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누나 유리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을 때 구사나기는 커피숍에서 『주간 트라이』 최신호를 읽고 있었다. ‘구아이회‘에 관한기사 제2탄이 실려 있었던 것이다. - P53
‘구아이회‘라고, 너, 들어봤어?" 구사나기는 자신의 손에 들려 있는 주간지를 내려다보았다. "응, 알아. 요즘 여러 가지로 화제에 오르는 것 같던데." 자신이 그와 관련된 사건을 담당하고 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누나 시어머니가 그 종교에 빠졌단 말이야?" - P54
"누나, 둘째를 원해?" "아니야, 이제 와서 둘째는 무슨. 그런데 있잖아, 너 알아? ‘구아이회‘ 입회금이 자그마치 백만 엔이야. 할머니가 돈을어떻게 쓰건, 그거야 당신 자유지만, 속임수일 게 뻔하잖아." 흠, 하고 구사나기는 한숨을 쉬었다. "그럴지도 모르지. 그래서, 나더러 어쩌라는 거야. 설마 할머니를 설득하라는 말은 아니겠지?" - P53
구사나기는 유리에게 부탁받은 얘기를 늘어놓았다. 웃어넘길 줄 알았는데 유가와의 반응이 예상 밖이었다. "실은 지난번에 자네한테 얘기를 들은 후로 내내 마음이찜찜했어. 우리 연구실에서도 ‘아이회‘가 화제에 오르더니학생들끼리도 갑론을박을 벌였거든. 그들을 지도하는 입장에서 무시할 수가 없더군. 그래서 지난주와 이번 주 『주간트라이』를 열심히 읽고 있던 참이야." "뭐 좀 알아냈어?" - P56
(전략). 명함을 건네는 유가와에게 사토야마 나미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다행이군요. 누추하지만 일단 앉으시죠. 커피라도 가져오겠습니다." "아니에요, 저희는 괜찮습니다. 그보다, 어서 얘기를 듣고싶어요." 사토야마 나미가 필기도구와 녹음기를 꺼냈다. 유가와는난처한 표정으로 구사나기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 P57
"기사는 읽었습니다. 하지만 비유적인 표현이 많아서 참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더군요. 조금 더 객관적인 사실을 알고 싶습니다."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사토야마 나미가 고개를 갸웃했다. - P58
구사나기가 말했다. "염을 한 번만 받은 게 아닙니까?" 그러자 그녀가 구사나기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보란 듯이턱을 쳐들었다. "교단을 세상에 정확히 알린 데 대한 사례라면서 대사가저를 특별 회원으로 인정해 줬습니다. 그래서 입회금을 면제받고 신자가 되었죠." - P59
"기사에 따르면 무언가 따스한 것에 감싸인 듯한 느낌이었다고 했던데요." 유가와가 말했다. "맞아요. 아주 잠깐이었지만, 체온이 확 올라가는 느낌을받았어요." - P60
구사나기가 유가와를 바라보았다. "기공으로 그런 일이 가능해?" "숙련된 기공사는 손을 향하기만 해도 그 부분이 따뜻해진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 일설에 따르면 손바닥에서 원적외선이 방출된다고도 하고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대사는 그보다 훨씬 높은 수준에 도달했을 거라고 봐요." "원적외선이라.... 유가와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걸로는 사람을 창문 밖으로 떨어뜨릴 수 없어." - P61
유가와는 "불이라…………." 하고 중얼거리며 팔짱을 끼고는생각에 잠긴 채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저, 하고 사토야마 나미가 입을 열었을 때였다. 유가와가갑자기 팔짱을 풀더니 구사나기를 바라보았다. "자네가 취조실에서 렌자키 씨에게 염을 받았을 때는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고 했지?" - P61
"대사에게 그 일에 관해 들었어요. 염을 보내는 시늉만 했을 뿐이라고 하시더군요. 그런 신성한 행위를 취조실 같은 곳에서 할 수는 없었다는 거예요." "다시 말해서 그 의식은 이 방에서가 아니면 하지 않는다는말이군요." 유가와가 칠판에 그린 평면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네, ‘정화의 방‘에서만 하는 거죠." - P62
"과학적으로 조사하는 것 말이에요. 우리 편집부에서도 그런 얘기가 나와서 교단에 부탁한 적이 있는데, 곤란하다고 했어요." "왜죠?" "그런 식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거예요. 대사의 염은 상담자의 마음에 작용하는 거라서, 사람의 마음을 과학으로 읽을 수 없는 것처럼 그 힘 역시 측정할 수 있는 것이아니므로 측정하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대요. 게다가 외부인들이 들락거리면 제대로 송념이 되지 않는다고 했어요. 아까 제가 과학적으로 설명해 줄 사람을 찾는다고 말한 이유도직접적인 조사가 불가능하기 때문이에요." - P63
