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아동기 트라우마:
스테파니 주 구텐베르그와의 대화

3장에서 언급한 여러 가지 사례는 어린아이들과 관련된 것이다. 아이들에게 미치는 트라우마의 영향에 관해서는 지금까지 훌륭한 저서가 상당히 많이 출간되었는데, 이 주제는 우리가 가능한 한 모든관심을 쏟아야 할 그런 분야이기도 하다. - P95

 나는 스테파니에게 트라우마와 인종차별, 학교 폭력이 아동에게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지, 아이들이 팬데믹 상황에서 집 안에 고립되어 있으면서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등에 관해 얘기해보자고 했다. - P96

"성적 학대에 관해서는
그 지속적인 영향이 무시되는 경향이 있죠"


폴: 아동기 때 받은 학대로 인한 트라우마도 있죠.
스: 맞습니다. 특히 성적 학대의 경우 더욱 그렇습니다. 다른트라우마가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폄하하고 싶지는않지만, 아동에 대한 성적 학대는 아마 한 인간에게 벌어질 수 있는 가장 잔인한 일에 속할 겁니다. - P98

스: 특히 성적 학대에 관해서는 그 지속적인 영향이 무시되는경향이 있죠. 예를 들어 아동 포르노 문제가 있다면 사람들은, "그게 뭔 대수라고? 그냥 사진이잖아" 혹은 "그냥 영화야"라고 반응하면서, 마치 포르노 장면이 과거 어느 시점에 벌어진 정적인 것이고 지금은 다 끝난 일이라고 단정합니다. - P99

폴: 제 생각에 수치심은 여기서도 큰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모든 종류의 트라우마는 수치심을 동반하는 경향이있고, 이 때문에 많은 것들이 내면화되고 정당화됩니다.
사람들은 이런 수치심 때문에 그들이 경험하는 세상이 얼마나 끔찍한지 입 밖으로 표현을 안 하죠. - P100

폴: 그리고 무엇보다 성폭력을 당한 책임이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말을 듣는다면, 수치심이 점점 더 쌓이는 거죠. 인간은 성적으로 학대당한 이야기는 당연히 하고 싶어 하지않고 도움을 구하지도 않습니다. - P100

폴: 성적 학대 때문에 생긴 생물학적 변화를 보지 못한다면,
이 역시 우울증, 분노, 약물 남용 같은 문제가 생길 완벽한환경을 조성하는 겁니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문제를 한번 생각해보면, 트라우마 피해자가 찍소리도 못하는상황이 거의 완벽하게 만들어집니다. - P101

"한 아이가 성폭력을 당했다고 평균 여덟 번은 말해야
사람들이 이런 사실을 받아들인다고 합니다"

폴: 트라우마가 심각할수록 수치심도 깊어져 사람들은 트라우마를 감추게 됩니다. 몸에 질환이 생겼을 때와는 다르게 반응하죠. 발진이나 고통은 심해질수록 당사자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도움을 청하려고 하니까요. - P101

폴: 여덟 번이라고요?
스: 맞습니다. 그 상황을 상상해보세요. 한 아이가 대략 여덟번이나 도움을 청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 사회가 성폭력이실제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라는 걸 믿지 않기 때문이죠.
가해자는 바로 이 점을 이용하고, 이 때문에 많은 가해자가 아이들에게 믿음을 주고 접근할 수 있는 성직자와 코치 같은 직업을 택합니다. - P102

"전 세계적으로 볼 때, 우리는 만성적으로
정신건강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했습니다"


폴: 그래서 말인데, 우리에게는 원초적 트라우마와 후속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예컨대 사회에서 믿어주지 않아서 생기는 트라우마 또는 학대를 받았던 기관에 다시 보내져 폭력 사건이 반복되면서 발생하는 트라우마가 있는 거죠.
이런 아이들은 그 어느 곳도 안전한 곳이 없다는 메시지를 받게 돼요. -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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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부

–Rebooting the Standard Cambridge
ENGINE.4.1.2. check...... OK.
-Rebooting the Extended Edinburgh
Language ENGINE.0.1.5 check...... OK. - P34

라자바이 시계탑의 종소리가 천천히 열대의 대기에 퍼져 나가고, 나는 조용히 눈을 떴다.
"존 H. 왓슨, 봄베이, 1878년 9월 15일."
철제 펜촉이 종이를 긁는 작은 소리가 내 목소리에 겹쳐졌다. - P35

"언캐니 밸리"
내가 중얼거리자 프라이데이는 고개를 이쪽으로 향한채 기계적으로 펜을 움직였다. 내가 하는 말을 노트에 일언일구 똑같이 받아 적었다. 매끄러우면서도 어색한 움직임은 멜첼의 체스 두는 자동인형을 현대에 재현시킨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산 자와 비슷하게 만들려고 하면 할수록 죽은 이의 움직임이 더욱 기분 나빠지는 현상은 ‘언캐니 밸리‘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 P36

월싱엄 등록 명칭 Noble_Savage_007, 코드 식별명 프라이데이. 텅 빈 뇌에 운동 제어용 범용 캠브리지 엔진과 확장 에든버러 언어 엔진이 든 최신예 이중 기관 실험체이다. - P37

나의 종이자 여왕 폐하의 소유물. 서류상으로는 월싱엄의 연구 개발부 ‘Q 부문‘이 대여한 비품이다. 가짜 영혼이입력된 시체는 공허한 눈동자로 이쪽 세계를 바라보며 조용히 나의 명령을 기다린다. - P37

