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에 대한 감식 결과가 나왔어. 네 종류가 유카씨의 머리카락이 아닌 걸로 나왔는데, 그중 하나는 청소를 담당하는 종업원의 것과 일치하니까 그것은 제외해도 될 거야. 나머지가 누구의 머리카락인지 확인 좀 해봐." - P244

"이걸 보면 전부 여자네요. 그럼 후지모리 요코, 가나에, 이치가하라 기요미, 고바야시 마호 중 누군가의 것이겠군요."
그렇게 말하고 나서 나를 보더니 당황해하며 얼버무렸다.
"아아, 혼마 씨가 여사가 아니라는 건………."
"괜찮아요, 발견된 머리카락이 모두 검정색인가 보죠?"
"죄송합니다. 실은 그렇습니다. ・・・・・・ 그럼, 저는 조사하러가보겠습니다." - P245

"나오유키 씨한테 들었습니다. 방금 전에 그런 얘기가 오갔다고 하더군요. 나오유키 씨 얘기로는 부인께서 왠지 유카씨 마음을 잘 알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하던데."
나오유키가 유카에 대해 털어놓은 걸까? 왜 그렇게 쉽게자백했을까? 아니, 그것보다 왜 그런 방향으로 얘기가 진행된 걸까? - P246

"바닥에 뭔가가 떨어지는 듯한 둔탁한 소리였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큰 소리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만, 마침 그 시각에 깨어 있던 다케히코 씨는 그 소리가 마음에 걸렸답니다.
거기에는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는데 그 사정이라는 게 나오유키 씨에 관한 거였습니다." - P247

"다케히코 씨가 밤중에 일어난 시각은 몇 시쯤인가요?"
"3시라고 하더군요."
이 말을 하는 경감의 눈이 예리하게 빛나는 것 같았다. 그는 목소리를 죽이고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만약 이 얘기가 사실이라면 상당히 유력한 정보라고 할수 있죠. 다케히코 씨가 들었다는 소리는 범인이 낸 게 아닐까 싶습니다." - P248

"아, 그 부분요? 그게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야자키 경감은 다시 환하게 웃었다. "자기 전에 나오유키 씨의 방문에 표시를 해두었다고 하더군요. 그 표시란 게 머리카락 한올을문틈에 침으로 붙여두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문을 열거나 닫으면 머리카락이 떨어질 테니 밤중에 방을 나왔는지 어떤지를 확인할 수 있는 거죠. 실례라는 걸 알면서도 그 얘길 듣고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더군요. 좋아하는 여자가 아무리 걱정된다고 그렇게까지 하다니." - P249

유카를 죽인 것은 나오유키가 아니다.
어젯밤 그의 방문이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는 것은 그것을의미한다.
그렇게 되면 얘기는 원점으로 돌아간다. 나오유키는 동반자살사건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셈이다. - P250

내가 복수해야 할 인간.
그 사람은 나오유키가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유카가 유서를 훔친 이유를 설명할 수가 없다. 유카가 감싸야 할 사람이 또 있는 걸까? - P251

"두 종류의 머리카락은 주인이 밝혀졌습니다. 후지모리 가나에 씨와 고바야시 마호 씨의 것 같습니다. 혈액형과 머리길이도 일치합니다. 만약을 위해 감식으로 확인하겠지만요." - P251

"성별은 여성, 혈액형은 AB형, 연령은 20대나 30대, 짧은머리로 최근에 자른 흔적이 있음. .………… 여기에 해당하는 여성......
이 없습니다. 혹시 몰라서 다케히코 씨와 기요미 씨에게도 물어봤지만 두 사람 다 혈액형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 P252

"뭘 그렇게 심각한 표정을 짓습니까?" 나오유키가 경감에게 말했다. "머리카락 주인이 없다는 건 외부인이 유카의 방에 침입했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정말로 없다면 그렇겠죠." - P252

"여자가 강도짓을 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어. 왜 가끔 미녀 강도가 신문에 실리기도 하잖아. 남자를 유혹해서 수면제를 먹이고 돈을 훔치는" 소스케가 가벼운 농담을 던졌다.
범인이 외부인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제기되자 무거운분위기가 약간 누그러진 것 같았다. 단 한 사람, 야자키 경감만은 못마땅한 얼굴이다. - P253


