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더 나은 세상을 위한 BIT의 등장

우리는 모두 사회적 동물이다. 사회적 본능과 공통의 충성심을 바탕으로 집단을 형성하고 유지하려는 우리의 특성, 동기, 문화는 여러 의미에서 곧 인류의 역사다. 인간에게 이러한 사회적 특성이 없었다면 사회 또한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 P4

21세기,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사회적으로 행동하는 인간이 되었다. 우리는 우리의 의지에 따라 다양한 사회적 범주social category 혹은 집단에 속할 수 있고,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다양한 수단도 가지게 되었다. - P4

그러나 타인과 조화를 이루며 살고자 하는 우리의 본능은 우리를 긍정적이지 못한 방향으로 인도하기도 한다. (중략). 이는 2007~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의 징후였다. - P5

금융 위기가 계속되는 동안에도 다수의 전문가와 학자들은 선진 서구권에서는 뱅크런 사태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태도를 고수했다. 단순히 법률이나 역사의 문제가 아니었다. 사람들이 이성적으로 행동할 것이라는, 즉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통적인 경제사상에 입각한 믿음이었다. - P6

행동경제학 분야는 학계에서 이미 크게 인정을 받았지만(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 교수는 아모스 트버스키Amos Tversky와 1979년 함께 발표한 전망 이론Prospect theory으로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대중의 인식이나 정책 입안자들을 사로잡지는 못했다. 하지만 2008년 출판된 리처드 탈러Richard Thaler와 캐스선스타인 Cass Sunstein의 책 《넛지Nudge》와 금융 위기는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 P7

지난 몇 년간, 세계 각국의 정부는 탈러와 선스타인(그리고이들의 추종자들)의 자문에 귀를 기울여왔으며, 소위 ‘넛지 유닛(Nudge Unit, 더 나은 시민의 선택을 지지함으로써 공공복지를 강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이라 불리는 단체가 속속 등장했다. - P8

2010년 이루어진 BIT의 출범은 두 가지 이유에서 획기적이었다. 첫째, BIT는 사람들의 실제적 사고방식에 대한 심리적 통찰을 바탕으로 더욱 현실적인 개인의 행동 모델을 정계에 소개했다. 둘째, 이론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데이터에 대한 의존도를 높였다. - P8

대공황, 넛지, 그리고 경제학에서 말하는 행동적 혁명behavioral revolution은 대부분 인간의 인지적 실패, 즉 행동 편향behavioral bias이라 불리는 인간의 뇌가 가진 단점이자 인간의 행동을 유도하는 속임수에 중점을 두고 있다. - P9

행동경제학의 혁명으로 소셜 네트워크의 파급 효과에 대한인식이 재고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효과는 또 다른 혁신으로 인해 증폭되었다. - P10

우리의 의사 결정에 사회적 본능과 소셜 네트워크가 미치는 영향이 증가하면서 기술 기업이나 정치인들을 포함한 대부분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이를 이용할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 P10

(전략).
이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사실이지만 부정적인 사실에만 지나치게 집중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사람들은 안전과 존중, 행복을 제공하는 사회적 집단의 힘을 너무 쉽게 망각한다. - P12

이 책의 첫 번째 파트에서는 서로 다른 사회적 집단에 속한사람들 사이의 상호 작용, 더 나아가 ‘우리‘라는 분류에 속한 사람들 사이의 상호 작용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 P13

이 질문에 관해서는 책의 두 번째 파트에서 중점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또한, 리처드 탈러와 캐스 선스타인의 저서 《넛지》를 바탕으로 한 사회적 선택 설계social choice architecture에 관해 소개할 것이다. - P14

 우리는 집단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행동을 규범으로 이해하지만, 이 규범에 대해 종종 잘못된 인식을 지니기도 한다. 때문에, 긍정적인 규범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거나 부정적인 규범에 대한 정보를 줄임으로써 긍정적인 행동 변화를 끌어낼 수 있다. - P15

(전략). 넛지의 한계는 여기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만약 집단과 구성원 간의 관계가 약화되었다면, 사회적넛지는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 P16

책의 마지막 파트에서는 사회적 자본에 영향을 미치는 세가지 유형의 개입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 P16

이 책에서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는 소속감과 신뢰를 고양하고, 차별과 복종은 줄어드는 사회에 대한 로드맵을 그리는 것이다. - P17

사회적 본능은 우리를 좋은 방향으로 인도하기도 하고, 나쁜방향으로 인도하기도 한다. 환경에 가해지는 작은 변화조차도 이러한 방향성에 큰 차이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이 이해하기를 바란다. - P17

2부

사회를 조종하는
넛지의 힘


모든 것에 꼬리표를 붙일 수는 있으나,
모두에게 꼬리표를 붙일 수는 없다.
순수의 시대, 이디스 워튼(The Age of Innocence, Edith Wharton)

4장 스스로를 포장하는 사람들

(전략).
이는 사람들을 더 힘 있고 대의적인 민주주의라는 강력한가치로 유도하기 위해 사용되는 공유 정체성shared identity의 한 예이다.
실제로, 사회적 정체성 이론가들은 공동의 사회적 집단이라는 인식이 사회적 영향력과 조직의 기초라고 주장한다. 주어진 상황에서 다른 사람과 집단 소속감을 공유한다고 인식할 때, 사람들은 공유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 그 사람과 의견이 일치하기를 기대한다 - P100

집단 동일화group identification의 과정은 대략 다음과 같다.

1. 스스로를 특정 집단으로 분류한다. 사회 정체성 이론socialidentity theory에서는 이러한 분류가 합의된 것이기를 요구한다. (후략).

2. 스스로를 이 집단의 다른 구성원들과 점차 가까워지고 있으며, 공통점도 많아지고 있다고 여기기 시작한다.

3. 우리는 우리의 집단을 다른 집단에 비해 특별하게, 더 좋게, 더 바람직하게 만드는 것들을 강조함으로써 속해 있는 집단을 ‘긍정적으로 차별화하고자 한다. (후략). - P101

이상적인 구성원 되기

흔히 한 개인의 사회적 집단이 쉽게 정해진다고 생각할 수있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성별, 인종, 국적, 섹슈얼리티, 나이와같은 명백한 특징에 근거하여 사회적 집단에 가입한다. - P102

이러한 예는 ‘정체성 부각identity salience‘이라는 개념을 끌어낸다. 이는 특정 상황에서 어떤 정체성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지를 의미한다. - P104

이러한 과정들의 밑바탕에는 집단의 ‘이상적인 구성원에 관한 지속적인 탐구와 절충이 있다. 집단의 이상적인 모습은 구성원들에게 모범이 되는 특성이나 행동의 집합체이다. 즉 ‘우리는 어떻게 하는가‘, 그리고 ‘우리를 차별화하는 것은 무엇인가다. - P105

우리가 속해 있는 집단은 우리의 행동에 단순한 대화 이상의 영향을 미친다. 비록 이 분야의 연구가 아직 초기 단계에 있지만, 특정 행동이 그들의 확립된 사회적 집단 또는 그들이 속하고싶은 집단의 모습과 일치한다는 것을 보았다. - P108

•소속감과 차별성 사이의 줄다리기

앞서 살펴보았듯이, 우리는 머릿속을 떠다니는 많은 집단 정체성group identity을 동시에 가질 수 있다. 따라서 사람들이 특정 집단과 동일시하는 정도가 어떻게 변화하는가라는 흥미롭고 중요한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중략).
초기의 연구에서 집단 동일화의 강도는 주로 자존감과 연관된다고 제시했다. 즉 자신에 대해 더 좋은 감정을 느끼게 만드는 집단과 더 많이 동일시한다는 것이다.  - P110

사실 우리가 정말 추구하는 것은 ‘최적 차별성optimal distinctiveness‘이라 불리는 개념이다. 인간이 특정 사회적 정체성에 대해 동일시하는 정도는 그 집단이 소속감과 타당성에 대한 욕구와 차별성과 개성에 대한 욕구 사이에서 얼마나 균형을잘 맞추는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 P111