말없는 그의 머릿속에는 내가 대영 박물관 도서 열람실에 다니며 모은 자전과 사전, 백과사전 종류가 모조리 인스톨되어 있다. 언어 자료(corpus)가 탑재된 시체(corpse)가육체의 병단(corpus)에 소속되어 일한다. 이건 무슨 말장난이다. - P37

런던 빅토리아 역에서 봄베이 빅토리아 종착역으로, 간단한 이동이다. 도버 해협, 비스케이 만, 대서양, 헤라클레스의 기둥, 지중해, 수에즈 운하, 홍해, 아라비아 해 그림책을 넘기듯이 이국의 풍경이 휙휙 바뀌는 여로는 1개월만에 끝났다.
금세기도 막바지에 가까워지며 지구는 지독히도 작아졌다. - P39

창밖에서는 수동 사이렌과 마차의 경적이 어지럽게 울려 퍼지며 사람들의 비명 소리를 위압했다. 피투성이가 된부상자가 들것에 실려 운반되는 광경이 내 눈에는 신기하게도 조이트로프-원통 안에 연속된 이미지를 붙이고 빠르게 회전시켜 정지 화상이 움직이는 듯한 착각을 주는 시각 장치-처럼 비쳤다.
여행의 속도는 여행의 감각을 빼앗는다. 머리는 움직이고 있을 텐데 실감이 이동 속도보다 뒤쳐져 몸이 늦게 적응했다. 머리로는 이해해도 몸은 아직 스스로를 런던에 있는 의학도 존 왓슨이라고 생각하고 싶어 했다. - P40

페샤와르 야전군 제3여단 제81북부 랭커셔 연대 제2연금중대 소속, 봄베이 성 군의관이라는 다소 불명확한 직함이 지금 나의 형식상 신분이다. - P41

나는 런던에서 본 《일러스트레이티드 런던 뉴스》의 기사를 떠올렸다.
"그랜트라면 율리시스 그랜트 말입니까."
리튼은 대담한 웃음을 띠었다. - P42

"그러다가 봄베이에 도착하자마자 테러의 표적이 되었다?"
리튼은 파리라도 쫓듯이 손을 흔들었다.
"이 땅에서 요인 테러는 일상다반사야. 나도 일주일에세 번은 죽을 고비를 넘겨. 덕분에 이런 걸 달고 다녀야 하니까 정말 귀찮지 뭔가."
그는 어깨 너머로 육군 프랑켄슈타인을 가리키며 말했다. - P43

"유니버설 무역은 본 작전에 있어 당신의 정보 은폐를의심하고 있습니다. 저는 아프가니스탄 오지에서 잠입 임무를 수행함에 있어 당신에게 충분한 정보를 개시시킬 권한을......"
"와 보게."
차가운 눈으로 서장을 곁눈질한 리튼은 이어지는 말을무시하고 등을 돌리더니 어안이 벙벙해진 나를 놔두고 걸음을 옮겼다. - P44

"M은 잘 지내나?"
리튼은 호위가 뒤쳐지는 것에도 개의치 않고 빠르게 복도를 걸어가며 큰 소리로 물었다. 갑자기 튀어나온 M의 이름에 눈살을 찌푸린 내가 채 대답을 하기도 전에 말이 이어졌다. - P45

"다음 에이전트를 또 기다린다니요?"
"자네 전임자라고 해야 하나, 날아가 버렸거든. 페샤와르에 도착하기도 전에 생긴 것 같지 않게 멍청한 남자였나 봐." 리튼은 아무렇지 않게 웃어넘겼지만 에이전트에관한 정보가 누설된 곳은 바로 이 남자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머리를 스쳤다. 리튼이 갑자기 발을 멈추었다. 덕분에나는 그의 등에 부딪칠 뻔했다. - P46

"왓슨. 러시아-터키 전쟁 때, 불가리아의 플레브나 요새에서 러시아군이 2만이 넘는 손해를 낸 이유를 말해 보게."
"신형 네크로웨어가 제공되어 시병이 활약한 영향이라고 들었는데요."
나는 반 헬싱 교수의 점잖은 얼굴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 P48

"전선은 이미 한계에 와 있었고 유럽 각국의 방해도 꽤심했습니다. 기회라고 보기에 좋은 타이밍......."
"좋아."
리튼은 아까와 같은 말로 내 말을 끊었다.
"자네가 노틸러스급 정보에 접근할 권한이 없다는 건 확인했네. 지중해에 대한 우리 노틸러스급 세 척의 파견은 제아무리 러시아 차르라도 무시하지 못해. 설령 모습은 보이지 않더라도 말일세. M도 사람이 나쁘군. 이 정도 인물을파견하다니. 그럼 ‘크리미아의 망령‘에 대해서는 뭘 아나."
노틸러스급이라는 게 뭔지 묻고 싶은 것을 참으면서, 나는 신기하게도 리튼에게 화가 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고개를 갸웃했다. - P49

"흑해 건너편, 트란실바니아에 잠복하며 죽은 자들에의한 자치구를 건설하려고 했다네. ‘적극적으로‘ 죽은 자를 ‘생산함으로써, 그 계획을 막아 낸 것이......."
"반 헬싱과 잭 수어드."
"맞아. 월싱엄의 Q 부문은 그때 접수한 대량의 죽은 자관련 기술을 계속 비공개로 두고 있네. 공식 기록에 남지않는 것을 이용해서 트란실바니아 사건은 해결된 게 아니야, 구속한 기술사는 다 말단이었어." - P51

