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인 소녀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6
하라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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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라 료의 장편소설 《내가 죽인 소녀》를 읽었다. 탐정 사와자키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으로 나오키상 수상작이라고 한다. 의뢰 전화를 받고 고급 주택가를 찾아간 사립 탐정 사와자키가 유괴사건에 휘말린다. 집주인 마카베는 사와자키를 돈을 받으러 온 유괴범으로 생각한 것이다. 범인의 지시로 돈을 운반하는 역할까지 맡게 된 사와자키는 이 유괴사건에 깊숙이 발을 담가버린다.


《내가 죽인 소녀》는 최근에 읽은 소설 중 가장 줄거리가 복잡하고 등장인물도 많았다. 그러나 그만큼의 재미도 보장한 훌륭한 작품이었다. 사와자키는 호감이 가는 인물은 아니었지만 일 처리는 효율적으로 해내는 탐정으로 그의 수사를 따라다니는 것이 무척이나 흥미롭다. 사건 자체도 의문스러운 점이 한둘이 아니라 도대체 어떤 진상이 기다리고 있을지 궁금하여 빨리 소설의 끝으로 향하고 싶었다.


유괴만큼 분초를 다투어야 하는 사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경찰은 수사에 난항을 겪고 범인에 근접조차 하지 못한다. 사건의 관계자는 많은데 어느 하나 딱 맞아떨어지는 용의자가 없으니 소설은 더욱 예측할 수 없는 전개로 나아가 호기심을 자극한다.


마침내 밝혀지는 사건의 진상은 어둡기 그지없다. 모든 퍼즐이 하나로 맞춰지면서 진실이 드러날 때 짜릿함을 느꼈다. 사건에 얽히며 온갖 고생을 한 사와자키도 비로소 한 걸음 나아가며 소설은 마무리된다. 사와자키가 등장하는 미공개 단편 <감시당하는 여인>도 짧은 분량으로 상당한 몰입감을 선사하는 작품이다.


느닷없이 면도날처럼 예리하고 선명한 바이올린 소리가 흘러나왔다. (27쪽)

죽음의 의식은 죽은 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살아남은 자들을 위한 것이었다. (3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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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A 살인사건
이누즈카 리히토 지음, 김은모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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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누즈카 리히토의 장편소설 소년A 살인사건을 읽었다. 등장인물이 많은 편으로 요약을 해보자면 감찰부에서 일하고 있는 경찰 시라이시와 연체자들에게 독촉 전화를 돌리는 일을 하는 에리코가 20년 전 일어난 소년A 살인사건에 얽히는 이야기다.

 

소년A 살인사건은 중학생이 초등학생을 잔혹하게 살해하고 그 과정을 비디오테이프로 남겨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다. 그런데 그 비디오가 20년 후에 다크웹에서 판매된 정황이 드러난다. 경찰 내부에서 유출되었을 가능성을 보고 시라이시가 팀과 함께 조사를 시작한다.

 

에리코는 온종일 전화로 손님을 상대한다. 그중에서는 입에 담지 못할 욕을 마구 내뱉은 손님도 있다. 돈도 갚지 않아놓고 뭐가 그렇게 당당한지 에리코의 속을 마구 헤집는다. 그러다 우연히 자경단 사이트를 알게 되고 거기에 저격 영상을 올린다. 손님 중에 기초생활수급 자격으로 부정하게 약을 타 판매하고 성매매를 일삼는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사적 제재의 짜릿함을 느낀 에리코는 소년A 사건에도 관심을 가진다.

 

소년A 살인사건은 훌륭한 사회파 추리 소설이면서 동시에 본격 추리 소설의 면모도 보이는 게 놀랍다. 도대체 누가 영상을 유출했는지, 왜 그런 짓을 했는지 하나하나 의심 인물을 파헤치는 과정을 읽다 보면 소설 안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다. 인물도 개성 없이 도구적으로 이용되는 게 아니라 각자의 사정이 있어 생생하게 묘사되기 때문에 허투루 쓰는 사람이 없다.

