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은 능동적 정신을 지니고 있다. 희망의 정신은 인간의 행위에 생기를 불어넣고 고무시킨다. - P58

 희망은 새로운 것을 태어나게 돕는 산파다. 희망 없이는 새출발도, 혁명도 불가능하다. 진화도 무의식 층위의 희망에 의해 진행된다는 표현은 납득 가는 말이다. - P59

. 에리히 프롬에 따르면 ‘존재의 상태‘, 기분으로서의 희망함은 ‘내면의 준비 상태‘, 즉 ‘강렬하지만아직 소모되지는 않은 활동 존재로 가는 준비 상태‘다.³³ - P60

33 Erich Fromm, ‘Die Revolution der Hoffnung. Für eineHumanisierung der Technik‘, in: Gesamtausgabe, hrsg. von R.
Funk, Bd. IV, Stuttgart 1989, p. 269 - P164

니체는 희망을 임신 상태와 비슷한, 정신의 특별한 상태로 표현했다. 희망한다는 것은 새로운 것의 탄생에 준비되어 있다는 것을 말한다. - P60

그저 기다리고 준비되어 있으려 노력해야 한다. 그럴때 우리 안에는 깊은 무책임성의 순수한 느낌, 순수하게 정화해 주는 느낌이 생겨난다. - P61

 모든 것이 베일에싸여 있고, 모든 것이 불길한 예감을 품고 있으며, 일이 어떻게 되어 갈지 우리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그저 기다리고 준비되어 있으려 노력해야 한다. 그럴때 우리 안에는 깊은 무책임성의 순수한 느낌, 순수하게 정화해 주는 느낌이 생겨난다. - P61

희망한다는 것은 앞으로 도래할 것에내부적으로 준비되어 있다는 뜻이다. 희망한다는 것은 우리가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것에 대한 주의집중력을 높인다 - P62

 희망은 행위의 환상을 자극한다. 현실에서 도피해 빠르게 사라져 버리는 백일몽도 분명 존재한다. 그런 꿈은 현실과 동떨어진 망상이거나 단지 소원하는 바가 꿈에 등장한 경우에 불과하다. - P64

낮의 꿈은 앞으로 도래할 것,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 아직 태어나지 않은 것의 그림을 그린다. ‘밤의 꿈‘에는 과거가 출현하지만, ‘낮의 꿈‘은 미래를 향해 있다. - P64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가 낮의 꿈을 단순히 밤의 꿈의 전 단계로 격하시킨³⁸ 반면에, 블로흐는 낮의 꿈을 밤의 꿈과는 독립적이고 위대한 것으로 여겼다. - P66

38 Vgl. Sigmund Freud, Vorlesungen zur Einführung in diePsychoanalyse, Gesammelte Werke, Band 11, Frankfurt/M.
1944, p. 387: "Wir wissen, solche Tagträume sind Kern undVorbilder der nächtlichen Träume. Der Nachttraum ist imGrund nichts anderes als ein durch die nächtliche Freiheit derTriebregungen verwendbar gewordener, durch die nächtlicheForm der seelischen Tätigkeit entstellter Tagtraum." - P164

밤의 꿈이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과 달리, 낮의 꿈은 유토피아적 잠재력과 정치적 차원을 지니고 있다. 낮의 꿈에서만 아름다움, 숭고함, 변용이 나타날 수 있다. 밤의 꿈에는 유토피아적 시야, 유토피아적 움직임이 없다. 밤의 꿈은 행위하는것을 싫어한다. 혁명가들은 낮의 꿈을 꾼다. - P67

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인간의 조건』에서 ‘희망과 믿음‘이 ‘인간 실존의 두 가지 본질적 특징‘이라고 언급하며 ‘신의와 믿음이 별로 없었을 뿐만 아니라 본인들의 정치적 안건 처리에 필요치 않았던, 그리고 희망을 인간을 현혹하는 판도라의 상자에서 흘러나온 악의 일부로 여기던 그리스인들은 거의 알지 못했던 것‘이라고 묘사했다.⁴⁰ - P68

40 Hannah Arendt, Vita activa oder Vom tätigen Leben, München1967, p. 243. - P164

희망은 본질적으로 관조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것이 아렌트가 희망을 본인의 행위이론에 통합하지 못한 이유다. 희망은 행위하는 것에 분명 가까이 위치하긴 하지만, 아렌트가 말한 실천적 삶vitaactiva의 구성 요소에 포함되지는 못했다. - P74

인간은 희망할 수 있기 때문에 행위할 수 있다.
새로운 시작은 희망 없이는 불가능하다. 희망의 정신이 행위에 영감을 불어넣는다. - P74

희망은 구원을 목표로 한다. - P75

기독교적 희망은 무활동 수동성으로 이어지지않는다. 오히려 행위의 환상을 자극하여 ‘낡은 것으로부터 깨어나 새로운 것으로 적응하는‘ ‘창발력‘을 일깨워 줌으로써⁵² 행위할 동력을 제공한다. 세상을 피하려 하지 않고 ‘미래에 열광적‘이다.⁵³ - P79

52 Jürgen Moltmann, Theologie der Hoff nung. Untersuchungenzur Begründung und zu den Konsequenzen einer christlichenEschatologie, München 1966, p. 29.

53 같은 책, p. 15. - P165

절대적 희망은 절대적 절망이 지닌 부정적 성질을 마주했을 때 그 눈을 뜬다. 그것은 심연으로 떨어지는 절벽 근처에서 싹을 틔운다. 절대적 절망의 부정성이란 행위하는 것 자체가 더 이상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말한다. - P80

행위한다는 것은 의미관계의 짜임 안에서만 가능하다. 이것이 찢어져 버리면 의미 없는 행위나 눈먼 몸짓밖에 할 수 없게 된다. 절대적 절망에서 우리를 구원해 줄 수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 P81

절망이 깊을수록 희망은 강렬해진다. - P81

희망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내재해 있다. 희망은 절대적 재앙에 맞선다. 희망의 별은 불운Unstern, 라틴어로 des-astrum, 즉 재앙과 이웃한다. - P83

희망은 집 안에 들이기를 가능케 한다. 희망은 집, 고향을 약속하기 때문이다. 희망은 갈 수 없는 곳과 절벽을 건너게 해 주는 다리를 놓는다. 희망은 우리에게 방향과 지지할 곳을 제공한다.  -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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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리나의 화가, 에드가 드가

알고 보니
성범죄 현장을 그렸다고?