Ш

우리를 안내하듯 가스등에 주루룩 불이 밝혀지며, 흔들리는 빛 속으로 숲을 이룬 채 곧게 뻗은 관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광택 나는 은색 관 표면에 여러 겹으로 비친 불꽃이 요염하게 춤추는 모습은 옻칠을, 뚜껑에 박힌 금색 초승달 모양 금속판은 파도에 부서지는 달빛을 연상시켰다. - P52

관속의 죽은 자에게는 머리와 몸을 가리지 않고 무수한 전극과 죽은 자의 상태를 표시하는 계측 장치가 장착되어 있었다. 여기에도 말이 혼란스러워졌는데, 시체에 있어 바이털사인(Vital Sign)이란 그저 물질의 상태를 나타내는것에 불과했다. 죽은 자의 푸석푸석한 피부 위에는 페인트로 작업의 진행 상태며 각종 표시가 휘갈겨져 있었다. - P53

"현재 우리 대영 제국이 자랑하는 전구 통신망의 통신량 3분의 1은 제어 네크로웨어 갱신과 해석 기관 사이의잡담에 쓰이고 있어. 뭣 때문에 바다 밑바닥에 케이블을깔고 수에즈 중계 시설 방위에 저 많은 병사를 집중시켜둔 건지 모를 정도야. 사람이 아닌 자들의 대화들로 인해통신량은 그냥 늘어나고만 있다고." - P55

시병에게 산 자와 죽은 자의 움직임을 분간시키는 것은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움직임에 대한 인식은 우리 몸에 새겨진 본능이자 지령이므로 손을 댈 필요가 없다. 적과 아군의 구별. 이것은 매우 어렵다. 산 자라면 쉽게 이해할 이 구별이 죽은 자에게는 본질적으로 아무래도 상관없는 사항이기 때문이다. - P56

‘죽어 있는 죽은자(Natural Dead Creature)‘에게는 자기와 상대를 구별하는 기능이 들어 있지 않은 것이다. 무엇이 적이고 무엇이 아군인지를 판별하려면 구체적인 지령이나 네크로웨어에 따른 조정이 필요하다. - P56

암호나 컬러링으로 적과 아군을 식별하는 수도 있지만충분하다고는 하기 힘들다. 목소리를 흉내 내거나 복장을모방하면 끝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산 자도 마찬가지지만 죽은 이에게는 융통성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 P57

연동 제어는 그런 어려움을 경감하기 위해 실험 개발중인 네크로웨어로, 개별적인 죽은 자의 작은 몸짓을 식별 신호로 쓰려는 시도이다. 희미한 팔의 떨림이나 느닷없이 보이는 손가락의 움직임으로 시병 상호간의 식별을 시키자는 것이다. - P58

그것은 죽은 자만 이해할 수 있는 고도로 암호화된 몸짓 언어라고도 할 수 있다. 음성 언어를 쓰지 못하는 죽은자들은 그 몸을 특징적으로 흔들어 일시적인 아이덴티티를 주장한다. 언어라고 부르기에는 일방적인 신호이지만.
연동 제어가 이루어진 시병은 같은 식으로 자신의 지휘관을 알아본다. - P58

케이블의 다른 끝에서는 신호가 펀치 카드에 디코딩되어 방대한 수의 죽은 자에게 덮어쓰기된다.
"한 체의 시병을 완전히 정비하는 방법보다 100체를 한꺼번에 정비할 수 있고 개중 약 80체의 거동에 신뢰를 둘수 있는 노하우가 필요하다네." - P59

묵묵히 관들 사이로 걸어가는 리튼을 따라가자 두 체의육군 프랑켄슈타인이 지키는 벽에 이르렀다. 리튼은 손끝을 움직여 경비를 옆으로 물러나게 한 뒤 상의 주머니에서한 장의 펀치 카드를 꺼내 나에게 건넸다. - P60

 리튼은 그 오른쪽 끝을 가볍게 누른 뒤 나를 향해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나는 저승의 문을 또 하나 지났다.
송장 썩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제까지도 차고 넘칠 만큼 많은 죽은 자들 속에 있었을 텐데 악취가 한층 더 강해진 느낌이었다. - P60

방 안쪽으로는 사람 그림자가 하나 있었다.
정면 벽에 십자가가 달려 있고 거기에 사람이 묶여 있었다. 머리를 숙이고 있는 덕분에 얼굴은 긴 머리에 덮여 보이지 않았다. 쇠붙이로 사정없이 조여진 손목은 검푸르게변색되어 있었다. 언뜻 잠금쇠처럼 보이는 것은 어쩌면 못일지도 몰랐다. 그 손끝에는 검게 변한 강철 손톱이 파묻혀 있었다. 뜯긴 웃옷 사이로 갈색 피부가 엿보였다. 친친감긴 쇠사슬이 단단히 그 몸뚱이를 구속하고 있었다. - P61

크리처는 핏발이 선 눈을 부릅뜨고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리며 마구 몸부림쳤다. 십자가가 삐걱거렸다.
"Vere passum immolatum in cruce prohimine, cujus latusperforatum fluxit aqua et sanguine. (인류를 위해 희생하시어 십자가에 못 박히는 수난을 겪으시고 뚫린 그 옆구리로 피와 물을흘리신 분이시여.)"
리튼의 입에서 굵직한 「찬미가(Ave Verum Corpus)」의 한구절이 흘러나왔다.
"어떤가." - P62

크게 침을 삼키는 나에게 리튼은 못난 제자를 타이르듯이 조용히 말했다.
"기대와는 다른 반응이로군. 이 정도는 당연히 예상했어야지. 자네가 여기서 발견해야 하는 것은 그런 표면적인차이가 아닐세. 과학의 종 왓슨 군."
그것은 틀림없는 비웃음이었다. - P63

