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는 두 개 이상의 인격체가 있어야만 서로 주고받을 수 있다.주고받음의 밑바탕에는 언제나 '경청'이 전제돼 있어야 한다.국어사전에서는 '대화'를 '서로 마주하여 이야기를 주고받음'이라고 정의하고 있는데,이 정의에는 '경청'이 빠져 있다.대화는 '경청에 기반하여 주고받는 행위'로 정의돼야 한다. ... 중략 ...이 과정의 반복을 '커뮤니케이션'이라 하고,일반적으로 음성적인 언어를 포함한 커뮤니케이션을 '대화'라 칭한다.'경청'은 '해독'의 과정에 있고,'말하기'는 '암호화'의 과정상에 위치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저마다 가지고 있는 '지식 프레임'이다.상대의 말을 상대가 가진 지식 프레임 내에서 먼저 판단하는 과정이 중요하다.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다.

대다수는 자기 프레임 내에서 상대의 말을 해독하려 한다.물론 쉽지 않은 과정이지만,상대가 어떠한 지식 프레임 내에서 말하는지 명확히 파악해야 한다. 대화는 상대를 읽는 공부인 것이다.상대가 가진 지식을 공부하고, 내 지식과 견주어본다.그리고 부족한 것과 나은 것을 구별해본다. 대화가 없으면 공부를 발전시키기 어렵다.

 

*** 한방송 강좌 프로그램에서 저자의 강연을 시청한 적이 있다. 그래서 뒤늦게 저자의 글들을 찾아 읽어보게 되었다.저자가 강연에서 말을 천천히 또박또박 하면서 남다른, 말의 템포를 보여주는 듯해서 듣기가 좋았었다.이 책을 읽다보니 그의 말의 템포가 느껴진다.

'경청'은 아주 당연한 일이고 쉬운 일이라 여겼는데, 실상 살아가면서 가장 힘들고 서툴고 귀찮은 일 중 하나가 그것임을 새삼 깨닫는다. 듣기 능력이 말하기 능력보다 더 중요한 시기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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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

 

호미 한자루를 사면서 농업에 대한 지식을 장악했다고 착

각한 적이 있었다.

 

안쪽으로 휘어져 바깥쪽으로 뻗지는 못하고 안쪽으로만

날을 세우고

 

서너평을 나는 농사라고 했는데 

호미는 땅에 콕콕점을 찍으며 살았다고 말했다

 

불이 호미를 구부렸다는 걸 나는 당최 알지 못했다

나는 호미 자루를 잡고 세상을 깊이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너른 대지의 허벅지를 물어뜯거나 물길의 방향을 틀어 돌

려세우는 일에 종사하지 못했다

그것은 호미도 나도 가끔 외로웠다는 뜻도 된다

다만 한철 상추밭이 푸르렀다는 것,부추꽃이 오종종했다

는 것은 오래 기억해둘 일이다

 

호미는 불에 달구어질 때부터 자신을 녹이거나 오그려 겸

손하게 내면을 다스렸을 것이다

날 끝으로 더이상 뻗어나가지 않으려고 간신히 참으면서

 

서리 내린 파밭에서 대파가 고개를 꺾는 입동 무렵

 

이 구부정한 도구로 못된 풀들의 정강이를 후려치고 아이

들을 키운 여자들이 있다

헛간 시렁에 얹힌 호미처럼 허리 구부리고 밥을 먹는

 

 

***도시에 오래 살다보니 작은 텃밭을 일궈보는 꿈을 갖게 된다.

어딘가에서 도시 농부를 양성한다는 학습장이 있어서 기웃거리다 대장장이가 두드려서 만들었다는 멋진 호미 한자루를 졸업기념품으로 받았다. 마치 만석지기의 기개를 얻은 것처럼 호기로워졌다. 자, 이제 이 호미로 일구어낼 땅만 한조각 있으면 되겠구나...그러다 이 시를 읽게되었다.