"여자가 범인이라니……"
소스케가 요코와 똑같은 말을 했다.
"이제야 유카한테 저항한 흔적이 없는 게 납득이 가는군.
범인은 돈을 노렸던 거야. 그건 그렇고 그런 사람이 있는 걸보면 여기도 좋은 환경이라고는 할 수 없겠군." - P254

"오빠, 무슨 소리를 들었으면 좀 더 빨리 나가보지 그랬어?"
그러곤 가나에가 나를 보며 말을 이었다. "어제 새벽 3시쯤 유카 언니 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 다케히코 오빠가 창문으로 방안을 살펴봤대요. 지문은 그때 묻은 거래요." - P254

"목이 좀 마른데 커피라도 끓여주시겠습니까?"
"알겠습니다."
"제가 끓여올게요." 가나에가 일어서며 말했다. "지배인님은 아침부터 계속 일하셨잖아요. 좀 쉬세요."
"아니에요. 그런 당치도 않은……….
"괜찮아요." - P255

나오유키가 쓸데없는 말을 꺼냈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렇다고 대답했다. 다도에 관한 얘기가 너무 길어지지 않기를 바랐는데, 요코가 우라센케(裏千家、일본 다도의 3대 유파인 우라센케, 오모테센케, 무샤노코지센케 중 하나 -옮긴이)냐고 물었다. 나는약간 주저했다. 어느 파라고 해야 하지? 아무도 모르는 거라면 적당히 둘러대도 될 것 같지만.………. - P256

"아니, 오모테센케야. 형님한테 들은 적이 있어. 부인께서오모테센케의 다도를 가르친 적이 있다고."
별걸 다 기억하는 남자다. 하지만 대답하지 않기를 잘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나오유키 씨 말이 맞아요. 오모테센케예요." - P256

"물론이지." 요코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말했다. "우라센케에서는 거품이 잘 나도록 하지만, 오모테센케에서는 거의 거품을 내지 않아. 제 말이 맞죠?"
갑자기 피가 머리로 몰렸다. 모르는 내용이었다. 나는 점심때 야자키 경감과 나누었던 얘기를 떠올렸다. 거품을 잘 내는게 어렵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 P257

언제부터 있었던 걸까? 방금 주고받은 얘기를 들었을까?
순간 경감과 눈이 마주쳤다.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에 지금까지와는 확실히 다른, 날카로운 빛이 깃들어 있는 것 같았다. - P257

자신들은 일단 수사본부로 돌아가지만 수사관들이 주변을지키고 있으니 안심하며 쉬라고 경감이 말했다. 하지만 속뜻은, 그러니까 함부로 돌아다니지 말고 방에서 얌전히 있으라는 말일 것이다. - P258

"그랬군요. 역시 여성의 눈썰미는 못 당하겠네요. 하지만알아차린 사람이 기쿠요 부인이라 다행입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골치 아팠을 겁니다."
"다른사람한테는 아무 말 안 할 테니 걱정 마세요."
"부탁드리겠습니다." - P259

"그런 감정은 일시적인 것이고 시간이 지나면 식을 거라고말했는데 유카는 이해하지 못하더군요. 결혼은 안 해도 좋다고 고집을 피우면서………겉으로는 얌전해 보여도 유카에게 그런 면이 있었는지 모른다. 대담해 보이는 가나에가 오히려 보수적일 수도 있다. - P260

"어제 여기에 도착해서 주더군요. 자기도 같은 진주를 사용한 반지를 낄 테니까 저도 넥타이핀을 하라면서요. 받고 싶지 않았지만 옥신각신하다가 괜히 다른 사람들 눈에 펼까 싶어서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좋은 유품을 받은 셈이네요."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됐죠. 아이러니한 얘기지만." - P261

