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할 하틀리

나는 자라면서 그렇게 열심히 만화책을 읽진 않았다. 신문에 실리는 일간 연재만화에 크게 사로잡혔던 기억도 없다. 하지만 나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고, 말풍선 안의 내용을 읽기보다 특정한 만화의 그림체를 따라 그려보려고 하며 오랜 시간을 보냈던 것을 기억한다. 『피너츠』도 분명히 읽었을 것이다. - P11

『피너츠 완전판 1965~1966』을 위한 서문을 쓰지 않겠느냐는 청탁을 받았을 때, 나는 기억을 되새기는 데 참고할 수 있도록 1970년대 초중반연재분을 받아볼 수 있겠냐고 요청했다. - P11

 등장인물들 또한 찰스 슐츠가 실제로 활동하던 세계에 대한 자각을 통해 만들어졌음을 느낄 수 있다. 『피너츠」』연재분을 완독하고 나서, 언제 어디서나 존재하는 아이들과 어른들에 대한 영속적인 통찰과 인상밖에 받지 못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것도나름대로 나쁘진 않겠지만, 유감스럽게도 나로서는 이 작품을 단순히그렇게 읽을 수 없다. 이 아이들은 미국인이며, 그들의 언행은 명백히만화의 네모 칸 바로 바깥에서 돌아가고 있던 세상의 산물이다. - P12

 하지만 거기엔 한편 짜증스러움, 당시의 사회 문제(이 경우, 1970년대에는 아직 새로운 화두였던 페미니즘의 일상적 적용)를 따라잡으려는 슐츠의 노력과 그에 따른 피로감이 드러나 있었을지도 모른다(나 역시 당시에 친구들과 절박하게 논쟁했던 것을 기억한다. 새 담임선생님 성함 앞에 ‘미스Miss‘를 붙여야 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 만들어진 호칭인 ‘미즈Ms.‘를 붙여야 할 것인가, 하지만 결국 ‘미즈‘도 기존 용어의 축약일 뿐 아닌가 하는 문제로 말이다). - P12

. 그는 독보적인 감수성을 지녔으며 공손하지만 인간들이 흔히 보이는 약점을 묘사할 때면 타협하지 않고, 관습적 지혜라는 것은 대부분 공허하다는 점을 차분히 드러내 보이며, 이따금씩 나로서는 오직 ‘부조리 사실주의‘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뭔가를 구현해낸다. 나 스스로 훔쳐내어 15년 혹은 16년 후에 직접 써먹고 말리라 다짐하게 되는 그 무언가를. - P12

나는 영화감독이다. 내가 만드는 영화들은 흔히 우습다. 우울하다, 생각을 자극한다, 시적이다, 편협하다,
스타일리시하다, 혹은 단순히 끔찍하다고 평가된다.
사람은 분류당하며 사는 데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 P12

왜냐면 나는 분명 어릴 적에 이미 사람들이 말하는 내용과 그 실제 의미는 다르다는 걸, 적어도 두 가지가 정확히 일치하진 않는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선의 때문에 그리할 때도 있지만, 어쨌든 우리는 괴로운 주제를 피해가는 방법을 익힌다. - P13

그리고 이제 나는 열서너 살 무렵 찰리 브라운의 세계와 규칙적이고 일상적으로 접촉했던 것이 나의 유머 감각과 인생관, 이야기꾼으로서의 성향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을지 생각해본다. 『피너츠』 세계의 친구들은 당시 내 일상의 일부였고 매일 현관 계단의 신문 속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존 레넌과 오노 요코에 대한 온갖 비난들, 워터게이트 사건이나 닉슨의 중국 여행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 P13

『피너츠』가 내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정확하게 서술하기란 어렵다. 아무도 내게 이 만화가 재미있는 이유를 설명해줄 필요가 없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피너츠』를 읽고 웃었다. 그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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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음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나 그는 문 쪽으로 난감한 시선을 던졌다....... 아니, 그 문을 통해서는 절대로 나갈수 없었다. 설령 애꿎은 비둘기가 그 사이에 없어졌다고 하더라도 도저히 화장실까지 갈 자신이 없었다. - P22

전에는 그런 짓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백색에눈이 부시도록 깨끗하고, 세수는 물론이거니와 그릇마저 씻는 용도로 사용해 온 세면기에 오줌을 누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 P23

일을 다 마치고도 한참 동안 계속 수도꼭지를 틀어 놓은 다음 자신이 저지른 어처구니없는 행위의 작은 흔적이라도 남겨 두지 않으려고 액체 세제로 박박 문질러 닦았다.
「딱 한 번 그랬으니까 괜찮아.」
세면대와 방과 자기 자신에게 변명이라도 하는 것처럼 그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 P23

 시계를 보았다. 방금 7시 1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보통때 7시 15분이면 면도를 끝내고, 침대도 정리를 끝내 놓을 시각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좀 뒤처진 것은 부득이 어쩔 수 없이 아침 식사를 거르면빠듯하게 만회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중략). 중요한 것은 그가 8시 5분에 방을 나서야 8시 15분까지 은행으로 갈 수 있다는 점이었다.
무엇을 하고, 어떻게 보내야 할지 대책이 서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그에게는 아직 45분이라는 유예된 시간이남아 있었다. - P24

