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지점에 서자
초록이 눈앞에 한가득

2021년 여름, 현장을 방문해 주변을 둘러보고 곳곳을 걸었다. 주택이 들어선다는 가정하에 곳곳을 살폈다. 흥미롭게도 건물이 들어서는 방향에 따라 주변 환경이 완전히 달라졌다. 대지의 경사면 어느 지점에서자 초록의 잎들이 눈앞에 가득했다. 고개를 돌리자 남쪽으로 막힘없는 도로가 있고, 서쪽으로는 아파트 사이로 들어오는 석양의 도시 풍경이 그려졌다. - P96

다세대주택 세 동을 설계하기에는 아까운 땅이었다. 한 층에 몇 세대를 구성하든, 한 가지 타입이 아니라 이 특별한 조건의 대지에 놓이는 세대의 위치에 따라 서로 다른 타입의 설계가 필요해 보였다. 입주자도 반가워할 일이지만, 이 복잡한 설계가 결국 건물의 가치를 올릴것이라는 확신도 들었다. - P97

대지의 조건에 따라 어떤 건물을 세울지 컨셉을 결정하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대지가 갖고 있는 특정지의 법규를 확인하는 것이다. - P97

이 제안은 발주처도 꺼릴 정도로 복잡했다. 성공적인 분양이 거의 확실한데 복잡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 많은 안으로 보였을 것이다. 결국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건축물의 가치를 크게 높일 수 있는 일인데도, 오히려 네 배 이상의 수고를 더 해야 하는 내가 발주처를 설득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요청에 따라 설계안을 다듬고, 또 다듬고 참 많은 노력과시간을 기울였다. - P99

오직 이곳, 이 땅에서만
경험하는 주택


공동주택은 설계가 확정된 이후 입주자가 결정된다. - P99

(전략). 하지만 이번 프로젝트는 단 30세대 이하 규모(이것은 건축 허가와 사업 승인의 기준이기도 하다)의 특별한 사람들을 위한 소규모아파트다. 오직 이곳, 이 땅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주택이 세워져야 하는 이유다. - P100

아파트 욕실에는
왜 창문이 없을까?


욕실도
창을 원한다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 제목과 줄거리는 기억나지 않지만, 거품 많은욕조였고 팔걸이 위로 커다란 창문이 있었다. 아침 햇살이었는지 석양빛이었는지, 욕실의 수증기마저 평화로웠던 장면이었다. 도시의 아파트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창문이라니. - P101

‘아파트 설계를 잘한다‘는
칭찬의 의미

아파트라는 명칭의 주거 형태가 처음 우리나라에 들어왔던 1960년대이후 꽤 오랫동안 고착된 말 그대로의 발코니가 있다. 우리나라 전통주거의 양식을 생각해 보면 그 이유가 명확해진다. - P102

현재 아파트 설계의 모든 발코니는 확장형으로 계획된다. 원래 발코니는 방과 거실의 문밖 공간이었다. 전용면적에 포함되지 않지만 처음부터 확장해서 전용면적처럼 쓸 수 있는 공간이다. 등기부등본에도 없고 세금도 내지 않는 면적을 내 것으로 쓸 수 있으니 얼마나 기분 좋은일이겠는가. - P103

하지만 주방의 설비나 욕실의 설비가 있는 경우는 발코니 확장이 불가능하다. 발코니를 포함한 서비스 면적에 주요 설비 기능을 둘 수 없다는 규제 때문이다. - P103

발코니를 확장하지 않을 경우에도 공간의 주요 기능은 남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아파트의 작은방 크기가 3.6미터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발코니 폭 1.5미터와 최소 방의 폭 2.1미터를 합한 크기다. - P104

숲과 경계를 이루는 아파트:
욕실을 숲과 나란히

(전략). 면적에 손해되지 않는 욕실의 창과 확장하지 않아도되는 발코니, 거실과 식당의 조망까지 확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 P104

초기 안 숲 조망에 집중한 D타입 평면 스케치

우리는 네 타입 중에서도 가장 넓은 면적의 숲과 경계를 이루는 D타입에 집중했다. 남동측의 작은 숲을 집 안으로 가져올 수 있다면, 지금까지 보지 못한 아파트의 설계가 가능할 것 같았다. 단순히 풍경으로의 숲이 아니라 경험하는 도심의 숲으로, - P10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카오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헛기침을 하고 당구대에서 내려왔다.
"정말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사건에 중요한 의미가 있는 증언이겠죠. 하지만 아무래도 이해가 안 되는점이 하나 있습니다."
‘아니, 아니, 이해가 안 되는 건 당신이지!
사야카는 속으로 분개했다. - P228

"어제 만찬 때 자리를 떠난 유코씨를 쫓아 선생님도 식당에서 나가셨죠. 그 후에 두 분이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저는 모릅니다. 선생님 말씀을 믿는다면 별 이야기는 나누지 않으셨던 모양이지만,
그거 정말입니까? 실은 유코 씨에게 좀 더 깊은 이야기를 하신 거아니에요? 어쩌면 직접적으로 애정을 표현했을지도 모르죠. 유코씨는 쌀쌀맞게 거절했고요. 그때 사이다이지 가문에 바치던 선생님의 충성심이 크게 사그라들었고, 그래서 지금 이렇게."
"무, 무슨 소립니까, 이런 무례한!"
다카자와는 발끈한 표정으로 언성을 높이더니, 화를 주체하지 못하겠다는 듯 들고 있던 노란 당구공을 바닥에 내팽개쳤다. - P229