(중략). 드가의 작품 <실내(강간)>입니다. 이 그림을 뜯어보면 작품 제목이 왜 <실내(강간)>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 안 드시나요? 드가가 이런 범죄 현장을? 도대체 왜?
‘발레리나의 화가‘로 기억되는 드가의 아름다운 이미지가 갑자기 특수범죄 용의자처럼 일그러지기 시작합니다. 왜 드가는 이런 불쾌한 그림을 그렸을까요? 사실 정답은 없습니다. 생전에 드가가 제작의도를 밝히지 않았기 때문이죠. - P57

원조 독신주의자

드가는 독신남으로 평생 결혼하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요? 혹시 다른 성적 취향을 가지고 있었던 걸까요? - P58

(전략).

세 거장은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사랑하지 말라! 결혼하지 말라! 오직 예술과 사랑하라! 인생의 목적을 오로지 예술에만 두고 그 외의 열정은 모두 버리라는 동시대 거장들의 뼈저리는 조언입니다. 한 명이라도 ‘사랑하고 결혼하라‘라고 얘기했다면 드가도 달라졌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세 거장 모두를 존경했던 드가가 그들의 생각에서 벗어나기란 어려웠을 겁니다.
(중략).
그렇다면, 여성들과 아예 담 쌓고 살았을까요? 그건 아닙니다. 위트와 재치 있는 입담을 가진 그는 평상시에 여성들과 수다 떨기를 좋아했습니다. 다만 러브라인을 타거나 더 나아가 깊은 관계에 빠지는 것 자체를스스로 경계하고 절제했습니다. - P60

독신남이 완성한 예술


파리 한복판에서 수도승의 삶을 살았던 드가. 그는 사랑도 하고 싶고 결혼도 하고 싶었지만, 예술을 위해 평생을 참습니다. 하지만 원하는 것을멀리하면 할수록 더욱 강하게 끌리는 법! 역설적이게도 그의 예술은 그가 평생 멀리하려 했던 대상으로부터 나오게 됩니다. 바로 ‘여성‘입니다. - P61

어둠 속에 핀 꽃다발


19세기 후반 파리의 평범한 여성들을 그린 드가. 그가 그린 여인들 중 우리가 대표적으로 기억하는 여인은? 단연 발레리나입니다. 아마 그가 그린 여인들 중에서 가장 매혹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어서 그런것 아닐까요? 사실 드가의 발레리나는 그가 어둠이 주는 두려움을 느낄무렵 태어났습니다. - P62

사실 이 이전에 드가는 고전주의 화풍의 역사화를 주로 그렸습니다. 그런데 시력이 손상되기 시작하는 시점 전후로 이 화풍을 과감히 버리고 경마, 발레 등 동시대의 일상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우연하면서도 매우 절묘해 보이는 타이밍입니다. 그럼, 드가가 그린 첫 번째 발레리나 그림을 살펴볼까요? <오페라좌의 관현악단>입니다. - P63

그런데 이 그림 한 장이 앞으로 드가의 행보를 완전히 바꾸어 놓습니다. 바로 배경효과로만 생각했던 발레리나에 대한 주위 평들이 유독 좋았던 것이죠. 신약 발명을 위한 연구 끝에 예상치 못한 ‘초대박 명약‘을발명했다고 해야 할까요?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 드가는 재빨리 신작을 그려냅니다. 바로 <관현악단의 연주자들>입니다. - P64

잠깐, 그런데 드가는 왜 유독 발레리나에게 몰두했던 걸까요? 금욕주의 독신남이라 여자를 멀리했지만, 사실은 동경했던 걸까요? 그 진실을알기 위해선 당시 발레리나의 삶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 P64

무대 뒤편의 치열함

무대 위에서는 더없이 화려하고 아름다운 발레리나 사실 그들의 삶은 매우 고단했습니다. 아니 고통스러웠다고 해야 할까요? - P66

불우한 현실을 바꿀 가능성이 제로에 가까웠던 시절, 유일한 빛은 발레리나로 화려한 성공을 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실제 성공한 발레리나는당시 교사의 연봉에 무려 8배에 달하는 연봉을 받았다고 합니다. - P67

무대 뒤편의 은밀함


(전략). 당시 한 발레리나는 이렇게 증언합니다.

"일단 오페라에 들어오고 나면 창녀로서 운명이 결정된다. 그곳에서 고급 창녀로 길러지는 것이다."

충격적인 사실입니다. 당시 발레는 입장료가 비싸 아무나 볼 수 있는 공연이 아니었고, 상류층이 즐기는 문화생활이었습니다. - P67

붓을 든 발레리노의 눈


드가는 ‘있는 그대로의‘ 발레리나를 보았습니다. 화려한 무대 뒤편, 치열하고 은밀한 그녀들의 삶을 날카롭게 포착했죠. 그가 그린 발레리나를보면 화려하고 아름다우면서도 뭔가 음산하고 기묘한 기분이 드는데, 그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 P68

(전략).
이제 와서 하는 이야기지만 드가가 발레리나 외에 숱하게 그렸던 그 시대의 보통 여성들인 세탁부, 카페의 여가수, 여자 서커스 단원 모두 하는일은 다르지만, 그들을 바라본 드가의 눈은 언제나 같았습니다. 그의 그림이 따듯하고 포근하게 느껴지면서도 애처로워 보이는 이유입니다. - P72

인간드가의 엉킨 실타래 풀기

앞에서 잠깐 말했지만 드가는 귀족 집안의 자제였습니다. (중략).
그 해답은 드가가 ‘독신남이었던 것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성에 대한 욕구를 멀리하는 금욕주의자가 된 드가는 남성과 여성 사이에 있는 ‘중간자‘가 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P72

<실내(강간)>의 재발견


맨 처음 <실내(강간)>을 소개했을 때는 너무나 충격적이고 드가가 그렸다고는 상상할 수 없었을 텐데요. 이제는 이해가 되시나요? 왜 드가가굳이 그런 그림을 그렸는지 말입니다. 그렇다면 ‘거장‘이라는 겉포장에가려진 ‘인간‘ 드가를 만나게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아마 드가는 여성의 슬픔과 아픔을 바라보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실내(강간)>이라는 작품 제목도 드가가 지은 것이 아닙니다. 작품을 본 다른 남성들이 지었죠. 드가는 이 작품을 두고 그저 ‘풍속화‘라고 말했습니다. 자신이 숨쉬던 당시 파리의 풍속을 그린 거라고 말이죠 -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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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판:

간단히 살펴보는
게임 폭력성의 역사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톤에서 30마일 떨어진 대서양 해안가에 마쉬필드Marstfield 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중략). 여느 동네와 다를 바 없어보이지만, 마쉬필드의 독특함은 주민들이 하는 일이 아닌 해서는 안 되는 최소한 공공장소에서는 금지된 일에 있다. 이 조용한 해변 마을에서 비디오게임이 30년 이상 금지되었던 것이다. - P9