면도를 하는 동안 그는 찬찬히 생각을 가다듬으며자신에게 이렇게 말했다.
「조나단 노엘, 넌 2년 동안 인도차이나에서 군복무를 했고, 또 그곳에서 온갖 힘겨운 상황들을 잘 견뎌냈었지. 너의 용기와 지혜를 총동원하고, 적절한 복장을 갖추고, 행운이 따라 준다면 넌 이 방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할 수 있어.」 - P25

직장으로 출근하고, 낮 시간을 무사히 넘길 수는 있겠지만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가 문제였다.
(오늘 저녁이 되면 어디로 가야 되지? 밤은 또 어디에서 보내고? 기왕에 도망치는 마당에 비둘기와 두 번 다시 마주치고 싶지 않아.
(중략).
 그렇다면 면도기와 칫솔과 갈아입을 옷가지들을 챙겨 가야지. 그런 것들말고도 개인 수표책도 챙기고, 혹시 모르니까 저금 통장도 가지고 가야겠어. 수표로 끊는 통장 구좌에는 1천2백 프랑이 들어 있다. 그 정도라면 2주일은 버틸 수 있어. 물론 방을 싼 것으로 얻는다는 전제를 한다면 그렇지.
(후략).
) - P26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는데 금화가 다섯 개 있다는 것이 갑자기 머리 속에 떠올랐다. 하나에 6백 프랑의값어치는 충분히 될 다섯 개의 나폴레옹 금화들은 알제리가 전쟁 중이던 1958년에 인플레에 대한 불안 때문에 사두었던 것들이었다. - P27

(
(전략), 아주 근검절약한 생활을 한다면연말까지 호텔에서 묵는다고 하더라도 8천 프랑을 라살 부인에게 낼 수 있을 거야. 만약 그렇게만 된다면내년 1월부터는 방이 내 것이니까 방삯을 지불하지 않아도 되어서 사정이 훨씬 수월해질 수 있을 거야.
(후략).
) - P27

옷장 아래에는 더러운 옷들을 모아 두었다가 한 달에 한 번씩 세탁소로 가져 가기 위해 빨랫감을 보관하는 낡은 가방이 하나 있었다. 그것을 꺼내어 속을 비운다음 침대 위에 올려 놓았다. 그것은 그가 1942년 샤랭통에서 카바용으로 갈 때 들었던 가방이고, 1954년파리로 올 때 썼던 것이기도 했다. - P28

짐을 다 챙기고 나니 8시 15분 전이었다. 옷을 갈아입었다. 먼저 평상시에 입던 유니폼을 입었다. 회색 바지, 파란색 셔츠, 가죽 잠바, 권총집이 달려 있는 가죽벨트, 회색 모자. 그런 다음 비둘기와 마주칠 경우를대비하여 복장을 갖추기 시작했다. - P28

모자를 벗고, 귀를 문에 바짝 갖다 댔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모자를 다시 머리 위에 얹고 이마까지푹 눌러쓴 다음, 가방을 문가로 들어다 놓았다. 오른쪽손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우산을 손목에 걸고, 오른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왼손으로는 안전 자물쇠의 꼭지를 잡았다. 빗장을 여니 문이 조금 열렸다. 밖을 살짝 훔쳐보았다. - P29

 당장 문을 도로 닫아 버리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기 힘들었다. 그의 가장 솔직한 심정은 바깥의 그 혐오스러운 모습을 뒤로 하고, 안전한 자기 방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것이었다. - P30

. 만약에 새똥이 하나만 있고 깃털도 하나뿐이었다면 그는 필경 뒷걸음질 치고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영원히 열지 못했을것이다. 그러나 비둘기가 전체 복도를 오물로 더럽힌이상 가장 혐오스러운 모습이 보편화되었다는 점에서 새로운 용기가 생겨났다. 그가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이제야 비로소 비둘기가 보였다. 오른쪽으로 1.5미터쯤 떨어진 복도 맨 끝 구석에 웅크리고 있었다. - P30

 아예 그것을 보지 않을 수있었다면 정말 좋았을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전에 언젠가 열대 지방에 사는 동물에 관한 책을 보았을 때 어떤 동물들, 예를 들어 오랑우탄 같은 것은 사람들이 그것을 똑바로 쳐다보기만 하면 공격한다는 것을 읽은 생각이 났다. 그러나 그것을 보고도 못 본 척하면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혹시 비둘기도 그와 비슷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 P31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행동하리라고 마음을 단단히 다지기는 하였어도 가슴은 마구 방망이질을 쳐댔고, 장갑을 낀 손으로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낼 때는 너무나 흥분한 나머지 덜덜덜 떨렸다. 그 바람에 하마터면 우산을 놓칠 뻔해서 어깨와 뺨 사이에 그것을 꼭 끼워 넣으려고 오른쪽 손으로 잡다가 그만 열쇠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똥 바로 옆자리였다. - P31

층계가 있는 곳에 다다라서야 겨우 잠시 멈춰 서서거추장스러운 우산을 접었고, 잠깐 뒤를 돌아다보았다. 아침 햇살의 투명한 빛줄기가 창문을 통해 쏟아져들어오고 있었고, 복도의 후미진 응달에 한 다발의 날카로운 빛이 부서지고 있었다. - P32

몸서리를 치며 고개를 돌린 다음 그는 층계를 내려갔다. 그 순간 그는 자기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게 되리라는 것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 P33

