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토론 AlphaGo, 바둑, 수학과 Al


바둑은 내가 어릴 때 가장 좋아하던 게임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둑과 수학은 많은 특별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 절에서는 바둑과 수학의 관계 및 최근 이슈인 인공지능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 P315

컴퓨터를 이용하여 19×19의 바둑판의 상태를 모두 열거하고 각각의 상태가 합리적인지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이지만, 이미 2006년에 누군가가 실험을 했다. 무작위로 하나의 바둑판 상태를 생성하고 ‘합리적인‘ 변화의 확률을 고찰하면, 그 결과는 약 1.2%이다. - P316

공식적인 계산은 2015년 3월에 시작하여 같은 해 12월에 이르러서야 끝났으며, 이로 인해 생성된 중간 파일은 30PB(1PB=10⁶GB)라는 어마어마한 규모가 되었다. 크고 작은 바둑판의 ‘합법적인‘ 국면이모든 국면에서 차지하는 비율의 변화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흥미롭다. - P317

그리고 그때 바둑에 관한 최첨단 AI프로그램이 어떤 수준인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는데, 그 결과는 역시 나를 실망시켰다. (중략).
특히 이 기간 중국의 중산대학교 화학과 진지행 교수는 은퇴 후 바둑 관련 AI 프로그램 개발에 전념했다. 개발한 ‘수담‘ 프로그램으로1995~1998년 바둑 AI 대회에서 7연승을 했다. - P318

(전략). 끝내기 단계는겨우 이렇게 계산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바둑판의 처음 판이 텅 비었을 때 사람들은 한 국면에 대한 정적 평가 방법을 전혀 찾지 못했다. 인간 고수들 사이에서도 국면에 대한 평가는 때로는 엇갈리는데더구나 컴퓨터를 사용한다면 곤란하기 짝이 없다. - P319

하지만 바둑 AI 프로그래밍은 2006년 한 차례 도약했고, 누군가가새로운 알고리즘을 바둑에 적용한 것이 몬테카를로 알고리즘 MonteCarlo Algorithms (MC 알고리즘)이다. - P319

그렇다면 이런 알고리즘은 바둑에 어떻게 쓰일까. 앞서 언급한 바둑 AI 프로그래밍의 한 가지 난점인 국면 평가에 대한 아이디어가 나왔는데 컴퓨터가 하나의 국면에서 계발식 알고리즘으로 최적의 점을찾는 것이 아니라 양쪽이 ‘임의로 바둑을 두고 마지막에 가서 누가 지는지 다시 한 번 보는 것이다. - P321

몬테카를로 알고리즘 도입 이후 모든 계발식 알고리즘 프로그램이 역사 속으로 밀려나면서 바둑 AI 프로그램의 실력은 급상승하기 시작했다.  - P322

당신은 끝내기 국면에서 바둑판의 낙점이 크게 줄어들어 바둑프로그램이 더 잘 처리될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지금까지 임의의 바둑끝내기 국면을 완벽하게 해결할 수 있는 범용 AI 프로그램은 전무하다. 어쨌든 2012년 바둑 프로그램은 설계 개발에 큰 돌파구를 만들었는데, 이때는 몬테카를로 알고리즘이 지배적이던 시기이다. - P323

전략 네트워크는 알파고가 주로 고려해야 할 다음 수의 위치를 빠르게 선별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전략 네트워크‘의 구축 방법은 인간의 생각을 모방하여 역사적으로 모든 인류가 학습해 온, 특히 고수가 놓았던 기보를 끊임없이 입력하는 것이다. - P324

알파고가 바둑을 두도록 지도하는 사람은 없지만 알파고가 구사하는 속도는 매우 빠른 편이다. 위의 과정은 말하기는 쉽지만 두기는힘들다. 왜냐하면 기보에 따라 바둑을 놓는 목표는 단순히 인간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바둑판에서 옛사람과 똑같은 판을 만났다고 해도, 다음 9단 고수가 놓은 수가 최고의 수가 틀림없다고 말하기 힘들다. - P325

(전략). 이제 알파고는 바둑판의 한 국면에 따라 4~5개의 가장 가능성 있는 착법을 신속하게 선별할 수 있는데, 어떻게 이러한 착법의 좋고 나쁨을 평가할 수 있을까? 이것은 ‘가치 네트워크 Value Network‘를 사용한 결과이다. - P325

알파고가 이렇게 강한데 인간이 그것을 무너뜨릴 수 있을까? 다음은 내가 알파고 작업 원리에 대한 이해에 근거하여 알파고에 대응할수 있는 세 가지 안을 생각해 낸 것으로, 타당성에 따라 낮은 것에서높은 것으로 순위를 매겨보았다.
첫 번째는 축을 만들고 끌어들이는 것이다. - P327

두 번째 수는 바둑을 모방하는 것이다. 컴퓨터와 바둑을 두고 이바둑 경기를 모방하는 것은 좋은 것이다. (중략). 알파고가 계산하도록 하고 당신은 산출한 결과를 쓰면 된다. - P328

세 번째 수는 속임수이다. 소위 ‘속임수‘라는 것은 이런 수이다. 당신의 상대를 한 수씩 모두 마치 바둑의 이치에 맞는 것처럼 당당하게 대적하다가 결국 당신이 배치한 함정에 빠지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바둑은 만약 올바른 대응 수단을 안다면 실제로는 나쁜 바둑이다. - P329

요약하자면 알파고에 대응하는 두 가지 요점은 각각 그것의 두 대뇌를 공격하는 것이다.

1. 전반적인 국면에서, 다음 수의 최선의 선택을 전체 국면에서 판단하도록 하는 것은 ‘전략 네트워크‘를 공격하는 것이다.
2. 아주 깊이 있고 정확한 계산이 필요한 국지적 국면을 조성한다.
예를 들면, 축과 속임수를 써서 가치 네트워크를 공격한다. - P330

다각형을 품고 있는 점의 개수 구하기_해피엔딩문제


실험을 하나 해보자. 종이 한 장을 펴고 그 위에 5개의 점을 찍자. 이 중 어느 세 점도 한 직선 위에 있지 않다. 그리고 5개의 점이 어떻게 놓여 있든지 이 중에서 4개의 점을 잇는다. 목표는 바로 볼록 사각형 하나를 만드는 것이다. - P64

일반적으로 평면상 볼록 각형을 만들 수 있는 최소한의 점의 개수를 묻는 문제를 ‘해피엔딩문제‘라고 부른다.
이 문제와 ‘해피엔딩‘이 무슨 상관이 있을까? 여기에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다. - P65

1933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수학을 사랑하는 젊은이들이 있었고 그들은 자주 모여 수학문제를 논의했다. 그중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했던 세 사람이 있었다. 당시 23세 여성 클라인 Klein, 그녀보다 한 살적은 남성 세케레시 Szekeres, 20세 에어디쉬 Erdos였다.
어느 날, 클라인은 두 친구에게 이 문제를 선보였다. 그들이 이 문제를 증명하기 원했고 몇 개의 예를-평면상의 5개의 점이 있을 때 그 중 4개의 점은 반드시 볼록 사각형이 되는지-제시했다. (중략).
이것을 ‘에어디쉬-세케레시 정리‘라고 부른다. - P65

(전략). 2005년 두 사람은 한 시간 차이로 잇달아 생을 마감한다. 그래서 그들의 인생은 절대적으로 해피엔딩이라고 불릴 만하다.
이 문제를 ‘해피엔딩‘이라고 불렀던 에어디쉬에 대해서 말하려고한다. 그는 수학계에서 매우 저명한 학자였다. (후략). - P66

에어디쉬와 세케레시는 볼록 오각형은 9개의 점이 필요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삼각형은 점 3개가 필요하다는 것이 자명하고 볼록 사각형은 5개의 점이 필요하다. - P67

n=4인 경우에 어떤 식으로 증명하는지 들여다보자.
다음 그림에서 평면 위에 5개의 점이 있다고 하자. 여기서 어느 세 점도 일직선 위에 있지 않다. 그중 세 점을 택해 삼각형을 만들자. 남은 2개의 점에 A, B라고 이름을 붙이고 두 점을 연결하여 직선 AB를그린다. 만약 점 A, B가 모두 삼각형 내부에 있다면 직선 AB는 반드시 삼각형의 두 변과 만나고 삼각형을 2개의 부분으로 나눈다. - P67

n=4인 경우가 이렇게 간단하다고 이 문제를 얕보지 마라. 임의의 볼록 각형에 대한 증명은 상당히 곤란하다. 에어디쉬와 세케레시의 증명에 근거한 볼록 오각형일 때, 최솟값f (5)=9는 1935년 마카이E. Makal에 의해 증명되었다. - P69

가장 최근의 성과는 앤드류 수커 교수가 2016년에 증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밖에 의미 있는 것은 해피엔딩문제는 ‘램지이론Ramsey theory‘의 첫 번째 중요한 응용이라는 것이다. - P69

해피엔딩문제는 ‘공심해피엔딩문제‘로 확장된다. 이것은 해피엔딩문제보다 더 많은 조건이 필요한데 볼록다각형을 만들 때 다른점을 내부에 포함하지 않는 것이다. (중략).
당신은 공심해피엔딩문제에서 많은 점을 찍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1983년에 조제프 호턴Joseph Horton은 점의 수가 충분히 많을 때 공심볼록칠각형을 찾을 수 없음을 증명했다. - P70

Let‘s play with MATH together

1. 평면 위에 17개의 점이 있을 때 (오목, 볼록 상관없이) 얼마나 많은 육각형을 만들 수 있을지 생각해보자.

