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은 우리의 불완전함에 대한 표시인가‘ ‘정의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 불의를 경험하는 것이 필요한가‘ ‘존 스튜어트 밀의 《논리학 체계》 발췌문을 읽고 평하라‘
질문만 읽어도 머리가 아프겠지만 2018년 과학계열 대학을 지망하는 프랑스 고등학생들이 치른 대입자격시험 ‘바칼로레아‘의 시험문제다. 프랑스는 매년 6월 고등학교 졸업시험이자 대학진학의 관문인 이 시험을치른다. 나폴레옹 시대부터 200년 넘게 이어졌다. - P5
그렇다고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20점 만점에 10점 이상이면 통과한다. 합격률이 80퍼센트에 달한다. 역사적인 사실과 논증 등을 활용해자신의 주장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적어나가는지를 평가하는데, 불합격자에게는 재도전의 기회를 줘 합격률을 높인다. - P6
바칼로레아가 치러지는 날 프랑스 국민들은 ‘올해는 어떤 시험문제가 나올까‘ 궁금해하고 토론회장에는 학자와 시민들이 모여 시험문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 그들은 인문학에서 삶의 답을 찾고 있다. - P6
미국의 경제주간지 <포브스>의 기자 조지 앤더스는 《왜 인문학적 감각인가》라는 저서에서 인문학은 일반인들의 생각과 달리 돈이 되고 고용을 창출하며 혁신의 중심이라고 주장한다. 브루킹스연구소가 통계청 자료를 바탕으로 산출한 미국의 전공별 고소득자를 살펴보니 철학·정치학·역사학 전공자들이 주류를 이뤘다는 것이다. - P7
《퇴근길 인문학 수업》을 펴내게 된 것은 이런 이유들 때문이다. 빡빡한삶에 지친 직장인이나 학생들에게 인문학을 통해 자기성찰과 치유의 기회를 마련해주면서 동시에 인문학에 대한 지적 갈증도 해소하기 위해서다. 근로시간 단축을 계기로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으면 하는 바람도 작용했다. - P7
《퇴근길 인문학 수업》에는 문학·역사·철학은 물론 신화·음악·영화 · 미술 · 경제 · 과학 · 무기 · 심리치유 등 다양한 분야가 포함되어 있다. 사고의 영역을 넓히기 위해서다. 그래서 필진도 다양하다. 문화창작부교수에서부터 정신과전문의, 한문학자, 소설가, 영화평론가, 경제학자, 군사전문기자, 철학자, 중국차 전문가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 P8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글쓰기 기술도 소개했다. 박완서의 《나목》, 카프카의 《변신》,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해부하고, 근대로의 전환기에 영국, 프랑스, 러시아에서 벌어진 혁명이 던지는 의미도 살폈다. 동성애와 사이코패스 같은 논란의 주제도 다뤘다. - P9
다산은 세상을 살아가는 기준을 옳고 그름과 이득과 손해, 네 가지로 구분했다. 가장 좋은 것이 옳은 것을 따르다 이득을 얻는 것이고, 가장 나쁜 것이 그른 것을 쫒다 손해를 보는 것이라 했다. - P178
