일본에게는 차마 날을 세울수 없으니 국민들에게 세우는 수 밖에 없었을 터.
     요즘 유행하는 '되고송'에 따라 불러보자.
 
     수배자들은 조계사 앞에서 잠복했다가 잡으면 되고, ~
     유모차 부대는 아동 보호법 위반으로 넣으면 되고, ~
     중고등학생 부대는 학교와 부모에게 압력넣어 해산 시키면 되고, ~
     자동차 부대는 면허 정지 처분 내리면 되고, ~
     진압거부 의경은 복무 불이행으로 영창 보내면 되고, ~ 
      말 안듣는 언론은 낙하산 사장 내리 꽂으면 되고, ~
      걸리적 대는 시민단체는 공금횡령으로 털어 넣으면 되고, ~
      진보단체들은 국보법으로 깔끔하게 넣으면 되고, ~
      네티즌들은 최진실법으로 추적해서 처벌해 버리면 되고, ~
      좌편향 교과서는 수정해서 주입시키면 되고, ~
      감시는 감청법과 유전자 은행법으로 지켜보면 되고, ~
      뿔난 국민들에겐 물가상승과 경제환란으로 정신없이 하게 하면 되고,~
      뭐든지, 생각해로 하면 되고...~~ 
 
 
" 일식에서 장송까지. 근대이전부터 근대를 다뤄왔습니다.   그 동안에 책에서 tv로 정보채널이 이동해 왔습니다.    저는 커뮤니케이션의 재료를 찾고 있었습니다.    종교논란이나 연예인의 자살등에 관한 논란에서 볼수 있듯.    일방적 정보를 tv로 부터 전달받던 우리는 인터넷이라는 다양한 각자의 정보채널로 분리되었습니다.     아주 많은 작은 세계로, 자신의 작은 자기분열을 하게 된 것이죠.    음악을 록만 들었다면, 이젠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들을수 있게 된 겁니다.    부모, 친구, 회사, 학교 등 여려개의 자신은 그때그때 달라집니다.  이런 분열로 인해서 사회는 까다로워져만 갑니다. "
 
- 앞으론 정신분열과 강박증, 우울증이 현대인의 제1 질병이 될거라 한다.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웹의 하이퍼 텍스트적 링크에 의한 멀티 태스킹은 이미 우리 문화가 되었다.
   아이팟으로 음악을 들으며, 노트북으로 서핑을 하면서, 잡지를 뒤적이며, 커피와 베이글을 마시며, 대화까지 하는 건 아주 평범한 일이 되었다.
 늘상 케이블의 채널은 끝없이 돌아가며, 뮤직비디오와 미드의 엄청난 커트감과 속도감, 광랜의 초고속 인터넷, 이동하며 서핑하는 와이브로, 핸드폰으로 화상통화와 서핑까지 하는 그야말로 호모 스피디쿠스라 할만하다.
   회사에선 성공을 위해 권력앞에 비굴해지고, 가정에선 가족들앞에 강해지려 애써 소통을 피하고,
   친구들과는 스트레스를 풀기위해 한없이 풀어지고, 교회에 가면 삶을 반성하며 침잠해 졌다가,
   웹에 들어와선 온갖 정보와 소통의 장에서 지킬과 하이드가 되어 선플러와 악플러를 오간다.
   그야 말로 끝없는 세포분열로 살아가는 분열적 자기 복제생산품이 되어 가는 것이다.
 
"센티멘털이라는 소설에서 현대사회를 그렸는데, 하나의 틀로 그려내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작은 틀로 하나하나 그려 내보았습니다.  우연한 원나잇, 불륜 남녀, 히키코모리, 일본의 단편 하나 하나를 그려보았던 것이죠.   약간은 실험적인 방법을 사용해서 창작을 해봤던 거였습니다"
 
- 하나의 완결된 에피소드로 구성된 미드가 영상계를 주름잡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하나의 커다란 이야기를 받아들이기엔 관객들은 이미 너무나 세분화 되어 버렸다.
  공동의 적이 사라진 시대에 유일한 적은 나보다 자본을 더 가진자와 내 자본을 뺏으려는 자 밖엔 없을테니 말이다. 범죄 장르. 즉 사기나 강탈극이 히트할수 밖에 없는 세상이 된 것이다.
  전 세계적인 스릴러 장르의 열풍은 바로 이것에 기인한게 아닐까 싶다.
  사기 쳐 빼앗는 쾌감을 맛 보거나, 빼앗은 범죄자를 잡아서 처벌하는 스릴을 맛보거나 말이다.
  역시, 시대를 보는 통찰력이 있는 히라노도 스릴러 로 돌아서지 않을까?
 
"문학이 인터넷 시대에 어떻게 해야 할까...  저는 최근에 글을 쓰면서 독자들의 반응을 보면서 씁니다.  아마 근작 '당신이 없었다, 당신'이 예전 방식의 창작물의 마지막이 될 것입니다.   막 탈고한 '절의'라는 작품은 근작 '당신이...'에서 전단계로 실험해본 최종 나의 결과물입니다. 미스테리와 서스펜스. 즉 저도 독자들이 읽어내려갈수 있는 소설을 쓰게 된 것이죠"
 
- 아이러닉하지만, 문학과 인문학이 죽었다는 한국이 그나마 순수문학만큼은 근근히 살아남아 있다.
  장르문학의 전통이 약한 탓도 있겠지만 독자 자체도 장르문학과 함께 순수문학을 아껴주고 있다는 것이다.
  헐리웃 영화와 미드에 열광하면서도 한국영화만큼은 리얼한 정서에 기댄 한국형 영화를 원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 땅에서도 로보트가 싸우고, 고대 전사가 칼질하는 한국영화가 나와 열광하려면 웹세대의 기성세대로의 등장 즈음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상 문학상이 출간되면 하나쯤 소장해 줘야 예의라는 정서가 있는 지금의 기성세대들에게는 아직도 순수문학이 효용가치가 있는 것이다.
   히라노가 장르물을 쓰다니. 과연 어떤 작품일까 사뭇 궁금해 진다.
 
 
 
" 밸런스가 가장 중요합니다.  작가로서 저는 세가지를 늘상 생각합니다.
   뭘 하고 싶은지. 뭘 할 수 있을지. 뭘 해야 하는지.  이제 겨우 이 셋간의 밸런스를 맞출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고 싶은거와, 할수 있는 거는 혼자 알수 있지만, 해야 하는 지는 독자와의 관계속에서 몸소 체험해야만 알수 있는 것입니다"
 
-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와 어떤 이야기를 할수 있는가에 대한 나름의 정리는 되었다.
   하지만 역시 나도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하는가에 대한 것은 아직 혼란스럽다.
   상업영화라는 지향점에서 보자면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하는가가 가장 중요할 터인데 말이다.
   일단 만들어 봐야 알수 있다는 거다. 아무리 혼자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하지 않을까 구상만 해봤자 답이 없다는 것이다. 관객과의 소통속에서 내가 해야만 하는 이야기를 알수 있다는 것.
    가장 핵심을 찌른 멘트였다. '뭘 해야 하는지'는 독자와의 소통을 통해서만 알수 있다는 말.
   
" 예술지상주의요?   창작 태도에 있어서는 단호하게 예술지상주의라 할수도 있습니다.   최고의 완성도를 위해 그 무엇과도 타협하지 않고 노력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말이죠.   허나 예술이 이 세상의 다른 무엇, 즉 사랑, 가정, 경제, 문화, 등등... 어떤 것보다 가치있다는 것엔 동의하지 않습니다. "
 
- 타협하지 않기 위해선 우선 자기 중심이 굳게 서 있어야 한다.
  이야기에 대한 중심, 가치관에 대한 중심이 서 있지 않으면 늘상 흔들리게 마련이다.
  작품을 대하는 데 있어서 예술가적 태도. 즉 최고의 작품을 뽑아내도록 전진한다라는 그의 명제가 다시 한번 나를 돌아보게 만든다. 나는 지금 타협하지 않고 있나?
 