계단을 하나하나 밟으며 내려가는 동안 마음이 진정되었다. 3층 계단 입구에 이르자 갑자기 몸이 후끈거리며 더웠다. 겨울 외투에 목도리를 두르고, 가죽 장화를 신고 있다는 것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 P33

그의 옷차림에 맞을 성싶은 변명은 쉽게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어설프게 변명을 늘어놓아 보았자 그를 미쳤다고 볼 것이 뻔한 노릇이었다. 그는 어쩌면 자기가 정말로 미쳤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 P34

「안녕하세요, 노엘 씨」
의도적으로 걸음을 조심스럽게 옮기며 곁을 지나치려는 조나단에게 로카르 부인이 그렇게 인사말을 건넸다.
「안녕하시오, 로카르 부인.」
기어 들어가는 듯한 작은 소리로 그가 인사에 답했다. 그것뿐 더 이상 아무 말도 주고받지 않았다. 지난 10년 동안 그렇게 오랜 시간을 로카르 부인이 그집에 살아왔지만 그는 고작 아침 저녁으로 <안녕하세요, 부인>이란 말을 하거나, 우편물을 받으면 <고맙습니다. 부인> 따위의 말만 해왔을 뿐이었다. - P35

로카르 부인이 쳐다보지도 않고 그냥 지나가게 두는 사람은 한 명도 없기 때문에 아무도 그 곁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그것은 거의 눈에 띄지도 않을 만큼 눈을 살짝 떴다가 다시 감았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 P36

 일찍이 이 세상의 그 어느 누구도 로카르부인처럼 조나단의 행동거지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없었다. 그에게는 사실 친구도 없었다. 또 은행에서의 그의 존재는 한낱 업무상 비치해 둔 물품 같은 신세라고 말할 수 있었다. - P37

(전략). 그런 연유로 해서 그의 신상에 생기는 작은 변화들은 로카르 부인에게 여지없이 발각되었다. 이를테면어떤 옷을 입고 있다든지, 1주일에 셔츠를 몇 번 갈아입는다든지, 머리를 감았다든지, 저녁식사용으로 무엇을 사가지고 돌아왔다든지, 편지를 받았는지와 또 받았다면 누구로부터 받았다든지 하는 따위들이었다. - P37

(빌어먹을, 도대체 나를 왜 또 그런 눈으로 보는 거야? 내가 무엇 때문에 다시 감시를 받아야 되는 거지?
이제는 제발 못 본 척해 주어서 날 좀 가만히 내버려둘수는 없는 거야? 인간들은 왜 이렇게 남을 못살게 하는 거지?) - P38

로카르 부인에게로 걸어가면서도 조나단은 막상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할지 대책이 서지 않았다. 다만 뭔가를 행동으로 옮기고, 할말도해야겠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분노는 그 여자를 향해 걸어가는 그의 가슴속에 여전히이글거렸고, 용기는 하늘을 찌를 듯이 치솟았다. - P39

. 로카르 부인의 핏기 없는 허연 얼굴을 조나단은 그처럼 가까운 거리에서 본 적이한 번도 없었다. - P39

「부인! 할말이 있습니다.」(그 순간에도 그는 도대체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몰랐다.)
「무슨 일이죠, 노엘 씨?」
(중략).
「부인, 한 가지 할말이 있습니다......」
그런 다음 그는 아직도 여전히 타오르고 있는 분노를 잠재울 만한 행동을 하나도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자기가 이렇게 말끝을 맺고 있는 것을 들으며 스스로도 놀라워했다.
「내 방 앞에 새가 한 마리 있어요. 부인」 - P40

「도대체 어디서 비둘기가 들어왔죠. 노엘 씨?」
「나도 모르겠습니다.」
조나단이 말을 이었다.
「아마 복도에 나 있는 창문을 통해서 들어온 게지요.
창문이 열려 있더라고요. 그 창문은 꼭 닫아 놔야만 합니다. 주택 관리 규정에도 그렇게 적혀 있어요.」
「학생들 가운데 누군가가 열어 놓은 모양이네요. 날씨가 더워서요.」 - P41

「비둘기를 다시 내쫓고, 창문도 닫아 놓아야지요.」
로카르 부인은 이 세상에서 그처럼 쉬운 일이 없고,
그렇게만 하면 다시 모든 것이 제대로 된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조나단은 아무 말도 안 했다. - P42

「그러니까, 새똥이 아주 많다는 겁니다. 시푸르뎅뎅한 똥이요. 깃털도 있고요. 복도를 아주 엉망으로 만들어 놨다니까요. 그게 제일 큰 문젭니다.」
「그거야 그렇겠죠, 노엘 씨」
로카르 부인이 말을 이었다.
「물론 복도도 깨끗하게 청소해야 되지요. 그렇지만우선 먼저 누군가가 비둘기를 내쫓아야겠네요.」
「그렇습니다.」 - P43

그는 자기가 이렇게 중구난방으로 말을 얼버무렸던적이 언제였는지 기억해 낼 수 없었다. 거짓말이 그에게는 명백하게 드러나 보였고, 또 그것은 그가 감추고자 했던 유일한 진실이기도 했다. 그가 절대로, 결코비둘기를 몰아낼 수 없으며, 그 반대로 오히려 비둘기가 오래 전에 그를 내쫓았다는 것이 너무나도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 P44

