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1801년 10월 헤겔G. W. F. Hegel은 우여곡절 끝에 예나 대학에 교수자격 취득 논문을 제출했다. 그 논문이 바로 《행성궤도론 Dissertatio Philosophica de Orbitis Planetarum》이다. 그러나《행성궤도론에 관한 철학적 논구》(이하 《행성궤도론》으로 표기)은 출판되자마자 예기치 못한 복병을 만나 거의 사장될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하게 된다. - P7
물론 《행성궤도론》의 의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이 없지는 않았지만, 이 같은 상황은 20세기가 되어서도 변하지 않았다. 포퍼Karl Popper 같은 적대자들이 헤겔을 야유하고 조롱하기 위해가끔 인용할 뿐 《행성궤도론》을 포함한 헤겔의 자연철학은헤겔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미운 오리새끼‘가 되었다. - P8
〈자연철학〉 영역본을 통해 헤겔에게 영향을 주었던 당대의 자연과학자와 자연과학상의 문헌이 소상하게 밝혀진것이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헤겔이 자연과학에 문외한이었다는 일부의 평가가 근거 없는 것이었음이 밝혀졌다. 1983년 튀빙엔 대학에서 최초로 헤겔의 자연철학에 관한 국제학술회의가 열린 이후 1986년 논문집 <헤겔의 자연철학HegelsPhilosophieder Natur》이 발간되었고, 다음해에는 《헤겔과 자연과학Hegel und die Naturwissenschaften》이 발간되었다. - P8
내가 《행성궤도론》을 처음 대한 것은 1997년이다. 당시 독일에 유학 중이던 한 후배가 노이저의 라틴어 독일어 대역본을 선물로 보내온 것이다. - P9
《행성궤도론》은 헤겔이 자연철학에 관해 작성한 최초의문헌이다. 이제까지 출간된 헤겔의 자연철학 문헌은 몇 가지가 있다. 1801년의 이 논문과 1803년부터 1806년까지 씌어진 《예나 체계초안Jenaer Systementwiürfe》, 《철학백과사전》 제2부 <자연철학>, 2002년에 비로소 출판된 《1819~1820년 베를린 대학에서의 자연철학 강의록 Vorlesungen über die Philosophieder Natur Berlin 1819/1820》 등이 그것이다. - P10
《행성궤도론》은 본론과 보론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론은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반부는 케플러JohannesKepler의 법칙을 수학적으로 공식화한 뉴턴Issac Newton의 중력 법칙을 비판하고 후반부는 케플러의 법칙을 형이상학적으로 재해석한다. - P10
전반부에서 헤겔이 뉴턴을 비판하는 데 있어 핵심은 뉴턴이 물리학과 수학을 혼동하고 있다는 것, 다시 말해 뉴턴이물리학적 규정(질 규정)을 수학적 규정(양 규정)으로 치환한 결과 천박한 기계론 내지 수학주의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 P11
《행성궤도론》이라는 논문의 근본 취지는참된 철학적 입장에서 ‘이성과 자연의 동일성‘ 원리를 행성궤도의 법칙에 적용하는 것이었다. - P11
《행성궤도론》이 번역, 소개됨으로써 국내 헤겔 연구에서미진한 부분으로 남아 있는 자연철학 분야의 연구 분위기가진작되고 활성화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또한 자연을설명하는 데는 과학적 접근 방식만 있는 것이 아니라 철학적접근 방식도 있다는 것을 독자들에게 알리는 기회가 되기를기대한다. 그리고 일반 대중이 섣불리 접근하기 어려운 헤겔철학의 진수를 대중에게 알리는 데 이 번역본이 조금이나마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 P12
서론
자연의 최초의 힘인 무게³와 관련해서 본다면 자연이 만들어낸 지상의 모든 물체는 완전히 자립적인 것은 아니다. 지상의 물체들이 어느 정도 완전하게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우주상을 표현한다고 해도, 전체의 힘에 압도당하고 마침내 소멸한다.⁴ - P12