"부인께서도 그렇게 생각하셨군요. 실은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유카가 저를 동반자살 사건의 범인이라고 생각한게 아닐까 하고요."
"나오유키 씨도.………"
깜짝 놀랐다. 그러나 나오유키의 뛰어난 통찰력을 생각하면 어려운 일도 아니다. - P262

"저는 정말 동반자살 사건에 대해 아무것도 모릅니다. 신에게 맹세할 수 있습니다. 유카가 살해당한 건에 대해서도 전혀 모릅니다."
"알고 있답니다." 나는 가슴 앞에서 손을 흔들었다. "어젯밤 나오유키 씨가 방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은다케히코 씨가 증명해 주셨잖아요." - P263

"사건 직후, 유카가 딱 한 번 묘한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화재가 나기 전에 어디 갔었어요?‘라고 분명히 그렇게 물었습니다. 제가 아무 데도 안 가고 그냥 잤다고 했더니 그럼 기분 탓인가,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더군요." - P263

"나오유키 씨는 유카 양을 죽인 범인이 외부인이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습니까?"
"물론입니다."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유카의 행동에 복잡한 사정이 얽혀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집안사람 중에는 범인이 없다고・・・・・・ 그럴 거라고 믿습니다." - P264

긴 복도를 둘이서 나란히 걸었다. ‘D‘동을 지날 때 나오유키가 말했다.
"생각보다 정정하시네요." - P264

"나이 드신 분들한테 이 복도가 너무 길어서 힘들다는 불평을 많이 들었는데, 부인은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아서요.
게다가 본관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방에 묵으시고." - P265

"죄송합니다. 하지만 내일은 분명히 해결될 겁니다. 제 생각에 범인은 아직 주변에 숨어 있는 것 같습니다. 일본 경찰•은 우수하니까 분명히 찾아낼 겁니다. 내일은 꼭." - P265

유카는 왜 나오유키가 동반자살 사건의 범인이라고 생각했을까? 결과적으로는 오해였지만 어떤 이유가 있기 때문에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도대체 언제부터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했을까?
나오유키의 말 중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유카가 그에게물었다고 했다. 화재가 나기 전에 어디 갔었어요..…………. - P267

순간 아, 하는 소리가 나도 모르게 입에서 새어나왔다. 가나에와 유카의 사소한 말다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화재가 나기 전에 무슨 소리를 들었다는 증언은 없었느냐고 유카와 가나에에게 물었다. 그 물음에 대답한 것은 다케히코였다. 그는 ‘A-1‘ 방에서 소리가 났다 해도 그걸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요코뿐일 거라고 했다. - P268

동반자살 사건이 일어난 날 밤, 유카는 나오유키의 방에서무슨 소리가 나는 걸 들었던 것이다. 그러고보니 가나에가이런 말도 했다. 자고 있던 것에 비하면 방에서 굉장히 빨리나온 거네. 내가 방에서 뛰쳐나왔을 때 언니는 이미 본관 쪽으로 뛰어가고 있었거든. - P268

시간이 흘렀지만 유카는 그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어젯밤 동반자살 사건이 위장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얘기가나왔을 때 맨 먼저 나오유키가 범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떠올랐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 정도의 확신은 없었을지도모른다. 다만 만일을 생각해서 자기 손으로 유서를 훔쳐내 그내용을 확인하려고 했던 게 아닐까? - P269

어젯밤 나는 나오유키의 방문이 열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다케히코의 방문에서 난 소리였다. 그래서 동반자살 사건이 일어난 날 밤 유카도 나와 똑같은 착각을 한 게 아닐까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그날 밤, 그 방에 묵은 사람은 없었다. - P270

N, S, VI. 그 어느 것도 딱 와 닿지 않았다. 그 순간, 어쩌면완성된 글자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글자를 쓰는 도중에 유카의 숨이 멎었을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w‘라든가 또 다른 글자는・・・・・・.
몸을 뒤척이다 살해된 유카처럼 엎드린 자세가 되었다. 그리고 왼손으로 글자를 쓰려고 했다. - P271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설마 그 사람이 ・・・・・・ 아냐.
그런 생각을 못 할 것도 없다.
만약 그 사람이 범인이라면 어떨까? 몇 가지 의문이 풀릴까? 예를 들면 범행 후에 ‘C-2‘ 방으로 도망간 이유를 설명할수도 있을까? - P271

