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한국 문화가 우수한 이유

세계적으로 한류를 이끄는 힘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과거로부터 우리나라는 주변 국가인 일본이나 중국에 한류를 이끌며 큰 영향을 끼쳐왔다. 지금은 노래와 춤, 드라마와 스포츠 등 한류로 인해 한글, 한복, 한식 등이 세계적으로 유행하게 되었다. - P106

1. 한류의 시작

우리나라 최초의 한류는 백제의 불교, 건축, 예술의 전파로 일본 아스카 문화를 형성해 준 구로다(큰나라)이다. - P107

 최근 전 세계를 강타한 K문화의 한류 효시는 1997년 중국에 수출되어 1억 5천만이시청한 ‘사랑이 뭐길래‘라는 드라마로서, 당시 중국인들이 한국에 관광오면 주인공인 대발이네 집에 갔다고 한다. 이후 일본에 수출된 ‘겨울연가‘로 욘사마를 부르며 많은 사람들이 남이섬을 방문했다. 또 ‘대장금‘이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등에 인기몰이(이란 시청률 90%, 60개국 수출)를 하였다. - P107

왜 외국인들은 한국 드라마를 좋아할까? 이유 중 하나는 외국인들은 좌뇌적 특징을 갖은 것에 비해 한국인은 우뇌적 사고가 발달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 P107

또 다른 한류 중 하나는 인터넷의 보급으로 형성된 한국인들의 인터넷강국 이미지이다. 일본과 비교하더라도 일본은 모든 것이 꼼꼼하고 정밀한 매뉴얼에 의해 일하기에 인터넷 활용을 제대로 못하는데 비해, (후략). - P108

감이 있다는 것은 공간 지각력이 뛰어나다는 뜻으로 공간을 전체적으로 파악하여 총체적 그림을 단 한 번에 그리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말이다. - P108

2. 흥과 신명

우리나라 사람들은 에너지가 한번 폭발하면 자신도 놀라워하고 세계가 놀란다. 이 에너지의 기운을 신기, 신명이라고 부른다. 2002년 월드컵 축구 4강 신화가 좋은 예이다. - P109

우리나라 술 소비를 보아도 맥주 1인당 83병(500ml 기준), 소주 70병(360ml 기준)으로 술 소비량 세계 15위에 속한다. - P110

3. 종교심

우리나라 사람은 좌뇌(이성, 언어)보다 우뇌(감각, 직관)가 더 발달하였다. 이는 우리말에서도 좌뇌가 담당하는 명사보다 우뇌가 담당하는 형용사가 발달한 데서 알 수 있다. (중략). 우리나라 사람들은 논리와 토론에 약하다. 상대의 말을 논리적으로 이해하기보다 감정적으로 제멋대로 해석해 마음대로 말하길 좋아한다. - P110

4. 문화력

(중략). 문자는 사용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사고체계를 만들어주고 바르고 빠른 판단과 행동을 하게한다. 그런 의미에서 한글의 우수성은 세계가 인정해 주고 있다. - P111

또 400여년의 역사 기록물인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등은 세계에서 분량이 가장 많은 최대의 역사 기록물이다. - P111

5. 결론

(전략). 원래 한류라는 용어는 1990년대 후반 중국에서 한국 문화의 열풍을뜻하는 말로 처음 사용되어 이후 K팝, K드라마, K푸드, K뷰티, K패션, K웹툰, K게임 등에서 한국의 정체성을 알리고 세계 문화 속에서 한국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역할을 하였다.  - P113

Ⅱ. 사상적 관점으로 본 한국인
(무속 신앙이 내재된 종교심)


04
질서와 예의를 가르치는 유교


현재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유교가 끼친 영향은 어느 정도일까? - P141

1. 유교 사상

유교 사상은 중국 고대의 춘추전국시대에 공자와 맹자, 순자를 거치면서 정립된 사상으로, 귀신보다는 인간을, 죽음보다는 삶을 중시하여 내세보다 살아가는 사회 현실을 중시한 사상이다. - P142

2. 유교 사상의 형성

조선시대 인륜의 실천윤리를 강조한 지배 세력은 유교 경전을 학습하여, 서울에 성균관, 지방에 향교와 서원, 시골에 서당을 두어 교육하였다. 왕자의 유학 공부와 왕의 유학 강의, 집현전, 규장각, 독서당 설치와 과거 시험 등으로 유교 교육이 중요해졌다. - P142

첫째, 정치적으로는 천과 민과 도덕을 강조하였다. (중략). 이때 천의 의사표시는 민의 의사 곧 여론으로 ‘하늘이 듣는 것과 보는 것은 민이 듣는 것과 보는 것이다‘라고 표현하였다.  - P143

둘째, 사회적으로 효와 충과 예의 관습을 강조하였다. - P143

3. 성리학의 영향

유교는 조선 왕조의 사상적 근간이고 국가 통치 이념이었던 성리학에의해 생각과 생활을 결정지었다. 성리학은 중국 송나라의 주희가 집대성한 유학의 철학적 체계로 이과 기라는 우주론적 개념을 통해 만물의 원리를 설명하고 인간의 도덕적 수양과 사회 윤리를 강조한 학문이다. - P144

 정치적으로 중앙에서는 왕권과 신권의 견제가 법과 제도로 정비되었고 지방에서는 향촌이 마을 공동체 윤리를 강화시키고 통제하는 수단이 되었다. - P144