8
(전략). 그녀는 ‘구아이회‘ 본부에 와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혼자가 아니었다. 그녀 옆에 유가와가 있다. "소문은 들었지만, 위세가 대단한 것 같군요. 가구도 장식품도 죄다 최고급품이에요." 유가와가 실내를 둘러보며 태평스럽게 말했다. - P64
유가와가 "요코다입니다." 하며 명함을 건넸다. 실제로 편집장에게 받아 온 명함이긴 하지만 그 사용처를 편집장에게는 정확히 알려 주지 않았다. 자초지종을 들으면 노발대발할지도 모른다. "저희 사토야마 씨가 신세를 많이 졌다고 들었습니다. 덕분에 이번 호도 매진입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유가와가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대단한 연기다. - P65
"제가 설명하겠습니다." 유가와가 나섰다. "실은 요즘 컨디션이 영 좋지 않아서 고민이에요. 몸이 무겁고, 머리도 하고요. 게다가 식욕 부진에 불면증까지 있지뭡니까. 그런데 의사에게 진찰을 받아 봤더니 딱히 나쁜 곳이없다는 거예요. 사토야마 씨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대사를 한번 만나보라고 권하더군요." 아하, 하고 마지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사의 염을 받고 싶다는 말씀이로군요?" "안 되겠습니까?" - P66
과학적인 조사를 교단이 허락하지 않는다고 말하자 유가와는 자신이 그럴듯한 이유를 붙여 피험자가 되어 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하지만 설사 그럴듯한 이유가 있다 해도 물리학자가 체험하겠다고 나서면교단 측에서 달가워하지 않을 게 뻔했다. 그러자 유가와는 놀랍게도 자신이 『주간 트라이』 편집장 행세를 하겠다고 했다. - P67
마지마가 미닫이문을 열고 그렇게 말하더니 유가와의 가방으로 손을 뻗었다. "짐은 저희가 맡아 드리겠습니다." 나미가 움찔 놀라며 유가와를 바라보았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제가 들고 있겠습니다." 유가와의 말에 마지마는 고개를 저었다. 미소를 띠고 있지만 눈빛이 날카로웠다. "‘정화의 방‘에는 불필요한 물건을 들이지 않습니다. 그게규칙이니 모쪼록 양해해 주세요." - P68
가방을 맡긴 후 두 사람은 실내로 들어섰다. 한가운데에 방석이 놓여 있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간소한 방이었다. 창문은 이미 열려 있었다. "저게 ‘구아이의 별‘인가요?" 유가와가 상좌 뒤 벽에 걸려 있는 마크를 보면서 물었다. 맞아요, 하고 나미가 대답했다. "디자인이 깔끔하군요. 조그맣게 글자가 쓰여 있는데, 뭐라고 쓰여 있는지 좀 봐주겠어요?" - P69
앞쪽 문이 열리고 승복 차림의 렌자키가 들어왔다. 그는 나미에게 묵례한 후 유가와를 바라보며 단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평소처럼 ‘구아이의 별‘에 예를 갖춘 뒤 단 한가운데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이때 나미는 단 앞쪽에 대학노트가 세워져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렌자키가 앉아 있는 자리 바로 밑이었다. 당연히 렌자키에게는 보이지 않을 터였다. - P70
유가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마음의 더러움을없애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좀 걸릴지도 모르겠군요. 오랜 세월에 걸쳐 더러움이 쌓인 터라서요. 저, 입회하겠다는 뜻은 확고합니까?" "그건 아직요. 일단 체험하고 나서 결정할 생각입니다." "그래요?" 렌자키가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의심하고 계시는군요." - P71
(전략). "그래요? 그럼 다시 한번 해 보죠." 렌자키가 똑같은 동작을 되풀이했다. 그러자 유가와의 몸이 뒤로 밀려나는 것처럼 움직였다. "어떠세요?" 이번에는 틀림없이 느꼈겠지, 라고 하듯이 렌자키가 빙그레 웃었다. 그러나 유가와는 이번에도 고개를 갸웃했다. "잘 모르겠어요. 제가 원래 암시에 쉽게 걸려들지 않습니다." - P72