손가락이 멎은 것은 연못을 그리고 있을 때였다. 나는 깜짝놀라 몸을 일으켰다.
그래, 그렇게 된 거였어.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더니 선명한 광경이 떠올랐다. - P272

12시가 되기 전에 전화를 걸었다. 긴히 할 말이 있으니 새벽 2시에 여자 욕탕에서 만나자고 엄청난 모험이었다. 만약상대가 범인이 아니라면 내 행동을 수상하게 여기고 경감에게 말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혹은 경찰이 모든 전화를 도청할 위험성도 있다. 어느 경우든지 야자키 경감은 부하들을 이곳으로 보내 나를 체포한 뒤 심문하려고 할 것이다. 그 순간 내 모든 계획은 물거품이 된다. - P273

나는 반드시 올 거라고 믿는다. 범인이라면 분명히 올 것이다.
다시 한번 시계를 보았다. 새벽 2시 1분...…그때 문에서 달칵, 하는 소리가 났다. 내눈앞에서 손잡이가 돌아갔다. 그리고 문이 밖으로 천천히 열렸다.
"기쿠요 부인?" - P274

"범인이 누군지 알았습니다." 나는 말을 계속 이었다. "그사람도 당신의 설득이라면 듣지 않을까 ・・・・・・ 그런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부탁을 하는 겁니다."
".………… 도대체 누구라고 생각하시는데요?"
"그 사람은..….…." 나는 주저하는 척하고 다시 상대의 눈을보며 말했다. "후지모리 요코 씨입니다. 틀림없습니다." - P275

"저녁때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보세요, 욕조 안에 뭔가 떨어져 있죠?"
나는 욕조 옆에 서서 식은 물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상대도 한 발짝 앞으로 다가왔다.
"어디요?" - P275

욕조에서 기어오르려고 하는 상대를 위에서 내리눌렀다.
노답지 않은 기민한 동작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아이스피크로 두 번째 공격을 했다. 이번에는 가슴을 찔렀다. 상대가 소리를 질렀지만 밖에서 들릴 만큼 크지는 않았다. 상처부위에서 흐른 피가 욕조에 퍼져나갔다.
"왜......"
피로 물든 욕조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고바야시 마호가 나에게 물었다. - P276

이치하라 집안사람들은 전부 각자의 방에 있었을 것이다. 남는 사람은 고바야시 마호밖에 없다. 그렇다면 왜 마호는 ‘C-2‘ 방에 들어갔을까?
그건 도주 경로를 단축하기 위해서다. - P276

마호가 자기 방으로 돌아가려면 ‘D‘과 본관을 지나야만한다. 마호는 그 방법이 위험할 뿐만 아니라 시간도 너무 많이 걸린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은 정원을 가로지르는 것이었다. - P277

이런 추리를 이끌어 낸 동기는 유카의 다잉 메시지였다. ‘I‘
은 무슨 글자였을까? 죽은 유카와 같은 자세를 하고 있다가 그걸 깨달았다. 엎드려서 왼손으로 글자를 쓰게 되면 보통과는 반대로 손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움직이는 게 편하다. 유카가 죽기 직전 쓰고 싶었던 것은 W도 아니고 N도 아니다.
‘M‘이라는 글자였다. MAHO의 M.
범인은 마호였다. - P277

"왜 나한테 죽어야 하는지 짐작이 안 가겠지? 하지만 내가누구인지 알면 바로 알게 될 거야."
그렇게 말하고 마호 쪽으로 얼굴을 가져갔다.
"모,
"모르・・・・・・겠어요. 누구・・・・・・죠?" 숨을 헐떡이면서 마호가 물었다. - P278

"설・・・・・・마, 죽은 .....… 줄......."
"하지만 이렇게 살아 있어. 그리고 당신 덕분에 이렇게 상처도 남아 있지."
마호는 믿을 수 없다는 눈빛이었다. - P278