" 슬로리딩에 반대한다구요?   그렇게 하시죠. 전 책을 읽는 부류가 세가지가 있다고 봅니다.    남들에게 읽지 않았다고 하면 부끄러울듯 해서 읽는 사람.    작가와 이야기와 소통하고 싶어서 읽는 사람.    심심풀이 시간 때우기로 읽는 사람.  전 두번째와 세번째에 해당합니다. 절대로 첫번째엔 해당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책을 아직 않읽었다는 것에 대해서 부끄러워 하지도, 부채감을 가지고 있지도 않습니다.  반복 읽기가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물론 또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말이죠. "
 
- 어쩌면 난 첫번째 리더가 아닐까 싶다.
   책을 읽는 시간보단, 읽을 책을 고르고 쌓아두는 시간이 배가 되니 말이다.
   독서가 라기보다는 컬렉터에 가까운데 이는 다치바나 다카시의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에서 비롯되었다.
   일년에 한권의 책을 사서 한권을 읽는 것보단, 백권의 책을 사서 두권을 읽는게 독서가이다!
   늘상 책을 사모을때면 먼지가 가득쌓인 서재를 보며 에휴 이거라도 어서 봐야 하는데 하면서도,
   다카시의 말에 따라 필이 꽂히면 그 책은 기어코 쟁겨 놓아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수입의 절반 이상은 항상 책 모으기에 쏟아 붓는데, 실상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보고 있다.
   평생 두고두고 옆에 놓고 읽어야 할 위시 리스트들은 소장해 놓고, 아직 아리까리한 신간들은 도서관에 신청해서 받아 보는 것이다.
  이것도 탐욕일 텐데, 일주일에 두권씩 신청하는것도 밀리다 보니 대여했다가 고대로 반납하고 다음 신청서적을 빌려가고 하는게 사이클이 되어 버렸다. 집이 아니라 도서관에 컬렉팅을 하고 있는 것이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면 반납일이라는 시간의 족쇄가 있어 부채감으로 읽게 되는데, 장단이 있다.
  장점은 일단 많이 읽는 다는 것, 단점은 읽고 나서 맘에 들면 아 사서 볼껄하는 아쉬움이 남는 다는 것이다.
 어쨋든 내 손에 쥐어져 집에 마실왔다간 책들도 언젠간 곧 보기 않을까 싶다. 흔적은 남아 있을테니 말이다.
  실상 이 글을 쓰는 것도, 알라딘 모임참가 후기에 올려 당첨되면 마일리지 머니를 받게 되니 책을 살수 있다는 생각에 쓴다는 걸 고백해 두겠다. ㅠㅠ.
 
"어떻게 작가가 되었는가?  어릴적  <금각사>를 읽으며 책 읽기에 빠졌었습니다.  학교는 가지만 공감을 못했고, 늘상 무거운 테마 '삶은 뭔가, 죽음은 뭔가'에 대해 고민하던 학생이었죠.  그 갭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몰랐습니다.  부자학교도 다녀봤고, 자유로운 클럽학교도 다녀봤지만 다 제겐 맞지 않더군요.  그럴때 토마스 만을 읽었습니다.  나만 인간과 사회에 갭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왜 블로그 보면 세상에서 할수 없는 말들을 하는 네티즌들이 가득하잖아요.  그렇게 차마 할수 없는 이야기를 글로 적어보자 하는 생각에서 작가가 되기 시작한것 같습니다."
 
- 왜 블로깅에 빠져들까에 대해 그리 생각해 보지 못했다.
  헌데, 막상 내가 블로깅을 시작해보니 이게 강한 중독성을 가졌다는 걸 알게 되었다.
  뭔가 가슴속에서 뭉클하고 짜릿하고 빠글빠글한 게 생기면 이렇게 풀어내지 않고는 미칠것 같아 진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생각하거나 말로 풀어내는 것보다 이렇게 글로 풀어내다 보면 확실히 내 이야기가 되어간다. 글쓰기의 효용이 여러가지 있겠지만 소통에 대한 욕구와 표현하고 픈 욕망이 가장 크지 않을까 싶다.
 금각사와 토마스 만... 아 또 보관함에 책들이 쌓이는 소리가 들린다.
 
"제 소설이 난해하다구요?  아마 난해하다면 재미없다는 말이겠죠.  재미는 독자의 자유판단입니다.  인터페이스를 연구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그 친구가 말하더군요.  인간은 '인지'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거라구요. 그래서 그 '인지'를 쉽게 개선하면 된다구 말이죠.  예술세계에서는 조금 다릅니다.  독서 경험이 적으면 읽기가 어렵고,  독서 경험이 많으면 읽기가 쉽죠.    초딩때와 지금의 '도스토옙스키 읽기'의 차이와 같기 않을까 합니다.  하지만 저도 이런 문제에 고민해 봤습니다.  어쩌면 제 책을 어려워 하는 건 인지의 무리, 즉 스트레스 때문이 아닌가 말이죠.  그래서 근작 '절괴'는 읽는데 전혀 무리 없도록 창작해 봤습니다.  계속 읽고 싶은 소설이 될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었는데, 어느정도 성공했다고 봅니다."
 
-  미치너의 '작가는 왜 쓰는가'에서 보면, 소설가는 최대한 어렵게 글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그 어려운 글을 포기하지 않고 힘들여 읽어내는 독자들만이 그 소설을 읽어야 할 진짜배기 독자들이고 그들이야말고 소설을 향유할수 있는 가치가 있는 이들이라는 것이다.
   어느정도는 공감하는 바이지만, 자칫하면 궤변으로 들릴수도 있는 주장이라 생각된다.
  프루스트와 타르코프스키는 분명 훌륭한 예술가 이지만 그들의 텍스트를 읽을수 있는 관객만이 진정한 관객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은 프랑스의 문학전통과 러시아의 영화전통이 있기에 나올수 있었던 작품일것이다.
   계속 읽고 싶은 소설. 즉 계속 듣고 싶은 이야기. 이야기꾼의 가장 기본적인 미덕인 것이다.
  아... 먼지만 쌓인 '도스토옙스키 전집'...
 
" 작가는 독자가 알고 싶다(수수께끼 풀이)라는 욕망을 가지게 만들어야 합니다.   드라마에서 중간 cm으로 긴장감을 끌어가는 것처럼 말이죠.
  또한 작가는 독가자 좆기도록 해야 합니다.   헐리웃 영화의 기본 공식이죠. 항상 좆기고, 수수께끼 풀어가는 것 말이죠.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야기에는 분명 뭔가가 있습니다.    전 이걸 '절괴'에 사용했죠. 성공 이었습니다.   특히 이러한 이야기의 기술은 어려운 것을 전달하고자 할때 필히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서스펜스와 미스테리. 바로 스릴러의 쌍두마차이자 이야기의 비기가 아니던가. 아 히치콕 교주님이여...
  당의정 이론. 바로 어렵고 무겁고 쓴 이야기일수록 달콤하고 쉬운 이야기에 포장해서 먹여야 한다.
   이른바 웰 메이드 스토리의 최고봉이 아닐까. 가장 단순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깊이있는 이야기를 하는것.
   고로 개인적으로 최고의 문학은 시라 생각한다.
   이야기꾼은 분명 시인의 언어를 가지고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  
 
" 창작과정은 말이죠.   테마에 따라 문체나 스타일이 정해집니다.   뭔가 광택이 나는 윤기나는 원구 같은걸 떠올리며 말이죠.   새벽 6시에 일어나서 낮 12시에 일어납니다.   음악은 전혀 듣지 않습니다.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면서 스푼이 떨어지는 소리를 상상하고 싶으니까 말이죠.   소설속의 소리, 소설속의 냄새 등을 작가는 느끼면서 글을 써야 합니다"
 
- 자신만의 창작과정을 셋업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까.
  아직도 이런 저런 시간과장소방법을 해보고 있는 나로선 부러울 따름이다.
  분명 확실한건, 작가마다 글이 나오는 분위기가 있다는 것이다.
  침묵의 도서관이던, 시끄러운 까페던, 컴컴한 다락방이던 그만의 영감이 나오는 공간은 분명 있다.
  그 공간을 찾기 위해 수없이 부유하긴 하지만 그 노력은 끝없이 해야만 한다.
  대부분의 작가는 밤에 쓰지만, 새벽에 쓰는 작가도 상당수 있다. 오후에 쓰는 작가도 있고 말이다.
  역시 시간대 또만 그만의 시간대가 있는데, 개인적으론 머리가 맑게 돌아가는 아침이 잘 맞는다.
  그러나 분명한건, 언제어디서든 써야 한다는 것이다.
 