2. 평면 위에 1+2^(n-2)개의 점이 있다면 몇 개의 각형을 만들 수 있을까? - P70

‘수학병‘에 걸리게 하는 문제_콜라츠추측


만약 당신이 제목 ‘콜라츠추측collatz conjecture‘을 보고 감이 전혀 오지 않는다면, 힌트를 몇 개 더 주겠다. 3+1 추측, 우박추측, 카쿠타니Kakutani 추측. 하세Hasse 추측, 울람 Ulam 추측과 시라쿠스Syracuse추측. 어떤가, 떠오르는 것이 있는가? - P71

이 추측은 1930년대 초, 그 당시 독일의 대학생이었던 콜라츠에 의해 제기되었다. 1960년대에 일본 수학자 카쿠타니가 이 문제를 연구하면서 중국으로 전해졌고 중국에서는 이 추측을 카쿠타니 추측이라고 불렀다. - P73

1만 이내의 항로 중에서 가장 긴 것은 6171호, 길이는 261이다. 1억이내에서는 가장 긴 항로가 63,728,127이고 947회 공유된다. 이미 사람들은 컴퓨터를 이용하여 5×10‘에 이르렀고 이 범위 내에서 반례는 찾지 못했다. 그러나 많은 문제에서처럼 테스트를 많이 한다고 해서 문제의 증명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 P75

중국계 호주인 수학자 테렌스 타오Terence Tao는 2011년에 콜라츠추측을 연구하며 얻은 결과와 감상을 블로그에 남겼다. 비록 블로그에올린 글이지만 내용은 매우 심오하다. 그중 주된 내용과 요점을 당신에게 소개하고자 한다. - P76

앤드류 와일즈는 이 점을 이해한 후에 몇 가지 사고 과정을 통해서 타니야마 시무라추측‘을 정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바로 이 방향으로 전진했고 결국은 타니야마 시무라추측을 통해페르마 대정리를 이끌어냈다. 이것은 특정 수학난제에 대해서 심하게 연연해하거나 얽매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는것 같다. - P77

다음으로 테렌스 타오도 콜라츠추측을 수학자들이 주력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고 여겼는데 아직은 이론적 도구가 잘 정비되지 않았다고 생각해서일 것이다. 그는 출중한 수학자는 마땅히 그런 수학도구를 능가하는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고 여겼다. - P77

그는 우선 ‘약한 콜라츠추측의 명제 하나를 꺼냈다. 콜라츠연산을 거친 어떤 자연수가 있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이 자연수는 1, 2, 4세 개중의 하나이다. 이것을 ‘약한 콜라츠추측‘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는 그것을 증명할 때 콜라츠추측을 증명할 수 없고 발산할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콜라츠추측을 증명한다는 것은 바로 그것을 증명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비교적 약해 보인다. - P79

당연히 테렌스 타오도 이 약한 콜라츠추측의 명제를 증명할 수 없다고 했지만 이 명제에 대해 분석했다. 만약 이 명제가 성립하지 않는다면 약한 콜라츠추측은 다른 순환이 있다는 반례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 순환의 길이는 적어도 105000이다. 우리는 이미 5×10¹⁸이내의 자연수에 대해서 모두 콜라츠추측을 검증했다. - P80

이 문제와 관련된 결론은 1972년 존 콘웨이 (3명의 케이크 문제에서거론되었던 수학자)가 증명했다. 콘웨이는 일반화된 콜라츠추측은 ‘결정할 수 없는 것 undecidable‘으로 ‘어떤 정수를 입력하면 유한시간 안에 일반화된 콜라츠연산을 통과한 정수가 순환 상태로 진입가능한지를알려주는 이런 컴퓨터 프로그램은 없다‘고 했다. - P83

마지막으로 다시 콜라츠 나무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2011년 콜라츠의 한 학생은 콜라츠추측을 증명했다. 그런데 이후 그의 증명에는 결함이 하나 있었는데 증명에 이용된 나무가 수많은 자연수를 커버한다는 증명이 없다는 것이다. - P83

나는 ‘거의‘ 알아차렸다.


수학에서 ‘거의‘에 대한 표현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수학명제에서 ‘거의 almost‘를 사용한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실수는 거의 모두 무리수이다.‘ 이 명제를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지 않은가? 하지만 좀 이상하게 들리는 건 사실이다. 왠지 수학 같지가 않다. 유리수가 그렇게 많은데 무엇을 근거로 ‘실수는 거의 모두 무리수‘라고 할까?  - P217

분명한 것은 ‘거의‘는 함부로 사용되지 않았다. 수학에서 ‘거의‘는 엄격한 정의가 있다. - P218

‘측도‘ 또한 수학에서 꽤 재미있는 개념이다. 정확한 정의는 좀 추상적이지만 당신은 글자만 보고도 대강의 뜻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소위 측도가 0이라고 하면 측량의 크기가 0이라는 것이다. 앞의것을 예로 들면, 우리는 유리수 집합의 크기를 잴 수 있고 그것을 실수집합과 비교하면 크기는 0이다. - P219

‘거의‘를 포함한 명제로 다시 돌아가 보자. 예로, 그래프이론에서두 개의 흥미로운 명제가 있는데 하나는 거의 모든 유한 그래프는비대칭이다‘이고 또 다른 하나는 ‘거의 모든 무한 그래프는 대칭이다‘라는 것이다. - P219

당연히 여기서 ‘대칭‘은 기하에서 말하는 그 대칭이 아니다. 임의로 그린 그래프가 마침 대칭이 될 확률은 0이다. 그래프 이론에서 대칭은 ‘자기동형사상‘을 가리키는데, 즉 그래프의 점이 자신으로 대응되는 구조로 각 점은 모두 자신의 어떤 점으로 대응될 수 있다. - P220

만약 하나의 그래프에 유한 개의 많은 점이 있고 점의 수가 계속많아지면 대칭의 확률은 0으로 가까워진다. 그러나 만약 한 그래프에 무수히 많은 점을 나타낼 수 있다면 그것은 거의 100% 대칭이다.  - P220

마지막으로 예상을 완전히 뒤엎는 것은 ‘칸토어집합 Cantor Sets‘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실수는 거의 모두 무리수이다.‘ 이명제에서 당신은 유리수의 수가 매우 적기 때문이라고 여길 수 있다.
유리수 집합은 가산집합이고 그것의 측도는 00이 맞다. - P221

또한 믿기 어려운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데 칸토어집합을 기하관점에서 설명하면 길이는 0에 한없이 가까워지고 측도는 0이다. 그러나 집합의 크기로 설명하면 그것은 무리수 혹은 실수와 같은 정도로수직선 위의 수만큼 많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람들에게 무한히 작다는 느낌을 주지만 동시에 수직선 위의 모든 수를 포함할 만큼 매우크기도 하니 보통 사람으로서는 생각하기 힘든 사실이다. - P223

이밖에도 칸토어 집합의 기수와 실수집합은 같기 때문에 일대일대응 함수를 하나 만들 수 있다. 이 함수를 ‘칸토어함수‘라고 한다. (중략).
칸토어함수는 전통적인 의미의 연속 함수라는 것이 증명되었고 각 점에서 도함수는 ‘거의‘ 이기 때문에 이 함수의 이미지가 수평선이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 함수는 실제로 증가할 수 있다. - P224

 칸토어함수는 ‘균등연속 uniform continuity‘이지만 ‘절대 연속absolutelycontinuity‘은 아니다. - P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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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실의 낡고 작은 소파에 앉아 있는데 중년 남성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키는 크지 않았지만 풍채가 좋아서 관록이 느껴졌다.
"가미오 에이치 씨의......."
마요는 일어나 인사했다. "딸입니다."
남자는 호흡을 가다듬듯 숨을 들이마셨다 뱉더니, 허리를곧게 펴며 말했다.
"아버님 일은 정말 유감입니다. 많이 놀라셨을 줄로 압니다."
"저기... 아버지 시신은 지금 어디 있나요?" - P44

시신을 아버지라고 인정한 제 말을 듣고서야, 소중한 가족을 잃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 것이다. - P45

눈을 감고,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만난 게 언제였나 생각해 보았다. 어떤 이야기를 했더라. 하지만 아무리 기억을 되짚어도 한참 전의 오래된 추억밖에 찾을 수 없었다.
(중략)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가요?"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저희도 여쭤볼 게 있고요. 지금 시간 괜찮으십니까?" - P46

"그럼 자세한 경위를 말씀드리겠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그저께 아침부터 오늘 아침까지의 행동에 대해 알려 주시겠습니까?"
"네……?" 마요는 당호감을 감추지 못했다. 질문의 의도를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 P47

"동창 중에 하라구치 고스케……고헤이였나? 그런 친구가 있어요."
가키타니는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고헤이 씨입니다. 오늘 오전에 가미오 에이치 씨 댁을 방문한 사람이 그 하라구치 씨입니다. 하라구치 씨의 말로는 어제 낮과 밤에 가미오 씨에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침에도 전화했지만 받지 않았다네요. 그래서 왠지 마음에 걸려서 집으로 찾아갔다고 하더군요." - P49

서류를 읽던 가키타니는 고개를 들고 "여기까지 말씀드린 것 중에 궁금한 점이 있으십니까?" 라고 ㅁ물었다.
아버지는, 하고 말문을 열었지만 목소리가 잠겼다. 마요는 첫키침을 한 다음 다시 말을 이었다.
"아머지가 살해됐다는 건가요?" - P50