자백하면 살려줄 거라고 생각했는지 마호는 열심히 입을움직였다. 덕분에 상황을 알게 되었다. 유카는 자기 방에 들어가자마자 마호에게 기습을 당한 것이다. 마호는 유카를 이불에 눕혀 자고 있다가 당한 것처럼 꾸몄을 것이다. 그러나유카는 바로 죽지 않았다. 마호가 나가고 나서 마지막 힘을다해 다잉 메시지를 남겼다.
"그렇게 된 거였구나. 잘 알았어." - P279

"이제 편하게 해줄게."
나는 욕조 안으로 손을 넣어 마호의 가슴에 꽂혀 있는 아이스피크를 빼냈다. 뭔가가 새어나오는 듯한 소리가 났고 마호는 눈을 크게 떴다. - P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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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길한 바람처럼 야자키 경감 일행이 로비에 나타난 것은9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나는 주전자에 물을 받아 방으로 돌아가려던 참이었다. 사실은 주방에서 흉기가 될 만한 것을 훔칠 생각이었지만 고바야시 마호의 눈도 있고 해서 성공하지 못했던 것이다. - P240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십시오. 다케히코 씨의이버시와 관련이 있는 것 같아 그렇게 말씀드린 것뿐입니다."
말투는 정중했지만 타협의 여지가 없는 것처럼 들렸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요. 왜 다케히코의 프라이버시와 연관이 있다는 겁니까?"소스케도 지지 않고 대꾸했다. - P241

"유카 씨의 방 유리창 바깥쪽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누군가가 닦아낸 흔적이 있습니다만, 다케히코 씨의 지문만 겨우 확인되었습니다. 그 점에 대해 설명해 주셨으면 합니다." - P241

경감의 메마른 목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낮에 모든 분께어제 정원에 나갔느냐는 질문을 했었습니다. 그때 다케히코씨는 나가지 않았다고 대답했죠."
소스케는 숨을 들이마신 채 내쉬는 것을 잊은 듯했다.
"알겠습니다." 이윽고 다케히코의 입에서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설명드리겠습니다. 어디 다른 곳에서.." - P242

나오유키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침묵의 의미를 생각했다. 경찰이 자신 이외의 인물에게 의심을 품고 있다는 걸 알고 마음을 놓은건지, 순수하게 조카를 걱정하는건지, 표정만 봐서는 알 수가 없었다. - P242

"저한테 말입니까예, 알겠습니다."
?
그다지 의외도 아니라는 듯이 그는 다카노를 따라갔다. 그태연한 모습에서 범인이라는 느낌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 정말로 그가 범인일까? 나는 다시 헷갈리기 시작했다. - P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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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모나리자>는 어떤 재질의 목판에 그린 것일까?

●●● 포플러 나무

포플러 나무로 만든 판에 당시 발달했던 유화 물감을 사용해 그렸다.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이 작품은 균열이 심하기 때문에 유리 케이스안에 넣어 습도와 온도를 조절함으로써 손상을 방지하도록 했다. - P66

113 <모나리자>는 모호한 윤곽선과 미묘한 명암으로 묘사되었다. 이 기법의 이름은 무엇일까?

●●● 스푸마토

스푸마토는 이탈리아어로 ‘연기 같은‘ 또는 ‘안개가 끼어 있는" 이라는 뜻이다. 요컨대 농담을 주어 흐릿하게 표현하는 번짐법이라고 할 수 있다. 레오나르도는 대상에 음영을 주어그린 후, 얇게 겹쳐 칠해 윤곽선을 희미하게 만들거나 손가락으로 문질러 윤곽선의 붓자국이 남지 않도록 했다. 이런 기법을 통해 레오나르도는 인물의 표정에 깊고 신비로운 느낌을주었고 인물의 내면까지 연상시키는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또한 배경에는 대기 원근법을사용했다. - P66

253 <화가의 작업실>은 제1회 파리 만국박람회(1855)의 살롱부터출품을 거부당했다. 그 결과 쿠르베가 취한 수단은 무엇일까?