"소설을 만드는 과정이요?  단편은 구체적으로 전체적인 구상을 정하고 씁니다.  장편은 큰 부분만 정하고 쓰면서 정해 나가죠.  '절죄'는 끝을 전혀 쓰기 않고 써 내려 갔습니다"
 
- 큰 부분을 정하는 것. 그게 이야기 만들기의 핵심인터.
   이바닥 용어로 '와꾸'를 얼마나 잘 짜느냐가 스토리 텔러의 내공일텐데, 항상 고민되는 부분이다.
   늘 와꾸만 짜다 살과 옷을 입히지 못해, 뼈대만 있는 철사아트처럼 되어 있는 내 이야기들때문이다.
   어느날 밤 꿈에 아스팔트 도로에서 널부러진 머리없고, 팔없고, 다리없고, 몸통없는 캐릭터들이 좀비처럼 부슬부슬 날 따라오며 살려달라는 꿈을 꾼적이 있다.
   아 불쌍한 내 좀비들... 지금도 몇몇의 좀비들이 모니터 밖으로 나오려 피 토하고 앉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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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광대 2008-10-10 1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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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콘서트라는 게 있는 줄은 알고 있었다.

kbs 낭독의 발견 이라는 프로그램 보면 왜 작가들이 나와서 자신의 작품을 낭독하고 그것과 관련된 뮤지션들의 공연을 보고듣고 이야기 하지 않는가. 바로 그게 북 콘서트 인 것이다.

 



 

처음엔 그냥 호기심에서 이벤트에 신청을 한 북 콘서트 였다.

초대손님중에 '정희성' 시인이 계셔서 망설임 없이 바로 신청을 했는데 당첨이 되어 다녀왔는데,

생각보다 기대 이상이었다.

 

몰랐었는데, 이 북콘서트는 평화방송의 라디오 프로그램 '북 콘서트'의 공개방송이었다.

매주 일요일 저녁 9시 5분에 방송하는 이 프로는 작가와 뮤지션이 낭독하고 토크하고 노래하는 컨셉이다.

 

매주 '문장'에서 보내주는 나희덕의 시읽기와 김연수의 문장읽기 플래쉬가 내겐 큰 낙이었는데,

분명 앞으로 이 북콘서트도 내게 큰 낙을 주는 것중 하나가 될듯하다.

 

마침 이날은 상상마당 북 콘서트 1주년을 맞아 특집으로 tv 녹화까지 겸한 그런 콘서트였다.

지미집에 달린 eng 카메라 하며 번쩍이는 조명하며 사회자분 꽤 긴장하며 시작하였다.

 

처음 무대에 나온 이들은 힙합그룹 타타클랜.

 



 

바로 이 노래를 불렀다. 그 유명한 '워키워키 송'을 피쳐링한 노랜데, 은근짜 신난다.

자메이카 랩인듯 한데, 젊은 인디 힙합그룹이 열정적으로 노니는 모습을 보니 에너지 충전 만땅 팍팍이다.

 

몰랐는데, 이 프로그램에서 '한국문학 음악에 담다'라는 cd 작업을 진행했단다.

문학작품을 뮤지션에게 주고, 그것을 읽은 뮤지션은 영감을 받아 음악을 만들어 녹음하는 그런 프로젝트란다.

 

오호, 이 타타클랜이라는 그룹이 받은 책은 바로 손홍규 작가의 '봉섭이 가라사대'


              

 

  " 여러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소설을 쓰는 이유는, 더는 소설을 쓰지 않아도 되는 순간이 올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평생 손에서 일을 놓아보지 못한 부모님 역시 더는 일하지 않아도 좋을 날이 올 것이라 믿었으리라. 때로는 사람으로 태어난 게 아니라 노예로 태어난 게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하게 된다. 그럴 때면 나처럼 외롭고 쓸쓸하여 눈을 감고 돌아누울 사람들을 떠올린다. 그들만큼 견디지 않는다면, 삶을 어찌 짠하다고 할 수 있을까. 이 누추한 삶을 선사한 신에게 축복이 있기를! 그러므로 모든 영광은 스스로 아름다워지려 애쓰는 '사람들'에게 돌려야 한다. - 손홍규 "

 

책 제목은 익히 들어보았느나 딱히 읽을 맘이 나지 않아 내 리스트에 없던 책이다.

구수한 사투리에 순박한 미소를 가진 청년인 이 작가는 내 동갑내기였다. !!

 

한국 소설을 펼칠때면 가장 먼저 확인하는 이상한 버릇이 있는데 바로 출생년도를 제일 먼저 보게 된다.

이제 슬슬 나이가 꽤 적지 않은데, 아직까지 딱히 내 이름으로 된 책도 없고, 내 이름으로 된 영화도 없어서 그런지 이네들은 언제 이름을 내밀었나 이런걸 보게 되는 것이다. 이런 내공부족 같으니라구.

 

최근에 질투를 느꼈던 어린 작가들, 김애란이 그랬고, 전아리가 그랬듯.

어리다고 덜 익거나 가벼운게 아니다. 아니 오히려 젊은 작가일수록 패기가 넘치고 깊이는 기본이다.

 

하여간 이 손홍규 작가의 이 소설을 가지고 타타클랜이 노래를 만들었는데,

소를 둘러싼 소설의 모티브를 따와 '소인지 사람인지 헷갈려 하는 청년'을 가사로 힙합랩을 불렀다.

 

손홍규와 타타클랜. 눈여겨 볼 이들로 추가!

 

다음은 팝 클래식 연주그룹 '콰르텟 엑스'.

 



 

리더 이름이 낯익어서 알아봤더니, 예당아트라는 케이블 채널에서 '조윤범의 파워클래식'이란 프로를 진행하는 뮤지션이란다.

 

뭐 나름 이런 책도 낸 꽤 유명한 이더라.

 

클래식이나 팝, 영화음악등을 쉽게 편곡해서 대중들에게 연주하는 그런 연주단인듯 하다.

이들 역시 꽤 유명한듯 한데 처음 들어본걸 보니 요즘 꽤 음악 안듣고 살아왔나 보다.

리더 조윤범씨는 꽤 또박또박 말을 하는게 딱 봉준호 감독 화법하고 닮았다.

듣는이가 귀가 솔깃해서 말 한마디 한마디에 쭈욱 빨려들게 하는 그런 사람인듯 느껴지더라.

 

콰르텟 엑스가 받은 책은 바로 서유미의 '쿨하게 한걸음' 이란다.

 

 하하. 이 책은 출간되자 마자 읽은 책이닷 !

'판타스틱 개미지옥'으로 눈여겨 뒀던 작가기에, 수상작이라길래 냉큼 읽어버렸다.

로맨틱 코메디를 쓰기 위해서 한동안 '칙릿'에 올인한 적이 있었는데,

올초에 '한국형 칙릿'을 읽어가던 중에 걸린 작품이었다.

 

30대 회사원 여주인공이 짤려서 빈둥대다가 도서관서 영화 평론가 공부를 시작하는 뭐 그런 내용이다.

이런 류의 상처치유 성장소설을 조아라 하지만 솔직히 '악마는 프라다'나 '쇼퍼홀릭''워커홀릭' 같은 스토리텔링과 상업성이 하모니를 이룬 작품을 더 높이 평가하기에 생각보다는 별로였던 소설로 기억에 남는다.

 

콰르텟 엑스는 이 소설을 테마로 녹음한 곡을 연주했는데,

하모니가 시작되자 마자 느낀게, 딱 '히사이시 조'군 !

 

센과 치히로나, 하울, 동막골 등에서 나올법한 그런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 나왔다.

역시나 연주가 끝나고 리더 조윤범은 영화 ost같은 느낌을 내려고 했다고 한다.

좀 더 정직하게 히사이시 조 느낌을 내려고 했다고 했으면 더 멋졌을 것을...

 

여하튼, 이들은 앵콜곡으로 역시나 모리꼬네의 '시네마 천국 테마곡'을 연주한다.

 



 

아. 작년 엔니오 모리꼬네 콘서트에서의 전율이 다시 떠오른다...

2시간에 가까운 공연시간동안 단 한마디도 안하고 연주만 딱 하고 뒤돌아 선 그 거장의 아우라란...

특히 얼마전에 모리꼬네의 음악이 너무나 멋졌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를 필름으로 본지라

작년 공연에서 그 음악을 두 귀로 직접 들었던 게 얼마나 큰 영광이었던가...

 

정말 끝내주는 음악을 가진 영화 '원스어폰어타임인더웨스트' 오프닝 씬을 보라.

 

 

엔니오의 연주모습은 언제봐도 환상이다.

 


 

이후에는 드디어 정희성 시인님 등장!