"흔해빠진 질문이지만, 혹시 짚이는 데가 없으십니까? 아버님이 누군가와 갈등 관계에 있었다거나, 어떤 문제에 연관되었거나…"
"전혀 짚이는 데가 없네요." - P52

(전략)
"그렇군요. 그래도 없어진 물건이 있는지 한번 확인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P53

마지막으로 여러 가지 수속을 밟았다. 에이치의 휴대전화를 조사하거나, 주민등록이나 호적등본을 떼는 것에 동의하는 내용이었다. 아버지의 사생활이 공개되는 것에 거부감이 들었지만 수사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 P54

"마음이 많이 아프시죠? 그만큼 인망 두터운 분이 이런 비극적인 일을 당하다니, 정말 부조리하다는 생각밖에 안 듭니다. 저도 범인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 P55

이내 택시가 도착했다. 경찰서를 떠나는 순간, 에이치와 마지막으로 나눈 말이 떠올랐다. 전화로 결혼식 당일의 스케줄을 설명했을 때였다. 전화를 끊기 직전에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드디어 마요도 새신부가 되는구나.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 P56

4


(전략)
드디어 아침이다.
간밤에 몇 번이나 잠을 설쳤다. 창밖은 어두컴컴해서 다시 눈을 붙이려 애썼지만, 깊이 잠들지는 못했다. - P57

마요는 조금 생각한 뒤에 ‘푹 자지는 못했지만 상태는 괜찮아. 일단 오늘은 집에 다녀올게. 나 혼자서도 괜찮으니까 걱정 마.‘라고 답장을 보냈다. 곁에 있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의지해서는 안 된다는 마음도 있었다. - P58

멍하니 생각에 잠겨 이쓴데 "출장 오신 건가요?" 하고 묻는 목소리가 들렸다. 찾주전자를 든 사장이 다가와 마요의 컵에 차를 따라 주었다.
"네 비슷해요." 마요는 말을 흐렸다. 이 지역 출신이라고 하면 이것저것 물어볼 것 같아서였다. - P60

사장의 이야기는 하나도 놀랍지 않았다. 도쿄 올림픽이 연기되고, 디즈니랜드는 영업을 장기간 중지했다. 1년 후의 애니메이션 기념관 오픈은 허황된 이야기일 수밖에 없었다. - P62

(전략)
모모코의 이야기로는, 이번 동창회는 쓰쿠미 나오야의 추모식도 겸한다고 했다. 그래서 구기미야도 바쁜 와중에 참석할 마음을 먹었는지도 모른다. - P64

마요는 뒷좌석에 가키타니와 나란히 않았다. 젊은 남자는 운전석에 앉았다
"좀 진정되셨습니까?"
달리기 시작한 자동차 안에서 가키타니가 그렇게 물었다.
"조금요." - P64

"송구스럽습니다. 그럼, 이번 사건에 대해 뭔가 생각나신게 있으십니까? 사소한 것이라도 상관없습니다,"
"그게, 어젯밤에도 잘 생각을 해봤는데요……."
"딱히 짚이는 게 없다고요?" - P65

애석하게도 부정할 수는 없었다. 대학 진학과 동시에 상경했고, 그대로 고향에 돌아오지 않고 취직해 도쿄에 정착했다. 귀성하는 건 고작 1변에 한두 번이었고, 대부분은 하룻밤만 자고 올라갔다. - P65

그렇다고 해서 결코 아버지를 싫어했던 건 아니다. 좋아했고 존경했다. 그저 서로에게 너무 간섭하지 않으려 애썼던 것 뿐이다. - P66

마요는 초등학교 때부터 ‘가미오 선생님 따님‘이라고 불렸다. 당시에는 실지 않았다. - P67

말없고 수수한 모범생. 그것이 중학 시절의 마요가 연기해야 앴던 캐릭터다.
당연히 에이치와도 거리를 뒀다. 아마 에이치도 알아채고 딸의 심정을 헤아렸을 것이다. - P68

5

승용차는 마요가 잘 아는 곳에 도착했다. 길에 경찰차와 승합차형 경찰 차량이 여러 대 세워져 있었고, 집 앞에는 제복 경찰 두 명이 서 있었다. - P70

한 남자가 마요에게 다가왔다. 마스크는 쓰지 않았는데 여우처럼 가느다란 실눈이 인상적이었다. 그 눈으로 힐끗힐끗 그녀의 얼굴을 보며 "이 분이 ㅊ피해자의?"하고 가키타니에게 물었다. - P70

음, 하며 여우 영감은 미간을 긁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뭐, 일단 둘러보는 게 좋겠군요. 막상 보면 알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말하더니 마요의 손을 보고 부하로 보이는 남자들을 돌아보았다. "여기, 장갑 좀 가져다줘." - P72

"이런 질문은 굳이 할 필요도 없겠지만……." 가키타니가 옆에서 말을 걸었다. "평소에는 이 상태가 아니라는 거죠? 이 방이 늘 이렇게 어지럽혀져 있는 건 아니라는 겁니까?"
"당연하죠. 이런 말도 안 돼요. 오히려 아버지는 깔끔한 걸 좋아하셔서 정리정돈이 몸에 배어 계셨다고요. 어디에 무엇을 두는지 딱 정해져 있어요. 이렇게 물건을 꺼내놓는 일 자체가 거의 없었다고요." - P73

여우 영감이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책장으로 다가갔다.
"바닥에 널려 있는 물건들의 대부분은 이 안에 수남되어 있었다. 그렇게 생각해도 될까요?"
- P74

마요는 책상으로 다가갔다. 책상 서랍 역시 끝까지 열려 있었고 내용물은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중에서 통장 두 개를 찾았냈다.
"아, 역시……중요한 물건은 이 서랍에 넣어 두셨어요." - P75

"굳이 귀중품을 찾자면……" 마요는 책장을 올려다보았다. "책이겠네요." - P76

"오늘 아침 부하를 시켜서 이 집의 주민등록을 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분명 피해자 말고도 기재된 세대원이 있더군요." 가키타니는 안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 펼렸다. "음, 가미오 다케시 씨되십니까? 가미오 에이치 씨의 동생이신……" - P78

다케시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고구레에게 다가가, 경찰수첩을 그의 왼쪽 안주머니에 넣고 면허증을 받았다.
"그럼 다시 묻겠는데, 남의 집에 멋대로 들어와서 뭘 하고 있는 거지?" - P80

고구레는 다케시의 손에서 스마트폰을 낚아챘다.
"꺼낼 수고를 덜어줬을 뿐이야. 빨리 검색 안 하고 뭐 해? 가게 이름 다시 말해 줘? 트랩핸드다." - P82

(전략)
"어제도?"
"아니, 어제는 쉬는 날이었어."
이봐, 고구레가 입을 삐죽였다. "방금 휴일은 없다고 하지 않았나."
"기본적으로, 라고 했잖아. 볼일이 있어서 임시 휴업을 했지. 무슨 볼일이었는지는 묵비권을 행사하겠어. 사생활에 관려된 일이라." - P83

"그럼 묻겠는데, 전에 집에 온 건 언제지?"
(중략)
"집에 오는 빈도는? 한 달에 한 번? 거짓말할 생각은 마. 철저하게 조사할 테니까." - P84

다케시는 코웃음를 쳤다. "그널 날은 영원히 오지 않을 걸."
"과연 그럴까. 당신이 대경실색해서 황급히 변명을 둘러대는 날이 올 것 같은데."
"그럼 내기할까? 오지 않는 쪽에 10만 엔. 100만 엔이라고 하고 싶지만, 지방 공무원에게는 너무 부담스러운 금액일 테니까." - P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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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일과 삶을 위한 매일의 마법


가장 최근에 떠난 여행을 떠올려 보자. 그 여행에서 진짜 ‘탐험‘이 차지했던 비중은 어느 정도인가? - P16

그러나 때로는 무심코 길을 지나는 대신 소소한 탐험에 나서기도 한다. 나는 아침에 조깅을 하면서 새로운 길을 찾는 것을 즐기는 편이다. - P16

굳이 그래야 할까 고개를 갸우뚱하는 독자를 위해 탐험가가되어야 하는 이유 세 가지를 소개한다.