무엇이 우리를 특정한 정체성과 동일시하는 정도에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또 다른 힌트는 BIT와 킹스칼리지 런던 King‘s College London이 함께한 연구에 있다. 해당 연구는 킹스칼리지 신입생들의 경험을 이해하기 위해 수행되었다.
(중략).
한편, 이 설문 조사에서 저소득층 학생들이 킹스칼리지 런던의 모든 것‘을 최우선으로 동일시할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는 것을 발견했다. 아마도 저소득층 학생들은 대학의 상징적 가치와 학창 시절 친구들에 비교해 최상위권 대학에 다니는 것이 그들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더 절실히 느꼈을 것이다. 이러한 학생들이 학과 과정 동료들과 강한 대인 관계를 맺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이에 대해 11장에서 더 살펴볼 것이다). - P113

직장은 일련의 단계적인 정체성 집단을제공하여 ‘전형적인‘ 노동자에 대한 인식을 형성하고, 다른 집단과 비교하도록 유도한다. 사람들은 조직 전체, 지점이나 현장, 업무 집단, 규율이나 지위와 관련된 사회적 정체성을 가질 수 있으며, 이러한 정체성은 일하는 동안 서로 중첩되고 상호작용한다. 이것이 공동의 목적(또는 조직 내의 다른 영업 부서나 스포츠의 상대 팀과 같은 공동의 라이벌)이 조직의 단결을 위해 중요한 이유이다. - P115

사회 정체성 이론: 편견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

지난 1장에서 증가하는 정치적 정체성political identity의 일치를 살펴보았다. (중략). 한 조사에 따르면, 자신이 속한 다양한 사회적 집단을 비슷하거나 심지어 겹치는것으로 여기는 응답자들은 집단의 규범을 위반한 다른 사람들을 처벌하고 다른 집단을 차별할 가능성이 더 큰 것으로 밝혀졌다. 놀라운 일은 아니다. - P115

하지만 점차 분열되는 사회, 혹은 집단에 대해 무엇을 할 수있을까? 집단이 서로 충돌하는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 개발된사회 정체성 이론이 집단이 어떻게 조화롭게 살 수 있는지를 이해하는 데도 사용될 수 있을까?
집단 간의 갈등은 인간이 사회적 동물인 만큼 피할 수 없는 인간사회의 특징으로 여겨졌지만, 사회 정체성 이론은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는 비교적 새로운 분야이다. - P116

또한, 만약 우리가 타인에게서 편협한 모습을 본다면 우리는그들에게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것이다. 특히 그들이 우리의 사회적 집단에 속해 있다면 말이다. - P117

다른 집단 구성원들과 교류하는 것이 가치 있는 일일 수 있다는 연구도 있다. 사람들은 어느 집단과의 관계가 깊고 조화로워질 때까지는 그 집단 사람들과 더 교류하고자 하며, 다른 집단 사람들과는 마주치지 않으려 한다. - P118

(전략). 소셜 미디어는 이러한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자신들을 ‘페이스북 거품 Facebook bubble‘ 안으로 넣어두고 자신과 반대되는 사회적 집단이나 견해를 가진 사람들을 절대 마주치지 않을 수있다. - P119

특정한 심리 활동이 자신과 자신이 속한 사회적 집단 밖의 사람들 간에 거리를 두려는 경향을 줄일 수 있다는 흥미로운 연구가 있다. - P119

상대방의 관점에서 어떤 문제에 대해 생각하도록 하는 ‘조망수용 Perspective-taking‘ 역시 타인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 관념을 줄이는 흥미로운 방법이다. - P121

타인에 대한 우리의 태도와 고정 관념은 우리가 속한 사회적 집단 내에 떠다니는 정보에 의해 형성된다. (중략). 앞서 이 장에서 살펴보았듯이, 이는 집단의 자연스러운 부분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다른 집단과 차별화하고, 그들보다 더 정정당당하거나 의욕적이라고 느끼기를 원한다. - P122

이 장에서 우리는 사회적 집단의 형성에 대해 알아보았다. 집단 구성원들은 ‘이상적인 구성원의 기준을 수정하며 지속적으로 집단에 참여하고, 구성원들이 이러한 정형화된 모습과 닮기를 기대한다. (중략).
이제 우리는 정보나 기대가 집단에서 어떻게 흘러가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이에 사람들의 사회적 특성 중 가장 좋은 면을 끌어내려면 팀이나 직장, 정책을 어떻게 설계해야 하는지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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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를 사유로 노력하지 않거나 혹은 그러한 것을 정당화 한다는 생각은 의외로 오래되었다는 것을 깨닳았다.

서문-좋은 시대와 나쁜 시대를
투영하는 거울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주장했다. 공화국의 시민은 교육을 받고, 제각기의 장점에 따라 통치자, 보조자, 그리고 직공의 세 계급으로 배정되어야 한다. 이러한 서열이 지켜지고 시민들이 자기에게 부여된 지위를 받아들일 때 비로소 안정된 사회가 이루어진다. - P63

이 책은 플라톤 설화의 과학판(scientific version)에 대한 것이다. 그러한 주장 일반을 생물학적 결정론(biological determinism)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 P65

결정론자들은 흔히 과학이 사회와 정치의 오염에서 자유로운 객관적지식이라는 전통적 권위에 호소하며 자신들의 주장을 펴왔다. - P65

칼 C. 브리검 (Carl C. Brigham)은 이른바 선천적인 지능을 측정할 수있다는 테스트에서 낮은 점수를 얻은 남유럽과 동유럽의 이민자들을 배척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현재 자신의 지적 능력을 유지하거나 높이기 위해 취해야 할 방법은 정치적 편의주의가 아니라 과학에 의해 명령되어야 한다(1923)." - P66

이처럼 생물학적 결정론이 권력을 쥔 집단에게 명백한 유용성을 갖기때문에 앞에서 인용한 부정에도 불구하고, 생물학적 결정론 역시 정치적 맥락에서 발생한 것이 아닌지 의심할 수 있을 것이다. - P66

상당히 오래 전에 콩도르세 (Condorcet)는 훨씬 간결하게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자연 자체를 정치적 불평등이라는 죄의 공범자로 만들었다."
이 책은 결정론자들의 주장에서 나타나는 과학적인 약점과 그 정치적맥락을 밝히려는 것이다 - P67

과학은 인간이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활동이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배태된(socially embedded) 활동이다.* - P67

 하지만 나는 일부 과학사가 그룹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과대확장(overextension)에 대해서는 동조하지 않는다. 그것은 과학적 변화가 사회적 맥락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진리는 그 문화적 가정을 제외하면 무의미한 개념에 불과하기 때문에 과학은 영원한 답을 제공할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나 역시 현역 과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동료들의 생각을 공유한다. - P68

그러나 숱한 과학적 주제에 관한 역사는 두 개의 주된 이유 때문에 실제로는 이러한 사실에 제약받지 않았다. 첫째, 일부 주제에는 엄청난 사회적 중요성이 부여되었지만, 신뢰할 수 있는 정보는 거의 주어지지 않았다. 사실과 그 사회적 영향의 비율이 극히 낮을 때, 과학적 태도의 역사는 사회적 변화의 간접적인 기록에 지나지 않는다. (중략).
둘째, 상당수의 적절한 답이 사회적 선호(選好)를 정당화시켜줄 수 있는 제한적 방식으로만 과학자들에 의해 정식화된다. - P69

과학은 그 기묘한 변증법에서 벗어날 수 없다. 과학은 자기를 둘러싼문화 속에서 배태됨에도, 자신을 키워낸 가정 자체를 문제삼거나 때로는 뒤엎기까지 하는 막강한 소작인인 셈이다. - P70

생물학적 결정론은 한 사람이 한 권의 저서에서 다루기에는 지나치게 큰 주제이다. - P70

이 대목에서 두 번째 오류에 대해 살펴보자. 그것은 ‘서열화(ranking)‘
이다. 사람들에게는 복잡한 변이를 점차 상승하는 단계로 질서 있게 늘어세우려는 버릇이 있다. 진보와 이런 점진주의는 서양사상에 가장 깊이스며든 은유이다- 이 주제에 대해서는 러브조이(Lovejoy)의 존재의 대사슬(great chain of being)*에 관한 고전적 에세이 (1936)나, 진보의 개념에 대한 버리(Bury)의 유명한 논문 (1920)을 참조하라. 