3 헤겔은 ‘무게‘를 의미하는 라틴어 ‘gravitas‘를 쓰고 있지만, 이제는 이를 ‘중력‘을 의미하는 ‘Schwerkraft‘로 번역했으며, 무라카미 교이치도 마찬가지로 ‘‘으로 번역했다. 헤겔은 gravitas와 중력을의미하는 vis gravitatis를 엄격히 구별해서 사용한다. 뉴턴이 물체가 갖는 무게를 지구의 인력인 중력으로 환원한 이후 무게와 중력을 같은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 상식이 되어 있다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이 점에서 본다면 노이저와 무라카미 교이치 등이 그렇게 옮기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특히 《철학백과사전 <자연철학>에서 헤겔은 무게를 자신의 중심을 제 바깥에 지니고 있는 물체의 실체로 본다. 유한역학에서 모든 물체는 끊임없이자신 바깥에 있는 자신의 중심을 향해 자신을 벗어나려고 노력하며이것이 무게로 표현된다. 그래서 헤겔은 물체의 본질인 무게를 한갓 무게의 힘(중력)과 동일시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잘못이라고 본다. 이에 관해서는 <헤겔 자연철학 1》, $270과 $262. 주1 참조. 헤겔은 《행성궤도론》에서도 셸링의 《나의 철학 체계의 서술》을 마음에두고 셀링이 Schwerkraft라고 표기한 것을 경우에 따라서 gravitas. 고 옮기기도 하고 vis gravitatis라고 옮기기도 한다. 이것은 헤겔이gravitas와 vis gravitatis 의식적으로 구별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주 44 참조. 그래서 옮긴이는 모든 경우에 gravitas(Schwere)는 ‘무게‘로, vis gravitatis (Schwerkraft)는 ‘중력‘으로 옮기고 비슷한 용어인 pondera(Gewicht)는 ‘중량‘으로 옮겼다. - P108
4 예나 시기에 성립된 헤겔의 우주론은 그리스의 우주론,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론에 의하면 천상의 세계야말로 성스러운 신의 세계다. 이 때문에천상의 세계에서 행해지는 천체 운동은 이성적 원리에 바탕을 두고있고 따라서 천체의 운동이야말로 이성의 숭고하고 순수한 표현의 귀감이다. 헤겔은 최초의 체계에서뿐만 아니라 후기 체계에서도 절대적 ‘으로 자유로운 운동으로서의 천체 물리학과 지상의 물체에 관한 지구 물리학을 구분한다(G. W. F. Hegel, G. W. F. Hegel Werke inzwangzig Bänden 9 Enzyklopädie der philosophischen Wissenschaften II DieNaturphilosophie Mit den mündlichen Zusätzen (Frankfurt a. M.: Suhrkamp Verlag, 1986), 82~85쪽 참조. 이 책은 앞으로 ‘헤겔(1986) Bd. 9‘로 표시하겠다). 이 둘은 각각 케플러Johannes Kepler의 천체 운동의 법칙과 갈릴레오Galileo Galilei의 낙하 법칙에 대응한다. 이 두 법칙을 구별함으로써 헤겔은 뉴턴이 폐기한 천상 세계와 지상 세계의 구별을 다시 제기하고 있다. MK. - P108
나는 우선 천문학이 물리학적 측면에서 일반적으로 의거하고 있는 개념을 논할것이다. 다음으로 참된 철학이 태양계의 연관에 관해서, 특히 행성의 궤도에 관해서 확증하고 있는 것들을 서술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대 철학에서 유명한 예를 빌려 철학이 수학적인 비례 관계의 규정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밝히고자 한다.⁸ - P18