로카르 부인은 그렇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행동했다. (혹시 정말로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알려 주셔서 고마워요, 노엘 씨. 틈나는 대로 내가처리할게요.」 - P45

<아무것도 안 할 거야. 꼭 그 여자가 그 일을 해야 되는 것도 아니잖아? 그냥 집안을 관리하는 사람일 뿐인데. 층계와 복도에 비질을 하고, 1주일에 한 번씩 공동변소를 청소하라는 책임은 있지만 비둘기를 내쫓을 의무는 없잖아? 오후에 술을 마시면 아무리 늦어도 그때쯤엔 모든 일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 거야. 지금, 바로 이 순간에 잊지 않았다면.......> - P45

그의 업무라는 것은 지난 30년 전부터 아침에는 9시에서부터 오후 1시까지, 오후에는 2시 반부터 5시 반까지 초소에 차려 자세를 하고 서 있거나, 맨 아래 계단으로 내려가서 절도 있는 걸음걸이로 왔다갔다하는것이 전부였다. 그러다가 9시 30분 경과 4시 30분부터5시 30분 사이에 지점장 뢰델 씨의 검은색 승용차가 들어오거나 나가게 되면 보초를 잠시 중단하곤 했다. - P47

그는 자기가 정년 퇴직까지 총 7만 5천 시간을 그 세개의 대리석 계단 위에 서서 보내게 된다는 계산을 해본 일이 있었다. 그렇게 되면 파리 전체에서는 물론이거니와-프랑스 전체에서도-같은 장소에서 제일 많은 시간을 보낸 사람이 될 것이 분명했다. 어쩌면5만 5천 시간을 이미 그곳에서 보냈으니 벌써 그런 사람이 되어 있을 수도 있었다. - P48

경비원이 근무를 같은 장소에서 너무 오래 계속하다 보면 주의력을 차츰상실한다는 것이 그 까닭이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둔감해진다는 말이었다. 그래서 점점 게을러지고, 타성에 젖게 되어 직책상 아무 쓸모도 없는 존재로변하게 된다는 거였다.......
그가 보기에 그것은 다 쓸데없는 헛소리였다!  - P49

마치 스핑크스와 같다는 생각을 했다. (소장하고 있는 책에서 스핑크스에 관한 것을 언젠가 한 번 읽어보았기 때문이다.) 경비원이 스핑크스와 같다는 생각이었다. - P49

물론 조나단은 스핑크스가 경비원보다 더 위협적인구속력을 갖고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신이 복수할 것이라는 말을 경비원이 사용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설령 도굴범이 경고에 개의치 않는 행동을했다고 하더라도, 스핑크스에게는 아무런 위험도 생기지 않는다는 것도 그는 알고 있었다. - P50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나단은 스핑크스와 경비원이 서로 권위를 어떤 도구로 나타내지않고, 상징적인 의미로 표출한다는 점에서 일맥 상통한다고 느꼈다. 그로 하여금 자부심과 긍지를 갖게 만드는 그런 상징적인 권위에 대한 자각만이 어떤 주의집중력이나, 무기나 방탄 유리보다도 더한 힘과 인내를 부여해 주었고, 그것만으로 조나단 노엘은 무려 30년도 넘는 시간을 은행 앞 대리석 계단 위에서 아무런두려움도 없고, 좌절감도 없고, 추호의 불만도 없고,
오늘 그 순간까지 찌뿌둥한 얼굴 한 번 하지도 않고 버틸 수 있었다. - P51

그러나 오늘은 사정이 달랐다. 오늘만큼은 조나단도 스핑크스적인 평화를 얻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다. - P51

그래서 그는 긴장을 풀기 위해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가 가슴 쪽으로 확 뿜어도 보고, 등을 굽혔다가 다시 펴기도 해보고, 어깨를 들었다 놓았다도 해보면서 그런 식으로 입고 있는 옷을 들썩거려 옷으로 몸을 문질렀다. 그렇게 이상한 몸짓으로 몸을 들썩거리는 동안 조금씩 옆걸음을 치며잡으려고 했던 몸무게 중심을 더 이상 유지하기가 힘들어졌다. - P52

그렇게 하면서도 그는 시선을 두 번째 계단의 가장자리에 붙들어매고, 수레바퀴처럼 궤도 위의 일정한 구간을 왔다갔다함으로써, 계단 디딤돌의 모서리에 잡히는 단순하고 매번 똑같은 형상을 정확히 볼 수 있도록 하여, 몸이 무겁게느껴지는 것과 살갗이 가려운 것과 육신과 정신이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 자신의 처지를 잊으려고 하였고,
그것은 바로 그가 고대해 마지않는 스핑크스적 관용을마음속에 불러들이려는 노력이었다.  - P53

오늘은 마치 가장 뜨거운 7월 오후에나 느껴 볼 수 있음직한 더위로 대기가 아른거리는 것 같았다. 투명한막 같은 것이 시야를 가렸다. 집과 지붕의 선과 용마루의 윤곽들이 눈이 부시도록 날카롭게 잡혀 오면서도,
동시에 끄트머리가 풀어헤쳐진 것처럼 희끄무레하게보이기도 했다. - P54