 



 

 

저문 강에 삽을 씻고 - 정희성.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일이 끝나 저물어

스스로 깊어가는 강을 보며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나는 돌아갈 뿐이다

삽자루에 맡긴 생애가

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

샛강바닥 썩은 물에

달이 뜨는구나

우리가 저와 같아서

흐르는 물에 삽을 씻고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로

다시 어두워 돌아가야 한다

 

바로 싸부 김대우 감독님이 예전 대학교 시절 학교 벽에 붙어 있던 이 시를 보고 와락 눈물을 흘렸다는 그 시.

고단한 노동을 끝내고 삽을 씻으며 슬픔도 버리며 담배 한대 피우고 뚜벅뚜벅 걸어가는 뒷모습이 그려진다.

 

할머니와 함께 달동네 초입에 사셨다는 감독님은 늘 밤이면 창밖으로 불콰하게 취해서 비틀거리는 막노동꾼들을 보고 물었다고 한다.

 

"저들은 가난한데 왜 저렇게 술을 마시는 거에요?"

"저 사람들은 돈을 그날 그날 받아서, 밤마다 술을 마실수 있는거란다. 그리곤 돈이 떨어지니 담날 또 일을 나가야 하는거구"

"에이. 그거 아껴서 모아야지. 왜 술을 먹고 그런담"

"너도 공부한하고 놀면 저 사람들 처럼 된단다."

 

그런데, 파리 유학시절 힘든 육체노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언덕에서 늘 얼콰하게 취해서 노래를 부르며 걸어올라가며 이 어릴적 에피소드가 생각나셨다고 했다.

 

 누구나 이렇게 '저문강에 삽을 씻으며' 살아간다.

직장인들이 안정적인 직장에 가정을 가졌음에도 늘 밤마다 회식에서 술에 삽을 씻듯이,

작가들도 고단한 자기와의 싸움을 끝내고 글을 쓸때면 밤마다 이불을 들척이며 삽을 씻는다.

 

이 시집 정말 발군이다. 시편 하나하나가 진주 같아서 빨리 읽어버리기가 아까운 그런 시집이다.

 

정희성 선생님이 직접 신작 시 한수를 낭독해 주셨다.

 



 

실황 영상이다. 클릭!

http://video.naver.com/2008091817272417311

 

 

나도 내가 많이 망가졌다는 것을 안다

 

 

                            정희성

 

 

나는 내가 왜 이렇게 모래처럼

외로운 지를 알았다

나의 불온성에 비추어

나도 내가 많이 망가졌음을 안다

그리고 모든 망가지는 것들이 한때는

새것이었음을

 

하지만 나에게 무슨 영광이 있었던가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세상을 바라보았으나

사람들은 내가 한쪽 눈으로만 본다고

그래서 세상을 너무 단순하게 생각한다고

세상은 그렇게 일목요연한 게 아니라고

 

내 자신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다른 무엇일 거라고

결코 상상해서는 안 된다고

환상에서 깨어나라고 이념을 내려놓으라고

그런데도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버릴 수 없는 꿈이 있기에

 

나는 내가 많이 망가졌음을 알면서도

아직 망가지지 않았다고 우기면서

내가 더 망가지기 전에

세상이 바뀔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아서 그래서

나는 더 외로운 것임을 모르지 않는다

 

...

자신의 신념대로 살아왔던 한 노시인의 이런 득도한 자기고백은 정말 사람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저문강에 삽을 씻으며' 살아왔던 시인은 '망가졌음을 안다며' '희망을 버리지 않기에 외로운' 것을 노래한다.

 

신념대로 살아가기엔 세상은 너무나 유혹적이고, 현실은 너무나 가혹하다.

적당히 세상에 뭍어가라고, 대충 남들처럼 살라고, 그런게 인생이라고 다들 내게 말한다.

 

올초에 너무나 힘들어서 한나라당 선거운동원 알바자리를 놓고 잠시 고민했었다.

헌데 아무리 생각해도 마지막까지 버릴수 없는게 있더라.

내가 아니다라고 생각한 건 하지 말고 살자는 작은 존심 같은게 있는데,

만약 그 선택을 했다면 아마 엄청 큰 충격을 받았을 지도 모른다.

 

지금도 여전히 남들은 내게 좀 영악해 지라고, 비즈니스를 좀 하고 살라고, 현실을 좀 똑바로 보라고,

그렇게 말하지만 여전히 난 꿈에서 희망을 보기에 '저문강에 펜을 씻으며' 뚜벅뚜벅 걸어간다.

 

구부정하게 등장한 한 더벅머리 청년.

바로 하이미스터메모리 라는 록커다.

정희성 시인을 너무나 좋아한다며 꼭 시 한편을 음악으로 만들게 해달라며 싸인들 부탁하는 순박한 청년.

 

이 친구는 은희경의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를 테마로 노래를 만들었단다.

 

문을 두드리는 소년에 관한 노랜데, 문득 이 노래를 들으며 짤막한 단편 시나리오가 떠올랐다.

 

 

<문 두드리는 소년> written by 상범.

 

추운 겨울밤. 바람은 몰아치고, 언 손을 호호 불며 소년이 문을 세차게 두드린다.

아무리 두드려도 문 안쪽에서는 대답이 없다.

까치발을 세우고 창문 안을 들여다 본다.

서리를 닦고 바라본 안쪽은 파티가 한창이다.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노인들이 샹들리어 아래에서 와인을 마시며 왈츠를 춘다.

소년은 배가 고픈지 침을 삼키곤 고개를 툭 하고 떨어트린다.

그때 저 안쪽에서 소년이 아비가 고개를 돌려 소년을 쳐다본다.

소년은 창문에 얼굴을 박고 세차게 두드려 보지만 아비는 무심히 고개를 돌린다.

뚜벅뚜벅 다가와 아비는 창문의 커튼을 닫는다.

문앞에 선 소년은 다시 문을 세차게 두드리다 지쳐 그 자리에 주저 앉는다.

소년은 언 손을 호호 녹이곤 거리를 바라본다.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온다. ‘너 혼자가 아니야. 너 혼자가 아니야...’

고개를 둘러 보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살짝 구름에 가린 달이 드러나자 길가에 주욱 늘어선 주택앞에 모두 언손을 녹이고 있는 소년과 소녀들이 늘어서 있다.

왈츠 소리가 적막한 거리를 울린다.

 

이 노래 발군이다.

딱 듣는 순간 그림이 딱 그려지는 그런 노래. 덕분에 나도 단편 시나리오 생각거리를 하나 얻었다.

 

이날 든 생각인데,

맨날 컴퓨터에 머리박고 글 쓰거나 책 읽는 것만으로는 절대 영감이 나오진 않는다는 거다.

 

거리를 다니고, 공연에 가서 음악도 즐기고, 사람도 만나면서 세상을 느끼고,

뭔가 자극을 받을 수 있는 인생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하이미스터메모리와 함께 했던 그 고운 목소리의 여성 보컬이 누군지 궁금하다.

참 분위기 있던데 말이다. 하여간 이 청년도 주목할 뮤지션으로 찜!

 



 

마지막으로 토미키타 라는 록커가 등장했다.

커다란 선글라스에 망사셔츠를 입고 하드한 보컬을 내지르니 이거 왠 마쵸맨 인가 했는데,

막상 말을 하는 걸 보니 순박한 면도 있는 뮤지션이다.

 

이름은 들어봤다 토미키타.

토미 힐피거 때문인가, 토미 리 존스 때문인가는 모르겠지만 어쨋든 말이다.

재미교포 출신 록커인데, 모델도 하고 '마리아 마리아' 뮤지컬에서 예수 역할도 한 배우이기도 하다.

근데 이 록커가 부른 문학 노래는 뭔지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

 




 

공연을 끝내고 싸인회를 하는 작가에게 싸인들 받았다.

정희성 시인에게 '저문강에 삽을 씻고' 책을 내밀며 '싸부님이 영화감독이신데 내일 생신이라 선물로 드리려 하니 코멘트 해주세요' 라며 말이다.

 

아까 위에 말했듯 싸부가 참 좋아하는 시라 직접 시인이 싸인한 시집을 드리면 참 좋아하실듯 해서 그런건데,

역시나 선물로 드렸더니 무척이나 감동하셨다. ㅎㅎ.

물론, 나도 '돌아다보면 문득' 시집에 싸인을 받았지만 말이다.

 

좋은 책에, 멋진 음악에 참 오랜만의 나들이라 기억에 남았지만,

그것보단 역시 방구석에서 글만 쓰지 말고 좀 돌아다니자 라는 생각이 든 날이었다.

 

특히 음악. 그동안 음악을 참 멀리 했구나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사운드 데이에는 홍대에 가서 인디 뮤지션들의 음악의 세례에 푹 빠져봐야 겠다.

