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여든 중반을 훌쩍 넘기셨다. 그 중 70년은 땅에 붙어 살았다. 땅에서 은퇴한 뒤 수 년 간 무료하고 질이 형편없는 노인의 일상을 보내고 있다.난 애써 외면하고 (나도 대개의 사람들처럼 남의 부모에게는 더할 나위없이 살갑고 착하게 굴면서, 정작 자신의 부모에게는 더할 나위없이 불친절하고 퉁명스럽기 짝이 없게 군다) 무심하게 살았다. 자식이 많은 엄마도 그저 별 일이나 있어야 전화를 하는 정도셨고,  일련의 연중행사들이 있을 때만 나만 중뿔나게 튀고싶지도 않고 불필요한 죄책감이나 부끄러움을 갖지 않고자, 평범한 정도의 성의를 표하며 지내고 있었다. 엄마가 지난 해부터 거의 거동을 못하게 되고 텔레비전만 보면서 우울해하며 지내고 계셨다.  그즈음에 나는 김두엽할머니 책을 읽게 되었던 것 같다. 참 멋진 인생을 살았고 살아가고 계신 아름답고 멋진 할머니라며 감동을 했다.주변 사람들에게 소개도 하고 선물도 했다.그러다 문득 엄마가 떠올랐다.아마 김두엽할머니 못지않을 세월을 겪었을 엄마 이야기가 떠올랐다. 가끔 지금 나로선 상상이 거의 불가능한, 젊은 나이의 엄마 이야기를 듣고는 했는데, "내 얘기 책으로 쓰문 소설 열두 권도 모지라다"라던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단 한번도 멋지고 감동적인 인생을 사셨구나하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그냥 매번 버전이 살짝 살짝 바뀌는, 노인들이라면 거의 다 비슷하게 가지고 있을 레퍼토리 정도로만 여겼다. 그래도 평화로운 관계를 위해 내가 참고 들어주며 장단을 맞춰줘야 하는 이야기로만 여겼다. 왜...... ...

엄마에게 김두엽할머니책을 사드렸다. 책을 단숨에 읽으신 엄마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시며 한숨을 짓고 가슴을 쓸었다. 그리곤 "내 맘을 알아주는 자석이 있어서 참 고맙구나"라고 달뜬 목소리로 소감을 전했다. "엄마는 그할머니보다 더한 세월을 사셨잖우"라고 답을 하니 "아니다, 나는 이분에 비하밍 한창 부족하다"라고 답을 하셨다. 그때 처음으로 나의 엄마가 어떤 사람이었고 어떤 사람인가 궁금했다. 그러고보니 늘 무언가를 배우기를 좋아하고 지식을 탐구하는 일을 하고싶어 했다던 속내를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엄마에게 책을 보내드려보자 이제 땅에서 손을 놓았으니 아직은 글자를 읽을 시력은 되시니 큰 글자 책을 골라서 권해보자. 무슨 책이 좋을까, 어떤 장르가 좋을까,어떤 내용이 좋을까' 아무리 궁리해도 답을 구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막막했다. 사람들에게 책읽는 일을 가르치며 사는데, 누구보다 책에 대해선 할 말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무력할 수가 없었다.알라딘에서 여러 키워드로 검색도 하고 알아보다가 큰글자책이 출간된 것,소설일 것, 쉬운 내용일 것, 익숙한 것이고 재밌을 것으로 정리하다보니 사씨남정기,심청전이 결과물로 나왔다. 제법 그럴싸한 결과물이어서 구해보내드리며 ,박완서작가의 소설집 하나와 나태주 시집 한 권을 같이 보내드렸다.  

엄마는 몇일 뒤에 연락을 해오셨고," 야야! 박완서 그냥반 소설은 참 재밌더라. 그런데 나는 읽을 줄은 아는데 도통 남에게 전달할 줄을 몰라서 말은 못하겠다만 단숨에 읽었다. 그냥반도 참 애닯게 살았더먼"라고 하셨다. 그리곤 박완서 단편들을 다 외운 듯이 말로 전하셨다. 그 이야기들이 그렇게 재미난 이야기들이었나 싶을 정도로 엄마가 전해주는 박완서단편들은 맛이 났다.

"그런데 나랑 심청이가 무신 상관이라고 심청이를 보냈어? 나는 심청이 재미읎다.나는 시집이 좋더라. 니가 보내준 나태주인가 하는 그냥반 시.참 좋더라.을매나 좋던지 ..." 그리곤 나태주 시집의 시들을 줄줄이 외셨다. 그렇게 아름다웠던 시였던가! 그렇게 흥이 나고 그렇게 일렁이는 시였던가! '엄마가 시를 좋아했구나.아니 엄마가 시를 읽을 줄 알았구나.아니 엄마가 시를 이해할 줄 알았구나,아니 엄마는 시를 쓰고 싶어하셨구나!' 나는 그냥 너무 놀랐을 뿐이다.아니 나는 그냥 너무 오만하고 무지했을 뿐이다.

평생 땅만 일구고 배움도 짧은 평범한 노인(그런데 알고보니 그 누구보다 배울 줄 알고 멋진 노인이다)에게 어떤 시집을 보내드릴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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