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법소년 살인 사건 요다 픽션 Yoda Fiction 6
전건우 지음 / 요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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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건우 작가의 장편소설 《촉법소년 살인 사건》을 읽었다. 죄를 저질렀지만 촉법소년이라는 이유로 처벌받지 않은 학생들이 연이어 잔혹하게 살해당한다. 형사 '조민준'은 범인을 잡기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실마리를 잡는 것은 어렵고 시민들은 살인자를 영웅으로 여긴다. 이슈 유튜버까지 끼어들며 사건은 점점 커져간다.


굉장히 민감한 소재를 다룬 작품이다. 촉법소년은 범행 당시 형사책임연령인 만 14세가 되지 아니한 소년범을 뜻한다. 연령을 낮추거나 촉법소년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소설을 읽으며 마음이 복잡했다. 어린 나이에도 아무렇지도 않게 범죄를 저지르고 전혀 뉘우치지 않는 아이들이 실제로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유만으로 미성년자에게 엄벌을 내리는 것이 정말 옳은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소설은 뚜렷한 의견을 내기보다는 여러 의견을 들려준다.


그런 점에서 민준을 어렸을 적 큰 잘못을 저지른 형사로 설정한 점이 좋았다. 세상을 선과 악으로 딱 나눌 수 없을뿐더러 같은 사람이어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인물이었다. 촉법소년들이 서로 태도가 다른 것 역시 인상적이었다.


표지가 무언가 낯익어서 생각해 보니 타로 카드 중 하나였다. '거꾸로 매달린 남자' 카드인데 희생, 인내, 깨달음, 새로운 시각 등을 상징한다고 한다. 자신의 의지로 묶였다는 이야기 역시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럼 이 책의 표지를 거꾸로 매달린 남자로 한 것은 어떤 의도일까. 촉법소년이 전부 처단당하는 사이다 결말을 좋아하는 것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점을 제안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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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진실이라는 거짓을 맹세해
헬레네 플루드 지음, 권도희 옮김 / 푸른숲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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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네 플루드의 장편소설 《나에게 진실이라는 거짓을 맹세해》를 읽었다. 작가의 전작 《테라피스트》가 훌륭한 심리 스릴러였기 때문에 이번 작품도 기대가 컸다. 작가가 이번에 선택한 소재는 불륜과 살인이다. 주인공 '리케'는 윗집 남자 '요르겐'과 불륜 중이다. 주말에도 그가 혼자 집에 있는다는 말에 만나러 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결국 유혹을 이기지 못한다. 아무도 없는 것 같아 다시 돌아온 리케는 미처 알지 못했다. 이미 그가 죽어 있었다는 사실을.


이번 작품 역시 심리적으로 조여오는 솜씨가 아주 대단했다. 주인공 리케는 가정을 깨고 싶지 않지만 당연히 자신의 가족이 살인 사건의 용의자가 되는 것 또한 원치 않는다. 그러나 둘 중에 하나는 포기해야만 할 것 같다. 아슬아슬한 줄타기 속에서 리케는 범인이 누군지 의심하고 또 의심한다.


만약 내가 리케의 상황에 놓여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할지 생각해 보았다. 수사가 진행되면 어차피 밝혀질 것이니 미리 말하는 것이 결국 의심을 피하는 길이 아닐까. 그러나 그 말을 꺼내기 정말 힘들 것 같긴 하다. 믿었던 사람에게 가장 큰 배신을 털어놓아야 하니까 말이다.


소설을 읽으며 피가 튀고 신체가 절단되는 스릴러보다 심리적으로 옭아매는 스릴러가 더 취향에 맞는다고 생각했다. 잔인함이 아니라 밝혀지면 안 되는 사실이 두려워 다음 페이지를 넘기기 힘든 소설을 읽고 싶었는데 이 소설이 딱 그 바람을 만족스럽게 충족해 주었다.


요 네스뵈에 이어 헬레네 플루드라는 노르웨이의 멋진 작가를 한 명 더 알게 되어 기쁘다. 이미 노르웨이에서는 그녀의 세 번째 작품 《The Widow》가 출간되었는데 빠른 시일 내에 그 작품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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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비밀 강령회
사라 페너 지음, 이미정 옮김 / 하빌리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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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 페너의 장편소설 《런던 비밀 강령회》를 읽었다. 《넬라의 비밀 약방》에 이어 두 번째로 읽는 작가의 작품이다. 19세기 런던을 배경으로 영혼을 불러내는 강령회를 소재로 한 소설이다. 두 명의 서술자가 등장한다. 한 명은 '레나'로 얼마 전에 죽은 동생 '애비'에 관한 진실을 알기 위해 유명한 영매사 '보델린'과 함께 하고 있다. 다른 한 명은 '몰리'로 런던 강령술 협회 심령부의 부회장직을 맡고 있다.


작가의 전작이 훌륭한 여성 서사 작품이었기 때문에 이번 작품 역시 기대가 있었다. 작가 노트를 보면 강령술은 여자가 남자보다 존경받을 수 있는 유일한 분야라고 쓰여 있다. 유명한 영매는 대체로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강령술 협회 자체에는 여성의 출입을 금한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레나와 애비, 보델린은 그 닫힌 사회의 틈을 찾아 문을 열어젖힌다.