8 원래 라틴어로 씌어진 《행성 궤도론》은 목차도 없고 장과 절도 구분되어 있지 않다. 이 단락까지가 아마도 논문의 서론에 해당한다고생각된다. 간략한 요약이지만 논문에서 전개될 전체 내용의 핵심이서술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르면 본론은 3개 항으로 구성되어있다. 그래서 라손Georg Lasson은 라틴어-독일어 대역본에서 본론을 로마 숫자를 사용해 3개 장으로 구분하여 논문의 형식을 갖추도록 체제를 정비했다. 그 구분은 다음과 같다. ① 물리적 천문학이 일반적으로 의거하고 있는 기초 개념에 관한 논구. ② 참된 철학이 이미 확증한 태양계의 연관, 특히 행성의 궤도에 관한 서술 ③ 고대 철학에 근거하여 수학적 비례 관계의 규정에 대해 철학이기여할 수 있다는 예증. 그러나 이 논문의 구성을 더욱 상세히 알고자 한다면 이와 같은 구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따라서 우선 논리 전개에 따라 장과 절을 구별하고 여기에 적절한 소제목을 붙임으로써 목차를 좀 더 완전한 체제로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프랑수아 드 강François de Gandt은 이 점을 고려하여 불어 번역본을 만들었다. 무라카미 교이5의 일어 번역본도 이를 따르고 있다. 이 책에서도 드 강의 불역본을 참조하여 장과 절을 구분하고 각각 소제목을 붙였다. 반면에 볼프강 노이저Wolfgang Neuser의 독일어 번역본은 장과 절이 구분되어 있지 않고 소제목도 없다. - P110
제1장
뉴턴 천문학의 원리에 대한 비판적 논구
1. 물리학·역학·수학
(1) 뉴턴의 오류
물리학의 이 부문(천문학)을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여기서의 문제가 물리학이라기보다는 천체 역학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⁹ 또한 천문학이 보여주는 법칙들이 실제로 자연 그 자체에서 가져오거나 이성에 의해 세운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 근원을 다른 학문, 즉 수학에서 끌어온 것이라는 것도 쉽게 알 수 있다.¹⁰ - P21
9 이 장에서는 천문학이 물리학적 측면에서 일반적으로 의거하고 있는 기초 개념, 구체적으로 말해서 <프린키피아Mathematical Principles ofNarural Philosophy)에서 뉴턴Isaac Newton이 제시하고 있는 역학적 천문학의 원리를 비판적으로 논하고 있다.
10 천체 역학의 법칙들이 수학에서 도출된 것이라는 헤겔의 견해는《철학백과사전》 <자연철학> 서론에서 다시 다루어진다. 거기서 헤겔은 뉴턴의 천체 역학이 수학적 방법에 의한 자연 인식의 정점에서 있는 것이며, 더구나 경험과 개념에 반해 수학적 규정들만을 근거로 삼고 있다고 비판한다(헤겔(1986), Bd.9.9~13쪽 참조). - P110
하지만 뉴턴은 우리 지상의 일부를형성하고 있는 물체에 관해 경험이 보여주는 중력의 크기를천체운동의 크기와 동등하게 다루었으며 더구나 모든 것을 기하학과 미분학이라는 수학적 근거에서 논증했던 것이다.¹⁶ - P22
16 뉴턴 이전에 이미 지상에 있는 물체의 운동 법칙과 천체의 운동법칙은 따로따로 발견되었다. 뉴턴 이전에는 두 법칙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뉴턴이 지구상에서 발견되는 힘의개념을 천체까지 확장시킴으로써 비로소 천상계와 지상계를 동질의 힘과 동질의 운동 법칙이 지배하고 있음을 밝혔다. 뉴턴은 케플러가 주장한 천상계의 역학과 갈릴레오가 발견한 지상계의 역학 사이의 구별을 폐기하고 양자를 통일했던 것이다. 여기서 완성된 뉴틴의 역학적 자연관의 근거가 되고 있는 것이 바로 수학적 방법이다(버나드 코헨, 《코페르니쿠스에서 뉴턴까지 새물리학의 태동》, 조영석 옮김(한승, 1998), 169~212쪽 참조. 이 책은 앞으로 ‘코헨(1998)‘으로 표시하겠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론에 따르면 천상계는 지상계와는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신성한 장소다(주 4 참조). 헤겔은 이 관점을 계승하고 있기 때문에, 천상계가 지상계와 동일한 운동 법칙, 동일한 성질의 중력 법칙에 따른다는 것을 발견한 뉴턴의 업적을 배격하고 있는 것이다. - P114
(2) 수학적 형식주의와 물리적 실재성