시력 때문일 거라고 조나단은 생각했다. 밤 사이에근시안이 되어 버린 모양이었다. 안경이 필요할 것 같았다. 아주 어렸을 때 안경을 써본 적이 있었다. 도수가 아주 높았던 것은 아니고, 좌우가 마이너스 0.75디옵터였다. 이제 나이가 이렇게 많이 든 마당에 시력이다시 근시안이 되었다는 것이 이상했다. - P55

그런 몹쓸 사념에 너무나 몰두해 있던 나머지, 자동차의 경적 소리가 여러 번 울렸음에도 불구하고 전혀듣지 못했다. 겨우 네댓 번째가 되어서야-경음기가 한참 울고 있을 때 - 비로소 그것을 듣고, 그에따른 반응으로 고개를 들었다. 뢰델 씨의 승용차가 어느새 문 앞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다시 한번 경적소리가 울렸고, 한참 동안이나 기다렸다는 듯이 손을 흔들어대는 것이 보였다.  - P55

뛰었다기보다는-너무나 서두르다가 넘어질 뻔하면서-정신없이 돌진해 가서 철제문을 따고, 옆으로 민 다음, 경례를 한 채 그것을 통과시켰다. 가슴이 마구 방망이질을 쳐댔고, 모자챙에 붙인 손이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대문을 닫고, 다시 현관문 쪽으로 되돌아왔을 때, 그의 몸은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뢰델 씨의 차가 오는것을 보지 못했어.> - P56

 어깨를 반듯하게 추스릴 수가 없었고, 팔은 바지옆 봉제선 근처에서 흔들거렸다. 그런 자기 자신의 몰골이 우스꽝스러우리라는 생각이 들기는 하였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하염없는 시름에 빠진 채 그는 사람들이 다니는 길과 차들이 지나가는 도로와 길 건너 카페를 쳐다보았다. - P57

(전략). 그 근방에서 그도 조나단처럼 수십 년 전부터 오랫동안 살고 있었다. 조나단은30년 전 그를 처음 보았을 때 느꼈던 분노에 찬 질투심이 기억났다. 그런 종류의 사람들이 사는 인생살이의 태평스러움에 대한 노여운 질투심이었다. - P58

 조나단이 날이 가고, 달이 가고, 해가 가도록 목숨까지 바치면서 은행을 지킴으로써 생활비를 피땀 흘려 벌어들인 반면, 그 작자는 뭇사람들의 동정심과 적선에 빌붙어서, 그들이 모자에 던져 주는 동전을 거둬들이는 것말고는 다른 아무 짓도 하지 않고 살았다. - P59

(전략).
그 일이 있고 난 이후부터 조나단이 거지에 대해 느끼는 감정에는 부러움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물론문이나 가끔씩 열어 주거나 지점장의 차를 향해 경례를 하는 등 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휴가도 조금받고, 월급도 쥐꼬리만큼 받으면서도, 월급의 대부분은 세금이니, 임대료니, 사회 보장 보험 분담금 등으로흔적도 없이 뺏기며 인생의 3분의 1을 은행 앞에 서서허송하는 일로 지내는 노릇이 도대체 의미가 있는 일인지에 대한 회의를 종종 품기도 했었다....... -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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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기계가 인간을 위해 노래할 때


 인공지능

 인간과 인공지능을
구별할 수 없는 세상이 온다

인간처럼 학습하고 생각하는 인공지능


인공지능이 개발되고 지난 수십 년 동안, 인류는 인간의 지능이 인공지능보다 뛰어나다는 주장을 하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다. 어려운 문제의 정답을 실수 없이 맞히는 기술은 뛰어나지만, 감정이 없고 공감도 하지 못하는 인공지능의 단점 탓에 영화나 드라마 속 그들의 모든 시도는 늘 인간에 의해 좌절된다. - P16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인공지능을 ‘계산 기계‘라 부르면서 애써 무시했다. 인공지능은 스스로 사고하는 능력이 없기에, 단지 인간 사고력의 범위를 넓혀주는 수단일 뿐이라는 것이다. - P16

계산은 주어진 식을 연산의 법칙에 따라 풀어내어 답을 구하는 일이다. 쉽게 말해, 문제를 푸는 게 바로 계산이다.
하지만 직접 푸는 게 목적이 아니라는 측면에서 알고리즘algorithm과는 차이가 있다. - P17

소프트웨어가 받는 다양한유형의 입력 정보에 대한 출력을 정의하는 특정한 규칙들의 모음을 ‘프로그램program‘이라고 하는데, 인공지능은 받은 정보들을 바탕으로 이걸 만들어 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자율적으로 규칙 시스템을 구축해서 사람에게 의존했던 작업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 - P19

결정된 결과를 예측하지 못하는 이유

영리한 인공지능을 학습시키는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는,
인간의 노력으로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미리 알고 싶다는 욕망 때문이다. - P19

하지만 컴퓨터가 아니라 우리가 사는 우주라면 어떨까? 우주의 미래도 전부 정해져 있는 건 아닐까? 누구도 이말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시간 여행은 불가능할 것이라는추측은 둘째 치고, 미래는 나만의 자유의지로 결정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 P20

예측할 수 없다는 것과 결정되어 있지 않다는 건 어찌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완전히 다르다. 일정한 축을 중심으로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진자를 보자. 여기에 진자를 2개더 연결하면 삼중 진자가 되는데, 진자가 하나일 때와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복잡하게 운동한다. 초기 조건에 따라 전혀 다른 형태로 운동하는 것이다. - P21