1982년 마쉬필드의 정치가들과 지역 지도자들은 비디오게임이라는 전자적 오락형식을 불법화하는 것이 지역 내 청소년 범죄를 줄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보았다. 이에 따라 마쉬필드의 주민들은 <마계촌Ghost‘n Goblins>에서 좀비나드래곤을 상대로 결투를 할 수도, <엘리베이터 액션 Elevator Action>에서 사악한 요원들을 처치할 수도, <모탈컴뱃 Mortal Kombat>에서 페이탈리티 fatality를 구경할 수도없게 되었다. - P10

 지난 40여년 간 미국의 전문가 및 정치가들은 학교 총기 난사, 인종주의, 비만, 나르시시즘, 골연화증, 자기 통제 문제, 음주운전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사회적 병폐에 대해 폭력적인 비디오게임에 책임을 물어왔다. 비디오게임은 살인과 자동차 강도, 강간 사건뿐만 아니라, 팔다리가 망가지거나 학습장애가 생기는 데에 책임이 있고 심지어는 9.11 테러 사건에도 책임이 있다고 여겨졌다. - P10

그 시작은 작은 점과 두 개의 선이었다

앤디캡스 주점 Andy Capp‘s Tavern의 단골들은 그러한 것을 생전 처음 보았다. 물론, 1972년 즈음 은행 같은 데서 사용하는 거대한 전자두뇌 컴퓨터에 대해서 들어보긴 했지만, 13인치 흑백텔레비전으로 플레이하는 컴퓨터게임이란 것을 본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 장치에는 별다른 설명 없이 PONG(퐁)이라는 글자만 장치 전면에 진하게 쓰여있었다(챕터 끝 이스터에그 1번 참조).

(중략).

초기 비디오게임 개발사의 상당수는 논쟁의 가능성을 피하기 위해 폭력적인 비디오게임의 개발을 주저했다.
(중략).

하지만 당시에는 이러한 게임을 폭력적으로 여기지 않았다. 한 가지 확실한 이유는 초창기 아케이드 게임기와 가정용 게임기의 기술적 한계였다. - P12

그러나 비디오게임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기 시작하면서, 게임사들은 조이스턱으로 투박한 캐릭터를 움직이는 한때 진기했던 경험이 더 이상 플레이어의 주목을 끌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붐비기 시작한 비디오게임 시장에서 플레이어들의관심을 붙들기 위해, 일부 개발사들은 기술이 허용하는 최고 수준의 충격을 주어야 한다는 판단을 내리게 된다. - P13

비디오 아케이드

1970년대 초중반 상당한 성공을 거둔 비디오게임이 몇 개 있긴 했지만, 아케이드는 여전히 유아기에 머물러 있었다. 아케이드 게임은 술집과 피자가게, 롤러스케이트장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설치/운영되었지만, 아케이드라는 오락장 자체가부상한 것은 타이토가 1인용 게임 <스페이스 인베이더 Space Invaders>를 미국에 출시해서 즉시 큰 히트를 친 1978년에 이르러서였다. - P17

비디오 아케이드는 우리 사회에 "나쁜 요소들을 들여왔다며 많은 이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았다. 1981년 뉴욕주민 100여명이 아케이드의 영업을 중지하라며시위를 벌였다. 그들의 투쟁은 아케이드 내부에 설치된 게임이 아니라 그 지역에서 점차 증가하는 마약 및 공공기물 파손 문제와 관련된 것이었다.⁶ - P18

6. New York Times (1981). "100 protest against L.I. pinball arcade." New York Times.
www.nytimes.com/1981/03/27/nyregion/the-region-100-protest-against-li-Retrieved frompinball-arcade.html - P252

1992년과 1993년: 가상 유혈사태의 해

<데스레이스>같은 게임과 비디오 아케이드의 위험성을 둘러싸고 쏟아지는 언론보도가 비(非)게이머 대중 사이에서 비디오게임에 대한 불안감을 생성해오긴했지만, 그 불안감을 완전히 증폭시킨 것은 1년 사이에 출시된 3편의 게임이었다. - P19

유혈 묘사가 없었던 <스트리트 파이터>와 달리 <모탈컴뱃>은 엄청나게 잔인했다. 상대방을 때리고 발로 차면서 붉은 픽셀이 화면 전체를 뒤덮었고 캐릭터들은말 그대로 서로의 머리를 뜯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가장 큰 논란을 야기한 것은 "페이탈리티 fatalities"라 불리는 요소였다. 다른 대전 격투 게임의 경우 승리한 플레이어가 상대방을 바닥에 때려 눕히면서 끝난다면, <모탈컴뱃>에서는 극단적으로 폭력적인 방식, 즉 살인으로 상대방을 끝장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 P20

상대적으로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활용된 영향도 있었다. 이전의 대전 게임에서는 손으로 그렸던 캐릭터를 실제 배우들의 디지털 이미지로 대체했는데, 이 리얼한 캐릭터들이 <모탈컴뱃>에 묘사된 폭력의 사실성을 한 차원 높였다. - P20

<모탈컴뱃>은 원래 아케이드용으로 출시되었지만, 이 불편한 디지털 리얼리즘작품은 곧 가정의 거실로 침투했다. 세가 CD(메가CD)는 엄청난 판매고를 기록한가정용 콘솔 세가 제네시스의 주변기기로, 이를 구매해서 하드웨어를 업그레이드하면 CD기반의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었다. - P21

<둠>이 윈도우95보다 더 많은 컴퓨터에 설치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한 마이크로소프트는 <둠>을 윈도우95 플랫폼용으로 출시했다. 게임의 엄청난 인기에 스스로를 맞춘 것이다(이전까지 <둠>은 도스 체계에서만 작동했다). 당시 CEO였던 빌 게이츠는 윈도우용 <둠>의 출시를 홍보하는 동영상에 직접 출연하기까지 했다. - P23

<둠>이 최초의 1인칭 슈팅게임이었던 것은 아니다. 이드 소프트웨어는 그보다앞서 플레이어들이 1인칭 시점에서 아돌프 히틀러라는 이름의 로봇을 처치하기위해 그 앞을 막는 나치병사들과 전투를 벌이는 <울펜슈타인 3Dwolfenstein 3D>라는 게임을 출시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둠>의 보다 정교한 그래픽 엔진은 플레이어가 진정한 3차원의 세계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한 차원 발전된 것이었다. - P24

게이머들은 전국의 기숙사나 사무실 내 컴퓨터들을 연결해서 <둠>의 가상복도에서 동료나 친구들을 사냥하면서 쏴죽여댔다. 직원들이 <둠> 데스매치를플레이하느라 업무시간을 소비하면서 많은 논란을 일으킨 끝에, 여러 조직에서 업무시간 내 <둠>의 데스매치 플레이를 금지하는 규정을 만들기도 했다.⁸ - P25