레나는 동생 애비의 죽음을, 보델린은 강령술 협회 회장 '볼크먼'의 죽음을 파헤치기 위해 움직인다. 보델린은 사기꾼 영매와 차원이 다른 존재로 볼크먼의 흔적을 찾아 영감을 얻고 진실에 한 걸음씩 다가간다. 레나 역시 동생의 죽음에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숨겨진 음모를 하나씩 걷어낸다.


이들이 밝혀낸 진실은 추악하기 그지없는데 상상을 뛰어넘는 반전이어서 놀라웠다. 한편으로는 여성 서사에 집중한다는 핑계로 모든 여성을 선역, 모든 남성을 악역으로 분류하는 오를 범하지 않는 것도 좋았다. 여러 인물이 입체적인 모습을 보여주어 소설이 더 다채롭게 느껴졌다.


소설에서 보델린이 행하는 7단계 강령술은 꽤 그럴듯해서 실제로도 행해지는지 궁금했는데 작가의 말에 따르면 자신이 전적으로 지어낸 것이라는 말에 웃음이 나왔다. 그만큼 작가가 이 소설을 집필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조사를 하고 상상력을 짜냈는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었다. 작가의 다음 작품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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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강하다 래빗홀 YA
김청귤 지음 / 래빗홀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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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청귤 작가의 장편소설 《달리는 강하다》를 읽었다. 좀비 사태가 터진 상황을 다룬 청소년 문학으로, 주인공 '하다'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처음에 제목을 보았을 때는 '달리'라는 주인공이 강하다는 뜻인 줄 알았는데 반대였다.


오싹한 것을 좋아하는 아이들을 많이 보았다. 공포 영화만 해도 방학 중 흥행이 더 잘 되는 경우가 많다. 청소년 문학에 좀비가 나왔으니 관심을 많이 보일 것 같단 생각을 처음 했다. 이 소설이 좋았던 이유는 좀비물 특유의 잔인함을 잘 제거했기 때문이다. 신체가 절단되고 내장이 나오는 대신 분노 바이러스 같은 느낌으로 접근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65세 이상의 노인들이 공격성을 띠어 도시를 봉쇄하는 이야기는 제법 흥미로웠다.


하다는 할머니를 두고 대피할 수 없어서 집에 계속 머무른다. 달리기가 특기인 아이답게 느릿느릿 움직이는 노인들을 잘 피해 마트에서 먹을 것을 구해오는 등 멋진 활약을 펼친다. 시간이 지나면서 관계는 확장되고 그 속에서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이 여러 가지 보였다. 관계의 중요성과 더불어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노인 혐오, 장애 혐오 등 아이들과 이 책을 가지고 토론을 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또한 소설 속에서 하다를 위기에 몰아넣는 것은 대부분 좀비가 된 노인이 아니라 정상적인 사람이라는 사실도 인상적이었다. 이기적인 마음으로 다른 사람이 피해를 입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 그 태도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어서 좋았다.


소설은 마법 같은 해결책을 제시하며 해피엔딩을 보여주는 대신 삶은 그래도 이어진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마무리를 짓는다. 아이들이 보기에 이해가 안 될지도 모르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일상을 유지하는 것이란 사실을 깨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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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위험한 이름, 비너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하빌리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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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장편소설 《아름답고 위험한 이름, 비너스》를 읽었다. 히, 가, 시, 노, 게, 이, 고까지 일곱 명이 책을 쓰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 들 정도로 다작하는 작가답게 정말 많은 작품이 출간되고 있다. 진짜 대단한 것은 대부분의 소설이 일정한 수준 이상의 재미를 준다는 것이다. 이번 작품 역시 두꺼운 분량임에도 끝까지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주인공 '하쿠로'는 수의사로 동물 병원에서 일하고 있다. 그에게 오랫동안 연락을 하지 않은 동생 '아키토'의 아내 '가에데'가 찾아온다. 하쿠로는 동생이 결혼한 것조차 모르고 있었기에 놀란다. 게다가 동생은 지금 행방불명이라고 한다. 복잡한 가정사를 지닌 하쿠로는 동생의 실종이 야가미가 집안과 관련되었다는 짐작을 한다.


등장인물이 꽤 많은 편이고 소설 속에 여러 장르가 뒤섞인 느낌이 들었다. 미스터리와 과학, 치정 등이 얽히고설킨 가운데 노련한 작가답게 균형을 잘 잡았다. 동생의 행방을 쫓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야가미 가를 둘러싼 유산 다툼, 알 수 없는 과학 실험 등 흥미로운 여러 요소가 독자를 붙잡고 놔주지 않는다. 이 모든 미스터리와 큰 관련이 없다고도 볼 수 있는 하쿠로의 직장 동물 병원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동물 병원에 그렇게 다양한 동물 환자(?)가 오는지 알지 못했다.


하쿠로 시점에서 소설이 진행되다 보니 그의 속마음이 잔뜩 등장하는데 호감이라고는 할 수 없는 인간이었다. 물론 우리 모두 속으로는 어떠한 생각이든 할 수 있지만. 카에데는 명랑하면서도 집념이 강한 성격의 여성인데 난데없이 동생의 아내라고 주장하며 나오는 모습에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지 궁금했다.


2020년에 츠마부키 사토시, 요시타카 유리코가 주연을 맡은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영상화된 이야기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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