●●●개인전 개최

스스로를 영웅적인 화가로 자부하고 있던 쿠르베는 이미 주목받고 있던 두 작품으로 절대적인 자신감을 얻었기 때문에 살롱 측의 거부가 자존심에 큰 상처가 되었음이 분명하다. 그래서 쿠르베는 만국박람회장 옆에 작은 건물을 짓고 그곳에서 두 작품을 전시했다. 카탈로그에는 "나의 목적은 살아 있는 예술을 만드는 것이다"라는 유명한 사실주의 선언을 게재했다. 이 전시는 미술사상 최초의 개인전으로 알려져 있다. - P146

255 사실주의의 반항아 쿠르베가한 유명한 말은 무엇일까?

●●●"나는 눈에 보이는 것만 그린다."

어떤 사람이 쿠르베에게 천사 그림을 의뢰하자 그는 "천사가 눈에 보인다면 데리고 오시죠"
라고 말했다고 한다. 또한 그는 "나 이외에 진정한 화가는 없다" 라고 말해 다른 화가들은 그저 그림을 배우는 학생에 지나지 않는다고 단정적으로 말하곤 했다. - P147

281 그림의 구도에서 그 영향력이 잘 드러나는 드가의 취미는 무엇일까?

●●●사진

아마추어 사진가이기도 했던 드가는 순간의 움직임을 찍어내는 사진의 특성을 그림의 구도에도 반영하고자 했다. 이것이 바로 드가의 그림이 스냅사진과 비슷하다고 이야기되는 이유이다. 보통 화면의 가운데 공간에는 인물이 그려져 있는데 드가는이 공간을 그대로 비워둔 점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 P162

344 찬반양론을 불러일으켰던 로댕의 <청동 시대>에 대해 당시 어떤 비판이 있었을까?

●●● 인체를 석고로 뜬 것 같다.


1877년에 발표된 이 작품은 매우 사실적이어서 인체를 직접 석고로 뜬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을 받을 정도였다. 로댕이 점토 등의 무른 재료로 살을 붙여나가는 소조 방법을 사용했기 때문에 이렇게 사실적인 표현이 가능했던 것이다. - P196

365 걸작 <절규>는 뭉크의 실제 체험을 그린 것이라는 이야기가있다. 그 체험은 무엇일까?

●●●친구 두 명과 오슬로의 거리를 산책하던 뭉크는 돌연 이 그림에 그린 것 같은 광경을 보고 전율을 느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다시 말해 이 그림의 모델은 뭉크 본인이며, 그는이러한 공포 체험을 담은 같은 구도의 그림을 몇 점 더 남겼다. - P209

378 피카소의 첫 번째 스승은 누구일까?

●●●아버지

미술대학의 교수였던 피카소의 아버지는 피카소가 다섯 살 정도 되었을 때부터 디자인을가르치기 시작했다고 한다. 피카소가 열 살 무렵에 그린 스케치를 보고 그 뛰어난 재능에 놀란 아버지는 그림 도구를 모두 아들에게 주며 자신은 그림을 그만두었다는 일화도 있다. 한편 피카소는 15~18세 무렵에 자신이 "라파엘로처럼 그릴 수 있다" 라고 말했다고 한다. - P218

387 독립미술전에서 <샘>의 출품을 거부하자 익명으로 항의문을 쓴 사람은 누구일까?

●●● 뒤샹 자신

항의문에는 "머트 씨-뒤샹은 작품에 R. Matt라는 가명으로 사인했다-가 <샘>을 자신의 손으로 제작했는가에 대한 진위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가 변기를 선택했다는 점이다"라고 써 있었다. 이 글은 뒤샹 본인이 쓴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결국 변기를 <샘>으로 선택한 뒤샹의 예술은 누구나 출품이 가능했던 독립미술전에서조차 거부를 당했다. - P222

393 마그리트가 ‘길 잃은 기수‘ 연작과 <이카루스의 유년 시대> 등의 작품에서 배경에 항상 그려 넣었던 사물은 무엇일까?