얇은 칼날 같은 웃음이 리튼의 입언저리에 떠올랐다.
나는 신음했다.
"여성......."
"그건 그만 됐고."
질렸다는 것 같은 리튼의 말투. 나는 무너질 것 같은 무릎을 지탱하며 의사로서의 힘을 끌어모아 말을 이었다.
"......크리처."
"어째서 자네는 이것을." 나는 여성을 힐끔 쳐다보며 리튼이 하는 말의 의미가 얼른 이해되지 않았다. "크리처라고 생각했나." - P64

희미한 위화감이 나를 덮쳤다.
크리처의 어깨가 움직였다. 팔이 보이지 않는 실에 매인것처럼 들려 올라가서 손가락이 통제를 잃고 제각각 움직였다. 넓적다리가 흔들리고 무릎이 떨리고 혀에 파고드는이빨이 아드득아드득 소리를 냈다. 나는 여성의 형태를 띤육체 내부의 형식을 주시했다. 그 두개골 뒤에 적힌 문자를 응시했다.
매끄럽다.
그 동작은 명백히 죽은 자의 것이었지만 매끄러웠다. - P65

"운동 제어가......"
리튼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전임관의 분석에 따르면 이 부인에게 인스톨되어있는 것은 제식 옥스퍼드 기관이야."
"그것만이 아닐 겁니다."
"이해가 빠르군."
더 빨리 눈치채 주기 바랐는데, 하고 리튼은 야유를 덧붙였다. - P66

"불가리아군 측의 기밀 누설이 있었다는 말입니까."
"기밀 누설되라고 있는 거니까. 네크로웨어를 제공한다는 건 그런 거야. 그것 때문에 네크로웨어가 계속 갱신될 필요가 있는 거고." - P67

"비선형 제어 말이지. 소문은 들었네."
리튼은 몸부림치는 죽은 자에게서 등을 돌렸다.
"이것이."
내 쪽은 보지도 않고 곧게 출구를 향해 걸어가던 그는나와 엇갈리면서 말했다.
"자네가 앞으로 향할 ‘죽은 자의 왕국‘ 구성원일세."
조명이 꺼지고 남은 암흑에 리튼의 목소리와 크리처를휘감은 사슬 소리가 겹쳐졌다.
"자네는 스스로 누가 진짜 적인지를 가늠할 필요가 있어." - P68

III

아프리카 전선에서 일광욕을 즐기던 대영 제국 육군 소속 프레데릭 구스타프 버나비 대위는 문득 휴가를 보내는방법으로 동계 러시아 종횡단을 떠올렸다. 까다로운 첩보는 성미에 맞지 않는 키 2미터, 체중 100킬로그램을 자랑하는 이 근육덩어리 남자는 소문만 무성한 러시아 제국의 실태를 직접 봐 주자고 생각했다. - P69

"소나 말도 얼른 소생시킬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이것이 버나비의 무책임한 의견이었다. 인류의 의학은아직 인간 외의 존재를 소생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 P72

 버나비는 그렇게 말한 뒤 다시 입을열었다.
"자네 머릿속에서는 아프가니스탄도 세계의 분쟁지 중하나일 뿐이겠지만 그 부근은 만물이 존재하는 방식 자체가 달라. 거기 국경이 있다고 생각하나?"
"없나?"
우선 국경이 있고 없고가 논의거리가 될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 P74

"그래도 사람은 있을 거 아냐. 실제로 거기에 사는 삶이있는 한 땅은 환상일 수 없어."
지당하신 말씀이기는 한데, 하고 버나비는 대담하게 웃었다.
"사람이야 있지. 옛날부터 동서 교통의 요충지니까. 많은 제국이 흥했다 망했다 하는 데라고. 중앙아시아는 수많은 제국의 묘지야. 하지만 우리는 거기에 살려고 가는게 아니야. 사람은 지나다녀. 그냥 지나다니는 건 가능해.
거기 있는 동안 그 땅은 현실이야. 하지만 멀어지고 나면상상도 이해도 떠올리는 것조차도 불가능한 그냥 고지대가 되어 버리는 거야. 존재는 개인의 실감이 아니야. 공유된 이야기로서만 존재하지. 서재에 틀어박혀만 있는 M은그 점을 결코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 P75

버나비가 히바한국에서 주워들은 소문에서 내 임무가시작되었다.
‘러시아 제국 군사 고문단의 한 부대가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을 벗어나 파미르 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다. - P75

"러시아인과"
"한패끼리?"
버나비의 소박한 의문에 재치 있는 답변이 돌아왔다.
"너희 서양인이 죽은 자를 동료로 친다면 그렇게 되겠지."
"그런가 죽은 자가 어느 편인지를 따져 봐야 하나"
"죽은 자에 내 편 네 편이 어디 있다고. 모든 죽은 자는알라의 소유다. 아드 민족-코란에서 언급되는 위대한 고대 민족으로, 초기 아랍 부족의 일부로 추정.-의 후예들은 가만히 놔두는 게 제일이야." - P76

버나비의 보고를 받은 월싱엄의 조사 결과, 하나의 이름이 떠올랐다.
알렉세이 표도로비치 카라마조프.
그것이 죽은 자들을 끌고 군사 고문단을 떠나 아프가니스탄 북방에 죽은 자를 신민으로 하는 새로운 왕국을 건설하려는 남자의 이름이었다.  - P77