렌자키가 심각한 표정으로 양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눈을 감지 않은 채 유가와를 바라보았다. 다음 순간, 으악, 하고 소리를 지르며 유가와가 뒤로 나동그라졌다. 허겁지겁 몸을 일으키는 그의 얼굴이 굳어져 있었다. "이번에는 아무래도 뭔가 느낀 모양이군요." 렌자키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유가와는 두세 번 고개를 끄덕였다. "느꼈습니다. 확실히요." - P73
"그러십시오. 자, 그럼." 렌자키가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갔다. "괜찮으세요?" 나미가 유가와에게 물었다. 유가와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단상으로 다가가 세워 놓았던 노트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그걸 펼쳐 보며 만족스럽게미소지었다. - P74
9
구사나기를 비롯한 경시청 수사관들이 후지오카와 함께 ‘아이회‘ 본부를 압수수색한 것은 오전 9시경이었다. 도량예는 일반 신자도 있었는데 그들은 당혹스러워할 뿐 저항하지 않았다. 강력하게 반발한 쪽은 간부들로, 그들은 수사관이 위층으로 올라가지 못하도록 엘리베이터를 정지시켰다. - P74
옆방에는 렌자키 시코, 본명 이시모토 가즈오와 아내인 사요코가 함께 있었다. 그들을 방에서 내보낸 후 벽에 붙어 있는 책장을 조사하던 구사나기 일행은 눈에 쉽게 띄지 않는 곳에서 금속 장식을 발견했고, 그걸 조작하자 책장이 옆으로 미끄러져 움직였다. 그 안쪽에 숨겨져 있던 것은 서랍장 정도 크기의 장치였다. - P75
10
실험이 있고 일주일 후, 구사나기가 유가와의 연구실을 찾았다. 재차 감사 인사를 하려는 것이었다. "자네 덕분에 윗사람들이 싱글벙글이야. 고맙네." - P80
구사나기가콧등을 찡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 말대로야. 아쉽지만, 나카가미 건으로는 상해치사가고작일 거야. 하지만 놈들의 죄는 그뿐이 아니라네. 명백히 사기죄에 해당하거든. 그래서 수사 2과 녀석들이 아주 신났어. 우리 1과 덕분에 말이야." - P81
"그럼 그자들은 무죄일 수도 있겠군. 주모자는 누구야, 역시 교조인가?" 구사나기가 고개를 저었다. "그 사람은 수족일 뿐이야. 이용당했다고 할까. 주모자는교조의 아내 사요코였어. 애초에 그 여자가 원흉이야." - P82
사요코는 전에 다른 남자와 결혼한 적이 있었다. (중략). 그러나 사요코는 그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재산을 노리고결혼했을 뿐이다. 실제로 결혼 당시에는 공장의 경영 상태가좋았다. 그런데 장기화한 불황의 여파로 상황이 서서히 나빠졌고가사에 시달리며 돈도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생활에 염증을느낀 사요코는 마침내 집을 뛰쳐나오고 말았다. - P83
(전략). 하지만 사요코의 남편이 남긴 취급 설명서를 읽어 본 마지마는 "이건 팔릴 만한 물건이 아니야."라며 고개를 저었다. 왜냐고 묻자 산업 기기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했다. "공작용 기계도 아니고 계측 기기도 아니야. 굳이 말하자면 건강기구랄까." - P84
그래서 새로 끌어들인 사람이 역시 도박 멤버로 알게 된 모리야였다. 모리야는 신비주의를 내세워 돈을 번 경험이 있었다. 종교 법인을 설립하는 루트도 훤히 꿰고 있었다. 셋은 사요코를 중심으로 면밀히 계획을 세웠고 마침내 종교 단체를 세웠다. (중략). 그때 알게 된 사람이 이시모토 가즈오다. 그는 기공사 간판을 내걸고 병을 치료하고 있었다. 효험이 좋다는 평판이 있는 반면 치료 효과가 전혀 없다는 소문도 많았다. 바로 이 남자야, 처음 이시모토를 봤을 때 사요코는 그렇게생각했다. 생김새도 나쁘지 않은 데다 지성미마저 살짝 풍겼다. 퍼포먼스가 뛰어나고, 무엇보다 스스로에게 도취하는 능력이 탁월했다. - P85
이렇게 해서 신흥 교단 ‘구아이회‘를 발족했다. 구아이라는 이름에 별다른 의미는 없다. 괴로울 고(苦)와 사랑 애자를 붙여 소리 나는 대로 쓴 것에 불과했다. 교조는 이시모토였지만 교단을 조직하는 일은 사요코가 도맡았다 - P86
그런데 순조롭게 신자를 늘려 가던 교단이 최근 들어 정체기를 맞았다. 입소문만으로 사람을 모으기에는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뭔가 돌파구가 필요했다. 그러던 차에 신자들 사이에 이상한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몇몇 간부가 교단의 자산을 횡령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몇몇 간부란 마지마와 모리야를 가리키는 것이 분명했다. - P87
그러나 나카가미를 죽일 작정은 아니었다. 그가 뛰어내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것이 사요코와 마지마 등의 주장이었다.