이와 같이 물리학과 수학을 결합하기에 앞서 특별히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우리는 순수한 수학적 근거를 물리학적근거와 혼동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하며, 기하학에서 작도(作圖)를 위해 보조 수단으로 사용하는 선을 덮어놓고 힘이나힘의 방향이라고 생각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¹⁷ - P22
17 헤겔이 뉴턴을 비판하는 데 있어 핵심은 뉴턴이 물리학과 수학을 혼동하고 있다는 것, 말하자면 물리학적 규정(질 규정)을 수학적 규정(양규정)으로 치환한 결과 천박한 기계론 내지는 수학주의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 P114
왜냐하면 수학에 의해 증명된 양의 비례관계는 그것이 이성적 비례 관계라는 이유 때문에¹⁹ 바로 자연 속에 내재하는 것이며 또한 이 비례 관계가 인식될 경우그것이 바로 자연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연의 완전한 총체성을 도외시하고 있는 자연에 관한 분석과 설명은 전체 자연 그 자체가 지니고 있는 이성적 관계와 엄밀히 구별될 수밖에 없다. - P22
19 라틴어 원문은 ‘rationes enim quantitatum, quas Mathesis exhibet, eam ipsamob causam, quod rationes sunt, "이다. 노이저는 이것을 "Die Grunde für die Größen nähmlich, die die Mathematikerweist, sind eben deshalb, weil sie Grinde sind, "로 옮겼지만이 책에서는 드 강의 불역본을 따랐다. 또한 수학적 비례나 이성을의미하는 ‘ratio‘를 두 의미를 동시에 살리기 위해 ‘이성적 비례 관계‘라고 옮겼다. 불역본은 ‘rapports-rationnels‘이라는 합성어를 만들어 쓰고 있다. dG. WN. - P116
다른 한편으로 기하학에 해석학적 계산법을 도입해 공간과 시간을 통일적으로 규정할 필요성 때문에 성립된 고등 기하학²¹은 어떠한가? 고등 기하학은 무한자의 개념을 통해서 공간과 시간의 분리를 단지 부정적으로 지양하고 있지만 결코 시간과 공간의 참된 종합을 보여주지는 못하며, 그 분리를 부정하는 데서도 기하학과 산술학의 형식적 방법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 P23
21 여기서 말하는 ‘고통 기하학sublimiore geometria‘은 데카르트의 해석기하학이라든가 라이프니츠, 뉴턴의 미적분학 등을 의미한다. 헤겔은 이 이론들에서 공간과 시간의 통일이 아직 형식에 머물러 있을뿐 진정한 통일을 얻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시간과 공간이 참으로개념적 통일을 얻어야 비로소 자연의 전체성을 파악할 수 있다는것이 헤겔의 생각이다. 그에 따르면 이것이 가능한 이론은 참된 수학, 즉 자연에 내재하는 변증법적 구조의 수학적 표현으로서의 자연의 수학뿐이다. MK. - P116
(3) 뉴턴 물리학에서 힘의 개념
뉴턴은 운동 법칙을 명시하고 세계 체계에서 그 실례를 끌어내고 있는 자신의 저명한 저술에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philosophiae naturalis princia mathematica》라는 제목을 붙였을뿐만 아니라,²² 자신이 힘을 물리적 의미가 아니라 단지 수학적 의미에서 고찰함으로써 ‘인력‘, ‘충격‘, ‘중심으로 향하는 경향‘ 등의 명칭을 구분 없이 서로 뒤섞어 사용했다는 점을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다.²³ - P24
22 이미 ‘(1) 뉴턴의 오류‘ 절에서 지적한 것처럼, 헤겔에 따르면 뉴턴의 첫 번째 오류는 물리학과 수학을 뒤섞었다는 것이다. 이는 흔히<프린키피아>라 불리는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라는 저서의 제목에 그대로 표현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헤겔은 이 책의 많은 부분을 인용하면서 이 오류에 대해 비판한다.