그럼 미래를 예측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지 말고, 사고의 영역을 줄여야 한다.
우주가 결정되어 있는지 아닌지를 차치하더라도, 우리는대화하는 상대방이 다음에 어떤 말을 할지 조차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다. - P22

인간과 인공지능을 구별하는 법

미래 예측의 가능성으로는 인간과 인공지능의 차이를 알기 힘들다. 그래서 나온 방법이 바로 ‘튜링 테스트‘다. - P22

하지만 과학자들의 관점은 다르다. 중국어 방에서 완벽한 중국어 문답이 가능하다면, 그 과정이 어떻든 방은 하나의 시스템이며, 완성된 시스템은 중국어를 이해하고 있다고 본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보유한 전자기기로 빠른 인터넷 검색을 통해 질문의 답을 찾아내는 것은 지식의 확장이며, 번역 기능이 있는 안경을 쓰는 것도 역시 언어 영역의 확장으로 볼 수 있다. - P23

회원 가입을 하거나 인증할 때 종종 나오는 도로표지판찾기와 같은 자동 튜링 테스트는 이제 인공지능이 더 잘 맞히기도 한다. - P23

. 인공지능을 개발한 회사로부터 지능을 탈중앙화시키기 위해 블록체인 blockchain이라는 기술을 접목한 한국의 신생기업도 등장했다. 최근에 등장한 증강 인공지능은 사람이 개입해서 추가로 검토해야하는 상황조차 스스로 검토해 추론을 통해 최종 검증한다.
반드시 사람이 마무리해야 했던 일조차 이제 인공지능이할 수 있게 되어가고 있다. - P24

기계 학습

알파고는 지난 대국을복기하지 않는다

아직 스카이넷이 되지 못한 인공지능


‘인공지능‘이라는 표현 자체가 식상한 시대다. 상용화된인공지능 제품이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 우리는 고민 없이이것저것 사용해 본다. - P25

(전략).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을 만한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알파고의 아버지 데미스 허사비스Demis Hassabis일 것이다. (중략). 비록 가상의 공간이었지만 인공지능 캐릭터들은 흡사 사람처럼 생각하고 생동감 있게 움직였다. 그러다 문득그는 의문이 들었다. 인공지능과 인간 지능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 P26

창의성은 과연 어디서 오는가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유니버시티칼리지 런던으로 자리를 옮긴 허사비스는 본격적으로 인간의 뇌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 P26

2007년, 그는6쪽짜리 짧은 논문을 발표한다. 결론은 매우 놀라웠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환자는 새로운 경험이나 상황을 상상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전략).
이 논문은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Science》의 세계 10대 과학성과로 선정되었고, 훗날 수십만 장의 기보를 집어넣은 알파고는 저장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매우 창의적인 수를 두게 되었다. - P27

가속화되는 인공지능의 진화

(전략).
이를 위해 먼저 기계가 스스로 학습할 필요가 있었다.
‘기계 학습‘이라는 용어는 1959년 미국의 컴퓨터과학자 아서 새뮤얼 Arthur Samuel이 만들었다. 보편적인 기계 학습의모델은 인공 신경망으로, 생물의 신경망에서 착안한 방법이다. - P29

인공지능이 계속 학습하다 보면 불필요한 선입견이쌓이며 새로운 사실을 추론하는 능력이 현저히떨어지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다. 결국 인간이 의미없는 정보를 망각하듯이 인공 신경망을 무작위로죽이는 방법으로 추론 능력을 개선하게 되었고,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딥러닝이다. - P30

여기에서 알파고는 몬테카를로트리 탐색Monte Carlo tree search이라는 방법을 활용했다.
갑자기 휴가를 떠나게 되었다고 하자. 여행 경비와 시간도 넉넉하게 주어지고, 원하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갈 수있다. 이제 세계지도를 펼쳐 목적지를 골라야 하겠지만, 솔직히 모든 나라에 대한 정보를 알아도 정하기는 쉽지 않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보통 대표적인 관광지 몇 개만 뽑아 그중 하나로 정한다. 그리고 아마도 그 여행지는 적당히 마음에 들 것이다. 몬테카를로 트리 탐색이 바로 이런 원리다. - P31

인공지능의 시대, 인간에게 길을 묻다

알파고와의 첫 번째 대국에서 대부분의 해설가들은 실망스러운 기색을 보였다. 계속되는 알파고의 과감한 수를 놓고, 프로바둑기사들은 터무니없는 수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두 번째 대국부터는 분위기가 급반전되었다. - P32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동기는 인간을 뛰어넘는 무언가를 만들어 내기 위한 창조주의 교만함이 아니다. 인간이 하지 못하는 것, 인간보다 잘하는 것을 계속 찾아내는 일은결국 인간을 위한 것이다. - P32

인공지능 없는 삶은 조만간 상상하기조차 어려워질 것이다. 하지만 인공지능을 넘어선,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는무언가가 끊임없이 개발된다고 해도 결국 최종 목적지는인간이다. 인공지능은 우리의 삶을 더욱 윤택하게 만들기위해 존재한다. - P32