*옮긴이 가장 하등한 것에서 인간에 이르기까지 자연계의 모든 생명이 연속적인 하나의 사슬을 이루고 있다는 생각으로, 생명을 연속적인 위계로 이해하는 사고의 뿌리에 해당한다. - P71

 정량화란 각 개인에게 주어지는 하나의 수로 지능을 측정하는 방법이다.** 이 책은 하나의실체로 지능을 추상화하고, 뇌 속에 그 위치를 부여하고, 개인별 수치로정량화하고, 더욱이 억압받고 불리한 위치에 처한 집단들이-인종, 계급, 성별-선천적으로 열등하며 그들의 낮은 사회적 지위가 당연하다는것을 찾아내기 위해 사람들을 하나의 가치 체계 아래 서열화하는 데 이 수치가 이용된 문제를 다룰 것이다.


**피터 메다워 (Peter Medawar, 1977, p13)는 복잡한 양에 단일한 수치를 부여하려는 갈망에 대한 또 하나의 흥미로운 사례를 제시했다. 예컨대 인구통계학자가 인구 동향의 원인을 ‘생식력‘이라는 단일한 척도에서 구하려고 하거나 토양학자가 토양의 성질을 하나의수치로 추상화하려는 열망 등이 그런 경우이다. - P72

지능이 (또는 최소한 그것에 해당하는 중요한 부분이) 단일하고, 선천적이며, 유전가능하고, 측정가능한 실체라고 가정할 때, 두개계측학이 19세기를 대표했다면 지능 테스트는 20세기를 대표했다. - P73

나는 과학자나 역사가들의 전통적인 관점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사용해, 관습에 사로잡히지 않고 이러한 과제를 다루려고 시도했다. - P74

나는 두개계측학과 지능 테스트의 고전적 자료들을 다시 분석하는 데초점을 맞추었다. 그외에도 결실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많이 있겠지만, 다른 방법을 사용하기에는 힘이 부치고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분석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 P74

(전략).
야간의 주택침입자를 모두 탄산가스로 죽여야 한다고 생각한 우생학자W. D. 맥킴(W. D. McKim) 박사의 사례(1900)를 비롯해서, 19세기 말미국 여행길에 아일랜드인 한 사람이 흑인 한 사람씩을 죽이고 그 죄로교수형을 당하면 인종문제는 말끔히 해결된다는 쓸데없는 조언을 했던영국의 한 교수의 사례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많다.*



*역시 너무 중요해서 제외할 수 없는 비교적 최근의 사례로는 의심쩍은 행동을 변호하는데 생물학적 결정론을 들먹인 자칭 야구철학자인 빌리 (Bill Lee)를 들 수 있다. 그는 빈볼을 정당화하면서 이렇게 말했다(「뉴욕타임스」 1976년 7월 24일자). "나는 대학에서 세력권의 명령(Territorial Imperative)』이라는 책을 읽었다. 남자는 항상 거리에 있는 그 무엇보다 주인의 집(home)을 강력하게 방어해야 한다. 나의 세력권은 타자에게서 멀리 떨어져있다. 만약 타자가 그곳에서 나와 공을 치려 한다면, 나는 공을 그에게 가깝게 붙여 던지지않을 수 없다." - P76

나는 생물학적 결정론의 최근 부활 상황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생물학적 결정론의 개별 주장은 일반적으로 수명이 무척 짧기 때문에 그런 주장에 대한 반론은 잡지나 신문 기사 정도로 족할 것이다. (중략). IQ 100 이하인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단종(斷種)을 하면 보상금을 준다는 쇼클리(Shockley)의 제안이나 XYY 대논쟁, 또는 도시폭동을 폭도의 신경증으로 설명하려는 시도 등이 그런 예에 해당한다. - P78

사람은 이 세계를 단 한 차례 지날 뿐이다. 비극 중에서도 생명의 성장을 저지하는 것만큼 비참한 비극은 없다. 불공평함 역시 내부에 있다고 잘못 인식되어 외부에서 부과한 제한 때문에 노력하거나 희망을 가질 기최조차 부정되는 것만큼 심각한 불공평함은 없다. - P78

5장

미국의 발명품, IQ


미국의 발명품, IQ


비네의 원칙 딱지를 붙이지 마라비네. 두개계측에 손을 대다소르본 대학의 심리학실험실 실장이었던 알프레드 비네(1857-1911)는 지능측정 방법을 연구하기로 결심했다. - P253

그는 이후 3년 동안 두개계측에 대한 아홉 편의 논문을 1895년에 자신이 창간한 잡지인 『심리학 연보(L‘Année psychologique)』에 발표했다.
그러나 이 작업이 끝날 무렵 그의 확신은 흔들리고 있었다. 초등학생의 머리에 대한 다섯 편의 연구는 그가 가지고 있던 신념을 무너뜨렸다. - P254

비네가 차이를 발견했지만 그것은 주목받을 만큼 크지 않았고, 우수한학생이 더 큰 평균신장을 기록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1.401 대 1.378미터). 대부분의 측정값은 우수한 학생에게 유리했지만, 우수한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의 평균적인 차이는 몇 밀리미터에 불과했다. - P254

비네는 자신의 피암시성(suggestibility)-무의식적 편향에 의한 집착또는 ‘객관적인‘ 정량적 자료가 선입관에 이끌려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경향성-에 대한 비범한 연구를 통해 스스로에 대한 회의에 박차를 가했다. 이것은 이 책의 기본적 주제에 해당하는 실험이다. - P255

만약 모든 과학자가 이처럼 자신을 솔직하게 검증했다면 상황은 훨씬 나아질 수 있었을 것이다. 비네는 이렇게 썼다(1900, p.324). "나는 나자신에 대해 관찰한 것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작정이다. 다음에 기술한세부사항은 대부분의 저자들이 발표하지 않은 것이고, 다른 사람들에게알려지기를 원치 않는 것이다." - P255

결국 비네는 패배의 구렁텅이에서 작고 불안한 승리를 건져올린 셈이다. 그는 자신의 모든 표본을 다시 조사해서, 각 집단의 최고값과 최저값에 해당하는 다섯 명의 학생을 분리하고 중간에 해당되는 모든 표본을 배제했다. 양극단의 차이는 훨씬 크고, 더 일관적이었다. - P256

비네 척도와 IQ의 탄생

비네는 1904년에 다시 지능 측정에 도전했는데, 과거의 좌절을 기억하고 다른 방법으로 전환했다. 그는 자신이 두개계측의 ‘의학적‘ 접근방식이라고 불렀던 기존의 방법과 롬브로소의 해부학적 낙인 연구를 포기하고, 대신 ‘심리학적 방법을 채택했다. - P257

1904년에 비네는 교육부장관으로부터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목적을 위한 연구를 위임받았다. 그것은 보통 학급에서 학습성적이 떨어지는 학생들을 식별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으로, 일종의 특별교육의 필요성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 P257

과거의 테스트와 달리 비네의 척도는 다양한 활동들의 뒤범벅이었다. 그는 여러 가지 능력에 대한 테스트를 충분히 혼합하면, 아이들의 일반적인 능력을 단일한 점수로 추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 P257

비네는 1911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 척도의 세 가지 버전을 발표했다. 1905년의 최초 버전에서는 단지 난이도 순서로 과제들을 배열했고, 1908년의 버전은 오늘날 이른바 IQ를 측정하는 데 사용되는 기준을 확립했다. 비네는 각각의 과제에 특정 연령수준을 지정해서, 보통 정도의능력을 가진 아이들이 그 과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최저연령을 정했다. - P258

 1912년에 독일의 심리학자 W.슈테른(W. Sterm)은 정신연령과 생활연령의 차가 아니라 정신연령을 생활연령으로 나눈 값*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그 결과 지능지수(intelligence quotient), 즉 IQ가 탄생했다.