 6장

 사라진 사람

1

게임룸에서 의사 다카자와 나오토가 충격적인 비밀을 털어놓은지 얼마 후, 야노 사야카와 고바야카와 다카오는 다시 전망실로 자리를 옮겼다. 널찍한 공간에는 사야카와 다카오 말고 아무도 없었다. - P231

"만찬 자리에서 쓰루오카 가즈야가 꺼냈던 ‘비밀‘이라는 말의 의미야. 그건 분명 23년 전에 사이다이지 도시로 씨가 살해당한 일을 가리키는 거겠지. (중략). 그렇게 생각하면 고로 씨가 쓰루오카에게 거액의 유산을 남긴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가지. 지금까지 협력해 준답례로 말이야. 동시에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는 내용의 고로 씨가 쓰루오카에게 남기는 일종의 유언이라고 볼 수도 있어." - P232

다카오는 마지못한 표정으로 손가락을 세 개 세우며 말했다. "세번째는 ‘그때와는 달라‘ 라는 마사에 씨의 말이야. ‘그때‘가 언제였을지 궁금했는데, 역시 23년 전 사건을 가리키는 거겠지. 사이다이지 가문 사람들은 일치단결해서 과거에 일어난 살인사건을 은폐했어. 하지만 이번에도 그러기는 어려워. 그래서 마사에 씨가 에이코씨에게 ‘그때와는 달라‘ 라고 타이른거야." - P233

사야카는 코끝에 걸친 안경을 살짝 밀어 올리며 말을 이었다.
"즉, 이해가 되지 않았던 점은 대부분 23년 전에 일어난 사건과 관련 있었던 거로군요."
"그런 셈이지."
"이번에 쓰루오카 가즈야가 살해된 것도 과거의 살인사건과 관계가 있을까요?"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하겠지." - P234

"나는 사이다이지 가문 사람들, 특히 고로 씨가 왜 도시로 씨가 살해당한 사건을 은폐하기로 결단한 건지 납득이 잘 안 돼. 당시 다카자와 선생이 생각한 대로, 사이다이지 가문에는 이 사건이 일종의 스캔들이었겠지. 게다가 진범이 이미 죽었다면 굳이 경찰을 불러일을 키워봤자 별 의미도 없어. 확실히 그런 사고방식에 공감은 가. 그래도 역시 완벽하게 납득되지는 않아. (후략)." - P235

"그것도 그러네요. 그렇더라도 결국은 경찰을 부르지 않았으니, 고로 씨는 그걸로 만족했던 것 아닐까요? 바다로 사라진 범인의 정체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을지도..…………."
(중략).
"고로 씨는 아버지를 죽인 범인이 누구인지 실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굳이 정체를 밝힐 필요가 없었다. 그런 관점이지." - P236

"그래. 고로 씨와 쓰루오카는 벼랑 앞에서 범인과 대치했어. 두 사람은 범인의 정체를 알았지. 하지만 범인을 벼랑에 홀로 남겨 놓고, 다리를 건너서 돌아왔어.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고 거짓말한 거야. 그런 가능성도 일단 생각은 할 수 있겠지."
"범인이 누군지 알면서 일부러 진실을 감추다니. 설마..…………..
숨을 삼키는 사야카 앞에서 다카오는 담담히 설명을 이어 나갔다. - P237

"확실히 말이 되긴 하네요. 그럼 범인은 대체 누군데요?"
"그걸 아는 사람은 고로 씨와 쓰루오카 가즈야, 그리고 범인 본인뿐이었을 거야. 그러나 고로 씨가 죽은 순간, 쓰루오카와 범인 단둘만 남았지." - P238

2

나선계단을 올라오는 여러 명의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이윽고 전망실에 사이다이지 아쓰히코와 미사키가 나타났다. 미사키는 의자에 앉아 있는 사야카를 보고 기쁜 표정으로 다가왔다. - P238

한편 미사키는 천진난만한 분위기를 풀풀 풍기며 다카오에게 다가갔다. "우와, 탐정님은 그림책 같은 것도 읽나요?"
그러자 다카오는 빼려야 뺄 수가 없게 됐는지 그림책을 서가에 돌려놓지 않고 양손으로 펼친 채 대답했다. "어, 아아, 물론이지. 어른도 그림책을 읽고 싶을 때가 있거든. 그러는 미사키는 뭘 하러 왔니? 역시 책을 읽으러? 아니면 파리를 잡으러 왔으려나?" - P240

아까 탐정이 말한 바에 따르면, 23년 전에 도시로 씨를 살해한 범인이 이번에 쓰루오카를 살해한 범인인 셈이다. 그렇다면 아쓰히코는 용의선상에서 벗어나지 않을까. 23년 전에 그는 아직 에이코와 결혼하지 않았으므로 사이다이지 가문의 일원이 아니었다. 과거의 사건과는 무관하다고 해도 되는 존재다. - P241