8.
-Nuttycombe, D. (1994). "Pac-Man, Tetris and Now It‘s Doom‘s Day." Washington Post.
Retrieved from www.gamers.org/dhs/dmpblcty/wngtpost.html - P252

<모탈컴뱃>, <나이트 트랩>, <둠>이 비디오게임의 폭력성과 사실상 동의어가되면서 대중은 그 위험성에 대해 우려하기 시작한다. 논객들은 끔찍한 대량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이 게임들을 최소한 한 번은 언급했다. - P25

폭력성을 심의하다

<모탈 컴뱃>과 <나이트 트랩>, <둠>을 둘러싼 논란이 벌어지면서 비디오게임 산업은 곤경에 처하게 된다. 미디어 감시단체의 우려에 대한 응답으로 미 의회가 폭력적인 비디오게임에 대한 공청회를 열었을 뿐만 아니라 업계가 자율적인 규제를하지 않으면 연방차원에서 규제를 하겠다고 위협했기 때문이다. - P26

게임 개발사의 입장에서 부여받은 등급이 부당하다고 여겨지면 재심의를 요구할 수도 있지만 아직까지 그런 사례는 없다. - P28

이일화는 ESRB의 정확성에 대한 의구심을 일으켰고, <맨헌트 2>의 할로윈 버전이 출시된 지 한 달도 안 되어 힐러리 클린턴과 조셉 리버만을 주축으로 하는 미의회의 여러 의원들이 ESRB의 등급 분류과정에 의문을 제시하는 공개서한을 보냈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에 정당한 근거가 있는지는 의문스럽다. 당시의 통계조사는 지속적으로 게이머와 부모 모두 ESRB가 게임에 부여한 등급을 신뢰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실제로 당시 95%의 사람들이 ESRB 등급에 동의하고 있었다.¹² - P29

12. Ferguson, C. J. (2011). "Video games and youth violence: A prospective analysis inadolescents." Journal of Youth and Adolescence, 40, 377-391 - P252

게임스탑에서는 단 9%의 어린이만이 <맨헌트2>나 <그랜드테프트 오토>와 같은 게임의 구매에 성공한데 반해, 영화의 경우 76%의 아이들이<쏘우 Saw>, <킬빌Kill Bill>, <호스텔 Hostel > 같은 R등급의 폭력적인 영화의 DVD를구매할 수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부모들이 ESRB 등급체계를 모든 오락물 등급체계 중 가장 효과적이고 믿을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당연해 보이는데, 실제로 약90%의 부모가 ESRB의 등급체계가 유용하다고 응답했다.¹⁴ - P30

가상의 유혈을 향한 갈망


결과적으로 ESRB 등급체계의 도입은 비디오게임의 폭력성을 우려하던 비평가들에게 양날의 검인 것으로 보인다. - P30

 M등급을 받은 이상, 논란이 되는 게임과 연계됨으로써 발생하는 홍보상의 문제를 걱정할 필요가 줄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닌텐도는 분노하는 부모들에게 이 게임이 아동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님을확신시킬 수 있게 되었다. 게임의 포장 패키지에 그렇게 적혀있으니 말이다! - P31

SNES가 페이탈리티를 허용한 데 대해 쏟아졌던 대중의 우려가 사그라든 것은M등급을 받은 <그랜드 테프트 오토>가 소니의 새 콘솔인 플레이스테이션용으로출시되면서였다.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범죄자를 고용해서 조직을 위한 다양한범죄를 수행하는데, 실질적인 잔혹함은 땅 위에 낭자한 유혈이 작은 픽셀로 묘사되는 것이나 누군가를 차로 치면 타이어가 붉어지는 정도로 제한되어 있다. - P31

 당시 게임잡지들은 <그랜드 테프트 오토>가 혁신적이고 기술적으로 인상적이며, 극도로 독창적이라고 호평을 했다. 또한 "무정부주의에 대한 유쾌한 포용이라고 언급하면서 "소시오패스가 되고 싶은 자"들은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큰 즐거움을 누릴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¹⁶ - P32

16. Moby Games (2014). "Grand Theft Auto Reviews." MobyGames.com. Retrieved from www.
mobygames.com/game/grand_theft_auto/mobyrank - P253

이후 이십여 년 동안 <그랜드 테프트 오토>의 개발사 락스타게임즈는 여러 후속편을 통해 "무정부주의의 포용"을 지속한다. - P32

우리는 왜 그러한 폭력성에 매료되는 것일까? 현실 세계에서 우리는 <그랜드테프트 오토>나 <맨헌트>에서 마주치는 상황들을 최대한 피하려 한다. 우리가 가상의 폭력성에 끌리는 현상은 표면적으로 보면 비합리적이지만, 그 이면에는 심오한 이유가 있다. - P33

사람들, 특히 남성들은 포르노를 무척 좋아한다. 북미에서만 1년에 1억 명이 넘는 남성들(15세 이상 남성 인구의 80% 정도)이 인터넷상에서 포르노를 찾아보는것으로 나타난다²¹. 포르노그래피가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려던 캐나다 몬트리올대학교 University of Montreal의 연구자들은 연구를 취소해야 했는데, 그 이유는 포르노를 본 적이 없는 20대 남성을 구할 수 없어 실험상 통제 집단을 구성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²²! - P34

21. Ogas, O. & Gaddam, S. (2012). A Billion Wicked Thoughts: What the Internet Tells Usabout Sexual Relationships. New York: Penguin Group.
22. McCormack, D. (2013). "Porn study had to be scrapped after researchers failed to findany 20-something males who hadn‘t watched it." Daily Mail. Retrieved from https://www.
dailymail.co.uk/news/article-2261377/Porn-study-scrapped-researchers-failed-ANY-20-males-hadn-t-watched-it.html - P253

이와 같은 진화의 역사는 우리가 폭력성에 이끌리는 데에서도 비슷한 역할을수행했다. 우리는 폭력적인 비디오게임이 책을 읽는 것(지금 이 책은 예외다. 꽤나흥미로운 책이니까!)에 비해 훨씬 재밌다고 느낀다. 이는 폭력이 하나의 종species으로서 우리를 특정하는 데 있어 늘 중요한 요소였기 때문이다. - P34

현실에서 폭력의 결과는 매우 끔찍해서, 우리는 폭력이나 폭력적인 위협에 불안을 느끼면 피하고자 한다. 그러나 우리의 두뇌는 미디어 폭력은 다르다고 이해하는 듯하다. 폭력적인 비디오게임은 어두운 골목을 걸을 때와 동일한 긴장과 자극을 제공하지만, 실제로 잔혹하게 살해될 가능성에 따른 불안감은 없다 - P35