*나누기가 더 적합한 이유는 여기에서 중요한 것이 절대적인 값이 아니라 상대적인 값이고, 정신연령과 생활연령 사이의 차의 크기이기 때문이다. 정신연령 2세와 생활연령 4세 사이의 2년의 차는 정신연령 14세와 생활연령 16세의 차인 2년보다 훨씬 큰 결함을 나타낼수 있다. 비네의 뺄셈 방법은 두 사례에 같은 결과를 주지만, 슈테른의 IQ 측정법에 의하면처음 사례는 50. 두 번째 사례는 88이 된다(슈테른은 실제 지수에 100을 곱해서 소수점을없앴다). - P258

지능에 대한 비네의 일반적인 접근방식과는 대조적으로, 그의 척도에서 가장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측면은 그것이 실천적이고 경험적인 쪽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다. - P259

(전략).
비네가 이처럼 신중한 자세를 취한 데에는 그만한 사회적 동기가 있었다. 그는 자신의 실용적인 고안물이 하나의 실체로 물화(物化)될 경우, 도움을 필요로 하는 아이들을 식별하기 위한 지침이 아니라 오히려 지울수 없는 낙인으로 왜곡되어 악용될 가능성을 크게 두려워했다.  - P260

비네는 IQ를 선천적인 지능으로 인정하는 것은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IQ를 정신적 가치에 따라 모든 학생을 서열화하는 일반적인 장치로사용하는 것도 거부했다. 그는 자신의 척도를 오직 교육부장관으로부터 위임받은 한정된 목적에 활용하기 위해서만 고안한 것이었다.  - P261

그러나 비네는 한 가지에 대해서만큼은 확신을 품었다. 그것은 낮은학업 성적의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자신이 만든 척도의 목적이 제한을가하기 위한 딱지붙이기가 아니라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고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식별이라는 점이다. - P262

엄밀한 유전적 결정론자와 그 반대자와의 차이는 일부 풍자만화가 시사하듯이, 아이들의 성적이 모두 선천적이라거나 또는 전적으로 환경과 학습의 영향을 받는다는 확신이 아니다. - P262

비네는 "한번 바보는 영원한 바보(quand on est béte, c‘est pourlongtemps)"라는 모토를 맹렬하게 공격했고, 지능이 낮은 학생들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 교사들에 대해 "학생을 동정하거나 존중하지 않으며,
그들의 면전에서 이런 아이는 전혀 아무것도 할 수 없고 (......) 선천적으로 무능하고 (.....) 지적 능력이 떨어진다‘라는 이야기를 공공연하게한다. - P264

비네의 테스트에 의해 식별된 아이들은 지울 수 없는 낙인이 찍힐 때 상이 아니라 도움을 받아야 할 대상인 것이다. 비네는 확고한 교육학적 입장을 가지고 있었고, 그 대부분은 실행에 옮겨졌다. - P264

비네의 정신적 교정학이라는 흥미로운 프로그램에는 그가 학문적 주계를 배우기 위한 필수조건이라고 생각한 의지, 주의력, 단련을 지적 능력으로 전환시켜 개선하기 위해 고안된 일련의 육체적 훈련이 포함되어있다. - P265

미국에서 왜곡된 비네의 의도
요약하자면, 비네는 자신의 테스트를 이용하기 전에 염두에 두어야 할 세 가지 기본 원리를 강조했다. 그러나 훗날 그의 충고는 미국의 유전적 결정론자들에 의해 모두 무시되었다. - P266

1. 수치는 실용적인 고안물이며, 어떠한 지능이론도 뒷받침하지 않는다. 이 수치는 천성적이거나 항구적인 그 무엇도 규정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 수치로 ‘지능‘ 또는 그밖의 어떤 물화된 실체의 척도를 측정하는것을 원하지 않는다.

2. 이 척도는 특별한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경미한 지체아들이나 학습불능아들을 식별하기 위한 조잡하고 경험적인 지침이다. 이 척도는 정상적인 아이들을 서열화하기 위한 고안물이 아니다.

3. 도움이 필요하다고 확인된 아이들이 겪는 어려움의 원인이 무엇이든, 특별한 훈련을 통해 개선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 중점이 두어져야 한다. 낮은 득점이 아이들의 선천적 무능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어서는 안된다.

비네의 이 원칙들이 지켜지고 그의 테스트가 원래의 의도로 이용되었다면, 우리는 금세기 가장 큰 과학의 악용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 P266

지능 테스트의 오용은 테스트 그 자체의 발상에 내재되어 있는 것이아니다. 이 잘못된 사용은 주로 사회적 서열화와 차별을 유지할 목적으로 테스트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에 의해 열광적으로(또는 그런 것처럼 보이는) 신봉된 두 가지 오류에서 기인한다. 그것은 물화(物化)와 유전적 결정론이다. - P267

유전적 결정론의 오류는 이 기본적 사실에서 기인한 두 가지 잘못된 함축 속에 들어 있다.
1. ‘유전성‘을 ‘피할 수 없는‘ 것과 동일시하는 가정. 생물학자에게 유전성이란 유전적 전달의 결과로 가계를 통해 그 특성이나 경향이 전해지는 것이다.
(중략).
 IQ가 상당부분 ‘유전성‘이라는 주장은 질적으로 향상된 교육을 통해, 우리가 일상적으로 ‘지능‘이라고 부르는 것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신념과 모순되지 않는다. 부분적으로 유전된 낮은 IQ는 적절한 교육에 의해 크게 개선될 수 있다. (후략). - P268

2. 집단 내 유전과 집단간 유전의 혼동, 유전적 결정론의 중요한 정치적 영향은 테스트 점수가 유전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논리적으로 타당하지 않은 확장에서 발생한다. (중략). 마찬가지로 IQ도 집단내에서 유전성이 높을 수는 있다. 하지만 미국의 백인과 흑인 IQ의 평균적인 차이는 흑인들이 생활환경에서 겪는 불리함의 기록에 불과할 수도있다는 사실을 배제할 수는 없다. - P269

알프레드 비네는 이러한 오류를 피하기 위해 세 가지 원칙을 고수했다. 미국의 심리학자들은 비네의 의도를 왜곡해서 IQ의 유전적 결정이론을 발명했다. 그들은 비네의 점수를 물화함으로써, 그것이 지능이라고 불리는 실체에 대한 측정값이라고 생각했다. - P269

이 장에서는 미국의 선구적인 유전적 결정론자들인 세 사람의 주요 연구를 분석하겠다. H. H. 고더드(H. H. Goddard)는 비네 척도를 미국에도입해 그 점수를 선천적 지능으로 물화했다. L. M. 터먼(L. M. Terman)은 스탠퍼드-비네 척도(Stanford-Binet scale)를 개발해서 IQ 점수에 의해 직업을 할당하는 합리적인 사회를 꿈꾸었다. R. M. 여크스(R. M.
Yerkes)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육군을 설득해 175만 명의 군인을 테스트해서 유전적 결정론자의 주장을 정당화했고, 1924년에는 열등한 유전자를 가진 나라에서 오는 이민자 수를 낮게 억제하는 이민제한법(Immigration Restriction Act)을 이끌어냈다. - P270

사진을 조작한 고더드-정신박약아의 위협

멘델 유전자로서의 지능
고더드, 노둔魯鈍식별하다

이제 정신박약(feeble-mindedness)을 결정하고, 지능지수 (intelligence quotient)이론을 완성하는 과제가 누군가에게 남겨졌다.
-H.H. 고더드, 1917, 터먼(1916)에 대한 논평 중에서