‘러시아 제국은 그레이트 게임에 새로운 플레이어가 참가하는 것을 환영하지 않는다.‘라는 것이 제3부의 회답이었다. 그 결과 ‘죽은 자의 왕국‘ 건은 월싱엄과 제3부의 공동 작전 형태가 되었다.
제3부 측 공작원과 페샤와르에서 합류해 카라마조프의 왕국으로 향한다. - P78

"신형 시체 폭탄, 이놈이 또 참 요상하거든."
이것이 버나비의 변명이었다. 러시아 측 정보부원과 합류하기 위해 페샤와르로 향한 버나비와 나의 전임자는 카불 강과 인더스 강의 합류 지점, 아톡 요새를 습격한 시체폭탄들 중 하나에 날아갔다. - P79

"죽은 자나 흡혈귀나 마찬가지지."라고 버나비는 반 헬싱 교수가 들으면 기절할지도 모를 호쾌한 말을 날렸다. - P79

표도르 카라마조프 살해 사건 이후 알렉세이의 발자취는 종잡을 수가 없다. 모스크바에 가서 신학교에 들어갔다가 황제 반대파 지하 조직에 활동가로 참가했다는 것이 표면적인 기록 같은데 그런 인물이 군사 고문단의 일원으로카불에 파견되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 체제 측의 밀정으로활동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타당하리라. - P82

‘사망(dead)‘이라는 단어 위에는 월싱엄의 손으로 검은선이 두 줄 그어져 있었다.
죽음을 부정당한 남자.
시베리아 유형지 감독이라는 글자가 벌써 몇 번째인지 내 눈을 끌었다.

알렉세이는 새로운 베드로가 되고 싶어서 죽은 자들을인도하려는 걸까. - P83

나는 기록을 짐 위에 내던졌다.
죽은 자의 왕국. 죽은 자의 낙원. 과거 지상의 낙원이히말라야에 있었다는 자들도 있다고 한다. 신지학자를 칭하며 미국에서 영업 중인 사기꾼 블라바츠키 부인 등이퍼뜨리고 있는 설이었다. - 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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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우선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있겠다.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우선, 시체다. - P9

"미리 말을 해 둬야 할 것 같은데, 오늘 우리가 쓸 유체는 신품이다. 케임브리지에서 일어난 스캔들은 제군들도들어 알고 있겠지만, 런던 대학 의학부에서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날 수 없다. 제군들은 긍지를 가지고 나날이 면학에 힘써 주기 바란다."
"그렇다고 하시는데." - P10

확실히 그 사건에 관하여 못을 박아 둬야겠다고 생각한 교수의 성실함은 우습다면 우스웠다. 그 사건이란 《타임스》 같은 제대로 된 언론지에서부터 1페니짜리 《데일리 텔레그래프》 같은 찌라시까지 온통 떠들썩하게 만든 시체도둑 이야기, 케임브리지의 모 교수가 연구용 시체를 시체도둑으로부터 사들였더라는 스캔들이었다. 시체가 부족한요즘 같은 때, 충분히 이해되는 일이라고 내심 동정하는박사들도 많을 것이다. - P11

웨이크필드가 질리지도 않고 귓속말을 하는 바람에 뭐가, 하고 나는 되물었다.
"미망인 하나가 피카딜리를 걷다가 얼마 전에 죽었을자기 남편이 승합 마차를 몰고 있는 걸 보고 기겁을 했다나봐. 부인은 남편이 무덤 속에 잠들어 있는 줄로만 알고있었다더군."
"죽은 사람의 생전 동의도 없는 상태에서 멋대로 프랑켄슈타인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 말이야?" - P11

"그래. 런던 시장 왈, 오늘날 브리튼의 죽은 이는 안녕과는 거리가 먼 상태에 있단다."
"그 정도로 심각한가."
"런던 경시청에서 통계를 냈는데, 체포된 시체 도둑 숫자가 벌써 작년의 1.6배까지 갔대." - P12

"스펙터라면 과학적인 영역에 있지. 내가 무섭게 생각하는 건 흡혈귀나 늑대 인간 같은 거야."
"그런 면이 있다니 의외인걸."
"웨이크필드!"
교수의 고함 소리에 웨이크필드와 나는 놀라서 얼어붙고 말았다. 교수는 신경질을 내며 단장으로 나와 웨이크필드를 교대로 가리켰다. - P13

"산 자와 죽은 자를 구분 짓는 건 무엇이겠나, 왓슨."
교수의 질문에 나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네, 영소의 유무입니다."
"그래, 영소의 유무. 흔히 말하는 영혼(spirit)이다. 실험에서 확인된 바에 따르면 인간은 사망하면 생전과 비교해체중이 0.75온스, 즉 21그램가량 감소한다. 이것이 이른바 ‘영소의 무게‘라 여겨지고 있다." - P14

"동물 자기 그 자체는 메스머 씨에 대한 경의의 표시로메스머리즘이라고 불리기도 하네. 메스머 씨의 이해에 의하면, 동물 자기는 동물의 체내에 있는 몇 천 개의 채널을흐르는 생명의 흐름이었어. 이는 영소가 주로 인간의 뇌에일어나는 ‘상(相)‘이자 ‘패턴‘이자 ‘현상‘이라는 현대 과학의최신 이해와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어찌 됐든 프랑켄슈타인 씨는 잉골슈타트의 연구실에서 이 ‘동물 자기설‘을 발전시켜 ‘영소‘라는 사고에 도달해, 거기서 이미 ‘영소‘가 빠져나간 육체의 뇌에 ‘의사 영소‘를 덮어쓰기한다는 아이디어에 다다른 거라네." - P18