1. 무엇보다 삶이 재미있어진다. 이것만큼 좋은 이유가 있을까?
2. 세상이 너무나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기에 기존 사고방식의 유효기간이 짧아졌다.
3. 사람은 본능적으로 눈앞의 사실이 아니라 보고 싶은 것을 보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때로는 나 자신과 주변 사람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선택을 하기도 하고, 최악의 경우에는 피해를 입히는 선택을 한다. 이는 곧 우리가 매일, 어쩌면 매시간, 눈앞에 있는 좋은 기회와 인사이트를 놓치고 있다는 뜻이다. - P17

탐험쓰기와의 첫 만남

탐험쓰기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기전에 내가 어쩌다 우연히 탐험쓰기의 힘을 발견하게 되었는지 설명해야겠다.¹ 당시 나는 창업을 준비하기 위해 회사를 그만둔 상태여서 돈에 쪼들리고 있었다.
(중략).
소리만 지르지 않았을 뿐이지 공황상태에 빠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일단 머리에 떠오르는 행동을 했다. A4용지 크기의 공책을 펴고 글을 써내려가기 시작한 것이다. - P19

들어가며

1. 자세한 이야기는 필자의 TED 강연 <글쓰기의 재상상>을 참조하기 바란다. 영상은 다음 링크를 참고할 것. ‘Let‘s Rethink Writing‘ (https://youtu.be/59sjUm0EAcM). - P222

단 5분 동안 엉망진창이고 날것 그대로인 글을 썼을 뿐인데 넘쳐흐르는 불안감의 방향을 돌려 내 안에 숨겨져 있던 아이디어와 지혜에 다다를 수 있었다. 그러자 질문 하나가 고개를 들었다.
‘아니,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그 순간 나는 ‘탐험쓰기‘, 그러니까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글쓰기의 힘을 발견했다.  - P20

나는 의도적으로 매일의 생활과 일에 이 책의 초점을 맞추었다(혹시 트라우마나 정신질환에 대처할 방법을 찾는 독자가 있다면, 책말미에 실은 ‘참고도서‘에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쓴 책들을 소개해 두었으니참고하길 바란다). 일상의 좌절과 씨름하고 있는 독자에게 이 책은최고의 동반자가 되어줄 것이다. 하얀 종이 위에 펼쳐지는 무한한 자유와 가능성, 결말을 모르는 문장을 쓰기 시작할 때의 들뜬기분, 아무도 보고 있지 않기에 뭐든 마음대로 쓸 때 찾아오는 약간은 반항적이고 창의적인 쾌감을 이 책과 함께 맘껏 누리길 바란다. - P21

이제 탐험쓰기가 불러올 일상의 마법을 좀 더 가까이에서들여다볼 시간이다. - P22

2부

종이 위에 펼쳐지는 탐험


여러분도 지금쯤은 탐험에 동참했길 바란다. 탐험쓰기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할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탐험가의 마음가짐을 갖추고, 기본적인 도구도 마련했으리라 믿는다. 이제 첫발을 내디딜 차례다. 2부에서는 여러분이 나아갈 여러 방향과종이위에서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탐험을 소개할 예정이다. 다를내용은 다음과 같다.

5장: 의미 있는 일을 하기 위해 꼭 필요하고 서로 연결된 세가지 요소(역량, 의사결정, 주의집중)에 관해 알아본다.
6장: 나도 모르게 머릿속에서 항상 일어나고 있는 서사 형성의 과정(센스메이킹)에 관해 다룬다.
7장: 질문을 의도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소개한다.
8장: 창의력의 바탕인 즐거움에 관해 알아본다.
9장: 비유가 지닌 비범한 힘을 활용해서 세상을 다르게 바라본다.
10강: 평소 애써 무시하는 나의 면면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는자기이해의 과정을 살펴본다.
11장: 매일 마주하는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웰빙을 일구는 법을 알아본다.
각자의 속도에 맞춰 원하는 곳에서부터 탐험을 시작하면 된다.

2부에는 탐험쓰기를 도울 ‘일단 첫 마디‘를 실어두었다(어디까지나 글쓰기를 돕기 위한 장치이므로 다른 머리말을 활용해도 좋고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도 된다). - P68

5장

목표 달성에 필요한
근본 요소

(전략), 즉 심리학과 철학으로 초점을 옮겨보려 한다.
우선 나는 탐험쓰기의 마법을 뒷받침하는 상호 연결된 세가지 근본 요소가 있다고 생각한다. - P69

자신의 역량을 믿지 않는다면 의미 있는 일을 달성하려고시도할 생각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스스로 의사결정을 하지 않으면 표류하는 삶을 살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택한 과제에 주의를 집중하지 않으면 결실을 맺을 수 없다. - P70

역량과 탐험쓰기

(전략). 내가 스스로에게 어떤이야기를 들려주는지 인지하고, 분석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게 되며, 어떤 이야기를 받아들이고 또 거부할지 결정할수도 있다. 사고실험 (생각을 통해 가상으로 진행하는 실험-옮긴이)을 해볼 수도 있다. -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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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세상에는 논리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예컨대 낙하라는 현상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반드시 만유인력의 법칙으로 계산한 대로만 되지는 않는다. 깃털처럼 가벼운 물체가 낙하할 때를 상상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P122

그러나 논리에 확률을 추가하더라도 제대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있다. 논리처럼 확실하게 일어나지도, 주사위처럼 완전히 무작위로 일어나지도 않는 일들이다. (중략).
논리와 확률로 다루기가 특히 어려운 것이 인간의 의지다.  - P123

확률과 통계는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접근 방법이 정반대이다. 확률은 이론에 바탕해 결과를 예측하지만, 통계는 이미 존재하는 데이터를 분석해서 가설을 찾아낸다.
수학은 4,000년이라는 시간을 들여서 논리, 확률, 통계라는 표현 수단을 획득했다. 그러나 거꾸로 생각하면 이는 수학이 설명할 수 있는대상은 논리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과 확률 및 통계로 표현할 수 있는것뿐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 P124

수학이 발견한 논리, 확률, 통계라는 세 가지 언어에 결정적으로 부족한 점이 또 하나 있다. 그것은 ‘의미‘를 기술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 P125

인간이라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나는 당신을 좋아해"와 "나는 카레를 좋아해"의 본질적인 의미 차이도 수학으로 표현하기에는 매우 까다로운 문제다. - P125

시리(Siri)는
현자인가?

"근처에 있는 맛없는 이탈리아 음식점을 찾아줘"

컴퓨터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AI가실현되는 것을 가로막는 거대한 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중략).
물론 AI 연구자들도 팔짱 끼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연구자들은 AI가 의미를 모르는 것은 이쩔 수 없지만 적어도 의미를 이해하는 것처럼 행동하도록 만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거듭해 왔다. - P126

이번에는 "이 근처에 있는 맛없는 이탈리아 음식점은?"이라고 시리에게 물어보자. (중략). 시리는 ‘맛없다‘와 ‘맛있다‘의 차이를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이 근처에 있는 이탈리아 음식점 이외의 음식점은?"이라고 질문해 보자. (중략). 요컨대 시리는 ‘이외의‘라는 말의 의미 또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 P127

뒤에서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정보 검색이나 자연언어 처리 분야에서는 현재 통계와 확률 수법으로 AI가 언어를 학습하도록 하고 있다(논리적 수법은 일단 포기한 상태다). 즉, 문장의 의미는 몰라도 해당 문장에 나오는 (이미 아는) 단어와 그 조합에 입각해서 통계적으로 추측해 옳을 것 같은 답변을 이끌어내는 방식이다.
여기서 통계의 근간이 되는 데이터는 많은 사람이 시리를 사용할수록 점점 더 쌓이게 된다. 그러면 이를 이용해 시리가 자율적으로 기계학습을 거듭함으로써 정확도를 높이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 P128

시리한테 "나와 결혼해 줘!"라고 말하면
"저는 결혼이 체질적으로 안 맞는 것 같아요"라든가 "저랑 결혼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같은 절묘한 대답을 하는 것은 기계 학습에 따른 결과물이 아니다. 관계자가 수작업으로 입력해 넣은 것이다. - P129

2017년 4월 TED에 초빙되어 강연을 했을 때, 같은 세션 강연자 가운데 시리의 메인 엔지니어인 톰 그루버(Tom Gruber)가 있었다. 당연히시리가 어떻게 사람의 말을 이해하게 되었느냐는 내용의 강연을 할 예정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앞선 강연에서 내가 먼저AI가 어떤 식으로 세계사 문제를 푸는지 비밀을 밝혀버리는 바람에 원래 하려던 이야기를 하기가 곤란한 처지에 놓였다. - P129

논리로는 공략할 수 없는 자연언어 처리


통계적 수법이 등장하기 이전, 자연언어 처리 기술을 이용한 자동 번역이나 질의응답 분야의 연구자들은 AI에 문법 등의 언어 규칙을 기억시키고 논리적·연역적 방법으로 정확도를 높이려 했다. 그러나 아무리 시도해도 실패만 거듭할 뿐이었다. - P130

 다음 두 문장에 대해 생각해 보자.

경보기는 분해나 개조를 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미성년자는 음주나 흡연을 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이 두 문장은 언뜻 보았을 때 구조적으로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일본어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있는 사람이라면 두 문장의 구조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후자의 주어는 ‘미성년자‘이지만, 전자의 주어가 ‘경보기‘일 리는 없다. - P130

현재의 AI는 논리적으로 문장을 읽거나 생각하지 못한다. - P131

통계와 확률을 사용하면 의외로 적중률이 높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오늘날 자연언어처리 분야에서 성공을 거둔 기업은 모두 그동안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었다. (중략).
다만 통계로는 논리와 같은 확실한 추론을 하기가 어렵다. 또한 경험한 적이 없는 사례에 대해 어떻게 판단할지도 예상할 수 없다 - P132

도쿄 대학 의과학 연구소에 도입된 왓슨은 "의료 논문은 사람에게 새로운 의학적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 쓰인 것이다. 그럴 때 사람은 어떤 식으로 쓰는 경향이 있는가?", "전자 카르테는 의사가 환자의 진료 경과등을 기록한 것이다. 그럴 때 사람은 어떤 식으로 쓰는 경향이 있는가?"
를 통계적으로 산출함으로써 병명을 찾아내는 작업을 지원한다.
그러므로 왓슨이 도쿄 대학의 의사가 반년 동안 찾아내지 못했던 희귀병을 진단해 냈다는 뉴스를 보고 "왓슨의 진단 능력이 인간을 넘어셨다"라고 이해하는 것은 잘못이다. 왓슨은 진단을 하지 못한다. - P133

"결과적으로 AI의 진단 정확도가 인간을 능가한다면 기계에게 진단을 맡기는 편이 더 마음 놓이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는 크나큰 오해다. 시리를 떠올려보라. 근처에있는 이탈리아 음식점은 순식간에 찾아주지만 ‘맛있다‘와 ‘맛없다‘ ‘이탈리아 음식점‘과 ‘이탈리아 음식점 이외의 음식점‘을 구별하지 못하는것이 AI다. - P134

3장

전국 독해력 조사를
통해 드러난
충격적인 현실


민간은 AI가 하지 못하는 일을
할 수 있을까?