 

물론, 매달 상상마당에서 하는 북콘서트를 꼭 챙겨볼거고 말이다.

 

책과 음악.

그리고 영화.

 

내 인생의 삼위일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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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광대 2008-10-10 1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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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무당광대 > [찬란]한 순간을 과산화수소에 담아...

 

 

 

 

 

 

 

 

                       불편하지 않은 것은 

                 살고 있는 것이 아니리니  

                                     마음에 

    휘몰아치는 눈발을 만나지 않는다면 

                살고 있는 것이 아니리니 

                       ([찬란] 시인의 말) 

 

 

[끌림]의 에세이 작가로, [바람의 사생활]의 낭만적인 시인으로 나의 책장 가운데 늘 놓여있었던 '이병률'시인의 신작은 단 1초의 지체도 없이 내 책상으로 배달되어 왔다. 난, 첫 페이지를 펼치곤 '아...' 하는 탄식과 함께 책장을 덮어 버리고 말았다. 

시를 읽는 다는 것은 무척이나 불편한 행위임을, 하지만 그 휘몰아치는 눈발을 불편하게 헤쳐나가지 않으면, 살아 있는 것이 아님을, 찬란한 생을 위해선 그 불편을 감당해야만 함을 알기에 쉽게 페이지를 펼치기가 힘들었다.  

예술가의 임무는 우리의 삶을 끊임없이 불편하게 해주는 것임을, 독자는 그 고통을 즐기는 것임을 알기에, 아파할것을 알면서도 다음장을 넘길수 밖엔 없었다.  

 단연코, 지금껏 읽어본 시집 중에 손꼽을 정도로 술술 읽힌다. 누구는 시집은 아끼고 아끼어 문장하나 구둣점 하나 아껴서 찬찬히 먹어야 한다고 몇달, 혹은 몇년에 걸쳐 읽기도 하지만, 따끈따끈한 햇밥의 보슬보슬함을 사랑하는 나로서는 일필휘독해야만 하는지라 무섭게 읽어 나갔다.  

 히브리어처럼 알수 없고, 암호처럼 풀수 없던 그 수 많았던 시 읽기의 좌절 전에 이 책은 진작 나왔어야 했다.  

 깊고 어려운 것을 쉬운 말로 풀어내는 것은 대가만이 할수 있는 것인데, 이미 이병률은 어느 경지에 오른듯 했다.  

 정말 간만에 시읽기의 쾌감을 전해준 그의 낭독은 어떠할까, 설레는 맘으로 길을 나섰다. 

 그와 함께 한 그 불편함의 쾌의 순간을 즐기면서 몇자 적어본다.

 

* (이병률) 첫 시집은 발표하고 나서 막막했어요. 지금은 하는 일(출판사)이 있어 이상하게 아무런 느낌이 없어요. 미래에 대해 차분하게 생각하게 된달까 그래요.  

* (이병률) 세상을 보는 데는 타고난 천성이 있어 변화는 잘 안되는 것 같아요. 보시는 분의 생각에 달린거죠. 변화되었다면 그것은 저의 일부인 것이구요. 이번엔 눈치 안보고 시도한 시도 있었어요. 생활, 사람대하는 것 이런것은 이전보다 달라진것 같아요. 덜 불안하달까. 이전엔 힘들었던 문제를 넓게 생각해서 품을수 있어진것 같아요.  

 

[기억의 집]  

기억을 끌어다 놓았으니 산이 되겠지 

바위산이 되겠지 

여름과 가을 사이 

그 산을 파내어 동굴을 만들고 기둥을 받쳐 깊숙한 움을 만들어 

기억에게 중얼중얼 말을 걸다 보면 걸다 보면 

 

시월과 십일월 사이 

누구나 여기 들어와 살면 누구나 귀신인 것처럼 아늑하겠지 

철새들은 동굴 입구를 지키고  

집이 하나로는 영 좁고 모자란 나는 

해가 밝으면 동굴을 파고 파고 

그러면 기억은 자꾸자꾸 몰려와 따뜻해지겠지 

 

그 집은 실뭉치 같기도 하고 모자 같기도 하며 

어쩌면 심장 속 같기도 하여서 

겁먹은 채로 손을 푹 하고 찔러 넣으면 

보드랍고 따스한 온기가 잡혀와 아찔해진 마음은 

곧 남이 되겠다고 남이 되겠다고 돌처럼 굳기도 하겠지 

 

그 집은 오래된 약속 같아 

들여다보고 살고도 싶은 여전히 저 건너일 것이므로 

비와 태양 사이 

저녁과 초저녁 사이 

빛이 들어 마을이 되겠지 

 

그렇게 감옥에 갇혔으면 하고 생각한다 

감옥에 갇혀 사전을 끌어안고 살거나 

감옥에 갇혀 쓸데없는 이야기나 줄줄이 적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 기억하는 일 말고도 

무슨 죄를 더 지을 것인가를 생각한다 

성냥을 긋거나 

부정을 저지르거나 

거짓말이라도 해야 하는 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세상을 끊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또 태어나야 할 거라고 생각한다 

 

 

 * (이병률) 여행을 가서 시를 생각하곤 해요. 튀니지 사막에서 기다릴 시간이 있었는데, 동굴에 가보았죠. 햇빛이 따가웠거든요. 그곳에서 딱히 할일이 없기에 먼저 다녀간 사람들의 흔적을 보고, 깡통을 집어오고 그랬죠. 시적이잖아요. 이런 막연한 느낌을 가지고 살다가 어느날 문득 써야 겠다라는 순간이 오면 쓰곤해요. 예민하신분은 눈치 채셨겠지만, 중간에 조가 좀 바뀌죠. 밤새 쓰고 회사 직원인 시인 이영주에게 읽어보라 건넸어요. 괜찮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마무리 할수 있었죠.  

* (김민정) 산문 보고 광화문서 일산까지 달려가 무턱대고 만났어요. 병률오빠가 방바닥에 앉고 제가 컴 앞 의자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했죠. 어디를 여행다녀왔다며, 어느 나라를 찝어도 다 다녀온거에요. 참 대단하더군요. 지구본을 돌리면서 막 찍어대는 기분이었어요. 참 식물성의 인간이에요. 함께 울기도 했고, 많이 아픈적도 있었어요. 좀 둔해서 그런척을 전혀 안해요. 무슨말을 건네도 다 알거 같고 그런 느낌이죠. '찬란' '봉지밥' 이런 거는 이제 제가 못 쓸듯해요.  

* (김근) 등단작을 보고 이사람은 도대체 누군가 했어요. 파리거주중이라는 약력도 그랬죠. [인기척]이라는 시가 좋아서 한동안 외고 다니고 했어요. 열렬히 사랑하다 헤어진 누군가의 기억이 피부의 어딘가에서 되살아난 아련한 쓸쓸함이 묻어났어요. 제가 가지지 못한것에 대한 부러움 같은 것이 있어요.  

* (김민정) 등단때 사진이 기억나요. 어머 시인이 잘생겼네 했었죠. 유독 한편이 아른거리지 않고, 시집 전체가 아른거려요. 어디를 펼쳐도 될듯한 말이죠. 눈물의 넓이를 줄인듯 해요. 전 아프리카에 벌거벗고 돌아다니는 아이 같은데, 무슨 북유럽 같잖아요. 고급스럽고, 차이가 있죠. 

 

[얼굴을 그려달라 해야겠다]   

세상 끝에 편의점이 있다니  

무엇을 팔까  

 

장화를 팔까 

얼음 가는 기계를 팔까 

이 여름 냄새를 팔까 

 

여즉 문을 닫지 않았다면 

그림을 그려달라고 해야겠으니 

생각나는 한 사람 얼굴을 그려달라고 해야겠으니 

도화지가 있느냐 물어야겠다 

 

사람은 가장 사랑했던 사람의 얼굴로  

다시 태어난다 하니 

 

주인게게 그림을 그려달라 해야겠다 

얼굴 그림을 그려달라 해야겠다 

 

그 그림이 나의 얼굴이거나 

혹은 한 사람의 옆얼굴이어도 

 

얼은 영혼이란 뜻이라니 

굴이라는 말이 길이라는 뜻이라니 

 

세상 모든 나머지를 파는 편의점에 가서 

 

조금만 틈을 맞추고 와야겠다 

세상 끝을 마주하다가 낯을 씻고 

아주 조금만 인사를 하고 와야겠다 

  

[내가 본 것]  

 눈에 뭔가 들어가 있다. 괜히 필요하지도 않은 눈물을 흘렸고 그것도 모자라 인공눈물까지 샀다. 병원은 커다란 안경을 통해 내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유리 조각이 박혀 있다고 했다. 