23 아이작 뉴턴, <프린키피아> 전3권, 조경철 옮김(서해문집, 2000), 1권, 23쪽 정의 VIII 참조(이 책은 앞으로 ‘뉴턴(2000)‘으로 표시하겠다). - P117
그러나 우리의 견해에 따르면충격은 역학에 속하는 것이지 참된 자연학(물리학)에 속하는것이 아니다.²⁶ 이 두 학문 사이의 구별에 관해서는 나중에 좀 더 상세히 서술할 것이다. - P24
26 헤겔의 자연철학이나 자연관에서는 역학과 물리학의 구별은 기본적인 것이다. 헤겔은 초기의 체계와 후기의 완성된 체계에서 모두, 역학이 운동을 외적 동인에 의해서 발생하는 자연 현상(충격, 낙하등)으로 규정하는 데 비해, 물리학은 운동을 자기 운동이자 제 자신이 규정하는 것으로 이해한다고 본다. 예를 들어 자기 Magnetismus는위에서 언급한 제 자신이 규정하는 개체 중 하나이다. 또한 물리학에서 운동은 항상 운동하는 물체 고유의 목적에 의해서만 야기된다고 한다. dG. - P117
(4) 케플러의 법칙과 그에 대한 뉴턴의 해석
케플러의 경우는 어떠한가? 그는 무게가 물체의 공통된성질이며 달의 인력이 밀물과 썰물의 원인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고 달의 운행의 불규칙성이 태양과 지구의 힘의 합치에 의해서 일어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²⁸ 다만 나중에 보게 될 것처럼 철학과 학문에 대한 순수한 사랑과 예민한 감수성을 타고난 그가 중력·구심력·원심력 등을 설명하면서발생하는 혼란을 견뎌낼 수 있었다면 그가 발견했던 불멸의법칙의 물리학적인 형태에 단순히 수학적 표현을 부여하는 것은 아마도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²⁹ - P25
28 헤겔은 케플러의 <신천문학>에 나타난 만유인력과 달의 인력에 영향받는 밀물과 썰물에 관한 명제를 염두에 두고 있다(JohannesKepler, New Astronomy, (trans.) William H. Donahue (Cambridge:Cambridge Univ. Press, 1992), 29~31쪽, 255~257쪽 참조. 이 책은 앞으로 ‘케플러(1992)‘로 표시하겠다. 또한 Johannes Kepler, The Secret of the Universe, (trans) A. M. Duncan introduction and commentary by E. J. Aicon with a preface by I Bernard Cohen (New York: Abaris Books, 1981), 30쪽 참조. 이 책은 앞으로 ‘케플러 (1981)로 표시하겠다). WN. 케플러는 지구와 달의 인력에 관해 매우 독창적인 이론을 가지고있었다. 그는 밀물과 썰물을 달의 인력에 기인하는 것으로 설명하는 합리적인 생각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을 지구의 호흡으로 설명하는 신비주의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기도 했다. 밀물과 썰물에 관한 합리적 이론의 측면은 뉴턴의 만유인력의법칙과 관련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MK.