다산의 육촌 처남인 홍의호는 예조판서로 있었고, 강준흠과 이기경은 다산이 유배에서 풀리는 것을 반대했던 사람들이다. 그들이 마음을 돌린다면 다산이 유배를 끝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게 아들의 생각이었다. 다산은 아들의 제안에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홍의호에게 편지로 용서를 구하는 것이나, 강준흠과 이기경에게 애걸하는 것은 3등급을 구하려다가 도리어 4등급으로 떨어지게 되는 일이라고 말이다. - P179
다산은 이 편지를 쓰고 난 후 2년 뒤에 유배에서 풀려났다. 비겁하지 않은 쪽을 선택해 16년을 버텨온 유배 생활을 2년더 했을 뿐이다. - P180
유배 생활 중 다산이 가장 걱정한 건 자식의 교육이었다. 아들의 교육을 책임져야 할 아버지 다산은 아들을 직접 가르칠수 없다는 점이 늘 마음에 걸렸다. 아버지의 빈자리가 성장하는 아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까 항상 걱정한 것이다. 그래서 늘 독서를 강조하고 부지런함과 검소함을 가르쳤다. 다산이 아들에게 보낸 편지 곳곳에 독서와 근검을 강조하는 문구가 나온다. - P180
다산은 아들이 폐족의 후손이 되어 뜻을 세우는 일을 포기할까 걱정했다. - P181
다산의 아들은 과거에 응시할 수 없게 되었다. 과거로 벼슬길에 나아갈 수 없는 아들에게 청운의 뜻을 꺾지 말라니 무슨 의미인가? 다산은 과거 공부에 대해 근심하지 않고, 벼슬길에 연연하지 않고 진정한 공부를 할 수 있는 걸 다행이라고 했다. 다산은 글을 알면서도 과거 공부로 인해 폐단이 생기는 것보다는 근본을 세우고 학문에 뜻을 두는 걸 다행이라 여겼다. 오히려 공부하기에 더 좋은 기회이니 힘써 참된 공부에 몰입하라는 것이었다. - P181
불의를 보고도 스쳐지나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의롭게 살면 너무 피곤해진다‘는 현실론적 판단을 앞세우기 때문이다. 옳은 것을 따르며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고전이나 위인전에나 나오는 거라고 쉽게 넘기려 한다. - P182
이 글은 다산이 52세인 1813년 8월, 다산초당에 있을 때 제자 윤종심에게 써준 글이다. 가난을 걱정해 옳지 않은 길을 선택할까 걱정하는 마음을 알 수 있다. 가난을 걱정해 자신의 뜻을 꺾지 말라고 당부한다. 많이 가진 것을 부러워할 필요도 없고, 가난을 두려워할 필요없다는 뜻이 담겨 있다. - P183
또 다른 제자 정수칠써준 글에는 "제비 새끼가 알에서 나오에게면 날벌레들이 들판에 가득하며, 하늘이 만물을 낳을 때 먹을 것도 함께주는 법"이라고 말했다. - P183
되돌아보자. 먹고사는 문제를 핑계 삼아 불의를 선택해 누군가를 배반하거나 거짓에 동조한 적은 없는지. 동료의 의로운 투쟁을 방관한 적은없는지. 사소한 이익에 양심을 팔았던 적은 없는지. - P184
세상을 올바르게 살아가는 도리를 강조한 다산은 스스로 세운 원칙을지키며 살았고, 아들과 제자들에게 항상 올바르게 살라 강조했다. - P184
주홍글씨라는 단어는 ‘낙인이 찍혔다‘는 뜻으로 너새니얼 호손의 소설<주홍글씨>에서 비롯된 용어다. 과거 1만 년 동안 의학계에서 주홍글씨로 표현되는 대표적인 질환은 ‘한센병‘이었다. - P215
한센병에 대한 기록은 성경의 <구약>에서도 찾을수 있는데, 기록에 따르면 사회적 격리, 차별과 낙인은 그들에게 당연한 형벌이었다. - P215
문둥 환자는 옷을 찢고 머리를 풀며 윗입술을 가리우고 외치기를 부정하다 부정하다 할 것이요. 병 있는 날 동안은 늘 부정할 것이다. 그가 부정한즉 혼자 살되 진 밖에서 살찌니라.