 

이야기의 힘이 느껴지는 이 소설은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끔찍한 살인을 단지 어렸을 때 저질렀단 이유로 처벌도 제대로 받지 않고 보호받는 삶을 살아도 되는지에 관해 물음을 끝없이 던진다. 피해자의 가족은 그 조치를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그러면 법이 제대로 처벌하지 못하는 것을 자경단이라는 이름으로 사적 복수를 가하는 것은 정말로 옳은 일일까? 그 사람들이 정말 정의감만으로 제재를 가한다고는 생각되지 않았기에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자극적인 소재를 노골적으로 전시하듯 표현하지 않은 점도 이 소설의 장점 중 하나이다.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는 목적으로 오히려 작품 자체가 폭력적으로 물드는 것을 싫어하는데, 이 소설은 그 점을 잘 피해갔다. 끔찍한 사건 자체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이 문제를 둘러싼 여러 인물의 관점을 표현한 점이 아주 좋았다. 최근에 읽은 작품 중 가장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세상에는 비슷한 상황에서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 그렇다고 그들이 다 순진무구한 소녀를 죽이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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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여우를 위한 무서운 도시 이야기 미래주니어노블 10
크리스천 맥케이 하이디커 지음, 이원경 옮김 / 밝은미래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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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 맥케이 하이디커의 장편소설 어린 여우를 위한 무서운 도시 이야기를 읽었다. 작가의 전작 어린 여우를 위한 무서운 이야기는 숲에 사는 야생 여우들의 이야기가 나왔다. 이번 작품은 영리하게 도시에 사는 여우를 내세웠다. 숲과 도시는 전혀 다른 위험이 있어서 또 하나의 근사한 작품이 탄생했다.

 

첫 폭설이 내린 날, 어린 여우 세 마리는 낯선 여우 한 마리를 발견한다. 여우는 다친 상태였는지 숨을 헐떡이며 도움을 요청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그리고 도와달라고. 무서운 이야기를 기대하며 이야기를 듣기 시작한 어린 여우들은 이 이야기가 생각보다 훨씬 더 끔찍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어린 여우를 위한 무서운 도시 이야기는 아이들을 위한 책이지만 만만히 볼 수 없는 작품이다. 전작을 읽으며 여우가 야생에서 살아남기 참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도시에 비하면 야생은 평온한 편이 아닐까. 도시는 여우가 살기에는 너무나 위험한 곳이다. 인간들은 여우를 총으로 쏴 죽이고, 가죽을 벗겨 팔고, 독을 먹여 죽인다.

 

나도 모르게 여우의 처지에서 책을 읽다가 문득 생각했다. 인간은 여우가 얼마나 성가실까. 여우는 공들여 키운 농작물을 여우가 다 뽑아가고, 키우던 닭들을 물어가며 공장에 들어가 기계를 고장 낸다. 어쩔 수 없이 인간들의 행동도 이해하며 마저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야기 속에는 세 마리의 여우가 등장한다. 올레브와 코지, 줄렙은 도시에서 온갖 고생을 겪으며 위기를 넘긴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내 숨도 점점 가빠졌다. 과연 여우들이 죽음을 피할 수 있을 것인지 이야기에 푹 빠져들었다. 여우들을 응원하며 책을 끝까지 읽다 보면 슬그머니 미소가 나올 것이다.

 

삶은 이야기와 다르다.”

무서운 이야기들 중에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슬픈 이야기도 있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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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중고상점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놀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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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오 슈스케는 일본 소설을 거의 처음 읽었을 때 만난 작가다. 그때 읽은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작품일 것이다. 자극적인 설정에 불쾌하기까지 한 묘사, 충격적인 반전까지 강렬한 기억을 선사해 준 소설이었다. 10년도 훨씬 전에 읽었는데도 기억이 생생할 정도였다.