분류학은 항상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는 주제이다. 이 세계가 질서정연한 작은 패키지로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기 때문에 지능장애에 대한 분류는 20세기 초에 건강한 논쟁을 일으켰다. 분류된 세 종류 중에서 두 범주는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졌다. - P271

(전략).
그러면 ‘고도 지능장애자(high-grade defective)‘라는 모호하고 좀더위협적인 영역에 속하는 사람들을 살펴보자. 그들은 훈련에 의해 사회활동을 할 수 있으며, 병리(理)와 정상 사이에 걸쳐 있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그들은 분류체계를 위협하는 부류다. - P271

분류학자들은 흔히 새로운 명칭을 고안함으로써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착각한다. 뉴저지주에 있는 정신박약 소년소녀를 위한 비네랜드 특수학교(Vineland Training School for Feeble-Minded Girls and Boys)의 정력적이고 개혁적인 지도자였던 H. H. 고더드 역시 이런 결정적인 잘못을 범했다. 그는 ‘고도 지능장애자‘를 위한 명칭을 고안했다. - P275

고더드는 비네 척도를 미국에 처음 보급시켰다. 그는 비네의 논문을 영어로 번역해서 비네 테스트를 실시했고, 그 테스트를 널리 이용하도록 열심히 권장했다. - P272

비네는 그의 점수가 ‘지능‘을 결정하는 것으로 사용되기를 거부했고, 다만 도움을 원하는 사람들을 식별하는 도구가 되기를 원했다. 그러나 고더드는 그 점수를 단일하고 선천적인 실체의 척도라고 생각했다. - P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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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und 1. 자비란 없다

1905년, 존재감을 드러낸 마티스는 기세를 몰아 1907년에 한 번 더 파격을 시도합니다. <푸른 누드>입니다. 이 그림에서는 어떤 파격이 보이시나요? - P249

 무엇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세잔의 ‘다시점(多時點)‘을 적용한 것입니다. 누드를 잘 보세요. 상체와 하체가 비정상적으로 뒤틀려 있지 않나요? - P249

더불어, 세잔에게 없던 자신만의 것도 첨가했습니다. 바로 ‘원시성‘입니다. 배경에 열대식물을 그려놓기도 했지만, 인물의 얼굴을 보세요. 아프리카 조각상같이 단순하게 그렸군요. - P251

1906년, 마티스와 피카소는 이미 서로 알고 지내던 사이였습니다. (중략). 자신의 최대 경쟁자가 세잔과 원시미술에 심취해 있다는 것을 곁에서 알게 되었으니까요. 그런 피카소의 전략은? 정면 돌파였습니다. 이름하여, 마티스의 연구과제 빼앗기! - P251

경쟁자 마티스를 향한 기습적어퍼컷이자, 입체주의 시작을 알린 문제작 <아비뇽의 처녀들>입니다.
이 그림 한 장으로 우리가 아는 피카소가 탄생합니다. 마티스처럼 세잔에게 얻은 유산을 대거 채용하고 있습니다. - P251

입체주의가 잘 이해되지 않나요? 그럼 이렇게 다시 설명하겠습니다. 정육면체를 머릿속에 그려보세요. 그것을 펼쳐 전개도로 만듭니다. 그리고 가위로 마음대로 자릅니다. 수많은 조각이 생겼죠? 그중 마음에 드는 것을 캔버스 위에 붙이세요. 그러면 입체주의 회화 완성입니다! - P253

마티스는 <푸른 누드>에서 두 개의 시점을 사용하는데 그쳤었죠? 피카소는 그 시점의 개수를 ‘무한대‘로 확장시켰습니다. 수십, 수백, 수천 개의 시점을 하나의 캔버스에 넣을 수 있는 새로운 회화 언어를 창조한 것입니다.

마티스의 연구과제를 빼앗아와 <아비뇽의 처녀들>을 그린 피카소, 이는 마티스에게 결정타를 날렸습니다. 야수주의를 함께 연구하던 브라크와 드랭이 마티스를 떠나 피카소의 편으로 갑니다. 마티스의 후원자들마저 등을 돌려 피카소의 작품을 구입하기 시작하죠. - P253

Round 2. 원펀치쓰리강냉이

"세잔은 우리 모두에게 있어 아버지와 같은 사람."

피카소의 말입니다. 그는 세잔을 매우 존경했습니다. 실제 말년에는세잔이 사랑했던 생트 빅투아르 산이 보이는 성에 살며 세잔과 함께 살고 있다"고 말할 정도였죠. - P254

. 사실 피카소는 혼자 작업하기보다 협업하기를 좋아했습니다. 타인에게서 새로운 영감을 얻어 자신의 작업을 발전시켰죠. - P254

 피카소는 이렇게 답합니다.

"나는 ‘아름다움‘에 대해 말하는 이들을 혐오한다. 회화는 탐구이며 실험일 뿐이다."

회화는 아름다워야 한다는 전통적인 고정관념을 버린 피카소는 회화를 실험으로 규정합니다. 즉, 자기 작품은 회화 언어를 창조하는 실험의 결과물이라는 것입니다. - P255

피카소가 훨훨 날고 있을 때, 마티스는 어땠을까요? 그야말로 혼돈의시기를 겪고 있었습니다. 피카소에게 세잔의 ‘형태‘ 영역을 완전 빼앗겨버린 마티스가 다시 그 구역을 탈환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 P255

하지만 마티스는 쉽게 KO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절벽 끝에서 타개책을 찾아내고야 맙니다. 그가 그런 근성을 가졌기에 우리에게 야수주의의 거장으로 기억되는 것이겠죠. - P257

Round 3. 최후의 탄알 한 발

피카소가 미술계를 초토화시키고 고지를 점령했습니다. 그럼에도 마티스의 권총에는 탄알 한 발이 남아 있었습니다.

"나만의 목표를 추구하며 참호를 구축하고 있었다. 실험, 자유화, 색, 에너지로서의 색, 빛으로서의 색에 대한 문제들."

그 탄알의 이름은 ‘색‘이었습니다. - P257

. 미술계에서 피카소의 지위는 급상승중이었고,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은 너도나도 입체주의를 적용하고 있었습니다. 비평가들은 입체주의가 20세기 회화의 주인공이라고 추켜세웠죠. 그럴수록 마티스는 초라해졌습니다. 색이라는 돌파구를 찾았지만, 결국 그는 슬럼프에 빠집니다. - P258

(전략). 특히 이슬람양탄자와 알람브라 궁전에 새겨진 매혹적인 패턴의 장식 무늬에 마음을 빼앗깁니다. 그리고 고통을 견디고 치유하는 과정에서 얻은 새로운영감을 작품으로 승화시킵니다. 그 작품이 바로 <가지가 있는 실내>입니다. - P259

근본적으로 마티스는 색채를 구성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마치 다양한 색 무늬를 가진 직물을 가져와 캔버스에 구성한 것 같죠? 형태의 조각을 구성하는 것에 집중한 피카소의 영향인 듯 보입니다. - P259

Round 4. 빼앗기 아닌 영감 얻기

일명 ‘분석적 입체주의‘를 실험하며 사물의 형태를 무한대로 쪼개나간 피카소. 그도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습니다. 사물을 계속 쪼개다 보니그 사물이 무엇인지 알아볼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한 것입니다. - P261

<기타>라는 작품을 봅시다. 처음 마티스에게 세잔과 원시 미술을 가져왔다면, 이제는 대담한 ‘색면의 구성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분석적으로 잘게 쪼개기를 버리고, 기타의 형태를 가능한 크게 쪼개 구성하고 있습니다. (중략).
그림 속 갈색 식물 무늬를 보세요. 마티스가 <가지가 있는 실내>에 그린 무늬와 비슷합니다. 그런데, 피카소는 그런 게 아닙니다. 무늬가 있는물 체를 붙였습니다. 파피에 콜레(Papier Colle)의 등장입니다. - P261

승자는 누구?