29 헤겔은 케플러가 현상들 속에 제시된 수학적 규칙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수한 예지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는 데 비해, 뉴턴은 가공으로 꾸며놓은 공허한 힘의 구조에 의존하고 있다고 말한다(헤겔(1986), Bd, 9.86쪽 참조). - P110
(5) 힘의 분할나는 그 유명한 ‘힘의 분할‘이라는 명제가 수학적 증명에는 대단히 유용하다고 생각하지만 자연에 대한 이해력은 전혀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기계적 운동의 방향이 대립하는 힘의 여러 방향에서 생기는 경우, 살아 있는 힘의 방향이 반대의 힘으로부터 생겨나는 일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과 무관한 힘이 물체를 움직이는 기계적 관계는 살아 있는힘과 명백하게 구별되어야 한다.³³ - P26
33 라이프니츠는 역학적 관점에서 데카르트의 힘의 개념을 검토하면서 소위 ‘죽은 힘‘과 ‘살아 있는 힘‘이라는 개념을 구별했다. 아마 헤겔은 《행성궤도론》을 쓸 때 라이프니츠가 《역학 시론Specimendynamicum》에서 이 두 개념을 구별한 것을 참조했을 것이다. "힘은이중적이다. 그 하나는 원초적 힘인데 나는 이것을 죽은 힘이라고부르겠다. 왜냐하면 이 힘에는 아직 어떤 운동도 없으며 그저 운동을 불러일으키는 탄력이 있는 데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총신에 장전된 탄환의 경우나 끈에 매여 있는 투석기의 돌의 경우와 같다. 다른 힘은 현실의 운동과 일치하는 보통의 힘인데 나는 이것을 살아 있는 힘이라고 부르겠다. 원심력이나 중력 또는 구심력도죽은 힘의 실례이다. 그러나 낙하하는 추에서 생기는 진동의 경우나 원래 상태로 되돌아가 있는 활에서 생기는 진동의 경우에 힘은살아 있다. 그것은 죽은 힘이 연속적으로 각인됨으로써 발생한다" (Gottfried Wilhelm Leibniz, Specimen dynamicum, (hrsg.) H. G. Dosch G. W. Most E. Rudolph (Hamburg, 1982). 13쪽). 이렇게 본다면 헤겔이 말하는 기계적(역학적) 힘은 ‘죽은 힘‘이며 이에 반해 물리적 힘은 ‘살아 있는 힘‘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WN. - P120
역학과 천문학 등 거의 모든 과학이 방금 말한 힘의 분할과 ‘힘의 평행사변형의 원리‘ 구성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³⁵ 그 자체로 완전하고 자연 현상과도 일치하는 이 위대한 과학은 앞서 말한 가설을 증명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 P27
35 뉴턴의 천체 역학에 나타나는 수학적 증명은 오직 ‘힘의 평행사변형의 원리‘에 의한 분할과 종합에 바탕을 두고 있다(뉴턴(2000), 1권, 55쪽 참조). 이 원리는 단순한 수학적 요청에 불과하기 때문에 해결은 이 원리가 취급하는 힘이 참된 힘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헤겔에 따르면 살아 있는 참된 힘과는 무관한 기계적 작용만을취급하는 과학, 그것이 뉴턴의 역학이다. - P123
여기서는 다만 다음의 것을 지적하고자 한다. 직선이나 곡선으로 그려지는 단순한 자연 현상이 여러 선들로 해체된다면 이는 하나의 수학적 요청일 것이고, 그러한 요청은 수학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유익함에서 비롯했을 것이다. 그러나 (수학의) 이러한 원리는 다른 과학에 의존한다. 더구나 우리는 하나의 원리를 그 효용이나 결과에 따라 평가해서는 안된다. - P27
2. 대립하는 두 개의 힘
(1) 기하학적 추리
(전략). 물론 탄젠트의 기하학적 필연성이 결코 탄젠트의 물리적힘의 편연성을 보증해주지 못하는 것은 분명하다. 순수 기하혹은 원의 참된 형식을 전혀 변경하지 않는다. 또한 기하학은 원둘레 그 자체를 반지름을 통해 비교하거나 식별하는 것이 아니라 원둘레의 반지름에 대한 비례 관계가 규전하는 여러 선을 비교하고 식별할 뿐이다. - P28
(2) 원심력의 물리적 실재성
나아가 우리가 기하학적 증명 없이 원심력의 물리적 실재성을 문제 삼을 경우, 일찍이 뉴턴이나 모든 영국인이 역사상 최상의 철학이자 유일무이한 철학이라고 간주하고 있는저 실험 철학⁴⁰이 원심력을 철학적으로 구성하리라 기대해서는 안 된다. - P29
