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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없는 수영장 사계절 1318 문고 147
김선정 지음 / 사계절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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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현읍의 고등학교, 그리고 고등학교의 수영장을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은 기현의 웹소설 창작을 위해 영리, 진호가 함께하며 세 명의 학생이 ‘물 없는’ 수영장을 조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왜 수영장에 있어야 할 것이 없을까. 그리고 그곳에서 들려 오는 기이한 울음소리는 무엇일까.

작가는 웹소설 형식을 조금씩 빌려 사건의 전개 양상을 독자들에게 알려 준다. 소설을 읽어 나가다 보면 물 없는 수영장을 둘러싸고 있는 비밀이 점차 명확해진다. 구제역과 그로 인한 수많은 생명의 떼죽음. 누군가에게는 TV 속의 뉴스나 신문 기사로만 접했던, 나와는 그저 먼 이야기일 수 있었겠지만 소설 속 인물들은 이로 인한 비극을 함께하고 있는 존재들이었다. 영리는 아빠와 이별하고, 체육 선생님은 오빠를 잃었다. 시신도 찾지 못한 채로. 심지어 삼총사와는 전혀 접점이 없어 보이는 상구마저도 살처분 과정에서 복실이의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수많은 죽음이 조용히 파묻혀져 있는 목현리. 표지의 그림은 이제 다르게 느껴진다. 귀엽게만 보였던 키링 속 돼지는 어딘가에 파묻힌 복실이처럼 보이고, 수영장을 둘러싸고 있는 배경은 어둡다. 하지만 올려다보는 하늘이 완전히 어두운 것만은 아니다. 약간의 별이 조금씩 빛난다.

뉴스를 켜면 어른들이 하는 말 // “저는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 ”기계가 작동하고 있었는지 몰랐습니다.“ // ”사람이 거기 있는지 몰랐습니다.“ // ”이런 참사가 일어날 줄 정말 몰랐습니다.“ // 변명만 하는 티브이를 끈다 // 사과하는 어른 한 명 없다 (정다연, <사과> 전문)

소설을 읽으며 위 시를 떠올렸다. 사과하는 어른 한 명 없다는 지적을 받아들이고, 늦게나마 우리 사회의 비극을 돌아보고 바로잡고자 하는 문제의식이 소설에 깊이 녹아 들어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한 움직임이 빛난다고 생각하면 조금은 위로와 위안이 되어 주지 않을까. 언제까지나 어두울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목현리의 수영장에 맑은 물을 채울 주역인 미래 세대의 활약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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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콜리를 좋아해? 사계절 1318 문고 146
김지현 지음 / 사계절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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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올해 한 달에 한 번 ’채식의 날‘ 식단을 운영한다. 기대되는 마음도 잠시, 식단표를 붙여 주니 아이들은 금방 채식이라는 글자를 캐치하고서는 온갖 말을 쏟아낸다. “쌤 이런 거 대체 왜 하는 거예요?” “아 맛없겠다” “이날 밥 안 먹어!” “학교가 돈이 없나?” 그러면 대체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 줘야 할지 막막해진다. 그리고 좀 야속해지기도 한다. 딱 하루인데, 그걸 못 참나?


<브로콜리를 좋아해?>는 좋아하는 대상이 채식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채식을 시작하게 된 유진의 이야기이다. 또래 남학생이랑은 사뭇 다른 희원이 고기를 먹지 않고, 그 때문에 급식 역시 먹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주인공은 선뜻 채식을 시작한다. 유진이 채식을 결심하자, 친구 수현도 유진을 따라 채식에 동참한다. 이 과정은 아주 자연스럽게 전개된다. 채식이 왜 좋은지,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채식을 해야 한다는 당위보다는, 서로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우선시되며 셋만의 채식이 시작된다.


그 외에는 평범한 성장소설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인물들은 자신의 선택을 소신껏 지켜나가지만, 자신의 선택에 어떤 당위나 명분을 부여하지 않는다. '그저 내 옆의 누군가가 고기를 먹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면 식사를 함께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채식을 이어나간다. 이 소설은 채식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데 힘을 싣지 않는다. 인물이 한 선택에 대해 그 인물이 각자의 방식과 가치관으로 이를 어떻게 이어나가는지를 따라갈 뿐이다.


어쩌면 소설은 채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주인공이 갖는 사려깊음과 단단함에 대해 말하고 싶어 하는지도 모른다. 주인공의 사려깊은 시선을 따라가면, 그곳에는 학교를 벗어나 자신만의 길을 걷는 은오가 있고, 고양이로 인해 채식을 결심한 희원과, 동물을 사랑하고 열정이 넘치는 수현을 두루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이 인물들이 각자의 삶을 선택하고 이를 지켜나가는 단단한 모습 역시 만날 수 있다.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선택해 나가는 인물들 속에서 독자는 그동안 당연히 여겼던 것들에 의문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고기를 안 먹는 삶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소설 속 아이들처럼 말이다.