40여년 전 작은 하얀 공 하나가 두 개의 선 사이에서 움직이는 것에서 비롯된 비디오게임이 사람들이 일제히 욕망하고 두려워하는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은 놀라워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이 하룻밤 사이에 발생한 것은 아니다. <데스레이스>에서 <건 파이트>, <모탈 컴뱃>에서 <맨헌트>로 이어지는 이 현상은, 수백만 년에 이르는 인류의 진화, 그리고 수십 년 간 이루어진 기술의 발전에 따른 결과인 것이다. - P35

이스터 에그

1. 앤디캡스 주점에 설치된 프로토타입 <퐁>이 성공한 이후 제작된 아케이드용 장치에는 3가지 기본 안내사항이 적혀있었다: 1) 동전을 넣으면, 2) 공은 자동으로제공됩니다. 3) 높은 점수를 얻으려면 공을 놓치지 마세요. - P36

4. 최초의 <스트리트 파이터> 게임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조금 서글픈 일이다. 1987년 출시된 이 게임에서 향후 시리즈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하게 되는 주요 인물 류 Ryu 와 켄 Ken 이 처음 등장했다. 이 게임에 있어 가장독특한 점은 플레이어들이 상대를 공격할 때 누르는 압력 감지식 고무 버튼을 "펀치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플레이어가 버튼을 세게 치면 칠수록, 켄이나류가 적을 더 세게 칠 수 있었다. 하지만 압력 감지 버튼이 후속 버전부터 사라지고 <스트리트 파이터 2>가 커다란 성공을 거두면서 이 첫번째 게임은 천천히 잊혀지게 되었다. - P37

5 <둠>의 숨겨진 레벨에 가려면 1) 엑셀 95에서 빈 워크시트를 연다. 2) 95번째 행전체를 선택한다. 3) B열을 선택한다. 4) 도움말 메뉴로 간다, 5) ctrl-alt-shift를 누른 채 "기술지원" 버튼을 클릭한다. 6) 창이 하나 열리면서 숨겨진 레벨이등장한다! - P37

네 번째 판:
그랜드 테프트 오류
(Grand Theft Fallacy)


십대 청소년 여섯 명이 야구방망이와 쇠지렛대를 들고 뉴욕 도심 한가운데를대범하게 걸어갔다. 그들은 지나가던 사람을 때려눕히고는 차량보관소에 침입했고, 2008년형 BMW를 훔치려다 경찰에 붙잡혔다. 처음에는 흔한 폭력배거나 세상에 불만을 품고 막 나가는 청소년인걸로 여겼다. 그런데 경찰 조사에서 완전히 다른 결과가 발표됐다. 이들이 구제불능이거나 분노해서가 아니라, 비디오게임 때문에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이다.¹⁰¹ - P93

네번째 판

101. Crowley, K. (2008). "Video Villains Come to Life." New York Post. Retrieved from https://nypost.com/2008/06/26/video-villains-come-to-life/ - P258

물론 <그랜드 테프트 오토>가 폭력 행위와 연관된 것이 이때가 처음은 아니다. - P94

그랜드 테프트 오류는 상상의 연관성으로부터 시작된다

우리 인간이 그랜드 테프트 오류에 취약한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사다리 아래를 걷거나 유리가 깨지면 운이 나쁘다고 믿거나, 13일의 금요일에는 나쁜 일이 생긴다는 미신을 믿는 이유와 같다. 두 개의 사건이 동시에 벌어지는 상황의 빈도를 과도하게 평가하는 나쁜 습관이 있기 때문이다. - P97

. 이러한 경향은 "착각 상관illusory correlation"으로 이어진다. 착각 상관은 사실상 아무 관련이 없는 두 사건이 연결되어있다는 잘못된 감각을 만들어낸다¹⁰⁵. - P97

105. Chapman, L. J. & Chapman, J. P. (1967). "Genesis of popular but erroneouspsychodiagnostic observations." Journal of Abnormal Psychology, 72, 193-204. - P258

사실 열렬한 비디오게임 플레이어가 끔찍한 폭력 행위를 저지를 때면 언론은 항상 폭력적인 행위와살인자가 좋아한 비디오게임을 연결짓는다. 이때 생략된 것은 수많은 범죄가 폭력적인 비디오게임을 플레이하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 발생하고, 폭력적인 비디오게임을 플레이하는 수백만의 또 다른 사람들은 폭력 행위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비-게이머에 의한 범죄가 발생했을 때 비디오게임과 폭력 행위 간의 연관관계가 없음에 대해서는 아무도 언급하지 않는다. - P98

더 불편한 사실은 특별히 인상적이고 기억에 남는 사건일수록 착각 상관이 형성되기가 더 쉽다는 것이다¹⁰⁶.  - P98

106. Hamilton, D. L., Dugan, P. M. & Trolier, T K. (1985). "The formation of stereotypic beliefs:Further evidence for distinctiveness-based illusory correlations." Journal of Personality andSocial Psychology, 48, 5-17. - P258

착각 상관을 깨닫고 극복하더라도 그랜드 테프트 오류는 존속한다. 과학적 연구의 한계점을 고려하지 않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 P99

그랜드 테프트 오류를 저지르는 과학자들은 종종 일종의 순환논법으로 자신을 정당화하곤 한다. 폭력적인 비디오게임이 현실에서의 실제 폭력 행위의 원인인지여부를 탐구할 수 있는 실험연구는 설계가 불가능한데, 왜냐하면 사람들의 폭력적 성향을 증가시키리라 추측되는 상황에 사람들을 노출시킴으로써 그들이 타인에게 가해하는 상황을 관찰하는 것은 비윤리적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는 사실이다. <콜 오브 듀티>의 데스매치를 플레이한 후 서로를 향해 폭력을 가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실험연구를 승인해줄 대학은 없을 것이다. - P99

상관관계는 인과관계가 아니다!


실험실에서 <그랜드 테프트 오토>를 플레이하도록 요구받은 피실험자가 타인을 핫소스병으로 악랄하게 공격하는 정도로 자제한 이유는 폭력적인 비디오게임의 영향력이 이러한 상황의 행동에 대한 사회적 규범을 극복할 만큼 충분히 강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 P100

크게 보면 열 효과는 기후 변화에 따른 지구 온난화가 환경적 재앙일 뿐 아니라, 폭력성을 대규모로 유발할 수 있다고 호소한다.¹⁰¹ - 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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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론

나는 소설이란 땅 속의 화석처럼 발굴되는 것이라고 믿는다. 소설은 이미 존재하고 있으나 아직발견되지 않은 어떤 세계의 유물이다. 작가가 해야 할 일은 자기 연장통 속의 연장들을 사용하여 각각의 유물을 최대한 온전하게 발굴하는 것이다.