40 여기서 말하는 실험 철학자란 영국왕립협회의 회원 및 베이컨, 훅, 로크, 뉴턴 그리고 마틴과 맥로린Colin Maclaurin 등이다. 영어권에서 ‘실험 철학experimental philosophy‘이라는 용어는 뉴턴 이전에는 ‘전과 완전히 다른 자연 고찰 방식‘을 의미했다. 그러나 여기서 해결은 뉴턴 이후의 실험 철학을 염두에 두고 있다. WN. - P127
(3) 힘의 동일성과 구별에 관한 참된 철학적 개념
그 결과야 잘못될 수밖에 없고 쓸모없을 수밖에 없지만 철학이라는 이름을 참칭하는 실험적 방법이 여러 가지 실험을 통해 인식하고자 시도한 것을 철학은 스스로 아 프리오리a priori 하게 연역할 수도 있을 것이다. - P30
무지하기 짝이 없는 이 철학은 막연하게, 끄는 힘과 밀쳐내는 힘의 대립을 관찰하면서 이 이론을 운동에 적용했을 뿐이다. 그러나 철학은 힘의 이러한 구별을 물질의 본성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한다.⁴³ 무게 혹은 동일성 그 자체가 이들 힘의 전제 조건을 이루고 있다는 의미에서 더욱 그렇다.⁴⁴ 이. 러한 근거에서 보았을 때 왜 행성 운동의 구조가 큰 오류를범하고 있는지 명백하다. - P31
43 ‘인력과 척력의 대립‘에 착안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헤겔이 <프린키피아> 이전의 뉴턴의 운동론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뉴턴은 이 두 개념에서 물질의 철학적 구조에 관해 영감을 얻은 게분명하다. 이 때문에 그는 원심력이 물질의 고유하고 단순한 반발력에서 유래하는 형식이라고 생각했다. 칸트는 《일반적 자연사와천체론Allgemeine Natingeschicine und Theorie des Himmels》의 서문에서 자신의 우주론을 전개하면서 자연계 질서의 진화와 발전을 설명하기위해 가장 기본적인 개념으로서 ‘인력‘과 ‘척력‘이라는 두 힘을 도입하고 있으며, 이 개념이 뉴턴 철학에게서 빌려온 것이라고 설명한다(Immanuel Kant, Vorkritische Schriften bis 1768 1 Werkausgabe Band I. (hrsg.) Wilhelm Weischedel(Frankfurt a. M.: Suhrkamp Verlag, 1977), Bd. 1. 242쪽 참조. 이 책은 앞으로 ‘칸트(1977)‘로 표시하겠다). 헤겔은 《행성궤도론》에서 이에 대해 평가하고 있는데 이러한 헤겔의 평가는 《대논리학》에서도 마찬가지로 발견된다(헤겔(1986). Bd. 5. 203~208쪽참조), MK. - P129
44 여기서 말하는 철학은 셸링의 철학인 것으로 보인다. 헤겔이 《행성궤도론》을 집필하던 당시 셸링은 스피노자주의의 입장에서 자연철학과 선험철학을 통일하는, 소위 동일철학을 확립하고자 했고, 이입장을 표명한 책이 <나의 철학 체계의 서술Darstellung meines Systemsder Philosophie)이다. 헤겔은 이 책을 마음에 두고 있다. 최초의 존재에 있어 A와 B의 실재성의 직접적인 근거로서 절대적 동일성은 중력이다"(Schelling, Darstellung meines Systems der Philosophie. in SchellingWerke, (hrsg.) M. Schröter (Miinchen, 1927), Bd. III, $54. 이 책은 앞으로 ‘셀링, Darstellung‘으로 표시하겠다). 이때 A와 B는 최초의 대립을 의미하며 인력과 척력을 가리킨다. 이 때문에 중력은 물질과 동등한 절대적 동일성의 특수한 형태로 나타난다. 그래서 "물질계는 인력과 척력 사이에 균형을 형성하게 된다" (셀링, Darstellung. 57쪽). dG.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셀렁이 Schwerkraft라고 표기한 것을 헤겔은 경우에 따라 gravitas와 vis gravitatis로 구별하여 인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셸링은 gravitas에 해당하는 Schwere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이에 반해 노이지는 헤겔이 본문의 서술을 셸링의 《자연철학 체Einleitung zu dem Entwurf eines Systems der Naturphilosophie》에서 인용하고 있다고 말한다(Schelling. Einleitung zu dem Entwurfeines Systems der Naturphilosophie (1799). 99쪽 참조. 이 책은 앞으로 ‘셀링, Einleitung‘으로 표시하겠다). WN. - P130