이제 독자가 작가의 질문에 답할 차례다. 넌 브로콜리를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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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속의 너에게 - 제10회 한낙원과학소설상 작품집 사계절 1318 문고 145
김문경 외 지음 / 사계절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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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소설이라 하면 조금은 낯설게 느껴지고, 뜬구름 잡는 이야기인 것만 같아 소설을 고를 때 쉽게 선택하진 않는다. 하지만 막상 그런 생각을 하며 책을 읽어 보면 과학 이면의 것들을 좀더 생각하게 된다. 발전하는 과학기술을 거스를 수 없다면, 그때 인간의 위치와 역할은 어때야 하나. 작품집 속 소설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공통적인 내용은 모두 인간에 대한 애정을 기반으로 한다.

대상 수상작인 「시간 속의 너에게」는 시공간을 초월한 마음에 대한 이야기이다. 제2의 지구를 찾아 떠나야만 하는 사람들, 폐 섬유화와 사이보그화 등등 많은 변화를 겪는 가상의 미래 사회에서 주인공은 은하와의 기억을 추억하며 영상을 통해서나마 간접적으로 은하의 모습을 확인한다. 꼭 만나지 않아도, 시공간이 달라져도 서로를 기억하는 그대로의 마음이 얼마나 힘이 있는지를 담아낸 소설이다. 이러한 메시지는 작가의 신작인 「영원이 손을 내밀 때」에서도 드러난다. 영혼과의 소통을 통해 은조의 소중함을 인식한 소년은 아이를 만들지 않겠다는 스스로와의 약속을 깨고 자신의 유전자를 복제하여 은조의 영혼을 이식한다. 그러한 일련의 과정은 은조가 그토록 원했던 '초콜릿을 먹어 보고 싶다'는 소망을 이루어 주기 위함이었다. 두 편의 소설은 모두, 눈에 보이거나 만져지지 않아도 마음이 있다면 서로가 연결되어 있으며, 그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를 지니는 것이라고 말해 주는 듯하다.

그 외의 우수상들도 흥미롭게 읽었다. 「영의 자리」는 안드로이드의 마음에 대한 고찰을 하게 해 주었고, 「소년들, 소년들이」는 우주 너머의 존재들이 사투하는 현장을 상상하여 그려낸 점이 흥미로웠다. 「호르헤 행성의 음모」는 책을 읽지 않는 이유가 호르헤인의 음모 때문이라는 흥미로운 상상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 청소년들의 흥미를 끌기 좋을 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테고사우루스병」을 그중에서도 감명깊게 읽었다. 등에 뿔이 자라는 주인공은 그것을 숨기기 위해 내내 뿔을 갈지만, 외계인이 지구에 등장하며 자신의 존재를 숨기기 어려워지게 된다. 하지만 친구들의 "하지만 어쩌겠어? 이상한 친구가 생긴 거지 그냥."이라는 말은 자신이 그동안 숨기고 싶었던 약점을 더 이상 약점이 아닌 것으로 만들어 주는 힘을 부여한다. 청소년들의 자기정체성 형성에 큰 울림을 주는 작품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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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리지 않는 어머니에게 물어보러 가다
이가라시 다이 지음, 노수경 옮김 / 사계절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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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CODA(Children of Deaf Adult)인 이가라시 다이의 시점에서, 어머니의 생애를 추적하는 방식으로 쓰였다. 성장기에는 농인인 어머니를 부끄러워하고, 어머니로부터 '들리지 않는 엄마라서 미안'하다는 말을 듣고 자랐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 할머니에게 들은 어머니의 일탈 이야기를 들은 이후 어머니의 생애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저자는 어머니와의 소통을 위해 수어를 배운다. 수어를 통해 들은 내용은 저자의 어머니 개인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수많은 농인을 대표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통합학급 수업을 하며 농인을 만나게 되었기에 더 반가운 책이었다.


언어의 중요성을 수도 없이 가르치면서도, 정작 농인과의 소통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는 못했다. 통합학급 수업을 들어가면, 농인 아이가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느껴진다. 해줄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좀더 입을 크게 벌리고 발음을 또박또박 해줄 뿐이다. 이 아이는 무엇으로 소통할까? 다이의 어머니를 맡았던 선생님은 회상한다. "수어를 사용해 소통하는 어린이들을 보면서 느낀 건데요. 정말 놀라울 정도로 많은 정보를 서로 주고받더란 말이지요. 점심시간이 되면 아이들은 모두 즐겁게 수어로 수다를 떨거든요.(113)" 농인에게도 농인의 언어가 있다. 저자가 수어를 배워 어머니와 소통한 것은 어쩌면 진정한 소통의 첫 시작이 아니었을까.