"이, 이, 이런 벌 받을 놈이 다있나!"
(중략).
"어쩌고 저쩌고고, 『모모타로』는 도깨비를 퇴치하는 이야기야. 파리를 퇴치하는 도구가 아니라고!" - P243

"아하, 알았습니다. 이거 사이다이지 출판에서 간행한 그림책이로군요. 아이고, 실례했습니다. 자사 상품을 더럽혔으니, 조만간 사장 자리에 오르실 분이 화내는 것도 무리는 아니죠. 사과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탐정이 순순히 사과하자 차기 사장도 미안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 P244

"어쨌든 사이다이지 출판의 창업자이신 너희 증조할아버지께서모모타로 전설에 특별한 애착을 품고 계셨던 건 틀림없어. 미사키, 사이다이지 출판에서 제일 처음 출간한 책이 그림책이라는 거 아니? 그래, 물론 『모모타로야. 그 후로도 우리 회사는 다양한 형태로 『모모타로』를 계속 출간해 왔지. 너희 증조할아버지는 그만큼향토애가 강한 분이셨던 거야." - P245

미사키의 말에 아쓰히코는 힘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물론 도깨비섬 전설에 영향을 받은 거야. 분명 너희 증조할아버지께는 이 비탈섬이 도깨비섬이었겠지." - P246

3

(전략).
아무래도 23년 전에 일어난 일이 이번 사건의 핵심일 듯했다. 그건 다카자와의 증언으로 확실해진 바다. 하지만 사이다이지 가문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그 일에 관련된 질문을 할 수는 없다. - P246

다행히 독이 든 카레로 사이다이지 가문을 전멸시키려 한 사람은없었던 모양이었다.
대화에는 전혀 활기가 없었지만, 한 명의 사망자도 없이 무사히 식사가 끝났다. 식당에 모인 사람들은 다시 각자 방으로 돌아갔다. - P248

에이코가 보기에는 야노 사야카라는 젊은 여성 변호사조차 용의자 중 한 명일 것이다. 용의자의 방에 자기 딸을 하룻밤 더 재운다는 선택지는 없으리라. ‘아니, 잠깐만그런 밑밥 자체가 에이코의 교묘한 연기이고, 사실 에이코는 범인을 이미 알고 있다. 또는 에이코가 쓰루오카를 죽인 범인이다. - P249

그리고 여기서부터가 사야카의 추리다. 사야카가 자신의 미덥지못한 뇌세포를 총동원해 생각해 본 바에 따르면, 23년 전 사건의 범인으로 고려할 수 있는 인물은 한 명뿐이다. 바로 3남매 중 둘째, 사이다이지 게이스케다. - P249

"범인이 아들 게이스케였으니까."
사야카는 침대 위에서 그 이름을 소리 내어 중얼거렸다. 유일무이한 추리인 것 같기도 했고, 중대한 뭔가가 잘못된 것 같기도 했다.
사이다이지 게이스케는 23년 전, 중학교를 갓 졸업한 15세였으니 몸집은 성인과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도시로 씨를 찔러 죽이고 숲으로 도망칠 만한 체력도 있었으리라. - P250

그 후로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흠칫 놀라 눈을 뜨자 사야카는옷을 입은 채 침대에 누워 있었다. (중략).
"쩝, 지금까지 계속 잤지만."
사야카는 자조하듯 중얼거리며 일단 침대에서 내려왔다. 그리고샤워를 할까 화장실에 갈까 망설이며 방안을 왔다 갔다 했다. 결국 화장실이 먼저라고 판단해 문을 열고 복도로 나왔다. 화장실은 복도 끝에 있다. 2층으로 통하는 기묘한 계단과는 반대 방향이다. - P251

어두침침한 복도 저편에 사람 형체가 보였다. 그 사람은 계단을 향해 걸어갔다. - P251

‘분명 나선계단이야!‘
사야카는 그렇게 짐작하고 나선계단으로 뛰어갔다. 문제는 위냐 아래냐다. 수수께끼의 인물이 어느 쪽으로 향했는지 판단하기 위해 사야카는 층계참에서 귀를 기울였다. 희미하기는 했지만 분명 발소리가 들렸다. ‘위쪽이다!‘ - P252

도서 코너에도 휴게 공간에도 사람은 숨어 있지 않았다.
"말도 안 돼・・・・・・ .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사야카의 의문에 대답하는 목소리는 없었다.
수수께끼의 인물은 전망실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 P253

7장 

술래잡기의 반대


1


사야카는 여우에 홀린 기분이었다. 방금 정체 모를 누군가가 나선계단을 올라 전망실로 향했다. 하지만 지금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 전망실 어디에도 수상한 인물은 보이지 않는다. - P254

사야카는 자조하듯 중얼거리고 발걸음을 돌렸다. 하지만 계단을내려가기 전에 전망실 불을 꺼야 할 것 같아서 벽에 있는 스위치를내렸다. 그때였다. "끄억"
갑자기 어딘가 먼 곳에서 짤막하게 외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뒤이어 쿵쿵쿵 바닥을 세게 내딛는 듯한 소리가 불규칙하게 들렸다. 사야카는 바로 나선계단으로 뛰어갔다. - P255