그러나 조선 중기에 이르러지나 친 성리학의 원론 중심 정치로 말미암아 동인과 서인의 두 파로 나누어져 4색 당파를 형성하게 되었고, 사회적으로 백성을 잘살게 하기보다 명분과 원칙만 중시하다가 피폐한 현실을 자초하고, 외교적으로 소중화 의식과 명의 멸망이후 주자학 종주국으로서의 자부심에 빠져 있다가 외세의 침략에 무너지게 되었다. - P145

4. 결국

중국 공자로부터 시작된 유교는 내세보다 현실의 삶을 중시하여 종교라기 보다는 인간으로서의 생활 규범과 인간관계에서의 질서를 강조하였다. - P145

4. 결론

(전략).
그래서 현대에도 한국인의 삶 속에서 가족중심주의의 남성중심 가부장적 가치관과 효와 예절 중심의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전통이 남아 있고, 특히 유교적 과거제의 전통으로 입시 중심의 교육과 서열 중심의 조직 문화, 기술과 윤리를 함께 중시하는 장인 정신이 강조되고 있다.  - P146

05

한국인이 만든 새로운 사상, 민족 종교

우리나라가 주체적으로 만든 종교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한국인들은 종교심이 강한 민족이다. (중략). 특히 일제시대 자유를 빼앗기고 억압받던 상황에서 나라의 독립과 국민적 통합과 후천개벽의 개혁을 바라는 종교가 많이 만들어졌다. 한국인의 깊은 종교심으로 만들어진 민족 종교를 알아보고자 한다. - P147

1. 동학

동학이 발생했던 조선 후기의 정세는 오랜 세도정치로 인해 양반들의 수탈과 착취로 농민의 삶이 피폐해졌고, 결정적으로 삼정(전정, 군정, 환곡)의 문란으로 과중한 세금과 부패한 관리들로 인해 극심한 고통을 겪을 뿐 아니라 서구 열강과 일본의 경제적 침탈이 가속화되고 있었다. - P148

동학의 핵심 교리는 인내천(人乃天)사상이다. - P148

2. 천도교

천도교는 1894년 동학 농민 운동이 실패한 후 종교적 기반을 중심으로 재편성한 결과, 동학 3대 교주 손병희가 동학의 사상적 틀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여 동학을 서학과 대등한 종교로 발전시키겠다는 의지에서 시작되었다. 천도교는 ‘하늘의 도를 믿는다‘는 뜻에서 동학의 인내천, 시천주, 후천개벽, 경천애인 사상을 계승해 외세에 의존하지 않고 민족의 자주적 발전을 강조한 종교이다. - P149

천도교는 일제시대 독립 운동 선두에 서서 3.1운동의 주도 세력(33인중 15명 참여)이 되어 독립선언서부터 독립 만세 운동까지 지도하였고, 이후 천도교 청년당 등을 조직하여 독립 운동을 지속적으로 지원하였다. - P150

3. 증산교와 대순진리회

(전략), 1909년 강증산이 죽자 그의 제자들에 의해 조직화되었다. 증산교의 교리는 1) 새로운 이상 세계가열릴 것을 예언해 이를 준비하기 위한 도덕적, 사회적 실천을 강조한 후천개벽 사상, 2) 강증산이 선천의 모든 부조리를 청산하고 후천 시대의 질서를 마련하기 위해 인간과 자연과 신이 조화롭게 연결된 이상적 질서의식인 삼계 통합의 천지공사 사상, 3) 천지와 부모와 형제와 이웃에게은혜를 갚아야 하는 보은 사상, 4) 강증산을 옥황상제로 숭배하고 그를 통해 천지의 이치를 깨닫고 스스로 도를 깨우쳐 자신의 삶을 구원해야한다는 믿음의 상제 구원 신앙이다 - P150

이러한 증산교는 여러 분파로 나누어져 다양한 교단을 이루었는데 지금의 대순진리회와 증산도 등 현대 한국 신흥 종교의 주요 흐름을 형성하였다. 대순진리회는 1969년 조철제가 증산교의 창시자인 강증산의 후천개벽 사상을 기반으로 새롭게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독립적으로 창시한 종교이다. - P151

4. 대종교

대종교는 1900년 초 일제의 침탈과 민족적 위기 상황에서 한국 고유의 신앙 체계와 민족 정체성을 확립하고 단군을 중심으로 고대 한국의신화와 전통을 되살려 민족의 독립을 위한 정신적 무기를 마련하고자, 1909년 나철과 오기호에 의해 민족종교로 탄생하였다. - P152

현재는 약 3,700명의 신도에 불과하나 중광절, 어천절, 가경절, 개천절을 기념하는 민족 종교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 P152

5. 원불교

원불교는 1916년 26세에 깊은 깨달음을 얻은 소태산 박중빈이 1924년 불법연구회를 설립해 일원상(一圓相)사상을 체계화하고 1935년 원불교로 교단 이름을 바꾸면서 조직화하였다.  - P153

6. 결론

우리나라 민족 종교를 창시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 P153

이들의 공통점을 살펴 보면, 1) 하늘 사상과 자연 숭배 사상이다. 하늘을 신성하게 여기고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중시했다. 2) 새 시대를 여는변화의 후천개벽 사상이다. (중략). 3) 인간 존중과 평등을 강조한 민중 사상이다. 당시 신분 차별에 대해 거부하고 평등을 강조해 민중이 스스로 주체가 된다고 생각하였다. 4) (중략). 유교의 조상숭배와 충효 사상, 불교의 윤회와 깨달음 강조, 도교의 자연과 조화와 신선 사상, 기독교의 천국과 사랑 실천 사상이 혼재하였다. 5) 사회 실천 운동이다. (후략). - P154