저자의 어머니를 통해 어머니의 한 생애에 담긴 차별의 시선과 극복의 몸짓, 진정한 연대의 중요성을 두루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아들도 농인이지만 결혼을 반대한 시부모와, 그로부터 도망간 연인. 그 사이에서 태어난 저자. 결혼과 출산에 대해 어머니의 주변인들은 결혼을 하려면 귀가 들리는 사람과 하라든지, 아이를 낳으면 자신이 키워 준다든지, 하는 말들을 보탠다. 하지만 그런 말들은 어머니에게 위로가 되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의 언어로 소통할 뿐, 그 이상의 문제는 없는 것이다. 그저 그들의 언어가 수어일 뿐이다.


저자는 우생보호법을 떠올리기도 한다. 본문에서 소개된 '불행한 아이 낳지 않기 운동'이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장애가 있는 아이는 무조건 '불행한'이라는 수식어를 달아야 할까? 어머니의 삶을 짚어보고 나니, 그러한 수식어를 붙여주는 것은 상당히 무례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저 차이가 있을 뿐이다.


저자가 말한 '차이는 넘어설 수 있다는 것. 전제 조건부터 완전히 다르다 해도 상대방과 마주 보고 계속해서 이야기를 나눈다면 엉키고 끊어질 듯 보이는 실도 이어질 수 있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싶어 한다면 아무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184-5)'는 말이 이 책의 주제를 관통하는 셈이다. 어머니와 저자는 그저 조금 다를 뿐이다. 그 어느 누구도 틀리지 않았고, 그 어느 누구도 불행하지 않다. 그 어느 누구도 열등하거나 더 뛰어나지 않다. 차별과 차이를 구분하는 사회가 도래하기를 바라며, 다음 학기에는 통합학급의 아이들과 이 책을 함께 읽어 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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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란다 복제하기 사계절 1318 문고 143
캐럴 마타스 지음, 김다봄 옮김 / 사계절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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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미란다라는 완벽한, 아니 완벽했던 소녀를 주인공으로 전개된다. 미란다는 공부도, 발레도 어디 하나 빠지는 것이 없는 다재다능한 소녀이다. 부모님의 안정된 자산과 명석한 두뇌, 뛰어난 신체능력과 건강까지. 어느 하나 부족함이 없는 미란다에게 갑자기 종양이라는 시련이 찾아온다. 하지만 부모님은 미란다가 앓는 병에 대해 지나치게 의아해하다가, 지나치게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인다. 확신에 찬 태도는 왠지 의심스럽다. 이 의심은 미란다가 병원에서 자신의 복제인간인 아리엘을 만나며 해결된다. 아리엘은 자신이 아플 때를 대비해 복제된, 또다른 미란다이다.


어쩌면 그냥 모른 척했을 수도 있지만, 미란다는 아리엘을 만난 이상 또다른 자신인 아리엘을 구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된다. 미란다가 자신의 인생을 선택하고 개척해 나가는 순간이다. 복제인간이라는 SF적 환상에 기반한 전개가 이루어지지만, 미란다가 자신이 누구인지 생각하게 되는 과정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항상 어떤 틀에 맞춰진 채로 완벽하게만 존재했던 것이 과거의 미란다라면, 지금의 미란다는 부모님의 말에 거역하기도 하고, 아리엘을 배려하는 선택을 하기도 하고, 또 아리엘 이후의 이브를 만나며 자신만의 삶을 만들어 간다.


네겐 영혼이 있어. 그건 너만의 것이야. 적어도 난 그렇게 믿는단다. 설령 네가 영혼을 믿지 않느다 해도, 너와 이브, 미란다는 분명히 달라. 과학이 설명해 내지 못하는 면에서 말이야(323). 이 말은 소설의 주제를 관통한다. 누군가에 의해 복제되었다고 해서 그 누군가를 위해 살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미란다, 아리엘, 이브는 모두 주어진 상황 속에서 각자의 선택을 하고 주어진 삶을 맞이한다. 이제 그 삶은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자신의 삶을 스스로 영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완전한 고유의 삶이 된다.


교실 속에 같은 교복을 입고 같은 교과서를 펴고 줄지어 앉아 있는 아이들을 보면 각자의 생각이 어떤지 궁금해진다. 너희의 삶을 살라고 말하면서도 획일적인 것을 가르치는 현실, 주어진 목표와 운명에 순응하는 아이들. 아이들에게 이 책은 어쩌면 이상적인 뜬구름 잡기일 수도 있으나, 삶의 부조리를 생각해 보게 하고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꼭 필요한 소설일 수 있다. 완벽하지 않을지라도 괜찮다. 고유하니까. 그런 말을 아이들 하나하나에게 눈을 맞추며 전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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