"그들의 주장이 부자연스럽기는 하지만, 그 주장을 뒤집기도어려워." 구사나기가 말했다. - P88
"흐음, 지금까지 들은 바로는 단순한 배후 인물로 만족할만한 여자가 아닌 것 같은데." "본인은 스스로를 배후 인물이라고 여기지 않았어. 프로듀서라고 여겼지." 그 말을 하면서 구사나기는 새삼 사요코의 얼굴을 머릿속에떠올렸다. 재미있었어요, 희대의 악녀는 얄미울 정도로 태연스럽게말했다. - P89
"그자는 믿고 있었어. 자신의 힘으로 신자들을 구원해 왔다고 말이야. 그래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자수할 의사를 밝혔던 모양이야. 자신이 죽였다고 믿었으니까. 그런데 사요코 일당은 그의 그런 믿음을 이용하기로 했지. 교조가 자수하면 선전 효과가 한층 높아질 거라고 생각한 거야. 어차피 유죄 판결이 내려지지는 않을 거라고 예상했으니까. 간수 말로는 이시모토가 구치소에 있는 내내 명상을 하더래. 그 모습이 연기로 보이지는 않았다는군." 구사나기의 얘기를 듣고 난 유가와는 침통한 표정을 지으며 손가락으로 안경을 밀어 올렸다. - P91
구사나기가 물었다. 유가와는 티켓 앞면을 구사나기 쪽으로 돌렸다. "전국 점 페스티벌이래." "점?" (중략). "어유, 답답하긴・・・・・・ 미안해. 그냥 버리게." "버리긴 왜 버려? 잘 맞힌다잖아. 이거 흥미진진한걸. 고맙다고 전해 줘." 유가와는 티켓을 흰 가운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 P92
4장
휘다
1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10월 들어서는 날씨가 영 신통치 않다. 이게 가을장마라는 건가, 하고 남자가 중얼거렸다. 목적지에 거의 다다랐을 때 휴대 전화가 울렸다. 남자는쭛, 혀를 차고서 손으로 더듬거려 전화기를 찾아 쥐었다. - P265
"언제까지 있을 건데?" 아내는 음, 하며 잠시 생각하다가 "내일 돌아올 예정이긴 하지만 어쩌면 하루 더 묵을지도 몰라. 장례식 뒷정리도 거들어야 하니까."라고 대답했다. "그걸 꼭 당신이 해야 해?" 지하주차장 입구가 보였다. 몇 번 온 적이 있어서 어떻게 생겼는지 안다. - P266
통화를 마친 남자는 휴대 전화기를 조수석으로 휙 던졌다. 여자는 참 태평해서 좋겠어, 하고 생각했다. 남자는 머릿속에 어떻게 하면 한 푼이라도 더 벌까 하는 생각뿐인데. 오늘만 해도 원래는 쉬는 날이었는데 동료가 병으로 쓰러지는 바람에 뜻하지 않게 자신이 불려 나왔다. 물론 거절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특별수당을 외면할 만큼 형편이 넉넉지 않다. - P267
2
이 정도 크기라면 기계식 주차장에 들어가기 어렵겠는걸. 구사나기가 은색 차체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유럽산 세단이다. 전체 길이가 5미터도 넘는 데다 차폭도 1미터 80센티미터 이상이다. 그렇다면 평면 주차 공간에 세울 수밖에 없는데, 안타깝게도 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특권층의 권력을 이용했다. 이건가." - P268
"그래서, 어떻게 생각해?" "그게......" 구사나기는 눈꼬리 옆을 긁적거렸다. "아직은 뭐라고 말하기 힘듭니다. 단, 피해자가 이 장소에차를 세운 게 우연은 아닌 것 같아요. 다시 말해서 그런 사실을 아는 사람의 계획적인 범행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 좋아. 자세한 내용은 나중에 듣기로 하고, 자네들은서로 돌아와 피해자의 남편이 곧 도착한다니까." - P269