 기다란 바늘이 눈으로 들어왔다. 손가락으로 두려움을 움켜쥐는 사이, 눈은 수면처럼 출렁한다. 빛난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는 

 유리 조각이 바늘 끝에 끌려나오고 있었다.  

 눈 내리는 하얀 밤을 잊을 뻔하였고 그 거리의 무성한 힘들의 기억을 잃을 뻔하여서 나는 말했다. 그 유리 조각을 저에게 주세요.병원은 작은 병 속에 

 유리 조각을 담아주었다. 

 조각은 날카롭기보다 푸르렀다. 박히기는 좋으나 찌르기엔 부족한 조각은 턱으로 밝기를 받치고 있었다. 여태까지 본 모든 것을 기억하겠다는 것은 살아 온 것보다 본 것이 더 단단하리란 것을 믿기 때문일 것이나 

 유리 조각은 내가 본 모든 것을 가지고 갔다. 

 나는 불필요한 부위를 영원히 떼어내기라도 한 듯 모호하게나마 마음이 간절해졌다. 

 

 * (김민정) 예전에 같이 오빠랑 샤브샤브 먹다, 눈이 아프다고 병원에 갔던 기억이 떠올랐어요. 저도 사랑니를 뽑아 달라고 한 적이 있어요. 엄마는 지질한 자기애 때문에 안된다며 혀를 찼죠. 과산화수소에 넣어두니 너무 이뻤어요. 색깔이 빠지면 정말 그래요. 사귀는 남자에게 줘서 이젠 2개밖에 안남았죠.

 

[불편]    

어젯밤 구걸하던 이를 찾습니다. 

내가 완강히 지나쳤으며 왼쪽 곁을 지나친 자입니다 

 

어둔 밤 나에게 손을 내민 것인데 

큰 칼을 내 심장 깊숙이 집어넣을  것 같아 

피하려는 기색 감추느라 

그가 다 지나간 다음에야 미친 듯 심장이 뛰었던 이 

 

그를 피하고서야 그가 멀리서 왔다는 걸 알아차립니다 

 

어젯밤 내 왼쪽 곁으로 스쳐 지나간 이를 찾습니다 

 

심장을 가라앉히고 어둠 때문에 어슷해 보이는 길 한쪽에 

차에 치여 죽은 고양이 주변으로 몰려든 어린 고양이들 

시체를 혀로 핥으며 감정을 나구고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주지 못했습니다 

하여 여태 서늘한 내 왼쪽을 데워줄 

어제 늦은 밤길 구걸하던 이 

맵게 손목을 잡아 골목으로 끌고 가 

이 어쩔 줄 모르는 삶이 방도를 조용히 물을 

그 새처럼 마른 이 

못 보셨습니까 

 

 * (이병률) 시인은 슬프게 태어나는 것 같아요. 슬픔의 함량이나 농도가 높아요. 리듬을 그쪽으로 몰아가거나 시가 찾아왔을때 확 몰아서 쓰기도 해요. 누군가 와서 써준것 같이 말이죠. 저를 운전하는 누군가가 쓰는게 아닐까 생각하곤 해요. 그때를 기다리고 기다리다 한번에 휙 쓰여지기도 해요. 어려운 한줄이 오고 가끔 꺼내어 보다가 뼈를 갖추고 살을 입혀 보며 기다렸다 쓰면 풍성해질때도 있어요.   

* 시는 어렵지 않다고 하면 매 맞을거에요. 혼자 중얼거리는 예술의 형태죠. 좋아하기도 어렵고, 이해하기도 어렵고, 나누기도 어려워요. 또 시인이 이해한다고 해서 자기 것이라고 노래하는 것도 아니죠. 자기가 알고 싶은 시인이 누군지 잘 찾아보고, 집중해서 읽다보면 다른 시인의 글도 읽게되고 그러면 좀 시 읽는 것이 쉬워지지 않을까 해요.  

* 영화를 보면서 사진쪽으로 옮겨가고 했어요. 이런 수줍게 혼자 한 작업들이 시에 도움이 된듯 해요. 영화적인 한 장면같은 요소가 많아요. 머릿속에는 너무나 선명한 편집, 순서가 있어요. 영상적인 무엇, 느낌들을 물고 늘어지곤 해요.  

 

[대림동]  

 

구멍가게는 사라지고 없었다 

골목길을 들어서는데 좁은 골목 한가운데 억지스런 낮달이 서성이고 

집집마다 빨래 마르는 냄새가 하늘하늘 

담벼락에 위태로이 올려둔 양동이에 고구마 순이 자라고 있었다 

사오년 전 내가 살던 곳  

눈 속 낭만을 뜷고 달리는 전철을 올려다봤는데 

그때 옆에 있던 누구에게 낮게 무어라 속삭였던 것도 같아 그때를 볼려고 불을 켰는데 

햇빛은 찬란하고 나를 둘데가 없다 

시를 생각하느라 여기까지 왔다 

 

 * (이병률) 대림시장. 옥탑방에서 한동안 얹혀 살았어요. 옷방에서 시를 쓴적도 있어요. 그래서 공간에 대해 절실하고 예민해요. 2호선 전철타고 가다보면 높이 지나가는 주택들이 보여요. 죽기전에 꼭 한번 살아봐야지 했어요. 헌데 도둑이 들어 이사를 하게 되었는데 바로 그 대림동 옥탑방 집에서 4년정도 살게 되었네요. 시적인 시간들이었죠. 습작도 많이 했고, 분실을 하기도 했고, 여러가지 일이 있었어요.   
  

* (이병률) 제 시를 잘 안읽어요. 밤에 쓴 일기 다음날 보면 머쓱한 것 처럼 말이죠. 지금도 대림동 자주갑니다. 걷다가 또 살고 싶기도 하고 해요.  

 

[바람의 날개] 

 

산에 올라 두리번거렸다 

나무 그림자가 사라질 때까지 걷고 걸어 나무 하나를 찾았다 

나무를 찾고 산의 마음에 표시를 하였다 

반을 얻었다 

 

다시 나무 하나를 찾았다 

하지만 아직은 서쪽으로 더 자랄 일이 있는 나무여서  

나무에 돌을 매달고 다시 산의 마음에 표시를 하였다 

 

일 년쯤을 기다려 두 나무에서 큰 가지 하나씩을 베었다 

사개를 맞대고 질빵을 걸으니 

반은 절반을 마주 보며 어깨가 되었다 

어깨 위에 또 하나의 어깨를 메고 

그 위에 세상을 얹고 걸어나갔다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세계를 지났다 

 

한번 얻은 지게는 버릴 것이 못 되었다 

어깨를 자른대로 지게는 나를 따라왔다 

내 살을 지고 내 터를 지고 풍경마저 한몸처럼 옮겼다 

 

누구나 죄진 사람같이 지게로 태어나 

죄처럼 업혔던 시절이 있었다 

 

업힌 것이 날개인 줄 알고  

퍼드득퍼드득 살려고도 하였다 


* (김민정) 오빠를 모를때는 왜 이게 좋은 지 몰랐어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어두워 지면서 좋아지네요. 그건 뒤끝이 아름다움, 아련함 같은건데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밥을 참 잘하는데, 요리가 먹고 싶네요. 

* (김근) 이 시집 때문에 찬란해 지셨으면 좋겠어요. 따뜻한 감정 가지고 돌아 가셔서 오늘밤은 조금 쓸쓸해져도 좋을듯도 해요.  

 

  

시는 문자로 읽을 때와, 독자로 소리내어 읽을때, 또 낭독을 들을때 사뭇 느낌이 다르곤 하다. 그중 최고는 단연 낭독이다. 노래가 시이고, 시가 노래이지 않은가. 시 낭독의 밤은 멋들어진 콘서트이자, 오페라이자, 뮤지컬이다. 낭독은 시인이 노래하고, 독자들이 코러스를 하는 살아 숨쉬는 또 하나의 예술인 것이다.  

이병률의 목소리는 그의 시와 참 닮았있다. 차분하면서도 또렷하고, 느릿하면서도 템포가 있다. 물론 그 깊은 곳엔 시인의 따스함이 있다. 서글서글한 미소와 단아한 품세가 참으로 섬세하고 식물성인 그의 시를 자꾸 떠올리게 한다.  