참된 철학은 실험 철학의 원리를 거부한다. 왜냐하면 실험철학의 원리는 다름 아닌 역학에서 빌려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역학은 죽어 있는 물질 속에서 자연을 위조하여서로 완전히 상이한 여러 힘들의 종합을 어떤 물체에나 적용한다. 그러나 우리는 자연 자체를 인식하기 위해 자연을 위조하는 데 힘쓰는 것을 단호히 중단해야 하며 물리학에서 우연이나 자의가 감히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⁴⁹ - P32
49 자연을 위조하는 데 힘쓰는 것은 역학이다. 헤겔에 따르면 역학은 관성적 물질을 취급하는데, 관성적 물질의 세계는 자의와 우연이지배하고 있다. 이 때문에 역학은 살아 있는 자연을 파악할 수 없다고 헤겔은 생각한다. 이러한 관점은 《피히테와 셸링의 철학 체계의차이 Differenz des Fichteschen und Schellingschen Systems der Philosophic》에서도 발견된다. "자의와 우연은 더 낮은 차원의 입장에서만 자리를 차지하기 때문에 절대자에 대한 학문의 개념에서는 추방되어 있다" (헤겔(1986), Bd. 2, 108). - P131
(4) 참된 기하학에서 부분과 전체
비록 실험 철학이 중심으로 끌어당기는 힘의 개념과 접선력의 개념⁵¹을 기하학적·물리학적 증명에서 끌어오긴 하지만, 절대적으로 대립된 현상들로 구성하는 이러한 방법을 결코 기하학적 방법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 P32
51 여기서 헤겔이 ‘구심력‘, ‘원심력‘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고의로 vis ad centrum tendentis(중심으로 끌어당기는 힘)와 vistangentialis (접선력)로 에둘러 표현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힘을 오해하고 있는(헤겔은 그렇게 생각했다) 실험 철학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MK. - P131
물리학은 기하학의 이러한 참된 방법을 모범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물리학은 우선 전체를 정립하고 그로부터 부분들 사이의 관계를연역하지만 결코 서로 대립하는 힘들, 즉 부분들로부터 전체를 구성하려고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앞서 말한 물리학적 천문학은 수학을 따르는 것 외에 달리 어떻게 그것의 수학적 법칙에 이를 수 있을 것인가? - P33
(전략). 마찬가지로 구심력, 원심력, 중력의 크기를 가지고 전체 운동의 동일한 현상을 규정함으로써 우리가 중력의 크기를 가지고 어떤 문제를 해결했는지, 구심력의 크기를 가지고 어떤 문제를 해결했는지, 아니면 원심력의 크기를 가지고 어떤 문제를 해결했는지는 상관없게 되어버린다. - P33
(5) 원심력과 구심력의 동일성
이 천문학에서는 명백한 모순이 발견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구심력에 의해 일어나는 것을 버스트 사인을 통해서 설명하고, 원심력에 의해 일어나는 것을 탄젠트를 통해서 설명하면서 동시에 이들 두 힘을 서로 동일시하기 때문이다.⁵³ - P34
53 헤겔은 여기서 구심력과 원심력의 동동함을 논증하고 있다. 이때헤겔이 제시하는 논거는 복잡하고 설득력이 결여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몇 줄의 명확하지 않은 논증 후에 원심력은 구심력과 같다는 결론을 도출하고 있다. 제시된 전제가 어느 하나도 명쾌하지 않기 때문에 이로부터 도출된 귀결도 불명료하다. 동일한 서술이 칸트(1964), Bd. I, 282쪽에서도 발견되며, 마틴과 호이헨스의 저술에도 나타난다. 특히 헤겔은 라플라스 (1797), Bd, 1, 291쪽 이하를 참조했을 것이다. WN. - P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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