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리, 왜 나라에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물소를 우리덜헌티 나눠 줬을까유?"

이렇게 묻는 꺽쇠의 표정이 사뭇 진지했어.

선비는 생각에 잠겼지.어떻게 설명을 해야 꺽쇠의 아픈 마음에 위로가 될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어디까지 설명을 해야 꺽쇠의 궁금증이 조금이나마 풀릴까? 뭐, 이런저런 생각들이 스쳐 갔을 테지.

"아까 네가 물소의 뿔이 활처럼 보였다고 얘기했던 거 기억하느냐?사실 물소 뿔은 활을 만드는 데 쓰이는 아주 귀한 재료란다. 물소가 우리나라게 처음 들어온 건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 세조 임금 때였느니라.유구국에서 물소 한 쌍을 선물로 보내와서 키우기 시작했지.그 물소들이 새끼를 치자 여러 고을 관아에 나누어 기르게 했는데,성종 임금 때는 그 수가 일흔 마리쯤으로 불어났다는구나.하지만 물소 길들이기가 생각만큼 쉽지 않았으니라."

"그렇지유.지는 그 마음 백번 이해허는구먼유."

"또 물소 여물을 대느라 백성들도 힘들었지.그래서 마지막으로 택한 방법이 ......농사에 쓰게끔 백성들에게 물소를 나눠 주는 거였으니라.그런데 네 얘길 듣고 보니 그 방법 역시 도움이 되지는 않는 것 같구나.앞으로 어찌하면 좋을 지 참으로 걱정이로구나."

선비는 근심이 그득한 얼굴로 물소를 바라보았지.하지만 꺽쇠의 눈빛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어.

"어떡하긴유.저늠의 짐승, 이제 꼴도 보기 싫구먼유.당장 관아로 끌구 가야쥬." 『요상한 동물들』,p.59~60.

 

 

 

"물소[水牛]는 힘이 세고 밭 가는 데 사용할 수 있다고 하니, 내가 중국 황제에게 주청(奏請)하여 바꿔 오고자 한다. 다만 우리 나라는 중국의 남쪽 지방과는 기후(氣候)가 같지 않아서 물소가 우리 나라에서 번성(蕃盛)하지 않을까 봐 두렵다."

하니, 이 아뢰기를,

"신은 들으니, 물소가 밭을 가는 것이 보통 소의 두 배나 된다고 합니다. 전라도의 기후는 중국의 남방과 비슷하니 사양(飼養)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고, 도 또한 그것이 유리하다고 말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고려에서 타려(駝驪)를 교역(交易)하고 싶다고 중국 조정에 주청하였더니, 황제가 그 값을 돌려보내고 타려 30필을 하사하고, 이어 유시하기를, ‘내 타려를 중외에 나누어 주고자 하나, 다만 사양한 수가 적어서 뜻대로 하지 못한다. ’고 하였었다. 지금 물소를 청하여도 도리에 잘못 될 것이 없으니 중국 예부에 자문을 보내어 바꾸기를 청하는 것이 좋겠다. 예부에서 허락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사연을 갖추어 황제에게 주달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니, 모두가 아뢰기를,

"좋습니다."

하였다.

上又曰: "水牛力壯, 可使耕田, 予欲奏請易換。 但本國, 與中朝南方風, 氣不同, 恐或不盛。" 曰: "臣聞水牛耕田, 倍於常牛。 全羅道風氣, 與南方相似, 可以畜養。" 亦言其利, 上曰: "高麗奏請, 欲換駝驢, 帝還其價, 賜駝驢三十匹, 仍諭曰: ‘予欲頒賜中外, 但畜養之數少而未果。’ 今請水牛, 無害於義, 可咨禮部請換, 禮部不許, 具辭奏達如何?" 僉曰: "可。"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55권, 세종 14년 2월 13일 임인 1번째기사

 

 

 

물소, 크고 무겁고 힘세게

"조선은 여러 방법으로 농업생산력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했다.과수는 접을 붙여 큰과일을 생산할 수 있도록 했고, 가축은 여러 방법으로 육종하여 사람에게 유익한 특성을 갖게 개량했다. 이러한 개량 혹은 육종에서 가장 돋보이는 성과는 오키나와에서 도입한 물소와 전통 한우를 교배하여 육종해낸 조선 한우다.

 우리 민족은 우수한 가축 사육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 ... ... ... 이러한 품종 개량에서 가장 극적인 성공을 거둔 시기는 단연 15~19세기였다."『조선의 생태환경사』,p.58~59

 

 

*****요즘은 『조선왕조실록 』을 누구나 쉽게 찾아 읽을 수 있다. 한글로 번역되어 있고 원문도 병기하여 실어놓은 사이트를 찾기 어렵지 않다. 1차 사료로써 이 기록이 갖는 중요성은 어마어마한 것 같다. 여기에 올린 두 책은 거기서 파생되어 나왔다.이 얼마나 멋지고 즐거운 일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