2010년 이른 봄. 

홍대에서의 아련한 싯구들을 과산화수소에 담아 이쁘게 방 한켠에 놓아 두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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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무당광대 > [찬란]한 순간을 과산화수소에 담아...

 

 

 

 

 

 

 

 

                       불편하지 않은 것은 

                살고 있는 것이 아니리니  

                                        마음에 

 휘몰아치는 눈발을 만나지 않는다면 

                살고 있는 것이 아니리니 

                       ([찬란] 시인의 말) 

 

 

[끌림]의 에세이 작가로, [바람의 사생활]의 낭만적인 시인으로 나의 책장 가운데 늘 놓여있었던 '이병률'시인의 신작은 단 1초의 지체도 없이 내 책상으로 배달되어 왔다. 난, 첫 페이지를 펼치곤 '아...' 하는 탄식과 함께 책장을 덮어 버리고 말았다. 

시를 읽는 다는 것은 무척이나 불편한 행위임을, 하지만 그 휘몰아치는 눈발을 불편하게 헤쳐나가지 않으면, 살아 있는 것이 아님을, 찬란한 생을 위해선 그 불편을 감당해야만 함을 알기에 쉽게 페이지를 펼치기가 힘들었다.  

예술가의 임무는 우리의 삶을 끊임없이 불편하게 해주는 것임을, 독자는 그 고통을 즐기는 것임을 알기에, 아파할것을 알면서도 다음장을 넘길수 밖엔 없었다.  

 단연코, 지금껏 읽어본 시집 중에 손꼽을 정도로 술술 읽힌다. 누구는 시집은 아끼고 아끼어 문장하나 구둣점 하나 아껴서 찬찬히 먹어야 한다고 몇달, 혹은 몇년에 걸쳐 읽기도 하지만, 따끈따끈한 햇밥의 보슬보슬함을 사랑하는 나로서는 일필휘독해야만 하는지라 무섭게 읽어 나갔다.  

 히브리어처럼 알수 없고, 암호처럼 풀수 없던 그 수 많았던 시 읽기의 좌절 전에 이 책은 진작 나왔어야 했다.  

 깊고 어려운 것을 쉬운 말로 풀어내는 것은 대가만이 할수 있는 것인데, 이미 이병률은 어느 경지에 오른듯 했다.  

 정말 간만에 시읽기의 쾌감을 전해준 그의 낭독은 어떠할까, 설레는 맘으로 길을 나섰다. 

 그와 함께 한 그 불편함의 쾌의 순간을 즐기면서 몇자 적어본다.

 

* (이병률) 첫 시집은 발표하고 나서 막막했어요. 지금은 하는 일(출판사)이 있어 이상하게 아무런 느낌이 없어요. 미래에 대해 차분하게 생각하게 된달까 그래요.  

* (이병률) 세상을 보는 데는 타고난 천성이 있어 변화는 잘 안되는 것 같아요. 보시는 분의 생각에 달린거죠. 변화되었다면 그것은 저의 일부인 것이구요. 이번엔 눈치 안보고 시도한 시도 있었어요. 생활, 사람대하는 것 이런것은 이전보다 달라진것 같아요. 덜 불안하달까. 이전엔 힘들었던 문제를 넓게 생각해서 품을수 있어진것 같아요.  

 

[기억의 집] 

기억을 끌어다 놓았으니 산이 되겠지 

바위산이 되겠지 

여름과 가을 사이 

그 산을 파내어 동굴을 만들고 기둥을 받쳐 깊숙한 움을 만들어 

기억에게 중얼중얼 말을 걸다 보면 걸다 보면 

 

시월과 십일월 사이 

누구나 여기 들어와 살면 누구나 귀신인 것처럼 아늑하겠지 

철새들은 동굴 입구를 지키고  

집이 하나로는 영 좁고 모자란 나는 

해가 밝으면 동굴을 파고 파고 

그러면 기억은 자꾸자꾸 몰려와 따뜻해지겠지 

 

그 집은 실뭉치 같기도 하고 모자 같기도 하며 

어쩌면 심장 속 같기도 하여서 

겁먹은 채로 손을 푹 하고 찔러 넣으면 

보드랍고 따스한 온기가 잡혀와 아찔해진 마음은 

곧 남이 되겠다고 남이 되겠다고 돌처럼 굳기도 하겠지 

 

그 집은 오래된 약속 같아 

들여다보고 살고도 싶은 여전히 저 건너일 것이므로 

비와 태양 사이 

저녁과 초저녁 사이 

빛이 들어 마을이 되겠지 

 

그렇게 감옥에 갇혔으면 하고 생각한다 

감옥에 갇혀 사전을 끌어안고 살거나 

감옥에 갇혀 쓸데없는 이야기나 줄줄이 적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 기억하는 일 말고도 

무슨 죄를 더 지을 것인가를 생각한다 

성냥을 긋거나 

부정을 저지르거나 

거짓말이라도 해야 하는 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세상을 끊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또 태어나야 할 거라고 생각한다 

 

 

 * (이병률) 여행을 가서 시를 생각하곤 해요. 튀니지 사막에서 기다릴 시간이 있었는데, 동굴에 가보았죠. 햇빛이 따가웠거든요. 그곳에서 딱히 할일이 없기에 먼저 다녀간 사람들의 흔적을 보고, 깡통을 집어오고 그랬죠. 시적이잖아요. 이런 막연한 느낌을 가지고 살다가 어느날 문득 써야 겠다라는 순간이 오면 쓰곤해요. 예민하신분은 눈치 채셨겠지만, 중간에 조가 좀 바뀌죠. 밤새 쓰고 회사 직원인 시인 이영주에게 읽어보라 건넸어요. 괜찮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마무리 할수 있었죠.  

* (김민정) 산문 보고 광화문서 일산까지 달려가 무턱대고 만났어요. 병률오빠가 방바닥에 앉고 제가 컴 앞 의자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했죠. 어디를 여행다녀왔다며, 어느 나라를 찝어도 다 다녀온거에요. 참 대단하더군요. 지구본을 돌리면서 막 찍어대는 기분이었어요. 참 식물성의 인간이에요. 함께 울기도 했고, 많이 아픈적도 있었어요. 좀 둔해서 그런척을 전혀 안해요. 무슨말을 건네도 다 알거 같고 그런 느낌이죠. '찬란' '봉지밥' 이런 거는 이제 제가 못 쓸듯해요.  

* (김근) 등단작을 보고 이사람은 도대체 누군가 했어요. 파리거주중이라는 약력도 그랬죠. [인기척]이라는 시가 좋아서 한동안 외고 다니고 했어요. 열렬히 사랑하다 헤어진 누군가의 기억이 피부의 어딘가에서 되살아난 아련한 쓸쓸함이 묻어났어요. 제가 가지지 못한것에 대한 부러움 같은 것이 있어요.  

* (김민정) 등단때 사진이 기억나요. 어머 시인이 잘생겼네 했었죠. 유독 한편이 아른거리지 않고, 시집 전체가 아른거려요. 어디를 펼쳐도 될듯한 말이죠. 눈물의 넓이를 줄인듯 해요. 전 아프리카에 벌거벗고 돌아다니는 아이 같은데, 무슨 북유럽 같잖아요. 고급스럽고, 차이가 있죠. 

 

[얼굴을 그려달라 해야겠다]  

세상 끝에 편의점이 있다니  

무엇을 팔까  

 

장화를 팔까 

얼음 가는 기계를 팔까 

이 여름 냄새를 팔까 

 

여즉 문을 닫지 않았다면 

그림을 그려달라고 해야겠으니 

생각나는 한 사람 얼굴을 그려달라고 해야겠으니 

도화지가 있느냐 물어야겠다 

 

사람은 가장 사랑했던 사람의 얼굴로  

다시 태어난다 하니 

 

주인게게 그림을 그려달라 해야겠다 

얼굴 그림을 그려달라 해야겠다 

 

그 그림이 나의 얼굴이거나 

혹은 한 사람의 옆얼굴이어도 

 

얼은 영혼이란 뜻이라니 

굴이라는 말이 길이라는 뜻이라니 

 

세상 모든 나머지를 파는 편의점에 가서 

 

조금만 틈을 맞추고 와야겠다 

세상 끝을 마주하다가 낯을 씻고 

아주 조금만 인사를 하고 와야겠다 

  

[내가 본 것] 

 눈에 뭔가 들어가 있다. 괜히 필요하지도 않은 눈물을 흘렸고 그것도 모자라 인공눈물까지 샀다. 병원은 커다란 안경을 통해 내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유리 조각이 박혀 있다고 했다. 