결국 커뮤니케이션 능력과 이해력이다

(전략). 요컨대 지금 다가오고있는 것은 노동자의 절반을 실업의 위기에 빠뜨릴지도 모를 정도의 실력을 갖춘 AI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미래다. - P171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AI의 약점은 1만 개를 가르쳐야 간신히 하나를 아는 것, 응용력이 없는 것, 유연성이 없는 것, 정해진(한정된) 프레임(틀) 속에서만 계산 처리를 할 수 있는 것 등이다. 거듭 이야기했듯이AI는 ‘의미를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와는 반대로 하나를 들으면열을 아는 능력이나 응용력, 유연성, 프레임에 얽매이지 않는 발상력 등을 갖추고 있다면 AI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셈이다. - P174

일본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 책의 머리말에서도 언급했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현재 일본의중·고등학생의 독해력은 심각한 상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중학교 교과서의 문장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뭐야, 중·고등학생이면 아직 어리잖아? 앞으로 나아지겠지"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독해력이라는 교양은 대개의 경우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확립된다. 특별한 훈련을 받는다면 성인이 된 뒤에도 독해력이 비약적으로 향상될 수 있지만 그런 사례는 매우 드물다. - P175

수학을 못하는 것인가,
문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인가?

대학생 수학 기본 조사

대화가 성립하지 않는다

(전략). 국공립·사립을 막론한 전국의 대학에 협조를 요청해 대학생 6,000명의 수학 실력을 조사한 것이다. 48개 대학의 90개 학과가 이 조사에 협력했다.
조사 대상의 대부분은 대학 입시를 갓 마친 1학년 신입생들로, 입시를 위해서 공부했던 수학은 이미 전부 잊어버렸어"라고는 말할 수 없는 처지였다. - P177

이를테면 우리는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은 문제를 풀게 했다.

문제 홀수와 짝수를 더하면 어떻게 될까? 다음의 선택지 중 옳은 것에 ○를 기입하고 왜 그런지 이유를 설명하시오.

ⓐ 언제나 반드시 짝수가 된다.
ⓑ 언제나 반드시 홀수가 된다.
ⓒ 홀수가 될 때도 있고 짝수가 될 때도 있다. - P178

상당히 관대하게 채점했음에도 이 문제의 정답률은 34퍼센트에 불과했다. - P178

가장 전형적이고 흔한 오답은 짝수를 2n으로, 홀수를 2n+1로 놓고2n+ (2n+1) = 4n+1이므로 답은 홀수라고 적은 경우였다. 이것은 2+3이라든가 10+11처럼 연속된 짝수와 홀수의 합이 홀수라는 것밖에 설명하지 못하므로 정답이 될 수 없다. - P179

여름방학에 수학자 열두 명이 모여서 사흘 동안 좁은 방에 틀어박혀 6,000장이나 되는 답안지를 전부 손수 채점했다. (중략). 우리 수학자들은 수학의 답안은 수학자가 아니면 채점할 수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P179

예 3: (가) 짝수를 홀수로 만들려면 짝수를 더해서는 안 되고 홀수를 더해야 한다.
(나) 짝수를 더하는 것은 합의 홀짝에 영향을 끼치지 않기 때문에 홀수에 짝수를 더하면 언제나 반드시 홀수가 된다.
이와 같이 질문한 내용을 그대로 되풀이해 쓰는 ‘동어반복형‘도 상당 수 있었다. - P180

사립대학을 편차치에 따라 S, A, B, C급으로 구분하면 B와 C에서는 문과와 이과를 불문하고 전체 학과의 3분의 1 이상에 위와 같은 심각한 유형의 오답을 적은 학생이 있었다. 반면 국립 S에서는 문과와 이과를 통틀어 그런 답안이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 P181

이러한 실태를 보고서로 작성하자 인터넷상에서는 "수학자의 유토리세대¹⁶ 두들기기"라는 비판이 일었다.


16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 사고력을 키우는 데 중점을 둔 소위 유토리 (1) 여유) 교육을 받은 세대. 일반적으로는 1987년부터 2004년 사이에 태어나고 자란 젊은이들을 가리킨다. - P181

또한 독자 여러분 중에는 성적과 무관한 조사이므로 진지하게 답안을 적지 않은 학생이 많은 것 아니냐고 의심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지당한 추측이라고는 생각하지만 우리는 대부분의 학생이 진지하게 조사에 응답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 P182

학생이 논리적인 대화의 캐치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한 채대학에 들어오면 대학에서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제한된다. 그런 상황에서는 학생들이 얻을 수 있는 것도 적다. - P183

이번에는 선택식 문제를 소개하겠다.

문제  다음 제시문을 읽고 이어지는 서술 가운데 확실히 옳다고 할 수 있는것에는 ㅇ를, 그렇지 않은 것에는 X를 기입하시오.


공원에 아이들이 모여 있습니다. 남자아이도 여자아이도 있습니다. 유심히 관찰하니, 모자를 쓰지 않은 아이는 모두 여자아이입니다. 그리고 운동화를 신은 남자아이는 한 명도 없습니다.

① 남자아이는 모두 모자를 썼다.
② 모자를 쓴 여자아이는 없다.
③ 모자를 쓰고 운동화를 신은 아이는 한 명도 없다. - P184

이 문제의 정답률은 64.5퍼센트였다. 입시에 필요한 기술을 무엇 하나 요구하지 않는 문제임에도 국립 S에서는 85퍼센트가 정답을 맞힌반면에 사립 B, C에서는 정답률이 50퍼센트를 밑돌았다. 그렇다면 많은 고등학생이 동경하는 사립 S의 정답률은 어땠을까? 국립 S에 비해20퍼센트포인트나 낮은 66.8퍼센트에 머물렀다. - P184

전국 2만 5,000명의
기초 독해력을 조사하다


문장을 읽고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가?

‘대학생 수학 기본 조사‘를 실시한 후 나는 일본 학생들의 기본적인 독해력에 의문을 품게 되었다. - P185

 사전에 실린 ‘독해력‘이라는 말의 뜻 그대로, 문장을 읽고 그 내용을이해하는 능력에 대한 것이다. 요컨대 많은 대학생들이 수학 기본 조사의 문제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었다. - P185

도로보군의 공부를 바탕으로 리딩 스킬 테스트를 개발하다


기초 독해력을 조사하기로 결정은 했지만, 그런 조사는 지금까지 세계에서 누구도 실시한 적이 없기 때문에 이렇다 할 조사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기초 독해력을 조사하기 위한 리딩 스킬 테스트(ReadingSkill Test, RST)를 자력으로 개발했다. - P186

AI가 어절과 의존 구조, 조응을 이해하면 단순한 문장은 읽을 수 있다. 조응이나 의존 구조라는 말이 귀에 익숙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앞으로 자주 나올 테니 기억해 주기 바란다. - P187

의존 구조나 조응은 자연언어 처리 분야에서 이미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한편 오랫동안 연구되어 왔음에도 좀처럼 정확도가 오르지 않는 것도 있다. 바로 ‘동의문 판정이다.
‘동의문 판정‘은 서로 다른 두 문장을 읽고 비교해서 의미가 같은지 여부를 판정하는 것이다.  - P187

그 밖에 우리는 의미를 이해하지 않는, 프레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상식이 결여된 AI로서는 하지 못하는 것, 즉 인간이 AI에 맞서 이길 가능성이 있는 중요 분야로 ‘추론‘, ‘이미지 동정(同)‘, ‘구체예(具體例)동정‘이라는 과제를 새로 설정했다. - P188

RST는 AI의 정답률이 80퍼센트가 넘는 ‘의존 구조‘나 급속히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조웅‘, AI한테는 아직 어려운 듯한 ‘동의문 판정 AI가 넘을 수 없는 벽인 ‘추론‘ ‘이미지 동정, ‘구체에 동정(사전적 정의·수학적 정의)‘의 6개 분야로 구성되어 있다. - P188

(전략). 교과서는 그 대표적인 예로, 교과서를 읽고 이해하지 못하면 고등학교 입시나 대학 입시에서 명백히 불리한 입장에 놓인다. 신문도 마찬가지다. 신문에 적힌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다. - P189

RST에는 다른 테스트와 다른 또 한 가지 특징이 있다. 수험자 전원이 같은 문제를 푸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예제를 다 풀었으면 컴퓨터가 수백 문제 가운데 무작위로 문제를 선정해서 제시한다. 한 문제의 답을 적으면 다시 무작위로 다음 문제가 출제된다. 각 분야별로 설정된 제한 시간이 끝날 때까지 계속해서 이런 방식으로 테스트가 진행된다. 어떤 수험자는 20문제를 풀고, 다른 수험자는 5문제밖에 풀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것까지도 포함해서 수험자의 기초 독해력을 진단한다. - P189

RST 예제 소개

RST가 구체적으로 어떤 테스트인지 이해할 수 있도록 예제를 몇 가지 소개하겠다.

(중략).

예제 2 조응 다음 문장을 읽으시오.