"저, 저기요, 스님. 일어나세요!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전부 제탓인가요? 아니죠? 제발 부탁이니까 눈좀 떠 보세요. 저기요. 스님!"
이대로 스님이 죽으면 변호사로 살면서 평생 후회할지도 모른다 - P256

"응? 계단에서 떨어져서 머리를? 그랬던가……………납득이 안 된다는 표정으로 스님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아닙니다. 계단에서 떨어질 때 머리를 찧은 게 아니에요. 소승이 계단을 내려가려는데 누군가 뒤에서 머리를 때렸어요.
그래서 계단에서 굴러떨어진 겁니다. 그뿐만이 아니에요. 그자는바닥에 쓰러진 소승의 옆구리를 세게 한 번, 아니 두 번, 잇달아 걷어차고 어딘가로 사라졌습니다. 혹시 두 분은 수상한 자를 못 보셨습니까?" - P258

"틀림없습니다. 소승을 습격한 건 도깨비였어요."
스님은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중략).
 하지만 스님은 아주 진지하게 대답했다.
"분명 빨간도깨비였습니다. 음, 계단을 굴러떨어지는 도중에 얼핏 봤지만, 틀림없어요. 그건 빨간도깨비였습니다." - P259

"그야 그렇죠. 얼굴이 빨간 도깨비였을 뿐입니다. 복장은 전체적으로 거무스름했을 거예요."
"빨간도깨비 가면이라도 쓴 거겠죠. 어디로 도망쳤는지는 아십니까, 스님?"
"아니요. 그건 잘 모르겠군요. 나선계단을 뛰어올라 2층으로 가거나, 아니면 1층 현관으로 가서 밖으로 도망치거나 둘 다 가능할것 같은데........" - P260

"스님을 습격한 빨간 도깨비는 쓰루오카 가즈야를 끔찍하게 살해한 범인과 동일 인물일까요?"
"글쎄요, 과연 어떨까요. 여하튼 어제오늘 일이니 당연히 동일 인물의 소행이라고 봐야 할지도 모르죠. 하지만 전혀 다른 인물의 소행 아닐까, 솔직히 그런 생각도 들어요. 범행 수법도 많이 다른 것같으니......." - P261

도라쿠 스님이 당황한 목소리로 사야카를 불렀다. "어어, 이보시오. 혼자서 너무 돌아다니지 않는 편이 좋지 않겠습니까. 어디에 어떤 자가 숨어 있을지 모르는데."
"걱정하지 마세요. 그렇게 멀리는 안 갈 거니까."
"아니, 보살님은 괜찮아도 소승이 괜찮지 않은데...………. 이봐요.
소승을 혼자 두지 말아요....... 실은 허리를 다쳤는지 아까부터 일어서려고 해도 전혀 일어설 수가..." - P262

그리고 빨간도깨비는 도라쿠 스님의 머리를 때린 후, 다시 이 창문을 통해 저택 밖으로 도망쳤다. 그렇게 된 걸까. 사야카는 머릿속에 그 광경을 그리며 침을 꿀꺽 삼켰다.
"서, 설령 그렇더라도 빨간도깨비는 이미 멀리 갔을 거야…………"
사야카는 자신을 안심시키기 위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 P263

사야카는 안경테를 손가락으로 잡은 채 눈을 크게 뜨고 나무를 유심히 관찰했다. 동그란 불빛 속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 굵은 나무줄기 옆에는 도깨비 한 마리가 강풍에 몸을 흔들흔들하며 서 있었다. 사야카는 놀란 나머지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빠 빠 빨간・・・・・・ 빨간도깨비⋯⋯⋯⋯⋯."
아니, 물론 진짜 도깨비는 아니다. 빨간도깨비 가면을 쓴 검은색 옷차림의 사람이다. 어쨌거나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광경이었다. - P264

2


(전략).
"도・・・・・・ 도깨비・・・・・・ 빨간 도깨비가..………… 저기에."
사야카는 주저앉은 채 손전등 불빛으로 창문을 가리켰으나 다카자와는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중략).
몇 초 후, 그는 낙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도 없는것 같은데, 이봐, 정말로 본 거야, 빨간도깨비를?" - P265

"응? 남자였어? 가면으로 얼굴을 가렸다면서?"
"듣고 보니 그러네요. 그럼 남자라고 단정할 근거는 없을지도 모르겠어요." 사야카는 어둠을 비추는 동그란 빛에 무심한 시선을 던졌다. - P266

"젠장, 마침내 나타났구나, 이 수상한 놈아!"
소리를 지르자마자 다카오는 창틀을 뛰어넘어 저택 밖으로 몸 을날렸다. 눈앞의 빨간도깨비와 맨손으로 맞붙을 것 같은 기세였다. 그런 그를 비웃듯 동그란 불빛 속에서 빨간 도깨비의 모습이 사라졌다. - P267

밉살스럽게 말하면서도 사야카는 앞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저멀리 앞쪽에 도망치는 빨간 도깨비의 모습이 보였다. 주변은 울창한 나무에 둘러싸인 숲이다. 빗발이 약해졌다고는 하나 태풍이 부는 밤이라 달빛은 없다. 그래도 빨간 도깨비를 놓치지 않고 추적할수 있는 건, 그가 불빛으로 어둠을 비추고 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빨간도깨비의 모습이 어둠 속에 그림자놀이를 하듯 떠올랐다.
"이상한데." - P268