‘아방가르드 선도자‘라는 타이틀 건 세기의 대결! 과연 그 승자는………? 마티스와 피카소 둘 다입니다. 한창 싸우던 당시에는 오직 한 사람만 그 타이틀을 거머쥘 수 있다고 생각했죠.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에 두 사람 모두 미술계의 거성으로 평가받습니다. - P262

 시간이 흐르면서 피카소의 작품은 ‘색채의 에너지‘가 넘실거렸고, 말년의 마티스는 ‘종이 오려 붙이기‘만으로 걸작을 탄생시켰습니다. 그들의 삶과 예술은 서로가 키워준 것입니다. - P263

◆마티스의 야수주의? 피카소의 입체주의?

회화는 19세기 말까지 조금씩 변화를 거듭하는데요. 그럼에도 ‘회화는 자연을 재현하는 것‘이라는 명제를 완전히 깨부순 화가는 없었습니다. 그런데20세기 초, 두 화가가 그 명제를 깨부쉈습니다. - P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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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천재‘로 불리는 피카소

알고 보면
선배의 미술을 훔친 도둑놈? - P244

‘미술 천재‘ 하면 떠오르는 그 이름, 파블로 피카소, 그의 작품을 보면한시도 멈추지 않는 변화무쌍함에 혀를 내두르게 되죠. 정말 천재라고추앙받을만합니다. 앗, 그런데 충격적인 속보가 있습니다! 알고 보니 그가 어느 선배의 아이디어를 슬쩍슬쩍 훔쳤다고 합니다. - P245

야수주의 리더 마티스, 입체주의 리더 피카소. 실제 둘은 같은 시대, 같은 공간에 살고 있었습니다. (중략). 바로 ‘아방가르드 선도자‘입니다.
둘은 절실하게 저 타이틀을 원했습니다. 20세기 새로운 미술 창조를선두에서 이끄는 리더가 되고 싶었던 것이죠 - P246

홍코너~마티스!

 (전략). 단연 세잔이었습니다. 전에 없던 혁신적 표현을 담은 세잔의 그림은 마치 새로운 회화 창조를 위한 비밀이담긴 보물상자 같았습니다. 너도나도 세잔의 유산을 먼저 발굴하기 위해 고군분투했죠. 그 와중에 세잔이라는 거대한 고지를 선점한 자가 등장했으니.... 그가 바로 앙리 마티스입니다. - P246

마티스 본인의 마음에는 썩 들지 않았던 작품, 공개한 후에도 많이 걱정했던 작품, 그림의 모델이었던 자기 부인마저 말렸던 작품 <모자를 쓴 여인>입니다. 당시 그만큼 미친 척하고 파격적인 시도를 했던 작품입니다. 무엇이 파격일까요? - P247

 때때로 ‘자연에서 본 색‘과 다른 색을 썼던 세잔, 고갱, 반 고흐의 작품에서 마티스는 힌트를 얻었습니다. <모자를 쓴여인>은 그 힌트를 극단적으로 작품 전체에 적용한 것입니다. 자연에서 본 색이 아닌 자신이 느낀 색을 표현하겠다고 생각한 거죠. - P248

청코너~ 피카소!

마티스가 존재감을 과시하던 그때, 열두 살 어린 피카소는 뭘 하고 있었을까요?  - P248

그런 피카소가 살롱 도톤 전시회에 걸린 마티스의 <모자를 쓴 여인>을 보고 지적 충격을 받습니다. ‘그림을 이렇게 그릴 수도 있다니!‘ 그리고 마티스의 그림을 통해 지금껏 자신이 그렸던 그림들이 매우 구식이었다고 깨닫게 됩니다. - P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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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인물의 얼굴을 보고 나오미는 놀라서 흠칫 발을 멈췄다. 잘아는 얼굴이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름표를 보고서야 ‘닛타‘라는 성씨가 생각났다.
닛타는 나오미를 보자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더니 다시 표정을 환하게 가다듬고 조지 화이트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 P52

전화를 끊고 뭔가 메모한 뒤, 그는 나오미가 돌아온 것을 눈치챘는지 "오랜만이에요"라면서 돌아보았다.
나오미는 한 차례 심호흡을 하고, 몇 년 전과 똑같이 형사라고생각되지 않는 세련되고 기품 있는 얼굴을 마주 보았다. - P53

"이번의 무모한 수사에 대해서는 이나가키 경감님께서 얘기 해주셨지만, 설마 벌써 시작했을 줄은 몰랐네요. 더구나 이 플로어 카운터에 와 있다니. 저희 호텔로서는 특히 중요한 곳이라는건 알고 있나요?"
"알고 있죠. 리뉴얼하면서 이 특별 카운터가 생겼다는 말을 듣고 그렇다면 꼭 경험해보자고 생각했어요. 구가 씨와 몇 차례 리허설을 했는데 합격점을 받았습니다." - P54

"아차, 고객님이라고 해야지. 영어보다 우리말이 훨씬 더 어렵다니까."
"그런가요? 전화를 끊기 직전에는 어떤 말을 하셨지요?"
엇, 하고 당황한 듯 닛타는 눈이 큼직해졌다.
"천만에요. 라고 하셨어요." 나오미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말투를 쓰면 안 됩니다. 천만의 말씀이십니다, 라고 하는 게 좋아요. 그리고 그 전에 수영장을 이용할 경우에는, 이라고 했는데 역시 예의에 어긋납니다. 수영장을 이용하실 경우에는 저희에게 말씀해주십시오, 라는 게 제대로 된 응대예요." - P55

"아니, 닛타 씨는 내일부터 1층 프런트에 서게 될 테니까 담당자는 다른 사람이 될 거야. 이쪽 플로어는 다른 형사분이 교대로 투숙객으로 위장해 감시에 나서게 되지. 닛타 씨 외에는 프런트클러크로 위장할 수 있는 형사분이 없는 모양이니까." - P56

"우지하라 씨에게는 그런 내용이 이미 전달되었습니까?
"응, 전달했어."
"놀라지 않았나요?"
그야 당연히, 라고 구가는 입가를 풀며 웃었다.
‘상당히 놀라더라고 지난번 사건 때 우지하라 씨는 여기 없었지만 누구에겐가 이야기를 듣고 형사를 프런트에 세우다니 말도 안 되는 짓이라고 내심 어이없어졌던 모양이야 그런데 그것과 비슷한 사태가 일어나고 게다가 이번에는 자신이 형사와 한조가 되라는 지시를 받았으니 당황하는것도 당연하지" - P57

"또 이런 날이 올 줄은 꿈에도 생각을 못 했어요." 로비를 둘러보고 닛타가 절절한 어조로 말했다. "이 유니폼을 입고 야마기시씨와 함께 있게 될 줄이야."
"완전히 동감이에요." 나오미가 응했다. "반갑다, 라는 태평한말을 쓸 마음은 들지 않는군요. 요즘에도 생각하기만 하면 몸의떨림이 멈추지 않을 때가 있어요." - P59

나오미는 가슴을 살짝 뒤로 젖히면서 입을 열었다.
"컨시어지는 어떤 곤란한 요청에도 결코 노라고 말해서는 안되고 도망쳐서도 안 되기 때문이에요. 이런 일에 냉큼 휴가를 내버린다는 건 너무 무책임하죠. 우리를 기대하고 찾아주시는 고객님도 계실 텐데. 다만 나 이외의 다른 컨시어지는 아직 경험이부족한 데다 지난번 사건을 잘 모르고, 당연히 경찰의 잠입 수사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도 모르죠. 그런 직원을 긴요한 컨시어지 데스크에 세워둘 수는 없잖아요. 결국 내가 맡는 수밖에 없어요." - P60

닛타는 입술을 깨물며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했다.
"범인이 나타날 일시와 장소를 정확히 적었으면서 왜 범인의정체는 밝히지 않았는지, 밀고자가 노리는 게 무엇인지, 아직 밝혀진 게 없어요. 그래도 경찰로서는 무시할 수가 없죠. (후략)." - P61