"동물 자기설은 한 번 부정당했지요?"
내가 질문하자 반 헬싱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잘 알고 있군. 수어드가 참 우수한 학생을 뒀어." - P19

"르클랑셰 전지가 나오면서 전류 확보가 정말 안정적으로 변했지." 전류가 죽은 자에게 거짓된 영혼을 불어넣는동안, 반 헬싱이 감개무량하다는 듯 말했다. "내가 젊었을적에는 전기를 확보하느라 이만저만 난리가 아니었는데.
그런데 왓슨, 이 전지의 원리는 알고 있나."
"양극에 이산화망간과 탄소를 섞은 것, 음극에 아연을쓰고, 염화암모늄 수용액을 전해질로 한 전지입니다." - P20

나와 웨이크핗드를 포함해 여기 있즌 학생들은 모두 시체가 프랑켄화하는 순간을 처음 보는 것이었다. 누군가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이대로는 숨이 막힐것 같았다.
그때, 죽은 자의 눈꺼풀이 번쩍 열렸다.
"우와!"
웨이크필드가 자지러졌다. 죽은 자는 자신이 되살아났다는 사실에 아주 조금 놀란 듯하기도 했다. 그 눈동자는자신이 본래 있어야 마땅한, 어디 있는지 모를 천국인지지옥인지를 바라보느라 공허했다. - P21

100년 전, 18세기 말까지, 인간의 육체는 죽으면 묵시록의 날까지 되살아나는 일이 없다고 여겨져 왔다. 하지만지금은 그렇지 않다. - P21

헬싱이 그렇게 말하자 죽은 자는 해부대에서 내려와 차려 자세로 섰다.
"골상학, 특히 두개골 측정법의 발전으로 뇌 기능 매핑은 상당한 정밀도에 도달했어. 최신 두개골 측정 성과는다시 고분해능 의사 영소 모델링을 도와 보다 자연스러운‘ 프랑켄슈타인의 모션 제어를 가능케 하네. 겉보기나움직임 면에서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의 차이를 없애려면앞으로 한 세기 이상은 더 필요할 테지만 말이야. 걸어." - P22

"비선형 제어 말이지. 소문은 들었네. 꽤나 혐오스러웠다나 봐. 모션은 한없이 산 자에 가깝지만 어딘가가 결정적으로 다르다고・・・・・・ 그래서 기분 나쁘게 느껴지는 것 같다고 동료가 말하더군."
"언캐니 밸리(Uncanny Valley)‘, 즉 ‘불쾌한 골짜기‘ 말이군요."
거기서 강의가 끝났음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두 사람은 문득 정신을 차렸다. - P23

"죽은 자는 저런 식으로 눈을 뜨는 거군."
학생들이 강당을 나가는 가운데, 웨이크필드가 신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시 한 번 보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나는 노트를 가방에 넣고 웃옷 단추를 채운 뒤 강당을 나가려고 했다. - P24

II

"왓슨, 자네는 자신을 애국자라고 생각하나?"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하는 것은 반칙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네, 하고 대답했다.
"저는 여왕 폐하의 신민입니다."
"좋은 마음가짐이야. 그런데 이번 해에 의학부를 졸업하면 입대할 예정이라고 들었는데." - P25

그렇게 대답은 했지만 아프가니스탄에 관해서는 막연한 이미지밖에 없었다. 아시아에 위치한 그 나라와 전쟁이시작되었을 때 바로 병사가 될 생각도 한 적이 있지만, 그건 자신이 배워 온 모든 것을 시궁창에 버리는 셈이다. - P25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임무지. 자네라면해낼 수 있을 걸세."
이윽고 마차는 메릴본을 빠져나가 리젠트파크 가장자리에 위치한 낡은 건물 앞에서 멈췄다. 회색 건물은 주위 건물들에 비해 한층 높았다. 무거워 보이는 문 옆에는 ‘유니버설 무역‘이라고 적힌 동판이 눈에 띄지 않게 박혀 있었다.
"유니버설 무역・・・・・・ 무역 상사입니까…………."
"표면적으로는 자, 들어가게." - P26

에어로크를 닫고 레버를 당기자 펑 하고압축된 공기가 해방되는 맥 빠지는 소리가 났다.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다시 펑 소리가 나자 여성이 기관의 뚜껑을 열고 안에서 통을 꺼냈다. 그리고 통의 뚜껑을 열고 메모 같은 종이를 꺼내 보더니 말했다.
"기다리셨다고 하십니다. 승강기를 타고 8층으로 올라가 주십시오." - P27

조용한 복도는 어째서인지 오싹할 정도로 복잡해서 나는 내가 이 건물 어디쯤에있는 건지도 헷갈리기 시작했다. 처음 온 사람이라면 확실히 미아가 될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물 지도 같은 것은 복도 어디에도 붙어 있지 않았다. 미로 같은 건물이군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반 헬싱 교수는 이렇게 대답했다.
"일부러 그렇게 만든 거라네." - P27

책상에서 일어나 우리를 맞이한 것은 다소 마른 체구의신사였다. 나이는 40대 초반일까.
"잭, 에이브, 오랜만입니다."
신사는 그렇게 말하며 두 교수와 악수를 나눈 뒤 나에게 시선을 향했다.
"이 청년이 새로 그레이트 게임에 참가할 플레이어입니까."
"본인의 의사에 따라서."
수어드가 말했다. - P28

"실례지만 여긴 대체 무슨 일을 하는 곳입니까. 그리고교수님, 이분은 대체 누굽니까. 그레이트 게임이란 건 뭡니까. 저는 여기 왜 불려 온 겁니까." - P29