나의 호미는 어떤 말을 하게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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홉스 전문가인 엘로이시어스 마티니치가 쓴 홉스 전기다.에스파냐의 무적함대가 위세를 떨치던 1588년에 영국에서 태어나 기운이 다 쇠하여 1679년 12월 영국에서 죽은 홉스의 일대기를 시대순으로 그려냈다.홉스는 온전하게 17세기를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서양사에서 17세기에 대해 상식수준으로 알고 있고, 홉스의 대표 저작인 『리아비어던 』에 대해서도 상식적인 수준에서 알고 있는데, 이 책을 읽는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게 쓰였다. 본문 내용만 580여 페이지를 넘기는 분량이라는 것만 부담이 안 된다면 누구라도 잘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근대'와 불가분의 관계를 지닌 한 사상가의 일생을 이 책의 마지막 문단만으로 정리할 수도 있겠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홉스의 일생이 외롭지도 않고,가난하지도 않고,험난하지도 않고,짧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고난은 있었다. 홉스의 일생 중 상당 기간은 생존을 위한 투쟁이었다. 홉스의 가문은 중하류층이었고, 아버지는 홉스가 청년기에 접어들었을 때 가정을 버렸다.공포가 끊임없이 홉스를 따라다녔다.영국 내전이 발발하자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10년간 망명길을 떠났다.망명지 프랑스에서도 프랑스인들과 망명한 영국 성직자들을 두려워했고,분개한 왕당파의 살해 위협을 피해 영국으로 돌아왔다.영국으로 돌아와서는 무신론 혐의를 받아 언제 처형될 지 알 수 없었다.크롬웰 공화국 시기에도 글ㅆ고 왕정 복고 시기에도 그랬다.홉스는 또한 수학자로서 명성을 상실할까 두려워했고, 이 때문에 왕립학회의 실세들과 격렬한 싸움을 벌였다.승산 없는 싸움이었지만,요컨대 홉스는 긴긴 세월을 전쟁의 공포 속에서 보냈다.그 나머지 기간은 평화로웠다.p.583

 

홉스는 17세기 영국에서 91세까지 살았다.그리고 『리아이어던 』을 남겼다. .그가 살았던 시대에 프랑스에는 그보다 8살 어린 데카르트가 있었다. 이 방대한 양의 책을 이렇게도 정리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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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우 2020-09-14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홉스의 전기 너무 읽어보고 싶네요~

독서중 2020-09-15 15:52   좋아요 0 | URL
네.한 사람의 일생을 읽는다는 것은 대단한 일인 것 같습니다.꼭 읽어보시길~
 

 

 

 

 

 

 

 

 

 

 

 

 

 

" 나리, 왜 나라에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물소를 우리덜헌티 나눠 줬을까유?"

이렇게 묻는 꺽쇠의 표정이 사뭇 진지했어.

선비는 생각에 잠겼지.어떻게 설명을 해야 꺽쇠의 아픈 마음에 위로가 될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어디까지 설명을 해야 꺽쇠의 궁금증이 조금이나마 풀릴까? 뭐, 이런저런 생각들이 스쳐 갔을 테지.

"아까 네가 물소의 뿔이 활처럼 보였다고 얘기했던 거 기억하느냐?사실 물소 뿔은 활을 만드는 데 쓰이는 아주 귀한 재료란다. 물소가 우리나라게 처음 들어온 건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 세조 임금 때였느니라.유구국에서 물소 한 쌍을 선물로 보내와서 키우기 시작했지.그 물소들이 새끼를 치자 여러 고을 관아에 나누어 기르게 했는데,성종 임금 때는 그 수가 일흔 마리쯤으로 불어났다는구나.하지만 물소 길들이기가 생각만큼 쉽지 않았으니라."

"그렇지유.지는 그 마음 백번 이해허는구먼유."

"또 물소 여물을 대느라 백성들도 힘들었지.그래서 마지막으로 택한 방법이 ......농사에 쓰게끔 백성들에게 물소를 나눠 주는 거였으니라.그런데 네 얘길 듣고 보니 그 방법 역시 도움이 되지는 않는 것 같구나.앞으로 어찌하면 좋을 지 참으로 걱정이로구나."

선비는 근심이 그득한 얼굴로 물소를 바라보았지.하지만 꺽쇠의 눈빛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어.