화성에는 생명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 과거에 대량의 물이 있었던 증거가 발견되었으며, 현재도 화성 지하에는 물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

문맥을 고려했을 때 다음 문장의 빈칸에 들어가기에 가장 적당한 말을 선택지에서 하나만 고르시오.

과거에 대량의 물이 있었던 증거가 발견된 것은 ( )이다.

① 화성 ② 가능성 ③ 지하 ④ 생명


(정답: ① 화성) - P191

예제 4  추론 다음 문장을 읽으시오.

에베레스트산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위의 문장에 적힌 내용이 옳다고 할 때, 아래의 문장에 적힌 내용이 옳은지 여부를 ‘옳다‘, ‘틀렸다‘, 이것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다‘ 중에서 대답하시오.

엘브루스산은 에베레스트산보다 낮다.

① 옳다 ② 틀렸다 ③ 판단할 수 없다

(정답: ① 옳다) - P192

중학생 세 명 중 한 명이
간단한 문장을 읽지 못한다


알렉산드라의 애칭은?

그러면 이제 조사 결과와 분석으로 넘어가자. 놀라지 말기 바란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심각한 상황‘임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P194

[표3-2]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겠는가? "중학생의 62퍼센트, 고등학생의 72퍼센트가 정답을 맞혔다"가 아니다. "중학생 세 명 중 한명이상이, 고등학생 열명 중 세 명 가까이가 정답을 맞히지 못했다"라고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 P195

"고등학생 중에는 반항기에 접어든 학생도 있을 테고, 성적과 무관한 테스트라서 진지하게 응답하지 않은 것이 아닐까요?"라는 질문을 종종받는다. ‘대학생 수학 기본 조사 때도 같은 질문에 시달렸다. 그러나 여기에 대한 나의 답변은 "그렇지 않다"이다. 첫 번째 선택지인 ‘힌두교‘를고른 학생이 매우 적다는 데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 P196

한편, 출제된 문제가 수험자의 독해력을 측정하기에 부적절할 가능성에 관해서는 항목 특성을 조사함으로써 검증하고자 했다. RST에 수록된문제의 난이도는 사전에 미리 평가할 수 없다. 수만 명 규모로 조사를 실시해 문항별 정답률을 비교했을 때 비로소 각 문제의 난이도를 추계할수 있는 것이다. - P197

(전략), 이전부터 교과서를 잘 읽지 못하는 학생이 늘어나고 있음을 깨닫고 수업 시간에 사회 교과서를 소리 내어 읽힌다고했다. 그 선생님이 가르쳐준 오독의 예를 몇 가지 소개하겠다.


수상(相)→슈소
동서(東西)→도세이
설립(立)→세이리
쓰대기업(大)→ 다이데
잔업)→노코리교
물리(理)→모리
문부(部)→분부
사용하다(用)→요이루
거주지→ 이주치
현역(現役)→겐야쿠¹⁷


17 올바른 일본어 발음은 앞에서부터 각각 ‘슈쇼, 도자이, 세쓰리쓰, 오테, 잔교, 부쓰리, 몬부, 모치이루, 교주치, 겐에키‘이다. - P201

다음은 지금까지 만든 문제 가운데 난도가 특히 높았던 의존 구조 문제다.


다음의 문장을 읽으시오

아밀라아제라는 효소는 글루코오스가 이어져서 생긴 전분을 분해하는데, 같은 글루코오스로 만들어졌지만 모양이 다른 셀룰로오스는 분해하지 못한다.

문맥을 고려했을 때 다음 문장의 빈칸에 들어가기에 가장 적당한 말을 선택지에서 하나만 고르시오.

셀룰로오스는 ()과(와) 형태가 다르다.

① 전분 ② 아밀라아제 ③ 글루코오스 ④ 효소

모 신문사의 논설위원부터 산업성의 관료에 이르기까지 어째서인가 글루코오스를 선택하는 바람에 충격을 받았는데, 정답은 ① 전분이다. - P202

동의문 판정을 하지 못하는 학생들


AI가 풀이에 유독 어려움을 겪는 문제 유형이 있다. 두 문장을 읽고비교해서 의미가 같은지 다른지를 판정하는 ‘동의문 판정‘ 문제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문제 3  다음 문장을 읽으시오.

1639년 막부는 포르투갈인을 추방하고 다이묘에게 연안의 경비를 명령했다.


위의 문장이 나타내는 내용과 아래의 문장이 나타내는 내용은 같은가?
‘같다‘, ‘다르다‘ 중에서 대답하시오.

1639년 포르투갈인은 추방되었고 막부는 다이묘에게서 연안의 경비를 명령받았다.



연안 경비를 명령받은 쪽은 다이묘이므로 답은 당연히 ‘다르다‘이다.

이것은 AI에게 상당히 어려운 문제다. 두 문장에 등장하는 단어가 거의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역시 인간이 더 우수하지"라며 기뻐할 수 없다. - P203

동의문 판정 문제는 ‘같다‘와 ‘다르다‘의 양자택일이므로 동전을 던져서찍어도 50퍼센트는 맞힐 수 있다. 다시 말해, 이 문제에 대한 중학생의 정답률이 동전 던지기 수준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심각한 일인지 아닌지를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는 기자가 신문 기사를 쓰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정신이 아득해질 수밖에 없었다. - P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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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를 해석하는 정신분석의 관점들


정신분석 역사상 중요한 최초의 신화 연구 업적은 주로 1906-1920년에 이루어졌다. (중략).
이 시기 프로이트의 제자들은 프로이트의 지형학적 정신구조 모델‘의식, 전의식, 무의식)에 근거한 무의식론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리비도 발달론을 신화의 심층 의미를 드러내는 데 적용했다. 이에 비해 융은 리비도를 성욕동보다 광대한 인류의 보편적 생명 에너지로 해석했다. - P28

프로이트


프로이트는 신화가 꿈, 예술작품, 신경증 증상들과 더불어 무의식을 탐색하는 데 유용한 핵심 통로이자 열쇠임을 발견했다.⁴ - P29

1 신화 해석을 위한 정신분석의 기초


4 신화와 꿈, 중상 예술작품 사이의 밀접한 연관성에 관한 프로이트의 관점과 분석은 여러 글에 분산되어 있다. 《꿈의 해석》, 《창조적인 작가와 몽상》, 《토템과 터부》, <인간 모세와 유일신교, 세상사의 모티프>, <불의 소유와 그 통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유년기 기억>등을 참조할 것. - P602

첫째, 신화는 고대 인류의 무의식적 소망과 콤플렉스가 외부로 투사(외재화)된 결과물이다. (중략).
둘째, 신화는 억압된 무의식이 전의식의 검열을 통과해 의식으로 진입하기 위해 변장(압축, 전치, 상징화)되어 표현된 결과물이다. (중략).
셋째, 개체 발생이 계통 발생을 반복하듯이 영유아와 아동의 사고는 원시 인류의 상태를 반복 재현한다. (중략).⁶
넷째, 신화·꿈·증상 및 예술작품의 심리적 발생 과정과 발생 구조는 동일하다. (중략).
다섯째, 신화는 억압된 무의식의 소망을 의식에 상징으로 재현함으로써 현실에서 충족하지 못한 소망을 간접적으로 이루려는 목적을 지닌다. - P29

6 지그문트 프로이트, <편집증 환자 슈레버>, <늑대인간>, 열린책들, 1996, 369쪽. "꿈과 신경중에서 우리는 아이를 다시 만나게 된다. 그리고 아이와 함께 아이가 생각하는 방법과 정서생활의 독특함을 만나게 된다. 이제 이 명제에 다음을 덧붙이게 될 것이다. 우리는 야만인즉 원시인도 만나게 된다. 원시인은 고고학과 민속학 연구를 통해 우리에게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 P603




융은 신화가 인류의 심층무의식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가장 중요한 자료임을 선구적으로 밝혔고, 신화 분석의 중요성을 평생 동안 주장했다. (중략).⁷
융의 관점에서 보면 신화 속 등장인물들의 특성과 행동은 단지 억압된소망이 변장된 개인무의식의 상징이 아니다. 그것은 그 민족이 정신의 균형과 발달을 위해 용기 있게 대면하거나 보충해야 할 정신 요소들이 무엇인지를 전달하는 초개인적 인류무의식의 상징이다.
(중략).
이런 상징은 인간 내부의 대극적 요소들(자아상/그림자, 남성성/여성성)의분열 상태가 계속되면 정신의 불균형이 심해져서 민족이 위기에 봉착할수 있다는 인류무의식(‘자기)의 메시지일 수도 있다. - P30

7 카를 구스타프 융, <무의식에의 접근>, 《인간과 상징》, 열린책들, 1996, 95, 102쪽. 음을 계승한신화 분석가로는 마리-루이제 폰 프란츠, 에리히 노이만 등이 유명하다. - P603

자아심리학

프로이트의 후기 정신구조론(이드·자아·초자아)을 계승한 자아심리학자 제이콥 아를로우Jacob Arlow는 신화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신화는 집단 구성원들의 본능이드) 충족 욕구, 초자아의 도덕규범 요구, 사회적 관계에기여하라는 현실의 요구, 그리고 이 요구들에 대한 자아의 방어와 적응등의 다중 목적을 지닌 ‘공유된 환상‘•이다."⁹


• 사회가 학교와 매스컴을 통해 구성원들에게 교육하는 이념들(자유, 평등, 헌신, 종교 이데올로기)과 그것을 구현하는 신화들에는 구성원 간의 대립 충돌을 최소화하며 개개인이 지닌 ‘이드·초자아자아의 욕구와 기능을 적절히 만족시키는 ‘공유된 환상‘이 담겨 있다. - P31