 

이번에 읽은 수상한 중고상점은 그동안 읽었던 그의 작품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미스터리가 기본적으로 밑에 깔려있지만, 소설 전반적으로 따뜻함이 가득 담겨있는 기분 좋은 작품이다. 주인공 히구라시 마사오는 가사사키 조스케와 함께 중고상점을 운영한다. 이득보다 손해를 볼 때가 더 많은 그런 곳이다. 그러나 이 중고상점은 손님의 고민까지 함께 매입하는 특별한 곳이다.

 

총 네 명의 손님이 등장하는 이 소설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 처음에는 단순히 중고상점을 이용하러 온 손님은 우연히 자신의 고민을 드러낸다. 가사사키는 그 고민을 제멋대로 추측하여 틀린 답을 내놓는다. 히구라시는 가사사키를 우러러보는 학생 나미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적당히 사건을 조작하고 나름대로 문제를 해결한다.

 

상당히 독특한 패턴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에 등장하는 탐정은 사실 엉터리고 실제로 사건을 해결하는 것은 조수라니, 게다가 조수는 탐정을 위해 사건을 꾸며내기까지 한다. 히구라시의 배려하는 마음이 보기 좋았다. 후반부에 기다리고 있는 작은 반전은 책의 호감도를 더 높여준다.

 

어떤 장소에 각자 고민이 있는 사람이 방문하고 위로받는 이야기를 좋아하지만 그만큼 뻔해질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미치오 슈스케의 수상한 중고상점은 뻔하지 않은 힐링 드라마였다. 따뜻하고 신선했다.

 

인간은 매일매일 여러 가지 일을 생각하고여러 가지를 동경하며 구부러지는 법입니다누구든지 그래요그렇게 흐르는 동안은 어디에 다다를지 모르죠제 생각에 구부러진다는 건 중요한 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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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3시, 마법도구점 폴라리스
후지마루 지음, 서라미 옮김 / 흐름출판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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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작가의 전작 너는 기억 못하겠지만을 읽었다. 일본 소설이 지겨워질 때쯤 읽어서 첫인상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끝까지 읽고 난 후 결국 만족을 가져다준 작품이었다. 이번 작품 새벽 3, 마법도구점 폴라리스역시 마찬가지다. 새로운 소재는 아니다. 일본 특유의 감성 미스터리 이야기로, 상처를 지닌 사람들을 마법의 힘을 빌려 위로해 주는 내용이다.

 

도노 하루코는 왼손이 닿으면 마음이 전해지는 저주가 있다. 들키고 싶지 않은 속마음까지 모두 읽혀 친구를 사귀지 못해 늘 혼자 다닌다. 그러던 어느 날 악몽을 꿀 때마다 머리맡에 열쇠가 놓이는 괴현상을 해결하러 마법도구점 폴라리스에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같은 대학교 학생 쓰키시로 다마키를 만난다.

 

해리 포터의 엄청난 팬이라 마법을 다룬 작품은 평소보다 조금 더 매서운 눈으로 책을 보게 된다. 눈을 치켜뜨고 본 새벽 3, 마법도구점 폴라리스의 마법 설정은 참신했다. 어떤 강한 생각이 도구에 깃들면 마법 도구가 되고, 이 도구들은 사람을 돕기 위해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렇게 도노는 열쇠로 봉인된 기억을 풀고 마음 한쪽에 늘 무겁게 자리 잡았던 짐 덩이를 치운다.

 

술술 읽히는 가벼운 작품이지만 순간순간 마음을 움직이는 부분이 있다. 그건 우리 모두 보이지 않는 곳에 상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혼자 앓았던 그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장면에서 우리의 마음 역시 치유된다. 너는 기억 못하겠지만보다 조금 더 가볍고 덜 아련한 점도 좋았다. 우리의 일상과 더 가까워져 공감의 폭이 커졌다는 인상을 받았다. 작가의 신상에 대해 밝혀진 것이 없는 미스터리한 작가라고 하는데 다음 작품도 기대된다.


도와주고 도움을 받고 그래야 행복의 원이 넓어지는 거야.

애정과 마음, 누구나 갖고 있는 그 흔한 기적을 우리는 마법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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