한국인들은 영성과 사회 개혁 의지가 강해 과거 우리의 종교인 유교, 불교, 도교, 기독교의 교리를 융합한 새로운 종교를 만들었고, 또 이를 잘 실천함으로 현실을 극복하고 개혁할 줄 알았다. -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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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세계자연유산

2007년에 우리나라 첫 번째 자연유산으로 등재된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은 최상의 자연 현상, 뛰어난 자연미와 미학적 중요성을 지닌 지역으로서 지형 발전상의 지질학적 주요 진행 과정과 특징을 포함해 지구역사상 주요 단계를 입증하는 대표적 사례로 등재되었다. - P81

2021년에 등재된 한국의 갯벌은 과학이나 보존 관점에서 보편적 가치가 탁월하고 생물학적 다양성의 현장 보존을 위해 가장 중요하고 의미가 큰 자연 서식지로 등재되었다. - P82

6. 결론

세계문화유산에 대하여 영국의 건축가 존 러스킨은 ‘우리는 조상의 유산을 단순히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해 빌려온 것이다‘라고 하여 문화유산이 단순한 소유물이 아니라 후손에게 되돌려 줘야할 책임 있는 자산이며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하였다. 세계문화유산은 탁월한 보편적 가치와 진정성, 완전성을 기준으로 등재된다. - P82

우리나라의 세계문화유산의 특징은 1) 오랜 역사와 고유한 문화 형성의 산물로 고대부터 현대까지를 아우르는 유산이다. 2) 우리나라의 가장 중요한 자연과의 조화를 보여준다. 불교 산사에서 자연과 인간의 유기적 관계를 보여주고, 한국의 서원에서 유교적 자연관의 반영을 보여주어, 한국의 전통 문화가 자연과 함께 성장하고 상호작용하였음을 알려준다. 3) 한옥과 궁궐 건축, 불교 사찰 등전통 건축의 특징과 기술을 잘 보여준다. 이는 자연과의 조화, 목재를 이용한 건축 기법, 기하학적 아름다움에서 나타난다. 4) 무형문화유산, 역사마을, 역사유적지구에서 한국인의 정서적 가치관과 한국 고유의 생활양식과 공동체 의식이 반영된 문화적 가치를 볼 수 있다. - P83

08

100년 전부터 바뀌기 시작한 한국인의 삶

우리나라의 전통 생활은 근대화되면서 어떻게 바뀌었을까? 우리나라의 생활 방식은 외세 침략으로 강제적으로 바뀌면서 전통을 지키려는 노력과 변혁시키려는 의지가 서로 부딪히며 변화되어 갔다.  - P84

1. 생활의 변화

19세기 후반부터 한양과 개항장을 중심으로 외국 음식이 보급되기 시작했다. 특히 청나라가 조선의 내정을 간섭하려 서둘러 군대를 파견하면서 군대와 함께 중국 상인들이 들어오게 되었다. - P85

 양식도 19세기 말 독일 여인에의해 정동 이화여고 자리에서 경영하는 손탁호텔에서 팔리기 시작해, 종로 기독교청년회관과 백화점 양식부에서 스테이크와 돈가스(서양의 고기 요리를 일본식으로 바꾼 음식) 메뉴로 한 경양식집이 유행하였다. 이후에는 경양식집에서 돈가스, 비후가스, 오므라이스 등을 팔며 외식 문화를 선도하기도 하였다. - P85

2. 식생활의 변화

우리의 전통 숙박 시설인 주막은 한 잔 술에 함께 친구가 되는 사랑방같은 곳으로 누구나 상하 구분없이 한 방에서 잠을 자고 한 솥에서 끓인 국밥을 먹고 삶의 피곤을 함께 나누던 곳이었는데, 일제시대를 거치며개인의 사생활이 중시되어 점차 여관과 모텔, 식당으로 변하였다. - P86

 조선시대 외국인이 소개한 한국인의 식습관에 대한 기록에 보면 조선 사람들은 2,3인분의 밥을 먹는 대식가로서 중국이나 일본보다 훨씬 많이 먹고 키도 컸다고 한다. - P86

3. 의식의 변화

(전략). 또 농사를 지으며일출과 일몰에 따라 계절 중심으로 지내던 시간관념이 서양의 기계와 근대적 시간표가 도입되면서 정해진 시간에 따라 활동하고, 시간 엄수의개념이 보급되어 서구식 생활 습관이 나타나게 되었다. - P87

1950년대 6.25전쟁이 끝나고, 60, 70년대 산업화가 이루어지면서 농촌에서 도시로 일자리를 찾는 대이동이 일어나 전통적 대가족제에서 핵가족으로 바뀌는 계기가 되었고, 특히 젊은 여성인 공순이들이 도시의의류와 전자제품 공장에서 일하면서 가족의 생계를 돕는 일꾼이 되었다. - P87

. 전통 시장과 5일장 중심의 소비에서 백화점과 대형 상점이 생기고, 미원과 해표, 라면 등의 간편식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 P88

4. 결론

막스 베버는 ‘근대화란 합리화 과정이며 전통적 가치에서 벗어나 이성과 과학에 기반한 사회로 나아가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전통적 사고방식에서 합리적 사고로의 전환, 미신과 관습의 생활 습관에서 이성과 과학의 생활 습관으로의 변화를 말한다.  - P88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19세기 후반 자발적인 근대화를 실패하고 외세의 침투에 의한 강제적 근대화를 맞이하여 일본의 군사적 경제적 침략을 위해 근대 문물이 수용되었고 민족말살정책을 위한 근대 교육이 도입되었다. - P89