●●●장식적인 난간 기둥

1926년에 그린 <길 잃은 기수>는 마그리트 자신이 최초의 초현실주의 작품이라고 여겼던 그림이다. 이 작품에는 음표가 그려진 장식적인 기둥 5개가 배치되어있다. 또한 1960년에 제작한 <이카루스의 유년 시대>에도 같은 형태의 흰색 기둥 하나가 그려져 있다. - P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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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 다락방에 들어간 게 다섯 살 때였는데 일곱 살이 다 되어서야 그곳에서 나왔습니다. 오래전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긴 하지만 인상 깊었던 몇 가지는 생각납니다. 어머니와 함께 지리에 관한 게임을 하곤 했는데, 가령 내가 태어난 도시인 졸로치우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어떻게 갈 수 있는지 물어보셨어요. 그러면 어떤 바다를 건너고 어느 항구를 거쳐야 하는지 일일이 짚어가면서 대답해야 했죠. 콩이 담긴 자루를 베개 대용으로 썼던 기억도 납니다. - P15

교수님은 1949년에 미국으로 이주하셨고 1981년에 ‘화학반응 경로에 관한 이론‘으로 후쿠이 겐이치와 공동으로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셨습니다. 그리고 2006년에는 교수님의 고향에 홀로코스트 기념비를 건립하는 데 기여하셨습니다.  - P16

호프만 교수님은 일반 대중을 위한 과학책과 희곡을 발표하신 작가이기도 합니다. 삶을 돌이켜볼 때 교수님의 첫사랑은 과학과 예술 중 어느 쪽이었을까요?

프리모 레비는 훌륭한 작가였죠. 내 첫사랑은 과학이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으로 과학의 경이로움을 접했을 무렵에는아직 예술과 시를 이해하지 못했고, 예술과 시가 인간의 정신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을 만큼 성숙하지 못했지요. - P17

과학과 예술의 경계는 어디일까요?

그 경계는 결코 명확하지 않습니다. 과학과 예술은 창조의 본질을 공유합니다. 그럼요, 과학도 단지 발견이 아니라 창조에 관한 학문입니다. 과학과 예술은 둘다 정교한 솜씨를 가치 있게 여기고 서술이나 강도의 경제성을 중시합니다.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비슷한 미학적 원칙을 공유합니다. - P17

만약 주기율표에서 원소를 하나 골라서 그 원소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어떤 원소를 택하시겠습니까? 그리고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으신가요?


규소를 고를 것 같습니다. 같기도 하고 같지 않기도 한 것을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이기 때문입니다. - P18

규소는 화학적 성질 면에서 탄소와 유사합니다. 그런데 이와 동시에 완전히 다르기도 합니다. 이산화탄소는 꼭 필요한 기체인반면에 이산화규소는 석영입니다. - P19

화학의 아름다움과 아름다움의 화학, 어느 쪽을 정의하기가 더쉬울까요?

아름다움에 화학이 존재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여배우를 더욱 아름답게 꾸며주는 화장품에 어떤 성분이 들어가는지를 가리키는 게 아니라면요. 아마도 화학의 아름다움이 더 쉬울 것 같습니다. - P21

과학 분야에서 노벨상은 결코 깜짝 놀랄 만한 의외의 일이 아닙니다. 물론 놀라운 일이기는 하지만 아마도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유 때문은 아닐 것입니다. 과학계에는 논문을 통해서 훌륭한 성과를 인정하고 승인하는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습니다. 따라서 의외의 깜짝 수상 같은 것은 없습니다. 연구에 관한 논문을발표하면 1년 안에 학계에서 반응이 옵니다. 노벨상을 받을 만큼 중요한 연구 성과라는 사실을 알게 되지요. - P22

보통 스웨덴의 신문사로 수상 소식이 먼저 흘러나와서 수상자에게 연락이 오는데, 후쿠이 겐이치와 내가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된 해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나의 동료인 로버트 번스우드워드가 살아 있었다면 분명히 공동 수상자가 되었을 텐데, 안타깝게도 우리가 노벨상을 수상하기 바로 2년 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쩌면 호프만이라는 성을 가진 다른 사람에게 연락했을지도 모르지요. - P23

교수님은 미래 세대의 과학자들에게 어떤 조언을 건네고 싶으신가요?