"나는 ‘M‘. 이곳에서는 M이라고 불리고 있네."
"본명은 뭡니까."
"자네는 아직 몰라도 돼. 그걸 알려면 자격이 필요하거든. 당분간 참아 주게나. 그래서 아까 전 질문 말인데, 자네는 이곳이 어떤 일을 하는 곳일 것 같은가?" - P30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란 건 알아. 미안하게도 생각하네. 하지만 어린애가 아니지 않나. 그렇게 계속 떼를 써서우리를 난처하게 하지 말게."
나는 한숨을 내쉬고 반 헬싱, 잭 수어드, 그리고 M이라고 불러 달라는 신사 세 사람을 빙 둘러본 뒤 대답했다.
"군사 탐정이죠? 정부의 첩보 기관인."
"어째서 그렇게 생각했나" - P30

"동생은 컨설턴트 탐정인데, 가족이라 하는 말이 아니라 능력은 있건만 의뢰가 없어서 고생하고 있지. 몬테규가에 세를 얻어 두고 의뢰를 기다리면서 매일 대영 박물관에서 시간을 때우고 있다네. 뭐, 어쨌든." M은 책상에서내려와 내 옆에 섰다. "우리는 여왕 폐하의 첩보기관이야.
형식상으로는 외무성의 내국 중 하나이지만 수상 직속으로 움직이고 있지. 그 이름은 정부 부내에서도 아는 자가적어."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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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트라우마의 타깃:
연민, 공동체 정신 그리고 인간애

연민과 공동체 정신 그리고 인간애는 인간으로서의 우리의 존재감을 완벽하게 드러내준다는 점에서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 P123

연민과 공동체 정신 그리고 인간애는 우리가 태어나면서 받은권리다. 이들은 세상을 돌아가게 만드는 산소 같은 존재지만, 동시에 트라우마가 우리 가정에 침투할 때 공략하는 첫 번째 급소이기도 하다. - P124

모든 종류의 트라우마는 자기 부정과 수치심을 동반할 수 있으며, 이런 감정은 우리 정서의 변화와 바뀐 기억에서 흘러나온다(이 책 3부에서 트라우마로 인해 일어나는 양상에 관해 추가로 설명하겠다). 자기 부정과 수치심은 트라우마의 영향을 증폭시키며 악순환을 초래하는데, 어느 누구도 사태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상황이 악화될 수 있다. - P124

트라우마는 우리의 역량을 숨기고 부정한다

이 세상에는 연민, 공동체 정신, 인간애가 너무도 부족하지만, 우리 인간에게는, 적어도 태어날 때는 이런 것들이 부족하지 않다. 우리모두에게는 이런 요소를 실현할 역량이 충분하다. 단지 트라우마가 그 실현을 방해하고, 이런 요소를 우습게 보거나, 아니면 우리가 보지 못하도록 이들을 숨기는 것이다. - P129

우리 생활이 이런 식으로 제한되면, 연민, 공동체 정신, 인간애와 관련된 우리의 역량도 줄어든다. 혼란스럽고 두렵고 마치 혼자인 것처럼 느낀다면, 이 요소들 중 그 어떤 것도 넉넉할 수 없다. - P130

우리가 겪는 시련과 트라우마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에게는 연민과 공동체 정신, 인간애와 관련한 역량이 있다. 소수의 몇 사람은 랑고 삼촌처럼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하겠지만, 우리 대부분은 이런저런 트라우마의 유산을 안고 살아간다. - P134

트라우마는 마지막, 결정적인 단어가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단어 중 하나가 ‘창조적이다‘는 의미의 ‘gene-rative‘이다. 이 단어는 가치 있는 것을 창출하거나 긍정적인 방식으로 세상에 이바지한다는 뜻이다. - P135

하지만 트라우마가 우리를 방해하고, 트라우마로 인해 겪는고통이 세상을 보는 렌즈를 바꾸어 놓기 때문에 이런 일을 하기가쉽지 않다. 사실상 트라우마는 우리를 바꾸어 놓고, 아주 많은 경우 우리의 행복감은 물론 다른 사람의 행복감까지 갉아먹으며, 우리를 딴 사람으로 만든다.  - P135

우리는 트라우마가 어떻게 주도권을 잡고 어떻게 숨는지, 또 어떻게 공격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더불어 트라우마를 식별하고,
우리 앞으로 불러내서 그 힘을 누그러뜨리고, 더 나아가 우리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더 이상 공격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도 배울 수 있다. - P136

6
의료 서비스가 트라우마를 대하는 방식

물론 연민, 공동체 정신, 인간애는 단순히 개인이 선택할 문제가아니다.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회 시스템은 우리의 행복을 증진시키기도 하지만 오히려 반대의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는데, 의료 서비스는 더욱 그렇다. - P139

의료 서비스 분야에서는 똑똑하고 고도로 숙련된, 배려심 넘치는 수많은 인력들이 일하고 있지만, 의료 서비스 산업 자체는 그렇지 않다. 사실 지금까지 너무 많은 사람이 경험한 것처럼 의료서비스 시스템은 종종 도움을 받으러 오는 실제 사람들보다 시스템 자체의 이익에 더 신경을 쓰는 것 같다. - P140

트라우마는 물론 정신 건강 영역에 속하지만, 정신 건강 서비스는 거대한 의료 서비스 산업 내에 속하는 세부 시스템에 불과하므로 이런 의료 산업 전반에서 일어나는 문제에 더할 나위 없이 취약하다. 예컨대 정신 건강 서비스는 환자를 카테고리 안에 넣어 분류하는 것을 지나치리만치 중요시한다. - P143