외세에 의한 근대화 과정에서 미국 선교사들에 의한 미국식 기독교와선진 문물에 익숙해졌고, 6.25전쟁 후 가난을 극복하기 위한 미국의 지원과 협력 속에 미국식 생활 방식과 의식 개선이 이루어졌다.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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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합숙의 제일 큰 목적은 작품 촬영이라기보다 남녀 간의 교류, 즉 동아리 내부 미팅이죠. (중략). 다만 방이 모자라서 부원이 전부 참가할 수는 없나 보더라고요. (중략). 그런 이벤트에 불청객을 끼워줄 여유는 없다는 뜻이에요." - P36

"하지만 최근에 상황이 달라졌어요."
(중략).
"합숙 이 주 전에 참가하기로 했던 부원 대부분이 불참하겠다는 뜻을 밝혔어요. 실은 이 이야기를 해준 제 친구도 그중 하나예요." - P36

"협박장이 왔대요."
뜸을 들이듯이 겐자키 씨가 컵에 입을 댔다. - P37

"예, 자살 동기와 합숙의 인과관계는 불명확하지만 몇몇부원의 증언에 따르면 작년에 촬영한 심령 영상에 사람 얼굴이 찍혔는데, 영연이 연출한 건 아니라나."
"그러니까 지벌이나 저주를 받아서 그랬다고요?" - P38

"예. 신도 씨가 협박장을 보자마자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로 발설하지 말라고 진지한 표정으로 다그쳤대요. (중략). 그의 태도가 어쩐지 찜찜해서 친구는 숨겨서는 안될 일이라고 판단했어요. (중략). 그래서 눈덩이가 커지듯이 참가를 취소하는 부원이 늘어난 거고요." - P39

"미팅을 주선하겠다는 명분으로 졸업생에게 초대를 받았을 텐데 여자 참가자가 없으면 말이 안 되니까 신도 씨도 고심하는 것 같더군요. 그래서 말인데요. 저랑 같이 참가하지 않으시겠어요?" - P40

"잠깐만요. 아까 거래라고 하셨죠? 이래서는 저희만 득을보는데요. 애당초 왜 저희한테 이런 이야기를 꺼내신 건가요?"
그때 살짝 벌어진 겐자키 씨의 입술 사이로 송곳니 같은 것이 보인 것 같았다. (중략).
"이유를 묻지 말 것. 그게 이번 거래의 교환 조건이에요." - P41

002


자담장

1

(전략).
산속의 폐업한 호텔, 방치된 지 이십 년 가까이 지났고 주변에 다른 건물도 없으므로 이제 이 지역 사람들도 어지간해서는 걸음하지 않는다. - P43

약 이십여 년에 걸친 하마사카의 연구 인생. 그 모든 것을바친 대학 연구실이 적의 손에 넘어갔다. (중략).
하마사카에게 남은 사명은 단 하나, 이 성과를 세상에 알리는 것뿐이다. - P44

잘 봐라! 어제 우리가 판도라의 상자를 열 테니까!"
세상을 구하는 전사라도 된 기분일까. 하마사카는 싸늘한눈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는 일본에서 입학 커트라인이 제일 높은 대학을 졸업했지만 취직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냉혹한 현실을 이겨내지 못하고 퇴사했다. - P45

2


합숙 당일.
아케치 씨와 나, 그리고 겐자키 씨는 이른 아침에 학교 근처 역에서 만나 전철을 탔다.
합숙 장소인 펜션은 S현 사베아 호수 근처에 있으므로 참가자들은 호수에서 가장 가까운 역에 집합하기로 했다. - P46

언어나 사건은 딱히 걱정되지 않는다. 솔직히 말해 꺼림칙한 협박장보다 조증에 걸린 것처럼 들뜬 아케치 씨를 다른 젊은이들 사이에 섞어놓는 게 제일 걱정이다. - P47

"그건 그렇고 펜션을 대여해주다니 영연에는 배포가 큰 졸업생이 있나 보네요."
내 물음에 겐자키 씨가 입을 열었다.
"잘은 모르지만 부모님이 영상 제작 회사 사장님이라나 봐."
겐자키 씨는 이제 내게 존댓말을 쓰지 않고 친근한 말투로대한다. - P48

문득 겐자키 씨가 나를 응시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이유는 바로 알았다. 내 왼쪽 관자놀이에 남은 오래된 흉터를 보고 있는 것이다. 사오 센티미터쯤 찢어진 상처라 꽤 눈에 띈다. 머리카락으로 덮어서 평소에는 보이지 않지만 바람 때문에 머리카락이 흐트러져서 눈에 들어온 거겠지. - P49

3

"겐자키 히루코....... 어디서 들어본 이름이다 싶었는데드디어 기억이 났어. 예전에 경찰서에 명함을 돌리러 갔는데 내가 신코 대학에 다니는 걸 알고 어떤 형사님이 그 이름을 꺼내더라고. 빼어난 추리력을 발휘해 경찰조차 애를 먹은 갖가지 어려운 사건들을 해결로 이끈 소녀 탐정이라는군." - P51

"나도 흥미가 생겨서 다누마 씨에게 알아봐달라고 했는데, 아무래도 그 사람 본가는 요코하마에서 유서가 깊은 명문가인가 봐. 그 사람이 사건에 관여할 때마다 보도가 엄중히 제한된대. 가문에 먹칠을 하는 짓이다, 그건가." - P51