잘팔리는 어느 애견 훈련 설명서의 제목에 의하면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고 한다. 그렇지만 핏불이나 로트바일러에게 물려 크게 다친 아이의 부모에게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 것이 좋다. - P171

인간의 재능과 창의성이 드러나는 모든 분야에서 그렇듯이 작가들의 양상도 피라미드 형태를 이룬다. 제일 밑바닥에는 형편없는작가들이 있다. 그 위에는 조금 적지만 아직 꽤 많은 사람들이 버티고 있는데, 이들은 제법 괜찮은 작가들이다. - P172

나는 지금 간단한 두 가지 명제를 염두에 두고 이 책의 중심부에 접근하려 한다. 첫째, 좋은 글을 쓰려면 기본을 (어휘력, 문법, 그리고 문체의 요소들을) 잘 익히고 연장통의 세 번째 층에 올바른 연장들을 마련해둬야 한다. 둘째, 형편없는 작가가 제법 괜찮은 작가로변하기란 불가능하고 또 훌륭한 작가가 위대한 작가로 탈바꿈하는것도 불가능하지만, 스스로 많은 정성과 노력을 기울이고 시의적절한 도움을 받는다면 그저 괜찮은 정도였던 작가도 훌륭한 작가로 거듭날 수 있다. - P172

 레이먼드 챈들러[RaymondChandler: 1888~1959, 미국 추리 소설가-옮긴이]는 일찍이 전후시대의 삭막한 도시 생활을 잘 묘사한 작가로서 이제 20세기 미국문학에서 중요한 인물로 인정받고 있지만, 그런 평가를 거부하는비평가들도 많다. 그들은 분연히 외친다. 그 자는 삼류야! - P173

심지어는 소설 문학의 셰익스피어라고 할 수 있는 찰스 디킨스조차도 종종 선정적인 내용을 다루고 신나게 아이들을 낳고(소설을 쓰지 않을 때 그는 주로 아이들을 만들었다) 당대와 우리 시대의 저급독자층에게 인기를 끌었다는 이유로 끊임없이 비평가들의 공격을받았다. - P174

한편 뮤즈는 편안히 앉아 시가를 피우고 자신의 볼링 트로피들을 흐뭇하게 감상하면서 여러분을 싹 무시하는 척한다. 이런 상황이 공평하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그렇다고 본다. 물론 이 뮤즈라는 작자는 겉으로 보기에도 별 볼일 없고 대화 상대로서도 빵점이다(내 뮤즈는 근무중이 아닐 때는 대개 툴툴거리는 소리로 대답하는 정도가 고작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영감을 주는 능력이 있다. - P175

1


작가가 되고 싶다면 무엇보다 두 가지 일을 반드시 해야 한다. 많이 읽고 많이 쓰는 것이다. 이 두 가지를 슬쩍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지름길도 없다. - P176

한편, 좋은 책은 한창 배움의 길을 걷는 작가들에게 문체와 우아한 서술과 짜임새 있는 플롯을 가르쳐주며, 언제나 생생한 등장인물들을 창조하고 진실만을 말하라고 가르친다 - P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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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진적 정신의학자는 대개 정신질환을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이해하고자 했다. 정신질환이라고 알려진 것은 가족 내부 또는/그리고 외부에서 사회적 힘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었다. 일부 저자는 바로 이 특징을 반정신의학의 본질로 보았다. - P50

이런 사회적 분석은 정신보건 서비스를 관장하는 체제 전체로 확장되기도 했는데, 이것은 자본주의 권력구조와 ‘일탈 억제‘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이 방향의 급진적 정신의학에서는 마르크스주의, 예컨대 서양판 문화혁명인 권력구조 쟁론에서 나타난 여러 형태의 마오쩌둥주의, 그리고 1968년 운동에서 생겨난 새로운 반권위주의관념을 하나로 아울렀다. 이처럼 반정신의학은 비판적인(또한 자기비판적인) 동시에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이었다. - P51

이 용어 내지 꼬리표를 좀더 깊이 살펴보면 유용하다. D. B. 더블은 정신의학의 다양한 ‘지도자‘가 취했던 입장을 다음과 같이 여러 갈래로 세분한다.²⁴ - P51

24 D. B. Double ed., Critical Psychiatry. The Limits of Madness, London:Palgrave, 2006, p.31D. B. Double, ‘Historical Perspectiveson Anti-psychiatry‘. - P503

우리는 또 반정신의학이 무엇에 반대했는지에 따라 그것을 이해할수 있다. 더블을 다시 인용하면 "반정신의학의 본질은 정신의학 자체를 문제의 일부로 간주한다는 의미에서 출발한다."²⁶ - P52

26 D. B. Double, The History of Anti-psychiatry: An Essay Review‘,
History of Psychiatry 13, 2002, p.235. 콜린 존스는 "[반정신의학] 운동의 핵심에 있는 거부하고 뒤엎는 행동", 다시 말해 "반정신의학 안에 있는 ‘반(反)‘이라는 요소"에 강조점을 두었다. Gijswijt-Hofstra and Porter,
Cultures of Psychiatry, p.285에 수록된 Colin Jones, Raising the Anti.
Jan Foudraine, Ronald Laing and Anti-psychiatry‘. - P503

반정신의학은 좀더 일반적인 형태의 방법론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당시에는 기존 지식의 권력구조 (그리고 이 경우 의료의 권력구조)를 뒤엎고 부정하려는 전반적인 시도가 있었다. 이 ‘반(反)‘이라는 요소가 이 운동에서 결정적으로 작용했다.²⁹ - P53

29 Jones, ‘Raising the Anti‘, p.285. - P503

오늘날 이탈리아에서는 대체로 바잘리아 자신은 반정신의학자가 아니었다고 본다.³⁷ 종종 되풀이되는 이 진술은 ‘반정신의학‘을 정신질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 평이 나쁘거나 극단적인) 운동이나 사조로 비꼬고단순화하는 관점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어쩌면 뜻밖에도 극소수의 반정신의학자는 실제로 정신질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 P55

37 역으로, 이탈리아 밖에서는 (특히 영어권에서는) 그를 반정신의학자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다. - P505

반정신의학을 실천한 사람들은 (기자나 이 운동의 추종자들과는 별개로)대개 정신질환의 존재를 부정하기는커녕 정신질환을 대단히 심각하게받아들였으며 그 근원과 그에 대한 새로운 해결책을 찾아내려 했다.³⁸ - P56