 기다란 바늘이 눈으로 들어왔다. 손가락으로 두려움을 움켜쥐는 사이, 눈은 수면처럼 출렁한다. 빛난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는 

 유리 조각이 바늘 끝에 끌려나오고 있었다.  

 눈 내리는 하얀 밤을 잊을 뻔하였고 그 거리의 무성한 힘들의 기억을 잃을 뻔하여서 나는 말했다. 그 유리 조각을 저에게 주세요.병원은 작은 병 속에 

 유리 조각을 담아주었다. 

 조각은 날카롭기보다 푸르렀다. 박히기는 좋으나 찌르기엔 부족한 조각은 턱으로 밝기를 받치고 있었다. 여태까지 본 모든 것을 기억하겠다는 것은 살아 온 것보다 본 것이 더 단단하리란 것을 믿기 때문일 것이나 

 유리 조각은 내가 본 모든 것을 가지고 갔다. 

 나는 불필요한 부위를 영원히 떼어내기라도 한 듯 모호하게나마 마음이 간절해졌다. 

 

 * (김민정) 예전에 같이 오빠랑 샤브샤브 먹다, 눈이 아프다고 병원에 갔던 기억이 떠올랐어요. 저도 사랑니를 뽑아 달라고 한 적이 있어요. 엄마는 지질한 자기애 때문에 안된다며 혀를 찼죠. 과산화수소에 넣어두니 너무 이뻤어요. 색깔이 빠지면 정말 그래요. 사귀는 남자에게 줘서 이젠 2개밖에 안남았죠.

 

[불편]   

어젯밤 구걸하던 이를 찾습니다. 

내가 완강히 지나쳤으며 왼쪽 곁을 지나친 자입니다 

 

어둔 밤 나에게 손을 내민 것인데 

큰 칼을 내 심장 깊숙이 집어넣을  것 같아 

피하려는 기색 감추느라 

그가 다 지나간 다음에야 미친 듯 심장이 뛰었던 이 

 

그를 피하고서야 그가 멀리서 왔다는 걸 알아차립니다 

 

어젯밤 내 왼쪽 곁으로 스쳐 지나간 이를 찾습니다 

 

심장을 가라앉히고 어둠 때문에 어슷해 보이는 길 한쪽에 

차에 치여 죽은 고양이 주변으로 몰려든 어린 고양이들 

시체를 혀로 핥으며 감정을 나구고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주지 못했습니다 

하여 여태 서늘한 내 왼쪽을 데워줄 

어제 늦은 밤길 구걸하던 이 

맵게 손목을 잡아 골목으로 끌고 가 

이 어쩔 줄 모르는 삶이 방도를 조용히 물을 

그 새처럼 마른 이 

못 보셨습니까 

 

 * (이병률) 시인은 슬프게 태어나는 것 같아요. 슬픔의 함량이나 농도가 높아요. 리듬을 그쪽으로 몰아가거나 시가 찾아왔을때 확 몰아서 쓰기도 해요. 누군가 와서 써준것 같이 말이죠. 저를 운전하는 누군가가 쓰는게 아닐까 생각하곤 해요. 그때를 기다리고 기다리다 한번에 휙 쓰여지기도 해요. 어려운 한줄이 오고 가끔 꺼내어 보다가 뼈를 갖추고 살을 입혀 보며 기다렸다 쓰면 풍성해질때도 있어요.   

* 시는 어렵지 않다고 하면 매 맞을거에요. 혼자 중얼거리는 예술의 형태죠. 좋아하기도 어렵고, 이해하기도 어렵고, 나누기도 어려워요. 또 시인이 이해한다고 해서 자기 것이라고 노래하는 것도 아니죠. 자기가 알고 싶은 시인이 누군지 잘 찾아보고, 집중해서 읽다보면 다른 시인의 글도 읽게되고 그러면 좀 시 읽는 것이 쉬워지지 않을까 해요.  

* 영화를 보면서 사진쪽으로 옮겨가고 했어요. 이런 수줍게 혼자 한 작업들이 시에 도움이 된듯 해요. 영화적인 한 장면같은 요소가 많아요. 머릿속에는 너무나 선명한 편집, 순서가 있어요. 영상적인 무엇, 느낌들을 물고 늘어지곤 해요.  

 

[대림동]  

 

구멍가게는 사라지고 없었다 

골목길을 들어서는데 좁은 골목 한가운데 억지스런 낮달이 서성이고 

집집마다 빨래 마르는 냄새가 하늘하늘 

담벼락에 위태로이 올려둔 양동이에 고구마 순이 자라고 있었다 

사오년 전 내가 살던 곳  

눈 속 낭만을 뜷고 달리는 전철을 올려다봤는데 

그때 옆에 있던 누구에게 낮게 무어라 속삭였던 것도 같아 그때를 볼려고 불을 켰는데 

햇빛은 찬란하고 나를 둘데가 없다 

시를 생각하느라 여기까지 왔다 

 

 * (이병률) 대림시장. 옥탑방에서 한동안 얹혀 살았어요. 옷방에서 시를 쓴적도 있어요. 그래서 공간에 대해 절실하고 예민해요. 2호선 전철타고 가다보면 높이 지나가는 주택들이 보여요. 죽기전에 꼭 한번 살아봐야지 했어요. 헌데 도둑이 들어 이사를 하게 되었는데 바로 그 대림동 옥탑방 집에서 4년정도 살게 되었네요. 시적인 시간들이었죠. 습작도 많이 했고, 분실을 하기도 했고, 여러가지 일이 있었어요.   
  

* (이병률) 제 시를 잘 안읽어요. 밤에 쓴 일기 다음날 보면 머쓱한 것 처럼 말이죠. 지금도 대림동 자주갑니다. 걷다가 또 살고 싶기도 하고 해요.  

 

[바람의 날개] 

 

산에 올라 두리번거렸다 

나무 그림자가 사라질 때까지 걷고 걸어 나무 하나를 찾았다 

나무를 찾고 산의 마음에 표시를 하였다 

반을 얻었다 

 

다시 나무 하나를 찾았다 

하지만 아직은 서쪽으로 더 자랄 일이 있는 나무여서  

나무에 돌을 매달고 다시 산의 마음에 표시를 하였다 

 

일 년쯤을 기다려 두 나무에서 큰 가지 하나씩을 베었다 

사개를 맞대고 질빵을 걸으니 

반은 절반을 마주 보며 어깨가 되었다 

어깨 위에 또 하나의 어깨를 메고 

그 위에 세상을 얹고 걸어나갔다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세계를 지났다 

 

한번 얻은 지게는 버릴 것이 못 되었다 

어깨를 자른대로 지게는 나를 따라왔다 

내 살을 지고 내 터를 지고 풍경마저 한몸처럼 옮겼다 

 

누구나 죄진 사람같이 지게로 태어나 

죄처럼 업혔던 시절이 있었다 

 

업힌 것이 날개인 줄 알고  

퍼드득퍼드득 살려고도 하였다 


* (김민정) 오빠를 모를때는 왜 이게 좋은 지 몰랐어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어두워 지면서 좋아지네요. 그건 뒤끝이 아름다움, 아련함 같은건데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밥을 참 잘하는데, 요리가 먹고 싶네요. 

* (김근) 이 시집 때문에 찬란해 지셨으면 좋겠어요. 따뜻한 감정 가지고 돌아 가셔서 오늘밤은 조금 쓸쓸해져도 좋을듯도 해요.  

 

  

시는 문자로 읽을 때와, 독자로 소리내어 읽을때, 또 낭독을 들을때 사뭇 느낌이 다르곤 하다. 그중 최고는 단연 낭독이다. 노래가 시이고, 시가 노래이지 않은가. 시 낭독의 밤은 멋들어진 콘서트이자, 오페라이자, 뮤지컬이다. 낭독은 시인이 노래하고, 독자들이 코러스를 하는 살아 숨쉬는 또 하나의 예술인 것이다.  

이병률의 목소리는 그의 시와 참 닮았있다. 차분하면서도 또렷하고, 느릿하면서도 템포가 있다. 물론 그 깊은 곳엔 시인의 따스함이 있다. 서글서글한 미소와 단아한 품세가 참으로 섬세하고 식물성인 그의 시를 자꾸 떠올리게 한다.  

2010년 이른 봄. 

홍대에서의 아련한 싯구들을 과산화수소에 담아 이쁘게 방 한켠에 놓아 두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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