9 미국정신분석학회, 《정신분석 용어사전》, 한국심리치료연구소, 2002,252쪽. - P603

클라인


여성 정신분석가 클라인은 고대 신화에 자주 등장하는 괴기스러운 대상,
섬뜩한 사건, 패륜적 행동들의 심리적 의미를 구강기 유아의 원시적 심리특성과 연관해 해석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한다. 그에게 고대 신화는 인류의 태초 시기이자 개인의 영유아기 정신 상태인 ‘편집·분열 자리‘와 ‘우울 자리‘의 독특한 경험 구조와 내용을 반영하는 상징물이다 - P31

(전략). 고대인의 작품에 선/악 양극으로 분열된 정신성을반영하는 복수의 여신(원시 초자아)과 정의의 신(문명적 초자아)이 신화적작품에 함께 등장하는 것은 원시적 정신성과 문명적 정신성이 공존하는 고대 그리스인의 상태를 반영한다.¹⁰ 클라인의 관점과 개념은 프로이트가 정밀히 탐구하지 못했던 구강기 유아의 심리와 편집증 환자의 심리를 신화 해석에 반영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 P32

10 M. Klein. "Some Reflections on The Oresteia", Envy and Gratitude and Other Works, 1946-1963, Free Press, 1984, pp.275-299. 이 논문에서 클라인은 ‘아들이 어머니를 살해하게 된 현상의 원인‘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촉발 원인은 자신이 동일시해온 아버지(아가멤논)가 어머니에게 살해당하자 이들의 자아가 손상된 것이며, 근본 원인은 그동안 묻혀 있던 편집·분열 자리에 의한 가학적 초자아의 박해환상과 박해불안이 아들(오레스테스)에게 엄습한 것이다. - P603

대상관계론과 페미니즘

엄마 품에서 분리되어 아버지 세계로 나아가는 오이디푸스 시기(아동기)의 체험이 인간의 정신발달에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강조한 프로이트학파의 견해는 19세기 말~20세기 전반기 유럽의 가부장적 사회 구조와 남성 중심적 세계관을 반영한 것이었다. - P33

타인(아기)의 정서에 섬세히 공감하는 모성적 대상관계와 모성성은 개인과 민족적 정신(‘자기self‘와 ‘자아ego‘ 구조)의 최초 형성과 성장에 필수적이고 근원적인 힘으로 작용하며 평생 동안 영향을 미친다.¹¹ 가령 유아기에 불안과 본능욕구가 엄마의 정신에 담겨지는 긍정적 관계 경험이 과잉좌절된 개인은 좋은 엄마의 모성 에너지가 결핍되어 대상과의 편안한 관계능력이 결여된다.  - P33

11 줄리아 크리스테바, 《사랑의 정신분석》, 민음사, 1999, 30, 58, 70, 84쪽 참조. - P603

반면 유아기에 엄마와의 관계에서 좋은 성적 경험을 내면화한 개인은 자기가 견실히 구조화되어 외부의 낯선 자극이나 불안을 견뎌내면서전인적으로 관계할 수 있는 정서적 힘을 지니게 된다. 유아기전 오이디푸스기)에 ‘최초 대상인 어머니와의 관계를 통해 내면화한 모성성과 좋은엄마상은 아동기(오이디푸스기)에 아버지 관계를 통해 내면화되는 언어적분별 활동과 결합하여 정신을 발달시키는 토대가 된다. - P34

인류가 탄생해 ‘최초의 나‘가 형성되는 유년기(태) 삶의 과정을 반영하는 창세신화로부터 사회 속에서 자아 정체성 확립을 위해 방황하는 격동기(사춘기)를 반영하는 영웅신화를 거쳐 성숙한 주체인 성인으로 고양되는 ‘변환신화‘에 이르는 일련의 정신발달 과정에서 모성 에너지는 부성에너지와 대등한 정신발달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다루어져야 한다. - P34

자기심리학

‘자존감‘의 정신적 가치를 강조하는 하인츠 코헛 Heinz Kohut의 자기심리학관점에서 보면 신화 속에 화려하게 등장하는 신과 영웅들은 각 민족이 지닌 ‘자기‘의 안정과 활력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자기애 self-love 와 자존감self-esteem을 보충해준다. - P34

우리나라의 신화 연구

외국에 비해 우리나라의 정신분석적 신화 연구 역사는 상대적으로 짧고 단순하다. (전략). 그리고 1960년대 후반부터 프로이트의 이론을 적용한 신화해석 담론이 정신과 의사 김광일에 의해 생성되었다.¹³ 김광일은 한국의신화가 질서 있게 보이는 이유는 유교를 숭상하는 선비 계층에 의해 구전신화가 문자로 최초 기록되는 과정에서 과도한 검열과 변형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라고 본다. - P35

13 김광일, <한국 신화의 정신분석학적 연구: 오이디푸스 복합>, 《한국전통문화의 정신분석》, 교문사, 1991. - P603

어떤 정신분석 관점과 개념이 한국, 중국, 일본 신화의 무의식적 의미를 발굴하여 드러내는 데 가장 적합한가에 대한 논의는 아직 국내 신화학자나 정신분석학자들에 의해 논의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 P36

국내의 상황과 달리 오늘날 미국과 유럽의 정신분석연구소에서는 프로이트, 융, 그리고 현대정신분석(자아심리학, 클라인, 대상관계론, 자기심리학, 라캉) 등을 함께 교육하고 있다 - P37

3

신화를 창조한 무의식의 유형들


신화를 창조한 근원적 추동력은 어떤 유형의 힘들에서 기인한 것인가?
인간의 정신은 각기 다른 에너지, 특성, 작동 원리, 내용을 지닌 의식과 무의식으로 구성된다. (중략). 이에 비해 무의식은 외부 환경이나 시간의 변화와 무관하게 어떤 표상과 감정을 원상태 그대로 보존한다.¹⁸ - P38

18 지그문트 프로이트, <정신적 기능의 두 가지 원칙>, <억압에 관하여>, <무의식에 관하여>,
《무의식에 관하여》, 열린책들, 1997, 18, 140, 192쪽, 자기보존 본능에 의해 후천적으로 계발된 2차 정신 과정인 의식은 늘 외부 현실 상황을 고려하여 내적 욕구를 조절하는 ‘현실원칙‘에 의거해 작동된다. 이에 비해 무의식의 내용들은 ‘쾌락원칙‘을 따르는 본능적 1차 정신 과정에 의해 작동된다. 무의식은 외부 세계의 눈치를 보지 않으며, 자체의 법칙에 의해 작동되고 유지된다. 그로 인해 어떤 경험 흔적이든 무의식에 들어오는 순간, 원상태 그대로 평생 보존되는 것이다. - P604

억압된 무의식


프로이트는 자신이 주창한 지형학적 정신구조론에서 무의식을 크게 두유형으로 구분한다. 첫째는 개인이 출생한 순간부터 외부 환경과 내부 욕동으로부터 받은 수많은 자극 가운데 당시의 자아가 감당하기 힘들어 억압한 무의식이다. 이 무의식은 주로 충격적 과잉 자극으로 구성된다. - P39

21둘째는 ‘자연적 본능instinct‘과 ‘인간적 본능인 욕동 drive‘이다.²¹ 편의상 이두 가지를 혼합해 ‘본능‘ 내지 ‘요동‘으로 표현하겠다. 욕동은 오랜 진화 과정을 거쳐 형성된 인류의 보편 요소다. - P39

21 본능은 고정된 대상에게 고정된 행동을 유발하는 생물학적 특성을 지칭하며, 욕동은 문화적 전환성을 지닌 유동적 본능을 지칭한다. 인간은 본능과 욕동을 함께 지니는 유일한 ‘생리적·심리적 존재‘다. - P604

원시시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동안 인류가 반복해서 겪은 강력한 체험들은 자아에 의해 억압되어 무의식에 저장되었다가 그중 일부는 욕동에흡수되어 유전된다.²³ - P40

23 지그문트 프로이트, <자아와이드>, <쾌락원칙을 넘어서>, 열린책들, 1999, 110쪽. "자아는이드에서 칼로 자르듯 분리되어 있진 않다. 자아의 하부 일부는 이드와 합병된다. 억압된것 역시 이드와 합병되어 이드의 일부를 구성한다. (...) 억압된 것은 억압으로 인해 자아와단절되어 있지만, ‘이드를 통해‘ 자아와 의사소통할 수 있다." - P604

본능욕동은 또한 파생물(표상과 감정)을 통해 외부로 분출하여 쾌락을 획득하려는 성향을 지닌다. 그런데 현실의 냉혹한 압력에 의해 본능표상과 감정이 오랜 기간 과도하게 억압될 경우 내부에 축적된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모종의 대리 분출 활동이 일어난다. 그 결과물 중 하나가 ‘원초적 환상‘이다. - P41

무의식은 이처럼 선천적인 본능욕동과 원초환상들, 그리고 후천적으로 경험되었다가 자아가 감당하기 힘들어 억압한 과잉 자극과 공격환상•성환상 등으로 구성된다. 이 선천적 무의식(본능욕동)과 후천적 무의식(상처, 성환상)은 자아가 약해지거나 현재의 어떤 자극이 무의식의 특정 내용과 우연히 결합되어 갑자기 의식으로 치솟을 때 어렴풋이 지각된다. - P42