사야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평범한 의견을 꺼냈다. "분명 자기발밑이 보이지 않으면 위험해서 도망치기가 힘드니까 그런 거겠죠."
"그럴까? 내가 빨간도깨비라면 도깨비불을 밝힌 채 도망치는 바보 같은 짓은 절대로 안 할 것 같은데…………
" - P268

"도깨비 뒤집기 벼랑‘ 빨간도깨비는 그곳으로 향하는 것 아닐까요?"
(중략).
"그렇지. 실은 나도 당신과 같은 생각이야. 아무래도 ‘도깨비 뒤집기 벼랑‘으로 향하는 것 같아." - P269

"전혀 다르죠. 지금은 도깨비가 도망치고 있으니까요 (*일본어로 ‘도깨비‘와 ‘술래‘는 발음이 ‘오니‘로 같다). 오히려 ‘술래잡기의 반대버전‘이라고 해야겠죠." - P270

"봐, 통나무 다리는 저기 있어. 그나저나 다카자와 선생 말처럼 정말 불안해 보이는군. 빨간도깨비는 단숨에 다리를 건너간 것 같은데……………. 우리는 어떻게 할까?"
"어, 어떻게 하다니……………."
다카자와의 이야기에 따르면 통나무다리 건너편에는 단애절벽 밖에 없다. - P271

"아무도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겠죠. 빨간도깨비가 바위 뒤편에숨어 있을지도 모르니......."
"그러게. 그럴 위험성은 아직 남아 있어. 서로 너무 떨어지지 말고살펴보자." - P272

뿔이 달린 빨간도깨비 가면이었다. 두 사람이 쫓아온 빨간도깨비가 여기서 가면을 벗어던진 게 틀림없었다. 빨간도깨비는 분명 여기 있었다. 그럼 도깨비 가면을 벗은 수수께끼의 인물은 어디로사라졌을까. 적어도 이 바위밭에는 아무도 없다.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은 한 가지이리라. 사야카의 귓속에 아까 들었던 절규가 되살아났다. - P273

"그, 그 빨간도깨비는 도깨비 가면을 벗고 벼랑에서 바다에 떨어졌다. 아까 우리가 들은 비명은 그자가 떨어질 때 지른 거였다. 그런 거겠죠?"
사야카의 질문에 다카오는 벌떡 일어나서 벼랑 끄트머리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확실히 그렇게 볼 수 있는 상황이군. 발이 미끄러져서 실수로 떨어진 건지, 아니면 죽을 각오를 하고 뛰어내린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23년 전 사건 때와 완전히 똑같은 전개인데, 정말로 그럴까?"
탐정은 어쩐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 P274

3


"그, 그렇지만...... 23년 전과 완전히 똑같지는…………. 않은 것 같은데."
사야카가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중얼거리자 몇 미터 앞에서 다카오의 심술궂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 P275

"과연. 확실히 그건 당신 말이 맞아. 하지만 다리를 지키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만이 23년 전과 다른 점은 아니야. 날씨도 과거와는 전혀 다르지. 뭐, 됐어. 일단 저택으로 돌아가자. 사실은 돌아가는길에 저절로 밝혀질 거야." - P276

그것은 운동화 자국으로 보였다. 사이즈는 250밀리미터 정도일까. 얼핏 보기에는 남자 신발 같지만, 여자도 못 신을 사이즈는 아니다. 사야카는 발자국만으로 빨간도깨비의 성별을 단정하는 건 경솔한 짓이라고 판단했다. 다카오도 그 점은 언급하지 않았다.
"문제는 발자국의 방향이야. 범인의 발자국은 전부 길을 올라가는 것뿐이지. 길을 내려가는 발자국은 하나도 없어. 무슨 뜻인지 알겠지?" - P27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당이
있어야해요.



마당 깊은 집단독주택 설계를 의뢰받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오래전 읽었던 김원일 작가의 소설 《마당 깊은 집) 분단 상황으로 홀어머니와 살게 된 주인공의 성장소설이다. - P17

주택을 짓고자 하는 건축주는 대부분 첫 번째 이유로 스스럼없이 마당을 꼽는다. 그때마다 김원일의 소설을 떠올리곤 했다. 마당 깊은 집을 제안하고 싶었다.
이번에 의뢰받은 건은 하나의 부지에 19세대의 단독주택을 짓는 일이었다.* 이미 2층 규모의 단독주택 19세대를 허가받은 상태로 의뢰가들어왔다. 드문 일이다.
(중략).

& 당시의 건축법에 따르면, 20세대 이상일 때 좀 더 엄격한 허가 조건을 맞추는 사업 승인절차를 밟아야 했다. 따라서 소규모 공동주택은 대부분 19세대를 넘지 않았다. 현재는 사업승인 대상을 30세대 이상으로 완화하여 적용하고 있다. - P18

하지만 마당이 없다는 말로 건축주는 불만을 대신했다. 이곳 단독주택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30~40대의 젊은 부부로 아이가 한둘정도 있는데, 무엇보다 작게나마 마당이 있는 집이어야 했다. - P19

현대 주택에서 마당이란?