"그야 그렇겠지. 다만 야나기사와 선수와는 관계없는 일이야. 아마 뛰지도 못했을걸." "그래요?" (중략). "그럴 때 부인이 이런 일을 당했으니..... 타이밍이 너무나쁘네요" - P270
스포츠 센터 주차장에 여자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다는신고가 들어온 것은 오늘 오후 5시 30분경 신고한 사람은 주차장 경비원이다. 119에도 신고가 들어가 구급대원이 달려왔다. 여자는 운전석 문 옆에 쓰러져 있었다. 원피스 위에 얇은 코트를 걸쳤는데, 그 코트의 등쪽이 절반 가까이 피로 물들어 있었다. 구급대원이 여자의 사망을 확인했을 무렵 관할 서 경찰관이 도착했다. - P271
이름은 야나기사와다에코 이 스포츠 센터의 VIP 회원이었다. 이날 방문한 목적은 피부 관리를 받는 것으로, 사전에 예약되어 있었다. 그럴 경우 지하 주차장 특별 구역에 주차하게 한다는 것이 피부 관리실 담당자의 설명이다. 스포츠 센터 데이터베이스에 야나기사와 다에코의 개인정보가 일부 들어 있었다. 그녀는 가족 회원이고, 남편이 프로 야구팀 도쿄 엔젤스의 야나기사와 다다마사 선수라는 사실도 그 정보에 의해 밝혀졌다. - P272
"그 피부관리실 말인데요, 부인이 그곳에 다닌다는 사실을 아는사람이 많습니까?" 글쎄요, 하면서 야나기사와가 고개를 갸웃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아무한테도 말한 기억이 없지만그 사람은 적어도 친구들한테는 말하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 P273
"자동차 조수석에 있던 물건입니다. 백화점 쇼핑백에 담겨있었어요." 야나기사와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처음 봅니다." "누군가에게 선물하려고 한 게 아닐까 싶은데, 그런 얘기를 부인께 들은 적은요?" "없습니다." - P274
차가 달리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야나기사와가 어딘가로 전화를 걸더니 소곤소곤 얘기를 나누었다. ‘빈소‘라든가 ‘장례식‘ 등등의 단어가 귀에 들어왔다. 통화 도중 야나기사와가 저, 하고 말을 건넸다. "시신을 언제쯤 돌려보내 주실 거죠?" 구사나기는 잠시 생각하다가 "일러야 내일 저녁 무렵일 겁니다. 부검을 해야 하니까요."라고 대답했다. "......그렇군요." - P275
3
범인은 사건 발생 닷새 만에 체포되었다. 27세 남자로, 다니던 회사에서 며칠 전 해고당했다고 한다. 회사 비품을 멋대로 가져다가 인터넷에서 판매한 사실이 발각되었기 때문이다. (중략). 어떻게 하면 돈을 마련할 수 있을까 궁리한 끝에 주차 중인 차량을 털기로 한 그는 전에 경비원으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는 고급 스포츠 센터 주차장을 떠올렸다. - P276
남자는 옆에 있던 차 뒤에 몸을 숨기고 외제 차가 후진해서주차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차에 탄 사람은 여자 혼자였다. 차림새가 고급스럽다는건 밖에서 보아도 알 수 있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유리창을 깰 필요가없지 않은가. 차에서 내리는 여자를 덮쳐서 기절시키면 그만이다. 지갑을 지녔을 테니 전당포에 갈 필요도 없다. - P277
|