하지만 기묘한 이야기다. 그 정도 실력과 실적을 가진 그녀가 왜 일개 대학교 동아리에서 벌어진 협박장 소동에 일일이 흥미를 보일까. - P52

4

환승역에서 일찌감치 점심을 먹은 후 JR에서 민영 전철로 갈아타고 삼십 분을 더 갔다.  - P51

"오오, 신도, 이번에 어려운 부탁을 들어줘서 고마워."
상대는 딱딱한 웃음을 지었다. 이 사람이 영화 연구부 부장 신도인가. (중략).
"이런 예외를 허용하면 안 되지만, 겐자키 씨의 제안도 있고 상황도 상황이다 보니. 뭐, 즐겁게 지내다 가자."
말투를 들어보니 너 따위는 부르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 본심인 듯했다 - P54

이어서 우리도 자기소개를 했다. 겐자키 씨가 이름을 말하자신도가 머리를 숙였다.
(중략).
아케치 씨를 대할 때와는 태도가 매우 다르다. 신도가 한학년 위인데도 존댓말을 쓴다. 고분고분한 그 태도를 겐자키씨는 물 흐르듯이 받아넘겼다.
"아니요, 저도 흥미가 있어서요." - P55

"안녕하세요, 신코 대학에서 오셨죠? 저는 펜션을 관리하는 간노 유이토라고 합니다."
"......작년에 일하던 분은 그만두셨습니까?"
신도는 조금 당황한 것 같았다.
"예. 저는 작년 십일월부터 일을 시작했어요. 다른 분들은다 타셨습니다."
간노는 상쾌한 웃음을 지으며 슬라이드도어를 열어주었다. - P56

(전략). 그런데 먼저 온 참가자들은 두 명이 마지막 줄에 자리를 잡고 한 명이 조수석에앉아 있었다. 마치 반발하는 자석처럼 가장 멀리 떨어진 좌석에 나누어 앉다니 아무래도 부자연스럽다.
신도도 같은 느낌을 받았는지 순간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말없이 둘째 줄에 올라탔다. - P57

"평소에도 이렇게 차가 밀립니까?"
신도가 묻자 간노는 백미러로 시선을 보냈다.
"아니요, 평소에는 텅 비어 있어요. 다만 오늘과 내일은 근처 자연공원에서 야외 이벤트가 열리나 보더라고요."
(중략).
"사베아 록 페스티벌, 이름만 알고 있었는데 아까 찾아보니까 꽤 유명한 밴드도 참가하는가 봐. 그렇지, 미후유?" - P59

"다카기 씨는 작년에도 합숙에 참가하셨나요?"
(중략).
"이 년 연속 참가하는 사람은 나랑 개뿐이야." - P59

내용을 확인하자 2박 3일의 일정 외에 펜션에서 각자가 묵을 방도 이미 정해져 있었다. (중략).
재학생 참가자는 영화 연구부와 연극부, 불청객인 우리를 포함해 총 열 명. 방 배치에 공백이 눈에 띈다. 2층과 3층에 객실이 합쳐서 열여섯 개지만, 방 여섯 개에는 이름이 씌어 있지 않다. - P60

이렇게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도 호시카와를 제외한 나머지여학생들은 조금도 들뜬 모습을 보이지 않아, 갈 곳을 잃은남자들의 목소리만이 차 안을 가득채웠다. - P61

간노가 차를 느릿느릿 몰면서 즐겁게 말했다.
"그럼 저희 펜션이 마음에 드실지도 모르겠네요."
(중략).
"아니요. 그런 건 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사장님이 취미로수집하신 외국의 무기를 펜션에 잔뜩 장식해두셨어요. 검이나창 같은 걸 으리으리하게요.
" - P63

언덕을 금방 다 올라 탁 트인 장소가 나오자 방금 전에 본지붕이 달린 펜션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중략).
"뭐랄까..…………. 훌륭한 건물이네요. 좀더 규모가 작지 않을까 상상했는데요."
시골의 초등학교 크기 정도는 되지 않을까. - P65

"빨간색 GT-R이라. 숲속에는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머신이로군.‘
"가네미쓰 씨 차입니다. 이 펜션 주인의 아드님이에요." 간노가 쓴웃음을 지었다. "사치스럽죠?"
천만 엔은 됨직한 고급차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자니 뒤에서 욕설이 들렸다. - P66

남자는 입을 열자마자 집요하게 트집 잡는 목소리로 말했다.
"늦었잖아. 아침부터 여자애들이 오기만을 기다렸는데, 뚱땡이가 먼저 도착해서 토할 뻔했다고." - P67

"적당히 해, 데메. 우리가 다 부끄럽다."
충고한 사람은 피부가 볕에 잘 그을린 남자였다. - P67

"신코 대학교 후배 여러분, 만나서 반가워. 우리는 영연 선배는 아니지만 신코 대학교 졸업생이고 여기 앉은 나나미야의 친구야. (중략). 나는 다쓰나미 하루야라고 해. 저 시끄러운 녀석은 데메 도비오."
웬걸, 데메라는 물고기상 남자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초대받은 손님이었다. - P68

"저 사람이 이곳 주인의 아들이로군."
"응. 삼사 년 전에 졸업한 영연 선배야. 지금도 후배들에게 무료로 펜션을 제공해주니까 아량이 넓지. 데메 씨도 태도가 저래서 오해받기 십상이지만 나쁜 사람은 아니야. 마음에 둘것 없어."
신도는 이마에 진땀을 흘리며 빠른 말투로 해명했지만, 여자들은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 P69