우리나라 현대건축에서 마당은 하나의 거대한 담론을 형성하고 있다.
동양과 서양에서 마당이 지닌 의미가 다르고, 우리는 지리적으로 가까운 일본과도 또 다르다. - P20

현대의 주택은 쓰임새가 다르고, 마당이 다르다. 땅은 작고 그 안에 담아야 할 기능은 넘친다. 공사비는 또 어찌하겠는가. 모든 제안은 공사비와 직결된다. 무시할 수 없는 조건이다. - P21

현대 주택에서 마당은 분명 전통 한옥의 마당과는 다르다. 그 여유로움을 담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택의 기능을 확보한 후에 남는 외부 면적을 마당으로 할애하는 건 더더욱 해답이 될 수 없다. - P22

마당은 창문이 없는 또 다른 거실이다. - P23

하늘이
열린방,
마당


아이들이 그린
‘내가 살고 싶은 집‘



그럼 이번 프로젝트와 같은 현대 주택에서의 마당은 어떻게 디자인되어야 하는가, 안방과 거실을 배치하듯 벽의 구획은 없으나 하나의 공간으로 설계되어야 한다는 점에 우선 합의했다. - P24

내심 기대했던 건 지금 살고 있는 집의 방과 거실과 주방의 크기를그림으로 느껴 보게 하는 것이었는데, 아이들 대부분이 아파트의 겉모습을 그리기 시작했다.
하기야 아파트에서 태어나서 자라고 있으니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였다. 반듯한 콘크리트 덩어리에 촘촘히 창문들이 뚫렸다. - P25

사실 일산 신도시의 단독주택은 하나의 필지가 200제곱미터(60여 평)정도로 구획되어 있어 빼곡하게 진열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1층을100제곱미터(30여 평) 정도로 계획하고, 집 주변으로 1미터 이상을 띄워보자. 필지 안에 주차장도 확보해야 하니 집의 마당으로 쓸 수 있는 공간은 기껏해야 20제곱미터(6평) 정도가 고작이다. - P25

더 재미있는 사실은 살고 싶은 집을 그려 보자는 시간에 아이들 모두가 빠짐없이 꽃과 나무와 들판에 놓인 집을 한 채씩 그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거실과 방을 그리고 난 뒤에는 어김없이 널찍한 마당을 그렸다. - P27

나도 유년 시절에 단독주택에서 지낸 ‘마당‘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중략).
지금 생각하면 단독주택의 그 ‘마당‘은 특별할 것이 없었다. (중략).
하지만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마당은 있는 것만으로도 우선은 고마운 공간이다. - P27

나만의 마당은
가능한가?

이제 현실로 돌아와 이번에 계획하게 된 땅을 살펴보자. 일반적으로 검토하면 한 층에 25~30평(80~100제곱미터)의 주택이 네 개 층으로 이루어진 다세대주택이 가장 적정해 보인다. - P28

그럼에도 건축주(발주처)의 생각은 달랐다. 당시 유행한 분양 슬로건이 있다. "우리가 분양하는 주택은 도시에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마당을 함께 드립니다." 단독주택을 이어 붙인 공동주택 분양이 땅콩주택이라는 별명으로 인기를 끌고 있었다. - P28

주택단지의 모든 사람이 공동으로 쓰는 마당이 아니라 상추를 키우고 아이들이 모래 장난을 칠 수 있는 그런 마당을 원했다. 계산기를 두드렸다. - P28

마당에 대한 이야기로 몇 차례 모임이 계속될수록, 내심 ‘이건 좀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게다가 사용자의 눈높이는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높아져 이미 더 나은 주택을 요구하고 있었다. 논의를 거듭할수록 이번 사업의 경쟁력에 의문이 들었다. - P29

이 땅에서만,
‘따로 또 같이 마당‘


모든 땅은 저마다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 특징이라는 것이 언뜻 보기에는 단점일 수도 있고, 장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좀 더 고민해 보면그 모든 장단점은 그 땅만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모습이다. 언제든지 단점이 장점으로, 장점이 단점으로 태세 전환할 수 있다. - P30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각 세대의 프라이버시와 마당의 기능이다. 마당이 야외 식당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잘 꾸며져 바라보면 ‘힐링‘의 공간이 되기도 할 것이다. - P31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자

문제는 세 가지 주택 형태 중 B타입과 C타입이었다. A타입의 배치 컨셉처럼 다양한 조건의 마당을 확보하기는 불가능했다. 토지의 면적이 우선 턱없이 부족했고, A타입을 배치하고 남은 토지의 모양은 반듯했다. A타입과 같은 다양한 형태의 마당을 제안하기 어려웠다.  - P33

하지만 내게 B타입과 C타입의 그림은 계속 ‘이건 답이 아닌데‘ 싶었다. 사업 일정은 늘 빠듯했고, 위 배치도를 기본으로 설계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 P34

마당이 꼭
1층에 있으란 법이 있나?