닛타는 표정을 누그러뜨리고 로비를 둘러보았다.
"듣기로는 이 호텔에서 개최되는 카운트다운 파티가 아주 특이한 취향으로 공들여 만들어졌다던데요?"
"맞아요. 다행히 호평을 얻어서 재방문 고객님이 아주 많죠.
구가 매니저님에게서 설명을 들은건가요?"
"잠깐 얘기도 들었고, 티켓도 봤어요. 파티를 예약한 투숙객에게는 체크인 때 그 티켓을 건네줘야 한다고 해서." - P61

"단순한 코스튬 파티가 아니에요." 나오미는 집게손가락을 휘휘저었다. "참가자 전원이 얼굴을 가린다는 게 약속 사항이에요"
"그야말로 가면무도회군요.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프네. 그 파티, 뭐라고 했죠? 뭔가 꽤 기다란 이름을 붙였던데." - P62

5

(전략).
가슴에 단 이름표에 시선을 던지고 흠칫했다. 우지하라, 라는 글자가 보였기 때문이다.
상대도 닛타의 가슴팍을 보고 있었다. 그러고는 무표정한 얼굴을 향해왔다. "구가 매니저님은 어디 계시지요?" - P63

우지하라가 작게 헛기침을 한 뒤에 숙박표를 집어 들고 남자손님에게로 갔다.
"구사카베 도쿠야 고객님이시지요."
"응. 맞아요."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오늘부터 4박, 로열스위트를 이용하시는 것으로 괜찮겠습니까?"
"좋아요." - P64

"구사카베 고객님, 결제는 어떻게 해드릴까요. 현금입니까, 아니면 신용카드로 하시겠습니까?" 구사카베가 숙박표 기입을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우지하라가 물었다.
신용카드로, 라고 말하면서 구사카베는 양복 안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중략).
로열스위트에서 4박이라면 요금은 백만 엔이 넘게 나온다. 이런 고액을 떼어먹고 도망가서는 곤란하기 때문에 호텔 측으로서는 예치금을 받거나 신용카드를 복사해두는 것이 통례다. - P65

최상층만 가입할 수 있는 블랙카드였다. (중략).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이쪽이 객실 키입니다. 구사카베 고객님, 저희 호텔 이용은 처음이십니까."
"그렇습니다." - P66

"잘 알겠습니다. 아, 자네가 고객님의 짐을 방까지 옮겨드리도록 해." 우지하라가 말했다. 그 ‘자네‘라는 게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닛타는 한순간 깨닫지 못했다.
"아니, 됐어요. 내가 직접 들고 갈 테니까." 구사카베는 가방을들고 엘리베이터 홀로 향했다. - P67

우지하라는 차가운 눈빛으로 구가를 보았다.
"일반적인 수속이라면 그렇겠지요. 하지만 오버부킹이나 더블부킹이 있을 때는 어떻게 하죠? 혹은 워크인의 고객님이 나타났을 때는?"
"1층 프런트라면 모르지만 이쪽 카운터에서는 그런 일은 있을수 없죠."
"그건 모를 일입니다. 만에 하나라는 게 있어요." - P69

우지하라가 다시 명함을 내밀었다. 받아서 들여다보니 프린트 오피스 어시스턴트 매니저 우지하라 유사쿠‘라고 적혀 있었다.
"그쪽 명함도 주시겠습니까?" 우지하라가 말했다.
"명함? 아, 죄송합니다. 탈의실에 두고 왔어요. 경찰 배지라면 휴대하고 있는데………." 안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 P70

다.
우지하라는 턱을 쓰윽 치켜들고 닛타를 정면으로 마주 보았
"그게 좋아요. 이발을 하고 유니폼만 입으면 누구라도 호텔리어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앞으로도 주의하세요."
"네, 주의하겠습니다." 닛타는 대답했다. 얼굴을 홱 돌리며 혀를 끌끌 차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꾹 참았다. - P71

(전략).
"어떤 방식입니까?" 닛타가 물었다.
"기본적으로 프런트에 있을 때는 내 지시에 따라주세요 접객을 비롯한 업무는 내가 할 테니까 닛타 씨는 일절 관여하지 마시고요. 내가 없을 때는 절대로 프런트에 서지 말 것. 프런트에 걸려 온 전화는 받지 말 것. 함부로 고객님에게 말을 거는 것도 금지합니다. 아시겠습니까?" - P71

맞은편 자리에서 모토미야가 입을 삐죽거렸다.
"요즘에는 어디를 가든 다 금연이니까 그건 이해하겠는데 아예 흡연실까지 없애버리는 건 대체 뭐야 호텔 쪽에는 흡연 가능한 객실이 있는데 직원은 담배를 피울 수 있는 장소가 없다는 건좀 이상하잖아?"
"유니폼에 냄새가 배어서 근무 중에는 금연이에요. 냄새에 민감한 고객님도 많으니까요." - P74

오늘은 12월 28일이고 31일까지는 사흘 동안의 여유가 있는데 이렇게 일찍 잠입해봤자 별 의미도 없는 거 아니냐고 닛타는 말했었다. 하지만 되도록 빨리 익숙해지는 편이 좋다, 라는 것이 이나가키에게서 내려온 지시였다. - P75

보고를 들으면서 닛타는 내심 놀랐다. 통상 호텔 측은 무슨 일이 있어도 고객의 프라이버시에 관한 자료는 제출해주려 하지않는다. 이번에 이렇게까지 수사에 협조적인 것은 호텔 측이 본격적으로 위기감을 품었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되었다. - P76

"밀고장의 내용이 사실이라고 가정하고, 범인이 무슨 이유로이 호텔을 찾아오느냐는 것이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모토미야가 말했다. "밀고자는 어쩌면 그 이유도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 P77

"혹시 이런 얘기인가?" 세키네가 대답하기 전에 닛타가 말했다. "범인은 이즈미 하루나 씨 외에도 꼭 죽여야 할 사람이 있었다. 그 살인을 12월 31일에 이 호텔에서 실행하려고 마음먹었다. 즉 이건 연쇄살인 사건의 일부다. 그런 거야?" - P77

"12월 31일 밤에 최고급 호텔에서 살인이라니. 세상에 그런 어처구니없는 짓을 할 자가 있겠느냐고 웃어넘기고 싶기도 해. 하지만 이번 사건은 애초부터 엉뚱한 점이 있었어. 그렇기 때문에 우리 쪽도 엉뚱한 수사 방법으로 대항하는 것이지." 진지한 눈빛을옆자리의 모토미야에게로 향했다. "어떻게 생각하나?"
"네, 전혀 있을 수 없는 얘기는 아닙니다." - P78

"밀고장에는 단순히 이 호텔에 나타난다고 한 것이 아니라 카운트다운 파티장에 나타난다고 일부러 콕 집어서 밝히고 있습니다." 와타베라는 베테랑 형사가 말했다. "그 점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것도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 P79

"호텔 코르테시아도쿄 새해 카운트다운 매스커레이드 파티 나이트 너무 길어서 간단히 ‘매스커레이드 나이트‘라고 줄여서 쓰고 있습니다. (후략)."
(중략).
"이미 300명 이상이 신청했습니다. 이런 파티가 있다는 것을알지 못한 채 체크인했던 투숙객이 나중에 신청하는 일도 적지않다고 합니다. 예년의 실적을 통해 추산해보면 앞으로 100명이상이 막판에 예약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 P80

"몇 군데로 영역을 나눠서 재즈 연주, 마술쇼, 서커스 등을 하게 됩니다. 맥주, 와인, 칵테일은 무한 제공, 그리고 가벼운 먹을거리도 준비한답니다. 일반 입식 파티와 다른 점은 참가자 전원이 코스튬을 한다는 것입니다." - P80

"새해 카운트다운 파티는 어떤 호텔에서나 다 하고 있거든요. (중략). 모르는사람들끼리 서로 사진도 찍어주고, 상당히 재미있게 진행되는모양이에요. 다만 코스튬과 가면 쓰기는 자정까지예요. 카운트다운을 시작해서 제로가 된 순간에 참가자 전원이 일제히 자신의 맨얼굴을 드러냅니다. (후략)" - P81

