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왕은 왕자로 태어나 죽을 때까지 교육을 받습니다.왕자가 태어나 말문이 트이고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나이가 되면 별도로 강학청(講學廳:익힐 강,배울 학,관청 청 )이라는 관청을 꾸리고 과외교사 두셋을 붙여 기초 교육을 시킵니다.왕세자가 되면 관청 시강원(侍講院:모실 시,익힐 강,담 원)을 꾸려 마찬가지로 과외 교사를 붙여 서연(書筵:쓸 서,대자리 연)교육을 시킵니다.교육은 왕이 되어서도 끝나지 않습니다.왕이 되면 관청 경연청(經筵廳:날실 경,대자리 연,관청 청)을 꾸려 왕을 가르칩니다.왕은 아침밥을 먹고 날마다 경연에 나가야 합니다. ...중략 ...재미있는 것은 왕자와 세자,왕을 가르치는 관청에서는 교육 내용뿐만 아니라 과외 교사와 오갔던 대화까지 아주 꼼꼼히,그것도 날마다 기록으로 남겼다는 점입니다. 《강학청일기 》,《서연일기 》,《경연일기 》같은 기록입니다.왕이 되려면 이렇게 어렸을 때부터 교육을 받아야 했습니다.사대부들은 이런 교육을 통해 왕을 어렸을 때부터 그들이 원하는 스타일로 키워 냈고,왕이 되어서도 경연같은 공부를 시켜 끊임없이 왕을 다그쳤습니다.물론 경연 자리에서는 공부만 한 것이 아닙니다.나라의 중요한 일을 놓고 여러 신하들과 왕이 의논하고 토론했습니다.여기서 사대부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왕에게 전했고, 왕은 그 뜻을 따를 수밖에 없도록 했습니다.또 왕이 경연을 게을리하면 게으르다고 비판하고, 또 그 사실을 《경연일기 》에 낱낱이 기록하여 남겼습니다.이러니 왕으로서는 경연에 빠질 수 없었습니다.사대부들은 이 경연으로 왕의 절대 권력을 조절해 갔던 것입니다.왕의 절대 권력을 막는 또 하나의 방법은 조선의 철저한 기록문화입니다.이 기록 가운데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의 기록 문화 수준을 한눈에 보여 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조선 시대 왕들은 자신이 살아 있을 때는 물론이고 죽은 뒤 정리될 실록까지 의식하면서 살아야 했습니다.그래서 늘 스스로를 단속하고 조심할 수밖에 없었고,나중에 기록될 자신의 행적을 생각해서 함부로 정치를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조선왕조실록 》,p.125~129.

 

이이가 『성학집요 』를 올리고 이어서 차자를 올려 학문과 정치의 도리를 극진히 논의하였더니,상이 답하기를,

"올린 『성학집요 』를 살펴보니 정치의 도에 크게 보탬이 되는 것이라 무척 가상히 여긴다."

하였다.이이가 임금의 마음을 바로잡는 데에 뜻이 간절하여 경전과 역사책의 핵심 내용 중 학문과 정치에 절실한 것을 뽑아 차례를 나누어 수기 修己, 치인 治人으로 순서를 만드니 통틀어 5편이었다.책이 완성되어 상에게 올리었더니 상이 그 이튿날 경연에 나와 이이에게 이르기를,

"그 글이 매우 절실하고 요긴하다.이것은 부제학의 말이 아니라 곧 성현의 말씀이니, 정치의 도에 크게 보탬이 있을 것이다.다만 나같이 불민한 임금으로는 실천하지 못할까 두렵다."

하니, 이이가 일어났다가 다시 엎드려 아뢰기를,

"주상께서 항상 이렇게 하교하시므로 신하들이 극히 답답해합니다.전하께서 자질이 뛰어나시니, 성학을 하지 않는 것이지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핑계대지 마시고 독실한 뜻으로 분발하시어 덕을 이루십시오.예전에 송 신종 宋神宗이 말하기를 '이것은 요순의 일이지 짐이 어찌 감당하겠는가'하자 , 명도明道 정호 程顥가 걱정스럽게 말하기를 '폐하의 이 말씀은 종사와 신민의 복이 아닙니다'하였는데,전하의 말씀이 이 상황과 비슷하지 않습니까?"

하였다. 『율곡의 경연일기 』 ,p.359~360.

 

*****어쩌다보니 두 책을 함께 읽게 되었다. 흥미롭고 재밌는 부분이 많다. 두 책을 읽다가  "적어도 조선 중기 이후 왕들은 자기보다 똑똑한 사림들이 매우 불편하고 귀찮았을 것 같고 ,반대로 신하들보다 똑똑한 왕이 등극하면 사림들은 전전긍긍하게 되고 참 애먹었을 것 같다"는 허튼 생각이 들었다. 이 두 책만이 아니라 이렇게 어렵지 않게 흥미를 놓치지 않고 읽을 수 있는 관련서들이 몇 가지 떠올라서 적어본다. 돌베게 출판사에서 나온 『조선의 왕으로 살아가기 』,문학동네에서 나온 『왕세자의 입학식 』등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