"어떡하긴유.저늠의 짐승, 이제 꼴도 보기 싫구먼유.당장 관아로 끌구 가야쥬." 『요상한 동물들』,p.59~60.

 

 

 

"물소[水牛]는 힘이 세고 밭 가는 데 사용할 수 있다고 하니, 내가 중국 황제에게 주청(奏請)하여 바꿔 오고자 한다. 다만 우리 나라는 중국의 남쪽 지방과는 기후(氣候)가 같지 않아서 물소가 우리 나라에서 번성(蕃盛)하지 않을까 봐 두렵다."

하니, 이 아뢰기를,

"신은 들으니, 물소가 밭을 가는 것이 보통 소의 두 배나 된다고 합니다. 전라도의 기후는 중국의 남방과 비슷하니 사양(飼養)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고, 도 또한 그것이 유리하다고 말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고려에서 타려(駝驪)를 교역(交易)하고 싶다고 중국 조정에 주청하였더니, 황제가 그 값을 돌려보내고 타려 30필을 하사하고, 이어 유시하기를, ‘내 타려를 중외에 나누어 주고자 하나, 다만 사양한 수가 적어서 뜻대로 하지 못한다. ’고 하였었다. 지금 물소를 청하여도 도리에 잘못 될 것이 없으니 중국 예부에 자문을 보내어 바꾸기를 청하는 것이 좋겠다. 예부에서 허락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사연을 갖추어 황제에게 주달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니, 모두가 아뢰기를,

"좋습니다."

하였다.

上又曰: "水牛力壯, 可使耕田, 予欲奏請易換。 但本國, 與中朝南方風, 氣不同, 恐或不盛。" 曰: "臣聞水牛耕田, 倍於常牛。 全羅道風氣, 與南方相似, 可以畜養。" 亦言其利, 上曰: "高麗奏請, 欲換駝驢, 帝還其價, 賜駝驢三十匹, 仍諭曰: ‘予欲頒賜中外, 但畜養之數少而未果。’ 今請水牛, 無害於義, 可咨禮部請換, 禮部不許, 具辭奏達如何?" 僉曰: "可。"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55권, 세종 14년 2월 13일 임인 1번째기사

 

 

 

물소, 크고 무겁고 힘세게

"조선은 여러 방법으로 농업생산력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했다.과수는 접을 붙여 큰과일을 생산할 수 있도록 했고, 가축은 여러 방법으로 육종하여 사람에게 유익한 특성을 갖게 개량했다. 이러한 개량 혹은 육종에서 가장 돋보이는 성과는 오키나와에서 도입한 물소와 전통 한우를 교배하여 육종해낸 조선 한우다.

 우리 민족은 우수한 가축 사육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 ... ... ... 이러한 품종 개량에서 가장 극적인 성공을 거둔 시기는 단연 15~19세기였다."『조선의 생태환경사』,p.58~59

 

 