프로이트가 말년에 제시한 ‘역동적 정신구조론‘에 의거하면 신화의 생성 원인과 의미를 새롭게 조명할 수 있다.²⁷ 3원적 정신구조론에 의하면 인간의 정신은 각각 고유한 특성을 지닌 ‘이드·자아·초자아‘로 구성된다. - P42

27 지그문트 프로이트, <쾌락원칙을 넘어서>, 열린책들, 1999의 ‘죽음본능론‘, <자아와 이드>에 나오는 ‘3원적 정신구조론‘ 참조. - P605

정신구조론은 여러 유형의 대상들이 이드·자아·초자아 각각에 미치는 영향과 이것들이 정신 내부에서 상호 대립하면서 관계 맺는 역동적 구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 P43

집단무의식

프로이트는 유전된 본능욕동과 환상, 상처, 억압된 유년기 쾌락욕망과 경험 등을 무의식의 주요 내용으로 주목했다. (중략). 융은 프로이트가 개인 삶에 미치는 집단무의식의 거대한 작용을 성찰하지 못한 채 개인무의식의 힘에만 주목했다고 비판한다.²⁹ - P43

29 카를 구스타프 융, 《원형과 무의식》, 솔, 2003, 156-159쪽. - P605

융의 비판에 자극받아 민족의 집단정신성에 관심을 갖게 된 프로이트는 "개체발생은 계통발생을 반복한다."라는 당대 생물학 이론을 참고한다.
그리고 이 이론을 응용하여 선조들이 반복해서 겪었던 중요한 경험의 흔적은 본능에 흡수되어 후손에게 유전되고 문화를 통해 전승된다고 생각했다.³⁰
융은 인간의 본능욕동이 개인사적 경험에 의해 변화되고 문화로 전승된다는 프로이트의 관점에 반대한다. - P44

30 지그문트 프로이트, <토테미즘의 유아적 재현>, <토템과 터부》, 경진사, 1993,195,209 (주178), 224-225, 229쪽. 이 책에서 프로이트는 다윈의 진화론을 정신분석학과 접맥하려 한다. <편집증 환자 슈레버>(<늑대인간>, 열린책들, 1996, 369쪽) 맨 끝에 덧붙인 글에서는 자신의견해가 융과 유사함을 언급한다. "편집증 환자 분석을 통해 나는 융의 주장이 타당함을 발견했다. 융은 인류가 신화를 만들어내는 힘이 사라지지 않았고, 신경증에선 지금도 먼 과거와 동일한 정신적 산물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 나는 개체의 문제에 적용했던정신분석 명제들을 인류의 문제로 넓힐 때가 곧 오리라 생각한다." 한편 융은 말년 작품인《인간과 상징》에서 "태아의 형성 과정이 역사 이전의 진화 과정을 반복하듯이 마음도 역사이전의 단계를 밟으면서 발달한다. 꿈은 ・・・ 유아기와 함께 선사시대의 ‘회상‘을 불러일으킨다는 내용을 프로이트도 이미 파악했다."라고 언급한다. 카를 구스타프 융, 《인간과 상》, 열린책들, 1996, 99쪽. - P605

인간다움mumanity의 본질인 이 원형에는 인간이 마땅히 실현해야 할 보편적이고 궁극적인 인생 목적과 정신의 전형적인 발달 과정이 내재해 있다.³¹ (중략). 인간의 근원적 욕구는 성욕을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개성화(자기실현)를 이루려는 욕구인 것이다.³² - P44

31 원형들은 자체로는 인식될 수 없지만, 출생·결혼·모성애·죽음. 이별 같은 인생사의 보편경험을 둘러싼 행위들에서 인식될 수 있다."(앤드루 새뮤얼 외, 《읍 분석비평사전》, 동문선, 2000,
45쪽) 음의 원형론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 관념을 연상케 한다. 실체란 내재된 본질 목적을 지닌 독립적 존재이며, 잠재된 본질인 ‘가능‘에서 본질이 현실에서 실현되는 ‘현실태‘로 움직여가는 목적론적 존재다. 이때 외부 세계의 환경은 개별적 실체의 본질이 실현되는것을 촉진하거나 방해할 수는 있어도 본질 자체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한다. 마찬가지로 비록 의식과 무의식으로 분열된 인간 정신이 (재)통합 상태를 향해 수만 년 동안 진화해왔을지라도 통합해야 할 핵심 대상인 집단무의식의 원형들 자체가 변한 것은 아니다.
32 개성화는 진정한 자신이 되는 것이며, 집단적 관계를 전제한 인격 발달을 목표로 한다. 또한 집단적 특질을 더 완전하게 성취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아가 약한 사람이 개성화를 시도하면 자아 팽창과 무의식에 압도되어 위험해질 수 있다. 카를 구스타프 융, 위의 책, 261쪽;앤드루 새뮤얼 외, 위의 책, 122쪽. - P606

민족의 무의식에는 태초부터 전승되어온 고유의 ‘원형 이미지‘(영웅상)가 담겨 있다. 길가메시, 주몽, 바리데기, 예, 순, 스사노오, 오오쿠니누시오시리스, 페르세우스, 헤라클레스, 발드르, 부처, 예수 등은 무의식에 담긴 원형 에너지를 자아에 통합하여 자기실현에 성공적으로 활용한 영웅표상들이다.  - P45

이들 영웅이 수행하는 개성화는 다음과 같은 단계를 밟는다. 첫 번째는그동안 망각하고 외면해온 민족정신의 부정적 결함 요소인 그림자를 자아의식이 용기 있게 대면하고 변화시켜, 자아가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로 통합하는 단계이다. (중략).
두 번째는 사회적 얼굴이자 역할인 페르소나를 개개인이 형성하고 발달시키는 과정에서 경직된 사회적 성역할로 인해 소외되어온 본연의 성에너지(남성 속의 여성적 요소인 아니마anima, 여성 속의 남성적 요소인 아니무스animus)를 대면하고 자아에 통합하는 단계이다.³³ - P45

33 음에게 영웅의 원형은 그림자, 아니아니무스, ‘자기‘를 정신의 발달 과정에 맞게 차례로 대면하여 통합하는 이미지로 나타난다. 이 원형은 각 민족의 신화나 역사 속에서 예수부처, 단군 등으로 형상화된다. 그런데 이런 영웅 이미지들은 이미 존재하던 영웅의 원형이 역사 속 인물을 통해 구현된 ‘의식적 표상‘일 뿐이다. 의식적 표상과 원형은 다르다. 원형은 태초부터 선천적으로 존재해오는 것이며, 결코 의식적 경험에 의해 그 본질이 변화되지않는다. 단지 그것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정신의 역사적 진화 과정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웅이 말하는 집단무의식에 유전되는 역사란 의식의 역사가 아니라 동물적 교감을 하던 태곳적 선사시대의 흔적‘들을 지칭한다. 즉 의식의 경험들은 결코 원형에 흡수되거나 유전될수 없다. 카를 구스타프 융, 위의 책, 67쪽. - P606

세 번째는 자아가 인류의 원형 에너지를 담고 있는 ‘자기‘에 접속하여 자기의 힘을 내면으로 흡수하는 단계이다. 영웅신화에서 이 단계는 주인공이 비범한 조력자를 만나서 그로부터 그동안 인식하지 못했던 인류의 심오하고광대한 지혜를 전해 듣고 자기 것으로 소화해내는 과정에 해당한다. - P46

마지막은 개인의 자아가 그렇게 얻어진 인류의 거대한 원형 에너지를 당대 집단이 풀지 못했던 현실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사용하는 과업 실현‘ 단계이다.  - P46

모권적 무의식과 모성적 무의식³⁶


프로이트 이후 현대정신분석학계는 엄마가 유아의 정신발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세밀히 탐구해왔다. - P46

36 클라인과 위니콧이 이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았다. 이 용어는 클라인의 ‘박해하는 모성적초자아‘, 위니의 아기의 불안을 품어주고 헌신적으로 돌봐주는 ‘보통의 좋은 엄마‘ 개념을 반영하면서 프로이트-융 비교를 명료화하기 위해 필자가 고안한 것이다. 클라인의 ‘좋은 젖가슴‘과 ‘나쁜 젖가슴‘ 환상은 신화 속의 자애로운 모신과 공포감을 주는 모신으로 연결된다. 대립되는 두 모신은 ‘모성적 무의식‘과 ‘모권적 무의식‘을 반영한다. 이경재, 《신화해석학》, 다산글방, 2002, 258-260쪽 참조. - P606

모권적 무의식: 파괴하고 집어삼키는 괴물

영아와 유아의 내면 심리에 주목하고 어머니와의 관계 경험이 아이의 정신발달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한 최초의 정신분석학자는 클라인이다. 그는 출생 후 5개월 사이 유아의 내면세계에 주목했다. - P47

갓 태어난 영아의 일차 과제는 정신 내부에서 역동하는 죽음욕동을 어떻게 처리하느냐다. 자아가 미성숙한 영아는 이 파괴욕동과 그로 인한 멸절불안을 스스로 처리할 수 없다. 영아에게는 이것을 대신 처리해줄 양육자의 도움(대리 자아 역할)이 절실하다. - P47

파괴욕동의 극단 양태인 시기심은 정신 내부의 좋은 대상들과 정신활동조차 파괴하므로 내면을 황폐하게 만들고 자아 기능을 마비시킨다. 이상태를 감당하기 힘든 유아는 파괴욕동과 불안을 외부의 젖가슴이나 엄마 몸에 투사하거나, 파괴욕동을 담은 정신의 일부분을 엄마 몸에 투사동일시로 집어넣는다. -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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