"배정된 방 중 이름이 적혀 있지 않은 방에는 그 사람들이묵고 있다는 뜻이군요."
우리 열 명이 묵을 방말고 숙박자의 이름이 비어 있는 방이 여섯 개 있다. 그중 세 개를 그들이 사용하고 있다는 뜻이다. - P70

간노가 프런트의 자물쇠를 열고 카드 다발을 꺼내 왔다.
"방의 카드키를 나누어드리겠습니다. (중략). 오토록이니까 외출하실 때는 방에 놔두고 나오지 않도록 주의하세요. 프런트에 맡기실 필요는 없습니다. (후략)." - P71

"저쪽 엘리베이터는 작아서 기껏해야 네 명 정도밖에 못랍니다. 모두가 한꺼번에 올라가기는 어려우니 계단도 이용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P71

(전략), 나는 여자 참가자들이 전부 미인이라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오늘은 미인밖에 못 본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 P73

문이 바깥쪽, 즉 복도 쪽으로 열려서 의외였다. 지금까지묵었던 비즈니스호텔은 대부분 안쪽으로 열렸던 것 같다. (중략).
안에 들어가서 문을 닫자 자동으로 자물쇠가 철컥 잠기는소리가 났다. (중략).
카드키를 벽의 홀더에 꽂아야 실내 전기를 사용할 수 있는것은 비즈니스호텔과 똑같다. - P74

발코니에서 밖을 내다보자 오른쪽에 각 방이 비스듬히 배치된 건물의 형태가 눈에 들어왔다.
집합 시간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다. 나는 펜션을 잠시 둘러보기로 했다. - P75

엘리베이터 홀에는 객실말고도 문이 두 개 더 있었다. 문에 끼워진 명판에는 창고와 리넨실*이라고 적혀 있었다.



* 호텔이나 병원 등에서 침구, 시트, 타월 등 섬유 제품을 보관하는 방. - P76

"이야. 병아리 탐정님이네. 나는 사회학부 3학년 구다마쓰다카코야. 잘 부탁해."
그렇게 말하며 자위대 대원처럼 이마에 손을 갖다 붙였다.
오랜만에 밝은 사람을 만난 것 같다. - P77

"경쟁자라니, 그게 무슨 뜻인가요?"
(중략).
"그 사람 집이 유명한 영상 제작 회사를 하거든. 그래서 그 사람한테 잘 보이면 직장을 소개해주기도 한대."
연줄로 취직자리를 얻을 생각인가. 말은 쉽지만 정말로 그에게 그런 권력이 있을까. - P78

"완전히 헛소문은 아니야. 실제로 작년에도 그 회사에 취직한 사람이 있다고. 펜션을 멋대로 사용하게 해주는 걸 보면 부모도 아들 하면 껌뻑 죽는 팔불출 아니겠어?" - P78

"방금 경쟁자 아니냐고 물어보셨잖아요. 구다마쓰 씨말고도 연줄로 취직하려는 사람이 또 있는 거죠?"
그러자 구다마쓰는 아아, 하고 업신여기는 듯한 시선을 홀구석으로 던졌다.
"쟤야 쟤. 부, 장."
오리처럼 입술을 삐죽 내밀며 문 하나를 가리켰다. 신도 방이다. - P79

나는 중앙 구역으로 되돌아와서 2층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엘리베이터는 간노 말대로 상당히 비좁았다. (중략). 즉 합쳐서 260킬로그램. 성인 남성이 짐을 들고 타면 세 명이라도 아슬아슬하지 않을까. - P80

"저도 처음 봤을 때는 깜짝 놀랐습니다.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는 잘 모르지만, 사장님은 중세 전투를 아주 좋아하시나보더라고요."
늘어놓은 무기들을 보니 확실히 장식성을 중시했다기보다개인적인 취향이 강하게 반영된 것 같았다. - P82

나는 신경쓰이던 것을 물어보았다.
"그런데 간노 씨, 자담장은 펜션치고는 좀 색다르네요. 용도가 불분명한 문도 있고, 방이 넓은데도 전부 싱글룸이고요. 종업원도 간노 씨 한 명뿐이잖아요." - P83

"저렇게 기분 나쁜 사람들이랑 사흘이나 같이 지내야 한다는 거야?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전부 아유무 책임이야." - P84

기분 나쁜 사람들이 졸업생 일행을 가리키는 말이라면, 역시 여자 참가자들은 졸업생들에 대한 첫인상이 아주 안좋았던 모양이다.
한편 신도는 변함없이 알아듣기 힘든 목소리로 어물어물대꾸했다. - P85

아케치 씨가 신도에게 물었다.
"요 부근에서 촬영할 거야?"
"아니, 촬영 장소는 폐업한 호텔이야. 차로 조금만 가면돼." -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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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주의 회화에서 캔버스는 평평하지만 시각적으로는 어떤 ‘공간‘이 보입니다. 모더니즘에서는 이러한 공간을 ‘환영illusion‘이라고 보고, 환영을 제거해 ‘평면성을 추구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이렇게 해야 장르의 순수성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죠. - P22

그림 밖으로 나와 사물이 된 미술

미니멀리즘 작가들은 평면성이라는 모더니즘의 원리가 사각형의 캔버스 틀 안에서는 끝내 해결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최소한의 환영마저도 없애려고 했던 시도가 바로 미니멀리즘입니다 - P26