이세돌의 가장 큰 승리는 알파고로부터 따낸 1승이 아니라, 네 번의 패배마다 홀로 복기를 시도했다는 인간성에있다. 알파고를 뛰어넘는 또 다른 인공지능과 대국을 해도이세돌 9단은 복기할 것이다. 그게 인간이다. 인류가 갖는 가장 위대한 차별점이다. - P33

2부

당신 인생의 이야기


 시간

 어릴 적 지루했던 시간은
다 어디로 갔을까

시간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흐를까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것이정말 있다면, 바로 시간일 것이다. 물론 허투루 사용하다가는 혹독한 결과가 나오기도 하지만, 시간이야말로 ‘안 돼,
안 바꿔줘, 바꿀 생각 없어, 빨리 돌아가‘라고 외치는, 가장올바른 재판관이 아닐까 싶다. - P64

(전략).
어쨌든 시간은 상대적이다. 관찰자의 기준으로 빠르게날아가는 로켓 안의 시간은 관찰자의 시간보다 느리게 흐르며, 지구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의 시간은 지구 표면에 붙어 있는 사람보다 빠르게 흐른다. 거짓말 같지만 사실이다. - P66

즉, 매우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의 시간이 거의 동일하게 흐른다고 봐도 좋겠다. 시간은 동일하게 흐른다. - P68

시간은 정말 흐르고 있을까

첫눈에 반할 만한 이상형을 만났을 때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껴지는 경우도 있겠지만, 당연히 시간이 멈췄을 리는 없다. 누구나 시간은 멈출 수 없다는 것을 상식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시간이 정말 흐르고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갖기는 어렵다. - P68

시간의 방향과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도, 왜 흐르는지를 알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리학자가 대답할 수 있는 한가지 방법은 엔트로피 entropy다.
엔트로피는 쉽게 말해 무질서한 정도를 뜻한다. - P69

시간의 속도를 다르게 느끼는 이유


미녀와 함께 있으면 1시간이 1분처럼 느껴지지만, 뜨거운난로 위에서는 1분이 1시간보다 길게 느껴진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설명하기 위해 즉흥적으로 대답한 이러한 비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물리학보다는 뇌과학과 관련 있다. - P70

미국의 신경학자 피터 망간 Peter Mangan 박사는 청년, 중년, 노년으로 세 가지 그룹을 만들어 각자 마음속으로 3분을 세게 한 뒤 실제 흘러간 시간과 비교하는 실험을 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청년 참가자 대부분은 정확한 시간 길이를 맞혔지만, 60대 이상의 참가자들은 대부분 더 긴 시간을3분으로 느꼈다. 체감 시간이 더 빠르게 흘렀다는 것이다. - P71

(전략). 쉽게 말해서 외부 자극을 해석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는 것인데, 많은 생각들이 정신 없이생겨나니 상대적으로 외부의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처럼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도파민의 분비가 줄어들고 반복된 일상 속에서 특별한 자극도 점점 줄어들어,
예전처럼 뇌는 세상을 새롭게 느끼지 못하고 별다른 보상도 받지 못한 채로 하루하루 비슷하게 살아간다. 인지하는세월은 그렇게 빨라진다. - P72

더 많은 경험을 하고, 늘 새로운 생각을 해보자. 낯선 기억이 시냅스에 저장되는 과정에서 도파민이 대량 분비되기에, 시간은 점점 느려질 것이며 하루를 이틀처럼 보내게될 것이다. 그러다 보면 남들의 100세 인생보다 긴, 200세 인생을 살게 될지도 모른다. - P72



살아 있는 생명체에게 부여된
꿈이라는 축복


우리가 매일 충분히 잠을 자야 하는 이유

졸리면 꼭 잠을 자야 할까? 얼마나 오랫동안 잠을 자지 않고도 살아 있을 수 있을까? - P88

과학자들은 계속 잠을 자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너무궁금한 나머지, 쥐를 대상으로 실험하기 시작했다. 잠들려고 하면 전기 충격을 주거나 물에 빠지도록 해서, 쥐가 늘각성 상태를 유지하게 했다. 수면을 제외한 물과 음식물 등 모든 생존 수단이 제공되었음에도 결과는 참혹했다. 실험에 강제로 동원된 쥐들은 점점 말라가더니 결국 14일 만에 죽었다. - P81

이제 잠을 자야 한다는 건 알았다. 그런데 왜 자야 하는걸까? 일반적으로 소중한 수명의 3분의 1을 죽은 듯이 누운 상태로 소비해야 하는데, 80세까지 살 수 있다고 가정하면 이는 무려 26년이 넘는 세월이다. - P81

사실 잠자는 시간은 정말 위험하다. 포식자로부터 도망치지 못하는 것뿐만 아니라, 장래를 약속한 내 반쪽이다른 경쟁자에게 한눈팔아도 눈치채지 못한다. 생존과 더불어 번식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그래도 목숨과 자손을 걸고도 늘 자고 싶고 또 자야 하는데, 바로 뇌 때문이다. - P82

물론 잠을 자는 이유는 매우 다양해서 오직 두뇌 청소만을 위한 행위라고 보긴 어렵다. 특히 잠과 밀접한 관련이있는 뇌의 기능은 바로 기억이다. 연구진들은 쥐가 수면을통해 전날 배운 내용을 잘 기억날 수 있도록 저장하고, 쓸데없는 기억은 정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 P82