*****요즘은 『조선왕조실록 』을 누구나 쉽게 찾아 읽을 수 있다. 한글로 번역되어 있고 원문도 병기하여 실어놓은 사이트를 찾기 어렵지 않다. 1차 사료로써 이 기록이 갖는 중요성은 어마어마한 것 같다. 여기에 올린 두 책은 거기서 파생되어 나왔다.이 얼마나 멋지고 즐거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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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왕은 왕자로 태어나 죽을 때까지 교육을 받습니다.왕자가 태어나 말문이 트이고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나이가 되면 별도로 강학청(講學廳:익힐 강,배울 학,관청 청 )이라는 관청을 꾸리고 과외교사 두셋을 붙여 기초 교육을 시킵니다.왕세자가 되면 관청 시강원(侍講院:모실 시,익힐 강,담 원)을 꾸려 마찬가지로 과외 교사를 붙여 서연(書筵:쓸 서,대자리 연)교육을 시킵니다.교육은 왕이 되어서도 끝나지 않습니다.왕이 되면 관청 경연청(經筵廳:날실 경,대자리 연,관청 청)을 꾸려 왕을 가르칩니다.왕은 아침밥을 먹고 날마다 경연에 나가야 합니다. ...중략 ...재미있는 것은 왕자와 세자,왕을 가르치는 관청에서는 교육 내용뿐만 아니라 과외 교사와 오갔던 대화까지 아주 꼼꼼히,그것도 날마다 기록으로 남겼다는 점입니다. 《강학청일기 》,《서연일기 》,《경연일기 》같은 기록입니다.왕이 되려면 이렇게 어렸을 때부터 교육을 받아야 했습니다.사대부들은 이런 교육을 통해 왕을 어렸을 때부터 그들이 원하는 스타일로 키워 냈고,왕이 되어서도 경연같은 공부를 시켜 끊임없이 왕을 다그쳤습니다.물론 경연 자리에서는 공부만 한 것이 아닙니다.나라의 중요한 일을 놓고 여러 신하들과 왕이 의논하고 토론했습니다.여기서 사대부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왕에게 전했고, 왕은 그 뜻을 따를 수밖에 없도록 했습니다.또 왕이 경연을 게을리하면 게으르다고 비판하고, 또 그 사실을 《경연일기 》에 낱낱이 기록하여 남겼습니다.이러니 왕으로서는 경연에 빠질 수 없었습니다.사대부들은 이 경연으로 왕의 절대 권력을 조절해 갔던 것입니다.왕의 절대 권력을 막는 또 하나의 방법은 조선의 철저한 기록문화입니다.이 기록 가운데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의 기록 문화 수준을 한눈에 보여 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조선 시대 왕들은 자신이 살아 있을 때는 물론이고 죽은 뒤 정리될 실록까지 의식하면서 살아야 했습니다.그래서 늘 스스로를 단속하고 조심할 수밖에 없었고,나중에 기록될 자신의 행적을 생각해서 함부로 정치를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조선왕조실록 》,p.125~129.

 

이이가 『성학집요 』를 올리고 이어서 차자를 올려 학문과 정치의 도리를 극진히 논의하였더니,상이 답하기를,

"올린 『성학집요 』를 살펴보니 정치의 도에 크게 보탬이 되는 것이라 무척 가상히 여긴다."

하였다.이이가 임금의 마음을 바로잡는 데에 뜻이 간절하여 경전과 역사책의 핵심 내용 중 학문과 정치에 절실한 것을 뽑아 차례를 나누어 수기 修己, 치인 治人으로 순서를 만드니 통틀어 5편이었다.책이 완성되어 상에게 올리었더니 상이 그 이튿날 경연에 나와 이이에게 이르기를,

"그 글이 매우 절실하고 요긴하다.이것은 부제학의 말이 아니라 곧 성현의 말씀이니, 정치의 도에 크게 보탬이 있을 것이다.다만 나같이 불민한 임금으로는 실천하지 못할까 두렵다."

하니, 이이가 일어났다가 다시 엎드려 아뢰기를,

"주상께서 항상 이렇게 하교하시므로 신하들이 극히 답답해합니다.전하께서 자질이 뛰어나시니, 성학을 하지 않는 것이지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핑계대지 마시고 독실한 뜻으로 분발하시어 덕을 이루십시오.예전에 송 신종 宋神宗이 말하기를 '이것은 요순의 일이지 짐이 어찌 감당하겠는가'하자 , 명도明道 정호 程顥가 걱정스럽게 말하기를 '폐하의 이 말씀은 종사와 신민의 복이 아닙니다'하였는데,전하의 말씀이 이 상황과 비슷하지 않습니까?"

하였다. 『율곡의 경연일기 』 ,p.359~360.

 

*****어쩌다보니 두 책을 함께 읽게 되었다. 흥미롭고 재밌는 부분이 많다. 두 책을 읽다가  "적어도 조선 중기 이후 왕들은 자기보다 똑똑한 사림들이 매우 불편하고 귀찮았을 것 같고 ,반대로 신하들보다 똑똑한 왕이 등극하면 사림들은 전전긍긍하게 되고 참 애먹었을 것 같다"는 허튼 생각이 들었다. 이 두 책만이 아니라 이렇게 어렵지 않게 흥미를 놓치지 않고 읽을 수 있는 관련서들이 몇 가지 떠올라서 적어본다. 돌베게 출판사에서 나온 『조선의 왕으로 살아가기 』,문학동네에서 나온 『왕세자의 입학식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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