도널드 저드는 통째로 된하나의 유일한 사물을 전시함으로써 요소들 사이의 관계를 해체하고 환영을 제거합니다. 그는 작품 <무제>에서 상자 모양의 단위체들을 층층이 쌓아 올렸는데, 사이의 움푹 빈 공간은 아무 것도 감출 수 없다는 그의 신념을 반영합니다.  - P27

또 다른 미니멀리즘 작가인 칼 안드레Carl Andre는 여러 장의 벽돌을 바닥에 깔아놓는 ‘바닥 조각‘을 선보였습니다. 그가 만든 시리즈는 〈등가〉 조각으로 불렸는데요, 그 이유는 높이, 질량, 부피가 모두 같은 ‘등가‘이기 때문입니다. - P27

미니멀리즘 작가들은 이처럼 표준화된 산업 자재를 사용해 이것들을 ‘배열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줃략). 솔 르윗Sol LeWitt 또한 ‘정육면체를 사용해 반복성과 연속성을 만들어 내는데요, 반복적인 형태들은 끝이 보임에도 그 구조가 끝없이 계속될 것처럼 느껴집니다. - P30

미니멀리즘을 규정하는 또 하나의 특징은 바로 작가가 작품의 중요 요소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작품을 만드는 주체가 중요하지 않다니, 의아할 수 있어요. - P30

관람자의 지각과 체험이 중요해진 이유

미니멀리즘을 첫 번째 키워드로 꼽은 이유는 미니멀리즘이 요즘 미술을 이해하는 데에 바탕이 되기 때문입니다. 미니멀리즘은 ‘관람객의 체험‘이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 P34

미니멀리즘 작가들 중에서도 지각의 차원을 강조한 로버트 모리스Robert Morris는 아무것도 재현하지 않고 아무것도 암시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전시장에 다면체를 놓아두었습니다. - P34

그런데 모더니즘 비평가인 마이클 프리드 Michael Fried는 로버트 모리스의 작품이 무대 위의 배우 같다는 점에서 ‘연극성theatricality‘을 지닌다고 비판했습니다. - P35

 프리드가 보기에 미니멀리즘은 모더니즘의 미술 원리에서 이탈한 ‘퇴보적‘ 미술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 시점에서 마이클 프리드의 분석은 비판이라기보다는 미니멀리즘의 특성을 잘 설명한 글로 읽힙니다. - P35

미니멀리즘의 대표 작가로 꼽히는 도널드 저드마저도 자신의 작품이 미니멀 아트로 규정되는 것에 반대했다고 하죠. - 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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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린 사람들』은 총 열다섯 편의 단편소설을 모아 놓은책이다. 이 책은 저마다 다른 주제와 소재, 그리고 문체와 서술 기법들을 가지고 있는 다양한 단편들로 구성되어 있다. - P323

 그는 서구 문학에서 별로 다루어지지도 않고 크게 알려지지도 않았던 이 도시를 처음으로 알린다는 데에 큰 자부심을 느꼈던 듯하다. - P323

조이스에게 더블린은 대체로 밝고 활발하고 건전하기보다는 어둡고 무기력하고 타락한 모습을 띠고 있었다. 그러나 조이스가 『더블린 사람들』에서 다룬 삶의 양상이 비교적 부정적인 쪽에 치우쳐 있고, 또한 이를 표현하는 데 걸맞게 언뜻 구질구질하거나 상스럽게 비칠 만한 언어를 구사했다는 것은처음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문제로 대두했다. - P324

그럼에도 출판사 측의 압박이 계속되자, 이에 맞서 조이스는 이렇게 소신을 밝혔다.


내가 양보하지 않은 사항들이야말로 바로 책을 단단히 응집시키는 사항들입니다. 내가 그 사항들을 견지하기 위해 싸우는 것은 내 도덕사의 장을 내가 쓴 방식 그대로 씀으로써 우리나라의 정신적 해방을 향한 첫걸음을 내디뎠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 P325

작가적 소신이 담긴 위의 진술들에는 『더블린 사람들』의 주요한 문학적 요소들, 즉 소재, 주제, 구조, 분위기 및 문체 따위에 대한 그의 철저한 구상이 담겨 있다. - P325

1. ‘마비‘라는 주제

(전략).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정치적인 차원에서 당시 아일랜드는 수백 년에 걸친 영국의 제국주의적 압박과 이와 관련한 정치적 부패, 그리고 감자 기근 등으로 인한 경제적 빈곤과 이로 인한 미국 등지로의 이민 물결이라는 사회적 혼란을 겪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아일랜드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담당해야 할 가톨릭교회는 올바른 가치관의 지표를 제시하지 못하고 오히려 집단 이기주의와 세태 영합의 모습을 보이기도했다. - P328

아닌 게 아니라, 『더블린 사람들』에 등장하는 많은 작중인물들은 이렇게 빈곤과 무지와 환상과 이기심에 의해 고정된 자리에 갇혀 지낸다.  - P328

(전략), 설혹 현실 타개의 엄두를 낸다 하더라도 판단력과 의지 부족으로 말미암아 결국 꿈을 이루지 못하고 제자리에 주저앉아 패배주의에 빠지는 경우가 보통이다. - P329

청년기에 해당하는 네 작품은 경제적, 사회적인 신분 상승의 꿈이 허망하게 좌절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 - P330

「경주가 끝난 후」와 「두 건달」은 자신보다 우월한 입장에 있는 친구에게 아부하며 기생하다시피 하는 종속적인 관계를 통해 이득을 꾀하려는 청년들의 속물성과 허영심을 다룬다.  - P331