‘마당이 꼭 1층에 있으란 법이 있나?‘ 언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누구와의 미팅에서였는지 기억나지는 않는다. 물리적으로 거실 앞의 마당을 갖지 못한다면, 그런데 꼭 마당을 갖고 싶다면 집 안 어딘가에 마당을 마련하면 되지 않을까?  - P34

각 층에 두는 발코니며 테라스라면 아주 새로운 생각은 아니다. 하지만 단독주택의 마당을 생각하며 2차원의 평면에서 줄곧 디자인을하고 있었고, 그 상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이었다. - P35

(전략).
프라이버시가 확보될 수 있는 크기 정도로만 구성하고 나머지 마당은 2층과 다락 층에 배치했다. 여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마당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어쩌면 이곳에서 상상하지 못한 많은 이야기가 일어나지 않을까. - P37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꿈꾸는 마당,
우여곡절 끝에 공사는 시작되고



"소장님! 그런데 이 시점에 또 새로운 안을 제안하는 것이 맞을까요? 벌써 충분한데요."
"이미 건축주도 오케이 했고 협력사들 작업도 엄청 진행된 상황이잖아요. 다음 달까지 허가받기로 약속까지 하셨고요."
건축 계획의 변경은 언제나 후폭풍이 심하다. - P39

‘괜한 문제를 만드는 것은 아닌지이미 결정된 계획안이고, 분양 시장에 대한 조사도 마치지 않았는가. 나중에 혹시 사업에 문제가 생기면 이번 제안으로 심리적 책임을질 수도 있지 않은가‘
나 스스로를 설득해야 했고, 팀원들과 뜻을 같이하기 위해서는 좀더 설계안을 검토해야 했다. - P40

. 단독주택 필지 공급 당시의 토지가격이 2~3년 사이에 두 배 이상 오른 것만 봐도 사람들에게 단독주택에 대한 갈증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단독주택 가격은 아파트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 P40

단독주택에 대한 갈증, 마당에 대한 막연한 꿈을 이루기에 이보다적절한 경우도 찾기 힘들었다. 주변에 아파트 단지가 인접해 있으니 기반시설이나 근린상가 등의 인프라도 좋았으며, 무엇보다 아이들의 교육환경이 좋았다. 시골의 전원주택을 선망하지만 가장 치명적인 결함은 교육 환경이니 그도 그럴 만하다. - P41

"텃밭이 마당일 수는 없죠. 크기가 문제가 아니라 그곳에서 뭔가 다양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도록 그렇게 설계하는 게 맞죠."
"설계안이야 저도 찬성이지만 이 많은 문제를 어떻게 하시려고요. 시간은 또 얼마나 더 걸릴 것이며, 설계비는 더 받을 수 있겠어요?"
지금까지 조성된 주택단지에서 마당은 어떤 형태로 조성되어 왔는지, 그리고 마당이 주택단지의 분양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까지 모두 조사했다. - P42

하지만 건축주와의 미팅은 예상대로 쉽지 않았다. 기존 설계안보다조금 더 넉넉한 크기의 마당을 원했을 뿐인데, 일이 커졌다는 반응이었다. 대출금 상환 일정을 조율해야 했고, 분양 팸플릿은 물론이고 이미 구두로 약속받은 입주민들의 이사 계획도 수정해야 했다. - P42

두 달가량 사업 일정이 연기되었고, 그에따라 일을 두 번 하게 된 발주처의 실무진은 만날 때마다 투덜거렸다. 변경 설계비는 계약서를 다시 쓰지는 못한 채 구두로 일정 금액을 약속받은 채 서둘러 일을 진행했다. 결국 협력사에 지급해야 할 추가 비용만 떠안게 될 줄은 이때만 해도 알지 못했다. - P43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


나중에 안 일이지만, 변경안은 생각지도 못한 사업 포인트로 결정되었다. 골조 공사가 한창 진행되던 어느 날 현장소장이 지나가는 말처럼던졌다.
"중정의 외벽 부분에 앵글(설치물을 지지하기 위한 철제 구조물)을 설치할자리를 마련하려고요. 나중에 혹시 지붕을 씌우려면 미리 이렇게 해놓으면 좋을 것 같아서요." - P43

인허가 과정 중에 담당 주무관이 2층에 마련된 마당 공간을 보며한마디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여기는 나중에 불법으로 전용할 공간이아니냐고. 그 말에 불같이 화를 냈다. 모든 사람을 예비 범법자 취급하시는 거냐고. 돌이켜 보면 어처구니없는 장면이다. - P44

게다가 외벽에 앵글을 붙이기 위한 사전 작업 정도는 정식으로 설계변경을 받을 일도 아니었다. 물론 그때까지만 해도 한창 골조 공사 중이었고, 그 정도의 불협화음은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마음을 다스렸다. (중략).
그러나 오판이었다. 착공 전, 시공사가 결정되고 공사 내역서를 보는데 뭔가 이상했다. 변경하기 전 기존 허가 도서의 공사비와 다르지 않았다. 외장재의 수준도 한 단계 상승했고, 무엇보다 면적에 포함되지 않는 공간이 추가로 더 생겼으니 공사비가 같을 리 없었다. - P44