젊은 과학자들에게는 과학에만 지나치게 몰두하지는 말라는 조언을 하고 싶습니다. 과학에 마음이 이끌리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절제하지 않는다면 과학에 매몰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 P23

아, 한 가지 덧붙이자면 여건이 다소 여의치 않더라도 글을 쓰고 목소리를 낼 기회를 결코 놓치지 않길 바랍니다. 오로지 두뇌에만 의존해서 잘해나갈 수 있는 사람들은 0.5퍼센트에 불과합니다. 그 외의 사람들은 가르치고 설명하고 글을 쓰고 목소리를 내서 자신의 주장이 타당하다는 것을 다른 이들에게 설득해야 합니다. - P24

인공 대 자연, 간단함 대 복잡함, 정체 상태 대 역동성. 오늘날의 화학과 미래의 화학은 이 세 가지 대립항과 어떤 연관성이있을까요? 그리고 이 세 가지를 어떻게 다룰까요?

앞으로도 화학은 자연과 비자연의 경계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뒤섞어버릴 것입니다. 더욱 간단해지지도 않을 겁니다. (정치인들을 비롯해서) 세상이 단순해지기를 바라는 공상가들이나 그런 생각을 하겠지요. 그리고 우리는 미시적인 측면에서 화학 반응의 세부 사항을 알 수 있게 될 겁니다. - P24

이 책에서는 앞으로 과학과 관련된 여러 가지 주제를 다룰 예정입니다. ‘무엇‘ 뿐만이 아니라 ‘어떻게‘에 관해서도 논의할 생각입니다.

차기의 돌파구는 전 세계의 젊은 사람들에게서 비롯될 것입니다. 국가와 지역을 막론하고 자신의 분야에서 세밀하고 치열하게 연구하며, 동시에 다른 모든 것을 최대한 접하려 하는 사람들말입니다. - P26

하지만 ・・・・・・ 그들이 더욱 노력해야 할 부분은 인생의 도덕적, 사회적, 예술적 측면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교육만으로는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화학은 쉬워요. 인간답게 사는 것이 어렵죠. - P27

화학은 쉽다,
인간답게 사는 것이 어렵다

로알드 호프만
Roald Hoffmann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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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스의 규칙 중에는 무의미한 게임이 영원히 지속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불명료한 규칙들도 있다. 동역학에서 처음 나온 ‘삼중 반복없는 tripleless‘ 열의 개념은 그런 불명료한 규칙들을 바꾸려는 어느 합당한 제안도 목적을 이루지 못함을 보여준다. 실제로 그 제안은 어떤 졸도 움직이지 않으면서 게임이 영원히 지속하는 것을 허용한다. - P88

체스를 두는 사람은 누구나 알지만, 때때로 체스게임은 어느 쪽도 이길 가망이 없고 어떤 유의미한 일이 일어날수 없는데도 양쪽이 비겼다고 동의하지 않는 한 게임을 끝낼 뾰족한 방법이 없는 상황에 빠져든다. - P89

얼마 전에 나온 한 가지 제안은, 동일한 행마들의 열이 동일한 배치에서 세 번 연달아 반복되면 비긴 게임으로 판정하자는 것이다. (동일한 배치가 세 번 반복되면 비겼다고 선언할 수 있다는 표준적인 규칙과 혼동하지 마시라. 이 제안에서는 동일 배치의 3회 반복만으로는비겼다는 판정이 내려지지 않는다.) - P90

우리는 이 3회 연속 반복 규칙에 걸리는 게임은 마땅히 종료되어야 한다고 타당하게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이 규칙에 걸리지 않으면서도 무의미한 게임들이 존재할까? - P90

사실 그런 열을 만드는 방법은 다양하게 존재한다. 나는 그런 열을 삼중 반복 없는 열이라고 부를 것이다. 최초의 삼중 반복 없는 열은 마스턴 모스Marston Morse와 구스타브 헤드런드 Gustav Hedlund가 어떤 동역학 문제를 연구하다가 발명했다. -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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