다시 한번 밝혀두지만 내 말은 불완전한 (때때로 해로운) 시스템안에서 그저 최선을 다하는 의사들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의사, 간호사, 치료사를 포함한 의료진들은 환자를 빵 만드는 재료보다 더 정성 들여 대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 P144

 의료진들에게는 겨우 환자의 기본적 요구 사항을 파악할 시간밖에 없는데 이미 다음 환자가 대기하고 있다. 게다가 번거로운 서류 작업은 계속 쌓인다. 특히 의사들에게는 환자를 제대로 파악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지만,
우리는 환자를 제대로 알면 실제로 그들을 치료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 P145

애당초 환자 치료를 목적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미봉책에 의존해 봤자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의료 업계는 환자 만족도 조사에 의존하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 P145

정신 건강 의료진들은 담당하는 문제가 워낙 사적이고 은밀하며 때로 예기치 못한 일을 많이 마주하기 때문에 이런 측면에서 더욱 취약하다. 하지만 이 점이 두려워 몸을 더욱 사린다면, 괄목할만한 치료 성과를 내는 데 필수적인 신뢰 관계 구축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다.  - P147

심리 치료: 이런 테라피스트에게 갈 것

사회의 수많은 문제와 마찬가지로 정신 건강 서비스 역시 복잡한문제에 대해 단순한 해법을 찾는 것이 요즘 트렌드이다. 안타깝게도 이런 해법은 기껏해야 수박 겉핥기식의 효과밖에 없는데도 사람들은 종종 여기에 희망을 건다. - P148

.
공감 사실 테라피스트가 환자의 트라우마를 환자만큼 느껴야 한다는 의무는 없기 때문에 공감이라는 요소는 이들에게서찾아내기 까다로울 수 있다. 테라피스트가 당신에게 공감하는지 살피되, 공감하지 않는 기미도 동시에 찾아보라. 테라피스트가 당신의 얘기를 들을 때 남의 일처럼 듣고 있는가?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사람인가, 아니면 적극적으로 반응하는가? - P149

.
실질적인 문제 이해 

테라피스트가 당신의 실질적인 생활양상에 관심을 가지는가? 그가 당신의 상황을 실질적으로 이해하는가? 예컨대 한 직장을 그만두고 다른 직장에 들어가는 게어떤 의미인지, 또는 삐걱거리는 관계를 끝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는가? 진단받은 증상과 실제 일어난 사건 및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로 인해 나타나는 증상이 다르다는 것을 구분하는가? - P150

트라우마 영향에 대한 인식과 고려

 트라우마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테라피스트가 어디 있겠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이게생소한 일은 아니다. 사람들은 과거에 일어난 트라우마는 그저극복하면 된다는 생각을 의외로 아주 쉽게 하는데, 내 생각에 유명한 몇몇 인지 행동 치료 cognitive behavioral therapy. CBT에서 활용하는 기법 역시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 같다. 트라우마의 근원을 다루지 않으면서 심리적 고통을 다스려준다는 치료 도구는 일단 의심해봐야 한다. 단기적 치료 성과에 집착하는테라피스트는 보험사에서 인정하는 치료 방식에 사로잡혀 있는사람일 수 있다. - P151

우리에게 필요한 의사는 환자를 동족의 피를 나눈 인간으로 보는 사람, 우리와 실제로 호흡하는 사람이다. 사람을 치료하는 일을 업으로 삼은사람이 도와주어야 할 환자를 피해 다니며 환자를 진료할 리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우리 대부분이 인간으로서의 고통이 누그러지기를 염원한다 해도, 정신 건강 의료 서비스를 비롯한 의료 시스템이 이런 염원을 따라가고 지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 P151

"의사 선생, 나는 죽은 사람이에요. 당신은 바쁜 사람이잖아요"

병원에서 수련 중일 때, 자신이 죽었다고 믿는 한 남성 환자를 맡게 되었다. 죽었다는 말이 은유적인 표현이거나 아니면 농담이거나 아니면 절망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 환자는 자신이 죽었고 단지 자신의 육체가 죽음을 따라잡지 못한 거라고 100퍼센트 확신했다.
그는 죽었다는 사람치고는 유달리 남을 배려했다. - P152

코타르 증후군 Cotard‘s syndrome (자신의 신체 일부가 사라졌거나 자신이 죽었다고 믿는 망상의한종류 옮긴이) (실제로 이 증상은 공식 진단명이 있다)의 경우 약물과 심리 요법을 쓰는 것은 종이 뭉치로 탱크에 맞서는 것과 같다. - P153

지독한 외로움이나 우울증으로 인해 여러분이 아무에게도 필요 없다고 느낀 적이 있었는가? 그렇게 느꼈을 때 여러분을 지탱해준 힘은 무엇이었는가? 여러분의 삶이 중요하지 않다고 느낀 적이 있다면, 그런 마음을 돌리려고 다른 사람들은 어떤 도움을 주었는가? - P154

수익의 극대화를 위해 설립된 전문병원에서는 이런 도움을 주지 않는다. 큰 그림을 봐야지 그저 증상 완화에만 초점을 맞추면안 된다는 것이 우리 대부분에게는 상식이지만, 의료 시스템에서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 특히 의료 서비스의 경우, 무엇보다 트라우마를 일으키는 환경이 문제가 되는 상황인데도 여기에 대한 개입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채 환자는 병원만 왔다 갔다 한다. - P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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