38 토머스 사스는 이와는 다른 입장을 취했는데, 본인이 이를 거부하고 그래서반정신의학 이면에 있는 사상을 신랄하게 비판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이운동에 가담한 사람들은 그의 연구를 널리 읽었다. 사스가 쓴 글 한 편이 프랑코 및 프랑카 바잘리아가 1975년에 엮은 문집에 다음과 같이 포함돼 있다.
Crimini di pace. Ricerche sugli intellettuali e sui tecnici come addettiall oppressione, Milan: Baldini Castoldi Dalai, 2009 (원래의 판본은Einaudi, 1975), PP.385-98에 수록된 ‘La psichiatria a chi giova?" - P505

반정신의학의 근원이자 거기에 대중적 기반을 부여한 저 운동이 종언을 고하면서 전통적 정신의학자는 권력의 고삐를 다시 쥐고자 했고(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반정신의학을 생각에서 떨쳐내거나 아예 무시하고자 했다. 그 결과 반정신의학은 오늘날 대단히 단순하게 ‘정신질환의 부정‘으로 묘사되는 때가 많고 아예 언급조차 안 되기도 한다. 급진적 정신의학자(또는 그 지지자)와 반(反)반정신의학자가 사용했던 담론이 하나로 수렴한 것이다. 이와는 달리, 정신보건 체제 전반에 나타난 일련의 실패를 모두 반정신의학 탓으로 돌리는 전술도 가능하다. 이런 방향에서 전개된 것이 ‘반(反)반정신의학 운동 이론이다.⁴³ - P57

43 Crossley, Contesting Psychiatry, p.241. - P506

반정신의학은 오늘날의 세계에선 이해하기도 연구하기도 어려운 대상이다. 전성기일 때 그것은 시대 분위기와 매우 잘 맞는 절충주의적 운동이자 시대정신이었다. 그것은 또 파악하기 어려운 대상이자 구호, 모든 것을 포괄하는 어구였으며, 한계를 넓혀가는 하나의 방식이었다. - P58

반정신의학은 오늘날의 세계에선 이해하기도 연구하기도 어려운 대상이다. 전성기일 때 그것은 시대 분위기와 매우 잘 맞는 절충주의적 운동이자 시대정신이었다. 그것은 또 파악하기 어려운 대상이자 구호, 모든 것을 포괄하는 어구였으며, 한계를 넓혀가는 하나의 방식이었다. 한편으로는 끔찍한 체제에 대한 감정적 반응이기도 했다. - P58

그러면 우리는 반정신의학이라는 용어를 이런 잘못된 설명과 부정적 의미로부터 구해낼 수 있을까? 이런 시도를 한 사람이 몇몇 있다. - P60

공공시설과 제도-정신질환자 보호소와 가족


비판적 정신의학의 옹호자들은 대개 전통적 정신의학 시설과 관련하여 대단히 명확하게 급진적인 태도를 취했다. 많은 사람이 정신질환자 보호소를 모두 폐지하거나 폐쇄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부르짖었고(바잘리아가 1960년대 초반 이후 공개적으로 취한 입장이다)그와 동시에 정신질환자 보호소 내부에서 그것을 개혁하거나 인도적으로 바꾸고자, 또는 그곳을 생지옥 아니면 ‘실용적 유토피아‘의 사례로 보여주고자 노력했다. - P62

비판적 정신의학은 1960년대 말 전세계에서 집중포화를 받은 또 하나의 제도인 가족에 대한 급진적 비판과도 관계가 깊었다. 가족은 정신질환이 생성되는 장소, 정신질환이 설명될 수 있는 유일한 배경이라는 관점을 지닌 사람이 많았다. 랭의 연구에서는 조현병자 본인만큼이나 그 가족을 깊이 조사했다. - P63

비판적 정신의학에서는 자아의 해방이 가능하다고 보았는데, 이 또한 1968년 철학의 핵심적인 부분이었다. 정신질환이 있다고 묘사되는 사람들을 정면으로 마주할 때 사람들은 저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고 자기가 사회에서 차지하는 역할에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었다. - P64

사회와 정치


정신질환과 자본주의가 서로 강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 인과관계에서도 그렇고 정신질환자 보호소 체제의 존재 이유로서도 그렇다는사실이 이 운동의 여러 갈래를 통해 그 윤곽을 드러냈다. 바잘리아 자신이 정신질환자 보호소에 대한 한 가지 사회적 분석을 내놓으면서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은 무엇보다 배척되기 때문에 ‘앓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⁶⁰ - P65

60 Basaglia, L‘istituzione negata (1968), p.33 - P508

그러나 정신질환자 보호소 내 사람들에 대한 바잘리아의 사회적 분석은 어떤 직접적 조사 연구를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라, 고리치아에서 (그리고 그 밖의 정신질환자 보호소에서) 그가 실제로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⁶¹ - P65

61 아울러 예컨데 August Hollingshead and Fredrick Redlich, Classi socialie malattie mentali, Turin: Einaudi, 1965 (1958)E - P508

반대하는 운동인가, 지지하는 운동인가?

이것은 어떤 종류의 운동이었고,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묘사할 수 있을까? 한편으로 이것은 전문가의 운동, 정신의학자와 간호사의 (그리고 시간이 가면서는 환자의 운동이었다. - P66

이것은 사회적 운동이고 정치적 운동이었을까? 어느 정도는 특히 1968년 이후에는 그랬다. 1968년 이전에는 지식인, 정신의학자, 일부행정가와 정치가, 일부 학자, 그리고 몇몇 외진 곳에서는 소수의 간호사와 환자에 국한된 운동이었다. 1968년 이후 이 운동은 크게 확장하여 학생, 노동자, 기자, 그리고 비판적 정신의학의 이념과 실제에 매력을 느낀 각양각색의 사람을 끌어들였다. - P67

한편으로 보면 이 운동은 반대하는 운동이었다. 추종자들은 정신병원에 반대했다(때로는 원칙적으로 정신병원 전반에 반대했고 때로는 정신병원을 운영하는 구체적인 방식에 반대했다). 이 운동은 정신의학 체제에 반대했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정신의학 전체에 대한 비판으로 흐르는 때도 많았다.  - P68

실용적 또는 실제적 유토피아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이 운동에서는 일련의 ‘실용적인‘ ‘살아 있는‘, 또는 ‘실제적인‘ 유토피아를 만들어 환자를 보살피는 대안적 형태를 실험하고 세상에 급진적 변화를 알리고자 했다. - P70

비판적 정신의학에서는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여러 가지 생각과 구호를 중심으로 해서 어렵사리 운동을 일으켰다. 이 운동은 국제적이었지만 운동이 뿌리내린 각국에서는 자국 특유의 성격뿐 아니라 지방색과 지역색을 띠고 있었다. - P71