현장의 공사는 걸핏하면 중단되었다. - P45

그나마 공사가 간신히 끝날 수 있었던 것은 준공필증과 함께 공사비가 대출되기 때문이었다. 건축주도 시공자도 그쯤이면 분양이 문제가 아니었다. 어떻게든 대출을 발생시켜서 급한 불을 꺼야 했다. - P46

건축가의 손을
떠난 마당


모든 프로젝트가 그렇듯, 이번 ‘마당 깊은 집‘ 역시 설계와 시공, 유지관리 세 가지가 각자의 역할을 정확히 해야만 그 모습을 갖춘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시공팀에 책임을 모두 물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 P46

그 후 현장을 다시 방문한 것은 시청 담당 공무원의 부탁을 받고서다. 그는 이웃집의 민원이 들어왔는데 관계자들이 아무도 연락되지 않는다며 담장 경계와 차면 시설을 좀 확인해 달라고 부탁했다. - P47

(전략). 주말에 한잔하러 모인 이웃들은 자리가 좁다고 투덜거릴지도 모르겠다.
마당은 건축 관계자들의 손을 완전히 떠나 그곳에 있었다. 그렇게 도면에 없는 모습으로 마당은 주택단지의 저녁을 만들고 있었다. - P48

숲이
집안으로


숲세권, 나홀로 아파트 이야기




"이 땅이
돈이 될까요?"

돈이 되는 땅,
분양이 되는 땅


건축주는 땅을 매입하기 전 망설여진다며 연락을 해왔다. "이 땅이 돈이 될까요? 아무래도 좋은 땅이 아닌 것 같아요. 경사도 심하고 바로 뒤에 숲도 있어서 이 땅이 돈이 될지 모르겠어요. 포기할까 하는데, 그래도 한번 와서 봐주시겠어요?" - P85

 토지의 시장가격은 생각보다 단순하게 결정된다. 토지를 매입해서 주택 사업을 할때는 예상하는 분양가에 토지비와 공사비, 금융비용과 각종 간접비를 제하고 얼마나 이익이 남는지로 결정된다.  - P86

‘이 땅이 돈이 될까요?‘라는 말은 ‘이 땅에 주택을 지어서 분양이 잘될까요?"라는 말과 같다. - P86

땅은 잘못이 없다
극복할 단점이 있을 뿐는


부지 자체가 프로젝트의 발주처 실무팀뿐 아니라 인근 부동산 관계자들 그리들 모두에게 매력적이지 못했다. - P87

보통 램프(경사면)의 각도와 대지의 길이가 맞아떨어져야만, 용적률에 포함되지 않는 마치 1층 같은 지하층을 형성할 수 있고, 수익도 극대화된다. 너무 완만한 경사면이라면 지하층으로 계산될 수 없고, 또한 너무 급경사라면 외부에 접한 1층 같은 지하층을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 P88

두 번째 문제였던 숲과 인접한 비좁아 보이는 땅 또한 장점이었다. 사실 건축주가 분양성이 좋은 아파트보다는 다세대주택으로 사업을 검토하게 된 것은 까다로운 법규 때문이었다. 부지는 제2종 일반주거지역이다. 우리나라 건축법 중에서도 가장 규제가 심한 부지로 ‘정북 방향 이격 거리‘라는 것이 있다. - P89

그런데 관점을 조금만 바꿔 보면, 부지의 북측을 제외하고 나머지는도로와 숲에 접해 있어 창을 내는 설계가 오히려 자유로웠다(참고로 창을 내는 방향으로 도로 쪽은 도로의 중심선에서부터 띄우는 거리를 계산하고, 숲이나 공원 쪽으로는 반대편의 경계선부터 거리를 계산한다).  - P90

"물론입니다. 이 땅은 돈이 되는 정도가 아니라 고객들에게 브랜드를명확히 알릴 기회가 될 겁니다."
"수익도 내고 회사의 브랜드도 알릴 수 있다고요? 그렇지 않아도 이정도 규모의 주택 사업을 계속해 볼까 고민 중이었는데, 그게 가능하다는 건가요?" - P91

"이땅에무엇을 지을까요?"
아파트를 지어 보자고요?


토지를 매입한 뒤에도 건축주는 계속 혼란스러워했다.
"아파트를 지어 보자고요? 제2종 일반주거지역의 땅에 아파트가 가능할까요? 사업 기간도 오래 걸릴 것이고, 그냥 다세대주택을 지어서빨리 털어 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요?" - P92

. 게다가 서울은 제2종 일반주거지역 중상당 부분을 7층 이하 개발로 한 번 더 규제하고 있다. 이번 사업지도 그범주에 포함된다. 인구가 집중되는 서울은 저층 주거지역의 수요가 반드시 있을 터이니, 그 수요에 맞춰 토지를 관리하고 있는 것이다.  - P93

숲을 바라보는 장점이 있으나 이번 사업지도 예외는 아니었다. 게다가 겨우 1150제곱미터(약 350평)의 세모 모양인 까다로운 땅임을 감안하면 선택의 폭도 넓지 않다. - P93

어느 지점에서자
초록이 눈앞에 한가득



2021년 여름, 현장을 방문해 주변을 둘러보고 곳곳을 걸었다. 주택이 들어선다는 가정하에 곳곳을 살폈다. - P9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