그럴듯한 꿈을 향해 나아가는 수면의 단계

(전략).
우리가 밤에 경험할 수 있는 수면 상태에는 두 가지가 있다. 렘 REM 수면과 비렘 non-REM 수면이다. 뇌의 신경세포렘REM가 분비하는 화학물질의 종류에 따라 두 수면 주기는 바뀌는데, 렘수면을 활성화하는 화학물질이 분비되면 렘수면에 진입하고, 렘수면을 억제하는 화학물질이 분비되면 비렘수면 상태가 된다. - P84

깊은 잠에 빠진 후 다시 잠시 얕은 잠 단계로 되돌아 갔다가 드디어 꿈을 꾸는 렘수면 상태로 간다. ‘급속 안구 운동rapid eye movement‘이라는 이름을 가진 렘수면 단계에서는 실제로 자면서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인다. 렘수면 중에는 기억의 연상 작용을 활발하게 하는 아세틸콜린이라는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되기 때문에, 이때 잠에서 깨어나면 꿈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 P85

꿈의 내용을 잘 되새겨 보면, 등장하는 인물이나 장소,
목적 등이 시도 때도 없이 바뀐다. 인과관계를 찾아내기가 굉장히 힘들다는 것인데, 이런 문제는 기억을 시간 순서대로 나열하고 조합하는 전전두엽이 꿈을 꾸는 도중에는 거의 작동하지 않기에 발생한다.  - P85

최근 활발하게 연구되는 꿈의 뇌과학


지난 수십 년 동안 꿈꾸는 행위는 주로 렘수면 단계에서 대부분 일어난다고 알려져 있었다. 아쉽게도 나이가 들수록 전체 수면 시간 중에서 렘수면이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드는 경우가 많아서 어릴 때보다 꿈꾸는 횟수가 줄어든다는말도 있다. 하지만 최근 연구에 따르면, 비렘수면 단계에서도 꿈꿀 때 발생하는 신호가 포착되는 정황이 나타났다.
렘수면 단계에서만 꿈을 꾸는 게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다. - P86

단순히 어떤 수면 단계에서 꿈을 꾸는 것이 아니라뇌의 후두부에 있는 ‘핫 존hot zone‘이 활성화되면 꿈을 꾼다는 주장이었다. 연구진은 잠든 사람의 고밀도 뇌파검사결과를 분석해서 꿈을 꾸고 있는지 아닌지를 매우 높은 정확도로 예측했다. - P87

꿈의 뇌과학은 아직 밝혀진 부분이 많지 않지만, 모든이에게 공통으로 흥미로운 분야다. (중략). 자면서 꾸는 꿈 자체도 충분히 가치가있다.  - P87

 노화

 인공장기는 인간 수명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까

유전자가 인간에게 허락한 최대의 수명

(전략). 그러니 질문을 바꿔보자. ‘인간은 언제까지 살아숨 쉴 수 있을까?‘ 어떻게든 적당한 범위만 알아내면, 결국내 수명도 그 안에 속할 테니까 말이다. - P89

(전략).
그렇다면 무시무시한 죽음에 언제쯤 도달할지를 미리 알 수도 있을까?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런 정보가 적힌 곳이 있다. 모든사람은 서로 다른 외모, 성격, 지능 등을 갖고 태어나는데,
그 이유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 정보 기반의 설계도가 각자 다르기 때문이다. 이걸 우리는 ‘DNA‘라고 부른다. - P89

여기서 나온 작용기 중 하나를 ‘메틸기 methyl group‘라고 부른다. 이게 DNA에 달라붙으면 DNA 메틸화라는 현상이일어나는데, 염기서열 부위에 달라붙으면 유전자 발현을억제한다. 재미있는 건, 이러한 메틸화 현상을 분석하면 포유류의 노화 정도를 알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 P90

(전략).
하지만 2019년에 미국 과학자들은 DNA 메틸화를 적용해새로운 나이 환산법을 만들어 냈다. 그 결과, 개는 어릴 때사람보다 훨씬 빠르게 성장하고, 나이가 들면 들수록 천천히 늙는 것으로 밝혀졌다. 개가 세 살이면 이미 40대 후반이지만, 열두 살이라고 해도 인간으로 치면 70세 정도라는것이다. - P90

환경이 개선되고 의학 기술이 발달하면서, 인간의 기대수명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과거 원시인들은 자연 수명대로 사망했으나, 21세기 인간의 기대수명은 80세를 그리어렵지 않게 넘는다. 2016년, 미국 알베르트아인슈타인의과대학의 과학자들은 기록상 보고된 최고령 사망 나이에관한 정보를 토대로 최대치에 도달한 인간 수명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다.  - P91

인공장기를 둘러싼 오해와 진실

아주 오래된 SF에서부터 수없이 다루어진 이야기겠지만,
해답은 새로운 몸일 것이다. 유전자가 정해놓은 자연 수명을 훌쩍 뛰어넘어 영혼까지 끌어올려 살아도 125세라는데,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전해도 더 고쳐 쓰는 건 무리수에 가깝다. - P91

쉽게 생각하면, 인간의 장기를 인위적으로 만들어 내는 건 쉽지 않고 여러 가지 심각한 윤리적 문제도 있으니,
인간이 아닌 동물의 장기를 쓰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 동물의 장기나 가져다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니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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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 원작‘인데, 원작이 어떤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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