(전략), 후자에서 레너헌은 그의롤 모델인 콜리에게 빌붙는 자신의 비굴한 태도와 황새를 따르려는 뱁새 꼴에 불과한 자신의 실제 처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둘 다 마지막에 참담한 패배감과 자기모멸감 속에서 후회할 수밖에 없다.  - P331

「담쟁이 날의 위원회실」에서는 시의원 선거운동을 돕기 위해 위원회실에 모인 사람들의 불성실하고 야비한 모습이 적나라하게 그려진다. (중략). 과거의 추억에 대한 감상적인 향수, 그리고 타락과 배신이 지배하는 위원회실의 분위기는 파넬이 죽은 후 아일랜드 정치가 무기력 상태에 빠져 있음을 잘 나타낸다. - P334

「은총」에서는 술 마시고 넘어지는 봉변을 통해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위신이 추락한 상태임을 여실히 보여 주는 커넌이라는 인물을 구제하기 위해 주변 친구들이 공모하여 그를 피정에 데려가고 거기서 퍼든 신부의 설교를 듣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그려진다. 그런데 놀랍게도 신부의 설교는 하느님과 함께 돈을 섬기라는 취지를 담고 있다. - P335

여기까지 『더블린 사람들』에 실린 단편 열다섯 편을 ‘마비‘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다양한 인물형들의 다양한 생활 모습이 그려져 있지만 전반적으로 갑갑하고 어두운 색채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마비라는 한마디 단어만으로이 책에 그려진 더블린 사람들의 이야기 전체를 단순화한다면 과연 온당한 평가라고 할 수 있을까? - P337

 마비라는 단어가 조이스 자신이 이 책에 대해서 사용한말이고 또 실제로 이 책 도처에 마비의 증상이 짙게 감지된다는 점은 물론 인정할 수밖에 없다. 다만 그것은 역설적으로 그마비의 증상에 대해서 조이스가 그만큼 안타까워했다는 사실의 반증이기도 하다.  - P338

2 꼼꼼한 비속의 문체

(전략). 그런데 조이스 학자들의 입에 ‘마비‘에 버금가게 자주 회자되는 이 어구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해석이 종종 엇갈린다. - P338

꼼꼼한 문체는 조이스의 철저한 자연주의적 작품을 나타낸다. 조이스는 「율리시스』를 읽어 본 사람은 더블린을 직접 가보지 않아도 더블린 시가를 머릿속에 훤히 재현해 낼 수 있을것이라는 취지의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이는 『더블린 사람들』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이다.  - P339

그러나 조이스는 자연주의적 수법에만 만족하지 않았다.
사실주의나 자연주의라는 사조가 인생을 있는 그대로 담는다 - P340

 즉 어떤 사물이나 인물에 초점을 맞추어 그 안에 내재해 있는 특수한 성질이나 본질이 순간적으로 빛을 발하듯이 강렬한 인상을 통해 드러나게끔 하는 것이다. - P340

그러나 더블린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드러내고 보여 주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이야기들이, 특히 끝부분에서 점강법, 불완전, 감추기를 보여 주기도 한다. - P341

사물의 절대적인 객관성에 대한회의에서 출발하여 사물을 바라보는 다각적인 시각의 가능성과 필요성을 느꼈던 것이다. 이피퍼니도 그러한 착상의 산물이거니와, 조이스는 작중인물과 독자에게 공히 사물을 인식하는 데 있어서 절대적인 시각보다는 상대적인 시각에 비중을 두도록 했다. - P342

3 네 양상의 구조

조이스가 더블린 사람들의 생활 양상을 최대한 폭넓게 재현하고자 한 노력은 그것을 유년기, 청년기, 성년기, 공공 생활의 네 단계로 나누어 다룬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 P342

『더블린 사람들』을 형식과 구조의 측면에서 상호 관련성없이 완전히 동떨어진 이야기들의 부조화적인 묶음으로 봐서는 곤란할 것이다. 조이스는 그가 양보하지 않은 사항들을 견지하려고 애쓴 이유가 그것이 바로 "책을 단단히 응집시키는 사항들"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P343

이런 견지에서 전체 이야기들의 구조를 꼼꼼하게 비교·분석해 보면 놀랍게도 그것들 사이에 내용상 서로 관련을 이루는 일정한 패턴이 숨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 P344

이 표에 나타난 바와 같이 조이스는 대칭, 평행, 대조 등의 형태적 패턴을 바탕으로 『더블린 사람들』에 실린 이야기들 사이에 표면에 드러나는 것보다 밀접한 상관관계를 구성하고 있다. - P344

번역 대본으로는 국제적인 제임스 조이스 학술지인 《제임스 조이스 쿼털리 (James Joyce Quarterly)》가 표준판으로 정한책 (Dubliners: Text, Criticism, and Notes, ed. Robert Scholes and A.Walton Litz. New York: Viking Press, 1969)을 사용했다. - P345

가령 딱딱한 한자어보다는 순 우리말을 선택하되, 원본의 어휘가 라틴어 어간을 지니고 있고, 문맥상 그 말에 무게를 실으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생각되는 경우는 한자어를 사용하고자 했다. - P345

이 책이 나올 수 있도록 안내와 격려를 아끼지 않으신 이상옥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아울러 역자의 게으름 탓으로 번역이 지연되는데도 참고 기다려 준 민음사, 그리고 편집 과정에서 많은 도움을 주신 편집부에도 고마움을 전한다. 그리고 이 번역은 2008년도 세종대학교 교내 연구비 지원을 받아 이루어진 것임을 밝힌다.


2012년 12월
이종일 - P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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