"그 파티, 예약제라고 했지? 참가자 목록은 입수할 수 있겠나?" 이나가키가 닛타에게 물었다. - P81

"참가자 대부분은 투숙객이잖아. 가명이라면 카드가 아니라 현금으로 결제하겠지. 그걸 단서로 잡는 것만 해도 목록 체크는 쓸데없는 일은 아니야."
"네, 알겠습니다."
"이미 체크인한 사람 중에 12월 31일 밤까지 계속 투숙하는손님은 어느 정도나 되지?" - P82

(전략). "또 한 명 남자 손님이 체크인했습니다. 오늘 밤부터 4박입니다. 게다가 로열스위트."
와아, 라고 탄성을 올린 것은 세키네였다. 벨보이로서 로열스위트에 가본 적이 있어서 그 호화스러움을 잘 아는 것이다.
"그런 넓은 방을 혼자서 쓴다는 건가?" 이나가키가 물었다.
"예약 내용에 의하면 그렇습니다. 나중에 일행이 합류할지도 모르지요. 신용카드를 복사하도록 내준 것을 보면 가명은 아닌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파티에는 아직까지는 신청하지 않았습니다." - P83

"아 참, 그렇지. 피해자는 임신 중이었지만 범인이 꼭 남자라고는 할 수 없다. 몇 번이나 말하지만, 선입견은 버리도록 한다. 이 호텔을 찾아오는 사람 모두가 용의자라고 생각하도록.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된다. (후략)." - P84

7

(전략).
"피해자가 야마가타 출신이라는 건 지난번에 얘기했었지? 그래서 일부러 야마가타까지 출장을 나갔던 젊은 형사가 귀가 솔깃한 정보를 보내줬지 뭐야. 이즈미 하루나 씨의 중고등학교 때친구가 거의 같은 시기에 도쿄에 왔다는 거야. 도쿄의 대학에 진학한 거였어. 그 어렵다는 닛타 씨의 모교야. 게다가 의학부." - P85

"상당히 친한 편이었다고 생각한다. 라고 대답하더라고. 중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이 되면서부터 친해졌고 졸업 후에는 같은고등학교에 들어갔어. 이즈미 씨가 그녀의 집에 자주 놀러 오기도 한 모양이야. 학교 성적도 엇비슷해서 시험 답안을 함께 맞춰본 적도 많았다. 단지 도쿄에 올라온 뒤에는 생활 패턴이 달라서점점 왕래가 뜸해진 모양이야. 의대생과 전문학교에 다니는 사회인이었으니 시간을 맞추기가 좀 어려웠겠지." - P86

"딱히 눈에 띄는 편은 아니었던 모양이야. 동아리 활동도 안했고, 적극적으로 남들 앞에 나서는 타입이 아니라서 점심시간 같은 때는 주로 책을 읽는 일이 많았대."
"남자를 사귄 적은?"
"자신이 아는 한 그런 일은 없었고, 아마 절대로 없었을 거라고 했어. 상당히 자신 있는 말투였으니까 틀림없을 거야." - P87

"옷차림은 보이시했지만 결코 여자애다운 것을 싫어한 건 아니라고 했어. 웬만한 장식품이나 필기도구 같은 것은 오히려 소녀 취향이었대."
"양면성이 있었다는 뜻일까요?" - P88

"학업을 포기할 만큼 애견미용사가 되고 싶었을까요? 그렇다면 굳이 대학에 갈 필요는 없으니까요."
"바로 그 점인데, 레지던트 친구의 말에 따르면 뭔가 좀 이상하더라고."
"왜요?"
"자신이 기억하는 한, 하루나에게서 애견미용사가 되고 싶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는 거야. (후략)." - P89

"역시 그렇군. 나도 여기저기 알아봤지만 피해자의 입에서 이호텔 이름을 들었다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어. 증거 수집팀 친구들도 피해자의 방을 샅샅이 훑어봤는데 이 호텔과 관련된 것은전혀 안 나왔다고 하더라고, (후략)." - P91

"노세 씨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실은 저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어요. 살인을 저지른 인간은 여열이 식을 때까지 되도록 사람들 앞에 나서지 않게 마련이잖아요. 파티장이라는 화려한 자리에 나온다는 건 반드시 그럴 만큼 중대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게 합리적이죠."
"동감이야. 게다가 나는 처음부터 이 사건에서 독특한 냄새가난다고 느꼈어." 그렇게 말하며 노세는 자신의 코를 손끝으로 튕겼다. - P92

"요컨대 이즈미 하루나 씨를 살해한 것이 이 범인에게는 첫 번째 살인이 아니었을 거라는 말씀이군요."
"단언할 수는 없지만, 그럴 가능성이 높아." - P93

"그 사진 말인데요, 왜 몰래 숨어서 찍었을까요? 밀고자는 이즈미 하루나 씨가 살해된다는 걸 미리 알고 있었을까요?"
노세는 입을 시옷 자로 하고 머리를 내저었다.
"글쎄 나도 그걸 모르겠다니까. 범인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밀고자에 대해서도 전혀 손에 잡히는 게 없지 뭐야. (후략)." - P94

 노세가 말했다. "혹시 이 밀고자는 원룸 안의 상황이 다 보였다는 건가?"
"네, 그것밖에 없겠죠. 사체가 발견되었을 때, 원룸 창문은 어떤 상태였지요? 특히 커튼은? 완전히 닫혀 있었던가요?" - P95

8

컨시어지 데스크 업무는 오전 8시에 시작된다. 나오미가 오픈준비를 하고 있는데 프런트 클러크 유니폼을 차려입은 닛타가다가왔다. - P97

"아차, 실례." 그는 급히 호주머니에 넣었던 손을 꺼냈다. 잠깐만 어리광을 피워도 금세 이런 지적을 받고 만다.
"그래서요? 프런트에 서고 싶은데, 왜 그러고 있어요?"
닛타는 코끝을 엄지손가락 끝으로 튕겼다. "나 혼자 프런트에 서지 말라는 지시가 떨어졌어요."
"누가요?"
"어제 했던 이야기에 등장한 우지하라라는 사람" - P98

"칭찬해드린 건데? 어쨌든 앞으로 계속 그 사람과 함께 지낼생각을 하니 우울해지네요. 범인이 카운트다운 파티니 뭐니 할거 없이 좀 더 빨리 나타나주면 좋겠는데 말이에요. 냉큼 체포해버리고 철수하고 싶은 심정이에요."
"닛타 씨, 나한테 하소연하려고 오신 거예요?"
"아, 하소연은 그냥 서론이죠. 실은 연락 사항이 있어요." - P99

"만일 그 사람이 이곳에 들른다면 어떤 내용의 상담을 했는지나중에 좀 알려줄래요? 12월 31일 밤까지 투숙하는 손님에 대해서는 철저히 정보를 수집해두라는 상부의 지시가 있어서요."
"살인 사건의 범인이 컨시어지에게 볼일이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요?" - P100

"상담 내용에 따라 달라지겠죠. 프라이버시 문제도 있으니까."
닛타가 다시 얼굴을 가까이 댔다. "알고 있어요? 지금 비상사태라고요."
"잘 알죠. 하지만 그것과 이건 별개 문제예요. 고객님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주는 것은 우리의 의무입니다." 다만, 이라고 나오미는 말을 이었다. - P100

이 사람은 손님을 상대할 때 외에는 표정이나 말투에 거의 기복이 없다.
"로열스위트의 고객님이 컨시어지 데스크의 이용시간을 물어본 모양이던데요. 12월 31일 밤까지 투숙하시는 분이니까 뭔가 상담했을 경우에는 그 내용을 알려달라는 얘기였어요."
우지하라의 눈이 안경 렌즈 너머에서 가늘어졌다. "설마 그러겠다고 하지는 않았겠지?" -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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