제11장


『부정되는 공공시설』의 기원

당신의 책・・・・・・ 은 그 자체로 전개되는 책의 보기 드문 예입니다. 당신의 책은 내부에서 스스로 만들어내는 긴장 상태를 통해 생명을 이어가고, 자신의 자기파괴적 성향을 통해 자신을 지탱합니다.
줄리오 볼라티가 프랑코 바잘리아에게(1968년 1월 26일지)

조반니 제르비스와 에이나우디

『부정되는 공공시설』이라는 이름으로 나온 책의 기원과 제작과 탄생에 관해서는 다양한 이야기가 있다. 그렇지만 고리치아 사람들과 이 책의출판사인 에이나우디를 연결한 사람이 조반니 제르비스였다는 사실에는 모두가 동의한다.¹ - P197

제11장 『부정되는 공공시설』의 기원


1 그렇지만 이 연결고리는 가볍게 처리되는 때가 많고 일부 설명에서는 완전히 무시되기도 하는데, 이는 필시 제르비스와 나머지 고리치아 사람들, 또 고리치아 이후의 바잘리아 사람들 사이에 오랫동안 이어진 다툼과 앙금 때문일것이다. - P537

에이나우디와 고리치아는 여러 경로를 통해 관계를 맺었는데, 처음에는 제르비스를 통해서였다. - P199

1967년 2월에 제르비스는 『부정되는 공공시설』로 출간될 책을 "우리가 고리치아에서 만들고 있는 것"이라고 언급했다.⁵ 또 이때 이 책이누오보 폴리테크니코 시리즈의 한 권으로 정해진 것이 분명하다. - P199

5 1967년 2월 1일자, 편집위원회, 메모. - P137

「정신의학이란 무엇인가?』는 임시로 만든 작은 출판사를 통해 한정판으로 출간되었다. 『부정되는 공공시설』은 사정이 그와는 완전히 달라질 참이었다. 고리치아는 대성공을 앞두고 있었다. - P204

흥미롭게도 이 편지는 부정되는 공공시설의 저자/편집자로 다른사람이 있을 가능성도 보여준다. 이 책은 에퀴페의 전체 구성원과 기자, 환자, 그리고 그 밖의 사람들이 참여하여 만든 집단 작업의 결과물임이 확실하다. 또 제르비스가 편집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맡은 것이 분명하고, 볼라티, 바잘리아, 프랑카 옹가로를 비롯한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 P205

『부정되는 공공시설』의 계약서에는 1968년 2월 제르비스와 바잘리아가 공동으로 서명했고, 저작권료는 모두 고리치아에 있는 환자들의 클럽 앞으로 돌아갔다. 책은 1968년 3월에 나왔다. 안토니오 슬라비치는 나중에 조반니 제르비스가 새로 나온 책을 한 무더기 가지고 고리치아로 돌아온 날에 대해 적었다. 책에서 잉크 냄새가 났다. - P206

바잘리아는 에퀴페와 환자들을 대신하여 그 과정에서 도움을 준 볼라티에게 직접 고마움을 표했다("저와 고리치아의 모든 사람을 위해 해주신모든 일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이 책과 관련된 홍보 활동은 이탈리아 곳곳에서 청중이 가득 모이는 등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한편으로는 어렵고 힘든 일이기도 했다. - P207

책 자체는 여러 부분으로 나뉘어 집필되었고, 고리치아에 있는 바잘리아의 아파트와 병원에서 논의되고 취합되었다. 에퀴페의 구성원 전원및 프랑카 옹가로, 미켈레 리소, 줄리오 볼라티를 비롯한 여러 사람의의견이 들어갔다. 이 과정에 대해 자세하게 글로 쓴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작업은 목소리와 글, 토론으로 이루어진 그림 맞추기 퍼즐 같았다. - P209

『부정되는 공공시설』은 꼭 맞는 때에 나온 꼭 맞는 책, 시기가 딱 맞아떨어진 책이었다. 날개 돋친 듯 팔리면서 "여덟 가지 판이 나왔는데 그중 두 가지가 1968년에 나왔고, 6만 권이 팔렸는데 그중 5만 권이 1968년부터 1972년까지 팔렸다."³⁵ - P209

35 Giannichedda, "Introduzione‘, p.xxv, 출판사는 1968년에 출간된 3판까지의 판매부수가 1만 2500 부라고 보고했다. 1972년 말에 이르러 이 숫자는 5판에 2만 7000부 정도로 늘어나 있었다(에이나우디 기록보관소). 1975년 12월에는 2만 5000부 정도가 더 판매된 것으로 보고되어, 7년간 총 7판에 5만2000부 이상이 팔린 것으로 집계되었다. 이는 1974년까지 8판에 걸쳐 총 6만 부가 팔렸다는 에이나우디의 공식 통계와도 비슷하다. - P541

『부정되는 공공시설』은 1968년을 만들어내기도 했고 반영하기도 했다.³⁶ - P210

36 다음 장에서 다루는 1968년에 관한 부분과 Robert Gildea, James Mark andAnette Warring, eds, Europe‘s 1968. Voices of Revolt, Oxford: OxfordUniversity Press, 2013 - P541

『부정되는 공공시설』 이후 에이나우디에게 바잘리아는 흥행 보증수표였다. 그는 남아메리카의 여러 나라를 방문하여 그곳의 반공공시설 운동에 관한 연구를 수행할 목적으로 250만 리라라는 거액의 선금을 받았다. 이 여행과 관련하여 약속된 책은 결국 출간되지 않았다.³⁷ - P210

37 다만 바잘리아가 미국에서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한 짤막한 글이 1969년에 에이나우디에서 출간된 것으로 보인다. Lettera da New York. Il malatoartificiale (Franco Basaglia. L‘utopia della realta, p.323에 있는 참고문헌 목록 참조). 나는 이 책의 실물을 찾아낼 수 없었다. - P541

제14장
사건


어쨌든 미클루스 사건은 사라지지 않으리라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조르조 베르비¹ - P246

제14장 사건


1 Giorgio Verbi, ‘Superato il clima di paura rimangono gli interrogativi, Il Piccolo, 1968년 9월 30일자 - P549

바잘리아 부부는 환자와 관련하여 정신질환자 보호소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사건과 그것이 어떻게 해석되는지에 대해 명료하면서도 독창적인 분석을 내놓았다. "정신의학 시설에서 일어나는 온갖 사건은 대개병 때문으로 치부되며, 환자의 예측할 수 없는 행동에 대한 유일한 설명으로 병이 지목된다."⁷ - P247

7Basaglia and Ongaro, ‘Il problema dell‘incidente‘, p.363. - P549

개방된 시설에서 정신의학자는 하나의 모순에 갇혀 있었다. "현재 우리 사회 체제의 강요에 의해 질서를 보장하는 사람을 자처해야 하는 동시에 그 질서의 파괴를 꾀하고 있다"는 모순이었다. - P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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