레위기 13:45-46 - P215
일제강점기에 들어서야 선교사들이 이들의 생활과 치료를 위한 수용시설을 만들었다. 조선총독부는 격리, 수용의 목적으로 이들을 잡아다 섬에 가두었는데, 이 섬이 바로 소록도다. - P216
의학적 주홍글씨는 또 있다. ‘후천성 면역결핍 증후군AIDS, Acquired ImmunoDeficiency Syndrome‘이다. 1980년대 초 미국에서 알려진 AIDS는 1990년대국내에 혐오스럽고 끔찍한 불치병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동성애자들의 문란한 성관계가 원인이며 종교적으로는 인간의 타락에 대한 신의 강력한 단죄이므로 끔찍한 천형이라 하기도 했다. AIDS가 의학의 능력 밖인 불치병이라 한들 병은 병일뿐이다. 그런데 왜 종교적·도덕적 낙인까지 찍어가며 그들을 단죄했을까. - P217
AIDS에 대한 두려움은 의료계에서도 존재했다. 2000년대 초 모 대학병원에 정신과 질환을 앓던 AIDS 환자가 입원하려 하자 정신과 병동의료진들은 환자를 못 받겠다며 입원을 거부했다. 그러나 교수님의 설득으로 환자는 입원할 수 있었다. - P217
현대의학에서는 AIDS를 의학적 관리가 필요한 만성질환으로 인식하고 있으니, 당시의 사건은 하나의 해프닝에 불과했다. - P218
한국 사회에도 정신과 질환에 의학적 주홍글씨가 찍혀 있다. 정신과 질환은 WHO의 ICD-10 (국제질병분류 제10개정)에서 F코드를 달고 있다. 병원 치료를 받을 경우 사보험의 보험금을 지급받으려면 보험회사에서 요구하는 각종 서류와 서류에 적힌 만국 공통의 공식적인 질병명이 필요하다. - P218
일부 사보험에서는 F코드 치료 경력이 있으면 보험 가입을 제한하기도하며, 정신과 치료는 보험금 지급이 아예 안 되는 경우도 많다. - P218
"정신과 기록 때문에 나중에 불이익을 당하지는 않나요?" 나의 답변은 이렇다. "대통령 선거에 나가면 반대 측 진영에서 물고늘어질 수 있습니다. 수배 중인 범죄자가 되어 경찰이 병원에 영장을 들고 오면 어쩔 수 없이 진료기록을 내놓아야 합니다." - P219
그런데 정신병이라는 낙인 탓에 힘들어하는 환자에게 ‘내 가족 중에도 정신과를 다니는 사람이 있다"고 털어놓는 것 이상의 위로는 없었다. - P219
본인이나 가족이 내과와 관련된 병에 걸리면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고주위에서도 문병을 오고 위로도 건넨다. 그러나 정신과 질환은 다르다. ‘미쳤다‘ ‘정신 나갔다‘라는 모욕적인 표현이 정신과 질환에 대한 인식을 대변한다. - P219
조현병환자가 벌인 강남역 살인사건 등 심각한 사회부적응 사건이 터지면 이같은 인식은 더욱 굳어진다. 실제 중증환자를 정신과 병원이나 정신요양원으로 보내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경우가 많다. - P220
그러나 아직도 질병의 분류기준은 의사 중심이다. 의사들 간의 소통과 상호동의를 거친 진단 및 치료 처방의 근거를 찾기 위한 진단분류체계에 머물러 있다는 의미다. 이를테면 우울증 진단은 우울감, 무기력증, 불면등의 증상을 ‘우울증‘이라는 진단 하나로 수렴해버린다. - P220
F코드를 붙이기 싫어하는 환자들은 "네가 치료받아야 할 환자가 아니고 체질적으로 혹은 환경적으로 불리한 부분이 있는 거야" "인간관계에서 좀 어긋나서 그래"라는 조언을 듣고 싶어 한다. 이것이야말로 코드를 붙이기 싫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고객중심적인 접근이다. - P221
▪︎2016년 9월 28일, 입원상의 서류미비로 정신과 전문의 67명이 정신보건법 위반 행위로 입건, 그중 37명이 기소됐다. 그들은 2017년 5월 정신보건법 전면 개정 이후, 2018년 1월 무죄 판결을 받았다. - P221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입니다. ‘ 2017년 9월 작은 클리닉을 오픈하면서 현수막과 대표전화의 자동 응대 첫인사 문구를 고민하다가 선택한 슬로건이다. 정신과 문턱이 낮아지기를 바라는 소박한 바람이 담겨 있다. 병원의 공식 명함에도 노란색 바탕에 이 문구를 크게 적었다. - P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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